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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0:23:22

10분의 1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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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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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집행 과정3. 집행 사례4. 유사 사례5. 매체에서

1. 개요

데키마티오(decimatio, 10분의 1형)는 고대 로마에서 로마군 부대 전체에 연대책임으로 부과하던 형벌의 일종으로, 형벌이 내려진 부대 안에서 임의로 10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을 선발한 뒤 나머지 군인들에게 해당 인원을 직접 죽이게 하는 극형이었다. 그 잔인성과 극단성으로 인해 '데키모(decimō)'[1]라는 어휘 자체가 사람을 매우 많이 죽이다라는 의미의 일반동사로도 사용되었으며 이 흔적은 현대의 유럽 언어들에도 남아 있다.[2]

2. 집행 과정

부대 전체가 처벌 대상일 때 적용 기준은 총사령관에 대한 집단 항명, 즉 적전에 처한 부대가 총사령관의 작전 명령에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을 때라고 분명히 정해져 있었으며 역사에 처벌 사유, 집행의 정당성 등이 기록으로 확실하게 남았다. 사령관은 임무 종료 후 원로원에 출석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해야 했는데, 10분의 1형 정도 되면 중대한 군율 위반으로 처형했다 등의 해명으로 적당히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당성을 확실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명백한 증거자료를 제시해서 원로원 의원들을 설득해야 했다.

어찌 됐건 처벌이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일단 처벌 대상자 중 10분의 1 정도를 제비뽑기로 뽑았는데 보통 백인대 혹은 대대가 그 대상이었으며 운 좋게 뽑히지 않은 90명의 병사가 불운한 전우 10명의 군복을 벗긴 후 둘러싸고 몽둥이, 채찍, 돌 등으로 때려 죽인다(푸스투아리움, fustuarium). 이후 (제비에서 뽑히지 않아) 살아남은 병사들은 일정 기간 동안 진영 밖으로 쫓겨나 위험한 곳 혹은 노예나 창녀들을 주둔시키는 곳에 주둔하며 정규 병영식(밀) 대신 동물용 사료(보리)를 배식받았다. 그 기한은 제한이 없었고 사령관의 판단에 따랐기 때문에 군역에서 해제되는 날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정도 사건에 연루되면 살아남은 자들도 이후 사회적 매장은 확정이었다. 운 하나만으로 생과 사가 갈린다는 것 때문에 병사들에게 상당한 공포를 줬고 운이 좋아도 같은 백인대 내에서 한솥밥을 먹고 얼굴 맞대며 함께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던 동료 병사를 직접 때려 죽여야 하니 당대 사람들도 매우 흉악하고 야만적인 처벌이라고 여겼다. (차라리 형 집행 이후의 험한 꼴은 안 보고 가는) 맞아죽는 사람보다 때려 죽이는 사람들이 더 참담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3. 집행 사례

사실상 군대 법전에 존재하기만 했던 형벌이었으며 거의 집행되지 않고 공포로서 군대를 다루기 위해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던 형벌에 가까웠다. 당대 기준으로도 해도 해도 너무한 극형이었던 만큼 진짜로 집행한 기록은 극히 드물고 어지간해선 선고만 하고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만 사형시키거나 그냥 선고하고 나서 집행하는 시늉만 하고 그 전 단계의 형벌을 집행하는 식으로 경각심만 주는 선에서 그쳤다.

실제 선고 사례를 들자면 전쟁에 지친 9군단 히스파나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했을 때 카이사르는 처음에는 10분의 1형을 선고했으나 결국 주동자 12명만 처형하는 선에서 넘어갔고, 10군단 에퀴스트리스가 주동이 되어 4개 군단이 무장 파업을 일으켰을 때도 선고만 하고 집행은 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경고가 목적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티베리우스 황제 즉위 초기 군단병들이 일으킨 반란 당시 티베리우스는 10분의 1형을 집행하지 않았으며 대신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만 따로 불러내 처형하고 나머지 병사들은 그냥 넘어갔다.

이런 식으로 10분의 1형 집행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당시 군대는 그 무엇보다 사기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군율 및 제식 위반은 엄하게 다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적절한 보상과 무공에 대한 포상으로 전투의지를 다독여서 탈영이나 전투 중에 전열이탈 혹은 소위 모랄빵을 방지하는 것이 당대 일선 지휘관부터 사령관들까지의 큰 숙제였던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처사였다.

실제로 집행하고 나면 남은 병력들은 가뜩이나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전시 군대 특성상 아군, 심지어 어제 등을 맞대었던 전우나 친우한테도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각인해 전투 의지를 상실할 가능성이 명확했기 때문에 사실상 다시 전투에 투입하는 건 불가능하고, 아무리 고대 로마라고 한들 소중한 병사들을 그렇게 의미 없이 전투도 하지 않은 채 낭비하는 건 요즘 군대에서 소위 ‘전투력 낭비’와 같은 맥락으로 매우 어리석은 판단임을 당대 사람들과 지휘관도 아주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습격받을지 모르는 로마의 수없이 많은 원정길에서 믿을 만한 군인은 가뜩이나 부족했을 텐데 멀쩡한 전투원 중 10%를 전투도 하지 않고 갈아버리며 사기까지 저승길에 처박아버릴 비상식적인 행위를 할 군단장과 지휘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크라수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인 제3차 노예 전쟁 당시 패주한 부대에 대해 이 처벌을 내리기도 했는데, 크라수스는 술라파 인사라는 점, 그리고 로마 제일의 부자였고 권력자였다는 점 때문에 사안을 묻어버린 케이스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던 부대가 대놓고 노예군에게 등돌려 도망치는 바람에 초전에서 패배한 것이었고, 바로 그 부대를 상대로 '데키마티오'를 집행한 거라 당대 로마인들도 해당 부대의 구성원들의 행태를 '노예로부터 도망친 놈들'이라는 매우 수치스러운 행위로 생각했다. 또한 징병제가 아닌 일반 시민이 엮일 가능성이 낮은 지원병제였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크라수스 정도의 거물급 인사가 노예 반란군 앞에서 등을 돌려 도망갈 정도로 엄청난 짓을 저지른 부대를 향해 내린 수준은 되어야 데키마티오를 합당한 선고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차후 마리우스는 모병제로 군제 개혁을 할 때 아예 폐지하기도 했는데 도의적인 판단도 있었지만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굳이 10분의 1형 같은 극단적인 형벌로 공포로 군대를 다스릴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유지한다고 해봤자 지원자가 줄어들 것 같은 합리적인 이유였다. 게다가 징병제인 시절에서도 어차피 선고만 해 놓고 당사자만 처형해도 처벌은 충분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말이 되는 게 충성 서약을 한 병사들이 불명예스러운 행동임을 분명히 인지한 상태에서 사령관의 명령에 집단 항명을 할 정도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일 테니 무슨 짓을 해도 그리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순히 병사들 사이에서 사령관에 대한 신임이 완전히 사라진 정도라고 해도 사령관을 교체해 버리면 될 걸 굳이 10분의 1형까지 집행하는 건 무리수가 맞았다. 당장 단순 도주자들에게조차 데키마티오를 남발하던 크라수스조차 카르헤 전투에서는 혹형에도 불구하고 이미 붕괴된 부대의 기강을 전혀 잡지 못해 본인과 병사들 모두 참혹한 죽음을 맞아야 했는데 이미 부대가 붕괴되고 병사들이 전의를 완전히 잃었을 때는 군법의 혹형이 오히려 기강을 해치고 사기를 떨어뜨렸지, 기강을 잡는데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분명한 예시다.

제정 시대에는 오히려 더 줄어들어서 선고 및 집행한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20년을 복무하는 지원병들이기 때문에 군복무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병사는 어차피 입대를 안 할 것이었고 개중에도 동기부여나 군복무 적응도가 애매한 병사는 수습기간에 걸러내고 나머지만 정식 입대하며 제국이 안정되고 지휘관들이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쌓고 위험한 전선에는 충분한 경험과 실력을 갖춘 자들만 투입되면서 적어도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집단 항명 같은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공화정 시기보다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3세기의 위기 및 이후의 혼란기에는 늘어난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 시행 기록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집권기에 있었다.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도 페르시아 원정 직전 병사들이 집단 탈영을 강행하자 군기를 잡으려고 10분의 1형을 선고했다가 병사들의 반발이 심각하자 철회하고 대신 주동자 몇 명만 추려내 참수형에 처한 뒤 넘어갔다. 6세기 마우리키우스 황제가 쓴 병법서인 《전략서(Στρατηγικόν, Strategikon)》에서는 병사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의 낭비라는 이유로 10분의 1형을 포함한 극형들을 금지하였다.

이후 20세기 초 소비에트 러시아와 백군 간의 내전에서 적군이 열세에 몰리자 레프 트로츠키가 동원령을 선포, 군 규율 확립을 위해 병사 10명 중 1명을 무작위로 총살하는 10분의 1형을 시행하는 등 현대에도 사례가 일부 존재한다.

이렇게 10분의 1형은 현대의 기준은 물론이고 기원전에도 극도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에서 실행된 극형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시행하고자 했어도 병사들의 사기 저하와 반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러한 형벌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수많은 문서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로마에서 아군이 아군을 때려죽이는 이러한 형벌이 시행된 것은 사실이었고 이 수많은 문서들이 모여진 결과 10분의 1형은 역사상 실행된 사례가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극단적이고 잔혹함이 강렬하게 기록되었기 때문에 로마를 대표하는 형벌로 후세에 남게 됐다.

4. 유사 사례

이후에도 무려 20세기까지 데키마티오를 따라해 "10분의 1"을 죽이는 비슷한 처벌이 이뤄진 사례가 기록된 바 있는데 물론 동료들이 때려죽이는 건 아니고 총살형으로 집행되었다.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신성 로마 제국 측에서 뤼첸 전투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싸우지 않고 탈영한 부대의 10분의 1을 처형한 사례가 있다.

파라과이 전쟁 당시 파라과이군에서는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의 명으로 싸우지 않고 탈영한 부대의 10분의 1이 처형당했다.

독일 혁명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수병들 중 10분의 1을 처형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소비에트 러시아와 백군 간의 내전에서 적군이 열세에 몰리자 레프 트로츠키가 동원령을 선포, 군 규율 확립을 위해 병사 10명 중 1명을 무작위로 총살하는 10분의 1형을 시행하는 등 현대에도 사례가 일부 존재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주로 참호전 상황에서 지친 부대가 자살이나 다름없는 돌격을 거부한 사례가 많았고 이에 지휘관이 부대 전체가 사형이라고 위협한 후 몇 명을 무작위로 뽑아 총살했다는 사례가 있다.[3] 10분의 1형은 아니지만 부대 전체가 항명을 했다고 판단되어 특별히 주동자를 특정할 수 없을시 이렇게 아무나 몇 명만 본보기로 처형하는 일은 왕왕 있었다.

최후로 기록된 사례는 핀란드 내전이다. 다만 이 경우 포로들을 상대로 시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은 전황이 불리해지자 총수인 헤르만 괴링이 기강을 잡는답시고 비슷한 처벌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각 비행단 별로 1명씩을 차출해서 비겁죄란 명목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총수인 괴링 본인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 불만을 가진 아돌프 갈란트 전투기대 총감을 비롯한 일선 지휘관들은 그 군사재판 회부 대상 명단에 자기 이름부터 집어넣으며 항의해서 유야무야 끝났다. 대신 총감이었던 아돌프 갈란트를 일선 전투비행단 단장으로 좌천시킴으로써 사실상 나가서 싸우다 죽어라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돌프 갈란트는 '오? 다시 일선에서 싸우라고? 땡큐!'였고 독일 각 전투 비행단에 있던 에이스 파일럿들도 아돌프 갈란트가 전투비행단으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너도나도 '나도 거기서 싸울래!'라고 자원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 결과 창설된 비행단이 바로 철십자 훈장은 부대 뱃지에 불과한 JV-44였다

5. 매체에서


스파르타쿠스 드라마 3부에서 제3차 노예 전쟁 당시 10분의 1형 장면이 나온다. 아들 티베리우스에게도 제비를 뽑게 해서 결국 절친했던 전우를 제 손으로 때려죽이게 만드는 크라수스의 냉혹함이 감상 포인트다.

Warhammer 40,000에서 대성전 당시 아이언 워리어 페투라보 월드 이터 앙그론이 자기 군단원들을 상대로 많이 선고했다. 그 결과 아이언 워리어 마린들은 감정이 무뎌져 기계 부품처럼 되었고 월드 이터 마린들은 왜 유전-아비가 그런 형벌을 내리는지 이해하려다가 아비처럼 도살자의 대못을 머리에 박고 같은 신세로 타락해 버린다.

토탈 워: 로마2에서는 계속된 패배나 강행군, 혹은 능력이 개판인 군단장 때문에 로마 군단병들의 기강이 극히 문란해져서 군단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주할 위기에 처하면 10분의 1형을 내려서 강제로 군기를 확립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토탈 워: 워해머 3 케세이에서 지도자인 용족들은 어차피 필멸자들은 짧게 사느라 목숨에 무감각하다면서 병사들의 기강을 잡는답시고 10분의 1형을 넘은 5분의 1형을 선고하는 선택지가 있다. 특히 케세이의 사회 설정들을 보면 뭔가 40k의 인류제국과 황제, 프라이마크들에서 어느정도 모티브를 가져온 것도 있다.

폴아웃: 뉴 베가스에서 카이사르의 군단 라니우스가 저조한 분대의 분대장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때려죽인 뒤 병사들에게 10분의 1형을 실시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세계대전Z에서 좀비 사태가 터지고 러시아군 병사들이 명령에 불복종하자 장교들이 "너네들이 좋아하는 민주주의를 연습할 시간"이라며 10분의 1형을 선고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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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건 1인칭 단수 현재 미완료 능동태 직설법이다. 으뜸꼴은 decimare. [2] 영어 'decimate', 프랑스어 'décimer', 독일어 'dezimieren', 스페인어 'diezmar' 등은 모두 '(사람이나 어떤 생태계의 동식물을) 대량 학살하다' 또는 '(대상을) 극단적으로 손상시키다'라는 뜻의 동사다. [3] 무작위라고는 하지만 사실 상부에서 '군법회의에 넘겨서 총살할 몇 놈을 뽑아라'라고 하면 부대 간부들은 대개 부대 내에서 적응하지 못해 따돌림 당하는 병사 유대인 등 차별받는 부류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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