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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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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Imperium
1. 개요2. 상세

1. 개요

고대 로마에서 시민이 관료 및 군대와 민중을 통제하고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갖춰야 할 권위를 일컫는 라틴어 용어. 흔히 통솔권, 지휘권으로 번역된다. 특정 관직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일컫는 포테스타스와 함께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법적 개념이다.

2. 상세

라틴어 동사 '임페르아레(imperare: 명령하다, 지시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대 로마에서 행정관의 권위를 상징했다. 로마 공화국 시기, 이들은 원칙적으로 파트리키 플레브스가 포함된 켄투리아회(Comitia Centuriata)에서 특정 직책에 선출됨으로써 권력을 행사할 정당성을 확보하고 로마 시민 및 군대에 명령을 내렸고, 이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는 것도 인정되었다. 공화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위를 가진 원로원은 행정관들에게 직임을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장려했다.

로마사를 처음 접한 이들은 임페리움을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에 귀속된 직함의 권한인 포테스타스와 종종 혼동하곤 하는데, 많은 로마 법학자 및 변론가들이 두 용어의 의미를 대중에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 걸 볼 때 당대 로마인들 역시 많이 헷갈려 했던 듯하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포테스타스를 "행정관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법률적 관념"이라고 설명했고, 페스투스는 "국민이 개인에게 공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부여한 권한"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울루스 겔리우스는 포테스타스를 행정관이 보유한 실질적인 힘이라고 설명하면서, 호민관이 원로원을 소집할 수 있는 권리는 임페리움이 아니라 포테스타스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로마 학자들은 임페리움을 포테스타스와 별개의 개념으로 간주했다.

로마 정계에서 임페리움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직함은 수석 조영관,[1] 법무관, 집정관, 그리고 독재관 기병장관이었다. 이들은 파스케스를 착용한 릭토르(Lictor)와 동행했고, 토가에 보라색 등 특정 색깔을 물들임으로써 권위를 세웠다. 각 관리에 배속된 릭토르의 수는 해당 직위의 임페리움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 지를 암시하는 척도였다. 수석 조영관은 2명의 릭토르를 거느렸고, 법무관은 로마 시 내부에서는 2명, 로마 바깥에서는 6명을 거느릴 수 있었다. 집정관은 12명의 릭토르를 거느렸으며, 독재관은 로마 시 내에서는 12명, 바깥에서는 24명을 거느렸다. 그리고 독재관이 거느리는 릭토르만 파스케스에 도끼를 장착할 수 있었다.[2]

조영관은 창녀, 도박꾼, 비밀 종교 조직 등 미풍양속을 해치는 이들을 단속하고 고리대금업자들을 처벌하는 등 로마 시내에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임페리움을 부여받았지만 군대를 통솔할 수는 없었다. 법무관은 초기엔 집정관들이 최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로마 시의 경비를 담당하는 역할만 주어졌지만,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고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오면서 전쟁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수많은 희생자가 양산되면서 지휘관을 대량으로 양성할 필요가 생기자 집정관보다 적은 규모의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임페리움을 부여받았다. 집정관은 대개 2개 로마 군단병과 동맹시에서 파견한 2개 보조 군단을 통솔할 수 있었고, 독재관은 국가 비상 상황이 끝날 때까지 로마 시민과 군단병 전체에 무제한적으로 임페리움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잡으면서 속주 체제가 갖춰지자, 임페리움은 점차 각지의 총독들에게 수여되는 "군사 지휘권"의 의미를 겸했다. 전직 집정관 및 법무관들은 총독으로서 각지의 속주에서 복수의 군단을 이끌며 속주를 최소 3년간 통치했다. 원로원은 각 지역에 파견된 총독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군사 활동을 벌이거나 영토를 분할하거나 합병하는 것 등을 '로마의 존엄성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선에서' 용인했으며, 그들이 속주민들을 자기 뜻대로 통치하는 것도 허용했다. 원칙상으로는 속주민들을 과도하게 수탈해서는 안 된다는 법령이 있었고, 총독의 학정에 시달린 속주민들이 로마 법정에 고발하는 것도 허용되었지만, 로마 정계에서 수많은 인맥을 쌓아둔 총독들은 대체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렇듯 임페리움은 행정관들이 자기 뜻대로 정책을 주관하고 군사 활동을 벌이는 동력이 되어줬지만, 이에 따른 책임은 막중했다. 만약 임페리움을 가진 이가 잘못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칠 때, 최악의 경우엔 "로마인의 존엄성에 손상을 입힌 죄"로 고발되어 추방 및 재산 몰수형에 처해졌고, 설령 처벌을 모면한다고 해도 정계에서 매장되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한니발 바르카를 상대로 형편없이 싸워서 참패를 초래한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아라우시오 전투의 참패를 초래한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틸리나의 음모를 조기에 밝혀내어 그 일당을 숙청해 로마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가 나중에 로마 시민들을 정당한 재판 없이 무작정 사형에 처했다는 비난을 받은 키케로 등이 바로 이 혐의가 적용되어 추방된 대표적인 사례다.

로마 정치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계의 거두가 되어 이름을 후대까지 남길 공적을 세움으로써 아욱토리타스(Auctoritas)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아욱토리타스는 로마 사회에서 한 사람이 지닌 사회적 명예와 능력, 영적인 힘 등을 종합한 개념으로, 이것을 많이 쌓은 자들은 신들의 총애를 입어 가문 대대로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임페리움은 아욱토리타스를 쌓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겨졌기에, 로마 정치인들은 임페리움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고 어떻게든 쟁취하거나 사수하려 했다.

가령, 기원전 202년 집정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로부터 아프리카 방면 임페리움을 회수하고 자신이 이를 맡아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자기 손으로 종식시켜 명예를 얻으려 했다. 민회는 스키피오가 원정군을 계속 지휘하게 하기로 결의했지만, 원로원은 제비뽑기를 통해 새로 뽑기로 했다. 그 결과 티베리우스가 아프리카 방면을 맡게 되었다. 그는 5단 노선(Quinquereme) 50척에 군대를 태워서 아프리카에 상륙하라는 지시를 받고 출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함대가 출항하기 전, 한니발 바르카가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카르타고가 항복을 선언하기 전에 군공을 세우기로 마음먹고 출항해 코르시카와 사르데냐를 거쳐 아프리카 해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 두 번의 폭풍을 겪고 칼리아리에서 배 수리에 전념해야 했다. 스키피오는 이 소식을 접하자 임페리움을 잃기 전에 카르타고와의 평화 협약을 서둘러 체결하기로 하고 요구 조건을 비교적 온건하게 설정했다.

기원전 8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소아시아에 거주하던 로마인과 이탈리아인 8만 명을 학살한 폰토스 왕국 미트리다테스 6세를 응징하고자 놀라에서 원정군을 조직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실각한 상태였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군공을 세워서 다시금 정계의 거두가 되기 위해 호민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의 로마 시민으로 편입된 이탈리아인들이 모든 선거구에 배속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술라의 임페리움을 자기가 가지는 것을 인정받았다. 술피키우스는 민회를 소집해 이탈리아인의 선거권에 관한 그의 법안을 통과시킨 뒤, 며칠 후에 술라의 동방 총사령관 지명을 철회하고 임페리움을 마리우스에게 넘긴다고 선포했다. 이 소식을 접한 술라는 극도로 분노해 병사들을 선동하여 자기 편으로 삼은 뒤, 마리우스가 인수인계를 하려고 보낸 장교를 현장에서 살해하고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로마군을 로마 시에 진주시키고 정적들을 살해했다. 이 일은 술라의 내전이 발발한 배경이 되었다.

기원전 49년 1월, 원로원은 갈리아 키살피나, 갈리아 트란살피나, 일리리아 속주의 총독이자 8개 군단의 지휘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재 중에 집정관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그의 임기가 이미 종료되었다며 당장 군단을 해산하고 단독으로 로마 시에 귀환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통보했다. 아욱토리타스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도 강렬했던 카이사르는 이런 식으로 임페리움을 상실하면 그동안 쌓아올린 아욱토리타스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비참한 처지로 내몰릴 것이라 여겼고, 그런 꼴을 당하느니 차라리 내전을 벌이기로 작정하고 카이사르의 내전을 단행, 수 년간 로마 전역을 전란에 휘말리게 한 끝에 승리를 거두고 로마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 이후 벌어진 내전에서 최종 승자가 되면서 지중해 세계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선 아우구스투스는 제정을 구축하기 위한 개혁을 실시했다. 이때 그는 본국 이탈리아와 모든 속주에서 총독들을 뛰어넘는 임페리움을 행사할 수 있는 임페리움 프로콘술라레 마이우스(Imperium Proconsulare Maius)를 특권으로 수여받고 총독들을 직접 통제했다. 이제 총독들은 로마에 직접적인 해를 미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통치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황제의 의중을 거슬렀다가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가령,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아이깁투스(이집트)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갈루스는 기원전 29년 남부 이집트의 중심 도시 테베에서 발발한 이집트인의 반란을 제압하고 쿠시 왕국 아마니레나스 여왕으로부터 필레 섬에 대한 로마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뒤, 필레에 큰 석판을 세우고 자신의 업적을 새기게 했다. 이 기념비에는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갈루스, 로마의 에퀴테스,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의 초대 행정관, 신 카이사르에 의해 왕들이 패배한 후 15일 만에 테베의 반란을 정복한 자"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코르넬리우스가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기념비를 세운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그는 코르넬리우스가 장차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려 들 거라 여기고, 그를 해임한 뒤 재판에 회부하여 전 재산을 몰수하는 벌을 받게 했다. 이에 코르넬리우스는 법령이 시행되기 전에 자살했다.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도입된 제정이 후대 황제들의 잇따른 정책으로 확립된 이래, 임페리움은 황제의 전유물이 되었다. 황제는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으로부터 특권으로 받아낸 임페리움 프로콘술라레 마이우스, 일명 임페리움 마이우스(imperium maius)를 세습하면서 로마 세계 전역에 권력을 행사했다. 여기에 임페리움 포풀리 로마니(Imperium populi Romani: 로마 인민의 권력 영역)와 임페리움 로마눔(Imperium Romanum: 로마의 통제권)은 로마 제국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1] 평민들이 맡은 '보조 조영관'은 평민들이 관람하는 소규모 경기를 관리할 권한만 인정받았을 뿐 그 외에는 수석 조영관을 보좌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2] 이는 독재관들이 삶과 죽음까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집정관들보다 특별하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