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 De administrando imper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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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0세기 중순,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가 후계자인 로마노스 2세를 비롯한 후대 황제들에게 국내 및 외교 정책에 관한 지침을 제공하고자 집필한 저서. 동로마 제국이 당시에 처한 상황이 현지 황제의 시각에서 고스란히 전해지기에 동로마 제국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사료로 취급되며,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보스니아, 달마티아 등 발칸반도 각지에 퍼진 남부 슬라브인의 초기 역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므로 해당 국가 역사가들에게도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2. 집필 배경
콘스탄티노스 7세는 생전에 어머니 조이 카르보노프시나가 폐위당하고 로마노스 1세와 아들들에게 밀려나 이름뿐인 황제로 지내는 등 수많은 역경을 겪어야 했지만,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이었으며, 역사를 무척 좋아해 오랫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 역사, 행정, 이전 황제들이 체택한 궁중 의식 등, 도서관에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945년 로마노스 1세와 아들들을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한 뒤, 그는 지식인들을 불러모아 동로마 제국의 행정, 예절, 역사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쓰는 데 전념했다. 그는 바실리오스 1세의 전기를 손수 집필했으며, 미완성된 3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이다.[1]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가 948년에서 952년 사이에 집필되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제29장에는 '지금은 VII 기점, 즉 세계 창조로부터 6457년이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동로마 제국력에서 6457년은 서기 948/949년에 해당한다. 제45장에서는 "지금은 X 기점, 즉 콘스탄티노스와 로마노스 통치 기간인 세계창조로부터 6460년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년도는 서기 951/952년에 해당한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이 저서가 952년부터 콘스탄티노스 7세가 사망한 959년 11월 이전 어느 시점에 편찬되었을 거라고 주장하며, 일각에서는 이 책이 926년에서 959년 11월 사이에 쓰여진 미완성 원고라고 주장한다.
콘스탄티노스 7세는 서문에서 이 저서가 아들 로마노스 2세가 필요로 할 지식의 모음이라고 밝혔다. 7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뒤 온갖 고난과 역경에 시달렸던 그는 훌륭한 황제가 되기 위한 제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걸 한스러워 했고, 자기를 밀어내고 황권을 행사한 로마노스 1세와 아들들을 무식하고 야만적이라고 여겼다. 그는 아들이자 후계자인 로마노스 2세만큼은 제왕교육을 착실히 받기를 희망했고, 장차 단독 황제가 되어 제국을 이끌어갈 때 지침을 제공하길 희망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적 상황에 관한 상세한 평가, 장차 소년을 인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조언들을 담았다. 한편, 그는 자기가 이 저서를 집필할 때 "익명의 협력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3. 내용
콘스탄티노스 7세는 서문에서 아래의 4가지 주제를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1. 다양한 민족과 로마 제국의 관계 및 민족들을 활용하여 위험한 적을 정복하고 종속하는 다양한 수단.
2. 다양한 민족이 선호하는 선물.
3. 이들 민족의 역사적, 지리적 특성과 전통.
4. 제국의 최근 내부 역사, 정치, 조직에 대한 요약.
2. 다양한 민족이 선호하는 선물.
3. 이들 민족의 역사적, 지리적 특성과 전통.
4. 제국의 최근 내부 역사, 정치, 조직에 대한 요약.
콘스탄티노스 7세는 아들에게 앞으로의 지침을 잘 익히고 실천한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이 선택한 자가 될 수 있으며, 솔로몬의 지혜를 갖고, 당시 알려진 세계인 에큐메네(Écoumène: 모든 인류화된 땅)에 제국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1~8장과 10~12장은 페체네그, 루스인, 튀르크, 불가리아인 및 케르소네시아족[2]에 대해 따라야 할 정책을 설명했다. 그는 카스피해 북쪽 볼가 유역에 정착한 뒤 트라키아를 자주 약탈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협하는 페네체그를 항상 제국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이자 최고 입찰자에게 자기를 팔 준비가 되어 있는 탐욕스러운 자들이라고 묘사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호전성과 강력한 전투력은 루스, 튀르크, 불가리아 등 제국의 다른 호전적인 이웃 민족을 견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들과 우호 조약과 협약을 맺고 매년 우리를 대신하여 이 국민에게 합당한 선물을 담은 사절을 그들에게 보내라."
페체네그족은 유목민으로,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광대한 영토에 퍼져 있었다. 콘스탄티노스 7세는 이중 일부는 상업 문제에서 필수적인 중개자이며, 바랑기아에서 그리스로의 무역 경로를 경호하고 루스인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오는 걸 저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밝혔으며,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크리미아 간의 무역에서도 페체네그의 자비로운 중립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 장은 대외 정책에 관한 일반적인 지침으로, 콘스탄티노스가 자신의 아들에게 "작은 서비스를 대가로 큰 이윤을 남기고자" 하는 북부 민족들의 끈질긴 요구와 요청을 거절하면서도 원한을 사지 않을 방안을 알려주는, 외교 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이다. 그는 아들에게 "신중한 웅변 기술과 황제의 위엄"을 갈고 닦으며, 그들이 제국에 맞서기보다는 순응하는 편이 이득이라는 걸 확실히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40 장에서는 사라센, 이베리아인과 스페인인, 롬바르디아, 베네치아, 달마티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자후믈례, 트라부니야, 두클랴, 네레트바, 페체네그, 튀르크, 카바르, 모라비아 등, 동로마 제국과 이웃한 여러 지역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정착에 관한 이야기와 전설을 모아 놓았다. 이러한 역사적 설명은 콘스탄티노스 7세가 13장부터 22장까지 다룬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에 대한 참회자 테오파네스의 연대기의 발췌문과 함께 산재했다. 한편, 26장에서는 로마노스 2세와 결혼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온 베르타의 아버지이자 이탈리아 왕인 우고의 계보를 나열했다.
43~46장에서는 제국의 북동쪽에 있는 아르메니아, 조지아, 이베리아 지방의 정치적 상황을 다뤘으며, 47~48장은 키프로스를 다뤘고, 49~50장은 노블고로드와 프스코프 지역에 정착한 슬라브족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슬라브족을 다뤘다. 51장은 콘스탄티노스 7세의 아버지인 레온 6세 통치 기간에 드로몬[3]이 제작된 이유를 설명하며, 52장은 향후 군사 원정을 위한 말과 마구 징발 및 군에 복무하지 않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제도를 다뤘다. 학자들은 마지막 장인 53장은 콘스탄티노스 7세가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는데, 여기엔 콘스탄티누스 1세를 비롯한 콘스탄티노스 7세의 직계 전임자들과 헤르손 시와의 관계를 다뤘다.
4. 전파
이 저서는 중세 그리스어로 집필되었는데, 원래 제목은 따로 없었으며, 단지 아래의 공식 문구로 시작했다."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노스가 아들이자
포르피로게니투스인 로마노스에게."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까지 살아남은 사본이 4개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사본은 11세기 후반의 것으로, 현재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라틴어 제목인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De Administrando Imperio")는 1611년 네덜란드 고전학자이자 골동품 수집가인 요하네스 뫼르시우스(Johannes Meursius, 1579 ~ 1639)가 1509년 안토니 에파르쿠스가 집필한 그리스어 사본[4]을 번역 출간했을 때 이름 붙인 것이다. 요하네스 뫼르시우스가 출간한 저서는 1729년에 베네치아의 동로마 역사가 컬렉션의 일부로 채택되었다. 첫번째 현대판은 1949년 부다페스트에서 출간되었고, 후속판은 1962년과 1993년에 출간되었다.
현대 학자들은 이 저서에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전승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을 지적하며, 동로마 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윤색된 점이 많다고 본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당대 동로마 제국의 상황과 코카서스, 흑해 북쪽 민족 및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불가리아 등 발칸 반도로 이주한 남부 슬라브인들의 초기 역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