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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16:44:45

포풀라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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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념3. 성향4. 유래5. 허상의 개념인가?6. 포풀라레스의 행적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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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국 후기 민중의 편에 서서 원로원 파트리키 가문의 권위에 맞선 정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 민중파 또는 평민파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2. 개념

포풀라레스는 라틴어 용어로, "대중"을 의미한다. 1854~1856년 <로마사>를 출간한 테오도르 몸젠이 처음 사용한 이래, 현재까지 평민의 편에 서서 파트리키 위주로 돌아가는 정치판을 바꿔보고자 노력한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화정의 전통과 원로원의 권위, 파트리키 가문의 이권을 중요시하는 로마 정치인들을 옵티마테스(Optimates: "최고의 인간")라고 칭한다.

3. 성향

이름 그대로 원로원을 비롯한 기존 정치 기득권층보다 민중의 편에 섰다. 단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민중을 위해 헌신한 개혁가/혁명가' 라는 것은 아니다. 크라수스 같은 사례에서 보듯 제 입장에 따라 옵티마테스와 가까웠음에도 포풀라레스가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

오히려 포풀라레스들은 기존의 정치판을 바꾸려고 한 만큼 그들 중에는 야심가들이 많았다. 그 예시로 카이사르의 내전을 일으켜 집권한 카이사르가 대표적인 포풀라레스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렇다 보니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사례 또한 많았다. 대표적인 예시가 마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있다.

4. 유래

포풀라레스라는 용어는 당대에도 종종 쓰이는 용어였는데, 특히 키케로에게 자주 쓰였다. 키케로는 에퀴테스 신분으로 로마의 고위 인사가 된 인물로, 자신의 출세를 용인한 로화 공화정에 대한 믿음을 간직했다. 그는 서신에서 옵티마테스와 포풀라테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정치에 참여하고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남성의 두 가지 범주가 항상 있었다. 하나는 대중에게 인기가 있기를 바라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최고의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대중을 기쁘게 하기를 바라는 자들은 포풀라레스로 간주되지만, 자신의 정책이 최고의 사람에게 승인되도록 행동하는 사람은 옵티마테스로 간주되었다.

키케로는 옵티마테스를 자유민을 포함하여 모든 계층에 속한 존경받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시민으로 정의했지만, 정치적으로 원로원 및 지도부를 옵티마테스와 동일시했다. 그들은 공공모임의 수석들이며, 원로원의 권위는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할 가치 중 하나였다. 그는 여러 작품에서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밝혔다. 반면에 대중의 탐욕에 영합하고 선동하여 현 체제에 도전하는 자들을 공화국의 적으로 간주했으며, 그라쿠스 형제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를 포풀라레스의 전형적인 사례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을 저서에 남겼다.
누만티아를 파괴한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훌륭한 인물로 뛰어난 군인이지만,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를 죽인 평범한 개인 푸블리우스 나시카보다 공화국에 더 유익하지는 않았다.

다만 키케로는 집정관을 맡았을 때 자신을 민중의 선택을 받은 대중 정치가라고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진정한 대중성'은 더 많은 권력을 얻으려고 대중을 선동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수호하여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카이사르를 가리켜 포풀라테스의 길을 일관되게 따라가면서도 동료 파트리키들에게서 인정받기를 열망하는 야망이 들끓는 자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행보를 같이했던 역사가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는 키케로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봤다. 그는 포에니 전쟁 까지는 원로원과 민중이 공화국을 함께 평화롭고 절제 있게 다스렸지만, 포에니 전쟁 후에 맞이한 영광과 번영이 가져온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귀족은 자신의 존엄을 지나치게 과시하고, 민중은 자유를 남용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가 두 파벌로 나뉘었다고 여겼다. 자신의 권리와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들이 공화국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면서 민중을 억누르자, 민중은 이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그라쿠스 형제 같은 이들을 내세웠고, 양자간의 충돌이 정치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살루스티우스는 공화국 초기 원로원(또는 귀족)과 민중의 투쟁 사례도 언급했지만, 대체로 포에니 전쟁 후 이러한 대립이 극렬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옵티마테스'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포풀라레스는 10번밖에 쓰지 않았으며, 오로지 혈통에 따라 귀족과 민중으로만 구분지었다.

5. 허상의 개념인가?

현대 학계에서는 '옵티마테스'와 '포풀라레스'는 작위적인 분류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강하다. 현대에 보편화된 정당 정치와는 달리, 고대 로마 시대의 정치인들은 특정 정파끼리 뭉쳐서 상대 정파를 꺾고 정권을 장악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우수한 강령 또는 공약으로 민중의 인기를 끄는 게 아니라 혈통 또는 인맥을 통해 맺어진 클리엔텔라를 잘 활용해야 했다. 피후원자인 클리엔테스는 후원자인 파트로누스의 적절한 지원을 받고 그를 위해 일을 해야 했고, 파트로누스는 보다 많은 클리엔테스를 확보해 영향력을 키우는 한편, 그들을 적절히 보호해줘야 했다. 그러다보니, 고귀한 귀족 신분이라고 해도 민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고, 반면에 민중의 지지를 얻더라도 귀족들의 인정을 별도로 받고자 노력해야 했다.

로널드 사임은 로마 정치인들은 옵티마테스와 포풀라레스 중 하나를 택하고 서로 대립한 게 아니라 더 많은 권력과 부, 명예를 얻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가 그룬은 1974년에 출간한 저서 <로마 공화국의 마지막 세대>에서 옵티마테스와 포풀라레스라는 용어는 지극히 모호하며 실체와도 거리가 머니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용어를 아예 배제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키케로가 선동적인 정치가들을 비난할 때 대중을 기만한 포풀라레스라고 비난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자체가 포풀라레스가 대중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공언한 정치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인식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애초부터 포풀라레스라는 분류는 후대의 위그노나 루터파 같은 명칭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칭 옵티마테스들의 적대적 멸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유사 매카시즘에 근거한 몰이이기 때문에 정말로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민중파라는 정파로 분류할수있는지와는 처음부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정작 포풀라레스라는 파당은 있지도 않았던 시기에 자신들의 출세와 영달을 포기하면서까지 개혁에 매진했던 패션좌파 그라쿠스 형제야말로 진정한 민중파였고 포풀라레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평민 마리우스는 정작 정치이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며, 포풀라레스 파당의 결집과 이를 이용하려하는 대중영합주의의 발호는 오히려 술라 시절 횡행했던 무차별적인 포풀라레스 몰이와 대학살에 대한 반동의식에서 기인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포풀라레스로 간주되었다 할지라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는 말 그대로 출세지향 포퓰리스트에 가까웠고 클로디우스는 그냥 키케로에 대한 복수심만 넘치는 열혈관종에 지나지 않았으며 카이사르는 민중파 이미지를 이용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원수정주의자였다. 그리고 정작 그렇게 옵티마테스를 옹호한 키케로는 호모 노부스에 지나지 않았다는게 함정.

결론짓자면, 옵티마테스는 기본적으로 자칭일 뿐이며, 자칭 '옵티마테스'들이 누구를 포풀라레스로 규정했느냐의 여부는 그 누가 진짜로 이념적 민중파아였느냐와 별로 상관이 없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6. 포풀라레스의 행적

그라쿠스 형제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이래, 민중의 편을 자처한 자들은 두 형제의 뜻을 잇겠다는 뜻을 밝히며 원로원과 파트리키 가문의 권위에 정면 도전했다. 그들은 원로원에서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마다 민회를 이용해 법을 통과시키려는 경향이 있었으며, 자신들을 민중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로 포장했다. 그들은 투표권을 확장하고, 빈곤을 구제하고, 농업, 식민도시, 곡물법 등 광범위한 복지 개혁을 추진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귀족 신분으로 평민과 조국을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그랬던 건 절대로 아니었다. 법에 위배되지 않은 선에서 개혁을 이루려 노력했고 유혈사태를 가능한 피하려 노력했던 그라쿠스 형제는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만, 두 사람의 유지를 잇겠다는 자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민중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들은 법질서를 유린하고 정치테러를 서슴지 않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는 자기가 밀어주는 후보가 집정관 선거에서 낙선하자, 추종자들을 시켜 집정관에 당선된 자를 살해해 버렸다. 술피키우스 루푸스는 폭동을 일으켜 현직 집정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목숨을 위협하고,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영합해 술라가 가지고 있던 미트리다테스 6세와의 전쟁 지휘권을 마리우스에게 넘겨버렸다가 술라의 로마 진군을 초래했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술라에게 축출되었다가 도로 복귀한 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등과 함께 수많은 이를 살상했다.

또한, 포풀라레스가 추진한 정책이 오히려 민중에게 해를 끼친 일도 종종 벌어졌다.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는 민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무료로 곡물을 받을 대상을 대폭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로마 시의 식량이 고갈되는 바람에 기근이 발생해 원로원이 폼페이우스에게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쓸 수 있는 권한을 맡겨야 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 필리피 전투 후 고참병들이 정착할 토지를 마련하고자 캄파니아, 삼니움, 움브리아, 피케눔, 에트루리아, 북부 이탈리아 등지의 최소 40개 도시의 토지를 강제 몰수했다. 이때 그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춘 원로원 계급 및 기사계급 인사들의 눈치를 봐서 그들의 토지를 건드리지 않거나 약간만 몰수한 데 비해, 평민들의 토지를 가차없이 몰수했다. 평민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는 자가 이런 행보를 보이니 당연히 민심은 격앙되었고, 이는 페루시아 내전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포풀라레스 측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로마 공화국에 심각한 폐단이 존재한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고, 현상유지만 고집하는 옵티마테스 측이 이를 해결할 가망이 없는 것 역시 분명했다. 결국 민중의 편을 자처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옵티마테스와의 대결에서 승리했고, 뒤이은 옥타비아누스가 정적들을 대거 처단하고 아우구스투스를 자처하면서, 로마는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전환되었다.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후에도 자신들을 민중파로 내세우며 집권의 정당성을 널리 홍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