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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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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중국과 일본 단순 비교3. 근대 이전
3.1. 청나라 이전3.2. 청일관계3.3. 20세기 전반
4. 현대의 중일관계
4.1. 정치4.2. 군사4.3. 영토4.4. 경제4.5. GDP 비교4.6. 여론
4.6.1. 2019년4.6.2. 2020년대
4.7. 문화 교류4.8. 교통 교류4.9. 대사관
5. 여담6. 관련 기사7.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 일본의 관계이다.

중일 양국은 베트남 전쟁 종전을 약속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불어온 데탕트의 바람 속에서 1972년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일본에 대한 전쟁배상 청구권을 포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일공동성명을 발표했고, 1978년엔 선린 우호와 상호 불가침 및 내정 불간섭을 명시한 중일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다.

고대부터 일본은 한반도 베트남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1] 19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하며 중화 질서를 무너뜨렸고, 1930년대에는 본격적인 중국 침략에 나서 중국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인적 · 물적 피해를 끼쳤다. 그러나 경제력 역전이 일어나던 2010년 전후와 신냉전이 본격화된 2020년대 이후를 제외하면 양국 정부의 관계는 의외로 나쁘지 않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미일동맹에 근거해 친미 진영에 속하며 중국과의 갈등 요소가 많은 편임에도 대중국 실리외교를 펼쳐왔다.[2] 중국도 이와 다르지 않다. 통상 중국 인민일보가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라는 수식을 붙이는 귀빈은 중국에서 공인하는 '중국통(中國通)'으로 여겨지는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 2022년까지 이 수식이 붙은 인물은 601명, 그 중에서 일본인은 111명에 달해 1위에 올라있다.[3] 한편 양국의 상호 국민 감정은 과거사와 그 흔적으로 남은 영토 분쟁, 일본의 재무장 문제, 그리고 동아시아 역내 패권 경쟁 등으로 양국 정부의 공식적인 관계가 양호한 것과는 정반대로 매우 좋지 않다.

2. 중국과 일본 단순 비교

<colbgcolor=#fff,#444> 항목 중국 일본
면적 964만 821km² (4위) 37만 7,975km² (61위)
인구 14억 2,567만 명 (2위) 1억 2,536만 명 (11위)
수도 베이징시 도쿄도
최대도시 상하이시
공용어 중국어 일본어
명목 GDP $18조 5,326억 (2위) $4조 1,104억 (4위)
1인당 GDP $13,136 $33,138
1인당 PPP $21,290 $48,810
IMF 분류 개발도상국 선진국
민주주의 지수 1.94점 (156위) 8.15점 (17위)
정치형태 공화제 / 민주집중제 입헌군주제 / 의원내각제
국가원수 시진핑 주석 나루히토 천황
정부수반 리창 국무원 총리 이시바 시게루 내각총리대신

3. 근대 이전

3.1. 청나라 이전

일본은 섬나라 특성상 어느 정도 중국 통일 왕조의 군사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따라서 동아시아 전통의 중원 중심 조공관계도 이익이나 군주의 성향에 따라 비일관적으로 이루어졌다. 서기 57년 후한 시기에 광무제로부터 신원 불명의 덴노 왜노국왕이 조공을 바치고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 금인장을 하사받은 적이 있었고, 이후로 뜸하더니 239년 야마타이국 여왕 히미코[4] 위나라에 노예를 바치며 조공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에도 중국 남북조시대에 이른바 왜5왕이라 일컬어지는 신원 불명의 덴노 다섯명이 조공을 바친 기록이 있다.

당시에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국제정세처럼 중국이 일본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견수사, 견당사와 이에 따른 헤이안 시대의 번영이 좋은 예. 심지어 견수사를 보낼 시절에는 수나라에 "해 뜨는 나라의 천황이 해 지는 나라의 황제께 보낸다.(東天皇敬白西皇帝)"라는, 수나라 입장에서는 황당할 국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수나라에서는 변방 촌동네의 오랑캐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또한 당나라 문화를 숭상하면서 당학이라는 학문까지 만들어 문물을 수입했다.

고대 일본은 '동방의 천자국'으로서 중국과 대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실제로 자국의 역사서에 이러한 관점이 표현되기도 했으나, 중국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사절을 조공으로 인식하였으며 일본의 군주를 '천황'이나 '황제'로 기록하는 일 역시 없었다. 수서에 따르면 왜왕이 수나라 사절의 방문에 기뻐하며 '나는 오랑캐 사람으로서 예의의 나라인 수나라에 조공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일본서기에는 오노노 이모코가 수나라의 외교 문서를 분실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고 있다.[5] 그 외에도 당 황제가 '일본 왕'에 내리는 조서는 죄다 하대하는 식인데, 정작 일본이 중국에 보낸 국서는 일본 측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신하'의 형식을 취한 국서를 보낼 수밖에 없는데 사실상 이를 치욕스럽게 여기고 은폐한 것이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인일수록 중국이랑 직접적으로 붙어있던 반도인 한국과는 달리 중국이랑 멀리 떨어져 있던 섬나라인 일본에서의 중국 문화는 한국보다는 중국 문화의 전통성에 덜 구애되어 발전해 온 경향을 강조한다.[7] 일례로, 한국 한자음은 중국 한자 발음의 반절음 체계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8] 일본 한자음은 소리만을 따왔고, 고유어와 한자를 대응시키는 훈독의 전통이 발달한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가나(문자)의 경우에는 음차하는 한자 필기체를 간략화 한 것으로, 가타가나는 부수의 일부를 딴 것, 히라가나 초서를 정형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 비해 압력이 덜했기에 운신의 폭이 넓었던 것이지 중국과 동등한 관계라고 보긴 힘들었고, 중국의 선진 문화에 대한 흠모 역시 일면에 존재했다.[9] 폐쇄적인 국풍 문화가 발전했다던 헤이안 시대에도 중국 문화와 상품에 대한 동경이 담긴 상류층의 시선은 곧잘 발견할 수 있고, 아시카가 요시미츠 같은 상당한 중뽕 성향의 최고권력자도 있었다.[10]

한반도에서 일어난 백강 전투에서 처음으로 중일의 정규군이 신라의 동맹군과 백제의 동맹군으로서 맞붙었으며, 이후  쿠빌라이 칸이 주도한 2차례의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이 있었고( 태풍으로 실패했지만), 또 무로마치 시대 말기와 센고쿠 시대에 일본 규슈 등의 왜구 명나라의 남쪽을 침략하여 "북로남왜"로 명나라의 주된 근심거리가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명으로부터 일본국왕으로 책봉을 받고[11] 함께 왜구를 토벌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에서 두 나라의 정규군이 다시금 크게 맞붙었지만 실패했다. 또한 명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일본이 중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일본식 중화사상이 일본 유학자들 사이에서 대두했다.[12]

3.2. 청일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청일관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근세의 에도 막부 청나라 보는 관계였다. 초기에만 해도 대만 정성공의 사례에서 추측되듯 대만이나 동남아에서는 민간적 교류나 공생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쇄국정책을 통해 그나마도 차단되었다. 동남아 서구권 세력의 식민지가 되었고, 류큐 왕국 청나라 에도 막부의 양국의 조공국으로 존재했다.[13]

중국과 일본이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871년 청일수호조규였다. 이전까지 양국 간에는 사무역이 있었을 뿐, 놀랍게도 국가간 정식 관계는 전무했으므로,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맹주라 여겨지는 청나라와 대등한 근대 조약을 맺음으로써 국내에서의 급격한 근대화에 대한 반발을 돌릴 수 있으리라 계산한 것이다. 반면 청나라 입장에서는 서두를 게 없는 상황이었고, 체급도 맞지 않는 같은 아시아 국가가 전통적인 조공책봉관계가 아닌 근대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에 대해 조정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홍장은 일본의 수교 제의를 거절해봤자 원한만 살 것이라고 판단하여, 일본 측 전권대사인 다테 무네나리와 협상하여 톈진에서 수호조규를 맺었다.[14]

청나라와 일본이 근대 조약으로 공식 관계를 수립한 것은, 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을 예외로 조공책봉관계로 다루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일본의 대외적 위신을 확립시켜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서로 타국으로부터 불공정한 일을 당하면 도움으로써 우의를 돈독히 한다'는 조항이 무색하게[15] 일본은 몇년 안 되어 대만과 류큐 등지에서 청나라와 충돌하였으며, 1884년에는 조선에서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1894년에 청일전쟁으로 양국의 근대화 성과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자, 전통적인 중국-일본 관계는 역전되기 시작하다. 특히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완전한 열강 반열에 들어서자, 중국 내에서는 일본을 개화의 모델로 보게 되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일찍 맞이한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은, 수많은 일본식 한자어가 현대 중국어에 수입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3.3. 20세기 전반

조선을 병합하고 중국에서 서구 열강들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하자 중국에 대한 일본의 야욕은 더욱 노골화되었는데 1차 대전 도중 벌어진 칭다오 전투와 종전 직후 일본이 주장한 21개조 요구를 통해 대륙 침략에 대한 일본의 야욕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1930년대에 들어서 만주사변, 중일전쟁이 발생하며 양국의 관계는 완전히 적대관계로 돌변했는데 특히 일본은 중국인들에게 난징대학살, 731부대로 대표되는 잔인한 전쟁범죄를 자행했으며 이러한 사건들은 현재까지도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남아있다. 결국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타 연합국들과 힘을 합쳐 일본을 물리치는 데에 성공한다.

4. 현대의 중일관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만 서로를 역설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이

4.1.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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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와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1952년 화일(華日) 평화조약으로 대만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197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이는 닉슨 독트린과 맞물려 이루어졌다.

중국, 대만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청구권과 배상권을 포기하였다. 장제스는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라는 태도였고 마오쩌둥 역시 일본과 국교를 맺을 때 인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이겼으니 사죄와 배상 따윈 필요없다'거나 ‘일본인들 역시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라는 태도를 보이며 침략국이었던 일본에 유화적으로 접근했다. 이에 대해서는 공산국가에 대한 원조를 금하는 당시 미국의 전략을 중국 공산당도 알고 있었기에 배상을 단념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16] 다만 일본은 ODA 등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중국 경제를 지원했다.[17]

1972년 중국은 일본에 판다 2마리(康康, 兰兰)를 기증했는데 이들이 일본에 처음으로 입국한 판다이다. 현재 일본은 판다 9마리를 보유 중이며 지금까지 일본을 거쳐 갔던 판다는 30마리를 넘는다.

중일수교 이후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당시 일본은 과거사에 비교적 전향적이었고 중국 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관망이 넘쳐났으며 또한 덩샤오핑 집권 직후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에도 일본과의 경제 협력은 필수적이었기에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렸다. 이러한 세기말 중일 간의 우호관계는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을 필두로 G7 서방국들이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도하자 이에 일본이 미적지근한 자세로 일관하거나 과거 쿠릴 열도 분쟁에서 중국이 일본을 지지한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지던 양국 간의 우호 관계는 21세기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2000년대에 중국이 서유럽 주요국들과 일본을 차례로 제치고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면서 일본의 경제규모를 넘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패권주의가 대두되어 주변국들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일본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해 우경화 기조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이유로 그 동안 수면 아래에 묻혀 있었던 양국 간의 역사 문제 및 영토 갈등( 센가쿠 열도 분쟁) 역시 촉발되었고 또한 미중 패권경쟁이 일본의 대중 외교 기조에도 영향을 주며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 오늘날에 이른다.

2010년대, 아베 신조의 총리 집권 이후로 일본이 우경화되어 중일관계는 악화되었다. 단순히 역사적 문제만이 아니라, 미중 패권경쟁에서 일본은 미국을 우방으로 두는 입장이고 영토 분쟁까지 겹쳐서 양국은 다방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개인과 트럼프 집권의 미국 정부는 경제적으로 대치중인 중국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어서 무역 흑자 축소를 요구받았다.

2012년 5월 14일, 일본 정부가 세계 위구르 회의의 대표회의를 개최하자 중국 외교부가 비판했다. #

2018년 10월 말, 7년만에 일본 총리가 단독으로 방중하고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도 만나게 되면서 중일관계가 본격적으로 호전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8년에 들어서 아베 정권의 친중 정책의 흐름에 따라 일본인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잠시 퍼졌다.[18][19] 다만 이러한 중일 간의 유화 분위기는 곧 미중 갈등의 격화, 역사 및 영토 갈등으로 금세 끝났다.

아베 신조가 일본이 중심이 되어 G7이 홍콩성명을 발표하고 중국측은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하였다. 아베 “일본이 홍콩관련 G7 성명 주도” ...중국 “깊은 우려”

스가 정권이 들어선 후 일본이 미국의 반중 연대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양국 사이의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대만 문제에서 스가 총리가 대만을 국가로 발언하고 백신을 지원하는 등 유래없는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은 크게 반발하는 중이다. 기시다 내각 역시 이러한 기조를 이어받았으며 특히 2022년 발발한 러우전쟁 및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박 수위 강화로 신냉전이 표면화되고 제1세계와 제2세계 국가들의 유대가 강화되면서 중일관계는 다시 경색될 것으로 전망된다.

4.2. 군사

센가쿠 열도 문제 등으로 대립하는 상태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중관계에서는 합참의장이나 장관급 만남이 있는데 비해 중일 사이에서는 드물다. 미중교류보다 더 어색해보인다. 2014년 4월에 일본 해상막료장 가와노 가쓰토시와 중국 해군사령원인 우셩리가 만나려고 했지만 중국 정부의 불허로 무위로 그치고 대신 해군 관련 포럼에서 비공식적으로 15분을 접촉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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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 훈련을 참관하는 인민해방군 장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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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사진 촬영.

강해지는 중국군에 일본은 중국 견제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미국과 협조와 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 후 미일관계에서 마찰이 생겼다.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18년 10월 말에 일본 총리의 방중에서 일본과 중국은 향후 일본 자위대 수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 합의하고, 양국간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한 전용 직통전화,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하는 등 안보 분야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중국이 일본에게 '새로운 안보 관계' 구축을 제안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

일본 방위성이 2026년까지 극초음속 미사일의 초기 버전을 배치하고, 2028년에는 개량 버전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중국측은 긴장하고 있다. #

일본은 2022년 7월 방위백서와 12월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반격 능력 확보를 천명하고 나서며 기존에 애매모호했던 대중관계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다. #

4.3.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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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문제 외에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분쟁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양국은 강대국에 속한데다, 각각 세계 경제 규모의 2, 4위인 국가이기에 이들의 분쟁은 필경 크고 아름다운 후폭풍을 초래할 수밖에 없어, 이들 사이에 위치한 한국으로서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 중국 두 나라의 인구만 합쳐도 15억 3000만명 정도 된다. 하지만 중국인구가 일본인구의 10배 이상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우선으로, 일단 미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군사력에서는 현재 중국이 급격한 성장을 바탕으로 크게 팽창하는 추세이다. 물론 오랜 기간 일본이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하여 투자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중국이 다소 처지는 분야들이 상당하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공계 인재들과 비용을 폭발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격차는 눈에 띄게 좁혀지는 추세이다.

2013년 1월부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군에게 전쟁 준비 명령(진돗개 하나 상황)을 내림으로써 중일간 전쟁의 가능성이 점점 생기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 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해서 국지전 이상으로 일이 커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관계악화에 따른 불이익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에서는 대규모 반일 시위가 일어났으며 분노한 중국인들에 의해서 주중 일본대사관에 쓰레기가 투척되는 모욕을 겪기도 했고, 중국에서 물건과 상품을 팔던 일본 기업들이 죄다 문을 닫아야 했다.[20] 거기다가 중국은 아예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기 직전까지 희토류 원소를 일본에 수출하는 것을 강력히 막았다. 이후 일본이 희토류 관련 기술에 집중하여 중국에서 수입하던 물량을 일부 대체한 상황이다. 거기다 2018년 4월에는 일본 해역에서 전 세계가 무려 700년동안 사용 가능한 1600만톤 정도의 희토류가 매장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가 일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중국은 희토류 대일 외교의 영향력이 일부 줄고 말았다. 日 희토류 대박...해저에 전 세계 수백년 사용량 매장 확인

2013년 12월 26일에 벌어진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중일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이다. 왕이 외교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직접 "앞으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아베 총리와 대화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발언했으며, 중국의 주요 언론도 앞다투어 일본과 아베 총리에 대해 "변태 왕따 쓰레기 왜노 총리"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다. 두 나라와 가까이 자리한 한국 역시 중요하게 경계할 필요가 있는 부분.

2014년 12월 난징 대학살 추모일을 앞두고 중국에서 벌인 군사 훈련에서 가상의 적을 일본으로 삼았다고 당당하게 밝히면서 중국이 일본을 명백한 적국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2019년 12월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무려 85%가 중국이 싫다고 대답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더더욱 싫어하게 됐다. #

4.4.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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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2010년대 초반에 탈미입아를 주장했던 민주당이 집권했지만 오히려 중일관계는 더욱 경색하고 희토류 분쟁 등으로 번졌다. 하지만 친미 성향이 강한 자유민주당 아베 신조가 총리에 선출되면서 중일관계는 더욱 얼어붙고, 중국 일본의 통상 분쟁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러나 2018년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중국 일본한테 경제 분야에서 저자세 외교를 감수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급격한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2018년 7월 시진핑 중국 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일대일로 사업 참가를 제안하고, 일본 역시 일대일로 사업에 참가하는 등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기사

2018년 10월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왕치산 부주석 등이 아베 총리를 초청하였다. 기사1 기사2 전격적으로 경제협력을 하고, 중-일간 무역분쟁은 빠른 시일 내에 타협, 그리고 미국의 자유무역 지대 복귀를 공동으로 촉구하는 등 중일관계가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2018년 10월 23일 10월 26일 발표된 일-중 베이징 공동선언[21]에서는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전면 참여 허용, 중국-일본 공동 인프라 투자펀드 1조 달러 어치 창설, 한화 20조원에 상당하는 기업협력, 중국인민은행 일본은행 기존의 10배인 한화 35조원 상당(3조 4000억 엔)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등 여러 분야에서 급속한 화해의 길로 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이탈하여 일본만이 대형 국가로 남게 된 TPP 중국 참여를 검토하는 등 급속도로 중일관계가 화해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상한 중일 밀월이라거나, 아베의 친중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대만까지 이번 중일회담을 경계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2018년 10월 말, 일본 총리가 방중하면서 기업인 등 500여명을 대동해 제3국 시장 진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22] 중국 정부도 지식재산권과 기술 보호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켰다. 중국과 일본은 2013년 중단됐던 통화스와프도 우리 돈 약 30조원 규모로 재개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10배나 늘린 규모다.

일본은 70년대에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상당한 편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발생하면서 일본 기업들도 중국에서 철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니클로는 중국으로 진출을 대거 확대한다고 밝혔다. #

2021년 4월 28일에 일본 국회가 RCEP의 승인안을 가결시켰다. #

4.5. GDP 비교

명목 GDP[23]
연도 일본 중국 일본:중국[24]
1960 443억 597억 0.74
1965 906억 704억 1.29
1970 2,126억 926억 2.30
1975 5,215억 1,634억 3.19
1980 1조 1,050억 1,911억 5.78
1985 1조 3,990억 3,094억 4.52
1990 3조 1,330억 3,608억 8.68
1995 5조 4,490억 7,345억 7.42
2000 4조 8,880억 1조 2,113억 4.04
2005 4조 7,550억 2조 2,860억 2.08
2010 5조 7000억 6조 870억 0.94
2011 6조 1,570억 7조 5,520억 0.82
2012 6조 2,030억 8조 5,320억 0.73
2013 5조 1,560억 9조 5700억 0.54
2014 4조 8,500억 10조 4,390억 0.46
2015 4조 3,890억 11조 0,160억 0.40
2016 4조 9,270억 11조 1,380억 0.44
2017 4조 8,600억 12조 1,430억 0.40
2018 4조 9,710억 13조 6,080억 0.37
GDP(PPP)[25]
연도 일본 중국 일본:중국[26]
1980 1조 1,045억 3,056억 3.42
1985 1조 6,532억 6,547억 2.53
1990 2조 4,517억 1조 1,185억 2.19
1995 2조 9,792억 2조 2,497억 1.32
2000 3조 4,187억 3조 6,957억 0.96
2005 4조 594억 6조 6,046억 0.61
2010 4조 4,848억 12조 4,028억 0.36
2011 4조 5,731억 13조 8,649억 0.33
2012 4조 7,306억 15조 2,471억 0.31
2013 4조 9,099억 16조 7,248억 0.29
2014 5조 195억 18조 2,778억 0.27
2015 5조 1,338억 19조 7,424억 0.26
2016 5조 2,185억 21조 2,901억 0.25
2017 5조 4,197억 23조 1,567억 0.23
2018 5조 5,970억 25조 2,788억 0.22

4.6. 여론

중국은 일본에게 침략 당했던 역사 때문인지 일본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갖고 있다. 과거에도 197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중 유독 일본계 기업만 콕 집어 사업을 방해한다거나 일본산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 등이었다. 특히,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둔 분쟁 당시에는 중국 정부가 희토류 금수를 시전해 양국간 갈등이 격화되자 민간에서도 일본산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등 반일감정이 폭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 정책을 강렬히 반대하는 입장이며, 일본이 재무장한다면 경제보복을 가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중국은 가끔씩 일본인 스파이를 체포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유네스코에서도 일본과 중국 간의 외교 갈등이 첨예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하고 나서 중국이 해마다 분담금을 늘리면서 현재 분담금 1위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이 없는 동안 아예 유네스코를 친중 국제기구로 만들기 위한 작전을 진행할 수도 있는 부분을 감안하면 앞으로 일본 제국 시절 기록유산, 문화유산 등재 등에서 전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4.6.1. 2019년

2월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중국 관영 CCTV에 등장하여, 서툰 중국어로 짧은 인사를 건네며 중국의 설인 춘절(春節)을 축하했다 #. 2019년 들어서 일본이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며( 한일관계) 중국이나 북한과 가까워지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일본이 무작정 중국을 적대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2019년 후반기에 아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할것이라고 5월 13일에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 또한, 8년만에 군축협의를 가지게 되었다. #

6월 27일에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가 회담을 가지면서 양국관계를 영원한 이웃나라로 정의한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

중국과 일본이 양국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공동정치문서를 작성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2020년 봄에 방일하는 것을 앞두고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규정하는 제 5정치문서 작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양국 간 온도차가 커 합의를 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

2019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중국인 46%가 일본을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참조 그러나 정작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대부분 중국을 싫어하는데 2019년 12월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선 중국 주변국에서 비호감 지수가 높게 나왔으며 특히 일본의 경우 85%가 중국에 대한 비호감을 표시한 걸로 밝혀졌다. #

4.6.2. 20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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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문화 교류

양국 정부가 영토문제, 미중갈등에서 미국편을 드는 일본정부 행동 등등으로 매우 안 좋은 관계와는 별개로 중국에서는 일본 문화는 물론 특히 서브컬쳐 분야는 독보적인 인기를 몰고 있다. 예를 들면 상하이 지하철에 러브 라이브! 캐릭터들로 지하철을 꾸민다든가 유희왕이 정발되었는데 인기가 좋아서 데블즈 게이트까지 나온다든가. 거기다 일러스트는 일본판과 똑같이 간다! 그래서 유희왕이 판매되고 있는 국가 중 일본과 일러스트를 공유하는 건 중국이 유일하다.[27] 게다가 중국에서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대표 모바일게임 FGO도 큰 인기를 몰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도 일본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고, 일본에서도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중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있다. 중국에서 일본어, 일본에서 중국어는 영어 다음으로 가장 인기있는 외국어다. 일본에서 HSK가 실시되고 중국에서도 JLPT가 실시되는 등 양국에서도 외국어 시험이 실시되고 있다. 다만, 일본 공통테스트의 중국어나 가오카오의 일본어 모두 응시자 수가 매우 적은 편이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일본의 서브컬쳐 문화 수입이 오히려 한국을 매우 능가하는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땅 크고 인구가 많은 만큼 위의 지하철의 예처럼 얼핏 일본을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일본 문화 애호를 벌이기도 한다. 실제로 비정상회담에서도 장위안"중국인들은 일본 정부가 싫은 거지 일본인들이 싫은 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는 경향도 있다.

오히려 일본 문화 개방은 한국보다도 빨랐다.[28] 역사적으로 중국은 동아시아의 문화 발생지이고, 이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타 문명에 의한 문화 잠식에 대한 우려가 적은 편이고 일당독재의 공산당 정치로 규제와 통제가 먹히는 시스템인 것이 크다.[29] 어쨌든 2차대전 승전국으로서 일본에 대한 감정의 결이 한국과는 사뭇 다른 점이 한몫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30]

일본의 경우에는 경제에 대한 걱정없이 풍요로웠던 1970~1980년대에 아무래도 타 문화를 접하는 마음이 너그러울 수밖에 없어서[31] 이때를 비롯해 90년대까지 중국 문화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많았고 이 시기에 나온 일본 서브컬쳐 계열 작품들에서도 아예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여럿 나왔음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도 치파오를 입고 쿵후를 구사하는 등 중화 아이덴티티로 무장한 중국인 캐릭터가 꼭 한 명씩은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당장 코에이 사의 삼국지, 수호전 등 중국역사서에 기반한 게임들이 나왔고, 만화 드래곤볼은 시작부터가 서유기의 오마주였고, 쿵후보이 친미, 란마 1/2 이 세 작품은 모두 다 일본 외의 배경이면서 80년대에 나온 일본 작품들이며 모두 히트친 만화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90년대에도 환상게임 수호월천 같이 중국이 핵심설정인 작품들이 히트를 쳤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여파와 맞물리고 국력이 나날이 성장해가는 중국과의 잦은 마찰, 그리고 일본에서 적극적인 일본 내수 지향과 은근히 일본다운 것을 강조하는 성향이 짙어져 일본 서브컬쳐계에서의 중국풍 유행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조금씩 언급되고 있다.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중국풍의 캐릭터나 설정들이 소수 등장한다던가, 중국 음식이 언급된다던가, 작중에서 사업등의 이유로 중국으로 출장을 가는 등. 게다가 중국 자본이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일본 서브컬쳐 내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고 있다. 2018년에는 두 번째 인생은 이세계에서 작가의 혐중, 혐한 발언으로 애니화가 취소된 사건[32]이 발생했으며, 한편 황야행동이나 원신, 제5인격 등의 중국산 모바일 게임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중국의 서브컬쳐 분야의 대표게임 소녀전선은 중국 게임회사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 국내판은 중국어로도 서비스하면서도 세계적 글로벌판은 기본음성이 일본어로 서비스 하는 것처럼 중국 서브컬쳐 분야 게임에서 음성 부문에 무조건 일본어가 기본 탑재되어 있다. 일본에서 소녀전선보다 더 히트를 친 게임이자 중국에서 시작된 요스타에서 서비스하는 벽람항로는 아예 중국성우를 배제하고 일본성우만 쓴다. 이러다보니 분명 중국국적 회사가 만든 서브컬쳐 게임임에도 일본요소가 더 많다보니 외국인들도 일본게임으로 인식하는건 기본이고 일본 현지에서도 이게 중국게임이었냐는 반응까지 보인다. 이 외에도 호요버스에서 개발 및 운영하여 대박을 친 원신에서도 일본을 모티브로 한 이나즈마나 라이트노벨 등 문화요소를 대거 넣는등의 덕력까지 보이고 있다.

게다가 가끔 일본 성우의 8.15 패전 발언(ex. 지키기 위해 살다. 등)이나 카야노 아이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33] 등 역사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2015년 6월 11일. 상하이에서 열리는 중국 상하이국제영화제 일환으로 열리는 일본 영화 주간에 진격의 거인이 상영금지를 당했다. 링크[34] 그리고 중국은 여전히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사이가 나쁠 때 일본 문화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나라이며[35], 아울러 일본과 사이가 틀어지면 공산당이 일본 문화에 대해 국가 차원의 검열과 제재를 먹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중국에서 서비스되는 온라인 FPS 광영사명에서는 아무리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지원한 게임이었지만 자위대가 적으로 등장하는 댜오위다오 코옵 맵이 업데이트되면서 이것 때문에 상당히 시끄러웠던 적 있다. 군용판 캠페인은 다른 국적 군대랑 섞고 국가 언급도 안 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했는데 어째 민간용이 더하다. 참고로 싱글 플레이 가능한 군용판도 초기 개발과정 자료를 보면 미군이 적이었는데 중간에 중일관계 악화 때문이었는지 도조 히데키 면상의 육상자위대가 주요 적으로 나오고 미군은 아주 가끔가다 나오는 수준으로 변경되었다.

중국 광둥성 포산시에 일본 번화가의 모습을 본뜬 거리가 생겨나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현재는 중단된 상태이다.

4.8. 교통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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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중국과 일본은 항공노선을 통해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양국의 항공사들이 항공노선을 통해 자주 왕래하고 있다.[36] 2010년대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무비자정책의 경우, 중국측은 일본인들의 무비자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반대로 일본측은 중국인에 대한 무비자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어서 중국인들의 일본 입국은 비자를 요구하고 있다.

2020년초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자 양국간의 항공노선이 대거 중단됐다. 중국측은 일본인들의 무비자조치를 중단시켰다.

2023년 1월 11일, 중국 정부가 단기비자발급을 중단한데 이어 한국인과 일본인의 중국 경유비자 발급까지 중단시켰다. #

2024년 11월부터 중국 정부가 일본을 포함한 38개국을 대상으로 30일 무비자 정책을 2025년 12월 31일까지 허용했다.

4.9. 대사관

베이징에 주 중국 일본 대사관, 도쿄도에 주 일본 중국 대사관이 존재한다. 그리고 양국의 일부 도시에 영사관이 존재한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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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15기 6화 중 한 장면으로, 오른쪽 인물은 텅 루 킴이다. 정확히 이둘은 중국계 미국인[스포일러] 하고 일본계 미국인이다.

6. 관련 기사

7. 관련 문서


[1] 한반도 및 베트남과 달리 일본은 중화 질서 참여가 일관적이지 못했다. 고대 시대에는 한나라에게 책봉을 받기도 했고, 이후에도 견당사 등을 파견하며 나름 조공관계를 맺었으나 당나라가 쇠퇴하고 중원이 혼란스러워지자 중지했다가, 이후 명나라 시기 여러 차례 실권자들이 일본국왕에 책봉되기도 했다. [2] 6.25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경험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냉전 시대에도 반공 의식이 약했던 것도 영향이 있다. [3] 2위는 미국(55명), 3위는 영국(24명). 한편 대한민국에서 이 수식이 붙은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만섭 전 국회의장 둘 뿐이다. [4] 다만 히미코는 일본 사서(史書)에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 존재가 반쯤 부정당한다. [5] 왜왕의 공손한 영접을 받았다는 수나라 사절 배청(裴淸)은 백제를 경유하여 갔으므로 중국과 한국의 사서에 교차검증이 되는 반면, 오노노 이모코의 존재나 그의 '분실' 사건은 일본측 사서 외에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6]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중국의 책봉에 분노하여 강화 협상을 파기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기도 했다. 실제로 도요토미는 책봉과정 자체는 거의 다 거친 상태에서 자신의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파기했던 것에 가깝다. 에도 시대까지 일본은 타국에 단 한번도 조공을 바치거나 책봉을 받은 적이 없다고 선전하기도 했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케이스를 떠올려보면 뻔한 거짓말이었다. [7] 더 나아가 한국은 일본과 달리 과거 중국에 문화적, 정치적으로 일부였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것은 다시 중국의 일부로 들어가려는 과정이라는 궤변을 미국에 퍼뜨리고 있는 중이다. [8] 심지어 당나라 시기의 고대 중국어 발음을 객가어 광동어 다음으로 보존한다. [9] 명나라 사신과 가네가와 친왕에 대화에서, 일본 친왕이 자기 민족을 중국을 숭배하던 변방민족이라고 아부를 하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고 #명나라 신하에게 압력을 받고 공물을 바치고 칭신을 했다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물론 일본 측에서는 이에 부정적이다. [10]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명나라 사신을 대하는 태도는 조선 왕과 다를 것이 없었다. 명나라 황제의 조서 앞에 절을 하고 공손히 받잡았다. [11] 물론 이건 후일 근왕주의자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그것도 그렇지만 원래 요시미츠는 남북조시대의 북조로, 남조와 교류하던 명에게는 정식 국왕은 커녕 남조의 신하로 인식되었다. 결국 요시미츠가 남북조를 통일시키고 출가까지 한 것은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12] 이 당시 한국의 기자조선설처럼 일본 황실의 시조가 중국 출신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13] 이 때문에 17세기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을 중개하는 무역으로 여러가지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18세기에 청나라와 일본의 직교역이 개통되면서 조선의 중개 무역 또한 쇠락한다. [14] 그래도 이홍장은 협상에서 굉장히 선방하였으며, 일본 측의 숨은 의도들을 조기에 차단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천황과 청나라 황제를 조약의 주체로 하자거나 최혜국 대우를 해달라는 일본의 제의들을 딱 잘라 거절하였으며, '방토를 침략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넣어 조공국인 조선에 대한 방어 의식도 드러냈다. [15] 이홍장이 강하게 주장하여 넣었는데, 이 계산은 맞아떨어져 서방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서양 열강에 대한 방위적 성격의 '군사동맹'이 성립된 것이 아니냐는 경계를 하기도 했다. [16] 한편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밑거름이 되었다며 감사한다고 발언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실제 중일전쟁이 아니었다면 국민당의 승리는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다. 다만 이 발언의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갑론을박이 있다. [17] 이는 잠재력 높은 중국 시장을 선점하여 훗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18] 본래 양국 사이에는 적개심이 컸는데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각각 일본과 중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19] 2015년 기사 참조. [20] 이 때문에 중국에서 거래하는 일본 기업은 역사에 대한 언급을 극극 꺼린다. [21] 중국 측에서 전격적으로 공동선언문에서 나 먼저 원리가 아닌 일본을 앞에 쓰는 것을 허용했다. [22] 사실 일본은 이미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를 공개 지지했다. [23] 세계은행 자료 [24]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 [25] IMF 2019년 10월 자료 [26]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 [27] 사실 중국어판 유희왕 카드는 푸른 눈의 백룡과 블랙매지션이 존재했었지만 중국에서 유희왕이 정식 발매된 건 2014년 2월달이 처음이다. [28]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기인 1998년(단계적 개방의 시작이었으며 개방이 사실상 완료된 것은 2007년), 중국은 덩샤오핑의 집권기 및 개혁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인 1980년대( 덩샤오핑/여담 참조). [29] 그러나 이러한 자신감이 무색하게 한류가 생각보다도 더 거세게 유행하자 대놓고 한류를 견제하고 죽이려 들고 있다 [30] 각국의 정치 체제가 낳은 역설적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은 자유민주국가라서 정치권이 일본 문화 개방을 원해도 여론이 일본 문화를 거부하면 이를 거스르지 못하다 보니 개방이 그만큼 늦었고, 중국은 독재국가라서 정치권이 개방을 원하면 여론과 무관하게 개방이 가능했던 데다가 마침 그때 집권했던 덩샤오핑이 개방을 원해 그때 개방이 이루어졌던 것. 물론 독재국가라는 것은 반대로 정치권이 개방을 원하지 않으면 여론과 무관하게 개방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실제로 덩샤오핑 다음에 집권했던 장쩌민이 덩샤오핑 사후 다시 일본 문화를 규제하기도 했었다. [31] 당시 일본은 한국에 대해 유화적이었고 욱일기 문제에도 별 마찰이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나라 모두 공론화할 생각이 없었다. 이때는 냉전과 한국의 군부정권 출범이라는 시기 속에서 서로 밀월관계를 유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옆나라 한국이 IMF를 맞이하면서 여러 갈등이 시작되었다. [32] 중국 공산당 내의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이 직접 언급하여서 자칫하면 외교적 문제까지 커질 수 있었던 상황이다. [33] 이 일로 인해 카야노 아이는 중국회사에서 만든 서브컬쳐 장르 모바일 게임 업계에서 블랙리스트에 등재되었기에 기록말살형을 받았다. 일본 성우를 적극 기용하는 원신에서조차 무시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34] 단 이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여서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죽도록 싫어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내용이 껴있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35] 중국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자국의 국익에 대치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외국 배우들이나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제재를 가하는 일이 다반사인 국가다. [36] 한국도 한중수교 이전에는 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을 통한 항공노선으로 중국을 왕래했다. [37] 해당 유튜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생의 serpentza라는 인물로, 중국에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스포일러] 텅루킴은 사실 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