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프리카중심주의(아프로센트리즘, Afrocentrism)은 미국 흑인의 흑인 민족주의에서 기원한, 흑인 중심의 역사인식을 말한다. 넓게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흑인 집단이 자신들 중심으로 세계사를 인식한다면 아프로센트리즘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중심의 세계 문명과 세계사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고 세계사 속 흑인의 역할을 강조한다.2. 역사
아프로센트리즘의 역사는 남북 전쟁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이후에도 흑인들을 향한 인종차별은 미국에 노골적으로 남아 있었다. 차별 받던 흑인들은 흑인교회를 중심으로 뭉쳐 스스로를 체계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그러나 아프로센트리즘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것은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을 전후한 시기였다. 미국에서 노예 해방과 공민권 투쟁으로 인해 흑인들의 사회적 위치가 갈수록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흑인 민족주의자들 입장에선 흑인 커뮤니티에게 자부심을 불어 넣을 역사가 필요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조응하여, 일부 학자들은 유럽 중심의 세계사 인식에서 흑인의 역할이 백인들에 의해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당해왔다고 주장했다. 즉 백인들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은 이룩한 게 없다고 깔아뭉개는 식의 태도와 인식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영국의 중국 현대 정치사학자 마틴 버널(Martin Bernal)의 《검은 아테나(Black Athena)》에서는 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원시 인도유럽인이라는 기존 학설을 부정하고 페니키아인과 고대 이집트인의 그리스 식민화 과정에서 그리스 문명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서에서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새로운 이론들은 아프로센트리즘에서 차용했는지 아닌지를 떠나서[1] 어느 정도 학문적인 토대를 완성하였다. 《검은 아테나》는 서구 학계에서 소수 학설임은 분명하나, 학술적 지위를 인정받으며 환빠 같은 유사역사학과 비교되지는 않는다.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쓰이다보니 극단적인 찬양이나 비하가 등장하곤 하지만 말이다. 제3자 입장이라서 객관적이 될 수 있는 한국의 서양 고대사학계와 근동학계에서는 마틴 버널이나 발터 부르케르트[2]의 주장이 소수 의견을 넘어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더욱 지지자가 많아져가는 추세이다. 마틴 버널의 주장 전체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서구중심적인 역사관에 의한 왜곡에 대한 지적에 동의하고, 그리스에 대한 이집트의 큰 영향력에 동의하는 학자들은 더더욱 많으며, 서구에서 권위있는 고대 그리스 학자들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다. 토머스 마틴의 <고대 그리스> 등의 표준적 개론서의 서술을 참조할 수 있다.
아프로센트리즘은 아래 서술할 한계와 문제점을 내포하지만, 그러한 주장 자체가 모두 허황된 것은 아니다.
3. 문제점
3.1. 역사 왜곡
1960년대 이후 태동한 아프로센트리즘은 흑인 민족주의의 함양을 강조하였고, 이에 따라 그들에게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자랑스런' 역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프로센트리즘을 지지하는 사상가와 학자들은 진짜 흑인들의 역사에 주목하기보다는 타 인종이 이뤄낸 성취를 흑인의 것이라 주장하거나 흑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역사에서 흑인 민족주의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 잘라서 강조하거나, 때로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기도 하였다. 이에 누군가가 반박하면 백인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거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식민사관에 대한 반동으로 환빠 및 한국기원설이 생겨난 것과 비슷하다.따라서 대중적 형태의 아프로센트리즘은 유명인이나 역사적 현장에 조금이라도 가무잡잡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원래 흑인이라고 주장하고, 거기에 누가 반박하면 흰둥이들이 사기친 것이라고 우기는 논리구조를 완성한다. 이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아래 언급할 이집트 문명을 이룩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흑인이라는 주장이다.
아프로센트리즘이 이러한 식의 어이없는 논리구조로 귀결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아프로센트리즘이 학문적 엄밀함보다는 흑인 민족주의를 함양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흑인의 자랑스런 역사를 찾아나서기 시작했고 그런 역사는 분명 존재하지만, 한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이 지역의 역사를 규명하고 보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흑인들이 기원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연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역사에서 흑인들은 상당한 문명적 성취를 이뤄냈고, 시기나 지역에 따라 자부심을 가질 만한 제국을 이루어낸 경우도 있었다.
- 서아프리카엔 가나, 말리, 송가이 등이 있었고, 특히 말리 제국의 경우에는 만사 무사가 성지순례 중에 금을 말 그대로 뿌리고 다녀 욕을 먹었는데도 국가가 3세기가 넘게 유지되었고, 송가이 제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들고 일어났는데도 금과 소금과 구리가 넘치는 땅이었기에 다른 나라들이 다 망하고 나서도 40년 더 존속될 정도였으며, 이외에도 근세와 근대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호메이 왕국, 바마나 제국, 소코토 칼리프국, 아샨티 제국, 졸로프 왕국, 오요 제국 등이 존재했다.
- 중앙아프리카에서는 카넴-보르누 제국, 콩고 왕국, 와다이 술탄국이 있었다.
- 남아프리카에도 그레이트 짐바브웨와 같은 석조 도시를 남긴 짐바브웨 왕국, 근대에는 창칼로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영국 군인을 격퇴한 줄루 왕국등이 존재했다.
- 동아프리카에서는 소말리아계 술탄국들이 무역으로 번영하였고, 특히 에티오피아계 국가는 비이슬람이면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악숨 왕국은 로마 제국이나 사산 왕조도 함부로 무시 못하는 지역 강국이었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아프리카의 유일한 근대적 제국으로서 700년이나 존속하였는데,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이 식민지배를 받았던 19세기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했던 국가이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 유엔 창립 회원국, 비동맹운동 창립회원국 등 국제적 지위도 상당히 확보하였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강력하고 자랑할 만한 흑인 문명·국가들도 찾아보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들어와 분쟁으로 고통받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심도 있는 연구는커녕 제대로 된 학문 활동할 사회정치적 여건도 안된다. 차라리 제국주의 시대에는 대부분 서구 열강의 식민지여서 식민지 본국인이기만 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쓰인 저서들이 현대보다 훨씬 더 좋은 연구 환경에서 집필되어 지금까지도 해당 분야에서 교과서급 위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3] 물론 그 시절 서적들은 제국주의적 선입견, 인종주의적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재생산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 이후론 해당 지역에 연구하러 가 본 학자 자체가 드물어 아직까지도 울며 겨자먹기로 쓰일 수밖에 없다. 지금 아프리카에 연구하려 하면 연구 지원금 신청서, 비자 발급 과정 등을 거치려고 들면 엄청난 분량의 보험증명서, 연구하다 뭔 탈이 나도 기관은 책임 안진다는 내용의 계약서, 해당 국가와 학자 본인 조국의 특별 비자와 허가 등 엄청난 양의 추가 서류를 이미 인프라 잘 닦인 메이저 국가에 비교해 더 준비해야 된다. 이마저도 해당 국가가 독재국가고, 각종 국제 이권, 정치적 분쟁의 중심에 있는 나라라면 그나마 입국에 성공했어도 사사건건 간섭하며 따라붙는 감시와 검열은 애교고, 혹시나마 본국에 귀국해서 발표한 논문, 책 같은게 해당 정권 입맛에 안 맞으면 그 나라 정권 뒤집힐 때까지 다시 재방문도 못하고 해당 지역 연구 자체를 접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근대 이전에 지역사 발전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저런 나라들은 연구할 기반이 너무 열악하여 학자들이 연구를 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분명히 동시대 누구 기준에서 봐도 당당히 ' 나라'라 부를만한 사회 조직과 체계를 가지며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적, 문명적 아웃풋을 낸 저런 역사적 나라들은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이 오기 전엔 나라라 부를 만한 것도 없는 우가우가 지역이라는 인종차별적이고 낡아빠진 고정관념이 더 강하게 자리 잡는다. 자연환경도 도움이 안되게 말리나 송가이 같은 강성한 서아프리카 제국의 중심이었던 팀북투 일대 같은 곳은 현대 들어와선 아예 집중적으로 사막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아예 물리적으로 유적, 자료들이 문자 그대로 모래에 뒤덮여 사라져가는 경우도 많고, 이 분야의 끝판왕인 이집트 못지않게 연혁이 오래됐고 중요한 아프리카 토착 문명이었던 누비아는 아예 나세르 정권 시절 빈약한 문화역사적 의식과 무절제한 개발주의로 아스완 댐 건설 당시 아예 주요 유적군들이 죄다 수몰됐다. 따라서 누비아의 경우 관련 연구가 냉전 시대 파라스 성당을 비롯한 수몰 이전 발굴, 연구했던 폴란드 고고학자들에게 바통을 넘겨 받았다는 연유로 엉뚱한 폴란드 대학들이 주요 연구 기관이고, 말리나 송가이 같은 경우 프랑스, 에티오피아의 경우 독일의 대규모 대학도 아니고 특정 대학의 소규모 관련 전문 연구소 중심으로 돌아간다. 전부 다 아프로센트리즘과 관련해 대중 차원에서 인종, 문화적 갈등의 중심에 있는 미국과는 너무나도 먼 곳이고, 따라서 이런 유사역사학적 왜곡에 대한 대응과 피드백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아프리카의 유구한 문명들은 낮은 인지도와 접근성으로 인해 미국 흑인들에게 잊혀졌고, 참담한 공교육 현황과 타 문화나 국가에 대한 무지가 복합하게 얽혀 결국 아프리카중심주의는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과 같은 역사 왜곡으로 이어졌다. 정리하자면 왜곡된 아프로센트리즘의 부상은 북미의 정치, 사회적 인종 갈등과 맞물린 상태에서 해소 방향을 제시해야 할 역사학적, 인문학적 연구가 현실 아프리카의 물리적 여건 때문에 해결 방안이 되지 못하자, 여러 역사 왜곡 등이 '간편한 대안'으로서 튀어나왔고, 이런 인문학적 악조건 때문에 증폭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3.1.1.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
앞서 언급했듯 아프로센트리즘에 의한 역사왜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이다.
이집트와 관련하여 아프로센트리즘 지지자들은 몇 가지 빈약한 근거로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을 정당화한다. 그 사례 중 하나가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검은 땅'이라는 뜻인 케메트라고 지칭한 걸 가지고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케메트라고 칭한 건 고대 이집트인들이 흑인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일강이 범람하면 나타나는 비옥한 흙의 색이 검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으로 우크라이나 및 유럽 러시아 남부 일대가 검고 비옥한 부식토 덕분에 검은 땅이라는 뜻의 체르노젬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 당연하게도 해당 지역에 살았던 동슬라브 민족들이 흑인이라는 의미로 지어진 건 절대로 아니다. 케메트는 더 나아가서 문명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검은색은 대다수 문화권에서 죽음이나 공포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데 비해 고대 이집트에서는 풍요로운 이미지였으며, 반대로 이집트에서는 붉은 색을 부정적으로 여겼는데, 이는 나일 강 유역 외부의 척박지인 사막에서 따온 것.
또한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사는 무슬림들을 싸잡아서 부르는 말이라 흑인도 포함이 되었긴 하지만, 대부분은 아랍이나 베르베르 혈통이었다. 하지만 아프로센트리즘 지지자들은 그냥 싸잡아서 흑인 취급한다.
각종 매체에서 고대 이집트인이 백인으로 묘사되면 여기에 악플을 달거나 고대 이집트인 흑인설과 관련된 꾸준글을 올리는 것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다. 진짜 이집트 사람인 라미 말렉[4]을 놓고 백인이 이집트인 노릇한다고 까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도 있으며, 더 나아가 이들은 현대 이집트인은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근래에 독일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드라마 바바리안(드라마) 시즌 2에서 등장하는 폴크빈의 여성 동료가 흑인인데, 카르타고인이라고 묘사된다.
고대 이집트의 왕비 네페르티티의 모습. 흑인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를 흑인 문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일단 눈에 보이는 증거만 봐도, 네페르티티 흉상에 묘사된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는 흑인보다는 차라리 백인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은 네페르티티가 고귀한 왕비로서 밖에서 일을 하지 않아 피부색이 하얗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모습을 흑인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을 벽화를 그릴 때 스스로를 짙은 붉은빛이나 갈색으로 묘사했다. 네페르티티만큼 밝은 빛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흑인들의 검은색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린 인종들의 모습. 가장 오른쪽이 전형적인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습이고, 누비아계 흑인들은 그 시대에도 검은색으로 칠했다. Lybian은 지금의 리비아에 살던 유목민족이고 Asian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시아가 아니라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중동인을 의미한다.
위 그림이 보여주듯, 고대 이집트인들은 누비아계 인물들이나 진짜 사하라 이남 지역의 흑인들을 묘사할 때에는 대놓고 검은색을 써서 그렸다. 즉 고대 이집트인들도 사하라 이남에 주로 거주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흑인들과는 스스로를 구별했다는 뜻. 이집트가 혼란스러웠던 이집트 말기 왕조 시절 누비아인들이 '흑인 왕조'라 불리는 제25왕조를 세워 이집트를 다스리긴 했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었고, 몇 천년에 달하는 이집트 역사 대부분 기간 동안 순혈 흑인은 고대 이집트 사회의 주류가 아니었다. 다만 이집트에 살며, 이집트 문화를 따르면 흑인이나 소아시아인도 이집트 국민으로 대우해줬기 때문에 장관에까지 오른 누비아 흑인 마이헤르프리, 수상의 자리까지 오른 소아시아인 아페르엘 같은 사례가 꽤 많다.
그리고 정작 이집트의 누비아계 주민들에게 아프리카중심주의는 좋게 보기 힘든 사상이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서아프리카계 후손인 미국 흑인들이 동아프리카계 민족인 자신들의 역사를 빼앗으려고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미국 흑인들과 누비아인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같은 흑인이라는 걸 제외하면 서로 무관하고 문화적으로도 각각 서양 문화와 아랍 문화에 동화되어 매우 이질적이다.[5]
현대 사학계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백인과 흑인, 아랍, 레반트 계통까지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문화라고 보고 있다. 애초에 이집트 문명을 '백인만의 문화', '흑인만의 문화' 이렇게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이집트와 상이집트 사이에서도 각각 인종과 피부색이 다양했고, 흑인에 더 가까웠던 누비아 문화까지 합치면 더더욱 다양했다. 다만 외형적으로 보았을 때, 굳이 따져보자면 고대 이집트인들의 주류 인종은 현재 북아프리카와 중동계, 그리고 지중해권 인종들을 합쳐놓은 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대 이집트인들과 비슷하게 생겼다.[6]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도 흑인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걸 의미하며, 특히 그리스계 지배층들이 대거 유입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는 지중해권 백인들의 모습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7]
2023년 4월 14일에는 넷플릭스에서 5월 10일에 방영하는 퀸 클레오파트라의 트레일러 영상을 공개하며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 를 포함한 이집트인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을 흑인으로 캐스팅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해당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흑인 여성이 "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한테 뭐라고 가르치든 신경쓰지 않아. 클레오파트라는 흑인이었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
왜 흑인들은 이집트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정리된 글 #
3.1.2. 기타 사례
이집트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아프로센트리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냥 좀 위대해 보이는 나라면 죄다 흑인이었다고 해버린다.이젠 하다하다 백제와 일본이 흑인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Paekche principle : The Great Secret of Asia 아프로센트리즘을 추종하는 사람들 중 와패니즈거나 한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꽤 유명한 책인지 재일 한국인으로서 백제사 관련 컨텐츠에 자주 모습을 비춘 김용운이 생전에 운영하던 김용운의 역습이나 백제사를 다룬 한국인 유튜브 영상이나 채널에도 간간히 모습을 비추며 해당 저서를 추천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카노우에 타무라마로 흑인설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역사가 아니라 신화마저도 흑인화를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헤라클레스야 에티오피아 혈통으로서 하프에 가까운 흑인일 가능성이 컸다고 쳐도. 트로이: 왕국의 몰락이나[8] 토르 시리즈의 헤임달,[9] 약간 애매하지만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의 앙그르보다가 대표적인 예시다.[10] 이쪽은 역사 부문보다는 논란이 덜하긴 하다. 덧붙여 이집트 신화를 배경이나 모티브로 삼은 매체에 백인 배우가 캐스팅되면 배역의 어울림과는 별개로[11] 왜 흑인 배우를 기용하지 않았느냐며 대뜸 성부터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집트 사례에서 더 심해지면, 아랍인, 베르베르인 등의 현재의 북아프리카인들은 북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모두 죽이고 그 땅을 차지했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물론 북아프리카 북부의 셈계 백인들이 정복전쟁 과정에서 북아프리카 북부의 흑인들과 충돌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북아프리카 북부의 흑인들이 대거 학살당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일은 북아프리카의 아랍화 이전부터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사실이 북아프리카 북부가 원래부터 흑인들의 땅이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3.2. 안티내셔널리즘적 비판
아프로센트리즘은 흑인 민족주의에서 태동한 역사 인식이기 때문에,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점을 아프로센트리즘 또한 공유하고 있다.근본적으로, 과거에 흑인이었건 백인이었건 황인이었건 그 무엇이었건 간에, 과거는 과거인들의 것일 뿐이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의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다.[12] 그런데 굳이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든 연결하려고 하는 것은 비판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과거를 소유'함으로서 현재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방식의 내셔널리즘은 어떠한 논리적, 과학적 정당화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어떻게든 명분을 자기의 입장에서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과 현대 이집트인, 혹은 고대의 어떤 국가나 민족과 현재의 어떤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 할 수 있느냐는 논쟁 역시 마찬가지로 과거를 과거인들이 아닌 현대인이 소유하고자 하는 작위적인 개념화에 가까우며, 게다가 인종 개념은 그야말로 역사가 짦을 뿐만 아니라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분명 여러 지역의 인류에 유전적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종들로 묶은 것은 전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13]
게다가 전세계의 흑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는 것 또한 거대한 오류이다. 흑인이 한 민족이라면 지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민족갈등이나 내전 등은 없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논리대로라면, 전세계의 황인과 백인 또한 각각 하나의 민족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그들 내부의 민족갈등이나 내전 또한 없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류학적, 생물학적, 역사학적 팩트를 따지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순수한 학술적 목적에 의한 논쟁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정치나 이권에 기반하여 생기는 논쟁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논쟁 자체보다도 그 뒤에 있는 차별, 제국주의, 종교근본주의, 국수주의 같은 것을 피하는 것에 있다.
4. We Wuz Kingz
해당 밈이 소개된 KYM 페이지.흑인 우월주의적인 역사관과 그것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는 빙의 계열 밈. 4chan발 Copypasta들 중 하나다. 인종 관련 떡밥이라면 놓치지 않는 4chan이 이런 주장들을 발굴해내며 패러디를 만들며 생겨난 밈. 간혹 흑인들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환빠스러운 주장을 하는 부류들을 상대로 we wuz라고 하기도 한다.[14]
5. 관련 문서
[1]
저자는 흑인/백인 같은 식의 근세 이후 창조된 인종 개념, 피부색 정체성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주장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러나 '검은 아테나'는 워낙 어렵고 두꺼운 책이라 읽어본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제목이나 인터넷의 왜곡된 글만 보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2]
Walter Burkert. 독일의 그리스 신화 학자. 버널같은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나 그 역시 그리스 문명에 미친 서아시아 및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발굴하고 강조하였다.
[3]
북한지역의 지질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질도를 종종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4]
미국인이긴 하나, 혼혈도 아니고 부모 양쪽 모두
콥트 정교회 신자인 이집트계 미국인이다.
[5]
이슬람교로 개종한 일부 미국 흑인들조차 종교가 이슬람교라는 걸 제외하면 사실상 서양 문화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누비아계 이집트인들에게는 무슬림 미국 흑인들도 자신들과는 인종과 종교만 같은 외국인일 뿐이다.
[6]
물론 후일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의 유입과 함께
아랍인들이 대거 유입되고 이후
맘루크 왕조와
오스만 제국 시절에
튀르크인들도 대거 유입되며 유전적으로 유전자풀이 어느 정도 달라졌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7]
심지어 이 시기에
아나톨리아까지 진출한
켈트인들이 용병으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의해 고용된 이후, 요청에 따라 이집트에 정착하기도 했다.
[8]
아킬레우스와
제우스를 흑인으로 묘사해놨다. 더불어, 시대적 고증마저도 나락갔다.
[9]
이드리스 엘바라는 멋진 배우가 캐스팅되어 호평일색이긴 하지만, 원본 신화는 물론이고 코믹스에서도 백인이었던 것을 흑인으로 바꾼 것에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 '어치피 인기없던 신/조연이니까 인종을 바꿔도 못 알아본다며 바꾼 게 아니냐' 는 음모론이 나오는 식. 신족 자체를 아예 북유럽 신화풍의 외계인으로 재해석한데다 백인에 얽매이지 않는 다인종 캐스팅을 지향했기에 동양인도 캐스팅되긴 했다.
[10]
흑인으로 재해석되었는데, 이게 이집트 신화 배경의 후속작을 이을 구심점으로 작용할 거라는 의혹이 있다. 즉, 이집트 신화를 흑인의 것이라 못 박았다는 위험한 의혹인 셈이다. 일단 앙그르보다와 그 할머니 그릴라와는 달리 라우페이나 티무르 같은 다른 요툰은 북유럽 백인처럼 묘사되었다. 자세한 건 후속작이 나오고 나서 판단해봐야 할 부분이다.
[11]
북유럽계처럼 이집트 배경에 아예 어울리지 않는 배우가 캐스팅되면 흑인 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 이곳저곳에서 비판하는 의견이 속출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집트인과 흡사할 중동계나 짙은 피부색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백인 배우마저도(더욱 심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백인의 이목구비에 가까운 흑백혼혈조차) 깔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12]
엄밀히 말해서 지금의
대한민국과
고조선은 다른 나라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대
중국과
주나라는 다른 나라이고, 현대
프랑스와
프랑크 왕국은 다른 나라다.
[13]
과학적 인종주의는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해 왔다. 근래에
하플로그룹 등의
연구방법론으로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종 분류를 기존의 틀에 기대지 않고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14]
예를 들면
넷플릭스의
블랙워싱을 보고 'We wuz
Vikangz
n
shiet' 또는 'We wuz
Kanglo-Saxonz'라고 조롱하거나 고대 로마인들은 금발머리였고 현대
이탈리아인들은
아랍인 후손이라 주장하는 북서유럽인들 보고 We wuz Romanz라고 비꼬는 것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