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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워렌 비티 Warren Beat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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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헨리 워런 베이티 Henry Warren Beatty[1] |
출생 | 1937년 3월 30일 ([age(1937-03-30)]세) |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88cm |
학력 | 노스웨스턴 대학교 (중퇴) (1954년 – 1955년) |
직업 | 배우, 감독, 작가, 프로듀서 |
영화 데뷔 | 1956년, ' 초원의 빛' |
활동 기간 | (1956년 ~ 현재) |
형제 | 누나 셜리 맥클레인 |
배우자 | 아네트 베닝(1992년 ~ 현재) |
자녀 |
아들 스티븐 베이티(1992년 1월 8일생)[2] 아들 벤저민 베이티(1994년 8월 23일) 딸 이저벨 베이티(1997년 1월 11일생) 딸 엘러 베이티(2000년 4월 8일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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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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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시작을 알린 핵심 인물로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공동제작자와 주연으로 참여하여 아메리카 뉴웨이브 시네마의 클리셰들을 정립했다.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 더스틴 호프먼, 앤서니 홉킨스 등과 동갑내기인 1937년생으로 오랜 기간 동안 할리우드에서 활약한 노장 배우 중 하나이다. 셜리 맥클레인의 동생이기도 하다.
2. 주요 활동들
1957년부터 TV 드라마 단역, 조연을 시작으로 얼굴을 알린 워렌 비티는 1961년 나탈리 우드와 공동 주연 영화 〈 초원의 빛〉(1961)과 비비안 리와 공동 주연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의 영화 〈로마의 애수(The Roman Spring of Mrs. Stone)〉(1961) 두 편[3]으로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제작을 위해 워너 사장을 찾아가서 무릎까지 꿇으며 엄청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결과는 1967년 연간 북미 흥행 4위로 대성공.
〈 초원의 빛〉은 당대 최고의 히트 외화 중 하나였다. 62년 수입 당시 중앙극장에서 6/8~7/13 간 상영되어 10만 명, 그리고 한 달 뒤 명동 극장에서 재개봉하여 8/12~9/11간 12만 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2차 수입 때는 허리우드 극장에서 72년 3/1~5/4 2달간 무려 24만 명을 동원해 당시 젊은 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 〈 수색자〉, 〈 이유 없는 반항〉, 그리고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보다 이 작품으로 나탈리 우드를 기억하는 노년층이 많은 이유이다.
직접 연출해 1982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영화 〈 레즈〉는 러시아 혁명 때에 볼셰비키를 지지하여 르포르타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미국의 공산주의자 저널리스트, 존 리드를 다룬 전기 영화이다. 빨갱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장장 3시간에 걸쳐 존 리드의 생애를 조명한다. 냉전이 한창이었던 1980년대 자본주의 진영의 수장인 미국에서 좌익 언론인과 러시아 혁명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나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고 소련 혁명을 긍정하는 단순한 프로파간다성 영화는 아니고 중간에 볼셰비키 정권의 권위주의화, 내전의 비인간성을 보여주며 특히 자신을 검열하려고 드는 지노비예프 상대로 리드 역의 베티가 일갈하는 등 소련 독재에 대한 비판적인 입체적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주제 자체가 대중성하곤 거리가 먼 주제여서 큰돈은 못 벌었지만 흥행도 나름은 성공했고 이런저런 상도 많이 타서 역사영화팬들에겐 지금도 종종 화자되는 숨겨진 명작. 그러나 주제의 특성상 반공 분위기가 팽배했던 당시에는 국내 개봉이 되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적다.
로버트 올트먼하고는 〈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으로 같이 작업했는데 서로 사이가 나빠져 다시는 같이 작업하지 않았다.
3. 사생활
잭 니콜슨과 함께 바람둥이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둘의 집엔 지하 통로가 있어 플레이보이 소유주 휴 헤프너의 저택으로 바로 이어져있다는 루머가 크게 돌기도 했다.[4] 교차 검증으로 확인된 여자연예인들 수만 따져도 무려 100명이 넘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연애 기술과 188cm의 큰 키[5], 훌륭한 외모가 겹쳐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이처럼 데뷔작인 〈 초원의 빛〉의 나탈리 우드부터 시작해 출연작마다 상대 여배우와 염문설이 도는 놀라운 능력을 자랑했지만, 1991년 〈 벅시〉에서 공동 주연을 맡은 아네트 베닝과 1992년 3월 3일 결혼한 이후부터는 바람기가 끊겨서 더 큰 놀라움을 줬다. 바람둥이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과거 다른 여배우들과의 열애설도 일축하는 것을 보면, 이제 더 이상 바람은 피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 아내인 베닝과의 나이 차이는 21살이다.
4. 여담
- 동료나 연인들로부터 "자의식이 너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 나이가 8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
〈
킬 빌〉의
빌 역을
쿠엔틴 타란티노로부터 제안받았으나 영화가 유치(ridiculous)하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그 후의 인터뷰에 따르면 출연 제의 거절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데이비드 캐러딘이 그 역에 적임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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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 더너웨이와 함께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번복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 "사람들이 그날 내내 당신 실수 이야기했나요?"라는 질문에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전부 자기 얘기하느라 바쁘더라."란 대답을 남겼다.
- 2022년 11월 9일, 크리스티너 샬럿 허쉬(Kristina Charlotte Hirsch)라는 여성이 1973년 자신이 14살일 때 35살이던 비티가 그루밍을 통해 성관계를 가졌다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에 고소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미성년자 성폭행에 한해 공소시효를 한시적으로 무효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