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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9:09:25

피터 셀러스

피터 셀러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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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남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영화)
제36회
( 1979년)
제37회
( 1980년)
제38회
( 1981년)
워렌 비티
( 천국의 사도)
피터 셀러스
( 정원사 챈스의 외출)
레이 샤키
( 아이돌메이커)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BAFTA 로고.svg
남우주연상
제12회
( 1959년)
제13회
( 1960년)
제14회
( 1961년)
트레버 하워드
(열쇠)
시드니 푸아티에이
(흑과 백)
피터 셀러스
(아임 올 라이트 잭)

잭 레먼
( 뜨거운 것이 좋아)
피터 핀치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
잭 레먼
(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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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피터 셀러스
Peter Sellers
CBE
파일:petersellers1.jpg
본명 리처드 헨리 셀러스
Richard Henry Sellers
출생 1925년 9월 8일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 포츠머스 사우스씨
사망 1980년 7월 24일 (향년 54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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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영국 런던 골더스 그린 납골당
신장 173cm
학력 성 알로시우스 대학교
직업 배우, 코미디언, 가수
영화 데뷔 1950년, '흑장미'[1]
활동 기간 1948년 ~ 1980년
배우자 앤 호(1951년~1963년 이혼)
브릿 에클랜드(1964년~1968년 이혼)
미란다 쿼리(1970년~1976년 이혼)
린 프레데릭(1977년 결혼)
자녀 아들 마이클 셀러스(1954년생)
딸 사라 셀러스(1958년생)
딸 빅토리아 셀러스(1965년생)
계급 영국 공군 상병

1. 개요2. 주요 출연작3. 연기 테크닉4.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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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핑크 팬더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이다. 1인 다역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50년대 BBC 라디오에서 송출된 유명 코미디 방송 The Goon Show에서 여러 개그 캐릭터를 놀라운 목소리 연기력으로 소화하며 일약 인기 코미디언으로 도약했다.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비틀즈를 만나기 전에 피터 셀러스의 코미디 앨범 전담 프로듀서였다.

1980년 7월 24일 심장마비로 5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하기 이전부터 심장 건강이 안 좋았다고 한다.[2]

영국 배우지만 유럽내에서도 인지도가 탄탄했던 배우라서, 2004년 그의 전기 영화가 제57회 칸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 주요 출연작

3. 연기 테크닉

피터 셀러스는 1인 다역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였다.

피터 셀러스는 1962년 10월 플레이보이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자신이 한 작품에서 이처럼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목소리부터 시작합니다. 연기 할 캐릭터가 어떻게 들려야하는지 연구하죠. 그가 말하는 방식을 통해 그에 대한 나머지를 알아냅니다. 목소리 다음에 그 사람의 외모가 나옵니다. 나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그림을 많이 그립니다. 그런 다음 메이크업 담당자와 함께 제 그림을 얼굴에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 다음에는 캐릭터의 걸음걸이를 정하죠. 걸음걸이가 아주 중요합니다. 걸음걸이까지 정하면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인물이 등장하는 거에요. 당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존재하기 시작하는거죠.
피터 셀러스.

4. 사생활

인성 면에서는 안 좋은 얘기가 많던 사람이었다.

피터 셀러스는 유쾌한 코미디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는데 평소 성격이 다혈질에다 까탈스럽기로 유명했고 실제로 조울증 불안장애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금사빠 기질이 있어서 유부남인데도 불륜을 밥먹듯이 저질렀다.[5] 그래서 4번의 결혼 생활 중 3번의 이혼 모두 셀러스의 정신건강 문제나 불륜으로 아내가 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좋지 않게 끝났다. 또한, 피터 셀러스의 지인들은 셀러스의 마지막 부인이었던 린 프레더릭이 셀러스의 부인들 중 그에게 가장 안 좋은 대우를 받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6] 자녀들에게도 항상 강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고 한다.

피터 셀러스와 많은 작품을 함께 작업했던 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도 같이 일하기 힘든 배우였다며 영화 촬영 때 마다 그와 충돌이 심각했다고 인증했을 정도.

심지어 The Goon Show 동료들도 피터 셀러스가 사망하자 추모는 했으되 '저녁 식사 비용 지불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사람',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적절한 순간에 죽었다'는 블랙 유머스러운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1] 타이론 파워, 오슨 웰스 주연작. [2] 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았던 정신적인 문제 외에도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질 때 춘약을 자주 사용해서 약의 부작용 때문에 심장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3] 피터 셀러스는 소피아 로렌과 함께 활동하면서 그녀를 연모하기 시작했고 소피어 로렌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다고 한다. 피터 셀러스의 첫번째 부인이 나중에 회고한 바에 의하면 셀러스가 자신에게 "나는 소피아 로렌과 연인 사이다. 그러니 이제 너와 이혼하고 싶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셀러스는 소피아 로렌에게 푹 빠져있었다고.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이 두 사람 사이에 썸씽이 있는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소피아 로렌은 남편이자 거물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서둘러서 피터 셀러스와의 관계를 정리했으며 소피아 로렌은 지금도 피터 셀러스와는 그저 플라토닉한 관계였다고 말하고 있다. 피터 셀러스 전기 영화에서도 셀러스가 소피아 로렌의 사랑은 얻지 못하고 대신 자신의 욕망을 소피아 로렌의 대역에게 푸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4] 참고로 셀러스랑 링고는 촬영 기간 동안 많이 친해졌다고 한다. [5] 깉은 유부녀였던 소피아 로렌, 이미 약혼남이 있던 라이자 미넬리에게 찝쩍댄 것이 유명하고 마거릿 로즈와도 염문설이 있었다. [6] 그녀와 결혼할 즈음부터 피터 셀러스의 심장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린 프레데릭은 좋은 연기력과 미모로 (데뷔 당시 포스트 올리비아 핫세로 불릴 정도로 상당한 미모로 유명했고 지금도 가끔 옛날 미인으로 언급된다.) 10대 스타로 떴던 배우였으나 피터 셀러스와의 불화로 골드 디거 낙인이 찍힌데다 유언장 변경 논란, 셀러스의 자녀들과의 불화, 핑크 팬더 제작진과의 송사, 미묘한 타이밍의 재혼 때문에 언론의 먹잇감과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