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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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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초대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제3공화국
<rowcolor=#23235A>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쥘 그레비 사디 카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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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포르 에밀 루베 아르망 팔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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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데샤넬 알렉상드르 밀랑 가스통 두메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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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두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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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오리올 르네 코티
제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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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조르주 퐁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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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왕정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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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아르망 에마뉘엘 드 비네로 뒤 플레시스 장 조제프 데솔 엘리 디카즈
(제2대) 제5대 제6대 제7대
아르망 에마뉘엘 드 비네로 뒤 플레시스 조제프 드 빌리에 장 바티스트 게이 쥘 드 폴리냐크
제8대
카지미르 드 로슈슈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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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자크 라피트 카지미르 페리에 장드디외 술트 에티엔 모리스 제라르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위그베르나르 마레 에두아르 모르티에 빅토르 드 브로이 아돌프 티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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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기조 마티외 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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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제20대 제21대 제22대
자크 샤를 뒤퐁 드 뢰르 프랑수아 아라고 루이외젠 카베냐크 오딜롱 바로
제23대 제2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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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루이 쥘 트로쉬 쥘 아르망 뒤포르 알베르 드브뢰이 에르네스트 쿠르토 드시세
제31대 (제28대) 제32대 (제29대)
루이 뷔페 쥘 아르망 뒤포르 쥘 시몽 알베르 드브뢰이
제33대 (제28대) 제34대 제35대
가에탕 드 로슈부에 쥘 아르망 뒤포르 기욤 워딩턴 샤를 드프레이시네
제36대 제37대 (제35대) 제38대
쥘 페리 레옹 강베타 샤를 드프레이시네 샤를 뒤클레르
제39대 (제36대) 제40대 (제35대)
아르망 팔리에르 쥘 페리 앙리 브리송 샤를 드프레이시네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르네 고블레 모리스 르비에 피에르 티라르 샤를 플로케
(제43대) (제35대) 제45대 제46대
피에르 티라르 샤를 드프레이시네 에밀 루베 알렉상드르 리보
제47대 제48대 (제47대) (제46대)
샤를 뒤피 장 카지미르페리에 샤를 뒤피 알렉상드르 리보
제49대 제50대 (제40대) (제47대)
레옹 부르주아 쥘 멜린 앙리 브리송 샤를 뒤피
제51대 제52대 (제42대) 제53대
피에르 발데크루소 에밀 콩브 모리스 루비에 페르디낭 사리앵
제54대 제55대 제56대 제57대
조르주 클레망소 아리스티드 브리앙 에르네스트 모니 조제프 카요
제58대 (제55대) 제59대 제60대
레몽 푸앵카레 아리스티드 브리앙 루이 바르투 가스통 두메르그
(제46대) 제61대 (제55대) (제46대)
알렉상드르 리보 르네 비비아니 아리스티드 브리앙 알렉상드르 리보
제62대 (제54대) 제63대 제64대
폴 팽르베 조르주 클레망소 알렉상드르 밀랑 조르주 레이그
(제55대) (제58대) 제65대 제66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레몽 푸앵카레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마르시알 에두아르 에리오
(제62대) (제55대) (제66대) (제58대)
폴 팽르베 아리스티드 브리앙 에두아르 에리오 레몽 푸앵카레
(제55대) 제67대 제68대 (제67대)
아리스티드 브리앙 앙드레 타르디외 카미유 쇼탕 앙드레 타르디외
제69대 제70대 (제67대) (제6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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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68대)
조제프 폴봉쿠르 에두아르 달라디에 알베르 사로 카미유 쇼탕
(제72대) (제60대) 제74대 제7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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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라발 피에르에티엔 플랑댕 프랑수아 다를랑 피에르 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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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대주교 문장.png 우르헬교구장
<rowcolor=#23235A> 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페레 두르치 기옘 데 몬카다 라몬 트레바이야
<rowcolor=#23235A>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페레 데 나르부나 니콜라 카포치 우고 데즈박 기옘 아르나우 데 파타우
<rowcolor=#23235A>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페드로 마르티네스 데 루나 베렝게 데릴 이 데 파야스
<rowcolor=#23235A>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아르나우 루제 데 파야스 자우메 카르도나 로데리크 데 보르자 이 에스크리바 페드로 폴크 데 카르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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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데스페즈 페드로 조르다 데 우리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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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안 페레스 가르시아 데 올리반 페레 데 카스테예트 조안 디마스 로리스 미켈 제로니 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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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암브로스 데 몬카다 안드레우 카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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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페레스 파우 두란 후안 마누엘 데 에스피노사 멜시오 팔라우 이 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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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레 데 코폰스 이 데 테이시도 조안 데즈박 마르토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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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오 데 긴다 이 아페스테히 호르디 쿠라도 이 토레블랑카 세바스티아 데 빅토리아 엠파란 이 로욜라 프란세스크 조제프 카탈란 데 오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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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세스크 페르난데스 데 샤티바 이 콘트레라스 호아킨 데 산티얀 이 발디비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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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세스크 안토니 데 라 두에냐 이 시스네로스 베르나트 프란세스 이 마테트 보니파시오 로페스 이 풀리도 시모 데 구아르디올라 이 호토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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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카이샬 이 에스트라데 살바도르 카사냐스 이 파헤스
<rowcolor=#23235A> 제53대 제54대 제55대 제56대
조안 조제프 라구아르다 이 페노예라 조제프 푸자르김수교구장 서리 조안 베뇨크 이 비보 자우메 빌라드리크 이 가스파교구장 서리
<rowcolor=#23235A>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주스티 기타르트 이 빌라르데보 리카르트 포르네사 이 푸치데마사교구장 서리
<rowcolor=#23235A> 제61대 제62대
조안 마르티 이 알라니스 조안엔리크 비베스 이 시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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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푸아문장.png 푸아 백작
<rowcolor=#23235A> 제1대 제2대 제3대
로제 베르나르 3세 가스통 1세 가스통 2세
<rowcolor=#23235A> 제4대 제5대 제6대
가스통 3세 마티외 이자벨
<rowcolor=#23235A> 제7대 제8대 제9대
장 1세 가스통 4세 프랑수아
파일:나바라 왕국 국장.svg 나바라 국왕
<rowcolor=#23235A> 제9대 제10대 제11대
프란치스코 1세 페부스 카탈리나 1세 헨리케 2세
<rowcolor=#23235A> 제12대 제13대 제14대
호아나 3세 헨리케 3세 루이스 2세
파일:부르봉 왕조 문장.svg 프랑스 국왕
<rowcolor=#23235A>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루이 13세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
파일:프랑스 제1제국 국장.svg 프랑스 황제
<rowcolor=#23235A> 제18대
나폴레옹 1세
파일:부르봉 왕조 문장.svg 프랑스 국왕
<rowcolor=#23235A> 제19대 제20대
루이 18세 샤를 10세
파일:프랑스 왕국 7월 왕정 국장.svg 프랑스인의 왕
<rowcolor=#23235A> 제21대
루이필리프 1세
파일:프랑스 공화국의 국새.svg 프랑스 대통령 파일:프랑스 제2제국 국장.svg 프랑스 황제
<rowcolor=#23235A> 제22대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
파일:프랑스 대통령 로고.svg 프랑스 대통령
<rowcolor=#23235A> 제23대 제24대 제25대 제26대
쥘 그레비 사디 카르노
<rowcolor=#23235A>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펠릭스 포르 에밀 루베 아르망 팔리에르
<rowcolor=#23235A>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폴 데샤넬 알렉상드르 밀랑 가스통 두메르그
<rowcolor=#23235A> 제35대 제36대
폴 두메르
파일:비시 프랑스 국장.svg 프랑스국 국가원수 파일: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국장.svg 임시정부 주석
<rowcolor=#23235A> 비공식 비공식
필리프 페탱 샤를 드골
파일:프랑스 대통령 로고.svg 프랑스 대통령
<rowcolor=#23235A>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뱅상 오리올 샤를 드골 조르주 퐁피두
<rowcolor=#23235A>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rowcolor=#23235A> 제45대 제46대
프랑수아 올랑드 에마뉘엘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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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Frenchman
※ 2005년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2가 발표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명단이다.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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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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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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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크 타바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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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두이예
장 자크 골드만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달리다
레옹 지트론
니콜라스 윌로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파트리크 푸아브르 다르보르
프랑시스 카브렐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르노
베르나르 쿠슈네르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미셸 세로
미셸 드러커
라이무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레이먼드 풀리도르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질베르 베코
조제 보베
장 페라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뤽 베송
티노 로시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세르지 레기아니
프랑수아즈 돌토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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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김정숙 영부인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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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대통령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튀르키예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2023년 7월 13일 안제이 두다 대통령 폴란드
2023년 11월 21일 찰스 3세 국왕 영국
2024년 11월 16일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 페루 }}}}}}}}}

이그노벨평화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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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제정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에드워드 텔러 데릴 게이츠 필리핀 펩시 존 헤이글린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중화민국 입법원 자크 시라크 해럴드 힐먼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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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루이사 바예스타르
하이메 산마르틴
콘스탄사 카라타유드
베아트리스 알라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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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ru Papo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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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ong-Huak 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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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
파키스탄 정부
미국 유타 대학교 연구진 중국, 헝가리,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호주, 스위스, 미국 공동 연구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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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23235A>
프랑스 공화국 제22대 대통령
자크 르네 시라크
Jacques René Chirac
파일:자크 시라크 대통령.jpg
출생 1932년 11월 29일
프랑스 파리 5구
사망 2019년 9월 26일 (향년 86세)
프랑스 파리 6구
재임기간 제102대 총리
1974년 5월 27일 ~ 1976년 8월 25일 1기
1986년 3월 20일 ~ 1988년 5월 10일 2기[1]
제22대 대통령[2]
1995년 5월 17일 ~ 2007년 5월 15일
서명
파일:자크 시라크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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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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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23235a> 부모 아버지 벨 시라크[3]
어머니 마리 루이스 발렛
배우자 베르나데트 시라크
자녀 슬하 3녀
학력 루이르그랑 고등학교 ( 졸업)
리세 루이르그랑 (프레파과정 / 학사)
시앙스포 ( 경제지리학 / M.A.)
국립행정학교 ( 졸업)
종교 가톨릭 ( 세례명: 야고보)
신체 189cm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3, 4, 5, 6, 7, 8 }}}}}}}}}}}}
1. 개요2. 생애
2.1. 사망
3. 기타4. 소속 정당5. 선거 이력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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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제22대 대통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1995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2년 재선에 성공하여 2007년까지 임기를 수행했다. 특이사항으로 재선 당시 프랑스 역사상 최다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속사정은 후술.

그랑제콜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 Po) (프랑스어:Institut d'Etudes Politiques de Paris)와 국립행정학교(에나 ENA) (프랑스어: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을 졸업하고 고급공무원을 거쳐서 정계에 입문하였다.[4] 이후 농림부장관, 총리, 파리시장 등 다양한 요직을 거쳐 마침내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

2. 생애

파리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1954년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 Sciences Po)를 졸업하였다.

특이하게도 대학 시절에 공산당에 가입했었으며 공산당 기관지인 ' 뤼마니테'의 가두홍보원으로 일한 전력이 있었다.[5] 그래서 미국에 첫 방문을 했을때에는 까다로운 심문을 거치는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조르주 퐁피두의 눈에 들어 비서실장이 되고나서는 공산당을 탈당했고 1967년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로는 우파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때 공산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면서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라고 칭하기도 하였다.[6]

풍피두가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농민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장관으로 이름 날린다. 이 유명세로 1974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4위에 그쳤다.

낙선 후 총리에 임명되었는데, 이때는 2기 총리 재임기 때와 다르게 진보적인 정책을 다수 도입했다. 그러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과의 갈등으로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1977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사회당과 공산당이 압승을 거두고 우파가 죽을 쑤는 가운데,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의 친구인 미셸 도르나노를 제치고 첫 직선 파리시장[7]에 당선되었다.

1986년 총선 승리로 프랑스 제5공화국 최초로 동거정부 총리가 되어 처음으로 내정에 실권을 가진 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비슷한 시기에 전방위적 민영화를 추진했던 마가렛 대처도 못한 공영방송을 민영화하는 등 강경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와[8] 지지율이 엄청나게 떨어졌고, 1988년 대선에서 좌파 후보 프랑수아 미테랑한테 대패하였다.[9]

이후 와신상담을 노리다가 1995년 대선에서 같은 우파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를 제치고 2위(1위는 프랑스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를 차지하면서 결선투표에 진출하였고, 2차 선거에서 예상보다는 득표차가 적게 나왔지만 좌파의 대표 조스팽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때는 총리 시절과 달리 사회격차의 해소와 지도주의적 노선에 기반한 경제정책을 내세우면서,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앵글로색슨 초자유주의(Anglo-Saxon ultraliberalism)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샤를 드 골처럼 분위기 반전을 위해 1997년에 조기총선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좌파가 대거 승리하면서 죠스팽이 총리가 되었고 우파가 원내 제2당으로 전락하며 시라크는 실권을 잃게 되었다.[10] 이후 프랑스 국민의회의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를 맞추고, 선거 시기를 일치시켜 동거정부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 프랑스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 임기를 기존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5년간 외교에만 전념하다 2002년 대선에서 총리 시절의 경제정책에 힘 입은 죠스팽과 접전을 벌였다. 예상대로 시라크는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는데, 좌파 후보들의 난립으로 좌파성향 유권자들의 표가 분산되면서 죠스팽이 3위로 밀려나고 극우파인 국민전선 장마리 르펜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벌어졌다. 결국 결선투표에선 중도파와 좌파들까지 오로지 르펜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시라크에 몰표를 던지면서 압도적인 득표율(역대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더 자세한건 2002 프랑스 대선 참고.) 직후 이어진 2002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도 우파 연합이 승리하여, 대통령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여기에 여세를 몰아 3선까지 도전하고자 했으나 너무 많은 나이가 걸림돌로 작용하였다.[11] 특히나 2005년에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유럽헌법안이 부결되면서 레임덕이 극심하게와 결국 2007년도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이후 니콜라 사르코지 당선자에게[12] 대통령직을 넘기면서 재임 12년만에 퇴임하였다.

퇴임 후 4년만에 과거 파리 시장으로 재직 당시 측근 28명을 시청 직원인 것처럼 위장해 월급을 준 혐의로 기소돼 파리 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TF1과 유착 의혹을 받기도 했다. 1987년 TF1을 기업 부이그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민영화한 장본인이 바로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 본인이었기 때문. 그래서인지 TF1은 한동안 자크 시라크를 적극 지지하는 논조를 펼쳤다고 한다.

2014년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2014년도의 모습을 보면 이미 이 시점부터는 그렇게 건강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2.1. 사망








2019년 9월 26일 목요일에 프랑스 파리 6구에서 사망했다고 부인이 밝혔다. 프랑스 상하원에서는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시라크 전 대통령을 '자유롭고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추모하였다. 이외 국민연합 마린 르펜, 불굴의 프랑스 장 뤽 멜랑숑 등 생전 그의 정적이었던 정치인들 역시 애도를 보탰다.

30일. 파리의 생 쉴피스 성당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원래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이뤄지나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아직 복구 중인 상황이라 시라크 전 대통령의 자택 근처인 생 쉴피스 성당에서 국장이 치러지게 됐다.

이 날을 '국가애도의 날'로 선포했고 학교나 공공시설에서도 1분간의 추모 묵념이 진행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전현직 세계 정상들도 참석했다.

유해는 지난 2016년 사망한 딸 로랑스가 묻혀 있는 파리 남부 몽파르나스 묘지에 가족장 형식으로 안장된다.

사망 이후 평가가 높아지고 있는 편인데, 후임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고만고만하게 평가가 좋지 않은 탓[13]에 프랑스 정치권의 마지막 거인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키도 크다.

3. 기타

러시아 대조국공훈훈장 1급 수훈자이다.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적 위치가 우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본인의 말처럼 나름 반성하는 모습을 꽤 보여주었다. 물론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한 사죄는 없었지만,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무려 100년만에 공식적으로 당시 정부와 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또한 비시 정부에서 일했던 과거가 있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 2차 대전 시기 비시 정부의 홀로코스트 사건이었던 '벨디브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정부 사과를 거부했던데 반해, 시라크는 집권하자마자 바로 '벨디브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외규장각 문제에서도 반환에 회의적이던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한국 측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2002년 프랑스 혁명 기념식 당시 개선문 앞에서 사열행사를 하던 중, 극우파 청년단체 소속인 막심 브뤼네리에게 암살당할 뻔한 적이 있다. 당시 막심은 40~5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22구경 소총을 발사했으나, 초탄이 불발된 뒤 곧바로 군중과 경찰에 의해 제압당하면서 시라크는 암살을 피할 수 있었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을 당시 상황과 비슷해서 유럽 사회에서 한동안 큰 충격을 몰고 왔다.[14]

히로시마 원폭 투하 50주년을 태평양 핵실험으로 기념해 1996년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여성 편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테랑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엄청난 여성 편력을 자랑한다. ' 샤워 포함 5분'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파리시장 재임 시절부터 숱한 여성들과의 염문을 뿌리는 등 역대 프랑스 대통령의 화려한 사생활 계보를 충실히 이어나갔다. 개인의 자유를 신봉하는 프랑스인들은 대통령의 사생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정적인 미테랑이 시라크의 애인을 가로챘다는 낭설도 퍼졌을 만큼 두 사람은 정계 밖에서도 치열한 대결을 벌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미테랑과 시라크는 누가 더 많은 애인을 갖는지 경쟁을 벌였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 시라크는 훗날 '비밀로 간직한 애인이 많이 있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일본 문화 좋아했다고 알려져있는데, 특히 스모 굉장히 좋아하는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예 반려견 이름을 '스모(Sumo)'라고 짓고 스모를 비하 니콜라 사르코지와 말싸움을 할 정도였다.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회고하길 둘이 만날때마다 시라크가 스모와 일본 문화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의 화려한 여성 편력과 맞물려 공교롭게도 일본인과의 사이에 혼외자가 있다는 유력한 설까지 계속 흘러 나왔다. 실제 시라크는 거액이 예치된 일본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혼외자인 딸과 함께 생활하기 위한 자금이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한편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을 본받으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

NATO 사무총장인 영국의 조지 로버트슨(George Robertson)의 권유로 해기스를 먹었고 이후 2005년 G8 정상회의에 앞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러.독.프 정상회담에서 "영국이 유럽 농업에 기여한 것은 광우병 밖에 없다. 음식이 형편없는 나라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면서 영국 요리 영국인들을 싸잡아 비난해 버리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바 있다.[15] 이 당시 영국이 유럽연합(EU) 헌법, 예산안, 공동 농업정책, 이라크 전쟁, 2012 올림픽 유치 등 주요 현안에서 사사건건 프랑스의 발목을 잡고 있어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당연히 영국인들과 영국 언론은 그의 발언을 크게 비난했다. 이것도 모자라 동시에 " 핀란드 다음으로 영국 음식 형편없다"고 발언해 가만히 있던 핀란드의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 - 1962 -
1962 - 1968 -
1968 - 1976 -
1976 - 2002 -
2002 - 2007 -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수 (득표율) 2차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67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3구 15,289 (42.81%) 18,522 (50.74%) 당선 (1위) 초선[16]
1968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19,593 (54.37%) - 당선 (1위) 재선[17]
1973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19,667 (51.73%) 당선 (1위) 3선[18]
1977 프랑스 지방 선거 파리 222,395 (26.12%) 394,628 (49.54%) 당선 (1위) 초선
1978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3구 23,616 (54.29%) - 당선 (1위) 4선
1981 프랑스 대통령 선거 프랑스 5,225,848 (18.00%) 낙선 [19]
1981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3구 20,466 (50.60%) 당선 (1위) 5선
1983 프랑스 지방 선거 파리 526,101 (61.59%) 68,525 (51.65%) 당선 (1위) 재선
1986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 -[20] 당선 (1번) 6선
1988 프랑스 대통령 선거 프랑스 6,063,514 (19.94%) 14,218,970 (45.98%) 낙선 (2위) [21]
1988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3구 27,375 (58.05%) - 당선 (1위) 7선
1989 프랑스 지방 선거 파리 369,231 (53.60%) 169,625 (51.35%) 당선 (1위) 3선
1993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코레즈 3구 25,951 (60.68%) - 당선 (1위) 8선
1995 프랑스 대통령 선거 프랑스 6,348,375 (20.84%) 15,763,027 (52.64%) 당선 (1위) 초선[22]
2002 프랑스 대통령 선거 5,665,855 (19.88%) 25,537,956 (82.21%) 당선 (1위) 재선

보다보면 국회의원(하원)과 파리시장 경력이 동시에 적혀있는데, 이는 한때 프랑스에선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겸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총리직도 겸임이 가능해서 1986년엔 프랑스의 하원의원 겸 파리시장 겸 국무총리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지금은 법 개정으로 겸직이 불가능하다.[23]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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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55A4>생애 <colbgcolor=#fff,#1f2023> 생애 및 정치 경력
역대 선거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198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관련 정치인 프랑수아 미테랑 ·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 리오넬 조스팽 · 장마리 르펜 · 니콜라 사르코지
기타 대중운동연합 · 위대한 프랑스인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 }}}}}}}}}


[1] 동거정부 [2] 안도라 공동 영주 겸임. [3] 1898 ~ 1968. [4] 좌우파를 막론하고 프랑스 정치인들의 전형적인 코스이다. 그랑제콜 인맥들의 고위직 독점과 엘리트주의는 프랑스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5] 반대로 전임 대통령(이자 시라크가 총리 시절 상관)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젋었을 적엔 극우였다가 후에 좌파로 전향하였다. [6] 하기야 미테랑의 경우도 좌파 정치인이었지만, 핵실험 반대 시위를 하는 그린피스 선단을 공격시켜 사망자까지 나오게 하는 등 우파적인 면모도 있었다. [7] 그 이전까지는 파리시장직이 오랜 시간 동안 폐지된 상태였다. [8] 미테랑은 본인은 (상대적으로 사고 날 일이 적고 본인의 권한 내에 있는) 외정 관련에만 집중하면서 이미지를 관리했고, 내정 관련으로는 시라크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게 두어서 안 좋은 건 시라크에게 죄다 떠민 측면도 있었다. [9] 시라크도 산전수전 다 겪은 구렁이과 정치인이었다지만, 미테랑에겐 유독 약했다. 1988년 대선 당시에도 TV 토론장에서 기선 제압을 하겠다고 "지금 우리는 대통령과 총리가 아닙니다. 당신과 나는 대등한 후보로 이 자리에 나와서 유권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미테랑 씨로 부르겠습니다."라고 선빵을 날렸다가 미테랑이 당신 말이 맞소, 총리!(Vous avez tout à fait raison M. le Premier Ministre)라고 반격하는 바람에 본전도 못 찾은 게 대표적. [10] 이런 상황은 프랑수아 미테랑 시절부터 문제가 되어왔는데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때까지만 해도 항상 보수쪽에서 대통령과 의석과반을 동시에 차지해 문제가 없었으나, 1986년에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 미테랑과 우파 총리 시라크로 이루어진 좌우동거 정부가 탄생하게 되면서 정치계의 고민이 깊어졌다. 미테랑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당 중진을 총리로 임명하려 했지만, 문제는 여소야대라는 특성상 범우파가 불신임안을 던지면 삼일천하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테랑은 우파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했고, 각료 선임을 비롯한 내치의 전권을 시라크에게 넘겨주었지만, 핵발사권 등 군사, 외교 분야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 선언하면서 국방장관와 외무장관의 임명권을 행사했다. 이후 이것이 일종의 규칙이 되었다. [11] 임기 말에는 고령으로 인해 보청기를 착용한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는데, 대통령실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만큼 고령에 의한 건강 관련 우려가 많았다. [12] 원래는 시라크의 정치적 제자였으나, 1995년 대선에서 에두아르 발라뒤르 후보를 지지하면서 시라크의 눈밖에 났고, 1997년 총선에서 낙선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후 시라크의 영원한 오른팔 알랭 쥐페 전 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선거권을 박탈당하면서 어부지리로 UDF 후보 자리를 따냈지만, 시라크는 1995년의 배신감이 가시지 않았는지 이후에도 2012년 대선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2017년 대선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지지를 선언하며 대놓고 사르코지를 골탕먹였다. [13] 니콜라 사르코지는 부패, 프랑수아 올랑드는 무능으로 재선 도전에 실패했고, 에마뉘엘 마크롱은 극우 진영의 집권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중도좌·우파의 선택받아 재선에 성공했지만 국민적 인기는 높지 않다. [14] 20년 뒤 발생한 아베 신조 피살 사건에서 경호의 실패로 아베가 끝내 암살당하자 이 사건이 잠시 재조명되기도 했다. 아베 역시 초탄이 불발됐지만 경호원들이 총격범을 제대로 제지하지 않고 어리둥절하는 사이 총격범이 발사한 2번째 탄에 맞아 사망했기 때문이다. [15] 물론 이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마이크가 꺼진 줄알고 저지른 일종의 뒷담화였으나 마이크가 켜져있는 바람에 그대로 언론에 노출이 되고 말았다. [16] 1967. 5. 7. 고용담당 장관 임명으로 사퇴 [17] 1968. 8. 12. 장관 임명으로 사퇴 [18] 1973. 5. 6. 장관 임명으로 사퇴 [19] 1차 투표 3위 [20] 비례대표제 [21] 1차 투표 2위, 2차 투표 2위 [22] 1차 투표 2위, 2차 투표 1위 [23] 국회의원-총리직 겸임은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