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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9-02 12:50:28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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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스운 것은 유지현은 이미 선수협 창설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변해 있어서 강경찬성 쪽이었던 김재현을 일부러 대의원장에 왕따시키며 데려오지 않았다는 거다. 쉽게 얘기해서 대충 쇼만 하고 돌아갈 셈이었는데, 김기태가 오해해 다툼이 일어난 것. [2] 그것도 비중이 적은 캐피탈원컵에서 후반전 막판에 교체출전. [3] 단, 히딩크가 PSV 감독을 한 시기가 반 갈이 아약스 감독을 한 시기보다 앞서서 네덜란드 리그에서 반 할이 코치하던 시절에는 붙긴 했지만, PSV 감독 대 아약스 감독으로 직접 맞붙은 적은 없다. 나중에 반 할이 AZ 알크마르 감독으로는 맞붙긴 했지만... [4] 안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 시절 히딩크는 구단 고위층이랑도 불화가 있었고, 성적도 안 좋았던 판국에 루이스 피구의 활약에 의해 바르셀로나에 엘 클라시코에서 3-0으로 완패했고, 이 패배가 결정적 도화선이 되어 결국 레알 마드리드에서 경질되었다. 근데 그 피구는 결국... [5] 어게인 2002 - 모두의 추억 웹툰에 의하면 폴란드전에서 히딩크호가 첫 승을 거둔 후 차범근 당시 MBC 해설위원 선물했는데, 히딩크는 전 대회에서의 일 때문에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유럽에서는 전임자와 현임자끼리 성적 때문에 사이가 안 좋을 가능성이 높은 게 부지기수라고 했는데, 히딩크의 오산이었다고 한다. 링크. [6] 이때는 네덜란드 리그의 위상이 그리 낮지 않았다. 요한 크루이프 아약스 유럽을 호령하던 시절이었으니... [7] 물론 기사의 신뢰성은 의심스럽지만, 허정무도 본인 자서전 '도전하는 이는 두려워하지 않는다'에서 독일로 갔을 시 차범근을 만나지 못한 일에 대해 우회적으로 적었던 일이 있었다. [8] 친(親)무리뉴 파인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사비 알론소, 알바로 아르벨로아 등과 대립했다. [9] 그 와중에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준우승하기는 하였지만, 이것도 도메네크의 공이라기보다는 지네딘 지단 덕이었다. 이후 지단이 은퇴한 이후에 치른 첫 메이저 대회인 UEFA 유로 2008에서 1무 2패로 광탈하는 끔찍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고, 이후 남아공 월드컵에서 더 큰 문제가 터지고 만다. [10] 사실 황선홍은 부산 - 포항 감독 시절부터 외국인 선수 활용에 문제점이 많았다. 그나마 부산 시절에는 초보 감독에 팀 자체가 중하위권 전력이어서 크게 이슈화된 건 없었고, 포항 시절에는 2013 시즌에 외국인 없이도 K리그와 FA컵 우승을 하는가 하면 포스코가 재정난으로 악화된 상황에서도 ACL 진출 경쟁을 하였기에 묻혔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아드리아노를 시작으로 데얀 오스마르가 다 떠나자 성적도 부진하기 시작하면서 그 문제점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11] 물론 부진하자 다시 원래 번호를 썼다. [12] 정확히는 현주엽 본인이 공개한 것은 아니고, 스피커폰으로 얘기하고 있던 것을 근처의 구단 직원이 녹취한 것이다. 결국 상벌 위원회까지 넘어갔지만, 불법 녹취와 증거 불충분으로 김종규는 무혐의로 처분되었다. [13] 당시 계약금은 첫해에는 당시 최고액인 12억 6천 900만원에서 43.65% 감액한 7억 1천만원으로 계약했다. [14] 정확히는 이정현이 본인에게 파울이 불린줄 알고 항의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이에 이관희가 '왜 니가 화를 내!'라는 의미로 밀친거라 봐야한다. [15] 사족으로, 이관희는 본인의 연대 출신 후배 선수 전준범과도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이정현은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넜다면, 전준범과의 관계는 마냥 나쁘지는 않다. [16] 이 후 김광은 15개월 출장정지 및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17] 하지만 현역 시절의 악연과는 별개로 지도자 시절은 김광 코치가 허재 감독을 잘 보좌했다. [18] 샤킬 오닐을 넣느냐 마느냐 차이. [19] 두 선수는 서로에 대한 악의나 적대감은 없으나 두 번의 맞대결 당시 대학에선 유잉이, 프로에선 올라주원이 승리했다. 다만 이 장면이 어색한건 역대급 센터 둘이 원클럽맨으로 남지 못하고 은퇴를 1~2년 남겨두고 이적을 해야했다는 것. 올라주원은 팀과 재계약 협상 당시 에이전트 댄 페건과 팀 프런트 사이 생각하는 금액이 안 맞아서 토론토와 계약, 유잉은 계약이 1년 남았으나 자신을 먹튀 취급하는 언론과 팬들 극성에 못 이겨 스스로 트래이드 신청을 했다.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스캇 레이든 단장은 오히려 유잉을 만류했다고 한다. 사실 유잉처럼 규모가 큰 만기계약자는 계약이 끝나는 즉시 샐러리캡 여유가 대량으로 생기므로 데리고 있어도 괜찮다. 실제로 유잉 트래이드로 얻은 선수들은 거의 도움도 안됐고) 올라주원은 토론토에서 1년, 유잉은 시애틀에서 1년, 올랜도에서 1년 뛰고 은퇴했는데, 두 선수의 원클럽맨 이력을 날려버린 저 1~2년이 커리어에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는 것 때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20] 반면 LG로 이적한 현주엽은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 기량이 떨어졌고, 2009년에 은퇴했다. [21] 최근에 서봉수 九단이 조 국수는 내 바둑의 은인이라 인터뷰에서 밝히고 조훈현 九단도 전술한 자서전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서 그가 있었기에 내 바둑은 발전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평하면서 악감정은 털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단 경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서로가 거리는 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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