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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01:10:54

레몽 도메네크

레몽 도메네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파일:France FFF 2010.png

25대
클럽
파일:올랭피크 리옹 엠블럼.svg

16대
}}} ||
프랑스의 축구감독
파일:external/static.guim.co.uk/Raymond-Domenech-006.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레몽 도메네크
Raymond Domenech
출생 1952년 1월 24일 ([age(1952-01-24)]세)
프랑스 공화국 오베르뉴론알프지방 리옹대도시권 리옹주 리옹시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올랭피크 리옹 (1969~1977)
RC 스트라스부르 (1977~1981)
파리 생제르맹 FC (1981~1982)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82~1984)
FC 뮐루즈 (1984~1985)
감독 FC 뮐루즈 (1985~1989)
올랭피크 리옹 (1989~1993)
프랑스 U-21 대표팀 (1993~2004)
프랑스 대표팀 (2004~2010)
AC 불로뉴비양쿠르 (2010~2020 / 유소년 코디네이터)
FC 낭트 (2020~2021)
국가대표 8경기 ( 프랑스 / 1973~1979)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3.1.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3.1.1. 도메네크의 프랑스는 왜 실패했나?
3.2. 프랑스 대표팀 이후
4. 기행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축구선수 출신 감독으로 2004년부터 6년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2006 FIFA 월드컵 독일 준우승을 이끌며 장기집권했으나 납득이 가지 않는 기행과 선수 기용으로 이후 선수들끼리 내분을 일으키며 프랑스를 역대 최악의 팀으로 이끈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2. 선수 경력

파일:Raymond_Domenech_en_1976_(O._lyonnais).jpg
리옹 출신인 도메네크는 1969년 올림피크 리옹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7년 동안 측면 수비수로 활약해 1977년 RC 스트라스부르에서 1981년까지 뛴다. 이후 PSG를 거쳐 1984년 FC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감독 경력

3.1.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프랑스 축구 연맹에서 장기적으로 육성한 전술가로, 1993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넘게 프랑스 21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맡아왔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2006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자, 은퇴했던 황금 세대 멤버들인 지네딘 지단 클로드 마켈렐레, 릴리앙 튀랑 셋을 다시 국가대표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국대를 재정비한 결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뤄내며 커리어 하이를 찍는다. 하지만 이러한 호성적조차도 그나마 지단이 있었기에 이뤄낸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이론상으로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여겨졌지만, 막상 실제 경기에 나오면 영 별로였던 비에라 - 마켈렐레의 중원 라인을 완성시킨 성과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시선들이 있다.

하지만 지단이 다시 은퇴하고 난 첫 메이저 대회인 UEFA 유로 2008에서는 졸전을 벌이며 1무 2패, 최종 순위 15위로 대회 꼴찌 그리스를 겨우 제친 치욕적인 광탈을 당했다. 그나마 만만한 상대로 꼽히던 루마니아와 무득점 무재배, 네덜란드한테는 1-4로 아예 떡실신을 당해버리면서 1무 1패.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전 대패와 루마니아전 무승부가 된 이탈리아와의 최종전마저 패하면서 결국 광탈했다. 물론 죽음의 조여서 그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런 의견조차도 소수. 게다가 경기 종료 후 팀이 탈락했음에도 후술할 연인 에스텔 드니에게 고백을 하는 인터뷰를 하며 도메네크를 경질하자는 여론이 거세졌지만, 어떻게 유임되어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계속 대표팀을 이끌게 되었다.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세르비아에 밀려 2위를 함으로써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고, 아일랜드전에서 그 유명한 티에리 앙리의 핸드볼 파울로 겨우 1승 1무를 거두어 진출한다.

일명 신의 손 사건으로 인해 아일랜드를 꺾고 월드컵 본선에 오른 프랑스 대표팀과 티에리 앙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아일랜드는 재경기를 요구했으나, FIFA는 아일랜드를 인정할 경우 다른 나라들이 추가로 항소할 수 있으니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1]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되면서 톱시드를 놓친 관계로 1순위에 있는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등과 엮여 죽음의 조가 탄생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천운이 있었는지 추첨 결과 남아공, 멕시코, 우루과이 A조에 속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반응은 이미 16강. 그냥 징크스의 상대인 우루과이와 가볍게 비겨주고[2], 상대전적에서 몹시 앞서는 멕시코에, 홈팀에 개최국이라지만 1시드 중 사실상 최약체인 남아공을 이기면 16강은 당연히 가볍게 올라갈 수 있었다.[3]

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탑시드인 조에 편성되고 미국, 폴란드라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딸리는 편에 속하는 나라들과 한 조를 먹어 실질적인 탑시드라면서 조별본선 통과는 기정사실이라며 설레발을 치던 당시 포르투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4]

행운의 조 편성으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상황이었지만, 프랑스 대표팀은 월드컵을 앞둔 친선경기에서 아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조차도 진출하지 못한 중국 0:1로 패배한다. 패배도 패배지만, 경기 내용도 심히 절망적이었는데, 이 경기를 계기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뭔가 프랑스가 혹시 광탈하지 않을까 예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후술할 불화와 팀 내분으로 삐걱거린 프랑스는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명이 퇴장당한 우루과이를 상대로 0:0 무승부에 그쳤다.[5] 우루과이도 강팀이라고는 하나, 오히려 한 명 퇴장당한 팀을 상대로 무재배로 경기를 끝낸 프랑스는 이와 같이 막장스러운 경기력으로 프랑스가 독주할 거라는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A조를 혼돈으로 몰아넣는다. 이러다간 콩가루 같은 2006년의 토고가 재현될 것 같다는 평을 받았다.[6]

2차전 멕시코전은 프랑크 리베리, 니콜라 아넬카 등의 염원(?)대로 요앙 구르퀴프가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고 리베리가 공미를 맡았지만, 우루과이전보다도 못한 한심한 경기력으로 0-2으로 패배하면서 토너먼트 진출에 암운이 끼였다.[7]

마지막 3차전에서 프랑스는 남아공을 100-0으로 이겨도 만일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무재배라도 하면 16강에 진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8] 그 실낱같은 가능성마저도 승리 이후에나 기대해 볼 만한 것이었지만, 정작 프랑스는 승리할 가능성 자체가 굉장히 회의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6월 22일, 남아공과의 마지막 3차전 경기가 벌어졌고, 선발 출장한 구르퀴프가 전반 24분 만에 퇴장당해[9] 이어 전반에만 2골을 먹히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다. 후반 24분에 플로랑 말루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그게 전부였다.[10]

결국 도메네크의 프랑스는 모래알 조직력으로 A조 최약체임을 인증하면서 조기에 짐 싸는 걸 확정지었고, 남아공은 비록 멕시코에 골득실에서 밀려서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비운의 월드컵 개최국이 되긴 했지만, 프랑스에게 1승을 거두면서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실제로 남아공 국내의 여론에서도 "그래도 잘 싸웠다"처럼 호평을 받았다.[11]

그야말로 남아공 쇼크. 결국 프랑스 대표팀은 1무 2패, 1득점 4실점[12] 악몽같은 성적표를 쥔 채 일찌감치 파리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프랑스 축구 연맹당신들은 비즈니스 탈 자격도 없다며 광탈의 책임을 물어 귀국행 비행기 좌석들을 그 악명높은 에어 프랑스 B777 3-4-3 배열인 이코노미로 끊었다.
파일:남아공쇼크청문회.jpg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광탈의 원흉인 도메네크와 사임을 하기로 한 에스칼레트 프랑스 축구 연맹 회장은 나란히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대표팀의 분열 원인과 참패 원인을 소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국회에서 감독은 언론 탓, 회장은 선수 탓을 하면서 버티다가 국회의원들에게 신나게 까였다. FIFA"정치계가 축구에 개입하면 안 된다"라며 청문회를 연 것을 비판했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내부 사정이니 끼어들지 말라"며 FIFA의 요구를 씹었다.

이 최악의 사태는 FIFA 랭킹에까지도 그대로 악영향을 끼쳤다. 2010년 7월 FIFA 랭킹에서 프랑스는 동년 5월과 비교해[13] 무려 154점이나 깎이며 9위에서 21위로 12계단이나 미끄러진 것이다. 177점이나 깎이며 19위에서 40위로까지 미끄러져버린 카메룬보다는 그래도 사정은 낫지만, 항상 거의 최상위권을 지켜온 프랑스에 이는 매우 큰 치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결국 2010 월드컵에서 그 동안 쌓여왔던 프랑스 대표팀들의 문제들이 몽땅 폭발하면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채 남아공 월드컵을 끝으로 도메네크는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3.1.1. 도메네크의 프랑스는 왜 실패했나?

우선 실패의 원인으로 도메네크의 무능이 컸다. UEFA 유로 2008에서 보인 졸전과 기행으로 프랑스 축구 팬들의 경질 여론이 높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 준우승 덕분에 도메네크 감독의 생명은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14] 즉, 월드컵에 임하기 전부터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였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도메네크 감독이 범한 최악의 실책은 바로 선수단 장악 실패였다. 사실 도메네크 감독과 프랑스 선수들의 반목과 갈등은 그 역사가 꽤나 길다. 이미 2004년에 감독에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아스날 FC의 무패우승을 이끄는 등 전성기였던 로베르 피레스를 죽어도 쓰지 않으며 갈등을 빚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감독과 지단의 불화, 선수들 간의 갈등은 프랑스 언론의 주요 이슈였다. 그저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 덕분에 묻힌 것일 뿐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도 전혀 놀랍지도 않은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선수단 구성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였다. AS 로마의 더블 러너업을 이끈 멕세[15]도 없고, 세리에 3대 골키퍼 프레이도 일치감치 빠져버렸다. 물론 저 둘은 유로 2008 때 아주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긴 했지만,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펼치는 졸전을 볼 때 과연 멕세와 프레이가 문제였을까? 그나마 빛났던 다비드 트레제게도 끊임없는 갈등 끝에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나름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베테랑 파트리크 비에라는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무시했다. 아스날 FC에서 나름대로 멋진 활약을 보여준 사미르 나스리는 대표팀 내의 내분 탓에 선발되지도 못했다.

이런 도메네크 감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 수준이라,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 선발 시 선수의 별자리를 고려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도메네크 감독은 별자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보니 2006 월드컵 때도 컨디션이 좋았던 로베르 피레스 루도빅 지울리, 요앙 미쿠를 뽑지 않은 이유가 단지 별자리가 좋지 않아서다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 내용은 언론에서 약간 과장한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들과 불화가 심했다는 것은 사실이다.[16]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내분은 위험 수준이었다. 트레제게[17]와 프레이는 대놓고 빠지기로 하고 아스날 FC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사미르 나스리는 뽑히지도 않았는데, 윌리엄 갈라스, 프랑크 리베리와의 불화 탓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당시 대표팀에 소속되어 있는 요앙 구르퀴프[18], 시드니 고부[19], 프랑크 리베리[20], 마티유 발부에나[21], 아부 디아비[22], 니콜라 아넬카[23] 등은 서로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였다.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사미르 나스리, 카림 벤제마, 아템 벤 아르파의 경우 실력보다는 불화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서 안 뽑힌거라는 말도 있었다. 셋은 청소년 대표 동기인데, 나스리와 벤제마는 프랑스 리그 시절 라이벌 팀인 마르세유 리옹 출신임에도 서로 친하다. 반대로 벤 아르파는 나스리랑도 안 친하고, 벤제마와의 경우 리옹 시절 동료였음에도 사이가 나빴다. 그 탓인지 리옹은 벤 아르파를 마르세유로 이적시켰다. 청대 시절에는 아부 디아비와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기도 했다.

특히 구르퀴프가 프랑스 국대 내에서 이른바 왕따당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구르퀴프가 좀 튀는 성격이라[24] 아넬카 등을 두고 비판을 하였다가 역으로 본인이 비판을 받게 되고 이에 사과까지 했지만, 아넬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따를 주도했으며[25] 여기에 리베리, 발부에나, 갈라스 등이 합세하여 구르퀴프를 비난하고 그러다보니 좋든 싫든 옆에 있던 나머지들도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 해외파들의 국내파(특히 보르도) 무시, 여기에 도메네크의 총애까지 겹쳐진 탓에 구르퀴프는 소속팀 보르도의 라이벌인 리옹 소속의 제레미 툴랄랑하고만 같이 말을 트고 훈련도 했다고 한다.[26] 2022년까지 프랑스 대표팀 주장이었던 위고 요리스도 구르퀴프, 툴랄랑과 절친이다.

상황이 얼마나 개막장이었느냐면 이를 말려야 할 주장 파트리스 에브라조차도 "구르퀴프랑 말하려면 툴랄랑하고 해라!"라고 하였을 정도. 왜 툴랄랑만이 구르퀴프를 왕따시키는 것에 동참하지 않을 수 있었냐면 툴랄랑이 전직 복싱선수인지라 아무리 성격 안 좋은 아넬카라도 어떻게 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원래 구르퀴프와 친했다. 어쨌건 구르퀴프가 라이벌 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준 덕에 툴랄랑의 주가만 상승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후 구르퀴프가 리옹으로 이적하여 둘은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문제는 왕따 사건의 주범인 발부에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그 이후 FC 디나모 모스크바로 줄행랑 치듯이 이적했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때는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2006년에도 프랑스는 국내파와 해외파의 갈등이 강했지만, 그나마 카리스마 있는 지단이 있었기에 그를 중심으로 뭉쳐 준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단이 은퇴한 유로 2008 때부터 영건들인 카림 벤제마, 나스리와 고참인 클로드 마켈렐레, 갈라스 등의 갈등이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월드컵 시점에선 손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멕시코와의 2차전 후, 프랑스의 주전 공격수인 아넬카는 월드컵 기간 도중에 팀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뉴스에 따르면 다른 선수들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패스도 하지 않으며[27] 도메네크 감독에게도 모욕적인 말[28]을 했다고 한다. 이후 아넬카는 대표팀 은퇴를 하게 되고 이 사건 이후 아넬카는 18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어차피 본인은 이 사건에 관계 없이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위의 사태에 관하여 에브라는 좀 사실이긴 한데, 이 사실이 누설된 것을 보아서 팀 내에 프랑스가 망하기를 원하는 배신자가 있다고 하였다.
에브라와 피트니스 코치가 말싸움하는 장면

이후에도 개막장스런 상황은 계속되어, 도메네크 감독과 코치 간 불화로 코치가 훈련장을 떠나고 선수들은 아넬카의 귀국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훈련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대표팀 단장은 사임했으며, 내분 수습을 위해 체육부 장관이 직접 도메네크 감독과 축구 협회장, 주장인 에브라를 만날 계획도 밝혔다. 그리고 체육부 장관에게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실제로 사르코지는 이 사건을 언급하며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단어까지 써갔다.

지브릴 시세 등 몇몇 선수들은 훈련거부에 동참한 것을 후회하면서[29] 훈련거부를 주도한 선수들( 파트리스 에브라, 프랑크 리베리, 윌리엄 갈라스 등)과 도메네크 감독을 화해시키려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에브라, 리베리, 갈라스, 아비달은 경기 출전조차 거부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니 이쯤되면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었다.

3.2. 프랑스 대표팀 이후

2018년 4월, 공석이었던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지원한 77명의 지원자 중 한명인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감독 자리는 클라렌스 세도르프가 차지하였다.

2020년 12월 23일, 당시 리그앙 15위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FC 낭트와 잔여시즌까지 계약했다. 프랑스 대표팀에서 물러난 후 약 10년 만에 현장 복귀인 셈. 그리고 여전히 특유의 말솜씨가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는데, 바로 얼마전 심장마비로 사망했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영입하려고 했는데 죽어버렸다고 하는 등 희대의 망언을 일삼았다. #

그러나 부임 후 8경기 동안 4무 4패를 기록하여, 결국 시즌 마무리도 채우지 못하고 2021년 2월 11일 경질되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를 사령탑으로 부를 팀은 없을 듯하다.

4. 기행

선수 기용과 운용이 개판을 넘어 기괴한 수준이다. 그 기행이 너무 많아 문단으로 분리를 해서 설명해야 할 정도다.

일단 2003-04 시즌 아스날 FC의 무패 우승을 이끌며 최전성기를 보내던 로베르 피레스를 죽어도 쓰지 않았다. 또한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미였던 요앙 미쿠 역시 배제되었다. 이 때문에 저 두 선수는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대표팀 경력이 완전히 끝났다. 하도 이해가 안 되는 행위라서 추측이 다양한데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저 두 선수가 "사자자리", "전갈자리"라서 안 뽑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전갈자리 사자자리를 매우 싫어하여 올랭피크 리옹 감독 시절에도 7명의 전갈자리 선수를 2명으로 정리한 이력이 있을 정도다. 이래서 별명이 점성술사.

FC 바르셀로나의 2005-06시즌 챔스 우승에 일조한 루도빅 지울리 에스텔 드니[30]가 도메네크의 여자친구인줄 모르고 작업을 건 사실 때문에 국가대표 커리어가 종료되었다.

이외에 다비드 트레제게, 필립 멕세, 세바스티앙 프레이와도 사이가 지독하게 좋지 않았다. 특히 유럽 최고급 골키퍼로 평가되던 프레이와 세리에 A 득점왕에 올랐던 트레제게는 2008년에 도메네크 때문에 그가 있는 한 국가대표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대표팀 은퇴 선언까지 했다.[31] 때문에 프레이는 A매치가 달랑 2경기 출전으로 끝. 멕세의 경우는 간간히 소집되다가 블랑 감독 체제 이후엔 부동의 주전 수비수로 승격했다.
반면 시드니 고부는 잘하던 못하던 무조건 국가대표로 소집해 '도메네크의 양아들'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이 개판 같은 운용이 결국 곪고 곪아서 터진 것이 남아공 쇼크. 항목을 읽다 보면 당시 도메네크의 지도력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알 수 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8061902194360006300-001.jpg
넌씨눈스러운 발언과 쓸데없는 도발로 욕을 먹기도 한다. 유로 2008 조별리그 광탈 후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이 순간 나의 계획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에스텔 드니와 결혼하는 것이다. 바로 오늘 저녁 그녀의 손을 잡고 청혼하겠다."라고 망언을 했다. 당연히 "여자친구 신경쓰느라 경기가 눈에 들어오긴 했겠느냐?"면서 죽도록 까였다.

여기에 더해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라는 말은 덤.

주제 무리뉴 감독에게도 "무리뉴는 주위를 도발해 왔지만 이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도발했다가 "나는 도메네크의 유로 2008 이후 기자회견을 듣고 눈물을 흘려버렸다. 그의 말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라며 역관광당하고 본전도 못 찾았다.

2015년 7월 5일 뜬금없이 맨유 더 이상 빅클럽 아니야. 토트넘과 다를 바 없는 맨유라고 맨유를 깠다.

그런데 하루 뒤에 같은 국적의 미드필더 모르간 슈네데를랭에게는 맨유로의 이적을 추천했다. 공교롭게도 슈네데를랭의 생일은 11월 8일. 즉, 전갈자리다.

2016년 1월 8일에는 지네딘 지단 레알 마드리드 CF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자 "지단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단은 이에 응수라도 하듯 불과 넉 달 뒤에 레알 마드리드의 11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듬해 챔스 개편 이후 최초로 2연패와 라리가 우승을 한 것도 모자라 2018년에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2016년 3월 20일에는 맨시티가 꿈에서도 PSG를 못 이긴다며 극딜했다. 그리고 맨시티가 이겼다.[32]

2017년 3월 9일에는 PSG와 바르셀로나의 챔스 16강 1차전을 시청한 이후 "메시는 끝났다."라며 유달리 혹평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말도 안되는 기적을 이뤄낸다. 메시는 2019년에 통산 6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호날두를 제친다. 2021년에는 오랜 숙원이었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이끌며 7번째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2022년에는 드디어 월드컵에서도 엄청난 활약으로 우승하고 대회 MVP를 수상하며 진정한 GOAT에 등극했다. 그리고 그 공을 인정받아 8번째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2021년에는 고인이 된 디에고 마라도나를 가지고 고인드립을 치는 정신나간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대체 프랑스 축구 협회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인간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고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번이나 뽑았는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하는 말마다 반대로 이뤄지는 통에 프랑스의 펠레가 될 지경이다. 그야말로 프랑스 축구 팬들에겐 금지어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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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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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FIFA가 이 사태를 덮기 위해서 아일랜드 축구협회에 거금의 뒷돈을 줬다는 말이 나왔다. [2] 우루과이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까지 2번이나 월드컵을 우승한 국가였지만 엄청 먼 과거의 이야기고, 1950년 이후로는 남미에서도 중위권 수준의 팀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게다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이후로 장장 12년 만에 진출하기는 하였지만, 프랑스와 함께 조별리그에서 광탈했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호주에게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렇다보니 2010년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승후보에는 아예 못 미치는 팀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더구나 2002년에 프랑스가 유일하게 패하지 않았던 상대가 우루과이였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우루과이도 승점자판기 정도로 보일 만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에는 불세출의 슈퍼스타가 등장했고, 승점자판기는커녕 4강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할 줄은 프랑스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3] 반대로 남아공은 톱시드인데도 왜 받아먹지를 못하니 급의 불운을 조 편성부터 맛보았다. [4] 다만, 포르투갈은 한국과 미국과 마지막 3차전까지 경합했다. 그 결과는 한국 7점 - 미국 4점 - 포르투갈 3점으로 광탈. 다만, 프랑스는 1무 2패로 승점 1점밖에 못 얻어 더 처참하게 탈락(대회 28위)했다. [5] 우루과이의 로데이로가 퇴장당했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는 탄탄한 우루과이에게 한참 밀리고 있었다. [6] 당장 프랑스 본인들이 직전 대회에서 이겼던 토고조차도 경기중에 서로를 불신하여 패스를 주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7] 특히 오프사이드 트랩이 삐끗해 치차리토를 자기네 진영에서 혼자 놀게 하다가 골까지 허용해버린 멍청한 장면은 정말 가관이었다. [8] 멕시코와 우루과이가 비기면 우루과이가 승점 5점에 골득실 +3, 멕시코가 승점 5점에 골득실 +2로 조별리그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둘이 1, 2위를 가져가버리니 끽해봐야 승점 4점인 프랑스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 [9] 당시 남아공의 미드필더 멕베스 시바야를 팔꿈치로 가격하였다. [10] 골이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패스플레이는 상당히 좋았다. 남아공 수비들이 아무리 집중해도 따라가지를 못했을 정도. [11] 상술했듯 남아공 입장에서는 개최국임에도 자기네들보다 강한 전력의 팀만 걸린, 그야말로 총체적 불운인 상황이었지만, 프랑스의 삽질 덕에 결과적으로는 프랑스 팀이 걸린 게 오히려 행운이 된 것이다. [12] 조 4위 월드컵 29위 [13] 2010년 6월은 FIFA 월드컵 본선 기간이라 FIFA 랭킹 업데이트가 없었다. [14] 사실 독일 월드컵 지역 예선 때부터 무재배를 많이 하는 등 엄청 고전하는 등 무언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본선 진출조차도 지네딘 지단과 같은 베테랑을 다시 불러서 가능했던 것. 그리고 그렇게 준우승을 거두고 돌아온 뒤 프랑스 대표팀 환영식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결승전 승부차기를 실축한 다비드 트레제게를 격려하며 사회적으로도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 도메네크 감독의 실책을 흐지부지 넘긴 것이 프랑스의 엄청난 실책이었다. [15] 다만, 멕세는 그 시즌에 폼이 급속히 떨어져 부르디소한테 주전 자리를 밀릴 정도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긴 했다. 물론 독일 월드컵 당시 멕세 대신 3B의 붐송을 뽑은 걸 보면 리그를 씹어먹었어도 안 뽑았을 것이다. [16] 물론 본인은 극구 부인하며 루머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언론들 또한 도메네크 감독에 우호적이지 않아서,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럴 바에는 지단을 다시 불러오는 게 낫다며 비판에 여념이 없었다. [17] 이미 유로 2008 때부터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18] 시드니 고부에 비해선 덜하긴 했지만 구르퀴프도 장점에 비해 보여주는 게 부족해서 너무 중용된다는 얘기도 많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동료들 사이에서 겉도는 바람에 국대에선 왕따였고 이게 월드컵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났다. [19] 특별한 장점이 보이지 않음에도 레몽 도메네크는 계속 그를 중용해서 혹시 양아들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20] 다른 국대 동료들과 함께 구르퀴프를 왕따시켰다. 사실 이때 리베리는 유독 국대나 팀에서 동료들에게 휩쓸리며 감정적으로 나오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뮌헨에서도 문제가 됐던 적이 있다. [21] 동료들과 구르퀴프의 왕따를 주도했으며 월드컵 이후 구르퀴프가 리옹으로 이적하자 도망치듯이 페네르바흐체 SK로 이적했다. 훗날 카림 벤제마에게 섹스 테이프가 유출당하며 금품을 목적으로 협박당하기도 했는데 왕따에 동참하며 팀 케미를 박살내던 선수가 오히려 협박 사건으로 피해자가 되며 어찌 보면 자업자득. 물론 벤제마는 이 사건으로 국대에서 제명당하고 2021년에 복귀하지만 복귀해서도 감독과 선수들과 불화가 있었고 1년 후 쫓겨나듯 은퇴했다. [22] 청대 시절 아템 벤 아르파와 멱살 잡고 싸운 적이 있는데 그나마 국대에선 다른 선수들과 트러블은 크게 일으키진 않았다. 벤 아르파는 딴 선수들하고도 사이가 안 좋아서 국대에 얼마 뽑히지도 못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24세로 재능과 실력이 충분해 프랑스의 미래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평가받았으나 정작 이후에는 역대급 유리몸으로 변하며 실력은 여전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몸이였기에 2012년 이후 더 이상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다. [23] 아넬카는 트레제게 다음으로 티에리 앙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앙리 또한 아넬카의 이번 사태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참고로, 아넬카는 그가 뛰었던 거의 모든 소속팀에서 실력이라면 몰라도 성격 면에서 소인배적이고 이기적인데다 가족 때문에 돈도 많이 밝혀 팀에서 왕따당했음에도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24] 구르퀴프의 성격에 대해서는 너무 곱고 바르게 자라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 주된 평가인데, 물론 프랑스 대표팀 내에서라면 이것도 충분히 튀는 성격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경기력이 계속 부진한데도 중용되는지라 애초에 주위의 불만이 많았다. [25] 아넬카 본인이 레알 마드리드 시절 라울과 이에로의 주도로 왕따당한 사실은 잊고 있는 듯하다. [26] 축구 매니아들은 알겠지만, 툴랄랑은 권투를 배운 적이 있어 실제로 싸움을 상당히 잘한다. 그래서 프랑스 국대 선수들이 그를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다. [27] 아넬카는 실제로 다른 동료들, 특히 구르퀴프에게는 패스하는 꼴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같이 왕따를 하던 리베리는 백패스라도 했고, 구르퀴프도 리베리에게 프리킥으로 패스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28] 도메네크의 인터뷰에 따르면 하프타임 라커룸에서 망할 팀 혼자 이끌어봐라고 했다고 한다. 이게 언론에 의해 과장되어 결국 아넬카는 출전정지를 먹고 월드컵 도중에 팀을 떠나며 사실상 퇴출되었다. [29] 구르퀴프, 요리스, 바카리 사냐 등은 즉석에서 반대하였지만 까일 뻔하고 데꿀멍하였다 한다. [30] 도메네크보다 25세 연하인 프랑스 방송 진행자이자 도메네크의 연인이었다. [31] 원래는 저 정도가 아니었지만, 트레제게가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지막 2번 키커로 나와 실축하면서 프랑스가 준우승을 했고, 이때부터 도메네크는 트레제게를 쓰지 않았다. [32] 심지어 2015-16시즌부터 PSG는 맨시티 상대로 1승 1무 4패로 압도적인 열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