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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Order | Victoria 3 버전 |
1. 플레이 가능 국가
1.1.
이탈리아 제국1.2.
이베리
아 연방
2. 플레이 불가능 국가1.2.1. 이베리아 전쟁
1.3.
부르군트 SS 기사단국1.4.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1.4.1. 오스트란트 내전
1.5.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1.6.
우크라이네 국가판무관부유럽이 망각을 향해 내려앉은 것은 영웅적인 사람들의 영광스러운 깃발 아래도 아니었고, 1940년대의 결과로 모든 서구 문명이 흉터지고 기형적으로 변질된 것은 세계의 진보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독일국이 프랑스, 러시아와 그 너머의 들판을 가로지르는 경멸스러운 정복에서 전해진 공포와 두려움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독일국은 그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원주민 정화를 실시하는 십여개의 유럽 괴뢰국의 주인으로써든, 아니면 아틀란트로파 계획의 실패 이후 처참해진 지중해의 자연으로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총통 아돌프 히틀러, "유럽의 주인"의 강철과 같은 심장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종속국의 친애도, 이웃국의 존경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독일의 남쪽은 트리움비라투스라는 거대한 반독일 동맹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상층부는 만족할 줄 모르는 제국의 급변하는 정치 풍토 속에서 정치적 쟁탈전을 벌이며 폐허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하는데 전념하고 있으며, 프랑코-살라자르 2인 독재의 관료 체제는 이베리아 연방 대중의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의 정복에 대한 터키인들의 분노에 찬 외침은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통의 국경에서 눈에 띄는 위협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연합 왕국 땅을 맴도는 반대의 폭풍의 조짐이 협력 정부의 두려움을 사고 있으며, 동쪽에서는 슬라브인, 폴란드인, 그리고 다른 소수민족들이 국가판무관부와 발칸반도에서 독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배권을 주장하는 협력 정부들과의 지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독일 독수리는 유럽 상공에서 높이 치솟았고 이 비행으로 인해 날개가 타버렸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총통의 서거가 임박함에 따라 라이히가 중상, 배신, 계승 경쟁의 온상이 된 와중, 그림자 국가는 서쪽에서 유럽 전역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며, 라이히의 실패에 환멸을 느끼며 그들 자신의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단국에게는 이 타락한 세상에 흔적을 남길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종속국의 친애도, 이웃국의 존경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독일의 남쪽은 트리움비라투스라는 거대한 반독일 동맹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상층부는 만족할 줄 모르는 제국의 급변하는 정치 풍토 속에서 정치적 쟁탈전을 벌이며 폐허가 된 유럽 경제를 재건하는데 전념하고 있으며, 프랑코-살라자르 2인 독재의 관료 체제는 이베리아 연방 대중의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의 정복에 대한 터키인들의 분노에 찬 외침은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통의 국경에서 눈에 띄는 위협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연합 왕국 땅을 맴도는 반대의 폭풍의 조짐이 협력 정부의 두려움을 사고 있으며, 동쪽에서는 슬라브인, 폴란드인, 그리고 다른 소수민족들이 국가판무관부와 발칸반도에서 독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배권을 주장하는 협력 정부들과의 지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독일 독수리는 유럽 상공에서 높이 치솟았고 이 비행으로 인해 날개가 타버렸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총통의 서거가 임박함에 따라 라이히가 중상, 배신, 계승 경쟁의 온상이 된 와중, 그림자 국가는 서쪽에서 유럽 전역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며, 라이히의 실패에 환멸을 느끼며 그들 자신의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단국에게는 이 타락한 세상에 흔적을 남길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1. 플레이 가능 국가
1.1. 이탈리아 제국
플레이 가능PW 리워크 예고[장기간][1]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창립국
- 집권이념: 파시즘( 국가 파시스트당)
- {{{#!folding 국민정신
-
감소하는 무역
팍트와의 관계 악화와 OFN과 공영권이 부과하는 무역 장벽으로 인해 지중해 이와의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다행히 트라움비라투스간의 교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에 무역이 완전히 망해버린 것은 아니며, 이탈리아령이 된 수에즈 운하를 통해서 인도양 시장으로도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5.00%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80.00%
전쟁 목표 정당화 시간: +55.0% -
쇠퇴하는 파시즘
이탈리아의 두체 갈레아초 치아노는 그의 장인 어른과 달리 전형적인 파시즘과는 멀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치아노가 정권을 개편해 스스로 권력을 분산할 것이라는 주장들을 불러왔습니다. 그 주장의 대부분은 헛소문이지만 이는 우리 정권의 점진적인 쇠퇴를 불러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5.00% -
부상하는 해군
최근 몇 년간 이탈리아 정부는 해군인 레지나 마리나에 집중했습니다. 지브롤터 댐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해군은 가지고 있는 대규모 함대를 계속 운용할 수 있도록 엄청난 양의 자금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어마어마한 해군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제국을 유지하는 열쇠입니다.
사단 훈련 시간: +20.0%
사단 조직력: -5.0%
소비재 공장: 5%
공장 생산량: -10.00%
조선소 생산량: +20.00% -
움베르토 2세
대전쟁에서 이탈리아를 영광으로 이끌고 과거 우리 국가가 입은 모욕에 복수한 선대 국왕 에마누엘레 3세의 아들 움베르토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능력있는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독일의 위협이 북부와 아드리아 해를 뒤덮는 상황에서도 그는 평화의 국왕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로 대중을 진정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파시스트당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은 미래에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5.00%
- {{{#!folding 플레이 요소
- 이탈리아에 민주주의라는 불길을 다시 한 번 살려 파시스트 독재를 끝내십시오.
- 개혁주의를 상대로 승리해 파시즘이 이탈리아를 영원히 꽉 잡도록 하십시오.
- 거대한 식민 제국을 운영하십시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운명이 당신에게 걸렸습니다.
- {{{#!folding 지휘관
- 안드레아 빌리오네 원수, 4, 4/4/3/2: 베르살리에리 출신 육군 장군. 현실에서는 장교 시절이었던 2차 대전 때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붙은 후 저항군에 들어가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전후 최종 직위는 국방참모총장 자리까지 승진.
- 엔리코 프라티니 원수, 4, 2/5/3/3: 공수부대 출신 육군 장군. 공수부대로 옮기기 전에는 공병 병과였다. 현실에서는 엘 알라메인 전투 당시 폴고레 공수사단을 지휘했으며 전후 연합군 남유럽 지상군 지휘관 자리까지 올랐다.
- 구이도 베도바토 원수, 4, 3/3/3/4
- 주세페 알로이아 원수, 3, 4/2/2/2
- 조반니 데 로렌초 장군, 4, 3/4/3/3: 독소전쟁에서 복무한 적도 있는 육군 장군. 육군 정보부서인 SIM의 수장이다. 현실에서는 카라비니에리 총사령관 자리와 육군 참모총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카라비니에리 총사령관 시절이던 1964년에 "피아노 솔로"라는 쿠데타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게임 내에서는 특정한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아노 솔로"를 벌여 긴급 정부를 세운다.
- 알베르토 리 고비 장군, 4, 6/1/5/3: 그리스 침공과 독소전쟁에 참전했던 육군 장군. 현실에서는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붙은 후 반독 저항군을 이끌으며 전후 NATO의 ACE 기동군 사령관 자리까지 올랐다.
- 마르코 비안코 장군, 3, 2/3/2/3: 카라비니에리 장군. 이탈리아어 위백에 따르면 열렬한 왕정 지지자로 현실에서는 왕정 폐지 당시 공화국에 맹세할 것을 거부해 카라비니에리 역사에서 지워졌다고 한다.
- 피에로 파리니 장군, 3, 4/1/3/2: 현실에서는 외교관이었지만 에티오피아 침공에 검은 셔츠단 소속으로 자원했던 인물로 그리스 침공 이후 이탈리아가 점령한 이오니아 제도를 다스렸다.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붙은 후 살로 공화국에 합류. 전후 몇 년 동안 감방에서 썩다가 남미로 이주했다.
- 주세페 '페피노' 팔룸보 장군, 3, 5/2/1/3: 육군 장군. 현실에서는 2차 대전 당시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원주민 부대를 지휘한 장교로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함락 이후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나 계속된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 이탈리아로 귀환했다. 전후 공수부대로 보직 변경.
- 피에트로 코르시니 장군, 3, 2/3/2/3
- 라파엘레 카카발레 장군, 3, 3/2/3/2: Raffaele Caccavale. 현실에서는 전후 샤르데나 척탄병 보병사단을 지휘했던 인물. 유고슬라비아 국경 지대에 위치한 제5군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 아드리아노 구에리에리 장군, 3, 2/2/3/3
- 알도 마그리 장군, 3, 2/2/3/3
- 알도 레세가 장군, 3, 3/2/2/3
- 안드레아 쿠치노 장군, 3, 1/2/2/5
- 안토니오 스카라무차 데 마르코 장군, 3, 4/2/3/3
- 아르코노발도 보나코르시 장군, 3, 3/2/3/2
- 엔리코 '마우리' 마르티니 장군, 3, 3/2/3/2
- 엔초 마르케시 장군, 3, 3/2/2/4
- 에르마코라 줄리아니 장군, 3, 5/1/4/1
- 프란코 마그나니 장군, 3, 3/3/2/2
- 주세페 이초 장군, 3, 3/2/2/3
- 주세페 만치넬리 장군, 3, 2/4/2/2
- 주세페 산토비토 장군, 3, 1/1/4/4
- 로렌초 발디타라 장군, 3, 3/3/2/2
- 티토 아고스티 장군, 3, 3/3/3/1
- 주세페 파브레 장군, 2, 2/3/1/1
- 클레멘테 프리미에리 장군, 2, 2/2/1/2
- 프란코 안지오니 장군, 2, 3/1/1/2
- 안드레아 바로니 장군, 2, 1/2/3/1
- 마르첼로 플로리아니 장군, 2, 1/2/2/2
- 에우제니오 람발디 장군, 2, 1/2/2/2
- 알베르토 리우치 장군, 2, 2/2/2/1
- 알도 비두소니 장군, 2, 3/1/1/2
- 카를로 보르사니 장군, 2, 2/2/1/2
- 카를로 칠리에리 장군, 2, 1/3/1/2
- 에치오 피스토티 장군, 2, 1/2/2/2: Ezio Pistotti. 현실에서는 1960년대에 프리울리 보병여단을 지휘했던 인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이게 다다. 초상화의 사진은 1958년 프랑스 제독인 피에르 바르조가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 해군부관으로 부임했을 때 찍은 기념 사진이다.
- 조반니 안노니 장군, 2, 1/1/2/3
- 이그니오 기셀리니 장군, 2, 1/1/2/3
- 레나토 리치 장군, 2, 2/1/2/2
- {{{#!folding 제독
- 주니오 발레리오 보르게제, 4, 4/3/2/4
- 아르투로 리카르디, 4, 1/1/1/1
- 풀비오 마르티니, 3, 3/1/3/3
- 루이지 파조니, 3, 2/2/3/3
- 지노 비린델리, 3, 3/3/2/2
- 안젤로 이아치노, 3, 4/1/2/3
- 로메오 올리바, 3, 1/1/1/1
- 마리오 팔란골라, 3, 1/1/1/1
- 페데리코 카를로 마르티넨고, 3, 3/4/2/1
- 지노 데 조르지, 2, 1/3/2/2
- 주세페 롬바르디, 2, 1/1/1/1
- 스타니슬라오 카라초티, 2, 1/1/1/1
- 라파엘레 데 코우르텐, 2, 1/1/1/1
- 비토리오 투르, 2, 1/1/1/1
- 로몰로 폴라치니, 2, 1/1/1/1
- 구이도 벤투로니, 1, 1/1/1/1
- 안젤로 파로나, 1, 1/1/1/1
- 브루토 브리보네시, 1, 1/1/1/1
- 【도입부 - 이탈리아 제국】
- >파시즘의 출생지, 예루살렘의 정복자, 아프리카의 뿔의 패권국, 수에즈의 영주, 제4의 세계 열강인 이탈리아 제국을 설명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그 모든 것을 무너뜨린 남자, 갈레아초 치아노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는 왕국에서 제국으로 부상했고, 영국인, 프랑스인, 알바니아인, 유고슬라비아인 모두의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가 얼마나 높이 부상할까 궁금해 했죠. 미국, 대독일국, 대일본제국의 신흥 초강대국 무리에 끼게 되는 것도 거의 확실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독일과 끈끈한 우정으로 맺어진 제4의 초강대국이 파시즘을 전세계에 퍼뜨릴 것은 안봐도 뻔한 일이었습니다.
50년대에 무솔리니의 꿈은 이 나라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악몽으로 변하였습니다. 독일에서 유럽으로 쓸려온 경제 붕괴는 안간힘을 쓰던 이탈리아의 경제를 완전히 박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뻔뻔스러운 독일인들이 이탈리아를 다시 일어나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는 더 이상 독일의 압제에 고통받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제국은 독일과의 동맹에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라이히에서 도망칠 곳을 찾는 이들에게 국경을 열어줬습니다. 정치범, 탈옥수,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로 도망쳤습니다.
50년대가 느리게 흘러가고 두체가 나이를 먹으며 무솔리니의 결정은 점점 더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국왕 움베르토 2세 디 사보이아에게 반항하며 군주제를 폐지하려다가 내전을 일으킬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멈춰 세운 것은 사위인 갈레아초 치아노 뿐이었습니다.
치아노는 독실한 파시스트였지만 점점 더 커져가는 공포에 휩싸인 채 무솔리니의 정책이 제국을 더 큰 경제적 황폐화와 정치적 내분으로 몰아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국왕과 두체의 정치적 대립 사이에 서서 장인이 군주제를 끝내기 위한 투쟁을 포기하도록 설득했습니다. 누구는 며칠 후에 두체가 죽은 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는 치아노가 이탈리아의 안전을 자신의 손으로 거머쥐었다고 말합니다. 어찌되었든 일 두체는 죽고 치아노가 그 자리를 이어 받았습니다.
신임 두체는 제국 자유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실용주의에서 나온 것이었이었습니다. 파시즘은, 최소한 무솔리니의 방식은 실패했습니다. 치아노의 개혁은 인종법, 가혹한 식민지 체제, 그리고 아마 제일 중요한 것으로, 이탈리아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을 폐지했습니다. 국왕 움베르토 2세에게서 원동력을 얻은 두체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탈리아 민중에게 민주주의 체제를 다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가 파시스트당 내 강경파들이 엄포를 놓고 투덜거리는 그 순간 이탈리아의 군중은 파시즘을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혈 혁명은 아직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 파시스트당 강경파의 급조된 지도자인 카를로 스코르차는 치아노의 개혁에 맞서 꿋꿋하게 섭니다. 그는 막을 수 있을 때는 막고 막을 수 없을 때는 대중의 격렬한 항의를 유도합니다. 이탈리아 사회는 두 개의 세력으로 갈라졌습니다. 치아노의 개혁과 자유화냐, 스코르차의 강경 파시즘이냐. 긴장은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제국은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잿속에서 민주주의의 불사조가 부활해 다른 어느 순간보다도 더 밝게 빛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시 먼지로 돌아가 다시는 이탈리아의 길을 비출 수 없게 될수도 있습니다.
전진!
세계 제4의 강대국. 하지만 3대 열강이 아니기에 냉전의 주요 패권국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손에 넣은 후, 독일이 서러시아 전쟁에 이탈리아를 무리하게 끌어들이려고 하자 분노한 무솔리니는 독일에서 박해를 피해 몰려드는 난민들을 받아들여 히틀러를 분개하게 했다. 이후 무솔리니는 왕정 폐지를 주장하며 이탈리아를 내전 직전까지 몰고 가다가 사망한다. 마침 무솔리니가 죽은 시점이 치아노가 왕정폐지 주장을 그만둘 것을 설득한지 며칠 후라 치아노가 무솔리니를 죽인 게 아니냐는 말도 있는 듯.
무솔리니 사후 두체가 된 치아노는 트라움비라투스 동맹의 형성을 주도하며 경제의 숨통을 유지시킬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시작 시점에는 트라움비라투스 회원국 간 영토 분쟁이 불거지며 동맹 해체 직전에 몰린 상황. 이탈리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몰타에서 회담을 열지만 회담은 반드시 파토나고 폭탄 테러로 트라움비라투스 자체가 해체된다. 트라움비라투스 외의 우호국으로는 수에즈 운하 너머 무역 파트너인 인도 공화국과 일본 제국이 있다. 이후 외교 관련 중점에서 삼두동맹을 다시 재건하지는 못하며 OFN/공영권/독자노선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지난 무솔리니의 실정에 대해 싫증을 느끼는 민중과 치아노의 실용주의적인 경향으로 인하여 점차 파시즘이 쇠퇴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국가 파시스트당 서기인 카를로 스코르차[2]를 비롯한 파시스트들은 파시즘의 쇠퇴는 곧 파시즘의 산실인 이탈리아를 쇠퇴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상황.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아노는 이탈리아의 미래를 걸고 베로나에서 회담을 벌인다.
두 파벌로 나뉜 것은 파시스트당만이 아니다. 군대는 에드가르도 소뇨[3]가 이끄는 왕정주의자와 유니오 발레리오 보르게제[4]가 이끄는 파시스트로 나뉜다. 만약 정부와 적대 관계인 파벌이 육군, 해군, 공군, 검은 셔츠단, 카라비니에리라는 다섯 군대를 통제하게 될 경우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냉전의 메인 플레이어가 아니란 이유로 경시할 수 있겠지만, 석유 시장을 주도하는 국가 중 하나로서, 영국과 프랑스의 중동 식민지들을 잡아먹고 페르시아 석유회사의 경영권도 꿀꺽한 덕분에 주요 산유지 중 하나인 중동을 이탈리아가 꽉 잡고 있다. 이 덕분에 엔리코 마테이[5]가 경영하는 에니는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석유 위기는 중동의 내전과 마테이의 사망이 원인이다. 석유 위기가 일어나면 이탈리아부터 욕하고 보자.
비록 추축국 주요 국가 중 하나였지만 제국 경영에 돈을 다 꼴아박아서 핵무기가 없고, 우주 경쟁에서도 후발주자다. 다행히 1963년경에 산마르코 1호 발사 이벤트가 발생하여 인공위성을 쏘고, 알파 계획 결정을 통해 핵개발을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고, 몇몇 과학자들은 특정 정당만을 위해 일하려 하겠지만 핵무장에 성공한다면 독일의 침략 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
아틀란트로파의 현실성 여부를 가지고 논쟁이 있었고 제작진들이 아틀란트로파 폐지 여부에 투표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아틀란트로파는 유지되지만 좀 더 현실적인 지형이 담긴 공식 서브모드가 제작되었으나 PW 업데이트 준비로 인해 아틀란트로파가 삭제되었다.
국호는 원판인 영어 기준으로 Italian Empire로 뜨다가, 이후 패치로 Regno d'Italia로 바뀌었다.[6]
- [리워크 관련 내용]
- 최근 개발일지로 트라움비라투스 구성국이 다시 리워크 될 예정이다. 이탈리아권의 종속국들에서 튀니지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알바니아 왕국이 추가되고, 몰타 회담도 다시 리워크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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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혁명 루트가 예고되었다. 베로나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파시스트들이 분열해 나라가 검은셔츠단, 참전용사단체, 학생들의 폭력 사태에 빠진다. 이를 군대로 진압해 저지하려던 국왕도 암살당한다. 결국 권력 구조가 붕괴한 이탈리아에서 그동안 암약하던 사회주의 단체가 봉기,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내용이다. 또한 민주 루트 정당이 변경될 것이라고 한다. 국왕이 개입하면 파시스트가 실각하고 민주주의가 돌아온다. 왕정 폐지는 국왕이 준 민주주의기 때문에 없다고 한다. 총리는 12명, 정당은 15개이며 이 정당들이랑 연정을 하고 법안을 수정하는 등 복잡한 메카닉이 구성된다고 한다.
- 리워크 시 정당 목록
- 좌파
- 이탈리아 사회당 - 베를링구에르파
- 이탈리아 사회당 - 최대주의자
- 급진당
- 이탈리아 사회당 - 최소주의자
- 이탈리아 사회민주당
- 중도파
- 이탈리아 공화당
- 기독교민주당 - 혁신민주파
- 기독교민주당 - 신연대기
- 기독교민주당 - 도로테이파
- 기독교민주당 - 봄
- 우파
- 이탈리아 자유당
- 이탈리아 근왕통일민주당
- 이탈리아 사회 운동 - 국민우파
- 이탈리아 사회운동 - 알미란테파
- 이탈리아 사회운동 - 신질서
지도자는 엔리코 베를링구에르. 이념은 확실히 신공산주의(공산주의)다.
지도자는 피에트로 넨니.
지도자는 마르코 판넬라.
지도자는 피에트로 넨니.
지도자는 주세페 사라가트.
지도자는 우고 라 말파.
알려진 것은 없으나 현실의 행적으로 봤을때 생디칼리슴적인 좌파적인 파벌로 추측된다.
지도자는 아민토레 판파니.
지도자는 알도 모로.
지도자는 줄리오 안드레오티. 이념은 기독교 민주주의(보수주의)
지도자는 조반니 말라고디. 이념은 보수주의.
지도자는 아킬레 라우로
지도자는 아우구스토 데 마르사니크나 아르투로 미켈리니.
지도자는 조르주 알미란테. 이념은 네오 파시즘.
지도자는 피노 라우티. 이념은 신비주의적 파시즘.
스코르차 루트도 개정된다. 스코르차는 임시 두체가 되어 다음 두체가 정해질 때까지만 집권하고 물러난다. 다음 두체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알레산드로 파볼리니: 국가 파시스트당 총서기. 실 역사에서는 무솔리니의 옆에 함께 매달렸다. 당내 관료들의 지지를 받는 무난무난한 두체 후보. 가장 친독적인 두체로 독일을 따라서 당을 개조할 것을 주장하며 팍트 가입은 하지 않지만 독일과 엠바고 해제나 데탕트 등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 이탈로 발보 (파시즘): 전쟁의 영웅이자 원로 파시스트. 실 역사에서는 리비아에서 아군 오사로 사망.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높은 두체 후보. 그러나 무솔리니와 치아노가 계속 견제하는 관계로 식민지를 떠돌고 있다. 이탈리아가 전쟁으로 얻은 광대한 식민지를 물리적으로 연결하고 개발하는 것을 주력으로 한다.
- 에토레 무티 (산세폴크로이즘):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추종자 출신 항공대원. 실 역사에서는 이탈리아가 연합국 쪽으로 편을 바꾸는 과정에서 카라비니에리에 위험인물로 지목당해 처형. 생디칼리슴,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초창기 파시즘으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양성평등, 인종차별 철폐, 노동자 자주관리 등 일견 진보적으로 보이는 정책이 특징적이다.
- 니콜로 자니 (신비주의적 파시즘): 파시즘 이론가. 실 역사에서는 그리스 침공에 자원입대했다가 알바니아에서 전사. 종교로서의 파시즘을 주장하며 이성을 뛰어넘는 신앙으로서의 파시즘을 주장한다. 이것 때문에 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나 인종차별주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등 가장 권위적인 성격도 지닌다.
1.1.1. 민주화 루트
치아노가 베로나 회의에서 승리하면 이탈리아가 민주화되는데, 이탈리아가 민주화되면 3개의 당이 선거로 경쟁을 하게 된다. 3개 당이 4개씩 루트가 12개이지만 그중 2개는 함정 루트다.이후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 얼마 안된 부작용으로 좌파 세력들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나중에는 극좌파가 정치인 납치 살인을 저지르거나 극우 세력이 극좌 아나키스트인 척하고 테러를 일으키는 등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1.1.1.1. 민주전선 (사회주의 ~ 진보주의)
피에트로 넨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사회당(PSI)과 이탈리아 사회민주당(PSDI)의 연합으로, 이탈리아의 사회주의자들을 모아놓은 당이다. 어느 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있지만 그래도 지지층이 많지는 않아서 선거에서 승리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에 기뻐한다는 이벤트가 나온다.- 민주주의 우선 - 민주사회주의(진보주의, 민주전선 우파)
- {{{#!folding 내각
- 주세페 사라가트 정부수반
- 체사레 벤시 외무장관
- 우고 라 말파 재무장관
- 에밀리오 루수 내무장관}}}
- 주세페 사라가트와 이탈리아 사회민주당이 주도권을 잡는다.
- 적백연정 - 개혁을 위해 온건한 기독교민주당과 협력하고 사회당을 밀어내 중도좌파 연합을 형성하는 루트이다.
- 통일 사회주의 - 개혁주의적이지만 기민당과는 협력하지 않고, 중도 리버럴인 이탈리아 공화당(PRI)과 협력하고 사회당을 규합해 과격파를 열외시키는 루트다.
- 사회주의 우선 - 혁명전선(사회주의, 민주전선 좌파)
- {{{#!folding 내각
- 엔리코 베를링구에르 정부수반
- 산드로 페르티니 외무장관
- 리카르디오 롬바르디 재무장관
- 조르조 아멘돌라 내무장관}}}
- 엔리코 베를링구에르와 이탈리아 사회당 내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는다.
- 이탈리아에서 사회주의로 -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을 옹호하는 정당들을 규합해 반파시스트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루트이다.
- 투표를 통한 혁명 -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군부를 숙청하고 이탈리아를 공화국으로 만드는 루트이다. 급진적인 사회주의로의 변환은 군부 쿠데타를 불러올 수도 있다.
1.1.1.2. 기독교민주당 (자유주의 ~ 보수주의)
사회주의자와 권위주의자를 제외한 모두를 품는 중도 빅 텐트 정당이며, 알도 모로가 그 지도자다. 현실에서도 그렇듯 가장 인기가 많으며 선거 승리 이벤트를 보면 대부분이 예상했던 승리라는 말이 나온다.- 줄타기 - 기독교 보수주의(보수주의, 기독교민주당 우파)
- 저울의 한쪽을 무겁게 하다 - 기독교 자유주의(자유주의, 기독교민주당 좌파)
이 중점들을 끝내면 이탈리아를 역사적 루트인 복지를 가미한 자유주의적 국가로 개혁하려고 하며 경제에 중점을 둔 모습을 볼 수 있다.
1.1.1.3. 국가연합 (가부장주의 ~ 파시즘)
조르조 알미란테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우파 정당들(PDIUM, 국가민주주의자, 이탈리아 사회 연맹)을 모아놓은 권위적 정당이며, 현실에서 저력을 보여줬던 사회당과 기민당과 다르게 극단주의자들이 모여있어 인기는 가장 적다. 승리 이벤트를 보면 벌써부터 개판이다. 지들도 이걸 예상 못하고 국왕도 대놓고 어두운 표정인데다 폭동까지 일어난다.- 양의 시대 - 국민보수주의(가부장주의, 국가연합 보수파)
- {{{#!folding 내각
- 아우구스토 데 마르사니크 정부수반
- 아르투로 미켈리니 외무장관
- 가에타노 라시 재무장관
- 지노 비린델리 내무장관}}}
- 부정하지 맙시다 - 알미란테 등 권력자들이 야당과 협력하지 않고 혼자서 BN을 통치하고 파시스트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루트이다.
- 되돌리지 맙시다 - 이탈리아의 주요 보수주의자인 기독교민주당과 협력해 권위적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루트이다.
- 사자의 나날들 - 파시즘(국가연합 보수파)
- {{{#!folding 내각
- 에르네스토 마시 정부수반
- 피노 라우티 외무장관
- 조반니 로베르티 재무장관
- 루틸리오 세르몬티 내무장관}}}
- 의회 배제하기 - 파시즘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회 자체는 유지시키려 한다. 그래도 왕에게 권력을 주고 그 왕을 협박해 권력을 뜯어내는 신박한 방식등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유사민주주의로 만들어버린다.
- 의회 폐쇄하기 - 의회를 폐쇄시키고 치아노가 만든 민주적 질서를 다시 한 번 무너뜨리고 파시즘 국가를 되돌리려는 정책이다. 그렇지만 너무 급진적인 정책은 군사 쿠데타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중점들을 거치면 이탈리아를 자신들의 사상에 따라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이벤트가 하나도 없는걸 봐선 좋은 루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 검열[7]이라든가.
1.1.2. 스코르차 루트
만약에 베로나 회의에서 스코르차가 승리하게 되면, 새로운 중점 트리가 열리게 된다.- 제2차 베로나 회의 - 주요 간부들은 개혁을 논의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베로나 회의를 열게 되는데, 스코르차의 첫번째 결정은 베로나 회의를 지속할지 말지, 어느정도 개혁할지, 회의를 어떻게 진압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스코르차는 이탈리아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 파시즘 불사조 - 스코르차는 이탈리아의 산적한 사회적 문제, 크게 세 문제에 대하여 접근하려 한다.
- 두번째 성별 - 여성은 파시즘에 수많은 공헌을 해왔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여권에 반대한다. 스코르차는 여군을 창설하고 성적 자유화를 하거나, 전통적 역할로 회귀시킬 수 있다.
- 조비네차 - 현 체제에 청년들은 불만이 많다. 스코르차는 이에 집회와 언론의 자유화하거나, 집회와 언론을 때려잡을 수 있다.
- 바티칸 처리 - 이탈리아는 가톨릭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좋게 말해도 바티칸과 관계가 좋지는 않다. 스코르차는 이탈리아를 세속국가로 만들거나, 종교국가로 만들 수 있다.
- 전원 각자 위치로 - 이탈리아의 경제는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다. 스코르차는 이에 관료제를 합리화하거나[8], 강화시킬 수 있다.
- 신 노동 헌장 - 무솔리니의 1927년 노동헌장에 대한 재건 정책. 합리화 루트에서 노동의 경제/도덕에 의한 경제 루트를 통하면 찍을수 있는데, 국민생디칼리슴적 정책으로 복지를 시행하고 기업을 견제하며 세법을 날려버리지만, 경제가 잘 돌아가진 않는다.
- 폐쇄경제 강화 - 합리화 루트에서 번영을 위한 경제/강화 루트에서 앞으로 전진 루트를 통하면 찍을수 있는데, 3가지 루트중 유일하게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루트다.
- 국가가 필요한 것 - 강화 루트에서 높으신 친구들/어둠 속에서 루트를 통하면 찍을 수 있는데, 전국민 18시간 노동을 돌리고 범죄자들도 노예로 만들고 노예제도 부활시키고 안전규정도 없애버리고 경제도 망하고 부르군트가 따로 없다.
- Fascism is a Method - 스코르차는 국가에 산적한 문제들을 개혁하려 하고 있다.
- OVRA의 촉수 - OVRA는 이탈리아의 비밀경찰이지만, 문제가 많은 조직이다. 이에 스코르차는 이를 개혁하거나, 재조직하거나, 오히려 강화시킬수 있다.
- 당의 상태 - 파시스트당은 오랫동안 과거에 머물러있었다. 이에 스코르차는 1919년처럼 당을 민주적으로 개혁하거나, 1922년처럼 중도적으로 유지하거나, 1939년처럼 자유를 부숴버릴수 있다.
- 제국의 짐 - 이탈리아 제국은 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스코르차는 제국을 개혁적인 파시스트 제국으로 만들거나, 온건한 이탈리아 제국, 또는 군홧발 아래 짖밟을 수 있다.
- ISPI 회의 - 이탈리아의 ISPI엔 제국주의적 원로파랑 개혁파가 있다. 스코르차는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 신규 학파 - 지중해를 하나로 묶는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고 최종적으로 위원회와 함께 제국 동맹, 로마 조약, 지중해 블록 셋중 하나 독자 세력을 만들수 있다.
- 원로 - 이전과 같이 계속 지중해에서 돈을 빨아먹는 루트이다.
스코르차의 경우엔 석유파동 해결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나 바트주의 국가들을 침공한다. 그 후 개혁파와 보수파중 어느 쪽으로 갔느냐에 따라 루트가 결정되는데, 개혁파로 가면 사상이 파시즘에서 산세폴크로주의로 변경되며 왕정을 폐지하고 사실상 민주공화국으로 만든다. 왕정 폐지할때 소뇨의 군 영향력이 높으면 쿠데타난다. 보수파의 경우엔 베네치아에서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깃발을 들고 민주공화국을 선포하는 시위가 진압됐다는 이벤트로 마무리된다. 석유위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상술한 유니오 발레리오 보르게세가 쿠데타를 일으켜 쫒겨난다.
예전에는 풀개혁으로 갈 시 사실상 민주국가를 만들 수 있었지만 툴박스 이후 그냥저냥한 자유화가 한계이다.
1.2. 이베리 아 연방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스페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스페인이 독일의 의지에 굴복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그러나 곧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인들은 마침내 지브롤터의 댐을 건설하라는 그들의 요구에 굴복할 것을 요구했고, 스페인 사람들은 마침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아틀란트로파 계획이 실패하면서 혼란을 초래했고, 독일이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몰수하고 남쪽 이웃들을 향해 사브르를 휘두르기 시작하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독일의 침략을 더 잘 저지하기 위해 통일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침략은 결코 오지 않았고,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불안하게 휴식을 취합니다. 독일은 과거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 불편한 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이 가능-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창립국
- 집권이념: 전제주의( 국민연합- 팔랑헤당 동맹)
- {{{#!folding 국민정신
-
무질서한 연방군
스페인군, 포르투갈군, 그리고 헌병군은 완전히 따로 놀고 있으며, 이베리아군은 완전히 엉망진창 상태입니다. 통일된 육군 교리, 작전 교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표준화되지 않았으며, 연방정부는 이들 군대에게 지시를 내릴 능력도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스페인군과 포르투갈군 각각은 꽤 괜찮게 싸울 것이지만, 연방정부의 통제하에서 그들은 오합지졸이 될 것입니다.
사단 조직력: -10.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0%
공격: -10.00%
방어: -10.00%
소비재 공장: 5.0%
계획 수립 속도: -15.0%
공군 교리 연구 속도: -50%
육군 교리 연구 속도: -50%
해군 교리 연구 속도: -50% -
원로 보수파의 배신
복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양국의 군주제 지지자들은 조용히 진행했던 협력을 포기했고 더러는 망명을 선택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강경 민족주의자들은 두 카우디요를 반역자라고 말하고 있으며, 정권 내 강경파들은 정부 청사를 떠나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기도 전에 쿠데타를 시도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구체계의 양대 축인 카톨릭교회와 군부도 조용히 불만을 내뿜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카우디요 둘은 거의 혼자 남겨진 채로 조금이라도 충성심을 보이는 이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협력자들에게 배신당했고, 스스로가 내린 결정으로 고립되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안정도: -5.00%
* 이베리아 경제 침체
건설 속도: -25.00%
생산 효율 성장: -15.00%
공장 생산률: -20.00%
GDP 성장률: -0.20%
인플레이션율 변동치: +3.00%
* 연합의 상태 - 안정적
* 무력화된 주권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정치력 획득: -25%
안정도: -25.00%
}}}안정도: -5.00%
* 이베리아 경제 침체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힘을 합쳐 지중해를 경제적으로 정복한 이베리아 연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번영했을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런 축복받은 꿈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생산 효율 성장: -15.00%
공장 생산률: -20.00%
GDP 성장률: -0.20%
인플레이션율 변동치: +3.00%
* 연합의 상태 - 안정적
이베리아 연합이 생겨난 지도 이제 오래되었지만, 현 상황은 대체로 안정적입니다. 이베리아 정부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연합은 완벽히 평등합니다. 사실, 그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죠, 연합의 모든 외교적 활동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양국은 동일한 가치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도로를 깔려고 포르투갈 정부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이상한 사실은, 연합이 만들어지던 시절엔 생각지 못한것이었겠죠... |
정치력 획득: -25%
안정도: -25.00%
- {{{#!folding 플레이 요소
- 카우디요들의 다양한 이권과 이베리아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카우디요 인기도를 관리하십시오.
-
경제적 짐짝인 지브롤터 댐을 완공해 요긴한 물건으로 만드십시오. -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베리아의 안정을 지키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연방이 붕괴 직전에 놓일 것입니다.
- {{{#!folding 내각
-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정부수반
- 알레한드로 로드리게스 데 발카르셀 외무장관
- 아르투르 아게두 드 올리베이라 재무장관
-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 내무장관
- {{{#!folding 지휘관
-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 원수, 4, 3/4/3/3
- 카를로스 아센시오 카바니야스 장군, 4, 3/3/3/4
- 모하메드 메지아네 장군, 3, 5/2/1/3
- 안토니우 드 스피놀라 장군, 3, 2/3/3/2
- 라파엘 가르시아 발리뇨 장군, 3, 3/2/1/4
- 카밀로 알론소 베가 장군, 3, 3/2/4/3
- 산티아고 아마도 로리가 장군, 3, 5/4/1/3
- 프란시스코 콜로마 가예고스 장군, 2, 3/2/2/3
- 알폰소 아르마다 장군, 2, 2/2/1/2
- 프란시스쿠 다 코스타 고므스 장군, 2, 1/2/2/2
- 아폰수 드 알메이다 페르난데스 장군, 2, 2/2/2/1
- 마누엘 디에즈알레그리아 장군, 2, 1/3/1/2
- {{{#!folding 제독
- 루이스 카레로 블랑코, 3, 3/2/3/5
- 아메리쿠 토마스, 3, 3/4/3/3
- 앙헬 리베랄 루시니, 2, 2/2/1/2
- 가브리엘 피타 다 베이가, 2, 2/1/3/4
- 엔리크 텐헤이루, 2, 3/2/3/1
- 아돌포 바투로네 콜롬보, 2, 2/2/1/2
- 페드로 니에토 안투네스, 2, 1/2/2/2
- 【도입부 - 이베리아 연방】
- >이베리아 연합은, 증오하는 대독일국이 구축한 신질서에 맞서 형성되었고, 위태로운 위치에 서 있습니다. 침공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던 연합은, 이제 관료주의와 무질서의 악몽 속에 있습니다.
독일이 세계를 갈등으로 몰아넣고, 프랑코의 스페인과 살라자르의 포르투갈 같은 신생정권은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영국인들과 독일인들 모두 이베리아인들을 그들의 동맹에 끌어들이려 노력했으나, 두 지도자는 1942년 이베리아 조약을 체결해, 양국간의 평화를 보장했습니다. 반도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전쟁은 식민지 지역에서 일어났죠.
첫번째로는 1942년 일본이 동티모르를 점령했고, 다음으론 스페인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를 점령했죠.전쟁이 끝날 무렵, 스페인은 지브롤터를 망해가는 대영 제국으로부터 빼앗을 기회를 얻었고, 또한 아프리카로 밀고 들어가면서, 잔존 자유프랑스군을 몰아내려는 지역 반군들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40년대 말, 독일인들은 포르투갈의 보석,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침공했습니다. 독일의 공격성에 충격받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부는 이베리아 조약을 확대하는 협상에 착수했고, 마침내 양국 정부를 합쳐 이베리아 연합을 형성하기에 이릅니다.
반독 감정으로 가득 찬 연합은, 이탈리아 제국과 터키와 힘을 합쳐 독일에 대항하는 편의 동맹을 맺었습니다. 알제리 분쟁과 이제는 이탈리아령이 된 수에즈 운하 문제와 같은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동맹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연합의 약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카우디요들 간의 갈등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연합 창설 때에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살라자르와 프랑코의 동등한 권력이 저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동맹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트리움비라투스 구성국들 간의 몰타 회의와 독일의 불안정으로 볼 때, 이베리아의 미래와 국제적 입지는 안정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전진!
스페인국과 포르투갈 제2공화국이 연합한 국가.
두 국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이베리아 조약을 형성하며 중립을 유지했지만 전쟁에서 추축국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지브롤터를 은근슬쩍 뜯어먹었다. 하지만 1940년대 말 나치 독일이 포르투갈령인 모잠비크와 앙골라를 강탈하자 두 국가는 "독일놈들이 이제 우리도 먹으려 하는구나!"하고 위기감을 느꼈고 황급히 이베리아 조약을 확대, 연방 국가로 만든다.
프랑코와 살라자르라는 2명의 카우디요의 협의하에 굴러가는 국가로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경우 연방 존속 자체가 위태롭다는 묘사가 나오고 실제로도 연방이 붕괴 위기가 찾아온다. 겉으로는 둘의 위상이 비슷한 것처럼 묘사되지만 모국인 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력차이 때문인지 실상은 프랑코의 입김이 더 강한 형태. 물론 두 명의 독재자가 합의 하에 굴러가는 국가기에 프랑코 입장에서도 살라자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어찌어찌 합의는 되고 있다.
트리움비라투스의 일원 중 하나지만 게임 초반에 트리움비라투스의 또다른 주축인 이탈리아와 터키간의 갈등이 폭발하고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해체되고 만다. 이후 쭈욱 독자노선을 걷다가 게임 후반부에 정치 노선을 확정한다.[9]
이베리아 연방의 게임 플레이는 망가진 경제 복구, 정치 체제 개편 논의(2명의 카우디요와 평의회), 분리주의 반란 진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 대리전에 개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 초반 - 초반에는 식민지 예산으로 대표되는 식민지의 일을 처리하는 것을 하게 된다. 모로코, 알제리, 사하라 남쪽의 일을 마치고 나면 국내 개혁을 실시할 것을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10]
- 트리움비라투스 회담 이후 - 트리움비라투스 단결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연 몰타 회담은 폭탄 테러로 끝나게 된다. 이에 트라움비라투스는 다시금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이에 이베리아는 전 세계적 외교를 펼치는 것과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 둘 하나를 고르게 된다.
- 이베리아 평의회 문제 - 이베리아는 두 나라가 황급히 합쳐서 만들어진 누더기 나라이니 만큼 내적으로 수많은 문제가 있다. 당장 프랑코와 살라자르 두 카우디요가 동시에 참석한 행사에서 연설이라도 하려하면 한 연설문을 둘이서 번갈아 가며 말하는 수준이다. 먼저 하자가 많은 세금법, 북아프리카 식민화 때문에 경제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거기다가 스페인군, 포르투갈군, 스페인 헌병군이 따로따로 노는 형국이라 군대도 체급에 비해 허접하다. 포르투갈의 공화주의자들과 스페인의 왕정주의자들은 왕정복고 문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으며 이 꼬라지에 지친 팔랑헤와 과격 왕정주의자들은 정부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경제가 박살났지만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한 카탈루냐,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척해 다른 스페인 지방을 무시하는 갈리시아, 정부에게 계속 탄압받아온 바스크는 분리주의를 외치고 있다. 거기다가 사안을 결정하는데 스페인 정부와 포르투갈 정부가 모두 동의해야해서 어느 한 쪽이 거부하면 도로도 못 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이베리아를 대표하는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베리아"에 카탈루냐, 갈리시아, 바스크가 포함될지는 플레이어가 선택할 일이다. 의회를 진짜 의회로 만들 것인지 카우디요들을 위한 꼭두각시로 만들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다. 게임 후반부에 의회로 개편한다면 OFN에, 꼭두각시로 만든다면 팍트에 가입하는 중점이 추가된다.
- 독일 내전 - 선택지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군부 내 파시스트들에게 보잘것 없는 장비를 쥐어준 다음 슈페어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독일 세력에게 무기를 팔아치워 내전기에 공화파에도 무기를 판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11].
- 알제리 위기 - 알제리는 명목상으로는 프랑스령이나 프랑스 패전 이후 이베리아와 이탈리아가 서로 자신의 것임을 주장하며 슬금슬금 알박기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와의 전쟁으로 알제리 전부를 가지거나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고, 외교적 해법을 통해 중립지대로 만들 수도 있다.
- 바르셀로나 전투 - 1965년 4월쯤 되면 CNT-FAI가 바르셀로나에서 활동을 개시하고 이를 진압하게 된다. 대처에 실패하면 아예 바르셀로나가 점령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바르셀로나를 탈환하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이루어지지만 이때를 틈타 카탈루냐의 CNT, 바스크의 ETA, 아스투리아스의 TBA, 포르투갈의 FSLP 등 이베리아의 분리주의자들은 날뛰기 시작하게 되고 이베리아는 반분리주의국을 설립해 분리주의에 대항하게 된다. 외국에서 도움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주체는 미국이다. 미국이 CIA를 통해 반란 진압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게 된다. 살라자르가 죽기 전까지 분리주의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살라자르 사후 내전이 나게되니 주의해야한다.
- 평의회 소집 - 바르셀로나 이후 이베리아는 복지와 국가 행정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려 한다. 여기서 이벤트가 많아 이 부분 때 평의회의 개혁/보수 여부와 영향력이 결정된다
- 이베리아 경제기적 - 경제 개혁은 세 루트로 나뉜다. 하나는 오푸스 데이가 제안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경제 자유화를 통해 자유로운 국제 시장을 만든다. 하나는 지금까지 해오던 관료주의에 기초한 점진적 경제 개혁이다. 나머지 하나는 팔랑헤 류의 보수파가 지지하는 협동조합주의로 귀환하는 것이다. 세력이 강한 카우디요가 누구인가, 평의회의 기능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루트가 갈린다. 살라자르는 무조건적으로 관료주의를 지지하며 프랑코는 협동조합주의를 지지하나 평의회가 충분히 강하면 그 의견을 따라 경제 자유화를 선택할 수도 있다. 협동조합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제 붕괴를 초래하기 때문에 안정도가 크게 떨어진다. 잘못하면 이 시점에 연방이 분열될 정도.
- 살라자르의 죽음 - 살라자르가 중간에 사망하자, 이베리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살라자르의 후임으로 마르셀루 카에타누, 혹은 안토니우 다 모타 베이가를 임명하거나 프랑코 1인 독재 체제를 선포할 수 있는데 카에타누를 제외하면 사실상 함정 트리로 안정도가 크게 떨어진다.
- 평의회 개혁 - 이 때까지 어떻게든 연방을 유지시키면 평의회를 개혁하게 되는데, 이건 평의회의 개혁/보수주의 기류, 평의회의 영향력과 평의회 문제 당시 선택한 것으로 결정된다.
- 입법 평의회 - 평의회가 개혁적이면 민주루트, 보수적이면 평의회 유지를 가게 된다.
- 민주주의 - 민주주의 루트를 가게 되면 선거를 준비하게 된다. 당선 가능한 정당은 좌파 리버럴인 공화당, 우파 리버럴인 민주혁신당, 보수주의적 인민동맹, 권위주의적인 국민연합이 있다. 이벤트 선지에 따라 정당들의 인기도를 높일 수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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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연합 (자유주의)
{{{#!folding 【내각】 - 토르쿠아토 페르난데스 미란다 국가원수
- 아델리누 다 팔마 카를루스 정부수반
- 호아킨 루이스-히메네스 외무장관
- 후안 가르시아 재무장관
- 마누엘 구티에레스 메야도 내무장관
}}}이베리아를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개혁하는 루트. 종교의 자유 보장, 교육 확대, 언론의 자유, 투표권 확장등 살펴보면 민주국가에 걸맞은 중점들이 많은 편이다. 얼마나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다(...). 여러모로 현실에 있었던 아돌포 수아레스와 닮은 부분이 많은 루트. 국가원수만 해도 왕실위원회 의장으로서 수아레스를 총리로 지명하고 프랑코시대의 법적 유산들을 청산한 페르난데스 미란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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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혁신당 - 시장자유주의 (자유보수주의)
{{{#!folding 【내각】 - 알베르토 우야스트레스 칼보 국가원수
- 레오폴도 칼보-소텔로 정부수반
- 피오 카바니야스 외무장관
- 마리아노 루비오 재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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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알레그리아 내무장관
}}} 공화당보단 덜하지만 여러가지 개혁도 하고 민주국가를 만들어간다. 또한 무엇보다도 자유시장을 주장하고 성장률 올리는 중점이 많은 덕에 민주주의 4가지 루트 중에서도 가장 GDP 성장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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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동맹 (보수주의)
{{{#!folding 【내각】 - 마누엘 프라가 국가원수
- 디오구 프레이타스 두 아마랄 정부수반
- 피오 카바니야스 외무장관
- 리시니오 푸엔테 재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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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피녜이루 드 아제베두 내무장관
}}} 농민들의 지지를 받는 보수정당. 분명 이념 자체는 민주주의지만 보수적인 농민들의 콘크리트 지지를 받는 정당이라 별로 민주적이진 않다. 전에는 야당 탄압하는 막장 루트였지만 툴박스 이후로는 나름 정상적인 보수정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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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합 - 국민보수주의 (가부장주의)
{{{#!folding 【내각】 - 알레한드로 로드리게스 데 발카르셀 국가원수
- 마누엘 카에타누 정부수반
- 페드로 코르티나 외무장관
- 그레고리오 브라보 재무장관
- 마누엘 알레그리아 내무장관
}}} 예전 프랑코/살라자르 정권의 유산들. 애초에 내각만 봐도 나오는 게 카에타누랑 발카르셀 다 연방에서 한자리씩 해먹었던 사람들이다. 야당들을 직/간접적으로 탄압하고 급진적으로 가면 아예 헌병군을 의회로 보내는 등 가장 권위적인 루트가 되었다. 지나치게 강경한 행보를 보일 시 국가헌병대의 항명이 일어나고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
- 평의회 유지 - 민주주의적으로 개혁은 조금 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안된다고 뻗대는 루트. 민주주의보다는 안 좋지만 그래도 전제는 아니니 희망은 어느정도 있다. 어둠의 밝은 면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권위적으로 행동하면 전제랑 다름이 없다. 또한 너무 권위주의가 지나치게 낮을시 쿠데타가 나고, 너무 높으면 연방이 해체된다.
- 자문 평의회 - 평의회의 영향력이 높으면 평의회가 유지되고, 영향력이 낮으면 평의회가 해체된다.
- 평의회 유지 - 전 루트랑 같으니 생략하도록 한다.
- 평의회 해체 - 이베리아 붕괴를 제외한 루트 중에서 가장 암울한 루트인데, 평의회같은 관제 입법부도 없이 완전한 프랑코의 독재이다. 현실 프랑코에 가장 가까운 루트인 듯? 그러나 권위주의 시스템은 역시 같이 적용되어 권위주의가 지나치게 낮을시 쿠데타가 나고, 너무 높으면 연방이 해체된다.
-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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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자유주의)
{{{#!folding 【내각】 - 마누엘 구티에레스 메야도 국가원수
- 아델리노 팔마 정부수반
- 조아킨 기메네즈 외무장관
- 리시니오 푸엔테 재무장관
- 마누엘 구티에레스 메야도 내무장관
만약 평의회 유지/해체 루트에서 권위주의 의식이 낮아 정당을 성공적으로 해체시키지 못하면 마누엘 구티에레스 중장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포르투갈에 있었던 카네이션 혁명의 이베리아판 버전으로서, 민주주의 - 공화당 루트보다도 더욱 강력한 개혁을 밀어붙여서 이베리아를 완전한 민주국가로 탈바꿈시킨다. 여담으로, 이 루트로 가면 피카소가 스페인으로 복귀하는 등 매우 뽕차는 이벤트들이 많이 있다.-
민주구국연합 (보수주의)
{{{#!folding 【내각】 - 마누엘 프라가 국가원수
- 디오구 프레이타스 두 아마랄 정부수반
- 피오 카바니야스 외무장관
- 후안 가르시아 재무장관
- 마누엘 구티에레스 메야도 내무장관
또한 민주주의 - 국민연합 루트에서 너무 과격하게 진행할 경우 헌병군이 항명을 일으켜서 혁명이 일어나고 CSD(민주구국연합)이 정권을 잡게 된다. 근본은 보수적이지만 공화당과 연립 정권이라 여러 개혁들을 실시하는데, 투표권에 있어선 나름 급진적으로 개혁한다.-
국가기술위원회 - 협동조합주의(파시즘)
{{{#!folding 【내각】 - 알폰소 아르마다 국가원수
쿠데타가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닌데, 민주주의 - 공화연합 루트에서는 급진적인 개혁에 대한 군부의 불만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수구적인 군인들의 쿠데타가 발생한다. 위의 마누엘 구티에레즈 중장의 쿠데타가 카네이션 혁명의 패러디라면 이쪽은 23-F의 패러디. 쿠데타의 밑준비와 마드리드 전투의 결과에 따라 민주정권 유지, 이베리아 내전[13], 쿠데타 성공으로 갈린다. 이베리아 내전에서 군부가 승리하거나 쿠데타가 성공하면 알폰소 아르마다의 협동조합주의(파시즘) 정권이 탄생하고 곧바로 게임 오버된다. -
공화당(자유주의)
1.2.1. 이베리아 전쟁
전쟁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직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 미첼 델 카스티요 이베리아의 황혼 |
연합의 안정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지역의 분리주의, 이념의 갈등 등이 완전히 폭발하며 나라가 말 그대로 조각조각난다.
- 스페인 내전
- 이베리아 연방정부(전제주의): 지도자는 프란시스코 프랑코. 이베리아 연방의 잔재. 그러나 남으로 공화국, 북으로 팔랑헤에 끼어있는 형세라 보통 주요 세력 중에는 제일 먼저 탈락한다. 멸망 문구는 "고통스러운 연방이 끝을 맞이했습니다."
- 스페인 공화국(자유주의, 민주연합 - 자유파)): 지도자는 토르쿠아토 페르난데스 미란다. 남부의 안달루시아, 무르시아 등을 가지고 시작하며 이베리아 연방의 상황에 따라 더 많은 주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다. 일단은 자유주의지만 실제로는 왕당파부터 사회주의자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빅 텐트 세력이다. 그래서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보수파를 달랠 요량으로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을 데려와 왕정복고가 일어나 스페인 왕국이 되고, 거기서 더 높아지면 사비노 페르난데스 캄포 장군의 쿠데타로 스페인 임시정부(가부장주의)가 된다. 멸망 문구는 " 우리는 지나갔다!"
- 팔랑헤주의 스페인(협동조합주의 (파시즘, Fet y de las JONS): 지도자는 23-F의 주축 하이메 밀란스 델 보슈. 아라곤, 레온 등 북부 지방에서 시작한다. 멸망 문구는 "결국 식탁보는 찢어지고, 거기에 붉은 장미들이 떨어지네, 닳은 식탁의 썩은 부분 위에."
- 국민구원전선(근본주의(국수주의, 국민구원전선)):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부르고스를 중심으로 팔랑헤주의 스페인에서 독립한다. 지도자는 카를로스 아리아스 나바로. 성향은 가톨릭판 ISIS로 스페인 내전 종료 이후 포르투갈도 침공한다. 멸망 문구는 "안식을 주소서."
- 청색전선(국가사회주의, 팔랑헤): 국민구원전선이 떨어져 나간 팔랑헤주의 스페인. 지도자는 호세 루이스 데 아레세 골수 친독파로 스페인 내전이 종료되면 포르투갈을 침공해 괴뢰국을 세운 뒤 아인하이츠팍트에 가입한다. 현재 버그로 인해 포르투갈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버그가 일어나 아인하이츠팍트에 가입이 안되고 무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이 방법으로 임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 스페인 군소 세력: 군소 세력들은 다른 세력을 선공하지 않지만 주요 세력(스페인 공화국 제외)은 군소 세력(지브롤터 제외)을 공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는 합병당하고 만다.
- 바스크 공화국(임시정부 (가부장주의, 바스크 정부)): 지도자는 텔레스포로 몬손. 내전 이벤트에서 가장 먼저 독립해 나온다.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ETA의 쿠데타로 호세 마리아 케사다의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진다. 멸망 문구는 "또 한 번 젊은이가 늙은이를 이겼습니다."
- 카탈루냐 공화국(자유주의, 카탈루냐 공화좌파당): 지도자는 조제프 타라델랴스 멸망 문구는 "우리 마음속의 카탈루냐는 언제나 자유로울 것이다."
- 갈리시아 공화국(자유주의, 갈리시아인당)): 지도자는 알바로 쿵케이로 멸망 문구는 "순례자의 길이 끝났습니다."
- 지브롤터 댐 구역(군사독재 (전제주의, 보호통치위원회)): 지브롤터 댐이 무너지면 대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에 댐을 보호하기 위해 페르난두 드 킨타닐랴가 중립을 선언하며 독립한다. 다른 국가들도 지브롤터는 공격하지 않는다.
- 아스투리아스 노동 대대(부하린주의 (공산주의, 아스투리아스 노동대대)): 지도자는 오라시오 페르난데스 잉관소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팔랑헤주의 스페인에서 독립한다. 멸망 문구는 "젊음의 불이 다 타버렸습니다."[14]
- 안달루시아 공화국(진보주의, 안달루시아 사회주의자 노동당)): 지도자는 플라시도 페르난데스 비아가스.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스페인 공화국에서 독립한다. 딱히 분리주의라기보다는 내전에 지쳐 이탈하는 느낌이 강하다.
- 카탈루냐 인민전선(혁명전선(사회주의, 카탈루냐 인민군)): CNT가 주축이 된 아나키스트 연합이라 지도자는 없다.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카탈루냐 공화국에서 독립한다. 멸망 문구는 "꿈이 죽었다."
- 포르투갈 내전
- 포르투갈(전제주의, 국민연합)): 지도자는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살라자르 사후에는 마르셀루 카에타누. 이스타두 노부 체제의 국가. 이베리아 연방에서 독립한 직후 이베리아의 침공을 우려해 식민지 주둔군을 끌어와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면서 식민지들이 기니비사우(사회주의), 상투메(진보주의), 오룽구 공화국(임시정부(가부장주의))으로 독립한다. 멸망 문구는 "이스타두 노부가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 국민 구국 정부(국가사회주의, 국민구국정부): 지도자는 카울자 드 아히아가. 무력하게 식민지를 잃은 포르투갈 정부에 분노해 북쪽에서 들고 일어난다. 포르투갈 내전 종료 이후 스페인을 침공해 갈리시아를 합병하고 나머지 지역은 3개로 쪼개 괴뢰화한다.
- 포르투갈 임시 공화국(가부장적 보수주의(보수주의, 군대 행동)): 지도자는 프란시스쿠 다 코스타 고메스. 국민 구국 정부가 남쪽까지 정복한 상황에서 내전 피로도가 높아지면 남쪽에서 독립한다. 멸망 문구는 "카네이션이 시듭니다."
- 포르투갈 인민전선(부하린주의(공산주의, 혁명군사행동)): 지도자는 프란시스쿠 마르팅스 호드리게스. 내전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포르투갈 임시 공화국의 남쪽에서 독립한다. 멸망 문구는 "포르투갈이 또 한 번 평안함을 찾았습니다."
- 모로코 내전
그 외에 알제리 군사사령부가 독립하고 트라르자[15]가 모로코를 공격하며 발레리아스 제도는 이탈리아가 선택에 따라 점령할 수 있다.
1.3. 부르군트 SS 기사단국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많은 북부 프랑스인들이 독일의 직접 점령하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잔인하고 억압적이었지만, 결국 평범함과 비슷한 것으로 정착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서러시아 전쟁 중 실패한 쿠데타 이후, 하인리히 힘러는 히틀러에 의해 북부 프랑스와 벨기에를 그의 부조로 받았고, 그것이 그가 더 이상 독일 정치에 간섭하지 않도록 만족하게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한직으로 보낸 땅은 집결지가 되었습니다. 초창기 부르군트 SS 기사단국의 땅은 힘러의 손에 있는 진흙으로,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곰팡이를 피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이 날로 대담해지고 파괴적이 되어감에 따라, "그림자 국가"는 곧 제국과 유럽, 그리고 결국 세계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부르군트 SS 기사단국
SS 기사단국은 아인하이츠팍트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국가이며,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를 달래기 위해 프랑스와 벨기에의 영토를 모아 만들어졌습니다. 서러시아 전쟁 중 힘러는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라이히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고 보아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한스 슈파이델과 국방군은 쿠데타를 분쇄했으며 히틀러는 한때 충성스러웠던 자들을 처벌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사단국의 형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히틀러는 SS가 기사단국에 온 정신을 쏟아 음모를 꾸밀 수 없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요. 힘러는 지난 몇년동안 권력을 굳히고 완전히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축출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이제 한때는 실패했던 곳에서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기사단국은 힘러에게 주로 충성을 바치는 SS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혼자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원주민 독일 SS에는 다양한 협력자들이 참가합니다. 발로니엔인 레옹 드그렐이 이끄는 SS군단 발로니엔, 플라망인 베르트 에릭손이 이끄는 SS군단 랑게마르크,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드 라 마지에르가 이끄는 SS사단 샤를마뉴가 있습니다. 이 모든 파벌들은 서로를 경멸하고 권력 다툼을 벌이며,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SS국가지도자의 통치를 훼손시키겠다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협력자들은 가까운 목줄로 묶여 있어야 합니다.
고맙게도 라이히 내 모든 사람이 적은 아닙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언제나처럼 힘러에게 충성하며, 더 중요한 것은 그는 게르마니아에 거주하고 독일 SS를 이끌며 히틀러의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늙은 총통이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며, 위대한 지도자에게 어떤 끔찍한 비극이 닥칠 경우 하이드리히는 권력을 장악할 태세입니다.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이는 아리아인을 위한 SS국가지도자의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일 힘러!
플레이 가능SS 기사단국은 아인하이츠팍트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국가이며,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를 달래기 위해 프랑스와 벨기에의 영토를 모아 만들어졌습니다. 서러시아 전쟁 중 힘러는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라이히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고 보아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한스 슈파이델과 국방군은 쿠데타를 분쇄했으며 히틀러는 한때 충성스러웠던 자들을 처벌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사단국의 형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히틀러는 SS가 기사단국에 온 정신을 쏟아 음모를 꾸밀 수 없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요. 힘러는 지난 몇년동안 권력을 굳히고 완전히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축출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이제 한때는 실패했던 곳에서 성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기사단국은 힘러에게 주로 충성을 바치는 SS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혼자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원주민 독일 SS에는 다양한 협력자들이 참가합니다. 발로니엔인 레옹 드그렐이 이끄는 SS군단 발로니엔, 플라망인 베르트 에릭손이 이끄는 SS군단 랑게마르크,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드 라 마지에르가 이끄는 SS사단 샤를마뉴가 있습니다. 이 모든 파벌들은 서로를 경멸하고 권력 다툼을 벌이며,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SS국가지도자의 통치를 훼손시키겠다고 위협하기도 합니다. 성공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협력자들은 가까운 목줄로 묶여 있어야 합니다.
고맙게도 라이히 내 모든 사람이 적은 아닙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언제나처럼 힘러에게 충성하며, 더 중요한 것은 그는 게르마니아에 거주하고 독일 SS를 이끌며 히틀러의 귀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늙은 총통이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며, 위대한 지도자에게 어떤 끔찍한 비극이 닥칠 경우 하이드리히는 권력을 장악할 태세입니다.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이는 아리아인을 위한 SS국가지도자의 계획을 실현시키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일 힘러!
- 아인하이츠팍트의 기사단국
- 집권이념: 부르군트 체제(국가사회주의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힘러 추종세력)
- 경제:부르군트 체제/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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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국가
기사단국 내에서 우리가 완전한 통제권을 갖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영토를 떠나는 모든 정보는 기사단국의 통제를 받아 면밀하게 감시되고 매우 제한적입니다. 외국 방문객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일의 고위 관리에게만 일부 허가됩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으로 우리를 알 것입니다. 우리는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샤텐슈타트, 그림자 국가입니다.
정치력 획득: +40%
암호화: +20.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80.00%
저항군 목표: -100% -
그림자 경제
외부인에게 부르군트는 유지될수 없는 실험이 지속되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보여집니다. 그들은 우리의 종말을 숨가쁘게 예측하지만 그들은 노예의 진정한 힘의 원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타락한 국가들과는 달리, 부르군트인들은 열등인종들이 아리아인들에게 봉사하기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명한 지도 아래, 열등인종들은 그들의 주인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들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노예들을 더 찾아낼 뿐입니다.
사용 가능한 (공장)생산단위: +7
건설 속도: +4.5%
생산 효율성 증가: +4.5%
생산 효율성 유지: +4.5%
안정도: -5%
정치력 획득: -10% -
퇴폐 제거
사회에는 타락과 퇴폐라는 두 가지 큰 적이 있습니다. 두 적은 만지는 모든 것을 감염시키는 질병이며, 우리가 독일 전역에서 보아온 것과 같은 재앙을 가져올 것입니다. 조국이 길을 잃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병을 태워 없앨 것입니다. 퇴폐적인 프랑스어와 벨기에어는 완전히 파괴되어, 그들의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퇴폐의 모든 요소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제거될 것입니다.
월간 인구: -25.0%
안정도: -20.00%
공장 생산량: -20.00%
일간 순응도 획득: -0.25% -
세 영역
기사단국은 충성심에서 통일되어 있지만, 우리는 통일된 인종이 아닙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협력자들은 사를마뉴, 랑게마르크, 발로니엔과 같은 몇몇 무장친위대 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의 행정 및 국내 스파이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군역과 노예, 완전한 전멸 중에 그들은 군역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미워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사랑보다는 오직 두려움만을 요구합니다.
사단 조직력: +1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10.0%
- {{{#!folding 플레이 요소
- 노동력을 관리하십시오. 기사단국 영토 내에서 보안 경찰과 숙련공 간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유지하십시오.
- 무장친위대 내에서 도사릴지도 모르는 반역자에 대한 조사를 실행하십시오.
- 세계 계획을 시작해 세계 열강들 사이에 혼란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하지만 대가가 필요할 것입니다.
-
{{{#!folding 내각
하인리히 힘러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독재자: 정치력 획득: +10%
하인리히 힘러는 1923년 뮌헨 폭동까지 참여했을 정도로 수십 년간 나치당의 충실한 당원이었습니다. 정부 전복 시도 이래로 몇 달간 지속된 독일의 실패에 힘러는 격분했으며 환멸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의 신념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전후의 의열이 가시고 거창한 계획들이 독일 경제에 압박을 주기 시작하자 힘러의 신념은 흔들렸습니다. 경제가 붕괴하고 게르마니아의 정부가 그것을 해결할 길이 요원해 보이자 그의 신념은 불안정해졌습니다. 소련 잔존 세력들이 모스크바 수복 목전까지 왔을 때, 그의 신념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음모 혹은 연합군의 방해공작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독일의 등을 찌르지 않았으니까요... 나치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힘러는 나치당이 끝내 타락했으며 안에서부터 독일을 갉아먹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을 그 자체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힘러의 의무 - 아니, 그의 소명이었습니다. 파리에서부터 게르마니아까지 그리고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는 동부의 A-A전선까지, 무장SS부대는 히틀러를 실각시키고 독일의 방향을 바로잡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음모에 대한 첩보를 사전에 입수한 슈파이델이 맞불 작전을 시행하면서 음모는 초장에 실패하였습니다.
힘러의 계획이 누설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십여 개의 사단이 생포되었으며 SS의 파멸은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드물게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에, 힘러를 죽이는 것은 곧 내전을 의미함을 깨닫고 그에게 게르마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영토(부르군트 SS 기사단국)를 내주어 독일 정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여습니다. 힘러는 이를 마지못해 수용했고 독일 내 SS의 지휘권을 그의 충실한 부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맡긴 뒤 노르트파리스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힘러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행해진 불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 고틀로프 베르거 정부수반
-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외무장관
- 오스발트 폴 재무장관
- 제프 디트리히 내무장관
- {{{#!folding 지휘관
- 제프 디트리히 원수, 4, 4/3/4/2
- 레옹 드그렐 원수, 3, 3/2/2/3
- 구스타프 크루켄베르크 원수, 2, 1/4/1/3: 무장친위대 장군. 현실에서는 프랑스인 부역자로 구성된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의 사단장으로 베를린 전투에도 참전했다.
- 테오도어 아이케 원수, 2, 3/1/2/2
- 오토 스코르체니 장군, 4, 4/2/4/3
- 프리츠 클링겐베르크 장군, 3, 4/1/3/2: 무장친위대 장군. 현실에서는 유고슬라비아 침공 당시 소규모 순찰대만 이끌고 강을 건너 베오그라드를 점령한 공을 세워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 받았다. 전쟁 말기에는 제17SS기갑척탄병사단 '괴츠 폰 베를리힝겐'의 사단장을 했다.
- 앙리 페네 장군, 3, 3/2/3/2: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 소속 장교. 현실에서는 베를린 전투에서 세운 공으로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 받았다.
- 에드가 푸아우트 장군, 3, 3/2/3/2: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 소속 장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은 베테랑이었지만 프랑스인 부역자로 이루어진 의용군 반공 프랑스 의용군단의 지휘관으로 있기도 했다. 이후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의 사단장으로 복무하다 1945년 포메른에서 전사.
- 베르트 에릭손 장군, 3, 4/3/3/2: 현실에서는 벨기에의 네오 나치 지도자였던 인물.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으며 전후에는 플라망 투사단이라는 극우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 조세푸스 프랑수아 장군, 3, 2/3/3/3: 제27SS의용척탄병사단 '랑게마르크' 소속 장교.
- 장 바솜피에르 장군, 2, 2/2/2/1: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 소속 장교. 현실에서는 밀리체의 전신격 되는 극우 민병대에 있다가 반공 프랑스 의용군단을 거쳐 샤를마뉴 사단에 몸 담게 되었다. 1948년 프랑스 당국에 의해 총살.
- 레옹 고티에 장군, 2, 1/1/1/1: 프랑스인 친위대 장교. 현실에서는 국민전선 당원이기도 했다.
- 장 드 보겔라 장군, 2, 1/2/2/2: 프랑스의 극우 친독 민병대 밀리체 단원. 이후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가 창설되자 거기에 들어갔다.
- 마크 '생루' 오지에 장군, 2, 2/2/1/2: 다른 세계에서는 프랑스를 원시 국가로 되돌리려고 하시는 바로 그 분. 현실에서는 LVF와 제33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의 일원으로 독소전쟁에 참전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작가 활동을 했다.
- 자크 코레즈 장군, 1, 1/1/1/1: LVF 단원이었던 프랑스인 부역자. 현실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로레알 미국 사업 총괄이 되지만 여기서는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 {{{#!folding 제독
- 한스-에리히 보스, 3, 3/2/2/3: 해군 제독. 현실에서는 프린츠 오이겐 함장을 맡기도 했다. 전쟁 막바지에는 해군 연락장교로 총통엄폐호에서 복무했으며 이 때문에 자살 직전의 히틀러를 본 얼마 안되는 사람이 되었다.
- 지크프리트 폰 포르슈트너, 3, 3/2/3/2: U-402의 함장으로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자. 현실에서는 1942년 북대서양에서 미군 유도어뢰에 의해 휘하 승무원 전원과 함께 전사.
- 게오르크 라센, 2, 2/1/2/2: U-160의 초대 함장이자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자. 그 전에는 영국 항공모함 커레이저스를 격침시킨 U-29의 함장을 맡기도 했다.
- 헤르베르트 쿠피슈, 2, 2/2/1/2: 여러 잠수함의 함장직을 거쳐간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자. 1943년 북대서양에서 마지막으로 함장직을 맡은 U-847이 미군 유도어뢰에 격침되며 휘하 승무원 전부와 함께 전사.
- 클라우스 숄츠, 2, 3/1/2/1: U-108의 초대 함장이자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자. 현실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독일 연방군 해군 장교로도 복무했다.
- 테오도어 크랑케, 2, 1/1/3/2: 해군 제독. 현실에서는 아트미랄 셰어의 함장으로 통상파괴전을 수행했다. 이후 총통사령부 해군 연락장교 자리를 거쳐 서 유럽 해군부대 총사령관 직위까지 올랐다.
- {{{#!folding 주요 도시
힘러의 정권은 파리 시민들이 통제하는 도시의 모든 부분을 철로 짓밟았고, 그 자리를 게르만 문화에 대한 잔혹한 기념물과 도시의 모든 건물과 집에 비치는 초소와 탐조등의 끝없는 확장으로 대체했습니다.
모든 아이가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로 세례를 받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피해는 점점 더 포괄적이고 되돌릴 수 없게 됩니다. 신 질서의 끝없는 악몽을 구현하는 곳이 유럽에서 단 한 곳이라면 노르트 파리스입니다.||
이 도시는 또한 더 나은 시대에 로마 유적에서 고딕 양식의 대성당, 아르 데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아름답고 다양한 건축물로 유명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훨씬 더 사악하고 현대적인 부르군트에 의해 지워졌습니다. 그 아름다운 고대 건물은 공장을 위해 허물어지고 더럽혀졌고, 한때 맑고 푸른 하늘은 스모그로 질식했으며 사람들은 노예보다 나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뒤틀린 아이러니한 운명의 획으로 부르고뉴의 요람은 상속자에 의해 부서졌습니다.||
이 도시는 먼 과거 갈리아인들이 이 땅을 다스렸던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수년에 걸쳐 교역이 드나들며 도시를 부와 문화로 풍요롭게 한 곳이였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거대한 빛 축제가 열렸고, 매년 12월 이 행사로 도시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시네마토그래프가 발명되어 미디어를 영원히 변화시켰습니다.
리옹은 이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 고대 유산은 검은 태양의 이글거리는 불빛 아래 나날이 불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더 이상 행복한 축제의 더 좋은 날에 도시의 불빛을 볼 수 없습니다. 힘러와 그의 사냥개들은 이 도시를 깎아내고 그 안에 암울한 둥지를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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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 {{{#!folding 멸망 문구
시체 사이를 거닐어야 하는 것은 위대한 이의 저주이다.}}}
- [이벤트 : 10월 5일 목요일]
- > 내 이름은 샤를 마크롱(Charles Macron)이다. 나는 프랑스 공화국의 시민, 사회민주당원, 기독교인이자 로도모 산업 노동 수용소의 수감자다.
나는 일주일 전에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5번 구타당했다. 내가 이 숫자를 말하는 것은 내 사정을 불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달리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동료 죄수들에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간의 휴식을 얻기 위해 나를 보고할 것이고, 그러한 개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폭동으로 이어지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아내 클라라에게는 말할 수 없다. 아내가 지금보다 내 안전을 더 걱정하게 해서 실수를 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들 안나, 루이에게 말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나는 이 저주받은 장소에 도착한 이후로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SS 부대는 음식으로 뭐가 나오든 5시간만 자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공장은 언제나 돌아가고, 옷 더미 위에 머리를 얹어 놓고도 나는 공장 소리에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만약 누군가 이 일기를 읽게 된다면, 그 똑똑한 관찰자는 내가 이 일기의 재료를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SS가 역사를 통틀어 다른 폭군들처럼 내 마음에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내 깃펜과 종이를 가져간 걸까? 다행히 나는 보직이 변경되었고, 이때 이 물건들을 훔칠 수 있었다. 물건을 훔치며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 내가 잡히면 고문받고 죽을 거라는 걸 안다. 아마 가족들 앞에서 당하겠지. 내 죽음이 임박했다. 나는 그들이 준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 때, 화장실을 갈 때, 너무 오래 눈을 감았다고 곤봉으로 나를 때릴 때, 내 내장에서 나의 죽음을 느낄 수 있다. 머지않아 클라라는 나를 따라올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 비참한 기사단국의 붕괴를 보고, 그들만의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이 글을 써서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지만, 우리를 그렇게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반격할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인리히 힘러의 슈츠슈타펠이 다스리는 국가. 수도는 프라이그라프샤프트(프랑슈콩테)의 난치히(Nanzig)이다. 이후 프랑스-부르군트 전쟁에서 승리하면 센 강을 경계로 분단된 파리의 북쪽인 노르트파리스가 된다.[16] 국토는 벨기에와 프랑스 북동부 일부 지역을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17]
1950년대에 독일이 경제 위기를 겪자 힘러는 경제 위기가 독일의 퇴폐화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해 그 대안으로 '부르군트 체제'라고 불리는 새 사상을 만들었다. 부르군트 체제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이들을 배제하고 모두가 하루에 18시간 동안 가혹한 노동을 하는 1984같은 체제였다.[18] 힘러는 이러한 금욕주의적이고 극단주의적인 체제로 아리아인의 퇴폐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러시아 전쟁 당시 SS 쿠데타로 독일에 이 사상을 퍼뜨리려고 했으나 이를 미리 감지한 한스 슈파이델이 선수를 쳐 그대로 체포된다.
하지만 힘러를 처형하면 무장친위대와 독일 국방군 간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히틀러는 힘러를 부르군트 지역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혼자 놀게 하여 중앙에서 멀리 내보낸다. 힘러가 반항적인 프랑스인들과 벨기에인들을 진압하는데 여력을 쏟게 만들려고 했던 것. 그러나 이후, 히틀러가 사망하고 진작에 히틀러가 점찍어둔 권력 계승의 2위 자리에 있던 괴벨스는 암살[19], 보어만과 괴링, 하이드리히와 슈페어 네 명 중 한 명을 지목하자 이미 보수주의자와 국방군, SS와 개혁주의자로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던 독일국은 내전이 발발해 찢어지면서 이 조치는 힘러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힘러가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명목 상으로는 독일의 일부인 부르군트를 힘러는 오직 아리아인만을 위한 국가로 바꿔나간다. 힘러 휘하의 SS와 그 가족들을 제외한 부르군트의 대부분의 주민들은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최고지도자에 대한 개인 숭배와 인종주의 역시 독일에 비해 훨씬 극단화되었는데, 초반 중점 이벤트에서 나오는 '나는 아리아 인종의 지도자와 구세주이신 하인리히 힘러, SS국가지도자께, 영원히 순종할 것이며, 언제나 혈통과 인종, 조국의 이름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치리라.'와 같은 충성 맹세를 하는 장면, 산모가 SS 가족으로 추정되지만 신생아에게서 몽고증의 징후가 보인다고 인종법에 따라 즉시 안락사하는 이벤트가 그 예시이다.
전 국토 내 주요 문화가 국가가 강제한 복종과 억압이 강제되는 부르군트 "문화"가 되어있다.
부르군트에서 피지배민들은 독일어를 기반으로 한 크레올 또는 피진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외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는 수용소에서나 들을 수 있으며 그 외에서 말하면 반역죄로 처형된다. 더 나아가 반역을 '예방'하기 위해 반역자가 나오면 주변 사람들도 처형된다. # 수용소 내부에서는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장례식과 장송곡, 가톨릭 문화마저 완전히 금지되고 사보타주를 방지하기 위한 극단적인 폭력 처분이 이어진다. 이래서야 국가가 유지될지 의문이지만 힘러는 부르군트를 오래 유지할 생각이 없다. 그는 게임 초반부터 카우카지엔으로부터 경제지원이 끊긴 뒤 힘러의 몇 안되는 친구인 경제장관 오스발트 폴은 힘러가 감당할 수 없는 상당한 양의 지출을 승인한 것을 비판하며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하자 이를 조작된 증거라고 주장한 뒤 불충이라며 숙청해버리고 후임으로 '결점이 없는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냐'고 주장하는 프란츠 노바크를 앉혀버린다. TT 패치 이후로는 해당 이벤트와 함께 경제 UI 창에 물리적으로 총알이 박혀서 기능 불능이 되어버리는 변화도 포함.
현실의 북한처럼 좀처럼 알려진 게 없는 부르군트에 대해 독일인들은 그냥 제국의 일부 정도로만 인식하고 OFN 등 반 나치 세력에게도 SS가 독립적으로 지배하는 '더 과격해진 나치'라는 것 이상은 잘 알지 못한다. 다른 나라가 부르군트의 국가 중점을 보려고 하면 죄다 STRENG GEHEIM(일급 기밀)이라고만 떠서 내용을 알 수 없을 정도다. 대충 감이 왔겠지만 이들은 이 게임의 실질적인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땅이 아닌 프랑스와 벨기에 땅에 세워진 국가기에 세 개의 현지인 무장친위대를 부린다. 왈롱 출신 레옹 드그렐이 다스리는 발로니엔 SS 군단, 플란데런 출신 베르트 에릭손이 다스리는 랑게마르크 SS 군단, 프랑스 출신 크리스티앙 드 라 마지에르가 다스리는 샤를마뉴 SS 사단이 바로 그것이다. 부르군트로 플레이 할 때 이 세 부대의 통제에 실패하면 부르군트 기사단국이 그대로 해체된다. 그 외에도 잠재적인 국가 위협인 누군가가 이끄는 의문의 레지스탕스 조직 '붉은 양귀비' 또한 존재한다.
세 SS 군단 중 발로니엔의 드그렐은 힘러가 프랑스계인 왈롱 문화를 말살하는데 반발해 무기들을 몰래 빼돌리는 등 세 지휘관 중 유일하게 힘러와 반목을 벌이는 중이다. 독립 벨기에를 원하던 드그렐은 부르군트가 세워질 때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반부터 힘러에게 조사를 받거나 숙청당하는 컨텐츠가 있다.[20] 보통 프랑스-부르군트 전쟁이 시작되면 드그렐이 사라지고, 발로니엔 군단의 지휘관으로 OTL에서 나치 부역자이자 민족 볼셰비스트였던 벨기에인 장 프랑수아 티리야르가 임명된다.
마지에르는 드그렐처럼 대놓고 저항하지는 않지만 몰래 프랑스 국수주의적 그림 전시, 독일에서 금지된 진미, 프랑스 역사 강의가 이뤄지는 비밀 프랑스 사교계 파티에 참석해 부르군트식 식단이 아닌 치즈와 와인을 탐닉하거나 매춘부를 불러 난잡하게 노는 등 힘러가 혐오하는 퇴폐와 타락을 일삼고 있다. 조사를 계속하면 심지어 아예 몰래 마약 생산 시설을 차려 밀매하는 것까지 알아낼 수있다.
독일이 내전에 빠지면 그 틈을 타 핵실험을 벌이고 프랑스를 침공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퇴폐적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건축물과 예술품이 철저히 파괴되고 브루탈리즘 방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된다.
오토 스코르체니가 장군 겸 첩보원으로 있으며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도 외무장관[21]으로 있지만 프랑스 침공을 반대하자 숙청된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방첩기관의 중령으로 복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 【스포일러】
- 힘러의 최종 목표는
핵전쟁을 일으켜 지구상의 모든 열등인종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리아인이라면 핵전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거라고. 힘러 본인은 스스로 아리아인이 아니라고 생각해 대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르군트 국가 유지에 별 관심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22] 이들은 핵전쟁이 곧 공멸인 냉전 컨셉 게임에서 핵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승리 조건인 독보적인 미치광이 국가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르군트는 전 세계에서 공작 -글로발 플라넨(세계계획)- 을 벌이고 있고, 과거에는 이 작전을 실행하는 중점이 있었다.
- 부르군트의 외교 공작 (구버전)
- * 글로발플레넨
아들러 (독일)
- 아돌프 히틀러를 죽일 뻔했던 암살자는 사실 일본 육군 헌병대가 아닌 부르군트에서 보냈다. 부르군트가 게임 시작하고 처음에 있는 다섯 번째 중점을 찍어야 독일에 히틀러 습격이벤트가 뜬다. 히틀러 습격 이벤트가 1월 25일 경에 뜨는 이유다.
- 독일 내전이 발발하면 SS 출신인 하이드리히를 지지해 지원을 보내고 하이드리히가 패배하면 남은 세력 중 괴링의 뒷배가 되어 주는 쇠르너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해 괴링을 지지한다.
- 내전에서 하이드리히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총통이 될 경우, 총통의 체제를 약화시키는 공작을 벌인다. 예를 들어서 괴링이 집권하면 쇠르너의 파벌에 힘을 실어주고, 슈페어의 독일에선 SS 친위대를 4대 대기업들의 경비로 위장시켜 잠입해 노예반란을 유도한다.
- 글로발플레넨 콘도르 (이베리아)
- 두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혼합되어 두 지도자의 통치를 받는 형태인 이베리아를 경멸해 멸망시키려고 한다. 연합의 안정도를 낮추어 이베리아 전쟁이 발발하도록 유도한다.
- 이베리아의 복잡한 관료제를 이용해 자금이나 자원을 횡령해온다.
- 이베리아의 두 카우디요 중에서는 살라자르를 지지해 이베리아의 관료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고 아프리카 따위에나 신경쓰게 만드려고 한다.
- ETA, CNT 등 이베리아의 각종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한다. 특히 아스투리아스 노동 대대는 사실상 부르군트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 글로발플레넨 볼프 (이탈리아 세력권)
- 글로발플레넨 베어 (러시아)[23]
- 분열된 러시아의 군벌 중에서는 적당히 세력도 있어 러시아 통일과 독일과의 핵전쟁에 도전해볼만하고 사상적으로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인 편이라고 판단해 뱟카를 지원한다. 자금, 인력 등의 지원을 보내고, 특히 비밀경찰격인 오흐라나에 중점적으로 부르군트 요원들을 침투시킨다.
- 서러시아 혁명전선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적대하고 주코프와 투하쳅스키 사이의 불화를 부채질한다.
- 민주주의를 경멸하기 때문에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로 혼란스러운 코미의 정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코미의 타보리츠키 계파도 국가사회주의를 내세우지만 아리아인 형제단과 같은 이유로 지원하지 않는다.
- 아리아인 형제단은 통일을 노리기에는 기반이 너무 미약해 지원 대상이 아니고, '운터멘쉬 주제에 아리아인 코스프레하는 미친 놈들'로 보기에 지역 내의 저항군을 무장시킨다.
- 배신자 안드레이 블라소프를 처벌하기 위해 사마라 내 세력이 미약한 옥탄을 지원해 쿠데타를 유도한다.
- 글로벌플레넨 푸마 (미국)
- 미국 정계와 경제계, 기업들에 요원들을 가능한 많이 침투시킨다. 사실 부르군트의 자금줄은 미국 경제에 침투해서 위장 사업들을 벌여서 얻는 수익이다. 부르군트에 침투한 독일 정보부의 보고에는 돈을 쓸어담는 수준이라고 묘사된다.
- 미국 대통령이 정상적이라면 유언비어 유포나 언론을 통한 가짜뉴스 등으로 가능한 국정 운영을 방해한다.
- 남부 인종주의자들을 자극하고 폭동을 선동한다.
- 미국 우파들을 비밀리에 지원한다. 특히 부르군트와 사상적으로 유사한 요키를 눈여겨 보고있다.
- 미일간 전쟁을 조장 한다. 인도네시아 해역에 침투한 잠수함으로 일본 구축함 토사호를 침몰시키는 공작을 하고 미국의 짓이라고 생각하게 유도한다.
- TT 패치 이후 중점
패치 이후 설정이 변경되며, 히틀러 암살 시도나 하이드리히 지원 등 초기 포커스를 제외한 세계계획은 삭제되었다.
1단계: SS국가지도자 힘러의 대의에 따르는 충성스럽고 순수한 아리아인들을 결집해 퇴폐에 찌든 독일을 무너뜨리기 위해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다.
2단계: 히틀러가 사망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자 아리아인 내부의 결점을 제거하고, 핵 연구를 하며, 독일 내부의 하이드리히 세력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다. 또한 불충의 징후가 보이는 드그렐을 조사한다. 이후 그를 에릭손으로 대체하고 발로니엔을 파괴할지, 드그렐을 압박하여 그에게서 완전한 충성 서약을 받을지 선택한다.
3단계: 프랑스를 공격해 영토를 확장시키고 SS 파벌인 하이드리히에게 의용군과 무기, 연료와 헬기를 보내며 지원한다. 하이드리히가 패배할 시, 잠재력을 낭비한 겁쟁이라고 그를 힐난하며 통행로를 끊으며 독일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킨다. 핵무기를 밀수하고, 노예들을 고의적으로 해방시켜 독일을 혼돈에 빠트린다. 하이드리히파 일부 장교들과 엘리트들은 기꺼이 맞이할 것이지만, 순수하지 못한 경우에는 즉시 사살되거나 노예가 될 것이다.
4단계: 마지에르의 사를마뉴 사단을 조사하면서 전쟁으로 점령한 프랑스 영토를 부르군트 '문화'로 변형시킨다. 프랑스어 지명은 독일어로 변경될 것이고 프랑스 건축물들은 파괴되어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재탄생될 것이다. 로도모 수용소를 확대해 숙련공들을 착취한다.
5단계: 프랑스 문화를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 새 역사 교육을 시킨다. 아리아인에 해당되는 골족과 자랑스러운 역사인 프랑크 왕국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며,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근대사는 타락에 물든 프랑스의 쇠퇴 증거이므로 재빨리 넘어가고, 독일이 프랑스를 '해방'시킨 제2차 세계대전기부터 다루는 내용이다. 그러고는 부르군트 프랑스인을 완전히 동화시키거나, 열등인종 계급으로 내버려두는 등의 조치를 시행한다.
6단계: 우크라이나발 곡물의 수입이 중단되자, 부르군트는 기근에 시달린다. '중요한' SS를 살리기 위해 식량 배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며, 브루탈리즘 건물을 해체하고 농경 시설을 건립한다.
- 【TT 패치 스포일러】
- >중점 : 구름에 가려진 흑태양
진실은 부정하거나 숨길 수 없는 법입니다. 기사단국은 약해졌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대정전 이후에 재건을 진행하고 있더라도, 진정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SS-국가지도자께서는 국가가 무정부상태로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가 고립되었고 경멸받는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닙니다.
SS-국가지도자는 건재하시고, 그의 비전은 명료합니다. 기사단국이 멸망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비록 겁쟁이들이 SS에서 도망치고, 반역자들이 정부에 들끓으며, 폭도들이 우리의 땅을 약탈해도, SS-오르덴슈타트 부르군트는 오늘 몰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사단국이 내일 몰락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여섯 단계의 포커스를 완료하고 정치 포커스에 존재하는 내부의 적인 샤를마뉴, 발로니엔, 개양귀비 저항군을 숙청하거나 토벌하는 것을 모두 완료하면, '최종 승리' 하는 이벤트가 출력되면서 잠깐 동안 힘러는 승리를 만끽하며, 농촌 지방의 인력 증원과 불순분자 숙청을 위해 군대를 파견한다. 그러나 군대가 파견되자마자 거대한 폭발소리와 함께 부르군트 전역이 정전 사태에 휘말리게 되고, 그와 동시에 수용소 도시가 된 로도모에서 노예 봉기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면서 부르군트의 봄 슈퍼이벤트가 확정적으로 발생한다.
대규모 폭동과 사보타주에 수용소의 병력은 몰살, 군대는 저항군을 처리할 물자, 사기를 모두 잃어버리고 부르군트 전력이 혼돈에 빠지며, 이후 들어오는 보고는 지금까지 보고받은 사실이 가짜 보고였고, 노예 노동자가 수만 단위로 죽어나가는등 이미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에 다다른 끝에 부르군트의 경제는 붕괴, GDP는 폭격 당하는 아프리카, 러시아 황무지보다도 아래로 떨어졌다는 진실과 남은 식량의 비축마저도 모조리 고갈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된다. 이 이후부터 오스발트 폴의 처형 이후 닫힌 경제창이 다시 열리는데 경제 상황이 엄청나게 암울하다.
자신이 망상 속에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힘러는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이 책임을 기존 내각진에게 돌려서 내각진 전원을 즉결 처형하고, 새로운 내각진으로 충성을 보여주었던 아이히만과 랑게마르크 군단의 에릭손을 임명하지만, 그 둘 마저도 식사자리를 같이하며 힘러가 대인기피증 증세를 보이며 건강이 악화되었음을 예견하며 힘러의 초상화가 늙고 뚱뚱한 추한 모습으로 변경된다. 이후 힘러를 죽인 뒤 둘의 권력 투쟁을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이벤트가 출력되며 부르군트의 전 컨텐츠가 종료된다.
부르군트의 몰락은 중점 상으로는 일단 붕괴를 틀어막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실제 국가유지력에서도 영향을 끼치는지, AI가 조정하는 경우에도 70년대 초가 되면 붕괴하기 십상이며, 독일이 흑색 상황으로 선전포고/프랑스가 미국 및 OFN에 가입하여 부르군트를 침공, 점령하면서 프랑스에게 땅을 돌려주거나, 북프랑스 국가판무관부가 설립되고 파리 일대가 비무장지대로 남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패망한다. 이 지경까지 되면 핵무기를 보유해도 투하할 능력이 없어서 침략당해도 핵전쟁이 터지지 않는다.
TT 패치 이후 ' 사악하지만 음모를 꾸미고 행하는 것에 유능한 그림자 국가'에서 ' 과대망상적이면서 무능한 독재 국가'로 설정이 변한 것이다.
다만 2024년 티저 예고에서 부르군트 내각이 대게르만국 쪽으로 대거 이동하였는데 이것이 추가된다면 부르군트 자체가 사라지거나 세력 다툼 때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수준으로 나올 수도 있다.
1.4.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
짧게 플레이 가능- 유니티-팍트의 통합 국가판무관부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동부 지부)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모범 식민지
우리는 독일의 모범적인 식민지입니다! 독일화가 잘 된 곳은 여기 말고 어디에도 없고, 주민들이 이렇게 훌륭한 목적과 추진력으로 단결된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세계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은 우리의 위대한 업적과 프로젝트,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합에 경탄하고 있으며 유럽의 나머지 지역을 괴롭혀 왔던 파르티잔들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운은 우리의 천년제국과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안정도: +10.00%
건설 속도: +5.00% -
흔치 않은 고요함
빌헬름 카이텔이 암살되고 그후 50년대에 일어난 위기 이후, 우리는 그 지역의 원주민 파르티잔들과 아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힌리히 로제의 성공적인 통치 덕분이든 아니면 여려 파르티잔 단체의 음모 때문이든, 우리가 아는 것은 지금 현재 우리 국가판무관부는 드물게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 조직력: +5.0%
전쟁 지지도: +8.00%
- {{{#!folding 플레이 요소
- 라이히가 서서히 붕괴하는 가운데 오스트란트 내 영향권을 놓고 싸우십시오.
- 개혁주의자와 친위대를 이용해 국가 내 소요사태를 처리하십시오.
- 오스트란트를 미래로 이끌어 "모범 식민지"라는 위치를 지켜내십시오.
- {{{#!folding 내각
-
힌리히 로제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독일 국가판무관부들을 봐도 별로 인상 깊은 광경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이 결딴나고 있거나, 라이히에 충성스럽지 않거나, 그냥 수익성 없는 지옥 구덩이거든요. 하지만 그런 시끄러운 종속국들 가운데서 한 국가가 독일의 진정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는 제일 안정적이고 수익성 있고, 어느 정도 독일화 된 국가입니다. 이 모든 것으 한 사람, 힌리히 로제 덕분입니다. 대전쟁 참전용사이며, 당 초기부터 활동한 열성 당원이며,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의 지방장관인 그가 국가판무관에 임명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오스트란트를 느슨하게 관리하며 해야 할 일 대부분을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부하들에게 위임했습니다. 이 전략은 많은 결실을 보았습니다. 오스트란트는 제일 독일화 되고, 제일 수익성 있고, 제일 안정적인 국가판무관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로제가 상징적인 최고 권력자로서 부하들을 통제하는 한 이 체제는 잘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로제의 나쁜 건강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로제는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났습니다. 그와 함께 결속이 약해졌습니다. 부하들도 이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로제의 느슨한 손에서 힘이 계속 빠지며 한때 충직했던 부하들은 이제 침을 흘리며 로제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합니다.
드렉슬러, 슈탈레커, 마이어란드루트가 서로 다투고, 코브너의 공격은 점점 더 대담해집니다. 비투쉬카와 예켈른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음모를 꾸밉니다. 이 체제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오스트란트 사람들은 로제가 건강을 회복하거나 타협을 통해 후임이 선출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돈과 피가 리가 거리에 넘쳐 흐를 테니까요.}}} - 힌리히 로제 정부수반(국가사회주의, 조용한 일꾼)
- 한스 크라머 외무장관(국가사회주의, 변증의 서기)
- 안드레아스 마이어란드루트 재무장관(자유주의, 행정의 천재)
- (공석) 내무장관
- {{{#!folding 지휘관
- 니콜라우스 하일만 원수, 4, 3/2/1/2
- 막시밀리안 폰 에델슈하임 원수, 4, 4/3/3/2
- 카를 플라게 원수, 3, 1/2/2/1
- 오토 하인리히 드렉슬러 원수, 3, 5/2/3/1
- 프리드리히 예켈른 원수, 3, 4/2/3/1
- 프란츠 바케 원수, 3, 3/2/3/2
- 에른스트귄터 바데 원수, 2, 2/1/2/2
- 빌헬름 호젠펠트 장군, 3, 1/2/1/2
- 오스카후베르트 덴하르트 장군, 3, 3/2/3/2
- 하인리히 베르크만 장군, 3, 2/3/1/2
- 아돌프 엑스 장군, 3, 2/1/3/2
- 막스 리트케 장군, 2, 1/3/4/1
- 게르트 바스티안 장군, 2, 2/2/3/1
- 권터 파페 장군, 2, 3/4/1/2
- 볼프 하게만 장군, 2, 2/3/1/3
- 프란츠 아우구스베르거 장군, 2, 3/2/2/1
- 하인츠 브란디트 장군, 2, 2/3/2/3
- 칼리스 로브 장군, 1, 2/1/2/1
- 요제프 몰 장군, 1, 1/1/1/1}}}
- {{{#!folding 제독
- 롤프 톰센 제독, 3, 3/2/2/2
- 클라우스 폰 트로타 제독, 3, 3/4/2/2
- 카를아돌프 첸커 제독, 3, 2/4/3/3
- 베르누트 클루크 제독, 2, 1/2/1/2
- 볼프강 뤼트 제독, 2, 3/2/3/2
- 프리드리히 켐나데 제독, 1, 1/1/1/1}}}
- {{{#!folding 주요 도시
-
민스크
독일의 침략으로 동유럽이 겪은 절대적인 황폐함 속에서도 민스크는 대부분의 도시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한때 상당한 규모였던 유대인 공동체는 근절되었고 나머지 인구는 엄청난 빈곤과 억압에 직면해 있습니다. 리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여전히 상대적으로 독일화되지 않은 이 곳의 정치 권력의 대부분은 점점 더 야심 찬 벨라루스 협력자 계급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
리가
- 국가소개
- >독일국은 유럽의 지도자로, 국가판무관부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식민지들은 프라하부터 파울루스부르크까지 존재하며, 각각의 국가판무관에 의해 통치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들은 라이히의 충성스런 속국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충성심과 국가 통제력은 약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혼란상 속에서 특이한 출발을 한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는 현재 라이히의 가장 성공적인 국가판무관부가 되었습니다. 국가판무관 힌리히 로제가 이끄는 오스트란트는 라이히의 가장 번영하는 국가판무관부이며, 총독부에 이어 두 번째의 독일화 진척도와 안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로제의 리더십과 관리들, 그리고 주민들의 높은 시민의식 덕분이죠.
하지만 라이히가 혼란에 빠지면서, 오스트란트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힌리히 로제의 건강은 나빠지고 있으며, 그의 수하들은 벌써부터 권력투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들 각각은 본국 총통의 잠재적 계승자들을 옮겨 놓은 듯 한데, 프란츠 발터 슈탈레커는 보수적인 보어만파이며, 오토 하인리히 드렉슬러는 군국주의 괴링주의자이며, 안드레아스 마이어-란드루트는 개혁주의 슈페어파이며, 프리드리히 자켈른은 SS의 지도자이자 부르군트 체제의 열렬한 신봉자입니다. 여기에 더해, 유명한 파르티잔 테러리스트 아바 코브너 또한 국가판무관부의 위협이며 베일에 가려진 부역자 미할 비투쉬카 또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국가판무관부에 있어 다행히도, 로제의 심복 카를 지그문트 리츠만이 이미 라이히으로부터 후계자에 선정되었으며, 내부 상황이 어떻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계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남은 문제는 저항과 무질서의 마지막 불꽃을 꺼트리는 것과, 오스트란트를 완벽한 모범 식민지로 만들어, 평화롭고 안정화된 독일화된 파라다이스로 탈바꿈시키는 것입니다. 본국의 문제 또한 우리와 비슷하게 해결되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문제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지도 모릅니다...
본국의 문제 또한 우리와 비슷하게 해결되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문제는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발트 3국과 벨라루스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판무관부. 국가판무관은 실제로도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이었던 힌리히 로제.
로제는 국가판무관부를 느슨하게 경영하며 해야 할 일 대부분을 충직하고 능력있는 부하들에게 맡겼다. 그 결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는 다른 국가판무관부들과는 달리 충성스럽고, 제일 안정되었으며 짭잘하고 독일화가 잘 된 모범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로제의 건강이 나빠지며 부하들 사이에서는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1.4.1. 오스트란트 내전
티저 예고[중기간]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로제가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다. 독일 본토에 나가있던 유력 후계자 카를지그문트 리츠만이 후임 국가판무관으로 임명되지만 오스트란트로 귀환하던 중 누군가가 비행기를 격추시켜 사망한다. 이후 누가 이 땅을 다스릴 것인가를 놓고 여섯 세력 간의 내전이 벌어진다.
다음은 오스트란트 내전에 참전하는 세력이다.
-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
- {{{#!folding 멸망 문구
The status quo lies destroyed.
상황 유지는 좌절되었습니다.
}}}상황 유지는 좌절되었습니다.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동부 지부)
-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의 후계 세력. 실제 역사에서 아인자츠그루펜 A의 지휘관이었던 프란츠 발터 슈탈레커가 잡는다. 슈탈레커는 TNO 세계에서는 오스트란트 친위대 지휘관이었이지만 친위대 쿠데타 당시 게르마니아에 충성을 바쳤기에 로제의 개인 비서가 되었다. 노예제에 부정적인데, 이게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려서가 아니라 운터멘쉬들에게는 라이히를 위해 일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해서다.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는 로제를 계승하는 입장이며, 독일 내전 세력 중에서는 보어만을 지지한다.
- 레틀란트 총괄판무관부
- {{{#!folding 멸망 문구
The talons have been clipped.
독수리의 발톱이 부러졌습니다.
}}}독수리의 발톱이 부러졌습니다.
- 집권이념: 군정 나치즘(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동부 지부)
- 라트비아 총독인 오토하인리히 드렉슬러가 이끄는 세력. 오스트란트 내 군국주의자 세력으로 드렉슬러는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에 개입해 모스코비엔이 놓친 러시아인 정착지를 밀어버리자는 주장이나 폴란드 총독부를 공격해 폴란드인 저항운동을 끝내버리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럴 깡은 없는, 정석적인 치킨호크. 그래서 오스트란트 공무원들은 화를 잘 내지만 맞서 싸울 용기는 없는 찌질이를 드렉슬러라고 부르며 놀린다고 한다.
- SS-상급지부 오스트란트
- {{{#!folding 멸망 문구
The sun sets on the SS.
친위대 위에 뜬 해가 집니다.
}}}친위대 위에 뜬 해가 집니다.
- 집권이념: 스파르타주의(국가사회주의, SS-오스트란트 상급지구)
- 프리드리히 예켈른이 이끄는 세력. 그는 오스트란트 친위대를 지휘하고 있는데, 이 동네 친위대는 주둔군에 대한 공격, 암살, 테러를 벌이며 오스트란트 내 유일한 합법 테러 조직이라는 기묘한 조직이 되었다. 독일 본국 내 SS 파벌을 대변하는 하이드리히를 질투하고 있는 모양.
- 통일동방연맹
- {{{#!folding 멸망 문구
The caged bird cries no more.
새장 속의 새는 더이상 울지 않습니다.
}}}새장 속의 새는 더이상 울지 않습니다.
- 집권이념: 과두정(가부장주의, 통일동방연맹)
- 발트 독일인 산업가의 아들인 안드레아스 마이어란드루트가 이끄는 온건파 세력.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의 경제적 성장을 이끈 기업가로, 슬라브 문화와 동유럽사에 매료되어 그의 밑에서 일하는 슬라브인 노예들과 대화하며 독일인과 슬라브인 모두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를 줘야한다고 주장하는 개혁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마이어란드루트를 곧 총살될 바보와 같이 취급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여러 혐의들을 피해가는 데 성공하였다. 오스카 쉰들러가 이곳에서 재무장관으로 있다. 슈페어가 내전에서 승리할 경우, 슈페어의 독일이 유일하게 협상할 수 있는 세력인 통일동방연맹을 도와 오스트란트를 통일하고 지도자 자리에서 내려온다. 현실에서의 마이어란드루트는 레나 마이어란드루트의 할아버지이자 2024년까지 생존 중인 장수인으로, 독일 패전 이후 서독으로 쫓겨났지만, 발트 지방에서 자랐던 경험 때문인지 슬라브 문화와 동유럽사를 전공했으며 1980년대에는 주 소련 서독 대사가 되었다.
- 벨라루스 중앙 위원회
- {{{#!folding 멸망 문구
A pauper's crown lies shattered.
빈민의 왕관이 좌절되었습니다.
}}}빈민의 왕관이 좌절되었습니다.
- 집권이념: 토착화된 국가사회주의(백루테니아 중앙위원회)
- 벨라루스인 부역자인 미할 비투쉬카가 이끄는 세력. 비투쉬카는 실제 역사에서 벨라루스인 부역자들로 이루어진 검은 고양이 부대를 지휘해 소련군 후방에서 정찰 및 사보타주 작전을 벌였다. 이후 행적은 전후 KGB 암살자들을 피해 서독으로 망명하여 2006년 독일 뮌헨의 요양원에서 사망하였다. 하지만 MI6, MGB[24]에 따르면 1945년 1월에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 TNO 세계에서는 종전 후 검은 고양이 부대를 이끌고 벨라루스인 유격대를 진압한 공로로 벨라루스 중앙 라다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차례의 수상쩍은 사건[25]들을 통해 라다의 종신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이런 미심쩍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비투쉬카를 정치를 할 생각도 없고, 충성심도 없고, 목적도 없는 장기말로 여기고 있다.
- 연합유격조직
- {{{#!folding 멸망 문구
But what happens to a dream deferred?
미뤄진 꿈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미뤄진 꿈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 집권이념: 파르티잔 운동(전제주의, 연합 파르티잔 조직)
-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저항군 지도자이자 보복조직 '나캄'[26]의 두령인 아바 코브너가 이끄는 세력. 현실의 코브너는 600만 유대인의 죽음을 600만 독일인의 죽음으로 갚기 위해 뉘른베르크 상수도에 독을 타려 했으나 독극물 확보 중 영국에게 걸려서 체포되었다. 이후 그 부하이던 요제프 하르마츠가 포로 수용소에 침투해 친위대원들이 먹을 빵에 비소를 발랐다.
- 그는 나치가 승리한 TNO 세계에서도 저항군 지도자로 활동하는데 13번 사살되었지만 13번 되돌아온 전설이자 망령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러시아 전쟁 당시 빌헬름 카이텔을 암살한 장본인이며, 이후에도 여전히 600만 명의 독일인을 쳐죽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27] 기약 없는 저항운동이 길어질 수록, 이들은 지쳐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극단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반나치 독일인 저항군 병사들이 연합유격조직에 합류하려고 하자 가차없이 총살해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 다른 내전 세력을 상대로 승리할 경우, 그 세력의 지도자를 잔인하게 처형한다. 예켈른은 음독자살하려하지만 저지당해 실패당한 뒤에 군중들에게 끌려가 잔인하게 찢겨죽고, 마이어란드루트 역시 붙잡혀 찢겨죽임당한다. 드렉슬러는 산 채로 화형당하고, 슈탈레커는 몇 시간의 고문을 당해 능욕당한다. 이를 녹화해 타 세력에 경고를 겸해서 퍼트리는 이벤트가 있다[28]. 그래도 비투쉬카는 독일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일단은 협력을 제의하는 포커스가 있다.
- 그리고 만약 UPO가 승리하면, 하루 아침에 열등민족으로 탄압받던 슬라브인들과 유대인들이 독일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상황이 되고, 독일 내전이 끝나기 전에 오스틀란트의 모든 것들을 파괴해버려 황무지로 만든 후 자신에게 충성하는 현지인들과 유대인들, 그리고 자신의 부대원들을 이끌고 도망가버린다.
1.5.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
라이히의 대도시 너머 먼 북쪽으로 뻗어 있는 북쪽 전초 기지인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는 그림 같은 피요르드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우토반의 어두운 고속도로입니다. 1940년 독일 국방군의 대규모 연합 작전에 의해 "영국 침공에 대한 보호"으로 확보된 노르웨이 왕국의 통제는 전쟁 중과 전쟁 후에 독일 정부에 지속적인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협조적인 사촌들과는 달리 노르웨이의 민간인과 군대는 점령 초기에도 독일의 개입에 대해 훨씬 냉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왕실과 주요 정치인들은 남은 해군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탈출했습니다.
공식적인 항복에 서명한 사람이 없어, 폰 팔켄호르스트의 불안정한 군사 행정부는 계속되는 시민 불복종과 지역 주민들의 증가하는 당파 및 특공대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해결책은 장관인 비드쿤 크비슬링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통제하는 사법, 행정부 및 이후 입법부와 권력 분담 협정을 체결한 타협된 정부였습니다. 노르웨이가 최종적으로 독일 제국에 통합되는 것을 감독해야 하는 판무관, 요제프 테르보펜은 거부권과 행정 명령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 외에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안타까워했습니다.
전쟁 후, 테르보펜은 독일 핵 프로그램에 대한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의 기여를 활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지만, 전쟁과 실패 후 독일군이 철수한다는 거짓말로 크비슬링을 축출한 의회로 인해 독일화는 여전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평화 정착에서 노르베겐은 콜라 반도를 확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몇 명의 단명한 장관-회장들은 나중에 새로운 국가지도자인 굴브란 룬데를 중심으로 연합했습니다.
테르보펜, 점점 더 불충해지는 민족주의자 굴브란 룬데, 그리고 잔혹한 경찰서장 요나스 리로 구성된 삼두정치에 의해 이끌어진 불안정한 정부는 20년 동안 노르웨이를 모범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습니다. 테르보펜은 룬데의 인기와 불충을 제어하기 위해 리를 유용한 도구로 활용해 왔는데, 이는 행정부가 경찰력의 집행 없이 칙령을 집행할 시 심각한 제약을 받아왔기 때문이였습니다. 이제 반체제 인사들과 개혁가들의 도전이 거세짐에 따라 룬데의 지지기반 농촌의 지지율이 약화되 있으며, 동시에 그는 자신이 은근히 혐오하고 있는 독일인에 대해 점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함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독일 주둔군이 철수해야 한다면, 리가 무력을 사용해도 현 상황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동시에 룬데가 주둔군의 위협 없이도 종 노릇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독일군은 당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띌 때부터 있어왔던 룬데가 눈엣가이셨고, 수년 동안 그를 암살하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암살시도는 항상 실패로 돌아왔고, 결국 상황은 계속 현상유지로 돌아갔으며, 룬데는 남아있는 권력을 자신 아래 확고히 장악했습니다.
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신봉자들과 반대파 사이 갈등이 발생한다면 리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리를 국가지도자에서 몰아낼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더 최악의 경우에는(아마 누구에게 물어보는가에 따라 이걸 좋게 보는 자들도 있겠지만) 준군사조직 밀로르그 소속의 파르티잔들이 협력정부의 부실한 기반을 걷어차기 위해 자신만의 연극을 할 지도 모릅니다.
라이히의 대도시 너머 먼 북쪽으로 뻗어 있는 북쪽 전초 기지인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는 그림 같은 피요르드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우토반의 어두운 고속도로입니다. 1940년 독일 국방군의 대규모 연합 작전에 의해 "영국 침공에 대한 보호"으로 확보된 노르웨이 왕국의 통제는 전쟁 중과 전쟁 후에 독일 정부에 지속적인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협조적인 사촌들과는 달리 노르웨이의 민간인과 군대는 점령 초기에도 독일의 개입에 대해 훨씬 냉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왕실과 주요 정치인들은 남은 해군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탈출했습니다.
공식적인 항복에 서명한 사람이 없어, 폰 팔켄호르스트의 불안정한 군사 행정부는 계속되는 시민 불복종과 지역 주민들의 증가하는 당파 및 특공대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습니다.
해결책은 장관인 비드쿤 크비슬링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통제하는 사법, 행정부 및 이후 입법부와 권력 분담 협정을 체결한 타협된 정부였습니다. 노르웨이가 최종적으로 독일 제국에 통합되는 것을 감독해야 하는 판무관, 요제프 테르보펜은 거부권과 행정 명령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 외에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안타까워했습니다.
전쟁 후, 테르보펜은 독일 핵 프로그램에 대한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의 기여를 활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지만, 전쟁과 실패 후 독일군이 철수한다는 거짓말로 크비슬링을 축출한 의회로 인해 독일화는 여전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평화 정착에서 노르베겐은 콜라 반도를 확보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몇 명의 단명한 장관-회장들은 나중에 새로운 국가지도자인 굴브란 룬데를 중심으로 연합했습니다.
테르보펜, 점점 더 불충해지는 민족주의자 굴브란 룬데, 그리고 잔혹한 경찰서장 요나스 리로 구성된 삼두정치에 의해 이끌어진 불안정한 정부는 20년 동안 노르웨이를 모범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습니다. 테르보펜은 룬데의 인기와 불충을 제어하기 위해 리를 유용한 도구로 활용해 왔는데, 이는 행정부가 경찰력의 집행 없이 칙령을 집행할 시 심각한 제약을 받아왔기 때문이였습니다. 이제 반체제 인사들과 개혁가들의 도전이 거세짐에 따라 룬데의 지지기반 농촌의 지지율이 약화되 있으며, 동시에 그는 자신이 은근히 혐오하고 있는 독일인에 대해 점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해야 함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독일 주둔군이 철수해야 한다면, 리가 무력을 사용해도 현 상황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동시에 룬데가 주둔군의 위협 없이도 종 노릇을 계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독일군은 당이 민족주의적 성향을 띌 때부터 있어왔던 룬데가 눈엣가이셨고, 수년 동안 그를 암살하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암살시도는 항상 실패로 돌아왔고, 결국 상황은 계속 현상유지로 돌아갔으며, 룬데는 남아있는 권력을 자신 아래 확고히 장악했습니다.
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신봉자들과 반대파 사이 갈등이 발생한다면 리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리를 국가지도자에서 몰아낼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더 최악의 경우에는(아마 누구에게 물어보는가에 따라 이걸 좋게 보는 자들도 있겠지만) 준군사조직 밀로르그 소속의 파르티잔들이 협력정부의 부실한 기반을 걷어차기 위해 자신만의 연극을 할 지도 모릅니다.
짧게 플레이 가능
- 유니티-팍트의 자치 국가판무관부
- 집권이념: 파시즘( 국민연합 주류)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요제프 테르보펜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노르웨이의 판무관, 요제프 테르보펜은 게르마니아의 시야에서 지난 20년 동안 매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노르웨이는 제국의 전략적 방위 네트워크의 중요한 부분으로 행동했지만, 평화가 유지되도록 원주민에게 부여된 자치권은 노르웨이인, 아리아인을 산업과 관련된 많은 문제와 독일화의 진전 부족과 그리고 반역적인 밀로르그 파벌을 진압하지 못하는 일관된 무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테르보펜에게에게 어느 정도 강등되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제국 아래 새로운 번영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번영 아래 1950년대 경제 붕괴의 여파로 폰 팔켄호르스트가 마지못해 양보한 민족동맹당의 토착 파시스트와 독일군 사이의 뚜렷한 갈등이 숨어 있었습니다. 국민연합은 독일 제국 내에서 노르웨이 문화의 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이상적인 농업 생활 방식과 좀 더 도시적인 노르웨이에 대한 일부 정치인의 열망에 대한 추가 불일치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테르보펜의 또다른 문제는 유럽의 마지막 남은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 왕국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왕국은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전에 힌트를 얻었어야 하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굴복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회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스웨덴인들은 노르웨이 반체제 인사를 숨기고, 충성스러운 노르웨이 시민들에게 제국의 의도에 대해 선전과 교활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파멸을 회피한 교활한 밀로르그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금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독일 제국이 제한된 독일화에 대한 더 많은 양보를 위해 국민 연합과 협상할 때 더 큰 막대기 역할을 할 만큼 충분히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테르보펜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문제입니다. 테르보벤 휘하의 노르웨이는 제3제국의 충성스러운 속주입니다. 지금은 말이죠.}}}
노르웨이는 제국 아래 새로운 번영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번영 아래 1950년대 경제 붕괴의 여파로 폰 팔켄호르스트가 마지못해 양보한 민족동맹당의 토착 파시스트와 독일군 사이의 뚜렷한 갈등이 숨어 있었습니다. 국민연합은 독일 제국 내에서 노르웨이 문화의 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이상적인 농업 생활 방식과 좀 더 도시적인 노르웨이에 대한 일부 정치인의 열망에 대한 추가 불일치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테르보펜의 또다른 문제는 유럽의 마지막 남은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 왕국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왕국은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전에 힌트를 얻었어야 하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굴복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회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스웨덴인들은 노르웨이 반체제 인사를 숨기고, 충성스러운 노르웨이 시민들에게 제국의 의도에 대해 선전과 교활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파멸을 회피한 교활한 밀로르그 테러리스트들에게 자금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독일 제국이 제한된 독일화에 대한 더 많은 양보를 위해 국민 연합과 협상할 때 더 큰 막대기 역할을 할 만큼 충분히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테르보펜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문제입니다. 테르보벤 휘하의 노르웨이는 제3제국의 충성스러운 속주입니다. 지금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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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브란 룬데 정부수반(파시즘)
{{{#!folding 인물설명
테르보펜과 그 부하들이 노르웨이를 버리고 분열된 조국으로 돌아가면서, 노르웨이 민간 정부도 그와 함께 붕괴했습니다. 개혁파, 강경파, 온건파들은 국민연합의 시체에서 갈라져 나와 오슬로 전역에서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노르웨이 전역에 가중되고 있는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하지만 결국 질서가 다시 돌아왔고, 주류 파벌이 국가의 배를 안정시켰습니다. 그 꼭대기에 국민연합의 원로 정치인 굴브란 룬데가 앉아 있습니다.
룬데는 한때 생화학을 전공하던 화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비드쿤 크비슬링과 정당 국민연합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탐구를 잠시 보류하려 했습니다. 국민연합의 초기 당원이였던 룬데는 자신이 유능하고, 충성스럽고, 근면한 행정가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충성심이 인정받아 국민연합이 정권을 잡았을 때 룬데는 노르웨이 정계에 입문하고 내각의 구성원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룬데는 노르웨이인과 게르만 민족을 구별하려는 등 민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독일 주둔군을 자주 분노시켰습니다. 실제로 독일인들이 룬데의 인종적 입장 때문에 그를 민간 정부 고위직에서 배제하였다는 것이 노르웨이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제지할 독일인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룬데는 마침내 오랬동안 꿈꿔온 권력의 전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룬데의 정책은 노르웨이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독일화 종식 같은 몇 가지 정책적 변화는 있겠지만, 그는 협력정부로서 다시금 팍트에 돌아가려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결국 수많은 노르웨이인들에게 테르보펜은 떠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룬데는 한때 생화학을 전공하던 화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비드쿤 크비슬링과 정당 국민연합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탐구를 잠시 보류하려 했습니다. 국민연합의 초기 당원이였던 룬데는 자신이 유능하고, 충성스럽고, 근면한 행정가임을 입증했습니다. 이런 충성심이 인정받아 국민연합이 정권을 잡았을 때 룬데는 노르웨이 정계에 입문하고 내각의 구성원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룬데는 노르웨이인과 게르만 민족을 구별하려는 등 민족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독일 주둔군을 자주 분노시켰습니다. 실제로 독일인들이 룬데의 인종적 입장 때문에 그를 민간 정부 고위직에서 배제하였다는 것이 노르웨이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제지할 독일인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룬데는 마침내 오랬동안 꿈꿔온 권력의 전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룬데의 정책은 노르웨이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독일화 종식 같은 몇 가지 정책적 변화는 있겠지만, 그는 협력정부로서 다시금 팍트에 돌아가려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결국 수많은 노르웨이인들에게 테르보펜은 떠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 한스 스카르파겐 경제장관(국가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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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리 내무장관(국가사회주의)
{{{#!folding 인물설명
노르웨이의 남녀노소에게 요나스 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다양한 답변이 돌아올 것입니다. 급진 협력자들에게 리는 영웅이자 저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노르웨이의 유일한 인물입니다. 온건파에게 리는 노르웨이라는 개념을 독일의 사생아로 바꿔버리려 하는 위험분자입니다. 저항군에게 리는 노르웨이의 등 뒤에서 몸을 굽힌 채 독일 군화 밑창이나 핥아대는 비겁한 배신자입니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만은 명확해졌습니다. 이제 그는 노르웨이의 통치권을 확고하게 장악했습니다.
저명한 작가였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리는 노르웨이 경찰의 고위간부이면서 그 또한 저명한 작가였습니다. 그의 글쓰기 경험은 정치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을 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포로가 되면서 리는 친독의 길을 선택했고,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독일군에 복무하면서 노르웨이 SS를 창설한 그는 NS의 고위간부로 복무했습니다. 종전쯤에 리는 열렬한 친독 정치인으로 변해 있었고, 노르웨이로 돌아와 경찰 부서의 장관직을 꿰찼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노르웨이를 재건할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테르보펜이 사라지면서 리는 기회를 포착했고, 경쟁 상대들을 제압하면서 이제 노르웨이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이제 리는 노르웨이 전역을 했고, 국가는 그의 구상 아래에서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리는 독일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일시적으로 잠겨 있을 뿐이라고 믿고 있으며, 독일화를 포함한 현재의 모든 것을 보존하려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것이 인기가 없을지라도, 대부분 사람에게 리는 무너뜨리기에 너무 강력한 인물이었습니다.
리에게 있어 나치즘의 색채는 노르웨이의 밝은 미래를 비춥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에게 노르웨이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할 뿐입니다.}}}
}}}저명한 작가였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리는 노르웨이 경찰의 고위간부이면서 그 또한 저명한 작가였습니다. 그의 글쓰기 경험은 정치 분야에서 수많은 논문을 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의 포로가 되면서 리는 친독의 길을 선택했고,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독일군에 복무하면서 노르웨이 SS를 창설한 그는 NS의 고위간부로 복무했습니다. 종전쯤에 리는 열렬한 친독 정치인으로 변해 있었고, 노르웨이로 돌아와 경찰 부서의 장관직을 꿰찼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노르웨이를 재건할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테르보펜이 사라지면서 리는 기회를 포착했고, 경쟁 상대들을 제압하면서 이제 노르웨이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이제 리는 노르웨이 전역을 했고, 국가는 그의 구상 아래에서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리는 독일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일시적으로 잠겨 있을 뿐이라고 믿고 있으며, 독일화를 포함한 현재의 모든 것을 보존하려는데 열중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것이 인기가 없을지라도, 대부분 사람에게 리는 무너뜨리기에 너무 강력한 인물이었습니다.
리에게 있어 나치즘의 색채는 노르웨이의 밝은 미래를 비춥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이들에게 노르웨이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할 뿐입니다.}}}
- {{{#!folding 국민정신
-
연장된 점령
독일이 노르웨이를 정복한 이후 요제프 테르보펜을 지도자로 하는 노르베겐 국가판무관부를 설립하였을 때, 그들은 이 점령이 일시적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연합국이 항복하면, 이 나라는 노르웨이인들의 국민연합 정권에 의해 통치가 될 것이라고 했었죠. 하지만 20년이 넘은 지금도 독일군은 노르웨이를 점령한 상태이며, 독일 관리들이 이곳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과거 노르웨이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려 했었던 크비슬링은 장기화된 점령에 분노한 민중의 저항으로 인해 추하게 실각했습니다. 이 점령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해 모든 노르웨이인들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50%
안정도: -15% -
밀로르그
노르웨이 강점이 시작되고 나서, 몇몇 조직들은 파괴, 암살, 사보타주를 통해 우리의 지배에 반항해 왔습니다. 그들 중 가장 강력한 단체는 20년 넘도록 우리와 싸워오고 있는 비밀단체 밀로르그입니다. 우리는 이 반란군들을 토벌하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밀로르그의 활동이 유지되고 타격을 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우리 정부를 괴롭힐 것입니다.
안정도: -25%
생산 효율성 한도: -10%
공장 생산량: -5%
조선소 생산량: -5% -
농업퇴화
점령은 노르웨이 국민들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중 경제의 쇠퇴는 국민들에게 가장 큰 변화폭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20년 동안 국가판무관부는 엄격한 농경주의 정책을 유지해 오며 현재 많은 이들이 "농업 퇴화"라고 부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농경지의 부족과 지방 농민-레지스탕스의 관계 문제로 인해 해가 갈 수록 큰 논란을 빛고 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정책이 계속에서 경제의 침체상황을 만드는 한, 노르웨이 국민들은 이를 혐오할 것입니다.
공장 생산량: -15%
필요 소비재: +15%
- {{{#!folding 지휘관
- 에두아르트 디틀 원수, 4, 4/3/3/2
- 막스요제프 펨젤 장군, 3, 2/3/2/3
- 파울 클라트 장군, 2, 3/2/2/1}}}
- {{{#!folding 제독
- 헬무트 몰만 제독, 3, 3/2/3/1
- 한스게오르크 헤스 제독 2, 2/1/3/2}}}
- {{{#!folding 주요 도시
-
오슬로
바르샤바와 같은 도시와 유사한 급진적인 변화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아리아인으로 간주되는 오슬로의 독일 흔적는 선전 포스터와 육군 수비대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슬로 자체는 다시 한 번 자유를 갈망하며 나치의 군홧발 아래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국가판무관부의 판무관은 요제프 테르보펜. 문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르웨이 토종 파시스트들과 독일화를 원하는 독일군 간 갈등이 있다. 친독 중립 성향의 팍트 옵저버이지만 의회민주주의를 유지하며 노르웨이 반체제 인사를 숨겨주고, 노르웨이 저항군을 지원하는 스웨덴도 골칫거리.
테르보펜은 독일어 사용을 강제하며 친독 역사 교육을 시키고 출퇴근 시 대중교통 이용을 의무화하며 노동자들을 감시한다. 또한 공장에 테러를 벌이는 밀로르그를 소탕하기 위해 진압 작전을 펼치고 스웨덴 국경을 무장화한다. 농업 우세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거나, 공업을 지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반정부 매체를 단속하며 괴벨스의 유지를 받든 선동을 실시함과 동시에 순종적인 시민을 이용한다. 비드쿤 크비슬링은 빌라 그란데 저택에 유폐되어 있으며 1963년 경 밀로르그에 의해 암살당한다. 독일 내전 직후 테르보펜은 협력자 룬데에게 노르웨이의 통제권을 맡긴 이후 군대를 이끌고 독일 본토로 귀국한다. 이후 노르웨이의 미래는 크게 네 갈래로 나뉜다.
- 굴브란 룬데의 주류파(파시즘)
- 요나스 리의 강경파(국가사회주의) : 보어만 루트에서 독일보다 먼저 팍트 가입을 제안하고, 보어만은 이에 감격한다.
- 페르 보르텐의 개혁가(민간독재 - 전제주의)
- 크누트 뫼옌과 밀로르그(임시정부 - 가부장주의)
- 판무관부 붕괴 시 1964년 자유 선거가 치르어진다. 스웨덴형 개혁파이자 친 OFN 성향의 에이나르 게르하르센(노동당, 진보주의) 사회민주주의와 보수주의의 자유 시장 경제의 혼합 정책을 실시하는 군나르 가르보(좌파당, 자유주의), 산업화와 개신교 국교화를 실시하는 알브 키예스(보수당, 자유보수주의) 중 하나가 당선된다.
슈페어의 경우에는 모든 루트가 무력행사 없이 팍트에 재편입되지만[29] 보어만의 경우에는 밀로르그와의 협상 실패 시 헨리크 록스타드(국가사회주의)를 지원해서 쿠데타를 벌여 괴뢰 정권을 설립하려 시도한다. 만약 쿠데타가 실패하면 차라리 팍트 옵서버 직위라도 제안하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불리한 협상을 단행하고, 그 협상마저 결렬되면 2차 베저위붕 작전을 실행해 아예 국가판무관부를 재창설 하게 된다. 이후 이벤트에서 테르보펜 산하 국방군 중 일부가 내전에서 슈페어파에 가담했기에 보어만은 테르보펜을 처벌하려 한다. 테르보펜은 총살형도 아닌 교수형으로 처형되거나 목숨만은 부지하는 대신 모든 직위를 상실하게 된다.
사단 설계가 잠겨 있고 특수부대 취급이라 새로운 사단을 생성할 수 없는 상태이다. 심지어 보병은 3보 편제.
1.6. 우크라이네 국가판무관부
짧게 플레이 가능- 유니티-팍트의 자치 국가판무관부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동부 지부)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에리히 코흐 지도자(국가사회주의, 우크라이네의 묘지기)
{{{#!folding 인물설명
이것이 에리히 코흐가 남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합니다.
권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에리히 코흐는 라이히의 기준으로도 잔인한 왕좌 위의 깡패였습니다. 그의 식민지 정책은 우크라이네 국민을 굴복시키기 위해 고안된 착취와 억압의 끝없는 순환이었습니다. 기아 계획으로 원주민들은 호박밭에서 굶주림에 시달렸고, 그의 할당량은 그들을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히틀러의 왕관에 박힌 피의 다이아몬드인 레벤스라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서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국가판무관부는 코흐가 수용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코흐의 위로는 본국의 행정력이 라이히의 피를 빨아들여 병든 라이히의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아래에서는 원주민 군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가 만든 심연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에리히 코흐는 처음으로 채찍과 망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국가판무관은 패배하였습니다.
국가판무관은 큰 변화를 시도하기는커녕 공포가 고조되고 수익성이 둔화하는 동안에도 이 식민지가 정체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에리히 코흐는 마음속으로는 해결책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크라이네의 운명을 바꿀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총통은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동방의 식민지를 모래밭으로 만들었고, 이제 그는 이 식민지가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권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에리히 코흐는 라이히의 기준으로도 잔인한 왕좌 위의 깡패였습니다. 그의 식민지 정책은 우크라이네 국민을 굴복시키기 위해 고안된 착취와 억압의 끝없는 순환이었습니다. 기아 계획으로 원주민들은 호박밭에서 굶주림에 시달렸고, 그의 할당량은 그들을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히틀러의 왕관에 박힌 피의 다이아몬드인 레벤스라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서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국가판무관부는 코흐가 수용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코흐의 위로는 본국의 행정력이 라이히의 피를 빨아들여 병든 라이히의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아래에서는 원주민 군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가 만든 심연으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했습니다. 에리히 코흐는 처음으로 채찍과 망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국가판무관은 패배하였습니다.
국가판무관은 큰 변화를 시도하기는커녕 공포가 고조되고 수익성이 둔화하는 동안에도 이 식민지가 정체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에리히 코흐는 마음속으로는 해결책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크라이네의 운명을 바꿀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총통은 이윤이라는 명목으로 동방의 식민지를 모래밭으로 만들었고, 이제 그는 이 식민지가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 게오르크 라이브란트 부 국가판무관 겸 중앙행정부장(로젠베르크파, 동부의 유배자)
- 한스-오토 브라우티검 외무부 대표(개혁 국가사회주의, 양심의 목소리)
- 리하르트 바그너 식량 및 농업부장(국가사회주의, 식민지 착취자)
-
오토 올렌도르프 판무관부 SS 및 경찰지도자(국가사회주의, 독선적인 프로이센인)
}}} - {{{#!folding 지휘관
- 파울 라이셀트 원수, 3, 1/3/3/2
- 테오도어 크레츠머 원수, 3, 3/1/2/2
- 알프레트 프라우엔펠트 장군, 3, 3/2/1/2
- 알베르트 브룩스 장군, 1, 1/1/1/1
- 알브레히트 메르츠 폰 크비른하임 장군, 1, 1/1/1/1
- 빌리 리델 장군, 1, 1/1/1/1
- 테오도어 크레츠머, 1, 1/1/1/1}}}
- {{{#!folding 국민정신
-
라이히의 곡창지대
우크라이네는 다른 분야의 작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농업에 극단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라이히가 원하는 것이기 대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라이히의 곡창지대는 영원히 곡물을 수확하고 마을을 착취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군사 사용 부문: -30.00%
안정도: 0.00%
일간 지휘력 획득: 0.00
안정도: 0.00%
정부 통제로부터: 0.00%
황폐도로부터: 0.00%
자원 획득 효율성: 0.00%황폐도로부터: 0.00%
수탈도로부터: 0.00%
황폐도로부터: 0.00%
GDP 성장률: 0.00%황폐도로부터: 0.00%
개발 0단계로부터: 0.00%
수탈도로부터: 0.00%
황폐도로부터: 0.00%
월간 인구: 0.00%수탈도로부터: 0.00%
황폐도로부터: 0.00%
수탈도로부터: 0.00%
황폐도로부터: 0.00%
민간 사용 부문: 0.00%황폐도로부터: 0.00%
일간 지휘력 획득: 0.00
-
대조되는 이들의 땅
라이브란트의 로젠베르크파 학자들과 협력자들, 올렌도르프와 그의 SS 동료들, 브라우티검의 작지만 성장하는 자유주의파. 이들은 모두 우크라이나의 국가사회주의에 대해 서로 다른 비전을 제시합니다.
코흐는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힘을 합칠 수 있을까요?||
월간 정치력 획득: +0.25
월간 행정 효율 변화: -1.00
정당 정치법 월간 변화: -0.25
* 미완성의 낙원
월간 행정 효율 변화: -1.00
정당 정치법 월간 변화: -0.25
* 미완성의 낙원
그리고 꿈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도시는 썩도록 방치되었습니다. 독일인 정착촌은 계속 위험에 처했습니다. 끝없는 당내 파벌 싸움은 우크라이네를 지옥으로 만들었습니다. 가난과 고통, 비참함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우크라이네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님 이미 죽은 것인지도 모르죠.||
월간 인구: -1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75%
안정도: -10.00%
전쟁 지지도: -20.00%
파르티잔 황폐도와 수탈도 변동치: -25.00%
매 활동 주기마다 파르티잔 통제: -0.60%
연간 GDP 성장 요인: -25.00%
납세 인구 요인: -25%
월간 빈곤률 변화: -0.03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체하거나 부대 편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75%
안정도: -10.00%
전쟁 지지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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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활동 주기마다 파르티잔 통제: -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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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lding 주요 도시
-
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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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멸망 문구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곡창지대로 만들려 했던 라이히가 자기 묘지를 만들었다.}}}
국가판무관은 실제로도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이었던 에리히 코흐. 그는 전형적인 악당으로서 잔혹한 통치를 펼치며 능력이 뛰어난 부하들을 시기한다. 코흐는 긴 업무에 지치다 못해 동프로이센으로 휴가를 떠나려고 하다 공항에서 폭탄 테러를 당하며 중태에 빠진다. 이후 판무관이 게오르크 라이브란트로 교체되며 온건파 라이브란트와 강경파 오토 올렌도로프, 개혁파 한스 오토 브라우티검의 내부 갈등이 시작한다. 이 셋 모두 코흐의 통치를 반대하며 개혁을 주장한다. [30]
비옥한 우크라이나의 특성 때문에 유니티-팍트의 식량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의 저항을 찍어누르고 식량 생산과 공업화를 증대시키려 한다.
현재로서는 독일과 대치하는 루트로 갈 경우 절대로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한 나라이다. 우크라이나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대략 1년 이상 버티는데 성공하면 독일이 키이우에 핵폭격을 가하면서 강제로 패배하기 때문. 정황상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에 딱 한 발만 투하하는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도 각각 남아공 전쟁과 야스다 위기로 인해 우크라이나까지 간섭할 여력이 없어서 독일의 핵폭격을 묵인하는듯. 핵폭격 이후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재점령하는데 성공해도 전 국토 비핵심지역화, 순응도 획득 금지등 어마어마한 디버프와 함께 사실상 우크라이나 전역이 파르티잔에게 점령당한다. 한편 이런 압도적인 국력 차이와 나치 독일의 잔학성 때문에 우크라이나 공화국 루트로 진입할 시에는 독일에 굴복하는 교섭 루트가 있다.
1.6.1. 우크라이나 공화국
-
{{{#!folding 멸망 문구
아냐! 난 살아있어! 난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내 안의 심장 고동은 절대 멎지 않아!
}}}
1.6.2.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folding 멸망 문구
...한 해 동안 이어진 기근으로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임박해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들을 창백하게 만들며...
}}}
1.6.3. 우크라이나국
-
{{{#!folding 멸망 문구
고통으로 사람을 먹일 수 없고, 분노로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
2. 플레이 불가능 국가
2.1. 터키
티저 1 티저 2 [장기간]- 집권이념: 케말주의(가부장주의, 공화인민당)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창립국
- {{{#!folding 국민정신
-
경제 침체
독일이 유프라테스강 연안에서 벌인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해 우리는 전후 번영을 누리던 경제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특히나 국내 산업에 관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투자 의지가 점차 줄어들면서 성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경기가 계속 나빠지는 만큼 조속히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안정도: -5.00%
생산 효율 한도: -20.00%
GDP 성장률: -0.25% -
이탈리아-터키 긴장
민족주의의 대두에 일부는 이 결과가 가져올 것에 대한 깊은 우려, 혹은 노골적 두려움을 표하고 있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결국 이탈리아는 지중해 권역의 패자이며, 그들이 허술해진다고 종이호랑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무척 위험할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전쟁 지지도: +25.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공격: +1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10.0%
* 5관구와 6관구의 유산
전쟁 지지도: +25.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공격: +1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10.0%
* 5관구와 6관구의 유산
이제 새로이 통합한 땅에서 불만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더욱 강경책을 꺼내고 있음에도 온건 성향의 주민들마져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역 내의 반대와 분리주의 정세는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헌병들은 이들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선 계획이 필요하지만. 이젠 그 변화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며 확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안정도: -5.00%
저항군 목표: +10%
매일 순응도 획득: -0.05%
}}}저항군 목표: +10%
매일 순응도 획득: -0.05%
- {{{#!folding 지휘관
아타튀르크의 뒤를 이어 집권한 이스메트 이뇌뉘 정권은 연합국이 아프리카에서 축출당한 이후 추축국에 가입해 아르메니아(현 아제르바이잔 월경지인 나흐츠반 포함) 일대를 장악하고 시리아 북부, 이라크 북부 등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독일의 지중해 사업으로 인하여 대독 관계가 파탄났고, 그나마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트라움비라투스에 가입했지만 거기서도 로도스, 키프로스, 시리아 등의 영유권 문제로 이탈리아와의 관계가 점차 험악해지고 있다. 이라크 북부 모술-튀르쿠크 지역과 시리아에 종속국을 가지고 있다.
끝내 이탈리아와의 영유권 문제로 전쟁이 터지고 만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뇌뉘 정권이 유지되고 패배하면 이뇌뉘 정권 유지, 베히제 보란(민주혁신당, 좌익 포퓰리즘(진보주의)), 젤랄 바야르 (국민민주당, 자유보수주의)의 정권 교체로 루트가 갈린다. 이뇌뉘가 유임할 경우 공화인민당의 성향을 좌익 케말주의(진보주의)로 바꿔버릴 수도 있다. 베히제 보란과 젤랄 바야르가 집권할 경우 제말 귀르셀(국가통합위원회, 군사독재(전제주의))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
중간에 OFN 옵서버로 가입할수있는 루트가 있는데 만약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탈식민화 정권이 형성되지 않으면 공영권,팍트 옵서버로도 가입할 수 있다.
종속국들의 경우 1960년대 중순 아르메니아에서 독립봉기가 일어날 수 있고 시리아는 60년대 말 석유 위기 직전에 독립한다. 베히제 보란은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시리아, 이라크, 아르메니아를 미리 독립시켜 놓는다.
1971년 선거에서는 베히제 보란( 노동당, 생디칼리슴(사회주의)), 튀르칸 아키올(사회민주당, 자유주의), 젤랄 바야르( 민주당, 자유보수주의), 네지프 파즐(정의당, 이슬람 보수주의(보수주의)), 알파르슬란 튀르케슈( 민족주의운동당, 국민보수주의(가부장주의)), 공화인민당 후보까지 6 명 중 한 명이 당선된다. 공화인민당의 후보는 당의 성향이 좌익이라면 파흐리 코루튀르크(공화인민당, 좌익 케말주의(진보주의))가, 우익이라면 제브데트 수나이(공화인민당, 케말주의(가부장주의))가 등장한다.
2.2. 루마니아 왕국
업뎃 예고[추후 검토]- 유니티-팍트의 전우국
- 집권이념: 농본주의(보수주의, PNT)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빈 중재의 상흔
루마니아의 애국자들은 억지로 통과된 빈 중재로 인해 떨어져 나간 북트란실바니아의 존재를 상기하며 이에 분개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이 땅은 자랑스러운 루마니아의 영토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의 강토를 점령하고 있는 헝가리라는 야수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만을 벼르고 있습니다. 안토네스쿠 정권 시절 외무장관 미하이 안토네스쿠는 잃어버린 실지를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상처를 치유할 책임은 그 후계자들의 어깨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전쟁 지지도: +15.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공격: +15.00%
훈련 강도 월간 변화: +1.00%
헝가리 왕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66.00% -
과거의 망령
오늘날 루마니아의 민주주의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지만, 그것이 이온 안토네스쿠 정권 이후 찾아온 빛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일 겁니다. 국토를 훼손해 가면서도 아직도 완공을 못한 다뉴브-흑해 운하부터, 무너져가는 농업사회, 그리고 엘리트 계층의 권력 확대에 이르기까지 안토네스쿠 정권은 루마니아 국내에 실패를 양산하며 다음 정부에 수많은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의제는 어제의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정도: -10.00%
인플레이션율 변동치: +1.00%
월간 신용 등급 상승률: -0.50%
매월 농업 방법 변화: -1.00% -
용담왕 미하이
루마니아 사회에서 미하이 1세만큼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인물은 없을 겁니다. 브러티아누 총리의 집권을 방해하며 1923년 헌법을 복원하고 자유 선거를 시행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그는 루마니아 헌정의 수호자로 여겨지며, 현 루마니아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국왕은 세간에 왕국뿐만 아니라 루마니아의 헌정을 수호하고, 폭정으로부터 그의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사단 회복률:
- {{{#!folding 내각
-
미하이 1세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루마니아의 군주 미하이 1세는 20년 이상 군림해왔지만 통치기간은 훨씬 짧습니다. 독재자 이온 안토네스쿠와 철위대에 의해 20세가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미하이는 꼭두각시 왕으로 여겨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콘두커토르가 승리와 명성을 쌓을때 그는 어둠 속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안토네스쿠가 루마니아를 꽉 잡고 있는걸 눈으로 본 미하이는 독재자와 군대의 금빛 새장에서 빠져 나올 때를 기다렸습니다. 안토네스쿠가 과도한 자만심에 불타 헝가리에게서 트란실바니아를 되찾기로 결정했을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루마니아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마주했고 점령지의 저항은 한계치에 도달했으며 팍트에서의 방출은 루마니아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 붕괴를 초래했습니다. 위기가 최고조에 도달했을때, 항상 조용하지만 관찰력이 있던 미하이는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국왕은 마침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한다는 목표로 노망난 안토네스쿠를 축출하고 그 지지자 중 많은 이들을 체포했고 콘두커토르의 유산을 없애기 위해 임시정부를 설립했습니다.
왕의 카리스마와 매력은 많은 사람들을 금방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루마니아 사회는 수십년만에 억압적인 군국주의 정권에서 벗어나 자유화와 민주화의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대중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미하이에 대한 반발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군대에는 여전히 안토네스쿠의 영광스러웠떤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고 루마니아의 외단곳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과거의 유령이 여전히 숲을 배회합니다...}}} - 두미트루 더머차누 정부수반
- 콘스탄틴 비솔리아누 외무장관
- Ioan Mocsony-Stârcea 재무장관
- 게오르게 미하일 내무장관}}}
- {{{#!folding 주요 도시
-
부쿠레슈티
이스탄불과 아테네에 이어 발칸반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부쿠레슈티의 인력과 자원은 루마니아의 이웃들이 널리 탐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이 루마니아에 힘을 더 실어줄지, 아니면 몰락을 불러올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
키시나우
수천 명의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불가리아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대부분의 가가우즈인들도 이곳을 고향아라 부릅니다. 점점 더 분리되고 있는 유럽의 독특한 다문화 환경은 다른 루마니아의 도시들과 키시나우 사회를 구별시켰습니다.||}}}
지난 2차 대전 당시 소련 침공을 협조하여 베사라비아를 뜯어냈고, 때문에 우크라이나 서남쪽 영토 일부를 가진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령이 세워져있다.
원래는 헝가리에게서 북트란실바니아를, 우크라이나에게서 베사라비아를 뜯어내 합병한 충격으로 인해 나라가 개판인 상황이었으나 1.5 패치에서 북트란실바니아가 다시 헝가리에 넘어가고, 트란스니스트리를 총독령을 세워 간접 통치하는 방식으로 바뀌며 관련 로어가 사라졌다.
팍트 공식 가맹국 중 유일하게 민주주의 체제가 돌아가는 국가로, 1956년 한계에 도달한 이온 안토네스쿠 독재정권의 붕괴 이후 농본주의 민주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전 정권이 남긴 수많은 망령들이 루마니아를 괴롭히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웃 헝가리는 조금만 잘못하면 파시즘이나 국가사회주의 루트로 턴하는데 루마니아는 그런게 없어서 농본주의, 기독교 보수주의, 국민자유주의, 자유급진주의, 좌익 농본주의 만이 정권을 잡는다.
2.2.1.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령
루마니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과 오데사 주변에 세운 총독령이다.지도자는 빅토르 시미넬.[34]
루마니아화가 가속화되어 민족 다수가 루마니아인이 되어 루마니아로 합병되는 민족주의 정서가 만연해지고 있다. 몰도바인의 입지는 줄어드는 듯.
이후 지도자는 게르만 픈테아나 그레고레 바슈탄이 된다.
1967년경 국민투표가 개최되는데, 루마니아계 비율이 높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서부는 루마니아가 합병하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계 과도정부로 탈바꿈한다. 다만 반식민주의 (자유급진주의) 정권이라면 모든 땅을 독일에 반환하며, 그 이후 지크프리트 하스의 트란스니스트리엔 군정청으로 바뀐다.
2.3. 헝가리 왕국
- 아인하이츠팍트의 전우국
- 집권이념: 파시즘(헝가리 삶의당 - 헝가리 통일당)
- 경제: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트리아농의 부러진 멍에
그 끔찍한 조약을 역사 속으로 내쫓은 섭정 제독에게 우리는 감사를 표합니다. 호르티 이슈트반의 최고의 정치적 명민과 군사적 수완덕에, 헝가리는 다시금 완전해 졌습니다. 헝가리의 국경은 2세기 전의 것보다 같지 않을진 언정, 헝가리인들의 정신은 그때와 같습니다. 오랜 쇠퇴의 시간을 거쳐, 우린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15.00%
* 빈 중재의 유산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15.00%
* 빈 중재의 유산
루마니아는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헛된 시도로서 독립을 지지하는 테러조직에 자금을 지원해 왔습니다. 한편 독일계 소수민족들은 라이히의 관심을 받으려 하고 있으며, 아마 기회를 잡는다면 우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충되는 이해관계는 지역 내 긴장을 조성하면서 트란실바니아를 화약고로 만들었으며, 우리 치안기구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
사회적 격변
이는 결코 이상적인 국가 운영 방식이 아닙니다. 헝가리의 새로운 세대는 이런 정권 아래에서 성장해 가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참정권과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정부는 그 꿈을 방해하려 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또는 이 사이의 모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흔들리는 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이상주의자들을 침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안정도: -10.00%
* 악마와의 거래
* 악마와의 거래
1950년대 경기 호황까지는 이 관계가 유익했을지 모르나, 독일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이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라이히의 경제가 여전히 불안정하고 헝가리에 대한 지배력이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헝가리는 악마와 가까이 한 대가를 치러야 할 시기를 보내는 중입니다.||
}}}
- {{{#!folding 내각
- 호르티 이슈트반 지도자
- 임레지 벨러 총리
- 여로시 언도르 외무부 장관
- 레메니슈츠넬레르 러요시 재무장관
- 너지 빌모시 국방부 장관
- {{{#!folding 주요도시
-
부다페스트
2차 세계 대전의 광대한 헝가리의 정복은 번영을 증가시켰지만, 이 도시의 많은 유대인들에 가한 모살,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와의 파괴적인 전쟁, 그리고 1950년대의 경제 붕괴는 최근에 이 도시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부다페스트는 철권 아래 흔들리고 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의 침공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으며, 정부의 근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왕국 딱지를 달고 있으나 여전히 왕 없는 왕국이다. 섭정 직위는 호르티 미클로시의 장남 호르티 이슈트반이 물려받았다[35]. 섭정 호르티와 총리 임레지 벨러가 권력투쟁을 몇 년 동안 이어나가고 있으며, 독일 내전이 발발하면 호르티가 내부 개혁을 시도하게 된다. 이 개혁안이 실패하면 벨러 또는 여로시 안도르[36]가 집권하며 파시즘/국가사회주의 국가가 되고, 개혁에 성공하면 과도정부 내각이 형성되어 민주선거를 준비한다. 그러나 준비기간중 살러시 페렌츠가 부다페스트 학살로 집권하는 개 막장 트리[37]로 턴할수도 있는 매우 불안정한 루트다. 화살십자당과 페렌츠가 군부에게 패하고 처형당한다면 대연정 (일당우위 민주주의) / 보수연정 (농본주의) / 자유연정 (국민자유주의) 3개의 후보로 선거가 치러진다.
2.4. 프랑스국
티저 예고[장기간][38]- 아인하이츠팍트의 전우국
- 대게르만국의 협력 괴뢰국
- 집권이념: 파시즘(프랑스 국민당 - 페탱파)
- 경제: 지도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경제붕괴
2차 세계대전에서의 우리의 패배 이후 라이히에 대한 우리 경제의 의존도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라이히스마르크를 유럽의 단일 통화로 굳히려던 독일의 실패에 떠밀려, 50년대 독일의 경제붕괴는 이제 온전히 다른 나라가 통제하는 망가진 통화를 우리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독일이 비록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곤 하나, 우리 터널 끝의 빛은 멀게만 보입니다.
건설 속도: -20.00%
생산 효율성 성장: -20.00%
공장 생산량: -20.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50.00% -
OAS[39]
비밀군사조직, OAS는 국가의 비밀경찰력으로 기능해왔습니다, 대테러 작전에 특화된 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끈질긴 저항군과의 싸움에서 헌신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회의 이 불순 요소를 근절하라는 정부에 대한 압력은 OAS의 힘을 점차 증가시키더니 이제는 우려할 수준에 이르게 했습니다. 현 OAS 지휘관들이 정부, 군 및 경찰 지휘부의 지시를 무시한 여려 사건들이 겹치면서, 정부내 다수는 OAS가 더 대담해지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라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안정도: +10.00%
월간 순응도 획득: +0.10% -
검은 세월
자신의 인기가 생존에 크게 작용했던 원수 페탱의 죽음은, 국민에게는 우리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용인의 끝을 보였습니다,. 주요 도시에서의 행군이 드물지 않은 모습이 되어가면서, 틱시에비낭쿠르는 원수가 집권 말기에 가졌던 인기도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가안보국의 노력에도, 이제 모든 국민이 프랑스내 파시즘의 대안을 몰색하고 요구함에 따라 거의 모든 이념사상들의 인기도가 프랑스 전역에서 치솟는 중입니다.
정치력 획득: -30%
소비재 공장: 10.0%
안정도: -20.00% - 비시 조약
프랑스인들에게 2차 세계대전은 짧지만 굴욕적인 사안이지만, 독일인들이 날린 가장 큰 타격은 비시 조약의 강요였습니다. 조약이 양차 대전의 참극을 프랑스에게 돌리며 우리 군사력에 상대한 제약을 가한 결과 우리 육군은 의장대 수준으로 쪼글아들었습니다, 더불어 조약이 국가가 어떤 연구를 후원할 수 있는지도 제약하며, 독일은 자기들이 바라던 대로 프랑스령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권을 손쉽게 얻어냈습니다. |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0%
연구 속도: -10.00%
훈련 시간: +30.00%
보병 장비 생산비용: +60.00%
- {{{#!folding 내각
-
장-루이 틱지예비넝쿠흐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대통령에 취임한 장루이 틱지예비넝쿠흐는 현재 프랑스 국가가 처한 치명적인 교착 상태의 전형적인 대표자입니다. 1936년부터 오래 전 사라져버린 제3공화국과 후속 프랑스국의 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그가 프랑스 정치의 영역에서 미움을 받는 만큼 사랑받고 있습니다.
비극적인 서러시아 전쟁과 기사단국의 설립 후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피에르 라발이 예기치 않게 사망하여 프랑스 국가은 다시 한번 파멸적인 정치 체제를 갖게되었습니다. 거의 몰락할 뻔한 국가는 틱지예비넝쿠흐를 산산조각난 국가를 통합하는 데 가장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하여 권력의 자리에 임명시켰습니다. 미움을 받는 만큼 사랑받았지만, 그는 분열된 국민당을 성공적으로 통합하고 경제 위기로 인해 무너진 희미한 안정감을 재건함으로써 프랑스 국가의 존속을 보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독일인은 아니지만 독일인과의 지속적 협력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현상 유지에서 변화를 갈망하며 의회의 다양한 반대 운동에 계속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제국이 계속 악화되고 이전에 프랑스를 사로잡았던 혼돈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동안 장 루이 틱시에 비낭쿠르와 그의 정부는 무의미한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는 반면, 프랑스 정치의 새 시대는 그것들 없이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저항이 날로 강해지고 있고 부르군트가 프랑스 국가의 목을 졸라 죽이는 위협으로 인해 프랑스 국가는 아마도 최악의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비낭쿠르 자신은 유럽의 평화가 미약하다는 것과 프랑스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한 번 불타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folding 지휘관
- {{{#!folding 제독
- 샤를 플라톤, 3, 1/1/1/1: 현실에서는 비시 정부의 식민장관을 했던 인물로 1944년 공산주의 레지스탕스에게 붙잡혀 총살되었다.
- 가브리엘 오팡, 2, 1/1/1/1: 현실에서는 비시 정부의 해군장관을 했던 인물.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 당시 자침을 지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후 비시 정권에 협조한 죄로 처벌을 받지만 얼마 못 가 사면된다.
- 앙투안 상귀네티, 2, 1/1/1/1: 현실에서는 1942년 자유 프랑스에 합류했으며 전후 클레망소의 함장이 되기도 했다.
- 장 르레르미니에, 1, 1/1/1/1 : 현실에서는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 당시 자신의 잠수함 카사비앙카를 이끌고 도주해 자유 프랑스에 합류했던 인물.
- 엘리아 그롤로, 1, 1/1/1/1
- {{{#!folding 주요 도시
-
파리
10년 후인 1950년대에 파리 동부에서 베네룩스까지 이어지는 힘러의 그림자 국가가 세워지면서 이 도시는 둘로 산산조각이 났으며, 북파리부터 베네룩스까지 뻗어졌습니다.
가족은 여전히 삶과 영원한 고통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지만 파리의 남쪽 절반은 모든 곳의 프랑스인에게 밝은 희망의 등불로 남아 있으며, 이는 언젠가 모든 것이 예전처럼 잘 될 징조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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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티에
이 도시는 수세기 동안 대학 도시, 종교적 갈등의 온상, 수비대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푸아티에는 파리와 보르도의 중간인 흥미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프랑스의 중서부 도시는 다시 한 번 서유럽의 일부를 지배하려는 세 가지 지역 중의 전략적 위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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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르몽페랑
이곳은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유럽 국가들에게 1차 십자군 전쟁을 촉구했던 곳이다. 최근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 도시는 독일 제국과 새로 창설된 프랑스국 사이에 분쟁 지점이었으며 후자에게 양도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도시는 힘러의 군대와 프랑스 간의 더 큰 분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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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황폐한 내전, 야만인, 포위 공격, 전염병, 혁명 및 세계 대전이 모두 고대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공모했으며 제 2 차 세계 대전은 도시를 거의 피할 수없는 불에 던졌지만 그 사람들은 생존하고 번성했습니다.
이 도시는 루제 드 릴이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작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시가지는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서 있습니다. 신이 마르세유를 더 많은 세기 동안 보존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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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그러나 독일의 지배력은 다시 한 번 프랑스인을 파리에서 몰아내고 보르도에 다시 정착시켰고, 그 이후로 주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는 산업화가 번창하고 있으며 도시를 재건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나날이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로렌과 북동부 탄전, 북부 철강 산업지대, 알프스 수력발전지대, 우라늄 광산 등이 있어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산업이 발달한 북부와 동부 지역을 부르군트에게 침탈당해 경제 사정이 나쁘며, 농업 지대인 서부와 남부도 독일의 간섭 때문에 사정이 좋지 못하다. 또한 부르군트와의 국경 지방이 비무장지대로 설정되었다. 과거에는 보르도와 마르세유, 클라르몽페랑을 제외한 북동부 모든 지역을 뺏겨 완전히 식물 국가 취급을 받았으나 TT3 이후 스켈레톤 컨텐츠가 추가되었으며 센 강을 중심으로 파리가 동서로 분단되는 등 부르군트의 영토 자체가 축소되어 프랑스국의 영토가 늘었고, 서북부 지역의 브르타뉴가 완전히 삭제된 후 프랑스국에게 통합되어 더 희망적이게 되었다. 경제적 고난과 정치적 폭력에 시달리는 국가로, 서쪽의 코미가 될 거라고 한다. 2020년 3월 스트리밍 정리글
초기 지도자는 196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극우 변호사 장루이 틱시예비냥쿠르. 프랑스-부르군트 전쟁 발발 이후 그가 실종되고 샤를 욍치제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나, 얼마 되지 않아 80대 고령의 욍치제르도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이후 지도자를 선출하면서 본격적으로 개혁이 시작된다.
다음은 틱시예비냥쿠르의 실종과 욍치제 사후 집권할 수 있는 프랑스의 지도자이다. 프랑스 경로
- 앙투안 피네(국민당 - 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가부장적 보수주의 - 보수주의)
{{{#!folding 인물설명
용감한 이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의 횃불을 들어 올립니다. 그보다 더 용감한 이는 억압이란 잿더미 속에서도 횃불을 만들어 올립니다. 앙투안 피네 또한 그런 부류의 인물입니다.
피네는 3공화국과 뒤를 이은 프랑스국까지 프랑스 정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온 인물입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웅변가인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자신을 국민당 온건파이자 산업주의자라고 주장합니다. 피네는 진정으로 공정한 프랑스국이라는 이상을 믿었으며, 피에르 라발 사후 국민당 개혁파의 지도자로서 프랑스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폭넓은 지지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개혁의 이상을 추진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이상은 프랑스국의 수많은 강경파들에 의해 외면당했으며, 많은 이들은 그의 꿈인 공정한 프랑스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르군트의 전차가 파리에 진입했습니다. 뒤이은 혼란 속에서 앙투안 피네는 동료 개혁파들과 함께 프랑스 권좌 쟁탈전에 참여했고, 다시 한번 개혁의 횃불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나라를 지배합니다. 이미 취약해져 있던 구 정치 체제는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으며, 취약한 기반은 현실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음지에서는 국민당 보수파들이 암약해 있으며, 극단주의자들이 지피는 불길이 국민들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피네는 자신의 앞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피네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민주적인 신프랑스에 대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프랑스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서 그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피네는 3공화국과 뒤를 이은 프랑스국까지 프랑스 정계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온 인물입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웅변가인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자신을 국민당 온건파이자 산업주의자라고 주장합니다. 피네는 진정으로 공정한 프랑스국이라는 이상을 믿었으며, 피에르 라발 사후 국민당 개혁파의 지도자로서 프랑스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폭넓은 지지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개혁의 이상을 추진할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이상은 프랑스국의 수많은 강경파들에 의해 외면당했으며, 많은 이들은 그의 꿈인 공정한 프랑스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르군트의 전차가 파리에 진입했습니다. 뒤이은 혼란 속에서 앙투안 피네는 동료 개혁파들과 함께 프랑스 권좌 쟁탈전에 참여했고, 다시 한번 개혁의 횃불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나라를 지배합니다. 이미 취약해져 있던 구 정치 체제는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으며, 취약한 기반은 현실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음지에서는 국민당 보수파들이 암약해 있으며, 극단주의자들이 지피는 불길이 국민들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피네는 자신의 앞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피네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민주적인 신프랑스에 대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프랑스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해서 그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 국민당 개혁파의 수장. 개혁을 지속시키거나 제한된 개혁만 하거나, 피네가 레지스탕스와 접촉한다 믿어 민병대를 조직할 정도로 피네를 신뢰하지 않는 극우파들이 OAS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
- 개혁이 지속될 경우 1970년 대선을 실시한다. 후보는 앙투안 피네(소상공인과 농민의 국민중심, 가부장적 보수주의), 카미유 로랑(국가를 위한 연합, 기독교 민주주의), 에드몽 지스카르데스탱[40](프랑스 민주연합, 고전적 자유주의), 프랑수아 미테랑(프랑스 노동당, 민주사회주의) 이 넷. 이 선거에서 피네가 당선될 경우 현상이 유지될 수도 있지만 국민당이 무너지고 일당 우위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될 수도 있다.
- 제한된 개혁을 펼칠 경우 피네가 계속 집권한다. 라울 살란이 이끄는 OAS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초군국주의 체제가 수립된다.
- 피에르 푸자드(국민당 - 프랑스 형제애 연맹, 푸자드주의 - 가부장주의)
{{{#!folding 인물설명
황폐해진 현재의 프랑스를 이끄는 독이 든 성배를 들어야 할 자가 있다면, 아마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이는 피에르 푸자드뿐일겁니다. 1950년대의 혼란 속에서도 푸자드는 비낭쿠르가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총리 자리를 확보했습니다. 푸자드는 새로운 권세를 누리면서 점진적으로 권력의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갔습니다. 유럽이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프랑스-부르군트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가 새로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모든 정치적 기반을 잃어버렸고, 그는 이 격동의 시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책임을 위임받았습니다. 푸자드는 정부 중추에 있는 다양한 인맥, 동료, 지인들을 이용하여 그 불길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한번 권력의 전당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푸자드는 '백성'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국가의 기초인 노동, 가족, 조국을 기반으로 한 문화를 장려하려 합니다. 그는 다시 위대한 프랑스를 재건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대재앙에 휘말린 자신의 조국을 재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특히, 정부 내에 숨어있는 세력이 자신의 지배를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면 더욱 그 일은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 부패한 자들을 막지 못한다면 그가 아는 프랑스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성공한다면 마침내 프랑스는 억압의 잿더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부르군트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가 새로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모든 정치적 기반을 잃어버렸고, 그는 이 격동의 시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책임을 위임받았습니다. 푸자드는 정부 중추에 있는 다양한 인맥, 동료, 지인들을 이용하여 그 불길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한번 권력의 전당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푸자드는 '백성'의 수호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국가의 기초인 노동, 가족, 조국을 기반으로 한 문화를 장려하려 합니다. 그는 다시 위대한 프랑스를 재건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대재앙에 휘말린 자신의 조국을 재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특히, 정부 내에 숨어있는 세력이 자신의 지배를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면 더욱 그 일은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 부패한 자들을 막지 못한다면 그가 아는 프랑스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성공한다면 마침내 프랑스는 억압의 잿더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 비낭쿠르 정권의 총리이자 중산층, 농민, 장인들이 주로 지지하는 포퓰리스트. 집권 시 은행가와 같이 국가와 경제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을 격파하기 위해 '200가문과의 전쟁'을 벌인다. 성공하면 푸자드는 신 삼부회 정책을 실시하며 실패 시 내전이 발발한다.
- 피에르 시도스(프랑스 인민당, 교권 파시즘 - 국가사회주의)
{{{#!folding 인물설명
프랑스 군인이자 민족주의자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 피에르 시도스는 프랑스 정치권에서 전통주의와 강경파의 최전선에 있어 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와 형제를 모두 잃은 피에르는 민족주의 진영에서 엄격한 평화주의자로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1950년대, 독일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받아들이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불길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 창안되었습니다. '서구 운동'으로 명명된 이 기류는 그가 광대한 프랑스 정계로 입문할 수 있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웅변가였던 그는 표현력, 그리고 몸가짐의 활용 같은 기술들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대중들에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프랑스 인민당의 대표로 올라선 그는 자신의 당을 프랑스 민족주의의 기수이자, 동시에 가장 친독일적인 정당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프랑스-부르군트 전쟁과 뒤이은 혼란 속에서 시도스는 마침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권좌에 오른 지금 시도스는 프랑스의 나약한 민주주의를 척결하고 (독일을 포함한) 형제애로 단결한 유럽을 건설하여, 프랑스 건국 당시 근본적인 기치였던 국민혁명의 완수라는 중대한 과업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1950년대, 독일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받아들이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불길에 대항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 창안되었습니다. '서구 운동'으로 명명된 이 기류는 그가 광대한 프랑스 정계로 입문할 수 있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열정적인 웅변가였던 그는 표현력, 그리고 몸가짐의 활용 같은 기술들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대중들에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프랑스 인민당의 대표로 올라선 그는 자신의 당을 프랑스 민족주의의 기수이자, 동시에 가장 친독일적인 정당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프랑스-부르군트 전쟁과 뒤이은 혼란 속에서 시도스는 마침내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권좌에 오른 지금 시도스는 프랑스의 나약한 민주주의를 척결하고 (독일을 포함한) 형제애로 단결한 유럽을 건설하여, 프랑스 건국 당시 근본적인 기치였던 국민혁명의 완수라는 중대한 과업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친독파.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의회 권력 축소, 몇몇 친민주파 정당의 금지, 그리고 엄격한 국가 가톨릭주의 확립 등 맹렬한 반민주주의 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집권 시 독일을 방문하고 동맹 대상을 정하는데 독일, 이탈리아(스코르차 루트 한정), 이베리아, 고립주의 중 고를 수 있다. 집권시 내전이 반드시 발발한다.
장 마리 르펜이 내무장관을 해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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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셸론(국민당 - 테크노크라트, 관리국가 - 전제주의)
자신의 테크노크라트적 성향에 맞춰서 PRIME 계획[41]을 추진하는데, 조제프 다르낭(프랑스 민병대, 군정 나치즘 - 국가사회주의)이 이끄는 민병대가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산업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조정위원회(국가조정위원회, 기업독재 - 전제주의)를 구성할 수 있지만 결국 계획을 통과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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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각소트(악시옹 프랑세즈, 과도정부)
왕당파. 집권한지 시간이 지나면 국민투표를 해서 국체를 결정한다. 만약에 통과된다면 왕국은 되지만 추후 쿠데타가 일어나 알퐁스 주앵(국민당 - 페탱파, 파시즘)가 지도자가 되고, 쿠데타 옵션을 고르면 당연히 쿠데타가 일어나 라울 살란이 군사독재를 한다. 실패할 경우에는 앙리 7세가 대신 집권하고 각소트는 사임하는데, 개혁파인 올리비에 기샤르(악시옹 프랑세즈, 가부장적 보수주의 - 보수주의), 온건파인 장 도르메송(악시옹 프랑세즈, 준입헌군주제 - 가부장주의), 보수파인 피에르 푸조(악시옹 프랑세즈, 전제군주제 - 전제주의) 루트로 내각을 고를 수 있다.
2.5.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
티저 예고[중기간]- 유니티-팍트의 통합 국가판무관부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동부 지부)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지크프리트 카셰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모스코비엔의 간수: 매일 정치력 획득: -0.02, 안정도: +5%
뒤틀리고 부패하고 변해버리는 꿈보다 이루지 못한 꿈이 낫습니다.
지크프리트 카셰에게는 항상 한 가지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항상 명확하고 타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제국은 이에 반대하려고 하는 모든 영혼의 영광과 피로 씻으려 했습니다. 불가능했습니다.
꿈이 꼬였습니다.
NSDAP가 지배한 이후 충성스럽게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슬라브 땅에서 헌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은 절대 건드릴 필요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열쇠가 있는 감옥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슬라브인은 공장에서 농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통해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슬라브는 항상 등 뒤에 채찍이 있기 때문에 빛을 보기 위해 올려다 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렇습니다, 슬라브인들은 독수리가 원할 때마다 서로를 배신하고 변절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카셰의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카셰, 모스코비엔 및 그 역사의 미래는 잠겨 있으며 이 감옥이 파괴되는 경우에만 변할 겁니다 - 운명의 소원에 의해 또는 그들에 의해 말이죠.}}} -
볼프 하인리히 그라프 폰 헬도르프 정부수반 (국가사회주의)
{{{#!folding 인물설명
완전히 타락한 자: 공장 생산량: -10%, 필요 소비재: +5%
볼프 하인리히 율리우스 오토 베른하르트 프리츠 헤르만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헬도르프의 태양은 그가 태어난 날부터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고귀한 유산, 군 복무, 한 지위, 다른 지위등을 거쳐 - 태양의 빛은 여전히 그 앞에 있었고, 여전히 정상으로 가는 길로 인도했으며, 그의 죽음을 넘어서고, 상상할수 없는 부를 보여주며 그를 역사에 남길 영광으로 비췄습니다,
그가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말이죠.
헬도르프는 모스코비엔에서 카셰의 핵심 참모으로 임명된 후 오래 전에 그가 분명히 볼 수 있었던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스코비엔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길의 끝이었습니다. 이전에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지금은 끊임없는 내리막에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모든 힘, 돈 및 인맥을 통해 이제는 하루하루를 훨씬 더 견딜 수 있지만 이 길의 방향은 영광처럼 보이지 않으며 마땅히 인정받을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초래하는 것은 혼란입니다.
억제할 수 없는 기생충은 어떤 면에서는 시스템에 이롭습니다. 그러나 숙주는 기회가 있을 때 이를 근절하지 않은 것을 항상 후회할 것입니다.}}} -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 NSPR (V)의 지도자, 루슬란트지도자-SS(군정 나치즘)
{{{#!folding 인물설명
트베르 숲의 괴물: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외세 전복 활동 효율: -40%, 주둔지 피해: -10%
태만에서 분노가 나오고, 분노에서 권세가 나오고, 권능에서 죄가 나옵니다. 브로니슬라프 블라디슬라보비치 카민스키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악마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벨로루시아의 아들인 카민스키는 항상 자신, 가족, 조국보다 더 위대한 것을 꿈꿔왔습니다. 그를 적군에 입대하게 한 것은 그를 시베리아의 감방에 가두었다가 나중에 로코트 자치국으로 보낸 생각이었고, 수만 명의 시체를 그의 손에 안긴 것도 바로 그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죽은 자들을 안고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것을 냄새 맡으며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아주 웅장한 것을 위해서요.
이 냄새 중 가장 오래된 냄새는 보스보이니크입니다. 그의 타락한 얼굴은 지구 표면 아래에서 길지만 카민스키는 여전히 걷고 있습니다.
"넌 복수 할 것이다. 어머니 러시아를 위해.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
하랄트 크반트[42] 재무장관 (협동조합주의적 국가통제주의)
{{{#!folding 인물설명
산업가: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 건설 속도: +10%, 필요 소비재: -7%
하랄트 크반트가 태양으로 가는 계단을 밟을 때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발 아래에 피가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세계 정상의 높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가 참여하지 않은 가족에 의해 얻은 제국에서의 그의 위치, 그의 권력과 부는 그가 달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둬야합니다.
그들이 일하도록 놔두죠. 그래서 그들은 죽어 있게 합시다. 평범한 공장의 망치질을 멈추고 서명할 문서 목록이 끝날 때, 하루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과거를 돌아보고...
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엇이 감옥이고, 그들에게 신의 징벌처럼 보이고, 그들에게 무엇이 끝없는 피, 전쟁, 비참의 강처럼 보이는 것은 크반트에게 있어 황금 산과 운명의 축복을 통해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일 뿐입니다.}}} -
디트리히 폰 자우켄 내무장관(전제주의)
{{{#!folding 인물설명
늙은 프로이센인: 사단 조직력: +10%, 사단 회복률: +5%, 훈련 시간: +5%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 디트리히 프리드리히 에두아르트 카지미르 폰 자우켄의 행군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의 마음에 새겨진 총알 소리는 모든 전사자들과 그가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먼저 그는 그가 아는 조국, 그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조국이 구타당하고 굴욕을 당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다시 그의 헌신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묻은 채 모든 움직임을 그녀에게 명령하는 그에게는 너무나 낯선 갈색 괴물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보이든 그는 그녀를 배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직면한 모든 전쟁에서 그녀를 보호한 대가로 그에게 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최전선의 적들과 동료 병사들을 상대할 때 갈색 괴물 수준으로 내려가기를 거부한 것에 대해 신이 그에게 상을 준 것 같습니다. 이제 폰 자우켄은 그와 그의 부하들이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운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만자에 묶여 있는 그들의 조국. 그가 지평선 너머를 바라볼 때,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볼 때 그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충분할까요?"}}}
- {{{#!folding 국민정신
-
모스코비엔 계획 - 그리고 그 과실
이것이 모스코비엔 계획이 달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슬라브가 죽을 때까지 일하고 협력하고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동안 그의 주인은 꿈을 위해 그 자리를 대체하는 동안 복종하도록 강요합니다. 모두 꿈을 위해, 모두 마지막 승리를 위해서요.
이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월간 인구: -0.1%
징집 인구: -80%
노예 노동 월간 비율: 0.02
* 총체적 재건(Totalrekonstruktion) - 그리고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징집 인구: -80%
노예 노동 월간 비율: 0.02
* 총체적 재건(Totalrekonstruktion) - 그리고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하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 사회주의의 새로운 영웅인 지크프리트 카셰에 의해 바닥 없는 파괴와 타락의 구덩이에서 파헤쳐졌습니다. 그는 모스코비엔이 총체적 재건을 받도록 강요했고 그것은 그의 뜻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도 그렇게 할까요?||
최대 지휘력 수치 증가: +25,
GDP 증가: +2%
생산단위 대비 GDP비율 수치: +2.50
* 오스트폴크라트(Ostvolkrat) - 그리고 그 쥐새끼들
GDP 증가: +2%
생산단위 대비 GDP비율 수치: +2.50
* 오스트폴크라트(Ostvolkrat) - 그리고 그 쥐새끼들
그러나 그곳은 배신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동기는 표면상으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지만 매일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그들은 AoNSDAP, 모스코비엔, 자신의 미래, 아리안 종족의 안전 및 자신의 운명을 배신합니다.
그들의 날이 며칠 남지 않았거나, 우리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상승: +0.5
일일 지휘력 획득: +0.5,
매월 행정 효율 변화: -0.01
* 지뢰밭에서의 삶
일일 지휘력 획득: +0.5,
매월 행정 효율 변화: -0.01
* 지뢰밭에서의 삶
모스코비엔은 감옥의 거인이자 치명적인 감옥입니다. 계급, 장소, 신념이 크든 작든, 편안하든 위협적이든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감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스코비엔은 이미 5,000,000명의 영혼을 없애버렸으며 수천만 명을 더 덫에 걸리고 다치게 하고 착취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후 들판의 지뢰와 같이 파르티잔 그룹들로 가득 차 있으며, 불안정하고 부식성이 있으며, 모스코비엔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파괴에 더 가깝고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누군가는 틀림없이 꿈을 꿀 것입니다. |
전쟁 지지도: -20%
군사 사용 부문: +20%
매월 행정 효율 변화: -0.01
매일 국가사회주의 지지도: -0.01 }}}
- {{{#!folding 주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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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크트페테르스부르크
서유럽과 러시아의 영감이 융합된 구시가지는 전쟁 후 완전히 파괴되었고 나치 방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모스카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심에 있던 수많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교외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재건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완공 후에도 남아있게 되었기 때문에 분리 및 이동 제한이 덜 엄격합니다. 그러나 모스카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업적 대량학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도시에서 일하다 죽임을 당하고 독일 "지배종족"의 구성원으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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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카우
지옥의 면류관인 오늘날의 모스카우인 모스코비엔은 그것을 찾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 중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크렘린과 다른 역사적 건물은 파괴되지 않고 나치 선전물로 대체되었습니다. 모스카우의 외곽이 다시 그려졌습니다. 인종 차별이 부과되었고 수천 명의 러시아인이 노예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 배후지로 이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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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루스부르크
오늘날 파울루스부르크는 모스카우 다음으로 모스코비엔 행정부의 두 번째 중심지입니다. 절반은 파괴되었고 독일의 목표에 맞게 완전히 재건되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러시아인들이 외지로 추방되거나 공장에서 뼛속까지 일하도록 강요받았고, 파울루스부르크는 모스코비엔 전체에서 독일인이 가장 지배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구 소련의 동유럽 일대. 망상이었던 레벤스라움의 현실이자 과거 A-A선 계획의 파편, 그리고 가장 실패한 국가판무관부로 국가판무관은 지크프리트 카셰.[43] 가장 거대하고 인구가 많으나 엄청난 자본의 소모를 통해서 시행한 독일화도 실패했고, A-A 선이 서러혁전과의 전쟁에 붕괴된 후 난민과 빨치산들의 파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 답 없는 장소로 발령된 카셰는 극단적인 정책을 펼쳐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려고하나 이는 도리어 난민과 빨치산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더욱 실패를 촉진시켰다. 마지막으로 총통의 가장 충성스러운 후계자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모스코비엔에서 SS로 추정되는 암살자에게 암살당하자, 그 이후론 본국이건 판무관부에서건 아무도 그가 성과를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툴박스 이론 패치 이후 독일 내전과 함께 모스코비엔이 문자 그대로 18분할나게 된다. 덕분에 붕괴될 때 독일 내전에 준하는 렉이 걸리는 상황.
- 18분할 초기에는 전부 지도자별로 설명이 있었으나 몇 차례의 수정 이후 인물설명이 TBD에 가깝게 수정되었다. 아래의 내용은 수정 전후의 내용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참고용으로만 볼 것. [펼치기ㆍ접기]
- 모스코비엔 SS 작전집단: 헤르베르트 바케가 다스리는 농본 스파르타주의(국가사회주의, 모스코비엔 SS 작전집단) 세력. 수도는 플레스카우. 아르투어 네베, 루돌프 회스 등이 여기에 있다. 서러시아 전쟁 중 발생한 힘러의 쿠데타 미수, 괴벨스 암살 사건 이후로 SS들이 감시대상이 된 것은 팍트의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모스코비엔에서는 괴벨스 암살의 책임까지 SS로 지목되면서 사실상 불가촉천민 취급받는다. 그나마 남은 친위대원들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플레스카우 근처에 유배된 채로 고립되어있다. 원래 리하르트 발터 다레가 프스코프로 유배되면서 세워진 영지인 이곳은 다레가 기존의 도시 체제를 완전히 파괴시키고 그의 농본 스파르타주의 이념에 따라 완전히 나라를 재설계시켰다. 얼마안가 다레가 암이 걸려 권력에 공백이 생기자 힘러가 바케를 임명시킨 상황. 제작진 피셜로 이곳은 SS의 만행 덕분에 완전히 독일화가 완료된 지역이라고 한다.
- 러시아 공화국 평의회: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진보주의(좌익 농본주의) 임시정부 세력. 수도는 오뤼올. 한때는 고르바초프도 무장 봉기를 통해 독일을 몰아내는 날을 꿈꾸었지만 서러시아 전쟁이 처절한 패배로 끝나자 무력으로는 도저히 독일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 독일에 협력해 점진적으로 러시아인의 권리를 늘려가는 방안을 선택했다. 본국에 협력은 하지만 내실은 나름 다지는 게임 내 중화민국 지도자인 가오쭝우와 비슷한 면이 많다.
- 펜자 작전지대: 게오르크 그라프 폰 플레텐베르크가 다스리는 군사독재(전제주의, NPO) 세력. 수도는 펜자. 프로이센 귀족 가문 출신인 플레텐베르크는 자신의 기갑부대를 모스코비엔 최정예 부대로 만들었지만 권력다툼에는 딱히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부대를 탐낸 탐보프에서 공격해오자 참전하게 된다.
- 트베리 자치령: 브로니슬라프 카민스키가 다스리는 국수주의 세력. 수도는 야로슬라블. 블라소프가 독일을 배신하고 사마라로 간 이후로는 부역자 중 원 탑 네임드가 되었다. 같은 부역자 포지션 중 참회하는 블라소프나 실력양성론적인 고르바초프와는 대조되는 입장으로 카민스키가 모스코비엔의 지배자가 되면 국명이 신 러시아로 바뀐다. 여담으로 그가 승리하면 옥탄 루트에서 동란시대때 카민스키와 접촉하는 중점이 해금된다. 둘다 악랄한 친독 부역자라는 점을 표현한것으로 보인다.
- 장크트페터스부르크 작전지대: 디트리히 폰 자우켄이 다스리는 군사독재(전제주의, NPO) 세력. 수도는 장크트페터스부르크. 플레스카우, 브랸스크, 펜자, 아스트라한 작전지대와 접촉시 합병할 수 있다. 귀족 출신인 디트리히 폰 자우켄은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프로이센 군의 이상을 잊지 않았고 내심 국가사회주의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헬도르프가 불법적으로 권력을 차지하자 이에 반기를 들었고 그 김에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독일식 군국주의 체제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
- 저항군 연합부대 13: 므히타르 암바르추먄[44]이 이끄는 군벌(전제주의, 붉은 군대) 세력. 수도는 네프둡슈트로프. 적성연합군인데 전제인 이유는 소련스런 이름만 간판으로 걸어넣고 사실 사회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 나중에 진짜 사회주의로 가는 루트도 생길 것이라고 한다.
- 탐보프 비상대책정부: 블라디미르 길[45]이 이끄는 기술독재 나치즘(국가사회주의, 탐보프 비상대책정부) 세력. 수도는 탐보프. 티흐빈 비상행정과 접촉시 합병할 수 있다. 길은 붉은 군대 출신이었지만 독소전쟁 중에 배반해 드루지나 SS사단에 가입했다가 서러시아 전쟁과 힘러 쿠데타가 터지자 다시 배반했고 자기 부대를 용병단으로 바꾸어 모스코비엔 기업들의 경호원이 되었다. 모스코비엔 내전에서는 기업들이 주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낳괴 포지션.
- 플레스카우 작전지대: 지크프리트 그라베르트[46]가 이끄는 군사독재(전제주의, NPO) 세력. 수도는 홀름가르트. 플레스카우에 주둔한 SS들을 증오하는 국방군들이 결성했다.
- 브랸스크 작전지대: 에버하르트 파스테르나크가 이끄는 군사독재(전제주의, NPO) 세력. 수도는 브랸스크. 야심이 없는 파스테르나크는 정치를 혐오하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자우켄의 파벌로 분류되었지만 별 생각없이 후방에서 군생활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이 겹치더니 오합지졸인 50군단의 군단장으로 부임한 채로 브랸스크에 고립되어 절망하고 있다.
- 볼고돈스크 작전지대: 쿠르트 안데르센이 이끄는 군사독재(전제주의, NPO) 세력. 수도는 볼고돈스크. 자우켄의 쿠데타에 찬성한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딱히 독일식 군국주의의 이상이나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혐오 같은 건 없고 전공을 세웠음에도 헛소문 때문에 진급누락된 것에 불만을 품고 자우켄에게 합류했다.
- 아돌프슈타트 작전지대: 라인하르트 레헤가 이끄는 군사독재(전제주의, NPO) 세력. 수도는 아돌프슈타트. 레헤는 카스피해에 주둔한 크릭스마리네 소속 U보트 지휘관으로 카셰의 부패에 넌더리를 내고는 자우켄의 쿠데타에 협력했다. 나치당을 혐오하는 육군 출신의 다른 장성들과는 달리 독일 본국이 진정되면 본국의 나치당과 빨리 접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모스카우 작전지대:
- 시시키: 발렌틴 푸르긴[47]이 이끄는 군벌(전제주의, 쉬셰크 정부) 세력. 수도는 자란스크. 붉은 군대의 영웅이자 반독 저항군으로 이름이 높은 발렌틴 푸르긴의 저항군...으로 세간에 알려져있으나 사실 전부 가짜다. 사람들은 푸르긴의 군대를 저항군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도적떼나 다름이 없다. 유그라와 비슷한 포지션.
- SPG "승리자들"(보로네시): 드미트리 니콜라예비치 메드베데프가 이끄는 부하린주의(공산주의, 승리자들) 세력. 수도는 스타리오스콜. 자유 스몰렌스크 봉기와 접촉시 합병할 수 있다. 메드베데프는 NKVD 말단 요원이었지만 20년 동안이나 게릴라전을 이어가고 있다.[48] 수많은 모스코비엔의 분할 세력 중 구소련과 연관이 있는 유일한 조직.
- 티흐빈 비상대책정부: 오토 바이딩어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NSDAP 동방 지부) 세력. 수도는 티흐빈. 모스코비엔의 자유군단의 지휘관 바이딩어는 헬도르프와 탐보프의 기업체들 모두와 연줄이 있어서 자신만은 괜찮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둘 다와 떨어져버렸고 티흐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바이딩어와 자유군단은 슈페어 루트 막바지에도 등장한다.
- 파울루스부르크 비상대책정부: 볼프 하인리히 그라프 폰 헬도르프가 이끄는 AOdNSDAP(NSDAP 동방 지부) 세력. 수도는 파울루스부르크. 티흐빈 비상행정과 접촉시 합병할 수 있다. 친구 괴벨스의 덕으로 출세가도를 걷고 있던 헬도르프는 카셰의 부관으로 모스코비엔이라는 헬무지에 배치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친구 괴벨스마저 모스코비엔에서 SS[49]의 테러로 사망[50]하자 모스코비엔의 기업가들, 현지인들, 카셰, SS 등등 모두를 증오하게 되었다. 독일 내전 직후 카셰가 사라지자 모스코비엔을 접수하며 모두에게 복수를 실행하려고 하지만 자우켄이 쿠데타를 감행하며 모스코비엔은 18조각으로 분할되어 버린다.
TT 패치 이전의 삭제된 군벌 중 사탄주의를 신봉하는 '보기 스메르티(죽음의 신)' 라는 군벌이 있었는데 이 군벌의 지도자는 소련의 유명 연쇄살인마인 안드레이 치카틸로. 내전 중반 무렵에 모스크바 근방에서 등장한다. 특이한 점으로 지도자 썸네일이 사형수가 쓰는 복면에 눈구멍이 뚫려있는 모양새로 얼굴이 가려져서 나오는데 이 복면은 내전에서 점점 영토를 잃어갈 시 하나하나 벗겨진다. 보기 스메르티 군벌은 게임 초창기에나 존재 했던 군벌로 시스템과 잘 호환되지도 않고 기반이 부실하여 삭제처리 되었다. # #
2.6. 불가리아 차르국
- 아인하이츠팍트의 전우국
- 집권이념: 전제군주제(전제주의, 차르 충성파)
- 경제: 계획경제/그로스라움 콘티넨탈오이로파
- {{{#!folding 내각
- 보리스 3세 지도자
- 콘스탄틴 파르토프 정부수반
- 스타니 슬라프발란 외무장관
- 페터르 알라조프 재무장관
- 바실 보이데프 국방장관
- {{{#!folding 국민정신
-
녹슨 다모클레스의 검
차르는 확실한 우리의 지도자이지만 그의 권력도 궁극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만에 빠진 군대는 머리 위로 다모클레스의 검을 들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그들은 그것을 잘 휘두를 수 없습니다. 군대는 파벌들의 소굴입니다. 일부는 이념적이고 일부는 개인주의적입니다. 이 불일치는 차르 보리스 3세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지만 그의 적들에게도 역시 공간을 제공합니다.
사단 공격: -10.0%
매월 군 전문성 변화: -0.20% -
빛나지 않는 루비의 왕
그의 실버 쥬빌리 동안 우리는 보리스 3세를 뇌이쉬르센 조약의 족쇄에서 불가리아를 해방시키고 진정한 제국을 건설한 통일 왕으로 부르며 환호했습니다. 그의 루비 쥬빌리가 되자 그것은 모두 옛 기억에 불과했습니다. 우리의 노쇠한 왕은 지난 10년의 다양한 위기에서 불가리아를 돕지 못한 완고한 권위주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의 퇴위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소피아의 홀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안정도: +10.00% -
지금은 무덤인, 제국의 요람
필리포스 대왕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마케도니아 땅에서 태어나 제국의 꿈을 펼쳤습니다. 그렇다면 보리스의 왕국이 같은 땅에서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일까요. 불가리아군은 10년 전에 이 지역을 거의 지키지 못할 뻔 했으며, 그들의 통제력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그것이 마침내 사라지면 차르가 일궈낸 모든 것, 그에 대한 지지, 그의 제국, 그의 유산도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사단 손실: +10.00%
전쟁 지지도: -20.00%
징병 가능 인구: -5.00%
GDP 성장률: -0.25% -
끝나지않는 급진주의자들의 뿌리
민주주의 - 전형적인 정당민주주의, 그것은 불가리아에서 결코 많은 힘을 가졌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찌꺼기들은 정리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재앙과도 같았던 가브롭스키 수상 이후에도 파시즘은 불가리아에서 두드러지게 성장했던 반면 공산주의자와 농본주의자들은 차르 보리스 3세 입장에서 뿌리깊은 가시로 남아 있습니다. 보리스 3세가 약해지는 한, 이 뿌리는 점점 더 깊어질 뿐입니다.
생산 효율성 한도: -5.00%
연구 속도: -5.00%
- {{{#!folding 주요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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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비교적 안전히 지낸 소피아는 불안정과 민족 갈등, 그리고 외국의 영향력을 받는 지역이라는 기묘한 안정과 독립적인 지역으로 발전했습니다.||}}}
지도자는 보리스 3세. 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마케도니아와 도브루자 땅을 획득했으나, 새로이 얻은 마케도니아 땅에서 끊임없는 불안과 사실상 차르의 전제정으로 굴러가는 정계 내에서 군부, 공산주의,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서로의 비전을 지닌 채 칼을 갈고 있다.
마케도니아계 위기에 따른 보리스 내각의 행방, 마케도니아계와의 협상 또는 전쟁 등의 다양한 루트가 결정되는데, 보리스 3세가 침착하게 대응해 정권을 유지하면 현상유지 또는 초군국주의로 핸들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보리스 3세가 나라를 떠나면,[51] 아들 시메온 2세가 정권을 잡는데 겉보기엔 옛날과 같은 군주정이지만 불안정한 정계 상황 때문에 파시스트가 대놓고 정부수반인 상황이다.
여기서 마케도니아와 협상하면 즈베노(좌익 협동조합주의)의 반파시즘 쿠데타 이후 실시되는 선거에서 크게 3가지 루트가 있는데 농본사회주의, 좌익 협동조합주의, 공산주의 루트가 있다. 농본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을 경우 이탈리아 영향권에 편입되어 OFN, 공영권 가입이 가능해진다.
만약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을 불사한다면 곧바로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몇개월동안 마케도니아 항복을 시키지 못하면 케렌 공세의 실패가 뜬다.[52]
전쟁이 끝나면 공세의 결과와 상관없이 현상유지를 하거나 국가사회주의(라트니크)나 파시즘(SBNL)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이 엎어질수 있다. 전자는 이념에 걸맞은 뻔한 루트가 확정인지 별다른 수식어가 없는 반면 후자는 호전적 파시스트 국가로써 발칸의 프로이센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정책을 취할거라고 나와있다. 쿠데타 이후 파시스트, 국가사회주의 세력 모두 다시 독일 세력에 편입된다.
2.7. 크로아티아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회원국
- 이탈리아 제국의 강력한 제휴국
- 집권이념: 파시즘(이탈리아 당국)
- {{{#!folding 국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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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잔 문제
1941년 이후 파르티잔들은 승전한 추축국이 세운 발칸 정부를 계속 괴롭혀왔습니다. 지금도 이들은 사라지길 거부했습니다. 티토는 계속 테러리스트 무리를 이글며 적법한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사단 속도: -10.00%
사단 조직력: -0.1
징병 가능 인구: -1.00%
사단 손실: +10.0% -
보스니아 자치
보스니아 인들은 국내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누립니다, 평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중앙 정부의 인구 통제 능력이 제한됩니다.
징병 가능 인구: -5.00%
소비재 공장: 3.0% -
가짜 왕국
외교와 공식 통신상으로 크로아티아는 독립 왕국이지만 이는 알팍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실제 크로아티아인들은 로마의 노래에 맞춰 춤추는 꼭두각시나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안정도: -20.00% -
우스타샤의 유산
우스타샤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놈들은 강력한 정치 운동으로 계속 남아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탈리아 주인들이 자길 배신했다고 여긴다는겁니다. 놈들이 우리에 대항에 우리들의 경쟁자 독일과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도: -20.00%
매일 국가사회주의 지지도: +0.03
- {{{#!folding 멸망 문구
이곳은 산 자들의 묘지이다. 이곳이 최악인 이유는 이곳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집권 시기 그대로 토미슬라브 2세. 1950년대까지는 독일의 영향 하에서 우스타샤의 만행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었으나, 독일이 이들을 계속 부추기고 크로아티아를 혼란스럽게 했고, 1959년 안테 파벨리치의 사망 이후 치아노의 개입으로 인해 우스타샤가 축출되면서 권력을 이탈리아 군부가 가져가게 되었다.
시작시 등장하는 이벤트에서 국가 경로가 결정되는데, 우스타샤가 재집권하는 막장이 되거나 유고슬라비아 봉기가 일어난다. 물론 어느 경우든 이탈리아는 개입하고, 이탈리아의 괴뢰국이 되는건 같다. 우스타샤는 독일과 협력한 역사가 있지만, 우스타샤 봉기시 독일 내전이 종료되었어도 절대 독일과 협력하지 않는다. 독일 세력권에 들어오면 독일도 이탈리아에 선전포고하는 시궁창이 발생하기 때문.
우스타샤가 집권하면 유레 프란체티치[53]가 지도자가 된다.
2.7.1.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내에 잔존하는 유격대의 소탕을 실패할시 확률적으로 봉기하는 국가. 지도자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 집권 정당은 민족공산주의(공산주의), 정당은 ZAVNOH(크로아티아 국민해방을 위한 반파시스트 평의회). 그러나 '당연히' 이 사건은 크로아티아의 이권과 관련된 이탈리아를 자극하게 되므로 이탈리아의 군사 개입을 초래하게 되고, 동시에 보스니아 지역에서도 봉기가 일어나서[54] 독립하게 되므로 이 루트로 진행할시 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된다. 제작자 QnA에서 언급하길 티토가 살아남을 방법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루트가 아니다 라고 언급한것을 봐서는 추후 업데이트를 기다려야 할듯.2.8. 그리스국
티저 예고[장기간]
- 트리움비라투스의 트리움비라투스 회원국
- 이탈리아 제국의 의존국
- 집권이념: 파시즘(그리스 국가 연합)
- {{{#!folding 국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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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정권
2차 세계대전이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끝난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그리스 또한 이 사례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점령정권"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정부는 국민들의 지지를 제대로 받고 있지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 요르요스 테멜리스는 전임자 테오도로스 팡칼로스가 가졌던 카리스마가 없으며, 집권당 국민연합(EEE) 기회주의자들이 모인 집단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리스의 실권은 이탈리아 군사당국, 협력파 민병대, 공포를 떨치고 있는 그리스 헌병대 및 보안대대들에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30%
안정도: -25.00%
납세 인구: -25.00%
비정규 보병 방어: +5.00%
비정규 보병 방어: +5.00% -
대기근의 상흔
2차 세계대전 기간 추축국에 의해 무장 점령을 당한 그리스는 침략자들의 경제적 약탈과 저항군 소탕 작전으로 인해 '대기근'이라 불릴 정도의 식량 위기를 겪었습니다. 대기근 동안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이 사망했고, 그보다 많은 이들을 영양실조로 고통받게 했습니다. 추축국 정책이 그리스 국민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여전히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분투 중이며, 대기근 시절은 그리스 국민들의 악몽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남아 있을 겁니다.
매월 인구: -15.0%
생산 효율 유지: -20.00%
건설 속도: -25.00%
생산 효율 한도: -20.00%
생산 효율 성장: -20.00%
연간 GDP 성장 요인: -10.00%
매월 빈곤율 변화: -0.05
필요 소비재: +20.00% -
행방을 알 수 없는 저항조직
정부와 SIM이 벌이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부와 이탈리아는 그리스 저항조직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어디서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는 여전히 정부의 미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공산주의 조직 민족해방전선(EAM), 공화주의 조직 국민공화동맹(EDES) 등의 주요 조직들에 대한 윤곽은 알려졌지만, ASPIDA같은 저항단체들은 여전히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심지어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조직들이 더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0%
안정도: -10.00%
주둔군 피해: +50.00%
지도자는 요르요스 테멜리스. 테오드로스 팡갈로스에 이어 그리스의 지도자가 된 테멜리스는 무능하고 부패했지만 이탈리아의 원조와 군부의 묵인 덕분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2차 이탈리아-터키 전쟁 도중 그리스 또한 터키와 국경분쟁을 벌이는데, 성공할 시 현재의 그리스-터키 국경까지 영토를 수복할 수 있다.
1964년이 되면 좌우파 가리지 않고 테멜리스의 정권에 저항하며 그리스 혁명이 발발해 이탈리아의 세력권에서 이탈한다.
혁명에서 EDES가 집권했다면 디미트리오스 프사로스의 과도 정부(전제주의)가 세워지고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협상이 시작된다. 혁명에서 EAM이 집권했다면 아리스 벨루치오티스의 혁명 전선(사회주의) 정부가 탄생하고 이탈리아가 그리스를 공격하는 코린트 작전이 개시된다.
치아노가 두체라면 협상 성공시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하고 실패시 파파도풀로스의 군사독재 정권으로 변한다. 스코르차가 두체라면 협상 성공시 파파도풀로스 독재정권이 세워지고, 실패시 코린트 작전으로 들어간다.
코린트 작전이 성공하면 그리스는 다시 이탈리아의 속국이 되며 치아노는 이오아니스 라다스를, 스코르차는 요르요스 그리바스를 지도자로 세운다.
2.9. 니더란데 국가판무관부
- 유니티-팍트의 통합 국가판무관부
- 집권이념:국가사회주의(네덜란드 군사 점령국)
- 경제: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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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직업 관료: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줏대 없는 정치인 : 정치력 획득: -30%, 안정도: -10%, 이념 변화 방어: -20%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는 나치 치하 네덜란드의 지도자이지만, 아마 평범한 농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더 잘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를 독일의 한 지방으로 축소시키는 것을 도왔던 이 오스트리아인 나치는 나치당이 네덜란드가 점령 정부를 운영하는데 피에 굶주린 장군이나 광신적인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판무관에 취임했습니다. 물론 히틀러와의 우정 또한 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민간 행정 업무를 해왔고 그것이 아마도 네덜란드를 위해 그가 한 유일한 긍정적인 일일 것입니다. 이전에 네덜란드였던 지역에 지금은 점령세력의 원활한 운영을 보장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료 체제가 들어서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암스테르담이 베를린에 보고하 수 있는 유일한 긍정적인 내용일 것이며 이는 자이스잉크바르트의 정치적 특성은 더할 나위 없이 둔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가 가장 라이히를 위해 적합한 후게자인가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그저 히틀러는 잘 하고 있고 차기총통도 잘 할 것이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이러한 중립성은 그의 네덜란드에 영향을 끼쳐 정부의 여러 파벌이 난무하고 서로를 공격하는 와중에, 자이스잉크바르트는 그것이 그들을 다루는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빋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습니다.
해가 지남에 따라, 그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처형하라는 명령에 서명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한했지만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이 권좌에 오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하위 관료체제는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암스테르담 그룹 회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고위직들은 뮈서르트파와 민족파가 차지하면서 네덜란드 국가사회주의운동이 정부를 통제하는 길까지는 단 두 단계 만이 남아 있는것을 보아 "권좌"라는 용어에 대한 자이스잉크바르트의 이해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 프리드리히 빔러 정부수반
- 프리츠 슈미트 외무장관
- 한스 피슈뵈크 재무장관
-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내무장관}}}
- {{{#!folding 국민정신
-
북적거리는 항구
베를린과 네덜란드 국가판무관부 모두 네덜란드 항구들을 라이히의 무역에서 제2의 장소로 격하시키려 했지만, 수세기에 걸쳐 달아오른 네덜란드 항구들의 인기를 삭히기엔 불가능했습니다. 라이히의 무역의 대부분은 베를린에서 직접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로테르담과 암스테르담 항구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독이과 무역을 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이 무역을 할 목적으로 우리 항구를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조선소 생산량: +20.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25.00%
무역 수송선: 생산 비용: -15.00% -
쇠퇴해가는 기둥화
네덜란드 사회는 거의 100년 동안 기둥화 해왔습니다. 하지만 1940년 독일의 침공과 함께 기둥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점령 당국과 친위대는 이 개념을 이용하여 그들 자신의 기둥을 만들었고, 이를 그 중 가장 크고 중요한 기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네 개의 전통적인 기둥들의 상황은 점령지 기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전통적인 기관들에 대한 독일의 방해, 그리고 체제의 해체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인해 악화되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안정도: -5.00% -
독일을 위한 경제
네덜란드의 경제는 독일화가 심했고, 우리 경제는 점령 기간 동안 독일의 이익에 가장 먼저 기여하기 위해 다시 짜여졌습니다. 우리 군사와 산업의 발전은 언제나 후자입니다.
자원 획득 효율: -10.00%
소비재 공장: 20.0%
생산 효율성 유지: -25.00%
공장 생산량: -25.00% -
무관심한 사람들
동원 속도: -30.00%
안정도: +5.00%
전쟁 지지도: -15.00%
공장 생산량: -10.00%
- {{{#!folding 지휘관
- 위르겐 바그너 원수, 3, 2/2/4/3
- 코르넬리스 판 헤일케르컨 장군, 2, 2/1/1/1
- 메이나우트 로스트 판토닝언 장군, 2, 3/1/1/1
- 헹크 펠드메이어르 장군, 1, 2/1/1/1}}}
- {{{#!folding 제독
- 버트 벨트캄프 제독, 3, 3/3/2/2
- 요스트 반 알스트 제독, 2, 1/1/1/1
- 헹크 반 비크 제독, 1, 1/1/2/2}}}
- {{{#!folding 주요도시
-
암스테르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스테르담은 서서히 전성기를 되찾으며 서유럽의 주요 무역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있는 국가판무관부로 국가판무관은 실제로도 네덜란드 국가판무관이었던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네덜란드의 지리를 이용해 밀수를 담당하고 있다.
게임 시작 후 얼마 못가 자이스잉크바르트가 죽는다. 자이스잉그바르트가 죽기 전 벌어지는 권력투쟁의 결과에 따라 헹크 펠드메이어르의 네덜란드 SS(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정부, H. A. 싱클레르 더로헤몬트의 국가사회주의 운동(인민파) (국가사회주의) 정부, 코르넬리스 판헤일케르컨의 국가사회주의 운동(뮈세르트파) (협동조합주의 - 파시즘) 정부, 바런트 비스회벌의 국가사회주의 운동(암스테르담 그룹) (민간 독재 - 전제주의) 혹은 기독민주애원당(통제민주주의 - 가부장주의) 정부로 변모한다.
부르군트가 붕괴하고 독일이 북프랑스 지역에 개입할 시 플란데런 땅을 얻기도 한다.
2.10. 카우카지엔 국가판무관부
업뎃 예고[추후 검토]- 유니티-팍트의 자치 국가판무관부
- 집권이념: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동부 지부-힘러파)
- 경제: 부르군트 체제/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요지아스 추 발데크 운트 피르몬트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카우카지엔의 재앙: 매일 정치력 획득: -10%, 자원 획득 효율: +1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전쟁 지지도: +5
발데크 운트 피르몬트 세습공 요지아스는 권력과 귀족층 안에서 자랐으나, 독일 공화국이 선포될 당시 가문의 귀족 작위와 특권의 박탈을 막기엔 무력했습니다. 1920년대 후반 나치당에 입당한 요지아스는 재빨리 SS의 편에 서며 안정적인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요지아스는 곧 법문을 향한 꼼꼼하고 열렬한 헌신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부헨발트 수횽소장 카를-오토 코흐를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서러시아 전쟁이 가까워질 당시 요지아스는 한직인 바르테란트 SS 상급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며, 힘러의 실패한 SS 정변에 관한 의심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동시에 라이히의 동부 경계에서 힘러의 눈과 귀가 되고자, 요지아스는 공개적으로 SS를 부정하고 자신의 회원증을 찢어버리는 거짓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카우카지엔 국가판무관부가 유격대에 시달리며 새 국가판무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훌륭한 업무기록과 진실된 명성을 가진 요지아스가 총통을 설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티플리스에 도착한 지 1주도 되기 전, 자캅카스 소비에트 유격대 일파에게 생포당한 요지아스는 사흘에 걸쳐 잔혹하게 고문받았습니다. 요지아스는 자신이 당한 그 모든 고통을, 그 모습을 지켜본 그 모든 얼굴을 기억했습니다. 마침내 구출되고 나자, 요지아스는 "안정화"를 위한 자신의 계획을 꺼내들었습니다. 고속도로와 도시들은 요새화되고, 원주민들은 강제이주당했으며, 비협조적 지역들은 무차별적인 소이탄 폭격을 맞았습니다. 더불어 요지아스는 관료체계와 주둔군을 충성스러운 SS 일원들로 채우며, 은밀히 SS에 재입했습니다(다만, 그는 본래의 자신의 회원번호를 되찾지 못한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할당량에 맞추어 게르마니아로 자원을 보내는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없지만, 여전히 혹자들은 요지아스가 진정으로 떠받드는 명령이 오스트 파리에서 오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 헤르베르트 바케 정부수반(국가사회주의, 배고픈 설계자)
- 파울 플라이거 외무장관(국가사회주의, 치열한 협상가)
- 한스 케를 재무장관(국가사회주의, 자원산업가)
- 카를-하인츠 비르거 내무장관(국가사회주의, 최고위 비밀경찰)}}}
- {{{#!folding 국민정신
-
티플리스 삼인방의 기억
티플리스 3인방은 서러시아 전쟁 당시 조직적 봉기를 일으켰던 유격 집단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생포된 후 1961년 공개교수형에 처해졌지만, 국가판무관에겐 경악스럽게도 원주민들은 3인방을 대의의 순교자들로 만들었습니다.
안정도: -20.00% -
광산국가
카우카지엔은 그 땅이 아니라 그 아래 묻힌 것들로 유명한 곳입니다. 대지가 제공하는 끝없는 석유의 강과 수북히 쌓인 금속의 산을, 독일 점령자들은 사양할 줄 모릅니다.
자원 획득 효율: +50.00%
연구 속도: -10.00%
석유당 연료 획득량: +10.00% -
라이히로 보내는 화물
우크라이나가 라이히의 곡창지라면 카우카지엔은 가스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우카지엔의 석유 사업은 오직 라이히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고 게르마니아에서 오는 명령에 따라서만 운영됩니다. 대지에서 뽑아내는 모든 것이 라이히가 바라는 대로 보내지는 데 이상할 건 없습니다. -
계층화 사회
카우카지엔에서 일종의 위계제가 세워졌습니다. 밑바닥에는 지속적인 반항심으로 인해 독일인들의 혐오를 산 "세 오물들"인 조지아인, 아르메니아인, 체르케스인들이 있습니다. 그들 위로는 그나마 반감이 덜한 기타 소수민족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이 독일인 숙련공들과 그의 가족들이며, 요지아스의 사람들로 채워진 관료층과 군인층이 최상층을 이룹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징병 가는 인구 획득치: -75%
안정도: +5.00%
- {{{#!folding 지휘관
- 요지아스 추 발데크 운트 피르몬트 원수, 2, 2/1/2/3
- 에두아르트 다이젠호퍼 장군, 4, 6/4/5/3
- 후베르트 란츠 장군, 3, 5/2/2/3
- 요제프 살밍거 장군, 3, 4/3/3/2
- 하인츠 그로스 장군, 3, 3/2/4/3
- 루돌프 콘라트 장군, 2, 1/2/3/2
- 헤르만 크렙스 장군, 2, 2/3/2/1}}}
캅카스에 있는 나치 독일의 국가판무관부. 수도는 카타리나슈타트. 산업적으로 발달한 동네로 노천 광산과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 있다. 그 결과 지구상에서 제일 오염이 심한 국가가 되었다고. 본래 모범 식민지였으나 서러시아 전쟁 당시 존버하고 있던 라브렌티 베리야, 발레리안 코바키아, 바실 므자바나제, 통칭 '티플리스 삼인방'의 자캅카스 소비에트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수도 티플리스를 점령하고 붉은 군대에 합류할 뻔했으나 발빠른 대응으로 좌절, 자캅카스 소비에트는 궤멸당했고 지도자인 베리야, 발레리안, 바실은 처형당했다.
이후 국가판무관으로 발데크피르몬트 공국의 마지막 공세자이자 슈츠슈타펠 장교였던 요지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가 임명된다. 그는 슈츠슈타펠인 만큼 힘러 지지자였지만, 슈츠슈타펠 쿠데타가 진압되자 슈츠슈타펠을 빠르게 손절치고 회원증을 찢어버리는 쇼까지 해가며 라이히스탁의 의심에서 벗어난 인물로, 꼼꼼하고 효율적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요지아스는 카우카지엔에 가자마자 지역 파르티잔에게 납치되어 사흘동안 고문당해 얼굴에 흉터까지 남게 되었다. 이후 독일 주둔군에게 구출된 요지아스는 꼼꼼한 파르티잔 절멸 작전을 벌이며 카우카지엔 전역에 철권 통치를 벌이고 있다.[55]
초창기부터 원래 그랬고 1950년대 경제 위기 이후로는 더더욱 국가판무관부가 판무관의 영지처럼 되었다곤 하나, 카우카지엔은 이러한 면이 극심하다. 카우카지엔은 부르군트처럼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인 체제의 국가판무관부로, 독일과의 상호작용이라곤 독일 본국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는 석유를 비롯한 광자원 이외에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아돌프 히틀러가 카우카지엔에 무통보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착륙 허가를 안 내줘서 전용기가 몇 시간 동안이나 공항 위를 날아다녀야 했다.
코미로 타보리츠키를 집권시키고 서러시아를 통일하면 교권 파시즘에서 제국교로 이념에 변동이 생기는데, 이는 카우카지엔식 부르군트주의를 참고한 이념이라는 설명이 중점에 뜬다. 참고
독일 내전이 벌어진 후에는 루트가 갈린다.
- 현상 유지: 부르군트와는 갈라섰지만 그대로 부르군트 체제를 유지한다. 독일 내전에서 하이드리히가 히틀러의 후계자로 지명될시 무조건 이 루트로 고정된다. 1967년 요지아스가 사망하면 지도자가 사라지며 무정부상태가 된다.
- 왕국 선언: 부르군트와 연을 끊은 요지아스가 스스로를 카우카지아 왕국의 국왕 요지아스 1세라고 선언한다. 이념은 전제군주제(전제주의). 그러나 현지인 압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이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요지아스 사후에는 아들 비테킨트가 비테킨트 1세로 집권한다.
- 기업가 쿠데타: 외무장관 파울 플라이거를 중심으로 하는 석유재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기술독재 나치즘(국가사회주의) 정권을 세운다. 독일 내전에서 보어만을 선택해 지지를 선언하며 석유를 보낸다.
1967년에 독일과 같은 세력에 속해있지 않다면 현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늦어도 1966년엔 모두 영토를 회복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는 한 사실상 AI로도 거의 볼수 없는 현상이다. 현상 유지 루트에서는 조지아, 아디게야, 아제르바이잔, 다게스탄이, 나머지 루트에서는 조지아와 아디게야만이 봉기한다.
2.11. 세르비아 구국정부
- 유니티-팍트의 괴뢰국
- 대게르만국의 점령지
- 집권이념: 교권 파시즘(국가사회주의, 세르비아 구국정부)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세르비아는 진정되지 못할 것이다
세르비아인들은 수십 년 동안 파시스트 점령군과 그들의 애완견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독일 국방군은 산과 숲이 우거진 국가의 중심부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군분투했습니다. 대신 독일군은 베오그라드, 바나트, 보르 광산과 같은 주요 거점들을 요새화하는 데에도 집중했습니다. 이 몇 가지 주요 지역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골 지역들은 점령군이 완전히 방치했으며 사실상 파르티잔들에게 은 쟁반에 담겨 제공되었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사단 조직력: -10.0%
생산 효율 한도: -15.00%
순응도 증가 속도: -5%
납세 인구 요인: -25.00% -
결코 구국을 위하지 않는 정부
세르비아, 또는 공식적으로 "구국정부"는 끔찍하고 끝없는 쇠퇴에 직면하여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 통치를 위한 핑계로 세워진 이 정부는 그 이후로 반대파를 잔혹하게 진압해 왔습니다. 실제 국가 건설에 집중하기보다 정부는 "유대-볼셰비즘"과 "프리메이슨"의 파괴를 광적으로 추적합니다. 독일인들로부터 명목상의 양보만 얻었을 뿐, 정부는 정부 정통성을 구축하기 위해 거의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안정도: -25.00%
전쟁 지지도: -30.00% -
어머니 세르비아
1941년 이래 세르비아인들은 다양한 세력에 의해 타락하고 억압당했습니다.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 국경 내의 모든 세르비아인을 잔인하게 박해하여 강제 추방시키거나 죽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의 국경선을 다시 그었고 코소보에서 알바니아화 프로그램에 착수했습니다. 토착 세르비아인들을 억압함에도 구국 정부는, 현실이 선전과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모든 국민의 관리인이자 보호자로 나타내려고 합니다.
안정도: -10.00%
징병 가능 인구: +10.00%
연간 GDP 성장 요인: -30.00%
매월 빈곤율 변화: -0.00
- {{{#!folding 내각
- 드미트리예 레티치 지도자
- 라트코 파레자닌 정부수반
- 자코브 레티치 외무장관
- 벨리보르 요니치 재무장관
- 콘스탄틴 무치츠키 내무장관}}}
- {{{#!folding 주요 도시
-
베오그라드
독일이 설립한 괴뢰국. 지도자는 드미트리예 료티치. 독일 내전 발발 직전 좌익 파르티잔이 봉기하여 협력정부와 내전을 치른다. 협력정부가 이기면 그나마 희망적인 요바노비치의 국수주의 정권이랑 아예 세르비아 왕국으로 왕정복고하는 반동적 민족주의 정권, 그리고 교권 파시즘 루트가 있다. 파르티잔 승리시 전후 독일은 세르비아의 공산화 유무에 따라 재침공을 벌이게 된다.
2.12. 슬로바키아국
- 집권이념: 교권 파시즘(국가사회주의, 흘린카의 슬로바키아 인민당)
- 유니티-팍트의 괴뢰국
- 대게르만국의 협력 괴뢰국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요제프 티소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로마 가톨릭 신부이자 슬로바키아 제 1공화국의 대통령인 요제프 티소 박사의 일생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은 뒤로 그는 온건파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는 희망에 차 있는 선량한 인물이었지만,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티소는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상에 빠지게 되었고, 슬로바키아 정치계에서 급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후, 나치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했을 때, 요제프 티소 박사는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티소는 자신의 국민들을 배신하고 총통을 추종하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이 승리한 후, 유럽은 짧은 기간 동안 번영했고, 그 후 10년 동안의 불안정이 찾아왔습니다. 독일의 경제 붕괴로 슬로바키아 경제는 몰락했지만, 슬로바키아 정부는 살아남았습니다. 티소 대통령은 국가의 불안정을 잠재울 목적으로 국민들을 더욱 탄압하고 있습니다.
1962년, 티소 대통령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많은 정부 요인들은 다가올 그의 죽음과 뒤이을 혼란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 스테판 티소 정부수반
- 카롤 시도르 외무장관
- 페테르 잣코 재무장관
- 아우구스틴 말라 내무장관}}}
- {{{#!folding 국민정신
-
묶여있는 정신
슬로바키아에서 자유로운 표현은 금지됩니다. 몇몇 이들이 표현의 자유가 정부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며, 이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국정의 기본적인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상가들과 민중들은 이에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연구 속도: -20.00% -
정치적 긴장감
티소는 20년 넘게 지도자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그의 건강은 언제나 그랬듯이 쇠약해져 왔습니다. 이는 또한 슬로바키아 정치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무저항 활동에 대한 보고는 거짓인듯 합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5%
안정도: -20.00%
전쟁 지지도: -20.00% -
경쟁력 없는 경제
파시즘은 우리의 경제에 좋은 영향만을 끼친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완전한 경제 붕괴를 맞지 않으려면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소비재 공장: 20.0%
건설 속도: -30.00%
생산 효율성 한도: -20.00%
공장 생산량: -20.00%
- {{{#!folding 지휘관
- 페르디난트 차틀로시 원수 1, 1/1/1/1
- 얀 골리안 장군 1, 1/1/1/1
- 얀 날렙카 장군 1, 1/1/1/1
- 마르틴 주르 장군 1, 1/1/1/1
- {{{#!folding 주요도시
-
브라티슬라바
체코슬로바키아가 붕괴되면서 브라티슬라바는 요제프 티소의 파시스트 국가인 슬로바키아의 수도가되었습니다. 독일의 패권 하에 있는 주요 슬라브인 도시들 중 브라티슬라바는 현대 산업 도시로 꾸준한 발전을 지속할 수 있도로 가장 적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영구적인 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무너질지, 오직 시간과 독일만이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집권시기 그대로인 요제프 티소. 내적으로는 티소의 죽음이 점차 가까워져 오며 후계자 선출로 정치적 긴장감이 올라간 상황. 티소 사후 스테판 티소가 집권하지만 얀 골리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가부장주의 정부를 세우고 자유화를 펼친다. 보어만이나 슈페어 정권이라면 협상을 해 성공시키면 독립국으로써 재편입, 실패하면 침공 후 괴뢰국을 세운다. 하이드리히 집권시엔 독립을 유지한다
2.13. 총독부
업뎃 예고[단기간]- 유니티-팍트의 보호령
- 대게르만국의 국가보호령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한스 프랑크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흔들리는 멍청이: 정치력 획득: -25%, 사단 조직력: -5, 안정도 -25%, 전쟁 지지도 -25%
공포 정치가: 정치력 획득: -10%
한스 프랑크는 폴란드 총독부의 나치 실권자지만, 그를 강력한 지도자라 부르는 것은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그는 라이히의 다른 어떤 지도자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해냈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를 70%까지 독일화시키고, 거의 모든 파르티잔 활동을 분쇄하고 그 뿌리를 뽑아냈습니다.
물론, 이 소탕 작전은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사실, 폴란드는 나치 영향권에서 가장 비독일적이고, 불안정하고, 그리고 우리의 통치가 가장 실패한 곳이며, 폴란드 지하국가의 활동이 점점 대담해지면서, 이 땅은 단지 독일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한스 프랑크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으며, 대신 크라쿠프에서 '완전한 공황'과 '완전한 무능'으로 묘사될 만한 통치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한스는 적어도 공공장소에서 이러한 말을 입 밖에 내는 사람들을 쏴죽일 권력은 갖고 있습니다.}}} - 요제프 뷜러 정부수반(국가사회주의, 정치적 후임)
- 빌헬름 회버 외무장관(국가사회주의, 편파적 지식인)
- 발터 에메리히 재무장관(국가사회주의, 계획경제 지지자)
- 빌헬름 코페 내무장관(국가사회주의, 공포의 왕자)}}}
- {{{#!folding 국민정신
그것이 세계인 대부분이 믿는 것입니다.
수십년이 지났고, 한스 프랑크의 크라카우 정부와 감시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폴란드는 살아남아 있습니다. 총독부의 무능력함과 지하국가의 약삭빠름 덕에, 폴란드 지하국가는 라이히의 폴란드 지배의 눈엣가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확실한 목표가 있습니다.||
사단 조직력: -20.0%
안정도: -50.00%
전쟁 지지도: -30.00%
공장 생산량: -15.00%
}}}안정도: -50.00%
전쟁 지지도: -30.00%
공장 생산량: -15.00%
- {{{#!folding 지휘관
- 게오르크 폰 퀴힐러 원수
- 레오 가이어 폰 슈베펜부르크 장군
- 에카르트 프라이헤어 폰 가브렌츠 장군
- 발터 리헬 장군
- 발터 프리스 장군
- {{{#!folding 주요 도시
바르샤바의 파괴가 폴란드 국민에게 독일의 새로운 질서의 단기적 파괴를 상징하는 반면, 크라카우의 노예화는 폴란드를 자랑스럽게 만든 모든 것을 근절하려는 장기적 의도를 고통스럽게 상기시켜줍니다.||}}}
과거 폴란드였던 지역의 일부로 구 폴란드 왕국의 초기 영토와 비슷한 판도를 가지고 있다. 수도는 크라카우이며 지도자는 한스 프랑크. 폴란드 총독부가 아니라 그냥 총독부인 이유는 폴란드 민족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말살하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폴란드 총독부 관리를 완전히 조져버렸다. 폴란드를 멸망시킨지 25년이 다 되어가지만 독일화를 이루지도, 폴란드 저항조직을 소탕하지도 못했다. 다만 언론통제로 폴란드를 70% 독일화하고 모든 유격대를 소탕했다고 선전할 뿐이다. 다행히, 프랑크는 공공장소에서 그런 기밀을 누설하는 사람을 총살할만한 능력은 가지고 있다. 오늘도 프랑크는 제국의사당에 이딴 보고나 보내고 있다. "독일화가 사상 최고 수준입니다! 불만은 사상 최저 수준이고요! 폴란드가 안정되었습니다. 남 프로이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에요!"
총독부의 국민정신이 약하고 저항군의 국민정신이 강하다 보니 일반적으론 저항군이 이기지만 총독부가 이길 경우 보어만 루트에서는 순순히 독일의 아래로 들어온다. 슈페어가 이길 경우엔 구버전에선 무력 정벌을 했지만 현 버전에선 전쟁없이 프랑크가 순순히 항복하며 폴렌 임시정부(국가사회주의)가 세워진다.
2.13.1. 폴란드
업데이트 예고[단기간]
- {{{#!folding 멸망 문구
Though the men and woman of the Polish homeland fought with everything they had, Poland is lost. Perhaps this time forever.
폴란드 본토의 남녀가 모든 것을 가지고 싸웠지만, 폴란드는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폴란드 본토의 남녀가 모든 것을 가지고 싸웠지만, 폴란드는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실제 역사에서 폴란드 국내군의 부사령관이던 아우구스트 에밀 필레도르프. 정식 국가명은 구국정부.
독일 내전이 일어난 후 폴란드인이 바르샤바 봉기를 벌이며 독립하는 국가. 내전으로 생성되어 총독부를 상대하지만 기본적으로 총독부의 국민정신이 워낙 빈약한 생태라 무조건 폴란드가 승리한다.
보통 독일 내전이 끝난 후 내전의 승자에게 영원히 죽는다. 괴링이 이기면 무조건 폴란드를 침공해서 직할령으로 만들고 바르샤바를 그로스프로이센으로 개명하며, 보어만이나 슈페어는 협상을 통해 총독부가 지배했던 영토를 폴란드 영토로 보장하고 폴란드가 팍트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타협하거나, 재침공 후 총독부를 다시 설치하게 된다. 하이드리히는 폴란드와 협상을 시도한 뒤 결과에 따라 동맹을 하거나 침공 후 총독부를 재설치한다.
아우슈비츠를 탈옥한 것으로 유명한 비톨트 필레츠키가 장성진에 있다.
2.14. 덴마크
- 유니티-팍트의 괴뢰국
- 대게르만국의 국가 보호령
- 집권이념: 과두정(가부장주의, 장관 내각)
- 경제: 국가사회주의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
베르너 베스트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직업 관료: 매일 정치력 획득 +0.20
베르너 베스트는 몇몇 극우 정당들 사이에서 뛰어나고 확고한 독일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그가 1930년에 나치당에 입당한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법률과 행정 기술을 사용하여 초기 게슈타포를 조직하고 뮌헨에서 장검의 밤을 조정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SS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940년 경쟁자들이 그를 게슈타포에서 물러나게 한 후, 그는 프랑스의 군사 점령지에서 복무했고, 1942년 덴마크에 대한 제국의 전권대표로 임명되었습니다. 베스트는 덴마크가 여전히 군주제와 내각 그리고 반민주적인 의회를 유지하는 것을 허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상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타협이 이루어졌고, 베스트는 덴마크 정부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대인 인구를 강제 수용소로 추방하는 것에 대해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1943년 자유선거를 조직하려는 시도와 일련의 노동파업으로 인해 베스트는 이 나라를 독일의 군사 점령하에 두고 의회를 해산시켰지만, 덴마크의 군주제와 내각, 그리고 많은 관료체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베스트는 또 이상하게도 덴마크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스웨덴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유대인 동조자라는 소문이 수십 년 동안 그에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덴마크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 있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독립했지만 여전히 철저한 감독 아래 있으며, 독일 계엄령으로의 복귀 위협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베스트는 여전히 그의 직책을 유지했고, 그는 광범위한 독일화 프로그램을 실행하려고 시도했습니다. 1950년대의 경제적 붕괴는 자금난을 야기했고 프로그램들은 중단되었지만, 베스트는 여전히 언젠가 덴마크를 대게르만국의 일부로 만들려는 그의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닐스 스베닝센 정부수반(가부장주의, 실용주의 정치가)
- 게오르크 페르디난트 두크비츠 외무장관(가부장주의, 노련한 대사)
- 악셀 군나르 라르센 재무장관(가부장주의, 산업가)
- 헤르만 폰 하네켄 내무장관(국가사회주의, 건강과 안전 지지자)}}}
- {{{#!folding 국민정신
-
사무차관
게르마니아가 덴마크에 있는 독일 관리들에게 덴마크를 대게르만국으로 통합하는 것을 가속화하기 위해 보다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생각보다 시급합니다. 이 구조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래 유지되어서, 덴마크를 외세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길 바랄 뿐입니다.||
정치력 획득: -75%
안정도: +15%
전쟁 지지도: -10%
매일 가부장주의 지지도: +0.01%
* 농업경제
안정도: +15%
전쟁 지지도: -10%
매일 가부장주의 지지도: +0.01%
* 농업경제
덴마크 경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정체 상태이며 증가하는 독일의 요구를 간신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젊고 영리한 소년 소녀들은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농장에 남아 있어야 하며, 대학과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꿈을 사실상 포기해야 합니다.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기 시작할 수 있는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원 획득 효율: +10%
필요 소비재: +25%
* 실케보르에서 오는 위협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10%
}}}필요 소비재: +25%
* 실케보르에서 오는 위협
실케보르의 국방군 사단은 베르너 베스트의 '다그마르후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면밀히 관찰합니다. 헤르만 폰 하네켄은 적어도 감명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베스트는 1960년까지 덴마크가 독일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네켄의 큰 성가심에도 베스트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으며 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달 하네켄은 보고서를 보내며 일부는 사실입니다. 일부는 과장되었습니다; 저항이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베스트가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얼마나 나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작된 것입니다. 하네켄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덴마크를 운영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안정도: -10%
- {{{#!folding 지휘관
- 헤르만 폰 하네켄 원수, 1, 1/1/1/1
- 크누드 뵈르게 마르티센 장군, 1, 1/1/1/1
- 권터 판케 장군, 1, 1/1/1/1
- 크리스티안 프레데리크 폰 샬부르크 장군, 1, 1/1/1/1}}}
- {{{#!folding 제독
- 에르하르트 퀴스트고르 제독, 1, 1/1/1/1
- 요르겐 흐비드 제독, 1, 1/1/1/1}}}
- {{{#!folding 주요 도시
-
쾨벤하운
지도자는 주 덴마크 전권대표인 베르너 베스트.[57] 독일에 접수된 이후 유틀란트 남부와 보른홀름 섬을 독일에게 넘겨주었다. [58]
1960년대에도 보호령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베스트는 덴마크를 완전히 독일화해서 대독일국의 일부로 만드려고 했지만 1950년대 경제위기 때문에 중단되었다. 그래도 아직 덴마크 흡수의 꿈은 버리지 않은 상황.
독일 내전이 터지면 3개로 루트가 갈린다.
- 베르너 베스트의 정권 유지: 이전과 마찬가지로 덴마크인들의 반발을 사지 않는 선에서 점진적인 독일화를 지지하는 입장. 독일 내전에서는 보어만과 보수파를 지지하는 입장이나 괴링이나 슈페어가 집권해도 별탈없이 독일에 합류한다. 덴마크 입장에선 그나마 희망적인 루트
-
헤르만 폰 하네켄 정부
집권 이념 : 독일 국방군 군사부서 덴마크, 군사독재 - 전제주의 -
크누드 마르틴센 정부
집권 이념: 국가사회주의 인민당, 국가사회주의 -
닐스 스베닝센 정부
집권 이념: 보수 인민당, 가부장적 보수주의
{{{#!folding 인물 설명
대부분의 군국주의자들처럼 헤르만 폰 하네켄은 인내심을 미덕으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1942년부터 그는 덴마크의 군방군 주둔군의 치안장 겸 최고사령관을 맡아 반대와 반역 행위를 단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엄격한 군국주의는 쇠르너의 광기엔 미치지 못하지만, 대독일국의 안보에 대한 걱정으로 덴마크의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폰 하네켄과 충성파는 베르너 베스트의 복잡한 관료주의가 덴마크의 목에 팽팽한 매듭을 달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매듭은 국가의 독일화 진행에 제약을 두었고, 북부의 한낱 보호령으로서 그 매듭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었습니다. 폰 하네켄은 덴마크와 독일인이 결국 라이히에 통합될 수 있도록 이 밧줄을 알렉산더 대왕처럼 단번에 끊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실케보르에 주둔한 덴마크 주둔 국방군의 사령관. 덴마크인들의 반발 따위 무시하고 급진적으로 독일화를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으로 베스트를 경원시한다. 군인이니만큼 독일 내전에서는 괴링과 제일 가깝지만 본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folding 인물 설명
독재자 : 정치력 획득 +10%
크누드 뵈르게 마르틴센의 라이히에 대한 충성심은 오직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만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덴마크 국가사회주의당의 퓌러 역할, 당의 얼굴 역할을 해왔고, 그가 신뢰하는 동료 카를 팝 마센은 당의 두뇌 역할을 했습니다. 1950년대 서러시아 전쟁에서의 활약으로 악명높은 냉소주의자 마틴센은 당의 권좌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진군에 맞선 혼란스런 싸움에서 그의 부대는 중요한 승리를 이뤘습니다. 그들이 싸우고 피를 흘린 눈처럼 그는 차갑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라이히에 충실히 협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게르마니아는 독립 덴마크에 대한 마틴센의 열망을 알고 있었습니다. 쿠데타 성공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지만 충성스러운 덴마크에 대한 이 퓌러의 요구는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덴마크 국가사회주의 노동당의 당수. 독일 내전을 틈타 스스로를 덴마크의 푀레르(퓌러)라 주장하며 집권했다. 덴마크가 영원히 독일에 복종해야한다는 골수 부역자이지만 독일화는 중단할 것을 주장한다. 독일 내전에서는 딱히 지지세력은 없다. 독일화에 부정적이고 명확한 지지세력이 없다는 특성 탓인지 일단 슈페어든 보어만이든 협상에 임하는데 수틀리면 침공당한다.
{{{#!folding 인물 설명
닐스 스베닝센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충실한 톱니바퀴를 의인화한 것처럼 모든 것이 가능한 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게르마니아 일각에서는 전 외무장관의 충성심이 라이히보다 덴마크쪽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외교실적을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마틴센의 국가사회주의자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많은 사람들은 엄격한 근면함과 자유주의적 실용적 행보를 보이는 스베닝센이 덴마크의 통치자로 등극한 것이 마침내 보호령의 안정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덴마크의 현 정부 수반. 독일 내전 직후 나치당의 쿠데타 실패를 틈타 정권을 잡는다. 근면함과 실용적 자유주의를 갖추고 있지만 국방군에겐 너무 자유주의적으로 보였는지 정권 성립 후 90일이 되면 무조건 쿠데타가 일어난다.
2.15. 스위스
- 트리움비라투스의 옵저버
- 집권이념: 혼합정치(가부장주의, 스위스 정부 - 완전권력정권)
- {{{#!folding 국민정신
-
전권정권의 통치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대응하여 집권한 전권 정권은 20년 넘게 통치해 왔습니다. 스위스 헌법의 선례를 바탕으로 전권 정권은 스위스 안보에 대한 엄격한 비전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 권한을 활용했습니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모든 세력을 단속해 왔습니다.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FPR은 전통적인 스위스 연방주의에서 벗어나 연방의회에 권한을 집중시켰습니다. 이러한 현상 유지를 위해 스위스 민주주의의 많은 측면이 약화되었습니다. 감시, 비밀 경찰, 부패가 만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원한 비상사태에 지치기 시작했고 정권은 정치권 전반의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안정도: -20.0%
정치력 증가: +20.00%
검열된 언론 정책 효율성 다소 증가
강압적 경찰 정책 효율성 증가
다당제 정책 효율성 감소 -
알프스 위기의 흉터
스위스는 1955년 알프스 위기에서 독일의 침공을 간신히 피했습니다. 하지만 리히텐슈타인 함락의 트라우마와 독일의 위협은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노쇠한 귀산 장군은 점령 후에도 저항을 계속하기 위해 광범위한 요새화와 준군사 '잔류' 군대 훈련 등 대규모 군사력 확장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 중 일부는 군대의 영역 밖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독자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지지도: +30.00%
코어 지역의 사단 방어 : +20.00%
국방비 소비: +10.00%
국방비 최소 사용량 증가 - 페체타의 마지막 사냥
안정도: -20.0%
정치력 증가: +20.00%
빈곤율 월간 변화 -0.10
농업 방법 월간 변화 -1.00
GDP +20.00%
종주국(이탈리아 왕국)에게 상납된 GDP: +10.00%
매달 인구 증가율: -15.00%* 국가의 테피스트리
지역 칸톤과 코뮌에 상당한 권한이 위임되어 있습니다. 국가와 정치가 뒤섞여 있는 스위스에서는 자치와 타협이 모든 수준의 기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변화를 방해하고 현대의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지만, 스위스가 어느 정도의 안정과 단결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정치력 증가: +20.00%
빈곤율 월간 변화 -0.10
농업 방법 월간 변화 -1.00
GDP +20.00%
종주국(이탈리아 왕국)에게 상납된 GDP: +10.00%
매달 인구 증가율: -15.00%* 국가의 테피스트리
안정도: +5.0%
정치력 증가: +10.00%
}}}정치력 증가: +10.00%
- {{{#!folding 주요도시
-
베른
오늘날 스위스 수도는 고립된 독립을 기뻐합니다. 이 도시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주최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에 빈번한 중재와 방첩 활동을 목격했습니다. 베른에서 독일의 영향력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스위스군은 이 세계적인 혼란의 시기에 영원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맹렬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연방회의.
스위스도 대전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비상정권으로 시작한 전권정권은 스위스를 독재국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후 1955년, 리헤텐슈타인을 독일이 합병하며 발생한 '알프스 위기'로 인해서 스위스는 이탈리아를 우군으로 독일과 대립했다. 이에 독일은 스위스를 향해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지게 하였고 이에 이탈리아와 루가노 조약을 맺어 이탈리아는 스위스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대신 자신의 세력권 내에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물론 당장 스위스가 파산하는 일을 막은 것이지, 독일과의 경제전쟁은 스위스의 경제를 크게 악화시켰다.
2.16. 스웨덴 왕국
- 유니티-팍트의 옵저버
- 집권이념: 진보주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폴크헴메트(국민의 집)[59]
실제로 스웨덴 국가는 명성이나 위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 욕구가 의문시되지 않는 대중의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촉진합니다. 차가운 세상 속 온기의 보루로서.||
매일 정치력 획득: +0.30
소비재 공장: 5%
* 신중한 협업
소비재 공장: 5%
* 신중한 협업
스웨덴 정부가 종종 라이히를 위해 몸을 굽히는 한 독일인들은 이 유익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만족합니다. 스웨덴에 대한 라이히의 손은 목을 졸라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악수에 가까우며 이것으로 스웨덴 국민은 만족합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5.00%
해군 경험치 획득량: +5.00%
공군 경험치 획득량: +5.00%
생산 효율 한도: +5.00%
GDP 성장률: +0.10%
* 독일로의 수출
자원 획득 효율: +10.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10.00%
GDP 대비 생산 단위 비율 변동치: +5.00%
* 개혁된 스타타레
안정도: -5.00%
건설 속도: +5.00%
공장 생산량: +5.00%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05
* 강제 불임화
매월 인구 -5.0%
사회 복지 비용 요인: -5.00%
}}}해군 경험치 획득량: +5.00%
공군 경험치 획득량: +5.00%
생산 효율 한도: +5.00%
GDP 성장률: +0.10%
* 독일로의 수출
번영하는 독일 산업의 수요는 엄청나고, 산업과 함께 광석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습니다. 스웨덴 광산 회사들은 이것을 잘 활용하여 전국의 철광산에서 수천 명의 스웨덴인을 고용하고 상당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또한 라이히스베르케와 같은 독일 기업은 스웨덴 땅에서 이익을 거두기 위해 수백 명의 수입 노예를 고용하여 국내에서 대규모 광산을 운영할 수 있는 이권도 획득했습니다. 그 결과 스웨덴은 아인하이츠팍트 국가들과 함께 큰 무역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스웨덴 기업인들에게 혜택은 일부 외국 노예들의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는 모양입니다. |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10.00%
GDP 대비 생산 단위 비율 변동치: +5.00%
* 개혁된 스타타레
역사적으로 스타타레 시스템은 농업 근로자가 계약을 맺고 노동에 대해 숙박과 음식으로 급여를 대신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는데, 대신 개선된 생활 환경에 대한 법적 조건과 함께 경제의 더 많은 부문을 포함하도록 개혁되어 이후에도 계속되어 왔습니다. 일부에서는 비판을 받았지만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스웨덴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입힌 후 국가의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
건설 속도: +5.00%
공장 생산량: +5.00%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05
* 강제 불임화
스웨덴의 우생학 프로그램은 1906년에 설립되었으며 전후 유럽에서 이러한 관행의 광범위한 보편화에 따라 성장했습니다. 스웨덴의 우생 시스템은 독일의 규모와 범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유전병을 가진 사람들과 중독이나 기타 사회적 질병으로 인해 부모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 불임화가 진행됩니다. 대중에게 그것은 공중 보건 프로그램으로 묘사될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
사회 복지 비용 요인: -5.00%
- {{{#!folding 내각
-
타게 엘란데르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1945년 페르 알빈 한손 총리는 스톡홀름에서 기차에서 내리다가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한손의 집권 여파는 엄청난 유산을 남겼습니다. 정부 수반으로서의 그의 임기는 스웨덴 국가의 상태를 극적으로 변화시켰고 그가 사망할 당시 그것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소 뜻밖에도 교육부 장관인 타게 엘란데르가 사민당과 스웨덴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엘란데르의 정부는 스웨덴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구성되었습니다. 국가가 알고 있던 유럽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독일의 새로운 주문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스웨덴은 이제 독일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스칸디나비아 국가였습니다. 유럽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이 나라가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운명을 막기 위해 엘란데르는 독일과의 무역과 협력을 위해 스웨덴을 개방했다. 이 결정은 곧 사민당 정부에 반대하는 핵심 논거가 되었습니다. 인민당이 분명한 친미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엘란데르는 한손 시대의 부지런한 제자임을 입증했습니다. 전임자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리의 정책으로 인해 그를 인기를 얻었습니다. 보편적인 건강 보험, 더 많은 연금, 확대된 보육은 40대 후반과 50년대에 시행된 개혁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것의 대부분은 군대의 작은 규모와 독일과의 무역에 대한 놀라운 이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모든 것이 좋은 상황이지는 않습니다. 엘란데르는 국가에 영향을 미치려는 독일의 교묘한 시도를 알고 있습니다. 야당도 매우 공개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폴크헴메트'에 지불한 대가가 여전히 정당화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엘란데르는 한손 시대의 부지런한 제자임을 입증했습니다. 전임자만큼 카리스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리의 정책으로 인해 그를 인기를 얻었습니다. 보편적인 건강 보험, 더 많은 연금, 확대된 보육은 40대 후반과 50년대에 시행된 개혁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것의 대부분은 군대의 작은 규모와 독일과의 무역에 대한 놀라운 이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모든 것이 좋은 상황이지는 않습니다. 엘란데르는 국가에 영향을 미치려는 독일의 교묘한 시도를 알고 있습니다. 야당도 매우 공개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폴크헴메트'에 지불한 대가가 여전히 정당화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 (내각 미설정)}}}
- {{{#!folding 주요도시
-
스톡홀름
스톡홀름은 국가 사회주의 신세계 질서에서 스웨덴의 지위의 축소판이 되었지만, 그 항구는 미국과 독일의 선박을 모두 받습니다. 스톡홀름에는 미국 대사관과 독일 대사관도 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유럽의 마지막 '중립' 세력 중 하나라는 불안정한 위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OFN과 아인하이츠팍트를 모두 사용합니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페르 알빈 한손 총리 사망 이후 타게 엘란데르 총리가 사회민주노동자당 정권을 이끌고 있다. 친독 중립 노선도 계속 유지중.
TT 후속 패치 관련 티저에서 엘란데르 총리의 암살 이벤트가 공개되었다. 암살 후 선거로 토르스텐 닐손의 정권 유지, 베르틸 올린의 인민당 정권, 얄 얄마르손의 우익당 정권, 닐스 플뤼그의 사회당-스웨덴 사회주의 연합 연정[60]의 4가지 결과가 나온다.
2.17. 핀란드
- 유니티-팍트의 옵저버
- 집권이념: 국민보수주의(가부장주의, 국민연합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만족스럽지 못한 해답
...아니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두 땅은 골칫거리에 불과했고 국고를 갉아먹기만 했습니다. 빨갱이 반군들이 숲을 뒤덮고 카렐리야의 '민족' 인구 대부분이 오네가로 추방되었지만 무르만스크는 국가적 측면에서 눈엣가시 러시아인들의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동부 문제'는 유효하며 피할 수 없는 러시아의 침공이 닥쳐올 때, 지금 우리가 가진 해답으로는 20년 동안 구축한 모든 것을 보존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도: -10.00%
전쟁 지지도: +5.00%
저항도 증가 속도: +5%
* 민주주의의 두번째 위기
정치력 획득: -10%
징병 가능 인구: +2.50%
이념 변화 방어: -20.0%
인력 비용 변동치: -5.00%
경보병 방어: +25.00%
경보병 훈련 시간: +15.00%
국가사회주의 외교 수용: +25
파시즘 외교 수용: +25
* 성장 체제
건설 속도: +15.00%
GDP 성장률: +0.02%
GDP 대비 생산 단위 비율 변동치: +10.00%
}}}전쟁 지지도: +5.00%
저항도 증가 속도: +5%
* 민주주의의 두번째 위기
서류상으로 IKL은 간신히 정치 동아리 수준을 넘어선 군소정당입니다. 실제로 IKL과 타 우익 운동들은 어딘가에서 힘을 얻어 정치인들에게 무력을 행사하고, 정부의 허가 없이 동부에서 파르티잔들과 싸우고, 대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 희미한 활동들은 언뜻 보기보다 핀란드 극우 세력을 약화시키기 어렵게 만들고, 또 의회에서 IKL의 의석 수는 경솔한 관찰자들이 그들의 세력에 대해 오판하도록 하는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징병 가능 인구: +2.50%
이념 변화 방어: -20.0%
인력 비용 변동치: -5.00%
경보병 방어: +25.00%
경보병 훈련 시간: +15.00%
국가사회주의 외교 수용: +25
파시즘 외교 수용: +25
* 성장 체제
독일 세력권에 있는 모든 국가 중에서 핀란드는 경제적으로 독특합니다.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산업, 농업용]이 특징인 군사 수출 체제, 은행 설계조직과 협력하는 기강 잡히고 경쟁력 있는 국영 기업, 그리고 높은 국민 저축률로 인해 핀란드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동부 영토와 오네가를 통한 러시아로부터의 자원 유입, 그리고 대독일 수출 부문에서 스웨덴과의 긴밀한 협력은 많은 국제 전문가들이 경제 침체기로 보는 시기에 유럽의 성공담이라고 불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GDP 성장률: +0.02%
GDP 대비 생산 단위 비율 변동치: +10.00%
- {{{#!folding 주요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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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핀란드 내전 이후 재건된 20세기에 헬싱키는 번영하는 핀란드 국가의 행정 및 경제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핀란드는 빠르게 도시화되면서 기능주의 건축 운동의 수도가 되었으며 세계의 다른 어떤 도시와도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헬싱키는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는 아니더라도 점점 명성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
비푸리
중세에 스웨덴 십자군이 세운 비푸리는 오랫동안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해왔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불과 1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렐리야 지협을 통제하는 사람은 발트해 내 무역을 통제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18세기에 이 지협을 점령했습니다. 차르제의 전복과 함께 비푸리는 새로 독립한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구가 1940년에 도시를 장악한 볼셰비키로부터 도망쳤지만, 불과 1년 후 핀란드 군대는 의기양양하게 도시에 재진입하여 피난민들을 옛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이후로 비푸리는 탁월한 핀란드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다른 핀란드 도시와 마찬가지로 비푸리는 수만 명의 시골 핀란드인이 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매우 빠른 인구 증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
무르만니
지도자는 유하 리흐트니에미. 겨울전쟁을 겪고 추축국에 합류해 콜라 반도 및 카리알라 전역을 장악했다. 하지만 현지 러시아인들의 반발로 인해 핀란드화 정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겉으로는 50년대 경제 붕괴를 유일하게 피해 간 친독계 국가이기도 하나, 서러시아 전쟁 이후 좌익정당의 금지와 소규모임에도 영향력이 너무 강해진 극우정당 IKL, 그리고 정계 내에서 친독정책에 대한 반감이 누적되는 등 1960년대의 핀란드는 다가오는 러시아의 부흥에 대비하여 수많은 변화를 거쳐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 문제를 개편하지 못할 시 좌익 세력들이 2차 핀란드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동시에 부활한 서러시아와 콜라 반도 내의 러시아계 반군등이 봉기하는 등의 악재가 이어질 시 핀란드 정계는 급격히 극우화될 것이다.
만약 핀란드가 카렐리아를 유지하는 형태의 승리를 하면 정권을 뒤엎은 IKL이 정권을 유지하며 선거를 무기한 연장시키고 파시스트 독재정권을 수립한다.
그러나 핀란드가 무르만스크를 내주는 형태로 패하거나 아예 전 카렐리아를 잃는다면 IKL은 정권에서 내려오고 다시 제대로된 선거가 치러진다
인게임상 지도자는 대통령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월드뉴스등을 통한 총선과 총리직에 관련된 선거뉴스들이 상당히 많이 구현되어 있어 핀란드 정계의 흐름과 대외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
2.17.1. 핀란드 사회주의 공화국
지도자는 아이모 알토넨.[61]공산당이 불법화인 상태에서 일정확률로 무르만스크와 함께 내전을 일으킨다. 내전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이 이긴다면 그대로 공산화 된다.
리워크 예고로 완전한 공산화 루트는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2.17.2. 무르만스크 인민 공화국
서러시아에 있는 아리아인 형제단을 제외한 군벌이 서러시아를 통일 했을 때 핀란드로부터 독립하는 국가다. 지도자는 레프 셰스타코프. 레프 셰스타코프는 현실에서 1915년에 태어난 소련의 에이스 파일럿으로 1944년 전사했다. 42기의 적기를 격추시킨것으로 추정되어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나라 규모에 비해 장군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여담으로 셰스타코프의 아들이 장군진으로 등장한다. 또 무르만스크 인민 공화국에서 셰스타코프가 제독으로 등장한다.(...)
2.18. 모나코
- 집권이념: 준입헌군주제 (가부장주의,왕가)
- {{{#!folding 국민정신
-
몬테 카를로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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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에의 개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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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감시
8월 12일 업데이트로 추가된 네 미니국가 중 하나. 리히텐슈타인은 독일에 병탄되었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샤를로트 루이 쥘리에트 그리말디 여대공. 실제 역사와는 달리 레니에 3세가 아니다. 이는 샤를로트가 그 아들인 레니에에게 계승권을 이양하지 못해서다. 당시 대공이었던 루이 2세가 연합국 지지자인 레니에가 계승하면 추축국에게 나라 망한다고 반대했다나. 하지만 현재 모나코의 권력은 레니에와 주변 관료 파벌이 휘어잡고 있다.
티저가 공개되었다. 플레이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고 이탈리아 리워크와 엮여서 배경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여담으로 현실에서의 모나코 경제를 반영하듯이, 1인당 GDP가 세계 1등이다. 인당GDP가 5000달러대로, 웬만한 선진국이 후반까지 빡센 경제관리를 하면 주요도시에 그나마 뜨는 정도의 액수다.
2.19. 안도라
- 집권이념: 전제군주제 (전제주의, 안도라 대평의회)
- 국민정신 없음
8월 12일 업데이트로 추가된 네 미니국가 중 하나.
2.20. 산마리노
- 집권이념: 파시즘 (산마리노 파시스트당)
- {{{#!folding 국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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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최고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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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장하는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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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하는 불만
8월 12일 업데이트로 추가된 네 미니국가 중 하나.
지도자는 레오니타 수치 발리 집정관. 발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정치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에 가입했지만 과거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와 도시화가 계속될수록 산마리노가 이탈리아에게 점점 의존하게 되는 것이 문제.
2.21. 바티칸
- 집권이념: 교황령 (전제주의, 교황령)
- {{{#!folding 국민정신
-
라테라노 조약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와 교황청이 서명한 라테라노 조약은 바티칸 시국 국가 존립의 법적, 외교적 근거가 되는 조약입니다. 라테라노 조약은 이탈리아가 통일전쟁 당시 로마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교황청과 이탈리아 간의 거의 60년간의 적대 관계를 종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비록 바티칸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교황청 국가를 복원했고 국가 재정 지원, 가톨릭을 이탈리아 국교로 인정하고 교회가 공립학교에서 가톨릭 교리를 계속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다른 양보를 교회에 제공했습니다. 라테라노 조약이 여전히 유효한 한, 우리나라는 이탈리아의 보호 아래에서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분열된 교회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단체이자 수백만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고향인 교회가 신성한 일치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분열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의 도전에 직면한 교회는 세속적인 그리스도의 집으로서의 역할을 보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열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억압적이고 폭압적인 정권이 기독교 교리에 대한 립서비스만 하고 폭력적인 과잉을 무시하는 한 계속 협력해야 하는가? 그 대신 파시즘과 제국주의의 잔인함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가난하고 온유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돕기 위해? 아니면 세상 정치와 완전히 거리를 두고 가톨릭 신자들의 영혼만 돌볼 것인가? 이러한 질문과 더 많은 질문들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으며, 이 질문들이 어떻게 해결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
선한 교황
논란이 많았던 비오 12세의 교황직 이후, 요한 23세의 선출은 교황청 정치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비오 12세가 엄격하고 엄숙하며 거리감이 있었다면, 요한 23세는 대중에게 설교하고 평신도 가톨릭 정치 단체의 활동을 활성화하며 유럽과 그 밖의 파시스트 정권의 억압을 비판하는 등 항상 서민과 가까운 교황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론칼리 교황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선하신 교황"라는 별명을 얻었고, 전 세계 여러 정부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면서 선한 교황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곁으로 부르시기 전까지 교회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월 12일 업데이트로 추가된 네 미니국가 중 하나. 지도자는 현실과 같이 요한 23세다.
바티칸 스켈레톤 컨텐츠 티저 위 티저에 의하면 1963년 콘클라베에서 개혁파 그레고리오 17세, 요한 24세, 중도파 바오로 6세, 보수파 비오 13세가 선출될 수 있다. 그레고리오 17세가 선출되면 1971년 사망하고 이후 클레멘스 15세, 라우렌시오, 인노첸시오 14세, 그레고리오 18세 중 하나가 선출될 수 있다.
2.22. 아이슬란드
- 집권이념: 가부장적 보수주의 (보수주의, 독립당)
- {{{#!folding 국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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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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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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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라비크의 긴장
}}}
지도자는 올라뷔르 소르스. 어글리 아메리칸 업데이트 이전까지는 미 군정이었으나, 아이슬란드 관련 외교위기가 추가되면서 독립국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1963년, 1967년, 1971년 총선 이벤트까지 구현되어있다. 총선 이벤트로 볼수있는 지도자가 총 13명이나 된다.
인게임에서 중간에 레이캬비크 폭동이라는 외교위기가 발생하는데 미군이 현지인을 살해하면서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OFN을 완전히 탈퇴할수도 있고 유지할수도 있다.
2.23. 페로 제도
- 집권이념: 농본 사회주의(사회주의)
2.24. 브르타뉴 공화국(삭제됨)
- 유니티-팍트의 괴뢰국
- 대게르만국의 협력 괴뢰국
- 집권이념: 협동조합주의(파시즘, 브르타뉴 국민당-온건파)
- 경제: 협동조합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folding 내각
올리에 모르드렐 지도자 -
{{{#!folding 인물설명
독재자: 정치력 획득: +10%
죽음의 상인: 안정도: +10.00%, 무역 거래에의 평판 획득치: +15%
브르타뉴와 팍트와의 관계를... 복잡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라이히의 작은 우호국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과소평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원래 프랑스 자치 구역으로 명명된 곳으로, 모르드렐은 전쟁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브르타뉴인들이 여전히 프랑스의 멍에에 눌려 있다는 사실에 계속해서 분노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라이히가 프랑스로부터 현재의 부르고뉴 지역을 강제로 빼았았을 때, 모르드렐은 기회를 보았습니다. 모든 방면에서 라이히에 충설할 자유 브르타뉴가 이제는 쇠약해진 프랑스국보다 라이히에 훨씬 더 유용할 것이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부르군트가 형성된 지 몇 주 만에, 브르타뉴는 30개국이 참석한 회의에서 독립 선언도 받았습니다. 그 중 프랑스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50년대에 라이히가 빈곤에 빠졌을 때, 모르드렐은 마지봇해 미국과 독일 사이의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식품을 수입하기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브르타뉴가 파난하지 않도록 불법적으로 물건을 밀수하면서 브르타뉴인들은 곧 라이히의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 것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확대되었을 뿐이고, 암시장이 확장되면서 독일은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으며 점점 더 밀수품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브르타뉴는 모르드렐을 중심으로 라이히로 건너가는 불법 물품의 주요 항구입니다. 그는 라이히에 대한 애정을 공언한 적은 없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힘러의 검은 군단을 그의 일에 개입시키지 않았고, 음식, 미디어, 그리고 훨씬 더 많은 불법 상품들의 파이프라인은 브르타뉴를 그가 한때 꿈꾸었던 것만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그 방법들이 약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지라도요...}}} - 프랑수아 드보베이즈 정부수반(파시즘)
- 얀 파우에레 외무장관(보수주의)
- 얀 브리클러 재무장관(파시즘)
- 셀레스텡 라이네 내무장관(국가사회주의)}}}
- {{{#!folding 국민정신
-
유럽의 주요 항구
영국 문학이든 이탈리아 영화이든, 미국의 로큰롤이든 간에, 그것들은 브르타뉴의 손을 거쳐 유럽의 고객들에게 전해집니다. 우리는 유니티-팍트의 구성원이지만, 팍트에는 영광이나 위엄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단지 부르군트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일 뿐입니다. 독일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으며 부르군트는 프랑스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자본이 흘러가게 놔두세요!
공장 생산량: +10.00%
조선소 생산량: +20.00%
해군 기지 건설 속도: +20.00% -
브르타뉴 민족위원회
위원회가 계속 분열되어 있다면, 브르타뉴의 미래는 모드렐이 구상했던 것과 매우 다른 모습이 될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안정도: +10.00%
이념 변화 방어: -10.0%
* 베젠 페로트
오늘날, 베젠 페로트는 SS연대 시절부터 상당한 군대로 성장하여, 군대와 브르타뉴 방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Bagadoù Stourm을 몰아내고 SBB의 준군사조직 자리를 차지한 베젠 페로트는 여전히 SBB의 무장 조직으로 치부되고 있으며, 따라서 브르타뉴 정치에 깊게 관여되어 있습니다.안정도: +10.00%
이념 변화 방어: -10.0%
* 베젠 페로트
베젠 페로트의 지도자 셀레스탱 라이네 또한 이 사실을 피할 수 없었으며, 라이네와 모르드렐 사이의 최근 갈등으로 볼때, 베젠 페로트는 SBB의 다수파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전쟁 지지도: +10.00%
사단의 핵심 영토 공격력: +5.0%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5.0%
}}}사단의 핵심 영토 공격력: +5.0%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5.0%
- {{{#!folding 지휘관
- 셀레스텡 라이네 장군, 3, 4/2/3/1
- 얀 굴레 장군, 2, 3/2/1/1
- 루이 포이트렌 장군, 2, 2/1/2/2
- 굴벤 페나오드 장군, 1, 1/1/1/1
- 알란 에우사프 장군, 1, 1/1/1/1/}}}
- {{{#!folding 주요 도시
-
브레스트
- {{{#!folding 멸망 문구
Ar chas doñv a 'yelo da ouez.
길들여진 개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길들여진 개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브르타뉴 분리주의자이자 독일 부역자 올리에 모르드렐이 다스리는 국가.
브르타뉴가 계속 프랑스의 일부인 것에 불만을 느끼던 모르드렐은 부르군트 기사단국이 형성될 때 이 김에 브르타뉴도 독립시켜주면 프랑스국보다 더 충직하고 쓸만한 나라가 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결과 30개 국가들이 모여 브르타뉴를 국가로 승인했다. 당연히 프랑스는 여기 초대받지도 못했다
독일이 일으킨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으려고 엠바고를 무시하고 미국에서 식료품을 밀수하기 시작했는데, 독일이 점점 약해지면서 점점 더 밀수품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미국의 식량, 대중문화, 기타 불법 물품들을 라이히에 유통하는 파이프라인이 되어버렸다.
독일 내전에서 보어만/슈페어가 승리했을 시 롤로 상황이 발생하고 독일이 프랑스의 편을 들어 프랑스에 합병될 수도 있다. 원래는 암시장 구조를 개편하고 민주 국가를 세우는 루트, 현상 유지를 추구하는 모드르렐 루트, 셀레스탱 레네(Célestin Lainé)의 쇄국적 강경 국가사회주의 루트 이 셋이 존재했다. (레네 루트에서 부르군트 체제 지지도를 모으면 무장 해제 후 부르군트와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이후 힘러의 침공으로 부르군트에 완전히 합병된다.)
그러나 암시장이 렉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암시장과 중점이 다 삭제된 껍데기 국가가 되었다. 기존 개발자가 팀을 떠나고 컨텐츠 설계 담당자가 충원되지 않은 것도 영향을 준 모양. 결국 TT3 패치로 국가 자체가 삭제되었다.
[1]
파시스트, 민주주의 노선 총체적 리워크 및 사회주의 노선 추가
[2]
1943년 이후
국가 파시스트당 서기. 무솔리니 실각 이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에게 체포되었지만 살로 공화국도 그건 좀 무리수였다고 생각했는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전후 전범 재판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다. 연합국은 스코르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지만 스코르차는 1955년 이탈리아에게 사면받고 귀환한다.
[3]
군인 출신 이탈리아 정치인. 왕정주의자로 무솔리니 실각 이후 반독 저항군에 들어갔다. 전후에는 반공 활동을 벌였다.
[4]
"검은 대공(Il Principe nero)"이라고도 불린 이탈리아 해군 장교. 1941년
X-MAS가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두 척에 큰 피해를 입혔을 때 특공대원들이 출격한 잠수함 시레(Sciré)의 함장이었으며 이후 X-MAS의 지휘관이 되었다. 무솔리니 실각 후에는
살로 공화국에 붙어 남은 X-MAS를 데리고
유고슬라비아의 북이탈리아 공격을 막았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북이탈리아를 지켜낸 공로로 징역 3년으로 축소되었다. 출소 후 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 사회운동에서 활동했으며 1970년 쿠데타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5]
에니 초대 회장. 현실에서는 자신이 '일곱 자매'라고 명명한 일곱 영미계 석유회사의 독점에 맞서 이란 내 석유 채굴권 획득, 소련산 석유 수입 등의 행동으로 에니 지분을 늘리려 했다.
1962년 전용기 추락으로 사망했는데 이 죽음이 영미 세력이 손을 쓴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영화 '마테이 사건'의 모티프가 되기도 한 인물.
[6]
일본도 모드 개발 초기에는 Empire of Japan으로 표기했다가 이후
Dai-Nippon Teikoku로 표기가 바뀌었다.
[7]
이 이벤트에서 영화 촬영을 중지당한 영화감독이 다음에는 영화를 보며 토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부들거리는데, 바로
살로 소돔의 120일의 감독인
파올로 파솔리니다.
[8]
다당제 개혁도 할 수 있다
[9]
민주 정부가 들어설 경우 OFN에 가입할 수 있고 독재가 계속되면 독자노선을 유지한다.
[10]
보통은 국내 개혁 계획 및 안정화를 꾀하는 마지막 중점을 찍기 전에 몰타 회담장 폭탄 테러가 일어나, 포커스를 다 찍지 못한채 강제로 포커스가 트리움비라투스 이후로 변경된다. 개혁이고 안정화고 국내 상황에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할만큼 내외적으로 개판이 되어버린 이베리아 연방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만들어 둔 장치일수도 있다.
[11]
그러나 무기를 팔아 치우는 것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는 실패로 끝난다
[12]
여기서 선택을 잘 해야 하는데, 여기서 보수주의자들을 2번 이상 화나게 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보수주의자들이 대거 투표하면서 국민연합/인민동맹의 지지도를 크게 늘리는 데, 국민연합/인민동맹에게 투자하는 이벤트에서 고른 정당이 더 인기도가 높아진다. 역시 좌익/리버럴들을 3번 이상 화나게 하면, 좌익/리버럴이 분노하며 공화당/민주혁신당의 지지도가 크게 증가하는데 보라색글씨의
사회자유주의자들에게 영향력을 주게되면 공화당의 지지도가 크게 올라가고, 노란색 글씨의 시장자유주의의 경우 민주혁신당의 지지도가 크게 증가한다.
[13]
이베리아가 완전히 조각조각 나버리는 아래 이베리아 전쟁과는 달리 1대1 내전으로 이루어진다.
[14]
여담으로 이상하게도 아스투리아스는 분리주의 동인도 없고 세력이 강한 것도 아니지만 독립하는데 이는 구 부르군트의 글로벌 플레네의 일부였다. 지금은 삭제된 설정이다.
[15]
멸망 문구는 "다다의 꿈이 무너졌습니다."
[16]
센 강을 기준으로 나누면 북 파리가 남 파리보다 훨씬 넓으며, 파리 중심가를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
엘리제 궁전,
에투알 개선문 등 파리를 상징하는 수많은 랜드마크들이 북 파리에 있다. 서울의 강북과도 같은 곳인데, 부르군트의 점령 이후 이 모든 것들이 파괴되는 것이다.
[17]
기사단국의 영토가 역사적인 부르군트의 지역과 다르다는 비판이 나오는데 이는 요점을 벗어난 의견이다. 힘러의 목적은 한때 이 세상에 벨기에와 프랑스란게 있었다는 흔적을 말소하고 부르군트라는 독일계 민족으로 대체하는 것이지 역사적 맥락과는 무관하다. 부르군트의 영토는
프랑스 군정청 중 특정 구역 국경선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18]
물론 부르군트 기사단국의 거주자 모두가 18시간씩 일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아인들은 11시 취침, 6시 30분 기상과 같은 평범한 일과를 살아간다. 이에 반해 노예들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수준이라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벤트에서 노예들이 드디어 죽을 수 있다며 기뻐할 정도다.
[19]
경쟁자들에 의한 암살은 아니고,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 시찰 중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당했다. 기존에는 프랑스에서 같은 이유로 암살당했다는 설정.
[20]
이런 배경 때문인지, 하이드리히 루트에서 반힘러 연합과의 교섭이 가능하기도 하다. 나머지 둘은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힘러에게 충성한다.
[21]
사실 그는 쿠데타 전에 외무장관직에서 해임당한 상태였다. 거의 모든 다른 나치 간부들과 관계가 악화하고 히틀러도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리벤트로프가 싫어하는 발터 헤벨이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SS 쿠데타에 가담했고 부르군트로 쫓겨났다. 부르군트에선 정상적인 외교활동이 없고 첩보공작 후속지원 업무나 하고있다.
[22]
역설적이게도 핵전쟁 이후 나오는 랜덤 이벤트 중에서는 부르군트 후손들이 생존자들을 도와주는 이벤트가 있다. "아리아인은 핵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아리아인이다"로 바뀐 것이다.
[23]
부르군트의 첩보망은 서러시아가 한계이기에 그 이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24]
국가안전부. KGB 전에 있었던 방첩기관이다.
[25]
전임 대통령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차로 친 사람은 감옥에서 자살. 대선 경쟁자 중 두 명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폭로로 총살되고 나머지 한 명은 자진 사퇴. 라다 건물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 정적 다수 사망. 테러 공모자와 그 무기상들은 전부 총격전 중 사살됨. 독일 장군이 비투쉬카가 소련 유격대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다가 갑자기 친위대와의 총격전이 벌어져 죽을 뻔함.
[26]
נקם, Nakam. 히브리어로 '복수'
[27]
단 리워크 예고에서는 코브너의 광기가 줄어들 것이고 나름 비전을 가진 인물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또 독일계를 제외한 현지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군벌로 로어를 잡을 것이라고 한다.
[28]
비투쉬카는 가짜 비투쉬카를 이용해 시간을 끄는 사이 국외로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29]
중점을 통한 편입으로 무조건 협상에 성공한다
[30]
가장 강경한 ss출신의 올렌도르프는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실용주의적 개혁을 추구하고, 라이브란트는 제한적인 권리이양과 온건화, 브라우티검은 착취를 중단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시행한다.
[31]
1898~1946.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인민군 사령관 출신 저술가로, 우인공이 소련에게 합병당한 후엔 루마니아, 유고 등으로 망명생활을 하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겨울전쟁에서 우크라이나계 소련군 포로를 모아서 군부대를 만들어 이끌었고, 이후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내에 투쟁을 유도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나 1946년 9월 27일 서독에서 실종되었다.
[32]
1890~1946.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극좌파 단체들을 이끌었으나 우크라이나 1월 극좌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소련에 합류, 우크라이나가 소련과 합병된 후에는 소련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우크라이나계 민족주의를 옹호하나 이로 인해 민족주의자로 낙인찍히고 권력에 밀려나 1933년 솔로베츠키에 수감된 뒤, 1943년 풀려난다. 이후 두 차례의 자살 시도를 실패하였고 끝내 사라토프에서 키예프로 가던 중, 도로에서 MGB 요원들에게 사살당한다.
[33]
1911~1945. 갈리치아 폴란드계로, OUN 출신임에도 폴란드군에 복무하나 NKVD에 붙잡혀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10년 징역형으로 감형. 최종적으론 1941년 독소전쟁 발발과 함께 탈옥하고 우크라이나로 도망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반군 단체를 형성한다. 이후 서우크라이나 볼히니아의 폴란드인 인종청소를 지도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나 1945년 매복한 NKVD 부대에 의해 사살당한다.
[34]
현실에서 루마니아의 군인으로, 2차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 방첩기관의 수장을 역임했다.
[35]
실제 역사에선 1942년에 부섭정 직위에 올랐으나, 같은 해 8월 군용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36]
친독 파벌
[37]
얼마나 막장이냐면 독일마저 몰려오는 난민과 국경지대 문제로 크게 고심할 정도이다
[38]
개발 로드맵에서는
피에르 푸자드(파시즘),
피에르 시도스(국가사회주의),
앙투안 피네(가부장주의) 3명의 루트가 예고되었다.
[39]
프랑스의
비밀군사조직(Organisation de l'armée secrète)의 약자,
알제리 전쟁 당시
샤를 드골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장폴 사르트르를 암살하려고도 했고, 이는 유명 테크노 스릴러 소설이자 영화
자칼의 날로 만들어졌다.
[40]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의 아버지
[41]
급진적인 산업화,기계화
[42]
괴벨스의 양아들
[43]
후버전에서의 판무관은
오딜로 글로보츠닉으로 대체되고 카셰는 스웨덴 대사로 바뀐다. 또한 카셰의 번아웃도 없는 탓에 모스코비엔 해체도 훨씬 얌전하게 이뤄지거나 아예 없어질 것이다.
[44]
아르메니아 출신 소련 관료. 횡령 및 뇌물죄로 처형.
[45]
붉은 군대 출신 SS. 이후 SS를 배신하고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1944년 사살당했다.
[46]
1916 ~ 1942. 바타이스크와 로스토프 사이의 댐 폭파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사살,
철십자 훈장을 사후 추서받았다.
[47]
푸르긴의 본명은 블라디미르 골루벤코로 소련의 도둑이자 사기꾼이었다. 발렌틴 푸르긴이라는 이름은 탈옥 후 만든 가명으로 심지어 전장터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겨울전쟁 참전 경력을 위조해 소비에트영웅훈장까지 받았다. 현실에서는 이 시점에 덜미가 잡혀 체포되어 처형되었지만 TNO 세계에서는 독소전쟁에서 소련이 패배하면서 또 탈옥해 영웅행세를 하고다니고 있다.
[48]
바닐라에서도 소련이 파르티잔 관련 포커스를 완료하면 첩보원으로 등장한다.
[49]
SS의 소행이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나 헬도르프는 SS가 범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50]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고 친구가 고통을 겪는 것을 보다못해 헬도르프가 직접 숨을 끊어주었다.
[51]
1960년대 후반 사망하거나 군사쿠데타로 망명할때.
[52]
정권에는 영향 없음
[53]
현실에서 유레 프란체티치는 우스타샤 군의 지휘관 중 한명이었다. 1942년, 항공사고로 프란체티치가 타고있던 항공기가
자그레브 남서쪽에 추락해 파르티잔에게 붙잡혀 사망하였다.
[54]
지도자는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자유보수주의(보수주의))
[55]
다만 후버전에서는 현실성을 이유로 요지아스 대신 다른 인물이 판무관이 될것이며, 이념도 로젠베르크 사상으로 교체된다
[56]
원래 구다와 비테킨트가 장군으로 있었으나 삭제되었다.
[57]
후버전에선 비고 캄프만 (사회민주주의)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58]
다만 유틀란트 남부는 후버전에선 비현실적이란 이유로 다시 덴마크령일 예정이다
[59]
Folkhemmet,
1934년
페르 알빈 한손 스웨덴 총리가 도입한 스웨덴 복지 국가를 시적으로 표현한 개념. 바닐라 스웨덴에 공산주의가 집권하면 바뀌는 국명이기도 하다
[60]
소련 멸망 이후 전직 공산주의자들과 친독 국가사회주의자들이 뭉친 소렐주의, 슈트라서주의 성향의 사회주의-파시즘-나치즘 정당
[61]
바닐라에도 나오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