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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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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역 개요
> 동아시아, 지금은 서구 제국주의의 마수로부터 자유로워진 이 지역은 새로운 주인, 일본 제국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동아전쟁에서의 참혹한 승리로, 제국은 과거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해방국들의 충성을 받고 있으며, 세계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제국의 기량과 힘으로 일본은 동쪽을 무자비하게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위성국들에 대한 도쿄의 통제는 약해지고 있으며, 전쟁의 북이 다시 울리고 있습니다.

제국의 북서쪽에는 충성스런 동맹이자 위성국인 만주국과, 도쿄에 지배에 계속해서 반기를 드는 소란스런 위성국 중화민국이 있습니다. 남쪽에는, 인도네시아, 쇼난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위성국들이 일본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날이 갈수록 반란과 혁명의 불길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에 대한 일본의 지배는 적어도 겉으로는 확고하고 안정적이며, 단지 골치아픈 동쪽의 미국인들과 서쪽의 독일인들에 의해서만 위협받고 있을 뿐입니다.

외부 위협에게서 얻어낸 일본의 전리품을 한데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지정학적 조직인 공영권은 제국의 주도하에 해방국들과 함께 아시아에 우뚝 서 있습니다. IJA 주둔군은 아무르 강둑에서 벵골 정글까지 일본의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으며, IJN 함대는 외국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부 해역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이제 1962년의 동이 밝았고, 도쿄는 동양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질서가 다양한 국가들과 민족들 사이 자리 잡았고, 모든 이들은 동쪽의 떠오르는 태양의 위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낡은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고, 식민지 주민들은 이웃한 적들에 대한 경쟁심과 그들의 '식민지 압제자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2. 플레이 가능 국가

2.1.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대일본제국

대일본제국엔 해가 지는 법이 없었고, 적어도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의 여러 나라 중 가장 많은 단일 인구를 거느리고 있는 대일본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 산업 기지, 그리고 해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조차항만과 태평양의 소유로, 일본은 유럽에 뒤처지고 폐쇄된 국가에서 바다와 육지의 지배자로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전후로 계속해서 복잡해지는 행정과 정계가 제국을 지속해서 약화하고 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이 중국의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식민지에 대한 지배력이 더 약해지고 있으므로, 모든 것이 잘 풀려가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플레이 가능

리워크 예고[장기간]
}}} }}} }}}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토요타 자동차 법인은 이웃한 토요타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만주국과 광둥성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산업 중심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중공업의 고동치는 심장은 지칠 줄 모르고 작동합니다.||
지역 프로빈스 효과: 겨울에 보급 소모율 +10%, 이동 속도 -30%, 사단 공격 -10%||
지역 프로빈스 효과: 겨울에 보급 소모율 +10%, 이동 속도 -30%, 사단 공격 -10%|| 지역 프로빈스 효과: 겨울에 보급 소모율 +10%, 이동 속도 -30%, 사단 공격 -10%|| }}}
【도입부 - 대일본제국】
>동방의 보석. 떠오르는 태양의 국가. 대일본제국. 대일본제국은 많은이름으로 불리지만 이 제국이 동아시아의 패권국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철혈이라는 비용을 치르고 얻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참혹한 승리로 사할린의 차가운 바다에서부터 도쿄의 북적북적한 메갈로 폴리스, 저 멀리 캘커타와 뉴기니까지 대일본제국은 당당하게 뻗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1962년 일본은 그들이 원했던 모든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이바츠는 아시아의 경제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발전시켰습니다. 대일본제국 해군은 도쿄 만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입니다. 대일본제국 육군은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을 도쿄의 의지대로 다룰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 일본 왕관의 보석이자 한때 불변의 적이었던 중국은 이제 일본에 굴복하였습니다. 도쿄의 정치인들은 말다툼을 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보수적인 이노 히로야가 이끄는 대정익찬회가 20년 넘게 강건하게 서 있으면서 일본 자신과 아시아의 신질서인 신체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완벽한 이 승리의 밑바닥에는 제국 패권을 위협하는 가마솥에 거품이 일고 있습니다. 대일본제국 육군은 과도하게 팽창하여 병력이 제대로 감당할수 있는 그릇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은 거의 20년전 있었던 패배를 복수할 태세입니다. 일본 내부 깊숙히에는 미로와 같은 국가 구조가 부패와 속임수를 숨기고는 있지만 이것이 서서히 수면 위로 이것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잠재적으로 대일본제국의 근간을 위협할수 있습니다.
반자이!

세계 제3의 대국[1]이자 공영권의 수장. GDP 상으로는 독일보다 높아 2위에 위치하여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승리하여 아시아의 대부분과 하와이를 점령한 상태이다. 한일 해저터널이 지어져있어서 육로로 조선과 일본을 오갈수도 있다.[2]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는 많은 것을 바꿨다. 일본은 이제 시베리아부터 뉴기니까지, 중국부터 하와이까지 널리 뻗은 광대한 제국이 되었다. 이 중 몇몇 지역은 현지인 부역자들이 통치했고 몇몇 지역은 군부가 통치했다. 어찌되었든 그 광활한 영토에서 짜낸 자원들은 일본으로 흘러들어갔다.

평화가 찾아오며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는 힘을 잃기 시작했다. 히로히토 기도 다카요시의 손자이자 자신을 보좌해온 내대신[3] 기도 고이치를 새 총리대신으로 임명했다. 개혁주의자였던 기도는 대정익찬회를 군부에 대항할 수 있는 관료 조직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안 그래도 기도를 언짢아하던 군부는 기도를 총리 자리에서 내쫓고 만다.

다음으로 총리로 임명된 인물은 이노 히로야였다. 권력 기반이 약했던 이노는 일본 육군에게 식민지 통제권을 넘기는 대신 미미한 권력을 지원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노 집권 시기 뇌물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노의 권력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 대정익찬회 내 이노 반대파들과 무소속 후보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결국 야스다 재벌[4]과 다른 기업들, 육군, 해군, 수많은 정부 고위 인사들이 연루된 대규모 스캔들이 터지며 이노는 불명예스럽게 사퇴한다.

한편, 일본 경제계는 또다른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정경유착이 강한 수직적 조직인 자이바츠(재벌)이 아닌 시장자유주의 성격이 강한 수평적 조직인 케이레츠(계열)이 나타난 것이다. 이 변화를 불러온 것은 스미토모였다. 스미토모는 야스다의 유산을 놓고 벌인 경쟁에서 구식 자이바츠인 미쓰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자이바츠들은 미쓰이와 미쓰비시를 중심으로 결집한다. 한편, 토요타 마츠시타와 같은 신흥 강자 후루카와와 같은 변화를 감지한 자이바츠들은 스미토모를 따라 케이레츠로 개편한다. 그리고 일본 경제의 기둥이 되던 이들이 일본의 미래를 놓고 싸우며 경제 전쟁이 벌어진다. 경제 전쟁 도중에는 생산량을 놓고 소동[5]이 벌어지거나, 아무도 상대 회사에 부품을 팔지 않아 TV가 점점 비싸지거나, 자전거 산업을 놓고 경쟁을 벌이다가 자전거와 그 부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거나 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

당연하겠지만,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해방시킨" 식민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은 식민지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공영권이 국가들 간의 형제애가 될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있다. 중일전쟁은 전쟁도 아닌 장제스가 항일로 단결시킨 중국 군벌들을 일본군이 "평정"한 사건으로 여겨지지만, 식민지인들은 장제스 국민당의 혈투를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국내 유저가 알아본 결과 조선 독립은 어려울거라고 한다. 다만 엄밀히 따질 경우 "해피 엔딩"인 결말은 있을 것이라고 한다. 5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일본령 조선은 "내지의 영향을 받은 독자적 문화"를 가지고 있고 독립운동도 CIA가 지원할 만큼 남아있다. 레딧에서 언급된 한국에 관한 토론에서, 일본/만주 개발자는 아일랜드의 예시를 들면서 '50년의 시간만으로 한 나라의 문화를 쓸어버리기엔 부족하다' 라는 언급을 하였다. 다만 상술하듯 일본이 민족말살 정책을 20년 이상 진행해 왔으므로 일본화가 진행되어 가는 단계는 맞는듯 하다. 아이들이 한글을 모른다고 슬퍼하는 이벤트가 있는 것으로 보면 최소한 1940년대 중반생 이후로는 조선어도 알지 못하며 일본어가 적어도 공적으로는 통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윗세대에 대한 동화 정책은 실패로 돌아간듯 하나 민족말살통치 시작 후 세대에 대한 황민화는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치트로 독립시킬 시 프랑스국의 GDP를 후려친다는 설정으로 보아 전후 고도성장의 콩고물을 받아먹어 상당히 개발되어 있는 듯하다. 당장 한일해저터널부터 까무러치는 수준이다. 대체적인 생활 수준은 일본 중산층 아래 정도이고 일본 제국 경제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TNO 세계관의 일본은 냉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대국이다보니 조선이 자치령과 같은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받거나, 아니면 일본이 저항에 못 이겨 강경한 동화주의를 포기하고 다문화 국가가 되는 수준 이상의 '해피 엔딩'은 힘들 듯 하다. 다만 이조차도 일본이 조선을 본토로 취급하기에 어려울듯. 실제로 일본은 중국과 대아전쟁 시 조선은 절대 사수구역으로 간주하며 조선 진공을 할 경우 핵을 사용해 So long이 뜨게 된다. 이 시점이라면 일본은 자국의 안보상이나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투자로 인해 절대 조선을 포기할수 없을 것이다.

파일:TNO 일본정부.png

이러한 일본 국내의 정치는 전용 시스템을 통해 다루어진다. 군부의 영향력이 강하고 의회 내부에는 대정익찬회 소속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대정익찬회 안에 있는 여러 파벌들이 실질적으로 정당 역할을 하는, 1당 독재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계파를 통해 의회 제도가 운용되는 국가인 일본의 상황을 구현한 기능이다.

아니메는 존재하지만 매우 군국주의적인 색채(very warmonger tone)라고 한다.[출처1] 게이트 같은 자정작용 없이 극단주의적인 작품들이 넘쳐난다고 봐야할듯하다.[7]

Calm Before the Storm[8] 일본 담당자이자 카이저라이히 개발진에 참가한 국내 모더가 카이저라이히 마이너 갤러리에 푼 썰에 다르면 설정 고증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려서 말이 되는게 없다고 하며, 갤에서는 TNO팀 아시아 리드디자이너를 맡고 다른 HOI4 대역모드에 많이 참가한 모 필리핀인 모더가 설정 고증을 제멋대로 짰다는 여론이 대세가 됐다. 다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원래 동아시아 설정이 빈약했고 나중에 온 필리핀 모더는 촉박한 시간 안에 급조해내느라 별수없었다고 한다.

모드 초기에는 국호를 Empire of Japan으로 표기했으나, 툴박스 패치 즈음에 Dai-Nippon Teikoku가 되었다.
정권 안정도가 감소할 시, 한 번의 경고 이후 정권이 붕괴되고 '행동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이벤트가 출력된다. 이후에는 일본 플레이를 완전히 종료하거나, 늦게 새 총리를 선출(다만 70년대 초반 이후 대리전은 미구현)하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정권 붕괴 이후 출력되는 시구]
>우리는 의무를 저버렸고
우리 스스로도 저버렸다네
우리의 체제는 썩어문드러졌고
인민의 신뢰는 산산조각났나니

하지만 먼지가 내려앉으면
우리보다 현명한 자들이
새로운 길을 열리라
고통에 울부짖는 심장을 지닌
지치고 늙은 영혼 속에서
새로운 삶이 숨을 내뱉고
우리의 잘못을 고쳐주기를

그러니 그들도 실패하지 않기를
이 위기에도 끝이 오기를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도하세.


대규모의 설정 변경이 예정되어있다. 아래는 변경될 설정에 대한 예고이다.

[변경 이후 내용]
1941년 이후 총리는 도조 히데키(임기: 1941~1945, 소속: 대정익찬회) - 스즈키 간타로(임기: 1945~1947, 소속: 대정익찬회) - 기시 노부스케(임기: 1947~1949, 소속: 대정익찬회) -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임기: 1949~1951, 소속: 무소속) - 마에다 요네조 (임기: 1951~1954, 소속: 대정익찬회, 익찬의원동맹) - 하토야마 이치로(임기: 1954~1956, 소속: 무소속, 동교회) - 아오키 가즈오(임기: 1956~1959, 소속: 대정익찬회, 정무연구회) - 아리타 하치로(임기: 1959~1960, 소속: 대정익찬회, 익찬의원동맹) - 후나다 나카(임기: 1960~, 소속: 대정익찬회, 내무계) 순으로 이어졌다.

익찬회를 제외한 모든 정당은 금지되었기에 정계에는 익찬회와 무소속 의원들만이 남았고 그나마 무소속 의원들은 심한 제약을 받기에 사실상 익찬회의 독주체제. 그러나 익찬회도 권력 분점문제나 대장성, 내무성, 상공성 등등 각 행정 조직간의 갈등으로 여러파벌로 갈라져 있어서 권력을 독점하지는 못했다. 시작 시점 총리는 후나다 나카(전제주의)로 일본 내부 권력을 장악한 행정 조직인 내무성을 기반으로 하는 내무계 소속이다. 익찬회 내 최대의 계파인 익찬의원동맹과 연합해 집권 중이다. 다른 계파 중에는 정무연구회가 이름을 바꾼 굉지회가 제일 크고 그 외의 계파로는 정무연구회에서 갈라져 나온 익찬혁신연맹, 군소 계파인 제국 호텔파 등이 있다.

한편 무소속 의원들은 정당을 차릴 수 없어서 무소속이라는 이름으로 묶이지만 역시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무리들이 포진해있고 같은 성향끼리는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정당과 유사한 형태의 느슨한 조직을 형성했다. 고노 이치로의 동교회, 마츠무라 켄조의 정책간담회, 미키 다케오의 국민협동회 등이 이런 조직의 일부이다. 무소속은 법령이나 익찬회의 견제 등으로 인해 거의 집권이 불가능하지만 익찬회 정권이 크게 흔들릴 경우 기도 고이치, 고노에 후미마로 등의 중신이나 덴노 자신의 결단을 통해 집권할 수 있게 된다.

1963년 야스다 위기가 터지면 후나다 내각은 무너지고 굉지회의 이케다 하야토, 익찬의원동맹의 가와시마 쇼지로, 제국 호텔파의 고노에 후미마로, 동교회의 고노 이치로 중 하나가 집권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현재는 매우 부실한 편인 일본 국내정치 묘사도 늘렸다. 특히 중의원 관련 묘사가 크게 늘어서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선거제는 여전히 중대선거구제이고, 25세 이상 남성 보통선거라는 기준도 변하지 않았으며, 임기는 4년이다. 상술하듯 대정익찬회가 유일한 공식 여당이나, 천황의 임명한 총리나 또는 선거 결과에 따라 무소속이 우위를 점해 내각을 차지할 수도 있다. 동교회의 하토야마 이치로가 대표적. 그러나 1956년의 야당 분열로 무소속은 다시 힘을 잃어버렸다. 최근 제국의회 선거는 1956년 하토야마의 선거 소집에 의한 선거와 1960년의 선거가 있었다.

특고와 치안유지법으로 좌익은 매우 혹독하게 탄압되었고, 익찬회의 추천에서 배제당하며 무소속 출마도 무소속 내의 보수파, 자유주의자들에게서 도망쳐야하기 때문에 1940년의 사회대중당 해체 이후 일본 정치에서 좌익은 거의 소멸했다고 한다.

경제는 고성장을 거듭하였으나, 농촌은 여기에서 소외되어 비참한 상황이 이어졌고, 1959년에 참다못해 대규모 쟁의(잇키)가 벌어졌다. 이때 특고와 군을 동원한 잔혹한 유혈진압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아리타와 후나다, 가와시마의 복잡한 책임이 혼재해 있는데, 아리타 내각에서 내무상이던 후나다가 가와시마에게 특별한 조언을 받은 문제가 있는듯 한다.

디코 Q&A:
1편
2편

2.1.1. 국내 정치

2.1.1.1. 이케다 마사노스케[9]
일본인들 대다수는 이케다 마사노스케가 내각총리대신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케다만큼의 통찰력이 없었지요. 보수주의자이자 충실한 친-이노파인 이케다는 역사적으로 최고이자 최악이었던 보수들의 본능을 상징합니다. 극단주의를 미심쩍어하고 급작스러운 변화에 회의적인 새로운 내각총리대신은 일본 정치의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케다가 이노 시절의 다양한 실패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도덕성의 부재와 부패는 일본이라는 국가에 많은 금이 가게 만들었습니다. 자이바츠와 대일본제국군, 그리고 정부와의 안정적이었던 관계는 깨졌습니다. 이는 건강한 일본을 보고 싶을 리 없을 야심가들과 음모자들, 기회주의자들과 다른 여러 종류의 득 될 것 없는 인간들을 그 폐허로부터 행운을 감별해내도록 만들었습니다. 국회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이노의 사임 이후에 나타난 대정익찬회의 추악스러운 분열의 몰골로 인하여 흔들렸습니다. 화족들은 정계에서의 그들의 파트너들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외국인 관찰자들은 더 약한 일본을 기대하면서 그들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날 때부터 정치과학자였고 직업상 신문 편집자였던 이케다는 단 한 번도 모든 정부의 어두운 구석탱이에 굴러다니는 때나 찌꺼기들에게 순진하게 굴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가 10년 동안 살았던 집을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친-이노파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의 얇은 연정은 그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하나 면밀히 관찰합니다. 그러나 그가 아니면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일본은 전쟁 이후 맞이했던 그의 가장 어두운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며, 그리고 이케다는 그가 극단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방패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 {{{#!folding 내각
* 하토야마 이치로 정부수반
* 사쿠라우치 요시오 외무장관
* 사토 에이사쿠 재무장관
* 에사키 마스미 내무장관
}}}

국체론을 중시하는 보수파.

먼저 전임 이노 정부가 일으킨 스캔들부터 처리해야 한다. 두 가지 해결방법이 있다. 먼저 부패를 인정하고 대정익찬회, 군부, 재벌 중 하나에게 약간의 약속을 한 다음 욕받이로 내던질 수도 있다. 이 루트로 가면 연루된 기업들의 자산을 압류하거나 기업가들을 할복시키며 공개 재판, 압수수색 등으로 부패를 처리했다고 어필한다. 이 경우 아사쿠사에서 대규모 폭동이 벌어진다. 이와 달리 " 일본 국민 여러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일자리로 돌아가십시오"하는 루트도 있는데 분쿄에서 대규모 폭동이 벌어지지만 번번히 일본 제국 육군 헌병에게 진압된다. 이와 동시에 대정익찬회 내 권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카기를 안심시키고, 군사 계약을 통해 가야를 억누르며, 황가와의 접촉을 통해 기도 파벌에서 온 망명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안정화를 이루면 본격적인 계획을 시작한다.
여담으로 이케다는 일본 밖에서도 부패 정치인으로 인식된다. 광동으로 플레이할 시 이케다가 총리로 선출되면 부패도가 증가한다.
2.1.1.2. 타카기 소키치
타카기 소키치는 얼핏 보면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주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호헌론자들과 대일본제국 해군입니다. 타카기와 같은 그러한 이질적인 지지층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요. 하지만 약간의 설명이 첨부된다면, 모든 게 확실해집니다. 이 남자가 누구인지 말이죠.

개인적으로 개전에 반대했던 타카기 제독은 대동아전쟁에서 뛰어난 복무 실적을 남겼으며, 오랫동안 일본 내 온건파의 저명한 인사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의 군 경력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과 이노우에 시게요시 해군원수에 의해 비공식적인 파벌인 '해군 좌파'의 통솔자로 지명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타카기 제독은 제국의회의 호헌파 의원들과 다이쇼 시대의 헌정질서를 회복하고 경제 자유화를 원하는 운동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타카기의 지지층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지휘권을 가지고 있든, 대일본제국 해군은 도조와 같은 미친개 밑에서 일할 필요가 없는 한 만족하며, 호헌주의자들은 종종 그들의 세력을 과소평가하고 작금의 익찬회 체제에 대한 증오를 공공적으로 표출하기도 합니다. 만일 그가 태평양의 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본 정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이고, 그가 이루기를 원하는 개혁을 실행할 수만 있게 된다면, 일본의 미래는 진정 욱일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 {{{#!folding 내각
* 키도 코이치 정부수반
* 쿠라나리 타다시 외무장관
* 나카소네 야스히로 재무장관
* 호리키리 젠지로 내무장관
}}}

자유주의자 파벌을 이끄는 전직 제독. 출신 덕분에 해군에 지지자들은 많지만 자유주의자라 대정익찬회 내 입지는 작다.

현실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해군 제독. 대미 화평파로 도조 히데키 사임 직전에 미국과 평화협상을 맺기 위해 도조 암살을 계획한 적이 있다.

타카기 총리대신이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세가지가 있다.
세 문제를 모두 처리하고 나면 두 가지 행동을 할 수 있게된다. 첫번째 행동은 일본의 두뇌유출을 막는 것이다. 산업을 발전시키거나 컴퓨터를 발전시키거나 둘 다 적당히 발전시키는 것으로 일본 지식인들을 다시 끌어모을 수 있다. 두번째 행동은 일본 경제 위기를 끝내기 위해 자이바츠나 케이레츠 중 하나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성의 노동과 참정권를 보장하고, 우생보호법의 전신이 되는 국민우생법을 폐지할 수 있다.
2.1.1.3. 가야 오키노리
카야 오키노리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지요. 최소한 이는 일본 대중들이 이 관료 정치인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느꼈을 첫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일본 경제를 총력전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그의 지위를 눈에 띄게 높여놓았습니다. 지루할 때 나오는 그의 단순하고 쾌활한 성격은 그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혁신관료들은 키도 코이치가 권력을 잃게 되었을 때 카야를 지도자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보다 숫자를 더 좋아하는 카야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신이 경이로운 협상가임을 증명했습니다. 군이 키도를 권력에서 내쫓기 위하여 그를 온갖 방법으로 가로막는 것을 보고, 카야는 그가 그의 전임자와 같은 실수를 행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관료들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군부의 환심을 샀습니다. 한때 군부가 혁신관료들의 급진적인 계획들에 매우 분노하고 불신했을 때, 카야 오키노리는 그 계획이 그들의 이익을 지켜줄 것이라고 설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혁신관료들은 군부가 가장 좋아하는 파벌로서 보수주의자들을 대체했습니다. 이 지지는 카야가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것을 도왔으며, 이제 혁신관료들은 일본의 경로를 바꾸는 실탄이 되었습니다.

카야 오키노리는 사람보다 숫자를 좋아하며 일본 정계에서 가장 강력한 파벌의 지도자라는 갑작스러운 역할은 그가 쉽게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내각총리대신은 따라서 그의 파벌 멤버들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는 혁신 관료들 간의 정책에서의 의견 일치는 생각보다 허약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카야 오키노리는 그의 조언가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그가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기를 바랍니다. 뭐, 정부에 완전히 종속된 사회를 만드는 그 옛날 혁신관료들의 목표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치도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요.
}}}
* {{{#!folding 내각
* 아오키 카즈오 / 시이나 에쓰사부로 정부수반
* 우시바 노부히코 / 스즈키 데이이치 외무장관
* 후쿠다 다케오 / 기시 노부스케 재무장관
* 후나다 나카 / 타나노리 나가야마 내무장관
}}}
개혁주의자 파벌을 이끄는 인물.

가야 총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각을 만드는 것이다. 첫번째 선택지는 가야와 같은 강경 개혁가들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 스즈키 테이이치가 재무장관이 된다. 두번째 선택지는 이케다, 기도와 같은 대정익찬회 내 유력자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세번째 선택지는 가야 지지자들만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내각이 만든 가야는 정치 개혁을 시작한다. 육해군의 장군과 장교들은 하나로 묶여 정치인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 국체를 지키기 위해 빠르게 정치적 숙청을 벌인다. 재계의 부패를 소탕하고 식민지에서 자원을 최대한 쥐어짠다. 모든 정치 개혁이 끝나면 군대를 위한 나라를 만들지, 경제 대부분을 국유화할지 선택할 수 있다.

이제 기업 문제를 해결하고 추가적인 군사 개혁을 벌여야 한다. 기업 문제의 경우 자이바츠와 케이레츠 둘 다 박살내고 국유화하는 도박을 벌일 수도 있다. 이 방법이 너무 위험하다면 케이레츠를 박살내고 덜 위험해보이는 자이바츠와 손을 잡아 협동조합주의를 만드는 방향으로 갈수도 있다. 군사 개혁은 육군과 해군의경쟁관계를 양쪽 모두에게 지원을 펑펑 해주는 것으로 해결한다.

이렇게 보면 카야가 자유주의적 개혁을 이끄는 인물로 보이지만, 관료 계획경제체제를 확립해 기업과 군대를 제휴시켜 군대한테 건설업도 시키고 고등교육규제를 통과시킬 수 있다. 또한 만주국 출신의 '혁신관료'를 대표하는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강경파와의 협력 역시 이루어지므로 타카기와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지하는 인물은 아니다.

만일 그가 사임한다면, 차기 총리는 권위적 개발주의(권위민주주의, 대정익찬회 - 민정관료) 성향의 후쿠다 다케오 또는 혁신관료(파시즘, 대정익찬회 - 혁신관료) 성향의 시이나 에쓰사부로가 될 것이다.
2.1.1.4. 다이리 위기
일본 헌병대의 권력 유지를 위해 중일전쟁 당시 죽었다고 알려진 다이리가 살아서[10] 항일운동을 벌인다는 음모론이 퍼지며 계파 갈등과 혼란이 격해진다.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안 그래도 안되던 군부 통제가 무너지고, 이후 메이지 시대의 과두정 체제를 지지하는 황실 출신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혹은 군부 강경파 무토 아키라가 집권한다.

둘 다 관련 중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다이리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게임 오버라고 보면 된다.

향후 있을 일본 대규모 리워크에서는 삭제될 예정이라고 한다. 현실성과 고증을 고려해 일본 설정을 개편하게 된만큼 따라오는 조치인듯. #
2.1.1.4.1. 기시 노부스케(삭제)
"무사도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실현된다."
- 야마모토 쓰네토모

결국 이 길로 돌아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대일본제국에서 악마는 북서쪽에 있습니다. 직업관료이자, 산업의 기수이자, 제국의 가장 공포스러운 남자, 기시 노부스케입니다. 부유한 기시 가문에 들어가기 위해 생물학적 가족을 버린 노부스케는 똑똑하고 유능하며, 가장 중요한건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자비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주국의 핵심 관료로서 정치적 명성을 떨치기 전엔 이념적 스펙트럼이 진자처럼 이리저리 오갔습니다.

기시에게 만주국은 건설할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 땅은 정체성과 인간성이 결여된 땅이었습니다. 4천만의 인구는 제국의 지배를 위한 원자재에 불과했습니다. 수많은 이 "원자재"들은 하얼빈 제철단지의 높이 솟은 굴뚝 아래에서 일하고 그 자리에서 죽어갑니다. 이 모든걸 이용해 기시는 관동군과 동료 관료, 사업가들과 유착하면서 만주국에서 부패와 불행의 끝없고 복잡미묘한 연결망을 형성해 왔습니다. 기시는 자산, 현금, 복종, 존경 등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진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시는 아직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기시의 야망은 만주국에서 힘겹게 구축한 체제를 본토로 이식하는 것입니다. 그의 후원 하에 제국은 아시아 태평양을 지배하는 기업주의적이고 잔인하며 전체주의인 국방 국가로 진화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국체를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나약한 대정익찬회로부터 기시가 권력의 고삐를 잡아당기는걸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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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널 기다리고 있었다.
기시 집권시 툴팁

과거에는 기시 노부스케가 쿠데타를 통해 기도 고이치와 고노에 후미마로를 포함한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총리대신으로 오르는 이벤트가 있었다. 명령 44호를 자신에게 위협이 되거나 위협이 될 이들을 처형하는[11] 무자비한 철권 통치를 휘둘러 버린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당시보다 더 무자비한 전체주의 정책을 펼쳐나가게 된다.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사실상 일본의 게임 오버.

도조에게 줄 선 전범 용의자였던 점과 '쇼와의 요괴'라는 별명 때문인지 OTL에서 민주 국가 지도자였던 인물 중에서 독보적으로 사악하게 나온 인물이였다. 음침한 음모론적 정치가로 묘사된 리처드 닉슨이나 나치당 근무 경력이 있지만 선역으로 그려진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에 비하면 기시는 대놓고 아시아의 힘러 포지션. 사실 관료 시절의 기회주의자적 행보와 안보투쟁 당시의 초강경 태세를 생각하면, 압제자들이 승리하는 TNO의 세계에서 기시가 폭군으로 등장할만한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오더 44 이벤트는 오더 66을 패러디하려다가 뇌절한 거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TT 업데이트 이후 개발진도 기존의 집권형태가 너무 극단적이라 판단하며 오더 44가 삭제되며 다이리 위기 실패 시 발생하는 쿠데타의 집권 세력의 이념이 상당히 온건화되었다.

2.2. 파일:TNO 중화민국 국기.png 중화민국

우한에서 청을 상대로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던 희망에 찬 사람들은 30년 만에 일본에 의해 그들의 공화국과 함께 충칭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중국의 새로운 공화국 정부는 국민당의 합법적인 후계자임을 주장하곤하지만 실제론 누구든 이것이 거짓부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습니다. 실제로 1962년의 중화민국은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로, 일본가정의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음과 동시에 자원의 착취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음지에서 빛을 쫒고자 하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가능성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국은 항일전쟁이후로 일본의 경제에대한 투자로 성장해왔으며, 오직 안정과 평화만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오쭝우가 계획한 5대 현대화 계획이 잘만 이루어진다면, 중국이 단순한 굴종자가 되는 것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수도 있을 겁니다.
플레이 가능 }}} }}} }}}
그러나 베이징은 또한 소수민족, 부자와 가난한 자, 전통주의자, 현대주의자, 그리고 무엇보다 협력자와 광대한 사이의 깊은 분열된 사회 긴장에서 중국을 더 진정으로 상징합니다. 반체제 인사의 그림자 네트워크는 고립된 '사건'과 도시를 침수시킨 군중을 단절시키는 악의적인 거리 공격의 천천히 타오르는 전쟁을 부채질합니다. 과거 북쪽의 수도가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내부 분열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고 조만간 해결되어야할 것입니다.||
일본의 전쟁 경제가 동원 해제되고 지역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후, 새로운 중앙 정부의 실패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이 산업의 본거지였을지 모르지만 부패한 통치, 비효율적인 개발, 순수한 무능으로 인해 RGOC의 초기 통치 지역이 곤두박질쳤고 지난 몇 년 동안 경제가 정체 상태에 빠졌습니다.||
도시를 황폐화시킨 끔찍한 홍수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쑤저우는 다시 한 번 북중국 평원의 보석이 되었지만, 2차 중일 전쟁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부르는기에는 이른것 같습니다. RGOC의 경제가 침체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쑤저우는 전쟁 전 경제 이상으로 재건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중일전쟁이 푸저우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대규모 전투가 없는 푸저우는 빠른 회복을 위해 설정되었으며, 따라서 중국 남부에서 RGOC의 가장 효과적인 항구 중 하나입니다.||
1960년대 창사는 1920~30년대 창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수십 년 동안 정치적 파벌과 군대에 휩싸인 창사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단일 정부가 그 땅을 통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종전은 상대적 안정을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2차 중일 전쟁의 상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재조직된 공화국은 자치 행정 목적을 위해 이 잔인한 수도를 받았으며, 전쟁 이후 도시는 거의 10년 동안 가혹한 잔학 행위로부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난징은 중국 인민의 회복력에 대한 증거로 우뚝 서고 그늘진 구석과 도시의 골목길에는 일본의 족쇄를 완전히 버릴 계획이라는 속삭임과 소문이 가득합니다...||
물론, 여기서 끝내는 것은 이야기의 절반만 말하는 것입니다. 난징과 중앙 정부에서 멀리 떨어진 쓰촨성은 종종 RGOC가 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공산주의 게릴라, 국민당의 저항군, 불행한 농민들이 거의 끊임없는 봉기를 일으키고 있으며 중앙 정부가 충칭의 부를 훨씬 더 착취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산시와 같은 다른 지방과 달리 난징은 권력에 굶주린 군벌에게 쓰촨의 부를 넘기는걸 훨씬 더 내켜하지 않습니다. 이 배치는 충칭이 부와 산업으로 가득한 도시이지만 사용되지 않고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충칭, 더 나아가 쓰촨 분지를 통제하는 것은 모든 중국 정부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도시의 인구가 많고 쓰촨 분지의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청두는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난징에서 800마일 이상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일본군이 중국을 떠나고 RGOC가 점령했을 때 저항 조직이가 대규모로 활성화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농민, 산적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유 중국을 위해 또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중앙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청두는 쓰촨을 지휘할 수 있지만 조종석이 수많은 사람들과 싸우는 붐비는 곳에서는 비행기를 조종하기 어렵습니다.||}}}
【도입부 - 중화민국】
> 동방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대지, 중국이 존재한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중국의 역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의 땅을 지배하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수천년 동안, 중화의 전사들은 수 많은 왕들과 황제들의 가슴 속에 야망 또는 공포를 불어넣었습니다. 중화 민족에게 패권은 필연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번영한 백성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의견 불일치는 작은 규모로 시작되었으나 얼마 안 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그 혼돈 위에 서방 세력이 상륙했습니다. 그들은 애벌레가 물러진 과실의 살갖을 갉아먹듯이, 중국의 연안 도시들과 조계지를 빼앗았습니다. 그들은 느리고 잔혹하게, 중국의 주권이라는 이빨을 뽑아갔습니다.

대일본제국은 운 좋게도 제국주의의 참화를 피해갈 수 있었지만, 아시아의 형제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앞마당으로 전락하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7년 7월의 운명적인 날, 일본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노예가 된 아시아 형제들을 구하기 위한 성전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그들의 손에 쥐어져있던 무기들은 제국주의자들의 기술로 만들어 진 것이었지만요...

젊은 가오중우는 이 제국주의자들의 앞선 기술력을 보고 기술력이 중국에 유리하던 전쟁의 흐름을 역전시킨 열쇠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왕징웨이의 죽음 이후, 가오풍우는 자신의 위치가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뒷방 정치인에서 순식간에 정권의 중심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오풍우는 중화민국 총통 자리에 취임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간략히 설명했는데, 중국의 5대 근대화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교육 시스템, 활성화, 산업 역량 확대, 수출 기반의 경제, 그리고 더 많은 개혁을 가오풍우는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미래를 향한 발판이 될지, 산산이 조각난 중국의 마지막 발악이 될지는 시간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중화민족!

일본의 괴뢰국. 일본이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중화민국을 완전히 '승계'해버린 중화민국 난징 국민정부다. 수장은 왕징웨이 천궁보를 거쳐 가오쭝우[12]다.

중일전쟁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대국이었다. 중국은 일본이 주머니에 넣어주는 돈으로 집과 기반시설을 지었다. 10년 간의 중일전쟁에서 싸우던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1950년대 중국은 강력한 농업 국가가 되었다. 중국에서 나온 막대한 양의 곡물은 공영권 내 식료품 가격을 폭락시켰다. 중국은 "공영권의 곡창지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걸 다르게 표현하자면 중국은 공영권의 빵셔틀이라는 뜻이었다. 중국의 상업은 일본인들이 지배했다. 일본인들은 중국에서 나오는 것들을 마음대로 수출할 수 있었다. 중화민국 주석은 중국인을 상대로만 힘이 있었으며 일본인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951년 천궁보가 건강 문제와 나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사임한 후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의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이 틈을 타 일본은 그나마도 없는 중국의 자치권을 하나씩 뺏어갔다. 그 결과 중국의 권리는 일본에서 보낸 "입법원 대사"가 장강에 놀러가고 싶으니 오늘은 쉬자고 하면 입법원이 그대로 휴회되는 수준까지 추락한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자 보수파와 개혁파는 중국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새 주석을 선출했다. 개혁주의자의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인과 함께 일할 수 있을 정도로 보수파의 신임을 받는 사람. 그리고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람. 그게 바로 가오쭝우였다. 가오쭝우는 겉으로는 일본의 충실한 개 노릇을 하나 속에는 복수의 칼을 갈며 중화 민족에게 아시아를 다시 한 번 호령할 힘을 가져다 줄 현대화 계획을 시작한다.
보통 1970년대 초반에 세 개혁을 끝내게 된다. 그러면 나머지 두 개혁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분량은 세 개혁만 다루고 있어서 군사 개혁의 방향을 정하고 "중국은 통일되어야만 한다"를 누르면 엔딩이 나온다.

여담이지만 장쩌민이 개혁파의 젊은 관료로 등장했었다. TT 이후엔 장쩌민은 운남군벌 관련 인물로 수정되었다. 장쩌민은 윈난의 국립서남연합학교에서 전기공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중국 타지역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학풍이 보장되는 윈난의 특성상[13] 공개적인 반일 반협력 학문활동을 비교적 자유롭게 하고 있는중.

현재 분량 문제로 내정만 하는 국가지만 세 개의 "위기"가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기존 중점을 찍을 수 없게 되며 새로 생긴 중점을 통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

2.2.1. 개혁과 입법원

중화민국의 고유 기능.

입법원에는 세 개의 세력이 있다. 굴욕적일지라도 일본이 외치는 아시아주의에 협력하는 것이 중국에 번영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친일파Japanophile, 국민당 좌파 출신의 부패한 영감들인 보수파Old Guard , 애국심에 불타는 청년들인 개혁파Reformist . 친일파는 일본과 함께하는 일을 선호하며 대동아공영권 내 협력을 해치는 일을 싫어한다. 보수파는 자신들이 "사업"으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별 관심이 없다. 개혁파는 국가를 발전시키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일을 선호하며 일본과 함께하는 일을 싫어한다. 플레이어는 이 세 파벌을 조심스럽게 다루며 정치적 줄타기를 해야한다.

2.3. 운남성

중화 통일전선이 무너진 후 윈난의 전 통치자는 루한에게 고삐를 넘겼고, 그는 영도자로건 사기꾼으로건 어쨋든 현대화 운동을 시작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부패와 사회악이 전염병처럼 퍼졌습니다. 분열과 불행이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이 때문에 윈난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반일 감정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루한은 상황을 모르고 행복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지역에 대한 가오의 계획을 계속하지만, 쿤밍과 다른 곳의 뒤에는 혼돈을 이용하여 아무도 생각치 못한 길로 운남을 데려갈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
짧게 플레이 가능
운남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 먼 나라의 지도자인 루한 장군이 복잡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이족의 중국인으로 그는 1895년 자오통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군사학을 공부했고 사촌 롱윈과 혈연 관계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일제가 침략하자 루한은 기교를 갈고 닦고 근면하고 교묘하게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루한의 슬픔과 고통에 크게 영향을 미친 일본군은 그들의 진격으로 그의 사랑하는 사촌이 2인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운남성 주석 직위를 그에게 넘겼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를 흘리는 증오를 가진 자와과 반체제 인사는 중국 서남부을 괴롭히는 다양한 도적과 반군을 다루는 그의 방법론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루한은 마음속으로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양심이 그를 산 채로 잡아먹겠다고 얼마나 위협하든 그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
* 룽윈 정부수반 (전제주의){{{#!folding 인물설명
늙은 장군: 육군 경험치 획득: 일당+0.05, 최대 계획 수립: 동맹 +10%, 육상요새 건설속도+15%

윈난 군벌의 주석의 사촌인 룽윈은 충칭이 함락된 후, 남동부에 정착하여 일본의 위협에 대한 저항이 중국에 득보다 실이 많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협력은 필요악이 되었고, 이후 룽윈은 군벌 국가 내에서 유능한 관료이자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한은 이제 범아시아적 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윈난인들을 그들의 한계까지 착취하기로 결심했고, 윈난은 끊임없이 요구하는 재조직된 정부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무언가가 곧 터질 듯 하고, 그렇지 않으면 윈난은 난도질당해 죽을 것입니다.}}}
외교의 천재: 보급 소모 -5%, 관계 의견 향상 +10%, 암호 해독 +5%

룽저후이는 일본군과 싸우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타이얼좡 전투와 중일 전쟁의 베테랑인 그는 제국이 그의 조국에 가져온 최악의 상황을 보았고 포효하는 기계로 인해 수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평화 회담이 끝나고 전쟁이 멈췄을 때 룽저후이는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감정, 즉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악수를 하고 일본과 협력하면서 이 감정은 점점 무뎌져 간신히 무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중국 국경지대에서 그는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 오래된 두려움을 두드리는 일본 관리 및 당국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편안한 위치를 찾았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그는 20년 동안 찾지 못했었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산업가: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5%, 인력 수급 -2%, 건설 속도 +10%, 소비재 요구량 -7%

윈난은 도움이 필요하며 왕자오위안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03년 1월 26일에 태어난 왕자오위안은 항상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운남 최고의 기업가 중 한 명으로 성장했습니다. 17세의 나이에 그는 사업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7년 후인 1927년에 그는 조직 개편을 거쳐 쿤밍 관리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의 좋은 경영 덕분에 회사는 번창했고 지역 최고의 국제 무역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일본과의 전쟁 동안 그는 민족 혁명군에 보급을 잘 공급하고 침략에 직면하여 운남을 강화하는 데 봉사했습니다. 이제 그는 다시 한 번 현대화와 반군을 소탕할 보급를 제공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그렇게 할 것입니다. 윈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 중 하나이지만 잠재력이 있으며 왕자오위안은 이곳이 떠오르기를 희망합니다.}}}
육군 설계자: 육군 경험치 획득 +5%, 장군 획득 비용 -20%, 훈련 속도 -50%

기껏해야 청완중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기회주의자입니다. 최악의 경우, 오직 다른 나라의 이익을 위해 군대를 이끄는 중국의 반역자입니다. 1894년에 태어난 청완중은 적절한 군사 교육을 받았고 빠르게 국가혁명군으로 진급했습니다. 국민당 제5군 총사령관인 청완중은 중국의 약하고 분단된 세력에 대한 일본군의 승리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승리가 운명처럼 보이자 쩡는 루한의 협력자들과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운남에 거주하는 청완중은 안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쩡은 그의 군대에 규율을 심어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 지도력 및 일반 구조의 부족은 전후 윈난에서 그의 시간을 정의했습니다. 청완중은 늙고 게으르며, 윈난의 군대를 완벽하게 대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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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소개
>운남성

중국 남서부의 광시 서쪽과 쓰촨 남쪽에 자리 잡은 윈난을 살펴보려면 먼저 충칭에서 패배한 후유증을 이해해야 합니다.

충칭 전투에서 일본의 최종 승리는 운남에서 국공합작군의 사기를 심각하게 손상시켰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통제하에 있는 동남아시아의 함락과 결합하여 보급 경로를 차단했으며, 이는 운남이 땅을 완전히 황폐화하지 않고는 일본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몇 년 동안 운남을 "왕"으로 통치한 룽윈은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운남성 사람들이 무의미한 전투에서 강제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운남성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충칭에서 승리했지만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쓰촨을 간신히 점령할 수 있었고 지형과 보급 문제로 인해 더 지나갈 수 없는 윈난성은 고사하고 광시에서 적들을 몰아내는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양측은 무의미한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합의했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변수가 하나 있었는데, 룽윈의 지위입니다.

룽윈은 운남에서 수년을 지배한 이래 너무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는 일본이 그의 계속된 통치에 대해 화를 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왕징웨이와의 관계는 룽윈이 평생 동안 후회하던 일로 남은, 왕징웨이가 롱윈의 감시 도중 운남에서 하노이로 탈출한 운명적인 날부터 험악해졌고, 그로 인해 그는 왕징웨이도 자신을 계속 집권시키려는 계획에 반대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임하고 그의 측근이였던 사촌 루한에게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의 집권에 대해 일본은 그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영향력과 힘이 덜하였기에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 룽윈에게 그는 모든 운남 문제에서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그의 사촌이자 오랜 전우였습니다. 루한이 난징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좋은 근거였습니다. 루한 자신은 한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의 모든 평화시도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전쟁 중 일본 육군의 잔학 행위에 동요한 후 기꺼이 타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루한의 승진이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룽윈은 운남의 행정부와 너무 관련이 있었고 그의 제거는 시민, 민족과 및 군대잔당 사이에 엄청난 불안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룽윈은 그의 사촌의 2인자인 공식 정부 수반으로 내각에 남아 있었습니다. 새로운 국가 원수로서 루한은 공식적으로 휴전에 서명하고 일본 대신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항복했습니다. 이것은 장제스의 죽음과 함께 난징 꼭두각시 정부가 유일하게 남은 중국 정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치에 맞는 일이였습니다.

이 상황은 1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1962년 그레고리력 새해에도 루한은 계속 집권했으며 그의 집권은 확실히 안전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는 점점 더 늘어나는 반대파와 반란에 괴로워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화

루한의 통치가 룽윈의 통치와 비슷한 양상을 보여가다가 반대파의 부상과 대중의 분노에 휩싸인 것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장기간의 평화가 루한의 강력한 민족주의 정신을 부식시켰습니다. 난징이 그에게 자치를 약속하는 한 그가 계속 협력하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겁니다.

둘째로는, 지역 지주로부터의 친밀한 관계와 이해 상충을 위해 좋게 말해서는 선물로 불리고, 최악의 경우 노골적인 뇌물 수수로 불릴만한 것을 받는걸로 인해 그는 윈난의 평균적인 "100개의 성씨"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점점 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는 적어도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니다.

사실 루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항일 반군이 지방 전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루한의 통치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난징의 대지주와 강력한 지방의 귀족들에게 타협과 양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 관찰자의 눈에는 루한의 행동을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정당화가 완전히 되진 않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함이나 운남 군인들의 상처받은 애국심을 덜 쓰라리게게 만들지 않습니다. 또한 그에게 동정심을 주게 하지도 않습니다.

셋째로는, 가오종우 총통의 현대화 계획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가오종우가 그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려면 가능한 모든 곳에서 돈을 빼내야 합니다. 따라서 그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주변의 군벌들에게 더 높은 조공을 요구합니다. 루한은 이것을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할 절호의 기회 정도로 부당하게 생각하여 행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중국의 복지라는 명목으로 윈난 인민을 점점 더 잔인하게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그를 난징과 도쿄의 시선으로는 훨씬 더 좋게 보이게 하여 그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루한은 그의 모든 가혹한 방법이 중국이 사슬을 끊고 마침내 자유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윈난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비참함을 달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위의 상황을 아는 사람은 전 운남왕, 지금은 성정부 2인자가 된 룽윈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사촌은 명예가 사라져서 더 이상 그가 한때 인정했던 명예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미약한 군대와 일본의 붕괴조짐이 늘어남에 따라 룽윈은 난징에 압력을 가하여 서남부를 무력으로 취할 기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룽윈의 지위는 관료이기 때문에 중앙정부를 진정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권한은 일본이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서남부에서 여전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되면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반군이 있습니다.


중국인 노동자들이 보잘 것 없는 장비를 가지고 원자재를 캐내 일본으로 보내는 곳. 일본과의 평화 협정 당시 룽윈의 영향력을 경계한 일본이 새로운 지도자를 내세우길 요구하여서 룽윈의 사촌이던 루한[17]이 지도자로 올라섰으며, 2차 중점인 경제 중점들[18]을 모두 완료하고 마지막 중점인 '휴가 떠나기' 중점을 시작하면 2인자로 내려왔던 룽윈이 루한 정권을 뒤엎고 일제와 그에 아부하는 한간들에 맞서 항일 전쟁을 벌일 수 있으며 그러면 국명이 호국군으로 변경된다.

게임 시작 후 처음으로 활성화되는 디시전은 지역 내부를 안정화시키고 공산당, 국민당 잔당, 정부 내 호국군 세력, 도적들을 토벌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이 터지는 기형적인 시스템라서 사실상 방어가 불가능하고 나중엔 이벤트상으로 사실상 토벌을 실패하였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 '아무런 문제 없다'라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이벤트가 등장하고 디시전 자체는 살아있으나 디시전에 따른 패널티를 그냥 안고 가야 한다. 그나마 국민당 잔당들의 토벌 과정에서 경제 성장을 위한 버마 로드 재건 정도가 약간의 효율을 얻는 정도. 이후 귀주성 합병과 관련하여 허잉친의 처분 등 이벤트를 진행하며 내부 문제를 처리한 이후 경제 중점으로 넘어가게 된다.

2.3.1. 파일:중화민국 호국군 국기.png 호국군

짧게 플레이 가능
The Mad Dog has been put down, and Order in the Southwest reigns once more.
미친 개가 죽었습니다. 다시 한 번 남서부에 질서가 자리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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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의 2차 중점(경제 중점)의 마지막 중점을 시작해 루한이 휴가를 떠난 틈을 타, 2인자 룽윈이 봉기하여 루한 정권을 뒤엎으면 생성되는 국수주의 국가. TT 업데이트 이전에는 복수에 미친 군벌 컨셉이였다면 그 이후에는 독기가 빠져 타 군벌과의 동맹을 통해 항일 전선을 다시 결성하고 장제스 마오쩌둥에 충성했던 옛 중화민국 장교단과 장쉐량, 쑹칭링, 예젠잉 등을 비롯한 광범위한 항일 인사들을 좌우 상관없이 대대적으로 포섭하는 등 비교적 이성적인 해방전쟁 컨셉으로 변하였다. 과거에는 루한 등으로 대표되는 협력자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였지만 현 버전은 루한을 감금만 하였다가[19] 호국군이 중국에서 일본을 몰아낸 이후 룽윈 사망 직전 루한을 용서해주는 이벤트도 생겼다.

상술했듯 윈난의 중점을 정상적으로 모두 진행하면 룽윈이 반드시 재집권한다. 이는 고정 이벤트라 막을 방법은 없다. 이후 생기는 충칭을 포섭하는 이벤트는 전후 엔딩을 좌우하는 정통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이다. 다만 저울이 기울어지는 걸 막는 건 의외로 쉽다.
그러면 난징 국민정부는 충칭에서 퇴각하고, 룽윈이 최후의 항전지였던 충칭에서 거짓된 국민정부를 거부하고 이들을 모두 몰아내자며 중화민국 호국군의 이름으로 북벌을 선언하고 가오쭝우의 항복 권고를 단칼에 거절함으로서, 호국군의 유일무이한 컨텐츠, 중화민국 재건 전쟁이 시작된다.

'반란'을 진압하려는 난징 국민정부와, 충칭을 확보한 호국군은 병력의 양과 질이 비등하며, 더욱이 호국군에게는 조국을 되찾겠다는 신념이 국가 중점으로 얻는 국민정신에 반영되어 상당히 강력하다. 동시에, 호국군은 스스로를 중국 대륙의 유일무이한 합법적인 국민정부이자 해방군으로 선언하고 있으며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 역시 엄청나기에, 호국군이 수복한 점령지를 통합하여 핵심 주를 박고 인력과 추가적인 공장을 받을 수 있으며, 주 탭에서 추가된 해당 주에서의 정책을 통해 공격력 버프/방어력 버프/자원 수집 및 재건 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이전에는 중화민국 멸망과 동시에 대아대전이 일어났다면 TT 업데이트 이후로는 가오중우의 난징 정부를 전복한 이후 이벤트를 거쳐 일본+광동국+서북변방군 등 일본계 중국 국가들과 일본만을 상대하는 2차 전쟁이, 이후 대동아공영권 종속국들이 가세한 3차 전쟁까지 순차적으로[21] 발생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22] 전쟁 도중 일본과의 휴전 이벤트에서 어느 정도에서 전쟁을 중단할지 결정할수 있게 되었다. 광둥, 몽강, 서북방면군, 만주국 등등 중국 내 일본 괴뢰국과 일본 점령하 도시를 모조리 항복시킨 이후 뜨는 "일본은 총체적인 패배를 받아들이고 중국 대륙에서 철수한다"는 내용의 '최후통첩(The Ultimatum)' 이벤트에서 두 개의 선택지가 뜨는데, 빨간 글씨(세상이 망하더라도 우리는 정의를 행할 것이다.)는 반드시 핵전쟁이며,[23] 그 위의 글씨인 We have done enough(우린 충분히 싸웠다)는 선택지를 눌러 평협하면 된다. 대만 등 멀리 떨어진 섬을 제외하고 중국을 다 먹게 된다.

북벌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항일을 위해 화려하게 태우고 끝내 늙어버린 룽윈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24] "산해관에 다시 한 번 봄바람이 부는구나."라는 한 마디 유언만을 종이에 남긴 뒤 평온하게 사망하고 망명했던 쑨커가 귀국하여 지도자에 오른다. 쑨커는 국민당의 훈정을 회복시키고 중화민국의 '부활'을 대내외에 선포한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잘못된 TNO의 세계에서 당연히 행해졌어야 했던, 세계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으나 구 추축국의 몰락이라는 점에서는 아주 잘 어울리는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25] 다만 쑨커가 분열을 막고 있을 뿐 여전히 국민당과 공산당이 물밑에서 영향력을 다투고 있는지라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 이벤트에서 예젠잉이 손님을 불러오겠다며 미소를 짓는데, 아무래도 덩샤오핑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괜히 국수주의인 것이 아니라 전쟁 중의 호국군은 굉장히 극단적이다. 중점들 및 그를 통해 진행하는 이벤을 보면 일제·난징정부 부역자들은 반론할 기회도 없이 무조건 사형이다. 백년국치의 주범으로 인식하는 건지 외국인 혐오도 심해서 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모아 감시하며, 자의로 온 것이 아닌 비 일본인 노동자들이나 언론인들같은 '무고한 외국인'들조차 의도가 순수하다면 몸으로 증명해보라며 형벌부대로 보낸다. 그래서인지 다른 대리전들과는 달리 대아전쟁에는 타세력이 개입하지 않으며, 자유 중국이 복원된 후에도 OFN에 가입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겉과 속이 다른 TNO식 스토리일 가능성도 높고, 본디 굉장히 잔인했던 이전 버전의 호국군 이벤의 잔재일 가능성도 높다. 그 이유는 난징을 회복한 다음 전세계 라디오로 쏘아올린 룽윈의 연설이 "공영권의 압제에 시달리는 여러분들도 같이 투쟁합시다! 힘을 합쳐 일본을 몰아냅시다!" 같은, 아시아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내용이고 저항할 수 있으면 최대한 저항해달라는 내용인 즉 무고한 외국인을 형벌 부대로 보낼 정도로 외국인 혐오가 끝도 없이 넘쳐나는 것과는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복수에 완전히 미쳐 한간 및 간첩으로 의심가면 모조리 죽이려 드는 그런 행동만을 해왔던 구 버전의 호국군이나 사천성을 회복하지 못했거나 등등의 이유로 정통성이 굉장히 낮은 호국군에게 맞다.[26]

중화민국 호국군이 "짧게 플레이 가능"인 이유 역시 이것이다. 일본에게 승리하여 대륙 전토를 탈환함으로서 일본을 TNO의 중심 스토리인 미국-독일-일본 3축 냉전에서 영원히 나가리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일본은 중국 대륙과 서태평양 일대를 장악하여, 만주국의 연장선인 기업국가 광동국을 세우고 난징 국민정부는 공영권의 빵셔틀 노릇을 시키며 동남아시아에서는 자원을 착취하여 본토를 부양하고 있었다. 말레이 반란을 시작으로 발린타왁 전격전(필리핀), 인도네시아 내전 등 동남아시아에서의 숱한 반란으로 통치력과 자원 수급망이 붕괴하고 있던 상황에서 중국마저 사라지면 일본의 경제는 그 즉시 치명타를 입으며, 곧 3축 냉전의 스토리텔링에서 영구히 퇴장하게 된다. 일본이 중국 대륙에 핵무기를 함부로 못 쓰는 이유 중 하나로 추정 가능한 것도 이것이다.[27] 하이드리히의 독일과 비슷하게 AI가 승리하는 옵션은 없는 것.

TT3 이후 중화민국 및 운남성 리워크 계획이 잡혔는데 기존의 룽윈 역할은 달라지고 항일전쟁도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2.4. 파일:광동국 국기.png 광동국

대동아 전쟁 말기 자이바츠에 대한 양보로 중화민국에서 떨어져 나온 광동국은 중국이란 뿌리와 종주국 일본의 사이에 존재하는 부자연스러운 존재로, 기업 식민주의 실험으로 세워진 국가입니다. 광동국은 독립적 국가지만, 실상은 일본, 중국, 심지어 만주국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광동의 행정장관은 다른 공영권 국가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광동의 4대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광동의 땅과 사람들을 탐욕스레 착취합니다.

광동은 국가 아닌 국가로, 사회는 전신송금, 은행권, 주권 등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주강 삼각주(혼콘, 마카오, 코슈)에서 4대 기업과 행정장관들은 2등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진들을 다스리기 위해 이사회 정치에 몰두합니다. 이 모든 것들 아래엔, 중국인들이 그들 조상들이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주강 인근에 있는 전자제품 공장으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아시아가 깨어나면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광동은 다가올 폭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플레이 가능

광동은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두 연인 가운데서 태어났음에도 어버이는 모두 제 자식을 거둬들이지 않았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의 길로 갈라설 때, 광동이 어떻게 될지는 시간만이 말해 줄 것입니다.||
안정도: -20.00%
전쟁 지지도: -20.00%
매일 정치력 획득: -0.10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체하거나 부대 편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 부패 문화 - 전능하신 돈
예로부터 지향해 온 작은 ― 너무 작다고도 할 만한 ― 정부, 방대한 금융 거래량, 느슨한 관리 감독 모두 광동 정부를 부패와 뇌물의 온상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사과 상자'를 한 번쯤 받으려는 마음은 모두가 품게 되었죠. 이에 따라 정부 지시 사항을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부차적인 노력과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고, 정부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더한층 어려워졌습니다.
* 재정 상태 - 건전

우리의 재정 상황은 양호합니다. 부채 수준은 억제되어 있고, 예산은 균형 잡혀 있으며, 전반적으로 잘되어 가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15.00%
신용등급: 8.00
* 구석구석 스며든 헌병대 조직망* {{{#!folding 내각* 스즈키 데이이치 행정장관{{{#!folding 인물설명
도쿄의 총독 - 안정도: +5%, 중국계 정부 지지 한도: -2%, 주진 정부 지지 한도: -2%, 일본계 국외 거주자 정부 지지 한도: -2%, 대일본제국 의견 한도: +20%
공훈 장교이자 전 기획원장인 스즈키 테이이치는 일본의 전시 경제 수립과 전후 아시아의 일본 신질서 건립을 위한 경제 계획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 후 1943년부터 귀족원 의원직을 역임한 스즈키는 주중 경력, 군부와의 유착 관계, 경제 전문 지식 들을 이노 수상에게 인정받아 광동의 차기 행정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무론 막후에는 광동의 퇴폐적 기업들을 도쿄의 뜻에 따르도록 하라는 저의가 숨어 있었죠.
광동의 방종한 경제를 통제코자 하는 스즈키의 개입적이고 통제적인 경제 정책 탓에 최소한의 간섭하에서 경영하는 데 익숙한 광동의 4대 기업은 썩 곤란해졌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도쿄의 방임 아래 조성된 부패 문화와 이노 총리를 뒷배로 둔 야스다 은행의 후원 덕에 스즈키는 4대 기업의 시들한 불만을 묵살하고 하릴없이 통제책을 추구해 나갑니다.
스즈키는 탐욕에 눈이 멀어 의무를 망각하고 행동의 후과를 모르는 가냘픈 땅을 바라봅니다. 스즈키는 광동 중국인들에게 특별한 애정은 없지만, 만주국처럼 강력한 치안 기구를 유지할 도쿄의 지원이 없기에 적나라한 탄압은 중국인들의 반체제 활동에 불을 붙일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즈키는 욱일 제국의 영광을 위해 더욱 부강한 신광동국의 토대를 마련하고 대기업과 경영진을 태양 아래 무릎 꿇릴 것입니다.}}}
}}}
대신, 2차 중일 전쟁의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신질서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일본의 거장들이 선언한 대로 이곳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의 중심지, 가능성이 무한만이 남을 때까지 분기하고 꽃을 피우는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수도로 재창조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코슈(Kōshu)로 알려진 이 도시는 활기찬 삶이 아니라 백열전구로 빛을 발하며 광고판을 통해 펄럭이고 스며들고, 과밀한 주택 블록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정의하는 유독한 스모그가 있습니다

살기에 더 건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도시의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 계약자, 감독 및 비즈니스 전문가가 함께 모여 도시의 나머지 부분을 차단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중국인 대다수가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몇 명이든 소수에게만 중요합니다. 코슈는 진정으로 광동의 세 개의 진주의 수도입니다. 대동아번영의 성채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솟아 있습니다.||
포르투갈의 선구적인 탐험가와 선원들은 한때 이 해안에 진을 쳤고, 세계 각지에서 온 상인과 여행자의 관심을 끌었던 번화한 무역 중심지를 만들었습니다. 유리한 항구는 시기와 경쟁의 갈등에 휘말렸지만, 포르투갈의 권위로부터 영토를 씨름하는 것은 네덜란드나 영국이 아니라 일본의 떠오르는 태양과 광동의 탐욕스러운 기업이 될 것입니다. .

오늘날의 마카오는 도박장과 활기찬 네온 불빛으로 정의되는 도시입니다. 룰렛의 숫자에 따라 재산을 얻고 잃는 지하 활동과 평온한 게임의 정신없는 소용돌이; 과거의 겸손한 포르투갈 항구는 역사의 연대기로 강등되었습니다.|| 에어컨이 설치된 방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비즈니스 세계의 위생적인 ​​언어로 가면을 쓴 회의실에서 싸우고 있으며,그곳은 공영권 전체를 공급하는 잔인한 기계에 대해 수많은 수백만을 노예로 만드는 정책을 결정하는 곳, 평범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부를 창출하는 곳, 잔인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회사의 부츠를 목에 걸고도 열심히 노력하여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지칠 줄 모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여전히 그물을 던지는 곳, 안절부절 못하는 학생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곳, 노인들이 손자와 함께 식사하는 곳. 무의미한 경주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지만 사람들은 잠시나마 탈출할 방법을 찾습니다.

잔혹하고 무자비한 것처럼 아름답고 활기찬 세 개의 진주인 향기로운 항구인 혼콘은 빛나는 유리 고층 빌딩의 높은 창을 통해 광동의 나머지 지역의 불결함, 폭력 및 잔혹성을 볼 수 없는 주요 금융 및 비즈니스 허브입니다.||}}}
스즈키 데이이치 행정장관이 다스리는 특수 구역으로, 홍콩, 마카오, 광저우시, 통칭 '아시아의 세 진주'를 전리품으로 삼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의 일본이 만주국 실험의 연장선으로 세웠다.

금권 정치로 철저히 얼룩진 국가로, 소니, 후지쯔, 마츠시타 전기, 야스다 은행의 4기업이 정재계를 주무른다. 밤거리에서는 야쿠자와 삼합회가 모두 날뛰며 이를 막기 위해 광동의 경찰 뿐 아니라 일본군 헌병대까지 들어와 국민들을 철저히 감시한다. 광동 경찰은 부패도를 감소시키며 주진의 정부 지지도를 올려주고, 야쿠자와 삼합회는 모두 부패도를 올리며 각각 일본인 이민자와 중국인들의 정부 지지도를 올려 준다. 헌병대는 부패도를 매우 크게 올리고 모든 계열의 정부 지지도를 올려 준다. 이들을 지지하거나 때려 잡아서 지역의 주도권을 넘길 수 있으며 초반 광동의 상태는 주요 도시를 제외하면 경찰이 아닌 일본 헌병대가 치안을 담당하고 범죄 조직을 쓸어내고 있으나 그것마저도 시원찮은 한 마디로 최악의 상태이다.

일본인 이민자가 최고 서열을 차지하며 리카싱, 스탠리 호와 같이 기회를 잡아 부를 거머쥔 광둥 사람들이 그 다음 서열이다. 이들은 주진(珠人)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표현된다. 그 외의 중국인들은 전부 고층 빈민가에서 산업단지를 위한 노동력으로 굴려진다. 중국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주진 문화로 동화되고 있는 듯 하다.

'생산 주기'라는 것이 찾아오며, 이 때 기업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제품을 연구, 생산, 홍보하여 판매할 수 있다. 기업마다 주로 하는 분야가 나뉘어져 있으며 어떠한 기업을 지지하고 싶다면 그 기업 분야의 제품 연구에 중점을 두면 된다. 제품이 시중으로 팔려나가면 품질, 대중 인식, 수익성 이 세 가지를 종합해서 결과가 나오며 그 결과에 따라 경제 보너스와 해당하는 기업의 의석 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3대 악이라고 하는 고유 시스템이 있는데, 여기서는 중국과의 상호 작용, 일본과의 상호 작용, 여러가지 부패도 관리 시스템이 있다.

일본이 1년에 한 번 광동의 경제 상황을 체크하는데, 이 전까지 연말 광동의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이에 따라 보너스를 받거나 디버프를 받으며, 만주국과 경쟁하여 일본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최종 목표는 만주국의 경제 수준을 따라잡는 것. 도중 딱 세 차례 경제상황 체크를 넘어가는 때가 있는데, 광동국에 오는 위기인 야스다 위기와 석유위기때 그리고 광동 폭동때는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넘어가 주거나 아예 검토를 하지 않는다.

야스다 위기 발발로 스즈키 정권이 무너지고 야스다 은행의 마츠자와 타쿠지(기업독재,(전제주의, 입법회 - 재계파))가 임시로 후임 행정장관이 되지만, 야스다 붕괴의 여파로 곧 다른 3개 기업이 광동을 지배하기 위해 경쟁한다. 그 결과에 따라 소니 모리타 아키오, 후지쯔 이부카 마사루[28], 마츠시타의 마츠시타 마사하루가 집권한다. 새 지도자가 정해지면 청쿵 리카싱 히타치의 코마이 켄이치로로 야스다의 빈 자리를 채운다.

2.4.1. 제품개발실증시험대

줄여서 PTRG라고 부르는 시스템.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나오는 일본의 국제 분쟁 중에서 특정 분쟁에 광동의 기업들이 만든 시제 무기를 선택하고 이로 무장한 광동군 병력들을 보내어 디시전에 있는 임무를 달성해야 한다. 참고로 시험 사단에 장군을 배치하지 않으면 임무 게이지가 올라가지 않으니 유의할 것. 일정 수치 이상 성공 시 그 기업의 입법회 의석이 증가하고 경제 보너스도 일본에서 받는다. 참고

2.4.2. 주요인물

인물 전반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이 글을 읽어보자.
2.4.2.1. 모리타 아키오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 성공한 사람인지, 혹은 얼마나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인지에 관계 없이 당신의 사업과 미래는 당신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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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가 행정장관이 된다. 중국계 주진의 대표격인 리카싱이 정권의 2인자가 될 정도로 주진과 중국인들에게 제일 친화적인 루트. 의석 확보가 상당히 어렵다.

좌측 루트는 리카싱의 안정적인 경제 정책과 모리타의 빠른 경제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리카싱의 정책이 더 중국/주진계 친화적이다.

중앙 루트는 광동 사람들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루트로, 첫 번째 트리는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켜주거나 돈으로 사는 것 중에서 고를 수 있고 두 번째 루트는 안전사고를 줄이거나 환경 오염을 줄이는 정책 중에서 하나를 골라 통과시키게 된다.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다.

우측 루트는 부패를 척결하고 헌병대에게서 치안 관할권을 받아온 후 광동 현지 경찰을 확장한다. 삼합회와 협동해서 야쿠자를 몰아내기도 한다.

석유 위기를 겪는 중에도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회사 자금까지 써가면서 복지 정책을 유지하려 하는데, 이때 엉망이된 소니의 재정을 눈치채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사신 펀드'가 등장한다. 모리타는 이들의 배후가 이부카라 의심하는데, 배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엔딩이 갈린다.

배후[32]를 제대로 밝혀 낸다면, 모리타는 이부카가 선은 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와 협력할 여지를 남기며 더 나은 광동을 위해 나아가지만, # 배후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면, 모리타는 다른 이들을 소외시킨채 이부카를 향한 복수에만 몰두하게 된다. 한편 아예 실패해버린다면, 리카싱이 어디서 들고온 자금으로 합병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자금의 출처가 바로 중화민국. 대아대전때 대가를 요구할것이 분명하기에, 모리타가 멘붕하는것은 마찬가지다. #

TNO 개발진 디코에 따르면 모리타 굿엔딩이 어찌보면 최악의 배드엔딩이 될수도 있다고 하는데, 왜인고 하니 다른 루트라면 70년대 이후 대아대전때 스스로의 모순으로 무너지게 될 기형적이고 비현실적인 기업국가에게, 모리타가 주진계와 일본계의 꿈과 미래라는 존재이유를 부여했기 때문. 얼핏 보기엔 광동군정총감이 최악의 배드엔딩으로 보이지만 ai도 광동폭동을 막아낼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초회차 플레이가 아니라면 광동폭동을 처리하는(그것이 진압이든 협상이든)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아 사실상 닉슨의 선택하지 않은 포커스트리처럼 이스터에그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TNO팀의 연출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보면 광동국의 일반적인 중국인들에게는 기업국가의 노예로 사는 것이나 병영국가의 노예로 사는 것이나 별다를 바가 없으며 70년대 이후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대아대전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길어야 10~20년 정도면 광동국의 중국인들은 일본이 대아대전에서 승리하지 않는 이상 해방되어 광동국은 금세 잊혀질 것이고, 설령 일본이 승리하더라도 광동군정총감의 존재이유는 대아대전을 대비하여 중화민국을 견제하는 것인만큼 대아대전이 끝난 후에도 군정체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못할것이다. 물론 일본이 대아대전을 승리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관점에 따라서는 여전히 광동군정총감이 최악의 배드엔딩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리타 굿엔딩 또한 다른 의미에서 배드엔딩이라고 할만한데, 모리타 이전까지의 광동은 단순히 일본의 결정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괴뢰국가(puppet state)에 지나지 않았지만 모리타 이후의 광동은 자체적인 정체성을 보유한 국민국가(nation)로 발돋움한다. 인게임 이벤트에서도 일반적인 중국인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리춘이 다른 행정장관 루트에서는 중국인들을 상징하는 화인노공위원회로 합류하지만 오직 모리타 루트에서만 주진들을 상징하는 광동공상연합회로 합류하고, 광동의 중하류층 일본계 이민자들을 상징하는 야스카와 요시코 또한 모리타 루트에서는 광둥어와 일본어가 섞인 현지어를 구사하는 등 모리타가 주진계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불과 10여년만에 광동국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리타 루트라고 해도 대아대전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본도 중국도 아닌 주진의 정체성을 가진 광동국은 최악의 경우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일본을 지지하는 파벌과 중국을 지지하는 파벌로 다시 갈려서 대아대전의 장기말로 소모될 것이다.

설령 운좋게 중립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한 번 형성된 민족적 정체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으니 대아대전에서 승리한 중화민국에서 주진계를 억지로 통합하려 든다면 현실의 홍콩이나 티베트, 위구르처럼 저항운동에 직면해 광동군정총감과 비교도 안될만큼 오랜기간 동안 어마어마한 피와 죽음을 흩뿌리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게다가 주진계 중에는 본래 중국계였다가 동화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만큼 결론적으로 광동군정총감 못지않은 비극이 같은 민족의 손으로 저질러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화민국은 당연히 돌려받아야 할 땅을 돌려받을 뿐이고, 모리타와 리카싱은 그저 광동국민들을 회사직원처럼 소중히 대했을 뿐이며, 주진계는 자신들의 생업을 지킬 뿐이었으나 악의없는 행동들이 모여 최악의 결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 모리타 굿엔딩 또한 진정으로 굿엔딩은 아니라는 근거가 된다.
2.4.2.2. 이부카 마사루
사물을 사물로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마음과 정신을 생각하는 창작의 시대가 온다.

후지쯔의 회장 이부카 마사루가 행정장관이 된다.[33] 유일한 기술자 출신 행정장관인 만큼 기술 발전에 있어서는 가장 큰 진전을 보이지만 모리타와 다르게 기업 강경파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보니 모리타와 같은 주진 및 중국계 노동자를 위한 과감한 개혁이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좌측 루트는 야스다 위기로 무너진 경제를 복구하는 루트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쥐어짜내고, 주진계가 포진해있는 사무직을 모조리 컴퓨터로 대체할 수 있다.

중간 루트는 광동의 교육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고 일본인은 물론이고 중국계, 주진계도 고등 교육에 참여시킨다. 또한 직원 교육을 무슨 대학 입시하듯이 아주 빡세게 한다.

우측 루트는 광동 경찰을 강화시키고 야쿠자와 협력해서 삽합회를 진압하는 일과, 광동 현대 경찰 조례를 통과시켜 경찰력을 크게 늘린다.

이 모든걸 다 하면 이부카는 후지쯔의 승리를 만끽한다.

그러나 광동 폭동이 일어나면, 이부카의 선택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이 했던 실수들을 깨달은 이부카가 모든 조례들을 개정하고 광동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사죄하는 것으로, 폭동이 진압되면 마지막으로 과거의 동료였던 모리타에게 사과를 구한다. 하지만 모리타는 수십년간 해온 잘못을 사과 한마디로 끝내려한다고 화를 낸다. 허나 모리타도 이부카의 '한번 해봐서 나쁠건 없지 않겠냐'는 말에 동의하며 20년만에 둘은 화해한다. # 두 번째는 입법회를 폐쇄하고, 스스로에게 권력을 독점시키는 법안인 '광동 미래법'을 통과시킴으로서 광동의 영원한 기술 독재자로 남는 것이다.[34][35] #
이부카 마사루는 신의 사람인 동시에 자신의 '비전'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지만, 이제 그는 이 두 가지 모두 자신의 환상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성공 스토리를 원했고, 광동을 원치 않는 배우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마리오네트의 팔에 줄을 꽂아넣어 매달아 흔들며 광대놀이를 펼쳤고, 자신의 마음, 또는 그 자리에 남은 무언가만을 따라서 그렇게 했습니다.

따라서 이부카는 폭도들로 자신이 국정 통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통제를 완전히 풀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지자들은 안도감을 표했지만, 회의론자들은 잠재력 낭비, 사회적 격변, 정치적 불확실성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장관이 확신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다른 목소리를 모두 질식시키는 것보다는 그들이 그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망상이기 때문에.

XXXX년, 광동의 빛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깜빡이고 흔들릴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아담이 창조된 지 10세대가 지난 후, 하나님은 희망이 없을 정도로 더럽혀진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십 밤 사십 일 동안 지속되는 홍수를 불러,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부카 마사루는 이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세상에 지어내지 않은 이야기가 있긴 한가요? 연민? 신뢰? 도덕? 범아시아주의? 사람들은 상점에 소이탄을 던지거나 동아시아 지도상의 임의의 선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등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냅니다. 지어낸 것들과 지어낸 이야기가 인류가 위안을 얻는 곳이라면, 이부카도 같은 것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후지쯔 유한회사는 그의 방주이며, 그 깨끗한 청백색 조명은 머릿속에서 모든 색과 목소리를 영원히 가라앉히는 그의 대홍수입니다.

XXXX년, 노아의 대홍수 이후 XXXX년이 지났고, 신의 뜻에 따라 곧 또다른 대홍수가 올 것입니다.}}}
2.4.2.3. 마츠시타 마사하루
그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목표 달성에 직접적인 방법만 사용한다면 거의 대부분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마츠시타의 후계자 마츠시타 마사하루가 행정장관이 된다. 모리타가 대변하는 개혁파와 이부카가 대변하는 기업파 사이의 타협을 찾으려 하는 온건 개혁 루트. 그의 실용적이고 중용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36]

선택에 따라 자신의 힘으로 경영에 성공해 자신의 아버지이자 장인인 마츠시타 고노스케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아니면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소니와 후지쯔의 거수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37]
2.4.2.4. 코마이 켄이치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한은 회장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혼란이 일고 정확하지 않은 결정이 생긴다.
히든 루트.

모든 행정장관들에게 공통으로 발생하는 히타치의 음모 이벤트를 방치하면 히타치의 코마이 켄이치로가 행정장관이 된다. 만주국 출신 관료이자 플레이어에게도 여타 루트에서의 독보적인 악행으로 유명한 그답게 이전의 행정장관들의 조치를 모두 뒤로 무르고 검열국을 세우는 등 가장 권위적이고 착취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39]

선택에 따라 만주국과 일본의 애완견이 되거나, 광동을 자신만의 왕국으로 만들어 광동의 카이사르로 군림할 수 있다. 광동 폭동 진압에 실패할 시 중국계 노동자 리춘에게 죽임을 당하고, 상륙 후에는 궐석재판에서 총살형이 선고된다.
2.4.2.5. 플레이 불가 등장인물
광동국에서 등장하는 일부 인물들은 10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플레이어가 어떤 루트를 타는가에 따라 이들의 이벤트가 변동하면서 각각의 지위에서 바라보는 사회를 살펴볼 수 있다. 가상의 인물들은 (@) 표식을 통해 따로 기재.

2.4.3. 광동 폭동

1970년대에 무사히 돌입한다면 중동 내 이탈리아의 영향권에 속한 국가들의 일부 청년 장교들이 사회주의와 반제국주의를 외치며 예멘에서 궐기를 시작한다. 예멘 내전을 시작으로 중동 전역에 내전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데, 혼란스러운 틈을 타 중동 국가들이 석유값을 일제히 올리면서 석유위기가 발생한다. 이내 이 석유위기는 광동국까지 도달하는데, 하필이면 경기 침체의 늪으로부터 서서히 회복하려던 찰나에 도착해버리는 나머지, 광동국 국민들의 광범위한 시위를 촉신시키며 결국 광동국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내몰게 된다. 이에 광동국 행정부는 이를 폭동으로 규정한다.

시민 세력은 크게 상인 조합과 노동자 조합 둘로 나뉘고 이 둘 모두와 각각 협상을 해서 만족시켜 돌려보내거나 공격해서 해체시켜 버려야 한다. 시위대가 장악한 지역의 크기만큼 시위대의 힘과 급진화가 증가하며, 시위대와 맞서거나 탄압하면 힘이 줄어들지만 그 대신 급진적으로 변하게 된다. 협상을 선택할 경우 해당 세력의 힘과 급진화를 고려해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이나 기업의 사죄로 끝내는 온건한 협상안이나 아예 영구히 노동 조합을 허가하는 정도의 급진적인 협상안을 제출할 수 있다. 협상안이 급진적이면 급진적일수록 입법회 의원들과 일본이 동의하지 않으려고 함으로 신중하게 정도를 선택할 것.[43]

때려잡아 강제로 해산시키는 선택을 할 경우 마찬가지로 해당 세력의 힘과 급진화를 고려하여 효과적으로 보이는 선택지를 선택하여야 한다.

폭동이 점점 번지고 시간이 기약없이 흘러가기 시작하면 정부의 불안과 일본의 불안이 올라가며, 일본의 불안이 한계를 넘어서면 나가노 시게토가 이끄는 일본 제국군이 상륙하고 계엄령을 선포, 광동군정총감이 들어서며 모든 UI 상호작용이 막히고 배드엔딩으로 끝난다. 일본의 불안을 일시적으로라도 해소하려면 시위를 성공적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거나 일본 총영사에게 연락해 굽신거려야 한다. 3대 악에서 '일본 대표와의 만남'을 꾸준히 눌러주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

시위를 간신히 자력으로 막아내더라도 이후 벌어질 대아대전을 예고하는 찜찜한 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2.4.3.1. 광동군정총감

자택에 머무르십시오.

대일본제국 육군이 직접 통치합니다.

명령 준수는 의무입니다.

위반자는 사살될 것입니다.||
중국/주진 정권 지원 한도: -80.00%
중화민국 의견 한도: -100.00%
경찰 주 통제 한도: -90.00%
* 또 다른 방면군

중국인 반란에 대비하십시오.

모든 저항을 분쇄하십시오.

모든 반역자를 죽이십시오.

모든 승리를 거머쥐십시오.||
안정도: -100.00%
전쟁 지지도: -100.00%
매일 정치력 획득: -0.30
실질 GDP 성장률: -7.00%
GDP 성장률: -7.00%
건설 속도: -100.00%
공장 생산량: -100.00%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체하거나 부대 편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folding 중점설명 : 실리콘 드림에서 깨어나
{{{#red 이렇게 해서 소위 실리콘 삼각주이자 자칭 남방의 보석의, 대동아공영권의 신성함을 모욕하며 20년 동안이나 한심한 존재를 지켜온 슬픈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주강에서 이 '실리콘 드림'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었습니다. 망상이자, 그들의 죄 많은 무지 속에서 질서와 품위의 기둥을 허물고, 그것을 한순간의 금 더미로 대체한 무능한 양복쟁이들이 꾸며낸 속임수의 산물로 말입니다. 그 꿈은 역사의 쓰레기통의 가장 깊은 구석에 버려져 죽었고, 앞으로 오랫동안 그것이 공영권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끼친 굴욕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꿈은 죽었고, 그 결과 범아시아의 대의는 오점이 남은 채 더럽혀졌으며, 수십 년 동안의 헛된 노력은 공허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울 것입니다. 꿈은 죽었을지 모르지만, 욱일은 여전히 연기가 자욱한 시체 위에 군림합니다. 꿈은 죽었을지 모르지만, 잔인하고 가혹한 현실은 계속 살아갑니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중화민국이 우리가 세운 모든 것을 점점 더 변절해감에 따라, 남중국해의 이 보잘것없는 작은 땅덩어리는 그것의 다음 생에서 우리를 충실히 섬길 것입니다. 범아시아 연대의 보루이자 천황 폐하의 성곽 중 가장 웅장하고 가장 오래 지속될, 불과 의로운 분노로 세례받은 불사조로서 말입니다. 다시는 그 누구도 우리의 이상, 우리의 빛과 우리의 미래를 앗아가지 못하도록.
}}}
세 진주[44]에는 가치가 있다. 심지어 그 바깥의 땅조차 약간의 가치가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
● 평정 불완전함 ●
● 재앙이 기다린다 ●
● 천황 폐하 만세 ●

일본 육군이 광동에 개입할 시

후반부 폭동에 대처하는 데 실패할 경우, 이미 광동국을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던 나가노 시게토가 이끄는 일본군이 상륙하여 군정을 실시한다. 극단적인 반기업주의자이자 전체주의자인 나가노는 직접 광동을 통치하게 되며 금권으로 얼룩진 무능한 입법회를 해산하고, 4대 기업 총수와 경찰, 헌병, 야쿠자, 삼합회 모두를 범아시아주의에 대한 '반역자'로 심판한다. 모리타와 이부카는 교수형을 선고받고 히타라 마사하루는 종신형[45], 육군 개입 시점에서 이미 사망한 코마이는 궐석재판에서 총살형을 선고받는다. 스탠리 호는 선고 이후 즉시 총살당하고 오모리 칸과 츠치다 쿠니야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 이후에도 기타 각료들은 부패와 무능하다는 이유로 수십 년 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광동국은 완전 해체되고 광동군정총감이 선포된다. 이로써 광동의 기업 실험은 끝이 나게 되며, 실리콘 드림은 실리콘 악몽으로 바뀐다. 광동은 제국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빼앗아갈 대아전쟁을, 즉 난징의 중화민국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병참 기지로써 재탄생하게 된다.

사실 나가노는 아무 이유없이 광동국과 기업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제대로 된 테스트도 거치지 않고 실용성도 없는 실험적 무기들로 국제 분쟁에 파견된 일본 군인들이 실험용 모르모트 마냥 희생되는 모습을 보며 분노하고 있던 차에 명분이 생기자 광동국을 침공한 것이다. #

당연한 소리겠지만, 누가 행정장관이었냐에 따라 상륙 시 등장 인물이 처하는 결말이 달라진다.
광동은 일본의 결정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끝도 같은 방식으로 맞이합니다.

한때 기업 리무진과 노동자들이 누비던 거리에 이제는 탱크와 군인들이 주요 교차로마다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뒷골목에서 간헐적으로 총성이 울려 퍼지고, 마지막 폭도들이 그들의 범죄로 인해 처형 당하는 동안, 배수로에 흐르는 피는 거의 마르지 않았습니다. 중국 정부가 일본의 강경한 개입에 반발하고, 일본은 거리의 혁명에 맞서 필요한 조치라고 항변하지만, 국민들은 군사적 통제에 시들어 갑니다. 만약 대화가 실패한다면, 국경에 진을 치고 있는 군인들이 곧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XXXX년, 광동은 그 존재의 관한 사정이 아닌 그 파괴의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3. 플레이 불가능 국가

3.1. 파일:만주국 국기.svg 대만주제국

플레이 불가

티저 예고[장기간](3루트)

그러나 이러한 협력이 선의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관동군과 만주 총무청은 만주 정치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국무원은 총무부의 '자비' 없이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만업이 지배하는 기업들은 모두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만주국 헌법을 왜곡합니다. 현재 국가는 균형상태에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안정도: +15.00%
건설 속도: -10.00%
* 현대화의 악

이것이 만주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기업이 주는 쥐꼬리만한 임금을 현대성의 악이라는 것을 위해 돈을 써야 하며, 이러한 악순환은 고리를 타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 관료기구가 그 역할을 포기해야 하지만, 만주국이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단 조직력: -25%
안정도: -30%
전쟁 지지도: -25%
사단 공격력: -15%
사단 방어력: -15%
* 관동군

그러나 관동군 또한 내부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만주파와 정통파로 세력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만주국 출신과 일본제국 육군 온건파가 소속되어 있으며, 후자의 사상은 전체주의, 국가 동원 시대에 있었던 사상을 가진 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1956년 국가안보법에 의해 만주국군이 관동군의 지휘 체계하에서 '지원' 받을수 있도록 주도한 이력이 있습니다.||
일일 육군 경험치 획득: +0.1
사단 조직력: +15.00%
사단 공격력: +10.00%
사단 방어력: +10.00%
소비재 공장: +10.00%
제국군 육군부대는 한동안 관동군의 지휘체계에 종속되어 있을 것입니다.}}}* {{{#!folding 내각* 아이신기오로 푸이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상냥한 꼭두각시: 매일 정치력 획득 -10%,

한때 천자였던 푸이의 삶은 지옥으로의 긴 추락으로 요약됩니다. 서태후가 죽기 하루 전에 황태자로 지명된 그는 청 황조가 죽어가던 시기에 옹립된 실권 없는 어린 황제였습니다. 신해혁명 지도자들의 압력으로 융유황태후에 의해 퇴위할 수밖에 없었던 푸이는 새로 세워진 중화민국이 일시적으로 그에게 맡긴 자금성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고불로 가문의 완룽과 결혼했고, 그녀의 남동생 룬치와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924년, 핍궁사건과 함께 청나라 소조정은 멸망했고, 황실은 자금성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는 톈진의 일본 조계지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의 인생이 친일적인 방향으로 기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톈진에서의 6년 이후 1931년, 관동군의 첩보부장인 도이하라 켄지가 푸이를 알현하며 그는 푸이를 새로운 만주국의 수장으로 옹립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푸이는 받아들였고, 황실과 함께 창춘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1932년에 만주국의 집정으로 취임하였고, 마침내 1934년, 다시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이는 곧 그가 금박으로 된 우리에 갇힌 일본의 영광스러운 포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푸이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을 좋아한 적이 없던 완룽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고, 그녀는 아편에 빠져들었으며, 형제들은 예전만큼 그와 가깝지 않았고, 룬치마저 푸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통제에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푸이는 특히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관동군에 도전하는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선통제"가 아닌 "강덕제"로 지낸 지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거의 이룬 것이 없으며 많은 사람, 심지어 아끼는 사람들에게조차 경멸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푸이의 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점점 더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산은 외로운 삶과 사슬에 묶인 제국뿐입니다.
}}}
* 롼전둬 정부수반
* 구치헝 외무장관
* 위징위안 재무장관
* 유진타오 내무장관 }}}
* {{{#!folding 주요 도시
* 신징
지역 프로빈스 효과: 겨울에 보급 소모율 +10%, 이동 속도 -30%, 사단 공격 -10%|| 지역 프로빈스 효과: 겨울에 보급 소모율 +10%, 이동 속도 -30%, 사단 공격 -10%||
지역 프로빈스 효과: 겨울에 보급 소모율 +10%, 이동 속도 -30%, 사단 공격 -10%||}}}
현재까지의 만주국 티저

지도자는 아이신기오로 푸이.

광동국이 제국의 연구소라면, 만주국은 제국의 공장이다. 만주국은 그 자체로 제국의 대륙 영지로 통하는 모든 무기들을 생산해내며, 이를 위해 만주국을 지배하는 일본과 청 황실계 지배층은 만주국의 인민들을 쥐어짜내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이 없다. 1962년, 만주국은 그 자체로 강철과 용광로로 가득찬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현재, 더 이상 만주국은 일본의 주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만주국은 어떻게든 주인들의 관심을 다시 되돌리고자 10년에 걸친 거대한 계획들을 계획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한 후 관동군 연해주를 주워먹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일본이 가져갔지만. 연해주 영토는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상태로 사람들을 보내 개척하거나 아무르와 같은 러시아 군벌과의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

1967년 황제 푸이가 사망한다. 후임은 4갈래로 갈린다. 푸제를 제외한 모든 루트는 가식의 군주제를 폐지하면서 공화국 체제로 전환된다.
명목상 만주국은 제국이고, 모든 제국은 황제를 필요로 합니다. 비록 아이신기오로 푸제는 황형 선통제, 또는 강덕제의 그늘에서 자랐지만, 상황은 그를 단지 일반적인 청나라 황족 이상의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황형보다 훨씬 카리스마 있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알려진 푸제는 푸이가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황태제로 지명되었습니다. 황실이 백성을 희생시켜가면서 일본에 비굴하게 굴종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푸제는 황실을 본연의 자리인 만주국 정부의 정점으로 회복시키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정략결혼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행복했던 사가 히로와의 결혼 생활은 그를 도쿄의 최고위층과 연결해줬고, 개혁을 지향하는 그의 최종 목표에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해줬습니다.

그가 이 거미줄 같은 영향력과 동맹을 효과적으로 묶어 외부 세력, 특히 관동군의 끊임없는 압력에 맞서 만주국에 헌법과 강력한 왕권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푸제는 적어도 형과 같은 결말은 피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세지마 류조의 경력은 완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동군의 정보참모로서 만주를 평정하고, 전후 중국의 첩보활동과 저항을 무너뜨리는 등 뛰어난 실적을 거두었습니다. 내지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던 그는 관동군 체제 문제와 관련한 격렬한 반대 의사를 표출하면서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부상하던 날개가 잘리고 말았습니다.

전통파들에게 앙심을 품은 세지마는 만주국에서 날개를 다시 펼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신기오로 가문과 그의 동료들이 실각할 때도 그는 기세등등한 관동군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와다 히로오가 총무청을 장악하고 나서야 세지마는 반관동군 정서를 이용해 정치적인 손을 뻗쳤습니다. 이제 그의 수단은 확립되었는데, 과연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신기오로 가문이 만주국 황궁에서 쫓겨나고 재건국가가 성립되었을 때 동북지방은 다시 한번 정체성의 위기에 부딪혔습니다. 관료집단과 관동군 고위층은 동북부를 누가 가장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탐욕스러운 식민행정가 자리에 누가 오를 수 있는가에 대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에서 나타난 기회주의적 행동, 편리한 배신, 동맹관계로 얼룩진 세지마 류조는 협화회에서 관료직에 이르기까지 파멸적인 경력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대륙에서 범아시아주의 횃불을 짊어질 수 있는 웅장하고도 현대화된 만주국을 구상하는 세지마는 만주국 산업의 부흥과 재생을 위한 대규모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세지마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자들에게만 공작의 깃털을 보이려 할 뿐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신중하게 구축된 그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을 대신해 줄 현지인 협력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세지마의 식민 통치에서 쇼비니즘은 개인의 충성심, 신뢰성보다 덜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는 선의와 박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실리의 문제입니다. 만주 정부에 더 많은 현지인을 임명할수록 동북 지방의 피폐한 시민들에게서 그의 정통성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어쨌건 세지마의 무력 정변은 범아시아 실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만주국은 미래의 추세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욱일과 연결된 미래는 그런 연결이 가져올 모든 의미를 담고 있기에 말이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구치헝은 1931년 관동군에게 협력하기 전까지 봉천군벌에서 다양한 자리를 전전했습니다. 그의 열성적 기회주의는 이때 빛을 발해 만주국 내각의 각료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1937년까지 다양한 직위를 역임할 수 있었습니다. 1937년 총무청 차장으로 취임하여 1941년까지 재임할 당시 만주국 안팎에서 주목받은 그는 오늘날에도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란 격동의 시기 구치헝은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의 존재는 옛 동포인 롼전둬의 그림자에 가려졌습니다. 현재 구치헝의 미래는 암울해 보이지만, 만일 누군가가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면 그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치헝의 갑작스러운 총통 등극에 놀랐을지 모르지만, 주목하던 사람들은 이미 그것이 기정사실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전에 총무부 차장을 지낸 그는 만주 관료들과 강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었고 내각에 오른 후에도 그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가 롼전둬 내각에 있는 동안, 국가에서 관료들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하는 협화회의 개혁파 인사들과 구치헝 간에 불화가 발전했고, 이러한 긴장들은 결국 푸이의 죽음으로 터져나와, 구치헝은 성공적으로 국가를 완전히 장악하고 협화회를 해산시킨 관료들에 의해 시작된 쿠데타와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구치헝은 자신의 야망을 성취했고, 새롭게 권력을 잡은 관료들의 얼굴마담이 되는 것에 만족하며, 위에서 그가 이끌어야할 정부가 만주국이 건국된 이래 아마도 가장 급격한 개혁을 단행하는 것을 관심 없이 지켜봅니다.}}}
새 통치자가 취임하면 광동의 네 총수가 만주국을 방문한다. 아래는 이들이 만주국의 새 통치자에 대해 남긴 평가와 행동이다.

최근 공개된 티저에서 장군진에 백선엽[47]이 원수로 포함되어 있다. 아무르 이벤트에서 글로만 언급되는 김일성 다음으로 한국계로는 TNO 최초로 등장한 인물. 만주국의 장성진은 관동군 출신의 일본인 장성진과 제국군 출신의 그 외 출신 장성진이 분리되어 묘사되어 있다.

2022년 구정 기념 티저에서 협화회, 총무청, 관동군, 만교(카타쿠라 타다시), 만주국 국민, 경찰이라는 6개 파벌의 등장이 예고되었는데, 박정희[48]가 관동군 내부 파벌의 일원으로 등장했다.

2023년 만주국 정치카드 티저. 만주국 내엔 협화회, 총무청, 관동군, 만교, 만주 국민, 경찰, 총 6개의 파벌이 있지만, 외부에는 만주국을 노리는 군과 정체불명의 파벌 하나가 존재한다.

2023년 만주국 플레이 티저.[49]

3.2. 국민혁명군 제40집단군

플레이 불가

지도자는 마부팡의 아들 마지위안.[50]

중일전쟁 패배 후 난민들과 국민혁명군 장군들을 몰래 받아들이고 일본의 괴뢰국인 후이에 소규모 도발을 벌이며 항일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츠지 마사노부가 보복할 기회를 주지 않은 모양.

1.3 패치 이후 정치 여건으로 보아 시캉과 칭하이에 국민혁명군과 국민당 지식인들이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난징 국민정부로부터 이어진 신생 중화민국에게 귀속되어 그저 취급을 받는 다른 군벌들과 다르게 이들은 국민당 잔존병력들의 후퇴가 주는 영향력이 컸던 듯.

3.3. 광서성

플레이 불가

지도자는 샤웨이. 일본의 주장에 따르면 중일전쟁 막바지에 일본에 붙어서 광시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단 일본에 항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어 일본이 중국에게 하는 대우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골칫거리라고.

3.4. 진수행정공서

플레이 불가

RGOC에게는 불행히도 현지 상황이 중앙 정부에 점점 불리해졌습니다. 중국의 외곽을 통제할 수 없었던 신정부는 옌시산과 동맹을 맺어 그에게 지방의 사실상 통제권을 부여했습니다. 옌이 죽자 푸쭤이가 후계자로 통치했고 옌보다 훨씬 보수적임이 증명되었다. 타이위안은 중국의 제조업 거점으로 남아 있지만 근시안적인 지도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다른 도시들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산시와 섬서는 모두 장군 옌시산과 나중에 푸쭤이의 통제로 넘어가면서 시안은 이제 새로운 RGOC의 국경 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난징과 중앙 정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시안은 중국 북부의 강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푸쭤이는 배신자였는가?

전 전쟁영웅이자 일생에 걸친 국민혁명군 전사의 과거를 보면 답을 알수있을 것입니다. 보라, 그가 1911년 혁명의 불길에 몸을 던진 것은 고작 16살 청년 때였습니다. 보라, 그가 30년대 초 산시성 옌시산 성장의 지휘 아래 어떻게 쑤이위안이라고 불리는 땅의 개선을 위해 마음과 활력을 바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라, 그가 어떻게 일본의 군홧발로부터 그곳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는지, 배신자 데므치그돈로브와 그의 개 주인들에게 승리를 넘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행운은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쑤이위안은 함락됐고 산시성도 고고 작전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총검 앞에 쓰러졌고, 이것으로 푸쭤이는 그의 옛 상관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의 시기에 딱 맞춰 두 사람의 매우 편리한 재등장과 국경의 게릴라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으로 옌시산의 소중한 고향 산시를 되찾고, 푸쭤이가 섬서성이었던 비참한 산적의 은신처를 얻은 것까지 그들의 과하게 열렬한 자기소개를 지적하는 것은 너무 쉬울 것입니다. 무심하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중국 자체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배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푸쭤이에게, 그것은 비록 침략자에게 영혼을 팔아야 했다 하더라도, 고귀한 애국자들을 완전한 말살로부터 보호하려던 마지막 시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옌시산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안전한 탈출을 도왔고, 언젠가 그들과 다시 한번 해방을 위한 성전에서 재회하리라고 그의 목숨을 걸고 맹세했습니다.

그는 쑤이위안처럼, 그의 새로운 조국과 그 사람들을 돌본 것처럼 그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그의 오랜 동지 옌시산이 세상을 떠나고 산시가 그의 관할 하에 들어왔을 때에도, 그는 그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는 두 지방의 확고한 지휘관으로서 그 약속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년 그의 눈앞에서 희망의 불꽃이 희미해지고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도살자 츠지가 산시의 서쪽 경계를 따라 그의 피투성이 왈츠를 추면서, 푸쭤이는 불꽃이 흔들리고 깜박이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바로 다음 순간에 꺼질 것처럼 말입니다.

푸쭤이는 배신자였는가? 역사가 결정하게 놓아둡시다. 그는 이미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까 말입니다. }}}

지도자는 푸쭤이. 일본군을 상대로 여러 번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장제스에게 환멸했다며 덜컥 항복해버렸다.

3.5. 몽강연합자치정부

플레이 불가
The living denied a table, the dead get a whole coffin.
산 자들은 탁상을 거부하고, 죽은 이들은 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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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일부와 몽골 전체를 귀속하는 중국의 자치정부. 덕왕, 즉 데므치그돈로브는 최대한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자립을 추구하며 진정한 칭기즈 칸의 후예로서 몽골 제국의 부상을 이루려 하지만, 그의 노환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영향력이 덕왕의 숙원을 방해하는 중이다. 결국 덕왕은 몽골의 자유와 팽창을 보지 못하고 1960년대 중반 경 사망하고 아들 두구얼쑤룽(Dugursulong)이 뒤를 잇는다.

3.6. 귀주성

플레이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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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의 다른 많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구이저우도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중국 정부에게 넘겨졌습니다. 허잉친은 곧 그의 유일한 '군대'가 그저 윈난 군벌의 장교들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50년대 동안, 그는 다시 한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쌓고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초첨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번 독점자를 마주치게 되었고, 윈난 장교들과 사람들에게는 국민당의 많은 실패의 기억이 아른거렸습니다. 1960년이 되자, 그는 은둔을 시작했으며, 그가 사랑했던 국민당과 그 자신 모두의 수많은 실패에 굴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비공개로 열린 회의에서, 또한 허잉친의 개인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선명한 개혁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중국에는 아직 민주주의에 희망이 남아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허잉친. 전쟁 막바지에 국민정부에서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치적 평판은 폭싹 깎여나갔다.

게임 시작시점부터 이미 윈난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윈난에게 합병된다.

3.7. 서북 방면군

플레이 불가
만약 가나자와, 나가노, 오사카의 고등학생에게 츠지 마사노부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 결과는 극찬일 것입니다. 카미카와에서 기타큐슈 그리고 그 너머에 이르기까지, 츠지 장군은 그의 타고난 천재성과 교활한 계획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말라야를 구해낸 전쟁 영웅이자 범아시아주의 이상의 위대한 투사입니다.

다바오에서 란저우에 이르기까지 억압받는 자들에게 알려진 진짜 츠지는 크게 다릅니다.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대량학살자이며, 새로운 제국주의에 기꺼이 광신적으로 봉사하는 도살자입니다. 맞습니다. 그는 말라야 침공을 계획하고 한 달 만에 성공시킨 장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로르 세타르에서 코타 팅기까지의 거리를 피로 물들인 잔인함과 잔혹함의 난장판에서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고, 츠지에게 말라야에서 흘린 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수많은 학살과 집단학살에 참여했는데, 특히 싱가포르에서의 중국계 말레이인과 중국인의 잔혹한 숙칭 즉 숙청과 정화, 그리고 포로들이 파리처럼 살해되거나 죽어간 끔찍한 바탄 죽음의 행진에서 그러했습니다.

일본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이 늙은 짐승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개집에서 나왔습니다. 일본 제국 육군 본부는 불충한 중국 서북 지역을 평정하기 위해 그와 서북방면군을 파견했습니다. 그는 또 다른 피와 살인의 축제에 열심히, 열광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중국 저항군의 마지막 보루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탐욕스럽고, 철면피이며, 무자비하고, 양심 없는 짐승이 필요하고, 이에 츠지 마사노부보다 더 좋은 예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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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간쑤성 지역에 있는 일본의 괴뢰국.

원래 지도자는 일본군의 학살을 피해 뒤늦게 일본의 편으로 넘어간 마훙빈이었으나 1955년에 삼남 마둔징이 일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며 죽여버렸다. 일본군 특임대가 마둔징의 봉기를 진압한 뒤 특임대 지휘관인 츠지 마사노부가 임시 총독으로 취임했다.

마지위안의 지원을 받아 장징궈가 이곳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고 있다.

3.8. 국민혁명군 제24군

플레이 불가


지도자는 류원후이. 중화민국의 종속국이 아니다.

게임 내 지도자 설명이 빛빛빛 수준이다. 정작 실제 역사에서 류원후이는 그저 그런 군벌이었다. 푸쭤이나 허잉친조차 일본에 굴복한 상황에서 류원후이가 반일투쟁을 계속하는 건 제작진이 아시아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TT 설정 이후 공개된 정보로는 일본군이 광시, 윈난 지역까지는 진입하지 못하고 이들이 대신 일본과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시캉 지역이 비교적 안전을 확보한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중국 군벌 중에서는 가장 많이 국민당의 흔적이 보이며 정치 여건에서도 국민당계 지식인들이 큰 영향력을 끼치는 듯 보인다.

3.9. 간덴 포드랑

플레이 불가

현실의 티베트 정부. 지도자는 텐진 갸초. 아루나찰프라데시와 카슈미르 일부 영토, 율슐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세력이 약화되고 분열된 틈을 타 티베트가 중국 지역을 침공해 동부 영토 일부를 취득하였다. #

3.10. 신강변방독판공서

플레이 불가

장즈중이 다스리는 국가. 일본군이 가까이 오자 장즈중은 군대를 데리고 서쪽으로 도망쳐 신강을 정복해 눌러앉았다. 신생 중화민국과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

TNO 국가들이 그렇듯이 내부 상황은 좋지 않다. 위구르는 말을 타고 달려와 장즈중이 데리고 온 한족 침략자들의 집을 죄다 불태워버리고 있다. 장즈중은 경제를 어떻게든 안정화시켜보려고 개혁을 벌였지만 암시장은 계속 성행하고 있다.

[1] 독일이 서러시아 전쟁을 기점으로 영 이상해진데다 히틀러가 죽자 마자 내전 루트를 타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2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2] 덕분에 지도상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일본의 국호가 각각 따로 표시되는 바닐라와는 달리 TNO에서는 하나로 이어져있다. 핵보유국이 전쟁으로 점령될 일이 없는 TNO에선 한일 해저터널을 전술적으로 써먹을 일도 없으니 본 목적은 예쁜 지도 인 듯 하다. 대동아종관철도 구상과 연계되어있을 수도 있다. [3] 内大臣. 천황 옥새와 일본 제국의 국새를 책임지며 천황을 보좌하는 직위. 패전 직후 폐지되었다. [4] 일본 제국 재벌 중 하나.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종전 후 해체. 미즈호은행으로 통합된 후지 은행이 야스다 재벌의 후계다. 오노 요코도 이쪽 핏줄이 섞여있다. [5] 자이바츠들이 산하 농업 회사에 생산량을 25% 늘리라는 전보를 보낸다. 한 시간 후 케이레츠들이 자이바츠가 했으니 자기들도 한다며 산하 농업 회사에 비슷한 내용의 전보를 보낸다. 이후 중국과 베트남의 노동자들이 가혹한 생산량 요구에 반발해 소요사태를 일으켰다는 헛소문이 일본 전역에 퍼진다. 정작 자이바츠들이 생산량 증가 요구를 왜 했는지는 밝혀지지도 않았다. [출처1] 2020년 8월 Q&A 스트리밍 정리글 [7] 예시로 이 세계에서 토미노 요시유키는 기동전사 건담 대신 '우주방위대 자쿠'를 만들었는데, 반전주의 성향을 띄던 건담과는 달리 여기서는 샤아 아즈나블이 주인공에 줄거리도 숭고한 전쟁에서 '부패하고 사악한 민주주의'에 맞써 싸우는, 지온 공국의 관점으로의 내용이다. 그럼에도 자쿠는 자쿠프라도 나오고 '실용적이고 붉은 디자인이 멋있다'는 이유로 불티나게 팔렸으나, 건담은 디자인이 유치하고 서구적이란 이유로 인기도 없고 영 안 팔린다고... 이후 흥행에 성공하자 '우주방위대 하이잭'이 출시되며, 여기서는 샤아와 카미유 비단이 서로 스승과 제자 관계다. 2차 대전 때의 군국주의가 계속 유지된 일본을 보여주는 부분 중 하나. # 다만 링크의 댓에서 보듯, 다행히도 철완 아톰 등 꼭 군국주의적인 것만 나오지는 않는다. [8] 제2차 세계 대전을 바닐라보다 더 세세하고 자세하게 다루는 HOI4 모드. 1933년부터 시작한다. [9] 제9대 과학기술청 장관. [10] 정작 이 세계관에서 다이리는 본편이 시작하기도 전인 1957년에 죽었다. [11] 기시 집권 이벤트 모두 위의 기시 내용을 보면 아예 시내에 포격을 퍼붓는다. 참고로 도쿄에서 20만 사망이라는 내용은 비공식 TNO 위키에 써져있던 뇌피셜이였다. 개발진들도 하루만에 20만명을 죽였다는 내용을 부정하였으며, 기시의 집권과정 변경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12] 중일전쟁 당시 외교관. 왕징웨이 공작에 참가했으나 환멸을 느끼고 다이리에게 포섭되어 홍콩으로 망명해버렸다. [13] 루한과 룽윈 모두가 일본의 간섭에도 교육 제도만은 자유주의 학풍을 유지할수 있도록 보호해주었고, 일본 또한 워낙 외지이다보니 제대로 된 간섭을 행할수 없다는 언급이 나온다. 덕분에 자유주의적 학풍을 유지하고 싶은 타 지역의 지식인들이 다수 이곳으로 피난온 상황. [14] 인게임 이벤트에서 엿볼 수 있는 구체적 수치는 약 5만명. 룽윈이 호국 전쟁을 준비하면서 '이 정도면 병력 수가 비등하니 싸울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는걸 봐서는 거의 주변 군벌 수준의 군사력으로 떨어진 듯 하다. [15]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편지를 써도 '거절'이라는 말만 돌아오고, 매수하기 위해 보낸 돈도 싸그리 불태워 버린다. [16] 가오쭝우 자살 이벤트의 내용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머나먼 서쪽에서 양쯔강을 타고 내려온 호국군이 난징 총통부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고, 휘하 사람이 피신하라는 말을 하지만, 가오쭝우는 듣지 않는다. 그가 일본을 몰아내기 위해 비밀리에 키웠던 정예병들과, 그동안 키웠던 산업,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호국군에게 박살나고 뺏기며, 자신의 방식으로 준비했던 복수가 코딱지만했던 룽윈의 호국군에게 영원히 뺏겼으니, 베이징으로 간들 창춘(신징)으로 간들 도쿄로 간들 뭘 할 수 있을까. 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매끈한 남부 권총을 뽑아든 뒤... [17] 중일전쟁에 참전한 국민혁명군 장군. 전후에는 베트남 제국 내 일본군 무장 해제에 참가했다. 국공내전 당시 중국 공산당으로 전향. [18] 경제 중점의 모든 설명문에 들어간 요구사항에 적힌 '모든 게 정상임'이 압권. 괜히 강조까지 해놓은 이 문장은 마치 '겉으로만 정상이지 언젠가 사달이 날 것'임을 암시한다. [19] 룽윈이 호국군 수장을 맡는 조건으로 '루한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를 걸었고 호국군이 수락한다. 전후 룽윈은 루한을 사면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루한은 그나마 자유의 몸으로 고향을 거닐 수 있게 된다. [20] 의의를 두자면 훈련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포병 지원편제가 이루어진 민병대 사단을 즉시 뽑을 수 있다는 정도인데, 1회당 1사단단위로 뽑히는 관계로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효율 측면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치력과 총기가 남아돈다면 징병과 민병대 징집 시스템을 동시에 활용할수도 있다. [21] 말은 순차적인데 동시에 벌어지는 급으로 간격이 상당히 짧다. [22] 그래서 남부 방면에서 자유 인도 정부를 제외한 일본의 괴뢰국들이 밀고 올라온다. 병력을 따로 빼 진격을 하거나 따로 방어를 해 주자. 컨텐츠가 만들어지지 않은 국가이다보니 괴뢰국들의 편제 및 전력이 무척 허약한 관계로 오히려 공세적으로 가도 되는 경우도 많다. [23] 누가 봐도 보이는 복선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세상이 망하더라도 우리는 정의를 행할 것이다. 에서 '세상이 망하더라도' 이 부분. [24] 80세를 넘긴 몸으로 중일전쟁을 위해 무리한 탓인지 폐렴에 걸린다. [25] 한편 정통성이 100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중일전쟁을 이길 경우 룽윈 사망 이후 쑹시롄 장군과 다른 국민당원 장군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정부를 장악하게 된다. 그 결과 군사 정권이 수립되어 대부분의 자유는 억압받고,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문 당하거나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되는 배드 엔딩이 나온다. [26] 이는 이후 외국의 사절단의 행보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는데, 룽윈의 장례식에 3축 냉전의 중심 국가인 독일과 미국에서까지 대표단을 보내 조문한다. 만일 이런 외국인 학살이니 뭐니 논란거리를 굉장히 많이 만들었다면, 룽윈의 장례식에 조문단을 보낼 것도 없다. 현실에서도 다름아닌 북한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27] 서로가 핵무기 체제를 완비하고 있는 3축 냉전 체제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세계멸망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대륙에서 생산되는 자원과 식량으로 국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제국 입장에서 당장 승리하겠다고 핵무기를 사용해버리면 전쟁에서 이긴다고 한들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소모해 놓고 대륙의 자원과 식량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셈이다. 이것도 결국 자멸 행위인 것.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독일이 키예프에 핵공격을 가한 뒤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 순응도는 0%에서 올라가지 않고 저항도는 100%에서 내려가지 않으며 국가판무관부 핵심주 역시 모조리 사라지고 없고 흑토 지대는 완벽히 망가져버린" 상황이란 점을 생각하면 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질 것임은 자명하다. [28] 현실과 다르게 모리타 아키오의 동업자였으나(동업자까지는 현실 세계선과 일치) 후지쯔의 헤드헌팅으로 소니를 떠났다. [29] 말레이시아 반란의 지원 세력은 OFN이다. 당연히 5.56×45mm OFN, 하다 못해 .30-06 스프링필드 같은 미국 탄약만 가득하지 중국 탄약이 있을 리가 없다. [30] 그도 그럴게 저 핵심 기능들이 하나로 합쳐졌다면 부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정비 난이도도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무게도 사람이 짊어질 수조차 없는 수준으로 무거워진다. 육군 관계자가 이래서야 어디에 써먹겠냐고 불평을 터뜨린 건데, 기업 대변인의 답변은 '우리의 철학은 빠르게 치고 빠진다. 당신들도 그렇게 하면 된다.' 라는 언 발에 오줌누기 급의 대답을 내놓는다. [31] 이탈리아가 공영권에 가입했을 시 [32] 사신펀드의 배후는 코마이와 히타치였다. 만주국의 자금을 끌어와 소니를 인수합병하려 했던것. 외국. 그것도 경쟁상대인 만주국의 자금을 끌어왔다는 것이 밝혀지자 히타치 파벌을 제외한 모든 파벌이 사신펀드 자금동결에 적극 찬성하여, 코마이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사실상 만주에서도 손절당하게 되어버린다. [33] 원래 세계와 비슷하게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도쿄통신공업을 창업하지만,(창업까지는 현실 세계선과 동일.) 이후 후지쯔의 상표권 압박과 헤드헌팅에 넘어가지 말자는 모리타와 타협하지는 이부카의 의견 차이로 결별하게 된다. [34] 이 루트를 타면 이념도 기업독재에서 기업국가주의(파시즘)으로 변경되며, 이념 파이에서 파시즘을 제외한 다른 이념이 모두 사라진다. 그 코마이와 나가노가 멘붕할 정도면... [35] 플러스로, 참회 엔딩이나 죄인 엔딩이나 마지막 이벤트 제목이 좀 깨는데, 바로 夜に駆ける. [36] 하지만 변한 게 없다는 묘사가 나온다. [37] 거수기 엔딩일 시, 거수기로 전락한 대신 대신 마츠시타 마사하루의 멘탈 자체는 회복을 하게 된다. 대아대전 우려 이벤트가 발생하면 알빠노? ㅋㅋ 하고 넘겨버린다. 이유는 어차피 자신은 권력에서 손을 뗐고 모리타/이부카가 알아서 할 거니까. [38] 만교라고 불리는 만주산업개발회사 등을 주축으로 한 독자적 계파. [39] 웃긴 점이라면 현실의 코마이는 여타 링크나 위키피디아에 적혀있다시피 생전에 나름 건실한 사업가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TNO라는 막장 세계관 속 만주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의 인간성까지 변질됐다고 볼 수 있을 듯. [40] 사실 광동 폭동은 이들이 사주한 것이었다. 광동 폭동이 일어난 이후, 디시전에 있는 중국 총영사 조사를 성공적으로 실행하면 알 수 있다. 조사에 성공하면 의혹을 부인하며 광동을 떠나지만, 동시에 시위대의 힘과 급진성이 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41] 모리타 루트이자 본업인 화투와 후지쯔 루트의 게임을 제외하면 야스다 이전의 즉석밥, 마츠시타 루트의 택시 사업, 히타치 루트의 러브호텔(...) 등등 굵직한 건 다 손을 댔다가 부도 위기에 몰린다. [42] 배후는 당연히 코마이와 만주국. 모리타 루트의 '사신펀드' 항목을 다시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위기 대처 실패로 코마이의 합병 시도가 막바지에 이를 때 리카싱이 중화민국의 자금까지 끌어오는 초강수로 방어에 성공하는데, 이런 유능한 기업인에 반발하여 가족을 납치할 것들이 이들 말고 누가 있겠는가? [43] 협상 관련에서 팁이 있다면 정부의 절망도가 높을수록 협상 성공을 위한 법안에 대해 찬성하는 의원들이 더 많아진다. [44] 광저우, 홍콩, 마카오 [45] 마츠시타의 아버지의 성함이 히라타 쇼우도(平田松堂)이듯이 마츠시타의 원래 성은 히라타(平田)이다. 1940년 4월 파나소닉 창업자의 고노스케의 딸 마츠시타 사치코(松下幸子)와 결혼하며 마츠시타라는 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마츠시타는 나가노가 집권하더라도 고노스케의 보호를 받아 징역살이를 하지 않고 오사카로 돌아간다. [46] 미쓰다 노부아키(光田矗顯)로 등장. [47] 실제로 만주국육군군관학교 출신으로, 1943년부터 광복 이전까지 간도특설대에서 배치.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등장한다. [48] 창씨개명 이름인 다카기 마사오로 등장한다. [49] 두 번째 스샷의 영어 문구인 "A nightingale is singing a dirge for the death of spring, And moonlight steals through the casement and dapples the silent walls"는 청나라 소설 홍루몽 27회에 수록된 의 일부분이다. 원문 중 티저에 인용된 문구는 杜鵑無語正黃昏(두견무어정황혼) 荷鋤歸去掩重門(하서귀거엄중문)이며 시의 전체 내용은 봄이 끝나며 꽃이 지는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50] 중일전쟁 국공내전에 참전했으며 국부천대 당시 장제스를 따라갔다.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그곳에서 살다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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