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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01:18:31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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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Order | Victoria 3 버전

1.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대게르만국
1.1. 파일:보어만 독일 국기.png 보어만의 독일1.2. 파일:슈페어 독일 국기.png 슈페어의 독일1.3. 파일:슈츠슈타펠 깃발.svg 하이드리히의 독일
2. 플레이 불가능 세력
2.1. 파일:괴링 독일 국기.png 괴링의 독일2.2. 게르마니아 보호구역2.3. 국가재건정부2.4. 고텐란트2.5. 제19군구2.6. 루슬란트 군관구2.7. 자유 유럽 군단

1.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대게르만국

한때 세계 대전에서의 패배로 추락했던 독일은 1930년대 아돌프 히틀러의 지도력으로 다시 한번 부상했습니다. 연합군의 패망 덕분에, 2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독일은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이끌고 있지만, 승리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지배력은 여전히 미약합니다. 10년 동안 독일을 얼어붙게 했던 경제 붕괴의 혼란과 대규모 노예 계급이 독일 국민을 부양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지금 끝없는 학생 시위와 도이체방크의 책략에 갇혀 있습니다.

플레이 가능 (The Victor & The Judge 리워크 예고)

하지만 경제적 실패와 폐허의 10년이 뒤따랐습니다. 레벤스라움은 라이히의 자기소멸의 촉매가 된 게르마니아와 같은 프로젝트들처럼 현실화되거나 입증되지 못했습니다. 임시방편인 동시에 인종적 멸절을 의미하는 노예제는 궁극적으로 세대 전체의 생산성과 당에 대한 충성심을 파괴하였습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국방군의 예산을 깎으려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불안정성은 오직 그 상처에 조롱만을 더할 뿐입니다. 이는 막다른 길입니다. ||
필요 소비재: +20%
생산 효율성 한도: -25.00%
* 두 개의 원칙

1962년까지의 SS의 쿠데타 시도와 경제적 실패, 서러시아 전쟁과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반복된 실패는 하나이자 유일한 힘이라는 그들의 하나의 유일한 세력이라는 인상을 지워버렸으며 만연한 파벌주의가 '참된 이념'의 잔해마저 불태우고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만족스러운 영도와 독일 국민들의 엄청난 충격 하에 말이죠. ||
정치력 획득: -25%
안정도 -25.00%
독일국의 생존은 총통의 생존에 달려 있습니다.
* 최후 승리?

동부종합계획은 실패했고, 독일의 유일한 합법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이미지는 실패의 연속 속에 파괴되었습니다.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리더십과 크게 다르지 않게 독일인들은 매우 분열되었고 단 하나의 문제로만 뭉쳐있습니다. 그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
월간 인구: -10.0%
전쟁 지지도: -25.00%
연구 속도: -15.00%
월간 빈곤률 변화: -0.08%
월간 학문적 기반 변화: -2.00
월간 산업 전문성 변화: -2.00
* 변절

한때 영광스러웠던 국방군에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더기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남아있는 몇몇 현명한 이들이 아니었다면 라이히는 서러시아 전쟁 중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미쳐버린 폭격 작전과 끝없는 징병 속에 국방군은 자기유지를 위해 발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지요. 전쟁의 신은 반대편으로 가버렸습니다.||
공군 작전 범위: +2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일일 지휘력 획득 증가치: -25%
일간 순응도 획득: -0.02%
방첩 활동: -2.00
월간 군대 전문성 변화: -2.00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체하거나, 부대 탬플릿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 }}}
한스 슈파이델은 독일의 많은 원로 장성들처럼 1차대전 참전용사입니다. 솜 전투에서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군이 축소되었을 때 군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2차대전에서 독일이 힘을 되찾을 때도 훌륭히 복무했습니다. 그중에도 슈파이델은 2차대전중 부하린과 그의 볼셰비키 동지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레닌그라드 정복으로도 유명합니다

슈파이델은 의심의 여지없이 국방군 최고사령부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고 그걸 보여줄 재능있는 사람입니다. 리이히 개혁파의 지도자로서 슈파이델은 독일이 세계 패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구시대적이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치의 인종정책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 그는 라이히를 위해 현대화의 이점을 추구하고 국가사회주의의 이상한 점을 거부해왔습니다.

그의 이런 점은 NSDAP에서 연줄이 없는 점과 맞물려 라이히 내에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국방군 최고사령부 사령관으로 취임했을 때 라이히의 보수파와 반동들은 격분했고 개혁파 또한 놀랐습니다. 그의 정치적 신념과 관계없이 그의 복무기록은 전혀 흠잡을데 없습니다.
}}} 출생년도:1892
나이:70
편제:육군
계급:야전원수
그에게는 "도살자", "피투성이 페르디난트", "전쟁에 미친 개"와 같은 잔인한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는 야전원수라는 칭호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수십만 명이 활약하는 대규모 작전에 능숙하지만 각각의 병사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페르디난트 쇠르너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다들 두려워만 하는 사람입니다. 서러시아 전쟁 당시에는 전투에서 사망힐 확률보다 탈영병이 되었을 때 교수형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쇠르너의 군부 지배력은 전쟁이 끝날 무렵 잠깐의 쿠데타 시도에서 보인 것보다 엄청난 것임이 드러나면서 그는 권력을 실제로 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 중 한 명이었던 페르디난트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총통이 가장 좋아하는 지휘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군국주의자 파벌의 충성을 대가로 쇠르너의 요구에 정치적 자본을 빌려주는 늙은 항공기 에이스인 제국원수 괴링과 상호 이익이 되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부전선의 늙은 악마는 자신만의 미래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정치가에게 주인이 될 것을 요구하거나 아예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방군에 있는 또 다른 장군이자 쇠르너의 라이벌인 한스 슈파이델은 아직 쇠르너가 직접 마주치지 않은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오직 시간만이 마침내 그의 호적수를 만날 것인지, 혹은 어떠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야망을 성휘하는 것에 한발짝 떨어져 있을지를 알 것입니다.
}}} 육군 병무총감직을 맡은 에두아르트 바크너는 민간인에 대해 잔혹하기로 악명높습니다. 열렬한 나치인 바크너는 제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부전선에서 독일 국방군과 SS에게 유대인과 슬라브인을 살해해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습니다. 바크너는 전쟁 기간 동계 피복과 연료를 보급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그의 노력으로 여타 많은 장군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서러시아 전쟁 기간 동안에는 힘러부터 멀리 떨어진 주전선으로 보급품을 재배치하고 SS 부대를 완전히 빼놓고서 보급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이후 바크너는 군국주의자들의 환심을 사게 되었으며 페르디난트 쇠르너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 최후의 프로이센인이라 불리는 헤닝 폰 트레슈코프는 국방군에서 잘 알려지고 존경을 받는 지휘관입니다. 브란덴부르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폰 트레슈코프는 가문의 자랑스러운 군사적인 성과를 이으려 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폰 트레슈코프는 나치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잃은 영토로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는 나치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러한 이상주의는 장검의 밤 동안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폰 트레슈코프는 NSDAP에 대하여 강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후 라이히가 취하는 행동마다 더욱 증대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폰 트레슈코프는 2차 세계대전에서 명예롭게 싸웠습니다. 동부전선에서 수많은 작전을 지휘했고 이는 부하린의 몰락과 라이히의 승리에 필수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전쟁 동안 트레슈코프는 보고에 따르면 후일 라이히나 총통 각하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처형되거나 체포될 사람들 몇몇을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폰 트레슈코프 스스로는 절대 이러한 범죄에 연관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만남들은 조용히 침묵 속에 묻혔습니다.

규율과 프로이센적인 신사다움을 갖춘 남자인 폰 트레슈코프는 군사의 정치화를 강하게 경멸하며 라이히가 재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지옥과 같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트레슈코프의 아주 보수적이고 프로이센적인 매너리즘은 그를 육군에서도 가장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폰 트레슈코프가 자신의 장관으로 들어오는데 환영했으며, 나이든 병사인 트레슈코프는 나치가 버렸다고 생각되는 독일의 황금기의 일부라도 복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비록 그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정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 카를예스코 폰 푸트카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성심과 의지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폰 푸트카머는 귀족 혈통으로 항상 빠른 길로 출세하며 오직 라이히에만 충성하고 라이히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전쟁 기간과 전후 히틀러의 해군 부관이었던 폰 푸트카머는 총통과 아주 돈독한 사이였습니다. 히틀러는 힘러의 실패한 쿠데타 당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던 폰 푸트카머의 병실에 찾아가 전상장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폰 푸트카머는 아직 총통과 라이히에게만 충성하고 있지만 괴링과 군국주의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 }}} 게르마니아는 총통의 빛나는 산물로 보일수도 있지만, 깊게 파고들면 그 열매의 뿌리는 썩어있습니다. 슈페어가 우아하게 디자인한 수백 미터의 산책로와 히틀러의 의지를 나타내는 과대망상적인 상징물들, 크고 거대한 콘크리트와 철제 상부 구조물은 세계수도의 무게 아래 신음하고 있으며, 그 아래 위치한 펌프는 베를린의 늪지대가 총통의 시야에 보이지 않기 위해 24시간 작동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을 재건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수십 국가를 약탈하여 얻은 전리품들의 가치를 아득히 뛰어넘었으며, 게르마니아의 웅장한 홀 바깥에는 많은 옛 베를린 시민들이 게르마니아 건축과 실업자들을 위해 마련한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뮌헨은 두 개의 경쟁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정부가 거리에서 프라이코프와 충돌하면서 혼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소수의 민족주의 사상가들과 불만을 품은 참전용사들이 모여 독일 노동자당을 결성한 것도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였습니다. 그 구성원 중 한 명인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의 오스트리아 태생의 베테랑은 계급에 올라 지도자가 되어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히틀러가 첫 번째 권력 기지를 건설하고 1923년 실패한 공세를 시작한 곳은 뮌헨의 맥주 홀이었습니다. 이곳은 나치당이 국가 본부를 설립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히틀러가 영국과 프랑스에게 그가 지킬 의도가 없었던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양도하도록 설득한 곳입니다. 뮌헨은 오늘날에도 나치즘의 요새로 남아 있으며, 그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나치의 심장부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잔혹한 점령에도 불구하고 프라크의 산업 생산량은 증가하였으며 최근 몇 년 동안 국가 및 문화적 연속체와의 통합된 역할을 반영하여 제국 전체에서 점점 더 중요한 물류 및 기술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테오데리히스하펜은 세계급은 아닐지라도 유럽에서 가장 큰 함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령관인 카를 되니츠의 주의 깊은 시선 아래, 그것에 대해 아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오늘날에도 테오데리히스하펜 시민들은 이전 해변 휴양지의 좁은 자갈길에서 계속 살고 일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조국에 봉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독일 주민들은 손주와 자녀들이 같은 도시에서 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황금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꿈이 과거 세바스토폴의 슬라브 주민들이 생각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다음 번에는 승리한 정복자가 주민들을 이름이 지정된 개별 무덤에 묻을 것입니다.||}}}
【도입부 - 대독일국】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두번이나 일어나는 동안 독일은 세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천년제국은 그동안 그 어떠한 군대보다도 멀리 진군하면서 지도자의 서방과 동방으로의 위대한 야망에 대항하는 모든 저항을 분쇄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의 무기력한 연합국들을 짓밟았습니다, 모든 정의로운 전쟁들이 그렇듯이 이는 막대한 희생을 치렀으나. 심지어 미국의 저항마저 원자의 불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침내 독일은 승리하였으며, 명예는 복귀되었고 그 운명은 명백해졌습니다.

라이히는 승리 이후 그 어떠한 시간도 헛되이 쓰지 않았습니다. 즉시, 독일은 유럽을 자신의 이미지대로 재구성하는데 착수했습니다. 국가사회주의적인, 퇴폐적인 부르주아지를 청소하고 열등한 운터멘쉬로부터 해방된 이미지 말입니다. 이후 세워진 독일의 위신을 위한 프로젝트들인 아틀란트로파 댐콩고 강 댐과 함께 동방의 레벤스라움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규모의 노예제 덕분에 달성되었습니다. 브리튼 제도에서 러시아의 황무지들과 아프리카의 열대우림까지 독일의 야망을 수호하는 육군은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쓰디쓴 내분으로 인하여 형제 간에 피를 흘리던 유럽에는 이제 대독일국과 그 선지적 리더십이 영도하는 유니티-팍트가 굳건히 서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너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10년도 채 되기 전에, 독일 경제는 라이히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불명예스러운 서러시아 전쟁과 그 누구도 아닌 극악무도한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조직된 SS의 배신으로, 실질적으로 증발하였습니다. 독일 국방군의 빠르고 결정적이였던 행동들이 아니었다면 라이히는 붕괴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그 피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노예제로 인해 만들어진 50년대의 경험과 독일을 압박해오는 전세계의 냉엄한 현실은 그들의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박살냈습니다.

더 이상 라이히는 이 세계의 자랑스러운 패권국이 아닙니다. 이는 파렴치한 내분으로 찢긴 단지 그 자신의 그림자일 뿐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으로 통합되어 있을 뿐입니다.

전방을 향해서!


아돌프 히틀러가 다스리는 세계 제2의 대국. 유니티-팍트의 수장.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라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외적으로 산재된 문제는 그 영광을 바래게 하였다. 게르마니아 재건축과 콩고 댐과 같은 대규모 토목 공사를 과다하게 추진하였고, 이는 과격한 핵 경쟁과 함께 1950년대의 대규모 경제 위기를 초래하게 된 동인이 되었다. 1960년대의 독일 경제는 노예제[2][3]를 통해 가까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독일 국방군 슈츠슈타펠, 두 군대 체제의 무리한 유지는 계속 자금을 퍼먹으며 안 그래도 위태로운 독일 경제를 계속 흔들고 있다. 게임 상으로는 미일독 3대 열강 중 최약체 수준으로, 최약의 GDP 규모에 비등비등한 부채로 구현되어있다.

정치 역시 상황이 안 좋다. 하인리히 힘러는 독일의 위기를 퇴폐와 타락에서 찾는 슈츠슈타펠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다 실패하여 부르군트 SS 기사단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들은 부르군트 체제라는 1984에나 나올 법한 극단적인 사상을 신봉하고 있다. 반면 청년들은 노예제 폐지, 정치 탄압 종식, 변경 지역 포기 등과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을 외치며 학생 운동을 통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불필요한 적을 과도하게 만들어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에 심취한 독일은 전리품을 독점하며 멋대로 날뛰었고, 그 결과 과거의 동맹이었던 일본 제국과 관계가 악화되었다. 또한 무리한 스위스 침공 계획을 시도하려다가 이탈리아 왕국과의 관계도 심히 악화되었다. 세계대전의 적대 세력이었던 자유 국가 기구와는 굳이 더 설명이 필요없는 원수 사이이다.

긍정적 기독교(Positives Christentum)는 독일에 한정해 널리 퍼져있으며 독일 내 여성 인권은 가정주부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혐일적 성향이 강하기에 일본보다는 미국이나 중국과 잘 지낼수도 있다고 한다. #.

선전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게임 시작 전 암살[4]당했다. 루돌프 헤스는 현실처럼 영국으로 비행해 사로잡혔다가, 바다사자 작전 때 독일군에 체포되어 반역죄로 사형당했다. 그리고 마우스 전차를 전면 생산한건지 생산 품목에 마우스와 대공 연구 버전의 마우스가 나오며 왜인진 모르지만 모델링까지 된 쿠겔판처 또한 생산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게임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달 착륙에 성공[5]하며 우주 경쟁에 쐐기를 박는다. 하지만 달 착륙 축하 행사 도중 아돌프 히틀러가 일본 제국 육군 헌병으로 추정되는 암살자에게 습격당하며 혼란이 벌어진다. 히틀러는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지만 그가 죽었다는 헛소문을 믿은 정치인들이 정적들을 암살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벤트 - 황혼】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 옆에 의사 1명을 제외하며 아무도 없었다. 문 밖엔 1억의 영혼이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주마등이 스쳐간다. 에바의 장례식에서 그가 얼마나 쓰라렸는지, 쓰라릴수록 그는 조국에 대한 믿음만 남았다. 위대한 승리, 개선식 행진, 대성당 불빛. 길고도 길었던 그의 유대-볼셰비즘에 대한 정복기. 올림픽에서 독일의 힘에 경외하던 강대국들. 그는 철과 피로써 구질서에 맞서 싸웠다. 그가 모든 꿈을 끝내기로 처음 꿈꿨던 그의 부모님이 살던 집. 마지막 모르핀 투여로 주마등이 끝이 났다.

모르핀이 주사되자, 닳은 눈이 떠진다. 그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 커튼 뒤 희미한 불빛으로 민족대회당이 햇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그는 돔을 바라보다, 독일을 기억해보다,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목소리가. 그가 작은 움직임에 눈가를 옮기자, 그녀가 거기에 있었다. 그가 마지막 말을 남긴다. 눈에 한 방울의 눈물이 흐르며.

에바?”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오크 나뭇잎이 떨어지고 제비가 지저귀었다. 1시간의 고요 후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했단 소식이 퍼졌다. 앞으로 다시는 게르마니아의 아이들에게 고요란 없을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총통 각하.

따라서 개인은 결국 자신의 자아가 국가의 존재 앞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필요가 있다.
- 아돌프 히틀러, 1933년
결국 시작해 버렸군
【뉴스 - 아돌프 히틀러의 사망】
>한 뉴스가 처음 라이히에서, 그 다음 전 세계로 퍼지면서 비극이 독일을 집어삼켰습니다. 독일의 총통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승리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하였습니다. 한동안 다들 총통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고 추정하였으나 그럼에도 사망 소식은 독일을 완전히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국가의회는 3개월간 애도 기간을 선포하며 총통은 그 전에 사망하였던 부인 에바 히틀러 곁에 묻힐 것이며 장례식에 전세계의 고관급 인사를 초대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독일이 애도에 빠진 동안,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30년간 고통에 빠트린 히틀러의 죽음을 축하하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국제 논평가들은 제3제국 총통직의 정당한 후계자를 놓고 쓰라린 권력투쟁에 휘말리기 시작한 독일의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날이다…
Reichstag Emergency Council
라이히스탁 비상 행정부

영도자께서는 비극적으로 돌아가셨으며, 라이히는 그 소식에 충격받았습니다. 그 누가 과연 그 천하무적의 인간이 죽으리라고 생각했을까요?

분명히 라이히스탁은 아닐 것입니다.

그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 영도자 각하께서 확실하게 지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많은 이들은 무기를 들었습니다. 개혁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 강경주의자들, 그리고 광신주의자들은 서로 맹렬히 싸우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파벌의 일원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인기가 없는 형세관망자들과 무명의 관료들, 그리고 다른 라이히스탁 의원들은 서로 뭉쳐, 지난 30년 동안 집단적으로 무시받던 헌법에 의거하여 자신들을 새로운 영도자가 취임할 때까지의 공식적인 중개 행정부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총통직의 주 경쟁자들은 모두 이 비상회의에 매우 적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좋게 말하자면 후보 선수, 나쁘게 말하자면 불순종적인 반역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존재가 주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게르마니아에 안정의 그림자라도 드리우게 되었다는 것이며, 도시가 혼돈에 빠져드는 것을 막음으로써 더 적합한 지도자가 (희망적으로) 주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를 대화재로부터 막아냈으나 라이히의 나머지 지역들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방관할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독일인 경우 살짝 늦춰질 수도 있지만 결국 1963년 10월 중순, 독일이 AI일 경우 십중팔구 10월 16일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하고 열흘 후인 10월 27일, 히틀러가 생전에 임명한 총통을 거부하면서 나치 독일 총통 자리를 놓고 내전이 벌어진다.[6]

1.1. 파일:보어만 독일 국기.png 보어만의 독일

갈색의 배후자

이 대담한 대머리 소인의 허술한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를 답답한 관료, 즉 국가의 거대한 메커니즘에 있는 하나의 톱니바퀴 이상의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한 계산 착오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실수일 수 있습니다. 마르틴 보어만은 당 총재 겸 총통의 직속 비서로서 권위에 오른 뒤 어떤 단계에서도 명예와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고 침묵의 끈기로 NSDAP의 기름진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친구들과 적들은 모두 그를 조롱하듯이 '갈색의 배후자'라고 부릅니다. 그런 지저분한 비방과 유머는 그의 인격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보어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거만하거나 예의를 갖춘 사람이 아니라 라이히에 대한 의무와 헌신으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그가 국가 전역의 아름다운 젊은 여배우들과 모델들을 방문했다고 속삭이는 사람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그가 총통의 점점 줄어들고 있는 그림자 속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면서, 마르틴 보어만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그늘진 권력의 복도를 어둠속에서 거닐며, 더 나아가 제국의 관료 기구들의 메커니즘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면서도 멸시당하는 사람의 기이한 모순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오로지 권력 추구에만 전념하는 마음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내 사전에 의무는 대문자로 쓰여 있다.

플레이 가능
This earth is not a fairy-land, but a struggle for life.
이 땅은 꿈동산이 아닌 삶을 건 투쟁의 현장이다.[7]
}}}
나치즘은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와 대중을 휘어잡는 지도자라는 두 가지 개념에 강하게 의존해왔으며, 히틀러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인물 중 보어만 이상으로 이에 적합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보어만은 총통의 비서 시절 배운 그의 통치 방식을 흉내 내며, 바로 자신이 국가와 대중을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제 2의 히틀러"임을 믿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중에게 보어만은 자신들과 같은 평범한 "보통사람"처럼 생각되지만, 정계에서의 그는 매서운 협상가이자 정치의 달인, 협잡꾼으로서 정계를 사격장처럼 일방적으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독일이 내외부의 위협으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에도, 의회는 항상 보어만의 통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만일 정치만으로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면, 보어만은 진작에 세계를 정복했었을 겁니다.}}}
그의 동료 당원 동지들 대다수가 잔혹한 강도와 무미건조한 관료라는 평판을 유지한 것과는 달리 발두어 폰 시라흐는 그의 귀족적 유산을 숨기고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의 동지들의 연설은 자주 거칠고 박력 있게 소리가 나지만 새 당수부장은 언제나 시적인 세련됨을 담아 그의 메시지를 전파합니다. 열정적인 예술의 후원자이자 열렬한 작가인 미국인 혼혈 폰 시라흐는 유대인, 볼셰비키, 혹은 정치적 적들과 같은 이들이 유럽의 문화를 와해시키지 못하도록 보존하는 것이 라이히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18세의 건장한 청년으로 당에 가입한 폰 시라흐는 히틀러 청년단의 지도자로 아리아인의 다음 세대의 마음과 몸을 형성하는 책임을 부여받는 위치까지 승진했습니다. 전쟁 동안 그는 히틀러의 총애에서 벗어났지만, 빈의 대관구장과 청년교육위원으로 그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는 있었습니다. 마르틴 보어만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보수파와 손잡는 정치적 모험-중상모략하는 이들은 이를 순전히 기회주의라고 헐뜯지만-으로 폰 시라흐는 이제 라이히에서 두 번째로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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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와 가상의 적으로 둘러싸인 이 세계에서 라이히는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힘을 주장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무능한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몰락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가까운 친구인 당당한 성격의 발터 헤벨을 신임 외무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전직 커피 판매원이었던 헤벨은 외무부에서의 고된 과정을 딛고 올라섰고 아인하이츠팍트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그의 떠들썩한 전임자와 달리 소심하고 온화한 성격의 헤벨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확고하고 견실한 보수파로서 관료적인 경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국가장관이 되는 데에 필수적인 활력있는 지성이나 독립성 따위는 부족하지만, 총통 각하에 대한 충성만은 비할 자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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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트 랑게는 세 종류의 국가사회주의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면 거리에 피를 뿌릴 수도 있는 굵은 목의 폭력배, 울리는 목소리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성격의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 그리고 쿠르트 랑게입니다.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평범한 관료들은 적을 토막 내지도 못하고 극에 달한 연설 기술로 대중을 선동하지도 못하지만 그들의 존재 역시도 다른 이들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쿠르트 랑게는 경제부 제4과 과장이 되었을 때 새로운 은행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업무에 전념했습니다. 이제 그는 경제부 장관이 되었고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조용히 감시합니다. 동료인 다른 내각 각료들과는 달리 그에게 야망이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는 그것보다는 총통,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보수파, 그리고 그의 업무에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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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서러시아 전쟁을 겪은 반백의 베테랑 빌헬름 부르크도르프 야전원수는 1915년 프로이센군의 12 척탄병연대로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히틀러의 수석 전속 부관이 되어 육군 계급이 상승하고 히틀러의 측근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어떤 장교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숨기고 다니지만 부르크도르프는 자신의 사상을 감추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습니다. 그는 유대인, 가톨릭, 개혁파와 군국주의자들을 경멸하는 만큼이나 격렬하게 마르틴 보어만 총통과 국가사회주의 국가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 무엇보다도 증오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패배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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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내 보수주의자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바이에른, 바덴-뷔르템베르크 등 독일 남부 지방과 헤센, 작센등 독일 중부, 주데텐란트,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한다.

" 독일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경제 위기라는 것은 우리를 시기하는 것들의 조작이다"라는 입장이다. 독일인들의 대부분은 안정만을 바라므로 많은 이들이 보어만을 지지한다. 일부 국가들도 현상유지만 하다 망하길 바라며 보어만을 지원한다.

나치 독일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고 약간의 땜질식 처방만 하기 때문에 독일의 입장에서는 별로 좋은 지도자라고 보기 어렵다. 개발일지에 " AI가 잡는 게 좋지만 플레이어가 잡더라도 내부에서 빵빵 터트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라고 쓰여있을 정도. 수많은 국가중점들에 "아마도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문구가 많다고 한다.

내전에서 패배하면 지지자의 도움을 받아 국가판무관부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잠적하지만 그 와중에 진짜 정신병을 얻어 의사로 위장한 암살자를 보고 발작하다가 자살한다.

그의 동생인 알베르트 보어만은 원 역사에서도 자신의 형과 권력투쟁을 했던 것 답게 괴링을 지지하며 자신의 형을 대적한다.

내전에서 승리하면 전용 정치 시스템으로 카드하우스가 추가되며, 보어만의 우군인 보수파를 키우고 개혁파와 군부를 통제하는 게 목표가 된다.

내전 동안 독일 세력권에서 이탈한 유럽 국가판무관부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폴란드와 오스트란트는 총독부와 국가판무관부를 다시 설치한 뒤에 정치력과 중점을 통해 독일 직할령으로 삼을 수도 있다. 데탕트 시도, 노예제 폐지, 독일 세력권을 묶는 경제기구 수립 등 슈페어와 큰 틀은 같으나 보어만은 보수적인 해결법을 선호하는 인물이어서 결과적으로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테면 슈페어가 노예제를 폐지하면 이전까지 노예 신분이었던 슬라브인들을 고향으로 송환하는 과정까지 나오지만 보어만이 노예제를 폐지하면 칭호만 노예에서 해방되고 실제로는 하는 일이나 복지나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전 이후 중점
【스포일러】
다색의 황제가 게르마니아의 피투성이 왕좌에 앉아있고 당은 그의 앞에서 아양을 떠네. 그의 적들은 모두 죽었다네, 개혁주의자들, 군국주의자들, 반체제 보수파들... 그들 모두 죽었다네. 그의 통치를 위협하던 기관조차 모두 무너졌다네. 위대한 보어만 만세, 보어만이 독일이며 독일이 보어만일지어다.

경직된 관료체제는 더없이 성장해나가고, 당원들조차 존경이나 사랑이 아닌 순수한 공포에 눈이 먼 지금 독일은 끝없는 시위, 폭동, 소요, 테러에 몸살을 앓으며, 동부의 위협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우리의 총통은 암에 걸리셨다네. 그러자 음울한 의문이 하나 떠오르네.

다음 총통은 누가 될까?

내전으로 쓸려나가긴 했어도 잔존한 군부와 개혁파는 다시 세력을 불려나간다. 결국 보어만은 현실과 타협해 내전 복구 과정에서 슈파이델/쇠르너를 국방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개혁파/군부와 손잡고 나머지 파벌을 숙청한다.

적들을 제거했으니 보어만의 구상대로 독일을 꾸려나가려 하지만 이미 독일의 문제들은 그가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독일의 위기를 부정하고 이전의 방식대로 해결해나가려 하지만 구상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거나 아예 역효과가 나오는 등 영 시원치가 않은 상황. 이 와중에 이전에 연립했던 파벌은 슬금슬금 영향력을 올린다. 결국 중동이 흔들리고 오일 쇼크가 터지며 독일의 모순은 폭발한다.

대머리 뚱보 말더듬이 난쟁이 보어만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반대파들은 보어만을 우습게 보고 뒤집어 버릴 계획을 세우지만 제2차 장검의 밤이 일어나며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반대파들은 물론 보수파 내의 배신자들까지 색출해 대숙청을 단행했고 덕분에 모래성 같던 그의 권위는 다시금 확고해지고 본격적인 총통으로서의 독재가 시작된다. 그리고 2차 장검의 밤으로 대숙청이 완료되면 제3제국의 몰락을 늦춰주던 인물들 대다수가 쓸려나가는 덕택에 독일은 괴링이 양호해 보이는 수준의 기록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거둔다.

이 상황에서도 '독일의 문제는 전부 반역자들 탓이야. 반역자들은 전부 처리했으니 이제부터라도 내 방식대로 하면 독일은 천년 동안 번영할 거라고' 같은 식으로 낙관하던 보어만에게 외무장관 발터 헤벨이 마인호프의 테러조직에 의해서 납치, 이후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비상 회의를 하는 동안 피 섞인 기침을 하던 보어만은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고[20], 이제까지 이루어놓은 것이라고는 자신이 죽으면 금방이라도 해체될 카드로 만든 집[21]임을 한탄하며 게임이 끝난다. 슈페어가 덩샤오핑처럼 제한된 개혁만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어만은 브레즈네프 시절에 보수화된 소련과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현실의 소련과 달리 더욱 처참한 피바다로 끝날 것이란 것만을 암시한다.

만약 카드 하우스에서 보수파 외에 다른 파벌이 우위를 점하면 음모를 알아채지 못하면서 2차 장검의 밤 대신 보어만이 역으로 제거되는 기만의 6월 슈퍼 이벤트가 발생한다. 이 탓에 개혁파의 손을 잡고 풀 개혁 당기면 슈페어 국가사회주의루트보다도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지만 최종적으로는 게임 오버라고 할 수 있다. 기만의 6월에서 개혁파가 집권하면 발두어 폰 시라흐가, 군부가 집권하면 페르디난트 쇠르너가 총통이 된다. }}} }}}

1.2. 파일:슈페어 독일 국기.png 슈페어의 독일

라이히의 건축가

제국의 혼란스러운 정치판에서 종종 간과되는 인물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직업 건축가이자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초기부터 개인적인 친구였던 슈페어는 미래의 총통의 설득력 있는 변증법과 독일에 대한 그의 위대한 계획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 매력은 상호적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슈페어의 작품을 보자마자, 이 젊은 건축가는 자신이 당 지도부의 선두에 서고 수십 가지의 공공 건물을 설계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슈페어는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군수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그의 성격의 한 면이 기회주의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생산량 급증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전쟁 수행에서 그의 주된 공헌은 라이히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있었던, 바로 노예제의 발명이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열등인종들과 전쟁 포로들이 군사와 산업 단지에서 일하며 죽어갔고, 독일 전쟁 기계에 그들의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슈페어는 그의 본업으로 돌아왔고, 라이히의 웅장함을 지닌 중추들을 혼자서 디자인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수도인 게르마니아는 로마, 파리,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대도시를 무색하게 만들 예정이었지만, 경제붕괴가 찾아왔고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카타르시스의 순간, 그는 노예제가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이해했고, 가장 기회주의적인 움직임에서, 그는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치 않았던 결과로서, 그는 곧 자신이 변화를 옹호하는 거대한 개혁 운동의 중심점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조류에 휩쓸려, 그는 아무도 그의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들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좋든 나쁘든 간에, 알베르트 슈페어는 그 나름대로 독일을 재정비하여, 독일의 건축 양식과 사회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지금, 그리고 영원히, 라이히의 건축가일 것입니다.

라이히야말로 나의 최고의 걸작이다.

일부 티저 예고

플레이 가능
History will show the trials to be necessary.
이 재판이 필요한 일이라는걸 역사가 보여줄 것이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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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슈페어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누구도 그의 야망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많은 이들과 달리 슈페어는 이제는 고인이 된 총통의 맹렬한 연설이 있던 1931년의 그 운명적인 날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유세 도중 아돌프 히틀러가 한 침착하고도 정돈된 연설은 젊은 건축가를 매료시켰으며, 그는 1년 뒤 당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호기롭게 당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요제프 괴벨스의 추천서를 받게 되었으며, 이내 지역 나치당 본부들을 바로잡는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윽고, 총통께서 개인적으로 그에게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히틀러는 슈페어의 비전에 감탄을 마지 않았고, 둘은 함께 새로운 독일을 위한 계획들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 슈페어는 총통의 가까운 친구였고, 자기 부처를 관장했으며 라이히의 경제를 승리의 기계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라는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던 간에, 새로운 독일이라는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비록 명성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는 모두가 자신의 공이라고 알도록 했습니다.

게르마니아가 건설되던 도중, 경제는 박살났고 그의 거만한 꿈 역시 함께 무너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씌우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슈페어가 전쟁을 이기기 위해 만들어낸 체제인 노예제는 평화를 맞이한 독일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는 전례가 없던 재앙이었습니다. 슈페어는 감히 이를 무시할 수 없었죠. 라이히와 독일 민족은 위대해질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의 꿈 역시 현실이 될 만 했습니다. 개혁이 필요했습니다.

수 년 간 나치당 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있었고, 이내 슈페어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습니다. 수십 년간 독일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 개혁의 대표자로서 말이죠. 슈페어의 야심찬 목표와 반대자로서의 명성은 유례가 없었던 정치적인 폭풍 속에서 수많은 젊은 몽상가들과 늙은 경쟁자들이 주변을 둘러싸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만든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미래 뿐 아니라 라이히의 미래를 위해 균형을 유지합니다.}}}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는 한때 성공적인 법률가였습니다. 그는 베를린 법원과 국가사회주의 법률전문가연맹(Nationalsozialistischer Rechtswahrerbund) 모두에서 아주 존경받을 만한 지위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직업 활동을 하면서 독립적인 주체로 남아있으려 하며 그 조직들을 가라앉혔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키징어는 전장에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외무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방송병으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키징어는 결국 "반유대 활동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어떠한 유죄의 측면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이는 키징어가 전쟁 이후 그의 직위를 내려놓고 법률가의 일로 돌아간 주된 이유들 중 하나로 널리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이히의 고장난 상태가 점점 더 분명해질수록, 키징어는 정치계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라이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혁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놀랍도록 설득력을 갖춘 연설을 통해 "언변 좋은 키징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키징어는 결국 알베르트 슈페어의 접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친슈페어 운동에서 두 번째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의 핵심 단체인 "4인방"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개혁파 운동의 입을 담당하면서, 키징어는 그 수장인 슈페어와 멀지 않은 관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슈페어의 생각 (또는 4인방 중 누군가의 생각)이 의심을 받을 때, 그 긴장 상태를 완화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종종 키징어였습니다. 슈페어 개혁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아주 효율적으로 설득해내면서 말입니다. 언변가 키징어는 NSDAP를 거의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을 들은 그 누구라도 그가 독일 민족을 대단히 아끼고 있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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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가문의 배경을 가지지도 않았고, 특별히 화려한 경력을 지니지 못한 헬무트 슈미트는 정치계에서는 비교적 신참에 속하는 편입니다. 어렸을 적 슈미트는 히틀러 유겐트의 리더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곧 당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그 지위에서 내려가게 됩니다. 그는 전쟁 동안 루프트바페에서 복무하면서 이후에는 동부 전선의 전장 속에서 행정가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이후 슈미트는 고향 함부르크에 돌아와서 그곳의 대학교에서 경제학 및 정치학 학위를 땄습니다. 그는 독일국과 그 정책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결코 뻔뻔스레 NSDAP로부터 관심을 끌려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슈미트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주의를 끌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슈페어는 나치당의 슈페어파에 가입하도록 그를 꼬드겼습니다. 슈미트는 슈페어의 이러한 간청을 계속해서 거절했습니다. 나치당과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진실된 혐오로 인해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NSDAP가 그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한 비밀을 드러낼까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내전이 발발하면서 슈미트는 슈페어파에 가입했습니다. 그는 슈페어 정부의 외무장관을 맡는 것을 그 대가로 받았습니다.

키징어처럼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트레슈코프나 에르하르트처럼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슈미트는 4인방 구성원 중에서도 복병과 같은 존재입니다. 혹자는 슈페어가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지위에 도달하게 되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정치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어린 선동가는 그의 비전이 대부분 이뤄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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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을 입은 참전용사였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는 시장연구협회 ECGFGI에 가입하면서 경제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신속하게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독일인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라이히의 경제는 10년 안에 붕괴할 것이라 주장하는 내용의 논문을 출판했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 때문에 에르하르트는 자리에서 해고되었으나, 이는 독일 경제 대공황 때 옳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근 에르하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이자 가장 버릇없는 관료들 중 하나로 유명합니다. 에르하르트는 가격 통제 중단과 낮은 세율 도입을 주장하는 경제학파인 질서자유주의의 강력한 지지자이며, 이것이야말로 자유 시장이 그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사상은 현재 라이히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모델과 아주 다른 것이며, 라이히의 경제부 내에 있는 많은 관료들로부터 멸시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하르트는 현상유지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하며 독일 시장을 뒤집어 놓을 만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자유화에 대한 이런 고집있는 주장으로 인해, 에르하르트는 알베르트 슈페어와 가장 가까운 조언가들로 이루어진 개혁가 집단인 "4인방"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에르하르트는 자신의 대담한 계획에 대해서 그 어떤 협상도 용인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고집과 자신만만함으로 유명합니다. 따라서 그는 경제 개혁에 관한 슈페어의 계획을 이끌고 있습니다. 에르하르트는 독일에 재정적 번영과 부를 가져다 줄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가 발로 차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면서 라이히를 힘들게 끌고 가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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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프로이센인이라 불리는 헤닝 폰 트레슈코프는 국방군에서 잘 알려지고 존경을 받는 지휘관입니다. 브란덴부르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폰 트레슈코프는 가문의 자랑스러운 군사적인 성과를 이으려 했고, 1차 세계대전에서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폰 트레슈코프는 나치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잃은 영토로 다시 복귀하기 위해서는 나치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러한 이상주의는 장검의 밤 동안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폰 트레슈코프는 NSDAP에 대하여 강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후 라이히가 취하는 행동마다 더욱 증대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폰 트레슈코프는 2차 세계대전에서 명예롭게 싸웠습니다. 동부전선에서 수많은 작전을 지휘했고 이는 부하린의 몰락과 라이히의 승리에 필수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전쟁 동안 트레슈코프는 보고에 따르면 후일 라이히나 총통 각하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처형되거나 체포될 사람들 몇몇을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폰 트레슈코프 스스로는 절대 이러한 범죄에 연관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만남들은 조용히 침묵 속에 묻혔습니다.

규율과 프로이센적인 신사다움을 갖춘 남자인 폰 트레슈코프는 군사의 정치화를 강하게 경멸하며 라이히가 재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지옥과 같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트레슈코프의 아주 보수적이고 프로이센적인 매너리즘은 그를 육군에서도 가장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폰 트레슈코프가 자신의 장관으로 들어오는데 환영했으며, 나이든 병사인 트레슈코프는 나치가 버렸다고 생각되는 독일의 황금기의 일부라도 복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비록 그는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정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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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4인방 (국민정신)
총통은 국가의 얼굴이지만, 게르마니아의 의사당에서는 그의 파벌이 라이히의 새롭고 위대한 미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키징어, 슈미트, 에르하르트, 폰 트레슈코프가 그들입니다. 슈페어 각하의 연합은 그가 행동을 시작한 50년대 초반부터 함께 해왔으며, 그들의 능력은 앞으로 오랫동안 이어질 독일의 개혁 과정에서 유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러 요구를 해오기 시작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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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 국가임에도 독일과는 달리 일찌감치 온건 개혁 노선을 지향한 이탈리아와 자유로운 문화 환경을 견지한 미국은 독일 청년에게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게끔 하였다. 이러한 문화에 경도된 학생층과 자유주의자들이 슈페어의 주요 지지층. 내전 발발 시 함부르크, 하노버,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 등 독일 북서부를 근거지로 봉기한다. 다른 총통 후보들과는 달리 개혁 및 온건 노선을 표방해 주변 국가들의 암묵적 지지를 받는다. 세력 자체는 대단치 않기에 내전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패치로 인해 승률이 많이 올라갔다.[23] 폰 트레슈코프를 제외한 내각의 4인방은 현실에서 서독 총리를 역임한 인물들로 채워져있다.

내전에서 지면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서 현 총통을 까는 글을 저술하다가 실종되거나, 암살당한다.

내전에서 승리할 경우 내부로는 측근인 4인방( 헬무트 슈미트,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헤닝 폰 트레슈코프)과 함께 4대 재벌인 이게파르벤, 라이히스베르케, 다임러-벤츠, 지멘스[24]를 해체, 노예 경제 철폐, 노동 권익 향상, 경직된 사회 분위기 완화 등의 개혁을 진행해 독일을 국가사회주의에서 가부장주의 국가로 탈바꿈 시킬 수 있다. 외교적으로는 적대 관계였던 미국과 일본에 관계 개선을 하고, 이탈리아와의 데탕트를 만들 수도 있고 국제 연맹의 뒤를 잇는 카엔(KN)같은 국제 기구를 설립하거나, 독일 영향권 내의 국가들을 모아서 관세동맹(촐페어아인 : ZOLLVEREIN)[25]을 창설할 수도 있다. 뉘른베르크 법은 폐지하거나 사문화하며 비대한 국방군 규모도 적정 수준까지 군축하게 된다.

중점을 통해 개혁을 하면 정통성이 줄어드는데, 급진적인 개혁일수록[26] 감소 수치가 높다. 30% 미만인 상태가 지속된다면 보수파가 정변을 일으켜 슈페어 정권이 전복된다. 사실상 게임 오버.

따라서 사회적 관점을 개혁파로 설정하고 정치력과 자금을 투입해 개혁파 쪽으로 꾸준히 돌리는 한편, 국가정보국의 선전 공작과 슈페어의 연설 및 반대파 탄압 결단을 꾸준히 눌러서 정권 안정도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 통일 후 1단계 중점
2단계 중점 - 내전이 오래 지속될시에는 모든 트리를 완성하기 전에 석유 위기가 터질 수 있다. 만일 독일 내전을 64년 6월, 즉 내전 개시 8개월 내로 끝내면 아슬아슬하게 모든 포커스를 찍을 수 있다.
3단계 중점
【스포일러】
후반부 빌리 브란트의 자유국 반란 사건에 대응하면서 슈페어의 본심이 밝혀지는데, 바로 슈페어의 개혁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모습은 모두 위장한 것이며, 개혁 정책은 어디까지나 현 체제의 유지를 위한 행동이었다.[30]

사실 위의 총통 후보 소개문 부터 슈페어가 노예제의 고안자이고 노예제가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니 기회주의적인 행동으로 개혁을 요구하다가 본의 아니게 개혁파의 대표가 되었다고 대놓고 나온다. 재벌 해체는 그들이 무능하고 경제에 도움이 안 돼서, 노예 해방은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 다른 개혁들은 당장 폭발할 것 같은 내부의 불만을 풀기 위해서 숨통만 틔어준 것이며 슈페어는 그 이상의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 또한 내전 시의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휴식 없이 일해라', '왜 아이들이 전쟁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안 됩니까? 미성년자를 위한 전투 규칙 역시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자유를 위해서는 누구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들은 독일 민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버려가며 행동해야 합니다.'와 같은 중점 설명처럼 그 역시 전체주의적인 면모가 분명히 존재하는 인물이다.

후반부 반란을 진압하면서 빌리 브란트와 4인방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뉘른베르크 법령과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선택에 따라 제한적인 자유주의적 개혁을 도입할수 있게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일이 통제할 수 있는 정도의 개혁만을 통과시킨다. 그나마도 브란트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까지 노예제를 폐지할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다만 국가사회주의 '이념' 보다는 대게르만국 '국가 체제'에 보다 집착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나치즘을 '개혁'하려 하는 인물이니 말이다. 다른 세 후계자들과는 달리 슈페어는 승리 엔딩에서도 파멸이 예고되지 않는지라, 지속가능한 파시스트라는 점에서 보면 가장 무서운 부분도 있는 인물이다.

반대로 4인방이 슈페어를 압도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슈페어를 얼굴 마담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이 경우 슈페어는 유대인,[31] 운터멘쉬 운운하면서 자신이 독일을 빨갱이 소굴로 만들어버렸다고 한탄한다.) 독일을 점진적으로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개혁시키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다. 다만 많은 독일 국민들이 슈페어 파시즘까진 이해해도 4인방의 이행기적 민주주의는 너무 급격한 변화라고 생각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싸움이 일어나도 희망을 쥔 자가 승리할 것이라는 멘트가 나오기 때문에 독일 루트 중에서는 가장 민주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결말이다. 하지만 뒷방 늙은이가 된 슈페어가 여전히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는 암시를 보여주기에 이런 희망 또한 꺾여버릴 수 있다는 불안함을 준다.
알베르트 슈페어는 실패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권력을 잃은 총통은 그저 도장 찍는 일만 하고, 그의 주위에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눈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4인방과 패거리들은 그를 히틀러의 비전에 대한 수치이자 중요하지 않은 바보겸 꼭두각시로 취급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엔딩에 따라 그의 얼굴 형태가 조금씩 바뀌는데, 가부장주의는 뒷방 늙은이처럼 바뀌고 반동파 루트에서는 실권도 없는데다 애증서린 동지들인 4인방도 죽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초상화가 더 힘빠진 모습이다. 슈페어가 실권을 잡는다면 나치 제복을 입고 진정한 총통으로 바뀐다. 실제 역사에서도 천수를 누렸다보니 후계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합성이 아닌 실제 말년의 슈페어의 사진이 나온다.

정보원 게르하르트 베셀 이벤트에서 정보국이 부르군트의 배후 공작 사실을 밝혀내지만 결국 그 목적까지 알아내지는 못한다.
  • 반동파 엔딩
    • 집권이념: 국가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반동파)
      {{{#!folding 내각
    • 파울 바그너 정부수반
    • 테오도어 오버렌더 외무장관
    • 헤르만 요제프 압스 재무장관
    • 하인리히 트레트너 내무장관
      }}} 정권 유지에 실패, 쇠르너의 움직임을 방관, 자유 유럽 군단 진압 시에 나오는 루트. 테오도어 오버렌더 등 당내 보수파들이 실권을 장악하며 4인방은 숙청당하고[32] 슈페어는 권력을 잃는다. 국가 중점 설명에서도 대놓고 부정적인 어구들이 나오는 건 덤.
  • 슈페어 엔딩

    • {{{#!folding 내각
    •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 정부수반
      언변 좋은 사람: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5.00%, 국가사회주의 외교 승인 +10, 파시즘 외교 승인 +25
    • 마르틴 무스그뉘 외무장관
      꿍꿍이가 있는 모략가: 암호 해독 +1.00, AI 변동치: 동맹 호출 욕망 +30, AI 변동치: 공격 중점 +50.00%
    • 한스 케를 재무장관
      산업가: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5.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 건설 속도 +10.00%, 필요 소비재 -7.00%
    • 오토 에른스트 레머 내무장관
      효율적인 소시오패스: 자원 획득 효율 +15.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있는 듯합니다. 슈페어 아래에서 NSDAP는 흔들렸지만 다시 회복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4인방은 총통의 발 아래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미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던 간에, 결국에는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승리하게 될 자는 국가사회주의를 철저히 믿고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키징어 제외한 4인방의 직위에 자리를 하나씩 더 만들어서 권력을 분산시킨 후 슈페어가 실권을 얻는다. 이 루트를 탈 시 키징어를 제외한 4인방은 물갈이된다. 가장 먼저 군국주의자들을 배신하고(본인 주장으로는 쇠르너가 어찌되었건 총통인 슈페어를 배신한 거지만) 게르마니아로 달려와 충성 맹세를 한 끝에 장관직 한자리 해먹고 있는 레머가 인상적이다.[33]
  • 가부장주의 엔딩
    NSDAP는 치명타를 입었고 슈페어 역시 그렇습니다. 이들은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점차 권력의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더 이상 세계를 갈망하지 않습니다. 4인방은 총통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미래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던간에, 결국에는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승리하게 될 자는 희망을 손에 쥔 사람일 것입니다.
    • 집권이념: 과도기적 민주주의(가부장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변절파)
      4인방이 실권을 장악하며 슈페어의 권력은 축소된다. 군부는 노예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모스코비엔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장악했다가 그대로 진압당하며 쇠르너는 시안화칼륨 알약을 씹어 자살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직후 급습한 국방군에 의해 재판 없이 즉각 총살당한다.

1.3. 파일:슈츠슈타펠 깃발.svg 하이드리히의 독일

금발의 야수

SD의 전 책임자이자 최종 해결책의 주요 설계자 중 한 명으로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의 지도자였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그의 이름은 독일 시민들과 슬라브 노예들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악명높게 지적이고 교양있는 감성을 가진 라이히친위대지도자인 그는 권력에 대한 그의 참을 수 없는 권력을 향한 동물적인 갈망을 차갑고 조용한 보호막 뒤에 숨기고 있습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걸친 그의 영향력과 지위의 급격한 상승엔 아무도 놀라지 않았지만, 1950년대에 하인리히 힘러의 실패한 쿠데타로 인해 그가 슈츠슈타펠의 지도자로 등극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분열에도 불구하고, 당은 하이드리히에 대한 증오심과 그의 친위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단결되어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잔혹한 권위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히틀러의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에 대한 존중 때문이라고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출처를 지적합니다. 베일에 싸인 부르군트 기사단국의 폭군 하인리히 힘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왕좌 이면의 진정한 권력자로 이론화되고있습니다.

물론 하이드리히와 힘러는 어느정도 의견차가 있지만, 두 남자는 공통적으로 '진정한 국가 사회주의'의 부활을, 즉 당의 부패를 종식시키고 친위대의 가치에 전념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수립을 주장합니다. 친위대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히틀러의 내통들의 시도는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지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도자로 남아 있는 한, 그들의 영향력이 그리 쉽게 소멸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슈타포에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없다.

플레이 가능[34]
The world is just a barrel-organ which the Lord God turns Himself. We all have to dance to the tune which is already on the drum.
세상은 손풍금이라네. 신이 손잡이를 돌리면 우리 모두 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35]
}}}
하이드리히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습니다. 금발의 야수, 프라하의 도살자, 젊고 사악한 사신. 세계 대전 당시 있었던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하이드리히는 부하들이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였던 땅에서 수천 명을 추적하고 쓸어버리는 일을 개인적으로 도왔습니다. 자신이 이뤄낸 폐허와 잔해 위에 위풍당당하게 선 그의 사진은 전쟁 내내 독일의 선전 자료로 쓰였습니다. 괴벨스마저 (마지못해서 했다지만) 이 일을 가지고 선전 영화를 찍을 정도였죠.

하지만 이제 하이드리히는 훨씬 더 사악한 대의를 위해 일합니다. 인형사에게 조종받는 인형사인 그는 부르군트 SS의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가 독일과 해외에 대해 가진 의지를 충족하기 위해 암흑의 실에 얽매여 앞뒤로 까딱거립니다.

충직하며 두려움 받는 부르군트의 하인이지만, 많은 이들은 그의 주인이 취하는 멸시에 가까운 태도를 눈치챘습니다. 하이드리히는 아무 상관 없이 따릅니다. 이런 행동은 아첨꾼이자 예스맨이라는 평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그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할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

독일 내 부르군트 체제 지지자들과 SS 계파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엘자스-로트링겐 자를란트, 모젤란트, 동프로이센, 단치히, 비아위스토크 지역을 가지고 시작한다.

하인리히 힘러의 끄나풀로 평가받아 개혁파는 물론, 보수파와 군부에게서도 거의 지지를 얻지 못하며[36] 하이드리히가 우세할 경우 남은 세력들이 반하이드리히 동맹을 맺고 맞선다.

슈츠슈타펠 최정예 부대를 데리고 시작하지만, 국토가 분열되어 있기에 내전에서 이길 확률이 제일 적다. AI의 경우에는 이기는게 거의 불가능하며, 플레이어가 플레이해도 상당히 어렵다.

내전에서 패배하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집무실에서 누군가에게 암살당한 채로 발견된다.

【스포일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간단하게 보였습니다. 라이히는 타락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구원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사상을 배신한 자들은 각자의 깃발을 세우고 고루한 보수주의, 계집애같은 자유주의, 천박한 군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의 인간말종을 불러들였습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만이 진짜 중요한 것을 위해 일어났습니다. 하이드리히와... 그의 부르군트 후원자만이.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이드리히가 싸웠던 대의는 거짓된 것이었습니다. 핵 홀로코스트로 세계를 정화하려는 힘러의 진짜 목표를 숨기려는 위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간절히 원했던, 모든 퇴락과 나약함을 없앨 퓌러의 길고 평화로운 치세는 없습니다. 힘러의 정신 나간 계획 때문에 조국은 다른 모든 이들처럼 불탈겁니다. 이는 독일이 상상할 수 있던 어떤 적들도 이루지 못한 성과입니다.

힘러의 배신은 신질서를 뒤집어 엎었습니다. 이는 하이드리히가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총통은 짖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해야 할 일을 할겁니다. 아리아 인종을 위해. 독일을 위해. 전 인류를 위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부르군트를 파괴하고 반역자 국가지도자의 미친 열망을 끝내고야 말겁니다.
내전에서 하이드리히 독일이 승리할 경우, 힘러는 하이드리히에게 독일의 핵무기와 핵발사 코드를 부르군트에게 넘기라는 지시를 한다. 힘러는 이 핵무기를 이용해서 이 세상에 아리아인들만 남기고 운터멘쉬를 모조리 소각하겠다며 전 세계를 목표로 열핵전쟁을 시작하려 하고 Cutting Room Floor 패치 이전에는 하이드리히가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하지만 패치 이후로는 하이드리히가 이를 거절하는 것을 시작으로 플레이가 진행된다. 다만 지금도 하이드리히 루트는 플레이어 전용이고 하이드리히가 AI면 무조건 핵전쟁을 내서 게임을 터트린다.

1단계 중점에서는 벙커를 짓고 핵무기를 비축하는 등 고분고분 힘러의 명령을 따르는 듯 해보이나, 도중 하이드리히가 친위 쿠데타로 힘러파 인원들을 게르마니아에서 축출하면서 1단계 중점은 종료되고 2단계 중점이 제대로 시작된다.[37] 점차 불안정한 내전의 종전은 울리히 베게너의 베르제르커 사단, 스파르타쿠스의 후예들같은 반SS와 반나치 세력들이 준동하며, 하이드리히와 힘러 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악화되어 힘러파와 하이드리히파가 게르마니아에서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총격전 상황에서 게르마니아의 영웅 슈파이델을 구할지 아니면 더 많은 병사들을 무장시킬 무기를 탈취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선택을 한 이후 독일은 수 많은 SS 군벌들로 찢어지며 제2차 내전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 대게르만국: 하이드리히(게르마니아, 스파르타주의 - 국가사회주의)
  • 부르군트: 힘러(난치히,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 로트링겐 SS 기사단국 - 테오도어 아이케(빌헬름스하펜,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계): 인물 설명부터 교섭의 여지가 불가능한 완전한 친 힘러 파벌이나, 울리케 마인호프가 이끄는 슈페어 잔당 세력(가부장주의)이 쿠데타로 세력을 뒤엎는 이벤트가 있다. 마인호프는 공산주의자지만 하이드리히가 승리하면 범개혁 세력이 결집하기 때문에 권민으로 분류된다. 다만, 아이케의 기본적 충성도가 워낙 낮은데다가(16) 교섭 시작하는데도 두달 가까이 걸리고, 힘러는 4개월 뒤부터 아이케에 대한 포섭을 시작하기에[38] 사실상 이벤트 보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 플란데런 국민국 - 베르트 에릭손(브뤼셀, 초군국주의 - 국수주의) : 플란데른주의자인 에릭슨은 왈롱주의자 드그렐을 증오하기 때문에 무조건 힘러편에 든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포커스를 찍을 수 없으며 콘솔로 이벤트를 띄우면 랑게마르크 군단이 하이드리히가 보낸 비무장 외교관들을 갈기갈기 찢어죽여버리는 내용이 나온다.
  • 벨기에 국민결사 - 레옹 드그렐(뤼티히, 초군국주의 - 국수주의, SS 실용주의계) : 드그렐은 게임 초반부부터 프랑스계 왈롱 민족 말살 정책에 반기를 들었기에 하이드리히와의 교섭이 가능한 부르군트 내 군벌이다. 2차 내전 시점에서는 반힘러 공작이 들켜서 군단 전체가 왈롱으로 도주한 상황이며, 몇개월 내로 교섭하지 않을시 세력이 힘러에게 먹혀버린다. 일단 어떤 방법으로건 첫 교섭중점만 통과하면 힘러가 건드리지 않으므로 살리고 싶으면 첫 중점을 통과시키는것이 좋다.
  • 신프랑스국 - 크리스티앙 드 라 마지에르(북파리, 국가사회주의) : 전투력이 별 볼일 없는 보안 사단 수준의 샤를마뉴 사단은 힘러의 애완견이나 마찬가지이며 하이드리히의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교섭 중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힘러에게 들어가버리고 콘솔로 이벤트를 띄우면 샤를마뉴가 하이드리히의 사절들을 피한다고 나온다.
  • 라이프슈탄다르테 하인리히 힘러[39] - 빌헬름 몽케(자르브뤼켄,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 알자스 로렌 지역을 점거한 힘의 방어벽 세력. 몽케는 완전한 친 힘러세력으로 협상이 불가능하고 암살시키거나 친하이드리히파를 빼내는 행동만이 가능하다. 물론 이 행동은 그저 시도일 뿐으로, 친하이드리피파를 빼내려 외교적 접근을 하면 외교관을 죽여버리고, 몽케를 암살시켜도 자동으로 부르군트에 합병되어버린다.
  • 국가군사특별법정 - 오토 에른스트 레머(하노버, 초군국주의 - 국수주의, 군국주의계) : 군국주의 파벌의 잔당세력으로, 레머는 실종된 쇠르너가 하이드리히에게 충성하는 걸로 착각하고, 쇠르너에 대한 반감으로 하이드리히가 레머에게 힘러의 핵전쟁 계획을 알려주어도 힘러파에 붙게 된다. 역으로 하이드리히가 쇠르너를 지원하여 레머를 제거하고 하이드리히 파벌에 들어갈수 있다. 이 경우에는 서로 오월동주를 하게 된 하이드리히와 쇠르너, 슈파이델도 있으면 슈파이델도 찜찜해하며 협상에 들어간다.
  • SS전투단 페겔라인 - 헤르만 페겔라인(라이프치히,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SS 실용주의계) : 페겔라인은 힘러의 명령에 따라 반 하이드리히 선전을 하고있으며 힘러가 세계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하이드리히의 주장을 헛소리 취급한다. 하지만 일말의 의심은 남아있어서 하이드리히와 교섭이 가능하다. 하이드리히는 페겔라인을 쓰레기 같은놈으로 아리아 인종과 SS의 망신거리로 여기지만 이상하게도 민간인들에게 인기가 좀 있어서 쓸모있다고 생각한다. 교섭하는 척 하다가 경비병들을 매수해 처형하면서 흡수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온전히 흡수해서 페겔라인의 선전 기구를 확보하면서 전 세력을 통한 교섭 효율성을 증가시킬수 있다. 이쪽으로 진행하면 이후 나오는 이벤트에서 하이드리히가 페겔라인의 방송국을 장악하고 페겔라인의 목숨을 담보로 선전활동을 하도록 시키는 이벤트가 나온다. 여담으로 교섭 중점이 영화 몰락에 나오는 히틀러의 그 대사이다.
  • 독일국 - 라인하르트 겔렌(슈투트가르트, 개혁 국가사회주의 - 국가사회주의, 온건계) : 구 보어만+슈페어 세력의 보수파-개혁파가 연합한 온건 세력. 대결이 시작되고 7개월 이상 방치하면 부르군트가 직접 침공해서 합병시켜버린다. 온건계 특성상 힘러에게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하이드리히도 겉으로는 우호적으로 독일국을 포섭시키려 하며, 온건 파시스트 정치범들을 겔렌에게 보내주거나, 겉으로는 우호적으로 접근하며 내부에 스파이를 심어 내전 승리 이후 은밀히 정복하려고 시도한다. [40]
  • 국가비상정부 - 카를 되니츠(킬,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계) : 크림 정부의 되니츠가 귀환해서 북쪽으로 피난하는 난민들을 받아들인 세력. 되니츠 본인은 독일을 구원하는지, 또는 늙어서 지친 상태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할지 갈등하고 있으며, 하이드리히는 북쪽으로 가는 난민을 막아 고립시켜서 되니츠 세력을 내전에서 중립화시키거나, 해군을 인정하며 지원하고 포섭할 수 있다. 이후 되니츠는 3차 내전이 독일을 무정부지대로 만들면 크림 반도로 귀환하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힘러는 보통 온건계 군벌들에게 직접적인 침공을 가하는데, 국가비상정부는 군국주의 파벌임에도 침공이 이루어지므로 주의.
  • 흑색 군단 - 요제프 디트리히(뮌헨, 군벌 - 전제주의, SS 실용주의계) : 구 부르군트의 내무장관이던 요제프 디트리히는 조국이 내전의 위기가 고조되자 환멸감을 느끼고 노이반슈타인 성을 장악하고 류리크 2세 처럼 '바이에른 공작'이라고 선언한다. 여담으로 감옥에 있던 흉악범들을 본보기로 100명만 처형시킨 후 사면시켜서 자신의 전용 준군사조직으로 써먹는 등 그 실체는 부정적인 류리크에 가까운 모양새. 포섭이 가능한 중립성향 지도자이며, 어느 식으로 포섭하건 디트리히의 사병단은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고.
  • 대의를 위한 전투단 - 요아힘 파이퍼(인스브루크, 스파르타주의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계) : 남쪽으로 도주하는 난민들을 막고 있는 군벌세력. 하이드리히와 개인적 친분으로 인해 전투단은 완전한 친 하이드리히 성향이라 파이퍼를 압박하건 협력을 요청하건 거의 100% 포섭이 가능하다. 또한 파이퍼는 1차 내전 직전부터 핵전쟁 계획을 알고 있었고 이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기에 하이드리히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아리아인의 귀감으로 불리던 파이퍼의 비굴한 모습에 라인하르트는 그를 한때 친구였던 벌레라고 생각하며 그냥 죽여버릴까? 하는 충동을 겨우겨우 참아낸다.
  • 오스트마르크 산악엽병사단 - 오토 스코르체니(빈, 스파르타주의 - 국가사회주의, SS 실용주의계) : 오스트리아 일대를 점거한 스코르체니의 세력으로 중립적 성향이다. 겉으로는 영적 나치즘으로 보이지만 그저 군인적 성향만 보이는 스코르체니는 지역 내의 국방군을 숙청하지 않고 자신의 특공대와 공존하고 있는 중. 하이드리히는 이런 스코르체니를 '흔들기 어렵지 않은' 사람이나 유대인을 위해서라도 일할 사람이라고 평한다.[41] 실제로도 하이드리히의 제안에 금방 눈치를 채고 군말없이 협력하는 세력. 다만 끝까지 방치해 두면 힘러에게도 넘어갈수 있다. 주의.
  • 루프트바페 최고사령부 - 요하네스 슈타인호프(레겐스부르크, 군사독재 - 전제주의, 온건계) : 괴링 휘하였던 공군 세력들의 잔당. 이외에도 Ho229를 개발한 호르테 형제도 이곳에 합류하였다. 둘러싸인 SS 군벌들이 군벌들인지라 슈타인호프는 타 세력과 달리 생존에 집중하고 있으며, 공군력을 동원해 침입중인 SS들을 간신히 내쫓고 있다. 레겐스부르크의 정유 시설이 파괴되어서 공군은 많지만 그걸 굴릴 수 있는 연료와 부품이 부족한 상황이며, 이 때문에 하이드리히는 이들에 대한 물자지원을 통해서 이들을 흡수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온건계 군벌이 그렇듯 너무 늦으면 힘러가 침공해 올수 있으니 주의. 그리고 다른 군벌에 비해서 기본적 교섭 증가수치가 낮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 SS노동수용소 뉘른베르크: 에른스트 칼텐브루너(뉘른베르크,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계) - 칼텐브루너는 완전한 친 힘러파로, 하이드리히가 칼텐부르너를 상대하는 방법은 전쟁으로 합병하거나 내부적으로 전복 공작을 벌이는 방법밖에 없다. 특이하게 내부 전복 루트로 진행할 시 비슷한 형식으로 전복이 가능한 로타링겐 기사단국의 호감도가 올라갈수 있다. 로타링겐 기사단국의 전복 난이도보다 뉘른베르크가 낮은것 뿐만이 아니라 몇 없는 토착민 세력들의 호감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수 있다.
  • SS상급지부 베스트팔렌 - 프리츠 클링겐베르크(에센,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계) : 포섭 중점 이름이 높은 성의 사나이인데, 이는 TNO세계에서 힘러가 계획하던 베벨스부르크 성[42]의 요새화 계획과 관련된 내용으로, 프리츠는 힘러에게 이 계획의 책임자로 임명받은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는 친 힘러-친 하이드리히 파벌이 다투는 상황.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부르군트도 클린겐베르크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지면서 클린겐베르크는 내부 파벌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중이다. 하이드리히는 클린겐베르크의 요새화 계획을 지원하거나[43], 아니면 공군 최고사령부의 충성심이 60 이상인 경우 공군력을 이용하여 성을 폭격함으로써 클린겐베르크를 굴복시킬 수 있다.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 프리츠는 유고슬라비아 침공 당시 단 6명으로 베오그라드를 항복시킨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
  • 슈타이너 강습단 - 펠릭스 슈타이너(프랑크푸르트, 스파르타주의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자) : SS 소속임에도 국방군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 슈타이너는 내전의 위기가 고조되자 이에 혐오감을 느끼고 두 병력을 모두 거느린 채 프랑크푸르트에 주둔중이다. 이질적인 두 군대의 공존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교섭의 주요 과제이며, 하이드리히는 두 집단을 화합시키거나, 한쪽 편을 들면서 흡수시킬 수 있다. 상당히 일찍부터 힘러의 영향력 투사가 이루어지는 지라 교섭 디시전 난이도가 높은 편.
  • 슐레지엔 산업연합 - 카를 항케(카토비츠, 기술독재 나치즘 -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계) : 슐레지엔 지역의 기업체와 친슈페어파 잔당이 만든 세력. 기업체에 접근하여 항케를 실각시키고 내전 이후 기업체 세력을 삼키려 시도하는 선택지와, 항케에게 접근하여 과거 SS 직위에 대한 인정과 보상, 안전보장, 산업기관에 감시병력 배치 등을 통해 흡수하는 방법이 있다.
  • 아리아 국민전선 - 콘라트 헨라인(아우시히, 스파르타주의 - 국가사회주의, SS 실용주의자) : 주테텐란트에 있는 독일계 세력. 헨라인은 자신을 좌천시켰다고 생각하는 하이드리히에 분노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힘러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레벤스보른을 실시하고 있다. 단순히 충성도를 높여 포섭하는 것 외에도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을 후원하며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을 점령시키는 중점을 탈 수 있는데, 단독으로는 국민전선이 열세라 쉽지 않지만 지원을 통해 성공할 경우 호감도가 올라가며 빠른 흡수가 가능하다. 하이드리히는 최근 독일인에 대한 힘러의 기준이 극적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주데텐에서 레벤스보른을 해봐야 슬라브 잡종 취급 당할 것이라고 여긴다. 하이드리히는 이 짓거리를 역겨워하지만 세력 확대를 위해 헨라인이 자기만족하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하이드리히 컨텐츠가 교체가 예정된 이후 보호령 자체가 출현하지 않아 강제로 협력을 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 베르제르커 의용군- 울리히 베게너(로스토크, 군사독재 - 전제주의, 온건계) : 포메른 일대를 점거한 슈파이델의 파벌이였던 중립 국방군 1 척탄병사단 베르제르의 잔존 세력으로, 하이드리히가 게르마니아 쿠데타에서 슈파이델을 살리는 선택지를 고르면 슈파이델의 중개로 빠르게 흡수할수 있다. 울리히 베게너 장군은 실제 역사에서 GSG 9을 창설했고 TNO의 1PGD 역시 마찬가지로 대테러 부대다. 포메른 주민들도 하이드리히 정권 보다는 베르제르커 반군을 더 믿고 의지한다.
  • 무장친위대 최고사령부(SS 실용주의계) - 해당 세력은 하이드리히가 내전 중 누구의 지원을 받을지 선택한 중점에 따라 독일 SS 선택시 독일친위대 최고사령부(헤르베르트 길레 국가사회주의), 부르군트 SS 선택시 부르군트친위대 최고사령부( 파울 하우서,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무장친위대 선택시 무장친위대 최고사령부( 질베스터 슈타들러,국수주의)로 지도자가 다르게 나오며 세 장군은 형제 장군으로 지칭된다. 각각의 성향은 하우서는 친 힘러, 스타들러는 중립에 가까운 친하이드리히, 길레는 완전한 친 하이드리히 성향이다. 핵 홀로코스트 계획에 대해 길레는 하이드리히를 전적으로 믿고[44] 스타들러는 반신반의하며[45] 하우서는 하이드리히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한다고 여긴다. 스타들러나 길레가 지도자일 경우엔 일반적 포섭작업으로 끝나지만, 하우서가 지도자일 때는 최고사령부 자리를 다른 이념 지지율을 올려서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 이후 다시 다른 지도자가 올라서서 포섭이 가능하도록 짜여있다. 하이드리히는 하우서의 부르군트친위대가 사령부를 장악하고 하이드리히와 함께하지 않을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머지 두 친위대의 존재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전복시킬수 있을것으로 여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동반하는 숙청으로 인해 어느정도 손실은 각오해야 한다.
  • SS국가지도자 보안국 - 클라우스 바르비(단치히, 부르군트 체제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계) : 힘러가 세워둔 동부 지역의 하이드리히 감시세력으로, 협상이 거의 불가능하고 무력으로 진압할수 있으며 군사력이 보잘것없어서 쉽게 처리가능하다. 무력 진압을 하지 않을시에는, 힘러에게 보내는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어쩔수 없이 하이드리히에게 무릎꿇게 하도록 시도하려 한다.
  • 프루센 자유국 - 아돌프 아이히만( 바이스베르크, 스파르타주의 - 국가사회주의, SS 이상주의계) : 아이히만은 완전한 부르군트 세력으로, 해당 지역에 수용소를 만들고 인종 절멸 계획을 다시 실시한다. 협상으로 끌어들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는게 편할정도. 프로이센 자유국을 진압할시 위의 스파르타쿠스의 후예 세력의 호감도가 올라가면서 협상이 가능해진다. 조건이 어렵지만 만일 아이히만에게 유화적으로 접근할 시에는, '노예 반란' 인 스파르타쿠스의 형제 세력을 함께 공격하면서 동맹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주 개편으로 인해 점령 조건인 주 인접이 불가능해져서 제대로 된 플레이가 불가능해졌다.
  • 스파르타쿠스의 후예 - 카지미에시 피에호프스키[46](쾨니히스베르크, 파르티잔 운동 - 전제주의, 원주민) : 베아제이커 의용군과 같이 하이드리히 통일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노예 반란세력으로, 인근 SS 국가들을 처리하면 슈파이델의 중개를 통해 직접 협상이 가능해진다. 끌어들이기 위해서 상당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나, 프루센 자유국 컨텐츠가 정상적으로 구동되지 않아 현 상황에서는 플레이가 불가능에 가깝기에 이벤트를 보기 위해 콘솔을 만질 필요가 있다.

    여기에 하이드리히가 외부 국가로 교섭할수 있는 국가이다.
  • 니더란데 SS국 - 헹크 펠드메이여르(암스테르담, 국가사회주의) : 친 힘러파벌이나, 하이드리히가 되니츠의 크릭스마리네 세력을 온전하게 흡수하면 되니츠가 계획하는 상륙작전으로 네덜란드를 무력침공하여 병합할수 있다.
  • 폴란드(바르샤바, 가부장주의, 원주민) - 평범하게 재 점령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스파르타쿠스의 후예 세력과 협상 중점을 탄 이후 협상장에서 하이드리히가 핵전쟁 계획을 알려주면 동맹을 할 수도 있다.
  • 카우카지엔 - 토착민 세력에게 유화적인 정책을 선택하지 않은 채 접근시 동맹이 가능하다. 포커스 트리 자체는 첫 트리에서 동맹의 유무가 결정되고 사용할수 없는 껍데기 트리. 만일 토착민 세력에게 유화적으로 접근할 시 요지아스는 힘러와 하이드리히를 둘다 비난하며 중립을 선언한다.
  • 콘월 - 인게임 시점에서는 영국 내전이 끝난 직후의 상황인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할더와 수비군은 안전한 귀국이 필요한 상황이다. 콘월이 먹혀버릴 경우에는 영국에게 연락해 포로들을 송환해달라고 요청하며, 콘월이 잔존할 경우에는 안전한 귀국을 위해 해군, 공군 세력들을 동원하여(포섭 필요) 귀국을 보장하는 선택지가 있다.

독일을 통일했지만 하이드리히의 휘하 SS 지부들이 각자 생각이 달라 독일은 수많은 SS 군벌들로 또다시 갈라지게 된다. 그와중에 힘러와 하이드리히는 이 군벌들을 서로 자기 쪽으로 끌어드리려는 경쟁을 시작하게 되고, 모든 군벌들이 편을 가르게 되는 시점에서 하이드리히가 핵탄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힘러가 핵전쟁을 일으키는 이벤트와 함께 열핵전쟁으로 이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하이드리히는 부르군트를 공격한다.

오스트파리를 점령하면 힘러는 하이드리히를 아리아인을 유대인에게 팔아먹은 앞잡이라 욕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 하지만 보어만의 정치력과 슈페어가 얻었던 신뢰, 괴링이 가진 인기, 그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하이드리히의 체제는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 자식들은 자신을 혐오하고 의절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가정이 박살난다. # 이미 두 차례의 내전으로 인프라는 파괴되고 난민들은 넘쳐나 독일은 파탄국가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국가사회주의의 신념 자체에 의문을 가진 그는 독일인들이 행한 수많은 잔학행위 보고서와, 그에 대비되는 슬라브인, 발트인, 유대인 등 그가 필요로 인해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열등민족들의 분투와 성과를 나타내는 보고서를 확인하고 자신이 배신행위라 여긴 동맹들이 없었으면 내전 승리는 불가능했다는 결론에 다다르며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실의에 빠져 꽐라가 된 뒤, 정신을 차린 하이드리히는 아내 리나에게 국가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신은 실패한 이념에 충성했으며, 내전을 일으켜 아리아 민족의 추태와 타락을 드러낸 민족의 반역자라는 고백을 남기고 자살한다. # 이후 독일은 3차 내전에 빠진다.

3차 내전은 비교적 간단하게 갈라지는데, 기존의 성향을 유지하는 헤르게르트 길레, 개혁파로는 슈파이델이 생존할시 슈파이델, 사망했을시 라인하르트 겔렌이 나오며, 벨기에 지역은 왈롱 SS 지도자인 레옹 드 드그렐이 국수주의 세력으로 다시 독립, 샤를마뉴 SS의 북프랑스 지역은 프랑스국이 침공하기 시작한다.[47]


하지만 결국 내전 도중 개혁파와 부르군트파 내에서 쿠데타가 터지고[48], 그 쿠데타 내에서도 또 역쿠데타가 터지면서 점차 내전 자체가 혼돈 속으로 빠지다가 결국 전 지역을 검은 무정부 상태가 집어삼키며 독일은 자멸한다.[49] 최종적으로는 내전 도중 독일 본토에 선전포고 하는 베네룩스, 폴란드, 뵈멘-뫼렌 일대도 함께 무정부 상태로 변한다.

전임 모드 최고 개발자 Pacifica는 레딧에서 이후 벌어질 일을 독일 최악의 엔딩일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핵보유국인 독일이 무수히 많은 군벌들로 분열되며 핵을 가진 수많은 군벌들과 SS 광신자들은 군벌간 분쟁에서 패퇴해 밀려날 바에 핵무기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 최악의 경우에는 부르군트 잔당들이 주변 국가에 핵테러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제일 심각한 것은 군벌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핵무기를 암시장에 팔아치워 전세계로 독일산 핵무기가 반출되는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잔혹한 학살자이자 나치 친위대의 고위직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역설적으로 나치즘 자체에 대한 회의와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고, 결국 독일의 차기 총통이 될 수 있는 인물들 중에선 유일하게 자살로 끝맺게 된다.

TNO가 공개되기 이전 개발일지만 나올 때만 하더라도, 나치즘에 대한 반성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슈페어의 경우 컨텐츠가 존재하는 총통 3명 중 가장 치밀한 파시스트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과도 대비된다. 가장 나치즘에 대한 반성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 개인적으로나마 나치즘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이색적인 엔딩이다.

한편 이러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AI 하이드리히는 구도 상으로도 성능 상으로도 승리가 불가능하며 커스텀 설정 역시 불가능하다. 이 이유는 중화민국 호국군 역시 로어 상의 이유로 군비가 제한당하는 난징 국민정부까지는 어떻게 AI가 처리할 가능성이 있으나 일본과의 본격적인 전면전에서는 밀리는 이유와 비슷하다. TNO의 중심 스토리인 미국-독일-일본 삼축 냉전 체제는 석유 파동까지 계속되어야 하는데, 이 루트가 현실화될 경우 그냥 TNO 스토리라인의 진행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하이드리히 승리에 관한 3국의 반응 이벤트들이 파일로 존재하긴 하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실상의 더미 데이터 취급을 받는다.

#2 #3 #4

2. 플레이 불가능 세력

2.1. 파일:괴링 독일 국기.png 괴링의 독일

금빛의 제국원수

총통이 독일 제국의 가부장적인 통치자라면 헤르만 괴링은 그의 인기 있는 삼촌입니다. 그의 유쾌한 태도와 수십 년 동안 그들의 이익을 증진시킨 국방군에 의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라이히원수는 항상 그의 라이히와 총통에게 충성하는 부지런한 군인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믿는 것은 그 남자의 야망을 얕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게슈타포의 창시자이자 수장으로부터 4개년 계획의 전권대사까지 많은 유명한 직책을 가진 귀족 괴링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을 키워왔습니다. 카린할의 거대한 저택에서 그의 (라이히의 정복지에서 약탈해온)방대한 의상, 보석, 예술품들을 가지고 거주하면서, 라이히원수는 가능한 한 자기 주변의 영향력을 최대한 많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와는 예전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그는 군국주의 운동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됨으로써 관련성을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괴링이 훨씬 더 많은 관심과 힘을 얻고자 하는 의도로 급진적인 세력의 꼭두각시를 자처하고 나서는, 거만한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제안이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괴링은 오랫동안 자신이 헌신적인 만큼 교활하다는 것을 증명해 왔기 때문입니다. 라이히 정치의 미래에서 그의 역할이 무엇이 될 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내 방식이 관료주의로 인해 저지되는 일은 없을 거다!

플레이 불가
The victor will always be the judge, and the vanquished the accused.
승자는 언제나 재판관이 되고 패자는 피고석에 선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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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링은 "만약 연합군 폭격기가 한 대라도 독일에 닿는다면, 나를 헤르만 마이어라 불러도 좋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대전에서 국가사회주의가 승리함으로서 괴링의 허풍은 더 이상 허풍이 아니게 되었고, 연합군이 패배하면서 괴링의 명성은 드높아졌습니다.

어찌보면 정치적으로 유능하다 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깡패, 민병대, 그리고 '애국자' 등을 사용해 그의 권력을 방해하는 자들을 몰아내는 것으로 괴링은 군부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귀울이는 유일한 정치인으로서 독일 정계의 중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른 좋은 집권 방법을 찾지 못한 괴링은 늙은 총통을 '라이히가 번영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라이히의 적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만든 제복을 입은 아첨꾼들과 길을 같이했습니다.

이제, 괴링은 많은 사람들이 라이히의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하는 길을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얼마 안가 망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그런 것인데, 왜냐하면 괴링이 바다 건너에 눈길을 돌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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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군트의 원자폭탄은 루르에 도달할 수 없다! 루르에 도달한다면 나는 괴링이 아니라 마이어로 내 성을 간다."[51][52]
원래 역사의 적의 폭격기가 도달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이 원본이지만 TNO 세계관에선 루프트바페가 압승했으므로 발언이 또 추가되었다.

독일 국방군 군부 다수와 군국주의자의 지지를 받는 세력으로 내전 발발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포메른, 포젠, 슐레지엔 지역을 근거지로 봉기한다.[53] 군부와 군국주의자의 지지를 받는 세력답게 내전시 정예 부대를 다수 보유한채로 시작하기에 제작진의 말로는 보어만 다음으로 이길 가능성이 높은 세력이다. 내전에서 승리하면 군비 확충 및 정복 전쟁을 재개하는데, 그 논거는 "독일의 전성기는 주변국을 정복하고(약탈도 하면서) 다니던 2차 대전 때였고, 따라서 독일의 중흥을 위해서 그때처럼 주변국을 정복하고 약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리콘 드림 패치를 통해 컨텐츠가 삭제되고 내전에서 승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약화되었다. 보어만, 슈페어의 경우 나머지 열강들과의 상호작용이 어느정도 유지되고 하이드리히의 경우 중기간 국내 컨텐츠를 통해 자체적인 게임 오버 루트로 종료가 되나[54], 괴링의 경우 극초기 만들어진 컨텐츠의 코드가 다른 국가들과 이미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고 있었고 게임오버 이후 열강과의 외교, 대리전 컨텐츠 관여가 불가해져서 다른 주요국들 플레이에도 지장이 되었기에 독일 리워크의 첫 대상으로 전면 삭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 드림 패치 이전 콘텐츠】
사실 괴링 자신은 나름대로 현재의 독일의 상황에 문제를 인식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는 인물이며, 현실에서도 그랬지만 완전히 무능하다고 할만한 자도, 전쟁광도 아니다. 초군국주의는 페르디난트 쇠르너를 위시로 한 군부의 사상이다. 루프트바페를 무척이나 아끼는 모습을 본 군부에서는 괴링을 자기들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고, 당장 지지 세력이 궁했던 괴링 입장에서는 딱히 이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주객이 전도되어 괴링이 군부의 지지를 얻는게 아니라 군부가 괴링을 내세우는 지경이 되자 괴링도 군부 뿐 아니라 지지 세력을 다각화하거나, 아예 군부와 손절하려 하지만 이미 발을 깊게 담군터라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히틀러가 보어만, 슈페어를 후계자로 지명하면 이들을 저택으로 불러 환심을 사려하지만 보어만 측에서는 초대장을 찢어버리고는 쇠르너에게 이 사실을 귀띔해준다. 슈페어는 초대장을 진지하게 검토하지만 괴링이 4인방, 특히 트레슈코프와 맞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괴링과 손잡았을 때의 이점을 아쉬워하며 포기한다. 편지가 유출되어서 쇠르너가 괴링의 외도를 알게 되는 건 똑같다.

전 모드 제작자 Pinkpanzer의 인터뷰에 따르면 대중매체에서 흔히 나치를 초효율적인 전쟁 기계 따위의 무언가로 보는 것과 달리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의 원천은 전장과 점령지에서 철저한 약탈이었고 이를 통해 이뤄지던 것은 주먹구구식의 비효율적 경제였단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드를 만들었기 때문에 괴링(더 정확히는 쇠르너)이야말로 제작의도와 고증에 맞는 가장 나치다운 세력이다.

내전에서 패배하면 중앙아프리카 국가판무관부로 망명한다. 뮐러가 본국에 제대로 보고하면 암살자에게 죽고 보고를 누락하면 뮐러와 함께 사냥을 다니다가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내전에서 승리하면 적어도 수명연장은 하는 보어만을 뛰어 넘어서 전쟁에만 골몰해서 획기적으로 나라를 말아먹고, 침략전쟁으로 경제난을 해결하고자 한다. "경제에 진실이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사상을 가진 괴링은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경제 문제를 해결한다. 70대인 괴링의 나이도 있어서 후계자는 조카인 하인츠 괴링으로 선정되며, 하인츠는 육군 장성으로 쓸 수 있다( #).

연구트리도 쓸데없이 거창한 프로젝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나마 제정신 박힌 것은 60년대에 원자력으로 완전히 발전방식을 전환해서 상당한 내정 보너스 받는 것이고[55], 전투 마약 실험하다가 병사들 모두 마약 중독자로 만들거나, 태양 레이저 만들겠다고 1000억 수준 적자를 내고 아무 성과도 없다든가, 가장 큰 개성으로는 MBT를 마개조하는 중점으로 3단계로 생산비와 성능 사이에서 고를 수 있는데 전부 성능을 고르면 MBT를 1.2배 정도 강해지게 하는 대신 생산비용이 3배로 늘어나며, 마지막에는 2배정도 비싼 대신 약 1,2배 강해서 70~80년대 전차 수준을 성능을 지닌 슈퍼전차를 만든다.

제일 비범한 것은 외교 트리가 없고 그 자리를 방대한 전쟁 트리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트리는 0, A, B, C로 나뉜다.
  • 전쟁계획 0 - 구 독일권 패권 복구
    • 봄 작전: 슬로바키아 침공. 이후 슬로바키아 국가판무관부가 세워지며 국가판무관은 프리드리히 푀르츠.
    • 낫질 작전: 네덜란드 침공. 이후 국가판무관부 설립 없이 게르마니아에 통합된다.
    • 몰트케 작전: 덴마크 침공. 보통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통합된다.
    • 뵈무스 상황[56]: 보헤미아-모라바 통합.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보호령 설립 없이 평화적으로 통합된다.
    • 동풍 작전: 오스트란트 침공. 오스트란트 내전에서 누가 이겼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이 바뀐다. 이후 국가판무관부 설립 없이 게르마니아에 통합된다.
    • 아우구스투스 상황: 폴란드 침공. 이후 폴란드는 영원히 죽고,[멸망문구] 총독부 설립 없이 게르마니아에 완전히 편입되며 바르샤바는 그로스프로이센으로 개명당한다.
  • 전쟁계획 A - 유럽 내 중립국 및 배신자 처리 계획
    • 탄넨바움 작전: 스위스 침공 이후 게르마니아에 편입. 산악 지형에 국경에 레벨10 요새를 도배하고 있어 괴링이 AI라면 여기서 확장이 멈추는 경우가 많다.
    • 류리크 작전: 우크라이나 침공. 복종을 선택하는 디시전에서 우크라이나가 거부했을 시에만 해금. 이후 크림으로 도망간 되니츠의 크림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 및 함대를 확보하는 디시전을 선택할 수 있다. 제2차 바다사자 작전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필수.
    • 마르가레테 작전: 헝가리 침공.
    • 체페슈 작전: 루마니아 침공.
    • 페테르 작전: 세르비아 침공. 발칸 지방들은 모두 발칸반도 국가판무관부에 편입된다. 국가판무관은 레오 헵.
    • 제2차 바다사자 작전: 잉글랜드 침공. 잉글랜드가 OFN에 가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쟁을 선포하면 탈퇴된다. 이후 브리튼 국가판무관부가 세워지며, 예전 독일의 군정이 있었던 콘월 지방은 독일의 직할령이 되고 그 군정장관이었던 프란츠 할더가 국가판무관이 된다.
    • 체르디치 상황: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얼스터, 웨일스 침공. 잉글랜드 침공을 완료해야만 해금된다. 이후 모두 브리튼 국가판무관부에 편입. 다만 전쟁계획 A의 시간조건이 빡빡한 관계로 아일랜드가 동맹국인 경우에는 독립국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 북극광 작전: 노르웨이 침공. 노르웨이의 집권당이 어떻냐에 따라 괴뢰국으로 숙이고 들어오기도 한다.
    • 한자 작전: 스웨덴 침공.
    • 라플란드 작전: 핀란드 침공. 북유럽 3국은 침공 이후 스칸디나비아 국가판무관부가 설립된다. 국가판무관은 하인츠 게오르그 렘. TT 패치 이후 핀란드가 팍트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스칸디나비아 국가판무관부는 스웨덴, 노르웨이에만 설립된다.
    • 헨리 작전: 모스코비엔 침공. 모스코비엔의 상황이 어떻냐에 따라 할 수 있는 행동이 바뀐다. 독일계와 러시아계 거주 구역으로 분할되었다면 독일계 지역은 괴뢰국이 되고 러시아계 지역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다. 이후 새로이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가 재설립되며 국가판무관은 에리히 폰 뎀 바흐. TT 패치 이후 모스코비엔이 붕괴되어 혼돈이 펼쳐지는데 이때 파울루스부르크 비상행정부나 티흐빈 비상행정부가 모스코비엔을 통일할 경우 중점을 통해 평화적으로 국가판무관부화되고 아직 내전 중이라면 내전 중인 모든 모스코비엔 군벌에 선전포고해 국가판무관부를 새로 세운다.
    • 기타: 불가리아, 카우카지엔 침공. 불가리아는 이탈리아의 편에 섰더라도 전쟁을 선포하면 자동으로 탈퇴된다. 카우카지엔은 요지아스가 지도자가 아니라면 디시전을 통해 평화적으로 기어 들어온다.
  • 전쟁계획 B - 트라움비라투스 일소 및 유럽 정복 계획
    • 청색 상황: 이베리아 침공. 실행 이전 프랑스국과 브르타뉴를 확보할 수 있다. 프랑스국은 이탈리아의 편에 서지 않았다면 옥시타니아 국가판무관부로 개편되며(국가판무관은 아돌프 호이징거), 브르타뉴는 팍트에 가입하거나 갈리아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구데리안의 아들인 하인츠 귄터 구데리안)로 교체될 수 있다.
      이후 이베리아 내전이 터졌느냐 연방이 유지중이냐에 따라 중점이 달라진다. 정복 이후 이베리아 국가판무관부를 세우거나, 아니면 포르투갈, 카스티야, 바스크, 갈리치아, 카탈로니아 모두 따로 국가판무관부를 세우는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내전이 터진 적이 있으면 후자의 선택만 가능하다. 지브롤터, 모로코, 알제리를 침공하는 디시전도 선택할 수 있으며 지브롤터는 직할령으로, 모로코와 구 이베리아의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은 마라케시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귄터 키슬링)가, 알제리는 북아프리카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프리드리히 헤이테)가 세워진다.
    • 가이세리크 작전: 이탈리아 침공. 이탈리아와 그 괴뢰국들인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그리스, 동아프리카 등도 같이 침공한다. 이탈리아에 민주정부가 들어서 OFN에 가입하거나 1970년 이후 이탈리아가 핵무기 개발을 완료한 상태에서 침공을 시작하면 3차 세계대전 직행이므로 게임 오버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엔 괴뢰국으로 로베르토 파리나치[58]가 수장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들어선다. 리비아와 이집트는 북아프리카 국가판무관부에 편입되며, 동아프리카 쪽은 수단-대아비니시아 국가판무관부가 들어선다.[59] 국가판무관은 프리츠 바이에를라인.
    • 게어트루트 작전: 터키 침공. 이후 아나톨리아에는 그리스를 포함하는 소아시아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울리히 드 마이치어)가 설립되고, 시리아에는 시리아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오토 폰 뷜로프)가 설립된다.
    • 적색 상황: 러시아 국가들 침공. 유저가 여기까지 오면 보통 러시아는 4~8개 정도의 군벌이 존재할 것이다. 중점으로 테러 폭격을 재개했다면 이들은 적색 상황 발령 시 이념에 상관없이 전러시아 의회라는 하나의 세력에 가입해 독일에 맞선다. 디시전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침공할 수 있다. 완전한 정복 이후엔 모스코비엔은 우랄 산맥까지 확장하며, 중앙아시아는 튀르케스탄 국가판무관부가(국가판무관은 에카르트 아펠트), 나머지 러시아 지역은 시베리아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베른 폰 베어)와 극동 국가판무관부(국가판무관은 테오도어 톨스도프)로 분할된다.
  • 전쟁계획 C - 라이히 경쟁자 제거 계획:
    • 흑색 상황: 부르군트 침공. 정보 루트에서는 독일보다 우위에 있는 부르군트에 대한 방첩능력을 증가시키며 동시에 현지 호응자들을 물색하고 공작을 통해 주요시설을 파괴하며 군사적으로는 육해공군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고 전쟁에 대한 지지도를 증가시키며, 부르군트를 둘러싼 국가판무들을 무장시켜서 합동 부르군트 작전을 유도한다. 하지만 정작 방첩 분야 및 현지 호응자를 물색하려고 포커스를 진행하면, 이 시기에는 정말로 깨끗하게(...) 내부 호응자들이 박멸되었다는 정보와 함께 계획이 실패한다.
    • 록웰 상황: 미국 침공. 북쪽 교두보를 통한 침공 루트인 비킹 상황( 에릭존 작전, 헤센 작전), 남아메리카( 베네디히 상황[60], 아마존 상황, 폰 슈페 작전, 막시밀리안 작전 등 중남미 전체국가) 교두보를 통한 침공준비 계획, 카리브 일대 쿠바, 아이티에게 협력을 요청하고[61] 카리브 섬을 점령하여 공격하는 히드라 작전, 대서양을 거치는 상륙작전을 계획하며 독일계 미국인 협회와 접촉하는 루트가 있으며, 최종적으로 이카루스 작전을 통하여 미국에게 선전포고 한다. 전쟁 도중에는 독일계 미국인 협회를 조종해 정부 청사를 습격하고 남부를 선동해서 독일 협력군인 백색 군단을 남부에 생성시킨다.
    • 박명 상황: 일본 침공. 북쪽으로는 극동 판무관부의 전쟁을 준비시키거나 만주국 일대에 러시아계 국가를 설립시켜[62] 만주 일대를 압박하고 신장과 몽골을 포섭하며, 서쪽으로는 중동 국가를 점령하거나 포섭시키며 인도까지 진출하며, 중국, 동남아 등의공영권 국가들에게 접근하여 확보 경쟁을 한 이후 일본에게 선전포고한다.

독일이 한 나라를 침공하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경우, 경제가 버티지 못해서 쇠르너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러면 쇠르너가 지도자가 되고, 전쟁 중이였던 나라들과는 평화조약이 맺여지고, 중점이 사라진다. 쇠르너의 컨텐츠가 정식 도입되지 않은 현재로는, 괴링의 게임 오버로 인식하면 될 듯. 이외에 괴링이 뇌졸중으로 죽는 이벤트도 공개되었다.

정복한 국가를 약탈해 경제 위기를 임시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여서 정복 전쟁이 막히면 경제가 박살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상대 국가들도 독일이 영역을 확장할수록 주변국들이 저항하는 디시전과 방어 국민정신이 생겨나기에 점점 정복 난이도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을 잘 요약한 패러디 영상( 마이어의 퍼펙트 경제교실(원본), 한글 자막)이 있다. 원곡과 제목의 유래는 치르노의 퍼펙트 산수교실
【스포일러】
전쟁계획 C는 부르군트, 미국, 일본이 핵보유국이라 무조건 핵전쟁 직행이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고, 핵전쟁 금지모드나 콘솔을 사용하여 핵전쟁을 피하고 정복을 한다 해도 대부분의 이벤트 내용은 "치트 쓰지 마라"라고 뜬다. 제작진이 직접 (현 버전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까지 오면 페르디난트 쇠르너도 사실상 군부를 통제할 수 없는 꼭두각시가 되고, 쇠르너의 반대파이자 핵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내세운 오토 에른스트 레머가 원수가 되며 군부를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과의 전쟁 중 미국이 항복 직전까지 간다면 OFN 해체 이벤트가 뜨면서 OFN이 사라진다던지, 미국 남부에 세워지는 아메리카 국가판무관부는 아직까진 아무런 효과도 설명도 안 붙어 있지만 나름 그럴듯한 포커스 트리가 만들어져 있다. 현 버전에서는 의미 없는 컨텐츠지만 차후 버전에서 업데이트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63]

【TT 패치 이전 콘텐츠】
전쟁계획 B까지 완료하면 기나긴 전쟁에 지친 군부에서도 이쯤하면 그만해도 되지않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전쟁계획 C를 실행하지 않고 라이히스타크 논쟁 중점을 찍으면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라이히가 혼란에 빠지고 새로운 포커스 트리가 개방된다. 쇠르너의 움직임을 알아챈 괴링은 서둘러 국방군 사령관을 교체하고 충성파 확보에 몰두하지만 이후 쇠르너를 위시한 군국주의자, 국수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2차 독일내전으로 빠져든다. 괴링은 남부, 슈파이델이 북서부, 쇠르너는 동부 지방을 가지고 3파전을 시작하게 되며 국가판무관부들도 각자 편을 갈라서 싸우게 된다. 슈파이델을 원수로 유지했다면 슈파이델과 전쟁이 걸리지 않지만 나오지만 원수를 교체했다면 슈파이델도 적으로 나오게 된다.

1차 내전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내전의 늪에 빠졌으므로 독일의 경제는 빠른 속도로 악화되며, 독일의 지배가 약해진 틈을 타 판무관부들에서도 굴복시켰던 나라들이 되살아나서 아수라장이 된다. 우랄산맥 너머에서는 전러시아 의회라는 나라가 등장해 시베리아, 극동 판무관부를 정복하고 우랄산맥 동쪽의 모든 러시아 영토를 통일한다.

1차 내전에 비하면 난이도는 매우 높다. 3파전 속에서 본토가 정복 당하더라도 괴링, 슈파이델, 쇠르너는 자신들을 지지하는 판무관부로 도망쳐서 항전을 계속하기 때문에 저항하는 판무관부와, 독립전쟁을 개시한 나라들까지 모조리 밟아야 내전이 끝난다. 더군다나 기존의 석유 파동 디버프에 박살난 경제 때문에 독일에 기근이 덮쳐 사단의 공격력이나 안정도 등을 크게 떨어트리는 기근 디버프까지 받아 군대의 질이 크게 악화된다. 2차 내전마저 승리로 끝내면 괴링은 독일뿐만이 아닌 신세계의 질서를 방해받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벤트가 뜨고 엔딩이 뜨는데, 이 때 괴링은 79세로 80줄을 바라보는 노인이며 2번 내전을 치렀으니 미래가 암담한 건 보어만과 비슷하다.

만약 상대 세력을 제때 굴복시키지 못하고 2차 내전이 장기화되면 독일의 붕괴 이벤트와 함께 독일이 갈갈이 찢기고 러시아처럼 지역 군벌화가 되며 엔딩이 뜬다. 3차 내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후 전쟁 선포 같은 어떠한 외교적 행동도 불가능해 사실상 엔딩이다.

2.2. 게르마니아 보호구역

슈파이델의 쿠데타

라이히는 무너졌습니다. 각 세력들은 제국의 시체를 차지하기 위해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한때 질서가 유지되었던 곳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거나 여러 세력에 합류하며 긴급위원회 역시 붕괴되었습니다.

오늘 국방군 장군 한스 슈파이델이 병사들을 이끌고 게르마니아에 진입했습니다. 이들은 이 내전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슈파이델은 군대는 권력을 위해 같은 독일인과 싸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라이히와 그 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와 그 군대는 게르마니아를 중립지대로 선포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세력이 이 도시를 무시합니다. 이들은 게르마니아를 얻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그것으로 얻는 것보다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세력이 게르마니아를 공격할 때 까지 슈파이델의 평화가 얼마나 오래갈가는 걱정거리입니다.

민중의 사람이군, 그런 것 같아.
You have fought like lions and been led by donkeys.
당신은 사자처럼 싸웠고, 당나귀에게 지휘받았소.[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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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파이델이 국방군에서 자랑스럽게 복무한지, 그리고 조국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긴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는 그가 전투에서의 용맹을 증명하여 곡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얻은 계기가 된 50년대의 서러시아 전쟁이 절정에 달할 즈음에 SS에 대항하여 일으킨 빠른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서 내전을 간신히 막아냈고, 그는 이를 통해 처음으로 유명세에 올랐습니다. 떠오르는 별이 된 그는 추가적으로 그의 오랜 상관과 개인적인 친구인 에르빈 롬멜의 인기에 편승했고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후 슈파이델은 페르디난트 쇠르너를 위시한 라이히의 많은 군국주의자들에 대항했고,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쇠르너가 국방군의 통제권을 얻는 것을 막으면서 그는 생애 두번째로 라이히에서의 쿠데타를 예방했습니다.

여전히 슈파이델은 정치인이 아니며 커지고 있는 국방군과 정부의 유대관계에 강한 반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이히의 군 통수권이 그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 그는 그의 의무는 언제나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라이히에 있는 수많은 파벌 중 하나로 끌어들이려는 모든 꼬드김과 매수 시도를 거부하였습니다. 슈파이델의 충성심은 곧 그가 소용돌이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파도는 매일 더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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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이 벌어지면 1950년대에 벌어진 슈츠슈타펠 쿠데타를 진압한 영웅 한스 슈파이델 장군이 에르빈 롬멜과 함께 수도 게르마니아와 게르마니아 광역권에 친위 쿠데타를 행하여 점거한 다음, 어떤 내전 세력도 게르마니아를 건드리지 못 하도록 한다. 슈페어, 보어만, 괴링, 세 세력 중 하나가 승리할 경우, 게르마니아로 입성을 허락해 주지만. 자신이 내쫓았던 힘러 SS 세력을 이끄는 하이드리히가 승리하면 하이드리히 진영에 선전포고를 한다.

게르마니아는 중립 지대지만 어느 한 세력이 게르마니아를 침공하면 다른 세력들도 하이에나처럼 몰려든다.[65] 또한 다른 세력들이 쓰러지고 슈파이델 장군이 승리하면 슈파이델은 로마 시대의 이상적인 독재관처럼 내전을 끝내자마자 사임하기를 바라지만, 독일을 정치적으로 응집시킬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독일의 총통으로 오르게 된다.

현재 패치로 슈파이델 개입이 사라지긴 했지만 슈파이델이 독일을 통일할 방법이 하나 있는데 상술했듯 슈파이델은 하이드리히가 승리하면 하이드리히에 선전포고하기 때문에 하이드리히의 독일에게서 항복을 받아내면 다른 내전 세력들처럼 통일된 대게르만국이 재수립된다.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슈파이델이 독일을 통일하는 모습을 보려면 유저로도 고난이도인 하이드리히 독일로 내전에서 승리한 다음 병력을 모두 해산하고 슈파이델이 진격하는 것을 방관하면 되기야 한다. 그래도 중점이 존재하지 않고 하이드리히의 독일이 승리하였을 때 하이드리히에 선전포고 하는 이벤트와(일종의 매커니즘이라 아무 내용도 없다.) 하이드리히의 수도 슈트라스부르크를 함락시켰다는 이벤트(다른 내전 세력으로 함락시켜도 똑같은 내용이 뜬다) 둘을 제외하면 특별한 컨텐츠도 없기에 게임 오버에 가깝다.

2.3. 국가재건정부

피투성이 페르디난트

소위 '제복 입은 괴물'로 불리는 페르티난트 쇠르너 원수는 2차 세계 대전 동안 재능 있는 전략가이자 잔혹한 지휘관으로 폴란드와 소련을 향한 침공을 주도했던 군인으로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의 영광이 에르빈 롬멜, 한스 슈파이델, 그리고 심지여 헤르만 괴링의 의해 그에게 쌓아올려졌지만, 오늘날 알려져있는 원수의 이름은 더 넓은 관료 사회에서 호의적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야망을 품은 쇠르너는 국방군 전체의 우두머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뛰어난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승진의 꿈은 1950년대 서러시아 전쟁 동안 그가 일으킨 대참사로 인해 현실의 벽에 부딪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일반적으로 부하와 상급자 모두에게 경멸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르너는 제국의 군국주의자 파별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개척했고, 헤르만 괴링의 제1인자로 여겨집니다. 그가 경멸하는 한스 슈파이델처럼 그의 파별은 흉측한 군국주의자들의 광적인 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쇠르너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은 쇠락하고 죽어가는 독일의 구세주로, 국방군을 위한 더 큰 권력과 유럽 및 그 너머에서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요구하는 고귀한 전사단입니다.

탈영병들은 그에게서 자비를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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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페르디난트 쇠르너. 무정부 사태가 벌어지면 괴링이 무능한 지도자라고 생각해 괴링 세력에서 쿠데타를 벌인다. 괴링보다 더 잔혹한 군국주의자인 쇠르너는 독일을 위해서라면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가 전쟁에 참전해야하고 모두가 명예롭게 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재건정부의 컨텐츠는 막혔지만 쇠르너 본인과 쇠르너의 측근 오토 에른스트 레머는 독일의 4개의 주요 루트 모두에서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스포일러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괴링 루트. 괴링은 총통 직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군부의 꼭두각시나 다름없고 실세는 쇠르너를 위시로 하는 군부가 쥐고있다. 괴링이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쇠르너 역시 알고 있기 때문에 꼬투리를 잡아서 괴링을 몰아내려고 한다. 타국 침공이 너무 오래 걸려 전쟁 계획의 기한을 넘기거나, 군부의 불만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경제가 나락으로 가거나, 어떤 핑계라도 생기면 쇠르너는 이를 괴링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괴링을 몰아내고 본인이 지도자가 된다.

그렇다고 전쟁 계획이 술술 진행되어도 문제인 것이 전쟁계획 B의 중반쯤 되면 쇠르너 휘하의 군부가 너무 비대해지다 못해 분열이 시작되고 이쯤하면 전쟁을 그만해도 되지 않겠냐는 온건파와 핵전쟁도 불사하며 세계를 정복하고자하는 강경파가 성장한다.

전쟁계획 B 종료 이후 그대로 게임을 밀고나가서 전쟁계획 C가 발동하면 결국 레머가 주도하는 강경파가 군부의 주도권을 잡고 쇠르너는 이들을 제어하려다가 괴링과 같은 얼굴마담 신세로 전락한다. 핵보유국인 부르군트, 일본, 미국과의 전쟁이 예고되어있으므로 사실상 게임 오버.

전쟁계획 B이후 C로 들어가지 않고 석유위기가 터질때까지 버티면 괴링이 온건파를 회유해 군부를 제어하려들며 쇠르너, 슈파이델이 봉기해 3파전으로 내전이 터진다.

보어만 루트에서도 등장한다. 괴링 파벌이었지만 보어만이 내전 이후 세력을 확장하고 당내 군국주의자들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사면해 원수로 기용하고 군국주의자 파벌의 핵심 인물로 등극한다. OKW 사령관으로 슈파이델을 임명했다면 군국주의자 파벌 해체중에 암살되고 나머지 군국주의파 인물들은 레머의 지휘하에 쿠데타를 벌이려다가 진압당한다.

OKW 사령관으로 쇠르너를 임명했다면 슈파이델을 숙청하는데 성공하지만 이후 토사구팽하려는 보어만에 반기를 들어 발두어 폰 시라흐의 기만의 6월 계획에 참여한다. 기만의 6월이 성공하면 본인이 총통이 되고 시라흐, 레머 등이 내각에 참여한다. 반대로 기만의 6월이 실패하고 2차 장검의밤이 일어나면 사형당한다.

슈페어 루트에서도 보어만과 같은 이유로 사면하긴 하지만 영향력은 최소화시켜서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로 좌천(사실상 유배)된다. 슈페어 루트 후반에 노예 반란이 터지면 이게 전부 나약한 슈페어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며 노예반란이건 개혁파건 전부 쓸어버리기 위해 모스코비엔에서 쿠데타를 일으킨다. [66] 슈페어루트 및 4인방의 민주주의 엔딩을 보기 위해서라면 마지막으로 꺾어야 할 최종보스격 인물. 죽을 때는 청산가리로 자살하려고 하나 약효가 약했는지 고통만 느끼고 죽지 않으며, 오히려 압송되던 중 쇠르너에게 분노한 모스코비엔 현지인들에게 잡혀 맞아서 처절히 죽는다.

하이드리히 루트에서는 힘러와 하이드리히간의 갈등으로 2차 독일 내전이 발발하면 레머가 권력을 잡은 군사특별접정에서 등장한다. 레머는 하이드리히가 쇠르너와 손을 잡았다고 판단해서 힘러의 손을 잡았으며 쇠르너를 배반자로 규정하고 그를 처형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다. 하이드리히가 레머에게 힘러의 진의를 공개하면 오히려 레머는 핵전쟁을 찬미하는 힘러에게 더욱 충성한다. 반대로 하이드리히가 쇠르너와 진짜로 손을 잡고 레머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

2.4. 고텐란트


정식 명칭은 고텐란트 국가대관구(Reichsgau Gotenland)로 독일 내전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도 내전에 휩싸이자 독일인 정착이 많이 이루어진 크림 반도 일대에서 형성되는 지역 대관구. 기존에 있던 카를 되니츠의 크림 정부가 패치 이후 이와 같이 변경되었다. 지도자는 원역사에서 리페츠크 전투에 참전하다 전사하였으나 이 세계관에선 살아남아 크림 대관구지도자로 올라선 프란츠 마이어호퍼.

2.5. 제19군구


시작 시점에는 독일령이다.

지도자는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1950년대까지 계속 재무장관 자리를 지켜왔지만 경제붕괴로 쫓겨났다. 그 전까지 기형적인 독일 경제를 열심히 지탱해 히틀러의 호의를 얻었지만 1950년대 경제붕괴가 너무 큰 참사라 재무장관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이후 여러 자리를 전전하다 히틀러가 선심 써서 보헤미아 모라바 보호령 국가보호자로 앉혀줬다. 이후 독일 내전이 시작되면 독립해서 내전에 참전한다. 유저가 하이드리히 루트일 경우에는 휘하 SS 소속인 쿠르트 달뤼게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하이드리히에 합류한다.

2.6. 루슬란트 군관구

슈페어 독일 노예 반란시,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로 쫓겨난 페르디난트 쇠르너와 군국주의자들이 게르마니아의 동의 없이 모스코비엔의 노예반란을 진압하고 슈페어의 개혁주의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생성되는 국가.

2.7. 자유 유럽 군단

우리는 영원히 자유로울 것이다.

"동무들이여!"

빌리 브란트의 힘있는 목소리가 바르샤바에 가득 모인 군중들을 울렸다. 노예들, 자유인들, 기자들, 파르티잔들. 모두 이곳에 있었고, 모두가 환영받았다. "우리 모두는 독일국이라 불리는 파괴적인 괴물 때문에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무수한 악마들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려 침묵에 잠기게 했습니다. 허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비도덕적인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퍼져나가서도,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도 안 됩니다!" 광란의 환호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잠깐 동안 절망과 처절함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러분들 모두 들어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증오를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그럴만 합니다. 그럴만 해요! 제 동포들이 저지른 범죄로 그들을 유럽 바깥으로 쫓아버리고 싶겠죠. 하지만 부디, 들어주십시오. 제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당장 이 증오의 고리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여전히 환호성은 강력했다. 하지만 방금 전보다는 약했다.

"저는 독일을 압니다. 진정한 독일을. 나치가 뿌리를 뽑아버리려 했던 그런 독일을 말입니다." 브란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허나 그 독일은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민주 독일의 빛은 결코 없어질 수 없습니다! 유럽을 위해서는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노예와 주인으로, 아리아인과 비아리아인으로 서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지간, 자매지간, 그리고 동등한 관계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니 부디, 유럽을 위하여 간청합니다.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이 정권에 의해 살해된 자들은 행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의 두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빨을 더 세게 갈았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그를 재판했다. "오, 유럽의 인민들이여, 우리를 용서해주십시오. 우리가 자그마한 동정조차 얻을 자격이 없다 하더라도, 교양있는 자들은 자유를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힘있게 깔렸고,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빌리 브란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 수 초가 지났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브란트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알아챘다. 흔들리는 몸 사이로, 두 방울의 눈물이 목조 연단에 떨어졌다. 그는 사람들이 이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을 계속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10명이, 100명이, 1000명이 박수를 쳤다. 그가 자유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자들을 올려다봤을 때, 브란트의 얼굴은 떨리는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슈페어 루트에서 석유 위기로 인해 독일의 경제가 파탄나서 노예들의 송환이 미뤄지자 이로 인해 발생하며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노예 반란군이다.

주요 세력은 다음과 같다.
이들의 미래는 3가지로 갈린다.

1. 봉기 진압. 슈페어 독일 반동파 루트에서는 독일 혹은 쇠르너의 루슬란트 군관구[67]와 자유 유럽 군단의 전쟁이 발발하고 자유 유럽 군단이 패배할 시 빌리 브란트는 처형당한다.
독립 정보원과 라이히 정보원에 따르면, 빌리 브란트의 노예 반란이 베어마흐트에 의해 잔인하게 분쇄되었습니다. 사상자의 수와 반란에 대한 보복에 대한 보고는 부족하며, 라이히에 의해 검열되었지만 비극적으로 높은 수일거라 예상됩니다. 독일계 저항 단체 흑적금 국기단과 여러 유럽 파르티잔 집단이 이끄는 노예 봉기군은 노예제와 악명높은 뉘른베르크 법안을 폐지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동유럽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며, 전 세계의 투자자들은 한때 유망주였던 졸페라인에서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몇몇 국가의 익명 정보원들은 이로 인해 독일 내 정책에 변화가 있을거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브란트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유 유럽의 꿈은 거짓말같이 죽어버렸다.

[빌리 브란트 처형 이벤트]
>"빌리 브란트, 당신은 대게르만국과, 그 역사, 병사, 국민들에게 저지른 범죄가 유죄임을 인정합니까, 혹은 무죄임을 주장합니까?"

"저는 독일 국민들을 위해 싸웠다는 것만을 유죄라 인정합니다."

마음 속의 어떠한 감정도 그가 포기하도록 하지 않았다. 그가 재판을 받았을 때, 심지어는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게 해달라 요구하여 변호사가 사건을 진행하는 대신 법정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허자먼 그는 이미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은 힘이 없었다. 그의 사건은 더욱 힘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의지가 가장 힘이 없었으리라. 재판관이 그에게 인사를 하라 했을 때, 그는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본 법정은 빌리 브란트가 라이히의 반역자임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는 일생 동안 재판을 몇 번 겪었다. 하지만 이토록 짧고 결정적이었던 재판은 없었다. 두 남자가 그에게 다가오자, 브란트는 자리에서 강제로 채워지던 수갑에 저항하고 둘 중 한 명에게 저주의 말을 내뱉었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머리에 쓰인 봉지는 너무 무겁고 숨 쉬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바깥을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챈 그는 쓴맛을 느꼈다. 러시아의 차르와 그 가족들처럼 그들은 그를 지하실로 데려가서 시체로 만드려는 것이었다. 순교자는 없었다. 보도도 되지 않았다.

브란트의 머리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혔을 때, 그의 눈은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그는 머리카락을 따라 천천히 흐르는 따뜻한 피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은 힘없이 두 발로 어떻게든 서겠다는 무의미한 시도를 하기 위해 싸웠다. 온 세계의 기쁨과 이상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세계의 빛이었던 빌리 브란트는 이렇게 사라졌다. 그는 독일에 자유와 행복이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의 노력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없어졌다. 그의 눈 앞에서 수많은 것들이 죽어가고 무너져갔다. 그가 끝을 알리는 커다란 소리를 들었을 때, 빌리 브란트는 죽었다. 빌리 브란트의 희망과 함께.


2. 슈페어와의 협상
흑적금 국기단 및 그 파르티잔 동맹과의 긴장감 도는 협상 이후, 오늘 알베르트 슈페어가 폴크스할레에 의기양양하게 서서 반란 노예들과의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노예제 및 뉘른베르크 법을 즉각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총통은 이를 "유감스러울 정도로 성급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반군은 무기를 거두고 다시 정중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NSDAP는 총통이 협상까지 했다는 것을 비판하며 혼재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합의는 대중, 졸페라인, 세계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총통이 합의를 발표할 때, 독일 내 개혁을 이끄는 것으로 알려졌던 4인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국기단 지도자인 빌리 브란트는 미국으로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총통이 다시 관심을 받는 것 같군.
3. 개혁파와의 협상
흑적금 국기단 및 그 파르티잔 동맹과의 긴장감 도는 협상 이후, 오늘 쿠르트 키징거가 폴크스할레에 열광적으로 서서 시위대와의 합의를 발표했습니다. 노예제 및 뉘른베르크 법의 즉각적인 폐지를 포함한 광범위한 개혁 대신 (부총통은 이를 "너무 오래 지연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동부에 질서가 돌아올 것입니다. NSDAP 내에서는 독일 내전 직전에나 보이던 내분이 벌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대중과 외국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긍정적입니다. 이 반응의 대부분은 개정안이 라이히와 졸페라인에 줄 자유 때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발표 중 슈페어 총통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총통은 "가벼운 독감"에서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국기단 지도자인 빌리 브란트는 미국으로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누가 진짜 총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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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프만은 실제론 동독 해양경찰로 일하다 국가인민군 해군으로 편입되어 제독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해군사령관에서 국가인민군 해산 직전까지 국가인민군 총사령관직을 역임했으며 독일 재통일 직전의 과도기에 오른 군 경력도 전무한 민주화 운동가 출신 국방부장관을 제외하면 동독 마지막 국방부장관까지 역임한다. 다만 1962년에 호프만이 해군 제독인건 말이 안된다. 그는 1962년에 27세밖에 되지 않았으며 실제 역사에서는 겨우 해군사관생도였다. 심지어 제독인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하이드리히 루트를 타면 되니츠가 킬의 군벌 활동을 위해 고텐란트와 그에 주둔하는 크릭스마리네함대를 호프만에게 맡기고 로 떠난다. 호프만이 높으신 분들 약점이라도 잡은게 아닐까? [2] 미국 남부의 노예제 같은 느낌이 아니라 기업 소유 노예이자 권리 없는 징용 노동자의 연상선상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설정상 가정용 노예는 상류층의 하인과 유사한 지위라고 추정된다. [3] 노예들의 기원은 독일의 피지배 슬라브인들이나 유대인들을 전쟁말기 강제노역 시키면서 시작됐다. [4] 프랑스에 레지스탕스에게 암살당한 거였으나 TT에서 모스코비엔에서 SS로 보이는 암살자에게 테러당해 암살당한 설정으로 변경됨. [5] 이때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 우주비행사는 에버하르트 쾰너(Eberhard Köllner)인데 실제 역사에서는 국가 인민군 조종사로 소유즈 31호 프로젝트의 예비 멤버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최초의 독일인 우주비행사인 지그문트 얀이 배출되었으니 최초의 독일인 우주비행사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 [6] 1, 2, 3 SS사단과 경찰SS사단 4개는 누가 됐던 히틀러가 임명한 후계자를 따른다 [7] 1944년 7월 19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보, 안타깝게도 이 땅은 꿈동산이 아닌 삶을 건 투쟁의 현장이오. 자연 그 자체이기에 지극히 가혹한 곳이라오. 그래도,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소중한 연인을 갖는 일은 우리 남자들에게 행복이자 위안이 되어주오. 그리고 내게는 제일 소중하고 제일 사랑스러운 최고의 연인이 있소." 보어만이 자신의 불륜을 아내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내용의 편지다. [8] 현실의 아파넷 [베넷] 평화와 자유무역을 강조하며 순탄하게 넘어간다. [LBJ] 보어만에 대비되는 특유의 거구와 센 손아귀 힘을 과시하며 기선제압에 들어간다. [RFK] 보어만이 미국 자본주의의 퇴폐 운운하자 RFK는 독일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꼬집는다. [월리스] 보어만이 월리스의 인종 정책을 호평한다. [서먼드] 서먼드가 2차대전 참전 용사인지라 험악한 분위기이지만 인종정책만은 보어만의 호평을 듣는다. [르메이] 보어만 면전에 당신들을 묻어버리겠다를 박는다 [해링턴] 파시스트와 악수를 한다는 것 자체에 자괴감을 느끼고 대충 사진만 찍은 다음에 사무실에서 내보낸다. [MCS] 회담을 프로파간다로만 보고 실질적인 반일 공조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보어만에 분노한다. [17] 본인이 유대인이기도 하고 극단주의를 극단적으로 배격해 나치와는 말도 섞으려하지 않는다. [18] 하트는 내각에 헨리 키신저 해리 S. 트루먼같은 강경 반파시스트들을 임명한다. [19] 요키에게 지원을 보낸다. 요키와 보어만의 직접 만남도 제안하지만 요키는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이미지를 걱정해 이를 거절한다. [20] 이 때문에 70년대 보어만의 초상화를 보면 칼라에 피가 묻어있다. 참고로 내전 후 히틀러가 금지한 흡연을 허가하면서 심지어 담배 판매를 장려하며 시가를 피워대는 이벤트가 있다. [21] 영어에서 카드 하우스는 바람만 불면 무너질 사상누각을 뜻하는 관용어구이기도 하다. # 시스템 이름부터가 보어만의 치세가 위태로운 모래성임을 은유하는 셈. [22]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당시 정신과 의사 레온 골덴슨을 상대로 면담하던 중 한 발언. [23] 그 이유는 슈페어가 내전에서 승리해야 보어만과 마찬가지로 독일이 냉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링이 내전에서 승리할 시 독일을 주 축으로 한 냉전 및 대리전 컨텐츠의 정상적인 발발에 애로사항이 생기며 이 때문에 괴링 루트가 삭제되었다. [24] 라이히스베르케는 헤르만 괴링 문서에 국가공업 헤르만 괴링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이들은 독일 경제를 좀먹기만 하는 없느니만 못한 집단이며 SS를 경비대로 부리고 수틀리면 용병을 풀어 개판을 친다. [25] 에센에 있는 세계유산이기도 한 탄광산업단지에서 따온 이름이다. [26] 폴란드에 대한 유화책, 뉘른베르크 법 폐지 vs 사문화, 과거사 정리 문제 등. [27] 전자로 갈수록 보수파의 영향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보어만은 보수파의 지지 대상이지만 하이드리히는 SS를 제외한 NSDAP 전체의 혐오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28]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자유의 실질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위할 의무를 지는 국가. [29] 이와 비슷하게, 히틀러 사망 직후 사회에서의 경례 구호를 '하일 히틀러!' 대신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느라 혼란스러운 모습을 담은 이벤트가 존재한다. [30] 현실에서 덩샤오핑 중국공산당의 독재 유지를 위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것처럼, 슈페어의 정책은 나치당의 1당 독재 체제 유지를 전제로 한 개혁 개방에 가깝다. [31] 아이러니하게도 슈미트는 실제로 친할아버지가 유대인이였다. [32] 키징어, 슈미트, 에르하르트는 외국으로 망명하고 트레슈코프는 자폭 테러로 슈페어를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 하나 실패한다. [33] 레머는 현실에서도 발키리 작전을 신속하게 진압해 고속 승진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인 덕에, 괴링 루트에서는 핵전쟁도 개의치 않을 정도의 초강경파 대표자로 나와, 결국 쇠르너를 밀어내는 등 상당히 눈치가 빠른 인물로 나온다. [34] 플레이 시간만 따지면 "짧게 플레이 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게임오버당하지 않는 이상 석유 위기 이후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 다른 루트들에 비하면 상당히 짧다. 급하게 달리지 않아도 1966년 쯤에 끝나는 수준이다. [35] 1942년 체코에서의 암살 작전 이후 회복하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힘러에게 남겼던 말. 작곡가인 아버지가 쓴 오페라 『아멘』의 구절이라고 한다. [36] 하이드리히를 후계자로 지명하면 거수기인 라이히스탁(국가의회) 의원 반대 25%, 기권 25%, 찬성 50%로 통과하는데 히틀러가 직접 참관한 회의에서 처음으로 만장일치가 깨졌다. 과거 정사 설정이 삭제되기 전까지 TNO 제작진 중 한 명이 밝힌 정사에서의 히틀러가 지명한 후계자는 하이드리히다. 하지만 해당 제작자가 팀을 나간 이후로는 의미가 없어졌고, 후계자 지명 직후 나머지 후계자 후보들에 대한 아무 이유없는 피해망상을 호소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보면 후계자는 말년에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정한 것일테니 넷 중 누가 후계자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37] 정확히는 1단계 중점 또한 도중 일어나는 베르제르커 사단과 스파르타쿠스의 후예 반란세력을 처분하는 중점이 새로 생성된다. 비축 중점을 4개정도 타면 반란 해결 중점이 생성되고 이후 어떤 선택지건 2개 중점을 타면 페이크 중점으로 모두 종료된다. [38] 대략 네덜란드가 합병되면 그 다음 대상이 아이케로 보면 된다. [39] SS 1사단 라이프슈탄다르테 아돌프 히틀러(LSSAH;아돌프 히틀러 경호대)의 부르군트판으로 보인다. [40] 다만 내부 스파이로 포섭하는 루트도, 3차 내전에서 역으로 겔렌이 온건 계열을 대표하는 세력이 되는걸 고려하면 실패하였다고 볼수 있다. [41] 현실에서도 스코르체니는 모사드와 함께 일한 적이 있고 이집트군에서 무기개발을 하던 독일 출신 과학자를 암살했다고도 전해진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일종의 사법 거래를 해서 더이상 과거 나치 활동 관련해서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 일이라는 설도 있고, 단순히 스릴 중독으로 첩보 공작을 할때 삶의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42] 힘러가 친위대 본부로 쓰려고 '임대'(형식상 100마르크, 약 50만원으로 100년간 임대했다.)한 고성으로 부르군트 체제 아이콘에도 나오는 슈바르체존네를 힘러가 여기서 보고 친위대 상징으로 삼았다. [43] 다만, 지원 디시전이 21일이나 소모되는 게 있어서 다른 포섭에 비하여 비효율적이고, 도중에 힘러에게 따라잡혀지므로 이쪽으로 갈 경우 힘러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44] 하이드리히가 핵전쟁 계획을 알게된 이후 가장 먼저 휘하 내각 인원들(보울러, 달켄, 슐라이허, 길레)에게 이를 알리기 때문. 이 때문에 길레가 최소사령부 지도자일 경우엔 베레제르커 의용군 포섭루트와 유사하게 중점만을 타도 충성도가 100으로 고정된다. [45] 사실 스타들러는 아예 자신들의 군단과 함께 내전에서 이탈하여 고향인 헝가리로 망명하려고 한다. [46] OTL에서 아우슈비츠를 탈출해 폴란드 국내군 활동을 했다 [47] 아래에 있는 초기 영상에서는 신프랑스국이 프랑스를 점점 먹어가는것처럼 보여지나, 이후 추가 업데이트로 신프랑스국의 병력이 없는 상태로 설정되었다. 추후 프랑스국 컨텐츠의 업데이트 계획과 연결해보면 프랑스국의 고토 수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48] 인게임 이벤트로는 묘사되지 않았으나 내전 진행중 헤르베르트 길레가 어느사이 빈 집무실의 포트레이트로 바뀌며 '완전히 버려진 자'라는 디버프를 받고, 개혁정부의 지도자로 시작하는 한스 슈파이델도 내전 도중 겔렌으로 지도자가 바뀐다. 내전 중 혼돈의 상황을 보여주는 묘사에 가까운 형태다. [49] 전용 무정부체제로, 상술한 하이드리히의 유언 문구가 출력된다. [50]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했던 발언. [51] 원문은 이렇다. "만약 한 대의 적 항공기라도 독일에 나타난다면, 나를 '마이어'라고 불러도 좋다!" [52] '마이어'는 독일에서 상당히 흔한 성씨인데,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우리 공군이 패배하면 김씨로 성을 간다!" 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53] 괴링의 경력 중 프로이센 주지사가 있었다는 점을 반영한 듯. 프로이센이 독일 제국의 주축이었던만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도 바이에른을 뛰어넘는 최대 주였고, 괴링은 히틀러의 2인자였던 덕에 프로이센 주정을 틀어쥘 수 있었다. [54] 이를 대비해 커스텀에서도 하이드리히의 승리는 불가능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유저가 플레이할시 게임오버 이후의 컨텐츠는 제작진의 언급을 고려해 볼 시 기존 설계되어 있는 냉전 컨텐츠와 호환이 되지 않기에 이후 세계정세의 관전도 무의미하다. [55] 그나마도 자기 땅에 만드는건 무서운건지 우크라이나로 원전을 이전하는 디시전도 있다. 이후 미래를 생각한다면. 괴링 루트의 2차 내전을 고려해 보면 사실상 이후 쪼개져 나가는 우크라이나에게 공짜 원전을 산더미처럼 선물해주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 [56] 독일 군사용어에서 작전(Unternehmen)과 상황(Fall)은 다른 개념이다. [멸망문구] 폴란드 본토의 남녀가 모든 것을 싸웠지만, 폴란드는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영원히 죽을 것입니다. [58] 현실에서도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내무장관이었으며, 1945년 파르티잔에게 총살당했다. [59] 김빠지는 버그가 있는데 1960년대 후반에는 고정적으로 이집트, 수단 내전이 터지는데 이 지역들을 국가판무관부가 통치 중이어도 반군들이 생성되어 지들끼리 싸운다. 이 반군들은 국가판무관부를 상대로 전쟁을 걸지도, 독일이 전쟁을 걸 수도 없어서 내전이 끝나도 땅만 뺏길 수밖에 없다. [60] 1528년부터 1546년까지 아우크스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유력 상업가문 벨저 가문이 경영한 식민지였던 클라인 베네디히(독일어로 작은 베니스)에서 딴 이름. 이 시기에 베네수엘라 제 2의 도시인 마라카이보가 처음 건설되었다. [61] 물론 도미니카 공화국과 도미니카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의 한심한 외교력을 가진 괴링의 특성상 깔끔하게 디스하는 답신이 오며 외교 정책은 실패하고 위신이 실추되며, 심지어 그 쇠르너가 이를 주도하는 괴링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이벤트가 나온다. [62] 전쟁이 시작되면 이들은 곧바로 일본에 붙어버린다. 즉, 함정 포커스. [63] 또는 이 내용도 괴링(이자 플레이어)가 생각하던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만 하는 요소로도 볼수 있다. OFN 탈퇴와 같은 닉슨의 중점처럼. [64]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 지휘관들이 용맹한 병사들을 가지고 무의미한 인명 소모에 대해 비판하던 문구 [65] 만일 이 시스템이 없으면 슈파이델이 어느 한 세력에 침공당했을 때 슈파이델이 다른 한 침공 세력을 무찌를 경우 다른 세력과는 전쟁 중이지 않기에 독일은 통일되지 않고 분열된 상태로 영원히 지속되어 버리게 될 것이다. [66] 레머는 이 시점에 쇠르너를 배신해 슈페어에게 붙는다. [67] 쇠르너의 작전 시행이 시작될 때까지 쇠르너를 진압하는 디시전을 누르지 않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