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한파/대한민국
1. 개요
한반도( 대한민국, 북한) 외에 세계적으로 찾아온 한파를 시기별로 나열한 문서. 대한민국의 사례는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고.2. 읽기 전에
예측 가능한 안정된 날씨와 함께 현대만큼 따뜻한 기온을 보인 950~ 1250년경 사이의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가 끝나고 찾아온, 전 지구적으로 매우 추운 시기였다. 기후학자들이 소위 '소빙하기(Little Ice Age)'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따라서 특정 해가 아닐지라도 기본적으로 현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한파가 잦았고 여름에도 이상 저온이 잦았던 시기이기에 한파 목록에 넣기로 했다.[2] 이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추웠던 시대는 17세기였다.먼저 영국을 살펴보자. 현대의 겨울에 템스강이 얼어붙는 것은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상상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814년까지만 해도 템스강은 종종 완전히 결빙되었으며, 영국에서는 얼어붙은 템스강의 정경이 소빙하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상술했듯이 17세기가 소빙하기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인 관계로 결빙도 가장 잦았다. 종합해보면 17세기에는 템스강이 1608년, 1621년, 1635년, 1649년, 1655년, 1663년, 1666년, 1677년, 1684년, 1695년으로 총 10번이나 결빙되었다.[3] 이 중에서 1683~ 1684년 겨울이 가장 극단적으로 추워서 얼어붙은 강 위에서 'River Thames frost fairs'이라는 축제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에 대한 영문위키의 설명 참조. 아래는 1683~1684년 겨울에 토머스 와이크(Thomas Wyke)라는 화가가 그린 River Thames Frost Fair 축제 당시의 템스강 풍경화이다. 소빙하기 당시 유럽의 겨울 풍경을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7세기의 극단적인 추위는 유럽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도 발생했는데, 설명이 너무 길어지므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의 연도별 한파 목록에서 자세히 서술할 것이다. 소빙하기에서 17세기 다음으로 추웠던 시기는 18세기 초반이다. 그리고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잠시 따뜻해졌다가[4] 18세기 후반에 다시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하강하며 이는 19세기 초반까지 이어졌다. 템스강이 마지막으로 얼었던 해가 바로 이 시기와 맞물린다. 템스강은 18세기에 1709년, 1716년, 1740년, 1776년, 1788년, 1795년으로 총 6번 결빙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는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1814년[5]에 1번 결빙된 이후 2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더 이상 결빙되지 않고 있다.[6]
정리하면 14~ 15세기에 시작된 소빙하기가 17세기~18세기 초반까지 가장 추워 절정을 찍고[7][8] 18세기 중반에 잠시 잦아들었다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에 다시 추워진 뒤[9], 19세기 중반부터 점차 기온이 올라[10] 점차 소빙하기가 끝나고 그 이후로도 현대까지는 계속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오르고 있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소빙하기가 시작된 14세기 이전에도 소빙하기에 맞먹는 극심한 한파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균 기온의 문제이다. 심지어 중세 온난기에 해당하는 10~ 13세기 사이에도 드물게 소빙하기에 준하는 혹한이 찾아왔다. 16세기~19세기 중반이 소빙하기였던 만큼 해당 시기에 평균적으로 추운 겨울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래의 한파 목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소빙하기가 아닌 그 이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한파는 꽤 많았다. 다만, 시기적으로 추운 소빙하기가 다른 시대에 비해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의 빈도수가 클 뿐이다. 그러나 소빙하기 이후는 명백히 이야기가 다르다. 20세기부터는 과거에 비해 심한 한파의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열섬 현상 등으로 인해 소빙하기 시절과 같은 혹한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중세 온난기 이전인 6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도 소빙하기와 같은 장기적으로 추운 시기가 존재했다. 당시는 유럽사에서 고전 고대(Classical Antiquity)에서 중세(Middle Age)로 넘어가는 전이 단계인 고대 후기(Late Antiquity)였다. 그 시대의 이름을 따서 '고대 후기 소빙하기(Late Antique Little Ice Age)'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시대의 혹한은 위에서 설명한 소빙하기와 맞먹거나 그 이상으로 추웠을 것으로 예상되며, 사실상 추위로는 예수님 탄생 이후[11] 최종보스이다. 어느 정도이냐면 그 추웠다는 소빙하기보다 더 추운 시기도 존재했다! 다만 너무 옛날이라서 존재감이 거의 없고, 역사적 사료도 찾기가 힘들 뿐이다. 고대 후기 소빙하기를 설명하는 영문위키 참조.[12]
아래의 그린란드 빙하 코어를 통해 추정한 지난 10,000년간의 기온 그래프를 확인해 보자.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소빙하기보다 기간은 조금 짧을지언정 6~9세기에도 상당히 추운 시기가 존재했다. 기온 변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빙하기와 달리 고대 후기 소빙하기는 매우 크게 2번의 하강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6세기에 심한 하강이 1번 있고, 그 뒤로 8~ 9세기 사이에 다시 1번 크게 하강하는데 이때의 하락폭이 특히 심해서 -32℃선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가 소빙하기인 16세기~19세기 중반에서도 가장 추웠다는 시기보다도 기온이 더 낮다.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이, 위의 그래프는 극지방인 그린란드에 한정된 추정 그래프이다. 세계적인 평균 기온을 분석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는 8~9세기가 아니라 535~ 536년(넉넉히 잡으면 약 550년까지)의 기후가 지난 2,000여 년간 가장 추웠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한파 목록 참조. 또한 위의 그래프는 지구의 기후가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의 주기로 더운 시기와 추운 시기가 번갈아 나타났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한다. 지구에서 기후의 변화 자체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13] 노파심에 추가하는 서술이지만 위의 그래프만 보면 그래프의 끝 부분의 y축 값이 낮아서 중세 온난기에 비해 현대가 비교도 안 되게 추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이는 그래프 x축의 끝 연도가 현재 기준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래프 x축의 끝을 자세히 보면 0이 아니라 95로 끝난다. 그러므로 저 검은 선이 그래프에서 보여주는 마지막 시기, 95년 전( 1926년) 기준점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는 과거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했고, 이미 현재는 중세 온난기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따뜻해졌다.
아래는 세계의 역대 한파 목록 작성에 유용한 참고 자료들이다.
3. 목록
3.1. 1~ 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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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9년 겨울
중부유럽 및
남유럽(
이탈리아) 한파
중부유럽은 주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을 의미하고 남유럽은 이탈리아와 그리스, 스페인 등이 포함되는데, 여기서 괄호로 이탈리아를 지목한 것을 보면 이탈리아만 유난히 추웠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역들에 혹독한 날씨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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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366년 겨울
유럽 한파
매우 혹독한 겨울이었다. 라인강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강들이 얼어붙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렇게 얼었던 강이 봄이 되자 한꺼번에 녹으면서 홍수가 발생했다고 한다. 얼음으로 인한 홍수라니 의외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유럽, 북아메리카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서 의외로 자주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을 'Ice Jam\'이라고 부른다. Ice Jam에 관한 영문위키의 설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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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401년 겨울
유럽 한파
유럽 전역에서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정말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심각한 한파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는데 유럽의 주요 강들이 얼어붙은 것은 물론이고 흑해까지 결빙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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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536년 세계 한파 및
이상 저온
아예 대놓고 북반구의 모든 지역을 가리지 않고, 약 2년간 전 지구적으로 극단적인 기온 하강이 있었다. 더욱 와닿게 설명하자면, 최근 2,000여 년간 북반구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하고 길었던 단기냉각화 현상이다. 사계절 내내 한파와 이상 저온이 계속되었다. 예시로 536년 중국에서는 한여름인 8월에 눈이 내리는 기현상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한여름에도 이상 저온과 한파로 인한 얼음과 눈 때문에 작물이 죽어나갔다. 비슷한 시기 고구려에서도 장기간 가뭄, 전염병, 굶주림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안원왕이 몸소 나서서 그들을 위로하고 구제했다고 전해진다. 일본 역시 이상 저온의 기세가 드셌던지, 센카 천황이 536년 음력 5월[21]에 "먹는 것은 천하의 근본이다. 황금 만 관이 있더라도 배고픔을 낫게 할 수 없다. 백옥이 천 상자가 있더라도 어찌 추위를 막을 수 있겠는가?"[22]라고 발언했다고 전해진다. 유럽과 중동,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18개월간 낮에도 어둠이 지속되었다고 한다.[23] 이로 인해 엄청난 규모의 대기근과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특히 지중해와 유럽 일대에 페스트가 확산되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열대 지방의 대규모 화산 폭발[24]로 인한 대기 중 먼지층 형성, 혹은 미소 천체의 지구 충돌로 인한 먼지 발생 후 지구로의 태양 복사 광범위 차단 등이 지목된다. 사실 535~536년이라고 작성했으나 이것은 앞서 설명한 현상들이 시작된 연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540년과 547년에 두 번이나 큰 규모의 화산 폭발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세계 냉각화는 55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추워진 기후는 이전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아 그 영향이 무려 660년경까지 125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한다.이 정도면 빙하기라는 명칭만 붙이지 않았을 뿐 사실상 완전히 빙하기급이다.스위스 연방 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시기에 일부 지역에서 4℃에 달하는 기온 하강이 여름에 나타났다고 한다.[25]
한술 더 떠서, 하버드 대학교와 메인 대학교 공동연구진이 고고학 분야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급격한 기후 변동과 전염병 등으로 서기 536년이 지난 2,500년 동안 인류가 가장 생존하기 힘들었을 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 외에도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서 이곳에 다 쓰기에는 무리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다면 영문위키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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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554년 겨울
유럽 한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파가 극심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강들이 얼어서 그 위로 걸어서 이동이 가능했으며 유럽의 야생동물들도 너무 추워서인지 사람이 손으로 직접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고 순종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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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604년 겨울
유럽 한파
유럽 전체에 기록적인 혹한이 들이닥쳤다. 혹한의 기간과 강도 모두 심각했는데 스코틀랜드에서는 4개월간 서리와 얼음이 가득했고, 이는 심각한 기아로 이어지게 된다. 잉글랜드에서도 심각한 한파가 있었다. 남유럽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포도나무가 죄다 얼어죽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 근처의 바다들도 결빙되어,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도 폐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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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764년 겨울
유라시아 한파
말이 필요없는 최악의 겨울이다. 지난 2,000여 년간의 모든 겨울 중에서 가장 험난한 겨울이라는 말로 해당 겨울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 겨울이 얼마나 추웠으면, 약 1,250년이 넘게 지났을 정도로 굉장히 옛날인데도 이 겨울만큼은 각종 기록들이 많이 남아있다. 모든 우물, 강, 호수 및 바다가 빠르면 10월에 전부 결빙되었을 정도라고 추정한다. 이러한 거대한 스케일의 극심한 한파는 763년 10월 1일에 시작되어서 764년 2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1개월 장기 한파도 힘든데 5개월 연속 장기 한파는 무슨 느낌?장기 한파는 그 이후 중단되었을지언정 3월, 4월에도 완전히 한파가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계속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겨울의 특징 중의 하나라면 기록적인 한파가 영향을 미친 범위가 영국에서 스칸디나비아반도를 넘어 아시아까지 매우 넓었다는 점. 잉글랜드에서는 150일 연속으로 얼음이 보고 되었으며, 심지어 일부 기록에 따르면 유럽 지역에 최대 10m 이상의 눈이 쌓인 지역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한파와 폭설로 당연히 식량 공급, 식수, 포도주 공급, 제분소, 샘물 등 기본 공급에 궤멸적인 피해가 발생했고 그에 따라 대규모 기근과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한파로 인해 흑해와 튀르키예 북부 인근의 해협(사실은 흑해의 일부이다)인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모두 결빙되었다. 거대한 얼음과 눈이 빙산을 형성했으며 이는 마치 피라미드와도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모든 강과 호수가 얼어붙은 탓에 얼음이 마치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잇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해당 겨울로 인해 얼어붙은 호수와 바다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흑해, 아드리아해[26], 다르다넬스 해협[27], 발트해, 북해 연안의 일부, 남유럽 지중해 연안의 일부 등이 있었다.
여담으로, 이 겨울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독일 란츠후트 지역의 나무 우물을 포함한 수많은 우물과 그 통나무를 분석한 폴란드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이다. 그들에 의하면 너무나도 추운 날씨로 인해 764년의 통나무의 직경은 겨우 0.1mm 미만으로 증가했다고 한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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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년대~
800년대 겨울
영국 한파
해당 약 30년의 기간 동안 영국에서는 극심하게 추운 겨울이 비정상적으로 잦았다고 한다. 예시 중 하나가 774~ 775년 겨울이다. 아래 항목 참조. -
774~
775년 겨울
유럽,
중동 한파
위에서 언급한 바로 그 겨울이다. 물론 이때는 영국만 추운 것은 아니었고 그냥 유럽 전체가 심한 혹한에 시달렸으며 심지어는 튀르키예를 포함한 일부 중동 지역도 상상을 초월하는 혹한이 있었던 듯하다. 우선, 영국은 "There was the grestest frost in England(영국 역사의 기억 속에서 가장 가혹한 추위가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흑해가 또 얼어붙었으며 얼음 위에 쌓인 눈이 30ft(약 9m)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인데 이 정도면 아예 눈 장벽 수준. 그로 인해 얼음이 깨지기라도 하면 쌓인 눈이 물로 흘러들어가는데 너무 양이 많아 한 번에 녹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어서 마치 거대한 흰 산이 바다 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의 모든 강은 물론이요 튀르키예 동부의 강까지 얼어붙어 사람들이 다뉴브 삼각주[29]에서 튀르키예의 유프라테스강까지 그 위로 왔다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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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
802년 겨울
유라시아 한파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로, 또다시 흑해가 얼어붙었다. 프랑스에서도 801년 11월 11일~802년 3월 12일까지 매우 추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22일 연속 장기 한파인 셈이다.2010~ 2011년 겨울 대한민국의 39일 장기 한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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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822년 겨울
중국,
유럽 한파
중국의 기후학자들이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부산보다 약간 낮은 위도인[30] 북위 34.6°까지 바다가 결빙되었다고 한다.[31] 또한, 논문에서는 북위 35° 남쪽까지 중국 앞바다가 결빙된 해는 지난 2,000여 년간 총 6해밖에 없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참고로 해당 단락의 821~822년 겨울이 그러한 결빙이 서기 1세기 이래 최초로 발생한 겨울이다. 기념비적인 겨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당 겨울 이외에도 북위 35° 남쪽에서 바다가 결빙된 해는 903~ 904년 겨울, 1453~ 1454년 겨울, 1493~ 1494년 겨울, 1654~ 1655년 겨울, 1670~ 1671년 겨울이 있었다. 나열된 전설적인 겨울들은 모두 해당 문서에 후술되어 있다. 한편, 당시 중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말도 안 되게 추웠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821년 9월 22일부터 822년 4월 12일까지 서리와 얼음이 존재하고 눈이 내리는 극심한 겨울이었다고. 유럽의 주요 모든 강과 호수가 얼어붙었다고 하니 감히 상상하기 힘든 한파이다. 심지어는 한술 더 떠서, 북아프리카의 나일강도 얼어있었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한파가 강력했던 것인지 상상이 되는가? 지금은 물론 100년 전에도 도저히 상상조차 불가능한 비상식적인 한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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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824년 겨울
유럽 한파
서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극단적인 한파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이 겨울이 혹독했던 점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는 무려 29주 동안 눈이 계속 내렸다고 한다.[32] 이렇게 비정상적인 폭설로 인해 영국에서만 수많은 소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혹독한 추위는 이어졌는데, 이러한 혹독한 추위로 사람들의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전염병을 같이 몰고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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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
860년 겨울
유럽 한파
지난 2,000여 년 동안 유럽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기록적으로 추웠던 겨울 중 하나이다. 유럽 대부분의 강이 모두 약 2개월간 결빙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경우 추위가 11월에서 4월까지 5개월 넘게 온통 얼음이 가득하고 눈이 덮힌 날씨가 지속되었는데, 론강의 전체가 결빙되었고 혹독한 추위에 야생동물들이 얼어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직 놀라기는 너무 이르다. 남유럽의 한파가 상상초월이었는데 위에서 상술했던 지난 2,000여 년간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여겨지는 763~764년 겨울에 이어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의 아드리아해가 다시 한 번 얼어붙게 된다. 그런데 이 겨울이 더 놀라운 것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아드리아해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이오니아해까지 얼어붙는 등 사실상 지중해 전체가 얼어붙어(!!) 지중해 위를 수레를 타고 건너다녔을 정도라고 한다.아니, 말이 되나 이게?유럽 내에서도 남유럽과 맞닿은 지중해 지역은 거의 아열대급으로 따뜻한 곳이다. 그러한 지역에서 바다가 얼었으니 가히 충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남유럽에 한정해서는 이 겨울이 지난 2,000여 년간의 역사상 가장 추웠다는 763~764년 겨울보다 한 수 위로 보인다. 어쨌든 이렇게 바다가 얼어붙어서 사람들은 말을 타고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왔다갔다 했다고 전해진다. 와인통 안에 보관해 둔 와인도 얼어붙었으며, 860년에는 심각한 추위로 인해 인간과 동물 모두 사상자 비율이 다른 해에 비해 끔찍하게 높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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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904년 겨울
중국 한파
중국의 기후학자들이 작성한 논문[33]에 의하면 바다가 결빙되었는데, 황해는 물론이고 아예 더 남쪽까지 가서 동중국해까지 결빙이 발생했다고 한다. 논문에서 추정하는 결빙 최저 위도는 저장성 해염현 인근인데, 문제는 이곳이 무려 북위 30.5°라는 것. 이는 북위 31°에 위치한 상하이보다 약간 남쪽으로써, 후술할 1654~1655년 겨울에 발생한 바다의 결빙과 정확히 같은 위도이다. 이는 지난 2,000여 년간 중국 앞바다에서 발생한 결빙 중 가장 낮은 위도에서 발생한 결빙이다. 1,000년에 1번 올까말까한 상상초월의 혹한이 찾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제주도급으로 따뜻한 지역에 바다가 얼어버린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이야기이다. 중국 동남부가 이 정도였으니 중국 중북부와 한반도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혹한이 몰아쳤을 듯하다.이 정도면 궁예는 정말 망할 놈이 맞다. 수도를 세운답시고 하필이면 혹한으로 유명한 철원에 세웠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추웠을텐데...이렇게 추운 겨울임에도 너무 오래 전이라 구글링을 해도 자료가 거의 없다.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측의 기록을 찾을 수 없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서 자료가 희박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 등 동아시아만 유난히 추웠던 것인지는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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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
988년 겨울
유럽 한파
서유럽을 위주로 한파가 극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한파가 유난히 극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런던의 템스강이 987년 12월 22일에 결빙되어 무려 이듬해 4월 말까지 120일 동안이나 얼어있었다는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추운 겨울이 널리고 널린 17세기에도 2개월간 얼어있던 1683~ 1684년 겨울 등이 굉장히 기록적인데 그 기간의 2배에 달하는 4개월간 얼어있다는 것은 말이 나오지 않는 한파이다. 런던의 기후를 생각하면 서울로 비유 시 11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한강이 얼어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등지에서도 극심한 추위로 곡물이 모두 죽었다. 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자 유럽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게 된다. 심지어 중국 중부 지방에서도 987년 12월 23일~988년 1월 21일에 가뭄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전 세계적인 가뭄이었는 듯하다.
3.2. 11~ 16세기
대략 6세기 초반에 시작된 고대 후기 소빙하기가 8~ 9세기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세계적으로 매우 추웠던 것과 대조적으로,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의 약 300~400년 동안은 전술한 고대 후기 소빙하기나 후술할 15세기 이후의 소빙하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였다(거의 현대와 비슷한 수준). 위에서 서술한대로 이 시기를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로 분류한다. 특히 유럽 기준으로 12~ 13세기가 가장 따뜻했다고 한다.[34]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이 시기가 현대와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평균적으로는 따뜻할 시기일지라도 소빙하기급의 한파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현대와 달리 드물게 소빙하기와 맞먹는 급의 한파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1076~
1077년 겨울
유라시아 한파
유럽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추운 겨울로 이 겨울은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당시 교황에 의해 파문을 당하는 굴욕을 맞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을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고 파문 철회를 요청하기 위해 1077년 1월 25일, 추위를 무릅쓰고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지역까지 찾아간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따라 서양에서는 소위 'Canossa Winter\'이라고 부르는 겨울이다. 파면 철회 요청을 위해 직접 카노사까지 찾아간 하인리히 4세를 보고도 교황은 쉽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황제는 모자도 신발도 없이 털로 짠 수도사 옷만 걸친 채 사흘 동안 눈 위에 서서 사면(赦免)을 계속 간청하여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자세한 내용은 카노사의 굴욕 문서 참조. 추위의 지속 기간과 강도 모두 극단적이었던 겨울로, 당시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노인들조차도 "이렇게 추운 겨울은 경험해 본 적도 없고 대대로 들어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일부 기록에서는 "This winter was one of the coldest and longest winters within the memory of man(이번 겨울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가장 춥고 긴 겨울 중 하나이다)\"라고 적혀있을 정도이니763~ 764년 겨울 맛을 못 봤구나...무슨 말이 더 필요할지? 겨울의 추위는 1076년 10월 말에 시작되어 1077년 4월 15일까지 중단 없이 지속되었다. 추위가 영향을 미친 범위도 광범위해서 유럽 대륙 전체는 물론 아시아까지 영향이 닿았다. 이미 11월에 유럽의 모든 강과 호수가 얼어붙었다. 무엇보다 얼어붙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35], 결빙 기간이 엄청나게 길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시로 라인강의 결빙 기간은 1076년 11월 17일~1077년 4월 7일, 무려 143일 동안이나 결빙되어 있었다. 이는 어느 역사서를 뒤져도 유래를 찾기 힘든 수준이다. 독일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한 보덴 호수[36]도 결빙되었다. 눈도 계속되어서 11월 1일에 시작된 눈이 3월 26일까지 유럽을 뒤덮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당시 큰 눈이 내렸다. 영국에서도 11월 1일~4월 15일까지 추위가 지속되었고 템스강이 결빙되었다. 이와 같은 날씨로 인해, 포도나무를 비롯한 유럽의 나무들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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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1205년 겨울
유럽 한파
1월 14일~3월 22일까지 혹독한 추위가 이어졌다. 템스강이 결빙되었다. 이 때문에 추위가 이어진 기간 동안 모든 농사 작업이 중지되었고, 기근이 만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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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1225년 겨울
유럽 한파
겨울이 10월 9일에 일찍 시작되었는데 이듬해 4월 25일까지 길게 이어지며 추웠다고 한다. 특히나 바람이 무척 심해서 바람이 추수를 다 망쳐버리고 교회탑까지 무너뜨렸다. 눈도 많이 내려 영국에서 1월 14일 이후로 눈이 계속되었다. 해당 겨울 이후 유럽의 많은 곳에서 심각한 기근에 시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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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3~
1234년 겨울
유럽 한파
역시나 '세기의 겨울'로 불린다. 극심한 추위와 눈으로 인해 육로와 해상 모두 얼음과 눈으로 막힌 것으로 보인다. 추위가 전 유럽을 통제했다고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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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9년 봄
유럽 한파
상당히 특이한 겨울이다. 겨울의 이상 고온이 심해서 3월 말까지도 눈과 서리가 없을 정도로 온난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날씨가 반전되어 5월 중순까지 추운 날씨가 지속되는 등 때늦은 이상 한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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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9~
1270년 겨울
유럽 한파
유럽 한파라고는 하나, 이때는 영국의 기록밖에 찾아볼 수 없다. 이 기간 중에 10주 동안 혹독한 서리가 내리고 템스강은 사람이 건너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결빙되었으며, 당시 선적 금지와 겹쳐 바다를 이용한 운송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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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
1282년 겨울
유럽 한파
성탄절부터 3월까지 추위가 지속되었으며, 역시나 템스강은 사람이 건너기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단단히 결빙되었고, 런던의 몇몇 다리들은 얼음 때문에 손상을 입었다고 하며, 다른 기록에서는 아예 다리가 무너졌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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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4년 봄
영국 폭설
당시 달력으로 5월 14일경에 런던에 폭설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대 달력으로는[38] 이보다 8~9일 뒤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 현대 기준으로는 5월 22~23일 즈음에 폭설이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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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
1306년 겨울
유럽 한파
프랑스의 모든 주요 강들이 얼어붙고, 발트해가 3개월간 결빙되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인근의 바다도 얼어붙었는데 얼음의 규모가 해안선으로부터 6km에 이르렀다. 이러한 추위로 프랑스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봄이 되자 얼음과 눈이 급격히 해빙되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일명 Ice Jam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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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
1324년 겨울
유럽 한파
발트해가 완전히 결빙되었는데, 단순히 얼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무려 3개월 동안이나 결빙되어 그 위로 말과 수레를 이용해 건너다니면서 교역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색적인 풍경 덕분인지 몇몇 사람들은 음식과 음료를 파는 오두막을 얼어붙은 발트해 위에 세워서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먹는 음식은 무슨 맛? 그런데 장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음식이 얼지 않을까?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유럽도 한기를 피해가지는 못해서 이탈리아 밀라노 남동쪽의 포강이 결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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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3~
1364년 겨울
유럽 한파
14세기에서 가장 추운 겨울로 추정되며, 추위의 강도도 강도이지만 추위의 지속 기간이 말도 안 되게 길었다. 영국에서는 그냥 추위도 아니고 매우 끔찍한 추위가[39] 1363년 9월 16일에 시작되어 이듬해 4월 6일까지 장정 거의 7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프랑스의 라인강과 론강이 얼어붙어 그 위로 우마차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얼음의 두께는 가히 경악스러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15ft(약 4.57m)에 달했다고 한다.[40] 프랑스 파리에서는 12월 6일에 추위가 시작되어 14주간 이어졌으며 프랑스 전역의 과일나무들이 모두 죽어버렸다. 그렇다면 추위를 피해 땅 속은 안전했을까? 아니다. 지하 저장고에 넣어둔 포도주마저도 한파 피해를 피해가지 못했다. 심지어 짚으로 덮어놓아서 단열 처리를 해놓았는데도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땅 속의 상황도 이 정도인데 윗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살아남은 중세인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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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
1408년 겨울
유럽 한파
소위 'Millenium Winter\'로 불리며, 실제로 소빙하기 내에서 1564~ 1565년 겨울, 1607~ 1608년 겨울, 1654~ 1655년 겨울, 1708~ 1709년 겨울 등과 함께 가장 추웠던 겨울로 분류된다. 북유럽 지역에서 가장 피해가 심하여 해당 지역에서는 당시 기준으로 500년 만의 가장 혹독한 겨울이라고 기록되었다. 독일에서는 '대혹한 겨울\'이라고 불리는 듯하며 11월 11~27일 사이에 추위가 가장 극심했다고 한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사이에 위치한 보덴 호수가 완전히 결빙되었다. 다뉴브강, 센강 등 유럽의 주요 강들이 모두 얼어붙었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이제 식상하기까지 할 것이다.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면, 추위로 인해 스웨덴에 살던 늑대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얼어붙은 북해를 건너 덴마크 곳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북해 옆의 발트해도 완전 결빙되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영국에서도 추위와 눈이 몹시 혹독하여 1407년 12월에 시작된 한파가 장장 6개월에 달하는 25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각종 나무가 얼어죽은 것은 물론이고 대륙검은지빠귀같은 새들도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수천 마리씩 떼로 동사한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추위는 실제 생활에도 엄청난 지장을 주어 방앗간이 얼어붙어 생산이 중단되었으며 상인들은 장사를 하지 못해 생계에 위협을 겪었다. 잉크병도 계속 얼어붙어 글씨를 쓰고 기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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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0년대 겨울
유럽 한파
아예 특정 해가 아닌, 연대 단위로 잡은 이유가 있다. 이 짧은 시기에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들이 몰려있기 때문. 어느 정도냐면 여러 연구에서 1430년대가 지난 1,000년간 가장 추운 10년(decade)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41] 특히 추위가 심했던 해는 1431~ 1432년 겨울, 1433~ 1434년 겨울, 1434~ 1435년 겨울이었다고 한다. 특정 시기에 너무 많은 겨울이 추웠기에 나열한 해당 겨울들을 일일이 항목으로 작성하지는 않겠다. 게다가 유럽의 일반적인 겨울의 성질인 습한 것과 다르게 극도로 춥고 건조한 특성을 띄었고, 여름에는 오히려 평소보다 덥고 습한 날씨가 지속되어[42] 각종 대기근(특히 1437~ 1440년 사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단순 추위로만 수십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된다. 겨울과 여름 날씨가 이러니 수확이 될 리가 있나. 곡물은 밭에서 얼어 썩어갔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기후 재앙이 이어진 이 시기를 '공포의 10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당 시기에 왜 이렇게 유난히 추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물론 당시 몇몇 화산 폭발과 태양 활동의 변화가 원인으로 뽑힐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당 시기의 극심한 추위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단순히 어떠한 기후적 변동에 의해[43] 나타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공포의 10년에 대한 몇 가지 연구 레포트들이 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보기 바란다 자료 1, 자료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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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1454년 겨울
북반구 한파
각종 문헌 기록과 자연이 남긴 흔적을 볼 때, 전 세계가 비정상적인 한파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스웨덴에서는 이상 기후로 인해 농작물 수확량이 0으로 떨어졌다. 또한 기후학자들의 조사 결과, 유럽과 아시아 등 전 북반구에 걸쳐 나무들의 나이테가 1453년에서 1455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좁았음이 확인되었다.[45] 그리고 윗 단락에 서술한 겨울들에서 계속 언급한 중국 기후학자들이 작성한 논문에 의하면 제주도보다 낮은 북위 31°에 위치하는 장쑤성 난퉁시 인근에서 강물이 90cm에 달하는 두께로 얼어붙고 대나무를 비롯한 각종 나무들이 추위로 인해 동사했다고 한다. 북위 31°에서 이 정도였으니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지역들은 말할 필요가 있을지? 상하이[46] 인근의 타이호도 결빙되었다. 심지어 바다조차도 결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상하이보다 약간 북쪽인 북위 32°까지 얼어붙었다고 한다.[47] 이게 충격적인 것이 그냥 앞바다만 살짝 언 정도가 아니라 해안가로부터 약 40리, 즉 20km(중국에서는 1리가 500m였다)까지 얼어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거리는 해안가에서 바다를 바라볼 시 거의 지평선 끝까지 모든 바다가 얼음으로 쫙 깔려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또한 1454년 초, 양쯔강 남쪽 지역에서는 40일간 눈이 내리고[48] 수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로 사망했다고 한다. 논문에서는 이러한 비정상적 혹한의 원인으로 1452년에 발생한 쿠웨 화산 폭발을 지목했다.[49] 쿠웨 화산의 폭발은 단순한 강도가 아니어서 지난 2,000여 년간의 모든 화산 폭발 중 가장 규모가 큰 대분출이었다고 한다.[50] 따라서 그만큼 막대한 화산재가 지구의 대기를 뒤덮어 태양 복사열을 차단했고, 몇 년간 지구의 기온이 매우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쿠웨 화산 폭발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영문위키를 참조. 또한 한반도는 음력 8월 2일(양력 9월 4일)부터 함경남도 지방에 눈이 내렸다고 기록되었고 다음 해 음력 3월 21일(양력 4월 18일)에도 강한 바람과 눈이 관측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추웠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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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
1458년 겨울
유럽 한파
프랑스에서는 11월 11일~2월 18일까지 추위가 이어졌다. 주요 강 위를 따라 우마차로 이동이 가능했다. 문제는 겨울 막판에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는데, 봄이 되자 눈이 한꺼번에 녹으면서 엄청난 대홍수를 불러 일으켰다. 이 홍수의 규모가 막대해서 Ice Jam으로 인한 역사상 홍수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독일에서도 다뉴브강과 같은 주요 강이 결빙되었는데 당시 얼음의 두께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무려 40,000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얼음 위에서 캠프와 야영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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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9~
1460년 겨울
유럽 한파
1323~1324년 겨울과 비슷한 추위를 보였다고 한다. 발트해가 얼어서 그 위로 우마차를 타고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를 교류했다고 한다. 독일 뤼베크과 프러시아 왕국 사이를 얼음 위로 왔다갔다 했다. 론강, 다뉴브강, 라인강이 모두 결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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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
1481년 겨울
유럽 한파
추운 겨울었이지만 조금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12월 26일 이전까지는 겨울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정도로 온난했지만 갑자기 26일에 엄청나게 추워져 이듬해 2월 8일까지 추위가 계속되었다.[51] 센강, 마른 강, 욘강 그리고 그 강들의 지류들까지 모두 결빙되었다. 추위는 2월 8일을 끝으로 조금 나아졌지만 추운 날씨는 5월까지 지속되었다. 지나치게 추운 날씨로 곳곳에서 나무의 뿌리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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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
1491년 겨울
유럽 한파
유럽이 전반적으로 추웠지만, 그중에서도 남유럽이 특히 추웠다. 1491년 1월 10일,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고 그에 따라 근처의 아르노강이 결빙되었다. 이게 놀라운 이유가 있다. 피렌체는 최한월인 1월 평균 최저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1.4℃에 이르고, 1월 평균 기온은 5.7℃로 부산보다 높을 정도로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보다 더 남쪽의 테베레강과 파질라강까지 단단히 결빙되어서 사람들이 위로 걸어다녔다. 프랑스 브루고뉴 지방은 혹독한 추위가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하니 정말 지긋지긋했을 듯.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세 국가에 걸쳐있는 호수인 보덴 호수가 결빙되었다. 추위도 추위이지만 각종 이상 기상 현상이 난무했던 겨울인데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지방 사람들은 계속되는 폭풍우로 인해 2개월간 집 밖을 나오지 못했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1월 17일에 갑자기 어는비가 내렸다. 이 어는비로 인해 나무들이 부서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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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1494년 겨울
중국 한파
역시나 중국 기후학자들이 작성한 그 논문에 따르면 제주도와 거의 비슷한 위도인 북위 33.8°까지 바다가 결빙되었다고 한다. 눈도 심하게 내려서, 현대의 장쑤성 롄수이현[52]에서는 60일간 눈이 계속되는 등 비정상적인 날씨가 이어졌다. 그로 인해 장작을 구할 수 없어서 당시 사람들은 생존에 큰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3.3. 17세기
아래의 내용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17세기의 시작인 1601년을 시작으로 17세기가 저물어가는 1695년까지 현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한파가 빈번히 찾아왔다. 당시 소빙하기의 기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53]-
1600~
1601년,
1601~
1602년 겨울 한파
16세기의 마지막 해인 1600년에 발생한 페루 화산 폭발의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한랭해졌고,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 역사상 혼란스러웠던 시대라 일컬어지던 와중인 1601~ 1603년에 러시아에 상당한 대기근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차르가 전복되는 사태가 여러 차례 일어나게 되었다. 스위스,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지에서도 1600~1602년 겨울에 유난한 추위를 기록했다. 특히 1601년의 기록이 인상적인데, 프랑스에서는 와인 생산이 지체되었고, 독일과 페루에서는 아예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도 영향을 받아 중국은 복숭아꽃이 늦게 필 정도였고, 일본은 나가노현에 있는 스와호가 500년 만에 가장 이른 시기에 동결되었다고 한다. 영문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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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
1608년 겨울
북반구 한파[54]최소 5월 이상까지 계속 이어진 듯하다. 심지어
북아메리카 측의 기록을 보면
오대호에 6월까지 결빙이 지속되었다.]
북반구 곳곳이 상식을 뛰어넘는 이상 한파에 시달렸다. 직접적인 관측 자료는 없지만, 내셔널 포스트에 올라온 저널 기사에 의하면[55] 유럽 전역이 기록적인 한파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56] 17세기에는 워낙 추운 겨울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첫 번째로 찾아온 네임드급 겨울이라고 할 수 있겠다.[57] 네덜란드의 작가였던 Theoreodus Velius는 네덜란드 북서부의 도시 호른을 보며 이해 겨울을 "이런 겨울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할 법한 겨울이다(it was a winter whose like was unheard of in human memory)\"라고 묘사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네덜란드의 혹한은 12월에서 3월 말[58]까지 이어졌는데 꽁꽁 얼어붙은 에이셜 호수를 말과 썰매를 가지고 건널 수 있을 정도였고, 과일나무들이 죄다 얼어죽는가 하면 새들도 동사해서 죽는 일까지 빈번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겨울풍경화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Hendrick Avecamp가 1608년에 그린 'Winter Landscapes with Iceskaters(스케이터가 있는 겨울 풍경)'이라는 작품이다. 운하가 얼어서 그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노는 사람들의 모습이 당시의 혹한을 생생히 느끼게 해준다.
영국에서는 당시 겨울을 'The Great Frost(대혹한의 겨울)'이라고 불렀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이 두껍게 얼어붙었는데 결빙은 무려 6주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얼마나 두껍게 얼었으면 얼음 위에서 불을 피워도 사람들은 얼음이 녹을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River Thames Frost Fair' 축제가 열렸다. 프랑스에서는 센강이 무려 2개월 가까이나 얼어붙었고, 파리의 교회들이 미사에 사용하기 위해 교회 안에 보관해둔 와인들도 얼어붙었다. 당시 파리의 거리를 묘사하자면, 추위와 기아로 인해 죽은 시체가 도시 거리마다 수백 구씩 있었다고 한다. 지옥이 존재한다면 이런 광경일까? 이러한 광경을 두고 프랑스의 일기 작가 Pierre de l’Estoile는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극한의 추위로 인해 모든 것이 격렬하고 참혹하게 얼어붙었다. 과거 인류 역사에서 그 어느 광경도 이처럼 참혹할 수 없을 것이다(The cold was so extreme and the freeze so great and bitter, that nothing seemed like it in the memory of man)\"
혹한은 겨울에 따뜻하기로 유명한 지중해 인근의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위도가 낮고 난류의 영향을 받아 따뜻한 스페인에서조차 땅과 강에 얼음이 가득하여[59]북위 28°에 위치한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와 비슷하며 내륙이어서 비교적 추운 팜플로나도 5.2℃에 달한다.] 스페인 외교관들이 네덜란드와의 휴전을 깰 것을 선포하러 갈 때도 얼음 위로 썰매를 타고 갔을 정도였다. 게다가 추위는 풀리지 않고 오래 이어져 스페인에서는 5월까지 눈이 계속되었다고 한다.[60]최소 5월 말, 심하면 6월까지도 눈이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부 이탈리아 지역에서도 소빙하기 내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 중 하나라고 한다. 밀라노에서는 혹한과 폭설이 너무 심하여 주민들이 거의 집 밖에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유럽 최남단 국가인 그리스도 혹한이 심하여 호수와 강들이 얼어붙었다고 한다.
한파와 함께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전 해인 1606~ 1607년 겨울의 유럽은 소빙하기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고 건조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1607년 2월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꽃들이 개화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러한 이상 고온을 뒤로하고 1년 뒤에 완전히 대비되는 기록적인 한파 겨울이 찾아온 것인지 신기할 따름이다.
당시 북아메리카는 백인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인지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북아메리카 역시 그 해 겨울에 상상을 초월하는 한파와 이상 저온이 지속된 듯하다. 영문위키 겨울 항목에 따르면, 오대호 중 하나인 슈피리어호에 무려 1608년 6월까지 결빙이 지속되었다고 하는 도무지 믿기 힘든 기록이 존재한다. 슈피리어호 북서쪽에 위치한 캐나다의 도시 선더 베이의 1981~ 2010년 평년 기온을 살펴보면 6월 아침 최저 기온 7.1℃, 낮 최고 기온 20.6℃, 월평균 기온은 13.9℃에 달한다. 절대로 얼음이 얼어있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이러한 묘사들은 소빙하기의 혹한과 이상 저온들이 현대의 관점에서 얼마나 비상식적인 것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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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년 겨울
조선,
일본 한파
서기 600년경부터 일본에서 일어난 이상 기후들을 정리한 목록에 따르면, 1643년에는 그 온난하다는 일본에서 대놓고 혹한(酷寒)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매우 추웠다고 하며, 조선에서도 임금 인조가 직접 "지난 밤에 극도로 추웠는데, 각처의 군사 가운데 얼어죽은 자가 있었는지 물어서 아뢰라\"라고 명할 정도로 극심한 추위가 나타난 흔적이 남아있다. 임금이 직접 극도로 추웠다고 언급하며 동사한 자가 있는지 조사해보라 할 정도이면 예삿 추위가 아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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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
1649년 겨울[61]
유럽 한파
네덜란드는 지역에 따라서는 1648년 4~11월까지 매일 비가 오는 이상 현상으로 건초와 곡물이 모두 썩어버렸는데, 11월이 되자 갑자기 한파가 들어닥쳤다. 한파가 지독하게 이어지고 눈도 계속해서 그치지 않고 내렸는데 이러한 현상이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장기 한파를 넘어 초장기 한파라는 말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결국 이 한파로 인해 네덜란드의 운하들이 죄다 얼어붙어 모든 해상교통이 올스톱되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겨울 추위가 6개월 지속되었는데, 1649년 한 해 동안 눈이나 비가 내린 일수가 226일이나 되는 이상 기후가 이어졌다. 영국에서도 템스강이 완전히 결빙되는 등 상당히 추웠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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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
1655년 겨울[62]6월에 큰 눈과 서리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북반구 한파
기록적으로 추운 겨울이 널리고 널린 17세기에서도 끝판왕급의 겨울로,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북반구 각지에 상상하기 힘든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쳤다. 후술할 기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전 세계적 평균 기온 관점으로 볼 때 지난 2,000여 년간의 모든 겨울 중에서 이 겨울이 가장 추운 겨울일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상술했듯이 런던의 템스강이 완전히 결빙되었다. 벨라루스와 발칸반도 국가들에서는 짚으로 나름 단열 처리를 했음에도 썰매 안에 보관해 둔 와인과 맥주들이 밤 사이에 얼어터지는 광경이 일쑤였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러한 혹독한 한파와 저온 현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동사하여 30~50km를 아무리 걸어다녀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간간히 보이는 것은 오로지 심각한 기아로 인한 영양소 부족으로 피부색이 검게 변해버린 노인, 여자 그리고 아이들 뿐이라는 묘사가 존재한다.[63] 북아메리카 대륙의 경우에는 아직 백인들이 많이 살지 않았던 관계로 남아있는 기록이 희박하나, 1개월 동안 뉴잉글랜드 지역의 만들이 결빙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북아메리카도 추위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각종 문헌 기록을 종합해볼 때 역사상 최악의 겨울 중 하나임이 분명해보인다. 먼저 중국을 살펴보자. 중국의 기후학자들이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1655년 1월 8일에서 2월 5일까지 약 1개월간 상하이 앞바다가 얼어붙은 기록이 있다. 관련 자료글 참조.[64][65] 참고로 상하이의 위도는 북위 31°로 제주도보다 훨씬 남쪽이고[66] 겨울에 부산보다도 1~2℃ 이상 따뜻하다. 이러한 기후에서 심지어 강도 아니고 바다가 얼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비상식적인 한파임이 분명하다. 바다의 얼음은 심지어 상하이를 넘어 약간 더 남쪽인 북위 30.5°의 해염현까지 덮여 있었다고 한다. 해당 논문은 이렇게 남쪽까지 중국 앞바다가 얼음으로 둘러싸인 일은 903~ 904년 겨울 이후 751년 만에 처음이라고 언급한다. 또한 상하이 인근 내륙에 위치한 타이호도 완전 결빙되었다.[67] 한반도의 경우, 1654년 음력 12월 2일(양력 1655년 1월 9일)에 함경도에서 큰 눈이 내려 동사자가 발생했으며, 음력 12월 22일(양력 1655년 1월 29일)에도 큰 눈이 내려 사람이 눈에 깔려 죽었다고 한다. 이 추위는 봄에 가시기는커녕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1655년 음력 3월 3일(양력 4월 9일)에 강원도 강릉, 양양, 삼척 앞바다가 사흘 동안 얼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68] 3월 5일(양력 4월 11일)에는 서울에도 눈이 내렸다고 한다. 심지어 이 추위는 오랫동안 제대로 가시지 않았는지, 5월 3일(양력 6월 6일)에 제주(?!)에서 큰 눈이 내려 국마(國馬)가 900필이나 얼어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5월 6일에는 충청도에서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7월 22일(양력 8월 23일)에는 경상도에 우박과 눈이 내렸다는 짤막한 기록이 있다. 과장이 아니라, 1655년 한 해 동안은 소빙하기가 아니라 정말로 빙하기에 준하는 비정상적인 날씨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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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
1656년 겨울
유럽 한파
전 해에 이어 연속으로 유럽 전역에 기록적인 한파가 들이닥쳤다.[70] 설명에 의하면 프랑스 파리의 센강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독일의 경우는 한파가 더 심해서 우물들이 밑바닥까지 전부 얼어붙어 물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더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독일 방면의 발트해가 완전히 얼어붙어 해안가로부터 무려 35~42km[71]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까지도 4륜 우마차를 타고 얼음 위를 다녔다고 한다. 현재의 체코 서부인 보헤미아는 길거리에 동사한 사람들의 시체가 몇 구씩 널려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당시 폴란드에는 일명 대홍수라 하여 반란자가 외세까지 끌어들여 국가급 대재앙이 일어났는데, 하필 이러한 날씨까지 겹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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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
1658년 겨울
북반구 한파
혹독한 한파로 유럽 북부의 해협과 만이 모두 얼어붙어, 스웨덴의 국왕 칼 10세 구스타브는 대포, 공급 물자를 포함한 모든 병력을 가지고 얼어붙은 카테가트 해협을 건너가서 덴마크를 침략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1658년 2월 27일에 큰 눈이 내렸고, 추위로 이탈리아의 강들이 얼어붙었는더 어찌나 꽁꽁 얼었는지 당시에 가장 무거운 수레를 끌고 건너도 끄떡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추위와 폭설이 너무 심해서 올리브나무들이 죽고 파괴되는가 하면, 센강도 새해 첫날에 완전히 얼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운하는 63일간 얼어붙어 기능을 상실했다. 북아메리카도 동부 해안가의 추위가 심하여 매사추세츠 지역의 만이 얼어붙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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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
1671년 겨울
동아시아 한파
경신대기근으로 악명높은 바로 그 겨울이다. 의외로 유럽에서는 그렇게 심한 혹한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나, 동아시아에서는 상술한 1654~1655년 겨울에 버금가는 최악의 혹한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다 못해 땅에 묻힌 사람의 시체를 찾아 시체의 옷을 훔쳐입기도 했다.[72][73] 중국에서 작성한 논문에 의하면 여러 문헌들과 과학적인 추정법으로 당시의 기온을 추정하여 복구했는데, 중국 남부의 후난성에서는 북위 26°[74] 인도 뉴델리보다 남쪽이고, 일본 오키나와와 맞먹는 위도이다.]에서 최저 기온이 -15℃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20세기 현대 이후의 최저 기온 극값보다 무려 7℃나 낮은 것이다. 또, 논문에서 말하기를 중국 남부에는 수많은 강이 존재하는데 문헌으로 추정한 결과 북위 27°까지도 강이 얼어붙었다고. 이처럼 저위도까지 강이 얼어붙은 일은 중국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한다. 중국 기후학자들이 작성한 또 다른 논문에 의하면 북위 35° 이하의 저위도까지도 서해의 결빙이 발생했다. 다만, 1654~1655년 겨울처럼 상하이 남쪽인 북위 30.5°까지 바다가 어는 비상식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위 34.8°인 간유현까지 얼어있었다고.[75] 위의 논문에서는 이처럼 추운 겨울이 온 이유를 이전에 몇몇 큰 화산 폭발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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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3~
1684년 겨울
북반구 한파
상술한 영국 기상 관측 역사상[76]역사상이 아닌 기상 관측 역사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역사적인 문헌 기록 묘사들을 볼 때 기상 관측 시작인 1659년 이전에 더 추운 겨울이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아니 이것보다 더 추우면 대체...] 가장 추운 겨울이다. 영국에서는 당시 겨울을 'The Great Frost of 1683-84\'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문위키 참조. 어찌나 추웠는지 템스강이 2개월 동안이나 얼어붙어 있었고 얼음의 두께도 30cm에 달했다.[77] 한술 더 떠서 잉글랜드 남서부의 소머세트라는 지역에서는 강의 얼음 두께가 120cm에 달했다고 한다.강 위에다가 집 하나 지어도 안전할 듯하다.북해를 바다로 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는 해안가로부터 몇 마일(수 km) 바다가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항구를 이용하고 항해하는데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78] 동아시아에서도 엄청나게 추웠던 듯하다. 상하이 인근의 타이호가 완전 결빙된 기록이 있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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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
1695년 겨울
북반구 한파
17세기라서 너무 옛날인 관계로 자세한 수치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후술할 1708~ 1709년 겨울 뺨치게 기록적으로 추웠을 것으로 보인다. Extreme Weather During the Maunder Minimum에 의하면, 영국이 7주 동안이나 얼음으로 뒤덮여있고 5주 동안이나 계속 눈이 내렸다고 한다. 링크에서는 심지어 얼마나 추웠으면 추위로 인해 삼림수와 오크나무들이 쩌저적 갈라졌다는 믿기 힘든 기록이 있다고 서술한다. 독일 남부와 프랑스 북부에서도 한파가 매우 심했다고 전해진다. 아이슬란드는 한술 더 떠서 빙하가 섬을 둘러싸고 해안 전체를 막아버려 거주민들이 섬에 몇 달간 고립되었다고 한다.그린란드?한파는 중국에서도 심했는지 북위 31°에 위치하여 겨울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상하이의[80] 황포강 또한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위 링크에 중국 외 아시아 기록이 없을 뿐, 중국 상하이가 이 정도로 추웠다면 바로 옆 한반도 역시 엄청나게 추웠을 것이 자명하며[81], 이해 겨울은 사실상 북반구 전역이 심각한 한파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된다.
3.4.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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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
1709년 겨울[82]
북반구 한파
아시아, 유럽 모두 추웠던 겨울이지만 특히 유럽의 한파가 극단적으로 심했다. 기상학자들의 연구 결과 지난 500년간 유럽 역사상 가장 추웠던 겨울이라고 한다.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기서 지난 500년 동안 가장 추웠다는 것은 유럽 대륙의 전반적인 평균 기온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지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하면 이보다 더 추운 겨울이 존재할 수 있다.[83]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혹독한 추위가 이어졌다. 유럽 대륙은 세기 단위로 보면 17세기 겨울이 가장 추웠으나, 시대가 아닌 가장 추웠던 특정 해를 꼽으면 1708~1709년 겨울이 가장 추웠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이해 겨울을 'The Great Frost\'라고 부를 정도로 추웠다. 영문위키에 당시의 기온이 얼마나 낮았는지와 한파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학술적으로 잘 분석되어 있다.
이 겨울의 특징은 한파의 강도도 상상초월이지만 그 기간마저 비정상적으로 길었다는 것이다. 유럽 대륙은 이미 10월부터 찬바람이 불어들었다. 예시로 독일 베를린의 경우 유럽 내에서도 매우 빠른 1701년에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한 관계로, 직접적인 기상 관측 자료가 남아있다. 이해 겨울은 사실상 10월부터 시작되어 맹위를 떨친다. 평년과 달리 비정상적으로 2개월 가까이나 빨리 찬바람이 불어닥친 베를린은, 1708년 10월 평균 기온이 1.4℃로 현대의 12월 평균 기온보다도 낮았다. 한파는 점점 기세를 더해가서 1월에 극점을 찍었다. 1709년 1월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은 충격적인데, 그 수치는 무려 -13.2℃. 베를린의 1701년~현재까지 월평균 기온을 정리한 표. 아침 최저 기온도 1월 10일 -29.1℃에 달했다고 한다. 참고로 1981~ 2010년의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을 비교해보면 베를린은 0.4℃, 서울은 -2.4℃로 서울이 확실히 더 춥다.[84] 그런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조차 1963년 1월의 -9.2℃에 불과했다.[85] 서울로 치면 월평균 기온이 -13~-14℃에 이를 정도로 비현실적 한파가 덮친 것이다.[86] 프랑스에서는 기상 관측 자료는 없으나 문헌 기록이 있는데, 당시 루이 14세 시대의 외교관이자 작가였던 생시몽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겨울 날씨는 혹독했다. 추위가 얼마나 심한지 베르사유 궁전 방 안의 찬장에 보관해두었던 헝가리 화장수(로즈마리 성분이 첨가된 알코올 방향액), 엘릭시르 시럽, 도수가 가장 높은 리쾨르주의 병들이 모두 터졌다. 빌르루아 공작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는 유리잔에 얼음이 떨어졌다.\" 이 대한파로 인해 프랑스에 대기근이 들어서 무려 60만 명이나 굶어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특정 국가가 아닌 유럽 대륙 전반의 기온은 어땠을까? 영문위키에 따르면 유럽의 기후학자들이 'European Union Millennium(EU 천년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걸고 과거의 기후 데이터를 복원하는데 힘썼고, 1971~ 2000년 평년값과 비교한 1708~1709년 겨울의 유럽 대륙 평균 기온 지도 데이터가 아래와 같이 만들어졌다.[87]
지도를 살펴보면 평년 편차 -6℃ 이하인 영역이 독일,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러시아 등을 뒤덮고 있다. 특히 폴란드,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는 평년 편차 -8~-9℃ 이하를 의미하는 짙은 파란색과 보라색으로 뒤덮여 있다. 이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 잘 와닿지 않을 텐데 이럴 때는 역시나 또 서울로 비유하면 잘 와닿는다.[88] 1971~2000년 기준으로 서울의 겨울 전체(12~2월) 평년 기온은 약 -0.9℃이다.[89] 따라서 1708~1709년 겨울 유럽 대륙의 추위는 서울의 겨울 전체(12~2월) 평균 기온이 -9~-10℃ 이하로 떨어진 것과 거의 비슷하게 대응된다고 생각하면 된다.[90]-6.1℃이다(12월 -5.8℃, 1월 -7.8℃, 2월 -4.9℃). 또한 월별로 평균 기온이 가장 낮았던 기록만 골라서 합쳐도 도합 -6.8℃로 -10℃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1944년 12월 -5.8℃, 1963년 1월 -9.2℃, 1947년 2월 -5.3℃).] 이처럼 각종 문헌의 묘사들과 기후학자들이 제건한 당시의 기온 데이터 추정치를 보면 아무리 소빙하기라 춥다고 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추위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한파가 가능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1709년은 태양의 활동이 미미했던 시기인 마운더 극소기[91]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운더 극소기 시기인 1645~ 1715년 사이에는 태양의 흑점이 거의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래의 그래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92]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태양의 복사에너지가 근원이다. 따라서 태양의 활동이 미미해지면 지구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기온이 하강한다는 설명이다.[93] 다만 주의할 것은, 기후학자들이 소빙하기의 원인을 태양 활동과 연관시켜 설명하려는 시도는 꽤나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소빙하기의 원인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가설) 중에 하나일 뿐, 그 자체로서 과학계에 증명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마운더 극소기와 기후의 연관성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영문위키의 Maunder Minimum 문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두 번째로는, 하필 전년도인 1708년에 후지산과 산토리니를 비롯한 4개의 화산들이 동시에 폭발하는 이례적인 화산 활동이 발생한 바람에 화산재가 지구의 대기를 덮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덮은 화산재는 대기의 태양 복사에너지 흡수를 차단했고, 그에 따라 기온 하강이 가중된 것이다. 정리하면 태양 활동의 미미함 + 화산 폭발로 발생한 빙하기급 수준의 겨울. 결국 이 한파가 원인이 되어 당시 대북방전쟁 중에 루스 차르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한참 동안 전투를 하지 못해 전황이 지체되기만 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1709년 음력 2월 18일(양력 3월 28일)에 우박이 내렸다고 기록되었고 음력 2월 26일(양력 4월 5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눈이 날마다 내리고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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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
1716년 겨울
유럽 한파
과거 베를린의 한파를 분석했던 한 블로거에 의하면[94] 유럽의 1715~1716년 겨울도 무척이나 추웠다고 한다. 다만 베를린에서도 해당 시기는 결측된 시기라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16년 1월에 템스강이 꽁꽁 얼어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가 열렸다는 기록을 보면[95] 위 블로거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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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7년 2~3월
북아메리카 한파 및 폭설
기온 자체가 엄청나게 낮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미국 동부, 정확히는 버지니아주와 뉴잉글랜드 지역에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폭설이 쏟아졌다는 점에서 이 문서에 기록한다. 미국에서는 악명이 높은지 영문위키에 The Great Snow of 1717이라는 문서가 존재한다. 해당 영문위키 문서에 따르면 눈폭탄은 2월 27일~3월 7일 사이에 발생했는데 그중에서도 3월 1일, 3월 4일, 3월 7일로 각각 3번씩 크게 눈이 내렸다고 한다. 3월 7일에 내린 눈의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당시 몇몇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규모의 눈폭탄은 우리 조상님들로부터도 대대로 전해 들은 적이 없는 수준이다(even their ancestors never spoke of a storm of this magnitude)\"라고 했다. 보스턴에서는 1m 정도의 눈이 내렸는데 이것도 도시의 이야기이고 도시로부터 조금 더 북쪽 지역은 1.5m까지 눈이 쌓였다고 한다. 그러나 저것은 기록의 측면이고 실질적으로는 지역에 따라 눈이 더 쌓였다고 한다. 묘사에 따르면 당시 1층 집들은 굴뚝의 모습도 남기지 않은 채 모두 파묻혔으며, 2층 이상의 집에서만 2층을 통해 겨우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실제로 적설된 눈이 최소 2.4m 이상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위의 영문위키 문서에서 설명한다. 이처럼 상상을 뛰어넘는 양의 폭설로 인해 눈에 깔려 죽는 사람들이 발생했으며, 수많은 나무들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묻히고, 지역에 서식하는 90~95%의 순록들이 모두 몰살당했다. 뉴욕과 보스턴 사이로는 아예 이동이 불가능했으며, 역로[96]도 최소 3월 15일까지 아예 이용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당시 우체부의 증언에 따르면 눈폭풍이 끝난지 1주일이 넘었는데도 1.8~4.3m에 달하는 눈이 보스턴~포츠머츠까지 이르는 길에 쌓여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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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
1740년 겨울
서유럽 한파
CET(Central England Temperature)에 의하면, 영국 잉글랜드 중부는 월평균 기온 데이터가 존재하는 1659년 이래[97] 가장 추웠던 1683~ 1684년 겨울 다음으로 낮아 역대 2번째로 추운 겨울(12~2월 평균)이었다고 한다. 겨울 평균 기온만 낮았던 것이 아니다. 일별 최저 기온도 상상초월이었는데, 당시에는 일별 최저 기온 통계를 집계하지 않던 시기라 정확한 기온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영문위키의 런던 문서에 따르면 1740년 1월 3일 런던에서 비공식적으로 무려 -24℃라는 비상식적인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1901년 이래 런던의 역대 최저 기온이 -18.9℃[98]인데 그보다 무려 5℃ 이상이나 낮은 것이다. 심지어 런던보다 겨울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추운 기후를 보이는 서울조차도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의 역대 최저 기온이 -23.1℃[99]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로 비유할 시 서울의 최저 기온이 -27~-28℃에 달한 것과 동급이라고 보면 된다.[100] 상상이 가는가? 이로 인해 무려 8주 동안 템스강이 완전히 결빙된 것은 물론이고 위의 1715~1716년 겨울 이후 24년 만에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도 열렸다. 독일에서도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이 1~2월로 2개월 연속 -7℃ 이하(1월 -8.5℃, 2월 -7.3℃)를 기록하는 장기 한파가 나타났다. 여담으로 잉글랜드 중부(Central England Temperature)와 독일 베를린 모두 기상 관측 이래[101] 1740년의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았다.[102] 즉 겨울의 한파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1년 내내 이어져 극단적인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겨울철 한파와 이상 저온으로 인해 아일랜드 대기근이라 불리는 대기근이 1740~1741년 사이에 아일랜드를 덮쳤다. 이로 인해 당시 아일랜드 인구의 13~20%(31만~48만 명)이 사망했다. 말 그대로 궤멸적인 피해이다. 바로 아래의 단락에서 후술하겠지만 유럽뿐 아니라 북아메리카도 1740년에 심각한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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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
1741년 겨울[103]
북아메리카 동부 한파
자료에 따르면 미국 동부는 1740년 여름에 비만 추적추적 내리며 이상 저온이 이어졌는데[104], 바로 한파까지 닥쳐 1740년 10월이 되자마자 매사추세츠주의 강들이 얼어붙었다. 11월 4일경이 되자 온도는 더욱 빠르게 하강하였고, 폭설도 쏟아져 11월 15일에는 30cm에 달하는 눈이 쌓였다. 11월 22일 이후 기온이 그래도 오르면서 얼음이 녹고 한파가 사라지나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12월 중순에 한 층 더 강하게 찾아와 미국 동부의 주요 강들이 모두 얼어붙어 말들이 강 위로 썰매짐을 끌고 뛰어다닐 정도가 되었다. 추위는 더욱 더 심해져서 뉴욕 근처의 바다는 아예 배들이 운항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당시의 겨울은 추위뿐 아니라 폭설도 기록적이었다. 매사추세츠주에 1741년 2월 3일 눈폭풍이 온 것을 시초로 5월까지도 눈폭풍이 계속 찾아왔는데 일부 지역은 눈이 쌓인 높이가 3m에 달했다.[105] 사실상 10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무려 7개월 가까이 겨울 날씨가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옥수수 수확에 궤멸적인 타격이 있었다고 한다. 너무 옛날이라 직접적인 관측 기록이 없어서 문헌 기록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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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
1780년 겨울
북아메리카 동부 한파
미국 역사상 최악의 겨울 중 하나로 묘사된다. 11월부터 눈폭풍과 함께 겨울 추위가 시작되더니 12월, 1월로 갈수록 매서워졌다. 당시 조지 워싱턴이 미국 독립 전쟁에서 대륙군을 지휘했던 장군인 질베르 뒤 모티에 드 라파예트 후작에게 보낸 편지에는 "지금 우리가 겪는 혹독한 겨울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노인조차도 살면서 본 적이 없다고 하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한파는 새해가 되자 더욱 매서워졌고 눈보라도 거세져서 1.2m 이상의 눈이 1월 2~4일 사이에 쏟아졌다. 영문위키 겨울 문서에 따르면 뉴욕의 아침 최저 기온이 -27℃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1869년 최저 기온 극값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낮은 기온인 -26℃[107]보다도 낮다. 극단적인 한파로 뉴욕의 앞바다는 완전히 얼어붙어 1개월 넘게 배가 다니지 못했고[108] 덕분에 뉴저지주 해안가 시민들은 육지로 돌아가지 않고 썰매에 장작 나무를 싣고 얼어붙은 허드슨만 바다를 건너 뉴욕 맨해튼까지 빠르게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한 술 더 떠서 뉴욕보다 훨씬 아래, 북위 34°인 노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의 항구와 만까지 죄다 얼음으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충격적인 이유는 미국 동부의 기후 특성상, 동위도 대비 한반도나 중국보다 훨씬 따뜻하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니아주의 해안가 마을인 모어헤드 시티(Morehead City)를 예로 들면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7℃대일 정도로 높다.[109] 이는 북위 33°에 위치한 제주보다 따뜻한 것은 물론이요, 북위 28°의 동중국해에 위치한 해안 도시인 저장성 원저우시의 1월 평균 기온과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즉 단순히 평년 기후값을 가지고 대응시켜서 보면[110] 북위 28° 지역까지 바다가 얼어버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월 평년 평균 기온이 0.6℃로 대구와 비슷한 펜실베이니아주의 필라델피아도 1월 한 달 내내 단 하루를 빼고 매일 낮 기온이 영하였다고 한다.[111] 당시 미국 독립선언서의 전문 복사본을 새겼던 티모시 매틀랙(Timothy Matlack)은 "한창 따뜻할 오후 4시인데, 지금 내 거실의 따뜻한 불난로 아래에 있는 팬의 잉크는 아직도 얼어있다네!"라고 투덜댔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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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
1784년 겨울
북반구 한파
유럽, 북아메리카를 가리지 않고 추웠고 특히 북아메리카 지역은 1779~1780년 겨울 이후 4년 만에 또 한 번 최악의 겨울을 맞이한다.[112] 자료에 따르면 미국 역사상 가장 길고 혹독했던 겨울 중 하나였다. 1779~1780년 겨울 한파가 미국 북동부 지역을 위주로 강했다면, 1783~1784년 겨울은 미국 남부 지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관측 이래 가장 긴 기간 동안 영하의 기온 행진이 이어졌으며, 뉴저지주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눈이 쌓였고, 체서피크만은 관측 이래 가장 길게 결빙되었다.[113] 벌써 놀라기는 이른데, 이보다 더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북위 29.9°에 위치한 뉴올리언스 근처의 미시시피강이 결빙되었다.[114]11.9℃에 달하는 엄청나게 따뜻한 도시이다. 어느 정도냐면 북위 26°, 대만 옆에 위치한 중국 푸젠성의 푸저우시가 비슷한 기후를 띈다. 이같은 기후에서 강이 얼어붙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법한 일이다.]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바다인 멕시코만에서 얼음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기록적으로 추운 날씨가 이어졌는데, 한 학술지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평년의 겨울(당시 기준의 평년)보다 5℃나 기온이 낮았고, 관측 이래 가장 긴 기간 동안 빙하가 관측되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추운 겨울이 엄습한 이유는 1783년 6월 8일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이 분화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화산 분화는 몇 년간 지구를 더욱 한랭하게 만들어 혹한을 가중시키고, 홍수 등 각종 이상 기후를 야기했다고 한다. 위 링크들에 화산 분화와 기후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자세한 학술적 설명이 나와있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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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12월
유럽 한파
한파의 비교 범위를 12월로 한정지으면, 유럽 대륙 역사상 최악의 한파가 들이닥쳤다. 1783년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 분화의 영향을 받아 생긴 한파 겨울로 추정된다. 독일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이 -11.2℃에 달했다. 이는 역대 12월 중에서 가장 낮고, 12월로 굳이 한정짓지 않아도 1709년 1월, 1823년 1월에 이어 베를린 기상 관측 역사상 3번째로 낮은 월평균 기온이다. 현대의 베를린의 12월 평균 기온이 2.0℃임을 고려하면 무려 13℃ 이상이나 낮다. 이 정도의 기온은 12월임을 감안할 때 소빙하기 내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추운 것이다. 1701년 이래 기상 관측 기록이 있는 베를린에서, 1788년 12월 다음으로 추운 12월인 1829년 12월(-8.5℃)보다도 2.7℃나 낮아 정말 압도적이다. 12월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1901~ 2023년 사이의 그 어떤 달의 월평균 기온보다도 낮다. 프랑스에도 한파가 이어졌다. 프랑스 파리의 월평균 기온이 -6.8℃에 달해 월 상관없이 현재까지 가장 낮은 월평균 기온 기록을 가지고 있다.[115][116] 이해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1789년 프랑스 혁명 시발점의 하나라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영국 런던에서는 역시나(...) 또 템스강이 완전 결빙되었고, 이듬해 1월에는 1739~1740년 겨울 이후 49년 만에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가 열렸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월평균 기온도 -20.2℃로 12월 평균으로는 관측 사상 가장 낮았다.[117] 모스크바의 1779년~현재까지 월평균 기온을 정리한 표.[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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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3월
북유럽 한파
1792년 3월 7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25.5℃라는 믿기 힘든 기온을 보여, 기상 관측 이래 3월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이냐면 스톡홀름은 최한월인 2월[119]의 현대 평년 평균 기온도 -1.7℃로 서울의 최한월보다 따뜻하고[120], 3월은 1.2℃로 아예 평년 평균 기온이 영상인 기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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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1월
서유럽 한파
유럽 전반적으로 추웠지만, 특히 영국의 1월 한파가 매우 기록적이었다. CET(Central England Temperature)에 따르면 영국 잉글랜드 중부의 월평균 기온 자료가 남아있는 1659년 이래, 겨울 평균 기온이 아닌 단일 월평균 기온만 놓고보면 1795년 1월이 역대 월평균 기온 중 가장 낮았다고 한다. 노팅엄 대학교 블로그의 분석글 참조. 해당 수치는 -3.1℃. 일별 기록으로 보면 더더욱 당시의 한파가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데, 영문위키의 런던 문서에 따르면 1795년 1월 25일 런던에서 -21.1℃를 기록했다. 이는 1901년 공식적인 최저 기온 극값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낮은 기온인 -18.9℃[121]보다 훨씬 낮은 기온이다. 런던은 1월 평균 기온이 5.2℃로 부산보다도 높은 곳임을 감안하면, -21.1℃라는 수치는 경악스러운 기록이라 할 만하다.[122] 이해 겨울에도 역시나 런던의 템스강이 완전 결빙되었다. 영국뿐 아니라 독일 베를린의 1월 평균 기온도 -8.5℃로 매우 추웠다.
3.5.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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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4월
북유럽 한파
4월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시기상 비정상적인 한파가 찾아왔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1808년 4월 3일 최저 기온이 -22℃까지 떨어졌다. 영문위키에서 스톡홀름의 현대( 1901년 이후) 기온 극값을 보면 4월 최저 기온 극값은 -11.5℃이다. 즉 현대의 최저 기온 극값보다 무려 10℃ 이상이나 낮은 기온을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 현대의 스톡홀름은 4월이 아닌 한겨울 1~2월에 -22℃를 기록해도 매우 추운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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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
1814년 겨울
유럽 한파
유럽 전반이 추웠지만 특히 영국, 북유럽, 러시아를 중심으로 1월이 유난히 기록적으로 추웠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이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완전히 얼어붙었고, 그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도 마지막으로 열렸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1월 평균 기온이 -14.3℃로 1756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가장 낮았으며[123] 1월 20일에는 아침 최저 기온이 역대 최저인 -32.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러시아의 경우 상트페테르부르크만이 유일하게 기록이 남아있는데, 1월 평균 기온이 무려 -21.5℃[124]로 1743년 기상 관측 이래 압도적인 최저 1위를 달성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1743년~현재까지 월평균 기온을 정리한 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크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모스크바도 분명 역대 최저이거나 혹은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1779년부터 기상 관측을 시작했음에도 하필 1814년이 결측이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매우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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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2월
북아메리카 한파
1815년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로 여름 없는 해가 약 2년간 지속되고, 특히 1817년 2월 북아메리카에서는 19세기에서 최악의 한파가 관측되었다.[125]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1743년 4월에 시작되어 기상 관측이 가장 빨리 시작된 보스턴에 유일하게 기록이 있는데, 1817년 2월 평균 기온이 -9.1℃로 역대 가장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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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1월
독일 한파
유럽이 전반적으로 추웠으나 그중에서도 유난히 독일의 추위 강도가 극단적이었다.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이 -11.6℃에 달했다. 이는 1701년 베를린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709년 1월의 -13.2℃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낮은 월평균 기온이다. 그리고 현대의 1월 평년치보다 무려 12℃ 가량이나 낮은 기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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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12월~
1834년 2월 일본
12월 23일 밤부터 대설이 내려 에도[128] 시내에 3척 남짓(대략 1m) 가량의 눈이 쌓였고, 그 때문에 길에 있던 나무들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있었다고 하며, 동사자가 발생하였고, 이듬해 2월까지 눈이 완전히 녹지 않았다고 한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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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10~11월
중국,
러시아 한파
사하 공화국 야쿠츠크의 10월 평균 기온이 -15.7℃, 11월에는 더욱 심각해져서 -38.1℃까지 급락했다. 이는 12월, 1월과 거의 비슷한 추위가 11월에 찾아온 것이다. 이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베이징의 11월 평균 기온이 0.8℃를 기록하며 1947년 11월과 함께 단 둘뿐인 0℃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만약 야쿠츠크와 한참 멀리 떨어진 중국 베이징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면, 필시 한반도에도 일찍부터 한기가 내려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단 11월 야쿠츠크의 기온만으로 따지면 1884년 11월, 1912년 11월 등보다도 훨씬 더하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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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1월 10~11일
북아메리카 동부 한파
1859년 1월 평균 기온 자체는 혹한이 아니나, 특이하게도 북아메리카 동부에서는 1월 10~11일 단 이틀 동안만 현대의 관측 기록을 모두 뛰어넘을 정도의 혹한이 찾아왔다. 캐나다에서는 몬트리올이 1월 10일 오전 7시에 무려 -42.0℃라는 기온이 나타나, 현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871년 이후의 최저 기온인 -37.8℃[131]보다 약 5℃ 가량이나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온이 찍혔다. 토론토에서도 1월 10일 아침 -32.8℃라는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기온이 찍힌다. 미국에서는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관측소에서 1월 10일 오후 2시에 -20.3℃, 다음 날인 1월 11일 오전 7시에 -28.0℃를 기록. 이는 보스턴의 역대 최저 기온인 -28.0℃[132]와 동점이다.[133] 뉴욕도 1월 10일 하루 동안 기온이 화씨 0℃(섭씨 -17.8℃)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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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월
중국 한파
전년도에 이어 이해에도 엄청난 한파가 몰아쳐 상하이의 타이호가 결빙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베이징은 1862년 1월이 결측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알기 힘들다. 대략 전년도보다 살짝 더 추웠을 것으로 보인다. 비공식으로 남아있는 상하이는 더 심각해서, 위에 서술한 1861년 1월보다 1.9℃나 낮은 0.3℃가 기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조선도 한파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135], 우연찮게도 이 시점에 임술농민봉기가 일어났다.[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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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1월
일본 한파
일본 기상청의 월평균 기온 자료에 따르면, 도쿄의 월평균 기온이 1.6℃로 1900년 1월, 1918년 1월, 1945년 2월 등과 함께 공동 역대 최저 4위를 기록했다.[137] 1981~ 2010년 기준 도쿄의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5.8℃로 서울보다 8.2℃나 높기 때문에 이는 초이상 저온이다. 일별로 보면 더욱 심하다. 1월 13일에 도쿄에서 1875년 관측 시작 이래 역대 최저 기온인 -9.2℃를 기록했다. 이는 [age(1876-01-0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건재한 기록이다. 사실 앞으로도 영원히 깨지기 힘들 기록이다. 제대로 된 현대적 건축물도 없던 19세기에 비해 현대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의 열섬화가 심화되었을뿐 아니라, 과거에 비해 한파의 강도도 약해졌기 때문이다.[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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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1878년 겨울
청나라,
러시아 제국 한파
중국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추웠다. 특히 중국 남부에서는 해당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한파가 찾아온 듯하다. 우선 이 1878년 1월 1일~3월 22일 사이 1000hPa 지상의 평년 기온 편차 지도를 살펴보자.
해당 지도를 만든 곳이 미국 연방해양대기청인지라 동아시아 지역을 보려면 사진을 180° 돌려 보는 것이 편하다. 사진에서 보면 중부 시베리아와 동시베리아에 -6℃ 이하를 의미하는 붉은 보라색이 색칠되어 있다. 시베리아는 원래 극한지인데 평년보다 6℃ 이상 낮았으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추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도 동부와 남부를 중심으로 -3~-4℃ 이하를 의미하는 짙은 파란색과 보라색이 보인다. 실제로 상하이의 1878년 1월 평균 기온은 -0.2℃로 1873년 관측 이래 유일한 영하이다! 1877년 12월 말에 중국 북부 지방에서 시작된 한파가 점점 양쯔강 이남의 중국 남부까지 영향을 미쳤고 무려 60일 이상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있는 이상 한파를 부른 것이다. 북위 약 31~32°에 위치한 후베이성의 한강(漢江)[140]이 얼어붙었고, 무려 북위 29°의 후난성에 위치한 동팅호수도 얼어붙는 등 평소에 극단적으로 춥기가 힘든 저위도까지도 기록적인 혹한을 보였다. 한 술 더 떠서 북위 25~29° 사이에 위치한 장시성 지역에서도 갑작스러운 추위로 나무가 동사했고, 강 밑바닥까지 얼어붙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뭐야 무서워난링 산맥 이남 지역(북위 25° 남쪽, 대만과 동급인 위도이다!)까지 그대로 한파의 영향을 받아 혹독한 겨울이 1월 한 달 내내 이어졌고 물속의 물고기는 동사했으며 추위는 2개월이 지나서야 풀렸다고 문헌에 적혀있다고 한다. 첫눈도 매우 기록적으로 빨랐다. 북위 35°47′, 대략 한반도의 전라북도와 비슷한 위도의 산시성에 위치한 가오핑시의 첫눈이 1877년 10월 4일에 내렸다. 이는 1961년에서 1990년 사이의 가장 빠른 첫눈인 11월 2일의 기록보다도 한 달 가까이나 빠르며, 평년값인 11월 16일보다는 43일이나 빠른 것이다. 서울이 10월 초에 눈이 내린 것과 비슷한 셈. 이곳에서 당시 중국 겨울의 자세한 묘사를 더 확인할 수 있다.[141]
한편 위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한반도는 춥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추위가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기의 축이 한반도를 교묘히 피해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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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12월
프랑스 한파
유럽이 전반적으로 추웠으나 그중에서도 프랑스만 유난히 추위의 강도가 극단적(또는 비정상적)이었다. 프랑스에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추운 겨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겨울이라고 한다(단, 1708~ 1709년 겨울이 관측 기록이 없어서일뿐, 학자들은 1879년 12월보다 1708~1709년 겨울이 더 추웠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현대 파리의 12월 평균 기온 평년값은 5.5℃이다. 이는 부산의 12월 평균 기온만큼이나 따뜻하다. 이 정도로 따뜻한 기후인 파리가, 1879년 12월 10일에 무려 -23.9℃까지 떨어졌다. 영문위키의 파리 문서에서 Climate 항목을 참조. 이는 대한민국의 어느 광역시에서 기록된 최저 기온보다도 낮은 극값이다. 심지어 파리보다 겨울에 훨씬 추운 서울의 역대 최저 기온도 -23.1℃[142]에 불과하다. 파리의 이 기록이 더 놀라운 이유는, 최저 기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872년 이후로 파리의 최한월인 1월의 역대 최저 기온조차도 -14.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2월은 최한월도 아닌데 최한월인 1월보다 9℃ 이상이나 낮은 기온을 기록했으니 비정상도가 가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미 11월에도 -14℃가 나타난 적도 있었다. 이날만 1981년 1월 5일 양평급 복사냉각으로 심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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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2월
일본 한파
도쿄의 월평균 기온이 1.9℃를 기록, 1945년 2월의 1.6℃에 이은 2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2위를 달성했다. 2월 11일에는 아침 최저 기온이 -7.8℃까지 떨어지며 2월 중순이라고는 믿기 힘든 기온을 기록한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기후의 차이가 커서 와닿지 않을 텐데, 서울로 비유하면 2월 중순에 -21℃ 정도의 기온을 기록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1883년 2월 7일 도쿄의 일 강수량이 105.0mm에 최저 기온 -2.7℃, 최고 기온 2.7℃, 일평균 기온 -0.1℃였다. 당시에는 적설 관측을 하지 않은 시기라서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지만, 기온 분포를 보면 저 강수량이 모두(혹은 거의) 눈으로 내렸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저 하루 동안 1m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143] 여기서 그치지 않고 4월 1일에 -3.3℃를 기록하는 등 후폭풍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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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12월~
1885년 3월 초
일본 한파
도쿄에서 이미 11월 말부터 영하로 떨어지면서 한파의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12월에 들어 -3~-5℃인 날씨가 지속적으로 찾아왔다. 그나마 낮에는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따뜻했지만, 이듬해 1월로 접어들면서 낮에도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특히 최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였다. 1월 14일에는 도쿄의 최저 기온이 무려 -9.1℃로 전술한 1876년 1월 13일의 -9.2℃ 다음으로 낮은 역대 최저 기온 2위를 기록했으며, 1월 21일에도 -8.2℃를 기록하였다. 이 추위의 여파로 도쿄의 1월 평균 기온이 1875년 관측 이래 역대 최저인 0.6℃에 머물렀다. 1월 31일에 -6.9℃를 기록한 뒤로도 한파가 계속되어[144] 2월 18일과 2월 19일에 -6.4℃를 기록. 그 직후로 기온이 올라 강력한 한파는 끝났지만, 여전히 영하의 날씨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2월 25일이 되어서야 영하의 날씨를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2월 28일부터 다시 영하로 떨어져 3월 9일에 -3.8℃[145]까지 떨어지는 등 추위가 계속되기도 했다.[146] 당시 일본도 이렇게 추위를 떨었는데 한반도는 어땠을까 궁금할 것이다. 그 답은 한파/대한민국/19세기 문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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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
1892년 겨울
러시아 제국 한파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 알려진 베르호얀스크의 1891년 12월 평균 기온이 -47.7℃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낮았고, 이듬해 1월에 추위가 극한에 달하여 1892년 1월 평균 기온은 -55.4℃를 기록했다. 이는 역사상 북반구 전체에서 관측된 월평균 기온 중 공식적인 역대 최저 기록이다. 이러한 상상을 초월하는 한파는 2월 초까지 이어졌고 결국 2월 5일과 2월 7일에 베르호얀스크에서 북반구의 공식적인 역대 최저 기온인 -67.8℃를 기록했다가 후술할 그린란드의 -69.6℃에 밀려 현재는 북반구의 역대 최저 기온 2위이다.[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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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
1893년 겨울
북반구 한파
당시 이 기간은 관측 사상 가장 강한 라니냐가 발생했던 시기로[148]2℃ 이상 낮았다. 다만 인류가 엘니뇨· 라니냐 관측을 시작한 시기가 1870년 이후이므로 그 이전에 더 강한 라니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태평양 수온 그래프 자료 1, 자료 2]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가리지 않고 북반구 각지에 한파가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곳은 서시베리아, 카자흐스탄, 중국 남부 등지이다.[149] 모스크바는 12월에 -38.8℃까지 떨어지며 현재까지도 12월 역대 최저 기온으로 남아있고, 1월에는 한파가 더욱 심해져 월평균 기온 -21.6℃로 모스크바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낮은 월평균 기온으로 남아있다. 카자흐스탄도 1월에 들어서며 극단적인 한파가 불어들기 시작, 카자흐스탄 수도인 아스타나에서 1월 5일에 무려 -51.6℃로 해당 지역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한다. 전 세계 그 어느 수도의 역대 최저 기온보다도 압도적으로 낮은 기온이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라는 타이틀을 가진 몽골 울란바토르도 역대 최저 기온이 -43.9℃에 불과하여 1893년 1월 누르술탄에서 기록된 기온보다도 8℃ 가까이 높다. 중국에서는 장쑤성 쑤저우시 인근에 위치한 타이호가 1877~1878년 겨울에 이어 15년 만에 결빙되었다. 쑤저우시는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4.51℃로 부산보다도 따뜻한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부분. 이 겨울을 끝으로 타이호는 2023년 현재까지도 결빙이 관측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특히 추웠던 겨울로 기록되어 정확한 기온 자료는 없지만, 동짓날에 눈발이 날리고 그 다음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150] 문고리가 손에 달라붙고 물동이가 얼어서 터지는 혹한이 한 달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베이징도 한파의 영향으로 월평균 기온 -8.1℃를 기록하여 1861년 1월과 함께 역대 최하위로 남아있다.[151][152][153][154] 프랑스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한파로 인해 'Ice Floes'라는 작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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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1895년 겨울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한파
북반구 전 지역에 걸쳐 기록적인 혹한이 발생했다. 조선에서는 12월에는 오히려 포근했으나 1월부터 추워져 2월에 심한 혹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파/대한민국/19세기 문서를 참조. 영국에서는 12월 말부터 추워지기 시작하여, 1~2월에 걸쳐 한파가 지속되었다. 2월에 한파가 절정에 달하여, 스코틀랜드의 브래머라는 지역에서는 2월 12일에 -27.2℃까지 수은주가 급강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공식적인 영국 역대 최저 기온이다. 잉글랜드의 2월 평균 기온도 -1.8℃에 달해 역대 2번째로 낮은 2월 평균 기온으로 기록되었다. 월평균 최저 기온은 -5.1℃로 해당 통계 집계를 시작한 1878년 이래 지금까지 가장 낮은 수치로 남아있다. 미국에서도 한파가 심했는데, 특히 겨울에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플로리다주마저도 기록적인 한파가 덮쳐 귤 작물에 궤멸적인 피해를 입혔다. 플로리다 남부의 도시 올랜도에서[155] 1894년 12월 28일 해당 지역의 관측 이래 최저 기온인 -8.0℃를 기록했다. 추위는 해를 넘겨 2월까지 계속되었다. 1895년 2월 9일 웨스트 펌 비치에서는 2월 관측 사상 해당 지역의 최저 기온인 -3.0℃를 기록했다. 아래는 전 세계적으로 추위가 극에 달한 2월의 평년 기온 편차 지도이다. 북아메리카 중부, 시베리아, 유럽이 심각한 저온을 의미하는 커다란 파란색 동그라미들로 뒤덮여서 아예 시퍼렇게 보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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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2월
미국 한파
1899년 2월 11~14일 사이에 미국 대부분의 지역을 강타한 한파이다. 미국의 수많은 지역에서 역대 최저 기온이 이날 사이에 기록이 되어 있다.
3.6.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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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1월
동아시아 한파
일본 홋카이도의 북부 아사히카와, 아바시리[156]에서 최남단 가고시마, 한반도 전체까지 극심한 한파의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혹독하기까지 했다. 특히 1월 24~26일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가리지 않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온이 크게 낮았던 것이 눈에 띄는 부분. 극심한 복사냉각의 영향으로 1월 26일 아사히카와에서 -36.6℃가 찍혔고[157], 아바시리 역시 -21℃까지 하강했으며, 가고시마 역시 같은 날에 -5.1℃까지 하강했다. 도쿄에서도 1월 24일 -6.1℃, 27일 -6.4℃가 찍힐 정도. 서울은 당시 기록이 없으나 한파의 강도로 볼 때 -21~-22℃[158] 홋카이도 최북단에 위치한 아바시리의 기온값과 거의 동일하다(...).]까지 내려간 것은 확실해보인다.[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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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12월
북반구 한파
1892~ 1893년처럼 강한 라니냐가 1916년 4월부터 발달하여 1916~1917년 겨울을 장악하고[160], 다음 해인 1917~ 1918년에도 세계 각지가 모두 평년보다 훨씬 추운 겨울을 보냈다. 특히나 북아메리카에서 1917년 12월에 가장 한파가 심해 20세기에서 가장 추웠던 12월로 기록되었다. 12월 30일 뉴욕에서는 아침 최저 기온 -25.0℃에 낮 최고 기온 -16.7℃를 기록했으며, 보스턴에서도 아침 최저 기온이 -26.0℃에 달했다. 알래스카의 폴트 유콘이라는 마을에서는 월평균 기온 -44.6℃를 기록했는데 현대의 평년값보다 무려 17.6℃나 낮은 것이다.
대한민국도 12월 15일부터 매우 추워져 이듬해 1월까지 한파가 지속되었고, 심지어 알래스카, 캐나다 지역은 아예 시퍼렇게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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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2월
유럽 한파
12월과 1월은 주목할 만한 한파가 없으나, 2월에 들어서자 일부 지역에서 소빙하기급의 한파가 몰아쳤다. 모스크바 등 러시아 서부와 동유럽, 서유럽을 중심으로 20세기에서 가장 추웠던 2월 중 하나이다. 독일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이 -10.4℃를 기록하여 1709년 1월, 1823년 1월, 1788년 12월 다음으로 낮았다.[161] 특히 러시아 모스크바는 월평균 기온 -19.5℃를 기록해 2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도 한파의 영향으로 2월 15일 최저 기온 -18.9℃, 우크라이나 키이우도 2월 7일과 2월 9일에 -32.2℃를 기록했다. 그런데 1929년도 그렇고 후술할 1947년, 1956년 한파를 보니 20세기는 2월 집중공략(?)인 듯하다. 기록적인 한파가 유난히 2월에 많다.
세계의 기온 편차 지도를 보면 시베리아 서부를 비롯하여 유럽이 새파랗게 도배되어 있을 정도로 한파가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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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1940년 겨울
북반구 한파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볼 때 1916~1917년, 1917~1918년 겨울과 더불어 20세기에서 가장 추운 겨울 중 하나였다. 모스크바는 1940년 1월 17일에 -42.1℃를 기록하여 기온 극값 통계가 남아있는 1879년 이래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1월 평균 기온도 -19.4℃로 매우 낮았다. 그 유명한 소련 vs 핀란드의 겨울전쟁이 바로 해당 겨울에 발발했다! 전장 핀란드도 당연히 엄청난 한파가 이어져 러시아군이 추위로 고전하고 동사하는 등 추위가 전쟁에 영향을 끼친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독일 베를린도 1월 평균 기온 -9.4℃[162], 2월 평균 기온 -7.2℃ 등 살인적인 추위가 이어졌다.히틀러는 정말 망할 놈이 맞다! 한국보다 따뜻한 독일의 추위의 강도가 이 정도였으니, 1940~1942년 3년 연속 현대 서울과 비교도 안 되게 추웠을 텐데.대한민국에서도 이해 겨울은 1916~1917년, 1917~1918년이나 1935~ 1936년, 1944~ 1945년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추웠는데, 12월은 춥지 않았지만[163] 이듬해 1월이 되자 기온이 급락, 2월 초까지 -15℃ 안팎의 한파가 계속되었다. 1월 24일 당시 동아일보 기사, '얼어붙은 삼한사온'이라는 타이틀이 인상적이다.[164] 여담으로 이해 겨울 이후, 1940~ 1941년 겨울과[165] 1941~ 1942년 겨울[166]도 1939~1940년 만큼은 아니지만 은근 추워서 3년 연속 세계적으로 추운 겨울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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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2월
유럽 한파
12월까지는 별다른 한파가 없다가, 1월 말부터 조금씩 추워지더니 2월에는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이 -8.0℃로 웬만한 1월보다도 훨씬 추웠다. 영국에서도 혹한이 심해서 후술할 1962~ 1963년 겨울과 함께 20세기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겨울로 남아있다.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에도 나오지만 한반도도 매우 추워서 서울의 2월 평균 기온이 -5.3℃를 기록해 역대 최하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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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2월
유럽 한파
유럽 대륙에서 20세기 이래로 1929년 2월과 함께 가장 추운 2월이었다. 일부 지역은 2월이 아니라 연 전체로 확대해도 가장 낮은 월평균 기온을 경신했다. 우리나라는 한파의 강도는 약했으나 꽤 길게 지속되어서 춥지 않은 겨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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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1957년 겨울
몽골 한파
울란바토르에서 12월 평균 기온 -28.9℃를 기록했고, 이듬해 1월에는 월평균 기온 -30.5℃로 1869년 12월 관측 시작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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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1963년 겨울
북반구 한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후유증인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한파가 찾아왔다. 대한민국에서는 1963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 -9.2℃로 유명한 그 겨울이다. 특히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한파의 정도가 가장 심각하여[169] 해당 겨울에 소빙하기에 준하는 겨울이 찾아와서 Big Freeze of 1963이라고 부른다. 링크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면 스코틀랜드 북부를[170] 제외한 영국 전역이 최소 1895년 이래로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템스강도 상류에 한정이기는 하지만 결빙이 발생하는 등[171] 영국인들에게 몹시 혹독한 겨울로 기억된 듯하다. 독일 베를린도 1월 평균 기온 -7.2℃로 1939~1940년, 1946~1947년 겨울 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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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월
북반구 한파
동아시아 북부( 베이징, 만주 쪽)와 중앙아시아 쪽으로 상당히 기록적인 혹한이 닥쳤다. 1월에 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7.6℃를 기록해 1841년 관측 시작 이래 1900년 1월, 1922년 1월과 함께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으며[172] 같은 달의 서울보다도 1℃ 낮았다. 북아메리카에도 기록적인 한파가 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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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2월 25~28일
일본 한파
2월 27일 후지산이 -38.0℃까지 떨어졌으며 같은 날 오사카가 -5.5℃, 도쿄가 -3.5℃를 기록했다. 쓰시마섬의 사스나 지역에서는 2월 26일과 2월 28일에 -7.1℃를 기록했다. 심지어 위도상으로 도쿄보다 더 남쪽에 있는 하치조섬조차 2월 27일 -2.0℃를 기록했다. 이는 1906년 관측 이래 하치조섬의 가장 낮은 온도이다. 대한민국에서도 1월에 찾아온 장기 한파가 그대로 영향을 미쳐 서울이 2월 26일에 -15.6℃, 부산이 2월 27일에 -10.7℃를 기록했다. 최저 기온뿐만 아니라 일평균 기온과 최고 기온 모두 낮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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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소련 서부,
북유럽 한파
20세기 후반 즈음이 되어 한파 겨울이 거의 사라지고, 이상 고온이 늘어나는 와중에 갑자기 찾아온 한파 겨울이다. 레닌그라드(現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월평균 기온이 -17.9℃를 기록하여 1942년 1월 이후로 가장 낮았다. 모스크바도 월평균 기온 -17.5℃의 상당한 추위를 보였다. 북유럽은 한파의 영향력이 더 심해서 핀란드 헬싱키의 월평균 기온이 -16.5℃로 아예 20세기 전체 최저 기록을 세웠고, 최저 기온도 -34.4℃ 에 달해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다시 썼다.[174] 스웨덴 스톡홀름도 월평균 기온 -12.0℃를 기록하여 20세기 전체에서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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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그린란드 한파
12월 22일 그린란드에서 -69.6℃를 기록해 북반구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을 경신했다.
3.7.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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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013년 겨울 한파
대한민국에서도 추운 겨울이었지만(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1세기 문서 참조) 세계 기준으로도 추운 겨울이었다. 2012년 12월에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북유럽, 동유럽, 알래스카 및 캐나다 서부까지 평년보다 월평균 기온이 3~5℃나 낮은 초강력 한파가 찾아왔으며, 2013년 1월에는 전달보다는 월평균 기온의 편차가 덜했지만 여전히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 지역 일부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었고, 2013년 2월에는 동아시아와 동시베리아, 유럽에서 다시 한파가 나타났는데 특히 동시베리아는 유례가 없는 추위가 나타나 평년보다 월평균 기온이 무려 6~7℃나 낮은 추위가 지속되어 100년 이상의 관측 역사상 가장 추운 달로 기록되었다. 그 추운 동시베리아에서 가장 혹독한 추위였으니 얼마나 추웠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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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북아메리카 한파
미국 시카고에서 체감온도가 -46℃까지 떨어지고, 뉴욕에서도 최저 기온이 -15℃까지 떨어졌다. 미네소타 지역에서도 최저 기온이 -37℃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5조 원 정도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이때 이상 고온이 찾아와서 따뜻한 겨울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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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북아메리카 한파
미국과 캐나다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평년보다 크게 추운 한기가 남하했다. 영어 위키백과에도 관련 문서가 있으며, 해당 문서에 걸려 있는 이미지는 11월 17일경의 편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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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중하순 한파
전 세계 1월 평균 기온이 역대 최고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이상 고온이었지만, 1월 17~25일 동안에는 최악의 북극 한파가 찾아왔다. 미국, 동아시아 등 범지구적으로 혹한이 찾아왔다. 심지어 대만 등지에서도 혹한으로 50명이 동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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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미국 한파
12월 중순에 시카고에 -28°C까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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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년 겨울 한파
대한민국에서도 상당히 추운 겨울이었지만 12월에는 한국,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으로 큰 한파 없이 포근한 편이었으나, 2018년으로 해가 바뀌자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세계적으로도 유럽을 제외하면 혹독한 겨울이었다. 유럽은 2~3월에 늦추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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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019년 겨울
북아메리카,
유럽,
일본 북부 한파 및 폭설
특히 2019년 1월에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는 체감온도가 -45℃까지 내려가는 유례없는 한파가 찾아왔다.[175][176][177]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도 얼었다. 심지어 핀란드에도 최저 기온이 -38.7℃까지 내려가기도 했으며 알프스 산간에서는 최대 451cm의 폭설이 내렸다. 기사 1, 기사 2 일본 북부에서도 폭설로 항공기 105편이 결항되기도 했다.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 폭설로 항공기 100편 이상 결항... 승객 2,000명 공항서 밤새 한반도는 2018년 12월 27~31일에는 추웠지만, 1월은 정반대로 이상 고온 현상이 나타났으며 눈도 거의 내리지 않았고[178] 땅이 메마르고 미세먼지가 심했다.
- 2019년~ 2020년 겨울 캐나다, 미국, 인도 한파: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따뜻한 겨울이었지만 미국과 캐나다는 2017~2018년부터 3년 연속 한파가 찾아왔다. 역시나 플로리다 주까지 강력한 한파로 기온이 크게 내려갔다. 다행인 건 앞에 두해보다는 강도는 약했다. 그리고 인도는 12월에 6~7°C까지 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동사했다.[179]
- 2021년 1월~2월 동아시아, 스페인, 시베리아, 동유럽, 북미 한파: 2020년 12월까지는 북극진동이 안정되어서 한파가 크게 없었으나 2021년 1월로 바뀌면서 북극진동이 크게 내려가고 세계적으로 한파가 찾아왔다. 1월 초에는 동아시아 지역과 스페인에 한파가 찾아와서 중국 베이징에서 -19°C 이하의 기록이 경신되어 21세기 가장 낮은 극값이 나왔다. 부산과 가까운 쓰시마 섬에서는 최저 -7.1°C를 기록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고산지대에서 -34.1°C를 기록했다. 이후 1월 중순부터는 그쪽 지역들은 이상 고온으로 포근해진 대신 시베리아와 동유럽, 북미 지역의 한파가 매우 강하게 찾아왔다. 시베리아에서는 1월 월평균기온이 평년보다 5도 이상 낮은 초이상 저온이 찾아온 지역이 많았다. 야쿠츠크에서는 평년 최저기온인 -41°C보다 최저기온이 높았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180] 북반구 고위도의 온난화가 지구에서 가장 심한걸 고려했을 때 엄청나게 심한 이상 저온이 찾아온것이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 곳곳에도 1월 중순부터 2월까지 최저기온이 -25도를 밑도는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으며 1월 말에는 잠잠해지나 싶더니 2월에 또다시 한파가 찾아왔다. 특히 2월의 경우는 한국의 2011년 1월을 연상시키는 강한 이상 저온이 24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찾아왔다. 평년치 자체가 낮아 한국의 2011년 1월보다도 훨씬 추웠다. 북미 역시 1월 중순부터 역대 최악의 한파로 2021년 텍사스 대한파 및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2021년 1월 말~2월까지 북미는 21세기 들어 최악의 겨울 폭풍을 맞았는데, 미국의 경우 1월 중하순과 2월 초순에는 뉴욕과 시카고를 비롯한 동부와 북부에 대규모의 폭설과 혹한이 찾아오더니 2월 중순에는 비교적 따뜻한 남부 선벨트 지역에 엄청난 한파와 폭설이 닥쳐 전력 공급을 끊어놓았다. 텍사스 댈러스에서 공식 기록으로만 화씨 1.4도(섭씨 -17도)의 기온을 기록했으며, 섭씨 -20도 이하의 기온을 기록한 곳도 있었다. 휴스턴도 -10.6°C를 기록하였다.[181]. 휴스턴 2월의 평균기온이 서울의 4월과 비슷한 것을 생각해보면 전년도 4월 21~24일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이상 저온조차도 이에 비하면 양반일 정도다.[182] 자세한 상황과 피해는 항목 참조. 그로 인해 1월부터 지구 평균기온도 내려갔다. 또한 2월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를 기록한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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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023년 2월 동아시아-북미 한파: 미국에 40년 만의 최악의 크리스마스 한파가 찾아왔다. 몬태나주 서부 엘크 파크는 현지시각 12월 22일, 기온이 영하 45℃, 체감온도는 영하 59℃까지 떨어졌다. 와이오밍주 일부도 체감온도가 영하 56℃까지 떨어졌다. 미 전역에서 국제선과 국내선을 합쳐 2,2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됐고, 23일에도 1,800여 편이 이미 결항했다. 덴버는 22일 오전 32년 만의 최저 기온인 영하 31도를 찍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제트기류가 악해져 북극을 돌던 차가운 공기가 한국 등 동아시아를 비롯해 미국·유럽으로 남하한 것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약 2억명의 주민에게 한파 경보가 발령되며 크리스마스 시즌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 콜로라도주와 아이오와주 등 내륙 중서부에서는
1시간 만에 영상 5도에서 영하 22도로 급강하했다.
#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전주부터 시작된 폭설과 강풍, 한파로 인해 최소 26명이 사망했으며 뉴욕 버팔로 지역의 경우 109.22cm의 눈이 내렸다.
#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뉴욕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명령했다.
#동아시아도 매우 강한 12월 한파가 닥쳐 몽골 서북부 울란곰의 12월 평균기온이 무려 -28.7℃로 1986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을 보냈다. 대만에서는 사흘 간 99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1월 초중순은 북극진동이 상승하여 이상 고온이 이어지다가 하순에 갑자기 한파가 들이닥쳐 북미, 동아시아 전역, 시베리아, 서아시아에 매서운 한파가 찾아왔다. 중국 최북단 도시인 헤이룽장성 모허시에서는 역대 가장 낮은 기온인 -53℃를 기록하였으며 베이징에 경우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0℃를 밑돌았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한파로 인해 최저 기온이 -28℃를 기록하였으며 이 여파로 158명이 사망하였다. 일본의 경우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도쿄에서 1월 25일 일평균이 -0.3℃에 그쳐 1954년 1월 30일(-0.2℃)[183] 이후로 69년 만에 일평균 분야에서 다시 영하권을 기록하였다. 심지어 미국 뉴햄프셔주 마운트 워싱턴산 지역에서 체감온도가 영하 78도까지 떨어지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혹한이 강타했다. #
- 2023년~ 2024년겨울 북미[184], 북유럽, 동유럽, 시베리아, 몽골, 만주, 중국 한파: 한반도는 슈퍼 엘니뇨로 매우 따뜻한 겨울이지만, 북극진동이 11월말부터 크게 -로 떨어지면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광범위하게 기온이 낮은 날씨가 나타났고, 특히 유럽에서는 폭설이 내렸다. 러시아도 시베리아 오이먀콘의 12월 5일 최저기온이 무려 -58도를 기록했다. 이후 한기가 강하게 남하하면서 12월 초중순 내내 유라시아 대륙 넓은 지역에서는 평년보다 매우 낮은 한파가 찾아온 지역이 많았다.[185] 다행히 12월 중순 이후 북극진동이 크게 올라 12월 하순에는 대체로 고온을 보였다. 그러나 12월 대부분의 날 동안의 한파가 매우 심해서 이들 지역은 월 전체적으로도 상당히 낮았다. 1월 초 이후 다시 북극진동이 음수로 돌아가서 북유럽에서는 1월 초 25년만의 한파를 보였다. 1월 12일 캐나다 에드먼턴 기온이 이날 섭씨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는데, 1972년 1월 이후 52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20일 밤에는 미시시피주 일부 지역 기온이 -17도가 예보되었고, 실제로도 매우 추웠다. # 이후 1월 말이 되자 북미도 크게 따뜻해졌지만, 그래도 한파가 더 강해서 북미 북서부와 중부 지역은 1월이 낮은 편이었다. 2월에는 한반도는 역시나 고온이 길게 이어졌으나 당장 옆나라 대륙에서는 극심한 한파와 폭설이 쏟아져 춘절 동안 교통에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후 13~20일 동안은 한반도가 초고온을 보였는데 이들 지역도 잠시 초고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나, 하순에 다시 매우 추워져 몽골, 중국, 유라시아 대륙이 매우 낮은 기온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울란바토르에서는 19일 최저 기온이 -41도까지 떨어졌다.
[1]
소빙하기의 시작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대해서는 학계 및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넓게 잡아서
14세기나
15세기를 소빙하기의 시작이라 보는 학자들도 많다.
[2]
물론 그에 반하는
이상 고온도 있기는 했다. 소빙하기를 상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추운 것만을 떠올리지만 이는 큰 오해이다. 소빙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반적으로 추워짐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홍수나
태풍,
폭염 등 예측이 불가능하고 겉잡을 수 없이 불안정한 날씨의 증가이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조.
[3]
출처는 후술할 영문위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16세기에는
1506년,
1514년,
1537년,
1565년,
1595년으로 총 5번 결빙되었다.
[4]
'따뜻하다'의 기준이 상대적이니 주의하기 바란다. 당연히 18세기 초반까지 극단적으로 춥다가 중반에 들어 약간 따뜻해진 것일 뿐이며, 상대적으로 따뜻해진 18세기 중반조차도
20세기,
21세기보다는 훨씬 추웠다.
[5]
동시에 마지막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가 열렸다.
[6]
그나마 가장 최근인
1962~
1963년 겨울에 템스강의 상류가 결빙된 적이 있기는 하다. 다만 이것도 상류 한정이고 도심으로 흘러가는 하류는 결빙되지 않아서 공식 결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7]
사실 이 시기에는 거의 매년마다 현대의 한파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혹한이 찾아왔다. 따라서 모든 해에 찾아온 한파를 일일이 문서에 쓰는 것은 문서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질 뿐더러 딱히 의미도 없으니, 그 시대에서도 유별나게 추웠던 해만 골라서 서술하였다.
[8]
다만 이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100년 단위가 아닌 10년 단위로 끊으면 유럽 기준으로 가장 추웠던 시기는
1430년대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15세기에 전반적으로 17세기 못지않게 추운 겨울이 많기도 하다. 어쨌든, 소빙하기 초반~중반이 가장 추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9]
이 시기의 한파 증가는 화산 폭발의 영향도 지대했다.
1783년 6월
아이슬란드의
라키 화산 분화,
1815년 4월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분화 등 거대한 화산 폭발이 2번이나 발생하였다. 라키 화산 분화의 경우 그 영향이 매우 오랫동안 이어졌다. 분화 이후 관점에 따라 최소 5년, 길게는 약 10년 동안 비정상적인 한파, 잦은 홍수 등 각종 기상이변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10]
물론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사이에도 한파가 다시 잦아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기온이 오르는 추세에 있었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한파도 현대보다는 확연히 추웠으나, 소빙하기의 절정이었던 17세기~18세기 초반에 비하면 확연히 약했다. 실제로 17세기~18세기 초반의 한파는 영국 템스강이 얼고,
북해가 얼어붙었으며,
중국
상하이 앞바다가 얼어붙을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한파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11]
서기 1년 시작 이후
[12]
다만 이곳에서는 고대 후기 소빙하기의 시기를
6~
7세기로 굉장히 짧게 보고 있다.
[13]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 온난화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된 심각성은 기온이 오르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과 지난 수십 년간의 기온 상승 속도가 과거에 비해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에 달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인위적인 요소의 개입 없이 자연적인 변화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주류 견해이다.
[14]
가장 유용한 사이트로,
러시아 사이트이다. 따라서 어지간하면 구글 자동 번역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해당 링크는 아시아 국가 목록이지만 스크롤을 쭉 내리다 보면 유럽,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심지어
남극(?!) 등 대륙 선택이 가능하다. 이 문서에 서술된 해외의 월평균 기온 자료는 대부분 이 사이트가 출처이다.
[15]
다만, 20세기 이후의 기온 자료는 왠지 모르지만(사이트로 데이터를 가져오며 변환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실제 데이터와 0.1~0.5℃ 정도의 약간의 오차가 있다. 따라서 20세기 이전의 기록을 볼 때 활용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또한 전 세계 모든 도시의 기온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며 주요 도시만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서울과
부산의 자료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결측된 기간은 값이 표시되지 않으며 '999.9'로 표시되니 유의하기 바란다.
[16]
마운더 극소기는
1645~
1715년 사이의 태양 흑점의 활동이 지난 2,000년간 가장 적었던 시기를 의미한다.
학술적으로 영문위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위에서 17세기~18세기 초반이 소빙하기 시대 중에서도 가장 추웠다고 서술했는데, 원인 중 하나가 마운더 극소기이다! 그 이유는 지구의 경우 기후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인 태양의 복사에너지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기는 너무 옛날이라 인간이 남긴 직접적인 관측 자료가 없어서 옛 문헌에 묘사된 당시 날씨 기록의 도움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사이트이다. 해당 문서의 17세기 겨울들의 서술 내용은 많은 부분이 이 사이트 출처라고 보면 된다.
[17]
해당 링크에서 'Historical Cold Waves' 항목을 펼치면 양은 적지만 북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은근히 얻어갈 내용들이 많다. 특히 19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한파 자료가 상세히 적혀있다.
[18]
188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평균 기온의 편차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19]
1870년부터 현재까지 관측한 내용이다.
[20]
별별 기록이 다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이다. 홈페이지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 사이트인데, 주로 유럽 대륙의 기록을 위주로 각종 소빙하기 시절의 기록, 심지어는 고대 후기 소빙하기보다 오래전으로 거의 2,000년 전인
1세기 기록(!)까지도 나와있다. 추위 뿐만 아니라 각종 기후 변화를 위한 인류의 노력과 협정들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물론이고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 역사와 문명의 변화 등 '기후 아카이브'라는 사이트 제목에 걸맞은, 말 그대로 기후에 관한 방대한 기록과 지식들을 공유하는 사이트이다. 독일 사이트라서 그런지 독일 각 지역들의 평년 기온값과 기후 극값 정보들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혹시라도 독일의 기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방면으로도 매우 유용한 사이트일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17세기 이전의 한파 자료들은 거의 이 사이트가 출처이다.
[21]
양력으로 대략 6~7월로 추정된다.
[22]
출처는 일본서기 권 제18 참조.
[23]
보통
소빙하기에는 일사가 차단되고 화산 등으로 일조 시간이 적었는데, 이는 고대 후기 소빙하기도 마찬가지이다.
[24]
연구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떤 연구에서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을 지목한다.
[25]
4℃라고 하면 감이 오지 않겠지만 소빙하기가 일반적으로 최대 1.5~2.5℃ 하강이다.
[26]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의 바다이다.
[27]
튀르키예의 서쪽 끝에 있는 해협으로 그 따뜻하기로 유명한 지중해의 일부분이다. 바로 건너편에 그리스가 있다.
[28]
추울수록 나무가 성장하지 못하여 나이테 사이의 간격이 좁아진다. 기후학자들은 이와 같은 나무 나이테의 성질을 이용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아주 옛날의 기후 추정을 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한다.
[29]
현재의
루마니아 동부 인근
[30]
부산이 거의 정확히 북위 35° 정도이다.
[31]
20세기 이후에는 아무리 추운 날씨가 지속되어도
보하이해(渤海)까지밖에 얼지 않는다. 이곳의 최남단이 대략 북위 37°이다.
[32]
29주이면 거의 7개월에 달한다! 예를 들어 10월 시작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계속 내리는 것. 상상이 가는가?
[33]
이 논문은 후술할 1453~1454년, 1654~1655년 겨울, 1670~1671년 겨울 한파에도 등장한다. 무려 1,000년 이상의 중국 남동부 지역의 과거 겨울들을 고대 문헌에 쓰여진 바다 결빙, 호수 결빙 기록 등을 통해 재조명한다. 인류가 남긴 기상 관측 기록이 거의 없는
18세기 이전을 살펴보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34]
당장 위에 전술한 겨울들과 아래에 후술할 겨울들만 살펴봐도
903~
904년 겨울,
1010~
1011년 겨울,
1076~
1077년 겨울 등 그나마 수백 년에 한 번 찾아올 정도로 강력한 한파를 보인 역대급 네임드 겨울이 존재하는 10~11세기와는 다르게, 12~13세기는 정말로 역대급 네임드 겨울이 전무하다.
[35]
다른 추운 겨울들도 유럽 주요 강들이 경빙하는 일은 종종 있었으므로.
[36]
서울의 면적보다 약간 작은 호수이다.
[37]
한 세기에 1번 있을까 말까라는 맥락으로 보인다. 즉 다행히 1,000년급 한파는 아니고 100년에 1번급의 한파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38]
현대에 사용되는 달력 체계가
그레고리력이므로, 당시 사용되던
율리우스력과는 차이가 있다.
[39]
설명에서 대놓고 'very terrible'이라는 수사어구를 붙혔다.
[40]
강의 얼음 두께가 저 정도라는 뜻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 그 정도의 얼음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41]
그 추운 겨울이 널렸다는
1690년대보다도 약간 더 추웠다고 한다!
[42]
다시 말해 이 시기에는 유럽의 기후와는 다른,
한반도에 가까운 기후가 유럽 전역을 덮쳤다는 뜻이 된다. 설명을 보면 건조한 추위와 습한 더위를 띄는 한반도의 기후와 판박이다.
[43]
즉 여러가지 대기의 움직임은 셀 수 없이 많은 확률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어떠한 기압 배치가 이루어지면 계속 추운 날씨가 이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10년 동안이나 그러한 패턴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44]
1430년대뿐만 아니라, 15세기 전반적인 유럽의 기온을 재건하여 재조명함.
[45]
기온이 낮으면 나무가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심하면 아예 동사한다. 따라서 나이테도 좁아지는 것. 이러한 나이테의 성질 덕에, 고기후학자들은 과거 기후 연구에 있어 나이테의 간격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46]
북위 31°로, 북위 35°에 위치한
부산보다도 현저히 따뜻한 곳이다.
[47]
이것도 엄청나지만, 전술한 903~904년 겨울과 후술할 1654~1655년 겨울에는 이보다 조금 더 남쪽까지 결빙되어 상하이를 지나 북위 30.5°까지 결빙된 기록이 있다...
[48]
양쯔강 남쪽 지역은 대략 북위 30°보다 남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9]
남위 16.8°, 동경 168.5°에 위치해있다.
[50]
그러나 이것은 해당 논문이 지난 2,000여 년의 스케일 내에서 조사했기 때문이고, 영문위키에 따르면 지난 1만 년간 최대 규모라고 한다!
[51]
이러한 양상은
대한민국의
1916~
1917년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1916년 12월 25일까지는 대체적으로 이상 고온이었다가 성탄절 저녁 이후 기온이 급하강, 12월 26일이 되자
서울이 -19.0℃까지 떨어지고 이듬해 2월 10일경까지 한파가 계속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52]
북위 약 33.5~34.1°
[53]
특히 17세기 중반에 들어 극심해진 소빙기 현상 때문에, 당시 인류의 주 무대 지역인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수없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나 많은 나라들이 멸망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원래 17세기 중반 전후에도 세계적으로 많은 전쟁과 반란이 있었으나, 중반에 들어 무서우리만치 전쟁과 반란이 늘어나고 아예 국가가 멸망하기까지 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54]
무려
스페인에서 5월까지 계속 눈이 내렸다는 기록을 보면 이해 겨울 날씨는 실질적으로
[55]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한 'The Little Ice Age and Europe’s Encounter with North America'라는 책의 내용을 발췌하여 쓴 저널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뢰도는 매우 높다.
[56]
보통 아무리 추운 겨울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을 묘사한 기록은 드문데 이해 한파는 남유럽의 묘사도 무시무시하다.
[57]
17세기의 네임드급 겨울들은 후술할
1654~
1655년 겨울,
1683~
1684년 겨울,
1694~
1695년 겨울 등이 있다.
[58]
기록적인 혹한이 3월 말까지라는 뜻이고, 네덜란드보다도 훨씬 따뜻한 스페인의 묘사를 보면 최소 5월까지도 겨울 날씨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59]
스페인 중부에 위치한
마드리드는 1월 평년 평균 기온이 6.3℃로
대한민국의
제주보다 따뜻하고, 북부의 해안 도시인
빌바오는 9.3℃로
[60]
스페인에서 이 정도라면 스페인보다 명백히 더 추운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는
[61]
사실상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62]
조선의 서술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해는 사실상 봄인 3~4월까지도 한겨울 이상의 심한 혹한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양력
[63]
이에 대해서는 지난
1641년에 아일랜드에서 영국에 항거하는 난이 일어났고,
한창 국왕과 내전하기 바빴던 영국은 일단 아일랜드를 기근에 빠뜨려 식인을 하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포위한 뒤,
1651년에 내란이 정리되자 아일랜드 전역을 본격적으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는 영국의 폭거로 인한 영향도 있을 듯하다.
[64]
링크 속 논문이 이유는 모르지만 현재 다운이 불가능하다. 읽고 싶으신 분들은
이곳에서 pdf 다운하면 된다.
[65]
당시 이 주변은 산해관 통과 이후 급속도로 내려온
청나라가 점령하였다가 1654년 2월에 연평왕
정성공이 다시 점거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이상 한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1655년 9월에 청나라가 다시 점령하였다.
[66]
제주 기준 약 북위 33.5°. 상하이와 제주의 위도차가 제주와
대구와의 위도차와 비슷하다.
[67]
위도도 제주도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며,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거대한 호수가 얼어붙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호수는 한파가 심했던
17~
19세기에 정말 드물게 결빙되었는데(해당 논문에 따르면 1654~1655년 겨울,
1665~
1666년 겨울,
1683~
1684년 겨울,
1700~
1701년 겨울,
1761~
1762년 겨울,
1861~
1862년 겨울,
1877~
1878년 겨울,
1892~
1893년 겨울로 총 8번 결빙되었다고 한다. 물론 1600년 이전에도 결빙 기록들이 있다) 한파가 극심했던 1892~1893년 겨울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130년간 얼지 않고 있다. 참고로 상하이 앞바다의 결빙과 타이호 결빙이 모두 발생한 겨울은 지난 2,000년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1654~1655년 겨울로 단 1번 뿐이라고 링크 속 논문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68]
상식적인 선에서
동해는
서해보다 수심이 훨씬 깊기 때문에(서해는 약 100m, 동해는 최대 3,600m) 비열이 커서 겨울에 서해보다 수온이 높다. 따라서 강릉처럼 따뜻한 동해안 지역이 -25℃ 이하의 한파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동해는 결빙이 불가능하다. 참고로 강릉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11년 이래 기록된 역대 최저 기온은
1915년 1월 13일의 -20.2℃에 불과하다. 심지어 현대는 물론이고, 한겨울에는 서울 -20℃ 이하, 강릉 -15~-16℃ 정도는 당연하게 내려가던, 그 혹독했던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동해가 사흘이나 얼어붙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한겨울도 아니고 봄에 동해가 얼었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한 추위이다.
[69]
1654년에는
백두산 분화 기록이 남아있다. 아마도 이 영향으로 1655년 한반도에 빙하기급 저온 현상이 찾아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70]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 해와 다르게 아시아에서는 해당 겨울 내에서 극단적인 한파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특이한 기록이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한겨울도 아니고 봄인 4~5월에
전라도에 큰 눈에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전년도의 추위가 너무나도 살인적이었던 나머지, 다음 겨울도 현대에서는 경악할 추위인데도 당시 사람들은 그다지 추위가 강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71]
5~6 German Miles라고 한다. 참고로 'German Miles'는 우리가 아는 그 1마일(mile) 단위와는 다른, 현대에는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단위이다. 1 German Miles = 24000 feet = 약 7.2km이다. 따라서 5~6 German Miles는 대략 35~42km이다.
[72]
정작 바로 1년 전인
1669~
1670년 겨울에는
겨울(양력 1월)임에도 날씨가 봄 같았다는 기록이 있어서 더욱 대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73]
이때의 한파가 얼마나 위력적이고도 참혹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음력 11월 2일(양력 12월 13일), 제주도에 거센 바람(大風)과 큰 눈(大雪)이 동시에 사납게 불어닥친 끝에 쌓인 눈이 한 길(대략 2.4m)이었다고 하며, 기근에 지쳐 열매를 주우러 산에 올라간 91명이 이 쌓인 눈에 갇혀 그대로 얼어죽은 기록도 있다. 이게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겨울철 날씨가 따뜻한 제주도조차 이 지경이었으니, 본토인 한반도에 들이닥친 추위의 위력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을 것이다. 괜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추위를 못 견뎌서 시체의 옷이라도 훔쳐입은 것이 아니다.
[74]
이 정도면
[75]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조차도 현대의 관점에서는 비상식적이다. 북위 34.8°는
거제도와 비슷한 위도이다!
[76]
영국의 기상 관측 데이터는
1659년부터 존재한다. 사실 영국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기상 관측을 시작한 나라이다. 그냥
[77]
이 정도의 두께라면 당연히 사람이 올라가도 안전한 것은 물론 수백 kg 이상의 무거운 물체가 올라가도 괜찮은 수준이다.
[78]
현대의 북해는 아무리 기록적으로 추워봤자 수 km는커녕 해안가 근처도 얼음이 거의 얼지 않는다. 이를 생각해보면, 당시에 도대체 얼마나 추웠던 것인지 상상이 가능하다.
[79]
타이호 결빙은 17세기에도 1654~1655년 겨울, 1665~1666년 겨울, 1683~1684년 겨울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1683~1684년 겨울이 기록적으로 추웠음을 입증한다.
[80]
거의 제주도급으로 따뜻한 곳이다.
[81]
일단 11월~3월 동안 조선왕조실록에 추위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 절기상 겨울이 다 지나간 음력 4월 8일(양력 5월 20일)에
평안도
강계 지방에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는 기록과, 음력 5월 2일(양력 6월 13일)에
평창에도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은 있다. 심지어... 음력 7월 7일(양력 8월 16일)에
진주에서 눈이 내려서(?!) 그 두께가 3치(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음력 7월 28일(양력 9월 6일)자 기록에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평안도 등지의 지역에서 며칠간 서리가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82]
이해는 겨울이 사실상 10월부터 시작되었다.
[83]
예시로
영국 중부 지역은
1683~
1684년 겨울이 가장 추웠다.
[84]
1991~
2020년 기준으로는 베를린 0.7℃, 서울 -2.0℃
[85]
다만, 이는 서울이 비교적 근대인
1907년에 와서야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도 분명히
21세기보다는 춥지만,
18~
19세기에 비하면 따뜻하다.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서울도 18세기부터 관측이 시작되었다면 월평균 기온 -10℃ 이하인 달도 꽤 있을 것이다.
[86]
앞서 언급한대로 1981~2010년 평년값 기준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2.4℃이다. 혹자는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베를린보다 2℃ 이상 낮으니,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 -13.2℃ 기록을 서울로 비유할 시 -13~-14℃가 아니라 -15~-16℃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평년값만 고려해서 똑같이 더하고 빼기는 힘든 것이, 베를린이 평년값은 높을지언정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지리적 특성상
북극권에서 남하하는 한기의 영향을 받을 때 더 정통으로 받기 때문에 일단 한파가 강하게 오는 겨울에는 월평균 기온이 평년 값으로부터의 편차(anomaly)가 서울보다 큰 경향이 있다.
[87]
이미지가 흐릿해서 대략적인 색깔 분포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고 싶으신 분들은 서술 상단의 영문위키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이미지를 클릭하여 보는 것을 추천한다.
[88]
해당 편차 지도가 1971~2000년 평년 기온 베이스로 작성된 것이므로, 비유를 할 때 같은 기준으로 1971~2000년 서울의 평년값과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
[89]
12월 0.2℃, 1월 -2.5℃, 2월 -0.3℃
[90]
공식적인 기록으로 서울의 겨울 전체(12~2월) 평균 기온이 가장 낮았던 겨울은
1944~
1945년 겨울의
[91]
17세기~18세기 초반에 전 세계가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을 자주 겪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보는 기후학자들이 많다.
[92]
또한 마운더 극소기만큼은 아니지만,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에 흑점 수가 또 다시 급감하는 구간이 보일 텐데 이 시기를 달톤 극소기라고 한다. 실제로 달톤 극소기인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도 17세기~18세기 초반 다음으로 기록적인 혹한이 자주 발생했다.
[93]
많은 기후학자들은 마운더 극소기가 지난 2,000여 년간 그 어떤 시기보다도 태양 활동이 적었다고 주장한다.
[94]
왜 하필 베를린이냐면, 베를린의 기상 관측이 1701년에 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빨랐기 때문이라고 해당 블로거가 설명한다. 다만, 해당 설명은 오류가 있는 것으로 실제로는 영국 미드랜드가
1659년에 기상 관측이 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빨랐으며 그 다음으로는 프랑스
파리의
1675년이다. 독일 베를린의 1701년 시작이 3번째로 빨라서 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편에 속하기는 하나 세계 최초는 아니다.
[95]
이 축제는 소빙하기 시기에서도
1608년,
1683~
1684년,
1716년,
1739~
1740년,
1789년,
1814년으로 총 6번 밖에 열리지 않았을 정도로 희귀하다. 당연히 강 위에서 축제를 열 정도로 얼음이 꽁꽁 얼어야 하기에 어지간히 추운 겨울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록적으로 춥다고 축제가 꼭 열렸던 것은 아닌데,
1649년,
1655년,
1663년,
1666년,
1677년,
1695년,
1709년,
1776년,
1795년 등은 템스강이 결빙될 정도로 충분히 추웠음에도 개최되지 않았다.
[96]
당시에 우편물을 수송하는 도로
[97]
일별 최저 기온, 최고 기온 기록은
1878년부터 제공
[98]
1929년 2월 15일 기록
[99]
1927년 12월 31일 기록
[100]
추정이기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묘사된 내용들을 보면 서울도 소빙하기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인
1450년대에서
1720년대 사이에 -27~-28℃,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온도도 기록했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부산이 -18~-19℃,
제주도는 -9~-10℃,
강원도 산간 지역이 -35~-37℃ 이하의 기온을 기록한 것과 비슷하다. 예시로 1655년 봄에
동해가 사흘간 얼었다는 기록을 보면 더욱 그렇다. 소빙하기보다 어느 정도 따뜻해진 20세기 초반에도 한파가 강하게 찾아오면 서울이 -22~-23℃를 기록한 적이 있는지라 더욱 그럴 것이다.
[101]
CET는 1659년, 베를린은 1701년. CET는 하나의 단일 지역이 아니라 CET라는 약자에서 알 수 있듯이 잉글랜드 중부 지역들에 대한 평균값이니 유의하기 바란다.
[102]
1740년 베를린의 연평균 기온이 5.4℃였다. 1981~2010년 기준으로 베를린의 연평균 기온 평년값이 9.7℃임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이상 저온인 셈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1981~2010년 기준으로 연평균 기온 평년값이 12.5℃인 서울이 8.2℃인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참고로 서울의 공식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낮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한 해는
1947년으로 9.6℃였다). 베를린의 가장 높은 연평균 기온이 11.8℃이므로, 1740년과 무려 6.4℃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 서울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1740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7.4℃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103]
이 당시에는 계절적으로 가을인 10월부터 심각한 추위가 맹위를 떨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겨울 날씨는 이듬해 5월까지 아주 길게 지속되었다.
[104]
상단의 1739~1740년 겨울 서유럽 한파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1740년은 겨울 혹한뿐 아니라 1년 내내 이상 저온이 이어져 유럽에서 영국, 독일 모두 연평균 기온이 역대 가장 낮았던 해이다. 북아메리카마저도 이러한 이상 저온이 이어진 듯하다.
[105]
이러한 폭설은 1717년 3월과 닮았다. 물론 1717년보다는 약간 덜하지만.
[106]
북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기상 관측은
1743년 보스턴에서 시작되었다.
[107]
1934년 2월 9일 기록
[108]
물론 뉴욕 앞바다가 얼었던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까지 두껍게 얼어붙은 겨울은 이해 겨울과
1820~
1821년 겨울로 2번 뿐이라고 한다.
[109]
월평균 최고 기온 13.5℃, 월평균 최저 기온 2.3℃
[110]
물론 미국과 중국, 대한민국의 기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기후 평년값만 가지고 매칭시켜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대략 그 정도로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11]
대구보다 겨울에 훨씬 추운 서울조차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이러한 사건은 전무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나마 비슷한 사례가
2011년 1월과,
1963년 1월 낮 기온이 이틀 빼고 전부 영하였던 적이 있다.
[112]
사실
1780년대 자체가 세계적으로 극한 추위가 잦았다. 자세한 이유는 후술.
[113]
북위 37.8° 위치하여 서울보다 약간 높은 위도에 있다. 현대에는 아예 얼지를 않는다. 체서피크만 연안의 도시인
노퍽의 1월 평균 기온은 4.7℃. 대략 제주시 앞바다가 얼어붙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114]
참고로 뉴올리언스는 최한월인 1월의 평년 월평균 기온이
[115]
참고로 프랑스 파리의 1981~2010년 기준 12월 평균 기온 평년값은 5.5℃로 부산의 12월 평균 기온과 비슷하다.
[116]
파리보다 겨울에 훨씬 추운 서울조차도 12월 월평균 기온이 -6.8℃는커녕 -6℃ 이하로 떨어진 적도 전무하다. 물론 기상 관측이 1907년 10월 1일부터 시작되어서 그런 것이고,
1884년 12월 서울이 1788년 12월의 파리에 비견되는 수준의 한파였을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한다. 소빙하기가 막 끝난
19세기 후반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한창 소빙하기였던
18세기의 서울은?
[117]
12월로 한정짓지 않아도
1893년 1월 -21.6℃ 다음으로 낮아 역대 최저 2위이다!
[118]
다만 위의 문단에서 설명한대로 이 사이트에 약간의 오차가 있다. 2011년
신의주의 월평균 기온은 -9.4℃인데 이 사이트에서는 -9.8℃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1917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9.0℃인데 이 사이트에서는 -9.3℃로 표기되어 있고,
1963년 1월도 -9.2℃인데 이 사이트에는 -9.4℃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약간의 오차는 있어도 0.5℃ 안팎이라 어느 해가 추웠는지, 더웠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유용하다. 따라서 이 사이트에 적힌 월평균 기온 표에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 다행인 점은, 이 문서 내에서 직접 링크로 건 베를린,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교차검증 시행 결과
19세기의 자료까지는 문제가 없다. 다만 공통적으로
20세기 이후의 자료에서 0.2~0.4℃ 정도의 오차가 있다. 사이트에서 데이터를 가져올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단위 변환 과정에서 뭔가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서울, 신의주 등은 아예 기상 관측 시작이 20세기 이후에 진행되었으니 0.5℃ 이내의 오차가 모두 존재한다.
[119]
북유럽이나 러시아 북서부 지역은 1월이 아니라 2월이 최한월인 경우가 많다.
[120]
대신 서울보다 2월이 추우며 스톡홀름의 2월 평년 평균 기온은 서울의
2018년 2월과 맞먹는다.
[121]
1929년 2월 15일 기록
[122]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1740년 1월 3일 런던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무려 -24℃(?!)라는 정신나간 기온이 관측된 적이 있다고 한다. 위의 1739~1740년 겨울 한파 단락 참조. 역시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소빙하기 시대
[123]
참고로 스톡홀름은
1981~
201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고작 -1.6℃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이는
서울의 -2.4℃보다 높다.
[124]
1981~201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5.5℃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125]
사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의외로 북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면 유럽이나
아시아는 이해 겨울이 (어디까지나 당시 기준으로) 엄청나게 춥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여름이 없는 해(The Year Without Summer)'라고 불릴 정도로
1816~
1817년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여름이 쌀쌀했던 것은 사실이다.
[126]
다만 여러 문헌이나 연구 결과를 보면 상술한
1779~
1780년 겨울,
1783~
1784년 겨울들이 더 추웠을 가능성이 높다. 1817년 2월이 역대 최저인 이유는
1779년 4월~
1790년 12월 사이의 기간이 이유는 모르지만 결측되었기 때문이다.
[127]
2위는
1792년 1월로 -8.6℃였다.
[128]
現 도쿄.
[129]
현재 도쿄가 겨울에 눈이 더럽게 안 내리는 지역으로 꼽히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기록이다. 2016년 1월에 꼴랑 6cm밖에 안 내렸음에도 제설 장비가 없어 눈도 못 치우고 도심이 마비된 사례가 뉴스에도 실렸을 정도였다. 2월까지 눈이 남아있는 것도, 2월까지 눈이 남아있을 턱도 없을 현재 상황과 완벽히 대조된다.
[130]
다만 베이징은 하필이면 1884년 11월, 1912년 11월의 기록이 결측되어 남아있지 않기에(...)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다.
[131]
1957년 1월 15일 기록
[132]
1934년 2월 9일 기록
[133]
그러나, 일 최저 기온이 아닌 오전 7시에 측정한 기온이라 정확히 7시 정각에 -28.0℃를 기록한 것이 아닌 이상, 실제로는 1859년 1월 11일 쪽이 1934년 2월 9일의 -28.0℃ 기록보다 약간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134]
이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것이다. 뉴욕의 가장 낮은 최고 기온 기록으로 알려진
1917년 12월 30일 낮 최고 기온도 -16.7℃인데 이보다 1℃ 이상 낮다.
[135]
당장 다른 나라에서 기록적인 한파를 보였지만 한반도에서 역대급이라 부를 만한 한파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1893년 1월의 사례는 존재하지만, 사실 1893년 1월도 다른 해보다는 상당히 추웠으며
인천의 -10℃ 이하 일수가
해관기상자료 중에서
1900년 1월 다음으로 많다. 서울보다 한참 남쪽인 상하이조차 1893년 1월 평균 기온이 0.4℃로
1917년 1월 0.6℃와 비슷한 마당에, 찬 바람이 직빵으로 내려오는 한반도 지역이 그렇게 월평균 기온이 높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선 1862년, 1893년, 1917년 1월 상하이가 저 정도라면, 1862년, 1893년 1월 서울과 인천은 1917년 1월과 비슷하게 인천은 최소 -7~-8℃, 서울은 무조건 -8~-9℃이거나 그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136]
한편 비슷한 시기에
태평양 건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유례없는 대홍수가 발생해 호수가 생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1861년 12월에 시작된 비는 1862년 1월 내내 쉬지 않고 내렸으며, 그 기간이 40일이 넘었다고 한다. 이 홍수 때문에 수천 명이 사망하고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파산했으며, 주도를
새크라멘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각각
동아시아는 한파가 들이쳤고, 특히 조선은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으며, 미국은
남북 전쟁 와중에 대홍수라는 자연재해가 들이쳤던 1862년 겨울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겨울이었다.
[137]
1위는 공동
1885년 1월,
1922년 1월의 0.6℃이고, 3위는 1945년 1월의 1.1℃이다.
[138]
이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할 마지막 기회는
1930년대~
1940년대까지였다. 당장
1950년대 이후로만 해도 도쿄의 월평균 기온이나 일 최저 기온이 이미 상당히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139]
과거에 비해서 얼마나 기온이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로 도쿄에서
2018년 1월 25일에 -9.2℃보다 높아도 한참 높은 -4.0℃가 기록되었는데, 이를 두고 48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라고 대서특필로 보도했을 정도였다. 마치 서울이 아무리 추워도 이제는 역대 최저 기온인 -23.1℃를 깨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018년 1월 25일 도쿄에서 -4.0℃를 기록했을 때 서울은 다음 날인 1월 26일에 -17.8℃를 기록했다. 또한
1970년 1월 17일 도쿄에서 -4.0℃를 기록할 때 서울은 -20.2℃를 기록했고, 이후 48년이 지난 2018년까지(그리고 현재까지도) -20℃ 이하의 기온을 기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 이후 48년 만에 -20℃ 이하의 날씨가 찾아온 셈이 된다.
[140]
당연하지만
대한민국에 있는
한강(韓江)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동명의 강이다.
삼국지 등 옛 중국을 다룬 역사서를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한수(漢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강이다.
[141]
같은 날 도쿄의 최저 기온이 8.7℃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한기 남하가 일본에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도쿄에서 10월 초에 최저 기온 8~9℃를 기록할 때, 서울은 0~4℃가 기록되는 경향이 있던 옛 시대의 날씨상, 10월 극초반부터 서울에도 한기 남하로 인해 엄청난 저온 현상이 있었음은 명관약화하다.
[142]
1927년 12월 31일 기록
[143]
도쿄의 역대 최다 적설량은
1954년 1월 24일의 33cm이다. 물론 최고 기온이 영상이라서 모두 눈으로 내리지는 않았을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역대 최다치를 가뿐히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적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44]
그 와중에 2월 13일 최저 기온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
[145]
참고로 2018년 1월 25일에 도쿄가 -4.0℃까지 떨어졌는데 이 기온이 당시 기준으로 48년 만의 최저 기온이었다. 그런 날씨가 1885년에는 계절적으로 봄의 시작인 3월에 찾아온 것이다...
[146]
한파/대한민국/19세기 문서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도 거의 비슷한 시기, 1884년 11~12월에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다. 기후학자들은 1883년에서 1888년까지, 약 5년간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이상 저온과 한파에 대한 원인으로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을 지목한다. 다행히
1783년
라키 화산,
1815년
탐보라 화산처럼 막대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미국도
1886~1887년 겨울과
1888년 1월이 매우 추웠다고 한다.
[147]
많은 사람들이
오이먀콘 마을에 세워진 -71.2℃ 기념비를 보며
1926년 1월 26일 오이먀콘의 -71.2℃ 기록이 북반구의 역대 최저 기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기록된 비공식 기온인 듯하다. 공식 관측소의
기후 테이블에 의하면
1933년 2월 6일의 -67.7℃가 오이먀콘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 이는 베르호얀스크보다 0.1℃ 높은 값이다. 사실 사하 공화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그린란드 모두 인구가 희박하여 관측소가 띄엄띄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70℃ 이하의 기온을 보이는 지역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148]
동태평양의 수온이 무려
[149]
반면에 북아메리카, 일본,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한파의 강도가 덜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도 굉장히 추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150]
초겨울 한파와 함께 라니냐 한파 겨울의 대표적인 특징이다(물론 라니냐라고 모두 한파 겨울은 아니다. 다만 한파를 보인 라니냐 겨울 중에서 그러한 경향이 많았다는 것이다). 전자의 예시로는
1956~
1957년,
2017~
2018년 겨울 등이 있으며, 후자의 예시로는
1916~
1917년,
1917~
1918년,
2010~
2011년 겨울 등이 있다. 1916년
성탄절과 다음 날인 12월 26일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1917년 3월까지 기록적인 한파를 보였고 1917년 12월도 12월 15일부터 한파가 본격적으로 심화되더니 라니냐가 끝난 1918년 2월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의 사례로는 2010년 12월 23일 한파 이후 기온이 조금 올라가나 싶더니 바로 2011년 1월은 서울에서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 손에 꼽는 강한 한파를 보였다. 여담으로
2020년 하반기에도 동태평양 수온이 평년보다 낮았는데,
2020~
2021년 겨울이 라니냐가 심해지면서 한파 겨울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평년보다 높았다.
[151]
사족이지만 1893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을 추측해보자면, 1892~1893년 겨울과 비슷하게 매우 강한 라니냐를 보였던 1917년 1월의 월평균 기온이 베이징 -6.9℃, 서울 -9.0℃였으므로(일반적으로 베이징의 겨울 평균 기온은 서울보다는 조금 높고 인천보다는 조금 낮은 편이다. 세 지역을 비교해보자면 인천 < 베이징 < 서울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1893년 1월은 베이징이 -8.1℃였으니 바로 옆 한반도에 있는 서울도 1917년 1월을 능가하는 엄청난 한파가 기승을 부렸을 것이 자명하며, 적어도 월평균 기온 -9℃ 이하이거나 심하면 -10℃ 이하를 기록한 초강력 한파를 보였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1893년은 아직 한반도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없었던 시기였으며, 정확한 기온 자료는 없고
1976~
1977년 겨울처럼 서울보다 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더 낮은 경우도 있었으므로, 1893년 1월이 1917년 1월과 비슷하거나 더욱 강한 한파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만 알면 될 듯하다.
[152]
다만, 비공식 자료이기는 하지만 개화기 시절에 관측한
1884~
1903년 인천의
해관기상관측자료에 따르면 1893년 1월 인천의 월평균 기온은 -5.5℃였다고 한다. 보통 서울이 인천보다 1℃ 정도 낮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해당 자료에 근거하여 1893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의외로 그리 낮지 않아서 -6~-7℃ 정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 정도도 상당히 추운 것이지만, 19세기 말이라는 시대를 감안할 때 기록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며 특히 1893년 1월 베이징의 한파 강도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높은 기온이다. 사실 밑의 1893년 1월 세계의 기온 편차 지도를 보면 시베리아, 중국 북부, 몽골,
중앙아시아,
동유럽 쪽이 커다란 파란색 점으로 잔뜩 도배되었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한파를 보인 반면 북아메리카, 일본, 한반도는 파란색 점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즉 세계적으로는 매우 추운 겨울이 분명하나 그 정도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고, 한반도도 춥기는 했지만 1917년 1월만큼 기록적으로 춥지는 않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53]
그리고 서울보다 겨울에 훨씬 온화한 일본 도쿄에서 1893년 1월 26일 최저 기온이 무려 -7.1℃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우리나라에서 서울 기준 -7℃ 정도는 매 겨울마다 기록하는 최저 기온이지만, 도쿄에서는 2018년 1월에 -4.0℃를 기록했을 때도 48년 만의 추위라고 언론에 보도되었을 정도로 서울에 비해 겨울이 따뜻한 곳이다). 그리고 당시 도쿄 한파의 양상을 보았을 때 1917년 1월과 양상이 비슷하며(1월 상순에 강한 추위가 끝나고 중순에 조금 나아지다가 하순에 다시 한파) 최저 기온도 1917년 1월과 비교해보았을 때 더욱 낮아, 아마 서울의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인 1927년 12월 31일의 -23.1℃ 기록을 가볍게 깼을 것으로 보이며 심하면 -25℃ 이하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공식적인 관측 자료는 아니지만 당시 한반도에 정착해서 기상 관측을 했던
뮈텔 주교의 일기에 따르면 1893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은 의외로 -22℃보다도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일기에 따르면
1895년 2월 2일의 -22℃가 1891~1895년 기간 동안 서울의 최저 기온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인천의 1893년 1월 평균 기온이 -5.5℃로 동시기 다른 연도보다는 확연히 낮았지만 그다지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었고, 1917년 1월의 -8.0℃보다도 훨씬 높아서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도 월평균 기온이 크게 낮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정확한 관측이 없던 시기이기에 진실은 저 너머에. 아니면 1893년 한기의 중심이 몽골과 베이징 등 한반도 이북에 집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한기의 축이 몇 백 km만 옆으로 빗겨가도 몇 ℃씩 차이날 수 있는 것이 기온이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한기의 가장자리인 베이징도 -8.1℃로 역대 가장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고... 그렇지만 서울 기준으로 베이징의 정반대에 위치한 도쿄에서도 동시기에 -7.1℃로 매우 낮은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이 든다. 서울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위치한 베이징과 도쿄가 이 정도로 추웠으면 당연히 서울 역시 엄청난 한파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기록상으로는 그리 추운 겨울이 아니었으니...
[154]
여러가지 말이 많고 의문점이 드는 겨울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도쿄의 1월 26일 -7.1℃ 기록이 단일 기록으로서는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월평균 기온 자체는 2.6℃로 의외로 기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1900년 1월이 1.6℃로 더 낮을 정도이다. 인천도 1900년 1월이 -6.1℃로 더 낮다. 즉 1893년 1월은 일본과 한반도 둘 다 추운 겨울을(월평균 기온이 기록적이지는 않은) 보내다가 1월 26일 쯤에 한 번 한기가 정말 강하게 왔는데 그때의 한기가 유난히 일본 쪽으로 치우치는 시나리오라면 이와 같은 현상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뮈텔 주교의 일기에는 1895년 2월 2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22℃로 1891~1895년 기간 중 가장 낮았다고 적혀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1893년 1월은 최저 기온이 -22℃보다 높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1893년 1월도 -21℃ 정도는 갔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청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이것도 분명한 강력 한파이다. 더군다나 1893년 1월 도쿄의 최저 기온 극값(-7.1℃)보다 더 낮은 극값(-8.1℃)을 기록한 1922년 1월의 경우 같은 달의 서울 최저 기온 극값이 -21.0℃였던 것을 보면, 1893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에 그쳤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게다가 해당 자료의 출처인 블로그에 적힌 월평균 기온 기록들이 추정치에 비해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천의 실질적인 월평균 기온은 -6~-7℃ 정도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서울의 1893년 1월 평균 기온은 -7~-8.5℃,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였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155]
북위 28°에 위치해 있다.
[156]
1889년 8월 관측 시작. 1904년 당시 일본 기상 관측 지역 중 가장 최북단이었고,
1938년 1월
왓카나이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되며 최북단 자리가 바뀌었다.
[157]
다만 이것이 아사히카와의 역대 최저 기온은 아니다. 아사히카와의 역대 최저 기온은
1902년 1월 25일의 -41.0℃이며, 이는 일본의 공식적인 역대 최저 기온이기도 하다.
[158]
1907년 10월 공식적인 기상 관측 이래로 1월 하순에 -21℃ 이하로 내려간 사례는
1917년 1월 22일(-21.1℃)이 유일한데, 이보다도 나흘이나 뒤이다. 즉 위도에 비해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서울에서도 1월 하순에 -21℃까지 내려간 적이 거의 없으니, 1904년 1월 하순의 한파가 얼마나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전술된
[159]
실제로 당시 한반도에 정착하여 비공식 기상 관측을 진행한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의 일기에 의하면 서울의 최저 기온이 1월 23일 -22℃, 1월 24일 -23℃, 1월 25일 -22℃를 기록했다고 한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울의 공식적인 역대 최저 기온(-23.1℃)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낮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뮈텔이 주로 활동했던
중구와 공식 관측 지역인
종로구가
청계천(1904년 당시 개천(開川))을 경계로 서로 마주 보는 형세인지라 기온 격차도 크지 않았을 듯 싶다.
[160]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1916~1917년 겨울에 관측 사상 최강의 한파가 찾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161]
베를린은
1701년부터 관측이 시작되어 전 세계에서 관측이 가장 이른 지역 중 하나이다. 다만
1711~
1727년은 결측되었다.
[162]
20세기 1월 평균 기온 최저 1위
[163]
1939년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연말까지
이상 고온이 지속되었다. 비슷하게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이 발생한
1894년,
1994년 여름 이후의 9~12월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164]
여담으로 해당 기사에서는 추위가 2~3일 더 지속된다고 쓰여있지만 실제로는 2주 넘게 더(...) 지속되었다. 1940년 기상학의 한계이다.
[165]
월평균 기온은 높은 편이었지만 최저 기온 기록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이해 겨울이 더 추운 편이었다. 특히 1941년 1월 31일에는 서울에서
1970년 1월 5일의 -20.2℃를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20℃ 이하인 -20.4℃를 기록하였다.
[166]
이해 겨울은 1월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한파가 상당히 강했는데, 베를린의 1월 평균 기온이 -7.2℃를 기록해 1940년보다는 덜하지만 꽤 낮았다. 러시아는 더 심각해서 모스크바의 1942년 1월 평균 기온이 -20.2℃로 20세기 최저이며 기상 관측 전체로 확대해도
1788년 12월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2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도 -18.7℃로 20세기에서 가장 낮았으며, 21세기에서는 이보다 낮은 기록은커녕 비슷한 기록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
[167]
다만, 이걸 정말로 역대 최저라고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결측이 많다.
1876~
1888년,
1903년,
1907년,
1910~
1955년 등 결측된 해만 수십 개(...)에 달한다. 참고하시길.
[168]
이때, 한반도도 몽골의 한기가 영향을 미쳐서 서울의 겨울 평균기온이 12월 -5.2℃, 1월 -3.9℃, 2월 -4.3℃로 매우 낮았다.
[169]
대한민국은 12월은 포근했고 2월은 적당히 추웠으며 1월만 기록적으로 추웠는데, 영국은 3개월 내내 매우 추웠다.
[170]
이쪽은
1978~
1979년,
2009~
2010년 겨울이 더 추웠다고 한다.
[171]
런던 도심으로 흘러가는 하류는 결빙이 되지 않아서 공식적으로 템스강이 결빙되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상류가 얼어도 한강대교 교각 근처가 얼지 않으면 공식 결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처럼.
[172]
1위는
1861년 1월과
1893년 1월의 -8.1℃
[173]
이는 남극의 기상 관측소가 띄엄띄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관측소가 없는 지역까지 포함하면 -90℃ 이하의 기온을 보이는 지역도 많다.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남극 모두 관측 공백이 크다. 실제로
2004년 7월 23일에는 남극 동부 고원에서 위성으로 -98.6℃도 기록한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조.
[174]
다만 이는 아침 최저 기온 극값 통계가 1900년 이후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 1900년 이전에는 더한 한파도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1900년부터 집계라고 해도 20세기 내에서 가장 낮은 기온이니 기록적인 것은 확실하다.
[175]
같은 시기에 더 북쪽에 있는 도시들(
토론토,
오타와)은 체감온도가 -80℃를 밑도는 정도였다. 미국
미네소타 북부도 체감온도가 -70℃를 밑돌았다. 최저 기온조차 토론토/오타와는 -50℃, 미네소타 북부는 -48.3℃까지 내려갔다.
[176]
또한 2,400km에 달하는 띠 모양의 눈폭풍지아가 미국
미주리주/
미시간주 등 중북부 지역은 물론 동부까지 덮쳤다.
[177]
참고로 같은 시기에
남반구에 위치하여 여름이었던
호주에서는 최고 기온 50℃를 기록해서
미국과 호주의 기온차가 100℃에 달했다.
[178]
호남 지방의 대표 다설지인
광주는 2019년 1월에 한 달간 적설량이 31일 전체에서 3.8cm로 단 하루밖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 밖의 남부 지역도 1월 마지막 날(1월 31일)에만 눈이 쌓였다.
강원도의 대표 다설지인
강릉은 17.1cm의 눈이 내렸지만, 평년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적설량이었다.
서울 등 중서부 지방은 기상 관측 사상 최초로 1월 강수량 0mm를 기록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로부터 1~2개월 전인 2018년 11월 24일에는 서울에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많은
첫눈이 내렸다는 것이다.
[179]
영상 6~7도는 포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인도 같은 열대 지방에는 그정도의 기온이라도 매우 추운 것이다.
[180]
서울의 1963년, 1981년, 2011년과 비슷하다.
[181]
-17도 정도는
뉴욕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숫자이고
시카고에서는 -20도도 예삿일이지만, 이번에 이런 기온을 기록한 곳은
멕시코와 접경하고 있는 미국의 최남단이다. 심지어 멕시코는 북위 20도지만 연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열적도이다.
[182]
여담으로 휴스턴 1월의 평균은 11°C 정도로 서울의 2020년 4월과 비슷하다. 2월은 그보다 높으니 진짜로 더 강력하다. 2020년 4월 하순에 서울이 최저 2도, 최고 8도인 것은 양반이다.
[183]
당시 24일부터 30일까지 연속으로 일평균 영하를 기록하였다. 특히 26~30일은 일교차가 컸다.
[184]
다만 이쪽은 1월만 한파가 강했다.
[185]
물론 한반도도 이 한기의 영향을 받아 12월 18~23일 동안 잠시 강한 한파가 나타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