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세기에 한반도( 대한민국, 북한)에 찾아온 한파를 나열한 문서.19세기, 특히 구한말 당시에는 아직 대한민국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서울의 자세한 날씨 기록을 알기 어렵지만, 인천의 비공식 기록을 참고하면 당연히 현대보다 매우 추운 겨울이 많았다.[1] 1880~ 1890년대 사이에는 특히 2월 한파가 강한 양상을 보여 12월보다 2월이 더 추웠다. 물론 1884년과 1892년, 1897년 12월이 있기는 하지만 2월은 1886년, 1895년, 1897년이 압도적으로 낮았고 나머지 해들도 2월이 따뜻하지 않은 편이었다.
2. 목록
2.1. 1870년대
- 1876년 1월 - 일본측 기록에 의해 한파가 확인되었다. 1월 중순이 시작되자마자 도쿄의 기온이 급락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12일과 13일에 각각 -8.6℃, -9.2℃[2]까지 떨어지며 한파가 극에 달하였다. 일평균도 현대 도쿄 겨울과는 정반대로 11일~15일까지 4일 동안 영하를 기록하였다. -9.2도 기록은 현재까지도 도쿄의 역대 최저 기온으로, 그 악명높은 1915년, 1917년, 1922년 1월 등도 이를 넘지는 못했다. 후술할 1885년 1월이 그나마 근접했다. 이를 토대로 당시 조선에는 도쿄보다 하루 빠른 1월 10일경에 기온이 급락하고 그 다음날부터 못 해도 -20℃ 이하인 한파가 며칠 동안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을 보면 짧고 굵은 형식의 한파였던 듯. 다만 3월 상순에도 서울 -13~15℃로 의심되는 강한 한기가 남하한 것을 보면 1월 중순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듯하다.
- 1878년 12월~ 1879년 1월 - 역시 일본측 기록에 의해 한파가 확인되었다. 나가사키의 자료에 의하면 12월 26일 최고기온이 1.9℃에 머물렀으며, 최저 역시 26일과 28일에 -2.6℃와 -2.4℃가 기록되었다. 이는 1916년 12월, 1976년 12월과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2.2. 1880년대
-
1884년
10~
12월
한파
한파/사례 문서에서 1884~ 1885년 겨울 일본의 한파 문단을 읽고 한반도는 얼마나 추웠을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다행히 한반도에서 1884~ 1886년과 1891~ 1903년 사이에 관측한 부산과 인천, 원산, 그리고 1887~ 1890년에 관측된 서울의 비공식 관측 기록이 남아있다! 한반도의 근대적인 공식 기상 관측의 시작은 1904년 4월 8일에 전라남도 목포[3]에서 처음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개화기 일제 세력에 의해 부산, 인천 등의 해관에서 비공식적으로 관측을 해왔다. - 1884년은 10월부터 이미 이상 저온의 기세가 남달랐는데,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1884년 10월 부산의 월평균 기온은 14.9℃에 달했다고 한다. 부산의 10월 평균 기온은 현재는 커녕, 시대를 감안해도 15℃ 중반대[4]여도 이상 저온일 만큼 따뜻한 시기이다. 그런데 이해 10월은 14℃대를 기록했으니 가을부터 이미 찬바람이 매서웠던 셈이다. 부산의 1904년 최초 관측 사상 10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1~3위가 1926년 10월(14.6℃), 1947년 10월(14.7℃), 1931년 10월(14.8℃)이므로, 1884년 10월은 이들 다음으로 낮은 수치이다! 사실 월평균 기온 기록만 보면 '춥기는 하지만 19세기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이상 저온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1884년 10월은 일별 기록으로 뜯어보면 가히 충격적인데 무려 한글날 연휴 직전인 10월 7일이라는 이른 시기에 한반도와 가까운 서일본의 해안 도시 나가사키가 11.6℃를 기록했다.[5] 더 가까워서 서울의 10월 상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11년 10월 10일 0.1℃를 기록했을 때 나가사키의 최저 기온은 11.3℃였다. 즉 1911년보다 사흘 이른 시기에 그에 거의 필적한 추위가 찾아온 것인데, 이는 가히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0월 중순에는 한파가 더욱 심화되어 나가사키에서 10월 16일 7.9℃, 10월 17일 8.9℃를 기록할 정도로 10월 중순에도 간헐적으로 한기가 남하했는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서울의 10월 중순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한 1924년 10월 20일(-1.5℃)에도 나가사키는 10℃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즉 한기의 중심이 어지간히 일본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이상 한반도 역시 20세기 이후의 그 어느 10월 중순의 추위보다도 혹독한, 압도적인 최저 기온 기록을 세웠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하순에도 역시나 한파는 이어졌다. 특히 10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나가사키는 열흘 연속으로 단 한 번도 11℃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 기록이 의미하는 바는, 위에 서술한 사실로부터 서울 역시 10월 하순 내내 아침 최저 기온이 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으로 계속적인 초겨울 한파가 이미 10월 하순부터 쉬지 않고 몰아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가사키는 10월 26일에 절정에 달해 최저 기온 5.1℃를 기록, 이것은 서울의 10월 역대 최저 기온을 가져오게 만든 한파인 1942년 10월 24일[6]의 5.8℃보다도 더 낮은 기록이다. 나가사키로 살펴보았듯이 1884년 10월은 상순, 중순, 하순 모두 기록적인 한파가 포진해 있는 아주 이례적인 케이스의 달이다.[7] 사실 이런 자료들을 감안하면, 부산의 월평균 기온 14.9℃는 실제보다 다소 높게 측정되었을 가능성이 크고[8] 주석에 설명한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14℃ 전후, 즉 13℃대 후반~14℃대 초반일 가능성이 유력해보인다.[9]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1884년 10월 평균 기온은 1926년 10월보다도 낮을 가능성이 높다!
- 다음 달인 11월 역시 가히 전설이다. 이달 역시 19세기 개화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1,500개가 넘는 모든 달을 통틀어 가장 이상 저온의 편차가 심한 달로 추정된다. 우선 1884년 11월 부산의 월평균 기온은 7.8℃로 1917년 11월과 같고, 오로지 1912년 11월의 7.4℃만이 이보다 낮을 정도로 추웠다. 하지만 위의 각주에서 서술했듯 당시의 일평균 기온 산출 방식이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은 시기인 오전 0~9시가 완전히 빠지고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로 고작 일 3회에 측정된 기온에 대한 평균이기 때문에, 현대의 방식으로 다시 계산하면 7℃ 초반일 가능성이 높으며 심지어는 6℃대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천의 경우 1884년 11월의 월평균 기온이 1.7℃인데, 1904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공식 최저 기록인 1912년 11월의 2.4℃보다 0.7℃나 더 낮으며 이마저 현대의 방식으로 측정하면 1℃대나 심하면 0℃대까지 나올 수도 있다.[10] 1912년 11월 서울이 1.4℃였음을 생각해볼 때, 인천이 이 정도면 서울은 11월 평균 기온이 1912년 11월보다 낮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0℃대 중후반 추정) 심하면 1981~ 2010년 12월보다도 낮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해당 블로그에 기록된 자료가 실제 추정치에 비해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천은 1℃ 전후, 서울은 0℃ 전후로 추정된다.[11][12] 추측이기는 하지만 당시 11월 한파의 강도를 감안하면, 11월에 한강이 결빙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운 서일본 지역[13] 중 유일하게 1884년 11월에도 관측이 진행되었던 히로시마에서는 11월 15일에 이미 일평균 기온이 5.0℃[14]까지 떨어졌고, 11월 26일에는 4.0℃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어서, 한반도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이미 11월 중순 초반( 11월 11~ 14일)부터 체감상 겨울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나가사키의 기록을 참고하면, 11월 27일이나 11월 28일[15]에 반드시 최저 기온 -12℃ 이하를 기록했을 것이며, 한낮에도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해 일교차도 10℃를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12월은 더 심해서 1884년 12월 부산의 월평균 기온은 0.2℃이다. 참고로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낮은 부산의 12월 평균 기온이 1944년 12월의 0.8℃이다. 즉 기상 관측 이래 역대 가장 낮은 12월 평균 기온보다도 1884년 12월이 낮다. 심지어 전술된 주석을 참조하면 실제로는 아예 영하권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해서 서울의 월평균 기온까지 대략적으로 추정해보면, 역대 가장 낮은 12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1944년 12월이 -5.8℃였으므로 1884년 12월은 -6℃ 이하일 가능성이 높으며 심하면 -7℃ 이하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인천이 -3.5℃인 것을 볼때 현대의 방식으로 측정하면 -4℃대, 즉 서울은 -5℃중후반~-6℃ 초반대가 유력하다. 즉, 한기축이 11월엔 인천, 12월엔 부산에 강하게 몰려온 것으로 보인다. 우연찮게도 이 시점에 갑신정변의 삼일천하가 벌어졌다. 나가사키의 최저 기온을 대조해 본 결과 1944년 12월의 심화판인, 비교적 고른 장기 한파였음을 보여주고 극점은 하순에 존재한다. 의외로 부산의 1885년 1월 평균 기온은 1.4℃로 12월보다 높아 그리 추운 1월은 아니었던 듯하다.[16] 부산은 1885년 4월도 10.8℃로 역대 최저 2위이고[17] 5월도 15.6℃로 상당히 낮은 이상 저온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 겨울 추위가 다음 해 봄까지도 이상 저온의 형태로 계속 이어진 듯하다. 일단 나가사키에서는 12월 7일과 12월 10일에 각각 -0.9℃와 -1.4℃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는데, 1926년 12월 8일에 -2.6℃까지 떨어질 때 서울은 다음 날에 -16.9℃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따라서 단순 비교로 치면 12월 상순에 서울은 -14~-16℃까지 떨어졌다고 예상할 수 있다.[18][19] 게다가 나가사키보다 서울에 한기가 도달하는 것이 하루 정도 빠르다.
2.3. 1890년대
-
1891년
11월~
1892년
2월
한파
이해 여름은 7월 상순, 중순을 중심으로 시원했으며[20] 시간이 지나 11월 하순에 기상청의 한파일수[21]를 충족시키는 엄청난 추위가 찾아왔다.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의하면, 당시 한반도에 정착해서 비공식적으로 기상 관측을 한 뮈텔 주교의 일기에 10월 24일 '처음 서리가 내렸다'라는 기록을 시작으로, 11월 24일 -6℃, 11월 25일 -9℃, 11월 26일 -11.5℃, 11월 27일 -13.5℃[22]매우 기록적인 것이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서울의 11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70년 11월 30일의 -11.9℃이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다음 기록은 11월 28일이 아닌 11월 29일에 나오는데[23] 이날 뮈텔 주교의 일기에 '-9℃, 추위가 많이 풀렸다\'라는[24] 멘트가 등장한다. 현대의 서울은 겨울 전체 최저 기온조차도 -13.5℃보다 높은 겨울이 널렸는데[25] 11월에 저런 기록이 나왔다는 것은 현대의 관점에서는 놀라운 일이다.[26]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를 확인해보면, 11월 27일 인천도 -10.3℃까지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서울과 달리 역대 최악의 수준은 아니지만 이 역시 매우 기록적인 수치이다.[27] 겨울도 한파가 심했다. 1891~ 1892년 겨울은 12월, 1월, 2월 모두 강한 한파가 존재하지만 특이한 점은 각각 한파가 1개월 간격으로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상술했던 11월의 비정상적 한파는 그저 그해 겨울의 전주곡에 불과했던 것 같다.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 의하면 인천은 12월 16일 최저 기온 -15.0℃, 12월 18일 최저 기온 -15.5℃ 등 12월 중순 치고는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그 후 한파는 사라지고 성탄절과 따뜻한 연말이 지속된다. 1월이 되어도 1월 상순은 별 추위가 없었다. 중순이 되자 분위기가 바뀌게 되는데, 인천의 최저 기온이 1월 13일 -10.5℃, 1월 14일 -10.0℃, 1월 16일 -10.0℃로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월 18일 -11.6℃, 1월 19일 -15.5℃, 1월 20일 -14.5℃, 1월 21일 -15.5℃, 1월 22일 -11.4℃ 등으로 추운 날씨가 이어진다. 심지어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1월 21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무려 -21℃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후로 심각한 추위는 없다가 2월 중순이 되어서야 뜬금없이 그해 겨울 중 가장 강한 한파가 찾아오는데, 인천의 최저 기온이 2월 11일 -16.4℃를 기록하였다가 2월 13일에 잠시 나아진 후 다시 추워져서 2월 15일 -12.4℃, 2월 16일 -16.6℃로 겨울 내 최저 기온을 기록하게 된다. 인천이 2월 16일이라는 날짜에 -16.6℃를 보인 것은 매우 기록적인 수치이다. 2월 중순에 저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 적은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전무하다. 시기를 고려할 때 비정상적인 한파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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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12월~
1893년
2월
한파
앞서 세계의 한파 문서에서 서술했듯이 이 겨울은 관측 사상 가장 강한 라니냐가 있었던 해인데[28],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서양의 선교사인 뮈텔 주교의 일기에 서울의 최저 기온 기록이 12월에 28번, 1월에 26번, 2월에 27번으로 거의 매일 최저 기온을 작성했다고 한다. 뮈텔 주교가 특히 추웠던 날에 집중적으로 최저 기온을 작성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거의 한 달 매일을 작성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횟수는 역대 겨울 중에 가장 많다. 다만 비공식 자료이기는 하나 개화기 시절에 관측된 1893년 1월 인천의 월평균 기온이 -5.5℃로 동시기 다른 연도들보다는 확연히 낮았으나 기록적인 수준까지는 아닌데[29], 1893년 1월 중국 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8.1℃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고, 일본 도쿄에서도 1893년 1월 26일 최저 기온 -7.1℃로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는 것을 보면[30] 당연히 두 지역 사이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크게 멀지 않은 서울에서도 엄청난 한파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기록상으로는 그다지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니 정말 의문스러운 겨울이 아닐 수 없다.[31] 특히 2월 12일에는 일본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한낮에도 5℃ 이하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당시 서일본은 물론 동일본 지역인 도쿄, 심지어 홋카이도에서도 이날 평균 기온이 가장 낮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한반도 전체 역시 이날이 연중 가장 추운 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일본의 한파 강도를 보면[32], 서울이었으면 최고 기온이 -10℃ 이하를 못 벗어났을 가능성도 크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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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
2월
한파
아래에서 후술할 1897년 1~ 2월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 겨울로, 추위가 매우 길게 이어지고 추위 강도도 기록적인 겨울이었다. 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는 상세하게 일별 기온이 나와있다. 인천을 살펴보면, 1894년 12월은 따뜻한 편이었고 1895년 1월에는 추워졌으나 극단적인 한파까지는 없었다. 다만 1월 내에서 -10℃ 이하를 기록한 날이 무려 18일에 달하고, 1월 29일에 최저 기온 -14.5℃를 기록하는 등 비교적 추웠다. 피크는 2월에 이루어졌다. 인천의 최저 기온은 1월 31일에 -3.5℃까지 잠시 올랐던 기온이 바로 급하강, 2월 1일 -9.5℃, 2월 2일 -18.5℃[34] 2월 역대 공식 최저 기온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그야말로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 셈.], 2월 3일에도 -18.5℃를 기록하는 등 2월 역대 공식 최저 기온보다 낮은 수준의 기록적인 한파가 닥친다. 북한 동해안에 위치한 원산의 최저 기온도 2월 2일 -18.0℃, 최고 기온 -10.0℃를 기록하더니 2월 3일 최저 기온 -19.0℃를 기록하며 마찬가지로 2월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하게 된다.[35] 2월 중순에 접어들자 한파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순을 앞두고 다시 찾아와 인천 기준 최저 기온이 2월 19일 -12.5℃, 2월 20일 -12.0℃, 2월 21일 -16.0℃를 기록한다. 굵은 글씨 처리한 이유는 해당 온도가 인천 역대 2월 하순 최저 기온보다 훨씬 낮기 때문으로, 1981년 2월 26일의 -14.4℃가 인천의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후 2월 하순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 인천이 이 정도였다면 서울은 2월 하순에 -17~-18℃[36]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1907년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2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81년 2월 26일의 -15.6℃를 가볍게 밑돌았을 듯하다. 2월 전체 기온 경신을 노린 것도 모자라 2월 하순 기록까지 혼자 싹쓸이해버리는 대단한 2월이었다. 원산도 2월 21일 최저 기온 -17.0℃, 최고 기온 -10.0℃로 2월 하순의 한파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추위는 2월 25일까지 인천이 -11.5℃를 기록하며 이어졌고 3월이 다 되어서야 풀렸다. 그러나 한파가 가신 이후에도 한기의 영향을 자주 받아 3월 18일에 인천의 최저 기온이 -7.5℃까지 떨어지는 등 강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서울의 경우 해관기상관측자료에는 없지만 역사적 자료를 통해 당시의 한파를 일부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따르면, 서양의 선교사인 뮈텔 주교의 일기에 1895년 2월 2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22℃에 달했다고 쓰여있다고 한다. 서울의 공식적인 2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10년 2월 2일, 1913년 2월 9일의 -19.6℃이다. 만일 저게 사실이라면 기상 관측 이래 2월 역대 최저 기온보다 2℃ 이상 압도적으로 낮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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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
2월
한파
2월 장기 한파가 이례적으로 심했던 겨울이다. 장기간 매우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특히 2월에 이어진 한파는 시기상 2월에는 장기 한파가 이어지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파 지속 기간이 이례적으로 길었다. 워낙 장기간 추웠던 탓에 공식 기록이었다면 1947년 2월을 넘어 2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단히 추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우선, 1월 상순~중순 중반까지는 큰 추위가 없이 평범한 겨울이었다. 그러나 인천 기준 1월 18일에 갑자기 최저 기온 -15.0℃, 한낮 기온 -9.4℃로 곤두박질치더니 1월 19일 최저 기온 -18.0℃, 최고 기온도 -10.6℃에 머무는 초강력 한파로 변모한다.[37] 대한인 1월 20일에도 최저 기온 -17.0℃인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도 추웠을 듯. 부산도 1월 19일 최저 기온이 -10.6℃, 물론 북한이지만 동해안에 위치해서 겨울이 따뜻한 원산조차도 1월 18일 최저 기온 -20.0℃에 최고 기온도 -13.0℃로 엄청나게 추웠다. -10℃ 안팎의 추운 날씨는 1월 25일까지 이어지다가 월말에 완전히 사라지는 듯했으나, 입춘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다시 추워져서 인천의 최저 기온이 2월 3일 -13.5℃, 2월 4일 -14.0℃, 2월 5일 -15.0℃, 2월 6일 -16.5℃, 2월 7일 -17.0℃까지 떨어져 절정을 기록한다. 이는 2월임을 고려할 때 굉장히 추운 것으로, 만약 이것이 공식 기록이었으면 인천의 2월 역대 최저 기온 공동 4위에 해당하는 매우 낮은 값이다.[38] 그 후, 2월 8일 최저 기온이 -11.0℃까지 오르면서 추위가 조금씩 나아졌다...가 아니고 다시 한기가 강하게 몰려와 2월 9일 -12.0℃, 2월 10일 -13.5℃, 2월 11일 -16.5℃로 2차 절정을 맞이한다. 2월 13일까지 -10℃ 이하의 추운 날씨는 계속되었고, 2월 14일부터는 -10℃ 이하의 날씨는 물러났으나 2월 17일에도 -9.5℃를 기록하는 등 추운 날씨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원산도 2월 5일 최저 기온 -19.0℃, 최고 기온 -12.0℃, 2월 6일에 다시 최저 기온 -20.0℃를 찍으며 가히 기록적인 한파임을 입증하였다.[39] 이렇게까지 2월에 길게 한파가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2월 3~ 13일까지 인천이 11일 연속 -10℃ 이하를 기록했다. 인천이 이렇게 장기간 -10℃ 이하를 기록한 것은 기상 관측 사상 2월 내에서는 전무하며, 연 전체로 확대해도 1963년 1월 11~ 26일까지 16일 연속 -10℃ 이하를 기록한 것과 함께 유일하다. 그리고 이 이상 저온의 영향은 4월까지 이어져 다른 해에 비해 4월 평균 기온이 유달리 낮게 기록되었다.[40]
-
1899년
1월
한파
1월 상순까지 큰 한파가 없었다가 1월 13일 오후 3시 이후[41]부터 한기 남하가 이루어졌다. 이 여파로 하룻밤 사이에 서울에서 한강이 결빙된 것으로 추정되나[42], 당일 인천에서는 -13.5℃[43]에 그쳤고, 이후 1월 17일과 1월 22일에야 -14.0℃를 기록할 정도로 한파의 강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2월에도 -8℃ 이하의 한파가 관측되지 않았다.
[1]
하지만
서울에서
1월 평균 기온 -7~-9℃는 몇 번 기록된 것으로 추정(
1855년,
1856년,
1861년,
1862년,
1864년,
1874년,
1876년,
1893년,
1900년
1월 등)되지만,
조선 후기나
구한말 시절이라도
19세기 중후반에는 -10℃까지 기록했을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소빙하기의 절정이던
17세기와
18세기 초, 그나마 덜 올라가도
18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월평균 기온 -10℃ 이하를 기록한
1월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2]
한기의 축이 일본 관동에 집중되지 않았다면, 서울은 무려 -25℃~-26℃라는 뒷날에 다시 없을 대한파가 덮쳤다는 가정이 세워질 수 있다. 참고로 1900년, 1902년, 1904년에 도쿄가 -6℃선까지 떨어졌는데 서울로 치면 -20℃~-21℃선까지 떨어진 것과 비슷하다.
[3]
의외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 해상 교통의 요지인 항구도시는
서울 이상으로 매우 중요했다.
목포 이후
부산,
인천,
원산에서도
같은 해에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했다.
서울과
대구,
평양은 약간 더 늦은
1907년,
강릉은
1911년,
울산은
1932년,
광주는
1939년에 시작되었다. 참고로
대전은 한참 늦은
1968년에 시작되었다.
[4]
서울 기준으로는
2014년,
2015년 수준의 나름
이상 고온이지만, 기후가 따뜻한
부산은 평년이 17.9℃,
19세기 후반 당시 기준으로도 16.4~16.6℃ 정도이다. 게다가 블로그의 기온이 실제보다 높은 것을 감안하면 14°C 전후. 비교적 편차가 작고 기온이 높은 부산을 감안하면 엄청난 이상 저온이다.
[5]
한반도의 기온 자료를 설명하면서 왜 갑자기
일본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아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1884년의 일별 자료를
한반도에서 분석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기상 관측 자료의 부재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웃 국가이면서도 그나마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
나가사키의 자료를 토대로 하여 분석하는 것은 차선책의 방법이다. 실제로도
나가사키는
한반도만큼은 아니어도
겨울에 한기가 자주 내려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사실
현해탄 너머에 있어 한파 강도가 반감 되는 나가사키보다는, 현해탄 사이에 있어 어느 정도 한파의 강도가 살아 있는 쓰시마섬의 이즈하라가 기온 추측에 그나마 용이하지만, 이쪽은 1886년 9월부터 기상 관측이 시작된지라 그 이전의 날씨는 알 수 없다.
[6]
당일
서울은
12월 하순의 평년 아침 최저 기온과 맞먹는 -5.1℃라는 가공할 만한 수치를 기록했다.
[7]
하다못해 그
한파가 심했다는
1912년
11월,
1917년
1월,
1917년
12월,
1936년
3월 등도 상순, 중순, 하순까지 한 달 내 모든 시기에 골고루 역대급
한파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했을 때,
1884년
10월은
10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예 기상 관측 이래 모든 달을 대조해보아도 유례를 찾기가 힘든, 한 달 내 모든 시기에서 초기록적인
이상 저온과
한파가 찾아온 놀라운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기상학적인
겨울 역시
10월에 시작되어
1912년보다도 일찍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8]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당시에는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로 일 3회 측정에 대한 평균치가 바로 일평균 기온을 산출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오전 0시, 오전 3시, 오전 6시,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 오후 6시, 오후 9시로 일 8회에 걸쳐 측정된 시간대별 기온을 합산하여 일평균 기온을 산출해낸다. 하루 중 기온이 대체적으로 가장 낮은 시간은 늦은 밤~새벽 사이인 오전 0~9시 사이인데,
19세기 일평균 기온 산출 과정에서는 오전 0~9시 사이(0시, 3시, 6시)를 모두 빼먹었으니 당연히 현대와 같은 산출 방식보다는 수학적으로 높게 산출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9]
부산이 이 정도였으니,
서울은 당시
10월 평균 기온이 9~10℃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월도 9℃대이면 엄청난
이상 저온인데 그보다 높은
10월이므로 말할 것도 없다. 이 추측대로라면
서울은 공식 기상 관측 이후
10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인
1912년
10월(11.1℃)보다 훨씬 낮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나가사키, 히로시마는 평년보다 낮긴 하지만 역대 최저와는 거리가 있어서 일본은 비교적 따뜻한 것으로 보인다.
[10]
1912년
11월도
1904년 이후 공식 기록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낮은 1위인데, 그보다 0.7℃나 더 낮다는 것은 놀라운 기록이다.
[11]
비슷한 시기에
이상 저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교토는
11월 하순에 최저 기온 -3℃ 이하가 사흘이나 기록된 것을 보면,
교토와 기온 차가 기본적으로 많이 벌어지는
서울은
11월 하순에 최저 -10℃ 이하의 기온이 며칠씩이나 기록되어 월평균 기온까지 급격하게 낮아졌을 확률이 있다. 위도에 비해 그렇게 춥지 않은
하코다테에서도
11월 하순에 최저 기온이 -12.1℃로 측정되거나,
11월에 아무리 추워도 0℃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와카야마조차도
11월 하순에 -0.6℃로 내려갔다. 당연히 두 지역 모두 각각
11월 역대 최저 기온이다.
도쿄 역시 월평균 기온이 7.6℃로 역대 최하위이고(
서울의 평년
11월보다 조금 높았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듯
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8.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아쉽게도 수도인
베이징은
1884년
10월부터 관측 기록이 끊겨 있어서 정확한 값은 영영 알 수 없다. 단지
한파의 규모나
상하이의 강력한
이상 저온을 볼 때
베이징 역시 막강한
한파가 들이닥쳐
1850년
11월,
1947년
11월처럼 0℃대, 심하면 영하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듯 이해
11월부터 내려온
한파의 규모가 심상치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12]
이곳에 접속해서
1991~
2020년 기준
1884년
11월 평균 기온을 보면
한반도
남한 지역, 특히 내륙 지역은 -4℃가 한계인 파란색을 넘어 보라색(최소 -4.1℃ 이하)으로 도배되어 있다. 12월도 서울지역은 보라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관측 사상 가장 추운
11월인
1912년
11월조차도 보라색 없이 파란색으로만 도배된 것을 보면 아연실색할 장면. 이것으로
1884년
11월 평균 기온이
1912년
11월보다 압도적으로 낮은 것은 확실하며, 그래도 0℃대였으냐, 아예 -0℃대였느냐로 갈릴 것으로 보인다. 히로시마현 역시 11월 8.5도, 12월 3.4도로 2위와 0.2도차이로 월평균 역대 최저 기록이며 나가사키도 11월이 10.1도로 역대 최저, 12월이 5.1도로 2위이다. 서울 11월 0도대, 12월 -6도대가 가장 유력하며 서울쪽에 한기가 집중되었다면 11월 -0도대도 불가능은 아니다.
[13]
교토와
오사카는
한반도와 가깝지 않으므로 논외. 아쉽게도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쓰시마 섬의
이즈하라는
1886년
여름이 다 지나고서야 관측이 시작되었다.
[14]
참고로
서일본보다 평균 기온이 낮은 우리나라에서도 일평균 기온이 이 정도까지 내려가면
겨울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15]
서울과
나가사키의 거리상 찬 공기가 남하하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둘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시기가 확실하게 마지막으로
11월에 한파일수를 충족시킨 사례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술할
1891년
11월의 사례는 정말로 -12℃ 이하를 기록했는지는 모호하기 때문이지만 실제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당시는 국지적으로 인천에 비해 서울이 낮게 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
반면
일본
도쿄는
1885년
1월 평균 기온이 0.6℃로
1922년
1월과 함께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였으며, 최저 기온 극값도 무려 -9.1℃로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추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한기 남하의 축이
일본 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일본이 가까워보이지만 동서로 꽤 긴 나라라서
한반도 중부 지방과
도쿄간의 동서 직선 거리는 1,160km에 달할 정도로 제법 멀다. 오히려 더 멀 것 같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서울 간의 거리는 746km 정도로 더 가깝고,
도쿄와는 1,067km로 100km 정도 더 가깝다.
[17]
1위는
1936년
4월의 10.5℃
[18]
참고로
서울의 기상 관측 이후
12월 상순의 역대 최저 기온은
12월 7일까지 -11~-13℃ 정도이다. 그런데 비슷한 날짜에 이보다 3℃나 더 낮은 기온을 기록한 셈이다. 이런 날씨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은 악마인가?
[19]
그 외에
1880년,
1883년,
1891년
12월 상순에도 앞서 서술한
12월 상순의 역대 최저 기온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20]
비공식 기록으로
1891년
7월과
8월 둘 다 월평균 기온이 22.8℃라고 한다. 뒤이어 서술될
겨울과 연관을 지어보면
1980년
여름~
겨울의 상위호환 격이다. 다만
1980년
11월은
이상 고온이 있었다. 인천의 해관자료를 보면 7월은 매우 시원하긴 했으나 8월은 그맘때 여름 날씨였고 더위도 존재했다.
[21]
아침(3~9시) 최저 기온이 -12℃ 이하인 날을 한파일수로 정의한다. 반대로 폭염일수는 일 최고 기온 33℃ 이상. 한파일수와 폭염일수를 셀 때는 특보와는 다르게
체감온도와 기온 급락 사례를 거르고 오로지 기온 요소로만 판단하는 것이 흥미롭다.
[22]
아무리 추운
11월일지라도
서울이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은 굉장히 드물며
[23]
정황을 보았을 때
11월 28일도
전날처럼 비슷하게 추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다음 날의 멘트도 이런 맥락으로 나온 듯.
[24]
2022년
11월 30일에
서울이 -8.1℃까지 내려갔을 때
1993년 이후 29년 만에 가장 낮은
11월 최저 기온이라는 타이틀을 가져갔다. 그런데 저 당시에는 -9℃가 추위가 많이 풀린 수준이라는 것이 현대와 기후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25]
21세기 기준
2001~
2002년
겨울,
2004~
2005년
겨울,
2006~
2007년
겨울,
2007~
2008년
겨울,
2008~
2009년
겨울,
2013~
2014년
겨울,
2014~
2015년
겨울,
2016~
2017년
겨울,
2019~2020년 겨울로 총 9해
[26]
다만
소빙하기가 이어졌던
19세기 중반(
18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사건은 흔했을 것이고, 더한 적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이해로부터 불과 7년 전인
1884년
11월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낮았을 가능성이 높다.
[27]
보통
11월 하순에
한파가 올 때
인천이
서울보다 1~2℃ 정도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바, 실제
서울의 기온은 -12℃ 전후(
1922년,
1947년,
1970년과 비슷)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2년
11월 27일에도
인천이 -10.6℃를 기록할 때
서울은 -11.6℃였고,
1947년
11월 27일에도 인천이 -10.1℃일 때
서울은 -11.8℃,
1970년
11월 30일에
인천이 -9.8℃일 때
서울은 -11.9℃였다. 다만 예외적으로 1979년 11월 14일에는 서울 -11.1℃, 인천이 -12.0℃로 인천이 더 낮았다.
[28]
북반구 대다수의 지역에서 강한
라니냐의 여파로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 그중에서도
라니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서시베리아,
카자흐스탄,
중국 남부 등지로, 이들 지역에서는 기상 관측 사상 역대급으로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혹독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반면
일본과
한반도는 후술할 자료들을 참조하면 상대적으로
한파의 강도가 덜했던 것으로 보인다.
[29]
비슷하게 강한
라니냐를 보였던
1917년
1월의
인천 월평균 기온을 생각해보자. 무려 -8.0℃로 관측 사상 역대 최저 1위이다.
[30]
우리나라에서야
서울 기준 -7℃ 정도는 매년
겨울마다 기록하는 최저 기온이지만(
2020년
1월 제외),
일본은
2018년
1월 25일
도쿄 최저 기온 -4.0℃ 기록만으로도
엄청난 한파라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도쿄는
대한민국보다
겨울에 훨씬 온화하며, 아무리 추워도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 정도로
대한민국에 비해
겨울이 따뜻하다. 예시로
도쿄의
1875년 최초 기상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기온은
1876년
1월 13일의 -9.2℃에 불과하다.
서울의
1907년 최초 기상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기온인
1927년
12월 31일의 -23.1℃와 비교해보면 무려 14℃나 높다. 기본적으로 이 지역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직격타로 들어오는 곳인데 -7℃의 한기를 머금은 칼바람이 불어대면... 게다가
일본의 기상 관측 자료를 살펴보면
1893년
1월은 다른 날에도 거의 최저 기온이 영하권이었으며, 대부분 0~-4℃ 사이를 기록한 날이 많았다. 비슷한 환경이 갖추어진
1917년
1월의
도쿄 최저 기온과도 비교하였을 때
1893년
1월이 확연히 낮은 기록이다.
[31]
여러가지 말이 많고 의문점이 드는
겨울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1893년
1월이
1945년
1월같은 스타일의
겨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45년
1월은 월평균 기온만 보면 -7.8℃로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매우 낮았다. 그렇지만 월 최저 기온 극값은 -19.1℃로,
한파가 강하게 찾아오면 -20℃ 이하로도 자주 내려가던
일제강점기
겨울들에 비하면 크게 기록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즉
1893년
1월도
서울이 아침 최저 기온 -10℃ 이하의 추위가 계속 이어져서
뮈텔 주교가 계속 일기에 기온을 적었고, 다만
1945년
1월처럼 기록적인 수치는 없었다는 추측이다. 사실
도쿄의
1월 26일 -7.1℃ 기록이 단일 기록으로서는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월평균 기온 자체는 2.6℃로 의외로 기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1900년
1월이 1.6℃로 더 낮을 정도이다.
인천도
1900년
1월이 -6.1℃로 더 낮다. 즉
1893년
1월은
일본과
한반도 둘 다 추운
겨울을(월평균 기온이 기록적이지는 않은) 보내다가
1월 26일 쯤에 한 번 한기가 정말 강하게 왔는데 그때의 한기가 유난히
일본 쪽으로 치우치는 시나리오라면 이와 같은 현상이 가능하다. 정확히 비유할 사례를 찾기는 힘드나,
2019년
1월과
2월 상순에
대한민국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지만
일본
도호쿠와
홋카이도는 매우 추웠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될 듯하다. 참고로
뮈텔 주교의 일기에서는
1895년
2월 2일에
서울이 -22℃로
1891~
1895년 기간 중 가장 낮았다고 적혀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1893년
1월은 최저 기온이 -22℃보다 높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1893년
1월도 -21℃ 정도는 갔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청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이것도 분명한 강력
한파이다. 더군다나
1893년
1월
도쿄의 최저 기온 극값(-7.1℃)보다 더 낮은 극값(-8.1℃)을 기록한
1922년
1월의 경우 같은 달에
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이 -21.0℃였던 것을 보면,
1893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에 그쳤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허나 기록적인 혹한이 없이 그냥 꾸준히 추운 정도였다고 쳐도 일기를 매일 적을 정도였다면
인천이 최소 월평균 -6~-7℃ 정도는 되었어야 할텐데 이상한 점이 많다. 사실 해당 자료의 출처인 블로그에 적힌 기록들이 추정치에 비해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천의 실질적인 월평균 기온은 -6~-7℃ 정도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서울의
1893년
1월 평균 기온은 -7~-8.5℃,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였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32]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쓰시마 섬의
이즈하라의 이날 최고 기온이 불과 -0.2℃였다. 참고로 이 지역은 한낮에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지역이다.
오키나와의
나하에도 찬 공기가 도달했는지 이날 최고 기온이 불과 12.8℃에 불과했다.
[33]
1월이면 최고기온 -10도 이하인 한파가 현재에도 많지만 기온이 매우 가파르게 올라가는 2월 중순에 저 정도 한파가 온다고 생각을 하면....
[34]
1904년
인천의 공식적인 기상 관측 시작 이래
2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13년
2월 9일의 -18.4℃이다. 앞서 서술했듯이 당시에는 소수점 단위를 어림잡아서 0.5 단위로 기록했기 때문에 정확한 기온은 -18.5℃에서 ±0.2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18.3~-18.7℃ 사이의 오차 범위가 있기는 하나
[35]
원산의 공식적인
2월 역대 최저 기온은
1920년
2월에 기록된 -19.2℃이다.
[36]
대마도 이즈하라와 부산 간의 기온 차, 그리고 부산과 서울의 기온 차를 고려하면 -19℃까지 곤두박질쳤을 수도 있다. 당시 이즈하라에서 -8.6℃였는데, 부산은 이즈하라보다 대략 5℃ 낮음으로 -13℃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이미 여기서도 역대급으로 뒤늦은 한파이다. 그리고 서울은 또 부산보다 5~6℃나 낮으니 최대 -19℃까지 떨어졌을 수 있다. 여하튼 1910년, 1913년, 1920년 2월 이상으로 뒤늦으면서도 엄청난 한파로, 이후 1968년 2월이 하순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14℃까지 내려갔는데, 1895년 2월보다 한참 높음에도 공식 기록상 1968년 2월 기록이 제일 낮다고는 한다.
[37]
그리고 바로 옆의
서울은
겨울에
인천보다 1~2℃ 낮은 경향이 있어서 같은 날
서울은 -19~-20℃를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략
1922년
1월 19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 단 일교차는 내륙인
서울이 더 크기에 최고 기온은 -10.6℃보다 조금 더 높았을 것이다.
[38]
1위는
1913년
2월 9일의 -18.4℃, 2위는
1910년
2월 2일의 -18.0℃, 3위는
1910년
2월 1일의 -17.3℃, 그리고 공동 4위가
1931년
2월 11일과
1897년
2월 7일의 -17.0℃. 다만,
1897년
인천은 소숫점 단위를 어림잡아서 0.5 단위로 기록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오차 범위가 -16.8~-17.2℃ 사이로 -17℃보다 약간 높을 수도 혹은 약간 낮을 수도 있다.
[39]
이를 공식 기온이라고 간주할 경우
원산의
2월 역대 최저 기온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산의
2월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은
1920년
2월의 -19.2℃에 불과하다.
[40]
이상 저온/사례 문서에서도 나와있듯,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한반도보다
한파의 영향을 덜 받는
일본도 열도 전역에 걸쳐
4월 평균 기온이 다른 해보다 낮게 나왔다. 옆 나라 전체가 이랬으니 하물며 한기의 영향을 다이렉트로 받는
한반도는...
[41]
오후 3시만 해도 기온이 37℉(2.8℃)였는데 오후 9시에 19℉(-7.2℃)로 급격하게 떨어져 있었다.
[42]
다음 날에 발생한 중부 지진 때
한강의 얼음이 갈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43]
한낮에도 -8.6℃에 그칠 정도로 낮 추위는 강력했다.
서울 기준으로는 최저 기온 -15℃, 한낮 기온 -7℃ 정도로 추정되나, 같은
한파여도
인천과
서울의 공식 최저 기온이 5~6℃ 이상 차이가 벌어진 경우도 있어서,
인천이 -13.5℃에 그쳤다고 해도
서울이 이와 비슷한 수준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대략 -16~-17℃, 더 낮으면 -18℃ 정도까지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