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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받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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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실존 인물
2.1. 재판이 진행중인 인물2.2. 사면 또는 감형받지 못하고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인물2.3. 사면 또는 감형된 인물2.4.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인물2.5. 사법 살인2.6. 사면 또는 감형받지 못하고 다른 이유로 사망한 인물
3.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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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형을 선고 받은 인물들에 대한 문서.

2. 실존 인물

2.1. 재판이 진행중인 인물


2.2. 사면 또는 감형받지 못하고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인물

사형을 선고받은 후 정부에서 사면받지 못하고 생존해 있는 인물. 대한민국의 미집행 사형수 59명도 이에 포함된다.

대한민국은 사형/국가별 현황/대한민국/사형수 문서 참조.

2.3. 사면 또는 감형된 인물

수많은 범죄로 감옥을 드나들며 2009년 살인죄로 12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출소하자마자 잔혹한 살인을 또 한 번 더 저지른 정 모씨[13]는 69세[14]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범행의 잔혹성과 반성없는 태도, 본인의 사형 요구로 인하여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같은날 항소장을 제출하였다.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4.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인물

2.5. 사법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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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당했으나 후에 무죄로 판결난 경우들이다.

2.6. 사면 또는 감형받지 못하고 다른 이유로 사망한 인물

3. 가상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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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작자가 저지른 끔찍한 만행으로 인해 교토 스튜디오가 완전히 전소됐으며 무려 70명에 달하는 엄청난 사상자가 나왔다. 특히 1997년 이후로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는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엄연히 사형제를 시행하는 국가이며 나가야마 기준에 따라 살해한 사람이 4명 이상인 경우 거의 100% 사형이 선고되기에 대량살인을 저지른 아오바의 경우 사형 확정판결이 나올 수 밖에 없다. [2] 2021년, 당시 고등학생(19세)이던 엔도 유키는 짝사랑하던 동급생 A씨에게 라인 메시지 등으로 고백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에 대한 분노로 범행을 계획해 같은해 10월 12일 새벽 A씨의 집에 침입해 잠을 자던 A씨의 부모를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고 A씨의 여동생에게도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이후 가스통 9개를 놓아 A씨의 집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A씨는 무사했으나 평생 씻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3] 엔도 유키는 2022년 18세와 19세 청소년을 ‘특정소년’으로 규정하는 개정 소년법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은 미성년자이다. 일본의 특정소년법 개정은 18~19세 미성년자를 '특정소년'으로 규정하여 법적으로 성인과 동일하게 취급해 엄벌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며. 개정 이후 미성년 범죄자들의 형기를 성인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은 물론 기소됐을 경우 성명과 주소, 얼굴 사진 등에 대한 보도도 가능해졌다. [4] 이란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된 후 이란을 탈출하여 현재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 국가에서 망명 생활 중이다. 팔라비 2세 전 이란 국왕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이란 혁명 직후에 들어선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으로부터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며 현재 이란에서는 국외를 떠돌면서 생존 중인 팔라비 2세 전 왕의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이란 혁명 이후 궐석재판에서 내려졌던 이 사형선고를 취하/무효화하지 않고 있다. [5] 일본에서 매우 악명 높기로 유명한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아직까지 복역 중이다. [6] 18세의 나이에 교살, 시간, 심지어 생후 11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도 죽이는 만행 등을 저질렀기 때문에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7] 두 명의 중학생을 목졸라 죽였고 법정에선 갑자기 엎드려 유족을 향해 사과하는 시늉을 하였지만 1심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주장한 피고에게 두 어린아이를 죽인 냉혹하고 잔인한 범죄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하였다. 여담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이상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반 친구에게 의자를 던져 다치게 하거나 교실 내에서 나이프를 들고 날뛰는 행위를 하였으며 야마다가 성인이 된 이후 처음 체포된 범죄는 중학생 남자아이의 얼굴에 불을 지르는 범죄행위를 하여 체포되었다고 하며 사형을 선고받게 된 사건 이전에도 이미 전과가 어느 정도 있었다. [8] 원심은 무기징역이었다. [9] 미군정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사형집행 문제가 미군정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된 후, 가석방되었다는 설과 어떠한 감형이나 사면판결 없이 얼렁뚱땅 석방되었다는 설이 있다. [10] 석방된 뒤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돌아온 사형수"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당선되었다. [11] 사형에서 유기징역으로 감형된 굉장히 드문 사례이다. 감형된 이유는 2심 재판부가 조영국이 총기를 탈취한 것과는 달리 '초병을 살해하겠다'는 행위는 고의성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12] 이후 1998년 가석방된 후 2003년 위암에 걸려 사망했다. [13] 공개수배 당시 드러난 실명은 정두호이다. # [14] 세는 나이로 70~71살 [15] 관우 손권에게 참수형을 당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이릉대전이 벌어졌다. [16] 총살형 집행 직전에 공포감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17] 전후 일본의 10번째 여성 사형수. [18] 사후 200여년 후 이완용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의해 최종 복권된다. 몇 번 복권되기도 하고 추탈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덕일이 변명을 해주고 있다. 이완용에 이덕일... [19] 사후 계속해서 좋지 않은 쪽으로 언급되었다. [20] 4명이 살해됐고 이미 범인이 사형, 무기징역이 가능한 나이었기에 (사건 당시 19세)사형이 선고되었다. [21]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내란예비음모죄 [22] 남구만의 변호로 제주도로 유배로 끝날 것처럼 보였지만… 장희빈 때문에 (사실 장희빈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잘못도 많다) 여러가지 죄로 다시 불려오고 끝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한다 [23] 똥별이자 희빈 장씨의 오빠이다. 인현왕후을 암살하려 하다 역관광 실패하고 여러가지 죄로 숙종에게 처리 사형당한다. [24] 만 87세, 세는 나이로 무려 89세( 당시에는 80살이 넘은 사람은 사형시키지 않는 것이 관습)였지만, 인조반정으로 사형당했다. 순종 때 사면되었다. [25] 이경숙은 뒤늦게 합류한 데다가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작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998년 석방되었다. [26] 사건 당시 18세였다. 꽤나 총기 덕후였었고, 누나 명의로 공기총을 구입, 본인 명의로 등록하였고 이후 몇 번이나 경찰의 검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범행 초반에 경찰을 제일 먼저 공격한 것 또한 이러한 일들이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38]당시 18세 소년범이 적었던 것도 아니고, 권총을 얻기 위해 경찰을 습격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나, 언론에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 한 이유는 번화가에서 경찰 인력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인 전무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총격전을 벌인 당일 체포되었고, 1967년 4월 13일, 요코하마 지법에서 1차 공판이 열린다. 이때 소년은 자신을 베트남 전쟁에 참전시켜 주던지 아니면 자신을 사형시켜 달라고 하였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발언을 자신을 죽여달라 할 정도로 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생각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2심에서도 그는 "총에 대해 느끼는 매력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다" 혹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사형시켜달라고 발언하여 고등법원에서는 소년이 교화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사형을 선고하였고, 최고재판소에 상고하였으나,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이 확정되었고, 그는 1972년 7월 21일 미야기 형무소에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27] 이때 1995년에 연방정부청사에 저지른 테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만 무려 168명이었고 특히 이 사망자들 중에 19명이 어린이들이었다. 그리고 공범 두 명도 1명인 테리 니콜스에게는 종신형에 쳐해지고, 나머지 1명인 마이클 포티어는 공범이긴 했으나 그나마 사법부에 적극 협력한 점 때문에 12년형만 받고 2006년에 출소하였다. 그리고 사건 당시 소방관이 아이를 안고 있는 이 사진이 유명하다. 결국 이 아이는 당시 병원 입원 직후 사망했다고 한다. [28] 김대건에 이어 두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는 과로와 장티푸스 때문에 선종하였고, 성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9] 이란 혁명 이후 국외 도피 중 혁명으로 집권한 이란 이슬람 공화국 정권에 의해 궐석재판으로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이집트에서 지병인 암으로 사망했다. [30] 처음엔 비소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31] 연쇄살인범으로 가정집에 침입하여 강간살인 강도강간 하였다. 1996년 사형 확정. [32] 돗토리 연속 의문사 사건의 범인이다. 2017년 사형 확정. [33] 2023년 1월 14일 히로시마 구치소에서 저녁 식사 중 음식물이 식도에 걸려 숨이 막혀 쓰러졌고, 구치소 직원이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외부 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되어 결국 같은 날 질식사하였다. [34] 참고로 사형에 처한 자는 하카바카에 전송된다. [35] 원래 사형선고였으나 우충왕 사살한 이후 공로가 인정되어 감형되었다. [36] 라클레스가 모든 연구가 끝나면 사형에 처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결국엔 사형이 집행되었다. [37] 죽을 운명이였으나 하인이 대신 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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