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82년 영국령 홍콩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 이 사건의 주범은 택시운전사였던 람궈완(林過雲[1], 당시 27세)으로 4명의 여성 승객을 잔혹하게 살해하였는데 홍콩의 언론에서는 비 오는 날에 살인을 주로 저질렀다고 하여 '비 오는 밤의 도살자(雨夜屠夫)'라는 별명을 붙였다. 홍콩의 범죄자 중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성으로 악명이 높고 범죄 행각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무도하여 현재까지도 홍콩 내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 사건 중 하나이다.이 사건이 유리병 살인사건(The Jars Murderer)으로 알려진 계기는 범인이 피해자의 성기와 신체 부위를 병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설과는 달리 실제로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보관했다.
2. 사건 전개
첫 피해자는 당시 밤무대에서 일했던 찬풍란(陳鳳蘭)[2]이었다. 2월 3일 새벽 4시 밤무대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침사추이(尖沙咀)에서 범인의 택시를 타게 되는데 만취 상태였던 그녀는 "군통(觀塘)에 가 달라"는 말을 했고 범인은 택시를 몰고 가다가 돌연 차를 세우더니 찬풍란을 전깃줄로 교살했다. 그는 시체를 자신의 집으로 가지고 간 다음 자신의 집 소파 밑에 은닉한 뒤 다음날 아침 가족들이 출근한 틈을 타서 피해자의 옷을 벗긴 후 사진을 촬영했고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지갑에서 500달러를 꺼낸 뒤 전기톱으로 시신을 7조각으로 토막내서 그것을 비디오로 녹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후 플라스틱 병에 성기를 넣고 부패 방지를 위해 술을 부었다. 토막난 시신의 일부는 신문에 싼 뒤 비닐 봉지에 넣고 그날 밤 출근 중에 인근의 산이나 공원 및 강에 유기했다.2번째 피해자는 마트의 계산원이었던 찬완낏(陳雲潔)[3]으로 당시 31세였다. 5월 29일 새벽 5시 20분에 퇴근하던 중 범인이 차를 세우고 수갑을 꺼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채운 뒤 전깃줄로 교살했다. 범인은 수술용 칼로 각을 뜬 다음 비슷한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한 뒤 그것을 자신의 택시 트렁크에 싣고 암매장하였다. 이번에는 위의 피해자와 이 시신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비디오로 녹화했는데 '엄격한 비밀'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3번째 피해자는 환경미화원이었던 렁사우완(梁秀雲)[4]으로 당시 29세였다. 범인은 앞의 사건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그녀를 살해한 뒤 자신의 작업을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캠코더를 침대에 거치대를 연결한 뒤 시신 해부를 하면서 사진촬영과 비디오로 녹화했으며 '비오는 밤의 행동'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시신을 해부하면서 신체의 일부를 인육으로 먹기까지 하는 끔찍한 행동을 했다. 역시 위와 같은 방법으로 시신을 유기했다.
마지막 피해자는 렁와이삼(梁惠心)[5]으로 17세의 어린 나이에 살해당했다. 침사추이(尖沙咀)에서 예식에 참가한 후 집으로 돌아가던 밤 11시경에 택시를 탔는데 그 기사가 범인이었다. 4명의 피살자 중 가장 오래 시간을 보냈다. 이 두 사람은 학교, 장래희망, 가정, 종교, 영혼 등 많은 대화를 나눴고 범인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수갑을 채운 뒤 마지막에 전깃줄로 교살하여 죽였다. 그는 그런 여성을 살해한 뒤 시간하고 시체를 토막내는 과정까지 비디오로 녹화했으며 거기에 '제4차 행동'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3. 범인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은 람궈완 문서 참고하십시오.4. 체포와 종신형 복역
체포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당시 람궈완의 집에는 사진을 현상할 암실이 없어서 자신이 잘 알던 사진관으로 찾아가서 현상을 요구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지인은 아무 의심도 없이 현상했으며 며칠 뒤 마지막으로 살해된 피해자의 사진을 현상하러 갔지만 그 지인이 일하던 사진관의 현상기기가 고장났다. 이후 자신의 지인의 소개로 그 친구가 근무하던 사진관에서 현상했는데 때마침 다른 직원이 현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카메라는 지금과는 달리 수동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그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이에 경악한 직원들은 급히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람궈완이 방문하는 시각을 경찰에 알렸다.결국 1982년 8월 17일 현상한 사진들을 찾기 위해 사진관에 갔다가 그 사진을 찾고 돌아가는 길에 현장에 잠복해 있었던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람궈완은 "저는 첫 살인에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첫 번째 여성은 창녀였습니다. 전 그녀를 보면서 분노를 느끼며 마음 속에서 저 볼썽사나운 창녀를 죽탕쳐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하늘 대신 제가 그녀를 벌했다는 것에 자랑스러웠을 정도였습니다. 두, 세 번째의 살인은 중독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여성은 이미 진저리가 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17세 어린 학생이었는데 제가 왜 그녀를 죽탕쳐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를 죽탕친 후에 처음으로 눈물을 흐르는데 멈출 수가 없었을 정도로 슬펐습니다."라는 황당무계한 증언을 했다. 곧 재판관은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가? 아무리 첫 희생자가 창녀였다 하지만 감히 살해를 해? 창녀라 해도 사람이다. 그리고 창녀들이 그 일을 하고 싶어 한 줄 아는가? 그녀들은 거의 다 가장소녀들이야. 자네는 지금 황당무계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 3명의 여성들은... 그러니 자네가 벌려놓은 죄는 일체 용서를 받을 수 없음을 천명하여야 할 것이다."며 사형을 선고했지만 이미 당시 홍콩은 장기간 사형 미집행 지역이었기 때문에[6] 관례에 따라 특사를 받아 종신형으로 변경되었다. 그는 이미 수십번의 가석방 신청을 하였지만 기각되었고 최근 가석방 신청도 본인도 사회에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하여 가석방 신청을 포기하였다. 현재 [age(1955-05-22)]세이며 홍콩 사상 최장기간으로 복역 중이다.
해당 기사에서 최근 교도소에서 복무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있다.
5. 그 외
홍콩 사회에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강한 인상을 남긴 사건으로 수많은 시나리오의 소재가 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도 각각 3개다.- 1982년에 홍콩 여배우인 임건명 주연의 영화인 잘못된 무더위라는 영화로 처음 미디어 믹스가 만들어졌고 이는 곧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1986년에는 홍콩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명 록 밴드인 Beyond의 멤버인 황가구(1962년 6월 10일~1993년 6월 30일)가 이 사건에 크게 격노하여 자작곡을 쓰고 취입하기도 하였다.
- 1989년엔 신경쓸 수가 없다. 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풍초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견부, 관지초, 오진우, 오계화, 주문건 주연의 영화로 다시 리메이크되었다.
- 1991년에는 홍콩의 한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살인 사건을 모아서 만든 세계의 잔혹한 사건들이라는 도서에 이 사건에 대한 자료가 실린 적이 있었다. 당시의 배경 자료는 물론 범죄 피해자의 사진 및 체포 사건의 경위를 자세하게 풀어낸 사진이 실렸다.
- 1992년에는 영화 구름의 숲은 본 적이 없다. 로도 다시 한 번 다루어졌고, 같은 해에 개봉한 다른 영화인 고양의생으로 또 다루어졌다. 여기선 이수현, 임달화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에서 이수현은 사건을 맡은 수사반장, 임달화는 범인 역할로 나온다.
- 1993년에 비 오는 밤의 파수꾼으로 제작되었으며 이 작품에서 중국의 국민배우인 오계화가 주연배우를 맡았다.[7]
- 드라마의 경우에는 1990년에 지상파 방송 법정 드라마인 황제의 정원 THEONE 시리즈에서 이 사건을 각색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다음해인 1991년에 지금은 없어진 홍콩 아시아 TV( aTV)에서 홍콩의 밤안개(霧夜屠夫)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가 되었으며 배우인 황점이 진행을, 임달화, 구숙정이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2006년에는 한국의 중화TV에서도 방영된 향항기안실록(香港奇案實錄, 홍콩25시)이라는 재연 프로그램에서 재연되었다.
- 2010년에 방송한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이 사건의 범인인 람궈완이 이 사건을 저지르고 검거되기까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인 Crime Investigation Asia - Jars Murderer가 제작되었다.
[1]
홍콩
광동어로 람궈완,
표준 중국어로 린궈윈,
한국 한자음으로 임과운
[2]
홍콩 광동어로 찬풍란, 표준중국어로 천펑란, 한국 한자음으로 진봉란
[3]
홍콩 광동어로 찬완낏, 표준중국어로 천윈제, 한국 한자음으로 진운결
[4]
홍콩 광동어로 렁사우완, 표준중국어로 량슈윈, 한국 한자음으로 양수운
[5]
홍콩 광동어로 렁와이삼, 표준중국어로 량후이신, 한국 한자음으로 양혜심
[6]
홍콩의 사형제 폐지는 1993년이지만 1965년
영국에서 군법 이외의 법에 의한 사형을 폐지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홍콩의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66년에 일어난 강도살인 사건(青山道中建國貨劫殺案)의 범인인 당시 26세였던 웡카이케이(黃啟基,
중국 표준어 발음: 황치지, 1940~1966)이다.
[7]
참고로 오계화는 1989년판 영화에서는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역으로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범인 역을 맡았다.
[8]
당시 보도된 시기가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지 7개월 후,
의령 경찰관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4개월 후였다. 다만 이 두 기사에서는 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