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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Oklahoma City Bomb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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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000> 발생일 |
1995년
4월 19일 [dday(1995-04-19)]일 |
|
발생 위치 |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 알프레드 P. 뮤러 연방 정부 청사 | |
유형 | 트럭 폭탄 테러, 대량살인, 백색 테러 | |
원인 | 반정부 정서, 웨이코 포위전에 대한 보복 | |
테러 주동자 | 티모시 맥베이[2], 테리 니콜스 | |
사망 | 168명 | |
부상 | 680명 |
[clearfix]
1. 개요
|
테러의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James McVeigh)와 공범 테리 니콜스(Terry Lynn Nichols) |
1995년 4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 시티의 앨프리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 가해진 폭탄 테러. 9.11 테러 이전까지 미국 국내에서 일어난 테러 중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폭탄 테러이다.
테러를 일으킨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와 공범 테리 니콜스(Terry Nichols), 마이클 포티어(Michael Fortier) 셋은 미합중국 육군 훈련소 동기였다. 포티어의 부인인 로리 포티어(Lori Fortier)도 범행에 가담하였다. 주범 맥베이는 걸프 전쟁에 참전하여 훈장을 받은 경험도 있었다. 이들은 극단적 반연방주의 및 극우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왼쪽 맥베이, 오른쪽 테리 니콜스. 1988년 군대에서 찍은 사진
테리 니콜스는 34살에 입대했기 때문에 부대에서 'grandpa'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군대에서 형성된 둘의 관계는 1991년 전역 뒤에 더욱 친밀해졌다. 맥베이는 경비원 일을 잠깐 했지만 곧 그만뒀고, 이 둘은 특별한 직업 없이 총, 화학 무기, 무정부 사상 등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들의 성장환경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의 한 일간지에서도 보도된 적이 있다. 링크
1992년의 루비 능선(Ruby Ridge) 사건, 1993년 웨이코 포위전 당시 연방정부의 강경진압에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1994년부터 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를 목표로 잡고 테러를 위한 사전답사를 벌였다. 이들은 연방정부청사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면서 다른 지역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하기 위해 벽면 대부분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주차장이 자리잡은 연방청사 북쪽을 목표로 설정했다.
장소 설정 후 맥베이는 동료들과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여 임대 창고에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1994년 9월 30일 캔자스 주에 있는 비료 공급업체에서 23kg 질산암모늄 포대 40여개를 구입하였다. 이후 캔자스 주 폴린에서 열린 NHRA 드래그 레이싱 시리즈 이벤트의 연료 공급 업체에서 나이트로메테인(nitromethane)과 하이드라진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연료 공급업체의 의심으로 실패하였다.
NHRA 챔피언십 투어의 다음 라운드는 텍사스 주 에니스에 위치한 텍사스 모터플렉스에서 열린 치프 오토 파츠 네셔널스(Chief Auto Parts Nationals)였는데 맥베이는 여기에서 오토바이 레이서로 가장하여 그와 몇몇 동료 바이커들이 경주에 필요하다는 구실로 나이트로메테인을 구입하려고 시도하였고, 여기서도 굉장한 의심을 사며 거절당하지만[3] 결국 연료 공급업체의 부사장이 3개의 나이트로메테인 드럼통을 판매하였다.
당초에는 하이드라진과 질산암모늄을 이용한 Astrolite G 라는 폭발물을 제조할 계획이라고 하였으나 하이드라진의 매우 높은 가격으로 상기된 나이트로메테인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옮겨갔다고 했다. 만약 이 방법을 사용했더라면 기존 폭발의 약 2배의 위력이 나오므로 피해가 더욱 커질 뻔했다.
추가로 맥베이는 캔자스주의 한 채석장에서 160kg의 "Tovex" 라는 광산용 젤형 폭약과 수백개의 뇌관도 훔쳐서 보관중 이었다. 채석장에는 많은 양의 ANFO 폭약도 있었지만 위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따로 공급책이 있었기 때문에 훔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이틀 전 임대 창고에 보관했던 동료들이 구해온 질산암모늄 비료 포대 수십개와 나이트로메테인과 경유를 라이더 렌탈 트럭에 싣고 Geary Lake 주립공원 주차장으로 향해 준비해 둔 드럼통 안에 9개는 질산암모늄과 나이트로메테인, 나머지 드럼통 3개는 경유를 혼합하기 시작했다. 이때 폭발력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트럭 벽면쪽으로 드럼통을 모두 배열시켰다. 폭발의 화염을 증대시키기 위해 아세틸렌 가스통을 트럭에 싣기도 하였으며 훔친 160kg의 광산용 폭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제조한 폭발물의 중량은 드럼통을 포함해 3200kg이 넘었다. 이때 트럭 한쪽으로 하중이 집중되어 이동 중 전복되거나 최소한 기울어진 게 티가 나서 걸릴 수도 있었다.
점화장치는 운전석까지 구멍을 뚫어 폭죽에 쓰이는 도화선을 이중으로 비전기식 뇌관에 연결하였고, 광산용 폭약이 먼저 폭발하게 설계하였다.[4] 하나는 5분용, 하나는 3분용으로 제작하였으며, 이때 조수석에 폭발물을 따로 빼놓았는데 점화장치가 문제가 생길경우 권총으로 쏴 자폭할 용도였다.
사건 당일인 1995년 4월 19일 맥베이는 폭약을 실은 트럭을 타고 연방정부청사로 향했는데 웨이코 포위전이 벌어졌던 날짜에 테러를 일으키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오전 8시 57분, 운전석에 연결해둔 점화장치에 불을 붙였으며, 이후 두번째 점화장치를 작동시켰다. 오전 9시 1분에 연방정부청사 앞에 트럭을 주차시켰고, 멕베이는 걸어서 현장을 빠져나갔다.[5] 오전 9시 2분 도화선이 다 타들어가자 연결된 160kg의 광산용 폭약이 폭발하며, 연쇄적으로 대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일본에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만에 일어난 사건이라 세계는 또 다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2. 피해
폭발의 위력은 매우 강해서 폭발한 자리에는 폭 9m, 깊이 2m의 구덩이가 파였고 수 km 떨어진 곳의 지진계에서도 리히터 규모 3.0의 지진이 감지될 정도였다. 폭발로 일어난 충격파가 연방정부청사 유리창을 전부 날려 버렸고 건물의 3분의 1이 붕괴되었다. 반경 16블록 내에 있던 건물들이 폭발의 위력으로 파괴되거나 유리창이 깨졌다. 폭발 위력은 TNT 2,300kg을 터트린 것과 비슷했다고 한다. 차량 80대가 폭발로 불에 타면서 2차 폭발이 일어나 피해가 더 커졌다.인명 피해도 상당해서 168명이 사망하고 68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중 99명이 연방 건물 직원이었고 연방청사 내에는 탁아소도 있었기 때문에 19명의 어린이 희생자도 나왔다. 맥베이는 체포된 뒤에 테러 당시 폭발 지점 인근에 보육시설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증언했으나, 한편으로 웨이코 포위전 당시에도 여자와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해서 크게 비판받았다. FBI는 그가 당시 범행장소 근처에 보육시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무시하고 테러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작은 미스터리가 있는데 공식적인 사망자는 168명이지만 조사를 진행하던 중 추가로 다리 한 구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다리는 기존 사망자들 중 누구의 DNA와도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 없는 169번째 사망자거나 이미 다리 없이 묻어 버린 8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의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폭발 후 소방관이 부상을 입은 베일리 올먼(Baylee Almon, 1994.04.18~1995.04.19)이라는 아기를 안아 든 사진이 유명한데 1996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6] 사진 속의 아기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이송된 직후 사망했다고 한다. 게다가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아기가 이제 갓 돌에서 하루 지난 어린아이였다는 점이다.
테러 전 니콜스와 맥베이는 이 폭발로 사망하는 소방관이나 여타 공무원을 스타워즈의 스톰 트루퍼에 빗대어 악의 제국에 충성했으니 그들에게도 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 바 있다.
3. 처벌
대형 참사를 일으킨 맥베이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체포되었는데 주 경찰이 고속도로를 순찰하다가 번호판이 없는 차를 보고 차를 돌려 세워서 검문하는 도중에 주위에서 불법 무기를 발견하여 체포하였다.맥베이는 군 출신인데도 전혀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당했는데 "연방정부는 악이지만 주정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극단적인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7] 덕분에 처음 체포한 경찰들은 맥베이가 폭탄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고 청사에 마약 단속국 사무실이 있었던 점을 근거로 마약 단속에 대한 보복이나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후속 테러 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곧 그가 테러의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후 테리 니콜스와 마이클 포티어 역시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맥베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는 토머스 제퍼슨의 유명한 문구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 한다(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가 인쇄되어 있었고 재판 과정에서도 맥베이는 본인의 행위가 미국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법정이 내린 결론은 맥베이와 그 일당은 '자신의 비뚤어진 신념에 빠져 무고한 사람 수백 명을 죽고 다치게 한 전형적인 테러리스트'라는 것이었다.
맥베이의 사형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아버지 윌리엄 맥베이(맨 왼쪽)와 여동생 제니퍼 맥베이[8]가 참관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법원은 1997년에서 1998년에 걸쳐 주범이자 테러 실행자인 맥베이에게는 약물주사형 형식의 사형, 공범이자 테러 모의 및 준비에만 가담한 니콜스에게는 희생자 한 명당 1회로 총 168회 종신형을 중복 선고[9], 역시 비슷한 범죄를 지었으나 죄를 인정하고 법정에서 증언을 한 포티어는 법정에서 협력한 점을 고려하면서도 죄질이 나쁜 점을 들어 징역 12년과 당국에 미리 테러를 경고하지 않은 점을 들어 7만 5천 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포티어의 부인 로리는 맥베이가 트럭을 빌리는 데 필요한 위조면허증을 만드는 데 협조하였는데 포티어가 자신의 형감면과 부인의 무죄감면을 대가로 증언에 협력하였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2001년 6월 11일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폐쇄회로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주범 맥베이의 사형이 집행되었다.[10] 니콜스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 사형은 비록 참관인이 희생자들의 유족들로 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1936년 이후 65년 만에 처음 집행된 공개처형이었고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38년 만에 처음 집행된 사형이었기 때문에 논란이 일었으며 일반적인 사형 집행 관행과 달리 이례적으로 1심 선고 4년 만에 아주 신속하게 이뤄진 점도 논란이 되었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맥베이가 사형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테러를 저지르고 순순히 체포되기까지 한 점 등을 들어 사형제도가 정말 사형이 마땅하다고 인정될 만큼 죄질이 나쁘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범죄 예방 효과가 없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로 맥베이가 사형을 당하던 날 연방 교도소 사형장 밖에서는 사형 집행을 환영하는 집회와 규탄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리기도 했다.
멕베이는 사형 확정 후에도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없었고 사형 집행 직전에야 테러 당시 사망한 유아나 일반인 등 무고한 죽음에 대해서 유감의 표현을 남기기는 했으나 본질적인 책임은 연방정부에 있고 연방정부가 악이라는 주장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았으며 이를 보여주듯이 사형 집행 전 유서로 '나는 내 운명의 주인(I am the master of my fate)'라는 구절로 유명한 윌리엄 헨리의 시 '인빅투스(Invictus)'를 써서 남겼다.
4. 이후
이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연방청사에 대한 경비 강화와 건물 설계 변경 등을 지시했다. 이 대처로 비슷한 테러 시도가 수 차례 있었지만 전부 저지당했다.테러를 당한 연방정부청사는 철거되었으며 해당 부지에는 추모공원이 생겼고 지금도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사건은 한동안 득세하던 미국 극우 및 백인 우월주의, 반연방주의 진영이 크게 비판받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테러는 단순히 티모시 맥베이 한 개인의 범죄가 아닌 미국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성장한 극단주의 세력을 간과한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고 9.11 테러[11]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세력이 크게 위축되어 있었으며 이후에도 이 테러 이전의 위세를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간혹 잊을 만하면 일부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인종주의 증오 범죄 혹은 반연방 테러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테러리스트' 하면 ' 아랍인'만을 연상하던 미국인에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미국을 위해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훈장을 받은 백인'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남겼고 후에 집필된 맥베이의 평전 역시 <미국인 테러리스트[1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한편 R&B 그룹 컬러 미 배드는 이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Remember when>이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맥베이는 사형 집행 전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유나바머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우편폭탄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를 만나 친분을 쌓은 바 있다고 한다. 카진스키는 맥베이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글로 쓰기도 했다. # 카진스키는 맥베이가 머리 좋고 사교적인 청년이었고 인종 차별적인 면모는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 인종과 문화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맥베이가 저지른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대중에게 민병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평했지만 이는 신빙성이 낮다. 그 이유는 실제 티모시 맥베이는 미군 복무 시절부터 "화이트 파워" 라는 백인 우월주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사 입고 다닌 데다 유색인종 상관에 대한 명령 불복종과 인종 차별 표현 사용으로 징계를 먹기도 하는 등 군복무 시절부터 인종 차별적인 행태를 보였다. 자기랑 똑같이 무고한 사람이나 테러로 죽이는 테러리스트 범죄자 동족이라고 쉴드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Grand Theft Auto IV의 스토리 미션 중 하나인 Rigged to Blow(폭파 장치)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5. 테러범들의 근황
테리 니콜스[13]
니콜스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14]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엄중한 감시 하에 20년 넘게 복역 중이며 포티어는 수사당국과 사법부에 적극 협력한 점이 인정되어[15] 원래 선고받은 12년형에서 감면된 7년 반만인 2006년 1월 20일에 출소하였는데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현재는 새로운 신분을 받고 사법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어 더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하다.[16]
한편 위키백과에 서술된 니콜스의 근황에 의하면 그는 지금도 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꾸준히 재심 청구를 하고 있는데 2005년에 테러와 관련해 맥베이를 적극적으로 도운 제3의 인물이 있다는 주장을 하며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으나 증거가 없어 기각당한 바 있으며, 이후에도 맥베이와 관련해 잊을 만하면 그럴듯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주장을 늘어놓으며[17] 재심을 청구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테리 니콜스의 친아들 조슈아 니콜스(Joshua Isaac Nichols)[18]가 강도, 절도 등의 혐의로 당국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조슈아는 이전에도 마약 등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조슈아의 여자친구 네이딘은 "오클라호마 테러가 일어났을 때 조슈아는 12살이었는데, 사건 직후 조슈아 역시 FBI 조사로 인해 상당 기간 학교에 결석해야 했으며, 학교로 돌아간 뒤에도 아버지가 한 일 때문에 학교에서 'bomber'라는 별명으로 놀림당했으며 급우들에게 얻어 맞기도 했다. 도저히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이 조슈아의 인생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라며 안타까워했다. 링크
2024년 한 주간지에 테리 니콜스가 죽었다는 소문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링크 기사의 결론은 "죽었다는 공식적인 이야기는 없으니 살아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구글에서도 "terry nichols still alive", "terry nichols 2023" 등의 검색어가 자동완성되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대중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맥베이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으니 자연스레 생존한 가해자인 니콜스에게로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2020년경 테리 니콜스에게 편지를 보내 받은 답장들이 경매에 올라오기도 하였다. 링크 이를 통해 니콜스가 비록 미국에서 가장 삼엄하다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지만 서신 교환은 어느정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맥베이의 아버지 윌리엄 빌 맥베이는 맥베이가 처형된 이후로도 가끔 언론에 모습을 비췄는데 2015년, 2020년에 버펄로 뉴스라는 주간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19] 이 사건으로 딸을 잃은 버드 웰치라는 희생자 아버지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2020년 Grace from the rubble이란 책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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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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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colcolor=#000> 사망 | 사건명 |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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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 ||
2022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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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 ||
202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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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
2022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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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
2021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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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19년 9월 2일34 컨셉션호 화재 2019년 8월 3일23 2018년 10월 6일20 쇼하리 리무진 충돌사고 2018년 1월 9일23 몬테시토 산사태 2017년 11월 5일27 텍사스 제일 침례교회 총기 난사 사건 2017년 10월 1일61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2016년 12월 2일36 고스트 쉽 창고 화재 2016년 6월 12일50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2015년 10월 1일33 엘 파로호 침몰사고 2014년 3월 22일43 오소 산사태 2012년 12월 14일28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2010년 4월 5일29 어퍼 빅 브랜치 탄광 폭발사고
- [ 200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09년 2월 12일50 콜간 항공 3407편 추락 사고 2008년 9월 12일25 채스워스 열차 충돌 사고 2007년 4월 16일32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2006년 8월 27일49 컴에어 5191편 추락 사고 2005년 12월 19일20 초크 오션항공 101편 추락 사고 2005년 10월 2일20 이선 앨런호 침몰 사고 2005년 9월 23일24 텍사스 요양원 버스 화재 2005년 9월 1일45 허리케인 카트리나 집단 안락사 사건 2005년 1월 26일31 미 해병대 CH-53E기 추락 사고 2003년 2월 20일100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 2003년 2월 17일21 E2 나이트클럽 압사 사고 2003년 1월 8일21 에어 미드웨스트 5481편 추락 사고 2001년 11월 12일265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11일2,996 9.11 테러 2000년 10월 31일84 24 싱가포르항공 006편 이륙 사고 2000년 1월 31일88 알래스카 항공 261편 추락 사고
- [ 199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217 100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1999년 5월 9일23 뉴올리언스 버스 사고 1998년 9월 2일229 110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1998년 8월 7일224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1997년 8월 6일228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1997년 3월 26일39 헤븐즈 게이트 집단 자살 사건 1997년 1월 9일29 컴에어 3272편 추락 사고 1996년 11월 21일33 푸에르토리코 가스 폭발 사고 1996년 7월 17일23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1996년 5월 11일110 밸류젯 592편 추락 사고 1996년 4월 3일35 미 공군 CT-43 추락 사고 1995년 12월 20일159 아메리칸 항공 965편 추락 사고 1995년 9월 22일24 알래스카 보잉 E-3 추락 사고 1995년 4월 19일168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1994년 10월 31일68 아메리칸 이글 4184편 추락 사고 1994년 9월 8일132 US에어 427편 추락 사고 1994년 7월 2일37 US에어 1016편 추락 사고 1994년 3월 23일24 그린 램프 참사 1993년 9월 22일47 빅 바유 캐넛 탈선 사고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86 웨이코 포위전 1992년 3월 22일27 US에어 405편 추락 사고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25 오클랜드 대화재 1991년 10월 16일24 루비스 카페테리아 총기난사 사건 1991년 9월 3일25 햄릿 닭고기 가공 공장 화재 1991년 4월 5일23 애틀랜틱 사우스웨스트 항공 2311편 추락 사고 1991년 3월 3일25 유나이티드 항공 585편 추락 사고 1991년 2월 1일35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지상충돌 사고 1990년 3월 25일87 해피랜드 나이트클럽 화재 1990년 1월 25일73 아비앙카 항공 052편 추락 사고
-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89년 10월 23일23 필립스 정유 회사 폭발 사고 1989년 9월 21일21 알톤 버스 추락사고 1989년 7월 19일111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착륙 사고 1989년 4월 17일47 아이오와급 전함 주포 폭발사고 1989년 2월 8일144 인디팬던트 에어 1851편 추락 사고 1988년 12월 21일270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1988년 5월 14일27 캐롤튼 버스 충돌 사고 1987년 12월 7일43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 1771편 추락 사고 1987년 11월 15일28 컨티넨탈 항공 1713편 추락 사고 1987년 8월 16일156 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추락 사고 1987년 5월 17일37 USS 스타크 피격 사건 1987년 4월 23일28 람비안스 플라자 붕괴사고 1986년 12월 31일97 듀폰트 플라자 방화 사건 1986년 9월 5일20 팬 아메리칸 항공 73편 납치 사건 1986년 8월 31일82 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86년 6월 18일25 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1986년 5월 30일21 캘리포니아 워커 버스 사고 1985년 12월 12일256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1985년 9월 6일31 Midwest Express 105편 추락 사고 1985년 8월 2일137 델타항공 191편 추락 사고 1985년 6월 25일21 오클라호마 폭죽공장 폭발 사고 1985년 1월 21일70 갤럭시 항공 203편 추락 사고 1985년 1월 1일29 이스턴 항공 980편 추락 사고 1984년 12월 19일27 윌버그 탄광 화재 사고 1984년 9월 20일24 1984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84년 7월 18일21 샌 이시드로 맥도날드 총기난사 사건 1983년 10월 23일307 베이루트 미군 숙소 테러 1983년 9월 1일269 62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6월 2일23 에어캐나다 797편 화재 사고 1983년 4월 18일64 1983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83년 2월 10일31 SS Marine Electric 침몰 사고 1982년 9월 11일46 만하임 미 육군 CH-47c 추락 사고 1982년 9월 4일25 Dorothy Mae Apartment-Hotel 방화 사건 1982년 7월 9일153 팬 아메리칸 항공 759편 추락 사고 1982년 1월 13일78 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 사고 1981년 7월 17일114 하얏트 리젠시 호텔 고가 통로 붕괴 사고 1981년 1월 9일29 뉴저지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80년 12월 4일26 스토퍼스 인 호텔 화재 1980년 11월 21일85 MGM 그랜드 호텔 화재 1980년 9월 12일34 Florida Commuter Airlines 65편 추락 사고 1980년 7월 27일23 브래들리 인 요양원 화재 1980년 6월 5일20 아칸소 재스퍼 버스 사고 1980년 5월 9일35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붕괴사고 1980년 3월 14일87 28 LOT 007편 추락사고 1980년 1월 28일23 USCGC 블랙손 침몰 사고
-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79년 11월 28일257 22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1979년 5월 25일273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1979년 4월 3일25 스르라우한 웨이사이드 요양원 화재 1978년 11월 18일918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1978년 9월 25일144 샌디에이고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8년 4월 27일51 윌로우 아일랜드 참사 1978년 1월 28일20 코트스 하우스 호텔 화재 사고 1977년 12월 13일29 Air Indiana 216편 추락 사고 1977년 11월 6일39 켈리 반스 댐 붕괴사고 1977년 7월 19일40 로럴 런 댐 붕괴 사고 1977년 6월 26일42 모리 카운티 교도소 화재 사고 1977년 5월 28일165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 화재 1977년 3월 27일583 테네리페 참사 1976년 10월 24일25 푸에르토리코인 사교 클럽 화재 1976년 10월 20일78 MV 조지 프린스호 침몰 사고 1976년 6월 4일46 에어 마닐라 항공 702편 추락 사고 1976년 5월 21일29 유바 시티 버스 추락사고 1976년 4월 27일37 아메리칸 항공 625편 추락 사고 1976년 3월 9일, 3월 11일26 스코샤 탄광 폭발 사고 1976년 1월 30일23 윈크레스트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76년 1월 10일20 패스파인더 호텔 폭발 사고 1975년 11월 10일29 에드먼드 피츠제럴드호 침몰 사고 1975년 6월 24일113 이스턴 항공 66편 추락 사고 1974년 12월 1일92 트랜스 월드 항공 514편 추락 사고 1974년 9월 11일72 이스턴 항공 212편 추락 사고 1974년 9월 8일88 트랜스 월드 항공 841편 폭파 사건 1974년 6월 30일24 걸리버즈 나이트클럽 방화 사건 1974년 4월 22일107 팬 아메리칸 항공 812편 추락 사고 1974년 4월 4일72 서던 에어웨이즈 242편 추락 사고 1974년 3월 3일346 25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12월 17일34 1973년 로마 공항 습격·납치 사건 1973년 8월 28일24 휴에바 미 공군 C-141 추락 사고 1973년 7월 31일88 델타 항공 723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3일38 오자 에어 809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2일78 팬 아메리칸 항공 816편 추락 사고 1973년 6월 24일32 업스테어 라운지 방화 사건 1973년 3월 22일32 MV Norse Variant 침몰 사고 1973년 2월 10일40 스태튼 아일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72년 12월 29일101 이스턴 항공 401편 추락사고 1972년 12월 8일45 유나이티드 항공 553편 추락사고 1972년 10월 30일45 1972년 시카고 열차 추돌사고 1972년 9월 24일22 새크라멘토 캐나디어 세이버 추락 사고 1972년 6월 9일238 Canyon Lake 댐 붕괴 사고 1972년 5월 2일91 선샤인 광산 화재 1972년 2월 26일125 버팔로 댐 붕괴 사고 1971년 9월 14일111 알래스카 항공 1866편 추락 사고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43 애티카 교도소 폭동 1971년 8월 18일37 페그니츠 미 육군 CH-47 추락 사고 1971년 6월 7일28 Allegheny Airlines 485편 추락 사고 1971년 6월 6일50 휴즈 에어웨스트 706편 공중충돌 사고 1971년 2월 3일29 티오콜 화학공장 폭발 사고 1970년 12월 30일39 Hurricane Creek 탄광 폭발 사고 1970년 12월 20일29 파이어니어 호텔 화재 1970년 11월 27일79 미 공군 C-123K기 추락 사고 1970년 10월 2일31 위치타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비행기 추락사고 1970년 11월 14일75 서던 에어웨이즈 932편 추락 사고 1970년 5월 2일23 ALM 항공 980편 사고 1970년 3월 20일20 오자크 호텔 화재 사고 1970년 1월 10일21 하머 하우스 요양원 화재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49년 11월 29일28 아메리칸 항공 157편 추락 사고 1949년 11월 1일55 알렉산드리아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49년 7월 12일35 스탠다드 에어 항공 897R편 추락 사고 1949년 6월 7일53 스트라토 프레이트 커티스 C-46A 추락 사고 1949년 4월 4일74 성 안토니오 병원 화재 1948년 12월 28일32 에어본 운송 DC-3 실종 사고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26 도노라 스모그 사건 1948년 8월 29일37 노스웨스트 항공 421편 추락 사고 1948년 6월 17일43 유나이티드 항공 624편 추락 사고 1948년 3월 12일30 노스웨스트 항공 4422편 추락 사고 1948년 1월 28일32 로스 가토스 DC-3 추락 사고 1947년 11월 28일20 알프스 미 공군 C-47B 추락 사고 1947년 10월 23일52 유나이티드 항공 608편 추락 사고 1947년 7월 24일27 올드 밴 8번 탄광 폭발 사고 1947년 6월 13일50 펜실베니아 센트럴 항공 410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30일53 이스턴 항공 605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29일43 유나이티드 항공 521편 추락 사고 1947년 4월 16일581 텍사스 시티 폭발 사고 1947년 3월 25일111 센트레일리아 탄광 참사 1946년 12월 7일119 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 1946년 7월 19일25 마운트 톰 B-17 추락 사고 1946년 6월 5일61 라 살레 호텔 화재 1946년 4월 25일45 네퍼빌 철도 참사 1945년 12월 24일21 나일가 요양병원 화재 1945년 11월 1일26 가게나우 미 육군 C-47 추락 사고 1945년 8월 9일34 노스 다코다 미시간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9일372 USS 마운트 후드 폭발 사고 1944년 12월 31일50 배글리 열차 추돌 사고 1944년 10월 20일131 클리블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44년 8월 23일61 프레클톤 항공 참사 1944년 8월 4일47 스톡턴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7월 17일320 시카고 항구 참사 1944년 7월 6일167 하트퍼드 서커스 화재 1944년 5월 21일163 웨스트 로치 참사 1944년 2월 10일24 아메리칸 항공 2편 추락 사고 1944년 1월 6일115 USS 세인트 어거스틴 침몰 사고 1944년 1월 3일138 USS 터너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8일34 USS 로그데이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6일74 레너트 열차 충돌 사고 1943년 9월 7일55 걸프 호텔 화재 1943년 9월 6일79 프랭크 포드 정션 열차 탈선 사고 1943년 8월 30일29 라카와나 열차 추돌 사고 1943년 7월 28일20 아메리칸 항공 63편 사고 1943년 6월 12일42 USS R-12 침몰 사고 1943년 2월 27일75 스미스 탄광 폭발 사고 1943년 1월 31일32 레이크 포레스트 요양원 화재 1942년 11월 28일492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1942년 6월 5일46 졸리엣 탄약 창고 폭발 사고 #!wikibstyle="margin: 0px -10px;" 1942년 2월 18일
203 USS 폴룩스, USS 스럭스톤 침몰 사고 1942년 1월 24일48 USS S-26 침몰 사고 1941년 6월 19일33 USS O-9 침몰 사고 1940년 9월 12일52 허큘리스 화약 공장 폭발 사고 1940년 8월 31일25 로베츠빌 DC-3 추락 사고 1940년 7월 31일43 두들버그 참사 1940년 7월 15일63 손만 탄광 폭발 사고 1940년 4월 23일209 리듬 클럽 화재 1940년 4월 19일31 리틀 폴스 열차 탈선 사고
- [ 193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39년 10월 12일24 샌프란시스코 열차 탈선 사고 1939년 5월 12일26 USS 세일피쉬 침몰 사고 1938년 6월 19일23 조던 고등학교 버스 건널목 사고 1938년 6월 19일47 커스터 강 열차 탈선 사고 1938년 6월 19일45 레드 자켓 광산 폭발 사고 1938년 5월 16일34 터미널 호텔 화재 1937년 5월 6일36 힌덴부르크 참사 1937년 3월 18일295+ 뉴 런던 학교 폭발 사고 1936년 1월 12일34 SS 아이오와호 침몰 사고 1934년 12월 11일34 켄 호텔 화재 1934년 9월 8일137 모로 캐슬호 화재 1934년 7월 22일21 뉴욕 오싱 버스 사고 1934년 3월 24일22 린치버그 빌딩 화재 1933년 4월 3일73 USS 아크론 추락사고 1933년 10월 3일 ~ 10월 4일29 그리피스 공원 화재 1932년 9월 9일72 옵저베이션호 폭발사고 1932년 12월 24일54 모웨아쿠아 탄광 폭발사고 1931년 7월 25일31 리틀 시스터즈 보육원 화재 1930년 11월 5일82 밀필드 탄광 참사 1930년 4월 21일322 오하이오 교도소 화재
- [ 192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29년 10월 22일52 SS 밀워키 침몰 사고 1929년 9월 9일25 SS 안다스테 침몰 사고 1929년 8월 29일77 SS 산 후안 침몰 사고 1929년 4월 21일123 클리블랜드 클리닉 화재 1928년 11월 10일111 SS 베스트리스 침몰 사고 1928년 11월 8일20 프레블 박스 토 회사 폭발사고 1929년 8월 20일22 스터디 클럽 화재 1928년 5월 19일195 매터 광산 참사 1928년 4월 13일38 웨스트 플레인스 댄스홀 폭발 사고 1928년 3월 12일431+ 세인트 프란시스 댐 붕괴 사고 1927년 12월 17일40 USS S-4 침몰 사고 1927년 11월 14일28 피츠버그 가스 폭발사고 1927년 5월 18일45 배스 학교 폭파 사건 1927년 11월 14일26 SS 파푸스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33 USS S-51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44 픽 윅 클럽 붕괴 사고 1925년 6월 16일47 록포트 열차 탈선사고 1925년 5월 27일53 글렌 광산 참사 1925년 5월 17일77 클리블랜드 학교 화재 1924년 12월 24일36 밥스 학교 화재 1924년 9월 21일26 SS 클리프톤 침몰 사고 1924년 6월 12일48 USS 미시시피 주포 폭발 사고 1924년 5월 31일24 호프 학교 화재 1924년 4월 28일119 벤우드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172 캐슬 게이트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20 닉슨 니트로 공장 폭발사고 1924년 2월 5일41 밀포드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9월 27일30 겐록 열차 탈선 사고 1923년 9월 8일23 혼다 포인트 참사 1923년 2월 8일12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1월 3일35 앨렌 대교 붕괴 사고 1922년 8월 27일47 아르고넛 광산 폭발사고 1922년 2월 21일34 로마 비행선 추락사고 1922년 2월 21일29 슈피리어 시티 침몰 사고 1922년 1월 28일98 니커보커 극장 붕괴사고 1920년 9월 16일40 월스트리트 폭탄 테러
- [ 19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19년 12월 20일23 오나와 열차 탈선 사고 1919년 12월 18일35 J.A 챈슬러 침몰 사고 1919년 6월 5일92 발티모어 탄광 폭발 사고 1919년 1월 15일21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1919년 11월 11일101 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 1918년 10월 12일453 클로켓 화재 1918년 10월 4일100 T.A 길레스피 회사 공장 폭발사고 1918년 7월 9일101 1918년 내슈빌 열차 충돌사고 1918년 7월 5일87 콜럼비아호 침몰 사고 1918년 6월 22일86 해먼드 서커스 열차 충돌사고 1918년 6월 2일52 스플릿 락 폭발사고 1918년 2월 26일30 USS 체로키 침몰 사고 1917년 12월 20일49 셰퍼드빌 열차 탈선사고 1917년 6월 8일168 스페큘레이터 광산 참사 1917년 4월 27일121 해스팅 광산 폭발 사고 1917년 4월 10일139 에디스톤 광산 폭발 사고 1916년 8월 3일24 배런 댐 붕괴 사고 1916년 11월 7일46 서머 스트리트 다리 참사 1916년 8월 29일43 USS 테네시 침몰 사고 1916년 5월 8일2p SS S.R. 커비 침몰사고 1915년 10월 28일21 세인트 존스 학교 화재 1916년 10월 20일25 제임스 B. 콜게이트 침몰 사고 1915년 9월 27일50 아드모레 폭발 사고 1915년 7월 24일848 이스트랜드호 참사 1915년 5월 7일1198 128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5년 3월 25일112 레이랜드 광산 참사 1915년 3월 2일21 USS F-4 침몰 사고 1914년 9월 18일60 프랜시스 H. 레짓 침몰사고 1914년 4월 28일180 에클스 광산 참사 1914년 1월 30일41 SS 먼로 침몰 사고 1913년 12월 24일73 이탈리안홀 참사 1913년 12월 4일28 아르카디아 호텔 화재 1913년 11월 10일25 SS 헨리 B. 스미스 침몰 사고 1913년 10월 22일26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13년 7월 22일31 브링햄턴 공장 화재 1913년 5월 24일39 롱비치 피어 오디토리움 붕괴 사고 1913년 3월 7일33 알룸 샤인 폭발 사고 1913년 2월 28일25 듀이 호텔 화재 1913년 1월 10일26 제임스 T. 스테이플 침몰 사고 1912년 7월 4일39 코닝 열차 탈선 사고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1514 238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1년 12월 9일84 크로스 마운틴 광산 참사 1911년 9월 30일78 오스틴 댐 붕괴 사고 1911년 8월 26일21 캐논스버그 오페라 하우스 압사 사고 1911년 4월 9일128 배너 광산 참사 1911년 3월 25일146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고 1910년 12월 22일24 시카고 가축 판매소 화재 1910년 10월 7일42 보데트 화재 1910년 10월 1일21 로스 앤젤레스 타임즈 폭탄 테러 1910년 9월 8일29 페레 마켓 18 침몰 사고 1910년 10월 5일84 팔로스 광산 폭발사고 1910년 3월 21일52 그린 마운틴 열차 탈선사고 1910년 3월 1일96 웰링턴 눈사태 1910년 2월 6일31 USS 니나 침몰 사고
- [ 1900년대 이전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09년 11월 13일259 체리 광산 참사 1908년 3월 4일173 콜린우드 학교 화재 1908년 1월 13일170 로드 오페라하우스 화재 1907년 12월 19일239 다르 광산 참사 1907년 12월 9일362 모농가 광산 참사 1905년 12월 30일602 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 1905년 3월 20일58 글로버 신발 공장 참사 1904년 8월 7일97 에덴 열차 탈선 사고 1904년 6월 15일965+ 제너럴 슬로컴호 화재 1903년 8월 6일26 듀랑 서커스 열차 추돌사고 1902년 9월 19일115 샤일로 침례교회 압사 사고 1900년 11월 29일21 1900 빅 게임 참사 1900년 7월 4일44 타코마 노면전차 참사 1900년 6월 30일326+ 호보컨 부두 화재 1900년 5월 1일200+ 스코필드 광산 참사 1894년 9월 1일418 힝클리 대화재 1889년 5월 31일2208 존스타운 홍수 1876년 12월 29일92+ 애슈터뷸라 철도 참사 1876년 12월 5일278 브루클린 극장 화재 1871년 7월 30일125 1871년 스태튼섬 참사 1871년 10월 8일 ~ 10일300+ 시카고 대화재 1871년 10월 8일1700+ 페시티고 대화재 1865년 4월 27일1700+ 술타나호 침몰 사고 1860년 9월 7일300+ 레이디 엘진 호 침몰 사고 1860년 1월 10일88 펨버튼 공장 붕괴사고
[1]
폭탄 테러 후 파괴된 연방 정부 건물.
[2]
지금도 미국인 극우 테러리스트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이다.
[3]
NHRA 경기 면허도 없었으며, 해당 경기에는 나이트로메테인으로 구동되는 오토바이도 없었고, 보통 1~5갤런(3.78~ 약 5리터) 정도만 구입하는데 55갤런(약 210리터) 드럼통 3개 분량이나 원하는 점에서 의심을 샀다.
[4]
질산암모늄 폭발물은 일반 뇌관으로 쉽게 폭발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5]
걸어서 이동 중에 폭발이 일어났으며, 혼란한 틈을 타 거리가 떨어진 곳에 미리 준비한 차량을 타고 도주하였다.
[6]
해당 사진의 수상자인 기자 찰스 포터는 "명예롭지만, 파티와 샴페인으로 축하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I'm honored to win, but this is not necessarily the time for parties and celebrations and champagne bottles)라며 소감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7]
사실 미국인들 중에 미국 연방정부가 너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도 심한 사람들은 연방정부를 절대악 그 자체로 본다. 맥베이는 다소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미국인들 중에 자기네 주를 남의 동네인 다른 주들도 포함된 연방보다 우선해서 여기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다. 이런 경향이 강한 지역이 바로
텍사스로,
텍사스 공화국이라는 엄연한 독립 국가로 미국과 별도로 유지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이 다른 주에 비해서도 훨씬 강하다.
[8]
맥베이의 사형이 집행된 2001년에 미국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링크 2023년 기준으류 여전히 교사로 근무 중인 것으로 목격되고 있다.
링크
[9]
테리 니콜스의 어머니 조이스 윌트
#는 테리 니콜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재판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링크 니콜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쉽게 조종당하는(manipulated) 성향이 있어 맥베이에게 쉽게 조종당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맥베이가 니콜스에게 테러를 함께하지 않으면 가족을 해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가해자 어머니의 주장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성수의 어머니 역시 매우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니콜스가 아스퍼거 증후군까지는 아니어도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일종의 'nerd' 성격이었다는 것은 어느정도 맞아 보이는데 니콜스의 고교 동창과 첫번째 부인인 라나 월시 역시 비슷한 증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조이스 윌트는 니콜스의 재판에 거의 빠짐 없이 참석하고 오클라호마 테러의 희생자 가족들 사이에서 가해자 부모로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재판을 경청하는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으며 FBI의 수사에서 절차적으로 위법한 부분을 발견해내기도 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는 이 사건 전에는 FBI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10]
특이하게도 마지막 식사로 2파인트(906ml) 분량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만을 주문했다. 사형 전에
토미 페이지의
Paintings on my mind ,
A shoulder to cry on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1]
공교롭게도 맥베이가 처형된 지 3달 만에 벌어졌다.
[12]
American Terrorist: Timothy McVeigh & The Oklahoma City Bombing
[13]
2004년 사진으로 언론에 찍힌 가장 마지막 사진이다.
[14]
피살자 한 명당 한 건씩 계산하여 총 161회에 걸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지만 사실상 한 번이나 100번이나 죽을 때까지 깨끗한 지옥에 가둬두는 건 동일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으며 감형의 여지도 없다.
[15]
실제로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범죄에 대한 처벌이 엄격한 대신 사법부에 협력하는 등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 제공이나 협상을 한 범인들에게 의외로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곤 한다.
찰스 맨슨이 벌인 연쇄살인행각에 가담한 린다 카사비안은 다른 가담자 3명과 맨슨이 사형을 선고받은 와중에도 아예 기소가 면제되었으며 제러드 크루즈 사건에 가담한 성인 6명도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대로 아동 집단 성폭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범죄에 대한 처벌에 걸맞지 않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미국은
사법거래가 합법이다.
[16]
이 때문에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그의 근황은 출소 이후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타당한 이유가 없지는 않은데 만약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려질 경우 그의 배신으로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 데다 사형까지도 당할 처지인 니콜스가 모종의 수를 쓸 수도 있는 데다(미국 사법부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그를 외부와의 연결이 거의 불가능한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가둬놓은 거지만) 맥베이 일당의 사상에 동조하는 다른 반연방주의자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17]
주로 맥베이의 역할을 강조하거나(이미 죽은 상황이라 반박을 못 하니까) 제3의 공범이 있다고 말하는 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는 주장이다. 받아들여질 경우 형량이 다소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18]
테리 니콜스는 결혼을 두 번 했고 친자녀가 총 3명 있다. 첫번째 부인인 라나 월시는 테리가 부동산 중개업자로 근무했을 때 만났던 여인으로 조슈아는 이 둘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다. 그 후 이혼하여 1990년에 필리핀인 마리페 토레스
사진와 재혼하였고 여기서 두 명의 자식을 낳았다. 마리페와는 한국인 남자들이 동남아 여자와 결혼하는 것과 비슷하게
국제결혼 중개업소를 통해 결혼한 것이라고 한다. 마리페는 오클라호마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맥베이와 알고 지내던 관계였으며, "맥베이와 니콜스와의 관계가 너무 친밀해 자신이 질투심을 느꼈다(jealous). 맥베이가 나와 니콜스와의 관계에서 한걸음 떨어져 주길 바랐다" 며 법정에서 맥베이와 니콜스와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 영어가 서툰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필리핀인 마리페는 오클라호마 테러와는 무관하였지만 어쨌든 테러 당시 니콜스의 공식 부인이었기 때문에 사건 이후 자신도 FBI 조사를 위해 호텔에서 수일간 감금당하며 강도높은 신문을 받았고 사람들의 협박편지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에도 그녀는 수없이 열린 니콜스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다녀야 했는데, 그녀의 증언은 대체로 거짓 없이 중립적이었고 때때로 니콜스에 유리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검찰에 유리한 것들이었다. 니콜스에 대한 원망은 표현하지 않았다. 니콜스의 사형 여부를 결정하는 공판에서 그녀는 추수감사절에 니콜스에게 받은 카드를 들고 나와 "그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라고 증언함으로서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녀는 사건으로부터 약 8년 뒤인 2003년 니콜스와 공식 이혼하였다.
[19]
그는 골프, 볼링, 정원관리 등을 취미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교회와 재향 군인 행사, 지역 소방서, 골프 토너먼트, 빙고 모금 행사에서 자원 봉사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또 자신을 지지하고 도와준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힘든 지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다. "나는 '빌 맥베이입니다' 라고 말하며 재킷을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티모시 맥베이의 아버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네. 그렇습니다' 라고 기꺼이 말합니다. ··· 그것은 단지 일어난 일이고 나는 그것을 숨기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Timothy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그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 중 누구도 알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Tim의 바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