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바이바오산(白宝山, 백보산)[1] |
출생 | 1958년 11월 6일 |
사망 | 1998년 4월[2] |
출생시 |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스징산구 |
신체 | 178cm |
학력 | 초등학교 중퇴 |
범죄 유형 | 절도죄, 강도죄, 연쇄살인 |
사인 | 교수형 |
가족 | 아내, 슬하에 자식이 있음 |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연쇄살인범. 중국 본토 출신으로 강도 행각으로 감옥에 투옥되어 출소 후에 살인을 저질렀다.2. 생애
1958년 중국의 베이징시 스징산구에서 태어난 바이바오산은 한 노동자 가정의 아들이었다. [3]그러나 바이바오산이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결국 바이바오산을 허베이성으로 보내고 재혼했다.[4]
결국 16살 때[5] 학교를 그만두고 장아찌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결국 부모와 같은 길을 걸은 것. 24살 때 결혼하고, 1년 후 자식을 얻었다.
3. 범행
1982년 12월, 바이바오산과 동료는 주거지역에서 10위안 상당의 옷 2벌을 훔치고 건조했다. 이것이 범죄의 시작이었다. 이후 자전거를 훔치고, 자물쇠를 따서 500위안 상당의 물건들을 훔치는 등 절도를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달까, 결국 공안에게 잡혀 절도 혐의로 체포당했다. 이후 강도 및 절도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그러나 교도소 안에서도 그의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교도관 리바오유와 푸커준을 죽인 것이다. 참고로 이 두 사건 당시 모두 바이바오산이 최대 용의자로 의심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체포하지 못했다.
이후 예정보다 1년 빠르게 석방되었고, 그렇게 3년 만에 베이징에 살인마가 돌아온다.
4. 살인극
1996년, 베이징으로 돌아와 소총탄 75발과 권총 50발을 챙겼고, 경찰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경찰들에게 보복하기로 마음을 먹는다.3월 31일에 베이징 스징산구 가오징 화력 발전소에서 철제 막대기로 경찰을 공격해 다치게 하고 총알이 없는 반자동 소총을 훔쳤고, 4월 7일에 시산 8개 부대 근처의 기갑부대 사령부의 전초병에게 두발을 빼았았고, 이후 총을 수집하고 8건의 범죄를 저질렀는데, 5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신장 자치구로 떠나고, 절도범 우쯔밍을 끌어들인다. 이후 군사 주둔지 훈련 센터에 들어가서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도망친다. 이후 다시 한 번 141연대 무기고에 도착해 개 두 마리를 사살하고 총기를 찾지만. 총은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8월 8일 새벽, 우연히 만난 사람을 총살한다. 이후 147연대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 오토바이를 훔치기 위해 농부를 죽이고 인근에 묻었고,[6] 147연대에서 50km 떨어진 149연대장 1대대 경찰 강모 씨의 기숙사에 침입해 강씨와 보안관 시씨를 총살하고 강씨의 5·4식 권총을 빼앗아 오토바이를 타고 재빨리 떠났다.
그 후 그들은 호텔로 숨어들었고, 1997년 8월 19일 아침 크라이 호텔 입구에서 약 140만 위안의 현금을 강탈하여 7명을 죽이고 5명을 부상 입혔다. 우쯔밍은 바이바오산에게 같이 현금을 인출할 것을 요구했고, 그는 결국 우쯔밍을 죽일 결심을 한다.
바이바오산은 이후 범죄를 몇 개 더 저지른 후 우쯔밍에게 신장을 떠나기 전에 창치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우쯔밍은 그를 의심했고, 비밀리에 그의 집 주소를 적어 동생에게 전달했다.
8월 26일, 창치에서 바이바오산은 그의 동료 우쯔밍을 총살하고 망치로 머리를 부수었다. 또한 시체를 태웠다. 이후 그는 창치에서 우루무치를 지나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1만 위안을 주고 떠났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