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96년 |
함경남도 단천군 | |
사망 | 1933년 9월 |
만주 동녕현 | |
이명 | 강포해(姜捕海)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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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진해는 1896년경 함경남도 단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3.1 운동에 참여했고, 1926년에는 정의부(正義府)에 가담해 서란총관(舒蘭總管)으로 활동했다. 또한 1930년 7월 신숙, 지청천, 황학수 등이 조직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가입했고, 1931년 11월 일제의 만주사변에 맞서기 위해 조직된 한국독립군에서 별동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지청천, 조경한 등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웠고, 동경성, 대전자령 전투 등에 참전했다.1932년, 강진해는 오상현 사하자에서 열린 한국독립당 중앙대회의 결의에 따라 심만호(沈萬浩)· 공진원(公鎭遠) 등과 함께 영안현에 파견되어 중국 구국군(救國軍) 총사령 왕덕림(王德林)과의 합작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해 7월경 구국군이 일본군에게 크게 패한 뒤 왕덕림과 부사령관 공헌영(孔憲榮)이 중국국민정부에 구원을 청하러 가버렸기에 그들과 연락할 수 없었다. 다만 그 대리로 총사령 서리 제1사단장 오의성(吳義成)과 제14사장(師長) 채세영(蔡世榮) 등이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1933년 1월 13일 오의성이 안도현으로 출장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한국 독립군은 합작 계획을 미뤄야 했다. 다만 잠정적으로 구국군과 연합 전선을 추구했다. 그러나 강진해는 1933년 9월 동녕현 전투에서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진해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