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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 일가
2.1. 주인공의 사업체 관련 인물
3. 주식회사 승경도4. 조선
4.1. 왕실4.2. 노론
4.2.1. 춘당
4.3. 소론4.4. 남인4.5. 무관4.6. 기타
5. 일본6. 유구7. 중국
7.1. 7.2. 촉진(蜀秦)7.3. 오명(吳明)7.4. 태평천국
8. 준가르9. 네덜란드10. 러시아11. 영국12. 프랑스13. 미국14. 합스부르크 제국15. 프로이센

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소설 탐관오리가 상태창을 숨김의 등장인물을 정리한 문서.

2. 주인공 일가

2.1. 주인공의 사업체 관련 인물

3. 주식회사 승경도

주인공을 김운행에 빙의시킨 초자연적인 집단. 주식회사 승경도라는 것은 주인공이 부르는 가칭이며 작중에서는 '회사'라고만 불린다. '구독자'나 '유튜브'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은 이들을 마치 성좌물처럼 어떤 초월자들을 위한 유흥거리를 제공하는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조선

주인공의 개혁으로 엄청난 변혁과 성장을 이룩했다. 해방별대와 평시선덕관 도입 시작으로 사방의 무역선을 습격하고 물자를 빨아들여 기술, 경제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장부상으로는 6만이 넘는 번진을 해체해 한양과 북방군 외에는 동원할 군사가 없어보이지만, 실제론 해역 수호를 의무삼은 해방별대가 각자 수만에 달하는 정병을 보유하게 되었다. 게다가 군대 운영을 예전처럼 주먹구구식 자력갱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장단이 행정을 맡고 평선관들이 물자를 공급하는 식으로 체계화하여, 권신 중의 권신인 김운행조차 반란이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즉 겉보기에는 약해진 것 같지만 질적으론 이전과 급이 다르게 강력해진 것. 1765년 마침내 북벌을 개시. 청군 80,000여명을 격파하고(건륭제의 친위군만 55,000명, 그 직전에 함경도를 공격한 팔기만 18,000명.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여러번 싸웠다.) 만주를 차지하고 청주 건륭제를 생포해 자결하게 만든다.

1773년. 회맹대전으로 청나라, 준가르, 촉진을 차례대로 격파하면서 조선이 가장 강력한 패자임을 천하에 확고히 알리고, 전쟁을 끝냈다. 최후의 판도는 서쪽으론 산해관까지 손에 넣어 요동+요서까지 손에 넣은 걸로 보인다.

4.1. 왕실


파일:곤해포.png
1차 표지 이미지에서 배경을 맡았는데 곤룡포에 용이 아니라 흉참한 갑각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흉참한 갑각류 드립은 작중에서도 영조를 까는 주요 밈으로 활용된다.

4.2. 노론

4.2.1. 춘당

春黨. 젊은이들의 당, 혹은 김춘식의 당. 김운행의 장동 김씨 인맥과 김운행이 골라 뽑은 강남대성 수강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운행 본인이 노론인데다 주요 인물들도 노론계가 많은 지라 일단은 노론으로 분류되나, 소론, 남인 심지어 무관까지 포진된 빅 텐트 진영으로 작중 공인 어떠한 사상적 공감대도 없이 모인 잡탕이다. 영조도 탕평이라는 대의에 따라주는지라 이쪽에 딱히 트집은 잡지 않느라 이들의 성장을 방관했고, 이훤의 즉위 이후에는 사실상의 여당으로 기능한다.

4.3. 소론

작중 노론에게 밀리고는 있지만 조정을 양분하는 당. 주인공 김운행은 노론인지라 그닥 사이가 좋지 못하다. 그러면서도 이권을 나눠먹기 위해 합심해야 할 때는 다 같은 서인이 될 때도 있다.

4.4. 남인

작중 거의 사멸한 상태로 제대로 관로에 올라 있는 인물은 체재공 뿐이다. 안정복, 이익 등은 시골에서 살고 있다. 다만 영조의 탕평책 지침 탓에 조정에서 언제든 약간의 발언권은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한다. 안정복이나 이익도 적당히 괜찮은 성적만 내면 과거에 붙었을 것이라고. 김운행의 춘당 결성에 큰 영향을 준 세력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건 아니지만, 이 시기 붕당은 이미 학풍과는 상관없이 피를 피로 씻는 원한으로 복잡하게 엮인 터라, 김운행이 남인과 타협할 수 있는 신진 정치세력의 포지션을 잡는 걸 목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소론이 힘을 합쳐서 저지른 평양 부동산 시세 조작에 거하게 휘말려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어떻게든 활로를 찾기 위해 적잖은 남인 준재들이 평양, 혹은 그보다 더 위 만주 쪽으로 이주한다. 김운행의 관제 개혁이 통과되면서 새로이 중하관 자리가 엄청나게 생겼고, 벼슬길이 아예 막힌 과거보단 낫기 때문에 김운행과 손을 잡게 된다.

이훤이 왕위에 오르고 1차 북벌까지 성공하며 조선의 경제와 기술, 문화가 빠르게 성장하는 와중에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부품으로 기능하면서 남인들의 입지가 전반적으로 원 역사보다 훨씬 튼튼하다. 때문에 의외로 김운행이 주도하는 정국에서 각 당파별로 협치가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조선인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삼종혈맥의 수호와 북벌이라는 공동 목표가 있는 데다, 중화는 죽었고 예약은 오직 조선에 있다는 사대부의 자부심, 노론이 다 해먹지 않고 모두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55] 김운행이 판을 짠 이유도 있다.

4.5. 무관

4.6. 기타

5. 일본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과 마찬가지로 내부 정쟁 외에는 150년에 달하는 장기간 대규모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의 일본. 덕분에 군사적 사정도 과거의 조선과 다르지 않아서, 몽골군 수천에게 막부군 수만명이 격파당하거나, 소집령을 내려도 장부상 병력의 반의 반도 모이지 않는 등 병림픽을 벌이다가 규슈의 태반이 초토화당하고서야 영국군을 끌어들이게 된다.

영국군의 지원과 청의 혼란으로 몽골군은 격퇴하나, 이후엔 비어버린 규슈의 이권을 두고 다누마 일파와 다른 세력간의 경쟁이 붙는다. 마침 북벌을 시작한 조선은 다누마에게 이를 빌미로 식량을 수입한다. 북벌 전쟁 이후 조선을 동아시아권 패자로 인정하는 대신에 후명과의 무역로 복구에 도움을 달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대조선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독점하던 대마도 후추 번의 반발을 불러와 다시 분열의 조짐이 인다.

6. 유구

사쓰마에게 착취당하던 상황이었으나, 근래 해방별대가 점차 노출되는 것을 숨겨야 했던 김운행이 청나라 조정에 유구-사쓰마에 대한 정보를 제공. 자신이 십수년간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열받은 건륭제가 양광총독 이시요에게 명령해 항주의 모든 전선이 남하해 유구를 해방시키고, 곧이어 몽골팔기가 사쓰마 본진인 규슈마저 무너뜨리면서 자유를 찾는다.

이후 청나라조차 분열하자 조선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대부분의 설탕을 조선에 수출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이 생포한 수만 단위의 영국군 포로들올 노비로 사들여 각지 호족들에게 분배하고, 군선을 사는 등 해양 요새국가화를 진행한다.

의외로 이 노비제가 유구에 잘 맞았는지 곧 엄청난 부를 쌓아올려 유구 국내의 민심도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7. 중국

7.1.

지금 청이 전쟁 중이라고 뒷통수를 치자는 소리는 말도 안 된다. 싸우다 지친 맹수를 잡는다는 비유는 그럴듯하지만, 그것도 맹수 나름이다. 지금의 청은 상처 입고 절뚝거리는 표범이 아니다. 물 먹다가 코를 살짝 물리는 바람에 악어를 짓밟아 핏물로 만들고 있는 아프리카 코끼리에 가깝다.
김운행(3화)
중원을 차지한 대제국. 작중 시점에서 최전성기[75]를 달리고 있는 대제국으로, 주인공 김운행은 아예 이쪽에는 최대한 연관되고 싶지 않아한다. 심지어 현 황제가 주변의 적성국을 죄다 학살한 건륭제인만큼 더더욱. 김운행이 청나라에 가기 전까지는 간접적인 영향 정도밖에 안 받았지만,[76] 나비효과로 인해 받게 된 영향력은 일본이나 유럽보다 더하다.

둘러싼 모든 세력들 중 조선을 제외하고, 러시아, 일본, 준가르, 위구르, 몽골(일부)와 수년간의 전쟁 끝에 우세를 점하고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고, 일본 원정도 초기 목적이던 사츠마 토벌은 성공했으며, 네덜란드와 영국의 연이은 해상전도 판정승이나마 거두는 어마무시한 위업을 달성하고 있다.[77] 그러나 준가르-티베트는 막대한 사상자를 본 끝에 하나로 뭉쳐 반청 세력으로 다져졌고, 영국은 청에 수십년 빨리 아편을 팔아치우기 시작했으며, 남중국의 한족 상인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4만에 달하는 유럽 연합군, 10만에 달하는 러시아-준가르 연합, 마찬가지로 수만에 달하는 강남 반란군과 백련교 반란으로 소모를 견디지 못하고 만주로 복귀를 천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 모든 사태를 조장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조선과 마지막 일전을 벌인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만주를 탈환하고 제국을 재건해야 할 건륭제가 여기서 패배하고 자결하면서 오히려 근본인 만주를 상실한다. 1777년 판도

이 시점까지만 해도 강남의 해안 인접 성들만 차지한 후명, 아직 천산산맥에서 내려오지도 못한 준가르, 만주를 차지한 조선, 산둥을 차지한 백련교국에게 포위당하긴 했어도, 이웃국 대부분이 대규모 전쟁 여력이 없어서 여전히 중원 최강국이었으나[78] 부찰부항이 사천, 운남, 한중을 차지하고 진을 건국하면서 멸망 위기에 처한다. 진나라가 오명과 전쟁에 들어간 사이 후계자 경쟁을 끝내려 했으나 준가르-내몽골 연합이라는 비상사태로 그쪽에 전력을 기울인다.

조청전쟁이 끝나고 1770년대. 진, 준가르-몽골, 조선이라는 최소 3면 전선이 형성되어 망국의 위기를 맞고 있다. 건륭제의 아들 중 가장 연장자로서 사실상의 황태자인 영성은 동생들을 별다른 지원 없이 전선으로 내몰아 연달아 죽임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나 이 탓에 동서북 모든 전선이 구멍이 나버리고 말았다. 결국 동북 방어선을 박살내고 들어온 조선에 의해 방어군이 괴멸당하고 북경이 점령당하면서 천자국 청나라는 사실상 멸망한다. 이후에는 조선의 괴뢰국이자 완충지대로 남게 되었다. 그나마 몽골제국 판도의 준가르와 삼진을 먹은 진나라 수준의 촉진은 조선에게 굴종하고 내몽골과 장안을 내놓았기에 최소한의 방어선은 확보되었다.

7.2. 촉진(蜀秦)

부찰 부항이 청-영길리 전쟁 후반기에 모집한 30만 대군 중 10만 가량을 데리고 운남성으로 들어가 세운 국가. 본래는 운남을 공격해온 버마 군을 제압하고 직례로 귀환할 예정이었으나... 버마군과 운남성 남방에서 전쟁을 벌이는 사이 요양 전투에서 청군이 괴멸하고 만주를 실함해 건륭제가 사망하자, 그대로 운귀총독 창보와 같이 거병해 제국을 세웠다.

목표는 제국의 부활로 건륭제의 유언인 '가장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 대륙을 다시 통일할 것을 목표로 정복활동을 벌인다. 건국 직후 북상해 사천을 차지하고 아무르사나와 협상해 천산산맥을 내주는 대가로 관중을 별 저항없이 차지하면 옛 진나라의 구도를 만들었다. 이후 중원의 중간다리인 호북, 호남성까지 얻기 위해 오명과 전쟁을 벌인다. 이시요가 괜한 분산 행군을 한 덕에 대승을 거두나 오명과의 근본적인 병력 수 차이와, 전략 목표인 호남의 주도권 차지와 안정화는 실패해 물러난다.

직례에 남은 최후의 팔기 다음으로 많은 만주족 병력을 가지고 있으며 초기에는 이들이 주력이던 탓에 오명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으나,[89] 일반병의 수라면 가장 많은 오명과 팔기의 본진인 청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상 이후에는 강족, 한족, 회족 등의 다민족을 끌어들였다. 물론 전공에 따라 계층을 나누기에 몽골군과 맞먹는 피의 학살을 벌이는 중이라고 한다.

오명과의 전쟁 이후 몽골군과 같이 3만 병력을 이끌고 청을 쳤으며 밀고 밀리는 회전 끝에 조선군이 북경을 차지하는 바람에 급하게 몽골군과 같이 북경에 입성했다. 그러나 구두룡섬에 제압당하고 다시 장안 서쪽으로 물러난다.

7.3. 오명(吳明)

강남에서 일어난 제2 대명제국. 수도는 천주→남경. 기본적으로 명의 후계국을 자청하나 대외적으론 제2 대명이라는 호칭보다는 오명, 남명, 후명 등으로 불린다. 조선에서는 '오명'이라고 불렀기에 항목은 그렇게 작성한다.[95]

장강 이남에서 거병했으나 당시 부찰부항의 10만 대군이 주둔하던 호북과 호남 등의 내륙은 차지하지 못한 탓에 영토가 해안가로 치우쳐 있다. 운남과 대만 등도 각자 진나라와 영국군에 의해 차지하지 못했다. 시작은 강남에서 반란을 준비하던 천지회+기존 신사 계층+유럽 군이 연합해 건국했다. 사실 유럽 연합군이 강남 신사계층을 포섭할 계획으로 만든 누더기 국가라서 그 어떤 명분적 정당성도 없었다.[96] 그러나 조선이 재조지은을 외치며 천주를 공격하고 후명 1대 황제 주피터를 탈환하면서 순식간에 명분에 불이 붙었으며, 양광총독이자 청나라 측 주요 지휘관이던 이시요가 청나라의 책임추궁을 피하기 위해 후명에 붙으면서 어떻게든 그럴 듯 한 국가로 만들어진다.

본래는 어느정도 내부 정비 후에는 산둥성으로 북진하려 했으나, 박지원의 간언으로 남쪽의 대만을 공격해, 교환비 1대100이라는 엄청난 피해에도 기어이 탈환했다. 상처뿐인 승리를 만회하기 위해 호북~호남성을 두고 진나라와 전쟁을 벌인다. 명장 이시요의 지휘 아래 질적으론 좀 불리해도 정면 승부를 벌인다면 괜찮은 싸움을 할 수 있었겠으나, 한창 거만해진 이시요가 상태창이 있어서 가능했던 구두룡섬 작전을 따라했다가 수만명이 분산 격파당하는 참패를 당하고 한동안의 전쟁 동력을 상실한다. 그나마 진나라의 전략목표(호남-호북의 주도권 획득)을 막은 것이 위안.

이에 이시요는 반대파에게 숙청당할 거라는 두려움을 못 이기고, 조선의 지원을 업어서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사실상 후명의 실권자로 군림하게 된다. 그 후에도 계속되는 반조선파의 준동으로 조선과의 관계가 난항이었으나, 김운행의 주도로 조선 해방별대와 연합해 마닐라(필리핀 일대)를 공격하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반 유럽 기조를 확실히 한다.[물론]

그러나 큰 문제가 있었는데, 조선의 회맹이 점차 다가오면서 오명은 천자가 아닌 주나라 포지션에 놓일 것이 강제되어가자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게 된다. 당연히 명나라의 후계국을 자치하는 이들로선 대륙을 정복하고 오명이 아닌 대명으로서 천자국이 되는 걸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 그러나 건국 후 여러 번 전쟁에서 쓴 맛을 본 지라 아차하다간 전방위적 포위를 당하는 게 두려웠기에 자신들의 원수인 영국의 함대를 다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영국의 상황이 엉망진창이라 끝내 실패하고, 아들이 죽고 강남 사람들의 원수인 영국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밝혀져서 이시요는 몰락하고 회맹 대전이 끝나고 중원의 정세도 굳어버리고 만다.

7.4. 태평천국

산둥의 백련교 반란군이 우여곡절 끝에 산둥성을 점거, 인근 성까지 영향력을 확대해 건국한 국가. 수도는 옛 제나라의 수도이자 산동의 도시인 임치.

본래의 백련교 군세는 부찰부항이 이끄는 25만 청군의 진압에 사정없이 밀려 붕괴했으나, 청군을 돕는 척 교도들의 대피를 지원한 조선 덕에 명맥을 유지했고, 후에는 돌아와서 천진 지역에서 몽골-영국군을 격파하는 데 가세했다. 그 후 그대로 산둥성으로 복귀해, 세력을 재건한다.

연이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터라 조선의 지원으로 식량이라도 받는 백련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102] 급격히 세력을 확대한 백련교는 사실상 하나의 나라로 성립된다. 마찬가지로 피폐하나 체급의 차이로 아직 군사적 여력이 있는 남쪽 오명이 백련교를 흡수하려 했으나, 조선의 반대로 대만 전쟁, 대진 전쟁 등을 치르느라 시간을 더욱 벌 수 있었다.

그렇게 1차 전쟁이 끝나고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백련교는 태평천국을 건국한다.[103] 그 후 대조선 동맹을 확고히 하고 조선이 온다면 '정연가도'를 위해 길을 열어줄 것도 약속하나, 이를 눈치챈 청나라 전군의 대공세를 맞는다. 나름 빠르게 국가의 체계를 갖춰가던 태평천국이지만 청나라의 마지막 팔기와 정예군의 공세에 위기에 몰린다.

다행이 조선이 청나라로 진군하면서 산동에 공세를 하던 청군이 빠져나가고, 조선군과 조선에서 복귀한 백련교 연대와 힘을 합쳐 청군을 격파한다. 회맹에서 하남성과 산서성 일부, 오명과의 국경을 청나라로부터 할양받으면서 영토를 크게 넓히고 회맹대전의 또다른 승자가 된다.

8. 준가르

대청 전쟁의 시작을 알린 국가. 원 역사에서 멸족 수준의 비참한 최후를 당한 것에 비해 본 역사에서는 매우 희망찬 전개로 시작했다. 본래 인망이 없는 아무르사나가 조선이 반청 기조를 들며 거병을 준비한다는 허세로 부족을 단합시키고, 이 경험을 토대로 러시아의 후원까지 얻어내며, 티베트 토착민들도 반란에 합세하고, 규슈 대학살에 조바심을 느낀 청군 장수들이 괜한 학살을 더하면서 계속해서 밀리고 밀려도 어떻게든 저항을 이어갔다.

요양 전투에서 청군이 괴멸당하면서 청나라의 붕괴가 확실시되자 마침내 대청 전쟁의 승자가 되어 천산에 복귀한다. 이 후 몽골과 협력해 화북을 향해 진군한다. 고전 끝에 촉진과 손을 잡고 북경에 입성하나, 김운행을 죽이고 후일 중원 제국을 재건할 야망을 품고 일을 터뜨렸다가 오히려 북경 시가전에서 수천 명의 군세를 잃는 대패를 당하고 만다. 결국 내몽골 일부를 완충지대로 토해낸다는 조약에 승인하고 준가르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회맹에 의한 정치적인 상황 탓에 북경으로의 빠른 진군을 멈춘 사이 팔기들이 증원되어 아직 여력이 남은 청과의 전투는 교착상태가 되고, 이로 인해 아무르사나의 질책이 이어지자 상관인 아무르사나에게 황금씨족도 아닌게 대칸행세에 전쟁도 모르면서 설친다며 현피를 뜨자고 분노를 터트리고, 내몽골을 잃을까 우려하던 아무르사나는 그를 함부로 숙청하지 못한다. 이후 김운행 암살작전에 아무르사나의 협박에 맨몸으로 투입되나 분노한 이훤의 청룡도에 목이 떨어져 사망한다.

9. 네덜란드

네덜란드에 대한 설명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면 충분하다.
영국의 선배.
에스파냐에서 싹을 틔운 검은색 악의는 네덜란드가 기른 다음 영국이 꽃피웠다.
황금의 17세기[Dutch Golden Age]는 지났다 하여도 '동인도 제도' 만 따진다면 아직 네덜란드는 전성기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벌일 수많은 만행은 오히려 서문조차 끝나지 않았다.
미래 프랑스 혁명으로 쓴맛을 볼 팔자라는 사실은 네덜란드의 기를 꺾지 못한다. 네덜란드인들은 나폴레옹이 몰락하자마자 부활해 악행을 재개했다.
조직적 학살과 폭력, 한때 네덜란드 국부의 3할을 감당한 계획적 농업 수탈, 독립 협상으로 위장하여 민족 대표를 암살하는 비열한 행태 등등은 끝이 없었다.
벨기에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콩고인의 손목을 썰어댄 게 아니다. 둘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다. 김운행이 항상 주장하듯 근본은 속일 수 없다.

그 역사의 선봉이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인적 자원부터가 화려하다. 본국의 이사진이나 선장, 상관장 정도의 고위 간부를 제외한다면 구성원 대부분이 세상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막장 인생들의 집합이다.

멀쩡한 인간이 왜 고향과 가족 버리고 외계 행성 같은 바다 너머로 떠나겠는가. 부랑자, 범죄자, 빚쟁이, 노름꾼, 폭력배는 VOC가 세계에 자랑하는 인재들이었다.

그러므로 남의 불행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능력 하나는 아주 탁월했다.
103화
포르투갈과 함께 일찍부터 동아시아에 진출하고 기반을 닦은 유럽계 해상세력답게, 작중에서도 처음으로 본격 등장한 유럽인들이다.[115] 원래는 유럽인 전체를 일컫는 말인 홍모적(紅毛賊)[116]이 좁게는 네덜란드인을 일컬을 정도로[117] 유럽인의 대표 이미지를 선점 중이며, 청나라에 아편 유통시킨 범인도 아직은 영국인들이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이다.

그러나 실상은 조선에 가장 많이 호구잡힌 유럽국가로, 빨대 꽂으려다 역으로 VOC 함선들을 나포당하고 선원들이 피랍된다거나, 조선 때문에 데지마 상관이 폐쇄되며 대일 무역이 붕괴된다거나, 지나가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모조리 해방별대(조선군)에 해적질을 당한다거나, 해방별대의 대중국/대일본 해적질에 명의도용을 당하는 등 정말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당한다(...). 게다가 7년전쟁 때문에 본토의 국운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라 조선에 보복도 못하고 있다. 반면 조선은 나포한 네덜란드 함선들을 복제하고 피랍 선원들을 화이정신주입봉(華夷精神注入棒)[118]으로 쥐어짜서 열심히 테크를 올리는 중이다.

10. 러시아

청과 국경을 접한 유일한 유럽국가로,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네르친스크 조약- 캬흐타 조약으로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참고로 청은 러시아 차르를 몽골 놈, 러시아는 청 황제를 타타르 놈으로 취급 중이다(...). 동족혐오? 준가르를 비롯한 중앙 아시아 유목민들을 지원하며 청나라 북쪽 국경을 오랜시간 전쟁터로 만들었으나, 5년이 넘는 전쟁 끝에 실패한다.

그래도 준가르를 보호하면서 중앙 아시아 유목민들을 포섭했고 예카테리나 2세 시대에 다시 남하를 개시한다. 그러나 아무르사나가 청의 붕괴와 승전의 기세로 러시아에게 벗어나려 하고, 폴란드 문제 탓에 아시아에선 전력을 내지 못한다.

11. 영국

영길리국은 조상 대대로 해적도배인데, 홍모적보다 더 사악한 무리들이니 관상만 봐도 알 수 있소.
김운행(175화)
작가 특성상 틈만 나면 블랙코미디로 까인다. 그러나 아직은 동아시아에 별다른 기반이 없는 애기 마족(...)이며, 본토 국운상 슬슬 쇠퇴하는 VOC의 동아시아 무역을 잠식하려고 지켜보는 중이다.

원 역사와는 달리 7년 전쟁의 후반기에 프로이센이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자 그들과 거래한 후에 손을 뺐다. 때문에 종전 이후에도 어느정도 여력과 자부심이 있었으나, 이와는 별개로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위험했는데, 그 때 김운행 나비효과로 대중무역이 봉쇄되자 4만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121] 대청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전쟁은 조선의 암약과 중국의 전력에 의해 공멸했고, 영국은 4만의 병력, 10척의 전열함, 20척의 프리깃이 전부 실종되었다는 악몽 같은 청구서를 돌려받아야 했다. 심지어 대만에서 이 보고서를 올린 동인도 회사도 오명과의 전쟁으로 대만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아시아에 남은 거점이 전부 사라졌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러시아와 협조해 다시 중국 원정을 계획하는 미친 따갚되를 계획하지만, 아메리카에서 워싱턴이 독립거병하면서 일이 복잡해진다. 현재는 오명에서 조선을 견제할 수단으로 다시 불러드리려 하나 상황은 어렵다.

심지어 아메리카 전선이 고착화된 상황에 네팔과 접촉한 몽골, 촉진을 통해서 대 아시아 전쟁의 비참한 패배가 인도에 퍼지게 된다. 이에 뱅골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면서 인도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다시는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누르고[122] 유럽의 강국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나마 넬슨 제독의 활약으로 나폴레옹의 공세를 간신히 막았으나 거지국가가 된 상태라 해상봉쇄나 반 프랑스 전선에는 별 영향을 못 준 모양.

12. 프랑스

7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함께 프로이센과 싸우던 유럽나라. 물론 영국, 프로이센군한테 제대로 당한지라 전선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나 러시아의 역사 개변으로 끝내 승전국으로 남았고, 아메리카 식민지를 비롯해 이득을 얻는다.

이후 영국의 대중 원정에 숟가락을 얹어서 참전했다. 약 1개 대대 정도의 육군을 파병했으나, 천주에서 조선군과 백련교도들의 기습으로 패배하고 황제를 빼앗겨 오명을 건국시킨다. 그렇게 대중 전쟁에서는 발을 빼고 아메리카 독립전쟁에서도 히드라의 편을 들었지만, 생각보다 큰 도움이 안되었다.

미래에는 결국 프랑스 혁명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려 한다.

13. 미국

아직 독립하지 못한 아메리카. 여기서는 미국이 아니라 히드라 공화국이다. 역사 개변으로 독립 시기가 앞당겨졌으며, 워싱턴과 미국인들도 반영 감정이 심해져서 치열한 전쟁 끝에 독립한다.

다만 만주에서 구두룡섬을 본 워싱턴과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후원자이자 동맹이 조선이라고 우겼기에 그 영향에 의해 나라 이름은 히드라 공화국이 된다. 훨씬더 강경한 대영 전쟁으로 인해 인디언들도 상당수 끌어들였고, 심지어 흑인 노예들까지 해방시켜 동참시키려다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블랙팬서 연대를 창설해서 히드라의 숙적이 되어버렸다...

14. 합스부르크 제국

15. 프로이센

중부유럽의 떠오르는 유망주. 원 역사에서는 합스부르크 제국- 프랑스 왕국- 러시아 제국의 3부인 동맹과 7년 전쟁 끝에 승리하는 것으로 이후의 초강대국 독일 제국까지 이어지지만 김운행의 존재라는 나비 효과의 결과로 패망한다.작중 서술에 따르면 브란덴부르크 선거인단은 영업 종료라고.


[1] 작중 김운행의 본성을 처음으로 간파한 인물이 홍세화다. 정작 김운행과 혼사를 꾀하려던 홍대용은 그저 김운행을 전도유망한 인재로만 여겼다. [2]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기가 운행을 먼 발치에서 봤다가 반해서 상사병에 걸렸다고 소문을 냈다. 조선시대의 성관념상 김운행이 사대부 집안 규수를 꼬셨으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나머지 결국 김운행의 아버지조차 어딜 감히 가장을 젖혀 두고 아들놈이 혼자 나서서 색시감을 찾냐고 노발대발할 정도로 기정사실이 되었다. [3] 남편이 정승이 되면 아내인 자신도 왕실 여인을 제외하고 여성으로서 가장 높은 정경부인이 되기 때문. [4] 김운행을 비롯한 주변인, 내레이션의 평가. 건륭제의 시는 탐태창 본편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되듯 물량만 많을 뿐인 악성재고 취급이고, 김운행의 문재(...) 또한 무관조차 삼국지연의 비유를 사용해서 맞춰줄 만큼 악명높다. 적국 군주에 대한 호감만으로 거의 패전에 가까운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해 다 이긴 전쟁을 말아먹은 표트르 3세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5]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게, 책상물림이다가 첫 출전에 저런 위업을 성공시킨 문인이 있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숭배하는 쪽이 정상이기 때문. 북벌 계획을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도 이미 그렇지만, 그 계획을 지휘하며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심하게 터무니없어서 별 인연이 없었던 군부에서부터 열렬히 숭배하는 중이고 조정 문신들도 학식을 걸고 넘어지는 듯 하다가도 김운행이 작정하고 짠 계획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덮어놓고 믿는 상황이다. 오히려 김운행 쪽이 탐태창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무관들의 반박'을 듣고 있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준. [6] 단, 김이환의 이런 면이 다소 불안하다 여기는 독자들 또한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권신의 자식이라고 한들 과거 급제도 못한 청년이 독극물 들고 상왕 앞에서 전횡하는 게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기 때문. 현재 영조가 바지사장이나 다름없다고 한들 상왕 앞에서 저런 짓을 하는 게 현명한 행동은 아니다. 일이라는 건 직위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달렸다는 전근대성(...)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탐태창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과거 급제도 못한 총신의 아들이 왕세자와 친구라는 이유로 저런 짓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 책잡힐 수밖에 없는 탓. 심지어 김운행 또한 그런 점을 알고 있어 아들에게 딱히 별도의 명령이나 직책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기에 더더욱 문제가 되는 점이기도 하다. [7] 문제는 덕분에 폭주의 위험성이 가라앉은 건 좋은데, 이제는 아예 과거 급제를 맡아두기라도 한 듯 아버지에게 자신을 밀어달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쪽은 진지한 문제라기보다 아버지도 장원급제 한 거 보면 그거 다 돈으로 사는 거 아니냐(...) 라는, 합리적인 판단 끝에 나온 결론이긴 하다. 거기에 이후 묘사되는 바에 의하면 상기한 청탁은 단순히 공부머리가 없는 탓도 있는 모양이다. 김운행에 의해 괘씸죄로 강남대성에 처박힌 이후 장원급제가 아닌 단순 급제로 조건을 바꿔줬는데도 여전히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묘사가 있기 때문.반대로 말하면 정공법으로는 과거 급제도 못할 권신 아들이 독초 들고 전횡했다는 뜻이다 [8] 이때 김운행이 아메리카노 맛이나 볼까 하여 꿍쳐둔 커피가루를 아편인 줄 알고 멋대로 가져다 실험하다가 외삼촌 홍대용에게 걸려 뺏기는 바람에 이게 홍대용에 의해 쇼군에 정실부인에게 바쳐져 정력제로 쓰이는 나비효과를 불러와 의도치 않게 에도막부의 후계구도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은 덤이다. [9] 설애라는 이름은 작가의 창작으로, 원역사의 효의왕후는 자나 휘가 알려지지 않았다. 코락스는 그 시대 여자들에게 많이 쓰이던 이름이라 골랐다고 하는데, 독자들은 아무리 봐도 북한의 리설주 김주애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만든 게 아닌가 하고 합리적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내는 중. [10] 물론 강간은 아니고 둘 다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서 저지른 일이다. 김이환은 부모가 모두 미남미녀들이라 매우 수려한 외모를 가졌다. [11] 김설애의 아버지 김시묵은 함부로 외간사내와 정을 통한 딸에게 방에서 계속 근신하라 했는데, 이 틈을 타 계속 밤마다 눈치보지 않고 운우지정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아들을 다시 만난 김운행이 '너(그짓 하느라) 무릎 다 까졌다.'고 슥 찔러보자 바로 화들짝 놀라며 자기를 붙들어 온 어지 탓을 하는 꼴이 꽤 볼만하다. [12] 사실 김운행과 사도세자 사이의 유대가 조금이라도 부족했거나 김시묵 쪽에서 이게 말이 되냐고 딴죽을 걸었다면 정말로 크게 문제삼을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이야 세력도 있고 업적도 세워서 버틸 수 있었겠지만, 만약 좋게좋게 넘어가지 못했더라면 당장 김운행 사후부터 발목이 잡혔을 테니 당연한 일. 실제로 김시묵이 적당히 간만 보려 했을 때부터 세화가 김시묵의 본의를 짚어주고 왕실 쪽에 양념을 쳐 사태가 마무리되고 난 뒤로도 김운행은 아예 벼르고 있었으며, 별 조력도 없이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최전선에 가문의 결합으로 인한 이득이고 뭐고 다 뒷전으로 내던진 다음 김이환을 보내버릴 정도였다. 이 쪽에서도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그렇지 독자들조차 주인공이 저렇게 빡친 건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고, 실제로 김이환은 앞의 나름 감동적인 후계자 인정이 무색하게도 에필로그 시점까지 안동 김문 주인 자리를 확언받지 못했다(...)고 묘사된다.사실 후계자 교체까지 안 가더라도 저 버릇 안 고쳐두면 가문 말아먹을 놈이 가주 되는 꼴이기야 하다 [13] 사실상 선착순인 과거시험 오픈런을 하기 위해 길을 뚫는 탱커 [14] 교룡기가 매우 큰 깃발인지라 이걸 혼자서 들 사람도 거의 없는데 어지는 그 괴력으로 이걸 혼자 들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무기로 써서 싸웠다. [15] 본인의 표현으로는 대포폰(...) [16] 김운행의 표현이다. 흉참한 녀석... [17] 일명 김가대환단. 주재료는 김운행이 내의원이나 대전내관들을 통해 빼돌린 약재 찌꺼기이며, 여기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약재나 재료를 추가해 대충 빚어 만든다. [18] 물론 이 내기도박을 사주하는 것 또한 김운행이다. 아예 돈 필요할 때마다 타짜 원인손을 불러내서 울궈먹는 수준. [19] 실제 강남대성과 달리 성인을 기른다고 '大聖'이다. 실제 강남대성학원은 송파구가 아니라 강남구 서초구에 있다. [20] 2개의 양자가 얽히면 한 쪽의 상태에 다른 쪽이 거리 따위의 요소를 무시하고 즉시 영향을 받는다. 즉 사도세자 따라서 뒤주에 들어가기 싫다는 말(...) [21] 사실은 스쿼트를 비롯한 현대식의 기초적인 신체단련이다. [22] 무려 그 박문수가 대놓고 면박을 주는 어조였다. [23] 이 와중에 김운행은 이것도 안 믿어서 영조가 철퇴질을 하려는 줄 알고 몸수색을 했다. [24] 어차피 한성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버틴다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한성이 발전했다. [25] 당연히 치료행위라기 보다는 이금을 곯리기 위한 목적이 더 큰 처방이지만 정작 이금 본인은 춘식갑을 맞아서 본인이 아직 정정한 줄로 생각한다. [26] 이금에게 허구한 날 귀머거리라고 욕을 듣는 어의 김수규의 경우에는 춘식갑을 놓아줄 때 이금이 전기 오르는 느낌이 싫어서 몸서리치면 쌤통이라고 좋아하지만 원해서 맞을 때에는 떨떠름해 하는 묘사가 있다. [27] 이훤은 북벌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기적에 가까운 일들의 소문이 모두 자기가 직접 목격한 사실이며, 아버지에게 좌우를 모시는 신하들이 진실됨을 경하드린다고 하였다. 다만 이금이 김운행이 너의 적이 되리라고 계속 고집하자, 김운행 보기엔 전쟁에서 팔기병 모가지를 치던 날과 똑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직후 마지막 예의마저 집어던지고 술먹고 집에서 행패부리는 막장에 비유하는 걸 보면 상당히 열 받은 모양. [28] 지금까지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이금에게도 진심어린 애정을 품은 사람이 있었음을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야 드러내는 유언이다. 세상을 오직 도산검림으로만 본 스스로의 신념이 실은 그저 뒤틀린 아집에 불과했고, 결국 자신을 사랑해줬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고통과 슬픔만을 주었음을 인정한 것. [29] 이금이 유언을 남긴 사람은 세 명이다. 홍봉한에게는 '내가 졌군.', 귀머거리 어의 김수규에게는 '예전 일은 미안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종에게 '형님.'. 끝끝내 자신의 길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패배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셋 다 똑바로 듣지 못하였거나 들을 사람이 없는 말이었다. [30] 당시 홍역 증상에 쓰이던 승마갈근탕 약재에 장각의 부적을 태운 재를 표 안나게 섞어 연이를 통해 빈궁 홍씨에게 전달했다. [31] 자세히 곱씹어보면, 임금이자 조부에게 천륜도 모르냐고 면전에서 비판한 셈이다. [32] 화완옹주가 시도한 가스라이팅이 이산에게 효력이 있었던 이유는 본인이 형과 달리 영조의 강압에 굴복해 아버지 이훤을 저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김운행 본인도 이산처럼 형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빗댄 김운행의 말에 자신의 죄책감을 지우고 깊이 설복되었다. [33] 대비가 몸져눕자 주위에서 용하다는 춘식갑을 바치려 했는데 영조가 허황된 물건이라고 막았다.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 없는 전기충격기에 불과하지만 사기를 친 김춘식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지라, 대비 입장에선 아주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름 없었다. [34] 엄밀하게 말하자면 왕좌의 게임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영조는 30년동안 탕평을 구실로 철권을 휘두르며 군림한 덕분에 자기 사람이라 할 인물이 없었고, 반대로 사도세자는 소수지만 생사를 같이 할 홍봉한과 김춘식 패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균형이 크게 깨졌다. [35] 사실 말이 치매지 저 상황에서 왕에 대한 충심이랍시고 저 유조를 부정하는 건 유교국가 조선에서 왕이 세자를 살해하고 대를 끊어버리는 걸 인정하는 일이라 사실상 나라 망하자는 소리나 다름없으니 당연한 일. 치매라고 덮어씌운 게 문제가 아니라, 치매가 아닌데 저런 발언을 하는 게 더 문제다. 실제로 상황이 저기까지 치닫게 된 상황에서 여전히 영조에게 충성을 바친 건 어영부영 따라갔거나 어영부영 왕이니 관성적으로 충성하는 쪽, 나아가서는 미쳐버려 정신에 좀 문제가 생긴 쪽이 전부였다. [36] 2배속 귀양 [37] 3배속 귀양 [38] 14촌으로 명종 때부터 갈라져 내려온다. [39] 실제 조선역사상 최연소 과거 급제는 고종시기에 급제한 이건창으로 만 14세의 나이로 합격했다. 박지원은 그보다 백여 년은 더 전 사람이니 이 소설 기준으로는 최연소가 맞을 것이다. [40] 사절의 신분인데다 뼛속까지 양반이라 박지원 본인은 내가 가져가고 싶으니까 가져가는 건데 문제 있음?이란 식이지 갈취한다는 의식은 전혀 없다(...) [41] 그림 작가가 자그마치 변상벽, 정선이라는 화려한 진용에다 풀컬러다! [42] 적전(藉田)이라고 하는데, 사실 기우제 지내며 퍼포먼스 하는 용도 빼고는 평소엔 신경작법 테스트용으로 자주 쓰여서 홍대용이 관습을 넘어서는 엄청난 기행을 한 것까진 아니다. 자기 관할도 아닌걸 매제 이름 팔아서 한 게 문제지... [43] 그나마 홍대용이 나은 게 김운행이 기함할 정도로 홍삼을 뿌려서 값을 치렀다. [44] 첫 실전인 무관들조차 구두룡섬을 시행한 김운행에게 토를 다는 상황에서 장수도 아닌 홍대용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구두룡섬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서양 신부들에게 왜 나한테는 저런 기술을 안 가르쳐줬느냐, 나도 이거 쓰면 이름 날릴 것이다 운운했던 게 허세가 아니었던 셈. 실제로 홍대용은 귀국 직후 북정기를 통해 치트 스킬 구두룡섬의 원리를 수학적으로 분석 및 해명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미친 능력자라 오히려 김운행의 위업을 정확하게 인식한 듯. [45] "실학자 주제에 실질이 없다.""쉬운 일만(안빈낙도) 하면서 폼 잡는다." 등으로 안정복을 저격했다. [46] 이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명언을 멋대로 비틀어 해석하는 서술이 일품이다. [47] 칭제건원이 이루어지면 김운행의 영혼이 걸린 최종목표인 '영의정'이 승상이나 상국으로 바뀌기 때문에 정말로 심대한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48] 정직한 연금술(?)뿐이 아니라 긴빠이에도 도가 텄다(...) [49] 이 때 주인공이 한 방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는 소위 사이다라 불리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50] 노론에게 전해주면 다음 임금은 노론에게 휘둘리게 된다. 남인이나 소론한테 준다 한들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 [51] 하지만 이것도 하루라도 더 살아서 김운행을 견제하려는 필사적인 의도이다. 이미 원 역사의 수명보다 훨씬 더 살고 있지만 이를 알리 없는 박문수는 오로지 김운행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상태이다. [52] 본인의 임종을 김운행이 지키게 한 것이다. 박문수가 김운행을 자신의 단순한 적대자나 후기지수 정도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국가를 떠받들고 지탱해 왔던 본인의 후계자라 여기고 인정한 것이라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53] 원 역사에서는 임오화변 때 세자 보호를 천명하다가 사사된다. [54] 이를 김운행은 초시공요새라 드립을 치는데, 훈련도감에 대한 서술과 투톱을 이루는 매우 찰진 명문이다. [55] 엄밀하게 말하자면 김운행이 배려를 해준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해먹으려고 붕당을 가리지 않고 기름칠을 하고 딜을 했기 때문이다 [56] 병기나 갑옷 깃발 등 군수품을 제조하는 곳 [57] 긴빠이를 못하게 된 것도 있지만, 원래 역사를 아는 김운행이 조선 군대가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는 상황을 꺼렸다. 영조는 총뿌리를 외적이 아닌 사도세자에게 돌릴 인간이고, 조신들은 효종뽕이 도질 텐데 이 시기 황제는 건륭제 즉 청나라의 최전성기였다. [58] 평시선덕관은 상품작물과 갖가지 특산품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만큼 이런 구분 문제로 인한 싸움이 거셌다. 호박이 과일인가 야채인가, 수달은 생선인가 짐승인가 등. [59] 엄밀히 말하면 서로 같은 혐의로 상대를 날려버리려고 했는데 김운행이 한 수 위였던 탓에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60] 마침 어영청과 분쟁이 일어나 장용영이 왕의 친위대에서 밀려나며 장용영은 영조에 대한 불만을 품은 차였다. [61] 초반에는 한니발의 시야 빨을 본 이훤과 김운행이 기세를 잡긴 했지만, 둘이 돌격해버린 이후 김성응이 홀로 지휘해 4만이 넘는 청군을 격파한 것이 맞다. [62] 시호 또한 원 역사의 효정(孝靖)에서 충정(忠靖)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63] 환갑이 넘은 나이에 검계의 습격을 받았는데 역으로 칼솜씨로 다 내쫓았다는 일화에서 '저 인간은 로보캅이라도 되나. 늙지도 않네.' 라는 의미에서 주인공이 붙여준 별명(...) [64] 평안감사로 발령받았다가 자신의 계략으로 공석이 된 평안병마절도사를 겸직하였다. [65] 초도왕의 시체를 쏜 귀족들의 화살이 오기를 죽이려다 잘못 맞은 것임은 누구나 알겠지만 처벌할 수밖에 없던 것처럼 왕족들을 겁박한 죄목은 의도가 좋더라도 용서할 수 없기에 구선행은 승전해도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 [66] 원래 집에서 키우던 개인 '초복이'와, 북경에서 정교회 사제한테서 강탈해와 각각 '중복', '말복'이라고 이름지어준 맹견 두 마리. 중복이와 말복이는 말이 좋아 맹견이지 발바닥이 사람 손바닥만 하다는 묘사나 원래 역사의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당나귀만한 아라사 개"라고 서술한 부분을 인용한 걸 보면 오브차카 같은 초대형견인 듯. [67] 정6품 무관 벼슬로, 원래는 육군에 있는 보직인데, 국왕 이훤이 직접 나서서 경국대전을 패스하고 해방별대에 꽂아버렸다. 당연히 이렇게 만든 것은 김춘식이다.. [68] 왜란 당시 조선수군은 조정의 지원을 받지 않고 7년 동안 전쟁을 치러냈다... [69] 수빈 박씨의 조부 박사석의 서조카. 촌수가 멀긴 하나 박지원과 동 항렬이라 알음알음 커넥션이 이어져 김운행에게까지 직접 닿을 수 있었다. [70] 삐끗하면 가문 전체의 모가지가 위험한 소금이 백색 담당이다 [71] 김운행은 이걸 '양(陽)의 현현'이라고 부르면서, 이걸 만들면서 음양의 이치를 깨달아야 겐나이가 가지고 있던 수동발전기를 고치는 원리를 배울 수 있다고 사기쳐서 근로의욕을 불어넣는다. [72] 조선엔 검도장 문화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은 아니라고 한다. [73] 사쓰마 번 시마즈 가문과 함께 존재 자체가 소멸된 수준에 조슈 번 또한 일본군의 병참을 담당하느라 재정과 내정이 파탄나버렸다. [74] 그러나 하필 유구 함대를 격퇴한 주인공이 대마도 마쓰마에 번이었기 때문에 막부는 크나큰 약점을 쥐게 되었다. [75] 흔히 청의 최전성기를 강희제-옹정제 시대로 칭하는데, 명군 강희제와 옹정제 시기에 축적된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폭발시킨 것이 바로 건륭제 시기이다. 이후로는 건륭제 말기부터 쌓인 적폐들이 곪아 터지면서 서서히 쇠퇴하게 된다. [76] 조선의 춘화가 일본을 거쳐서 청나라에 퍼진다던가. [77] 물론 이 대부분의 승전은 피로스의 승리라고도 하기 애매한 상처뿐인 영광이다. [78] 후명은 대만원정 실패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고, 조선 역시 요동과 만주에서 1년이나 전쟁을 한 만큼 바로 산해관을 공격하는 건 무리였다. [79] 준가르 문서에서도 나오지만, 준가르도 악랄한 유목 제국의 성격을 유지했기 때문에 주변의 원한을 많이 사기도 했고, 규모는 유목민답게 수십만명 밖에 되지 않아 멸절이 쉬운 편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살아남아 다른 종족에 동화되기도 했고 같은 오이라트의 후예이자 친족 종족인 칼미크인들도 남아 있어 히틀러의 악랄함에 비하기엔 무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청나라가 명군이고 암군이고 할 거 없이 적에 대해서 가차없이 학살을 일삼아서 코락스의 이런 과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80] 실제 역사의 건륭제는 거의 비슷한 표현인 중외공주(中外共主, 만국의 군주), 천하대군(天下大君, 세계의 제왕)라는 중2병 돋는 표현을 실제로 쓰긴 썼다. [81] 실제로 건륭제는 만주 문화를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던 사람인데, 이 가운데 만주어 진흥책도 있었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두었으며 조선 사대부들이 어느 정도 청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나 시험해 볼 작정으로 조선 사신들이 올 때마다 만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당대 조선 사대부들은 반청 사상 때문에 공공연히 만주어를 할 줄 알면 손가락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역관들조차 만주어 실력이 형편 없었기에 건륭제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82] 황자 중 가장 강한 사람이 천자에 올라 조선과 맞서라는 의미였으나, 정작 북경의 아들들은 조선보다는 서북의 준가르를 더 경계하며 버마군과 싸우던 부찰부항을 부르는 등 내분을 일으킨다. 또한 어느 황자를 택하든 토사구팽이 예정되어 있는 부찰부항으로 하여금 '가장 강한 자'라는 유조를 비틀어 해석하도록 하여 그가 진나라를 세워 갈라져 나가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하였다. [83] 만주족이 아닌 이시요 등의 한족관리 등은 제외. [84] 홍염이 겨우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김운행은 이미 조선의 권신이 되어 있었다. 이훤은 세자시절부터 청나라의 야설선진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는데, 이를 모르는 건륭제 입장에선 홍염이 제 역할을 잘 해 조선이 친청으로 돌아선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홍염은 현상황을 최대한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겸사겸사 밀수업으로 계속 돈을 쓸어담으려면 김운행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85] 그 와중에 이대로 자신이 요동 내의 청군을 결집해 복귀한다면 군공과 황제의 유조를 조작해 영염을 황제로 올리고 실세가 될 수 있다고 야망을 꿈꾼다. [86] 몽골족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만주족에게 서열 2위라는 호대우를 받으며 여러 전쟁과 국책사업에 참가했다. 때문에 조선, 강남, 서북 유목민들처럼 단번에 청을 손절할 수가 없었다. [87] 4, 8, 11황자는 같은 모친(금가씨) 소생이다. [88] 김운행은 신숙주의 절개를 이용해 확인했지만 갈수록 추한 행보를 보이면서 그 기세가 범부 수준으로 추락해버렸던지라 이런 놈이 청의 지도자일리 없다며 그냥 죽여버렸다. [89] 주력군이 팔기를 이끌고 너무 깊이 적진에 들어가는 바람에 부찰 부항은 연승을 거두고도 피해가 커질까봐 후퇴해야 했다. [90] 운남성과 귀주성 [91] 북경의 다섯 황자를 제압하고 중원을 일통해야 가장 강한 자를 입증할 수 있는지라 대외적으로는 황제가 아닌 왕을 칭하고 있다. [92] 게다가 사천-운남에서는 인구수로 강남보다 크게 밀린다. [93] 조선은 영길리에 지지않는 강군만 최소 수만에 아시아 제일의 수군을 거느리고 대놓고 열병식을 하는 반면 영국인들은 말만 그럴 듯 하지 보여준 것은 이미 날아가 사라진 군대밖에 없다. [94] 원 역사에서도 유럽인들과 격하게 마찰했던 반서양파였다. [95] 또한 유럽인들이 기존에 강남에 있던 오나라를 계승한다는 삼알못스러운 명분을 내세웠다. [96] 오히려 유럽군의 대대적 약탈 때문에 부청멸양이라는 구호가 떠돌았을 정도. [물론] 오명은 물자만 댔다. [98] 본래는 상황 파악이 먼저였겠지만 김운행이 세치 혀를 놀려 공격하게 만들었다. [99] 사실 이시요는 이 시점에서 부찰부항에게 제대로 보급을 대주지 못한 호북, 호남성의 관리와 장수들을 보호해주고 있어서 설령 군량을 마련하더라도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100] 이건 엄청난 모험수인데, 당장 오명에서 영국군에게 친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학살은 심했다. 당장 조선을 친다 해도 촉진, 준가르, 태평천국 등이 반감을 가지면 가지지 알아서 고개를 조아릴 리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에 버려진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벌인 학살 때문에 중국을 돌아다니기도 힘든 판인다. 천자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아차하면 천하의 대적이 되는 일을 자처한 것. [101] 더 큰 문제는 히드라 공화국의 독립 전쟁 때문에 함대를 보낸다 한들 전번보다 훨씬 더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102] 조선도 오랜 전쟁 탓에 만성적인 기아 상태였고 백련교에게 받는 건 목재 정도 밖에 없었으나 이미 산동 백련교를 번국으로 받아들이고 전략적인 중요성도 깨달은 조선에서는 어떻게든 식량을 수급해줬다. [103] 왜 하필 태평천국이냐면, 도교에 기반한 백련교의 교리로 인해 국명도 그에 맞게 지어야 하는데 '태평국'은 지나치게 황건적 냄새가 나니 맹찬이 서양인들에게 줏어들은 이상세계인 천국을 국명에 덧붙였다. [104] 무려 어지에게 선공을 당하고도 반격할 정도의 실력 [105] 딱히 팔 것이 없어서 선박건조용의 목재만 열심히 베었다고 한다. [106] 연경을 치겠으니 길을 빌려달라. 연경은 북경의 다른 이름 중 하나다. [107] 오히려 미리 알려준 덕에 전선에서 져서 밀렸음에도 인명 피해는 최소한이었다고 고마워했다. [108] 맹찬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는 것이 짝사랑하는 오삼랑과의 밀월을 알면서도 질투심으로 죽이기보다는, 사치를 줄이고 교단의 대의에 충실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전부 무시하고 입단속만 시키려고 했다고 한다. [109] 실제 역사에서 준가르 칸국의 마지막 칸. [110] 또한 본래 아무르사나의 죽음은 청군이 몰아온 천연두 등의 전염병 탓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건강을 지킨 것. [111] 규슈에 막 파견된 몽골팔기가 엄청난 학살극을 벌이고 있어서 서류상 실적은 이들을 초월했다. [112] 본래 역사에서도 죽은 이후 민간신앙에 이름이 퍼졌는데, 여기서는 멀쩡히 살아서 승리하기까지 했으니 당연하다. [113] 물론 준가르가 10년 이상 저항운동을 하면서 세워온 전공은 어마무시하지만 산둥, 천진, 만주, 요동에서 세워온 조선의 대승보다는 색이 바랬다. [114] 이훤의 뒤주. 가까운 거리의 뒤주 안으로 공간이동한다. 8일동안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모든 충격이 차단되며 식음을 전폐하고도 생존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8일이 넘도록 들어가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115] 김운행 역시도 다른 서양말 능력은 숨기고 있어도 네덜란드어 실력은 숨기지 않고 있다. 박연의 자손을 엮어서 어떻게든 개연성을 만들 수 있기 때문. [116] 빨간머리도적. 홍모인(紅毛人)이라고도 한다. [117] 가령 175화에서 김운행은 '영길리국'을 '홍모적'과 다른 무리들이라며 구별해서 말한다. [118] 일본군이 빠따를 미화하던 용어인 군인정신주입봉(軍人精神注入棒)의 패러디. 즉 문명국과 오랑캐의 분별을 물리적으로 세뇌시켜주겠다는 의미다(...). [119] 당시 네덜란드와 일본은 상호간에 사기를 치고 있었기 때문. 네덜란드는 자신들을 유럽의 군사강국으로, 일본은 네덜란드를 자기들 산하 속국이라고 공표하고 다녔다. 때문에 조선이 네덜란드 건으로 대놓고 일본에 책임을 씌우고 대접을 박하게 할 수 있었다. [120] 아라사의 국서에 자신들의 군주를 황제 폐하로 칭한 것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다. 사실 크로토포프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까지도 러시아는 '황제'라는 표현을 썼지만 중간에서 국서를 받는 중국 관리들이 표현을 고쳤기에 몰랐던 것이다. [121] 영국군이 대부분이긴 하나 프랑스군, 아메리카 민병대 등도 포함한다. [122] 독일은 프로이센의 7년 전쟁 패배로 사라졌다. [123] 본래대로라면 남태평양으로 갈 역사였으나 엔데버에 자금을 후원해 조선 탐사를 요청했다. [124] 단순한 중국군 격파가 아니라, 격파 후의 유럽 동맹군을 배신하고 중국 독점 지배가 어려워졌다. [125] 그리니치 천문대 대장 네빌 매스컬린, 그의 조수 찰스 그린, 칼 폰 린네의 제자 다니엘 솔랜더, 박물학자이자 지질학자 토마스 페넌트, 박물학자 조셉 뱅크스 등등 [126] 그 안엔 밀항한 조선인들도 다수 껴 있었는데, 이들이 조선의 외교관으로 둔갑되면서 머나먼 동방에서 전 세계의 혼란을 조종하는 김운행과 조선의 명성(?)이 더욱 높아진다. [127] 성균관 유생을 가장한 김석태의 아무말 주워담기가 원흉. [128] 원역사의 조지 워싱턴은 대지주였고, 독립전쟁에서 손속이 독하지도 않았으나 여기서는 영국의 진압군 상대로 대학살을 벌이고 블랙 팬서 연대 탓에 고향의 농장도 크게 손해를 봤을 터라서 정치를 놓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본래 역사처럼 성장을 이뤘다 하더라도 한층 격해진 영국과의 갈등, 조선과의 연결성을 생각하면 당대 미국 최고의 지휘관이자 조선 라인을 거머쥔 초대 대통령이 은퇴하기란 퍽 요원했을 것이다. 참고로 본래 워싱턴은 원주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저 마을 파괴자라는 별명이 '인디언들의 마을로 직접 다가온 자'라는 뜻으로 인용되거나, 원주민들의 후기 신앙에서 '원주민들을 위한 천국에 유일하게 입성 가능한 백인' 등 다소 낯뜨거워질 정도의 찬사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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