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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2:56:54

야구계의 저주

콩쥐의 저주에서 넘어옴
1. 개요2. 현재진행형
2.1. 삼성 올드 유니폼의 저주2.2. 류중일의 저주
2.2.1. 관련 문서
2.3. 노히트 노런의 저주2.4. JTBC의 저주2.5. 홈런존 저주2.6. LG 상대로 PS 승리시 준우승의 저주2.7. 롯데 자이언츠 엠블럼의 저주2.8. 키움 히어로즈 관련 저주
2.8.1. 한국시리즈 유격수의 저주2.8.2. 준우승의 저주
2.9. 국가대표팀의 실패 이후 2년 뒤 성공2.10. 김태형 2년 주기 저주
3. 종료
3.1. 완전히 깨진 저주
3.1.1. 염소의 저주(1908/1945~2016)3.1.2. 밤비노의 저주 (1918~2004)3.1.3. 검은 양말의 저주 (1917/1919~2005)3.1.4. 윌리엄 펜의 저주 (1987~2008)3.1.5.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1978~1999)3.1.6. 달구벌의 저주 (1984~2002)3.1.7. 두산 베어스 10번의 저주 (1994~2007/2017)3.1.8. 붉은 유니폼의 저주 (2015~2022)3.1.9. 커널 샌더스의 저주 (1985~2023)3.1.10. 엘롯한 동반 무관 징크스 (1999~2023)3.1.11. KBO 구원왕 징크스 (2013~2024)
3.2. 깨졌으나 애매한 경우
3.2.1.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3.2.2. KBO 리그 3위의 저주/축복(2016~2020, 2022/2021, 2023)3.2.3. 전기 턱걸이 탈락 팀의 저주(1982~1999/2001~2021)
3.3. 미해결
3.3.1. 와후 추장의 저주 (1948~2021/현재진행)3.3.2. 김성근의 저주(1989~2017)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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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각국의 프로 야구계에서 오랫동안 우승을 못하는 구단의 이유의 저주 징크스 등을 설명하는 소개하는 문서.

물론 팬들이 이런 오컬트적인 미신을 믿는 것은 아니고 해당하는 팀들의 경우 팜 시스템, 프런트와 경영자의 판단 미스 등의 온갖 악재들이 복합적으로 쌓였기에 우승을 못한 것이다. 저주라는 말은 이런 복합적인 악재들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종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저주받는 대상 그 자체가 원인이 되는 경우는 김성근의 저주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2. 현재진행형

2.1. 삼성 올드 유니폼의 저주

이미 풀렸던 져주기 게임 저주의 변형이기도 하다. 올드 유니폼 이벤트를 하면 꼭 끝이 좋지 못한데, 혹자는 준우승의 원한이 서려서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오른팔 大邱, 왼팔 Lions가 우승 유니폼이지, 오른팔에 사자 로고가 있는 건 우승을 경험한 적이 없다. 특히나 통합 2연패(2005, 2006)와 4연패(2011 ~ 2014) 당시에 올드 유니폼 데이는 없었다는 것이 그 증거.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시즌을 보면,
올드 유니폼을 착용 안한 2021년에 우주의 기운을 받아 상위권에 안착하고, 시구자가 입었다는 이유로 2021년 플레이오프에서 스윕당하면서 삼성 라이온즈가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하지 않아야 할 충분한 명분이 생겼다. 이런 처참한 성적 때문에 올드 유니폼 데이 반대파들은 더욱 힘이 실렸고, 찬성했던 사람들조차 올드 유니폼 데이 할 바에 팀 성적이나 잡으라며 반대파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직 착용 안 한 올드 유니폼은 1983년과 1982년 전기 유니폼이다. 거기다 해당 유니폼들은 포스트시즌과 연이 없다.

2.2. 류중일의 저주

2011년 류중일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 감독 부임 이후, 2020년까지 매 해 페넌트레이스에서 류중일 감독이 맡았던 삼성이나 LG를 상대로 가장 우세를 거둔 팀의 감독들에게 해당 시즌 또는 이후 시즌에 영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저주. 다만, 2년 연속으로 같은 팀의 감독이 두 시즌 연속으로 가장 우세한 팀이 되면 그 대상이 되지 않는다.

드물게 팀 전체로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류중일의 저주'이기 때문에 후임인 김한수, 허삼영, 류지현, 박진만, 염경엽 감독과는 아무 상관 없다. 일단 승패마진이 0이면 효과에서 제외되며, 두말할 것 없이 기록으로 보자면,
팀 및 해당 시즌 전적 감독 결과
11시즌 한화 9승 10패 한대화 당해 시즌에는 야왕 돌풍이 일었지만, 다음 시즌에는 8위에 고정되어 있었고 결국 12시즌 도중 경질.
12시즌 두산 7승 12패 김진욱 당해 시즌에 롯데에게 13년만의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를 안겨주지 않나, 13년 KS 3승 1패에서 내리 3연패 당하는 바람에 경질.
13시즌 LG 7승 9패 김기태 프런트와의 갈등과 성적부진 때문에 14시즌 도중 야반도주.
14시즌 두산 6승 10패 송일수 당해 시즌 6위를 기록하며 시즌 종료 직후 경질. 이 기록 때문에 11년만에 처음으로 LG에 밀려나 2016시즌 잠실 개막전을 LG에 뺏겼다.
15시즌 한화 6승 10패 김성근 성적 부진과 선수 혹사로 비난을 받았고 17시즌 도중 경질.
16시즌 롯데 5승 11패 조원우 느그가 프로가? ㅋㅋㅋㅋ로 요약 끝. 당해 시즌에 제대로 홍역을 치렀고 17시즌에는 오히려 오랜만에 가을야구를 했으나 18시즌에 다시 7위를 기록하고 경질.
18시즌 두산 1승 15패 김태형 반대로 류중일이 저주에 휩쓸리고 두산은 우승하는 줄 알았으나 SK에게 뒤집기 우승을 허용. 그러나 이 다음 시즌인 19시즌도 가장 승률이 높아 저주 대상 제외
19시즌 SK 6승 10패 염경엽 당해 시즌 역전 우승을 허용 후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게 스윕패. 20시즌 팀 창단 역대 최악의 성적을 찍음과 더불어 본인은 건강문제로 병원신세를 졌고 결국 시즌 후 자진사퇴
20시즌 키움 6승 10패 손혁 당해 시즌 중 경질에 가까운 자진사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감독직 9시즌동안 제외 대상인 두산을 빼면 모두 저주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중에서 제일 억울할 것 같은 팀은 11시즌 한화와 13시즌 LG. 겨우 1~2경기 더 가져간 죄로 저주에 희생당해버렸다. 0.5경기 더 가져갔다고 봐주는 건 없는지, 넥센은 2014년 한국시리즈부터 시작해서 포스트시즌에서 3연속 탈락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게다가 김진욱 감독은 kt에서도 고생했다.[8]

결론적으로 팀 상황이 안 좋은데 무리하게 한 팀만 잡으려 들다가는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팀 확실히 잡았다고 설레발 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관련 항목에 큰 수의 법칙을 넣은 것도 그 이유. 사례 중 12시즌, 16시즌 두산과 13시즌 넥센을 제외하면 감독들의 오판과 선수층 문제가 겹쳐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팀들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나 반박 등은 여기 참조.

2.2.1. 관련 문서

2.3. 노히트 노런의 저주

KBO 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면 롱런하지 못한다는 저주가 있다.

2019년 기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외국인 투수는 4명인데, 그 4명 전원은 노히트 노런 후 부진의 늪에 빠져 방출의 운명을 겪었다.
해당 문서 참고.

2.4. JTBC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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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이는 야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5. 홈런존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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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LG 상대로 PS 승리시 준우승의 저주

KBO 포스트시즌 한정 KBO판 최악의 저주이자 콩메이커. 속칭 콩쥐의 저주. 1982년 MBC 청룡이 창단되고 1990년 LG 트윈스로 인수된 이래로 LG 트윈스를 포스트시즌에서 꺾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팀들이 모두 준우승만 하게 되는 끔찍한 저주이다.

달구벌의 저주가 2002년 깨진 이후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최고의 저주로 남아있으며 진짜 이 저주가 무서운 이유는 LG 트윈스를 꺾은 뒤, 다음 라운드에서 분위기가 크게 올라간 상태에서 상대를 압살해버린 뒤 정작 한국시리즈에만 올라가면 온갖 무기력하고 나사빠진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준우승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저주의 끔찍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안 그래도 KBO 포스트시즌 특성 상 업셋이 어려운데, 경기력까지 나빠지고 기다리던 팀에게 밟히는 게 일상이 되는지라 더 그런 것. 더 놀라운 건 순위를 가리지 않고 한국시리즈에는 무조건 올라간다는 것.[9] KBO에서 총 11번 발현됐다.

2019시즌 이전까지는 LG가 준PO 승률 100%를 자랑하던 팀이었다. 따라서 이 저주는 PO에서 LG를 이긴 팀에만 해당되었기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플옵에서 LG를 이기고 올라간다고 한들 상대는 정규시즌 우승팀이기 때문에 준우승에 그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 그러나 LG의 준플레이오프 전승이 깨진 이후인 2020년대 들어서 이 저주가 주목받고 있다.

저주 발동 사례를 보면 알겠지만, 가장 많이 피해를 본 팀도 두산이고, 가장 많이 수혜를 본 팀도 두산이다. 그 다음으로 피해를 많이 본 건 넥센/키움인데, 이 쪽은 엘넥한 시절 같이 암흑기를 겪다가 비슷한 시기에 끝나는 바람에 어째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때마다 LG를 중간에 만나는(...) 탓에 준우승만 3번을 하게 됐다. 실질적인 최대 피해자라고 봐야할지도. 참고로 해태-KIA는 포스트시즌 중 LG를 상대로 한국시리즈가 아닌 시리즈에서 만난 2002년 2016년에 모두 LG에게 패배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없는데 과연 KIA가 포스트시즌 중 LG를 이기고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도 이 징크스는 유효할지 주목해볼만 하다.[13]

한편 1993년과 2024년에는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와 동시에 발현되었는데, 두 번 모두 삼성 라이온즈가 피해자란 점이 같다.

여기서 당연히 LG를 꺾으면 우승하는 한국시리즈는 제외, 1983년 한국시리즈 당시 해태 타이거즈(당시에는 MBC 청룡), 1997년 한국시리즈 당시 해태 타이거즈, 1998년 한국시리즈 당시 현대 유니콘스,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에서 LG를 꺾고 우승했는데, 이 경우는 다음 해에 더 크게 터진다. 바로 포스트시즌 탈락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3년 삼성 라이온즈를 제외하면 그 다음 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심지어 2003년 삼성도 준PO에서 바로 스윕패로 탈락하며 LG를 꺾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팀은 그 다음 해에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생겼다.

한편 LG 트윈스가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시즌에, 플레이오프를 통과하고 올라오는 팀은 무조건 4연패로 준우승하는 징크스도 이어지게 되었다. 1990년 삼성, 1994년 태평양, 2023년 KT 세 팀이 해당되는데, 이 팀들이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 상대로 거둔 승리는 2023년 11월 7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KT가 승리한 것이 전부다.

이와 비슷한 저주가 남자프로농구에도 있다. 플레이오프에서 인천 전자랜드 상대로 5차전까지 상대한 팀은 우승은커녕 다음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저주다.

메이저리그에서도 2016년 이후 이 저주와는 정반대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꺾은 팀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2022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꺾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22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탈락하고 2022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2.7. 롯데 자이언츠 엠블럼의 저주

롯데 자이언츠의 엠블럼 변천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3~1995).pn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96~2002).svg
1975~1992[14] 1993~1995 1996~2002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3~2008).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09~2017).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2018~2022).svg
2003~2008[15] 2009~2017[16] 2018~2022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svg
2023~
1993년 롯데 자이언츠가 원년 엠블럼에서 2번째 엠블럼으로 교체한 후[17] 현재까지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징크스와 2018년 롯데 자이언츠가 6번째 엠블럼으로 엠블럼을 교체한 후 현재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징크스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원년 엠블럼을 달고 강병철 감독이 최동원, 염종석을 제물[18]로 삼아 1984년 한국시리즈,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으나 1993년 엠블럼을 바꾼 이후로는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 사례를 살펴보면 1993년 두 번째 엠블럼을 달고 1995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이후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패퇴했고, 1996 시즌에 바꾼 엠블럼을 달고도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그 유명한 7차전까지 가고 나서 결국 199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또 패퇴했으며 2000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졌다. 게다가 이후로는 중간에 엠블럼을 바꾸고도 8888577을 찍는 구단 역사에 남는 암흑기가 도래한다. 이후 로이스터 매직을 받아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3전 전패로 가을야구가 끝난다.

2009년에 엠블럼을 바꾸고 나서는 2009년 준플레이오프, 2010년 준플레이오프, 2011년 플레이오프에 진출은 했으나 모두 패퇴했고, 2012년 준플레이오프가 돼서야 2012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역시나 2012년 한국시리즈까지 가지는 못했다. 이후로는 5788이라는 암흑기가 찾아오고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까지 터진다. 이후 이대호가 국내로 복귀하고 우주의 기운이 발동해 2017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혈전 끝에 낙동강 라이벌에게 2017년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넘겨주었다.

이후 2018년에 엠블럼을 바꿨는데 결과는 7A788. 2019년 사상 최초로 원년 구단이 10위를 차지하는 최악의 상황은 물론 다시 비밀번호가 도래할 위기가 찾아왔다. 물론 우주의 기운이 발동한 17시즌이 없었으면 이미 5788?7A788로 2차 비밀번호가 확정이었겠지만.

결국 2023년에 또 엠블럼을 바꾸었다. 이로써 6번째 엠블럼 시대에는 단 한 번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엠블럼을 바꾼 뒤 2차 비밀번호 7A78877을 완성하고야 말았다.

2.8. 키움 히어로즈 관련 저주

위의 LG 트윈스의 저주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2.8.1. 한국시리즈 유격수의 저주

아가씨! 저희 팀 유격수가 가을에 실책을 하면은요 항상 크게 돌아와요!
2022 KBO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키움 히어로즈 유격수인 김휘집의 실책으로 출루를 허용하자 얼빠와 고척아재 사이에 실랑이가 일어났다는 썰의 일부.[19][20] # 원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시절 포함)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때마다 유격수 실책을 저질러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경기가 적어도 한 번씩은 있다. 유격수 실책이 나오고도 승리한 키움의 한국시리즈 경기는 2022년 1차전이 유일하다.

아래는 유격수 실책이 나온 경기 목록. 굵은 글씨는 유격수 실책이 실점으로 이어진 경기, 붉은 글씨는 유격수 실책이 역전패의 시작이 된 경기

공교롭게도 2014년과 2019년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실책을 했던 강정호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나중에 김휘집 신준우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비슷하게 두산 베어스도 2선승으로 앞서가는 한국시리즈 3차전에 유격수가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며 경기를 패배하고 시리즈를 뒤집히는 징크스가 있었으나,[21] 2016 한국시리즈와 2019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주전 유격수였던 김재호가 3차전을 실책없이 깔끔하게 막아내면서 4:0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저주를 청산했다.

2.8.2. 준우승의 저주

키움 히어로즈가 준우승을 하면 외국인 타자가 팀을 떠난다. 사실 키움 히어로즈는 외국인 타자 뽑기운이 매우 나빠서 우리 히어로즈 시절부터 외국인 타자가 두 시즌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한 시즌 못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

2.9. 국가대표팀의 실패 이후 2년 뒤 성공

한국 야구 국가대표는 큰 대회에서 죽을 쑨 뒤 2년 후의 다른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

2.10. 김태형 2년 주기 저주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2015 시즌부터 두산과 한국시리즈를 맞붙은 팀은 우승 여부에 상관없이 2년 안에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하거나, 김태형 감독과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감독은 이유를 막론하고 2년 안에 팀을 떠나게 된다. # 그리고 그나마 저주를 면한 키움, kt를 제외한 모든 팀들은 이후 2년간 상대전적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후 김태형 감독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뒤 9위를 기록하고 두산과 재계약하지 못하면서 해결되지 못하는 듯 했으나 이후 김태형은 2024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되었다.
팀 및 해당 시즌 당해 성적 이듬해 성적 2년 뒤 성적 감독 결과
2015 한국시리즈 삼성 준우승 9위 9위 류중일 2016 시즌 : 6승 10패 | 2017 시즌 : 3승 1무 12패
다음 시즌 팀이 제일모직 산하로 강등되고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가 유출되었으며 도박 사건으로 1선발 윤성환, 홀드왕 안지만, 최강 마무리 오승환, 세이브왕 임창용의 유출을 포함, 팀의 투수진이 완전히 무너지고 외인들마저 망해버려 9위라는 구단 역사상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하였고 2016시즌 종료 후 재계약 포기. 저주가 발동된 2017 시즌 삼성은 국가대표 선발인 차우찬 LG 트윈스로, 4번타자 최형우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며 말 그대로 암흑기가 찾아와 9위를 기록했다. 이후 류중일은 기술고문 자격으로 구단에 남아 있다가 결국 팀을 떠나고 2018시즌에 LG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16 한국시리즈 NC 준우승 4위 10위 김경문 2017 시즌 : 5승 11패 | 2018 시즌 : 4승 12패
김경문 특유의 혹사가 결국 단디 4와 주축 선수 붕괴를 불러일으켜 2018시즌 중 창단 첫 10위로 추락하면서 자진사퇴. 이후 유영준 단장이 감독대행을 맡아 시즌을 치르었지만 탈꼴지에 실패하고 창단 첫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
2017 한국시리즈 KIA 우승 5위 7위 김기태 2018 시즌 : 8승 8패 | 2019 시즌 : 3승 13패
2017년 우승 이후 선수들의 노쇠화 등이 겹치면서 2018년에는 2018년 와일드카드에서 히 드랍 더 볼로 탈락했고 시즌 후 임창용을 강제 은퇴시킨 후 맞은 2019시즌 중 김주찬, 이범호 등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나지완, 안치홍의 부진 및 제레미 해즐베이커, 조 윌랜드, 제이콥 터너가 모두 부진해 10위로 추락하면서 자진사퇴. 이후 박흥식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수습하며 7위로 시즌을 마감.
2018 한국시리즈 SK 우승 3위 9위 트레이 힐만 2019시즌 : 7승 9패 | 2020시즌 : 4승 12패
개인사로 인해 이미 정규시즌에 재계약 포기 의사를 밝히고 시즌 후 그대로 팀을 떠남. 2019년 시즌 최종전에서 두산 베어스가 승리하면서 9경기차가 뒤집히며 2위로 추락했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2019년 플레이오프에서도 키움 히어로즈에게 스윕패로 업셋을 당함으로써 최종 순위 3위, 2020년에는 1선발 김광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해 9위로 몰락하고 팀이 매각당함.
2019 한국시리즈 키움 준우승 5위 5위 장정석 2020 시즌 : 9승 1무 6패 | 2021 시즌 : 8승 1무 7패
당해 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 이후 구단 내부 알력다툼에 의해 재계약 불발. 2020년에는 와카에서 광탈했다. 그리고 2021년 10월 30일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으로 절반의 저주 면역. 그러나 2021년 와일드카드전에서 김태형 감독을 직접 만나서 탈락하고 말았다. 즉, 절반은 피했다. 준우승 뒤 석연찮은 감독 재계약 불발 이후로는 전력 약화로 와일드카드에만 머물렀지만 이후 2년간 상대전적에서도 다른팀들과 달리 우위도 가져갔고 2022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하며 다른 팀들에 비해 그나마 저주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 해 각종 악재들로 인하여 꼴찌로 추락하였다.
2020 한국시리즈 NC 우승 7위 6위 이동욱 2021 시즌 : 6승 10패 | 2022 시즌 : 8승 8패
구단 최초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더해 2021년 초반 3년 재계약을 맺는 데에 성공하면서 이번만큼은 저주를 피해갈 것으로 보였으나 이후 NC 다이노스 원정숙소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대표되는 선수단의 각종 사건사고로 인해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된데다 성적마저 2021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에 이어 2022년에는 스토브리그에서 나성범이라는 팀의 핵심 중의 핵심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며 4년 만에 최하위로 추락, 결국 5월 중에 경질되면서 이번에도 저주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최종 성적도 6위로 NC 사상 최초로 2연속 가을야구 진출 실패 기록을 남겼다.
2021 한국시리즈 KT 우승 4위 2위 이강철 2022 시즌 : 12승 4패 | 2023 시즌 : 10승 1무 5패
두산이 다른 해와 달리 이듬해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20~21년의 키움처럼 상대전적에서도 우위에 있기 때문에 저주에 빠질지 변수이다. 그런데 2023년 WBC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고 팀은 2019년 이후 최초로 단독 꼴찌가 되는 등 단단히 저주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다시 2위까지 반등했다. 이후 한국시리즈 진출이 확정되면서 최소 2위를 확정지었다.
심지어 김태형 감독이 선수였을 시절에도 이 저주가 있었다.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롯데는 이 해 최종 성적 2위에서 1996년엔 5위로, 1997년에는 8위로 추락했다. 다만 당시 롯데 감독이었던 김용희 감독은 1998년 시즌 종료 후 경질되었다. 그러나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플레잉 코치로서 우승을 거둘 때 상대팀이었던 삼성의 경우, 2001년 준우승 이후 2002년 우승, 2003년 4위를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년간 상대전적에서도 우위를 가져가며[22] 예외로 남았다.

3. 종료

3.1. 완전히 깨진 저주

3.1.1. 염소의 저주(1908/194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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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밤비노의 저주 (1918~2004)

Curse of the Bambino

보스턴 레드삭스는 1901년 창단한 이후 1918년까지 5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명문팀이었다. 하지만 레드삭스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1912년에 새로 지은 야구장인 펜웨이 파크를 건설하는 데 융자받은 돈을 갚기 위해 1919년 12월 26일에 트레이드 팀의 간판타자[23]로 전 시즌에 투수 홈런왕[24]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를 12만 5천 달러, 거기에 향후 37만 5천 달러를 빌리는 조건을 덧붙여 뉴욕 양키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지금이야 루스 급의 선수를 12만 5천달러에 구입했다고 하니 헐값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키스는 루스 영입에 구단의 운명을 건 것이다. 당장 양키스의 당시 구단주 제이콥 루퍼트가 양키스를 당시 돈 48만 불로 매입했다. 여기에 루스의 연봉도 수만 달러였으므로 구단 인수 비용의 4분의 1을 선수 한 명을 사는 데에 쓴 것이다.

이후 양키스는 루스의 미친듯한 홈런 행진 덕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 명문팀으로 성장해 2009년 우승을 포함해 모두 27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반면,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해인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무려 15년 연속 5할 미만 승률이라는 비참한 기록을 작성하게 되며, 2004년에 우승할 때까지 네 번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그치고 그 중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다.[25] 특히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3승 2패로 앞서고 있던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 6차전, 연장 10회말 동점 2아웃 상황에서 1루수 빌 버크너가 공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알까기) 실책으로 무너지며 영상 7차전마저 패배하며 우승에 실패하자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루스의 애칭을 따 '밤비노의 저주'라 부르기 시작했다.

저주를 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끝에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3연패 뒤 4연승으로 리버스 스윕하며 2004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86년 만에 저주를 풀었다.

그로부터 불과 3년 후인 2007년에는 샌디에이고- 필라델피아- 애리조나를 차례로 연파하며 내셔널리그 최강자로 올라온 콜로라도 로키스를 월드시리즈에서 격파해 팀의 일곱번째 우승을 기록했다. 이어서 2013년 10월 31일에는 95년만에 펜웨이 파크에서 8번째 우승을 확정지었고, 2018년 10월 29일 9번째 우승이자 21세기 4번째 우승을 하면서 '우승 못하는 팀'이란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냈다. 이제 보스턴에게 '밤비노의 저주'는 한때의 역사로 묻혀진 것이다.

단, '밤비노의 저주'라는 명칭은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빌 버크너의 알까기 사건 이후 7차전에서 무너진 것을 보고 모 기자가 처음으로 '밤비노의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1918년 이후 다시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는 데에는 8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실제로 밤비노의 저주라는 명칭이 쓰인 시점부터 저주가 깨진 시간까지는 단 1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3.1.3. 검은 양말의 저주 (1917/1919~2005)

Curse of the Black Sox
(Curse of the Shoeless Joe)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인 블랙삭스 스캔들을 일으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저주.

당시 구단주인 찰리 코미스키가 지독한 수전노였기 때문에 급여를 짜게 주는 것은 물론 선수들에게 유니폼 세탁비도 받을 정도였다.[26] 결국 돈이 필요했던 화이트삭스 선수 조 잭슨 외 7명은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도박사와 짜고 승부를 조작했다. 이후 8명은 야구계에서 영구퇴출 당했고 화이트삭스는 우승을 못하는 것은 물론 연고지에서의 인기도 시카고 컵스에 압도적으로 밀리는 세월이 86년 동안 계속되었다. 컵스가 1908년 이후로 월드시리즈 우승은 없지만 월드시리즈 진출은 무려 10번이나 할 정도로 화삭스를 성적에서 압도했다.

그렇게 침체기를 달리다가 2005년 포스트 시즌에 갑자기 미친 저메인 다이와 조 크리디, A.J. 피어진스키의 사기짓 등의 활약으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시리즈 셧아웃으로 꺾어 88년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며 저주를 풀었다. 또한, 월드시리즈를 4전 전승으로 우승한 통산 19번째 팀이 됐다. 무엇보다 지역 라이벌 시카고 컵스보다 우승을 먼저 했으니 기쁨도 두 배.

3.1.4. 윌리엄 펜의 저주 (1987~2008)

필라델피아의 모든 프로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필라델피아 이글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이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저주.

필라델피아 시가 속한 펜실베이니아 주를 건설한 윌리엄 펜[27]이란 사람을 기려 1871년 신축한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꼭대기에는 37피트(약 11미터) 크기의 펜의 동상이 세워졌다.[28] 그리고 필라델피아에는 시청보다 높은 건물을 안 짓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런데 1987년에 필라델피아에 945피트(약 288미터)짜리 고층 빌딩이 세워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야구), 필라델피아 이글스(미식축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농구),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아이스하키) 등 필라델피아 시를 연고지로 하는 모든 프로팀이 21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사달이 벌어졌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이를 가리켜 펜이 자기가 서있는 높이보다 높은 건물이 세워지자 저주를 걸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저주를 깨기 위해 2007년 6월에 신축한 975피트(약 297미터) 높이의 빌딩 꼭대기에 윌리엄 펜의 인형을 갖다놓았다. 얼마 후에 인형이 도둑맞자 2008년 월드 시리즈를 앞두고 급히 작은 윌리엄 펜 인형을 구해다 대신 세워두었다. 이 덕분인지 2008년 월드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4승 1패의 성적으로 필라델피아 팀으로는 25년 만에[29]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슈퍼볼 LII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저주가 깨지고 있다. 세븐티식서스와 플라이어스는 아직 우승을 하지 못한 상태이며 2010년부터 MLS에 참가 중인 필라델피아 유니언도 펜의 저주의 영향 때문인지 아직 우승이 없다.

이는 2017년 6월 2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3.1.5. 노무라 카츠야의 저주 (1978~199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했던 노무라 카츠야가 플레잉매니저 시절인 1977년 시즌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내(당시는 애인) 노무라 사치요의 막장행각[30]으로 인해 감독직을 사임하고 난카이를 떠나면서 기나긴 저주가 시작되었다. 노무라가 떠난 다음 해인 1978년부터 중간에 1988년 난카이 전기철도가 다이에에게 구단을 매각해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이전한 후 1997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최장기간 B클래스 기록인 6565655664546546456를 세웠다.(참고로 6이 꼴찌) 이후 1993년 80년대에 세이부 라이온즈를 강팀으로 만들었던 GM 네모토 리쿠오가 부임해 세이부에서 한 것처럼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트레이드와 스카우트 등으로 좋은 선수들을 연이어 영입하고 1995년 왕정치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심기일전하기 시작하여 드디어 1998년 리그 A클래스를 찍으며 비밀번호를 끊었고, 1999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센트럴리그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1999년 일본시리즈에서 4승1패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3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기나긴 저주가 깨지게 되었다.[31] 2000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밀려 준우승 했지만 2003년 일본시리즈에서는 '호응(호랑이와 매) 시리즈', '산요 신칸센 시리즈'라 불린, 호시노 센이치가 지휘하던 한신 타이거즈와 명승부를 거두며 다시 한 번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엔 A클래스엔 오르거나 정규시즌 우승을 하긴 했지만 퍼스트/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막혀서 일본시리즈 진출을 몇번 못하다가 2011년을 기점으로 2014~2020년까지 무려 6회를 우승하면서 왕조까지 건설하게 된다.[32] 하지만 그 이후 2021년엔 오랜만에 B클래스를 하고, 2022년엔 오릭스에게 승자승 열세로 정규시즌 우승을 뺏긴 것에 모자라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오릭스에게 패퇴당함으로써 왕조를 끝내게 된다.

3.1.6. 달구벌의 저주 (1984~2002)

2002년 한국시리즈 이전까지 KBO 리그에서 가장 유명했던 저주로 일명 져주기 게임의 저주.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전기리그 우승으로 이미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따낸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김영덕 감독은 상대적으로 껄끄러운 OB 베어스[33]보다 만만했던 롯데 자이언츠[34] 1984년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간택하게 되고, 후기리그 마지막 2연전을 롯데 자이언츠에게 모두 내주기 위해 져주기 게임을 계획한다.

우선 트리플 크라운 만들기 작전을 위해 이만수 장효조를 10경기 전부터 내보내지 않았고, 첫 번째 경기를 2진급 선수들로만 구성해 내보냈는데, 문제는 롯데 자이언츠가 그 2진급 선수들에게도 탈탈 털렸다는거. 초반부터 롯데 자이언츠가 탈탈 털리자 김영덕 감독은 아예 노골적으로 져주라고 지시하며 7-0으로 앞선 경기를 9-11로 져주는 위엄 돋는 업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경기에서는 전날보다 노골적으로 져주기 게임를 기록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후기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당시 이만수와 함께 수위타자 부문에 경쟁했던 홍문종은 당연히 덤으로 9연속 고의사구를 당했다.

같은 시간 OB 베어스 역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2연승을[35] 거두었지만,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에게 2승을 헌납받으면서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로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36]만 아니었으면 삼미 슈퍼스타즈와 꼴찌다툼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팀이었고, 삼성 라이온즈 김시진, 김일융 등 최동원에 견줄법한 에이스만 두 명이었고, 이만수, 장효조 KBO 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이름을 남길만한 네임드 선수들이 쟁쟁했다. 7차전짜리 시리즈에 선발투수가 많아야 3경기 정도 나올 수 있고, 최동원이 나온다고 한들 롯데 자이언츠의 전력으로 김시진이나 김일융을 상대로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었다.[37] 그리고 최동원은 7경기 중 5경기 등판 4승 1패 4완투 2완투승 1완봉승 1완투패 1구원승 40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80 WHIP 1.08을 기록 롯데 자이언츠, 아니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를 무너뜨리고 사상 첫 우승을 기록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이후 삼성 라이온즈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90년 한국시리즈, 1993년 한국시리즈,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패했고, 이 기간중 한국시리즈 12연패, 한국시리즈 잠실 구장 10연패라는 흠좀무한 대기록을 작성하면서 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우승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통산 124승을 거둔 투수 김시진은 한국시리즈에서는 0승 7패를 기록하는 대치욕을 겪었으며 삼성 라이온즈는 198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포함하면 한국시리즈 6회 진출 모두 준우승이라는 위업마저 기록했다.[38] 그리고 저 6번의 준우승 중 절반인 3번이 해태 타이거즈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었는데, 해태 타이거즈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8,90년대 18시즌 동안 9번이나 우승하고 준우승을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아 자금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해태 타이거즈에게 계속해서 패한다는 사실에 더더욱 비교가 되었고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달구벌의 저주에 괴로워했다.

결국 2000년 시즌 후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모셔오고, 발비노 갈베스의 활약으로 1987년 이후 간만에 페넌트레이스 출범이후 첫 우승을 기록하며 1993년 한국시리즈 이후 9시즌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투수진의 전체적인 난조로 그만 2승 4패, 페넌트레이스 체제 출범이래로 3번째, 프로야구 통산 4번째 한국시리즈 직행팀의 준우승이라는 뼈아픈 기록을 다시한번 작성해야 했다. 심지어 이 준우승은 김응용 감독의 첫 준우승이었다. 당시 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감독을 맡으며 1983년 한국시리즈,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88년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 1991년 한국시리즈, 1993년 한국시리즈, 1996년 한국시리즈, 1997년 한국시리즈를 모두 우승, 프로야구 출범 이후 80년대와 90년대 18시즌 중 9시즌을 우승했다. 즉 당시 18년간 왕조를 구축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승률이 50%였다는 것. 이때 삼성 라이온즈은 '정말 안되는 것인가?'란 주제로 인터넷 야구 게시판이 크게 달구어졌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20타수 2안타로 한국시리즈 내내 부진하던 이승엽이 막강 마무리 야생마 이상훈을 상대로 3점차를 따라잡는 동점 쓰리런 홈런을 기록하고, 바뀐 투수 최원호를 상대로 마해영의 한국시리즈 사상 첫 끝내기 백투백 홈런이 터지며 장장 19시즌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내며 삼성은 달구벌의 저주에서 벗어나기에 이른다. 1982년부터 치면 21시즌, 8번째 한국시리즈를 맞아 거둔 우승이며, 프로 원년 시절부터 막강한 전력과 빵빵한 자금력을 가지고도 한국시리즈 정상 문턱에서 번번히 주저앉아 수차례 눈물을 흘린 명가의 상처난 자존심이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같은 해 대구 오리온스도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하며, 2002년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대구 연고의 프로 스포츠 팀 2개가 우승하는 기록이 만들어졌다. 재미있게도 상대 팀은 2종목 모두 서울 연고 팀이었다.

그 이후 2003년 최강타선을 이끌었음에도 4위(정규리그 성적은 3위였으나 상술된 LG트윈스의 저주에 걸려 200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SK 와이번스에게 탈락했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당시 왕조를 구축했던 현대 유니콘스에게 9차전 혈투 끝에 패퇴해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7년은 200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퇴, 2008년에는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 패퇴, 2009년에는 포스트시즌 탈락(5위였는데 당시 우주의 기운을 받은 KIA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왕조를 구축했던 SK 와이번스와 콩라인 두산 베어스, 그리고 로이스터 매직을 받은 롯데 자이언츠가 너무나 강력했다. 결국 12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왕조를 구축했던 SK 와이번스에게 준우승을 했다.

그러나 2011년 한국시리즈, 2012년 한국시리즈, 2013년 한국시리즈, 2014년 한국시리즈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4연속 우승은 해태 타이거즈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88년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 4연속 우승과 타이기록이며 4연속 통합우승은 최초이다. 다음시즌인 2015년은 페넌트레이스는 우승했으나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이 터져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패퇴했고,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옮긴 2016시즌부터는 99688로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가 도래하고 만다. 5년간의 암흑기 이후 맞은 2021년은 정규시즌을 kt wiz와 공동 1위로 종료했으나 1986년 후기리그 챔피언 결정전 이후 35년만에 열린 2021년 정규시즌 1위 결정전에서 패배하며 페넌트레이스는 최종 2위로 마감했고, 이후 2021년 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4위 두산 베어스에게 스코어 0-2로 패배하며 2021년 한국시리즈에는 진출 실패, 2021시즌 최종 순위는 3위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다음해는 전 시즌이 우주의 기운을 받은 시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구단 최다 연패인 13연패를 경신, 결국 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3.1.7. 두산 베어스 10번의 저주 (1994~2007/2017)

이 저주는 OB 베어스의 전 감독 윤동균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윤동균이 현역 시절 달던 번호가 10번이었고, 한때 KBO 영구결번까지 갔지만 1994년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물러나면서 슬그머니 해제, 그 후 두산 베어스로 가면서 10번을 단 선수들이 이상하게 부진을 겪게 되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첫 번째 타자는 문희성으로 1997년 입단 이후 1년 동안 10번을 달고 뛰었다. 그러나 문희성은 이후 2군을 전전하는 2군 본즈가 되어 2005년 시즌을 제외하면 만년 2군, 백업을 전전하다가 잠시 버스기사를 하기도 하고 현재는 사회인 야구에서 뛰고 있다.

이후 10번을 단 선수는 강혁. 한양대-OB 사이 이중등록으로 영구제명까지 갔다가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 금메달 이후 복권되어 당시 지명권을 소유한 두산으로 5억 7천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면서 10번을 달게 된다. 그러나 당시 두산은 1루수로 타이론 우즈가 있었고, 거기다 해태에서 최훈재를 영입한 상황. 자리가 없어진 강혁은 대타를 전전하다 200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 이후 2004년 병역비리 사건 때 방콕 아시안게임 직전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특례가 박탈되고 공익요원으로 입대하면서 선수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강혁이 이적한 후 이번에는 심재학이 2001년 2월 두산으로 오면서 10번을 달게 되었다. 심재학은 2001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더불어 성적도 타격 2위인 0.344에 홈런 24개, 88타점을 기록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2002~2003년에 무력하게 부진에 빠졌다. 결국 2004년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10번의 주인은 사라졌다.

이후 트레이드된 황윤성이 10번을 달았지만, 그 또한 2005년 5월 현대 유니콘스 전에서 그라운드 홈런을 친 인생경기를 제외하면 큰 존재감은 없었고, 최준석이 2006년 이적 이후 2007년부터 10번을 달게 되는데, 최준석은 2007년 16홈런,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번 타자로 맹활약하며 저주를 사실상 깨트린다. 그러나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고 김진욱 감독이 1루수를 오재일과 플래툰 기용하면서, 2012년과 2013년을 연속으로 부진했다. 하지만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하였고 이후 FA때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로 컴백, 부활에 성공한다.[39]

최준석이 떠난 후 10번은 2011년말 한화 이글스에서 2차 드래프트로 영입한 김강이 달고 있었는데, 김재환, 오재일 등에 밀려나면서 2군을 전전했고 끝내 두산 유니폼을 입고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한 채 2016년 9월에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래도 2군 코치로 금세 재취업했고 현재는 kt 1군 타격코치로 일하고 있다.

그 뒤 2017년 홍상삼의 제대 및 1군 합류로[40] 박세혁이 47번에서 10번으로 등번호를 교체했다. 양의지의 백업 역할을 잘 수행했고, 양의지의 엔씨 이적 후에는 두산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는다. 박세혁은 2019년 정규시즌 최종전 두산의 우승을 확정짓는 끝내기 안타를 쳤고 한국시리즈 3차전 MVP를 받으며 2019년 두산의 역전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3.1.8. 붉은 유니폼의 저주 (2015~2022)

2015년 이후로 SK 와이번스가 붉은색 유니폼을 입으면 해당 경기를 지거나 부진에 빠지는 저주. 본래 빨간색은 2006년 SK그룹의 CI 변경 이래 현재까지도 상징색이고, 구단의 최전성기(일명 왕조 시절)에 입었던 원정 유니폼도 붉은색이었으며, 4번의 우승 중 2을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확정지었던 만큼[41] 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았던 유니폼이지만(저주 이후에도 이러한 의견은 변하지 않을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15년 원정 유니폼을 회색으로 변경한 이후에 붉은 유니폼을 입으면 영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되었다.

SK 와이번스/유니폼 문서에서 해당 유니폼 문단과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좋다.

2021년부터 와이번스 구단이 신세계그룹 인수되면서 SK의 붉은 유니폼의 저주는 해결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SSG 랜더스라는 새이름을 달고, 유니폼색[43]까지 그대로 이어받고 난 후 2년만에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며 붉은 유니폼의 저주를 완전히 풀어낸다.

3.1.9. 커널 샌더스의 저주 (198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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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0. 엘롯한 동반 무관 징크스 (199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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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롯데, 한화 3팀은 21세기에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1999년 한화의 우승 이후 21세기에 들어 각각 2001년에는 두산, 2002년에는 삼성, 2003년에는 현대, 2007년에는 SK, 2009년에는 KIA, 2020년에는 NC, 2021년에는 KT가 처음으로 우승하는 등 총 7팀이 우승했지만 키움과 더불어 이 3팀은 아직까지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LG가 4승 1패로 우승을 해서 엘롯한의 해체가 확정되었다. 대신 창단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키움을 포함해 한롯키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44]

3.1.11. KBO 구원왕 징크스 (2013~2024)

2013년부터 구원왕을 보유한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지 못하는 징크스로 10년 넘게 이어지다 2024년 KIA 타이거즈의 우승으로 마무리되었다. 공교롭게도 2024시즌 구원왕 정해영이 헹가래 투수로 나와서 직접 깼다.
<colcolor=#000> 연도 <colcolor=#000> 이름 <colcolor=#000> 세이브 <colcolor=#000> 팀 <colcolor=#000> 최종 순위
2013 손승락 46 넥센 4위[45]
2014 손승락 32 넥센 2위
2015 임창용 33 삼성 2위[46]
2016 김세현 36 넥센 3위
2017 손승락 37 롯데 3위
2018 정우람 35 한화 3위
2019 하재훈 36 SK 3위[47]
2020 조상우 33 키움 5위
2021 오승환 44 삼성 3위[48]
2022 고우석 42 LG 3위[49]
2023 서진용 42 SSG 3위
2024 정해영 31 KIA 1위

3.2. 깨졌으나 애매한 경우

3.2.1. 이영민 타격상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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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타격상 수상자들이 프로에 와서 부진한다는 징크스. 최정, 김현수 이후로 깨졌다고 볼 수는 있는데, 완전히 깨졌다기엔 또 애매하다.

3.2.2. KBO 리그 3위의 저주/축복(2016~2020, 2022/2021, 2023)

2016년 넥센이 3위로 마감하고 이듬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이후 2020년까지 4년 연속으로 계속 최종 순위 3위로 시즌을 마치면 이듬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저주가 알려졌다. 전·후기리그와 양대리그를 제외하고, 2016년 이전까지는 7번[50] 밖에 없었다가, 길어야 3년 연속이었지만, 2017년 이후 6년 동안 5번이 일어났다.

사실 이는 어느정도 납득이 가는 이유가 있는데, 대체로 3위가 준PO에 오르거나, 아니면 PO에서 업셋당할 때 나오는 순위인데, 2017년, 2019년, 2022년을 제외하면 가을야구 경험 부족으로 인해 준PO에서 멈추거나 업셋당하는 경우가 많았고[51], 그 여파가 다음 년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내팀 kt wiz가 보란듯이 이 저주를 깨부쉈다.
팀 및 해당 시즌 당해 성적 이듬해 성적 이듬해 감독 결과
2016년 넥센 3위 7위 장정석 2016년에는 준플레이오프가 끝나고 자진 사퇴한 염경엽 감독을 이어 지휘봉을 잡았지만 좋지 않은 경기 운영을 보이며 5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7년 롯데 7위 조원우 2017년 8월부터 엄청난 UTU를 보였던 모습과 달리 2018년에는 조원우 감독이 다시 조석두의 모습을 보이며 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8년 한화 9위 한용덕 제라드 호잉 으로 2018년 6월까지 6할 승률을 기록하는 등 SK와 2위 싸움을 하다 최종 3위로 암흑기를 청산했다. 시즌 후 탈삼진왕 키버스 샘슨을 포기하고 더 강력한 용병 투수 워릭 서폴드 채드 벨을 데려왔지만 2019년에는 롯데와 뒤에서 2위 싸움을 하며 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19년 SK[A] 9위 염경엽 2019년 정규시즌 극후반에 1위에서 2위로, 플레이오프 스윕패로 2위에서 3위로 미끌어지면서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다. 그래도 전 3팀과는 달리 저주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염경엽 감독이 쓰러지고 타자들의 극심한 부진, 닉 킹엄 리카르도 핀토의 부상과 부진으로 자신의 역할을 못해주면서 시즌 내내 한화와 어둠의 한국시리즈를 펼쳤다. 그러면서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20년 kt[A] 통합 우승 이강철 창단 첫 통합우승

kt가 저주를 깬 이후 3위는 다음과 같다. 2022년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되면서 바로 저주에 걸렸다. 하지만 2023년에 LG의 정규시즌 우승을 함으로써 깨졌고, 통합 우승까지 하면서 '3위 후 포스트시즌 탈락 or 통합우승'으로 바뀌게 되었다.[54]이대로라면 2025년 통합우승은 LG 트윈스
팀 및 해당 시즌 당해 성적 이듬해 성적 이듬해 감독 결과
2021년 삼성[A] 3위 7위 허삼영 7월 들어 13연패라는 졸전 끝에 9위까지 추락하고 허삼영 감독이 자진사퇴했다. 이후 박진만이 팀을 수습했지만, 13연패의 임팩트가 너무도 큰 탓인지 결국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10월 4일)되면서 최종 순위는 7위가 됐다.
2022년 LG[A] 통합 우승 염경엽 29년만의 통합우승
2023년 SSG 6위 이숭용 사상 최초의 5위 타이 브레이커에서 패했다.
2024년 LG 염경엽

3.2.3. 전기 턱걸이 탈락 팀의 저주(1982~1999/2001~2021)

2000년을 끝으로 양대리그 제도가 막을 내리고 2001년 현재의 에스컬레이터식 포스트시즌 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가을야구 턱걸이 탈락 팀(8~9구단 체제 당시엔 5위, 10구단 체제 이후 6위)이 종합 우승은 커녕 정규시즌 우승도 차지한 사례는 2021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재 주목도는 낮지만 2000년 이후 20년 넘게 이어져왔던 굉장히 지독한 징크스였다. 단일리그제로 전환된 1989년 이후 현재 전 시즌 턱걸이 팀이 다음 해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사례는 양대리그 시절 1999년 5위로 시즌을 마친 뒤 2000년 극강의 팀으로 대변신해서 우승을 차지한 현대 유니콘스와 2021년 6위로 시즌을 마친 뒤 2022년 시즌 개막부터 폐막까지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은 SSG 랜더스가 한국시리즈에서 키움 히어로즈 상대로 4승 2패를 거둬 우승을 차지한 것이 끝이다.

그런데 현대의 경우는 자세히 뜯어보면 당시는 양대리그 시절이었는데 드림리그 4팀 중 3위를 했고 현대는 0.535의 승률로 8개 구단 통합 승률 순위 5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그 해 현대의 승률을 단순히 놓고 보면 포스트시즌에 못 간 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여기에는 당시 리그 여건의 문제가 있는데 가난한 살림 탓에 주축 선수들을 부자 구단에 팔아넘기고 승점자판기 수준으로 전락한 쌍방울 레이더스 때문에 승률 인플레 현상이 일어났다. 그 해 8개 구단 중 7위였던 해태의 승률이 0.465였을 정도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단일리그제 전환 이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사례는 2022년 SSG가 유일하다.

1989년부터 단일리그제로 전환하고 에스컬레이터식 포스트시즌 제도가 정착한 이후 현재까지 당시 턱걸이 탈락 팀들의 다음 시즌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승률이 5할 이상이거나 막차 탑승 팀(4위 혹은 5위)과 승차가 1.0경기 이하인 경우 굵은 글씨, 턱걸이 탈락 다음 시즌 꼴찌를 했을 경우 순위를 빨간 글씨로 표기했다.
턱걸이 순위 연도 최종 순위 구단명 다음 시즌 연도 정규시즌 최종 순위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
1989년 5위 OB 베어스 1990년 7위 PS 진출 실패
1990년 태평양 돌핀스 1991년 5위[57] PS 진출 실패
1991년 1992년 6위 PS 진출 실패
1992년 OB 베어스 1993년 3위 준PO 탈락[58]
1993년 빙그레 이글스 1994년 3위 PO 탈락[59]
1994년 삼성 라이온즈 1995년 5위 PS 진출 실패
1995년 1996년 6위 PS 진출 실패
1996년 롯데 자이언츠 1997년 8위[60] PS 진출 실패
1997년 OB 베어스 1998년 4위 준PO 탈락[61]
1998년 해태 타이거즈 1999년 7위 PS 진출 실패
1999년 현대 유니콘스 2000년 1위[62] KS 우승
2000년 6위[63] 해태 타이거즈 2001년 5위 PS 진출 실패
2001년 5위 KIA 타이거즈 2002년 2위 PO 탈락
2002년 두산 베어스 2003년 7위[64] PS 진출 실패
2003년 한화 이글스 2004년 7위 PS 진출 실패
2004년 SK 와이번스 2005년 3위 준PO 탈락
2005년 롯데 자이언츠 2006년 7위 PS 진출 실패
2006년 두산 베어스 2007년 2위 KS 준우승[65]
2007년 LG 트윈스 2008년 8위[66] PS 진출 실패
2008년 한화 이글스 2009년 8위[67] PS 진출 실패
2009년 삼성 라이온즈[68] 2010년 2위 KS 준우승[69]
2010년 KIA 타이거즈[70] 2011년 4위 준PO 탈락
2011년 두산 베어스 2012년 3위 준PO 탈락
2012년 KIA 타이거즈 2013년 8위[71] PS 진출 실패
2013년 롯데 자이언츠 2014년 7위[72] PS 진출 실패
2014년 SK 와이번스 2015년 5위 WC 탈락[73]
2015년 6위[74] 한화 이글스 2016년 7위[75] PS 진출 실패
2016년 SK 와이번스 2017년 5위 WC 탈락
2017년 LG 트윈스 2018년 8위[76] PS 진출 실패
2018년 삼성 라이온즈 2019년 8위 PS 진출 실패
2019년 kt wiz 2020년 2위[77] PO 탈락
2020년 KIA 타이거즈 2021년 9위[78] PS 진출 실패
2021년 SSG 랜더스 2022년 1위 KS 우승
2022년 NC 다이노스 2023년 4위 PO 탈락
2023년 KIA 타이거즈 2024년 1위 KS 우승
2024년 SSG 랜더스 2025년 미정 미정
1989년 이후 34년간 가을야구에라도 진출한 경우는 2023년 NC까지 포함해 15번 뿐이며, 나머지 19번은 모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심지어 저 중 1990년 OB, 1997년 롯데, 2007년 LG, 2008년 한화는 그 다음해에 최하위로 추락해버렸다. 그리고 굳이 최하위가 아니더라도 팀 역사에 남을 흑역사를 남긴 경우도 제법 있다. 대표적으로는 역대급 내팀내를 보여준 2018년 LG, 타어강 시즌인 2013년과 창단 첫 9위를 찍은 2021년의 KIA가 있다.

이렇게 저주가 오래 가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은 대체로 막판까지 포스트시즌 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상자와 체력소모가 많아지고, 그 여파가 다음년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위상 드래프트 지명권에서 중위 순번이여서 이전 순위에서 지명받은 팀들이 어지간한 자원을 다 쓸어가버리니 그나마 나은 선수를 건져야 한다는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도 원인이 되기도 한다. 기존의 선수는 체력이나 부상 리스크가 생기지, 거기에다가 하위팀보다 좋은 선수를 데리고 갈 가능성도 낮으니 다음 년도에 굴러떨어지는 것이다. 이 중 그나마 수습을 잘 한다고 볼 수 있는 팀이 SK인데, 해당 사례들을 보면 그 다음 해에 못해도 와일드카드전은 진출하는 등 적어도 다음 해에도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팀들은 예외없이 최소 한 번 이상은 하위권으로 꼬라박았으며, kt 역시 수습을 잘 한 편이기는 하나 아직 한 번 뿐이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렇기에 SK의 계보를 잇는 SSG에 대한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SSG가 결국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음으로써 일단 저주의 절반은 깨지는 게 확정되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키움을 상대로 마침내 우승에 성공하면서 20년 넘게 이어져온 저주에 확실히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우승한 경우에는 그 해 전후에 구단 내외부적으로 혼란이 생기는데, 2000년 현대는 시즌 전 연고지 이전이라는 사태로 인해 야구계 전체를 뒤흔들었고 2022년 SSG는 우승 이후 SSG 랜더스 구단 운영 비선실세 개입 의혹으로 인해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이다.

2023년 6위에 머무른 KIA가 2024년에 좋지 못한 성적을 내면 이 징크스는 다시 시작된다. 심지어 2024년 KIA의 경우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장정석 단장과 김종국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나면서 대혼란에 빠졌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2024년 전반기 1위는 물론 후반기에도 1위를 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결국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전에 이 저주를 극복한 SSG가 2025년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이 저주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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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해결

3.3.1. 와후 추장의 저주 (1948~2021/현재진행)

파일:external/www.clevelandfrowns.com/Wahoo.jpg
염소의 저주가 깨진 후 MLB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커다란 저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는 1948년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못했는데, 이는 ML 30개 팀 가운데 네 번째로 긴 기간이다.[79] 가디언스는 1915년부터 2021년까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라는 팀명을 사용했고, 팀 로고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바탕으로 한 마스코트인 '와후 추장'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웃고 있는 모양으로 박아넣어 원주민들의 원한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는데, 일명 '와후 추장의 저주(Curse of Chief Wahoo)'라고 한다.

클리블랜드는 1948년 우승 이후 6년 뒤인 1954년 108승을 거두고 아메리칸 리그를 제패하며 월드 시리즈 진출에 성공하지만, 상대인 뉴욕 자이언츠와의 1차전에서 윌리 메이스의 레전설 호수비인 더 캐치가 나오면서 졌고, 이후 4연패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밥 펠러, 밥 레몬, 루 부드로, 래리 도비 등 전성기를 이끈 스타들이 순차적으로 팀을 떠나면서 암흑기가 도래했고 긴 리빌딩의 시간을 거치며 1995년 중부지구+아메리칸 리그를 제패할 때까지 무려 41년을 패배의 시간으로 보내야 했다.[80] 거기다 비슷한 처지였던 시카고 컵스 어니 뱅크스, 빌리 윌리엄스, 퍼거슨 젠킨스, 라인 샌드버그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어 간간히 중상위권을 왔다갔다 했지만, 클리블랜드는 그마저도 없었다[81]. 그러다 1980년대 말부터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단행해 알버트 벨- 찰스 내기- 샌디 알로마 주니어- 짐 토미- 매니 라미레즈- 카를로스 바에르가를 팜에서 발굴하고 케니 로프턴- 오마 비즈켈을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1995년부터 알중부의 패자로 군림하는 데 성공하지만, 저 시기에 끝내 월드시리즈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 내용을 설명하면 1995년 41년만에 진출한 월드 시리즈에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2승 4패로 졌고[82][83],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마무리 호세 메사가 7차전 9회말 2사에 동점을 허용하고 11회말 에드가 렌테리아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3승 4패로 패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성적이 좋은 건 아니라서 리그 우승을 한 2번을 제외하고 1996년엔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8~99년에 보스턴 레드삭스, 2001년엔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패했다. 가장 최근에 월드시리즈에 가까웠던 2007년 ALCS에선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3승 1패로 앞서가다 3연패를 당해 다잡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놓친 적이 있다.[84]

이 저주를 의식한 것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클리블랜드는 2011년 기존의 홈 유니폼을 제외한 리트로 스타일의 홈 유니폼과 원정 유니폼, 얼트 유니폼(원정) 착용 시 경기에 쓰는 모자와 헬멧의 패치를 와후 추장 로고에서 알파벳 C로 바꾸었고 공교롭게도 2011 시즌에는 초반 지구 1위의 호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중부지구 1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15게임이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2위에 그치고 말았고, 2위 주제에 승률이 겨우 0.494로 당연히 와일드카드 획득도 실패. 막판까지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열전에 대해 알고 싶다면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를 참조하자. 2013년에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깨지면서 66년째 우승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에 중부지구 1위를 차지하고 2016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3:0으로 스윕하고 2016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만약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면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 그리고 드디어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꺾고 2016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리고 상대편으로는 NLCS에서 시카고 컵스가 올라와 염소의 저주와 와후추장의 저주라는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클리블랜드는 9년 전 보스턴에게 패퇴한 것과 똑같이, 3승 1패로 앞서다 3연패를 당해 고배를 마셨다. 르브론 제임스의 캐브스하고 비교되는 대목이었다.[85] 결국 염소의 저주가 깨진 대신 이 저주는 계속해서 남게 되었고, 후술하는 다른 하나의 징크스가 71년만에 깨졌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정규 시즌에 22연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한 후 승률 1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ALDS에서 첫 2경기를 승리로 이끈 것이 무색한 눈이 썩는 야구를 선보이며 뉴욕 양키스에게 2:3로 리버스 스윕당하면서 허무하게 탈락하고 만다.

2018년을 마지막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 측에서 유니폼을 포함, 그라운드에서 모두 와후 추장 로고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항목의 저주 때문은 아니며 와후 추장 로고의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되었던 인종 차별 논란 때문에 구단에서 없애기로 결정했고, 커미셔너의 승인까지 받았다고 한다.[86] 인디언스의 레전드 짐 토미 역시 자신의 명예의 전당 명패에 와후 추장 로고를 달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저 디자인을 좋아하는 팬들은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정규시즌엔 중부지구가 다 리빌딩 모드로 들어가며 꿀지구가 된 걸 놓치지 않고 무난하게 지구 우승을 했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타선이 3경기 합쳐서 9안타에 불펜이 무너지며 탈락했다.

2022 시즌부터 클리블랜드 가디언스(Cleveland Guardians)로 팀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인디언스라는 팀명으로 저주를 풀어내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사실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우승하지 못한 것은 저주라기보단 클리블랜드 구단이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손 꼽히는 스몰마켓+짠돌이 수전노 구단주 탓이 크다. 오죽하면 팀 최고 계약이 2022년에서야 맺은 호세 라미레즈5년 124M일까... 이런 마켓 규모에도 불구하고 육성을 잘하고 특히 전통적으로 투수를 상당히 잘 길러내 팬들이 지속적으로 좋아할만한 성적을 내주고 있다. 물론 스몰마켓에 최악의 짠돌이 오너인 것은 변하지 않아 잘 키운 선발 투수들은 연봉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트레이드되기에 아주 높이 올라가지는 못하는 중. 그나마도 가디언즈가 속한 지구인 AL 중부의 팀 상태가 하나같이 개판이거나 기복이 심해서 지구우승 경쟁은 꾸준히 하고 있다.

가디언스로 팀명을 변경한 첫 시즌에도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으나, 또 한번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2승 3패로 탈락했다. 2023 시즌에는 지구 3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 이후 2024 시즌에는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갔으나 또 양키스에게 당하며 탈락.

2016년 10월 3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에서 이 저주에 대한 내용이 익스트림 서프라이즈로 소개되었으며 때마침 클리블랜드가 진출한 월드 시리즈 개최 시기라 이를 의식한 편성인 듯하다.

3.3.2. 김성근의 저주(1989~2017)

김성근이 경질되는 팀마다 한동안 부진하게 되는 저주. 야구계에선 김성근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 남지 않는다는 식으로 회자되곤 한다. 대체로 선수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는 김성근 특유의 운영 스타일의 후유증, 그리고 팀 자체의 케미 붕괴에 따른 결과 등 다양한 이유로 본다. 다만 아래 사례 중에서 쌍방울은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주전 선수를 모두 팔아치우면서 자초한 것이라 딱히 김성근의 저주라고 하긴 힘들다.

4. 관련 문서



[1] 투수코치 선동열은 여전히 평가가 좋다. 특히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현장 1년 공백기를 뚫고 진가를 발휘했다. [2]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88년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 4연속 우승. [3]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교기사가 올라오는 것, 언플 열심히 하는 삼성 기사와 성적으로 보여주는 대구 FC 기사의 수가 큰 차이가 안 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 그리고 삼성 왕조 시절 팬들이 대구 FC로 넘어온 정황이 응원가(엠프 없는 엘도라도 등)와 기사 댓글에서 보인다. [4] 이 유니폼을 처음 입기 시작한 시즌이 1995년으로 27년 전이고 마지막으로 입은 시즌이 15년 전인 2007년이므로 올드 유니폼이 맞기는 하다. [5] 착용 기간 중 승률이 7할이 넘는다. [6] 정작 KIA도 01년도 회색 유니폼을 입고 롯데한테 1승 1무 4패로 거하게 털린 후 삼성을 만났다. [7] 롯데전 1패, KIA전 3패. 덕분에 저주받았다 평가받던 KIA의 01헤리티지 유니폼 전적은 4승 1무 4패로 나름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8] 이전에는 16시즌 두산도 있었지만, 그래도 준우승이라는 점이 참작되어 삭제되었다. [9] PO에서 이기면 다음 단계가 KS이므로 당연히 코시에는 가지만, 준PO에서 LG를 꺾은 팀들도 전부 플옵까지 업셋을 일궈내고 한국시리즈로 향했다. [10] 하지만 냉정히 보자면, 선수단 분위기가 쑥대밭이 아니었다고 해도 두산을 상대로 이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2016년 두산은 정규 시즌 승률 6할 5푼이라는 미친 성적을 낸 KBO 역사에 손꼽히는 강팀이었기 때문이다. [11] SSG 랜더스 [12] 다만 서스펜디드 게임의 영향도 한 몫 했다. 2024 신한 SOL Bank KBO 한국시리즈/1차전 문서 참고. [13] KIA는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진출 시 100% 확률로 우승을 거뒀기 때문에 이게 실현된다면 정말 창과 방패 싸움이 될 것이다. [14] 롯데의 유일한 우승 엠블럼이다. [15] 일본에 있는 치바 롯데 마린즈의 로고와 갈매기의 각도와 영문 표기만 다르다. [16] 롯데의 마지막 가을야구 엠블럼이다. [17] LG가 MBC 청룡을 인수한 이후 타 구단의 모기업을 홍보하는 꼴이 되어버려 안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18] 이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우승을 하려면 안경 쓴 우완 투수가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될 신기록을 세워야만 우승할 수 있다는 미신 아닌 미신을 믿게 되었다. [19] 정확히 말하면 김휘집 실책 이후 얼빠가 괜찮아 그럴수 있어라고 격려를 해주고 있었는데 고척아재가 다음 타자가 한유섬인데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러냐며 핀잔을 주자 실랑이가 벌어진 것. 그 뒤 한유섬은 잡아서 얼빠가 기고만장해하자 고척 아재가 위의 말을 한 것이다. 정황상 얼빠가 김휘집 팬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위의 저주를 몰랐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20] 이 말을 하자마자 후안 라가레스에게 투런 홈런을 맞아 역전 당하며, 키움은 3차전을 내주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 결과를 보게 된 얼빠는 쪽팔렸는지 말없이 자리로 돌아가 짐을 싸더니 8회말에 구장을 떠났다고 한다. [21] 2007 한국시리즈 3차전 이대수한 이닝 3실책을 저지르며 대패한 뒤 분위기가 넘어가 2선승후 4연패로 준우승에 머물렀고, 2013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이다손 손시헌이 실책을 저지르며 이 스노우볼로 유희관이 일찍 강판되며 경기를 패배했고, 시리즈는 3승1패후 3연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22] 2002 시즌 : 11승 8패 | 2003 시즌 : 13승 6패 [23] 1917년까지는 간판투수였다. 이후 외야수로 옮겼지만 아직 투수로도 출장했다. [24] 현대의 오타니 쇼헤이처럼 투타겸업을 했었다. 다만 베이브루스를 계속 투타겸업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후대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1918년과 1919년 2시즌만 한 거고 그전까지는 전업투수, 그 이후에는 전업타자(우익수 및 1루수)였다. 전업타자 시절에 팬서비스 이벤트 개념으로 몇년에 한두 경기씩 시즌 후반에 투수로 나오긴 했지만 극소수이므로 투타겸업으로 볼 수는 없다. 지명타자가 없던 시절이라, 전업 투수때 투수타자로 나온 기록을 보고 투타겸업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는 모든 선발투수들이 다 타자를 했다. [25] 그것도 항상 3승 4패로 한 끗 차이로 우승하지 못했다. 특히 1975년엔 7차전에서 3-0으로 앞서다가 4-3으로 역전패, 1986년엔 밑에 언급했듯이 6차전에서 알까기 후, 7차전에서 패배 [26] 당시 화이트삭스의 에이스였던 에디 시코티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기 싫어서 일부러 기용하지 않아서 옵션을 채우지 못하게 하거나, 웬만한 타팀 선수들이 1만 달러는 받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조 잭슨의 연봉이 달랑 6천달러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시. [27] 펜실베이니아라는 주의 이름 자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28] 참고로 시청 건물의 높이는 548피트인데, 548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레전드 3루수인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 홈런수이기도 하다. [29] 1983년 시즌 NBA의 세븐티식서스와 MLB의 필리스. NHL의 플라이어스는 1975년 이후 아직도 스탠리 컵 우승이 없다. [30] 선수 부인들을 갈구거나, 선수 기용에 간섭을 했었다. [31] 다만 네모토 리쿠오는 이해 4월 사망해 일본시리즈 우승을 보진 못했으며 1999년 시즌 내내 다이에 선수단은 덕아웃에 네모토의 영정을 놓고 경기에 임했다. [32] 2012년 닛폰햄, 2013년 라쿠텐, 2016년 닛폰햄이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과 2016년에는 일본시리즈까지 제패했다. [33] 김영덕 감독이 OB 베어스 선수들의 뒤통수를 쳐버리고 삼성 감독으로 온터라 1984년 전기리그에서 두 팀 간에 난투극이 있기도 했고, OB 베어스는 1984년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삼성 못지않은 강팀이었다. 그리고 사실 2023년 기준으로 KIA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바로 다음으로 우승 횟수가 많은 팀이 두산 베어스다. [34] 전기리그 상대전적이 9승 1패였다. [35] 이쪽도 만만치 않아서 OB가 2승을 날로 먹는 대신 해태 김일권에게 도루 기록을 헌납했다고 한다. [36] 1984년 시즌 성적 27승 13패 방어율 2.40. 한시즌 80경기이던 시절이다. [37] 져줄려고 내보낸 삼성 라이온즈 2진급한테 7-0으로 털리던 팀이고, 실제로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전 페넌트레이스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38] 이에 비견될 정도의 기록은 두산 베어스 2020년 한국시리즈 4차전부터 2021년 한국시리즈까지 한국시리즈 7연패(敗), 통산 9회 준우승 기록 정도밖에 없다. 한 번만 더 준우승하면 삼성 라이온즈의 통산 10회 준우승과 타이. [39] 다만 최준석은 롯데에서는 25번을 달았다. [40] 2016년 시즌 중 제대, 홍상삼은 2016 시즌에 27번을 달았음 [41] 그 외에도 2007년 우승 당시에는 흰색 홈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확정지었지만 초반 2연패 이후 붉은 원정 유니폼을 입고 3연승에 성공하며 시리즈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당시 징크스에 엄청 민감하게 반응하던 김성근 SK 감독도 이것을 의식하여 홈경기인 6차전에서 점퍼 안에 몰래 붉은색 원정 유니폼을 입었을 정도. [42] 9월 10일 한화전~ 9월 23일 kt전 [43] 색감이 미묘하게 다르다. SK는 다홍색, SSG는 와인색에 좀 더 가깝다. [44] 다만 키움은 우승을 못했지만 가을야구에 꾸준히 진출했던 강팀이었다. 그러나 2023년 안우진, 이정후의 동반 이탈로 팀 전력이 심히 망가졌고, 5강 진출이 힘들다고 느끼자 1순위 지명권 확보를 위해 탱킹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45] 정규 시즌 3위 [46] 정규 시즌 1위 [47] 정규 시즌 2위 [48] 정규 시즌 2위 [49] 정규 시즌 2위 [50] 한화 2회(1995, 2008), 태평양 1회(1990), OB 1회(1994), LG 1회(1996), 쌍방울 1회(1998), SK 1회(2006) [51] 2017년, 2022년은 감독의 운영 실패, 2019년은 9게임 차이를 뒤집힌 충격이 컸다. [A] 준플레이오프 승리 팀에 업셋 허용 [A] [54] 홀수시즌에 3위를 하면 포스트시즌 탈락, 짝수시즌에 3위를 하면 통합우승을 하고 있다. [A] [A] [57] 김성근의 저주가 본격적으로 발현한데다 호쾌한 타격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물방망이 팀에 타격야구 DNA를 심겠다고 나선 박영길 당시 감독의 패착이 결합해서 망한 시즌이었다. [58] 전 시즌 턱걸이 탈락 팀이 다음 시즌 가을야구에 나간 최초의 사례. 그러나 하필이면 옆집에게 광탈당했다. 그리고 이듬해 옆집이 신바람 야구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때 OB 선수들이 감독에게 집단 항명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59] 그 해 준플레이오프에서 무려 해태 타이거즈를 스윕승하며 플레이오프로 올라왔지만 태평양 돌핀스의 돌풍에 스윕패당했다. [60] 응답하라 1997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당시 성동일 코치의 극중 소속팀 이름에 롯데 자이언츠라는 이름은 없지만 부산 갈매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누가 봐도 롯데 얘기임을 알 수 있다. [61] 1993년에 이어 또 다시 옆집에게 스윕패당했다. [62] 2016년 두산 베어스가 93승 기록을 쓰기 전까지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었다. [63] 양대리그 시절의 기록으로 당시 해태의 성적은 8개 구단 중 6위였다. 그러나 와일드카드로 통합 승률 5위 롯데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에 6위 해태가 턱걸이 팀이 됐다. [64] 시즌 초반 50경기동안은 백골프의 롯데만도 못한 11승 39패를 기록하는 등 최하위권에 박혔다. 이 성적은 무려 원년 삼미랑 동률이었고 결국 이 시즌을 끝으로 김인식 감독이 팀을 떠났다. [65] 여기 사례들 중 우승한 현대와 SSG를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우승 가까이까지 간 경우였는데,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SK를 2:0까지 몰아붙였으나 3차전 벤치 클리어링을 계기로 급속히 무너지고 말았다. [66] LG 트윈스 창단 이래 최저 승률, 최다 패배를 기록한 LG 역사상 최악의 시즌. [67] 5886899678의 시작점이 된 시기. [68] 이 해 포스트시즌에서 턱걸이로 탈락하는 바람에 삼성의 포스트시즌 연속 진출 시즌 숫자가 12에서 멈추고 말았다. [69] 극강의 팀이었던 SK에게 0:4로 무력하게 패배하여 결국 선동열 감독이 경질되었다. [70] 전 시즌인 2009년 페넌트레이스와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시즌으로 그 유명한 16연패로 인한 잠실 기아팬의 난이 터진 시즌이며, 전 시즌 우승팀이 다음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는 이 불명예 기록은 무려 11년이 지난 2021년의 NC가 나오기 전까지 마지막 기록이었다. [71] KBO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및 설레발 참사 중 하나인 타어강이 바로 이때 나왔다. [72] 전년도의 높은 승률이 한화발 승률 인플레로 인한 승률이었음이 드러난 시즌으로, 결국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였으며, 그동안 곪아있던 프론트 문제가 제대로 터저버렸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항목 참조. [73] 장렬한 히 드랍 더 볼이 나온 그 경기. [74] 제10구단 kt wiz가 리그에 참여하고 포스트시즌이 4강제에서 5강제로 확대되면서 6위가 턱걸이 순위로 내려갔다. [75] 본격 마리한화를 찍으며 인기를 얻었지만, 장기적으로 팀을 망가뜨렸고, 김성근 신화도 이 때를 계기로 완전히 무너졌다. 김성근/2015년/평가, 김성근/2016년/평가 문서도 참조. [76] 옆집에게 무려 1승 15패를 헌납하면서 2위에서 8위까지 내팀내했다. [77] 시즌 3위였던 두산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업셋을 당해 최종 순위는 3위이다. [78]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를 찍은 시즌 중 하나. KIA 타이거즈/2021년/문제점 항목 참조. [79] 시카고 컵스는 10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88년, 보스턴 레드삭스는 86년이 걸려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현재 이 팀들의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는 시카고 컵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3회, 보스턴 레드삭스는 9회다. [80] 밥 펠러는 단순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스타만이 아닌 톰 시버, 그렉 매덕스, 밥 깁슨, 클레이튼 커쇼와 같이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투수로 뽑히는 인물이었다. [81] 위의 시카고 컵스 스타들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82] 이 때 6차전에서 결승 홈런을 친 데이비드 저스티스는 2년 뒤 클리블랜드로 이적했다. [83] 웃긴 건 당시 애틀랜타는 90년대 NL 서부지구의 패자로서 90년대에 총 5번이나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만 1995년 월드 시리즈에서만 우승하고 나머지는 다 준우승을 했다. 그 유일한 우승의 제물이 된 것이다. [84] 그 이후 보스턴은 콜로라도를 상대로 스웝을 하고 우승했다. [85] 그들은 1승 3패 후 3연승으로 저주를 깨고 역사를 세웠다. [86] 같은 이유로 NFL의 워싱턴 레드스킨스 역시 워싱턴 커맨더스로 팀명을 변경했다. [87] 당시 숭의야구장의 외야 펜스 그물망 높이를 무려 7m까지 높였던 것도 김성근의 아이디어였다. 어차피 치지 못할 홈런이라면 맞지나 말자는 뜻에서 그물망 높이를 한껏 올렸다. [88] 당장 9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려 리그 최강팀이었던 해태는 물론이고 당시 든든한 자금력을 앞세워 부자구단이라고 불렸던 삼성, 현대보다도 연봉총액이 높았다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