헹가래 투수 胴上げ投手 | Tossing Pitch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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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세레머니를 펼치는 정해영과 KIA 타이거즈 선수들. | 2024년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세레머니를 펼치는 워커 뷸러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선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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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세레머니를 펼치는 모리하라 코헤이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선수들. |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세레머니를 펼치는 오타니 쇼헤이와 일본 선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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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구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을 때 마운드에 있던 투수를 일컫는 말. 일본야구에서 사용되는 용어인 胴上げ投手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1]2. 상세
당연히 팀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가진 1선발 또는 마무리 투수가 헹가래 투수로 등판하는 경우가 99% 이상이다. 해당 이닝만 끝나면 우승을 확정지으니 팀 입장에서는 최강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를 아낄 필요 없이 출격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우승 확정 장면은 100%의 확률로 해당 연도 우승의 자료화면으로 등장하니 해당 투수에게는 더없는 영광일 수밖에 없는 만큼 팀의 상징적인 투수를 등판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지역적 요소를 중시하는 KBO 리그의 경우 연고지 출신 토종 투수를 헹가래 투수로 내는 경우가 많다.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해 봐야 1선발 및 마무리를 이미 소진하거나 다음 경기를 위해서 등판을 아껴야 할 때 등 극단적인 상황[2], 예를 들자면 에이스가 해당 경기 선발 투수로 등판한 상황에서 마무리가 연투로 인해 지쳐서 등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나 아니면 작가질이나 연장 승부 등으로 인해 마운드에서 이미 강판되었을 때 정도가 아니고서야 팀내 최고 투수가 등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이러한 극단적인 예외상황에서도 남은 선수들 중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2선발 또는 셋업맨 등)가 등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9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였던 배영수[3]도 팀 입장에서는 남은 투수 중 가장 강력한 투수였기에[4] 등판한 것이었다.
헹가래 투수인 만큼 우승을 확정지은 경기가 홈 팀의 끝내기 득점으로 끝날 경우[5] 존재할 수가 없다.
상술했듯이 우승 확정 장면은 두고두고 자료화면으로 우려먹을 예정인 만큼 헹가래 투수(및 포수)가 된다는 것은 해당 선수에게는 큰 영광이자 팀의 상징적인 선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우승을 확정지은 투수가 헹가래가 아닌 (주로 포수와) 포옹하는 세레머니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KBO, NPB처럼 헹가래 투수에 특별히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으며 꼭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에 나와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려고 팀의 1선발이 등판하거나,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 마무리가 등판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가령 2020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헹가래 투수는 롱릴리프로서 2⅓이닝을 막은 3선발 훌리오 유리아스였으며, 가장 최근인 2023년 월드 시리즈에서도 시리즈 내내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호세 르클럭이 아닌 조시 스보즈가 경기를 끝냈다. 2024년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선발 투수 워커 뷸러가 세이브를 따내며 마무리한것도 그가 팀의 에이스인것보다 그냥 다저스에 더 이상 낼 투수가 없어서( ...)였다. 그 전날과 이 날 정말 모든 불펜투수들을 탈탈 털어 썼기에 어쩔 수 없이 뷸러를 올린 것. 실제로 뷸러가 당해 포스트시즌에서 잘하긴 했으나 정규시즌 성적은 부상 여파로 인해 폐급 수준이었다. 즉, 특별한 의미를 뒀다기보단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쩔수없이 짜낸 계책인 셈. 그나마 비슷한 사례라면 2018년 월드 시리즈의 크리스 세일 정도인데, 당시 세일은 부상 여파로 포스트시즌에서 이닝을 많이 소화할 수 없어 선발로는 4~5이닝만 소화했고, 중간에 불펜으로 나오기도 했으니 완전히 동일한 사례는 아니긴 하다.[6]
3. 각 리그의 헹가래 투수
3.1. KBO 리그
KBO 리그에서 헹가래 투수가 존재하지 않는 시즌은 2002년과 2009년으로 두 해 모두 시리즈 최종전이 끝내기 홈런으로 끝났기 때문[7]이다. 1985년도 한국시리즈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으나, 우승 확정이지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이 아니므로 통합 우승을 확정지은 구덕 롯데전[8]의 마지막 투수였던 김시진을 행가래 투수로 보기도 한다.[9]3.1.1. 역대 KBO 한국시리즈 헹가래 투수 목록
헹가래 투수 뿐만 아니라 헹가래 포수, 마지막 타자, 마지막 타구의 결과를 기록한다. 상술하였듯이 2002년과 2009년은 헹가래 투수가 없지만 해당 시즌 우승을 확정짓는 장면에 등장하는 선수라는 점에서 끝내기를 친 타자 및 당시 상대팀 배터리 역시 기록한다. 헹가래 배터리는 볼드체로 표기하고, 끝내기로 시리즈가 끝난 경우 끝내기를 친 타자를 볼드체로 표기한다.연도 | KS | 마지막 투수 | 마지막 포수 | 마지막 타자 | 마지막 타구 결과 |
1982년 | 6차전 | 박철순(OB) | 김경문(OB) | 배대웅(삼성) |
유격수
유지훤 앞 땅볼 1루수 신경식 캐치 |
1983년 | 5차전 | 이상윤(해태) | 김무종(해태) | 김인식(MBC) |
유격수
서정환 앞 땅볼 1루수 김일환 캐치 |
1984년 | 7차전 | 최동원(롯데) | 한문연(롯데) | 장태수(삼성) | 헛스윙 삼진 아웃[10] |
1985년[11] | - | 김시진(삼성) | 이만수(삼성) | 한영준(롯데) |
투수
김시진 앞 땅볼 1루수 함학수 캐치 |
1986년 | 5차전 | 선동열(해태) | 김무종(해태) | 홍승규(삼성) | 중견수 김일권 플라이 아웃 |
1987년 | 4차전 | 김정수(해태) | 김무종(해태) | 김동재(삼성) | 중견수 이순철 플라이 아웃 |
1988년 | 6차전 | 문희수(해태) | 장채근(해태) | 황병일(빙그레) | 헛스윙 삼진 아웃 |
1989년 | 5차전 | 선동열(해태) | 장채근(해태) | 황대연(빙그레) | 헛스윙 삼진 아웃 |
1990년 | 4차전 | 정삼흠(LG) | 심재원(LG) | 이종두(삼성) | 헛스윙 삼진 아웃 |
1991년 | 4차전 | 선동열(해태) | 장채근(해태) | 임성우(빙그레) | 루킹 삼진 아웃[12] |
1992년 | 5차전 | 박동희(롯데) | 김선일(롯데) | 양용모(빙그레) | 2루수 박정태 앞 땅볼 아웃[13] |
1993년 | 7차전 | 선동열(해태) | 정회열(해태) | 이만수(삼성) |
유격수
이종범 앞 땅볼 1루수 김성한 캐치 |
1994년 | 4차전 | 김용수(LG) | 김동수(LG) | 김성갑(태평양) |
투수
김용수 앞 땅볼 1루수 서용빈 캐치 |
1995년 | 7차전 | 권명철(OB) | 김태형(OB) | 손동일(롯데) |
투수
권명철 앞 땅볼 1루수 김형석 캐치 |
1996년 | 6차전 | 이대진(해태) | 정회열(해태) | 장광호(현대) | 우익수 이호성 플라이 아웃 |
1997년 | 5차전 | 김상진(해태) | 최해식(해태) | 박종호(LG) | 중견수 김창희 플라이 아웃 |
1998년 | 6차전 | 정민태(현대) | 박경완(현대) | 유지현(LG) | 중견수 이숭용 플라이 아웃 |
1999년 | 5차전 | 구대성(한화) | 조경택(한화) | 박현승(롯데) |
2루수
임수민 앞 땅볼 1루수 로마이어 캐치 |
2000년 | 7차전 | 임선동(현대) | 박경완(현대) | 이도형(두산) | 좌익수 김인호[14] 플라이 아웃 |
2001년 | 6차전 | 진필중(두산) | 홍성흔(두산) | 마해영(삼성) | 헛스윙 삼진 아웃 |
2002년 | 6차전 | 최원호(LG) | 조인성(LG) | 마해영(삼성) | 우측 끝내기 솔로홈런 |
2003년 | 7차전 | 정민태(현대) | 김동수(현대) | 이진영(SK) |
유격수
박진만 앞 병살타 1루수 이숭용 캐치[15] |
2004년 | 9차전 | 조용준(현대) | 김동수(현대) | 강동우(삼성) | 1루수 이숭용 앞 땅볼 아웃 |
2005년 | 4차전 | 오승환(삼성) | 진갑용(삼성) | 장원진(두산) | 3루수 조동찬 플라이 아웃 |
2006년 | 6차전 | 오승환(삼성) | 진갑용(삼성) | 데이비스(한화) | 헛스윙 삼진 아웃 |
2007년 | 6차전 | 정대현(SK) | 박경완(SK) | 이종욱(두산) | 루킹 삼진 아웃 |
2008년 | 5차전 | 채병용(SK) | 박경완(SK) | 김현수(두산) |
투수
채병용 앞 병살타 포수 박경완 캐치 후 송구 1루수 이진영 캐치[16] |
2009년 | 7차전 | 채병용(SK) | 정상호(SK) | 나지완(KIA) | 좌측 끝내기 솔로홈런[17] |
2010년 | 4차전 | 김광현(SK) | 박경완(SK) | 현재윤(삼성) | 루킹 삼진 아웃 |
2011년 | 5차전 | 오승환(삼성) | 진갑용(삼성) | 정상호(SK) |
3루수
박석민 앞 땅볼 1루수 채태인 캐치 |
2012년 | 6차전 | 오승환(삼성) | 진갑용(삼성) | 최정(SK) | 우익수 박한이 플라이 아웃 |
2013년 | 7차전 | 오승환(삼성) | 진갑용(삼성) | 손시헌(두산) | 중견수 정형식 플라이 아웃 |
2014년 | 6차전 | 임창용(삼성) | 진갑용(삼성) | 박병호(넥센) | 우익수 박한이 플라이 아웃 |
2015년 | 5차전 | 이현승(두산) | 양의지(두산) | 배영섭(삼성) | 루킹 삼진 아웃 |
2016년 | 4차전 | 이용찬(두산) | 양의지(두산) | 이호준(NC) | 2루수 오재원 플라이 아웃 |
2017년 | 5차전 | 양현종(KIA) | 김민식(KIA) | 김재호(두산) | 포수 김민식 플라이 아웃 |
2018년 | 6차전 | 김광현(SK) | 허도환(SK) | 박건우(두산) | 헛스윙 삼진 아웃 |
2019년 | 4차전 | 배영수(두산) | 박세혁(두산) | 샌즈(키움) |
투수
배영수 앞 땅볼 1루수 오재일 캐치 |
2020년 | 6차전 | 원종현(NC) | 양의지(NC) | 최주환(두산) | 헛스윙 삼진 아웃 |
2021년 | 4차전 | 김재윤(KT) | 장성우(KT) | 박세혁(두산) | 1루수 강백호 앞 땅볼 아웃 |
2022년 | 6차전 | 김광현(SSG) | 이재원(SSG) | 이지영(키움) | 1루수 오태곤 라인드라이브 아웃 |
2023년 | 5차전 | 고우석(LG) | 박동원(LG) | 배정대(KT) | 2루수 신민재 플라이 아웃 |
2024년 | 5차전 | 정해영(KIA) | 김태군(KIA) | 김성윤(삼성) | 헛스윙 삼진 아웃[18] |
3.1.2. KBO 리그 헹가래 투수 관련 이야깃거리
- KBO 리그 헹가래 투수 최다 경험자는 오승환의 5회(2005, 2006, 2011, 2012, 2013)이며[19], 그외에 2회 이상 헹가래 투수를 경험해본 선수로는 선동열(4회 - 1986, 1989, 1991, 1993), 김광현(3회 - 2010, 2018, 2022), 정민태(2회 - 1998, 2003)가 있다. 채병용은 2008년과 2009년에 마지막 투수로 마운드에 있었으나 2009년에는 헹가래 투수가 아닌 끝내기 홈런을 맞은 허용투수(...)였다.[20] 그 외에는 모두 1번씩밖에 경험하지 못하였다.
- 헹가래 포수 최다 경험자는 진갑용의 6회(2005, 2006, 2011, 2012, 2013, 2014)이며, 그 다음이 박경완의 5회(1998, 2000, 2007, 2008, 2010), 김무종(1983, 1986, 1987)과 장채근(1988, 1989, 1991), 김동수(1994, 2003, 2004), 양의지(2015, 2016, 2020)가 각각 3회씩을 경험하였다.
- 헹가래 배터리 최다 경험 조합 역시 오승환- 진갑용 배터리의 5회(2005, 2006, 2011, 2012, 2013)이며, 그 다음이 선동열- 장채근 배터리가 2회(1989, 1991) 경험하였다.
- 준우승팀 선수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2회 이상 우승 허용타자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 타자는 마해영이 2회를 기록하였고[21] 허용선수는 정상호가 2회를 기록하였다(...).[22] 이외에도 이만수와 박세혁은 헹가래 포수와 허용타자를 둘다 기록하기도 하였다.[23]
- 전문 선발투수[24]가 한국시리즈의 마무리의 상징성을 위해 등판해서 세이브를 따낸 사례는 김광현이 2010년, 2018년, 2022년 무려 세 번[25] 기록하였고, 권명철(1995), 정민태(1998), 임선동(2000), 채병용(2008), 양현종(2017)이 각각 1회씩 기록하였다. 이중 마지막 1이닝만 막아낸 것은 채병용(2008), 양현종(2017), 김광현(2018)이 있고, 1이닝 미만을 막아낸 사례를 포함하면 김광현(2022, 0.2이닝)의 사례가 하나 더 있다.
- 2개 이상의 서로 다른 구단 소속으로 헹가래 투수를 경험한 선수는 없으며, 포수는 김동수[26]와 박경완[27]과 양의지[28]가 있다.[29]
- 우승 당시 타구[30]는 삼진이 13회(헛스윙 삼진[31] 9회, 루킹 삼진 4회), 뜬공이 14회(중견수 5회, 우익수, 2루수가 3회씩, 포수, 3루수, 좌익수가 1회씩), 땅볼이 14회(투수 5회, 유격수 4회, 2루수 2회, 1루수 2회, 3루수 1회), 라인드라이브가 1회(1루수 1회), 끝내기 홈런이 2회(좌중간 솔로홈런 1회, 우측 솔로홈런 1회)였다. 이 중 병살타로 우승을 확정지은 경우는 2회[32]이며, 번트 타구 아웃(...)[33]으로 우승을 확정지은 경우도 1회있다.
- 삼진 아웃을 제외하고 우승 확정 타구를 가장 많이 처리한 야수[34]는 이숭용[35]과 박한이[36]의 2회이다.
- 우승 당시 요일은 월요일 7회[37], 수요일, 토요일이 각각 6회[38], 금요일 4회[39], 가장 적은 목요일이 3회[40], 가장 많은 화요일, 일요일이 각각 8회[41]로 기록되고 있다.
- 우승을 확정한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완투를 함으로써 헹가래 투수가 된 선수는 5명으로 1982년 박철순, 1984년 최동원, 1988년 문희수, 1997년 김상진[42], 2003년의 정민태이다.
- 헹가래 투수가 해당 연도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수상한 적은 2022년까지 10회 있었다[43]. 반대로 한국시리즈 MVP를 타고도 헹가래 투수가 되지 못한 적은 1986년 김정수, 1990년 김용수, 1996년 이강철의 3명이다.[44]
- 외국인 선수가 헹가래 투수가 된 사례가 몇 번 있는 일본프로야구와 달리 2022년 현재까지 KBO에서 외국인 선수가 헹가래 투수가 된 적이 없다. 아무래도 팀의 상징적인 투수나 마무리 투수는 보통 국내 선수가 맡기 때문이다. 허용 타자가 외국인 선수이였던 사례는 2006년 데이비스와 2019년 샌즈로 현재까지 총 두 번 있다.[45]
- 한편 포수가 한국시리즈 MVP에 등극한 것은 1991년의 장채근과 2016년, 2020년의 양의지로 2명인데, 이 두 선수 모두 해당 한국시리즈 헹가래 포수가 되었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 나머지 야수들 중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동시에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도 처리한 행운을 경험한 선수는 1993년의 이종범이 유일. 동시에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 처리 경험과 MVP 수상 경험이 모두 있는 선수는 추가적으로 박진만[46]과 박한이[47] 가 있다.
- 정회열은 1993년 한국시리즈,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헹가레 포수를 정해영은 2024년 한국시리즈에서 헹가래 투수가 되어 부자가 헹가레 투수, 헹가레 포수가 되는 진기록을 달성하였다.
-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의 박철순이 삼성 배대웅의 크게 바운드된 타구를 처리하기 위해 점프를 하다가 땅바닥에 허리부터 떨어지며[48] 큰 부상을 당하였으나, 유지훤이 날렵하게 처리하며 박철순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한국시리즈 최초의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 허리 부상 때문에 그 뒤로는 부상과 재활의 반복이었으니 헹가래 투수로 인한 대가는 너무 컸다.
- 1994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였던 김용수는, 2023년 한국시리즈 이전까지 LG 트윈스의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MVP를 차지했던 경험이 있다.[49]
-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9회 말 2사 1,2루 8대 6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신동주가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쳤다. 타구를 처리하러 내려온 야수가 수비 좋기로 유명한 명품 유격수 박진만이기 때문에 이대로 우승을 확정짓나 싶었지만...박진만이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며[50][51] 1점을 내 주게 되었다. 다행히도 다음 타자인 강동우를 1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박진만이 뜬공을 정상적으로 포구하였다면 박진만은 2년 연속으로 우승 확정 타구를 처리하게 되는 것이었고, 상술했던 최다 우승 확정 타구 처리 기록 역시 이숭용에서 박진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52]
- 2017년 한국시리즈와 2018년 한국시리즈는 모두 각 팀을 대표하자 리그를 대표하는 양현종과 김광현이 나와서 두산을 상대로 마지막 1이닝을 잡고 세이브를 올렸다. 상술했듯 전문 선발투수가 올라와서 세이브를 올리는 상황은 의외로 매우 드물었는데, 2017년 이전까진 4번밖에 없었고, 마지막 1이닝만을 책임진 것은 2008년의 채병용이 유일했다. 그렇지만 2017년과 2018년은 모두 팀의 1선발이 나와서 마지막 1이닝만을 마무리짓고 세이브를 올림과 동시에 행가래 투수가 되었다. 이 두 명의 투수는 모두 시리즈가 끝나지 않는다면 다음 경기 선발이 유력했지만 1점 차에서 과감하게 투입하여 승리를 지켜냈다.
- 2018년 한국시리즈에선 행가래 투수는 아니지만 경기를 마무리짓기 위해 두산이 1점 차로 앞선 9회초에 1선발 조쉬 린드블럼을 등판시켜 1이닝을 책임지고 세이브를 올리려 하였다. 그러나 2사에서 최정에게 홈런을 맞으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였고, 연장으로 접어든 경기에서 SK가 득점을 하자 이번엔 SK의 1선발인 김광현이 세이브를 위해 등판했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냄과 동시에 행가래 투수가 되었다. 즉, 한 경기에서 1점차 상황에서 세이브를 위해 각 팀의 1선발이 모두 등판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참고로 두 선수는 각각 해당시즌 투수 중 용병 WAR 1위[53], 토종 WAR 1위를 기록한, 말 그대로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였다.
-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 9회 말 9대 8로 앞서 있던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 이용찬[54]이 등판해 1사 만루 위기까지 몰리는 상황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다음 타자인 김규민을 투수 앞 땅볼로 아웃시켜 한숨을 돌리고 이어지는 타자인 서건창을 상대로 3루 땅볼을 유도하였다. 이렇게 무난히 헹가래 투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만 3루수 허경민이 실책을 하며 동점을 내 주고 말았다. 어찌저찌 다음 타자인 김하성을 잡아내며 끝내기 위기를 넘기고 이어지는 10회 초 공격에서 두산 타선이 2점을 뽑아내면서 다시 헹가래 투수가 될 기회가 생겼지만... 선두타자 이정후를 중견수 뜬공으로 돌려세운 후 김태형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하면서 마운드 방문 횟수 초과로 인해 자동 교체되는 해프닝이 발생하였다.[55] 이로 인해 투수가 배영수로 교체되었고,[56] 배영수가 박병호를 삼진으로, 샌즈를 투수 땅볼로 돌려세우며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허경민의 실책과 김태형 감독의 미스가 2019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를 바꾼 사건이었다.[57][58] 혹자는 이를 두고 배영수가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을 달성함[59]에도 승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 아쉬운 마무리를 15년이 지나서야 매조지었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 2020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 원종현은 사실 5년 전, 선수가 아닌 경기 시구자로 나온 적이 있었다. 원종현 항목 보면 알겠지만 대장암 발병으로 인해 사실상 재활이냐 은퇴냐의 선수생활 기로에 놓여 있던 상황이었고, NC 구단이 시구자로서의 영예를 챙겨 준 것에 가까웠다. 그 이후 원종현은 항암치료와 재활에 성공하여 NC 다이노스의 든든한 마무리로, 결국은 한국시리즈 우승 순간의 영광을 마운드에서 누리게 되었다. 인간승리의 한 예.[60]
- 2022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 김광현은 전날 선발투수로 등판해 84구를 던졌음에도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9회말 1사 상황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다만 9회초 시작부터 올라오지 못하고, 선두타자 야시엘 푸이그를 언더핸드 투수 박종훈을 원포인트 투입하여 처리한 후 1사 상황에서 등판하였다.
- 2024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투수 정해영은 1993년 한국시리즈의 헹가래 포수 정회열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3.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3.2.1. 역대 월드 시리즈 헹가래 투수 목록
※ 1903, 1919, 1920, 1921년 월드시리즈는 9전5선승제, 그 외 7전4선승제3.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헹가래 투수 관련 이야깃거리
3.3. 일본프로야구
3.3.1. 역대 일본시리즈 헹가래 투수 목록
3.3.2. 일본프로야구 헹가래 투수 관련 이야깃거리
- 1979년 일본시리즈의 헹가래 투수였던 에나츠 유타카가 7차전 9회에 올라와서 21개의 공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창단 첫 우승을 장식한 경기는 훗날 에나츠의 21구라는 일화로 알려지게 된다.
- 1985년 일본시리즈의 헹가래 투수였던 리치 게일은 2차전에서 선발로 나서 승리를 거둔 뒤, 6차전에서 선발로 나서 완투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한신 타이거스가 첫 우승을 거둔 뒤 다음 일본시리즈 우승까지는 무려 38년이나 걸렸다.
- 1987년 일본시리즈 6차전에서 중견수 아키야마 코지가 시리즈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낼 때, 2차전의 승리 투수이자, 6차전 당시 선발이면서도 완투를 하고, 결과적으로 1986년 일본시리즈에 이어 2년 연속 시리즈 MVP에 오른 헹가래 투수였던 쿠도 키미야스의 모자를 벗으면서 만세를 한 세리머니도 아주 유명하다.
- 2013년 일본시리즈의 행가레 투수였던 다나카 마사히로는 전날 160구 완투패를 기록했음에도 7차전에 마무리를 위해 등판해 1이닝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라쿠텐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4.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헹가래 투수
연도 | 마지막 투수 | 마지막 포수 | 마지막 타자 | 마지막 타구 결과 |
2006년 |
오츠카 아키노리 ( 일본) |
사토자키 토모야 ( 일본) |
율리에스키 구리엘 ( 쿠바) |
스윙 삼진 아웃 |
2009년 |
다르빗슈 유 ( 일본) |
조지마 겐지 ( 일본) |
정근우 ( 대한민국) |
스윙 삼진 아웃 |
2013년 |
페르난도 로드니 ( 도미니카 공화국) |
카를로스 산타나 ( 도미니카 공화국) |
루이스 피구에로아 ( 푸에르토리코) |
스윙 삼진 아웃 |
2017년 |
데이비드 로버트슨 ( 미국) |
조나단 루크로이 ( 미국) |
카를로스 코레아 ( 푸에르토리코) |
3루수 놀란 아레나도 땅볼 아웃 |
2023년 |
오타니 쇼헤이 ( 일본) |
나카무라 유헤이 ( 일본) |
마이크 트라웃 ( 미국) |
스윙 삼진 아웃 |
[1]
胴上げ라는 단어가 일본어로
헹가래라는 뜻이다.
[2]
물론 등판하는 투수는 감독 마음.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는 다음 경기 선발이었던
양현종을
마무리 투수로 등판시켰다. 1사 만루까지 채워지는 등 위기가 많았으나 침착하게 잘 막아서 다행이지, 실패했다면...
[3]
정규시즌 37경기 등판 45⅓이닝 소화에 그쳤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크게 이기거나 지는 상황에서의 등판이었다.
[4]
4차전 선발
유희관이 조기강판 되면서 불펜진을 총동원하였고 이 상태에서 연장에 돌입한 탓에 남은 투수가 배영수를 제외하면 상대전적이 매우 부진한
권혁과 혹시 모를 5차전을 위해 아껴 두어야 하는
린드블럼 뿐이었다.
[5]
대표적으로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확정지은
2002,
2009년 한국시리즈 등
[6]
다른 사례를 찾아보면
2006년 월드 시리즈의
애덤 웨인라이트는 당시만 해도 불펜 투수로 뛰었고 포스트시즌 당시에는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의 부상으로 마무리 역할을 소화하는 상태였기에 완전히 다른 사례고,
2017년 월드 시리즈의
찰리 모튼이나
2020년 월드 시리즈의
훌리오 우리아스는 1선발이 9회에 올라와 마무리한게 아니라 3~4선발격 선수가 롱 릴리버로 나와서 그대로 끝까지 던진 사례.
[7]
단 2002년 한국시리즈는 7차전이 아닌 6차전에서 끝난
홈팀의 끝내기
[8]
공교롭게도 1985년 롯데는 통합 및 후기리그 2위를 달성하여 준우승을 했다.
[9]
실제로 김시진은 삼성 라이온즈 소속에 1985년 통합우승 이외에 우승은 고사하고 3번의 준우승만 맛을 보았다. 결국,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을 했지만 92년도 롯데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을 땐 오히려 성적이 폭망이라 은퇴를 했다. 그가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본건 투수코치로 뛴
1998년 한국시리즈 였다.
[10]
영상에도 나오지만 체크스윙을 했고, 구심이 배트가 돌았다고 판정하며 헛스윙 삼진이 되었다.
[11]
통합우승을 확정지은 구덕 삼성-롯데전의 마지막 선수들
[12]
당시 영상을 보면 체크스윙을 하는 모습이 보여 헛스윙 삼진이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심판의 삼진콜을 보면 루킹 삼진임을 알 수 있다. 체크스윙으로 헛스윙 삼진 아웃당한 1984년의 장태수와 비교해 보자. 또한, 루심의 체크스윙 판정보다 주심의 판정이 우선이므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고 판단되면 체크스윙 여부와 상관없이 스트라이크 아웃을 선언한다.
[13]
1루로 송구하지 않고 직접 2루 베이스를 터치하여 아웃하였다. 당시 1루에 주자가 있었던 상태.
[14]
이 때 좌익수를 맡았던 선수를
전준호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아마 마지막 아웃카운트 당시 캐스터가 중견수였던 전준호의 이름을 계속해서 콜한데다(좌중간으로 뜬 타구였기 때문에 좌익수와 중견수 모두 처리가 가능한 타구였다.), 전준호가 현대 이적 이후에는 주로 좌익수 출전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착각을 한 듯.
[15]
박진만이 직접 2루를 밟고 던진 6-3 병살타였다.
[16]
1사 만루 상황 1-2-3 병살타.
[17]
2024년까지도 한국시리즈의 유일한 7차전 끝내기 홈런이다.
[18]
정확히는 파울 팁 아웃. 김태군이 본인 미트를 확인하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19]
오승환은 KBO에서 유일하게 2년 연속 헹가래 투수 및 3년 연속 헹가래 투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20]
2002년의
최원호와 함께 유이하다.
[21]
2001년 마지막 타자로 나와 삼진을 당하며 우승 허용타자가 되었으나(...) 그 상대는 진필중인데 2006년 이 둘은 LG에서 나란히 만나게 된다. 이듬해인 2002년에 우승을 확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쳤다!
[22]
2009년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허용포수를 기록하였고, 2년 뒤인 2011년에 마지막 타자로 나와 3루수 땅볼로 아웃되며 허용타자를 기록하였다(...)
[23]
이만수는 1985년 헹가래 포수와 1993년 허용타자, 박세혁은 2019년 헹가래 포수와 2021년 허용타자. 다만 1985년의 이만수는 당시 통합우승으로 확정짓는 헹가래 포수라서 한국시리즈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한국시리즈 헹가래 포수가 아니긴 하다.
[24]
선동열, 구대성같이 정규시즌때도 선발과 마무리를 왔다갔다한 선수 제외
[25]
김광현이 KBO 커리어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건 이 세 경기가 전부이며, 정규시즌에서의 세이브는 2020시즌 MLB 데뷔전에서 처음 기록하였다.
[26]
1994년에는 LG 소속, 2003년과 2004년에는 현대 소속으로 헹가래 포수 경험
[27]
1998년과 2000년에 현대 소속으로, 2007, 2008, 2010년에 SK 소속으로 헹가래 포수 경험
[28]
2015, 2016년에 두산 소속으로, 2020년에 NC 소속으로 헹가래 포수 경험
[29]
김동수와 박경완 그리고 양의지는 우승시즌에 한번씩은 골든글러브 수상을 했었다.
[30]
편의상 삼진도 포함한다.
[31]
체크스윙으로 인한 삼진도 포함
[32]
2003년 6-3 병살, 2008년 1-2-3 병살
[33]
1985년 통합우승 확정 당시 롯데의
한영준이 기습번트를 시도했으나 그대로 아웃되고 말았다.
[34]
편의상 타구를 직접 받은 야수만 기록. 예를 들면 6-4-3 병살타에서 유격수-2루수-1루수가 모두 수비에 관여하지만 해당 상황에서는 최초로 타구를 처리한 유격수만 카운트한다.
[35]
1998년에 중견수 플라이 아웃, 2004년에 1루수 땅볼 아웃을 처리함.
[36]
2012년과 2014년에 각각 우익수 플라이 아웃 처리.
[37]
2004, 2007, 2011, 2017, 2018, 2023~2024
[38]
수: 1988, 1989, 1992, 1996, 2005, 2016/토: 1986, 1997, 2003, 2009, 2015, 2019
[39]
1998, 1999, 2008, 2013
[40]
1983, 2012, 2021
[41]
화:1982, 1984, 1993, 2000, 2010, 2014, 2020, 2022/일: 1987, 1990, 1991, 1994, 1995, 2001, 2002, 2006
[42]
최연소 완투이다. 1977년생이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완투승을 했으니.
[43]
1988년 문희수, 1992년 박동희, 1994년 김용수, 1998년 정민태, 1999년 구대성, 2003년 정민태, 2004년 조용준, 2005년 오승환, 2011년 오승환, 2017년 양현종
[44]
이 3명의 선수들이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우승을 확정한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한 것. 즉,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투수들은 모두 우승을 확정짓는 경기에 등판한 것이다!
[45]
데이비스와 센즈 두 선수 모두 그 타석이 KBO 커리어의 마지막 타석이 되었다.
[46]
2003년 유격수 앞 병살타 처리를 하여 우승을 확정지었고 2006년에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47]
2012년에 우승확정 포구, 2013년에 한국시리즈 MVP 수상(우승확정 포구는 옆에 있던 중견수 정형식이 기록), 2014년에 다시 우승확정 포구를 하며 아쉽게 기록을 놓쳤다.
[48]
당시 박철순은 진통제를 맞아가며 허리 부상을 참고 투구를 하고 있었다.
[49]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까마득한 후배이자 유격수인
오지환이 MVP를 차지했다.
[50]
사실 이것은 박진만 혼자만을 탓하기는 어려운 것이, 그 당시
폭우 중에 경기를 강행하고 있던 중이라 공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51]
공교롭게도 이는 박진만이 현대 유니폼을 입고 보여준 마지막 플레이였다.
[52]
이숭용의 우승 확정 타구 처리 기록 2번 중 1번이 2004년에 강동우의 1루수 땅볼 처리였다. 박진만이 타구를 잘 처리했으면 이숭용이 타구를 처리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53]
투수 전체 WAR 1위
[54]
정규시즌에는 5선발이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낙점되었다. 이미 1차전 9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구원승을, 3차전 7회에 등판하여 3이닝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55]
KBO 리그 규칙 상 투수 교체를 제외한 단순한 코칭스태프의 마운드 방문은 1경기 2회로 제한된다. 이후에는 무조건 자동 교체다. 이 날 경기에서 두산은 이미 2회와 9회에 코칭스태프의 마운드 방문이 있었다. 2013년 한국시리즈 당시에도 두산이 그 규정을 놓쳐 준우승을 한 이력 때문인지 그 충격으로 마운드에 웬만하면 코치들이 적당히 올라가도록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2019년 역시 두산 팬들도 이용찬이 갑자기 바뀌면서 갸우뚱했다고 한다.
[56]
당시 두산이 교체 가능했던 투수는 배영수, 권혁, 조쉬 린드블럼 3명 뿐이었는데, 권혁은 우타자 상대로 심각하게 부진하기 때문에 우타 거포인
박병호와
제리 샌즈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고, 린드블럼은 로테이션상 5차전 선발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등판 자체가 무리수였다. 참고로 린드블럼이 출장 가능 선수로 등록된 것은 코칭스태프의 커뮤니케이션 오류였다고 한다. 김태형 감독은 이영하를 출장 가능 선수에 넣고 린드블럼을 미출장 선수에 넣는 것을 생각했다고.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면 추격조이자 노장 투수인 배영수 대신 강속구 투수이자 영건 에이스인 이영하가 등판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57]
참고로 이용찬은 이미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헹가래 투수가 된 적이 있었다. 2019년에도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면 선동열, 정민태, 오승환, 김광현에 이어 KBO리그 역대 5번째로 2번 이상 헹가래 투수가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58]
이와는 별개로 허경민의 실책은 또 다른 나비효과를 가져왔는데, 기존에 한국시리즈 MVP를 투표하였을 당시에는 박세혁이 MVP로 선정되었으나, 이 실책으로 인해 경기가 연장으로 가면서 MVP를 재투표하게 되었고 그 결과 MVP가 박세혁에서 오재일로 바뀌게 되었다. 헹가래 투수와 한국시리즈 MVP를 바꿔버린 의외로 중요했던 사건이었다. 게다가 최초의 부자 MVP 탄생도 무산시킨 셈이다.
[59]
이날 경기는 아쉽게도 무승부로 끝났었다. 배영수 다음으로 올라온 투수는
권오준이였다.
[60]
게다가 원종현은 암 투병 이전에도 팔꿈치 부상과 부진으로 은퇴 기로에 놓여있던 적도 있었다. NC 다이노스 창단 시 입단테스트에 자원하여 창단멤버로 들어올 당시 원종현은 "1군에서 단 한 번이라도 공을 던지고 은퇴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종현 개인으로 보면 두 번이나 야구인생 부활에 성공한 셈.
[61]
심지어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에서 대한민국의 금메달이 확정되는 병살타를 칠 당시의 그 정품 코스로 땅볼이 날아갔다.(...)
[62]
정확히는 니시오카 츠요시의 끝내기 수비방해로 병살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