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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3:20:11

김일환(1954)

김일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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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2.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3 1986 198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
창단 김일환
(1982)
최동원
(1983~1988)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번}}}
결번 김일환
(1983~1988.6.19.)
김태완
(1989~1991)
{{{#ff9933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6번}}}
김상기
(1983~1987)
김일환
(1988.6.20.~1989)
최용철
(1990)
}}} ||
파일:김일환(야구).jpg
두번째 줄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김일환이다. 윗줄은 김봉연, 김용남, 서정환. 가운데줄은 이상윤, 김일환, 김종모, 아래줄은 김일권, 김성한, 김종윤이다.
김일환
金一煥 | Kim Il-Hwan
출생 1954년 1월 11일 ([age(1954-01-11)]세)
경상남도 부산시 대연출장소
(現 부산광역시 남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산대연초 - 동성중 - 부산고 - 성균관대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2년 롯데 자이언츠 창단멤버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76~1981)
롯데 자이언츠 (1982)
해태 타이거즈 (1983~1988)
태평양 돌핀스 (1988~1989)
병역 육군 경리단 (1979~1981)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
3. 은퇴 후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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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화장품 야구단, 롯데 자이언츠, 해태 타이거즈, 태평양 돌핀스 출신 좌투좌타 내야수. 주포지션은 1루수. 특히 해태에서 우투수 전문 대타로 활약해 우승에 기여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또래보다 야구를 뒤늦게 시작한 케이스로, 부산동성중 2학년 때 투수로 야구에 입문했다. 부산고로 진학해 본격적으로 1루수로 포지션을 고정했고 그 후 성균관대에 진학했다.

한국화장품 야구단 창단 멤버로 활약해 27경기 연속안타기록을 가지고 있었을 만큼 실업야구 당시부터 컨택능력이 뛰어났다. 실업야구 당시 별명은 '안타 제조기.' 일명 부채꼴 타법으로 당겨치기, 밀어치기에 능한 컨택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79년에는 육군으로 입대해 육군 경리단에서 활약했으며, 1980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2.2. 프로 경력

1982년 롯데 자이언츠 창단멤버로 프로에 입단했지만, 방출되어 이듬해인 1983년에 좌타자가 부족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다.[1]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1984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 동안 주로 우투수 전문 대타로 뛰었다. 우타자로 도배가 되어있는 해태 타선이었기에 같은 좌타자인 송일섭과 함께 팀내 희소가치는 높았다.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4할의 맹타를 휘두르며 팀 우승에 공헌했다.[2][3]

1987년 5월 16일, 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로 화제가 됐던 사직 롯데전에서는 9회초 장채근의 대타로 나와 2루 주자 한대화를 불러들이는 동점 적시 2루타를 치면서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내기도 했다.[4][5] 그리고 이 적시타로 인해 이날 경기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1988년 6월 20일,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 이적하여 1시즌 반만 활동한 뒤 은퇴하게 된다.

3. 은퇴 후

은퇴 후 야구계를 아예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2002년 애틀랜타 부근에 하얀풍차 제과점(White Windmill Bakery)을 개업하여 현재까지도 경영중이다. 본점의 성공에 힘입어 지금은 분점 포함 5개의 점포로 늘어났다.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같은 시기 삼성 원년 멤버였던 내야수 서정환도 해태로 트레이드되었다. 다시 말해 김일환과 서정환 둘다 영남권에서 호남으로 이적한 것이다. [2]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부진했지만 그의 경험을 높게 산 김응용 감독이 2번 붙박이 1루수로 기용했고 김봉연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 [3] 198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번타자 겸 중견수 김일권 바로 다음 타순인 2번타자 겸 1루수로 뛰면서 해태의 창단 후 첫 우승에 기여했다. 당시 수비진은 포수 김무종, 1루 김일환, 2루 차영화, 3루 김성한, 유격수 서정환, 좌익수 김종모, 중견수 김일권, 우익수 김준환, 지명타자 김봉연, 투수 이상윤, 강만식, 김용남, 방수원, 주동식,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 조충열 등이 포진했다. [4] 같은 영남 출신 서정환과 나란히 타점을 올렸다. [5] 해태는 엔트리에 있는 포수 2명이 모두 교체되어 백인수가 포수를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