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 <tablebordercolor=#c30452>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1군 | ||
'''73
김일경 · 80
박경완 · 81
김정준 · 83
정수성 · 85 염경엽 [[틀:LG 트윈스 감독| ★ ]] · 93
장진용 · 94
김재율 · 97
모창민· 99 김광삼 · # 송지만''' |
|||
2군 | |||
'''71
김경태 · 75
김용의 · 76
윤진호 · 79
손지환 · 82 최경철 · 86 신재웅 · 89 양원혁 · # 이병규 [[틀:LG 트윈스 2군 감독| ★ ]]'''
|
|||
잔류·재활군 | |||
67 이종운 · 77 정주현 · 78 양영동 · 92 최상덕 | |||
트레이닝 파트 | |||
69
양희준 · 87
안영태 · 88
김용일 · 91
이권엽 · 95 고정환 · 96 배요한 · 98 박종곤 · 유현원 · 최재훈 · 김종욱 · 김국헌 |
|||
인스트럭터 | |||
퓨처스 황병일 | |||
프런트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1군 엔트리 | |||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
황병일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황병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O 리그 우승반지 |
|||||||||||||||||||||||||||||||||||||||||||||||||||||||||||||||||||||||||||||||||||||||||||||||||||||
1985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
|
1999 | 2009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131230> |
두산 베어스 2군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
|||||
초대 | 2대 | 3대 | 4대 | ||
강대중
(1983~1984) |
배수찬
(1985) |
이충순
(1986) |
이선덕
(1987) |
감독 대행 이광환 (1987) |
|
5대 | 6대 | 7대 | 8대 | ||
이광환
(1988) |
감독 대행 이선덕 (1989~1990) |
윤동균
(1990~1991) |
정연회
(1991~1994) |
손상대
(1995~1996) |
|
9대 | 10대 | 11대 | 12대 | 13대 | |
김윤겸
(1997) |
손상대
(1998) |
강태정
(1998) |
손상대
(1999~2003) |
송재박
(2004~2006) |
|
14대 | 15대 | 16대 | 17대 | ||
박종훈
(2007~2009) |
김광림
(2010) |
박승호
(2011) |
송재박
(2012) |
감독 대행 김우열 (2012) |
|
18대 | 19대 | 20대 | 21대 | 22대 | |
송일수
(2013) |
황병일
(2014) |
송재박
(2015) |
공필성
(2016~2017) |
이강철
(2017) |
|
23대 | 24대 | 25대 | 26대 | ||
강석천
(2018~2019) |
박철우
(2019~2021) |
이복근
(2022) |
이정훈
(2023~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0> |
kt wiz 2군 역대 감독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황병일
(2015) |
이광근
(2015~2016) |
이상훈
(2017~2018) |
김인호
(2019~2020) |
서용빈
(2021~2022) |
|
<rowcolor=#fff> 6대 | 7대 | ||||
김기태
(2023) |
김태한
(2024~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c30452><tablebgcolor=#c30452> |
LG 트윈스 2군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
<rowcolor=#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
최정상
(1983~1984) |
류영수
(1988) |
감독 대행 김충 (1988) |
류영수
(1989) |
박현식
(1990~1991) |
|
<rowcolor=#fff> 5대 | 6대 | 7대 | 8대 | 9대 | |
박용진
(1994~1996) |
김영덕
(1997~1998) |
이광은
(1999) |
김인식
(2000) |
김성근
(2001) |
|
<rowcolor=#fff> 9대 | 10대 | 11대 | 12대 | 13대 | |
감독 대행 김대진 (2001) |
권두조
(2002) |
김용수
(2003) |
이광환
(2004~2005) |
김인식
(2006) |
|
<rowcolor=#fff> 14대 | 15대 | 16대 | 17대 | 18대 | |
김영직
(2007~2009) |
김기태
(2010~2011) |
김영직
(2011) |
노찬엽
(2012~2013) |
김무관
(2014) |
|
<rowcolor=#fff> 19대 | 20대 | 21대 | 22대 | 23대 | |
조계현
(2014) |
김동수
(2015~2017) |
송구홍
(2018) |
황병일
(2019~2021) |
김동수
(2021) |
|
<rowcolor=#fff> 24대 | 25대 | 26대 | 27대 | 28대 | |
이종범
(2022) |
황병일
(2023) |
서용빈
(2024) |
김정준
(2024) |
이병규
(2025~)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8번 | ||||
김휘욱 (1982) |
→ |
황병일 (1983~1985) |
→ |
최무영 (1986~1989) |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43번 | ||||
팀 창단 | → |
<colbgcolor=#000><colcolor=#fff> 황병일 (1986~1990) |
→ |
윤석중 (1991~1992) |
빙그레 / 한화 이글스 등번호 90번 | ||||
결번 | → |
황병일 (1991~2002) |
→ |
우경하 (2005~2007) |
LG 트윈스 등번호 90번 | ||||
김용수 (2002) |
→ |
황병일 (2003) |
→ |
차명석 (2004~2007) |
LG 트윈스 등번호 88번 | ||||
박현식 (1991~1992) |
→ |
황병일 (2004~2005) |
→ |
허문회 (2008~2011) |
SK 와이번스 등번호 82번 | ||||
권두조 (2005) |
→ |
황병일 (2006) |
→ |
한문연 (2011) |
KIA 타이거즈 등번호 88번 | ||||
이건열 (2006~2007) |
→ |
황병일 (2008~2011) |
→ |
박철우 (2012~2013)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9번 | ||||
정회열 (2008~2011) |
→ |
황병일 (2012) |
→ |
이종두 (2013~2016) |
두산 베어스 등번호 83번 | ||||
이토 (2012) |
→ |
황병일 (2013) |
→ |
이광우 (2014~2021) |
두산 베어스 등번호 85번 | ||||
전상렬 (2012~2013) |
→ |
황병일 (2014) |
→ |
이상훈 (2015) |
kt wiz 등번호 87번 | ||||
결번 | → |
황병일 (2015~2016) |
→ |
김형석 (2017) |
LG 트윈스 등번호 79번 | ||||
양상문 (2014.5.11.~2017) |
→ |
황병일 (2018~2023) |
→ |
손지환 (2024~) |
}}} ||
|
|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퓨처스 인스트럭터 | |
황병일 黃炳一 | Hwang Byeong-Il |
|
출생 | 1960년 3월 22일 ([age(1960-03-22)]세) |
경상북도 포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포항중앙초 - 포항중 - 경북고 - 건국대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83년 1차 지명 (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83~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90) |
지도자 |
빙그레-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1991~1998)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1999~2000) 한화 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1)[1]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2001~2002)[2]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03)[3]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4]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SK 와이번스 2군 타격코치 (2006)[5] SK 와이번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06)[6]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7]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08)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9)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kt wiz 2군 감독 (2015)[8]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9]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LG 트윈스 2군 감독 (2019~2021)[10] LG 트윈스 1군 수석·타격코치 (2021)[11]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22) LG 트윈스 2군 감독 (2023) LG 트윈스 2군 인스트럭터 (2024~) |
해설위원 | TJB 라디오 야구 해설위원 (2007) |
[clearfix]
1. 개요
전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LG 트윈스 2군 감독.2. 선수 경력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다고 정평났으나,[12]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프로필상 포지션은 외야수였지만 내야수로도 활약했었다. 눈이 나빠서 야간 경기에는 거의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종 6차전의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나와, 해태 투수 문희수에게 삼진을 당하며 해태의 3년 연속 우승을 확정지어주는 제물이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나다는 것이 중평. 특히 장타의 중요성이 높아진 현대 야구에서 이런 코칭 방식이 더 빛을 발한다.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한화 이글스에서 함께 했던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다른 팀 코치였던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13],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14]
3.1. 빙그레-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은퇴 후 1991년부터 빙그레 이글스의 코치로 선임되면서 30대 초반이라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팀명이 한화 이글스로 바뀐 뒤에도 코치직을 유지했고,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에도 1군 타격코치였다. 한화 타격코치 시절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한화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만드는 데 일조했고, 덕분에 2000년대 초반 삼성의 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2002년까지 쭉 한화에서 코치를 하다가, 2002년 시즌 후 유승안 감독 부임과 동시에 코치진 개편이 이뤄지며 한화에서 물러났다.한화에서 나온 후 이광환 감독을 따라서 2003년부터 LG 트윈스의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이순철 감독 시절에는 수석코치를 맡았다. 다만 LG 1기 시절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황병일이 LG 코치로 재임하던 2003~2005년 LG의 성적은 666으로 한창 비밀번호를 찍기 시작하던 시절이기 때문. 더군다나 이 시절 팀 타격은 이병규나 박용택을 제외하면 역대급으로 빈약했던 시절이라 LG 타격코치 잔혹사가 열리기도 했다.[15] 결국 2005년 시즌 후 구단이 개입해 수석코치였던 황병일을 문책성 해임하고, 대신 양승호를 새 수석코치로 영입하면서 LG 1기 시절은 이걸로 끝.
2006년에는 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영입되어[16]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시즌 후 조범현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황병일 타격코치도 같이 재계약에 실패, 1년만에 SK를 떠났다.[17]
3.2.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
SK에서 나온 후 2007년 한 해 동안 야인으로 있다가, 2008년부터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과거 SK 시절 감독-코치로 호흡을 맞춘 인연으로 영입된 듯 하다. 영입 당시에는 2군 타격코치를 맡다가,[18] 2009년부터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고 최희섭- 김상현을 필두로 한 타선을 앞세워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여담으로 2009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분석자료 뭉치를 양손에 들어 허공에 날렸다. #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가 우승한 직후 1군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19][20] 2010년,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전년도에 비해서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고 하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이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자 실질적으로는 황병일 수석코치가 타격코치까지 겸직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21]
3.3.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
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사퇴하면서 황병일도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22]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러나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고, 시즌 후 사임하면서 1년만에 친정팀 유니폼을 도로 벗었다.[23]
3.4. 두산 베어스 코치 시절
|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송재박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고 송일수 2군 감독이 김진욱의 후임으로 신임 감독이 되자 공석이 된 2군 감독을 맡았다.
그렇게 2군 감독을 1년간 지내다가,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wiz로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다시 1년 만에 송재박 2군 타격코치가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3.5. kt wiz 2군 감독 및 수석 코치 시절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가, 4월 15일 자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황병일이 타격도 겸임하면서 이숭용이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10월 12일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후임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김진욱 감독의 부임 이후 수석코치에서 사임했다. 한 때 두산에서 함께한 점을 보면 의외로 보일 수 있는 부분.[24] 후임 수석코치는 이광길.
3.6. LG 트윈스 2기
|
2018시즌 중에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로 LG에 합류하였다.
시즌 종료 뒤 해임된 9명의 코치 중 한명이었지만 양상문 단장 사임 이후 철회되었고 다시 복귀했다. 기사 내용에 언급되어 있다. 동시에 새로 받은 보직은 2군 감독.
2020년에는 LG 2군을 유일한 6할대 승률로 27년만에 북부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젊은 선수들이 주로 주축을 이루었기에 고무적인 성과이다.
2020년 홍창기가 주전 리드오프로 자리잡고, 2021년에는 문보경도 퓨처스 폭격 뒤 1군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8월에는 이재원까지 1군에 3할대 타율로 자리잡으며 유망주의 무덤으로 악명높았던 LG에서 뛰어난 선수 육성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LG 역사상 가장 강한 뎁스를 만들고 있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공로자이다. 또한 2군에 다녀온 채은성[25]과 이천웅이 맹타를 휘두르자 찬사를 받고 있다.
2021년 9월 13일 분위기 쇄신을 위한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으로 1군 수석 및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수석코치였던 김동수가 2군 감독으로 전보되었다.[26]
황병일 코치의 효과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올라온 이후 LG 트윈스는 첫 주에 부진을 겪었으나, 그 이후 두자릿 수 득점 경기도 꽤 많아질 정도로 안정적인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희생타도 늘었으며 전반적으로 득점도 잘 되고 있다. 하지만 10월 이후로 타격이 다시 부진해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패배와 무승부도 급격하게 늘었다.
시즌 종료 후 이호준과 모창민이 코치로 합류하면서 2022 시즌에는 1군 수석코치직만 담당한다. 3월 21일 SSG전을 앞두고 류지현 감독이 코로나 확진이 되며 일주일 동안 LG 트윈스 감독대행을 한다.
2023년, 류지현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염경엽 감독이 취임하자 새 수석코치로는 김정준 SSG 랜더스 데이터센터장이 취임했다. 황병일 수석코치는 2군 감독으로 전보되었다.[27]
2023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팀을 떠났다. 문제는 황병일 대신 오는 작자가 서용빈이라 이 인사 이동은 크게 욕을 먹었다. 아니나다를까 서용빈과 LG 선수 출신 코칭스태프들이 2군을 망치면서 차명석은 최악의 평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24년 2월 7일, 퓨처스 인스트럭터로 약 3개월 만에 다시 팀에 복귀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rowcolor=#ffffff>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3 | 삼성 | 39 | 64 | .250 | 16 | 6 | 2 | 0 | 12 | 8 | 0 | 3 | .406 | .279 |
1984 | 37 | 51 | .137 | 7 | 1 | 0 | 2 | 5 | 4 | 0 | 8 | .275 | .254 | |
1985 | 9 | 10 | .100 | 1 | 0 | 0 | 0 | 2 | 0 | 0 | 0 | .100 | .100 | |
<rowcolor=#ffffff>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6 | 빙그레 | 75 | 260 | .242 | 63 | 9 | 2 | 3 | 21 | 25 | 12 | 24 | .327 | .305 |
1987 | 43 | 55 | .200 | 11 | 0 | 1 | 1 | 7 | 2 | 0 | 4 | .291 | .250 | |
1988 | 31 | 53 | .283 | 15 | 3 | 0 | 1 | 4 | 7 | 2 | 6 | .396 | .356 | |
1989 | 69 | 116 | .207 | 24 | 4 | 0 | 2 | 9 | 14 | 2 | 17 | .293 | .304 | |
1990 | 65 | 67 | .179 | 12 | 3 | 0 | 0 | 4 | 7 | 0 | 12 | .224 | .300 | |
KBO 리그 통산 (8시즌) |
368 | 676 | .200 | 149 | 26 | 5 | 9 | 64 | 67 | 16 | 74 | .314 | .295 |
5. 관련 문서
[1]
~6월 9일
[2]
6월 10일~
[3]
~5월 8일
[4]
5월 9일~
[5]
~5월 22일
[6]
5월 23일~6월 19일
[7]
6월 20일~
[8]
~4월 14일
[9]
4월 15일~
[10]
~9월 12일
[11]
9월 13일~
[12]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對
원광대전) 기록 보유자이다.
[13]
당시 현대 타격코치인
김용달은 자신의 이론에 선수를 끼워 맞추는 성향이었다. 이 문제는 김용달이 LG로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14]
물론
최경환이 연수도 없이 은퇴하자마자 바로 1군 타격코치가 된 이상 원래 타격코치였던 황병일 수석코치가 더 믿음직할 수 밖에 없다.
[15]
여담이지만 이 당시 LG 1군 타격코치는 이순철 감독이 데려온
이건열이었는데, 동국대 감독 부임 전까지는 타격코치로서 평가가 매우 나쁘기로 유명했다.
[16]
SK 창단 초기부터 코치로 있었던
김성래가 1군 메인 타격코치였고, 시즌 중 팀 타선 부진 여파로 인해 일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던
김기태를 귀국시킨 뒤 타격 보조코치로 영입해 코칭스태프를 보강했다.
[17]
확실한 것은 이 때부터 조범현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되며 조범현 사단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18]
2008년 당시 KIA 1군 타격코치는
박흥식이었다.
[19]
다만 이 과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는데, 한국시리즈 우승 후 겨우 4일만에 조범현 감독은 기존 수석코치였던
김종모를 해임하고 최측근이던 황병일 타격코치를 수석코치로 승격시켰다. 사실 조범현 감독은 선임 당시만 해도 해태-KIA 구단 역사상 최초로 비(非) 타이거즈 출신에 호남 지역과 아무런 연고가 없던 감독이었던 반면, 반대로 해태 프랜차이즈 출신인 김종모 수석코치는 사실상 구단 프런트에서 보험용으로 심어둔 인물에 가까웠다. 보통 수석코치 자리에는 감독의 최측근 인사를 선임하는 걸 생각하면 조범현 감독이 당연히 불편해 할 만했고 실제로 야구관 차이로 인해 의견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면서 구단 내 조범현 감독의 입김이 강해지자 김종모를 곧바로 내치고 자신의 측근인 황병일 코치를 수석코치로 앉힌 것.
[20]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종모가 술회하길 7차전 경기 직후 김종모를 제외한 코칭스태프들끼리 얼싸안고 기뻐할 때부터 느낌이 이상했으며, 축승회 때
정의선 부회장에게 인사할 때 조범현이 김종모 본인을 밀어내고 황병일을 인사시킬 때부터 자신이 내쳐질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한다. 황병일이 수석코치가 된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전임 수석코치인 김종모를 자를 때 사전에 언질을 주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범현 쪽에서 언질을 주지 않고 곧바로 해임한 것도 있다고 한다.
[21]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 수석코치가 사실상 타격코치까지 겸직한 바 있다.
[22]
이 때 같이 KIA에서 나온
장재중 배터리코치도 같이 삼성에 합류했다.
[23]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과
김종훈까지 3명이 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보조 타격코치로 보직이 바뀌었고, 2011 시즌 중반에 삼성 2군에 합류한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
[24]
다만 황병일은 애초부터 조범현이 데려온 인물이었기 때문에 한 때 김진욱과 함께 한 이력이 있어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25]
부진이 아닌 부상이 이유다.
[26]
그리고 시즌 끝나고 재계약에 실패한다.
[27]
동시에
이종범 2군 감독이 1군 주루코치로 전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