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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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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
'''68
손승락 · 71
이범호 [[틀:KIA 타이거즈 감독| ★ ]] · 72
김상훈 · 73
정재훈74 김주찬 · 75 조재영 · 77 홍세완 · 80 이현곤 83 타케시 · 85 이동걸 · 99 김민우''' |
|||
2군 | |||
'''70
진갑용 [[틀:KIA 타이거즈 2군 감독| ★ ]] · 78
최희섭 · 79
이정호 · 86
남원호 87 이해창 · 90 박효일 · 97 이상화''' |
|||
잔류군 | |||
81 윤해진 · 91 김석연 · 93 서덕원 | |||
트레이닝 파트 | |||
1군 박창민 · 정영 ·
정상옥 · 조희영 박준서 · 황종현 2군 김민기 · 조준회 · 백승훈 · 김동후 노민철 · 박정욱 · 김덕신 |
|||
프런트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타 KBO 리그 구단 명단 보기 | }}}}}}}}} |
이범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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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호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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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
||||||||||||||||||||||||||||||||||||||||||||||||||||||||||||||||||
2017 |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감독 |
2024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
2009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
KBO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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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
김용희 롯데 자이언츠 |
이광은 MBC 청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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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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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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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포토상 역대 수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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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정수근 두산 베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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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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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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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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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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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
|
최정 (2005~) 2018년 / 495홈런 |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
500도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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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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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 |
보유 기록 | |
통산 최다 만루홈런 | 17개[1] |
이범호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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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56번 | |||||||||||||||||||||||||||||||||||||||||||||||||||||||||||||||||||||||||||||||||||||||||||||||||||||||||||||||||||||||||||||||||||||||||||||||||||||||||||||||||||||||||||||||||||
이용섭 (1998~1999) |
→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범호 (2000~2001) |
→ |
피코타 (2002~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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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 ||||||||||||||||||||||||||||||||||||||||||||||||||||||||||||||||||||||||||||||||||||||||||||||||||||||||||||||||||||||||||||||||||||||||||||||||||||||||||||||||||||||||||||||||||||
심재윤 (2000~2001) |
→ |
이범호 (2002~2003) |
→ |
송창식 (2004~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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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7번 | ||||||||||||||||||||||||||||||||||||||||||||||||||||||||||||||||||||||||||||||||||||||||||||||||||||||||||||||||||||||||||||||||||||||||||||||||||||||||||||||||||||||||||||||||||||
백재호 (2000~2003) |
→ |
이범호 (2004~2009) |
→ |
송광민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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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8번 | ||||||||||||||||||||||||||||||||||||||||||||||||||||||||||||||||||||||||||||||||||||||||||||||||||||||||||||||||||||||||||||||||||||||||||||||||||||||||||||||||||||||||||||||||||||
에가와 토모아키 (2005~2009) |
→ |
이범호 (2010) |
→ |
윌리 모 페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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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25번 | ||||||||||||||||||||||||||||||||||||||||||||||||||||||||||||||||||||||||||||||||||||||||||||||||||||||||||||||||||||||||||||||||||||||||||||||||||||||||||||||||||||||||||||||||||||
고우석 (2010) |
→ |
이범호 (2011~2019.7.13.) |
→ |
박찬호 (2019.7.14.~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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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등번호 71번 | ||||||||||||||||||||||||||||||||||||||||||||||||||||||||||||||||||||||||||||||||||||||||||||||||||||||||||||||||||||||||||||||||||||||||||||||||||||||||||||||||||||||||||||||||||||
김상훈 (2019~2020) |
→ |
이범호 (2021~) |
→ | 현역 |
A대표팀 참가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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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a0029><colcolor=#ffffff> KIA 타이거즈 No. 71 [[감독#s-2| ★ ]]
|
|||
이범호 李杋浩 | Lee Beom-ho |
|||
출생 | 1981년 11월 25일 ([age(1981-11-25)]세) | ||
경상북도 의성군[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대구수창초 - 경운중 - 대구고 - 목원대 (행정정보학 01 / 학사)[3] | ||
신체 | 183cm, 96kg, O형 | ||
포지션 | 3루수[4], 유격수[5], 2루수[6]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 2000년 2차 1라운드 (전체 8번, 한화) |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2000~200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0) KIA 타이거즈 (2011~2019) |
||
지도자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연수코치 (2019)[7] 필라델피아 필리스 연수코치 (2020)[8]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21)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22~2023) KIA 타이거즈 감독 (2024~) |
||
프런트 | KIA 타이거즈 스카우트 (2020) | ||
병역 |
예술체육요원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계약 | 2025 - 2027 / 26억 원[9][10] | ||
연봉 | 2025 / 5억 원 | ||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ea0029><colcolor=#fff> 본관 | <colcolor=#373a3c,#ddd> 전주 이씨 | |
가족 | 배우자, 1남 2녀 | ||
종교 | 불교 | ||
등장곡 | 리쌍 - Yes. Ok (Feat. Double K) | ||
응원가 |
한화 시절:
클론 - 〈발로차〉[가사1] KIA 시절: 유정석 - 〈 질풍가도〉[가사2][13]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KIA 타이거즈 감독. 현역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 2024년 KBO 리그 1군 감독 중 최연소[18] 지도자다. 최초의 1980년대생 감독이자 이승엽과 더불어 통산 300홈런을 때려낸 유이한 감독이다.[19]현역 시절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간판 스타로 활약한 바 있으며, '꽃범호'[20]라는 별명이 생겼고 KBO 리그 통산 최다 만루홈런 기록 보유자[21]로 '만루의 사나이'로도 불렸다.
특히 2017년에는 선수로, 2024년에는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내면서 해태- KIA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의 선수·감독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22]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범호/선수 경력 | |||
2011년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10년 | |||
2006년 | 2009년 |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
이범호의 타격폼[23] |
특히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치는 등, 중요한 경기에서 적시타와 홈런을 쳐줄 수 있는 클러치 능력을 가지고 있어 많은 투수가 두려워하는 선수였다. 통산 최다 만루홈런(17개)는 물론, 준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7개)였기도 했다.[25]
3.2. 수비
본래 평범했지만 유승안 감독 시절 유격수로 구르면서 경험을 쌓아[26] 일취월장했다. 물론 그 리스크인지 2004년 타율 3할을 찍긴 했으나 실책이 무려 30개로, 이는 2021년 김혜성의 34개, 1986년 유지훤의 31개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그래도 유격수를 볼 때나 실책이 많았지, 3루수로서는 어느 팀에서든 주전을 하기에는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27] 다만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점점 노쇠화가 왔는지 3루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한 송구는 여전히 안정적이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발이 느려 수비 범위가 좁았는데, 거기에 타구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평범한 땅볼이나 직선타가 될 타구가 3루수 옆을 빠져나가는 안타로 연결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었다.[28] 다만 수비범위 내에서는 송구능력은 발군이었다. 송구동작이 화려하지 않음에도 1루로의 무중력 송구 모습은 수준급의 3루수임을 보여주었다.[29]3.3. 주루
원래는 덩치에 비해 꽤 빨랐다. 2008년 12개로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다. 무릎, 햄스트링, 종아리 등을 골고루 다치는 통에 주루 툴이 감소한 것. 연속 출장을 이어가면서 최태원의 최다 연속 출장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KIA 타이거즈/2008년/6월/4일전에서 선발 명단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런 폭우로 교체 출장할 틈도 없이 강우 콜드 선언, 결국 어이없게도 615경기에서 연속 출장을 마감해야 했다. 그래도 이 기록은 최태원, 김형석, 황재균에 이은 역대 4위 기록이다. 다만 연속 출장을 이어갈 정도로 튼튼한 몸은 그 연속 출장의 여파로 잔부상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2011년 8월 7일 SK전에서 허웅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고질적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옛말이 되었다. 또한 이 때문에 한화 시절에는 나쁘지는 않던 주루도 망해버려서 KBO 리그의 대표적인 발이 느린 주자가 되어버렸다.3.4. 기타
프로 커리어의 초반과 중반부를 인조 잔디 구장인 대전과 무등 야구장에서 보냈다. 그래서 햄스트링 부상이 자주 찾아왔고, 다른 것도 아닌 이 점 때문에 체력보다 조금 일찍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선수 생활 후반부에는 시설이 좋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뛰었고, 덕분에 2016년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이처럼 황혼기라 불리는 30대 중반에 타격 성적이 대전[30]에 있을 때보다 좋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4. 프런트 경력
제7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참관하였고, 자신의 현역시절 포지션과 같은 내야수를 중점적으로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데려온 내야수는 김원경, 장시현, 이준범이다.5.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이범호/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 별명은 '꽃보다 아름다운 범호(줄여서 꽃범호)'[31], '한화의 매력남'[32], '월드추남'[33], KIA 시절에 새롭게 나온 별명으로는 2017년 6월 14일 마이데일리 이후광 기자의 오타에서 나온 별명인 "이봄허"[34], KIA의 주장을 3년간 역임한 탓에 꽃주장, 듀당, 그 외에 두더지 등[35]이 있다. 개그 콘서트의 오지헌을 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붙은 별명들. 본인도 컴플렉스를 느끼는 듯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꽃범호'라는 별명은 이범호를 놀리는 것이 아닌 팬의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한 야구팬 사이에선 꽃이라고만 해도 다 알아듣는다.
- 이적생 출신으로는 한대화에 이어 두번째로 타이거즈 주장을 맡았다. 2014 시즌부터 2016 시즌까지 3년간 주장을 맡았다. 3년 차인 2016 시즌에는 후배들에게 넘겨 주려 했으나 김기태 감독의 요청으로 주장을 1년 더 하게 되었다.
- 유독 다르빗슈 유에게 상당히 강했다. 2009 WBC 결승에서 연장까지 승부를 끌고 간 9회말 동점타를 친 것도 이범호였고 NPB에서 활약한 2010 시즌 중에서는 멀티히트까지 때려낸 적이 있었다.
- 동시대에 리그를 지배했던 투수인 더스틴 니퍼트에게도 상당히 강했다. 연타석 홈런에 심지어 한국시리즈에서 빅게임 피처에 무실점 기록을 세운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때려서 우승을 확정시킨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유희관, 노경은 등 두산의 주축 투수들을 대부분 쥐잡듯이 잡았다.
- 리그 최고의 빅게임 클러치 히터. 수많은 결승타를 때려냈으며, 국제 대회의 여포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기록, 최다 만루 홈런 기록 등등 찬스 상황에 굉장히 강했다.
- 햄스트링 부상 이후 주력이 크게 떨어져 굉장히 느리지만 고교 시절에는 100m를 12초대에 끊는 준족이었다.[36] 지명 당시 같은 팀 동료이자 친구인 김주찬과 유격수 최대어로 꼽혔다.
- 이범호는 KBO야구선수들 중에 역사에 남을 3대 미남에 속한다. 지금의 인기가 잘생긴 외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소속팀 모기업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2012년 기아자동차의 희생번트편에서 번트를 대는 선수로 나왔다. 목소리로 나오는 사람은 김상훈이 출연한 광고와 마찬가지로 베어스의 레전드 박철순. 그런데 이범호는 실제로 번트를 잘 대지 않는 선수라는 게 에러다.[37] 그래서 밑에 나오듯 사도스키가 번트 대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희생이란 건 거짓말이라고 까기도 했다.
- 2013년 마구마구에서 파워 79의 스페셜 카드를 부여 받았다. 그보다 적게 홈런을 친 강정호와 나지완이 레어를 받았는데 문제는 이들보다도 파워가 낮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2할 4푼의 낮은 타율인 것 같다. 그러나 기올 유저들은 환영하는 입장. 구름 속의 존재인 김상현과 플래툰이 가능하므로.
- 타고 다니는 차는 기아 K7이다.
- 경기장에서 화를 잘 내지 않는데 어느 정도냐면 화낸 순간을 팬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일례로 2017년 6월 18일 경기서 임찬규가 전 타석에 안치홍에게 사구를 낼 뻔한 것도 모자라 결국 헤드샷을 맞자 화를 냈다. 그것마저 득달같이 달려들 정도로 화내는 것은 아니고 심판의 제지에 문제는 크게 없었다. 임찬규는 규정에 따라 결국 퇴장당했다. 또한 2015년 5월에도 앞선 타자 최희섭이 배영수에게 사구를 맞고 이에 본인도 배영수에게 2타자 연속 사구를 맞자 살짝 화내는 모습도 있었다. 2024년 8월 17일 감독으로서 오지환의 스윙 여부에 대해 강하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 선수 시절에 선수 생활을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등 자기 관리 면에서 철저한 면을 보이고 있다. 주장이 되어 선수단을 독려하는 자리가 되면서 술은 입에 대기 시작은 했지만, 잘 못 마신다고...
-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뷰로서 능력도 훌륭한 편이다. 박용택만큼의 달변은 아니지만 언변이 매우 뛰어난 편이고 재치도 상당하다. 굉장한 호평을 받았던 은퇴식 고별사도 원고 없이 즉석에서 뱉어난 것이라 한다. 나중에 말하길 원고가 있긴 했지만 노안으로 인해 글씨가 잘 안 보였다고 한다.
- KIA 내에서 나지완, 김민식과 더불어 팬 서비스가 안 좋기로 유명한 선수였다.[39] 하지만 잘해 줄 때는 또 잘해 준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거나 은퇴 직전에는 팬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있어 평이 갈린다. 대표적으로 오키나와에서 김민식 사인 받으려다 거절 당해서 보다 못해 이범호 본인이 대신 사인 해 줬다는 일화도 존재한다.
- 이름의 '범'에 쓰이는 한자가 일본에서 상용한자밖에 있다 보니 일본에서는 이범호를 李ボム浩[40]라고 적는 경우가 많다. 이승엽의 '엽'(燁)을 가나로 대체해서 李承ヨプ라고 적는 것과 같은 방식인데, 그래서 야구 국가대표 시절 일본과의 국제 대항전의 일본 기사를 번역기로 돌리면 이 폭탄호라고 번역되었다.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55번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6번을 달았다.
- 프로 농구단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레전드인 양동근과는 1981년생 동갑내기로 절친한 친구 사이다.[42] 이범호가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이범호의 초등학교 동창인 이영수가 양동근과 한양대학교 같은 00학번이라 친분이 있었다 보니 이 둘을 연결시켜 줘 그 뒤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대표에서는 이 둘의 번호를 서로 바꿔 단 적도 있는데, 이범호는 2009년 WBC 때 양동근의 등번호 6번을, 양동근은 국가대표에서 이범호의 등번호 7번을 달고 뛰었다. 2011년 이범호가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면서 이범호와 양동근 둘 다 같은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 소속이 됐다. 2019년 7월 13일 열린 이범호의 은퇴식 때도 양동근이 참석해 꽃다발을 건네주기도 했다. 2024년 본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감독 취임을 축하였다.
- 해외 진출을 한 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복귀할 때 이전 소속 구단이 아닌 곳으로 돌아왔는데, KIA 타이거즈 출신으로 2006년 마이너리그로 진출했다가 이듬해 원 소속 구단이 아닌 롯데 자이언츠로 복귀한 최향남의 사례가 먼저 있긴 했지만, FA 자격을 제대로 얻고 진출한 선수 중에서는 이범호가 최초. 이후 2017년까지 추가 사례가 없다가 황재균, 김현수 등이 뒤를 이었지만, 일본 진출을 했다가 다른 곳으로 복귀한 선수는 이범호가 여전히 유일하다.[43]
- 이범호 은퇴 후 관중석 인터뷰. 영상
- 한화 이글스 소속 노시환과 많은 점이 닮았다. 이범호와 노시환은 영남 토박이라는 점, 모두 한화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드래프트 역시 2차 1라운더로 지명되었고 당시 1차 지명은 모두 북일고 선수였다. 또한 180cm 중반의 키와 90kg이 넘는 육중한 몸매 및 두터운 하체를 보유하고 있고 두 선수 모두 부상을 잘 당하지 않는 점 역시 닮아 있다. 상당히 귀여운 외모 역시... 주 포지션은 3루이지만 커리어 초반 유격수로도 출장을 하였으며 잦은 실책과 아쉬운 수비를 보였지만 강력한 송구가 강점이라는 점도 비슷하고 두 사람 모두 이글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강석천과 송광민이 은퇴하는 시점에 등장한 3루수라는 점도 인상깊다(실제로 강석천과 송광민은 모두 15시즌을 이글스에서 뛰었으며 타격 스타일이나 성적도 상당히 닮아있다). 플레이 스타일 역시 많이 닮아있는데 모두 우투우타라는 점, 초창기 파워는 가공할 만하나 변화구에 약점을 보여 삼진이 잦다는 점 역시 비슷한 점이다. 실제로 1~3년 차 성적을 보면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흐름은 둘다 3~4년 차에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부침을 반복하다 5년 차에 이글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3루수 단일시즌 기록[44]을 갈아치우며 만개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노시환은 2년 차부터 빠르게 두각을 드러낸 편이고 3~4년 차 성적도 같은 연차의 이범호보다 노시환이 조금 앞서며 5년 차에 노시환이 30홈런-100타점으로 홈런왕, 타점왕,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면서 5년 차까지는 노시환의 성장세가 좀 더 빠르다. 한편 노시환은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5년 차 당해, 이범호는 첫 골든글러브를 받고 해를 넘긴 7년 차에 국가대표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이범호는 당대 최고의 3루수이던 김동주와 경쟁했고 노시환은 최정과 경쟁 구도를 이루는 중.
-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 수상에 아쉽게 순위권에 들지 못한 10명 중 1명이다. 순위는 44위였다.
- 이범호가 감독으로 선임됨에 따라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최초의 감독이 됐다. 야구부가 있는 대구시내 고등학교 3곳( 경북고, 상원고, 대구고) 중에서는 가장 늦게[45] 감독이 탄생했다. 애초에 세 학교 중 대구고 야구부의 역사가 가장 짧고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를 배출한 것도 198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대구고 출신 감독의 탄생도 늦었다. 공교롭게도 수석 코치로 함께 일하고 있는 손승락 역시 대구고 동문이다. 참고로 이범호에게는 1년 후배가 된다.
- 타이거즈 역대 감독 중 최연소 감독으로서 아래의 기록을 세웠다.
- 감독 취임 이후 '시작해'라는 밈이 생겼다. #
- 감독 선임 사실을 힘들게 지켜냈다고 한다. #
- 2024년 9월 15일 잠실 두산전 9회초 2아웃에 자신의 응원가가 뜬금없이 울려퍼졌다. # 사실 이때는 KIA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지은 상황이었고, 져도 큰 의미가 없는 경기였는지라 응원단 측에서 먼저 응원가를 틀었다고. 팬들 또한 오랜만에 그의 응원가를 목청껏 불러주었다. 그날 경기는 4:9로 졌다.
- 기본적으로 선수들이 편하게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덕장이지만 자유 방임이 아닌, 엄할 때는 엄하게 가르치고 편하게 할 때는 형님 리더십과 잘 다독여주는 매니징 능력을 가진 감독이다. 아직 1년 차라 경기 운영 플랜에는 한계가 있지만 부임 첫해에 무려 통합우승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 과거 일본에 막 진출했을때 했던 인터뷰에서 “국내 야구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전두환 대통령 덕분에 프로야구가 만들어졌다. 야구 선수들이 큰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
7. 관련 문서
[1]
참고로 포스트시즌에서는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 정규 시즌에서의 마지막 만루홈런은 2018년 9월 28일 잠실
LG 트윈스전.
[2]
# 사실 의성군과 대구광역시는 옆동네 수준이고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 출신으로 봐도 무방하다. 일전
2009 한국시리즈에서 KIA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과 정확하게 동일한 케이스.
[3]
2003년 1월 23일 충청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불어불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러나
2005년 2월 21일 디트뉴스24 기사에서 2005년 2월 22일 치러진 2004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행정정보학과(야간부) 행정학사를 수여한다고 한 것으로 봐서 불어불문학과에 재학하다가 중간에 행정정보학과로 전과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당일 같이 졸업한 유명인이
코요태
김종민이다.
[4]
선수 생활 대부분을
3루수로 보냈다. (KBO 통산 2001경기 중 1698경기, NPB 통산 48경기 중 14경기로 커리어 통산 2049경기 중 1712경기 출전)
[5]
프로 초기인 2002 시즌과 2004 시즌에 유격수로 많이 출전하였다. 특히 2004 시즌은 23홈런을 기록했고 한 시즌에 유격수로 이범호보다 더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장종훈,
이종범,
틸슨 브리또,
김하성,
강정호,
오지환이 전부다. 그러나 유격수 수비가 불안한 편이라 당시에도 주전은 맞지만 3루수로도 꽤 나오며 풀타임 유격수는 아니었다. 결국 2005 시즌부터 완전히 3루수로 전업하고 이후로는 딱 두 번
유격수로 나오는데,
KIA 타이거즈 이적 후 2011년 8월 4일 경기와 2015년 6월 18일 경기에서
유격수로 출장한 바 있다. (통산 145경기 출전)
[6]
1군에 자리잡기 시작한 2001 시즌에 백업
2루수로 출전하였다. (통산 90경기 출전)
[7]
2019년 9월~10월에 열린 소프트뱅크 추계 캠프에서 연수를 받았다. 팀 내 코치 카운셀러로 있던
김성근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8]
코로나 19로 인해
마이너 리그 시즌이 전체 취소되며 스프링캠프 후 중도귀국.
[9]
계약금 5억 원 / 연봉 총액 15억 원 / 옵션 6억 원
[10]
2024 시즌 전, 2년 9억에 계약을 맺었으나 우승 이후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계약했다.
[가사1]
이범호~(홈런!) 이범호~(홈런!) 한화의 이범호~
[가사2]
KIA의~ 이범호~ 파워히터 이범호~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잘!생!겼!다!이!범!호!) KIA의~! 이범호~ 파워히터 이범호~ 꽃보다 멋진 너~ 이범호~
[13]
이 응원가가 매우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KIA 타이거즈 응원단이 이범호의 응원가가 아닌 질풍가도 원곡에 치어리딩을 해도 팬들은 잘 생 겼 다 이범호를 외친다. 심지어 2019년 중반 이후 이범호가 은퇴를 해서 이범호 응원가를 부를 일이 없지만 그 후에도 KIA 응원단이 질풍가도 치어리딩을 하면 어김없이 KIA 팬들은 "잘 생 겼 다 이범호"를 외친다. 종종 원곡에서 이범호 응원가 파트로 따온 부분을 이범호 응원가 가사로 부르는 팬도 있다. 2024 시즌 감독으로 승진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 이후 감독 응원가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응원가를 트는 것은 아니고 응원가 부분의 원곡을 틀면서 응원단이 치어리딩을 한다.
[가사3]
KIA 이범호 뜨거운 힘이 솟아나 두려울 게 없어 KIA 이범호 KIA의 승리를 위해 파워히터 KIA 이범호~
[15]
질풍가도와 열혈남아 모두
쾌걸 근육맨 2세 오프닝으로 쓰였던 음악이다.
나윤승 응원단장 때 잠시 쓰이고 바로 폐지됐다.
[가사4]
이범호~ 워어~ 이범호~ 워어어어~ 파워~히터 이범호~ (x4)
[17]
최승환,
오재일의 두산 시절 응원가와 원곡이 같고 오재일은 넥센 시절에도 이 응원가를 썼다.. 이후 열혈남아 응원가가 나오면서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18]
기존까지는 1976년 11월에 태어난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최연소였으며 참고로 1군 정식 감독 10명 중 최초로 1980년대에 태어났고 2000년대에 현역 선수로 데뷔한 인물이다.
[19]
박경완은 대행이었을 뿐 정식 감독이 되지 못했다.
[20]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는
꽃동님이라는 별명도 추가되었다.
[21]
통산 17개.
포스트시즌에서도 만루홈런을 때려내기도 했으며, 본인의 은퇴 경기, 은퇴 타석에서도 만루 상황이 만들어지며 묘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22]
해태-KIA 타이거즈 우승을 이끈 감독이
김응용/
조범현/
김기태/
이범호 총 4명인데, 김응용은 프로야구 출범 전에 이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조범현과 김기태는 해태-KIA 타이거즈 선수 경력이 없다.
[23]
2018년 5월 6일 NC전 솔로 홈런.
[24]
2008 시즌은 18개로 병살 1위.
[25]
이 기록은
박병호가 추월했다.
[26]
이는 몇 안되는 명백한 유승안의 공이고,
김인식 시절에 2군이 황폐화되면서 오늘날의 암흑기를 잉태한 것도 사실인지라 한화 팬덤은 암흑기의 시작을 놓고서 유승안 시절이 시작인지, 김인식 말년이 시작인지를 놓고서 종종 내전을 벌이곤 한다.
[27]
2009년 WBC나 일본 진출을 통해 수비가 성장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단기전으로 숨 가쁘게 치러지는 국제전에서 실력이 향상된다는 근거가 없다. 이 때 이범호는 이미 완성된 선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 진출했다가 실패해서 1년 만에 리턴한 게 끝이다.
[28]
이걸 감안해서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는
양현종을 마무리로 올렸을 때 이범호를 빼고 대수비로 교체했다. 대신 들어온 선수가
김주형이라 문제지...
[29]
이 장면처럼 동작을 크게 하지 않고도 쭉 뻗어가는 송구를 하기 위해선 엄청난 어깨와 손목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30]
대전 구장이 잠실에 이어 리그에서 2번째로 큰 구장이 된 것은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로 이범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라운드 크기가 꽤나 작아 탁구장 소리 듣던 구장이었다.
[31]
KIA 시절 응원가에도 "꽃보다 멋진 너"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32]
한화의 매력남이라는 별명은 이범호 전용 응원문구에서 따 온 별명이다.(한화의 매력남은 누구? 이범호!)
[3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입단 당시 언플에 실망한 한화 팬이 지어준 별명.
[34]
라인업 기사
[35]
부상으로 1군에 왔다 2군에 갔다를 반복해서라거나, 외모가 두더지같다거나, 둘 다라는 설이 있다.
[36]
한때 11초대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범호 본인이
옐카3에 나와서 12초 1까지 나온 적 있었다고 밝혔다. 2008년에도 12도루로 두 자리 수 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다.
[37]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이범호는 기아 입단 후 2013년 4월 21일에 처음으로 번트를 댔다. 근 6년 만에 댄 번트라고. 한화에 있을 때는 그래도 간간히 희생번트를 댔던 편. 본격적으로 터지기 이전인 2001년에 7개, 2003년에 8개를 성공시켰으며, 번트 작전을 잘 쓰지 않는 김인식 때도 2007년엔 6개를 댔다. 한화에 있을 때 기록한 총 희생번트는 32개.
[38]
이는 티웨이항공이
광주공항에 취항한 기념으로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KIA 타이거즈의 선수 중 이범호를 홍보 모델로 채택했고 비슷한 시기
대구국제공항에 취항하자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구자욱을 홍보 모델로 채택한 바 있다. 참고로 이범호와 구자욱은 둘 다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39]
사실 KIA는
팬 서비스가 가장 좋지 않은 구단 중 하나다.
[40]
NPB 등록명은 李机浩.
[41]
송지만도 트레이드는 한 번밖에 되지 않았지만, 히어로즈가 현대의 역사를 버리면서 인정되지 않는다.
[42]
사실 양동근은 야구를 상당히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고, 이범호 외에도
손시헌,
이종욱 등과도 친분이 있다.
[43]
이는 대체로 한국의 프로 야구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에는 원 소속 구단의 동의 하에 진출한 뒤
임의탈퇴 신분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고,
FA 자격으로 진출했을 경우에도 원 소속 구단과의 관계가 좋았을 경우에는 별 탈 없이 원 구단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FA 자격을 얻고 해외에 진출한 뒤 복귀한 팀이 원 소속 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일 경우에는 보상 선수 관련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도 한몫한다.
[44]
2004년 이범호는 sWAR 기준 당시 이글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단일시즌을 보낸 1997년 강석천을 뛰어넘는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2005년, 2006년, 2008년까지 1997년의 강석천을 넘어서는 성적으로 이글스 단일시즌 3루수 TOP 3를 전부 차지했다가 2023년의 노시환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45]
경북고 출신 최초의 KBO 리그 감독은 1998년 삼성 감독으로 부임한
서정환 前 감독이 최초이고 대구상고-상원고 출신 최초의 KBO 리그 감독은 프로 원년 삼성 감독이자 대구야구의 대부로 불렸던
서영무 前 감독이다.
[46]
감독 대행 중에는 원년 감독 대행이었던
조창수 코치, 2019년 감독 대행이었던
박흥식 코치가 대구 출신이었다.
[47]
타이거즈 선수 출신 감독은
김성한,
서정환,
선동열,
김종국, 이범호 등 5명인데 김성한부터 선동열까지는 해태 시절에 우승을 경험했고 김종국은 해태와 KIA에서 모두 우승을 해봤다. 그러나 이범호는 KIA 창단 직전인 2000년에 데뷔했고 V10의 숙원을 푼 직후인 2011년 KIA에 입단해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48]
2005년
선동열, 2011년
류중일 이후 세번째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