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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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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1994 2000 2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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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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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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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총괄 코치'라는 명칭을 사용한 경우
※ 2002년은 공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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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등번호 3번
팀 창단 김용달
(1982~1988)
김선진
(1990~1994)
LG 트윈스 등번호 93번
결번 <colbgcolor=#000> 김용달
(1990~1996)
김영직
(1997~2012)
LG 트윈스 등번호 73번
민동근
(1996)
김용달
(1997~1999)
양상문
(2002~2003)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3번
김무관
(1989~1998)
김용달
(2000~2002)
이명수
(2003~2007)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87번
서정수
(1998)
김용달
(2003~2006)
김응국
(2007)
LG 트윈스 등번호 73번
양영재
(2005)
김용달
(2007~2009)
강지광
(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구본범
(2010~2011)
김용달
(2012)
김태완
(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72번
마츠야마
(2012)
김용달
(2013~2014)
김민호
(2015~201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7번
강기웅
(2012~2018)
김용달
(2020~2021)
박희수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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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달
金龍達 | Kim Yongdal
출생 1956년 5월 10일 ([age(1956-05-10)]세)
경상북도 의성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인지초 - 대구중앙중 - 대광고 - 중앙대
포지션 포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MBC 청룡 창단멤버
소속팀 한국전력 야구단 (1979~1981)
MBC 청룡 (1982~1988)
지도자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1990~1992)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1993)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1994~1999)
현대 유니콘스 1군 타격코치 (2000~2006)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7~2009)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2)[1]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13)[2]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013)[3]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14)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타격 인스트럭터 (2017~2018)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20~2021)
해설위원 ISPN 야구 해설위원 (2010~2012)
경력 KBO 육성위원 (2015~2018)
KBO 경기운영위원 (2019)
KBO 재능기부위원 (2023~)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LG 트윈스 1기 시절3.2. 현대 유니콘스 시절3.3. LG 트윈스 2기 시절3.4. 한화 이글스 시절3.5. KIA 타이거즈 시절3.6. 야인 시절3.7. 삼성 라이온즈 시절
3.7.1. 2020년3.7.2. 2021년
4. 연도별 주요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MBC 청룡 소속의 1루수이자 현대 유니콘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포지션은 포수 또는 1루수. 현역 시절에는 강타자도 아니었고 교타자도 아닌 평범한 타자였다. 그래도 원년 당시 3할 정도는 쳤다.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김용달편

2. 선수 경력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수상자 (1982)
파일:/image/382/2012/06/07/46814093.2_1_20120607071110.jpg

1979년에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 들어와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프로 원년인 1982년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지만, 이때는 오로지 수비율만으로 시상할 때였다.[4]

3. 지도자 경력

3.1. LG 트윈스 1기 시절

은퇴 후, 1990년 LG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여담으로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김선진과 1루에서 포옹하는 1루코치가 바로 김용달이다.

이 시절의 업적은 이종열, 박종호의 스위치히터 전환, 김재현의 20-20달성에 일조했다는 점이다. 이병규는 1999년 시즌에 자신이 30-30을 달성하고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던건 김용달의 권유로 타격폼을 바꾸고, 배트 무게를 늘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기 때문이라는 언급을 했다. 이 시기에 LG는 1991-1992년 빼고 전부 팀 wRC+ 100 이상을 기록했고, 이렇다할 거포 없이도 리그에서 가장 응집력이 강한 타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3.2. 현대 유니콘스 시절

파일:/image/382/2012/06/07/46814098.2_2_20120607071110.jpg

그러다 199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광은이 감독이 되자 팀에서 쫓겨났고[5], 대광고등학교 2년 선배인 김재박의 부름을 받아 현대 유니콘스의 1군 타격코치로 합류하였다.

이 시절 박재홍, 심정수, 박경완, 이숭용 등으로 이뤄진 훌륭한 타선을 만드는데 일조했으며, 명 타격코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높은 출루율과 공을 끝까지 보는 타격이론을 앞세워 김무관, 박흥식, 황병일 등과 함께 프로야구의 4대 타격코치라 불다. 그래서 잘 나갈때는 용달매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2001년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로 합류한 우타거포 심정수에게 타격폼을 살짝 수정해보자는 건의를 수 없이 할 정도로 쫒아다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심정수는 트레이드 첫 해였던 2001년 살짝 조정기를 거쳐 2002년 46홈런, 2003년 53홈런으로 리즈 시절을 보내게 된다.

2003년 시즌이 종료된 후 이광환 감독의 후임으로 2군 감독 역할[6]을 하던 김용수와 함께 LG 트윈스의 차기 감독 후보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떠올랐으나 정작 LG의 선택은 1군 외야 수비코치였던 이순철이었다.그리고 LG는 망했어요 이후 2006년까지 현대의 타격코치를 맡았다.

3.3. LG 트윈스 2기 시절

파일:external/cfs9.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I0NjAzMEBmczkudGlzdG9yeS5jb206L2F0dGFjaC8yLzI0MS5qcGc%3D.jpg

2006년 시즌이 종료된 후 또 다시 친정팀 LG 트윈스의 새 감독 후보에 올랐으나, 이번에는 김재박에게 밀려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박을 따라 LG 타격코치로 이적하였는데[7], 이는 김재박이 LG로 떠난 후 공석이 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 자리를 놓고 김시진 투수코치와 경쟁하였으나 김시진에게 또 밀려서(...) 감독이 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경쟁자였고, 본인보다 두 살 어렸던 김시진의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하기에 부담을 느꼈었기 때문에 현대에 남지 않고 LG로 자리를 옮겼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더군다나 김재박과는 고교 선후배 사이인데다 과거 LG에서 잘렸을 때도 그를 현대로 받아준 사람이 김재박이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다시 LG로 갈 만했다.

그러나 친정팀 LG 타격코치로 돌아온 이후 평가가 급격하게 나빠졌는데, 이 시기로 접어들면서 그의 코칭스킬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 코치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신을 발에 맞추지 않고 발을 신에 맞게 잡아늘이는 코칭스킬로 선수의 특성이나 신체적 조건, 멘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은 타격폼을 천편일률적으로 가져다 붙이며 과거 현대 시절 좋았던 평까지 죄다 깎아먹는 등 악명이 높아졌다. 결국 2009년 시즌 후 김재박 감독이 계약 만료로 인해 물러나면서 그도 재계약에 실패하고 떠났다.

그의 타격이론은 변화구가 휘기 전에 때리는 방식. 타자의 중심을 앞에다 둔다. 이게 일반적으로는 이상에 가깝지만,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슬러거가 안 나온다.[8] 장타는 타자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겨놓고 때려야 잘 나온다. 심정수가 예외적인데, 이 선수는 일단 다른 선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인데다, OB-두산 시절부터 이미 완성형 타자였기에 넘어가자. 게다가 심정수도 바뀐 폼에 적응하다 몸이 망가졌다.[9]

게다가 한국야구도 21세기 이후로 점차 발전하면서 과거 포심패스트볼과 횡슬라이더 위주의 단순한 구성에서 벗어나서 변형패스트볼과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대대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런 최신구종을 공략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선구안을 바탕으로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다 놓고 때려내는 게 효율적이다. 즉, 타격중심을 앞에 두라는 김용달의 이론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다.[10]

원래 그 타격폼이 맞았던 선수는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닌 선수는... 게다가 선수들과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자기 교수법을 강요해서 기아로 이적한 김상현이 간접적으로 디스한적도 있다. 게다가 자신이 손대도 전혀 답이 없다고 디스했던 이성열은 두산에 와서 2010년에 24홈런을 터트렸고, 넥센 히어로즈로 건너가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박병호에게도 똑같은 폼을 강요해 부진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결국 위 3명은 모두 LG를 떠난 이후 잠재력이 폭발했다. 심지어 박병호도 2012년 인터뷰에서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2주에 한 번씩 제 타격폼을 타격코치님 마음대로 바꿨어요.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타격폼 수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말도 못하게 심했어요."라고 말한적도 있다.[11]

결국 LG 시절 거포 유망주들의 육성에 실패하고 그 유망주들이 타 팀에 가서 터져버린 탓에 거품이 완전히 걷히며 평가가 급락했다. 사실 LG 출신 선수들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그보다 전이었던 현대 시절에는 김민우에게 스위치 히터 전환 및 자신의 타격폼으로 고치기를 강요했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전력도 있다.

다만 이 시절 김용달이 아주 무능력자는 아닌 게, 이대형 박용택의 타격 성적 상승에 어느 정도 기여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용택도 은퇴후 인터뷰에서 2009년부터 타격이 급성장한 것이 김용달 코치 덕분이라고 말했다.

교타자들과는 궁합이 맞지만 풀스윙을 하는 장타자들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김용달의 문제점은 그가 끝장나게 무능한 코치라서라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무력한 것과 그런 타격 스타일을 선수에 상관없이 천편일률적으로 강요하는 탓에 타자를 심하게 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3.4.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external/dimg.donga.com/46215796.8.jpg

LG에서 물러난 후 잠시 야인으로 있다가, 2012년 5월 12일 한화 이글스에서 그를 1군 타격코치로 영입했다. 한화로 온 이후로는 최진행 고동진을 관심있게 봤다고 했으며, 그들을 중점적으로 손봤다고 했다.

김용달 코치를 영입한 이후 잠시 최진행의 성적이 크게 향상되기도 했지만, 이후 장타가 사라지면서 심각하게 부진하기 시작했다. 반면 고동진은 무난한 시즌을 보냈으며, 오선진의 경우 김용달의 영입과 동시기에 맞물려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한화에 와서 있었던 기간이 워낙 짧기도 했고(고작 4개월 반 정도 밖에 안 있었다.), 한화 타자들도 다소 애매한 성적을 내면서 평가가 엇갈렸다. 다만, 한화에 있는 기간 동안 오선진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 2012년 시즌 후 한화 이글스 김응용 감독이 부임함과 동시에 사의를 표명했다.

3.5. KIA 타이거즈 시절

2012년 10월 16일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KIA팬들은 안 그래도 장타 보기 힘든 김기아 타선에는 최악의 조합 아니냐며 걱정하였다.

3.5.1. 2013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용달/2013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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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2014년

결국 2014 시즌부터는 1군 메인 타격코치 직무를 이명수 코치에게 넘겼고, 2군 총괄코치(2군 감독 임무 수행)를 맡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남부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등 2군 감독으로써의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2군 감독으로서의 능력마저 그 한대화나 김용달이나 도찐개찐.

KIA 팬들 사이에서는 무능력자 감독인 선동열은 물론이고, 역시 무능력한 코치들인 한대화, 김정수, 백인수, 이명수와 더불어 하루빨리 잘리길 고대했다. 마침내 김기태 감독이 부임하고, 팬들의 바람대로 시즌 후 2군 총괄직에서 사퇴했다.

3.6. 야인 시절

2015년 KBO 육성위원으로 선임됐고 2017년과 2018년에는 대구고 타격 인스트럭터도 겸했다. 2019년에는 KBO 경기운영위원을 맡았다.

한편 야인 시절이던 2018년 미국으로 건너가 타격 코칭 전문가인 덕 래타의[12] 타격 아카데미를 찾았다는 소식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록 이미 프로계에서 한물간 코치고 야구계 원로에 속하지만, 그래도 직접 미국까지 가서 타격 전문가의 이론을 배우고 습득하려 하는 모습이 열정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3.7. 삼성 라이온즈 시절

3.7.1. 2020년

2020년부터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의 1군 타격코치로 선임되면서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왔다.

NC와의 개막시리즈에서 팀타율 .138이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스윕을 당하며 욕먹고 있다.

개막하고 10일이 지나고도 거의 대부분의 주전 타자들이 1할에서 빌빌 기고 있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안그래도 망한 타선을 폭망하게 만든 주범. 5월 12일 기준 팀타율이 무려 .198이다. 김동엽은 시즌 초반에 준수한 활약을 하면서 살아나나 했지만, 역시 김용달 작품답게 타구질이 악화되어 땅볼이 늘어남에 따라 장타가 실종되었고 똑딱이로 전락했다. 김동엽을 포함해서 강민호, 이성규는 배트가 공을 따라가지 못하고 연일 선풍기질을 해대며 어쩌다 공이 맞아도 내야를 벗어나는 타구가 영 나오질 않는다. 김지찬은 한 달 내내 1군을 따라다녔지만 내야타구 비율이 65%로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2014년 이후 현장을 떠났고, 5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 어느 팀도 이 인물을 찾지 않았음에도 난데없이 1군 타격코치로 모셔온 구단의 의중이 궁금할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5년간 왜 철저히 배척당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현대야구와 동떨어진 타격이론 때문에 슬러거를 만들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타격폼을 뜯어고치는 그의 코칭방식은 야인 시절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6월 11일 기준으로 스프링캠프부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김동엽, 이성규는 아직도 선풍기질과 내야뜬공의 악몽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2군을 다녀온 박해민은 아직 볼넷이 단 한 개이지만 그래도 몰아치기를 하면서 타율을 한껏 끌어올리고 수비와 주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엄청나게 비교가 되고 있다. 삼성팬들은 제발 애들좀 그만 망치고 떠나라고 아우성중. 김동엽은 2군에 내려가서도 땅볼을 연신 양산하며 헤매고 있다.

미국 데이터 전문 업체 스포츠인포솔루션의 분석에 따르면 올 시즌 하드타구 비율(타구속도 95마일(152km)이상)이 삼성은 KBO 9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1위는 21.7%의 LG고, 꼴찌는 15.5%의 한화이다. 이번 시즌 한화가 비정상적인 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KBO 꼴찌나 다름없는 타구질을 자랑 중이다. 타율, 출루율 같은 지표들을 다 떠나서 현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타구속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아주 엄청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 팬들은 다시 감독 시절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한 김한수를 외치고 있다. 김한수가 감독으로는 영 아니지만, 타격코치로서는 최고수준이기 때문. 게다가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전부 대폭발하며 김용달은 더 비판받고 있다.

7월 타격이 나아지며 겉으로는 짤리지 않을 명분을 획득했지만, 잘하는 선수들은 전부 2군에 있다 온 선수들이다. 게다가 이들이 1군에 머물러 김용달 코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던 8월에는 2점라이온즈가 되어 12경기 중 7경기에서 2점득점이라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그야말로 역대 LG 트윈스의 타격코치 못지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화타로 유명하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3.7.2. 2021년

우투수보다 좌투수에 약한 김지찬을 스위치 히터로 전향시키고 있다. 또한 이성규가 스윙 시 하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파악하고 하체 위주의 스윙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작년에는 타자들의 침체로 많은 팬들에게 용달차(?) 취급을 받으며 LG코치 시절을 떠올리게 했으나 올해는 좀 다르다. 삼성의 타자들의 방망이에 불이 나고 있기에 (특히, 구자욱과 강민호, 호세 피렐라 등) 타격코치 김용달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게 아니냐는 평가이다. 삼성이 1위를 달리고 있는데에는 (2021.05.10 기준) 분명히 작년과 다른 타격 덕이기에 김용달 코치에 대한 평가가 갈 수록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4위로 쳐지는 사이 타자들의 삽질로 평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치고 올라올 생각이 없다.

그의 코칭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타격인데 상황에 맞지 않는 적극적 타격 주문으로 인해 타자들의 선구안은 망가졌고 팀 볼넷은 꼴찌를 달리고 있으며 출루율 또한 하위권으로 쳐져있다. 중심에는 두산에서 FA로 데려온 오재일, 이학주, 김동엽이있다. 삼성 상대로 상대 선발투수가 초반에 투구수를 손해 보더라도 결국엔 5이닝 또는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유리한 불펜싸움으로 가야하는 경기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있다.

7월 우천으로 경기를 계속 못 하고 맞은 8일 9일 2경기에서 3456 중심타선이 32타수 2안타로 매우 부진하며 2연패의 역적이 되었는데 경기가 취소되는 동안 타격코치라는 양반이 뭘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신인들을 잘 키우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가 부임 후 1군에 새얼굴이라곤 김지찬 한 명 뿐인데 그것도 타율 소폭 상승과 주루 작전 플레이에서 조금의 활약만 할 뿐 좌상바여서 경기 중에 대타와 교체되어 빠지는 상황이 많다. 이 외에 타격부분에 새얼굴은 단 한명도 없다.

10월 순위싸움이 치열한 시기에 타자들이 전혀 승리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내년 시즌 정리대상 1순위로 꼽는 등 팬들의 여론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결국 타이 브레이커 경기에서 투수들이 호투하는 가운데 타자들이 응답하지 못 하며 무득점으로 경기가 끝나면서 정규시즌 우승기회를 걷어차버렸고 타격코치인 그는 포스트 시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내년 시즌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시작 전부터 이미 김용달 때문에 총재두에게 피업셋 확정이라며 대구아재들은 벌써부터 푸념하는 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부터 선발투수 뷰캐넌이 7이닝 3실점(2자책) QS+를 기록하는 가운데 타자들은 신나게 잔루를 적립하며 경기를 말아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도 여전히 피드백이 안되는 모양인지 아예 무득점패배를 안기면서 피업셋의 원흉이 되었고 히라이시 요스케랑 매우 극과 극의 모습이 잘 드러난 경기였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타격은 3득점에 불과했다. 두산의 이정훈 타격 코치와 많이 다르다고 비판 여론이 늘어나고 있고 내년에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며 팀을 떠나게 됐다. 3년뒤 타치바나 요시이에 이진영이 플옵에서도 미사일타선으로 점수를 시원하게 뽑아내게 만들면서 부관참시 당하는 중이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MBC 68 168 .315 53 10 0 5 23 29 2 19 .464 .381
1983 48 83 .217 18 2 0 1 8 7 1 7 .277 .278
1984 57 94 .298 28 5 4 1 14 9 1 15 .468 .395
1985 71 142 .232 33 9 0 3 14 15 3 21 .359 .327
1986 24 43 .209 9 0 0 1 4 3 0 8 .279 .333
1987 31 42 .286 12 2 0 1 8 3 0 7 .405 .388
1988 14 18 .000 0 0 0 0 0 0 0 2 .000 .100
KBO 통산
(7시즌)
313 590 .259 153 28 4 12 71 66 7 79 .381 .345

5. 여담

6. 관련 문서



[1] 5월 12일~ [2] ~8월 16일 [3] 8월 17일~ [4] 이사만루2014 KBO에서 슈퍼스타 카드가 출시될 때, 골든글러브 전적 덕분에 82 김용달 슈스도 출시되었는데, 상급 스타만도 못한 성능, 6성이라는 낮은 등급으로 나왔다. 게다가 중급선수카드나 최상급 선수카드 등에서 96 박경완과 같이 가끔씩 등장하는 의외의 흔함 때문에 이사만루 유저 한정 네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5] 이광은 시절에 김대진이 타격코치로 왔고, 동시에 LG 1군 타격코치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거의 20년째 안 깨지고 있으며, 김용달 본인도 포함되었다. [6] 공식적으로 2003년 LG는 2군 감독이 없었다. 대신 책임코치 보직을 두었는데, 당시 책임코치가 김용수. [7] 이 시절 김재박 감독을 따라 코칭스태프, 트레이너, 프런트, 스카우트 등 '김재박 사단'이라 불리는 대규모 인력이 현대에서 LG로 자리를 옮겼다. [8] 감독은 X-존까지 설치해가며 팀의 장타를 늘리려고 했는데 정작 타격코치는 단타 위주의 코칭을 하고 있었다는게 문제인 것이다. [9] 다만 심정수가 일찍 은퇴하게 된 계기는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 및 무리한 송구 훈련 등으로 인해 찾아온 어깨, 무릎 부상과 라섹 수술 후유증이었다. [10] 김용달과 정반대의 코칭스킬을 갖고 있는 코치가 황병일. 타격의 중심축을 뒷발에 놓고 때려내는 방식을 주문하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1] 그 문제의 타격코치로도 서용빈, 윤덕규도 있긴하나, 당시 메인타격코치가 김용달인지라, 김용달이 유력하다. [12] 저스틴 터너의 레그킥 스승으로 유명하며, 일부 메이저리거들이 비시즌에 사비를 들여 타격 코칭을 받는 걸로 유명하다. 국내 선수 중에도 황재균, 오재원 등이 래타 코치의 타격 레슨을 직접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