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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8:11:14

이영재(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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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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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1991~1994)
최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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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영재 심판 0.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KBO 리그 심판위원 No.12
이영재
李咏宰 | Lee Youngjae
출생 1968년 9월 2일 ([age(1968-09-02)]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북고 - 동국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1년 1차 지명 (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1~1994)
경력 KBO 심판위원 (1996~)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성적
3. 심판 경력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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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포수, 현 KBO 심판위원.

2. 선수 경력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 이만수를 이을 삼성의 차세대 포수 재목으로 평가받으며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러나 1차 지명자임에도 이미 이만수[1] 박정환 등 실력있는 선배 포수들이 즐비한 탓에 통산 1군 출장이 32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선수 시절 경력은 시망(…). 1992년 3월 17일 시범경기 OB전에서 루킹 삼진 처리됐어야 할 카운트에서 박찬황 주심의 오심으로 스트라이크 투가 되고 안타를 쳐낸다(...). 1993년 4월 17일에는 통산 2번째 끝내기 패스트볼을 범해 KBO 리그 기록사에 이름을 남겼다.

또, 현역 시절 도루 저지없이 10도루 허용을 기록하며 통산 도루 저지율이 0이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삼성 1 1 .000 0 0 0 0 1 0 0 0 .000 .000
1992 3 3 .000 0 0 0 0 0 0 0 0 .000 .000
1993 28 13 .154 2 0 0 0 0 0 0 0 .154 .154
1994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3시즌)
32 17 .118 2 0 0 0 1 0 0 0 .118 .118

3. 심판 경력

결국 4년의 짧은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1994년 은퇴를 선언한 뒤 1996년부터 KBO 심판을 지원해 합격하여 현재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소속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2017년 최고 심판상[2]을 받았으며 2013년 1,5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포수 출신으로 스트라이크-볼 판정에선 상당히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3] 예전의 평가인지 나중에는 빅게임마다 태평양존, 일관성 부족한 스트/볼 판정 때문에 논란이 많이 되었다. 타자와 포수 사이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타자 바깥쪽이 상대적으로 후한 편. 여러 심판들이 그렇듯 몇몇 오심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크보 심판 중에 오심으로 안 유명한 심판이 어디있겠냐만

1999년 5월 21일 한화와 삼성[4]의 대전 경기에서 구대성의 퇴장 이후 한화 이희수 감독으로부터 뺨을 맞은 바 있다.[5] 이때 이빨이 나가고 턱뼈도 금가는 중상을 입었다. 아이러니하게 한화는 이 사건을 계기로 뭉쳐 그해 우승을 거둔다.

2005년 4월 22일 9회초 김재호의 타석에서 2스트라이크 3볼 카운트에서 볼이 들어왔지만 볼로 인정은 했는데 2-4 카운트에서 볼넷으로 출루시키질 않았다. 거기다 김재호는 그 카운트를 깔고 우전 안타를 쳐내게 된다.[6] 이로 인해 20만 원의 벌금과 엄중킹중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2014년 5월 20일 경기에서 역대급의 오심을 저지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베이스볼긱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1편, 2편, 3편

자신이 내린 판정에 대해 선수가 항의나 불만을 표시하면 상당히 강하게 나가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명백한 오심인 경우에도 그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는 것도 꽤 있다.

2018년 5월 13일 KIA 삼성의 경기, 삼성의 공격 때에 스트라이크 콜을 하려다가 손을 내리는 모습이 나왔다. 확실히 삼성 편파적인 판정을 내리는 심판은 맞다. 5월 13일 KIA-삼성전 스트라이크존 정리(KIA 타이거즈 갤러리 개념글. 댓글 지역드립 주의!)

근데 최근엔 영 언급이 없다. 사실 별다른 언급이 없는게 좋은거다.

여담으로 삼진콜 모션이 굉장히 특이하다. 똥침 찌르기로 유명한 나광남 심판[7]과 함께 삼진콜 모션으로 유명한데, 벽돌 격파하듯이 땅을 향해 주먹을 수차례 내리치며 삼진을 외친다. 꾸웨엑하고 소리지르는 건 덤.
파일:이영재삼진콜.gif

2019년 4월 10일 LG 트윈스 vs 삼성 라이온즈 경기에서 볼 카운트를 착각해 2스트라이크에 삼진콜을 해버린 적이 있다. 착각을 알아챈 이후 머쓱해하며 세상 사람 좋은 아저씨 표정으로 웃는건 덤.

2022년 7월 22일 KIA 타이거즈 vs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2사 1, 2루 나성범의 타석 풀카운트에서 바깥쪽 스트존 안에 들어온 직구를 볼로 판정하는 오심을 저질렀다. 이후 2사 상황에서 KIA는 1득점을 하고, 이후 2타점 적시타와 1타점 적시타가 터지면서 총 4점을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 일어났다.

2023년 4월 7일 사직 kt wiz vs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주자 1,3루 상황, 내야에서 심판에 맞은 타구에 대한 오심을 저질렀다. 원래는 내야수 앞에서 심판이 타구에 맞았을 경우 야구규칙 5.06(c) 6항[8]에 따라 타자는 내야안타로 출루하고, 타자의 진루로 진루 의무가 생기는 1루 주자의 2루 진루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3루까지 진루했던 1루주자만 2루로 귀루시키고, 홈인한 3루주자의 득점을 인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 도중 KBO는 오심을 인정했고, 경기 직후에도 본인이 오심임을 인정했지만 롯데 벤치에서 항의가 없었기 때문에 득점을 인정했다는 인터뷰로 공분을 샀고, 결국 다음날 벌금 100만원과 무기한 2군 강등 징계를 받았다.[9]

5월 2일, 무기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고작 3주 만에 징계를 마치고 1군에 복귀하였다.

5월 10일 사직 두산 베어스 vs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주심으로 배정되었는데, 8회말 전준우의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에서 한참 벗어난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여 삼진을 주고, 전준우가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눈을 치켜뜨며 빨리 들어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 이닝 종료 후 분이 안 풀린 듯 롯데 덕아웃을 찾아가 전준우를 불러 세우는 추태를 보여주었다. 롯데팬들은 어떻게 무기한 2군 강등이 한 달만에 풀릴 수 있는 거냐며 유독 심판의 권위를 존중하고 심판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크보에 화내는 중.[10]

그리고 5월 13일 정주현 김태군에게 글러브로 밀어내는 민폐를 저질렀고 이에 아웃 판정을 하자, 박진만 감독이 항의하였으며, 이에 박진만에 퇴장 명령을 부여했다. 이에 삼성팬들은 당연히 개탄하며 격노를 쏟아냈다.

5월 23일 주심을 맡은 대전경기에서 몸쪽 깊은 코스의 공에 스트라이크 콜을 받은 타자 황대인이 혼잣말로 항의하다가 덕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이영재 심판이 곧바로 황대인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이 역시 KIA팬들은 이게 퇴장감인가? 라며 황당한 반응을 보였으며 오죽했으면 해설인 이대형도 이해를 못할 정도로 너무 섣부른 퇴장명령이었다며 지적했다.

6월 16일 광주 NC 다이노스 vs KIA 타이거즈 경기에서 비상식적으로 좁은 스트라이크 존을 보여주며 양 팀 합계 17볼넷(...)이라는 정신나간 기록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양 팀 모두에게 좌우 보더라인에 걸친 공 뿐만 아니라, 위 아래로는 방송사 화면에서 충분히 들어오고도 남은 공을 볼로 판정하는 등 게임물관리위원회급 판정을 보여주었다. 엔씨투수들의 경우 바깥쪽 걸친 공을 아예 안잡아주는 바람에 투구가 한가운데로 몰려들어 홈런으로 연결되는, 한마디로 경기를 지배한 거나 다름없다.

7월 12일 고척 kt wiz vs 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는 9회 말 투아웃 1,2루 1점차 접전 상황에서 명백한 삼진으로 끝나야했던 상황에 볼을 주며[11] 경기를 또다시 지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김재윤이 상황을 잘 막아내며 역전되는 일은 없었다. 당일 스트라이크 존

4. 관련 문서


[1] 이영재가 입단한 1991년 0.317의 타율로 리그 5위를 차지한 것부터 시작해서 1994년까지 꾸준히 1군 경기에 출장하여 녹슬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 시기부터 수비력 하락이 시작되던 때라 삼성은 포수를 닥치고 모으려고 했으나, 죄다 실패하고 FA로 영입한 김동수마저 폭망하며 진갑용 전까지 삼성은 포수난에 시달렸다. [2] ? [3] 그러나 고향팀이자 친정팀인 삼성과 경기하면 삼성 편파 성향이 드러나는데, 심판 초기에는 유난히 심했다. 특히 고딩 직속 후배인 이승엽 타석 때 친정 사랑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4] 이때부터 삼성이었다. [5] 이희수 감독이 야구공을 손에 쥔 상태로 후려쳤다. [6] 재미있는 점은 볼카운트를 착각한 오심이 모두 이영재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타자로 한 번은 주심으로. [7] 선수 시절부터 팀메이트이기도 했는데 둘 다 삼성 친화 심판이다. [8] 내야수(투수 포함)에게 닿지 않은 페어 볼이 페어지역에서 주자 또는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또는 내야수(투수 제외)를 통과하지 않은 페어 볼이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타자가 주자가 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줘야 하는 각 주자는 진루한다. [9] 같은 경기 주심 장준영, 1루심 김익수, 3루심 김정국, 대기심 윤상원 심판은 강등되지 않고 경고와 벌금 100만원 징계를 받았다. [10] 하지만 심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KBO의 심판 관리와 대우는 엉망진창이라 관대하다고도 할 수 없고, 무기한 강등 또한 길게 잡을 수가 없는 것이 심판 수가 모자라기 때문. [11] 다만 장성우가 섣불리 일어나 시야를 가렸다고도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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