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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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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Twins_champion_v2.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4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41e42>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svg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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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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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ed1c24> 초대 2대 3대 4대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감독 대행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6)
성기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어우홍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1989)
<rowcolor=#ed1c24> 5대
6대
7대
김진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0)
감독 대행
도위창 파일:일본 국기.svg
(1990)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3)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1998)
감독 대행
김명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rowcolor=#000> 8대 9대
10대
김명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1)
감독 대행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감독 대행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2003)
<rowcolor=#fff>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감독 대행
김용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양상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5)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2007)
로이스터 파일:미국 국기.svg
(2008~2010)
양승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2)
<rowcolor=#fff> 15대 16대
17대
18대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4)
이종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
조원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6~2018)
양상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감독 대행
공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rowcolor=#fff> 19대
20대
21대 파일:롯데 자이언츠 워드마크.svg
허문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2021)
서튼 파일:미국 국기.svg
(2021~2023)
감독 대행
이종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김태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
}}}}}}}}} ||

LG 트윈스 등번호 45번
김종철
(1990~1993)
<colbgcolor=#000><colcolor=#fff> 허문회
(1994~1996)
김기진
(1997)
LG 트윈스 등번호 8번
최훈재
(1990~1996)
허문회
(1997~2001.7.12.)
최만호
(2001.7.25.~200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번
한규식
(1999~2001.7.12.)
허문회
(2001.7.13.~2003.4.25.)
박연수
(2003.4.26.~2004)
LG 트윈스 등번호 30번
박연수
(1998~2003.4.25.)
허문회
(2003.4.26.~2003)
민경수
(2004~2007)
LG 트윈스 등번호 80번
양승호
(2006)
허문회
(2007~2011)
김무관
(2012~2014)
{{{#fff [[넥센 히어로즈|넥센]] / [[키움 히어로즈|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2번}}}
이광근
(2009~2011)
허문회
(2013~2019)
김창현
(202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2번
윤재국
(2019)
허문회
(2020~2021)
전준호
(2022~2023)
}}} ||
파일:전)허문회감독.jpg
허문회
許文會 | Heo Moon-Hoe
출생 1972년 2월 12일 ([age(1972-02-12)]세)
부산광역시 동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산중앙초 - 초량중 - 부산공고 - 경성대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4년 2차 1라운드 (전체 9번, 해태)
소속팀 LG 트윈스 (1994~2001)
롯데 자이언츠 (2001~2003)
LG 트윈스 (2003)
지도자 세광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4)
춘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5~2006)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 (2007~2011)
상무 피닉스 야구단 타격코치 (2012)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13~2014)
화성 히어로즈 타격 코디네이터 (2015~2018)[1]
넥센- 키움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18~2019)[2]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20~2021)[3]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비판3.2. 악플 고소 사건3.3. 재평가?
4. 어록5. 연도별 성적6. 기타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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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코치, 감독.

2020년~2021년 5월,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역임했다.

2. 선수 경력

파일:허문회선수.jpg
LG 트윈스 1기 시절
대타 인생 허문회 ‘대(代)타자’

올시즌 단 3타석 출장에 안타 없이 삼진 1개. 프로 데뷔 이후 한번도 100경기 이상 출전해본 적이 없는 대타 인생. LG의 잊혀진 1루수 허문회

부산공고와 경성대를 졸업하고 94년 해태에 지명된 허문회는 해태 유니폼도 입지 못하고 곧바로 LG로 이적, LG의 김상훈을 잇는 좌타 1루수로 촉망받았다. 그러나 선수지명에서 막차로 입단한 서용빈이 동계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 1루수 자리를 그에게 내주고 허문회는 대타 인생으로 접어들었다. 서용빈과 김선진의 뒤에서 간간이 경기에 나서던 허문회는 올시즌 양준혁· 찰스 스미스의 잇단 영입으로 완전히 잊혀진 선수가 됐다.
경향신문 2000년 10월 10일
"현역 시절 10년간 나는 대타만 하다가 끝났다. 타격만 되고 수비가 약한 반쪽짜리 선수였다."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지성준을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나처럼 되면 안된다' 며 했던 말. # #

초등학교 때부터 쭉 부산에서 야구를 해왔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부산-경남에서 최약체팀인 부산공고에 들어가서[4]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고 경성대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장타력을 나름 인정받아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했지만 졸업반 때인 1994년 드래프트에서 연고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진 못한 채[5] 2차 1라운드 9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다.

그런데 입단 전에 LG와 해태간의 2:4 트레이드( 김상훈, 이병훈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 김봉재)에 포함이 됨에 따라 원래 지명받은 해태가 아닌 LG 트윈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당시 LG 주전 1루수이자 '미스터 LG'로 불린 팀의 간판선수 김상훈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상황이라 허문회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애초에 LG가 허문회를 추가로 요구해 성사된 트레이드이기도 했고.[6]

그러나 데뷔 시즌인 1994 시즌을 앞둔 일본 전지훈련에서 인스트럭터 자격으로 LG 선수들의 타격폼을 봐주던 일본야구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은 허문회에 대해 "프로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하루 천 번 이상은 스윙을 돌려야 한다. 이대로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신랄하게 혹평한 반면 2차 지명 끝에서 두 번째로 간신히 프로에 들어온 교타자 1루수인 서용빈은 "너 정말 폼 좋다. 손 볼 것이 없으니 그대로만 계속해라."는 말로 높게 평가했다. 정말 장훈의 평가처럼 개막 후 서용빈은 겨우 6경기만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등 일찌감치 주전을 굳혀버렸고, 그해 타율 0.318와 역대 신인 최다안타인 158안타를 기록하며 유지현, 김재현과 함께 'LG 신인 3총사'로 불리며 LG의 간판 스타로 성장한 반면, 허문회는 서용빈에게 밀려 1군과 2군을 오가는 백업 선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7] 허문회 본인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당시에는 솔직히 많이 힘들었지만 그 때 일이 지도자 생활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도자가 된 뒤 항상 말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줄지 고민했고, 더 말 조심하려고 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 이라는 말을 남겼다. #참고 기사

데뷔 첫 해인 1994년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51경기에서 타율 .304를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도 매년 2할대 중반 정도의 타율을 유지해 주었으니 감독으로서도 어느정도 계산은 섰던 선수로 볼 수 있다. 참고로, 데뷔 첫 홈런 경기가 1996년 9월 22일 해태와의 광주 최종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허문회는 혼자 5타수 5안타 3홈런을 기록하면서 LG전에서 자신의 시즌 방어율을 낮춰 방어율왕을 가져가려던 조계현에게 패전을 안겼다.[8] 이 때 한 기자는 '허문회는 시즌 끝난 게 너무 허무해'(...) 라는 드립을 날렸다. #

다소 애매한 실력이기는 해도 에버리지가 있고 왼손잡이였던 덕분에 좌타 대타로 쓰기에 적합하며[9] 수비시에서도 왼손잡이 1루수라는 이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전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고 주로 백업/대타 요원으로 보내게 된다. 본인이 롯데 감독이 된 후 스스로 언급했듯이 수비가 안되는 1루수였던 것이 문제였다. 서용빈이 교통사고와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2년 이상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오히려 기량 하락을 보이면서 주전을 차지하기는커녕 베테랑 김선진에게 밀리면서 여전히 백업 선수 신세였다. 허문회 본인은 훗날 스스로를 '타격은 되지만 수비가 안 되는 반쪽짜리 선수였다'고 회고했다.

다만 사실 그의 커리어를 보면 '타격이 되는 선수'였다고 보기도 힘들다. 정말로 타격이라도 되었으면 지명타자라도 되었을 것이다. 90년대 후반 LG는 김영직이 은퇴한 이후 지명타자가 너무 허약해서 팀의 구멍인 상황이었다. 특히 96~97시즌에 지명타자를 맡았던 최훈재, 박준태는 모두 2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당시 LG가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미끄러지며 준우승에 그쳤던 원흉으로 꼽혔다. 하지만 허문회는 타율이 2할 2푼대에 머물던 이렇게 막장 상황인 LG의 지명타자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냉정히 말하자면 반쪽도 못 되는 선수였다.[10][11]

1999년에 데뷔 시즌 이후 다시 한 번 3할 타율을 회복하며 잠시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이듬해인 2000 시즌에는 1루수밖에 안되는 대타가 타율 2할을 찍으며 사실상 은퇴 수순에 들어갔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래도 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서 결승 2루타를 쳐내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지만 2001시즌에는 타율이 1할대로 떨어지며 더욱 부진했고[12] 결국 시즌 도중인 7월 한규식과 맞트레이드로 고향 팀 롯데 자이언츠로 가게 되었다.
파일:롯문회.jpg
롯데 자이언츠 시절

워낙 쩌리들의 트레이드라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LG 팬덤은 허문회는 이제 백업 선수로도 쓸 수 없다는 인식이 많았기 때문에 차라리 보여준 게 없는 2할짜리 2군용 선수였지만 미래에 성장할 가능성이라도 있는 한규식을 데려온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13] 반면 롯데 팬덤에서는 둘이 비슷한 2할의 성적이지만 신인선수를 주고 노장을 영입한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허문회는 롯데로 트레이드된 이후 잠시 회춘하여 남은 시즌동안 3할 타율을 기록해서 잠시 롯데 팬들이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듬해인 2002년에 비록 소속팀 롯데는 97패로 역대 최다패 타이기록을 찍으며 형편없는 꼴찌를 했지만, 허문회는 프로 데뷔 후 최다 출장인 92경기에 나서면서 .263의 타율과 6홈런 21타점을 기록했다.

백인천 감독은 2002시즌 허문회를 요긴하게 써먹었지만 시즌 막판 심각한 노쇠화 조짐을 보였던 것 때문인지 2003시즌 개막 후 한 경기도 그를 출장시키지 않은 채 2군에 박아두고 사실상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2003년 4월 25일, 박연수와 트레이드되어 다시 친정팀 LG로 돌아왔다.
파일:2003년 허문회.jpg
LG 트윈스 2기 시절

당시 LG는 서용빈이 군입대하고 김재현의 부상 복귀가 늦어진 탓에 최동수 홍현우가 1루수로 나오는 상황에서 1루 포지션과 좌타자 보강을 위해 허문회의 재트레이드를 추진했다. 당시 LG 팬덤 분위기는 그 전 시즌 1할 9푼의 빈타를 보이던 박연수를 가지고 싸게 허문회를 재영입했다고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이광환 감독 또한 좌타 대타요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허문회는 타율이 1할에도 못 미치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트레이드된지 약 한 달만에 2군으로 강등,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2003년 시즌 종료 후 LG에서 방출되며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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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3.1.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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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악플 고소 사건

2021년 5월 11일 롯데 자이언츠 감독에서 경질된 이후 별 소식이 없다가 2022년 3월 30일, 자신을 비판했던 에펨코리아 야구 게시판 유저들을 상대로 고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14] 시간이 지나면서 허문회에게 고소를 당했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전술한 펨코를 비롯해 엠엘비파크나 네이버 카페 등 주로 실명제 사이트 위주로 탈탈 터는 듯 했는데[15] 이후 디시인사이드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 페이스북 등까지 싹 다 고소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야구 팬들이 놀라는 반응이다. 정황상 본인이 롯데 감독을 맡았던 시기[16]의 글을 뒤져 본인을 비난하는 글을 쓴 유저를 싸그리 고소한 것으로 추정된다.[17] 4월 1일에는 댓글을 쓴 것도 고소당했다는 사람이 등장했으니 앞으로도 고소 대상자는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18][19]

야구 커뮤니티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히려 악플을 옹호하는 모양새의 피해자 비난이 일고 있다. 이들은 야구 선수나 감독은 욕을 먹는 게 일상인 직업 특성상 저런 걸로 하나하나 고소를 때린다면 이론상 모든 감독이 고소장으로 한몫 거하게 땡길 판이라고 비아냥 대기도 한다.[20] 물론 쫄릴 거 없는 유저들은 강 건너 불구경이지만 평상시라면 고소 사태가 터지자마자 "멀리 안 나간다", "나만 아니면 돼"같은 드립을 치면서 단체로 피고소인을 놀리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어느 정도 수위의 글부터 고소당했는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별 말 안하고 있거나 같이 허문회를 까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다.

반면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선수나 감독은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 는 논리부터 잘못되었다는 원론적인 반감이 있으며, 주요 당사자인 롯데 팬덤 내에서도 감독 경질 이후 성민규 단장이 도맡은 롯데 자이언츠의 운영과 성적도 바닥을 치고있는 것에 대한 반대 급부 여론이 올라오고 있다. 즉, 한동안 성민규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던 여론이 많이 사그러 들게 되면서 그와 대척점에 서서 싸웠던 허문회에 대한 재평가 여론도 점점 생기게 되었고, 과연 '성민규는 선이고 허문회는 악'이라는 그동안의 일방적인 구도가 옳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허문회를 비난했던 사람들도 잘한게 없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애초에 야구 자체에 반감을 가졌던 비야구 커뮤니티들도 합세하는 모양새이다.[21][22][23]

아무튼 잘잘못을 떠나 하필 야구팬들이 한창 설레야 할 개막 직전에 터진 악재에 가까운 사건이고 허구연 신임 KBO 총재를 비롯한 여러 야구인들이 여러 사건사고로 무너진 야구 이미지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발악하는 상황에서 허문회의 이 무차별 고소가 또다시 야구계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롯데 구단 측에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 사건의 스케일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공론화가 안 된 상황인데다 구단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는 상황까지 가는 게 아닌 이상 대응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대응을 하려 해도 이미 구단이랑 관련없는 사람을 구단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통 스포츠 클럽에서 해임된 감독들은 자신의 해임을 주도한 전임 구단주나 팬덤을 크게 비난하지는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본인이 다음 일 자리를 찾을 때 지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24][25] 그동안 KBO 리그에서 경질된 감독들도 그 어떠한 암흑기를 선보였더라도 자신을 비난한 팬들을 고소하는 일을 하진 않았고, 꼭 지도자 복귀는 아닐지언정 해설위원, 기술위원장 등등으로 야구계에서 다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허문회는 야구계에 다시 복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26][27][28] 심지어는 오히려 다시 프로야구 지도자를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광역 고소를 시전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29][30][31]

프로야구에 전례가 없었던 초유의 사건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언론에서는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4월 29일 드디어 허문회의 집단 고소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언론사는 역시나 이런 일에 빠지지 않는 스포츠춘추고 회사 대표인 박동희 기자가 직접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 말미에 허문회나 다른 선수들에게 고소를 당한 사람들의 제보를 받는다고 언급한 걸로 보아 단발성으로 끝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사에서 고소를 당한 댓글이 '허문회는 진짜 정신병인가?' 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고소 당해도 싸다' 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2022년 7월, 현역 야구선수 김헌곤이 허문회와 비슷한 루트로 악플 고소를 했다. 야구부장의 크보 핵인싸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 의하면 무차별 고소는 아니고 심한 욕만 추려 15명을 고소했다고 한다.

2023년 9월, 허문회 전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밝혔다. 기사
악플러들에게 받은 합의금을 불우이웃을 위한 금액으로 기부하였습니다.
저는 악플러들을 고소한 것이지, 팬을 고소한 것이 아닙니다. 팬분들을 악플러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악플러들은 팬이 아닙니다. 아직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앞으로도 합의로 받은 금액을 변호사 선임비를 제외하고 계속 기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 욕해도 괜찮습니다. 무분별한 댓글 잡으려고 고소한거여서 이제는 고소할 일 없습니다. 가족 욕만 삼가 해주세요. 저에 대한 비판 다 감수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2022년 9월 28일, 위 댓글에 대한 정식 재판이 열렸다. 죄목은 모욕죄이고 사건번호는 '광주지방법원 2022. 9. 28. 선고 2022고정429 판결'인데, 피해자(허문회)가 2022년 7월 5일 고소 취하서를 법원에 보내면서 공소기각되었다고 한다.[32]

3.3. 재평가?

2020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허문회는 부진한 팀 성적에 따른 책임, 여러가지 인터뷰와 언행 문제, 그리고 프런트와의 충돌 등으로 인해 무수한 비난을 받았고 임기 3년을 반도 채우지 못한 채 2021년 시즌 초반에 중도 경질되었다.[33]

그러나 후임 감독인 래리 서튼이 22시즌부터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기 시작해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경질되었고, 결정적으로 성민규 단장의 연달은 미스가 이어짐[34]에 따라 성민규 단장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역으로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 허문회 전 감독을 재평가하는 여론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재평가론의 주요 대상은 ' 지시완 반쪽짜리론'이다. 시즌 전 포수가 매우 빈약했던 롯데는 성민규 단장의 트레이드로 젊은 포수 지시완(당시 지성준)을 영입하면서 롯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 내었으나 허문회 감독은 그를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후 지시완의 2군행을 두고 '지시완은 반쪽짜리 선수다' 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후 롯데의 주전 포수진이었던 정보근 김준태가 매우 처참한 타격을 보여주면서 공격형 포수라 평가받던 지시완을 찾는 여론이 많아짐과 동시에 롯데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성민규 단장과 허문회 감독의 충돌과 불협화음이 대외적으로 드러났고, 당시 성민규가 롯데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있던 것에 대비되어 허문회는 롯데의 시즌 실패의 원흉으로 지목되며[35]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성민규에 대한 일방적인 옹호 여론이 잦아든 이후, 1군 기회를 부여받은 지시완은 부진한 모습을 보인 허문회가 중용했던 포수 김준태는 KT로 트레이드[36] 된 뒤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자 당시 허문회가 지시완에게 했던 "내가 선수 시절 수비가 안되는 반쪽짜리 선수였기 때문에 팀의 미래인 지시완은 나처럼 되어선 안된다" 고 말한 인터뷰 내용이 재발굴되기도 했다.

또한 성민규 단장의 재임기간 4년 중 허문회 감독이 맡았던 2020년(71승 72패 1무)이 가장 승률이 높은 시즌이었다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와버렸다.[37] 심지어 이는 단장과의 불화로 제대로 된 지원[38]을 받지 못한 채 낸 성적이었다는 후일담 또한 나온 바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의 평판 역시 허문회를 옹호하는 분위기이다. KIA로 이적한 박동원은 넥센 시절 코치였던 허문회의 조언을 받고 타격감이 회복되었다고 말했고, 이대호는 은퇴식 고별사에서 "형님같은 리더십을 보여줘서 감사하다" 는 인사를 건네었다. 개막 3연전에서 부진하던 중 타격에서 각성한 한동희 손아섭은 모두 각성의 계기로 팀 동료나 타격 코치를 꼽은 게 아니라 허문회 감독의 조언을 꼽았다. 한동희 인터뷰, 손아섭 인터뷰 물론 허문회가 타격코치 한정으로는 평가가 극도로 좋은 인물이라는 걸 감안해야하지만, 정말로 감독이 주도적으로 팀 케미를 박살냈으면 선수들이 립서비스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허문회가 팀을 떠날 당시 선수단과 단체 사진을 찍고 떠났다는 것 또한 적어도 선수들과의 관계는 당시 팬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허문회 롯데 감독이 단순히 성민규 단장과 그 팬들에 의한 억울한 희생양이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허문회가 비판받은 주된 내용들엔 성민규 단장과의 불화와는 상관 없이 지도자로서 보인 부적절한 행동과 어긋난 판단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1군에서 부진하면서 자진해서 2군행을 요청한 민병헌을 방치시키며 은퇴까지 몰아붙인 일[39]이 있었으며, 1점차 승부를 운에 맡긴다는 발언 이후 전구단 상대 끝내기 패배와 연장 승률 꼴등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낸 것은 온전히 감독 본인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아무리 내부적으로 단장과의 지속적인 불화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똑같은 불통으로 대응해버리며 일을 키우고 대외적으로 알려지도록 만들었던 부분은 한 팀을 이끌고 분위기도 챙겨야 할 지도자로서는 낙제점인 대처였다. 여기에 경질 이후 일어난 팬 고소 사건과 이후 자신의 SNS에서 롯데 자이언츠가 부진할때 마다 단장을 조롱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은 성민규와 도긴개긴이라는 반응이 많다.[40]

2024년 현재 허문회 감독에 대한 사후 평가는 성민규 팬덤의 광기와 선동에 필요 이상으로 욕을 먹었던 감독이나, 본인 역시 분명한 과오가 있어 2020-2021년 롯데 부진에 분명한 지분을 가진 인물 정도로 정리되고 있다. 또한 감독으로서 객관적 역량이 나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악플러 고소 등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감독으로서 허문회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러나 선수들과의 호의적인 관계 및 코칭 능력에 대한 호평은 여전하기 때문에 코치로써의 허문회는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최종평가가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고소 건 만으로도 대다수의 야구팬들에게는 여전히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최악의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41]

4. 어록

"선수들이 납득할 말한 운용을 하겠다."
2020년 부임 직후에 한 말.
" 지시완은 반쪽짜리 선수다."
2020년 지시완을 개막 엔트리에 제외하면서 한 말. 원문은 "나처럼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타격만 되고 수비가 약한 반쪽짜리 선수였고 대타로만 나오다 끝났다. 나는 3년 뒤에 없어질 수 있지만, 팀은 없어지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서 지성준을 반쪽 선수로 만들면 안 된다." 였다.
"선발투수를 추천해준 사람 때문에 졌다."
2020년 5월, 2군에서 추천을 받고 올라온 장원삼이 부진하며 패배하자 했던 말. 원문은 "선택을 잘못한 감독과 그런 선수를 추천해준 사람 때문에 졌다. 내가 첫 번째 책임이 있고, 2군이 두 번째 책임이 있다." 였다. 기사
"나는 연승을 해도 찝찝하게 이기면 잠이 안 오고 몇 연패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 하면 잠이 잘 온다."
2021년 5월, 당시 롯데는 5연패 끝에 최하위를 하고 있었고 부적절한 발언이란 비판을 받았다. 기사
"작년 승률 3할 4푼팀이다. -7만 해도 됐다."
2020년 5월, 팀이 연패에 빠지고 1위에서 단숨에 6위까지 추락하자 했던 말. 기사 이를 두고 '감독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면피성 발언' 이란 비판이 나오자, 다음 날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발언이었다' 라고 해명을 했다. 참고로 허문회는 다음 2021시즌 경질 당시 -6을 기록하면서 감독 통산 -7을 실현했다.
" 8월에 치고 올라간다."
허문회 전 감독의 가장 유명한 발언. 2020년 7월에 팀이 8위에 머물러 있을 때 한 인터뷰다. 기사 그런데 롯데는 정말로 8월 팀 승률 3위(0.636)를 기록하고 8위에서 6위로 올라가며 8치올을 성공시켜 버렸다.[42] 그러나 9월부터 승률을 다시 까먹어 버렸는데, 허 감독은 " 음력 8월도 있다"는 개드립을 쳤다. 기사[43] 하지만 끝내 또 한번의 반등은 하지 못하면서 시즌 최종 성적은 71승 72패로 5할 승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2군에서 OPS 9할 이하는 절대 기용 안 한다."
2020년 9월 발언. 기사 이 발언에 가장 관련된 선수는 김민수였는데 1군에서 안좋은 모습만 보이다 떠났다.
"웨이버 공시 언론보고 알았다. 정보 고맙다."
8치올 못지않게 밈으로 활용되었던 허문회의 유명 발언으로, 2020 시즌 이후 웨이버 공시 직후에 한 말. 기사 실제로 웨이버공시 명단은 물론이고 데이터조차 건내받지 못했다는 것이 훗날 드러났다.
"열심히 하지 마라."
"이기고 지는 건 하늘에게 맡긴다."
2021시즌 초반 팀이 연패에 빠지자 선수들에게 했던 말. 이를 두고 '열심히 플레이하는 선수들에게 할 말이냐' 비난하는 팬들이 있었으나, 원문은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래서 너무 열심히 하지마라고 했다. 의지만 갖고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할 것을 잘 한다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기사
"데이터 찾다 고의사구 타이밍 놓쳤다."
2021년 4월 25일 kt전에서 볼카운트 1-1 상황에서 이홍구를 고의사구로 내보내고는 끝내기로 패배하자 한 말. 기사 그런데 이후 단장이 이끄는 데이터 팀이 감독을 따돌리며 데이터를 주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재평가 되었다.
"대체선수들을 쓰면 한 두 경기는 이기더라도 장기적으론 실패한다."
2021년 5월, 부진이 심각하던 손아섭을 계속 기용하는 것에 대해 내놓은 답. 배지헌의 브러시백
"똘똘한 우완 불펜이 좌완 불펜보다 낫다."
2021년 5월, 2군에서 김유영, 박재민 같은 좌완 불펜투수들이 호투하고 있을 때 이러한 인터뷰를 해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기사 원문은 선수들을 폄하하는게 아니라 '좌완이란 이유로 특별 대우 해주지 않는다' 는 의미이다.
"나 혼자 판단할 수 없다. 머리 하나보단 열 개가 낫다."
" 지시완은 수비가 아니다."
2021년 지시완 배제 논란에서 한 말. 지시완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 아니라 대신 기용한 강태율은 데이터에 기반한 기용이었음을 밝혔다. 기사
"잠 잘 잤다."
지시완 배제 논란으로 패배한 다음 날 경기를 승리하자 한 말.
"단장을 싫어했다면 추재현, 강로한도 안 썼다."
지시완이 단장이 데려온 선수라서 안 쓰는 거냐는 여론에 답한 말.
"2군에선 쓸만한 선수가 없다. 있었다면 캠프 때 보고 받았을 것."
2군에 훌륭한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콜업하지 않냐는 질문에.
"2군에서 구승민, 박진형보다 잘하는 선수 없다."
구승민과 박진형의 부진으로 2군에서 대체할 불펜투수는 쓰지 않냐는 질문에.
"연패는 어느 팀이든 다 하기 때문에 감기라고 생각하고 넘긴다."
"어릴 때 한 반에 60명 있어도 누가 공부 잘하고 못하는지 다 알지 않나. 야구도 마찬가지다. 누가 잘하는지 선수들이 다 안다" "감독이 정직한지 아닌지, 선수들이 모르겠나."
"최고로 좋은 선수를 쓰지 않는다면 그건 감독으로서 의무를 방임하는 것."
"단순히 선수를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잘하는 선수를 벤치에 앉히면 팀이 와해하기 시작한다."
"1점 차 경기는 운에 맡긴다."
"고수는 말이 없는 법."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1994 LG 51 115 .304 35 4 1 0 13 10 0 3 .357 .333
1995 19 20 .100 2 0 0 0 1 0 0 0 .100 .182
1996 53 81 .272 22 6 0 3 9 6 0 6 .457 .330
1997 81 158 .272 43 2 0 3 14 8 4 12 .342 .326
1998 69 138 .246 34 5 0 2 16 12 0 7 .326 .288
1999 78 190 .311 59 6 1 6 39 22 2 17 .447 .370
2000 6 10 .200 2 1 0 0 3 1 0 0 .300 .200
<rowcolor=#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1 LG/ 롯데 51 75 .267 20 2 0 0 11 10 0 11 .293 .356
2002 롯데 92 209 .263 55 11 0 6 21 18 3 18 .402 .332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3 롯데/ LG 23 22 .091 2 0 0 0 2 0 0 2 .091 .167
<rowcolor=#373a3c> KBO 리그 통산
(10시즌)
523 1018 .269 274 37 2 20 129 87 9 76 .368 .327

6. 기타

7. 관련 문서


[1] ~5월 8일 [2] 5월 9일~ [3] ~5월 10일 [4] 부산에서는 부산고, 경남고가 양강이었고 부산상고, 경남상고, 마산의 용마고가 중위권, 야구부가 해체되었다가 재창단된 동래고가 하위권, 가장 마지막에 야구부가 창단되었던 부산공고가 최하위권을 형성했다. [5] 롯데가 이미 1차지명으로 같은 포지션의 강상수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당시 강상수는 아마야구 최고의 '내야수'로 평가받으며 고려대 시절 1번타자 1루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정작 프로 지명 후엔 당시 롯데가 주전선수들의 상당수가 방위목무를 하는 바람에 팀 전력이 크게 약해져 투수진의 공백을 메우고자 투수로 전업하였다. [6] 당시 LG 이광환 감독은 김상훈의 트레이드를 끝까지 반대했다가 LG가 트레이드로 허문회를 추가로 요구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 이 트레이드가 쫑날 것을 확신하고 김상훈을 따로 불러 격려까지 했으나, 결국 해태가 LG의 요구를 받아들여 트레이드가 성사되어버렸다. [7] 이를 두고 일부 LG 팬들은 장훈이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 고 원망을 하기도 한다. 장훈의 말 때문에 허문회가 위축되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결과가 보여주듯이 선수볼 줄 아는 눈이 뛰어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반응도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명 당시 지명 순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아마 시절의 허문회는 서용빈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였다. 그리고 허문회는 데뷔 시즌이 최전성기였을 정도로 초기에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서용빈을 못미더워 하는 팬층이 무척 많았기에 당시 LG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었다. 당시 실제로 장훈이 정말 허문회를 서용빈보다 낮게 보고 혹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장훈이 허문회를 혹평했던 것은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고 자극을 주기 위해서였던 반면 어렵사리 프로에 들어온 서용빈에게는 자신감을 주려는 의도였다는 것. 장훈같은 야구계 대선배의 한마디가 선수의 마음가짐을 바꾸어 나중에 선수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것은 왕년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같은 만화영화에나 나오는 일이지, 현실과 만화는 다르다. 당시 지도자들은 대부분 항상 과장된 훈계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제대로 성장할 선수가 없다. 지도자의 그 정도 엄격한 발언 한마디에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 상태라면 프로 1군에서 제대로 선수 생활을 하기는 힘들다.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하며, 성적 부진에 대한 팬들의 가혹한 질책, 심지어 비아냥을 견디는 게 프로스포츠 선수이기 때문이다. [8] 조계현은 부친상 이후 이틀만에 출전한 상태였다. 해태는 전날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지은 상태. [9] 감독들이 좌우놀이를 특히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좌타 대타자는 각 팀 엔트리에 거의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경기 중반 이후에 좌타자를 대타로 기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미국이나 일본 야구도 우리나라보다는 덜하지만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10] 허문회의 통산 타율이 2할 6푼이 넘기 때문에 타격이 그렇게 막장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성적이 주로 불펜 우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대타로 표적 기용되어 얻어낸 부풀려진 성적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주전으로 기용되었다면 타율은 훨씬 떨어졌을 것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통상적으로 좌타자는 우타자에 비해 좌우 투수에 따른 성적 차이가 더 심하다. 그 원인은 우투수보다 좌투수가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허문회처럼 대타로만 기용되는 좌타자는 훈련이나 실전이 모두 우투수에 대해서 이루어지게 되고, 때문에 실전에서 좌투수를 만나게 되면 적응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11] 타격이 그래도 1군 대타감은 되었으니 수비만 됐으면 좀 더 기회를 받았을 것이다. 수비가 좋다는 이유로 타격이 안 돼도 1군에서 주전을 차지하는 선수들은 꽤 있으니. 물론 허문회의 포지션이 수비 비중이 낮은 1루수였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용병 타자가 없던 시기라 1루수도 타율 높고 수비력 좋은 똑딱이들이 주전으로 나오던 시기였다. 당장 서용빈도 장타력은 별로 없던 편. [12] 트레이드 시점 기준으로 타율이 0.192였다. [13] 한편 항상 젊은 선수를 보내고 노장을 영입하던 것으로 유명했던 김성근 LG 감독이 반대로 20대 후반의 허문회를 내보내고 젊은 유망주 한규식을 영입한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그 당시 LG에는 왼손 타자 심성보와 오른손 타자 최동수, 박연수 3명이 대타 요원으로 있는 상황에서 수비가 안 되는 허문회가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14] 고소당한 유저의 글을 보면 손아섭의 기용에 관하여 허문회를 욕하는 내용이다. 후술할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해당 글을 쓴 유저는 경찰 측에서 혐의점을 찾지 못해 불송치 처리되었다고 한다. [15] 디씨 팀갤은 비로그인 사이트 특성상 잡기 번거롭기 때문에 만만한 실명제 사이트부터 조진다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16] 특히 허문회에 대한 여론이 최악을 달리던 2021년 4월~5월 부근에 업로드된 글이 상당수를 이루고 있다. [17] 무작위 고소인 것만 봐도 알겠지만, 타팀팬 중에서도 허문회에게 고소당한 케이스가 적지 않다. 왜 경질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집단 고소를 시전한 건지는 의문을 사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경질 직후에 고소를 한 게 이제서야 진행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18] 워낙에 고소 인원이 많은지라 조진웅, 공유, 남주혁 등 롯데 팬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이나 추재현, 지시완 등 허문회에게 대놓고 차별당한 선수들도 고소당해 팬들과 경찰서에서 만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19] 심지어 불송치 각하된 건에 대해 허문회 측에서 이의신청을 제기해 다시 검찰조사를 받게 됐다는 글도 등장하는 등 사태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20] 사실 논란의 핵심은 패드립이나 팀 운영상의 문제나 경기 내적인 비판들마저 고소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심한 수준의 욕설과 패드립 등만 고소했다면 이 정도로 반응이 험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일반인이 좋든 안좋든 경찰, 법원과 엮이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라 그걸 노리고 일부러 마구잡이 고소를 하는 사례는 흔한지라 이번 사태도 그렇게 보는 팬들이 많다. [21] 야구 전용 게시판이 없거나 야구에 대한 관심이 적은 커뮤니티, 혹은 야구에 적대적인 분위기의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국제대회에서 실망스런 성적을 올린 야구 대표팀의 문제와 결부되어서 "아직도 야구 따위나 보는 사람이 있다니 신기하다"라며 야구 혐오를 시전하거나 "얼마나 심한 욕을 했으면 고소까지 했겠냐. 야구팬들은 조금만 못해도 욕부터 박고 보니 고소당해도 싸다"며 오히려 허문회를 두둔하는 등 고소당한 야구팬들에게 우호적인 의견은 적은 편이다. 처음 이슈가 시작된 게 에펨코리아와 적대적인 몇몇 사이트(예: 각종 여초 사이트)에서는 꼴좋다는 반응도 나왔다. [22] 실제로 야구나 축구 등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왜 고작 공놀이 하나에 일일이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데, 정작 이런 말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다른 주제의 글에서 본인들이 그렇게 욕하는 야구팬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상당히 흔한지라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23] 물론 이런 반응들은 허문회가 고소한 글들의 수위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막연히 "심한 욕을 했으니까 고소당했겠지 뭐"라고 대충 넘기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박동희의 기사로 인해 고소당한 글의 예시가 확실하게 나온 이후에는 루리웹 같이 야구에 무관심한 성향이 강한 사이트에서도 뭐 저런걸로 고소하냐는 비판적인 의견이 상당히 많이 보이고 있다. [24] 2017년 10월, 카를로 안첼로티 바이에른 뮌헨에서 해임되자 트위터에 이를 비난하기는 커녕, "바이에른과 함께 한 것은 영광이었고 구단과 팬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며 오히려 사의를 표한 것에 대해서 훈훈한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같은 경우에는 해임 당시 한국축협을 크게 디스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게 해가 되어서 다음부터 국가대표팀이나 웬만한 클럽을 맡지 못했고, 설사 맡는다 해도 성과가 별로 없었다. 울리 슈틸리케 또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축구 감독을 맡아 최종예선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 경질되고 중국으로 건너간 뒤 틈만 나면 한국팀을 까면서 어그로를 팍팍 끌었고, 러시아 월드컵 기간에도 한국은 아직 2002년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발언으로 뒤끝을 보여줬다. 하지만 막상 러시아에 가니 어느 정도 부진을 씻어내고 막판에는 그 독일을 때려잡는 대이변을 일으키면서 독일한테 완패를 당할 거라고 까던 슈틸리케에게 복수 아닌 복수에 성공했고, 이후 중국 리그에서도 팀 성적을 끊임없이 추락시키며 비웃음거리가 되었으며, 중국 리그에서마저도 성적부진으로 경질되고 난 뒤에 지도자 은퇴를 하여 감독으로서 복귀 가능성은 0인 상황이다. 하다못해 성격이 독단적이며 고집이 세 프론트,축구협회 및 선수단과 충돌을 자주 겪는 바히드 할릴호지치도, 알제리 감독 시절 극심한 갈등을 겪었을지언정 알제리를 첫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을 시킴으로서 능력을 증명 및 프론트와 협회, 기자들을 데꿀멍시켰고 일본 감독 시절 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일본과 불명예스러운 이별을 했지만 경질된 후에도 일본의 선전을 기원하는 인터뷰를 하였다. [25] 그리고 잘리는 데 도가 튼 김성근 감독조차도 SK 시절, 본인을 경질한 민경삼 당시 단장하고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 심지어 SK 시절은 한국시리즈 3회 우승, 1회 준우승과 정규시즌 22연승의 대기록 등등 2000년 후반기 왕조시기를 구축한 최전성기 시절이었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김성근은 30여년 동안 많은 감독 생활을 하면서 불명예스럽게 경질되어서 팀을 떠났을지언정, 프런트와 극한의 대립을 일으켰을 때도 최고위층인 구단주를 언제나 두둔하고 감사와 존경함을 표현하는 등 언론플레이에 능하기도 하여 실제 OB·삼성·한화 등에서 감독이 될 때 프런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룹 총수의 지시로 감독으로 영입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것도 감독으로서 성과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26] 여기에 해당되는 몇몇의 야구인들을 서술하자면, 김성근 감독은 프로 감독 생활 자체가 크고 작은 사건사고 및 논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음에도 야구 지도자 경력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실 그 논란이나 사건사고도 어디까지나 지도 방법이나 선수 기용, 팀 운용같이 야구 경기 내적인 부분에서 일어나는 문제지, 야구 외적으로는 선수들에게 팬 서비스를 항상 강조했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딱히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비록 한화 시절 최악의 흑역사를 쓰며 금지어로 전락하며 경질되었지만, 이전의 태평양이나 쌍방울, LG, SK 등에서 보여준 능력을 바탕으로 고령의 나이임에도 일본의 소프트뱅크 코치로서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야구인 생활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김성근 감독에 부정적인 안티팬들도 나이를 잊은 열정만큼은 존경스럽다고 할 정도다. 또 이 사건만 두고 보자면 김성근은 인터넷 내에 욕을 먹다 못해 현재는 야구 관계 없이 거의 밈이 되었음에도 본인은 이렇다 할 소송을 걸지 않았다. 정확히는 입장 표명을 안 한 거겠지만. [27] 또한 이순철은 LG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불리며 경질되었고 그 이후 두 번의 코치직을 맡았으나, 그조차도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지도자 생활을 끝냈다. 그러나 이순철은 선수로서는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하나였고, 촌철살인 모두까기라는 해설 스타일을 정립하면서 현재도 명해설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8] 그 밖에 트레이 힐만 체제로 2018년 우승을 달성하며 다시 한 번 왕조 재건에 성공할 지 기대를 모았던 SK 와이번스를 최하위권으로 추락시키면서 SK-SSG 팬들에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감독 취급을 받는 염경엽마저도 넥센 히어로즈 감독 시절 4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과 2014년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공이 있고, 프런트와 단장으로서의 평은 나쁘지 않으며, 야구 외적인 부분과 인간적인 면에서는 어떠한 논란과 사건사고를 일으킨 적도 없어 현장이나 일부 여론 사이에서는 현재도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이 덕분에 KBO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 KBS N SPORTS 해설위원으로 발탁된 데 이어, 29년동안 우승을 못하던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첫 해에 통합 우승을 달성하는 등 야구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29] 일단 본인이 선수 시절 최고의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주었거나, 감독 및 코치로서 나름의 커리어가 증명되었다면 야구계에서 일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하지만, 선수 및 코치로서도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고 그마저도 감독으로서 좋지 않은 모습 때문에 코치 생활을 했었을 당시에 좋지 않은 행적까지 드러난 현 시점에서는 야구계 복귀가 요원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야구계에 복귀도 못하게 되었으니 자기를 비판한 팬들에게 합의금이라도 두둑하게 뜯어내자는 못된 심보가 발동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많다. [30] 그나마 이 문서 내용처럼 타격코치로서의 성과는 나름 좋았기 때문에, 단순히 성적만 좋지 않았거나, 운용상의 문제만 있었더라면 이전에 쌓았던 성과를 바탕으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면서 권토중래를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허문회 감독은 그걸 넘어 프런트와의 불화로 경질되었고 이게 만천하에 드러난지라 야구로 먹고사는 것은 더더욱 힘든 상황이다. [31] 혹자는 프런트 문제가 극심한 롯데이기 때문에 성적을 내기 힘들고 감독으로서 임기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옹호론이 희미하게나마 있기도 하다. 실제로 김시진은 롯데 감독 임기기간 선수단 CCTV 사찰 등 감독으로서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감독으로서 아쉬운 성적으로 사임하였고, 조원우 또한 2017 시즌 5년만의 가을야구의 성과로 3년 재계약을 했지만 2018 시즌 가을야구 진출 실패로 경질된 사례가 분명 있지만, 적어도 김시진은 현대, 넥센, 롯데 포함 감독 임기 7년 동안 가을야구 진출이 전무하였음에도 현대 코치 시절 능력 검증 및 넥센 감독 시절 선발투수를 어떻게든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특히 잠재력 있는 서건창, 박병호를 1군에 적극 기용하여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홈런왕 장기집권을 달성 및 시대를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잡게 하여 팀 시스템을 재정립했다는 평을 받고 있고 롯데 감독 사임 이후 기술위원장 및 KBO 경기운영위원회 위원으로 야구인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고, 조원우 또한 한화, 롯데, 두산, SK 코치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롯데 감독으로 부임하여 가을야구 진출의 성과를 내었지만 재계약 1년차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을지언정 2020시즌부터 SSG 2군 감독 및 1군 벤치코치로서 야구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다못해 2019년 롯데에서 최악의 흑역사를 기록하며 감독으로서 역량 논란이 많았으며 자진사임 형식으로 경질된 양상문도, 투수코치 시절의 나름의 명성으로 롯데 감독 1기 시즌 비밀번호 암흑기시절에 50승 이상을 기록, 다음해 5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LG 감독 시절 2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으며 현재는 해설위원으로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32] 한편 무차별 고소 의도에 댓글부대를 잡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본인 인스타에 연극 댓글부대를 보러간 걸 올리고 기대된다고 올린 점이나 이 외 행보가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실어주는 중. [33] 근래에는 내부적으로 감독을 경질했다 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경질이 아닌 자진사퇴 형식으로 발표하는게 일반적이다. 허문회의 전임 감독이었던 양상문도 구단 고위층의 의중에 따라 사실상 경질됐지만 외부에 알려진 거취 표명 형태는 자진사퇴로 발표됐다. 그러나 허문회는 직접적으로 구단 측에서 "경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허문회와 롯데 프런트 사이의 골이 깊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34] 연이은 트레이드 실패, FA 실패 등. [35] 성단장이 팀을 잘 만들려고 하는데 허감독이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 [36] 이 역시 성민규의 허문회 색깔 지우기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37] 2021년은 오프시즌에 허문회 라인의 코치들을 성민규가 변호사를 대동한 채 모두 경질해버리며 손발이 잘린 채 맞은 시즌이었다는 것이 야구부장을 통해 밝혀졌다. [38] 단장이 이끄는 데이터 팀에서 일부러 감독 측에 데이터를 전달하지 않았고 윤윤덕 퀄리티 컨트롤 코치가 어렵사리 몇개 얻어오곤 했다는 루머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39] 재평가론 주장자들은 이것 역시 악성계약을 청산한 것이라 칭송하고 있지만 18, 19년 민병헌은 팀이 나락으로 향하는 중에도 WAR 3점대를 찍으며 롯데 타선의 에이스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게다가 2군으로 내려 연봉이라도 덜 줬으면 모를까 전력에 도움조차 될 수 없는 선수를 1군 로스터에 억지로 두는 바람에 연봉은 연봉대로 내주는 와중에 팀 성적까지 망쳤다. 무엇보다 뇌동맥류라는 생명에 직결되는 질병을 앓고 있던 민병헌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허문회가 아니라 어느 레전드급 감독이라도 즉시 야구계에서 매장당했을 것이다. 특히 롯데는 임수혁의 비극을 겪었던 팀이니만큼 더더욱. [40] 다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욕을 심하게 먹었었는데 개인 SNS로 이정도 분풀이도 못하냐는 반론도 많다. 관련 내용이 올라올 경우 항상 옹호론자와 비판론자 간의 치열한 키배가 열린다. [41] 심지어 2024년에는 이대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패기를 보였는데, 역시나 반응은 상당히 안 좋다. 이대호에게 실망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보일 정도. [42] 다만 진정한 8치올은 월간 승률 .667로 전체 1위를 기록한 LG에게 조금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43] 원래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장난식으로 음력 8월도 있다고 드립쳤는데 그걸 실제로 시전해버리면서 꼴갤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44] 유래는 당연히 4점 줘 사건. [45] 파일:허문회 인스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