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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2:36:02

허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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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2007년
<rowcolor=#b21528> 초대 (삼미 초대)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박현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김진영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984~1985)
감독 대행
이재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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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박현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신용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
허구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rowcolor=#fff> 3대 (청보 2대)
4대 (청보 2대, 태평양 초대)
5대 (태평양 2대)
감독 대행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감독 대행
임신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rowcolor=#ff9933> 6대 (태평양 3대)
7대 (태평양4대)
8대 (현대 초대) 9대 (현대 2대)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5)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2006)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
윗첨자1 : 김진영 감독이 1983년 중반 폭행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고 이재환, 이선덕 코치, 박현식 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18연패로 인해 신용균 코치가 임시로 대행을 맡았고 모기업이 청보로 넘어가자 다시 복귀했다.
}}}}}}}}}}}}}}} ||

허구연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ffffff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등번호 70번}}}
결번 허구연
(1986)
박용진
(1988~1990)
{{{#ec1c24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이희수
(1984~1986)
허구연
(1987)
이승훈
(1988)
{{{#ec1c24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1번}}}
결번 허구연
(1988~1989)
손민한
(1997)
}}} ||}}} ||
<colbgcolor=#001f63><colcolor=#fff> 제24·25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허구연
許龜淵 | Heo Koo-youn
파일:허구연 총재.jpg
출생 1951년 2월 25일 ([age(1951-02-25)]세)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산리
(現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신국민학교 (졸업)
경남중학교 (졸업)
경남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2]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3]
가족 배우자 김소영
아들 허재준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상업은행 야구단 (1970)
한일은행 야구단 (1975~1978)
지도자 청보 핀토스 감독 (1986)[4]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 (1987~1989)
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리그 코치 (1990~1991)
해설위원 MBC /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1982~1985 / 1991~2022)
직책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2022~)
본관 김해 허씨 (金海 許氏)
종교 불교
MBTI ENFJ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허구연의 허프라닷컴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5]

1. 개요2. 생애 및 경력3. 해설에 대한 평가4. 특징5. 여담6. 미디어 출연7. 저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야구인. 한국 야구의 대표격 해설위원이자 최초의 야구인 출신 KBO 총재.

선수, 코치, 감독으로도 현장에서 활동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반면[6][7] 야구 해설가로서는 크게 성공해 대중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별명은 '허구라'. 과거 1980, 1990년대 언변이 화려한 사람을 '구라'라 표현했던 것이 마침 이름과도 연결이 되어 생긴 별명이다.

2. 생애 및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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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설에 대한 평가

과거 하일성과 더불어 야구 해설계의 양대 산맥으로 인식되었는데 사실 이는 1990년대부터 굳어진 이미지고 1980년대에는 프로야구 초창기를 제외하면 청보, 롯데에서 감독, 코치를 하느라 해설위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1980년대 중후반부터 야구를 접한 사람들은 1980년대에도 허구연이 해설을 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후 지도자로서의 외유를 끝내고 1991년에 해설가로 복귀한 후 처음엔 KBS의 하일성에 비해 인지도가 밀렸지만, 당시 KBS를 제외하면 유일한 전국방송이었던 MBC 해설자라는 위치 때문에[8] 하일성과 더불어 그나마 가장 많이 알려진 해설자가 허구연이였다.[9]

과거엔 지금과 달리 거의 표준어를 구사하며 속사포처럼 빠른 말투로 여러 사실을 순식간에 나열하는 스타일의 해설을 했다. 이는 상당히 배경지식이 많고 전문적인 느낌을 주었고, 이 때문에 허구연이라는 이름은 모르더라도 말 빠르고 배경지식 많은 해설가로서 그를 인식하는 경우는 있었다. 그래도 1990년대에 야구를 좀 보는 사람들이라면 허구연은 알았고, '야구 몰라요'의 하일성보다는 ' 베나구' 허구연이 전문성이 있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10] 또 허구연이 롯데 코치를 역임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롯데팬들은 타 팀 팬들에 비해 유독 1990년대 해설가로서의 허구연을 잘 기억하고 있다.

돔드립은 야구팬들뿐 아니라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진 밈이다.[11] 야구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국민 세금을 야구 인프라에 투자하길 요청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도 하며, 게다가 해외에서는 돔구장의 문제점[12] 이 때문에 돔구장을 헐고 다시 오픈형 구장으로 재건축하는 사례가 많기도 하다. 다만, 최근 들어 KBO리그의 우천순연과 미세먼지로 인한 순연이 극에 달하며 시즌이 10월 중순까지 늘어지고 선수들이 극심한 피로누적을 호소해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자, 허구연의 돔구장 사랑이 다시 언론과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13] 참고[14]

선호 구단은 롯데, LG, KIA, 두산 등 대표적으로 흥행력이 있는 구단과 허구연의 남자들에서 보듯 유망주가 많은 구단을 선호한다. 특히 자신의 연고지 구단인 롯데에 관한 편애가 단연 두드러진다. 그나마 2010년대 이후에는 편파해설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예전과 같이 '닥치고 롯데!' 같은 모습은 자중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롯데가 1순위라고 볼 수 있다. 경상남도 진주 출신이며 학창시절을 부산에서 보내면서 평생을 롯빠로 살았고 롯데 코치까지 했으니 이는 롯데 vs NC, LG, 두산 등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둘 다 응원하는 듯 보이지만 은근히 롯데 쪽으로 많이 얘기한다.[15] 이처럼 특정 구단을 선호하는 색깔이 분명하기 때문에 다수의 야구팬들로부터 편파 해설로 비판을 받고 있다.[16]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전문성은 차치하고 언변 자체가 많이 안 좋아졌다. 문장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하니까.'하는 식으로 중간에서 말을 중단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옆에 있는 캐스터들은 이게 말이 끝난 것인지 잠시 멈춘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연로한 허구연이 다음 말을 이어가는지 잠시 뜸을 들이며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중계 흐름 자체가 자주 깨진다. 게다가 함께 중계하는 캐스터와 다른 해설자가 "허구연 위원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는 접대성 멘트를 한 회에도 몇 번이나 남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새벽이나 오전에 중계되는 류현진 경기를 전담해설하고 있는데, 이른 시간에는 목이 잠겨서 갈라지거나 가래 끓는 목소리로 방송을 하기도 한다. 우리 나이로 일흔을 앞둔 고령인 만큼 건강상의 문제를 노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일성이 말년에 보여 준 문제점을 허구연이 되풀이하는 셈이다.

3.1. 장점

편파해설[17]과 특유의 발음을 비롯하여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몇십년 간 대한민국 야구 해설자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해설이 재미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기억이 많이 남는다. 샤우팅 특유의 발음과 억양으로 인해 재미없는 투수전이라든가, 에러가 계속 나오는 수준 이하의 경기도 허구연의 해설을 곁들이면 왠지 모르게 다이나믹한 경기가 된다고 느낄 수 있다. 편파 논란이 있을 수가 없는 국제전에서 허구연이 원탑 해설가로 부상하고 류현진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 경기마다 해설을 전담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몰입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류현진 메이저리그 경기를 인터넷으로는 SPOTV밖에 볼 수 없는 시청자들은 허구연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기도 한다.[18] 물론 위의 망언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해설의 질이 좋은 것은 절대 아니며, 싫어하는 사람들은 엄청 싫어한다. 왜 지상파에서 류현진 경기는 허구연이 전담하냐는 불만도 만만치 않게 많다. 다만 가끔 나오는 쓸데없는 독심술이나 이상한 해석들을 신경쓰지 않고 본다면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허구연의 해설이 미묘하게 중독성 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수십 년간 야구 전문가의 인생을 산 만큼, 해설에서 경기 흐름을 중요시한다. KBO 리그 중계에서 소음수준의 해설가들이[19] 최근까지도 버젓이 정규시즌에 해설함을 고려하면 편파를 하든 발음이 안 좋든 허구연의 해설은 꾸준히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어쨌건 기본은 한다.

1982년부터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유일하게 MBC, KBS가 중계를 했지만 거의 모든 캐스터들이 쿠세, 퀵 모션 등 일본식 야구 용어들을 사용했다. 현장의 은어 대신 브레이킹 볼(breaking ball), 슬라이드 스텝(slide step), 피벗 플레이(pivot play) 등 미국 본토에서 쓰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해설위원이다. 향후 시즌이 지나고 MBC, KBS 캐스터들은 우리말을 순화해서 중계를 수정하였고 1982년 초창기 때 수정된 용어를 통해서 중계를 했지만 당시 언론이나 칼럼 등은 비난을 약간 하였다고 한다. 즉 30대 젊은 해설위원이 수정된 용어를 해서 뭐라 한 셈이다. 이게 장점이 되는 이유는 쿠세, 퀵 모션 등 용어는 방송에서 영화 감독들이 인터뷰를 하며 '다찌마리를 연출할 때에 여기에 이런 데마이를 걸고 하는 건 정석은 아닙니다만, 요즘 도뿌에서 이런 시도를 하는 작품이 간혹 있어요' 라는 소위 '업계 은어' 를 남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해설했다가 1경기만에 해임된 사람이 바로 김성근이다. '액션 씬을 연출할 때 사물 너머 오버 더 숄더 샷으로 찍는 건 정석은 아닙니다만 요즘 도입부에서 이런 시도를 하는 작품이 간혹 있어요' 라고 말해주는 게 허구연 정도라는 이야기. 이래저래 까이는 게 많긴 하지만, 확실히 정석을 알고 있으며 사용하고 고집한다는 것은 당연히 해설가로서 해야 할 일이다. 까놓고 말해 특출난 장점이라고 하긴 그렇고 기본인데 그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허구연 정도라는 게 함정이다.
직업의 세계 - 일인자 - 야구를 말하다. 야구해설가 허구연_#001
직업의 세계 - 일인자 - 야구를 말하다. 야구해설가 허구연_#002
직업의 세계 - 일인자 - 야구를 말하다. 야구해설가 허구연_#003
또한 기본적인 야구 이론에 대해서도 미국에서 배웠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피칭 이론이나 야구 이론에 대해 부정적인, 의외로 합리적인 방법론을 제시할 때가 있다.[20] 단적인 예가 자꾸 낮게 낮게만 던지는 한국 투수들의 피칭을 비판하며 구위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은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시도도 해야 한다고 하거나 삼진을 최대한 기피하고 컨택을 어떻게든 하려는 한국 선수들의 스윙 방법론에 대해 어차피 삼진이나 땅볼 아웃이나 똑같은 아웃 카운트이니 과감하게 방망이를 돌릴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도 기본적인 이야기다. 문제는 기본을 지키는 해설자가 안타깝지만 국내 야구 해설 중에는 허구연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침부터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의 개인사무실로 출근하여 5대 모니터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 KBO 리그 등 대부분 국가의 야구를 시청하고,[21] 자신이 직접 외국의 야구 관계자들과 만나면 어려움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항상 공부하는 자세와 함께, 자신의 사재를 털어 '허구연 필드'라는 야구장을 건립하는가 하면 후배 야구인들을 지원하는 등 야구에 대한 애정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22] 허구연을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들도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큼은 인정하고 존중한다.

매년 KBO 리그 중계 일정이 맞으면 경기 전 홈, 원정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과 만나 선수들의 컨디션 등을 직접 시청자들에게 알려주는 정보원 역할을 해준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서 허구연이 아직도 인기가 있고 방송계에서 탑급 해설자로 남을 수 있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야구에 크게 관심은 없지만 류현진 경기나 빅경기 정도는 챙겨보는 수준의 '일반적인 시청자'가 대상이라면 다른 해설자들보다 확실히 낫다는 것이다. 즉, 그 어떤 해설자들보다도 해설자는 야구 관계자이면서 동시에 방송인이라는 점을 잘 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야구를 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투입해서 야구에 대한 지식을 쌓고 더 깊은 정보를 갈구하는 열성팬들에게야 시덥지 않은 '구라'정도로 밖에 안 들리지만, 일상생활에서 야구에 크게 몰입하지 않는 일반적인 시청자 입장에서는 선수 출신의 해설자가 나와서 자신들의 경험과 기술에 기반한 '깊이 있는' 해설을 해봐야 그냥 일반인 대상으로 전문지식과 용어를 동원하는 교수님의 강의처럼 어렵고 지루할 뿐이다. 특히 이순철 같이 시청자를 가르치려 하는 투의 해설은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편안하게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선수나 지도자 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방송국의 스타 마케팅 전략으로 뽑힌 해설자들은 보통 발음과 발성 화술이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미 방송 관계자로서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허구연의 물 흐르듯 막힘 없는 화술이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훨씬 편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해설자가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지식이 있는지 없는지[23] 허구연이 소개하는 메이저리그의 에피소드가 정확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 흐르듯이 편하게 자신들이 모르는 에피소드도 적당히 섞어가면서 어렵지 않게 해설하는 허구연의 해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일반 시청자들이 야구 중계 시청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평소 정규시즌 때 하루 5개 경기의 통합 시청률(잘 쳐줘야 6%)하고 류현진 경기나 WBC, 올림픽, 하다 못해 프리미어 12의 4강(약 13%), 결승전 시청률(약 18%)을 비교해봐라. 이른바 빅경기 때는 시청하는 시청자의 최소 절반 이상이 그렇게 야구를 깊게 보지는 않지만 한국 선수 혹은 한국이 이기는 건 보고 싶은 일반 시청자들이다. 이들에게 선출들의 아직 매끄럽지 못한 화법의 해설이나 이순철의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의 해설과 허구연의 물 흐르듯이 약 파는 해설 중에 어느 쪽이 편하게 들릴지 생각해보자.

앞서 류현진 중계를 언급한 내용에서 류현진의 경기내용이 부진하면 류현진보다는 동료 선수, 주변 환경 등 남탓만 한다고 비판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야구를 매일같이 보지는 않지만 류현진 경기는 보는 '일반 시청자'들의 심정이며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24] 비록 경기를 망친 책임이 류현진에게 있더라도 최대한 류현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줌으로써 일반 시청자들에게 류현진의 패배가 류현진만의 탓이 아니라 주변환경이 도와주지 않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한 것이며 그러한 난관 속에서 분투하는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들고 다음번에는 이기는 경기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시청자들이 다음 경기 때도 TV를 켜고 류현진의 경기를 시청하게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해설을 한답시고 타점이 뭔지, 평균자책점이 뭔지도 확실하게 모르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OPS가 어떻고 WAR이 어떻고 하는 매니아들이나 알만한 내용을 동원하고 그 수준의 해설로만 일관한다면 아무리 류현진이 경기에 나와도 일반 시청자들의 귀는 금방 지치고 결국 그 해설자는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못하는 해설자'로 낙인을 찍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설자가 내용을 정제를 하지 못하고 류현진 실드에만 급급하다면 그 해설은 해설이 아니라 내용은 하나도 없이 지루하게 류현진, 류현진 노래만 부르다 시청자에게 거부감만 주는 유치한 응원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오릭스 시절 이대호 경기의 중계가 딱 그 수준이다.

그러나 허구연은 그러한 의도를 능숙한 언변 속에 녹이면서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는 데 통달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도 허구연이 해설자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어찌 보면 전문성과 대중성이라는 프로스포츠 해설자에게 요구되는 2가지 소양 중 전문성을 희생해서 대중적인 해설을 한다고도 볼 수 있을텐데, 프로스포츠는 '프로'라는 이름 그대로 전문적인 영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자양분으로 삼는 엔터테인먼트인 만큼 전문성보다 대중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마냥 비난만 받을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25] 실제로 무릎팍 도사에서 자기는 경기 중계를 할 때 지상파와 케이블 경기 중계 때 대상이 되는 시청자를 구분해서 해설을 하며 지상파 해설 때는 일반시청자들을 의식하여 다소 뻔한 얘기 같아도 최대한 쉬운 내용만 얘기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2015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김구라 방송 메인 게스트로 나와 3시간 동안 쉬는 시간 제외하고 계속 야구 이야기를 하는데 야구팬들이 3시간이 1시간 같다고 말할 정도로 달변 중의 달변이다. 국내외 야구 에피소드와 방송 당일 있었던 빈볼 사건, 김구라의 질문하나에 이어지는 끝없는 경험담은 아는 이야기일지라도 지겹지 않고 야구팬들이 공감하고 같이 즐길 수 있었다.

MBC에서 야구 중계를 할 때마다 함께한 사람들 중 한 명인 송인득 아나운서와 굉장히 호흡이 잘 맞았다.[26] 1982년 KBO 리그 원년부터 2007년 4월 7일 개막전 중계까지 송인득과 함께했는데, 불과 1달 후인 2007년 5월 23일 송인득이 간경변에 의한 내출혈로 사망했을 때 임종 장면을 지켜보았다. 임종 2시간 전에도 송인득의 귀에다가 "송인득, 뭐 해? 어서 일어나서 중계하러 가야지, 힘을 내"라며 말했을 정도였다. 추억을 돌이켜 보면 당시 스포츠동아 인터뷰를 통해 "좋은 스포츠 아나운서라면 목소리, 열정, 전문성, 그리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송인득 아나운서는 이 4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주 종목이었던 야구 외에도 마라톤, 양궁까지 중계했을 정도로 센스가 뛰어났다”고 평했다. 이어서 “경기 노트와 기록지를 정말 옆에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깨알같이 적었고 이를 다음번 방송에서도 활용했다”고 회상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탓에, MBC 아나운서실 내 고인의 책상 위에는 한동안 그가 정리한 경기 노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소 허구연 본인은 술, 담배를 멀리하라고 송인득 아나운서에게 누누이 말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 있다.[27] 2021년 12월 MBC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밝힐 때 송인득 아나운서를 떠올리자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 송인득이 사망한 후에는 MBC 지상파에서 주요 중계를 할 때마다 한광섭 아나운서와 함께했다. 2013년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고, 한광섭 아나운서가 정년을 앞두자 MBC 지상파 야구 중계에도 메이저리그 KBO 리그 공히 한명재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었다[28].[29] 이후 김나진 아나운서도 추가.[30]

그 동안 야구 용어를 통해 그나마 야구팬들이 뽑는 편한 캐스터는 김용, 송인득 아나운서로 뽑힌다. 프로야구 초창기를 본 올드팬이나 1990년대 ~ 2000년 정도 본 팬들도 물론 임주완, 유협[31], 고창근 아나운서를 뽑지만, 특히 다르게 보면 양진수, 한광섭 아나운서[32]는 화면대로 중계해서 야구 용어에 대해 아예 잘 모르는 편이다. 허구연 위원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오랫동안 중계를 할 수 있었다.
파일:역대.png

요약하자면 국제대회와 메이저리그 중계에 굉장히 최적화된 해설. 국제대회는 라이트 팬이나 야구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도 보기 마련이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상황에서 편파 논란도 문제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역시 한국 선수가 나오는 경기만 중계하기 마련이며 역시 편파논란 문제 없이 재미있고 의외로 뛰어난 지식을 발휘하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돋구며 경기를 중계해낸다.

3.2. 단점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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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특징

4.1. 그만의 독특한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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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으린 슨슈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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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인프라에 대한 관심

현직 해설자는 물론 야구인 가운데 인프라에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이정도로 강조하는 사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좋은 야구 인프라를 갖출 것을 많이 강조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허프라'. 이런 행보로 인해 편파 해설을 비롯한 각종 논란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허구연의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기승전돔', '허프라'라는 놀림을 당하긴 하지만, 적어도 야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은 인정한다는 의미. 이외에 허구연은 한국야구위원회의 경기장 자문 위원으로 위촉되어 있다.

4.3.1. 돔드립

허구연의 야구 인프라 강조의 정점은 돔 야구장 건설 주장이다. 그러나 돔 구장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야구인들 사이에서조차도 논란이 많다.[38][39]

일단 대규모 체육시설은 건설비도 많이 들고 주차장 등 공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래서 마구 지을 수도 없고 용도 변경도 어렵기 때문에 신중해야하니 무작정 돔을 짓자고 하는 주장이 좋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허구연이 인구가 적은 도시에 돔구장을 지어달라고 억지를 부리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다. 또 건설비에 비해 실망스러운 결과물인 서울 고척 스카이돔도 서울이라는 지역의 이점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을 보면 서울에 비용이 더 들더라도 좋은 위치에 제대로 된 돔구장이 생겼다면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하고 즐길 수 있었을 거라는 것도 그럴 듯 하다.

즉, 허구연의 돔구장 건설 이야기는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살펴보고 평가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돔드립 문서를 참조할 것.

4.4. 데이터

데이터를 무시하고 우승하려는 팀은요. 그건 아니에요. 앞으로도 나올 확률이 거의 없어요.
키움 히어로즈가 보스턴에서 업무협약을 맺어서 데이터 분석자료를 많이 사왔거든요. 이 팀이 강한 이유는 다 있는 거예요.

2021년 9월 9일 키움 히어로즈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나온 발언. 세이버메트릭스를 비롯한 데이터 야구를 고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실제로 키움 히어로즈를 굉장히 싫어하는 듯 하면서도, 허구연 본인이 추구하는 데이터 야구를 하는 팀이 키움 뿐이라, 츤데레라는 추측도 있다.

5. 여담

6. 미디어 출연

6.1. 마이 리틀 텔레비전

7. 저서

해설자로서의 지식을 바탕으로 야구 해설서들을 여럿 집필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 예시.

[1] 김해 허씨 집성촌이다. # 또한 범LG가 범GS가 발상지이기도 하다. 강호동과 고향이 똑같다. [2] 법학과 71학번,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입학. [3] 석사 학위 논문: 理事會 制度에 관한 硏究(이사회 제도에 관한 연구). 허구연 본인의 생애를 전기적으로 다룬 응답하라 레전드 시리즈에선 1978년 학위를 취득했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81년에 학위를 취득했다. [4]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연소 1군 감독. 다만, 감독 대행까지 포함하면 조창수가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 있다. [5] 2020년 4월 7일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6] 선수로서는 기록상 실업야구에서 4년간 뛰었지만 커리어 후반기는 부상과 재활로 날려버렸기 때문에 실제로 실업야구 선수로 활약한 기간은 1976년 올스타전까지 2년 반 정도에 불과하다. [7] 감독으로는 1986년 코치 경력도 없이 청보 핀토스 감독이 되었다.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기간 3년 보장 및 코치 임명 전권을 요구했고, 프리시즌에 청보 구단 사장을 무시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허구연이 감독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던 팀의 상징 장명부를 정리한 일이었다. 이렇게 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개막 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승률인 0.273의 승률을 기록한 채 57경기 만에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허구연 본인에 따르면 감독으로서 부족함을 느껴 스스로 사퇴를 표명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시 신문기사에는 이어지는 성적 부진에 김정주 전 회장이 전격 해임을 결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허구연의 경질이 확정되기도 전[49]에 감독 대행을 맡은 강태정이 나머지 51경기를 이끌었는데, 같은 멤버와 코칭스태프를 가지고 승률 0.333을 기록했다는 점은 지도자 허구연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8] 1990년대 당시 SBS도 프로야구 중계를 하긴 했지만 전국방송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방 사람들은 SBS 해설위원들을 알래야 알수가 없었다. [9] 1990년대의 MBC는 김소식과 허구연 둘이 나눠서 TV중계 해설을 전담하다시피 했는데 김소식이 훗날 SBS로 이적하면서 허구연이 자연히 MBC 해설의 간판격이 된다. [10] 1980년대 허구연의 해설 육성을 실제로 들어보면 지금과 차이가 상당히 크다. 지금보다 톤이 높고 말이 빠르며 훨씬 서울말에 가깝다. 바람이 세는 특유의 발음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지금의 허구연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들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허구연만의 특색이 없고 다른 해설가들과 구별하기 힘든 톤이다. 때문에 당시에는 허구연이라는 해설가를 다른 해설가들과 명확하게 구별하여 인식하는게 쉽지 않았던 것.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주말에나 TV 야구 중계가 있었고, 해설가들은 스타 선수 출신이 없었기 때문에 독특한 말투의 하일성을 제외하면 일반 야구팬들이 해설가가 누구인지 일일이 아는 경우가 흔치는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80년대 허구연의 해설은 지금보다 훨씬 전문적으로 들린다는 점이다. 사실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는데, 말이 매우 빠른데다가 여러 요인을 조금도 쉼없이 줄줄이 말하고, 게다가 우리말식 야구용어 대신 영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박식하고 전문적이라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하일성 등에 비해서는 실제로도 전문적인 편이었다. [11] A를 이야기하면 B 또는 식샤이야기를 통해 보충 설명한다. 그리고 늘 마지막 부분에 돔 이야기가 나온다. [12] 그 중에서도 인조잔디로 인한 선수들의 부상 증가. 신형 인조잔디는 구형에 비해 위험이 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연잔디에 비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13] 현재 진행중인 대전구장도 검토 단계에서 돔구장을 고민하고, 추후 돔구장 증축 가능성을 남긴 채 설계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재야에서 돔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로서의 견해라는 점은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과도한 돔사랑으로 인해 어느정도 수용자의 필터링이 필요하다는 점으로 받아들임이 좋다. [14] 다만 여기서 국내 돔의 예시로 보여진 고척 스카이돔은 경기장 구성 측면에선 최악의 돔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시즌 후의 활용과 여름철 관람의 장점 등 돔으로서 지닌 장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사례다. [15] 여담으로 본인은 경상도 토박이지만 전북 쪽에 친척들이 은근히 많다. 허구연의 본관이 확실치는 않지만 허구연의 고향 진주에 김해허씨 집성촌이 있다. [16] 다만 이것도 이제는 옛날 얘기가 되었으며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롯데 편파가 현격히 줄어들고 롯데 경기에서 롯데가 점수를 내면 한숨을 쉬며 한탄하거나 롯데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는 경우가 더 늘면서 롯팬들한테 까이는 일이 많아졌다. [17] 다만 모든 팀에서 서로 본인이 응원하는 팀 편파는 아니라고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18] 물론 이 얘기는 2015년까지 한정 얘기고 2016년부터는 포털사이트에서 MBC SPORTS+의 화면을 내보내면서 인터넷에서도 메이저리그 중계 중에 허구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19] 백인천이라든가, 박노준, 양준혁, 송진우, 마해영, 진필중, 이숭용, 박동희, 염종석, 김상훈 등등. [20] 투수 이론의 경우 손혁이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을 방송에서 꾸준히 언급하기도 했다. [21] 저 사진이 정수빈 짤방으로 나오기도 했다. [22] 예전에 엠스플에서 유명 야구 블로거들을 추첨해서 월드시리즈 중계에 동행시켜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당시 추첨으로 뽑힌 블로거의 후기를 보면 허구연위원의 준비성과 야구 열정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 절로 겸손해졌다고 한다. 물론, 어느정도 립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의외로 야구를 많이 아는 사람들일수록 허구연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즉, 라이트팬이나 전문가영역에서는 존중받고 어느정도 중수급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심한까임을 당하는 해설자. [23] 사실 세이버메트릭스도 상당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해서는 김형준과 같이 다른 전문가만큼은 알기 어렵고, MLB에 대해서 송재우처럼 알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그 방면에 있어 한국 최고의 전문가들과 비교하기엔 허들이 너무 높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이 70살에 새로운 학문을 열심히 파고들어 배우는 열정은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24] 이는 대한민국의 스포츠 시청 문화를 봐야 한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을 포함해서, 해외 스포츠를 보는 시청자들은 해당 스포츠 종목의 가장 높은 수준을 즐기기 위할 목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대리 체험하기 위해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초기 메이저리그의 국내 중계부터 박찬호라는 한 선수에 국가를 투영시키는 국가주의적 접근방식이 지배적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한다. [25] 스포츠를 보고싶은 사람보다 드라마를 보고싶은 사람이 더 많다면 드라마가 선택되는 것은 수익을 내야하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수준이 낮아지더라도 그 시청자 수준에 맞추는게 수익을 높이는 방법일 수 밖에 없다. 다만 같은 경기를 여러 채널에서 여러 해설진이 각자의 색깔로 중계하는 미국과 달리 독점적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에서 야구라는 스포츠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시청률에 급급해 해설 수준을 낮춰버리는게 스포츠 전반의 발전을 위해 옳은 일인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26] 송인득 아나운서는 김용과 더불어 원년부터 프로야구를 중계해 왔으며, 스포츠 캐스터계의 교과서라고 불렸다. 그가 야구를 중계할 때마다 선수/경기 데이터를 일일이 기록해 다녔던 노트는 KBO에서도 참고해 갔을 정도였으며, 타계 후 유품으로 MBC 박물관에 남겨졌다. 야구 중계 경력이 많아서 "그림으로 보는 야구 규칙"이라는 저서를 쓰기도 했다. 간경변으로 쓰러지기 직전에는 마라톤 대회를 녹화중계했는데, 그가 병상에 있었을 때 녹화방송되어 안타까움을 주었다. [27] 송인득의 사인이 과도한 음주로 인한 간경변이었음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파트너의 건강을 걱정하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허구연은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으면서 해설로서 철저한 자기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28] 2021년 부터는 MBC와 MBC SPORTS+에서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포기해 더이상 중계를 안한다. [29] 원래 한광섭 캐스터는 배구 전문이라 야구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쭉 보면 그러듯이 허구연 해설위원 사투리를 그나마 표준어로 수정할 뿐, 전혀 야구 중계에 대해 모른다. [30] 그러나 김나진은 평가가 영 좋지 않다. 이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출국전 2018년 8월 8일 방송단 워크숍을 통해 iMBC에서 자체 프로를 만들었고 감스트가 만났다. 그도 김나진의 비난을 이미 알고 있는지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준비가 철저하기 때문에 좋다고 얘기했다. [31] 1991년부터 SBS 개국 이후부터 이적 [32] 양진수, 한광섭 아나운서는 주 종목이 아니다 보니 한광섭 아나운서인 경우 허구연 위원 사투리가 좀 심할 때 수정하는 편이다. [33] 물론 허구연은 고척돔이 자신이 생각했던 돔구장이 아니며 돔 같지도 않은걸 돔구장이라고 지어놨다고 비판을 많이 하는 편이다. [34] 스톡킹에 나와 말하길, 휴스턴 미닛 메이드 파크 공사비가 약 2600억 들었고 고척돔이 약 2400억 들었다. 그런데 휴스턴과 달리 개폐식도 아니고 수용관중석이 절반도 안되고 주차장도 제대로 안 되어있다. 쓰지도 않는 42억 전광판 등등 불만사항이 엄청나 보인다. [35] 기아우승으로 유명한 박노준 해설위원마저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우승을 확정한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경기를 중계하는 도중 "이 광경을 광주의 홈팬들에게 보여줘야 되는데 광주에 지금 3만 이상의 구장이 없어 매번 잠실에 와서 하지 않습니까? 정치인들이 맨날 지어준다고 해 놓고 나서 지어주지 않지 않았습니까?라며 대놓고 가열차게 디스했다. [36] 심지어 대구광역시청 신 청사보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을 먼저 짓겠다고 한 결정을 보고 감명을 받았고, 이 결정을 한 대구광역시장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참고로 대구광역시청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협소한 청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시청 본 청사 이외에 주변의 여러 민간 건물을 빌려서 별관으로 사용하다가 경상북도청 안동시로 이전한 후에는 비어 있는 거의 50년 된 경상북도청 구청사를 빌려서 산재해 있던 별관들을 이전, 통합 운영하고 있다. [37] 자세한 사항은 베이스볼 드림파크 문서 내 추진 상황에 나와있다. [38] 돔구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야구인들의 주장은 야구는 실외 스포츠이기 때문에 시야가 튼 개방형 야구장에서 해야한다는 원론적인 수준 정도이다. [39] 물론 건설비용과 시설유지비가 많이들고 이에 따라 입장료가 비싸지는 효과를 우려하는 입장도 있다. [40] 이때 항상 하는 말이 "영화는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야구는 아직 700만, 800만 밖에 되지 않는다." [41] KBS의 경우엔 연맹에게 중계권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연맹에서 중계비용을 지원받아 K리그를 중계하고 있다. [42] 그리고 차범근은 MBC의 시청률 1위를 견인했으며, 그 뒤 차범근은 SBS 해설위원으로 가서 모 두산팬 아나운서와 콤비를 이뤘다. 현재는 해설가로서는 무소속. [43] 새벽이라도 문상을 빠지지 않는다는 건 허세가 아니라 진짜다. 직접 목격함. [44] 하지만 국내선수 육성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다. APBC만 봐도, 국내 1루수 자리를 거의 외국인 선수들과 베테랑들이 나눠먹은 탓에 젊은 1루수는 구자욱(그나마도 본 포지션은 외야수이다.)밖에 없어서 유격수 보던 하주석, 3루수 보던 최원준이 번갈아가면서 1루 수비를 맡았으며 현재 한국 고교야구도 일본, 미국에 비해 부실한 인재육성 시스템 및 혹사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45] 축구와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비슷한 예로 EPL의 경우 타국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리그 자체는 세계 최고로 거듭났지만 자국 유망주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잃어버리며 국대가 몰락했고, 그 때문에 FA가 부랴부랴 홈 그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46] 정치권의 갑질 문제, 강정호의 복귀 문제, 대전 신구장 문제, 아마 야구 저변에 관한 문제, 아마 선수의 학습권과 관련된 문제, 영상 사용 문제, 중계권 문제 등. [47] 정작 구대영을 맡은 윤두준은 축구팬이다. [48] 정민철은 1단계에서 탈락했으나 산삼으로 부활 이후 4단계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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