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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3:22:27

권토중래

1. 의미2. 유래3. 가능성4. 대중매체에서5. 여담6. 관련 문서

고사성어
거둘/말 거듭

1. 의미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다시 돌아온다. 한 번 전쟁에 패했어도 힘을 다시 비축해 승리를 거머쥔다, 혹은 일이 한 번 실패해도 다시 가다듬고 성공에 이른다는 의미로 쓰인다.

현대중국어에서도 사용되는 성어이며 비슷한 표현으로 동산재기(东山再起)가 있다.

2. 유래

이 고사성어는 중국 당나라 후기의 시인 두목의 시 '제오강정(題 烏江亭, 오강 정자에서 짓다)'에서 유래했다.

오강은 항우 유방에게 패하여 최후를 맞이한 곳인데, 당초 두 사람은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나누기로 했었으나 유방은 항우를 살려두면 후환이 되니 그를 습격해서 죽여야 한다는 장량 진평의 진언에 따라 화의를 깨고 해하 전투에서 항우를 추격해 포위했다.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쳤는데 이때 배를 끌고 온 오강의 정장이 강동( 강남)으로 돌아가서 재기하시죠.라고 권했으나 항우는 "강동에서 함께 일어난 8천 장정들이 모두 죽었는데[1] 무슨 낯으로 강동으로 돌아가겠나?"라면서 유방의 포위망에 뛰어들어 최후의 결전을 치르다 목을 베어 자결한다.

그로부터 천여 년이 지나, 당나라 후기의 시인 두목이 오강의 객사에 머무르다가 항우와 오강정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지은 시가 바로 '제오강정'이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일이라 예측하기 어려우며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사내대장부라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

3. 가능성

두목의 생각과는 달리 항우가 강동에 갔더라도 전성기만큼 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강동 지역은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었고 인구도 많지 않았으며,[2] 이미 중원 전체를 장악한 유방을 상대하기엔 격차가 너무 컸다. 더 장기적으로 강동을 개발하며 국력을 축적하려 해도 유방의 한나라가 이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려고 해도, 백월족이 이미 터를 잡고 살았던데다가 그 당시에 존재했던 나라인 민월 동구는 유방 편이었기 때문에 항우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마냥 지켜보지 않았을 것이다. [3]

비슷한 시기에 위만에게 배신을 당하고 왕위를 빼앗긴 준왕이 익산을 중심으로 건마국을 건국하여 한동안 삼한 전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재기에 성공했지만 장강이남 지방에서도 동맹세력이 있던 유방과 달리 위만은 한반도 남부에 동맹관계에 있던 나라들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경기-전남에 이르는 지역은 한반도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손꼽히는 곡창 지대이기도 했고.

다만 그렇다고 한나라가 완전히 장악했으리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그 당시 한나라의 국력 또한 한계에 가까웠던 상황이었고, 이때 잃은 손실을 온전히 복구하기 위해서 약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결정적으로 거기서 더 국력을 손실했으면 흉노에게 멸망당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항우가 만약 강동으로 도주했다면 최악의 경우 한과 초가 공멸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4. 대중매체에서

5. 여담

6. 관련 문서



[1] 당시 26명밖에 남지 않았다. [2] 당장 일화에서만 해도 수십만으로 언급한다. 객관적으로 한의 체급과 비교하면 10배는 되는 차이다. [3] 여담으로 민월과 동구가 한나라 편에 붙은 이유가, 항우가 그들을 왕으로 인정 안해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