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4년 11월 1일에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간에 진행된 한국시리즈 9차전 경기.[1]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회식과 더불어 빗속에서 강행된 실외 스포츠 행사로 기억에 남아있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2. 스코어 보드
한국시리즈 9차전, 11월 1일 월요일,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20,027명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현대 | 오재영 | 0 | 8 | 0 | 0 | 0 | 0 | 0 | 0 | 0 | 8 | - | - | - |
삼성 | 김진웅 | 1 | 0 | 0 | 3 | 0 | 1 | 0 | 1 | 1 | 7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표영준 | 해설: 하일성[타사중계9] |
3. 경기 내용
9차전 하이라이트현대는 오재영을, 삼성은 김진웅을 선발로 기용했다.
경기 시작 1시간쯤 전인 4시 20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보통 이러면 경기가 연기될 수도 있지만 이미 사상 유례없는 9차전 진행으로 원래 2004년 11월 2일 열릴 예정이었던 최우수 선수, 최우수 신인, 각 부문 1위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도 한 번 연기된 상태였고, 당시의 병맛 무승부 규정 때문에 9차전을 다른 날에 치른다고 해도 또 무승부가 발생할 수 있었으며, 9차전에서 삼성이 승리하는 경우 최소 1게임을 추가로 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9차전이 강행되었다.
경기를 시작했음에도 빗줄기가 그치지 않자 이제라도 노게임 선언을 해야하는지 고민한 순간도 있었으나, 1회말 김한수의 적시 2루타로 삼성이 먼저 1점을 내자 현대가 2회초 타자 일순으로 무려 8점을 뽑아버리면서 노게임 기회도 물 건너가 버렸다. 이숭용이 볼넷, 전근표가 안타로 무사 1,3루를 만들었고 이어 박진만의 적시타, 채종국의 2타점 2루타로 3점을 냈다. 이어 1사 2루에서 송지만과 전준호의 연속 안타에 포수 진갑용의 2루 악송구까지 더해지면서 현대는 4점차로 점수를 벌렸다. 거기에 클리프 브룸바가 볼넷으로 출루하고 심정수가 2루타를 치고, 이숭용의 내야 땅볼을 1루수 양준혁이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 등 3점을 추가, 7점차로 점수를 벌렸다. 정규시즌이었다면, 아니면 플레이오프만 되었어도[3], 그도 아니면 한국시리즈 초반만 되었어도, 노게임 선언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오늘 우승팀이 나올 수 있는 경기를 노게임 선언하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도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4회말 1사 만루를 만들면서 오재영을 강판시켰고, 김종훈의 2타점 적시타, 김한수의 적시타로 4점차로 추격했다. 6회말에는 선두타자 조동찬이 3루타를 치고, 이어 박한이의 내야 땅볼로 득점하면서 3점차까지 따라붙었다. 8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경기 중단과 속개 후 대타 박종호가 볼넷으로 출루한 것을 시작으로 삼성이 다시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대주자 강명구가 찬물을 끼얹었다. 후속타자 조동찬이 우전안타를 쳤는데 1루주자였던 강명구가 3루에 멈춘 선행주자를 못 보고[4] 3루로 가려다 우익수 심정수의 송구를 받은 유격수 박진만에게 태그아웃된 것.[5]결국 강명구의 어이없는 주루플레이로 인해 박한이의 2루수 땅볼[6]로 1점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현대 수호신 조용준은 8:5까지 추격당한 8회말에 등판해 1점(박한이의 2루수 땅볼 시 실점)을 내줬다.
조용준은 빗줄기가 더 굵어진 9회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양준혁의 중견수 플라이를 정수성이 처리해 1아웃, 김한수는 볼넷으로 출루, 대타 좌타자 김대익이 우전안타를 치며 1사 1루, 2루, 로페즈가 조용준의 몸쪽 공에 삼진을 당하며 2아웃[7], 신동주,의 유격수 뜬공을 박진만이 히 드랍 더 볼을 범하며 김한수가 홈을 밟아 1점차까지 쫓겼지만 마지막 타자인 대타 강동우의 1루 땅볼을 이숭용이 잡아 베이스를 밟으면서 처리, 그렇게 역사상 가장 힘겨웠던 한국시리즈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로써 현대는 팀 창단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 2연패[8], 그리고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다.
4. 기타
- 치열한 승부 끝에 빗속에도 아랑곳 않고 환호하는 현대 선수단과 고개를 푹 숙이고 씁쓸하게 퇴장하는 삼성 신동주의 대비되는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 보는 그대로 승자와 패자의 희비가 엇갈리는 사진이다.
- 9차전은 그야말로 처절한 혈투였다. 경기 초반 계속 내리는 비[9]로 마운드와 타석은 진흙탕이 되었고 결국 2회초에는 투구판에 흙이 엉켜 정상적인 투구를 할 수 없어 경기를 중단시켜 6분간 마운드를 재정비했다. 1회에는 폭투도 범했던 삼성 선발 김진웅은 2회 경기 속개 직후부터 제구력 난조를 보였다. 2회말에는 현대 선발 오재영도 제구력 난조로 나광남 구심의 얼굴을 직격했다. 투수가 심판을 직격한 건 전대미문의 불상사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 8회말에도 굵어진 빗방울 때문에 10여분간 경기가 중단되었다. 갈수록 굵어지는 비 때문에 그라운드는 진창을 넘어서서 물바다가 되어버렸고, 빗물에 시야가 가려 야수들은 수비하는 데에 애먹으면서 어이없는 실책이 속출했다. 2회초 삼성 1루수 양준혁이 현대의 이숭용의 타구를 어이없이 놓쳤고, 9회말에는 현대 유격수 박진만이 삼성의 신동주가 친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놓치며 하마터면 역전의 빌미를 제공할 뻔했다.[10]
마지막 타구 역시도 원래는 살짝 역동작으로 공을 잡은 1루수가 1루로 커버들어오는 투수에게 당연하게 토스해야 될 상황이었지만, 날씨가 워낙 엉망진창이라 토스 과정에서 또 실책 나올까 싶어서 1루수인 이숭용이 죽자고 뛰어서 가까스로 더 먼저 밟은 것이었다. 평소였으면 타자 주자가 걸음이 어느 정도 빠른 강동우[11]였기에 1루수가 직접 베이스 커버를 하다가 내야안타가 될 수도 있었기에 욕먹는 플레이지만, 이 날만큼은 심지어 내야안타를 줬어도 아무도 이숭용 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4차전과 마찬가지로 경기 마지막 타자였던 강동우가 또 삼성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2사 1루, 2루의 상황에 4차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상대 투수는 조용준. 그런데 조용준은 강동우가 친 5번째 공 전까지 초구부터 4번째 공까지 모두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공을 던졌다. 이뿐만 아니라 강동우의 타구가 평소 같았으면 내야를 빠져나가는 안타성 타구였다는 점에서 삼성 입장에서는 땅을 칠 수 밖에 없었다.
- 이것이 막강하던 현대의 마지막 우승의 순간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사실 조짐 자체는 있었다. 현대그룹의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심정수는 잡지 못하리라는 게 당시의 중론이었다. 박진만까지 놓치고 이후 우승 없이 해체까지 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 뒤 현대는 마지막 가을야구를 2006년 시즌 2위로 마쳤고, 3위팀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해서 최종 순위 3위로 마감했다. 그리고 이듬해 현대 유니콘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20년 후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우천으로 인해 서스펜디드 게임 처리된 후, 이 경기가 팬들 사이에서 다시금 재조명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현대 선수로서 9회말에서 히 드랍 더 볼을 범했던 박진만은 당시 상대했던 삼성 감독으로 20년 후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게 되었다.
[1]
그리고 이 경기가 있던 날로부터 정확히 16년 후에
같은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0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이
우천취소되었다.
[타사중계9]
SBS SPORTS 임용수-이광권/KBS SKY SPORTS.
[3]
2009년 플레이오프 5차전은 노게임 선언되었다.
[4]
게다가 3루에 있던 삼성의
류중일 전 코치도 2루에서 멈추라고 사인을 보냈는데 그마저도 못 봤다. 맞는 말인게 강명구가 은퇴 후 인터뷰에서 인정한 흑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주루코치였던 류중일 전 감독도 아예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5]
만약 강명구가 선행주자를 보고 2루에 멈춰서 무사만루가 되었으면 역전도 가능했었다.
[6]
2루수
채종국의 호수비였다. 그라운드에서 발이 미끄러지면서 중심을 잃는 와중에도 집중력있게 포구하여 1루에 송구를 했고 1루수
이숭용이 잘 잡아주었다.
[7]
포수 김동수는 바깥쪽 공을 요구했으나 정반대로 몸쪽으로 간 실투성의 공이었다. 운이 좋았던 케이스
[8]
해태에 이어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팀.
[9]
경기 당일 낮 최고 기온이
21도에 육박했을 정도였으며, 북서쪽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면서 많은 비가 내렸던 것이다. 이날 서울 지역의 강우량은
18㎜를 기록하였다.
[10]
본인도 은퇴직전 인터뷰 할 때 마다 늘 생각하고 있다고.
[11]
강동우는 데뷔시즌인 1998년 플레이오프에서 당한 정강이 부상의 후유증으로 주력이 그렇게까지 빠른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도 리드오프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한참 노장이 된 뒤에도 리드오프 역할을 수행하며 두자릿수 도루를 찍었을 정도로 기본 주력이 되는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