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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1:41:48

프랜차이즈 선수/야구/NPB

프랜차이즈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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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범례
출신지와 연고지가 일치하는 경우(☆)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은퇴한 선수(★)[1]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선수( 볼드)

역사도 한참 길고, 핵심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경우는 한국보다도 드문 일본이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선수/야구/KBO 항목에 나와 있는 기준을 적용하면 선수가 무지막지하게 많아진다(...). 주전은 물론 어지간한 백업급들도 전부 그 기준에 해당될 정도.

2. 팀별 목록

2.1.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4. 오릭스 버팔로즈

2.5. 요미우리 자이언츠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팀의 경우에는 타 팀에 몇년 정도 재적한 적이 있어도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분류되는 선수들이 있지만 이 팀에서는 어림도 없다. 최소한 선수로서 프랜차이즈 대접을 받으려면 원 클럽 플레이어는 필요 조건이다. 심지어는 그 필요조건을 충족해도 선수시절 활약이 어중간해서는 프랜차이즈로 고려도 되지 않는다. 밑에 나오는 명단 중에서 아주 특이한 경우 하나를 제외하면 원클럽 플레이어 표시가 붙지 않은 선수들은 전부 MLB 경력이 있거나 혹은 아직 현역이기 때문이다. 즉 그 선수들도 NPB 경력만 따지면 원 클럽 플레이어들이다.

2.6.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구단에서 팀 내 스타 선수들을 붙잡으려는 의지가 없었기에 이시이 타쿠로 등 대다수의 스타 선수들이 잇따라 타 팀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잦았고, 결국 미우라 다이스케 스즈키 타카노리 등의 극소수를 빼면 입단한 선수 중에서 프랜차이즈라고 할만한 선수가 거의 없었다. 그래도 2010년대 중반부터 츠츠고 요시토모, 야마사키 야스아키라는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가 등장했지만 2020년 츠츠고는 메이저리그로 진출하였다. 그렇지만 야마사키 야스아키 외에도 사노 케이타, 이마나가 쇼타, 마키 슈고 등 여러 프랜차이즈 후보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

2.7.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엠블럼.svg
Mr. Dragons
ミスタードラゴン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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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제2대 제3대
No.15 니시자와 미치오 No.1 타카기 모리미치 No.3 타츠나미 카즈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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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현역으로 뛴 야마모토 마사나 3구단에서 뛴 저니맨이긴 했지만 27시즌 동안 현역생활을 한 야마사키 타케시 등 타 구단에 비해 현역생활을 길게 보낸 노장 선수들이 많이 존재한다. 사실 이건 주니치가 신인들을 잘 못 키운 것도 크지만

2.8. 치바 롯데 마린즈

2.9. 한신 타이거스

특히 타팀이적 없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두고 미스터 타이거스(ミスタータイガース)로 별도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90년대에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이 기간 동안 입단한 선수 중에서 프랜차이즈라고 할만한 선수가 거의 없다(...)

2.10.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1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12. 히로시마 도요 카프



[1] 해외이적 등의 경우에는 원클럽맨으로 인정하지 않음. [2] 다만 영구결번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받았다. [3] 원래는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주전 외야수였지만 킨테츠- 오릭스 합병 당시 선수회장으로써 합병 반대에 적극적으로 앞장섰기 때문에 라쿠텐으로 쫓겨나다시피 이적했다. 라쿠텐 창단 후엔 팀 내 몇 안되는 고참 선수로써 창단 초기 희망이 보이지 않던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다. [4] 이쪽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주축 선발투수였지만 킨테츠- 오릭스 합병에 반대했고 합병 이후의 분배 드래프트에서 오릭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본인이 오릭스 이적을 맹렬히 거부하면서 라쿠텐으로 이적하게 된다. 라쿠텐 이적 후엔 팀에 제대로 된 몇 안되는 전력으로써 눈물겨운 분투를 보여주며 희망이 안보이던 팀을 지탱했다. [5] 다만 1980년 시즌은 선수 겸 코치로 등록되었으며 출장 기록은 없다. [6] 비록 선수생활 후반부에 타 팀으로 이적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초창기의 전설적인 투수로서 교진군의 제1차 황금시대를 열었던 주역이기에 요미우리 구단에서도 레전드로 인정하고 있다. [7] 요미우리의 그 길고 화려한 역사 중에서도 거의 유일의 도쿄출신 프랜차이즈이다. [8] 카와사키 시대 타이요 훼일즈 -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세 시대를 모두 거친 유일한 선수다. 그리고 구단명은 다르나 미우라 다이스케가 이 계보를 잇게 된다. [9] 카나가와현 오다와라시 출신 [10] 창단 시즌(1950년) 한정이긴 하지만 이 팀의 최초 연고지였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단, 이쪽은 시모노세키시가 아닌 호후시 출신) [11]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세 시대를 모두 거친 유일한 선수다. [12] 원클럽맨인데 중간중간 기록이 끊겨 있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징병된 것과 1956년 투수코치로 있다 1957년 플레잉코치로 복귀했기 때문. [13] 입단 당시 본명은 궈위안즈(郭源治). 그래서 당시 한국의 야구인들은 한국식 독음으로 '곽원치'라고 불렀다. 대만국적으로 외국인 선수였다가 선수생활 도중인 1989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귀화하면서 성도 일본식으로 카쿠(佳久)로 바꿔서 현재의 본명은 발음은 주니치시절의 등록명과 같은 가쿠 겐지이지만 한자로는 佳久源治이다. NPB 커리어만 따지면 원클럽맨이지만 주니치 퇴단 후 대만 프로야구 퉁이 라이온즈 허신 웨일스에서 3년간 선수생활을 더 연장했다. 따라서 비 NPB 경력까지 포함하면 순수한 의미에서의 원클럽맨은 아니다. [14] 좀 애매한 케이스이다. 도쿄도 아다치구 출신으로 입단 당시에는 팀이 도쿄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고 1972년까지 도쿄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니 당연히 출신지와 연고지가 일치하는 프랜차이즈였지만 1973년부터 팀이 방랑생활(...)을 시작하면서 출신지가 어긋나게 된 케이스. [15] 외국인 선수이긴 하지만 일본프로야구 통산 타율 1위(.320)을 기록하고 연도는 각각 다르지만 3관왕 타이틀을 모두 1차례씩 수상하는 등의 큰 족적을 남겼다. [16] 이쪽도 나리타 후미오처럼 애매한 케이스. 가나가와현 즈시시 출신으로 입단 당시에는 같은 현에 있는 가와사키 구장을 홈으로 쓰던 시절이라 출신지와 연고지가 일치하는 프랜차이즈였지만 1992년에 팀이 치바로 이사를 가면서 어긋나게 됐다. 선수 본인이 아니라 팀의 역마살이 문제. [17] 로컬보이+원클럽맨+학창시절을 전부 치바에서만 보낸 치바 성골 그 자체. 다만 후쿠우라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진 롯데의 홈이 치바가 아니었다. [18] 2011년 시즌 도중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해 다시 롯데로 돌아왔다. 그래서 재적 기록이 2개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19] 사실 8년 만에 팀을 떠나서 애매하긴 하지만 전성기 시절을 전부 롯데에서 보냈기 때문에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볼 수 있다. 니시오카는 메이저 리그에서 실패한 뒤 한신에 간 후에는 한 해를 제외하면 백업 수준으로 몰락했기 때문. 그런데 2018년 시즌 후 한신에서 방출당하고 본인은 롯데에서 커리어를 마감하는 게 소원이었다면서 현역연장을 위해서 언플을 했으나 정작 친정팀 롯데의 반응은 "너님, 필요 없음"(...) 사실 롯데가 이런 반응을 보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게 이미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기로 방침을 잡은 데다, 니시오카의 일본 복귀 당시 롯데 쪽에서도 재영입 제의를 했지만 니시오카가 거절하고 한신으로 가버렸기 때문. 그랬는데도 롯데에서 커리어를 마감하는게 소원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언플을 하고 자빠졌으니... 이런 지경이니 당연히 프랜차이즈 목록에서는 삭제되어야 할 듯. [20] 프로야구 스피리츠 모바일 버전에서 팀별로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 카드가 등장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롯데 대표로 뽑혔기 때문에 일본 현지에선 나름 프랜차이즈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단 당시 프랜차이즈 스타로 뽑힌 선수들은 팀을 대표할 정도로 아주 유명하지는 않았으나, 꾸준히 그 팀에서 뛰어오면서 터줏대감 역할을 해 온 선수였기 때문에 조금 애매한 감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문규현 같은 느낌. [21] 2022년에는 1군 기록은 없었지만 주니치에서 1년 더 뛰어서 원클럽맨은 아니다. [22] 카쿠나카, 카라카와, 니시노, 오기노 4인방은 일본 위키백과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목록에 들어있기 때문에 현지에서도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대놓고 인정하는 케이스. [23] 원클럽맨으로 뛰면서 20홀드를 3번 거두었다. [24] 불륜으로 인해 시즌 중 전력외통고를 받은 케이스라 애매하긴 하다. 일단 불륜을 걸릴 때만 해도 나름 프랜차이즈 취급을 받긴 했지만. [25] 원클럽맨+세이브왕 2번+신인왕에 명구회 가능성도 꽤 있어서 누적기록만 보자면 2024년 롯데 현역 선수들 중 가장 좋다. [26] 원클럽맨으로 뛰면서 20홀드를 3번 거두었다. [27] 효고현 아마가사키 시 출신 [28] 데뷔팀은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現 세이부 라이온즈)이지만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잡고 전성기를 맞이한 때, 그리고 은퇴한 팀이 한신 시기이었고, 무엇보다도 1985년 우승 당시 공포의 1번 타자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공격력을 앞세워 맹활약했기에 대다수의 한신 팬들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로 여겨진다. [29] 효고-오사카 공동 프랜차이즈 기간 뛰었던 오사카 출신. [30] 데뷔팀은 주니치 드래곤즈였지만 전성기는 한신에서 보내게 된다. [31] 본래 데뷔팀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고 카프에서도 강타자로 활약했지만, FA로 이적한 한신 시절의 경이로운 맹활약으로 많은 팬들에게 아니키란 애칭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은퇴 당시엔 영구결번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망했다 [32] 데뷔팀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였고 다이에-닛폰햄-한신-라쿠텐의 4개팀을 거쳤던 저니맨 선수였지만, 최전성기가 한신 시기였고 은퇴후 미디어 출연시에도 한신 OB 소속으로 주로 나오는 관계로 프랜차이즈 스타의 범주에 넣자면 한신 소속으로 넣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3] 고라쿠엔 구장- 도쿄 돔- 홋카이도 삿포로 돔 등 파이터즈의 세 시대를 모두 거친 유일한 선수다. [34] 데뷔는 야쿠르트에서 했지만 2006년 이적과 함께 44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일명 '이나바 점프'라는 독특한 응원문화를 만들 정도로 파이터즈 팬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프랜차이즈 선수로 볼 수 있다. [35] 성적 자체는 비록 역대급 슬러거가 될 거란 기대엔 못미쳤어도 나름대로 괜찮은 커리어를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스타로 불리울만 했으나, 본인이 후배를 폭행하는 병크를 일으키고 요미우리로 쫓겨나듯 이적하며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36] 히로시마 히로시마시 출신으로 출신 현/시가 연고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희귀한 예다. [37] 시마네현 이즈모시 출신. [38] 돗토리현 돗토리시 출신. [39] 시마네현 하마다시 출신. [40] 현 히로시마 감독. FA 선언으로 한신에 이적할 당시의 여러 말실수 때문에 한때는 카프 팬들에게 금지어로 찍혔지만, 2014년 시즌 종료 후 한신의 (본래 연봉의 절반으로 깎이긴 했지만) 재계약 제의를 거절하고 한신이 제시한 연봉보다 낮은 연봉으로 카프로 복귀한 후 베테랑 노장으로써 카프의 리그 3연패에 공헌하며 리그 MVP까지 얻는 등의 맹활약으로 그 동안의 안 좋은 이미지를 씻어내고 다시 카프 팬들의 지지를 받는 좋은 말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