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오카 신지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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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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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 히데오 ( 킨테츠 버팔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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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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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타케히로 ( 세이부 라이온즈) |
199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MVP | ||||
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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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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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하웰 ( 야쿠르트 스왈로즈) |
199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우수 투수 | ||||
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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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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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다 승리 | ||||
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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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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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최우수 방어율 | ||||
1989-1990 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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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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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모리타 코키 (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
199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투수 부문 베스트 나인 | ||||
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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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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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마사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일본프로야구 보유 기록 |
1이닝 최다 삼진[1] (2개) |
100승 100세이브 달성 ( 오노 유타카에 이은 역대 두 번째) |
사사오카 신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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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18번 | ||||||||||||||||||||||||||||||||||||||
시라타케 요시히사 (1983~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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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1990~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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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켄타 (2008~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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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88번 | |||||||||||||||||||||||||||||||||||||||
코바야카와 타케히코 (2006~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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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2015-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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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오카 신지 佐々岡真司 | Shinji Sasao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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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7년 8월 26일 ([age(1967-08-26)]세) |
시마네현 나카군 카나기초 (現 시마네현 하마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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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시마네현립 하마다 상업 고교 |
신체 | 185cm, 90kg |
투타 | 우투우타 |
포지션 | 투수 |
프로입단 | 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 (히로시마) |
소속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0~2007) |
지도자 |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투수코치 (2014~2018)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투수코치 (2019)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2020~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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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前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선수 시절에는 소속팀의 투수진이 빈약해서 선발, 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투수였지만, 선발과 마무리 모두에서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2. 데뷔 이전
처음에 야구를 시작할 때에는 내야수로 시작하였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한다.투수 전향 후 현 내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고 사회인야구 NTT 주고쿠에 입단한다. 아마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승선을 노렸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국가대표에 선발되지는 못하였다.[2]
3. 현역 시절
1989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 89년 드래프트는 노모 히데오의 8구단 지명으로 유명한 드래프트인데, 히로시마는 노모를 지명하지 않고 사사오카를 1순위로 지명한다. 그가 나름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는 증거.히로시마의 기대에 부응하듯, 사사오카는 데뷔 시즌인 1990년부터 13승 11패 17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핵심 투수로 성장한다. 17경기 연속 세이브포인트 기록(당시 일본 신기록)은 덤. 아쉽게도 신인왕은 같은 해 드래프트 동기이자 구원왕을 수상한 주니치의 요다 츠요시에게 내주었다.
13승 17세이브라는 시즌 기록에도 드러나지만, 1990년의 사사오카는 44경기(13선발) 등판을 한 선발 불펜 가리지 않은 전천후 투수였고, 이후 그의 야구인생 자체가 이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2년차인 1991년부터는 완전한 선발 투수로 활동하면서, 더욱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240이닝 17승(센트럴리그 1위) 9패 방어율 2.44(센트럴리그 1위) 13완투의 성적을 거두며 그 해 사와무라상과 센트럴리그 MVP를 동시에 석권한다. 92년에도 그는 197이닝 12승 8패 방어율 3.38의 성적을 거두어 그 당시 은퇴수순을 밟고 있던 키타벳푸 마나부의 뒤를 잇는 히로시마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93년, 입단하자마자 너무 달렸던 탓인지 183이닝 5승 17패[3](1위) 방어율 4.33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다.
1993 시즌을 선발로 뛰면서 성적을 너무 망치기도 했고, 1년차에 (선발 중간 가리지 않긴 했지만) 이미 마무리 투수로 뛰어본 경험도 있었고, 츠다 츠네미와 오노 유타카[4] 이후로 마땅한 마무리가 없었던 팀 사정까지 겹치면서, 사사오카는 94년부터 다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기 시작한다. 94년(41경기 14선발 7승 9패 6세이브)과 95년(44경기 12선발 7승 7패 17세이브)에는 첫 해와 비슷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였고, 95년 후반기부터 오노 유타카가 선발로 전향하면서 사사오카가 전업 마무리투수로 등판한다. 전업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96년 5승 7패 23세이브[5] 방어율 1.70, 97년 5승 5패 21세이브 방어율 2.65를 기록하며 이제는 히로시마의 믿음직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다. 그리하여 선동열과 사사키 카즈히로와 본격적으로 경쟁할 세리그 대표 마무리로 자리잡...는가 싶었는데,
1998시즌, 그가 다시 부진에 빠지고 만다. 그러자 사사오카는 마무리투수를 신인 고바야시 칸에이[6] 에게 넘기고, 후반기부터 다시 선발로 전향한다. 그리고 99년에 사사오카는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190이닝 15승 8패 방어율 3.27 13완투[7]의, 91년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거둔다. 이 시즌 종료 후 사사오카는 FA 자격을 획득하였고, 이제나저제나 돈이 없는 히로시마는 거의 당연히 사사오카를 놓칠 것이라 보았지만, 사사오카가 FA자격을 행사하지 않고 히로시마에 남기로 한다. 2000년에도 선발로 활약하면서 10승[8] 6패 방어율 3.97을 기록하지만, 시즌 중 부상을 당하고 만다. 이 여파로 01년에는 다시 마당쇠 역할을 하고, 02년에야 선발로 완전히 복귀한다. 02년 성적은 153.2이닝 8승 9패 방어율 3.46. 승운이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03년에도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그 해 신인으로 들어와서 바로 마무리투수 역할을 맡고 있던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후반기에 힘이 빠지고 말아서(…) 다시 마무리를 맡게 되고[9], 04년에는 또 전천후 투수가 되었다가[10] 8월에 팀 사정상 다시 선발로 전향한다. 선발로 전향한 이후 8경기 등판하여 48.1이닝 동안 방어율 1.48을 기록. 이 기억을 가지고 05년에도 선발로 시즌을 시작하지만, 탈탈 털리고 신인때 이후로 한 번도 간 적 없는 2군을 다녀온 다음 다시 불펜으로 전향한다(…). 05년 성적은 30경기(8선발) 1승 6패 4홀드 방어율 6.33. 확실히 망했다.
06년, 그는 팀 내 최고령 선수가 되었고, 나이도 있고 하여 다시 선발로 전향, 4선발로 시즌을 시작한다. 이제 나이가 39세인데다 전년도에 거하게 털려서 아무도 그의 기대하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27경기(모두 선발) 149.2이닝을 소화하며 팀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와 함께 팀 내 단 둘뿐인 규정이닝 충족 투수가 되었다. 방어율은 4.02로 좋지만은 않았으나 39세 투수의 성적임을 감안하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여담으로 후쿠오카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전에서 4번타자로 나왔던 이승엽에게 고의사구를 내줬다가 고쿠보 히로키에게 털린적이 있다.
그러나 06년의 성적은 일종의 회광반조였고, 이듬해 07년에는 다시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부진한다. 그리고 9월 19일 은퇴 의사를 밝혔고, 10월 6일 은퇴경기[11]를 가지며 그라운드를 떠난다.[12]
4.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주로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는데 2008년부터 7년간 주고쿠 방송에서 활동했으며, 2012년부터는 TBS 등에서도 야구 평론 프로그램 및 히로시마 경기 중계 등을 겸임했다.5. 지도자 시절
5.1.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리그 4위에 그친 전임 오가타 고이치 감독이 사임하자 2019년 10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제 19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 구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했던 투수 출신 감독으로는 하세가와 료헤이 전 감독 이후 무려 53년만이라고 한다.하지만 2년간 팀 성적은 각각 5위/4위로 좋지 않다. 리그 3연패를 달성한 16~18년 동안 선수들을 아낌없이 갈아넣었고 FA를 통한 전력 유출( 마루 요시히로)도 있었기에 어느정도의 동정표가 있긴하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팀 상황일 뿐이고 사사오카 개인의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선발을 과도하게 오래 끌고가는 투수운용법이다. 현역시절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면서 어깨를 자주 쓰게 하는것이 자신만의 야구관으로 자리잡은 것인지 선발을 어지간하면 길게 끌고가는 경향이 있다. 일본 야구계가 6선발 체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선발을 길게 놔두는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사사오카는 선발에게 이닝을 너무 과하게 맡긴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모리시타 마사토가 선발로 등판했을때 더욱 부각되는 점.
타순 운용에서도 미숙한 면모가 있다. 타자들 개개인의 능력이 좋아 타순만 잘 짜맞추면 충분히 강력한 타력을 자랑하는 카프 타선을 들고 이해가 가지 않는 타순을 종종 들고나와 득점력을 까먹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나마 잘한것은 신진급 전력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 코조노 카이토와 하야시 코타를 각각 주전 유격수와 3루수로 정착시켰고 퓨어히터 포수 유망주 사카쿠라 쇼고는 2020시즌부터 출전 수를 늘려준 결과 21년 시즌 3할타자로 각성하며 마루 요시히로- 스즈키 세이야의 계보를 잇는 토종 강타자 육성에 성공했다. 외야수 우구사 코키에게도 출전 기회를 후반기 들어 자주 부여하고 있다. 투수쪽에선 타카하시 코야와 타마무라 쇼고를 로테이션에 정착시키려고 많은 선발 기회를 주고 있는 중.
2020~2021년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순위 | 게임수 | 승 | 패 | 무 |
2020 | 5위 | 120 | 52 | 56 | 12 |
2021 | 4위 | 143 | 63 | 68 | 12 |
통산 | - | 263 | 115 | 124 | 24 |
2022시즌 들어서는 더했으면 더해진 상태로 팀을 말아먹는 수준의 이해할 수 없는 마운드 운용과 선수 기용으로 결국 5위로 마무리, 재임 기간 3년동안 모두 B클래스에 머무르며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었고 여론이나 평가는 선수 시절의 활약이 무색할 정도로 최악이라서 재계약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의 2022년의 활약상(?)에 대한 내용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2022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결국 10월 1일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2022 시즌을 끝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6. 여담
[1]
투수로서 탈삼진을 기록했다는 것이 아니고, 타자로서 삼진을 당한 기록이다.
[2]
1년 후배인
노모 히데오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은메달을 획득한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투구폼 변경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노모는 사회인야구팀인
신일본제철 사카이에 입단했다. 1989년 8개 구단이 노모를 지명했고 킨테츠가 당첨제비를 뽑아 결국 킨테츠 유니폼을 입혔다.
[3]
사사오카 이후 단일시즌에 17패 이상의 패전을 기록한 투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4]
이쪽도 사사오카처럼 커리어 내내 선발과 구원을 계속 오간 좌완 에이스로 통산 148승 138세이브 ERA 2.90의 뛰어난 커리어를 남겼다.
[5]
5일 연속 세이브(일본프로야구 기록)를 달성
[6]
이 해
카와카미 겐신,
다카하시 요시노부라는 두 거물 신인과 수위타자를 넘보던 한신의 신인 외야수 츠보이 토모치카와 함께 치열한 신인왕 레이스를 펼칠 정도의 활약을 펼쳤다. 결국 신인왕은 카와카미가 탔지만 다카하시, 츠보이, 고바야시 모두 신인 특별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이 해 혹사의 영향으로 이후 별다른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
[7]
노히트노런 1회(5월 8일 주니치전, 상대 선발
이상훈(좌완투수)) 포함. 여담으로 이날 경기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이종범의 병살타였다.
[8]
4월에만 5승을 기록했다.
[9]
이 해 통산 100승 100세이브를 달성한다.
[10]
후반기에 선발로 전향하기 전에도 3게임을 선발로 등판했다.
[11]
이 때 상대팀 요코하마의 주포
무라타 슈이치가 팬서비스용 원포인트 등판을 한 사사오카를 상대로 본인의 단독 홈런왕 타이틀을 확정짓는 홈런을 때려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홈런왕과 함께 은퇴경기 브레이커의 타이틀을 획득한다 자세한 사항은 무라타 항목 참조.
[12]
은퇴 세레모니 다음날 야쿠르트 원정 경기에서 드래프트 동기이자 같은 해 은퇴한 야쿠르트의 명포수
후루타 아츠야를 상대하러 깜짝 등판했다. 이 타석에서 후루타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낸 것이 사사오카의 진짜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13]
다른 한명은 주니치의
타츠나미 카즈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