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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2:21:51

이슬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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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3대 이념의 분파 ( 사회주의 · 자유주의 · 보수주의) · 기타( 내셔널리즘 · 생태주의 · 포퓰리즘)
* 국민주의는 근대(modern)에 탄생한 이념이다. 따라서 21세기 기준 서구 선진국에서 국민보수주의가 강경 우익인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근대적/현대적(modern) 보수주의이며, 고전적(classical) 보수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상징 | 역사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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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이슬람 모더니즘의 퇴보
2.1.1. 레닌주의의 영향2.1.2. 기독교 원리주의의 영향2.1.3. 반지성주의화
2.2. 아랍 내셔널리즘의 퇴보2.3. 이슬람 재부흥2.4. 몰락
3. 개념 구분
3.1. 이슬람=이슬람주의?3.2. 이슬람주의=이슬람 근본주의/극단주의?3.3. 이슬람주의=이슬람 민주주의?
4. 비판: 이슬람주의는 어떻게 이슬람권을 약화시켜 왔는가
4.1. 민주주의의 관용을 숙주로 삼는 확장 전략4.2. 비이슬람 사회에 대한 기만행위4.3. 무책임한 선교 전략4.4. 반지성주의4.5. 이중잣대와 선민 사상
5. 관련 단체6. 함께 보기

1. 개요

파일:Islamism.jpg
사진에 적혀 있는 문구는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이슬람에서 여성의 역할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지만 이슬람권에서 여성의 위치와 니캅 같은 복식 관련 문화는 시대가 지나면서 계속 변화하여 왔다. 실질적으로 이런 종류의 문구와 사진은 근본주의자들의 호응과 지원을 얻기 위한 문구일 뿐이다.
이슬람주의는 정치극단주의의 한 유형이다. 그들은 신이 제정한, 즉 인간이 만든 질서보다 더 상위에 있는 "참된" 절대적 질서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다. 이것은 포괄적인 용어로, 이데올로기적 가정과 지리적 방향 그리고 전략과 수단 측면의 다양한 경향을 포함한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이라는 세계종교가 단지 개인적이거나 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과 정치 질서 역시 결정하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확신에 기반한다. 이는 기본법에 명시된 국민주권, 정교분리, 표현의 자유와 보편적 평등의 원칙에 명백히 위배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그들의 종교적 사명에 따라 독일연방공화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헌법수호청의 대상이 된다.
{{{#!folding [ 독일어 원문 펼치기 · 접기 ]
Der Islamismus bezeichnet eine Form des politischen Extremismus, in dem die Existenz einer gottgewollten und daher „wahren“ und absoluten Ordnung postuliert wird, die über den von Menschen gemachten Ordnungen steht. Unter dem Oberbegriff werden dabei verschiedene Strömungen zusammengefasst, die sich hinsichtlich ihrer ideologischen Prämissen, ihrer geografischen Orientierung und ihrer Strategien und Mittel unterscheiden.

Der Islamismus basiert auf der Überzeugung, dass die Weltreligion des Islam nicht nur eine persönliche beziehungsweise private Angelegenheit ist, sondern auch das gesellschaftliche Leben und die politische Ordnung bestimmen oder zumindest teilweise regeln sollte. Dies steht im klaren Widerspruch zu den im Grundgesetz verankerten Prinzipien der Volkssouveränität, der Trennung von Staat und Religion, der freien Meinungsäußerung und der allgemeinen Gleichberechtigung. Islamisten verfolgen das Ziel, die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ter Berufung auf ihre Religion ganz oder teilweise abzuschaffen und begründen damit eine Verfassungsschutzrelevanz. #}}}
현대 무슬림 사회에서 원리주의적인 이슬람 해석에 입각하여 이슬람 신정 국가를 건설하려는 범운동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이슬람적 종교관에서는 심판의 날과 내세에서 받는 구원을 더 중시한다면[2]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율법을 현실에 적극 도입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것으로서 다소 현세지향적인 성격이 강하다.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같은 칼리프 정권과 성격이 다른데 이슬람주의가 현대 정치 사상과 기술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 완전한 제정일치 정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매우 영향력이 큰 이슬람 사학자들 중 한 명인 아이라 라피두스(Ira Rapidus)에 따르면 이슬람에서 제정일치가 완전히 가능했던 시기는 예언자 무함마드 때부터 제2대 칼리프 우마르 때까지였으며 이후는 제정일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슬람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통치 인구와 영토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교통과 통신 기술이 미비했던 당시 기준으로 완전한 형태의 제정일치 정권을 수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칼리프 우마르 시대 이후 이슬람 칼리프들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관료제를 도입하였으며[3] 우마이야 왕조 시기에는 칼리프들이 세속적인 헬레니즘 문화를 즐기는 사이 도회지에서는 무슬림 학자들이 개별적으로 이슬람 신학을 발전시켰고 압바스 왕조 시대부터는 이슬람 신학자들과 지방 군벌정권들이 서로 보호해 주면서 유착하는 관계가 강화되었다.

오늘날의 이슬람주의는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사례에서 보듯 현대 과학기술로 교통과 통신의 발전을 이용하여 국민의 일상 생활까지 완전히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신정을 추구한다. 즉, 중세 초 이슬람 칼리프 정권보다 훨씬 더 보수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가 고대 그리스, 로마, 이란, 인도의 과학 기술을 적극 도입했던 것과 반대로 오늘날의 이슬람주의는 극단적인 반서구주의 반지성주의가 병행되어 나타난다.

2. 역사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이슬람 근본주의 네지드 지방에서 와하브파가 성행하면서 등장했다. 당시 와하브파를 지원하던 아랍인들은 부패한 오스만 제국의 관료들을 몰아내고 샤리아를 더 적극적이고 원리주의적으로 적용하면 유토피아가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이들이 이슬람주의자의 초창기 모습을 보여준다. 와하브파가 세계화되기 전이었던 오스만 제국 말기의 이슬람 세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현대인이 상상하는 무슬림 사회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이혼이 매우 자유로웠으며 기독교 등 다른 종교를 이슬람과 동시에 믿는 이중 신앙도 시골을 중심으로 흔했다.[4] 수피가 길거리에서 생식기만 가리고 걸어다녀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다든지, 동성애가 처벌받지 않는다든지, 지역에 따라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해도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다든지 등등. 그러나 사회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이슬람주의가 영향력을 가진 후에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극도로 경직된 무슬림 사회가 만들어졌다.

19세기 말 수단 마흐디 운동, 20세기 초반에는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에 해당하는 네지드 사막 지역 정도가 오늘날의 이슬람주의와 흡사했으며 중세처럼 단순히 근본주의 성직자들의 협조를 받고 정복전쟁에서 ' 지하드'를 선포하는 것을 넘어 일반인들의 일상생활까지 이슬람 근본주의적으로 통제하고 기존의 무슬림 정권에게 '불신자'라는 낙인을 찍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1. 이슬람 모더니즘의 퇴보

19세기 무렵 이집트와 인도를 중심으로 이슬람 모더니즘 단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단체들은 출발 자체는 매우 온건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시아파 수니파가 화해하여 제국주의에 맞서고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화해하여 인도를 발전시키자고 주장한 자말룻딘 알 아프가니, 일부다처제를 비판하고 이집트의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모두 서구의 모더니즘[5]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무함마드 압두, 메이지 유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급진적인 서구화를 추구한 사이드 아흐마드 칸 등 시작은 굉장히 진보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슬람 모더니즘은 와하브파레닌주의를 흡수하였고 기독교 근본주의로부터는 선교 방식과 엄숙주의세속문화 혐오를 받아들여 극우적으로 퇴보하면서 이슬람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이슬람 모더니즘 와하브파와 영향을 주고 받은 이슬람 신학 사조로 살라프파가 있다. 서구 외세의 침탈로부터 어떻게 무슬림들을 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인도와 이집트 등 제3세계 독립운동가들 중 일부는 이슬람 초창기와 이슬람 원리원칙으로부터 해답을 찾기 시작했으며 이 와중에 수피와 마드하브가 이슬람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하고 비판하면서 살라프파로 발전했다. 이러한 기원 때문에 오늘날의 살라피스트는 반수피, 반시아 성향이 강하다.

무슬림 형제단은 심지어 라시드 리다 같은 살라프파의 시조조차도 개혁이 너무 온건하고 친서구적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모더니즘에 와하브파 신학을 받아들인 라시드 리다를 온건하고 친서구적이라고 비판할 때부터 이들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2.1.1. 레닌주의의 영향

카를 마르크스 혁명의 주체로 노동자를 주목하고 농민을 무시한 것과 다르게 블라디미르 레닌은 빈농들과 소수민족들이 많았던 당시 러시아 제국의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농민과 식민지 피지배 민족도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부분을 보완, 수정하였는데 이는 서구의 식민화나 경제적 예속 상태로부터 고통받던 무슬림 지식인들에 의해 재해석되었다.

무슬림 형제단의 창립자 하산 알 반나 이슬람 모더니즘과 현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의 과도기적인 인물로, 이집트 서민층의 반서방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반영 감정이 강했지만 대신 레닌주의에 호감을 느낀 그는 이슬람주의 교리에 레닌주의적 요소를 상당히 도입하였고 막심 고리키의 소설에 나온 노동자 운동과 유사한 방식[6]으로 지하조직을 운영하여 전세계로 이슬람을 확장해야 한다는 사상을 이집트 서민들에게 가르쳤다. 당시 하산 알 반나의 가르침은 패배주의에 시달리던 중동 무슬림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효과가 있었으나 이후 공교롭게도 사이드 쿠틉의 극단적인 반지성주의 해석이 더해지면서 무슬림 형제단은 더욱 과격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하산 알 반나가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지하 노동자 조직은 사이드 쿠틉의 극단적인 반서반주의와 비논리적인 증오 조장 문구가 더해지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의 근간이 되었다. 시아파의 이슬람주의 발생 과정도 이와 유사했는데 이슬람 사회주의 성향의 철학자 알리 샤리아티는 전통적인 12 이맘파 신학에 마르크스-레닌주의[7]를 접목한 사상으로 이란 혁명 전 대학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2.1.2. 기독교 원리주의의 영향

남아프리카의 인도계 이민자 출신 무슬림 아흐마드 디다트는 기독교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선교 방식을 분석한 후 이슬람 선교에 근현대 기독교식 선교 방식을 도입하였다. 아흐마드 디다트가 주로 참고한 기독교 종파는 삼위일체 대신 아리우스파와 유사한 교리를 추구하여 이슬람과 나름 접점이 있었던 유니테리언 교회였는데 그가 유니테리언 신학을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기독교 선교사들과의 토론, 논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면서 패배주의에 시달리던 세계 각지의 무슬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문제는 아흐마드 디다트가 벤치마킹한 대상들 중에는 여호와의 증인 등 세속 문화를 경계하는 보수적인 신흥종교 교단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며 더 심각한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아랍 왕정 국가에서 와하브파를 전파할 때 아흐마드 디다트의 방법론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서구의 온건파 무슬림 커뮤니티 각지에 와하브파를 전파했다는 점이다.[8] 와하브파가 나쁘고 말고를 떠나서 근본주의 성향의 와하브파 율법 해석과 이슬람주의의 결합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은 이란의 이슬람주의에 훨씬 더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 미국은 거대한 사탄이다.”라고 말하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미국을 비판할 때 사용하던 논리들 중 대부분은 바로 미국 바이블벨트의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캘리포니아 지역의 개방적인 히피 문화를 공격하던 것을[9]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물론 사이드 쿠틉만큼 치졸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호메이니도 미국을 음란물과 히피들과 동성애가 판치는 마귀 소굴로 묘사하며 디스하길 즐겼는데 이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계의 호모포비아 및 엄숙주의 문화가 이슬람주의에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즉, 이들은 서구 기독교 문명권을 줄기차게 비난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이 가진 보수주의적 사상의 극과 극은 통한다. 넓게 보면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는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다.

2.1.3. 반지성주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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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의 이슬람 모더니즘계에서 촉망받던 천재 학생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부유하지만 엄격하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마우두디의 아버지는 아들이 서구 학문을 배우는 것을 원치 않아서 개인 교사들을 두어 그에게 쿠란과 하디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교육시켰다. 학문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아버지 몰래 우르두어로 번역된 서구 서적을 읽으면서 독학으로 헤겔과 마르크스, 영어와 수학을 배웠다. 마우두디의 고향은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의 아우랑가바드였으나 인도 분단 후 파키스탄으로 국적을 바꾸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기 위해 수피 소수종파 아흐마디야[10] 신도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주장했는데 제노사이드 시도는 실패했지만 군부 독재 정권을 부추겨서 아흐마디야 신도는 여권을 일부러 다른 파키스탄 국민들과는 다르게 따로 발급받도록 만들었다.[11] 이후 그의 제자들은 파키스탄의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 무함마드 압두스 살람이 아흐마디야 신도라는 이유만으로 기록말살형을 내렸다.

파키스탄의 세속주의 정권이 쿠데타로 전복되자 그는 파키스탄 군부의 우민화 정책에 동조하여 "이슬람의 발전은 바라지만 서구화는 반대한다."는 미명하에 파키스탄 군부의 공교육 예산 비율 삭감을 미화하였다. 당시 파키스탄 군사독재 정권은 미국에 공군기지를 임대하는 대가로 상당한 원조금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예산의 대부분을 발전소나 학교를 짓는 대신 국방비로 몰빵하였다.[12] 그 결과로 파키스탄은 20세기 후반에도 문맹률이 80% 정도에 달했다. 문맹률이 50% 이하로 감소하는 시점에서 혁명이 일어난다고 우려하던 파키스탄 군사독재자들 입장에서 아불 알라 마우두디만한 효자가 없었다.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여성 인권 신장 운동도 "타락한 서구화와 여성 해방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미명 하에 반대하였다.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와 함께 활동했던 경력에 무함마드 이크발의 총애로 권위를 가진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압박했으니 진보 성향 개혁가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 모더니즘 학자 사이드 아흐마드 칸 무함마드 이크발은 "무지는 빈곤의 어머니이다."라는 슬로건으로 교육 확대를 통한 빈곤층 구제를 통해 남아시아 무슬림 사회에서 최소한 고리대금이라도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이조차도 뒤집어엎었고 우민화 정책을 이용해서 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독립 이전 방글라데시)에서 국민들의 눈을 가린 후 고리대금마저 샤리아로 합법화시켰다.[13]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고리대금이 간통보다 수십 배는 나쁘지만 마우두디는 "타락한 서구화와 여성 해방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할 때와는 다르게 고리대금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방글라데시의 고리대금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무함마드 유누스가 1980년대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고 나서 2000년대 후반에야 간신히 해결되었다.[14] 마우두디는 산아제한 및 가족계획을 반대하였는데 산아제한을 찬성하는 측에서 가족계획을 통해 파키스탄 아동들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고 취학률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하자 역경과 빈곤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여기에 반박하였다. 정작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지주층 가문에서 성장한 데다 천재라고 소문이 나서 이런저런 지원을 받고 공부했기 때문에 돈 문제로 고생했던 적이 없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가 우르두어로 쓴 책들은 90년대 기준으로 우르두어 서적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는데 이는 그의 천재성을 증명함[15]과 동시에 그가 파키스탄 군사독재자들의 우민화 정책으로부터 얼마나 해먹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카슈미르 해방을 위한 성전을 부르짖으며 반정부 극단주의자라며 감옥에 자진해서 수감되는 퍼포먼스도 행했지만 이는 자신을 마치 이븐 타이미야나 이븐 한발처럼 보이도록 한 언플이었고 실제로 군사독재 정권의 여타 일반적인 수감자나 정치범으로 대우받지는 않았다.

우민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반서방주의 포퓰리즘을 악용하던 천재 학자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파키스탄 군부 독재자들의 재산 증식을 도와준 공로로 뉴욕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2.2. 아랍 내셔널리즘의 퇴보

70년대까지만 해도 중동 이슬람권에서는 바트당 나세르 등을 필두로 한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가 상당히 기세를 펼쳤으나 문제는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에 기반한 중동의 독재정권, 군사정권들은 세속주의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당장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의 필두인 나세르 본인부터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였고 바트당 사담 후세인 아사드 부자 세습독재로 흑화했다.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권에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세력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오스만 제국, 팔레비 왕조, 이라크 왕국, 이집트 왕국 등으로 대표되던 구체제들이 무너졌고 구체제를 대신해 정권을 잡은 세속적인 아랍 내셔널리스트, 아랍 사회주의자들도 권위주의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서구권에서는 19세기 교회와 손잡은 왕실, 귀족으로 대표되던 구체제 vs 세속적인 자유주의, 반교권주의, 사회주의 세력의 대립 구도가 펼쳐졌고 전쟁과 혁명으로 교회, 왕실, 귀족 등의 구체제가 패배하면서 세속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달성되었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온건한 자유주의 세력이 성장하기도 전에 구체제가 무너진 후 정권을 잡은 세속주의 내셔널리즘 세력도 권위주의 독재인 건 마찬가지였던지라 세속주의+ 독재+ 군부 vs 이슬람주의의 대립 구도가 벌어졌다. 독재정권과 이슬람주의 세력 간의 아귀다툼 속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 자유주의 세력은 고사되어 말라죽어 갔고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투사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중동의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 독재정권들이 세속주의를 추구한 것 자체는 좋았지만 문제는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방식이 무력과 독재권력으로 이슬람을 탄압하고 찍어누르는 방식이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과 이슬람주의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아랍 사회주의, 내셔널리즘 독재정권들의 몰락에 쐐기를 박은 것이 바로 제3차 중동전쟁이다. 당시 아랍 주요국 대부분이 이스라엘 한 나라를 상대한 이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얻어맞고 6일만에 모두 참패하는 굴욕을 맛봤다. 당시 아랍에서는 전쟁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따위의 작은 나라는 언제든지 없애 버릴 수 있다며 깔보는 시각이 팽배했으나 그 작은 나라에게 6일만에 털리는 자국 정권과 군대의 무능함을 지켜본 아랍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 전쟁은 결국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 독재정권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고 그간 억눌려 왔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 이슬람주의자들은 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해 '봐라 저 유대놈들은 이교도이지만 최소한 그들의 신앙에 대해 철저하니 승리한 거다. 우리나라 독재자들은 신앙심도 없는 세속주의자에 허구한날 이슬람 탄압이나 하니 알라 천벌을 받아서 전쟁에서 유대놈들에게 개망신이나 당하지.'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16]

문제는 독재정권들에 대한 반감이 그때까지 이들이 기반으로 하고 있던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 세속주의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이어졌고 상술했듯이 당시 민주주의, 자유주의적 토양이 부족했던 중동에서 세속적인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가 퇴조하고 그 빈자리에 슬그머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슬람주의였다는 것이다. 전쟁의 패배로 궁지에 몰린 중동 독재정권들은 이후에는 이슬람주의와 타협하거나 아예 이슬람주의를 포섭하고 밀어주는 행태까지 보이게 된다. 이러한 중동의 비극은 훗날 아랍의 봄이 민주주의가 아닌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아랍의 겨울로 귀결되는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된다.

2.3. 이슬람 재부흥

종교적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의 융합 현상은 전후[17]에 중동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수단 태생의 이슬람 율법학자이자 인권 전문가인 압둘라 아흐마드 안 나임은 이슬람주의를 "이슬람 사회 내에서, 그리고 다른 사회와의 관계에서 공공 정책의 특정 목표를 추구하려고 이슬람 정체성을 동원"하는 이들로 규정했다.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 1945년 이후

한 술 더 떠서 이란에서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이슬람 신정 혁명이 일어나 신정 체제가 성립되었다. 호메이니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최초의 사례였는데 이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의 이슬람주의자들에게도 자신들처럼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이슬람 신정 체제를 세우라며 부추기고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에서도 이란 혁명에 자극받아 이슬람주의자들이 이란처럼 왕정을 타도하고 신정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준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사우디 등 걸프만 왕정이 내세운 게 바로 그 악명높은 와하브파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세계의 우경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우경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의 수구화는 석유 파동, 유가 상승 및 OPEC 결성 이후 산유국들의 호황과 맞물려 와하브파 선교에 막대한 자금 유입으로 연결되었다. 중동 이슬람권의 한 축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와하브파를 퍼뜨리고 또다른 한 축인 호메이니의 이란에서는 자신들의 신정 체제를 기반으로 한 이슬람주의를 퍼뜨리니 중동 전체의 이슬람이 급속도로 보수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당시 중동 이슬람권에서 그나마 세속주의 성향의 강국으로는 이집트 튀르키예가 있었는데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는 안와르 사다트 집권 후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전 중동권에서 이스라엘과 붙어먹은 배신자 취급을 받아 이슬람권에서 왕따 신세였고 튀르키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집권 후 도로 이슬람주의로 회귀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 분쟁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중동에서 반유대주의 반기독교 정서가 강화되어 타오르던 이슬람주의에 기름을 끼얹었다. 결국 당시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소련이 밀어주는 사회주의 미국이 밀어주는 자본주의 사이의 이념 대립 구도가 한창일 때 중동 이슬람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밀어주는 와하비즘과 호메이니의 이란이 밀어주는 이슬람주의라는 병맛나는 구도가 펼쳐졌다. 서양권의 양대 맹주인 미국 소련의 경우 미국은 미국 헌법 수정 1조에 국교를 금지한다고 못박아 놓은 세속 국가고 소련은 아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한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공산주의 국가였지만 이슬람권에서는 양대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자신들부터 철저한 종교 국가에 국가주도로 와하브파, 이슬람주의를 밀어줬으니 이슬람권에서 세속적인 이념이 제대로 자리잡기 어려웠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석유 파동 이후 1970년대부터 이슬람권에서 이러한 세속적 아랍 내셔널리즘, 아랍 사회주의의 퇴조와 이슬람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이슬람 재부흥(الصحوة الإسلامية)이라고 한다.

여기에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가 사이드 쿠틉 카타르를 중심으로 재평가되고 사이드 쿠틉의 저작들이 편역,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서구의 무슬림 소수자 사회에도 급속히 확장되었다.

2.4. 몰락

결국 사이드 쿠틉이 제시한 이상적인 지상낙원은 그 악명높은 ISIL로 귀결되었으며 미국과 사우디 간의 유가 치킨 게임의 영향으로 사우디에서 근본주의 성향 학자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축소하고 그 여파로 성금 수입이 줄어든 이슬람주의 선교사들 사이에서 자중지란이 더 심해졌다.

서구 사회에서 발생한 이슬람주의에 대한 반감은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주의에 대한 환멸의 형태로 번져나갔다. 여기에는 상술한 ISIL과 사이드 쿠틉의 연관성 외에도 아랍권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문화적 영향력이 큰 이집트에서 무르시 무슬림 형제단 정권이 무능과 연고주의의 끝판왕을 보여주면서 대중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3. 개념 구분

3.1. 이슬람=이슬람주의?

이슬람주의자들의 종교가 대다수가 이슬람이라서 혼동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슬람은 종교이고 이슬람주의는 근대 무슬림 사회가 레닌주의[18] 기독교 근본주의[19]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타난 정치이념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이슬람주의(Islamism)라고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데 Islamism, Islamist라는 말이 이들을 조롱하는 어휘이기 때문이다. 사이드 쿠틉과 그 제자들은 영어로 -ism이 붙은 사상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다른 무슬림 지식인들은 “그럼 이슬람 신앙의 기본인 ‘유일신 신앙(타우히드)’을 영어로 번역하면 Monotheism인데, 너희는 그럼 우상숭배자겠네.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는 뜻에서 조롱조로 접미사 -ism을 붙여 부른 게 그 어원이다.

3.2. 이슬람주의=이슬람 근본주의/극단주의?

이슬람주의는 민주주의를 사실상 부정하고 이슬람 율법의 적극적 도입을 통한 신정 국가 설립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로 분류될 수 있지만 이슬람주의자들이 모두 테러 암살을 저지르고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슬람주의를 이슬람 극단주의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영국 정부가 제시한 신조어로, 무슬림 테러리스트의 사상과 심리를 정의할 때만 사용된다.

3.3. 이슬람주의=이슬람 민주주의?

이슬람 민주주의와 이슬람주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은 없다. 튀니지 엔나흐다처럼 이슬람주의 성향의 정당이 온건 성향으로 변모해 이슬람 민주주의 정당으로 평가받는 경우 혹은 반대로 튀르키예의 정의개발당처럼 보수화되어 "이슬람 민주주의로 출발해서 이슬람주의로 기울었다." 같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나올 뿐이다. 애초에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은 호메이니나 김일성 같은 독재자 개인의 우상화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며 이슬람 원리원칙에 의거한 장로(셰이크)들의 의회에 의해 추대를 거쳐 운영된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에 의하면 … 이슬람 국가가 반드시 모든 무슬림들 간의 상호적인 협의( 슈라; Shura)를 통해 자신의 일들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우두디는 이 정부 체제를 가리켜 ‘신-인 민주정치(theo-democracy)’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일을 개인적이라거나 사적이라고 여길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가 주장하는 이슬람 국가는 파시스트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와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여기에서 마우두디는 이슬람이 ‘서구의 세속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안티테제’임을 확실히 밝힌다. ‘서구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인민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테러리즘 속 이슬람 / 이븐 와라크

이슬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정부 형태는 신정 국가지만 전근대 제정일치 정치체제와는 목표나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슬람주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대중주의를 영어로 신정민주주의(Theo-Democracy)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번역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종교 파시즘에 가까운 신정민주주의 이론에 의하면 신정민주주의는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경제생활, 가족관계 모두 다 샤리아 아래에 있으며, 자카트, 결혼, 이혼, 출산, 상속 등 세속사 모두가 샤리아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원론적으로 따진다면 개인의 사생활, 경제생활, 가족관계 다 경건하게 하자는 좋은 사상이 아닌가 싶지만 샤리아를 적용하고 해석하는 주체가 극단주의 정치인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슬림 형제단 같은 단체에서 대외적으로 민주주의 혹은 슈라 관련한 언급을 강조한다면 이는 일반적인 민주주의를 존중하겠다는 뜻보다는 신정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시아파 이슬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신정 민주주의는 순니파들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시아파는 수니파와 다르게 구세주( 마흐디) 신앙이 강한 데다 이맘 관련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호메이니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처럼 무늬만 민주주의인 개인 독재와 우상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시아파는 애초에 추대 방식으로 지도자를 뽑는 것을 거부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친척 알리와 후세인 및 그 직계 후손들이 세습을 통해서 정당한 자격을 획득한다고 보기 때문에 순니파 무슬림들과 비교하여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렵다.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있는데 그나마 호메이니의 신정정치는 알리 샤리아티의 이론을 대부분 반영하여 사회 소수자들의 의견을 다방면으로 반영하고 세습을 거부하는 등 매우 온건화된 형태다.[20] 이러한 영향으로 21세기 초반 기준으로는 시아파 이슬람주의자들의 극단성이 다소 낮아 보이는 편이다. 수니파에서는 선교사나 학자가 에고이즘을 추구하면 안 된다고 교리애 명시되어 있는데도 수니파 이슬람주의자 사이에서도 선교사 개인 우상화를 추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튀르키예의 하룬 야히아처럼 수니파 이슬람에서 권장하지 않는 방식대로 자신의 사진을 쓸데없이 많이 게시하고 올리는 경우, ISIS의 괴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다른 무슬림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칼리파라고 참칭한 행위도 따지고 보면 시아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4. 비판: 이슬람주의는 어떻게 이슬람권을 약화시켜 왔는가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 뒤를 이은 정통 칼리파 시대의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에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고 거대한 제국을 이루며면서 사산조 페르시아의 압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창기 무슬림 사회가 철저하게 능력과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지는 체계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이전의 아랍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행실보다는 가족, 친족관계, 지역감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어느 순간 천지개벽 수준으로 갑자기 능력 본위 사회로 바뀌면서 아랍인들의 포텐셜이 폭발했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은 초창기 무슬림들의 성공 요인이었던 공정성과 능력제일주의는 제쳐놓고 오히려 "이슬람 율법 대신에 의학을 공부하면 신앙심이 부족한 것"이라고 지랄하던 꼴통 수구 근본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답습하고 있다. [21] 세속주의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개혁하겠다는 이들이지만 정작 이들도 사람을 능력이나 행실보다는 혈연, 지연을 가지고 뽑으며[22] 서구 사회에 대한 반감이 도가 지나쳐서 반지성주의가 되면서 오히려 무슬림 사회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무슬림들 중 개혁주의자들[23]이나 타협주의자들[24]은 "이슬람주의가 이슬람을 최우선시하는 바람에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세속적이라고 배척해 결과적으로 무슬림 스스로를 비합리적으로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주류 무슬림들은 이들을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민가서 잘 먹고 잘 사는 얌체 매국노"(...)[25]라는 식으로 매우 부정적으로만 보기 때문에 이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을 대체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4.1. 민주주의의 관용을 숙주로 삼는 확장 전략

이슬람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허점을 악용하는 데 능하고 민주주의를 숙주로 삼는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무슬림 국가들의 정상적인 민주주의 정착을 저해하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이기도 하다. 이들의 횡포 때문에 온건 성향의 무슬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세속적 군사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일이 많으며 이는 온건 이슬람 성향 or 세속주의 성향의 민주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이란 혁명 때도 같이 혁명을 일으켰음에도 이슬람주의자가 정권을 잡자 세속주의자는 탄압받았고[26] 아랍의 봄 이후 각국에서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슬람 살라프파 신도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불교 승려들이 마늘 안 먹는다고, 미국에서 아미시들이 옛날 방식대로 산다고 해도 일반 대중은 여기에 별로 문제삼지 않는 걸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이슬람주의 운동가, 선교사들처럼 내로남불을 주요 전략으로 채택한 경우 오직 자신에게만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엄격한 사람들이 종교의 권위를 빌려 완장을 찬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슬림 국가들에서 이들이 저지르는 만행의 결과물은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소련군 정치장교들의 만행이나 조선인민군 정치장교의 이슬람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집트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케디브 왕조가 오스만 제국을 박살낸 것에 놀라 근대화 시찰단을 보냈을 정도였으나 20세기 중반부터 이슬람주의가 번창하면서 경제/사회 발전에 필수적인 문화 인프라 발전이 정체/퇴보되고 그 결과 오늘날에는 국민 소득이 중국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저개발 후진국이 되었다.

서구 사회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적극적인 성금 모금 활동을 통해 얻은 성금 상당수를 자신의 생계비 혹은 법정 소송에서 변호사 선임비(...) 등으로 활용하는데 웨스트보로 침례교회 비슷하게 합의금을 목적으로 일부러 바쁜 사람들한테 소송거는 경우도 있고 지 성질을 혼자 못 이겨서 괜히 사소한 일로 다른 무슬림들에게 소송을 걸어 서구 사회의 무슬림들 이미지를 깎아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4.2. 비이슬람 사회에 대한 기만행위

이슬람주의자들은 같은 무슬림들에게 "왜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는 대신에 공학을 공부하냐 신앙심이 없냐?" 같은 방식으로 억지 꼬투리를 잡거나 일부러 관심을 끌기 위해서 지구 평면설을 주장한다던지 같은 행동으로 다른 무슬림들의 행복추구권을 적극 침해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한국 이슬람주의 선교사들 같은 경우는 비무슬림 중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슬람을 선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이슬람을 알리고 평화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27] 그래놓고 뒤에서는 대놓고 선교자금을 모금받아 그 돈으로 다른 한국인 무슬림들에게 소송 협박을 거는 등 뒤통수를 치고 다닌다. 선교 자금을 모금받을 때는 일부러 자신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 계기를 장황하게 써놓은 후 동정심을 요구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돈으로 신앙을 구입한다는 한국식 종교관에도 충실한 셈이다.

이성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슬람주의 선교사들은 "왜 무슬림이 비무슬림의 입장에서 비무슬림의 사고 방식으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되돌아봐야 하는가? 무슬림이 비무슬림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불신의 죄를 짓는 것이다."[28]라는 궤변으로 이성적인 사고 방식을 가로막고 선교사 개인의 말만 맹신할 것을 강요하며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다른 무슬림 온건파들을 "불신자만도 못한 위선자들"이라고 공격하는 행동마저 서슴치 않는다.

이슬람주의 선교 단체들은 한편으로는 비이슬람권의 정체성 정치를 이용하여 동정심을 유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비무슬림들에게 히잡을 설명할 때는 페미니즘적 수사를 이용하여 히잡이 성적 대상화에 저항하는 수단이라고 강연하는 경우가 있으나 동시에 무슬림들에게는 ‘성폭행의 원인은 니캅, 아바야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세뇌시키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 이런 이중잣대 선교 전략에 말려든 비이슬람권의 시민단체 일부가 이슬람주의자들이 다원주의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함에도 이들을 진보로 착각하거나 동정하면서 퇴행적 좌파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구 사회의 이슬람주의자들 중에 여성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왜냐하면 무슬림 여성이 직접 니캅과 부르카, 차도르가 무슬림 여성의 필수불가결한 권리라고 주장하면 서구인들이 결국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 생각 없는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많은 데다농담이라고 믿고 싶은데 진짜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걸프 산유국의 선교 지원금이 뭉텅이째로 굴러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3. 무책임한 선교 전략

대표적으로 이슬람으로 새로 개종한 여성들에게 니캅을 씌운 후 유튜브 방송에 출연시키는 건[29] 선교사나 선교 단체 입장에서는 걸프 아랍 왕정 국가들의 선교 후원 자금이 당장 더 많이 들어올 테니 단기적으로는 좋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니캅을 착용하고 유튜브에 출연한 개종자 여성들이 뒤에서 몰래 마약을 맞는다거나 직장에서 갈등한 이후 테러리즘에 빠지는 등 # 서구 사회에서 무슬림들의 입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혀 왔다.

당연히 와하브파, 살라프파라고 해서 모두 이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닌데 아무리 살라프파, 와하브파에 답 없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이들이 보기에도 이슬람주의 특유의 선교 방식인 “나는 불쌍한 피해자니까, 너희는 나한테 복종하고 전도되어야 한다.”는 식의 선교가 너무 황당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청렴한 살라프파 하디스 학자로 유명했던 셰이크 알 알바니 사이드 쿠틉 사후 그를 순교자로 미화하던 이슬람주의자들을 비판한 것을 들 수 있다.

서구 사회의 무슬림 소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슬람 해방당, 린다 사서 등으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이슬람주의가 비이슬람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관용과 표현의 자유, 시민단체의 도움 등을 숙주로 삼는 전략과 비무슬림에 대한 내로남불을 선교 전략으로 선택한 이상 이슬람주의 세력이 커질 수록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 사이의 갈등과 상호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슬람 원리원칙대로 따지자면 무슬림들은 꾸란에 명시된대로 선행을 권하고 악행을 금해야 한다. 하디스에서는 악행을 금지하는 단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만약에 혀로 악행을 금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손으로 금지해야 하고(이를테면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술잔을 부수는 행동) 누군가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에 있다면 그를 끌어내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손으로 금지할 수 없으면 마음으로 이를 미워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되지 않는 악행이 팽배한 땅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고 현실적으로 악행을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이면 이들은 그 땅을 떠나 선행을 실천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주할 것이 권장된다.

다시 말해서 원리원칙대로 따진다면 서구 사회의 이슬람주의자들이 서구 사회의 다원주의 문화 및 정교분리 사회가 악이라고 생각되어 싫어졌다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카타르 같은 나라 혹은 인도네시아 아체주 같은 근본주의 지역으로 다시 이주하는 게 맞으며 반대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에서 서구 사회로 망명하였다면 자신들이 (왕이나 군사독재자 등의) 악행을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가 보장되는 서구로 이주한 것이므로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의 다원주의 및 표현의 자유를 파괴하지 말고 용인하는 것이 맞다.

4.4. 반지성주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자신들도 편견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는 와중에도 다른 사회 소수자들을 편견을 가지고 비하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들은 비무슬림들에 대한 이슬람 선교가 이슬람 신정 국가 설립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비이슬람적인 문화는 언젠가는 사라질 무가치한 적폐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들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미국의 바이블벨트 지역의 반지성주의적 기독교인들이나 한국의 보수 성향 개신교인들과 다소 비슷하다. 타종교나 타종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은 덤이며 큐어넌스러운 막장 음모론 세뇌도 빼먹으면 섭섭하다.[30] “유대인들에게 조종당하는 타락한 서구”, “서구 여성들은 성 상품화의 노예”같은 선정적인 증오 문구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덤...

이슬람주의자들은 히잡[31], 부르키니[32], 샤리아[33], 아랍어[34]가 무슬림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며 애완견을 키우면 무슬림이 아니며 음악을 들어도 무슬림이 아니고 영화도 보지 말고 세속 학문도 공부하면 안 된다는 극단적 엄숙주의 성향을 보인다. 모스크 운영비를 횡령하거나 성추문을 일으키는 건 쉬쉬하고 넘어가지만 소설책을 읽으면 사탄의 꾀임에 빠졌다고 맹비난을 퍼붓는 이들 덕분에 이슬람권의 인문학 발전은 오늘도 지체되는 중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이슬람 역사 왜곡도 심각한데 자신들 빼고는 다 이단이라고 보는 특성상 초기 사하바들과 예언자 무함마드 사이드 쿠틉 같은 직계 기원에 해당하는 인물들로 한정짓고 이슬람 역사를 오로지 유대교, 기독교와의 투쟁과 대립으로 해석한다.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 중에는 시아파 무슬림들이 집단난교를 종교의식으로 삼는다는 유언비어를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런 음해는 수피 종파 아흐마디야한테도 해당되는데 아흐마디야를 아흐마디, 까디아니라고 칭하면서 미르자 굴람 아(흐)마드를 우상숭배하는 사교집단으로 매도하고 대영제국에 빌붙어 인도 아대륙 착취에 협력했다고 날조하고 있다.[35]

극단적으로는 아예 서양 기원의 기술과 학문들을 무기만 빼고 다 거부하는 사례까지 나타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미 실존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애초에 이슬람주의 자체가 극단주의로 흐르기 매우 쉬워서 사실상 거의 모든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종국에는 이런 길을 걸을 위험성을 상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타국이나 타 민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 확보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멸에 가까운 선택이다.

4.5. 이중잣대와 선민 사상

무슬림이 서구인한테 선교해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면 아무리 개판, 막장으로 살아도 무조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식의 교리를 홍보하는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기준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우드 킴 강간 미수 폭로 해명 논란이 있다. 사건의 당사자 다우드 킴 자체는 이슬람주의자가 아니지만[36] 유튜브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댓글은 싹 지우고 이슬람주의 스타일의 댓글만 남겨놓아 심각한 논란을 일으켰다.

파일:다우드킴 수준.jpg 파일:다우드킴 수준2.jpg
원래 무슬림들이 서구에서 이슬람을 선교하고 홍보할 때 주로 사용하는 문구가 "강간범 강력 처벌"인데 다우드 킴을 옹호하던 이슬람주의자들은 오히려 델리 여대생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의 범인들이 쓰던 뻘논리[38]와 대동소이한 주장을 펼치며 이집트 알 아즈하르 대학의 파트와를 날조하거나 오히려 피해자에게 살인 협박을 하는 등 이슬람주의의 막장성과 엑기스를 그대로 보여주였다. 이런 사람들은 아마도 대한민국 인구 5천만명이 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후에 5천만명이 모두 다 유튜브로 성금과 기부금 모금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막장 후진국이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무슬림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경우 도와주는 사람들은 오히려 진영논리와 지역감정에 매몰된 유튜브 선교사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생업에 종사하는 한국인 무슬림들이다. 정작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일제히 나서서 다우드 킴을 비판했음에도 외국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오히려 한국인 무슬림들한테 "너희는 개종자인 주제에 뭘 아냐? 다우드 킴은 죄가 없다."다우드 킴도 개종한 무슬림 아닌가? 그것도 가짜로... 라는 식으로 우기는 촌극도 연출되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선민사상으로 눈과 귀가 틀어막혀 있거나,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이슬람주의에 빠져 있거나 둘 다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독자연구나 비약이 아니며 한국인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슬람주의자 관련하여 널리 퍼진 푸념이다. 한국인 무슬림 중 정상적으로 회사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한국인들은 부자니까 가난한 무슬림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다가도 다우드 킴처럼 한류를 이용하고 귀여운 척 불쌍한 척 하는 경우는 노골적으로 성범죄까지 싸고 도는데 도대체 이슬람주의자들이 우리공화당, 국민혁명당, 친박신당 같은 극우 집단하고 다른 점이 뭐냐는 비판과 한탄이 안 나올 수가 없다.

5. 관련 단체

대부분 강경우파나 극우 정당이다. 다만 드물게 온건하거나 중도우파인 경우도 있다.

6. 함께 보기



[1] 이슬람 분리주의. 민주주의의 관용과 표현의 자유를 숙주로 삼아 이중잣대를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기존 민주사회를 전복하고 전체주의 신정 국가를 건설하려는 서구의 이슬람주의 단체 및 주의를 지칭하는 어휘. [2] الدُّنْيَا سِجْنُ الْمُؤْمِنِ وَجَنَّةُ الْكَافِرِ, “이 세상은 신앙인에게 있어서 감옥과도 같지만, 거짓된 자들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낙원과도 같습니다.” - 사힛 무슬림 하디스 2956. [3] 히즈라 15년(서기 636년) 칼리파였던 우마르는 정복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페르시아 군주들의 재산들이 무슬림들의 창고에 쌓이자 이를 어떻게 분배해야 공정한 분배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때 ‘마르주반’이라는 이름의 한 페르시아인 관료가 그에게 간언했다. "신앙인들의 지도자이시여. 페르시아 황제들에게는 '디완'이라는 회계 체계가 있는데, 여기에는 세입과 세출 내역이 빈 틈 없이 기록되고 봉급에 대한 내역과 명단이 계급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다. [4] 이런 환경에서 시크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 [5] 자연현상을 이성적으로 객관화하고 수치화할 수 있다는 가치관 [6] 물론 하산 알 반나는 막심 고리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직접 인정한 적은 없지만 레닌이 1916년 발표한 제국주의론에는 대놓고 상당한 호감을 드러냈다. [7] 즉, 스탈린주의를 말한다. [8] 대표적인 사례로는 자키르 나익을 들 수 있다. [9] 소위 Californication 드립 [10] 교리에 좀 황당한 부분이 있어서 그렇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종파는 아니었으며 해당 종파 신도 중 파키스탄 최초 노벨상 수상자도 있었다. [11]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메디나로 가는 성지순례를 금지시킬 목적이었다. [12] 국방비 상당수가 방산비리로 낭비되거나 해외로 유출되었음은 물론이다. [13] 특별히 새로운 방법을 발명한 건 아니고 종래에 사용되던 방법을 응용하여 고리대를 이용한 죄에 따른 벌금을 돈을 빌린 사람한테만 다 뒤집어 씌우거나 말도 안되는 상환 일자를 잡아놓고 벌금을 채무자에게 다 뒤집어 씌우는 식으로 이자를 합법화했다. [14] 그라민 은행도 종종 연이율이 20~50%를 찍어서 비판을 받는데 아불 알라 마우두디를 등에 업은 기존 고리대금업자들이 얼마나 많이 해먹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15] 문장력도 무척 뛰어났을 뿐만이 아니라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도도 깊었다. 무함마드 이크발이 그를 괜히 총애했던 것이 아녔다. [16] 참고로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꼴통 이슬람 성직자가 살라딘에게 우리가 신앙심이 부족해 알라의 천벌을 받아서 십자군에게 패했다며 비슷한 주장을 한다. 이에 대해 살라딘은 우리가 이전까지 패한 이유는 그딴 게 아니라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17] 2차대전 이후 [18] 레닌주의의 식민지 소수민족 해방과 자치 같은 이념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지하조직 운영을 통한 기존 정권 타도같은 개념도 흡수했다는 점이다. 이슬람 자체에는 지하조직 운영과 정부보조금(...) 악용 같은 교리가 없는데도 마치 원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조작해냈다. [19] 선교 방식과 전략을 벤치마킹했으며 극단적인 선민사상과 엄숙주의 및 이를 정당화하는 이론들을 흡수했다. 전통적인 개신교/가톨릭/정교회보다는 극보수 성향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보수 성향 기독교계 신흥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이슬람주의에 빠져들어서 심각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비율이 훨씬 더 높다. [20] 물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맞다. 다만 비교대상을 키질바시, 사파비야 혹은 탈레반으로 잡으면 상대적으로 온건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1] 오히려 이슬람 황금기의 중동 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의사에 대한 대우가 대단히 높았다! 무함마드가 생전에 직접 신학이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면 의학은 몸의 병을 치료한다고 칭송했을 정도다. [22]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 출신 무르시 대통령의 무능한 낙하산 인사가 아주 교과서적인 사례로 남았다. [23] 영어 위키백과에는 Liberalism and progressivism within Islam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24] 영어 위키백과에는 Islamic Modernism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25] 물론 이러한 이미지는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다소 조장되는 면이 있다. [26] 다만 이란은 호메이니가 벌인 무력 쿠데타와 반대파에 대한 잔혹한 숙청, 국민투표에서 나온 90%에 육박하는 비정상적인 찬성률 등 진정으로 민주적 과정을 거쳐 신정국가가 수립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7] 이는 한국에서 선교할 때 반테러리즘 성향인 것처럼 과시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지, 진정으려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각심을 가져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대표적인 이슬람주의 선교사 박모씨가 다른 한국인 무슬림 온건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우드 킴 강간 미수 폭로 해명 논란을 원론적으로 비호한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28] 정작 쿠란에는 비무슬림들이 믿는 우상을 함부로 파괴할 경우 비무슬림들을 흥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파괴를 자제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29] 걸프 아랍 왕정 국가 출신 관광객 입장에서는 프랑스나 스페인 등지에서 니캅 쓰고 다녀도 별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현지인 입장에서 니캅을 착용하는 그 순간부터 정상적인 직장 생활 등은 포기해야 한다고 보면 된다. [30] 상술한 것처럼 20세기 초 이슬람주의자들은 중동을 식민화한 영국, 프랑스에 반발해서 나치 독일, 소련과 연대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치즘, 스탈린주의의 영향으로 여러가지 황당한 음모론도 같이 들어왔다. 오늘날에는 대놓고 나치 이론을 옹호하는 경우는 없지만 대신 포스트모더니즘 사관을 왜곡해서 음모론을 생산하는 성향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31] 이슬람주의자들이 정의하는 히잡은 단지 베일이 아니라 타종교식으로 노출하는 의상에 대항하는 이슬람 의상이다. [32] 부르키니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온건파 무슬림 여성이나 (좁은 의미의) 근본주의 무슬림 여성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다 [33] 샤리아는 쿠란과 하디스보다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의 관습법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34] 일반적으로 로마자보다는 아랍 문자가 습득히 더 어려우므로 선교사 측에서 권위를 과시하는데 유리한 점 때문인 것도 있다. 여담으로 한국 기준으로는 한국인 이슬람주의자 중 수능 한 번 본 적도 없는 인간이 해외 어학원도 정상적으로 수료 못한 상태에서 수능 아랍어 교실 한다고 광고하고 나대는 경우도 있다. 아랍어 실력이랑 권위랑 직결되기 때문에 허풍 떠는 셈. 이슬람주의자가 수피 계열이거나 시아파 계열이라면 타즈위드(꾸란 아랍어 낭독 독음)을 괜히 엄청 강조한다. [35] 심지어 미르자 굴함 아흐마드가 영국 스파이가 틀어준 축음기(...)에 나오는 말을 무식해서 신의 메시지로 오해했다는 음해성 설도 떠도는데 이런 설은 당시 영국에서 왜 굳이 흔한 수피 종교인 나부랭이에게 굳이 비싼 전축과 스파이까지 보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36] 유튜브 컨설팅 받고 개종했으며 엄밀히 말하면 동영상이 이슬람 신학 자체보다는 한류 아이돌 열풍에 노골적으로 편승하는 것에 가까웠다. [37] 사실 아프가니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같은 나라에 히잡 안 쓰고 다니는 여자를 음란한 여성 취급하는 문화가 없는 것은 아닌데 다우드 킴 같은 소위 개종자가 히잡 안 썼다는 이유를 핑계로 특정인에게 저런 말을 하고 다니는 경우는 좀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개종자라면 본인의 비무슬림 친지들도 평소에 히잡을 안 쓰고 다니는데 저런 말이나 하면서 히잡 안 썼다고 본인의 성희롱을 합리화하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38] 밤 늦게 돌아다니는 여성은 강간을 당해야 마땅하다는 식의 피해자 비난 [39] 원래는 60~70년대 이집트의 극단주의 조직 알 지하드, 앗 타크피르 왈 히즈라, 알 자마아 알 이슬라미야 같은 조직의 강령인데 이들을 흡수한 게 바로 알누르당이다. [40]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41] 무슬림 형제단, 이슬람 해방당은 최종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박멸(...)한다는 강령이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는 그 정도로 노골적인 건 아니다. [42] 진화론이 프리메이슨과 공산주의의 음모라는 불쏘시개 음모론 책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면서 동시에 JMS 교주 정명석 비슷한 사이비 교주 겸 플레이보이이다. 다우드 킴 롤모델 [43] 선교 자금을 보내주는 것 자체는 좋은데 돈을 좋은 데 쓰는지 나쁜 데 쓰는지 관리를 안 하는게 문제로, 선교 자금의 적지 않은 부분이 관리 소홀과 부패로 인해 증발한다.(...) [44] 허구한날 쓸데없는 성직자들의 설교 방송만 주구장창 나오는 다른 이슬람주의 성향 방송국과는 달리 헤즈볼라 소유의 방송국에서는 힙합 가수들(!)의 랩 배틀, 걸그룹(!!)의 공연 실황 영상, 코미디언들의 시사 비판 예능(!!!)이 성인 방송과 함께 잔뜩 나온다. [45] 세속 국가에서 신정 국가를 건설하는데 성공한(...) 사례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알리 샤리아티 덕을 많이 보았다. 호메이니 혁명은 명목상으로는 사치스럽고 부패한 친미 독재 왕정 타도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과거 세속주의 정책 하에서 침해당하던 보수 율법학자들이 권익 수호가 목적이었다. 다만 최악은 아닌 차악에 해당하는데 호메이니와 함께 하던 보수 율법학자 중에서는 문맹 퇴치 운동조차 반대하던 심각한 꼴통들도 상당히 많았으나 호메이니가 이들을 무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