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엘리아스 카네티 Elias Canet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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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
출생 | 1905년 7월 25일 |
불가리아 공국 루세 | |
사망 | 1994년 8월 14일 (향년 89세) |
스위스 취리히 | |
국적 |
[[불가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1952~) |
언어 | 독일어 |
학력 | 빈 대학교 (화학 /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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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활동한 영국의 작가. 불가리아의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이다.2. 생애
1905년 불가리아 루세[1]의 세파르딤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1년 아버지의 일 때문에 영국 맨체스터로 이주했지만 이듬해인 1912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를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으로 갔다.빈에 정착하여 생활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웠다. 그러나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취리히로 갔다가 5년 뒤에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1924년 다시 빈으로 돌아와 빈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해 나중에는 박사 학위까지 받는다. 하지만 화학보다는 문학과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대학 생활 동안 베를린에서 출판사 일을 하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첫 소설 《현혹》을 출판하고, 결혼도 했지만 1938년 안슐루스가 일어나자 프랑스를 거쳐 1939년 런던에 정착했다.
런던에 정착한 후에는 군중심리학에 몰두하여 20년 가까이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혹》으로 작가로서의 인기를 얻고 있었다. 1952년에는 영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60년에 드디어 《군중과 권력》을 출간했다.
1963년에는 부인인 페차 카네티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1971년에는 동생 조르제가 폐렴으로 사망하자 이듬해 취리히로 이주했다.
취리히에서는 비교적 조용히 살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이때였지만 줄곧 조용히 지냈다. 1988년 두번째 부인이 암으로 죽었고, 6년 뒤인 1994년 카네티도 세상을 떠났다.
3. 여담
둘째 동생인 자크 카네티는 프랑스에서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1950~60년대 프랑스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셋째 동생인 조르제는 프랑스에서 의학자였다.독일어, 라디노어, 영어, 프랑스어, 불가리아어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은 독일어로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