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11-18 19:02:39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기원전 200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8년 기원전 197년 기원전 196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푸블리우스 빌리우스 타풀루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195년 기원전 194년 기원전 193년 기원전 192년 기원전 191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기원전 190년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8년 기원전 187년 기원전 18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기원전 185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83년 기원전 182년 기원전 181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그나이우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리키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라베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기원전 180년 기원전 180년 보결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8년 기원전 177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76년 기원전 176년 보결 기원전 175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73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파울룰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기원전 172년 기원전 171년 기원전 170년 기원전 169년 기원전 168년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아울루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리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167년 기원전 166년 기원전 165년 기원전 164년 기원전 163년
퀸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펜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퀸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니우스 유벤티우스 탈나
기원전 162년 기원전 162년 보결 기원전 161년 기원전 160년 기원전 159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기원전 158년 기원전 157년 기원전 156년 기원전 155년 기원전 154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퀸투스 오피미우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기원전 154년 보결 기원전 153년 기원전 152년 기원전 151년 기원전 150년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기원전 149년 기원전 148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6년 기원전 145년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그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니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기원전 144년 기원전 143년 기원전 142년 기원전 141년 기원전 140년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기원전 139년 기원전 138년 기원전 137년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5년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기원전 134년 기원전 133년 기원전 132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3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이밀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푸블리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푸블리우스 루필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기원전 130년 보결 기원전 129년 기원전 128년 기원전 127년 기원전 126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4년 기원전 123년 기원전 122년 기원전 121년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오피미우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9년 기원전 118년 기원전 117년 기원전 116년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기원전 115년 기원전 114년 기원전 113년 기원전 112년 기원전 111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베스티아
기원전 110년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8년 보결 기원전 107년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카우루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기원전 106년 기원전 105년 기원전 104년 기원전 103년 기원전 10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101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라틴어: Gaius Papirius Carbo
생몰년도 기원전 162년 ~ 기원전 119년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사망지 이탈리아 로마
지위 플레브스
국가 로마 공화정
가족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조부)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아버지)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형제)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카르보(형제)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아르비나(아들)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120년
전임 루키우스 오피미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알로브로기쿠스
동기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
후임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2. 생애

플레브스 씨족인 파피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와 아버지 모두 가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168년 법무관에 선임된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가 그의 조부 또는 아버지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형제로 기원전 113년 집정관을 역임한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와 별다른 행적인 전해지지 않는 마르쿠스 파피리우스 카르보가 있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동년배라고 한다.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뮌처는 그가 기원전 162년경에 출생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키케로는 저서 <브루투스, 또는 유명한 웅변가에 관하여>에서 그가 정기적인 훈련을 통해 훌륭한 웅변 능력을 보여줘서 당대 최고의 변호사가 되었으며, 포로 로마노에 군림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웅변의 재능만큼 정치에서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면 위대한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키케로는 그의 장기로 뛰어난 유쾌함, 재치, 우렁찬 목소리, 유연한 혀, 신랄한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매우 열심히 일하고 연습과 토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기원전 133년 농지법 개혁을 주도한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를 지지했으며, 티베리우스가 살해된 직후인 기원전 132년 말 호민관에 선임된 뒤 티베리우스를 죽인 자들에 대한 복수를 꾀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그는 누만티아 전쟁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에게 따져 물었다.
"티베리우스가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스키피오가 답했다.
"그라쿠스가 국가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정당하게 살해되었소."

그 후 카르보가 가이우스 그라쿠스 등의 지원을 받아 호민관의 재선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시했을 때,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이를 극력 반대해 막아냈다. 그 후 카르보는 기원전 130년 농지 분배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기원전 129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스키피오가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로마 전역에 퍼졌다. 사람들은 스키피오와 갈등을 심하게 벌였던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그라쿠스, 그리고 카르보 중 한 명이 스키피오 암살을 사주했을 거라 여겼지만, 공식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고대 기록에서는 이후 9년간 별다른 언급이 없는데,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23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는 어느 시점에서 그라쿠스파에서 원로원 파로 갈아탔다. 프리드리히 뮌처 등 일부 학자들은 그가 카르보가 그라쿠스가 사망한 후에도 카르타고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는 위원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가이우스 그라쿠스 추종자들과 집정관 루키우스 오피미우스 사이의 분란이 폭발하여 그라쿠스 추종자들이 몰살당하고 그라쿠스가 자살하기 직전에 정치적 입장을 변경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120년, 그는 카르보 가문 최초로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동료 집정관은 가족 관계와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였다. 그는 호민관 푸블리우스 데키우스로부터 로마 시민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는 고발을 받은 루키우스 오피미우스를 법정에서 변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가이우스 그라쿠스와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가 죽게 된 것은 "완전히 합법적이며, 조국의 이익을 위해 행해졌다"고 주장해 관철시켰고, 오피미우스는 그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이 일로 그의 친구 및 정치적 동맹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한다.

기원전 119년, 카르보는 21세의 떠오르는 웅변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게 고발되었다. 고발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크라수스는 이 연설에서 카르보가 호민관의 재선을 합법화하려는 시도를 했으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죽음에 연루되었던 전적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카르보를 배신자로 매도하는 등 갖은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유죄 판결을 받고 추방당할 위기에 몰리자, 카르보는 자살했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스페인청가뢰가 생성한 칸타리딘(cantharidin)을 다량 복용하여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아들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아르비나는 기원전 90년 호민관, 기원전 85년 또는 84년 법무관을 역임했다. 키케로는 이 인물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크라수스를 증오해 평생 동안 최악의 적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원전 술라의 내전 시기인 기원전 82년 소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지시를 받은 로마의 법무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다마시푸스에 의해 다른 원로원 의원들과 함께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