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라틴어: Gaius Livius Salinat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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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70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88년 |
전임 |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
동기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
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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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노빌레스 집안인 리비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는 기원전 219년과 207년에 집정관을 역임했고,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와 함께 메타우루스 전투에서 하스드루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기원전 204년 감찰관을 맡았을 때 소금세를 매긴 일 때문에 '살리나토르(Salinator)'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이것이 그의 코그노멘이 되었다.기원전 211년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가 사망한 뒤 그를 대신해 사제단의 일원이 되었다. 기원전 204년 조영관을 맡았으며, 기원전 202년에 법무관을 역힘해 브루티움에서 2개 군단을 이끌고 한니발 바르카와 대치했다. 기원전 199년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함대를 지휘하게 되었지만, 전임자인 루키우스 아푸스티우스 풀로가 그 해 가을이 되어서야 지휘권을 양도하는 바람에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이듬해 초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기원전 193년 집정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휘하에서 기병대 지휘를 맡아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를 침공한 갈리아인들을 상대로 무티나 전투 등에서 분전해 승리에 일조했다. 기원전 191년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뒤 안티오코스 3세와 아이톨리아 동맹과 로마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군단장으로서 함대를 이끌고 출진해 케팔로니아섬과 자칸토스섬을 공략하고 페르가몬 왕국의 함대와 합류한 뒤 소아시아 해안으로 이동해 폴리크세니다스가 이끄는 안티오코스 3세의 함대를 코리코스 해전에서 격파했다. 이후 포키아에서 겨울을 보낸 뒤 로마군이 헬레스폰트 해협을 도하하는 것을 도운 후 기원전 190년 말에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길루스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로마로 돌아갔다.
기원전 188년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와 함께 집정관에 선출된 뒤 동료 집정관이 리구리아인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자신은 보이족과 맞붙었다. 그는 이 시기에 포룸 리빌리(현재 포를리) 시를 건설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170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기원전 130년 살리나토르라는 코그노멘만 전해지는 법무관은 그의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