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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8:35:24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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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P. 러브크래프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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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Howard Phillips Lovecraft
<nopad> 파일:H._P._Lovecraft,_June_1934.jpg
출생 <colbgcolor=#fff,#1f2023> 1890년 8월 20일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사망 1937년 3월 15일 (향년 46세)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소설가, 편집자, 시인
서명
파일: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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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colbgcolor=#fff,#1f2023>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스완 포인트 묘지
혈통 잉글랜드계 미국인
부모 아버지 윈필드 스콧 러브크래프트 (1853~1898)
어머니 세라 수전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1857~1921)
배우자 소니아 그린 (1924년 결혼)
학력 호프 고등학교 (중퇴)
종교 무종교 ( 무신론)
신체 180cm
활동 기간 1917년 – 1937년
필명 루이스 시오볼드
험프리 리틀윗
워드 필립스
에드워드 소프틀리
퍼시 심플
사조 코스미시즘
장르 위어드 픽션
호러
사이언스 픽션
고딕
판타지
코즈믹 호러
}}}}}}}}}
1. 개요2. 생애3. 작품세계
3.1. 평가3.2. 공포관
4. 그에 대한 말들5. 인종차별주의자6. 사생활
6.1. 학대 피해자 의혹6.2. 식성6.3. 사진
7. 영향력8. 대중 매체에서
8.1. 느슨한 모티브 및 단편적 묘사8.2. 직접적인 미디어 믹스
9. 팬덤10. 한국에서11. 기타12. 작품일람13. 관련 인물14.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미국 호러/ 위어드 픽션 소설가이자 크툴루 신화의 창조자이다.

현대 호러 문학, 더 나아가 서브컬처 전반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서, 기실 당대에나 후대에나 '문학적으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1] 특유의 터무니없이 장대하고 음산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매력으로 가득한 독특한 정서와 세계관을 통해 오늘날까지도 많은 열성팬들의 추앙을 한몸에 받는 이른바 크툴루 신화의 초석을 세운 장본인이다.

그의 작품과 세계관은 전 세계의 호러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한편 그에겐 동시대 기준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영원한 오점과 꼬리표가 있다. '자신과 다른 부류의 것'들을 두려워하고 혐오한, 공포라는 감정과 늘 함께했던 인물임은 분명하다.

2. 생애

파일:YpBDi.jpg

출생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1890년 8월 20일 오전 9시경에 태어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의 프로비던스 지방 출신이며, 부친은 귀금속 방문판매사원이었던 윈필드 스콧 러브크래프트(Winfield Scott Lovecraft, 1853~1898), 모친은 세라 수전 필립스(Sarah Susan Phillips, 1857~1921)이며 형제 없이 외아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부모의 결혼 시기가 당시로서는 매우 늦은 편에 속하는 30대였다는 점이며, 양쪽 모두 초혼이었다.

1893년, 부친인 윈필드는 원인불명의 갑작스러운 발광 증세를 보여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5년 뒤 그곳에서 숨졌다. 이후 부친의 투병은 매독으로 인한 정신이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남편을 잃은 세라는 친정아버지인 위플 밴뷰런 필립스에게 의탁하였고, 하워드 또한 아버지 대신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외숙모에게 길러졌다. 이 시절은 러브크래프트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외조부인 위플 밴뷰런 필립스는 자신의 문학적 취미에 따라 아라비안 나이트, 일리아스, 오디세우스 등의 고전 명작을 하워드에게 읽도록 하였고, 영국의 오랜 괴담이나 이야기, 소설 따위를 들려주곤 했다. 그로 인해 러브크래프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랍, 고대 문화, 공포 소설 등으로 치중되었는데, 세라는 아들의 이러한 경향을 좋게 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를 제외하면 하워드가 원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다 들어주어서 당시로선 비싼 물건이었던 현미경을 사주기도 했다.[2] 또한 어려서는 셜록 홈즈에 빠져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탐정단 놀이를 하기도 했다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회고하고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몸이 병약하여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하고 쉬게 되었지만,[3] 외조부는 앵글로색슨 혈통을 이어받은 유서 깊은 가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통학을 강요하지 않고 독서 가정교사를 통하여 학습하도록 했다. 사실 당시에는 홈스쿨링이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학교에 복학한 직후, 외조부가 벌여 놓은 사업을 수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사건이 발생하여 고등학교는 졸업하지 못했다.[4] 이 때 하워드는 아버지처럼 따르던 외조부의 죽음과 더 이상 풍족한 생활을 누리지 못한다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히스테리를 일으켜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원래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이었던 모친 세라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끝에 우울증과 히스테리를 일으켜 정신병원에 수감됐는데, 공교롭게도 그 병원은 바로 그의 남편이 죽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하워드와 어머니 세라의 관계는 매우 양호하여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지속적으로 서신을 주고 받았으며, 1921년 5월 24일에 세라가 사망하자 그녀의 아들인 하워드는 크게 좌절하였다.

이후 러브크래프트는 5년여간 은둔자처럼 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독서를 하며 살았는데, 그런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발생한다. 어린 나이부터 취미 삼아 집필을 계속해 왔던 러브크래프트는 어느 날 한 동인 잡지에서 읽은 글이 불만족스러워서 그 글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고 그 글을 쓴 작가의 추종자들과 잡지의 기고란을 통해 다툼을 벌였다. 이것이 편집자의 눈에 들어왔고 러브크래프트에게 원고를 청탁한 것. 후에 러브크래프트는 이 사건으로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소설가로 데뷔하게 된 러브크래프트는 아마추어 언론인들의 모임에서 한 여성을 만나는데, 그가 바로 후에 아내가 되는 소니아 하프트 그린(Sonia Haft Greene, 1883~1972)이었다.[5] 러브크래프트보다 일곱 살 많은 소니아는 모자를 파는 상점을 운영하면서 유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러브크래프트와 소니아는 1924년에 결혼했고 러브크래프트는 아내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둘은 불과 1년 만인 1925년 1월 1일부터 별거하기 시작했고, 결국 1929년에 이혼 신청을 하고 만다.[6]

이혼 신청까지 간 원인에 대해서 명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의외로 인종차별은 아니고 대도시인 뉴욕 생활에 대한 러브크래프트의 부적응과 연상의 아내에게 끌려다니는 느낌에 대한 러브크래프트의 불만이 원인이라고 생각된다.[7] 이혼 신청 후에도 소니아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러브크래프트가 무려 30페이지나 되는 편지를 소니아에게 보냈다고 한다. 소니아 그린은 러브크래프트를 충분히 훌륭한 남자(Adequately Excellent)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으로 평가하였는데, 이에 대해 러브크래프트라는 남자에 대한 비호감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과 러브크래프트가 남자로서 부족했기에 헤어졌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특히 러브크래프트 본인의 경제적인 능력이 상당히 파멸적이었던지라, 결혼 후 아내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직장을 구한다고 나섰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세상 물정을 몰라서 구직에 어려움이 많았다. 어렵게 직장을 구해도 본인의 성격 문제 때문에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뒀고,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였다.[8] 소니아 그린이 훗날 회상하며 러브크래프트는 소니아의 존재에 매우 깊히 감사한다고 한 적은 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단 한 번도 안 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 때문에 러브크래프트가 아내를 진정 사랑했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많다. 결혼은 단순히 '정상적인 남자라면 결혼을 해야지.' 하는 생각에 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러브크래프트는 소니아에게 "당신은 러브크래프트 부인이니 그에 걸맞게 행동하시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부인과의 불화도 있지만 러브크래프트는 대도시인 생활을 정말 싫어했다. 당시 러브크래프트는 뉴욕 브루클린의 "레드 훅(Red Hook)"에 살면서도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국을 좋아했는데,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는 1924년에 인간 혐오 성향을 "레드훅의 공포"와 "그"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금단의 저택"으로 풀어냈다.

1926년 4월 17일, 러브크래프트는 외가의 이모로서 자신을 잘 챙겨줬던 릴리언 필립스(Lillian Delora Phillips, 1856~1932)를 간호할 겸하여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프로비던스로 돌아온다. 러브크래프트는 드디어 마음의 고향을 찾은 것인지 이 시기에 대표작 크툴루의 부름(1926) 광기의 산맥(1931)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인지 북미 동부 해안을 여행하기도 했다. 또한 프랭크 벨내프 롱 같은 절친들과 함께 저술 활동을 하는 도중에도, 엄청난 편지를 보내서 어거스트 덜레스를 비롯한 신인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하자 사회주의 모임에 참석하거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뉴딜 정책을 지지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부터 타 인종에 대한 혐오가 본격적으로 심해졌는데 젊었을 적 인종주의 언급은 그 시기의 중상류층 WASP가 가지고 있는 단순 우월주의 사상에 불과했다면[9] 이 시기 인종주의는 본격적으로 다른 인종을 노골적으로 폄훼하고 사회적인 문제로 언급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이 탓인지 잠시 인종문제에 대해서는 아돌프 히틀러를 지지했다가 철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문의 불행은 그를 기어코 놔주지 않았다. 1932년에 릴리언 숙모가 세상을 떠나자, 러브크래프트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다른 숙모인 애니 에멜라인 필립스(Annie Emeline Phillips, 1866~1941)와 함께 대학촌으로 이사해 같이 살았다. 그리고 남의 작품을 대필하거나 수정하는 걸로 생계를 꾸렸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1936년에 위어드 테일즈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서 활동했던 동료 문인 로버트 E. 하워드가 자살하자, 러브크래프트는 삶의 의욕을 잃었는지 장암이 악화됐다. 러브크래프트는 겨울 내내 고통 속에서 저술 활동을 계속했으나 1937년 3월 10일에 입원했고, 결국 5일 뒤인 3월 15일에 사망하고[10] 3일 뒤인 3월 18일에 스완 포인트 공동묘지에 있는 외가 필립스 가문의 가족묘에 양친과 함께 묻혔다.

그래도 그의 팬들은 장르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의 묘로는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는지 기금을 모아 1977년에 그의 새로운 묘비를 만들어 러브크래프트의 이름과 약력, 마지막으로 러브크래프트가 생전에 보냈던 편지의 문구 중 하나인 "내가 곧 프로비던스다. (I am Providence)."라는 말을 새겼다. 묘지 보기 (findagrave 제공)
내가 곧 프로비던스이고, 프로비던스가 바로 나일세. 우리는 굳건히 하나가 되어 긴 세월을 이겨내고, 더피 언덕[11]의 얼어붙은 꼭대기를 감싼 어둠 속에 우뚝 선 유적으로 영원히 남을 걸세!
I am Providence, & Providence is myself—together, indissolubly as one, we stand thro’ the ages; a fixt monument set aeternally in the shadow of Durfee’s ice-clad peak!
러브크래프트, 1926년 5월 16일에 제임스 퍼디넌드 모턴 주니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왜 하필 이 문장을 골랐는지에 대해 논란이 살짝 있었으나, 상술했듯이 러브크래프트는 프로비던스를 고향으로 여겼고 거기서 대표작들을 저술했다. 또한 프로비던스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신의 섭리', 혹은 '신'이라는 의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프로비던스에 대한 애착은 릴리언 숙모,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절친이자 아나키즘 저술가 겸 사회운동가였던 제임스 퍼디넌드 모턴 주니어(James Ferdinand Morton Jr., 1870~1941)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으며, 저 묘비에 쓰인 말도 그 편지에서 나온 것이다. 서신을 엄청나게 주고받았는지 관련 책자에 의하면 편지만으로 386쪽이나 된다.

러브크래프트는 엄청난 편지 덕후였는데 러브크래프트와 친하게 지냈던 작가들은 모두 그와 편지로 서신을 교환해서 친구가 된 것이지 그를 실제로 만난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12] 한번은 동료 여작가가 문학에 대해서 러브크래프트와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가 사는 집 앞까지 갔다가 러브크래프트가 단지 사람이 없고 조용하다는 이유로 늦은 밤의 무덤가를 대화 장소로 고집해서 동료 작가가 식겁하여 돌아간 일화도 있었을 정도다. 위에 언급된 로버트 E. 하워드 또한 러브크래프트와 편지로만 소식을 주고 받았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도 마찬가지라서 1950년대에 기자가 와서 러브크래프트에 대하여 질문하자 "러브크래프트와 만난 적이 있어야 그가 어땠는지 말이라도 해줄거 아냐, 나는 그저 그에게 기껏 편지 몇 장만 받았을 뿐이라구!"라고 말했다. 스티븐 킹이 말하기를 러브크래프트는 요즘 사람 같았으면 인터넷이나 SNS 같은 데서 가장 왕성하고 활발하게 놀았을 거라고... 사실 인터넷도 안 되는 시절에 5년 동안 집에서만 산 것도 대단하긴 하다

3. 작품세계

초기에는 < 위어드 테일즈>나 < 어스타운딩 스토리> 같은 삼류 펄프 잡지를 통해 호러 중/단편을 쓰기 시작했으나, 1928년 <위어드 테일즈>에 크툴루의 부름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크툴루 신화가 시작된다.

이 신화의 설정을 축약하자면, 크툴루 인간 포유류도 없던 과거 지구를 지배하며 살던 고대신의 일원이며, 현대에 크툴루를 비롯한 고대신들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하여 인간들에게 공포를 선사한다는 내용이다

단, 생전의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이 창작한 신화를 정리하여 '설정집'을 쓴 것은 아니며, 오히려 러브크래프트의 원작에서 고대신들에 관한 신화가 직접적으로 상세히 묘사되는 소설은 적은 편이다. 사실 러브크래프트 본인은 설정놀음을 좋아하지 않았던 탓에 등장 인물이나 종족에 대해 그렇게 세세한 설정은 만들지 않았다고 하며, 한 작품 내에서 동일한 종족을 칭하는 용어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13]

사실 그레이트 올드 원이나 아우터 갓, 올드 원이라는 고대신들의 분류 및 러브크래프트의 신화 체계가 정리된 것은 그가 사망한 후의 일이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와 친분이 있는 여러 작가들이 교류하며 서로의 창작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 "정리"의 경우에도 논란이 많다. 대표적인 경우로 코난 사가의 작가 로버트 E. 하워드와 러브크래프트는 펜팔 친구였기 때문에 서로의 세계관에 영향을 준 것이 많다.

어쨌든 러브크래프트의 가치가 재조명된 것은 본인 사후에 그의 제자이자 친구였던[14] 어거스트 덜레스가 창립한 출판사 아컴 하우스가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발표한 이후부터이다. 때마침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던 허무주의와 맞물려 그 본격 꿈도 희망도 없는 내용이 폭발적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특히 제대군인 원호법을 통해 전쟁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수많은 펄프 픽션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 속에 자주 언급되며, 미치광이 아랍인 압둘 알하자드가 썼다고 전해지는 마도서, 알 아지프 그리스어 번역본인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이라는 책에 관한 의견이 많은데, 이 책은 실제로는 없는 책이다. 즉, 러브크래프트가 지어낸 책인데, 하도 그에게 네크로노미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그건 그냥 내가 상상해낸 가짜 책"이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래도 네크로노미콘의 실재를 믿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러브크래프트의 팬들이 이 책을 써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2차 창작 물론 팬들의 창작물이고 당연히 종류도 많다. 일군의 러브크래프트 신화 작가군에 의해 만들어진 네크로노미콘의 행적 덕분에 전세계의 대형 도서관은 연례행사처럼 네크로노미콘에 대한 문의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수많은 단편을 썼고 의외로 많은 작품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작품에서 주요 인물이었던 캐릭터가 다른 작품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경우도 의외로 잦기에 깊이 읽는 독자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그의 작품은 과학과 자주 얽힌다. 랜돌프 카터 연작의 <실버 키의 관문을 지나서>에는 양자역학이라고 할만한게 나온다. 놀랍게도 에르빈 슈뢰딩거가 노벨상을 받은 해가 1933년인데 이 작품은 1934년에 나왔다. 파동이라는 존재가 양자역학적 세계를 카터에게 설명해준다. 또한 실버 키의 관문을 지나서를 비롯한 그의 작품에서는 차원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심지어 고차원이나 다비드 힐베르트 힐베르트 공간 같은 무한차원 공간까지도 언급이 된다.[15] 또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우주관은 한층 확장되어 평행우주, 다중우주까지도 포함하는 등 증기선에 신이 들이 박히는 작품을 쓴 20세기 초반의 작품치고 거대한 스케일이 작품속에 들어있다.[16]

다만 어딘지 러브크래프트의 과학지식 수준은 애매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크툴루의 부름에서 튀어나온 르뤼에 사원이 지구의 다른 건축물들과 달리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고 나오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구면기하학도 포함하기에 지구상의 모든 건축물들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의해 만들어졌다.[17] 의외의 사실이라면 광기의 산맥에서는 대륙이동설을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륙이동설은 아직 증거가 충분하게 받아들여진 이론이 아니었다. 또한 우주에서 온 색채의 모티브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사능이 아니라 가시광선 이외의 빛이었다. 또한 그 당시 신기술이었던 에어컨에 너무 적응해서 원래 죽었어야 하지만 에어컨의 냉기 때문에 시체가 부패하지 않아 좀비처럼 살아가던 남자를 그린 공포소설인 냉기가 있다.

사진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체격이 좋지 못하고 비쩍 마른 얼굴을 지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키는 180cm 정도로 컸다. 또한 그는 고소공포증과 군중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그러한 정신적 고통과 불우했던 삶이 꿈도 희망도 없는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근데 그의 미발표한 글들을 보면, 그가 추리 소설을 쓸 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난다. 이 소설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는 안 나오고, 주인공인 탐정이 마지막엔 히로인과 결혼하는 초유의 결말을 맞는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코미디 연애소설을 쓴 적이 있다. '퍼시 심플(Percy Simple)'이라는 필명으로 낸 <Sweet Ermengarde>가 그것이다. 다만 소설 자체는 당시에 유행하던 연애소설 장르의 패러디물에 가깝다.

한편 그는 다른 작가들에게 어휘력을 늘리라는 충고 섞인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확실히 러브크래프트 소설엔 웬만해선 잘 안 쓰이는 단어가 엄청 많이 나온다.

3.1. 평가

문학적인 관점에서의 평가는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니다. 일단 그의 작품들은 ' 펄프 픽션'의 범주에서 써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펄프 픽션의 공식에 맞춰서 정형화된 틀에 들어간 것이 많다. 대부분 소설이 패턴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구성이 일정하고, 특히 마지막 1줄에 반전(같은 것)이 있다는 규칙은 거의 반드시 지킨다. 덧붙여 거의 모든 소설은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된다. 이 때문에 종종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이 나타나게 된다. 다만 러브크래프트는 ‘괴기소설’이라는 장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괴기소설 형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음을 고려하면 이 패턴이란 것도 사실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소설 형태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툭하면 기절하는 화자들[18]이라거나 종종 보이는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든 정신없이 도망쳐 살아났다는 전개도 까임거리 중 하나. 혹은 수기 형식으로 되어 있는 작품이 많은 특성상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인물들은 펜대를 굴리고 있었다는 어이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집에 불 났는데 119에 전화는 안 하고 일기장만 붙잡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문학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대해 올드 원이니 뭐니 하는 설정보다 글 자체에 으시시함을 스며들게 하는 재주가 더 매력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며, 작가 본인이 호러 문학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깊다보니 자신이 읽은 작품들의 특성을 잘 버무려서 몰입감있게 만드는 능력이 좋다. 더불어 철저한 무력감이나 인간의 광기 등을 다루는 작품들을 보면 은근히 공포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의 심리를 잘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벽 속의 쥐>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미쳐가는 화자의 심리묘사가 있다.

모든 작가의 작품이 다 그렇듯이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도 가 상당히 존재한다. 공포소설로서의 명성을 듣고 기대하며 읽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집필 당시에는 무섭다고 반복해서 강조되는 미지에 대한 공포를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난 뒤에 접한 현대인들은 상당 부분 극복했기 때문에 이게 뭐가 무섭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하고 읽어야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20세기 초반 사람의 입장에 이입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 그의 대표작 광기의 산맥의 경우, 남극 대륙 탐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이라면 미지의 땅에 솟아오른 히말라야산맥보다 거대한 산맥의 존재에 어느 정도 경외감을 가질 수 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설정에서 당연히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인이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 에일리언 같이 우주에서 느끼는 공포를 당시 사람들은 지구의 자연에서 느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분위기 위주의 미지의 공포를 다룬 것은 아직 호러와 판타지가 칼같이 구분되기 전의 장르인 위어드 픽션을 러브크래프트가 썼기 때문이다. 위어드 픽션은 호러와 판타지 사이의 장르라고 볼 수 있기에 현대인이 생각하는 호러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 한국은 문어 오징어, 산낙지 같은 두족류를 일상적으로 먹는 문화권이기 때문에 서양인이 두족류 연체동물에 대해 느끼는 혐오나 공포를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평도 있다.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공포관은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린 미쳐버릴 것이다'라는 지나치게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현대인에겐 어필하기 힘든 면도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인종차별 때문에 러브크래프트는 더더욱 까인다. 사실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대표적인 주제가 자신과 다른 문화권의 인간, 혹은 사회에 대한 공포라는 점에서 말 다했다. 하지만 말기의 작품들을 보면 이런 인종차별적인 모습이 다소 완화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에선 흑인이지만 부정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케네스 J. 스털링과 합작한 1936년도 러브크래프트 말기 작품인 <에릭스의 벽에서>에선 1인칭 화자가 처음에는 미개해보이는 금성의 원주민인 도마뱀 인간들을 비웃고 혐오하는 서술을 늘어놓다 마지막에는 그들에게도 그들의 문화가 있으며 자신들만을 우월하다 여기고 다른 문화를 침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하며 저들이 인류보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이 이야기는 아이디어는 스털링이 제공했지만 실제로는 러브크래프트가 대부분 집필했다는 얘기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년에 와선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를 부정하는 의견들도 많다. '다른 열등인종들은 지구상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같은 극단적인 인종차별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저들의 열등한 문화가 우리의 문화를 침범하기 전에 서로 분리되어 지내야 한다.' 수준의 인종분리는 선호하던 사람이었기 때문.

물론 그렇다고 러브크래프트의 공포관이 아예 현대인들에게 먹히지 않는다고 무작정 폄하할 수는 없다. 안 그랬으면 현대 서브컬쳐에 그의 소설이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할테니. 실제로 러브크래프트적 공포관은 현재까지도 다양한 작가들과 영화감독들에 의해 탐구되고 있으며, 특유의 분위기와 테마 등 그의 공포관의 핵심적인 부분을 살려내며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생산해낸 예는 차고 넘친다. 잘 알려진 공포영화 중 에이리언이나 더 씽과 같은 영화들은 러브크래프트적 호러를 매우 훌륭하게 구현해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데 이 영화들은 1980년대에 만들어진데다 CG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도 어필이 가능할 정도로 공포스럽다.

예컨대 워낙 옛날 작품이기 때문에 이입이 힘든 구식 필체, 그리고 자극적인 현대 매체에 노출된 관객들에게 어필하기에 부족한 과장된 서술 등의 요소들이 있고, 그것들이 공포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제시한 공포관을 따르면서 무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 그리고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쓴 소설들 중에서도 제대로 몰입해서 읽으면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히 으시시할 수 있는 작품들은 있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작법이 현대 위어드 픽션 지망생들이 알아야 할 기법이라고 추천한다.[19]

2014년 판타지&SF 상에서 러브크래프트의 동상을 수여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수상자가 흑인이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관 때문에 이 작가는 수상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러브크래프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S. T. 조시는 인도계이다. 작품과 작가는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러브크래프트의 경우 본인의 소설에 그릇된 사상이 꽤나 내비쳐지므로 평가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

요약하자면 작가의 인성적인 측면에서나 문학적인 측면에서나 여러 오점은 있지만 공포관 하나는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작가.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작품성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독특한 공포관과 시대를 앞서나간 기묘한 상상력 덕분에 사후에 엄청난 팬층을 확보했고, 각종 장르의 거장들까지 그의 팬을 자처하는 것만 봐도 그를 단순히 유행을 잘 타고 인기를 끌어모은 작가로 폄하하기엔 힘들다. 러브크래프트가 살던 당시에는 흡혈귀, 늑대인간 등의 전통적인 오컬트물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러브크래프트 이전의 아서 매컨 등이 실체를 알기 힘든 기이한 존재들에 대한 소설들을 쓰기도 했다. 이런 작가들은 라디오 드라마 낭송 등으로 당대에 이름이 더 알려지기도 했으나 현대에 와선 오히려 러브크래프트가 그들에 대해 얘기했기 때문에 찾아보는 팬들이 상당히 많다. 결국 러브크래프트 본인은 이런 고전 작가들에게 받은 영향에 자신만의 색채를 합해서 독창적인 느낌의 작품들[20]을 만들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본인부터가 다른 작가들의 영향력을 인정했고[21] 그가 만들어냈다고 알려진 요소들은 사실 그가 좋아했던 소설에서 따오거나 영향받은 부분들이 많다. 즉, 러브크래프트가 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고 하는건 어폐가 있다. 하지만 그런 영향들에 러브크래프트만의 무언가가 합쳐져서 플러스 효과를 낸 것이다. 예로 다곤을 보자면 당시에는 어류의 신으로 알려져 있던 신이라 반인반어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가 이를 바탕으로 단편을 쓰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반인 반어 수준에 멈추지 않고 아예 거대하며 끔찍한 어인의 형태로 차별화시켰다. 허버트 웨스트의 경우, 원조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죽음을 정복하려 한다는 모티브는 같지만, 여기에 죽은 자를 살려내는 시약, 그 시약으로 인한 부작용, 그리고 웨스트 박사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으로 뒤틀린 성격, 제1차 세계 대전 같은 여러 사건들과 기본적으로 깔려져 있던 것들이 합쳐져서 프랑켄슈타인과는 백만광년 떨어진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즉 알려져있거나, 이미 존재한 컨셉이었더라도 러브크래프트의 손길이 닿으면 독창적이며 기괴한 무언가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므로, 기존에 있던 것을 단순히 베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에 자신만의 색깔을 버무려 개량한 것에 더 가깝다.

SF와 판타지, 공포와 신화를 버무려서 듣도보도 못한 기괴한 외계생명체들과 초월적인 존재들을 창작해내고, 당시 서구권의 보편적인 종교적 세계관에 장면으로 대치되는,[22] 인간이 퇴치하기는커녕[23] 아예 이해를 초월하는 압도적인 공포의 존재들에게 마치 물방울같이, 언제든지 증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 광기 넘치는 소설을 써냈으니 확실히 상상력만은 시대를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작가 본인과 소설 자체는 3류 작가와 그가 쓴 3류 잡지소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작품에 담긴 상상력 하나로 서브컬처 작품의 패러다임을 제시해 나름대로의 거장으로 대우받게 된 케이스. 그런 매력이 있어서인지 크툴루 신화라는 작품은 매우 독특한 점이 있는데, 작가 본인이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을 덕질한 다른 많은 작가들의 덧붙임으로 세계관이 완성됐다는 점이다.

3.2. 공포관

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이다.
― 본인이 저술한 에세이, 《문학에 나타난 초자연적 공포》에서
The most merciful thing in the world, I think, is the inability of the human mind to correlate all its contents.
We live on a placid island of ignorance in the midst of black seas of the infinity, and it was not meant that we should voyage far.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것은 만물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부족한 지능인 것 같다.
우리가 살던 곳은 무지라는 이름의 조용한 섬이었고, 그 섬은 탐험할 엄두도 못 낸 무한이라는 검은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다.
- " 크툴루의 부름 外" 중에서
From even the greatest of horrors irony is seldom absent.
아이러니는 가장 거대한 공포 속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다.
- "금단의 저택" 중에서
The world is indeed comic, but the joke is on mankind.
세상은 분명 재미있다. 하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재미없다.
- "방어가 뚫렸다! (The Defence Remains Open!)" 중에서
초자연적인 공포에 대한 에세이를 쓸 정도로 공포관에 대한 철학이 뚜렷했다. 고어적인 공포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분위기를 강조하는 편. 러브크래프트의 공포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력함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주제는 '뛰어보고 날아봤자 멸망/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크툴루 신화의 골자도 이미 그레이트 올드 원들과 아우터 갓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그들이 원한다면 인류는 언제든지 전멸할 것이고,이건 결국 피할 수 없다는 운명이라는 것이다.[24] 많은 공포물들이 평화로운 일상에 무언가가 침입해서 생기는 공포라면,[25] 러브크래프트의 공포는 대부분 이미 파멸의 씨앗은 주인공이 태어나기도 전에 뿌려져 있었고 이를 점차 깨달았지만 수습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더불어 인간은 숭고하며 특별한 존재라는, 당시 서구에서는 정설이자 하나의 진리처럼 여겨지던 가치를 비웃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아예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거나 심지어는 다른 외계인이 만든 장난감 혹은 가축( 광기의 산맥) 이상으로 안되는게 인간이라는 설정이 나오기도 했으니 말 다 했다.

그의 다른 작품 '리애니메이터-시체를 살려내는 허버트 웨스트-에 등장하는 허버트 웨스트는 아예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생물체를 그저 유기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기계로 바라보며 적절한 조건하에서 사망한 생물체의 시체를 다시 생물로 되살릴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다.[26]

위의 인종차별주의 면모도 혼합돼서 백인 사회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설정이 종종 나오는데,[27] 여기서도 백인 서구 사회는 여차하면 무력하게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보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혼혈=파괴의 씨앗이라는 사상을 보여준다.[28]

미지의 공포를 중요하게 생각한 덕분에 일부러 사건의 전말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를 위해 자신은 루머나 괴담을 만드는 마인드로 글을 쓴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에게 편지로 설명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경향은 크리피파스타 등의 현대 괴담에서도 볼수 있는 요소이다. 이는 러브크래프트가 활동하던 당시에 유행한 위어드 픽션 장르의 특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Terror : a state of intense or overwhelming fear (강력하거나 압도적으로 두려워하는 상태)
Horror : painful and intense fear, dread, or dismay (고통스럽고 강렬할 정도의 두려움과 놀라움, 불안함)
Gore : gruesomeness depicted in vivid detail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된 섬뜩한 광경)
메리엄-웹스터 사전
또한 러브크래프트는 소위 Terror라 불리는, 경이를 동반한 공포를 더 중요시했다.[29] Horror가 신체적인 공포를 다룬다면, Terror는 심리적인 요소를 다룬다고 간추릴 수 있다. 이런 구분법은 고딕 소설가 앤 래드클리프의 에세이에서도 이미 등장했는데, 그녀는 horror를 두고 사람의 영혼을 얼어붙게 만든다면, terror는 인간의 영혼을 확장시키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경이를 동반한 감정으로 정의하고 있다.[30]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가 느끼는 경이, 아름다움 등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얘기했으며 위어드 픽션/괴기 소설은 자신의 성향에 맞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탓에 음울하고 불안한 분위기가 깔린 작품들을 쓴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러브크래프트 개인적인 집돌이 성향 때문에 바깥의 신문물을 두려워한 적이 많았는데 이 요소가 그의 작품에 남아있다. 에어컨을 활용한 공포장르의 작품[31]도 있고 또한 니알라토텝의 모티브가 니콜라 테슬라라는 헛소문도 있을 정도로 러브크래프트는 과학기술을 두려워했다. 사실 무력함이 주요소이지만 작품내의 인간이 의외로 단결력을 가지면 아우터 갓의 현현을 예방할수 있는등[32] 서양 공포물이 가지고 있는 능동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는 하다. 일본의 공포물이나 전통설화에서는 무력함이 더욱 심해서 상황을 어떻게 예방할지가 아니라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지가 핵심 포인트다.

4. 그에 대한 말들

20세기 고전 공포의 가장 위대한 실천가 H.P. 러브크래프트를 능가한 사람은 없다.
스티븐 킹 ( #)

러브크래프트는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했던 것처럼 나를 위해 길을 열어주었다.
스티븐 킹 ( #)

진실로 미국 공포 문학의 1인자를 한 명만 꼽는다면, 그 자리는 러브크래프트의 차지다.
존 카펜터 ( #)

러브크래프트는 현대 공포소설의 초석을 세웠다.
클라이브 바커 ( #)

지금, 나는 그의 문체, 단조로운 정확성, 초자연적인 상상력, 그리고 그의 모든 작품을 알리는 밑바탕이 깔린 비타협적인 비극적 비전으로 그를 존경한다. 그는 미국의 오리지널로, 그 분야의 후속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예를 들면 스티븐 킹)이 모두 만연해 있다.
조이스 캐럴 오츠 ( #)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서 발견한 것은 그가 주로 공상과학소설 작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 속에 있는 모든 과학적인 것들은 꽤 정확하다 - 그는 많은 연구를 했다. 예를 들어, From Beyond에서 그는 소나무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Reanimator에서 그는 거의 당신에게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공식을 주었다. 내 생각에 그는 일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매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
스튜어트 고든 ( #)

러브크래프트의 서술은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 옛일이 있을 법한 도그마가 없는 상상에서, 이전에 왔던 것을 동화시키고 인간의 의식의 진화에 있을 법한 것을 상상하며, 선의로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을 때까지 무시무시한 정직함으로 숙고하는 상상에서 생겨났다. 증거나 대뇌에 의해 지시된 대로 폐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시대에 대한 가장 진보된 사상뿐만 아니라 인간 종족을 자신으로 환멸시키는 경향이 있는 이전의 모든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발전들을 끌어내어 확장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과학과 철학에서 후대의 인물들의 출발점이 된 무의미하고 질서 정연하고 근본이 없는 우주를 가정하는 데 있어서 정말로 환멸의 한계에 도달했다.비록 러브크래프트는 지구로 향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는 허무주의와 환멸의 어떤 사람의 땅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 작가로서, 그는 새로운 세대의 인간들의 동시대가 될 것이다...
토머스 리고티 ( #)

러브크래프트는 무의식적인 그의 턱에 토끼처럼 매달려 있다. 그의 일생에서 그리고 결코 그의 글에서 그는 그의 마음을 폭압하는 공포와 강박에 대항하는 보루로서 논리 정연한 추리의 조각, 진정한 산문의 조각들을 소환하기 위해 반격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의 나약함은 그의 글쓰기에 하나의 힘을 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무서울 수 있다.
어슐러 르귄 ( #)

결국 러브크래프트는 여전히 승리한다. 그의 작품 한 페이지를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수년간 크툴루가 무엇인지 알 것이고, 그의 유산은 스티븐 킹, 기예르모 델 토로, 그리고 닐 게이먼의 작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 애틀랜틱 ( #)

5. 인종차별주의자

러브크래프트는 확고한 성향을 가진 적도 없고 본인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으나, 내면에는 항상 인종 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면모가 적든 크든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에 쓰여진 작품과 사적인 발언에서 외국인이나 유색인종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악인으로 규정짓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쿠 클럭스 클랜이나 한 방울 원칙과 같은 사례를 보면서 다 그러지 않았냐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주변 사람들도 기겁할 정도로 당시 기준으로도 유별나게 보일 정도로 차별적이고 순수혈통주의에 집착하는, 과격한 축에 속하는 인종차별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것은 그가 자신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서신에 적힌 내용들이다. 그의 사상은 크게 전기와 후기의 사상으로 나뉘는데, 전기에 러브크래프트가 편지에서 드러낸 사상은 빼도박도 못하는 극렬 인종차별주의자의 생각이다.[33] 예를 들자면 러브크래프트는 1915년 12월에 쓴 편지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And the more I study the question, the more firmly am I convinced that the one supreme race is the Teuton... it is pitiful to me to hear apostles of equity pipe out that other races can equal this foremost of all — this successor to the Roman race in power and virility.
그리고 그 문제를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나는 하나의 최고인종(supreme race)은 튜튼족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인종들이, 로마인들의 권력과 정력을 계승한 가장 중요한 이 튜튼인들과 동일하다고 노래하는 평등의 사도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그의 사상이 많이 유순하게 변한 후기의 편지에서도, 유대인은 혈통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흑인 아리아인 핏줄을 더럽히는 생물학적 열등종이라는 소리를 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그 인용이다.
By the way — it's hardly accurate to compare the Jewish with the Negro problem. The trouble with the Jew is not his blood — which can mix with ours without disastrous results — but his persistent and antagonistic culture-tradition. On the other hand, the negro represents a vastly inferior biological variant which must under no circumstances taint our Aryan stock. The absolute color-line as applied to negroes is both necessary and sensible, whereas a similar deadline against Jews (though attempted by Hitler) is ridiculous.
아무튼- 흑인 유대인 문제를 비교하는 것은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유대인과의 문제는 -순탄하게 우리와 융합될 수 있는- 혈통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끈질지고 적대적인 문화적 전통에 있다. 반면, 흑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아리아인 혈통을 더럽혀서는 안 되는 엄청나게 열등한 생물학적 변종에 해당한다. 흑인에 적용되는 확고한 피부색 차별은 필요하며,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유대인에 대한 비슷한 구분은 ( 히틀러에 의해 시도되었지만) 우스꽝스럽다.
즉 흑인은 인간 이하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대목은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거의 모든 유색인종을 혐오했지만, 그 중에서 흑인을 가장 싫어했다. 어떤 편지에선 흑인은 근본적으로 모든 백인, 황인보다도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라고 쓰기도 하였다.

심지어 러브크래프트는 서신에서 인종차별주의를 선전하는 영화 국가의 탄생을 언급하면서, KKK단에 대해서 비록 '악의에 가득 차 있긴 했지만, 우리의 조국 절반을 파괴로부터 구원한 고결한 남부인들'이라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였다.[34][35] 그의 흑인 차별의 결정판으로 여겨지는 시는 "흑인의 탄생"(On The Creation of Niggers)이라는 시 #인데, 이 시에서 러브크래프트는 흑인들이 짐승과 사람이 반쯤 섞인 반인반수이며,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 인간 이하의 생물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극단적인 차별적 발언을 퍼부었다.

그의 표적이 된 것은 흑인만이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인종끼리는 결코 섞여서는 안 된다는 아파르트헤이트 비슷한 분리주의 정책의 지지자였고, 우수한 피를 가진 아리아인들이 열등한 피를 가진 민족과 섞였을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도인들을 디스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1933년 9월의 서신의 일부분이다.
Wherever superior races have absorbed large doses of inferior blood, the results have been tragic. Egypt is one case – and India presents a still more loathsome extreme. The Aryans in India were too late in establishing their color-based caste system, so that today the culture of the Hindu is probably the most thoroughly repulsive on our planet. The more one learns about India, the more one wants to vomit.
우등인종이 다량의 열등한 피를 흡수한 곳은 어디든지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이집트가 한 예이며, 인도는 더 혐오스러운(loathsome) 한 극단을 보여준다. 인도의 아리아인들은 피부색에 근거한 카스트 시스템을 너무 늦게 만들었고,[36] 그러므로 오늘날의 힌두 문화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철두철미하게 구역질을 자아낸다(repulsive). 인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구토가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해 러브크래프트는 인도인들이 카스트 제도를 더 빨리 만들어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리아의 우월한 피가 열등한 피와 섞이면서 인도의 문화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역겹게 변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거의 매도에 가까운 수준의 비난이다. 심지어 이 글은 러브크래프트가 죽기 4년전에 쓴 글인데도 내용이 이렇다.

그 밖에도 이누이트의 조상인 이누토스(Inutos)를 땅딸막한 황색의 흉악한 악마들로 묘사하는가 하면, 이누이트에 대해서도 혐오스러운 에스키모의 혼혈이라는 표현으로 직접적으로 비하하였다. '그 집에 있는 그림'이라는 작품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북미 원주민)을 Injun[37]이라고 부르며 원숭이와 사람이 반쯤 섞인 외모를 가졌다고 서술한다.

또 '레드훅의 공포'에선 찢어진 눈(Slant-eye)이라는 표현을 썼으며, 이 작품 내내 동양인(Orientals)에 대한 경멸적인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마지막 문장에선 심지어 동양인을 두고 아시아 원숭이이라고 비하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해당 부분의 인용이다.(이하 황금가지판 러브크래프트 전집의 번역을 따름)
체구가 땅딸막하고 전매특허처럼 눈이 째진 이들 무리는 야릇한 미제 옷을 걸쳐 입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청 인근의 부랑자와 뜨내기 폭력배들 사이에서 무수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Their squat figures and characteristic squinting physiognomies, grotesquely combined with flashy American clothing, appeared more and more numerously among the loafers and nomad gangsters of the Borough Hall section;
경찰이 현장을 급습하는 동안, 눈이 째진 동양인들이 문마다 몰려들어 소극적으로 저항했을 뿐이다.
During the raid the police encountered only a passive resistance from the squinting Orientals that swarmed from every door.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추고, 무너져가는 벽돌집마다 숨어든 수상한 자들 사이에 암적인 요소들이 둥지를 틀고 퍼져 나가고 있다.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 and the cancer lurks secure and spreading where furtiveness hides in rows of decaying brick.

보다시피 인종주의자에다 문화우월주의, 그것도 영국 문화, 게르만 우월주의였다. 초기 활동 시기에는 자신의 편지나 본인이 기고했던 잡지에서 전세계를 누비던 바이킹 조상들처럼 우리 앵글로색슨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을 숨김없이 얘기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고립주의/분리주의에 가깝게 변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을 읽어 보면 자신과는 다른 인종, 또는 다른 무언가에 대한 공포, 혐오 등이 엿보이는데, 이러한 인종차별 사상은 그를 유명하게 한 크툴루의 부름이나 인스머스의 그림자에도 조금 나타나는 편이지만 그보다는 단편소설들에 무척 잘 나타나 있는 편이라 대표작만 읽은 사람은 잘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단편들에는 '옛 우랄 알타이계 마법과 풍년제의 소름끼치는 자취', '눈이 째진 동양인', '입술이 흑인처럼 징그럽게 생긴 아랍인' 등의 묘사가 여과없이 등장한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늘 혼자 틀어박혀 살았던지라 은연중에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살 당시엔 편지로 "자기가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라며 굉장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혐오의식 때문에 작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거나 결말이 맥빠지게 끝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질리아 비숍의 글을 교정한 <메두사의 머리 타래>에서는[38] 작품 내내 분위기 깔아놓고 마지막에 섬뜩한 반전이 나와야 할 부분에서 '사실 그 여자는 흑인이다!' 하는 식으로 끝나는데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러브크래프트야 그게 무섭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맥빠지는 결말인 데다가 어처구니없이 인종차별적이다.

그가 1890년생 백인이라는 태생적인 상황과 그의 글이 실린 잡지가 대부분 싸구려 펄프픽션 잡지였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당시 수준으로도 과격한 인종관을 지니고 있었다.[39][40] 러브크래프트가 고교 중퇴라는 학력 때문에 체계화된 학문을 배우지 못해서 더더욱 인종차별적인 이론을 쉽게 받아들인 문제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인종차별적인 견해를 대놓고 드러내서 공개적으로 편지로 설전을 하면서 상대들에게 가루처럼 까인 적도 있다.

파시즘 성향도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에 대해 호감을 표한[41] 일기와 편지도 있다.[42] 그래도 나치가 정권을 잡고 본격적으로 반유대주의 정책을 벌이자 상당히 충격을 받아 히틀러를 '무솔리니를 흉내내는 조잡한 복제'라고 비난한 것으로 보아 그런 그도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다고 본 듯하다.[43] 정확히는 나치에 대해 병신같지만 멋있어식으로 호감을 어느정도 표하다가 아내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깨닫고 어느 순간부터 언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1933년 9월 25일에 J. 버넌 셰이(J. Vernon Shea)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을 보고 비과학적인 극단주의자라고 까는 모습을 보였다. 아예 나치식 인종주의가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세세하게 깐다. 다만 인종은 모두 똑같다는 주장도 깠다.

한편으론 결혼한 상태에서 인종주의적인 언행을 계속 한 것이 이혼의 한 원인이라는 얘기도 있다. 부인은 우크라이나 유대인 이민자였고, 인종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마다 유대계였던 아내가 자신도 유대인이라는 걸 계속 말해주면 '당신은 저런 들개 놈들하곤 다르다.'며 오히려 맞받아쳤다는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는 나름대로 아내를 아낀답시고 그랬지만 소피아에게는 이것이 좋지 않게 비춰지고 이혼에 가까운 별거를 한 뒤에는 러브크래프트의 다른 점은 어느 정도 옹호하여도 인종차별 성향만큼은 선을 긋고 비판하며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일부 지인들에게 러브크래프트가 인종차별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아내에게서 성평등에 대해 당시로서는 개방적인 의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 때도 ' 성차별 동양의 사악한 인습'이라고 주장했던 걸 보면 그의 인종차별은 무척 심각한 수준이다. 아니, 그의 괴기 소설에 대한 에세이를 보면 '서구에 미신이 넘치는 건 훈족 놈들의 야만적인 인습이 퍼졌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수준에서 뭐...

뉴욕에 있을 때는 거리의 군중들이 여러 인종으로 뒤섞인 걸 보면 그가 분노하며 '확 독가스로 쓸어버리고 싶다.'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더불어 뉴욕에서 출간된 신문을 두고 Jew York(유대인 욕)이라고 부르기도 얘기하는 등 과격한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를 보였지만, 아내와 이혼하고 프로비던스로 돌아가고 나서는 '이민자 문제는 그냥 추방으로 끝내는 게 더 좋다.'고 말하는 등 비록 다른 인종에 대한 혐오는 여전했지만 과격함은 비교적 줄어든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다른 인종과 문화를 혐오한 이유는 혼자 고립되어 살아오던 러브크래프트에게 있어서 "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처음 보는 모습을 지닌" 이민자들의 모습이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고, 그 때문에 심한 공포와 혐오를 느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극심한 수준의 제노포비아. 그의 아내였던 소피아 그린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러브크래프트는 삶에서 중요한 건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아는 게 아니라 무엇을 증오하는가를 아는 것을 가장 중요히 여겼다고 한다. 이런 탓인지 소니아 그린은 러브크래프트가 사실은 인류 전체를 증오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나마 나중에 가서는 나이를 먹어 차분해지고 아내나 지식인 친구들과 말을 섞은 영향인지 나중에 가서는 인종에 대한 혐오나 우월주의는 덜해졌다. 이때 쓴 편지에서 러브크래프트는 각 인종의 능력 총합은 엇비슷하지만, 각자 장단점이 다르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물론 흑인은 빼고. 그러면서 인종 분리를 지지하는 이유를 얘기하는데, 인종 간의 우열 때문이 아니라 각 인종마다 맞는 문화가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을 한다. 예를 들면서 하는 말이 '고대 중국의 문화가 우리보다 열등하진 않지만 우리(미국 백인)에겐 맞지 않는다.'거나, 다른 문화와 섞이면 물 흐린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현대였다면 딱 대안 우파에 해당할 법한 정치 사상... 여기서 한 주장 중 하나는 예를 들어 일본인 아이를 백인으로 성형수술해서 백인처럼 키우면 백인과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 적응이라고 표현했다.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있던) 동양인을 굳이 (당시 우월하다고 받아들여진) 백인으로 수술시킨다는 예시가 썩 기묘하긴 하지만 젊었을 때의 인종관에 비하면 그나마 좀 차분해졌달까.

작품을 보면 같은 앵글로색슨족이라도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던지, 근친으로 인해 지능적, 신체적으로 퇴행이 진행되었거나, 서구 문화를 어지럽히려는 모습을 보이면, 보통 나쁘게 묘사한다. 희귀한 예로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에서 윌렛 박사 일행이 조사를 하는 장면에서 대놓고 흑인인 캐릭터 둘이 나오는데, 이례적으로 각각 이름도 있는데다가 사악하다거나 혐오스럽다거나 하는 표현이 전혀 안 붙었다. 거기다가 음모에도 연루되지 않고 윌렛이 도와달라고 하자 흔쾌히 도와주는 것으로 끝난다. 여기서 흑인 캐릭터들이 사는 집 주소는 러브크래프트의 이모들 밑에서 일하던 흑인 하인들이 살던 주소였다고 한다.

어쨌든 이러한 그의 인종차별주의적 사상은, 이에 반발한 후대의 작가들이 러브크래프트를 더욱 심하게 비판하는 원인이 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스티븐 킹도 인종차별 사상은 깠다. 한편으로는 이 때문에 흥미로운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미국의 SF 작가 엘리자베스 베어(Elizabeth Bear)의 단편인 <Shoggoth in Bloom>에서는 쇼거스를 연구하는 흑인 교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인종차별에 대한 고찰을 다루었는데, Tor.com에 기고한 글에서 베어는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은 좋아하지만 그의 인종차별은 혐오하기에 그에 대한 오마주이자 반발 겸으로 쓴 이야기"라고 밝혔다.[44]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적인 면모는 수십 페이지의 키배나 연구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을 정도의 소재이다. 관련 밈도 많아서 4chan에서는 문어 이탈리아인을 보면 기절한다는 농담이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공포소설계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적인 요소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작품과 작가는 구분해야 한다는 관점도 있지만, 인종차별주의는 그의 작품 성격의 일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것"에 대한 공포에 인종차별 또한 낀 것으로 오늘날 태어나 외국인을 익숙하게 봤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거부감을 표하고 흑인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한편으로는 도리어 그 점을 노리고 인종간 갈등을 대주제로 즐겨 사용하는 흑인 코미디언이자 영화 감독 조던 필 러브크래프트 컨트리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러브크래프트의 '미지에 대한 공포'를 역으로 뒤틀어 유색인종이 인종차별적 사회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무력감으로 해석했다.

그 외에도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이 니거맨(Niggerman), 즉 '깜둥이'였는데 자기가 아니라 가족이 이름지은 게 함정. ' N으로 시작하는 말할 수 없는 이름의' 고양이라고 인터넷 밈으로 쓰일 정도. #

6. 사생활

결혼 시기 동안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몇몇 이들은 러브크래프트가 동성애자였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러브크래프트가 성행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해석도 있다. 심지어 러브크래프트는 30대가 되어서야 동성애 행위가 본능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얘기한다. 그렇기에 러브크래프트를 동성애자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수라는 의견도 있고, 편지 등으로 얘기한 의견이기에 이를 숨겼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특히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묘사할 수 없는' 같은 묘사가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보고 생각한 자기혐오적인 표현이라는 해석도 존재. 사실 친구 여럿이 게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수상하게 여겨지는 것도 있다.[45] 이런 경우 러브크래프트가 자기혐오적인 동성애자이고 이런 성향이 인종차별 등으로 분출되었다는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은둔자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왕성한 편지 교류( 참고)를 통해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며[46] 돈이 궁할 때도 어떻게든 여행을 자주 다녔다. 멀리 여행을 안 나가도 자전거를 타고 그가 살던 동네를 빙 둘러다니기도 했다고. 그가 정말 히키코모리마냥 틀어박혀 산 건 그의 일생에서 불과 5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잊힐 뻔했던 걸 다시 알려준 사람들이 그의 친구들이었음을 생각하면 역시 친구들을 잘 사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일부 소설은 친구들에게만 보라고 보내주고 출판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 친구들이 이야기를 읽고 대단하다며 다른 잡지에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실어달라고 부탁해서 출판된 작품들도 있다. 그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농담을 하거나 쾌활한 어투로 얘기를 하는 등 실제로도 친구들에겐 매우 친절한 인물이었다. 그의 편지를 보면 자신을 온갖 별명으로 다 부르는데, 그 중엔 자신을 압둘 알하자드로 지칭한 것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거기다가 왠지 음침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친구들에겐 매우 유쾌하고 친절했다고 한다. 로버트 블록[47]가 러브크래프트를 본뜬 캐릭터를 자기 소설에서 죽이자 불쾌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재밌어 했다. 아예 압둘 알하자드의 서명을 담은 허가서를 보내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본뜬 캐릭터를 죽여도 좋다고 허가하기까지 했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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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허가서.

친구와 거리에서 권투하는 장난을 했다거나, 편지로 엄청난 책덕심을 보이며 책 다 사고 싶어서 죽겠다고 친구에게 늘어놓는 등 현대 공포의 거장이라느니 하는 명성만 듣고 으시시한 인물일 거라 생각하면 충공깽일 모습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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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격과 공포의 현장.[49]

사실 인종 차별 말고도 파시즘을 찬미하는[50] 등 현대사회에선 눈총받을 면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러브크래프트의 생전 절친이었던 새뮤얼 러브먼의 경우 러브크래프트가 그가 나왔던 꿈을 바탕으로 랜돌프 카터의 진술 등을 썼고 관계도 좋았고 러브크래프트 사후 그를 그리워하는 회상록을 썼지만, 나중에 소니아 그린이 러브크래프트의 인종 차별적인 면모(특히 반유대주의적인 면모)를 얘기해주고 난 뒤에는 그와의 우정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러브먼은 유대계 미국인이었으니... 이 때 그동안 러브크래프트에게 받은 편지를 모조리 불태워버렸을 정도로 실망했다.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거나 혹은 감정 표현을 싫어했던 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니아 그린은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러브크래프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오직 당신(소니아)의 존재에 매우 감사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6.1. 학대 피해자 의혹

3살 때부터 를 짓기 시작했고 6살 무렵엔 완벽한 운율이 있는 시를 지었다. 어린 시절 모친의 영향으로 여장을 하고 성장하였으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주장이 갈리는 편. '당시에는 그러한 일이 드물지 않으므로 유별날 것이 없다.'는 설과 ' 종교에 심취했던 모친에 의한 일종의 학대였다.'는 설이 있다.

전자의 경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예가 있으며, 후자의 경우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 모친과 사이가 좋았다는 점을 들어서 학대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학대를 당해도 가해자와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주장을 뒷받침하기엔 약한 편이다. 그러나 모친과 사이가 좋았음에도 학대라고 몰아가는 것 역시 옳지는 않다. 그렇게 따지자면 부모와 아이가 조금 격렬하게 노는 모든 놀이들이 다 학대처럼 해석될테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양쪽 모두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어머니인 세라 수전 러브크래프트는 이후 많은 러브크래프트 평전 등에서 아들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졌는데, In the Mountains of Madness에서 저자 W. 스콧 풀은 세라 수전을 악인화하는 저술들은 빅토리아 시대 때 여성을 부정적으로 그리던 저술과 흡사하다며 그녀가 겪었던 스트레스[51]로 인한 증세를 나쁜 쪽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학대한다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비싼 과학기기를 사주거나 그의 인생에 큰 간섭을 하지 않겠냐며 그녀의 학대설을 부정했다.

6.2. 식성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도 전혀 마시지 않았다. 또한 편식이 매우 심하여 싫어하는 음식은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바다에 대해 편집증적인 혐오감을 품고 있어서, 단 한번도 해산물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에 대한 그의 감정은 작품에도 잘 반영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종족들은 바다생물을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그는 , 치즈 등을 주로 먹었으며, 특히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이 주로 달달한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편식으로 인한 영양실조가 사인이라는 일설과는 달리, 실제로는 사정이 있다. 다름아닌 빈곤. 아내 소니아와 살 때는 소니아가 해주는 밥을 먹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이혼하고 나서는 하루에 고작 50센트[52] 정도로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할 만큼 가난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아침에 도넛 하나 정도를 먹고 저녁에 핫도그 하나 먹는 정도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도 가난하다보니 집에 있던 보존 상태가 안 좋았던 오래된 통조림을 먹어야 했는데 이게 건강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운 건 개인적인 편식 때문이라기 보다는 전부 돈이 없어서 먹을 게 그것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운 사정이었던 것.[53]

6.3. 사진

러브크래프트의 모든 사진들 보기 (hplovecraft.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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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사진에 찍은 사진으로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현존하는 러브크래프트의 사진 대부분에 찍힌 그의 복장과 표정이 비슷비슷하다. 사실 복장이 비슷한 건 슬픈 뒷사정이 있는데, 러브크래프트가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옷이 몇 벌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살 당시에는 옷이 전부 해서 4벌밖에 없었다고 하며, 그나마도 아파트에 도둑이 들어서 이중 3벌을 도난당한 적도 있다.[54] 이후 그는 몇 주 동안 싼 값에 옷을 사려고 뉴욕 전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매우 상세하게[55] 얘기했는데, 여기에 각 가게마다의 옷 가격을 표로 써서 쓰는 등 매우 열정적으로 친구에게 토로했다. 그만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겼기에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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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소니아 그린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도 저 특유의 뚱한 표정은 똑같다. 사실 이 사진은 왼쪽이 잘린 것으로, 왼쪽에는 러브크래프트의 평생지기였던 라인하르트 클라이너(Rheinhart Kleiner, 1892~1949)가 찍혀 있다( #).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결혼은커녕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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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 5일, 보스턴의 브룬스윅 호텔 앞에서. 옆에 찍힌 사람은 윌리엄 J. 다우델(William J. Dowdell, 1898~1953)[56]이다. 하루 전에 아마추어 저널리즘 집회가 열려서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찍은 듯하다. 그래서 같은 날에 조지 줄리언 후테인(George Julian Houtain, 1884~1945)[57] 등의 지인과 찍은 사진( #)도 있다. 레딧 게시글에 의하면 2014년에 로드아일랜드의 럼퍼드(Rumford)에서 발견된 사진들 중 하나라고 하며, 그래서 프로비던스나 뉴욕 근방의 고물상에 아직 이런 사진들이 더 많이 쌓여 있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얼굴 부분만 떼어놓고 '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나오지만, 사실 위 사진들을 찍었던 시기보다 2달 전, 그러니까 1921년 5월 24일에 러브크래프트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그래서 이 7월 5일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저 위에 소니아와 찍은 것처럼 안 웃는 것도 몇 장 있지만, 단둘이 찍었을 때는 웃고 있다( #). 즉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미래의 아내인 소니아 그린과의 만남으로 이겨낸 듯하다.

7. 영향력

<nopad>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는 현대 호러 장르와 서브컬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현대 호러 문학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는 스티븐 킹 이토 준지 두 사람이 러브크래프트의 극렬 빠돌이인 것은 새삼 놀라운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그의 소설이 대중성이 있는 소재는 아니기에 영향력은 서브컬쳐에 국한되어있으며, 필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까지 하기는 힘들기에 작품성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지만[58], 독특한 공포관과 시대를 앞서나간 기묘한 상상력,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기괴한 문체 덕분에 엄청난 팬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서구권의 서브컬쳐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막대하다. 수많은 거장들이 그의 팬을 자처하고 있으며 특유의 공포관에 대한 탐구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 본격 호러물 뿐만 아니라 SF, 판타지 장르에서도 스케일이 커지고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직간접적 레퍼런스가 어떤 방식으로든 첨가되는 것이 거의 보편적인 수준.

심지어 미국 문학 애독자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기 소설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오마주[59]를 싣기도 했다. 에일리언 시리즈의 원화 디자이너이자 고딕 일러스트레이터인 H.R 기거도 러브크래프트의 극렬 팬으로 크툴루를 주제로 하는 연작을 냈다. 일본 괴기 만화의 대표적인 작가인 이토 준지도 상당한 러브크래프트 빠돌이이며,[60]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그리고 만화 헬보이의 작가 마이크 미뇰라도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또한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이 드러나는데, 이쪽은 한술 더 떠서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나올법한 요소로 개그물을 쓴다. 위에서 언급된 심각한 인종차별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워낙 세계관과 상상력이 임팩트 있다 보니 계속 회자되는 예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빠돌이 작가들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주의는 깐다. 크툴루 신화가 아니라도 은근히 러브크래프트가 처음 사용하거나 혹은 초창기에 사용한 사람들중 한 명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딴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쫓기는 공포도 인스머스의 그림자에서 선보였고, 식인 좀비의 컨셉도[61]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에서 선보였다. 다만 러브크래프트 본인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받은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나온 작품들도 많아서 직접 읽어보지 않는 한 그걸 느끼긴 힘들다. 기억하자, 러브크래프트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하던 작가였다.

미국의 역사가 W. 스콧 풀(W. Scott Poole)은 저서 In the Mountains of Madness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인기는 톨킨이나 해리 포터와 달리 그 어떤 스폰서나 거대 회사의 도움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스타 워즈 시리즈 등이 영화 등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대중적인 시리즈가 된 데에 비해,[62] 러브크래프트는 그런 것 없이도 은근슬쩍 대중매체속에서 인기를 누렸다. 러브크래프트 원작으로 영화화된 적이 있다지만,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거대 프랜차이즈가 아닌 그의 상상력에 매료된 영화인들이 오마주를 보내며 대중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생전에 러브크래프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와 던세이니 경[63]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내 영향을 받은 글들은 어디 있는가?'라고 탄식했는데 결국 그 소원은 이루어진 셈 되겠다...만 이쪽은 살짝 오역이다. 원문은 내 영향을 받은 글이 아니라 단순히 "My Lovecraft pieces"라고 하는데, '내 영향을 받은 글'이 아니라 내 러브크래프트 스타일의 글을 가리킨다. 즉 이쪽은 자신의 영향을 받은 글이 아니라 나만의 스타일로 쓰여진 글이 없다고 한탄하는, 자신의 오리지널리티 부족을 한탄하는 말이다. 물론 그의 영향을 받은 글들이 많아진 것을 생각하면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 결국은 소원성취.

8. 대중 매체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그대로 영화화, 드라마화, 영상화된 건 드물다. 캐릭터성도 없고 서사 전개도 모호하기 그지 없어 일부 차용하거나 마개조되는 경우가 많은 편.

그나마 게임화된 작품은 비교적 많은 편이나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으니 이 역시 마개조된다.

크툴루, 러브크래프트 작가 본인, 네크로노미콘과 같은 인기있는 요소만 단편적으로 묘사되는 일이 잦다.

8.1. 느슨한 모티브 및 단편적 묘사

파일:external/i.kinja-img.com/18r8cncugjav9jpg.jpg 파일:external/26.media.tumblr.com/tumblr_l85ayuHPwE1qa3nkyo1_500.jpg 파일:external/api.ning.com/HPLovecraftbyJunjiIto.jpg 파일:HP Lovecraft & Cthulhu.jpg
이토 준지 작. 누워 있는 구도로 그린 것은 네크로노미콘의 "영원히 누워있을 뿐 죽어있는 것이 아니며"라는 구절에 착안한 듯하다. 카이다 유지[64] 작.

8.2. 직접적인 미디어 믹스

9. 팬덤

러브크래프티안 참조.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10.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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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 기념 황금가지 이벤트. 발렌타인 데이에는 사랑의 대가 러브크래프트가 쓴 소설을!

대한민국 팬들의 애칭은 사랑만들기 선생. 아닌 게 아니라 러브크래프트(Lovecraft)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정말 이렇게 된다. 1994년 9월호 영화잡지 <로드쇼>에서 그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지옥인간(From Beyond)>을 본 한 애독자가 꽤 길게 쓴 감상기가 실렸는데 글은 괜찮은데 작가에 대해 몰라서인지 그만 저자명인 H.P. 러브크래프트까지 제목으로 오해하고 <H.P. Lovecraft's From Beyond>란 제목을, <사랑에 대한 기술>이라는 뜻으로 오역한 원제목에 덧붙여 쓰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66] 재밌게도 러브크래프트의 친구였던(강조한 이유는 후술) 사람 중 한 명의 이름은 새뮤얼 러브맨이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동서문화사가 <공포의 보수>[67]란 제목으로 단편 이것저것을 묶어 처음 냈는데 번역이 가히 최악이었다. 나중에 동서문화사는 전 5권인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펴냈다. 근데 표지가 참 공공장소에서 꺼내기가 난감한 그로테스크 포스를 자랑한다.사실은 아바타, 헬보이 등의 디자인을 담당한 웨인 발로 그림을 도용한 것이다. 번역도 영 엉망인데, <공포의 보수>에 실렸던 단편들은 조금의 수정도 없이 그대로 썼다. 게다가 일본어판을 중역[68]하는 바람에 해괴한 고유 명사 표기와 영어 마도서처럼 조잡하게 번역된 문장이 속출하는 괴기한 작품이 되었다.[69]

그 밖에도 <악마의 쌍둥이>란 제목으로 아동용 괴기 소설 모음집으로 <환상의 도시( 에리히 잔의 선율)>, <악마의 쌍둥이(더니치 호러)>, <한밤중에 찾아온 괴물( 문 앞의 방문객)>이란 제목으로 3편이 수록[70]되어 1989년에 나온 바 있는데, 일어판을 중역한 건지 삽화가 으스스하게 들어가 있었다. 문제는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나 신화에 대한 내용을 죄다 삭제하는 바람에 여기 실린 <악마의 쌍둥이>의 경우, 크툴루나 그 외 여러 존재들의 이름은 생략되었고, 어린이들 보기 좋으라고 상당 부분을 삭제했다. 몇 가지를 보면 <더니치 호러>에서 죽는 프라이 집안이 당하는 장면은 삭제, 가축만 습격받는다고 나왔으며 <문앞의 방문객>에선 아세나스를 에드워드가 독살했다고[71] 편역했다.

황금가지에서 2009년 여름에 공저작을 제외한 전집 번역을 출간했다. 번역가 정진영. 이 항목 최상단에도 링크되어 있는 Weird Tales의 공동 운영자라고 한다. 발매하겠다고 선언한 후 4년이나 지난 뒤에야 1권, 2권이 나왔고, 그 후 한참이 지난 2012년 3월에 드디어 3권이 발매되었다. 대망의 마지막인 4권은 2012년 8월 발매되어서 드디어 완결이 된다.

일단 최초의 전집 번역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나, 번역의 질은 미묘하다. 고유명사에 대한 논란은 늘 따라붙는 문제지만, 생각보다 오역들이 많다. 가령 에리히 잔의 선율에서 비올라 연주자인 주인공이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든가.[72]

2014년, 현대문학 세계문학단편선 총서 07번으로 러브크래프트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크툴루의 부름>외 12편이 수록되었으며 번역가 김지현. 황금가지본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소설로 느껴질 만큼 문장이 좋다. 전집이 아닌 것이 흠이다.

장르문학 전문 번역가 정태원은 전집을 번역해놓고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출간되지 못한 채 사망했다.

AK 트리비아 북에서 모리세 료 저의 <도해 크툴루 신화>라는 도해집이 출간되어 있다.

북스피어에서 <공포 문학의 매혹>이라는 러브크래프트 본인의 수필집이 출간되어 있다.

2015년 1월에 출판된 러브크래프트 전집 추가본이 있다. 총 3권으로, 5권은 러브크래프트의 공저작과 청소년기 작품들, 6권은 러브크래프트와 세계관을 공유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 특별판은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의 걸작선. 발매 직후 3권짜리 세트에 7권짜리 박스를 끼워파는 한정 판매가 예정되어 있다.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대학원 미디어 디자인과에서 <호러, SF 기획을 위한 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과 그 영향력에 대한 연구>라는 석사 학위 논문이 게재되어 있다.[73] 특히 코스미시즘, 영향받은 코즈믹 호러 작품을 분석했기 때문에 에이리언 시리즈 프로메테우스, 미스트 같은 영화 속에서의 러브크래프트의 영향력 등을 분석한 부분은 흥미로울 수 있다. 다만, 석사 논문이기 때문에 기존의 논문에 비해 다소 실험적이고 자유롭게 쓰여진 느낌이 강하다. 디지털 콘텐츠 관련 학과가 아니었거나 교수진이 보수적이었다면 통과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존의 국내 알려진 러브크래프트의 정보량에 비해 새로운 점이 없고 특별한 결론 도출이 없다. 위키보다도 정보량이 적으므로 논문을 쓰려는 사람 아니면 굳이 참고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철학적 입장인 코스미시즘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점은 러브크래프티안의 기존의 사료에 학문적 가치를 더해준 것으로 볼 수는 있다.

2018년 3월에 위즈덤하우스에서 만화화한 러브크래프트 걸작선을 출판했다. 작가는 타나베 고.[74] 역자는 김시내. 1권은 신전, 사냥개,이름없는 도시, 2권은 우주에서 온 색채, 3권은 데이곤,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가 실려 있다. 북미에서는 처음 나온 단행본은 수록된 이야기가 같지만, 두번째와 세번째 단행본은 광기의 산맥을 다루고 있다.

2020년 알마 출판사에서 한국의 대표 SF 작가들이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재창조하여 그래픽노블 포함 총 8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2021년 4월 필로소픽에서 미셸 우엘벡의 문학적 평전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를 출간했다.

11. 기타

1948년에 아서 클라크와 러브크래프트에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던세니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한적이 있다. 당시 킹스칼리지에 있던 클라크가 보낸 편지 내용은 이렇다.[75]
"제가 방금 미국에서 받은 잡지를 동봉하는데, 아마 선생님이 퍽 흥미로워 하실겁니다.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을 꽤 오래 전에 처음 읽었을 때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혹시 러브크래프트라는 작가에 관해 들어보셨는지요? 편집자 주를 보면 아시겠지만, 러브크래프트는 선생님의 초기 저작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작품 수가 아주 많고, 수준이 고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수작들은 그쪽 장르에서 걸작으로 통합니다. 생전에 작품들이 잡지에만 발표됐으나, 지금 상당수가 여러 선집과 단편집에 수록되어 재출간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던세니는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낸다.
"잡지를 보내줘서 정말 고맙네. 러브크래프트가 내 스타일을 차용한 것은 알고 있으나, 그렇다고 불평하고 싶지는 않네. 솔직히, 그 친구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 기쁘네. 네크로노미콘은 내가 썼던 어떤 작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군."
다른 작가들과 공저를 하거나 편집을 해준 경우가 여럿 있었는데, 이중 한 이야기 때문에 논란의 중심이 된 적이 있다. C.M. 에디 주니어와 함께 쓴 The Loved Dead라는 단편인데... 다름아닌 시체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실제론 큰 논란이 없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S.T. 조시의 조사에 따르면 인디아나 주 당국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수록된 위어드 테일즈의 이슈는 금지당했으며 이후 위어드 테일즈는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출판하는 것을 한동안 꺼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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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가 러브크래프트와 닮은 꼴로 유명하다.

12. 작품일람

황금가지판 기준.

13. 관련 인물

13.1. 러브크래프티안

러브크래프트의 성향이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그와 비슷한 작품이나 작가에 붙히는 형용사. 유명한 러브크래프티안 작가나 작품에 대한 것은 러브크래프티안 문서 참조.

14. 외부 링크



[1] 러브크래프트 생전, 그의 소설은 푼돈 주고 사서 한 번 읽고 버리는 B급 싸구려 잡지에 실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영향을 깊게 받은 스티븐 킹 또한 그의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코즈믹 호러와 괴기소설의 귀재이며 어휘력도 뛰어났지만, 늘상 혼자 틀어박혀서 지내느라 대화문에서는 뻣뻣하고 생기가 없어 한심하기 짝이 없고 남부 사투리가 지나치게 쓰인다고 비판했다. [2] 이웃 사람들이 러브크래프트 가 집에서 싸우는 듯한 소리가 나길래 아동 학대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하워드가 어머니에게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어주고 있었다는 훈훈한 일화도 있다. [3] 신경발작을 일으킨 신체적인 문제도 있었고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수학에 매우 취약했던 문제도 있었다. [4] 2016년에 출판된 평전 In the Mountains of Madness에선 러브크래프트가 아는 것은 많지만 수학에 약하고 학업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해 점수가 안 좋았다고 한다. [5] 로버트 E. 하워드의 소설 캐릭터인 레드 소냐의 이름이 이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6] 사실 소니아는 러브크래프트와 이혼하고 나서 다시 다른 남자와 재혼했지만 둘은 러브크래프트 사망까지 공식적으로는 혼인관계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러브크래프트가 문서상의 이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7] 러브크래프트는 결혼하여 독립하기 전만 하더라도 귀족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숙모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여성에 대한 불만은 자신의 소설 현관 앞에 있는 것에서도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8]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흥미가 있는 잡지사의 사장이 그에게 편집인 일자리를 제안했건만 러브크래프트는 근무지가 시카고라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9] 피켓을 들고 최전방에 선 게 아니라 문인협회의 고위직을 내세워 자신의 성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10] 친구인 로버트 헤이워드 발로우(Robert Hayward Barlow, 1918~1951)는 러브크래프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줄 일은 없냐고 전보를 보냈지만, 그날 밤에 러브크래프트의 애니 숙모로부터 하워드가 오늘 아침에 죽었습니다. (연락해줘서) 고마워요라는 답장을 받았다고 한다. [11]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서쪽에 있는 245m 정도 되는 언덕이다. # [12] 다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러브크래프트 본인이 그들이 사는 곳으로 여행을 간 적은 여러 번 있었다. [13] 이는 재미있게도 그리스 로마 신화뿐 아니라 동아시아 신화, 아일랜드 신화 등 여러 신화의 채록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본에서도 이명동신(異名同神)이라고 해서 분명 같은 신인데도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누아다 아르게틀람 신 역시 네흐탄(Nechtan), 엘크마르(Elcmar) 등의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4] 최대의 이해자라는 말이 있지만 여기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실제로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작품들을 처리할 것을 부탁한 것은 R. H. 발로였기 때문이다. 덜레스는 과거에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에게 작품들을 맡겨달라 얘기했다고 주장했지만. [15] 파동이 다시 밀려들었고, 카터는 그것이 존재의 화답임을 알 수 있었다. 카터에게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고 우주에 관한 전대미문의 이해력을 선사할 지식과 설명이 '무한한 정신'으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3차원의 세계가 얼마나 유치하고 편협한 개념이며, 상하좌우, 전후 외에도 얼마나 무한한 방향이 존재하는지 카터는 전해 들었다. / 그때 파동이 강렬해지면서 카터의 이해를 도왔으며, 현재의 분신은 일부일뿐 실제로는 여러 형태가 혼합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파동에 따르면, 여러 공간마다 따로 존재하는 카터의 분신들은 그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생긴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입방체에서 잘라낸 정방형 혹은 구체에서 잘라낸 원과 같다고 했다. 그러므로 3차원의 입방체와 구체는 인간이 오직 추측과 꿈을 통해서만 알고 있는 사차원의 그것들에서 잘린 결과였다. 그리고 4차원의 그것들은 5차원의 형태에서 잘린 것이며, 이런 식으로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차원까지 이어진다 했다. 인간과 그들이 만든 신의 세계는 극미한 단계이자 존재에 불과했다. 일차 관문 안쪽에 있는 3차원의 작은 세계이며, ' 움라트-타월'이 초고대인에게 꿈을 꾸도록 지시하는 지점이었다. 인간들이 3차원을 현실이라고 큰소리치고, 원래 다차원이었던 공간을 비현실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그와 정반대인 셈이었다. 인간이 물질과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림자이며 환영이었다. 인간이 그림자와 환영이라고 부르는것이 곧 물질이며 현실이었다. - 황금가지 러브크래프트 전집 3권 실버 키의 관문을 지나서 中 - [16] 에클리는 전에도 소름끼치는 일들을 알고 있었지만, 외계의 존재와 화해를 한 이후 추가로 알게된것은 제정신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절대적 무한의 구조, 차원의 뒤섞임,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있는 시공으로 구성된 이 3차원 우주는 끝없이 이어진 우주 원자에 속해있다는 놀라운 설명과 함께, 그 우주 원자가 곡선, 각도, 그리고 물질 및 반물질의 전자공학적인 조직을 구성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애클리가 암시한 그 모든 이야기를 결코 믿을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 전집 2권의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자 中- [17] 그렇지만 르뤼에의 내부 묘사를 보면 그저 평범한 공간을 지닌 건물이 아니라 원근감을 비롯한 각도와 공간 감각이 뒤죽박죽 박살난듯한 장소로 묘사된다. 잘 상상이 안간다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표현한 영상들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갈것이다. 아마도 러브크래프트는 미지의 외계에 있을법한 기묘한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알맞는 단어를 찾지못해 부정확하게도 비유클리드라는 단어를 사용한게 아닐까 싶다. [18] 러브크래프트의 팬들이 진행하는 H.P. Lovecraft Literary Podcast에서도 이야기가 누가 기절하면 엌ㅋㅋ 또 기절했어 ㅋㅋㅋ라면서 소리내서 웃는다. 심지어는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작품에서도 후디니가 무서운 것을 보고 놀라서 기절한다. 이거 보고 후디니는 자신이 '탈출마술'의 대가인 만큼 무서운 거 봤다고 기절하면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질 수 있으니 불만을 품었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작품론으로 설득시켰다고. [19] 미셸 우엘벡의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서문. 해당 책의 목차 참조. 킹과 우엘벡의 정치 성향은 상극인데 영미판 서문을 킹이 썼다. 서문에서 우엘벡의 일부 분석을 디스하지만 목차에 대해서는 극찬했다. [20] 예로 던위치의 공포의 경우 아서 매켄의 "위대한 신 판"의 영향이 크다고 평가받으며 아예 본문에서 매켄의 소설에 나오는 장면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작중 나타난 괴물의 모습은 당연히도 매켄이 만든 작품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 [21] 아예 본인의 글에 오리지널리티가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22] 사실 던세이니 경의 소설 등에 나오는 신들도 인간에게 무심한 모습을 보여주긴 한다. 그러나 그쪽이 그래도 고전적인 그리스 신들의 연장선이면 러브크래프트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갔다. [23] 사실 고전 호러에서도 인간이 초자연적 존재에 영혼까지 털리는 작품은 흔하다. 다만 그것들은 '재수 없게 저놈들이랑 엮여서 파멸한다' 정도지만 러브크래프트의 경우는 단순히 운이 나쁘거나 한 걸 넘어서 '우리는 저들에게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고, 저들이 우리에게 예정된 파멸을 가져다 줄 때까지 무력하게 기다려야 한다' 같이, 인류의 존재 자체를 보잘것 없는 미물 수준으로 표현하기 때문. [24] 불가역적인 운명 앞에서 인간뿐 아니라 신조차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한탄, 자조 섞인 주제는 일찍이 고대 그리스 내지 북유럽 신화에서부터 있었다. 당장 오이디푸스만 해도 운명에게 농락당한다. 상술했듯 어렸을 때부터 외조부의 영향으로 오디세이아 일리아스 등의 그리스 고전을 읽었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공포물이라는 형태로 그리스 비극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평할 수도 있는 셈이다. [25] 일례로 드라큘라의 경우, 평화로운 영국인들의 삶에 외국의 흡혈귀가 들어와 산다는 것이 공포의 요소이며, 그외의 호러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외국에 나가서 괴이한 일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26] 여담으로 러브크래프트는 1932년 로버트 E. 하워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앙집권적인 우주의 의지나 영의 세계, 영혼의 영생 같은 것은 우주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추측 가운데서도 가장 터무니없고 비논리적인 것이며, 이론적으로 나는 불가지론자이지만 그러한 영적인 존재들을 확증할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는 이상은 사실상, 그리고 잠재적으로 무신론자로 분류되어야 한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27] 실제로 크툴루의 부름에선 크툴루가 도래하면 인간을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그를 숭배하는 유색인종 등에게 새로운 혼돈을 가르쳐서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고 나온다. [28]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그렇고, 초기작중 주인공의 조상이 하얀 고릴라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후손이 자신임을 알고는 분신자살하는 이야기도 있다. [29] 이는 스티븐 킹도 마찬가지. Terror를 가장 높게 치고, 그 다음이 Horror, 그리고 최후의 수단이 Gore를 동반한 혐오스러운 묘사라고 한다. [30] 좀 서투르게 비유를 들자면 Horror는 흔히 공포 영화 같은 걸 볼 때 무섭다고 떨거나 질색하는 것이고, Terror는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무섭거나 아예 넋이 나가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광기의 저택 2판에서 정신 이상이 대부분 사실상 게임 오버나 마찬가지인 것도 그 때문이다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Terror의 좋은 예시는 문자 그대로인 9.11 테러가 있다. 당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했고, 진범 오사마 빈 라덴을 제외한 세계구급 테러단체(북한 포함)들이 우리는 상관 없다고 둘러대기 바빴으며, 21세기를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온 세상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31] 에어컨의 온도조절덕분에 시체가 부패되지 않고 계속 좀비처럼 살아날수 있다는 내용이다. [32] 대표적으로 증기기관차로 크툴루의 머리를 뚫어버린 사건과 폭격을 이용해 인스머스의 딥원들을 쫓아낸 사건. 물론 크툴루는 머리를 재생했고 답원들은 물속에 깊이 숨어서 실질적 데미지는 없다...고 나오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고작 증기선 돌격조차도 크툴루가 재생이 필요할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으며, 딥원들도 폭격에 직격으로 맞았으면 무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33] 러브크래프트의 편지 등이 잘 안 알려진 시기에는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주의가 그냥 그 시대에 흔했던 정도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국의 팬사이트에서도 러브크래프트와의 가상 인터뷰에서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이 살던 때는 다 그랬다고 변명하는 내용이 있었을 정도다. 그런데 그의 편지와 투고문 등이 알려지면서 점차 "이게 정말 그 당시에 흔했던 수준의 인종차별인가?"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단순히 유색인종이 악당으로 나오는 정도야 그 당시에 종종 보였던 일이지만 편지에서 친구들에게 유대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히 표하는 건 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본인이 유대인과 결혼하고 친구였던 사람이기도 하다. [34] 당시 인종차별이 현대보다 만연해 있었지만 남부연합 쿠 클럭스 클랜지나치게 미화했던 국가의 탄생은 당시에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백인우월주의자였던 우드로 윌슨도 이 작품을 옹호하다 뒤늦게 말을 바꿨을 정도. [35] 러브크래프트도 KKK의 오컬트적인 면모와 이중성, 폭력성을 완전히 옹호하기는 찝찝했는지 악의에 가득 차 있다고 첫머리에 운을 띄울 정도면... 다만 이 영화를 제작한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은 이 작품에 인종적인 목적을 담지는 않았다. 표현이 문제인거지. [36] 카스트는 악명대로 워낙 철저해서 계급 간 통혼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현대에도 계급 간의 외모 차이가 난다. 이걸 두고 너무 늦게 만드는 바람에 더러운 피가 섞여버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7] 인디언을 부르는 속어. 다만 이 호칭이 원주민에 대한 경멸적인 비속어이긴 하지만, 차별이 전체적으로 심했던 시대상을 감안하여 자연스러운(?) 용어 선정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사실 원래 Indian(인디언)을 대충 발음해 Injun으로 부르던 것에서 시작된 단어이기도 하고, 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하는 인디언 조(Injun Joe)처럼 특히 옛 남부 지역에서는 그냥 광범위하게 쓰이던 단어였다. [38] H.P. Lovecraft Literary Podcast의 크리스 래키는 이 작품을 읽고 러브크래프트에게 정말로 화가 났다고 할 정도로 인종주의가 심한 작품이다. [39] 다만 그 당시 학자들은 흑인을 인간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부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러브크래프트 개인만의 혐오만이 아니라는 얘기. [40] 여담이지만 이미 러브크래프트가 살던 시대에도 흑인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러브크래프트의 절친 제임스 모턴이었다. 심지어 모턴은 할렘가에서 흑인들과 섞여 살기도 했는데, 러브크래프트는 편지로 뭐하러 그런 짓을 하냐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모턴은 페미니스트이자 인종 평등을 추구한 아나키스트 작가이기도 했는데,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은 인류에 내린 저주라고 주장하는 책을 자비로 출판할 정도로 인종차별을 혐오했다. 사실 모턴은 러브크래프트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41] 다만 히틀러에 대해선 나중에 가서 무식한 놈이라고 자주 깠다. [42] 사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와중에도 미국의 반독, 반파시스트 정서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심지어는 제너럴 포드를 비롯한 기업가들이 히틀러를 열렬히 지지했을 정도. 미국에서 반독 정서가 팽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참전 이후이다. [43] 러브크래프트는 1937년에 사망했으므로 2차 대전 중에 있었던 홀로코스트는 커녕 1938년에 일어난 수정의 밤 폭동조차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나치는 집권 전부터 자잘한 인종폭력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데다 이게 집권 후에는 더 심해져서 기존에 나치당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나치의 유사과학스러운 배타적 인종주의에 질려버린 일부 지지자들은 학을 떼고 히틀러와 나치를 손절하거나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는데 러브크래프트도 이런 케이스일 가능성이 크다. [44] 친구인 코난 사가의 로버트 E. 하워드도 이러한 논란이 있는데, 하워드의 글에는 딱 졸라 짱센 백인 주인공이 다른 인종들 다 쳐바르고 그들의 여자도 얻는다는 수준의 이야기도 있다. 코난 사가만 해도 백인 악당들을 공격하는 흑인 원주민들과 싸우며 같은 백인이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소리를 코난이 한다. 다만 하워드의 경우 아웃사이더적인 캐릭터를 동경해서인지 말년에는 흑인 캐릭터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의 경우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45] 동성애자였던 로버트 H. 발로의 집에서 7주 동안 함께 산 적도 있다. 러브크래프트 사후 자신의 작품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 이도 어거스트 덜레스가 아닌 발로. 다만 게이/오해 문서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단지 한 집에서 같이 산다고 해서 다 그런 사이인 것도 아니니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적으로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이 같이 산다고 해서 항상 그들이 커플 사이인 것은 아닌 것과 같고, 하물며 사회적으로 동성간의 동거는 여전히 널리 용인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게이인 동성과 동거한다고 해서 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가난하니까 친구 집에서라도 먹고 살았겠지 [46] 무려 97명의 친구들과 편지로 연락했다고 한다. [47] 알프레드 히치콕이 영화로 만들어서 유명해진 소설 싸이코의 원작자. 러브크래프트 등 위어드 픽션 작가들과 교류할 당시에는 동료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1917년생, 1994년 사망.) [48] 러브크래프트가 임종 한 달전 쓴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라는 소설도 이 일화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49] 1931년 7월 11일 브룩클린에서 찍은 사진으로, 왼쪽에 있는 인물은 러브크래프트의 지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 자신도 호러, SF 소설가였던 프랭크 벨내프 롱(Frank Belknap Long Jr, 1903.4.27 ~ 1994.1.3). # [50] 그런데 1920~30년대만 해도 미국의 경제난 때문에 파시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찰리 채플린도 미국에서 알게 모르게 파시스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자 분개해서 내놓은 작품이 바로 위대한 독재자다. [51] 남편은 미쳐서 정신병원에서 죽었지, 집안은 몰락했지, 아버지도 심장마비로 사망했지, 아들은 건강 문제로 고교 중퇴했지... [52] 오늘날로는 대략 7~8불 정도의 가치로 대략 7000~8000원. [53] 이 때문에 러브크래프트는 대장암에 걸리고 말았는데, 공포소설의 대가답게 이 병세가 진행되는 과정을 적은 일지도 공포스럽다. [54] 그러니까 입고 있던 옷 빼고 모두 도둑맞았다는 말. [55] 몇 페이지에 걸쳐 썼다! [56] 아마추어 언론인으로, 1922년 말에 미국 최초의 아마추어 언론협회인 전국 아마추어 언론협회(National Amateur Press Association, NAPA)의 협회장을 갑자기 사임하는 바람에 러브크래프트가 임시로 회장직을 맡았다( #). 참고로 러브크래프트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설립된 아마추어 언론협회인 연합 아마추어 언론협회(United Amateur Press Association, UAPA)에서 활동했고, 영국 영어의 우월성을 설파하거나 UAPA 내 다른 기여자들의 "미국주의"나 "속어(슬랭)"에 대해 대놓고 비판했다. [57] "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의 저술을 의뢰한 사람이다. [58] 글 실력은 그의 동료 작가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가 더 낫다. 애초에 이 사람은 순수 문단 작가였다가 펄프픽션 작가가 된 케이스라. [59] 야미구로가 섬기는 물고기 괴물. [60] 만화에 러브크래프트 소설이 등장한 적도 있으며, 단편 <표착물>은 분위기상으로 거의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정석이라고 불릴 정도. 심지어 러브크래프트의 해산물 공포증도 오마주했다. 그 외에도 사이렌이라는 단편은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소설들과 완벽하게 유사한 분위기와 플롯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소용돌이같은 작품에서도 그 흔적이 조금은 보인다. [61] 그것도 과학력으로 되살아난 언데드. [62] 물론 영화화되기 전에도 반지의 제왕 등은 유명했지만, 영화화되고 나서야 대중매체에서 패러디 등으로 대중이 금방 인식할 수 있는 시리즈가 되었다. [63] Lord Dunsany. 아일랜드의 전설을 소재로 많은 글을 쓴 문학가로 러브크래프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64] 기동전사 건담 0080의 프라모델 박스 아트 등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65] 동료중엔 황비홍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다. [66] 재밌게도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친구들을 두 명씩이나 커플로 만들어주는 데에 일조했다. 직접적으로 중매를 선 건 아니고 친구 작가에게 다른 작가를 만나보라고 추천하는 식으로 이어주었다. [67] 참고로 이 <공포의 보수>라는 제목은 Le Salaire de la peur /The Wages of Fear라는 1953년 프랑스 영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명작이다. 사회풍자와 재미를 갖푼 걸작. 이브 몽땅 주연. 1977년 바로 윌리엄 프리드킨 리메이크했다가 말아먹은 바 있다. [68] 예를 들면 크툴루(크툴후)를 '크투루프'라고 번역한다든지. [69] 얼마나 형편없냐면 니알랏토텝을 일본식 발음 그대로 읽어서 '냐루라토호테프'라 하는 거나 네크로노미콘의 명칭이 '네크로노미콘'과 '사령비법'을 오가는 건 봐준다 쳐도, 가히 압권은 ' 천 마리 새끼를 거느린 검은 암염소'를 '검은 암염소에게 천 마리 젊은이를 제물로'라고 엉망진창으로 번역했다. [70] 다른 작가의 소설도 같이 들어가 있다. [71] 원작에서는 촛대로 때려 죽였다. [72]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원문의 비올라 다 감바 바이올린, 비올라는 엄연히 다른 악기다. [73] 국내에서는 러브크래프트의 학술적 연구가 드물기 때문에 최초일 수도 있다. [74] 주로 해외 원작을 만화화 하는 작가라고 한다. 막심 고리키의 작품도 만화화 했다고 한다. [75] 출처는 황금가지 러브크래프트 전집 6권 409쪽. [76] 영화 좀비오의 원작이다. [77] 장편 영화로는 2번 나왔다. 둘 다 원작을 마개조한 수준의 이야기로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찬밥 취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