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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1:07:41

토리야마 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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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1c1d1f> 일본의 1억부 클럽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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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e5e5e5> 순위 만화 작가 연재 기간 권수 수치
1위 원피스 오다 에이치로 1997년 ~ 연재 중 110권 5억 2000만부
2위 고르고13 사이토 타카오 1968년 ~ 연재 중 206권 3억 100만부
3위 명탐정 코난 아오야마 고쇼 1994년 ~ 연재 중 105권 2억 7,000만부
4위 드래곤볼 토리야마 아키라 1984년 ~ 1995년 42권 2억 6,000만부
5위 나루토 키시모토 마사시 1999년 ~ 2014년 72권 2억 5,000만부
6위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1990년 ~ 1996년 31권 1억 8,500만부
7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아키모토 오사무 1976년 ~ 2016년 201권 1억 5,650만부
8위 귀멸의 칼날 고토게 코요하루 2016년 ~ 2020년 23권 1억 5,000만부
9위 진격의 거인 이사야마 하지메 2009년 ~ 2021년 34권 1억 4,000만부
10위 맛의 달인 카리야 테츠(원작)
하나사키 아키라(그림)
1983년 ~ 2014년(휴재) 111권 1억 3,500만부
11위 블리치 쿠보 타이토 2001년 ~ 2016년 74권 1억 3,000만부
12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라키 히로히코 1987년 ~ 연재 중 131권 1억 2,000만부
13위 철완 아톰 데즈카 오사무 1952년 ~ 1968년 23권 1억부
도라에몽 후지코 F. 후지오 1969년 ~ 1996년 45권 1억부
터치 아다치 미츠루 1981년 ~ 1986년 26권 1억부
북두의 권 부론손(스토리)
하라 테츠오(작화)
1983년 ~ 1988년 27권 1억부
더 화이팅 모리카와 죠지 1989년 ~ 연재 중 136권 1억부
바키 시리즈 이타가키 케이스케 1991년 ~ 연재 중 150권 1억부
소년탐정 김전일 아마기 세이마루 (원작)
카나리 요자부로 (원작)
사토 후미야 (작화)
1992년 ~ 연재 중 83권 1억부
킹덤 하라 야스히사 2006년 ~ 연재 중 70권 1억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호리코시 코헤이 2014년 ~ 2024년 40권 1억부
주술회전 아쿠타미 게게 2018년 ~ 2024년 28권 1억부
출처 }}}}}}}}}

<colbgcolor=#fff,#1f2023> 전 세계의 만화 판매 순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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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e5e5e5> 순위 만화 국가 연재 기간 권수 수치
1위 슈퍼맨 미국 1938년 ~ 연재 중 15000화 6억부
2위 원피스 일본 1997년 ~ 연재 중 110권 5억 2,000만부
3위 배트맨 미국 1939년 ~ 연재 중 17000화 4억 8,400만 부
4위 스파이더맨 미국 1963년 ~ 연재 중 13500화 3억 8700만부
5위 아스테릭스 프랑스 1959년 ~ 연재 중 39권 3억 8500만부
6위 드래곤볼 일본 1984년 ~ 1995년 42권 3억 5000만부
7위 고르고13 1968년 ~ 연재 중 206권 3억 900만부
8위 도라에몽 1969년 ~ 1996년 45권 3억부
9위 럭키 루크 벨기에 1946년 ~ 연재 중 82권 3억부
10위 용호문 홍콩 1969년 ~ 연재 중 2,427권 2억 8000만부
11위 명탐정 코난 일본 1994년 ~ 연재 중 106권 2억 7000만부
12위 피너츠 미국 1950년 ~ 2000년 26권 2억 7000만부
13위 땡땡의 모험 벨기에 1926년 ~ 1976년 24권 2억 7000만부
14위 엑스맨 미국 1963년 ~ 연재 중 12000화 2억 6000만부
15위 나루토 일본 1999년 ~ 2014년 72권 2억 5,000만부
16위 스파이크와 수지 벨기에 1945년 ~ 연재 중 365권 2억 3000만부
17위 캡틴 아메리카 미국 1941년 ~ 연재 중 9000화 2억 1000만부
18위 철완 아톰 일본 1952년 ~ 1968년 23권 2억부
19위 블랙 잭 1973년 ~ 1983년 25권 1억 7,600만부
20위 슬램덩크 1990년 ~ 1996년 31권 1억 7,000만부
21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1976년 ~ 2016년 201권 1억 5,650만부
22위 디아볼릭 이탈리아 1962년 ~ 연재 중 862화 1억 5000만부
23위 스폰 미국 1992년 ~ 연재 중 600화 1억 5000만부
24위 더 팬텀 1936년 ~ 연재 중 3500화 1억 5000만부
25위 귀멸의 칼날 일본 2016년 ~ 2020년 23권 1억 5000만부
26위 진격의 거인 일본 2009년 ~ 2021년 34권 1억 4,000만부
27위 가필드 미국 1978년 ~ 연재 중 - 1억 3500만부
28위 맛의 달인 일본 1983년 ~ 2014년(휴재) 111권 1억 3,500만부
29위 블리치 2001년 ~ 2016년 74권 1억 3,000만부
30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1987년 ~ 연재 중 131권 1억 2,180만부
31위 터치 1981년 ~ 1986년 26권 1억 2000만부
32위 소년탐정 김전일
김전일 37세의 사건부 포함
1992년 ~ 연재 중 83권 1억 1500만부
33위 북두의 권 1983년 ~ 1988년 27권 1억 500만부
34위 더 화이팅 1989년 ~ 연재 중 136권 1억부
35위 Amar Chitra Katha 인도 1967년 ~ 연재 중 449권 1억부
36위 꼬마 유령 캐스퍼 미국 1949년 ~ 연재 중 - 1억부
37위 킹덤 일본 2006년 ~ 연재 중 70권 1억부
바키 시리즈 1991년 ~ 연재 중 150권 1억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2015년 ~ 2024년 40권 1억부
주술회전 2018년 ~ 2024년 28권 1억부
출처 1 / 출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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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a500,#000><colcolor=#000,#ffa500> 토리야마 아키라
[ruby(鳥, ruby=とり)][ruby(山, ruby=やま)] [ruby(明, ruby=あきら)][1]
'조산명 선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 한자음대로는 'ちょうさんめい'가 된다. 버드 스튜디오는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Akira Toriyama
파일:Akira-Toriyama-1.jpg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생 1955년 4월 5일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기요스정[2]
사망 2024년 3월 1일[3] (향년 68세)
신체 174cm|60kg[4] A형
직업 만화가, 게임 원화가, 디자이너
서명
파일:토리야마 아키라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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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a500,#000><colcolor=#000,#ffa500> 학력 아이치현립 오코시 공업고등학교 (디자인과 / 졸업)
활동 기간 1978년 ~ 2024년
데뷔 단편 '원더 아일랜드' ( 1978년)
프로덕션 버드 스튜디오 (BIRD STUDIO)
가족 배우자 미카미 나치[5] (1982년 결혼)
장남 토리야마 사스케 ( 1984년 출생)
장녀 토리야마 킷카 ( 1990년 출생)
차녀(이름, 출생 연도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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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데뷔 전2.2. 데뷔에서 첫 연재까지2.3. 드래곤볼, 전설이 되다2.4. 사망
2.4.1. 반응
2.4.1.1. 일본2.4.1.2. 대한민국2.4.1.3. 아시아2.4.1.4. 유럽2.4.1.5. 아메리카2.4.1.6. 기타
3. 특징
3.1. 화풍3.2. 취미3.3. 성향3.4. 오너캐
4. 만화가로서의 입지5. 작품 목록6. 수상 경력7.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 만화가 게임원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대표작은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이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6]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한 작가로 소년만화계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닥터 슬럼프 해적판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만화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에 드래곤볼이 정식 수입되면서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2. 생애

2.1. 데뷔 전

파일:토리야마학창시절.jpg
학창 시절의 토리야마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사고뭉치였고, 특히 동물과 탈것을 제일 좋아해서 항상 이런 것들을 그리면서 놀아왔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극장에서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를 관람했었는데, 수준급의 영상미에 충격을 받고 "나도 저렇게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점점 그림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포스터로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만화 애니메이션에 열중했지만,[7] 고학년부터 영화나 TV 드라마에 빠져들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자연스래 접할 기회도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서, 중학교 졸업 후에는 자신의 특기인 그림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 계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곧 졸업을 앞두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공부하기도 싫고, "어차피 나 정도 되는 실력이면 사회에서도 곧바로 통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서 부모님의 반대를 뿌리치고 곧바로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회사에 다녔을 때는 주어진 일거리를 착착 해내긴 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해서 지각을 밥먹듯이 했었고, 복장도 항상 간편하게 입고 다녀서 상사에게 혼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본인도 이런 환경에 싫증이 나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는데[8], 퇴사 이후에는 별 다른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백수로만 지내다가 금전적으로 심하게 쪼들리게 되었다.[9]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퇴사한 자신의 미래에 방황하던 중, 우연히 카페에 놓인 만화책에서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 광고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우승 상금이 무려 50만 엔이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발견하자, 곧바로 돈을 타내기 위해서 투고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에 맞추지 못해 입상에 실패하여 결국 상금을 얻지 못했고, 오기가 생겨서 이번에는 소년 점프에 투고작을 보냈는데 역시나 떨어지고 말았다.[10]

2.2. 데뷔에서 첫 연재까지

하지만, 당시 소년 점프의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그의 투고작을 보고 재능이 있다고 느껴 원고를 더 많이 보내달라고 연락을 하였다. 데생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의 구도를 사용해서 대상을 그렸다는 점과 효과음 등을 영어로 표현한 점이 토리시마의 눈에 띈 것이다. 토리시마에 의하면 실제로 당시 투고작도 재미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 시절 유행했던 스타워즈의 패러디였기 때문에 잡지에는 실을 수 없어서 탈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1년 간 500 페이지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뒤 1978년에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했다. 다만, 당시 인기순위는 최하위를 먹었다고 한다.[11] 여담으로 오바 츠구미 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 바쿠만>에서 나왔던 일화인 '편집자가 만화가의 원고를 다 보고는 눈앞에서 갈아버렸다'의 주인공이 바로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라는 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1983년 <테츠코의 방> 인터뷰
또 다시 엄청난 분량을 폐기당하는 와중 토리시마가 점프에 여캐가 적으니 여캐가 주역인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했고 그렇게 내놓은 단편이 <걸 형사 토마토>. 이 단편이 독자의 호응을 얻자 정식 연재가 결정됐다. 그리고 이 단편의 세계관을 활용해서 캐릭터들의 디자인을 조금 바꾼 뒤, 동물, 로봇, 인간, 외계인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장편 개그 만화 <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원래는 만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재 과학자인 '닥터 슬럼프' 노리마키 센베가 주인공이었지만, 토리시마는 1회용 캐릭터였던 노리마키 아라레의 잠재력을 보고[12] 그녀를 주인공으로 바꿔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서 토리야마는 아라레가 주인공인 단편을 하나 그려와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누구의 의견을 들을지 결정하기로 했는데, 예상대로 반응이 매우 좋아서 아라레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만화의 인기는 아라레가 주인공이 된 이후로 더 높아지면서 대대적인 히트작 수준까지 성장했고, 토리야마 본인도 1981년, 1982년 2년 연속 일본 납세자 순위 기타 문화인 부문 1위(전체 35위), 연소득 5억엔을 넘은 최초의 만화가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1983년에는 TV아사히 토크쇼 <테츠코의 방>에 단독 출연하기도 하는 등, 20대 후반에 이미 유명 만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연재 당시만 하더라도 코미디 만화에 있어서는 아키타 쇼텐 주간 소년 챔피언이 독보적 위치에 있었으나, 그 독자층을 주간 소년 점프로 끌어오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서 소년 점프 1차 중흥기의 주역 중 하나로 발돋움하였다. 하지만, 높은 인기만큼이나 스케줄도 살인적으로 늘어나서, 연재 1년 째에는 사흘에 한 번밖에 못 잤다거나, 철야를 6일 연속으로 한 적도 있었다거나 하는 등 심한 몸고생을 하게 되었다. 어찌나 과로였는지 작업한 기억이 아예 없는 회도 있었다고. 이후 <닥터 슬럼프>는 소재 고갈을 이유로 연재 5년 차가 되던 1984년에 완결이 났다. 나중에 토리시마가 밝히길, 닥터 슬럼프는 매 화마다 주제가 바뀌는 옴니버스 만화였던 데다, 토리시마가 해당 회차의 개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딱지를 놓으면 그 회차 전체의 스토리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토리야마가 매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엄청 고생하긴 했지만, 데뷔하고 2년 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화풍이 이미 정립되었음이 보인다. 이후로 그림체가 자주 변하기는 해도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변하는 것에 가깝다. 그림 실력은 있었어도 만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던 문외한이 2년여의 수련으로 완전체에 가깝게 성장한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토리야마는 처음 만화가가 될 때,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일을 접겠다고 자신의 부모님과 약속했었는데 2년 만에 당당히 성공을 이룬 것이다.

2.3. 드래곤볼, 전설이 되다

파일:609306-dragon-ball-super-akira-toriyama-muestra-nuevos-disenos.jpg
이후 닥터 슬럼프를 끝내고 새롭게 연재한 차기작이 바로 그 유명한 < 드래곤볼>이다. 당시 토리야마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디어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만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서 제발 완결내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하였고, 토리시마는 그의 의견을 윗선에서 전달하여 닥터 슬럼프의 완결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총 편집자는 한창 인기를 끄는 만화를 갑자기 끝내버릴 순 없었기에 닥터 슬럼프보다 더 재밌는 만화를 가져오면 허락하겠다.는 실로 무모한 조건을 내걸었고, 이 말을 들은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를 뛰어넘는 재밌는 단편을 그리기 위해 일주일 내내 매달리던 닥터 슬럼프 원고를 5일 만에 해치우고, 나머지 2일을 단편에 전념하는 등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그러나, 내놓는 단편들마다 별 반응을 얻지 못해서 닥터 슬럼프 완결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토리시마는 회의를 위해 직접 나고야에 있는 토리야마의 집으로 찾아갔다. 근데 거기에서 성룡의 영화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토리야마의 특이한 모습을 발견하자, "그렇게 성룡이 좋다면 아예 무술 만화를 그려보는 게 어떠냐."고 그에게 제안했다. 토리야마는 이 의견에 동의하여 추가로 서유기에 아이디어를 얻어왔고 도입부는 토리야마가 좋아하던 미래소년 코난에서 따와 전형적인 Boy Meets Girl로 시작하는 # # <드래곤 보이>라는 단편을 제작했고, 이 만화는 드래곤볼의 시초가 된다.

다만, 드래곤볼은 연재 시작 극초기에는 인기 순위가 연재작 중 15위권으로 상당히 인기가 적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연재가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나, 당시 애니메이션 < 닥터 슬럼프>의 말도 안 되는 성공[13]을 거둔 후지 TV는 이미 연재 전부터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은 무조건 애니메이션화한다.는 계약을 이미 체결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연재 시작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제작이 들어갔다.[14][15]

편집부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작품을 그냥 끝내버릴 수도 없었기에 결국 드래곤볼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하며, 토리시마와 토리야마 두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회의한 결과, 주인공인 오공의 캐릭터성이 수수하고 수동적이라 인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림과 동시에 토리야마가 액션씬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토리시마가 당시 액션 만화로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던 북두의 권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장르를 본격 액션 만화로 바꿀 것을 제안했고[16] 이에 따라 오공은 더욱더 강해지고 싶어하는 무골호인으로 밀고 이와 대비되게 얌체 성향을 띤 캐릭터 크리링을 투입시키고 수련을 통해 강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어필시키고자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참가시키면서 드래곤볼의 인기는 급격히 치솟게 되었다.

또한 이전 드래곤볼의 악당들은 확실한 빌런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는 악당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였는데, 그러던 와중에 토리시마가 언급한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에서 영감을 얻어 상대방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악당 캐릭터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피콜로 대마왕이었다. 이렇게 토리야마는 만화의 장르를 자연스럽게 개그 모험물에서 액션물로 변경, 그리고 드래곤볼은 전설이 되었다.

그 결과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일개 만화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커져 버려 연재를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달했고 연재를 쉬기라도 했다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슈에이샤 매출에 치명타를 맞고 [17] 점프 편집부, 애니메이션 제작진, 완구회사 직원들은 물론이고 문화적 영향력이 엄청났기에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분야의 산업들도 죄다 드래곤볼 특수를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피콜로 대마왕부터 늘어난 작업량은 더욱 더 증가.[18][19] 셀 편 종료 때 일본 문부성의 대신(한국에서는 장관)이 토리야마를 찾아 연재를 계속 이어가달라고 부탁했다는 도시전설이 존재했다.[20] 역시 만화가인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외엔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러면서도 10여 년간 연재 펑크가 한 번도 없었다.[21]

심지어 드래곤볼 연재 기간 중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의 게임 캐릭터, 몬스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부정기 단편 연재, 그 외에도 자동차 디자인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 작업 의뢰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22]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나 본인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무리한 스케줄로 만화가들의 직업병인 건초염이 생겼기에, 15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만화만 그린 것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장기연재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끔씩 단편연재만 했다.[23] 단편 역시도 점프 계열의 새 잡지 창간 기념 등을 이유로 출판사에서의 요청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실상 실질적인 만화작가 활동은 드래곤볼을 끝으로 그만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드래곤 퀘스트 포함 다른 작업은 계속 진행해왔다.[24]

2009년말에 완전한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25]하지만 이후 악명 높은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원작자인 자신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자 앞으로 스스로가 더 나서서 관여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드래곤볼 신극장판, 드래곤볼 슈퍼의 스토리 원안을 담당하고 있고[26], 직접 드래곤볼의 프리퀄인 은하패트롤 쟈코라는 단행본도 그렸다. 그후 24년 2월 병원 입원 전까지 드래곤볼 다이마에도 깊게 관여하여 제작의 중심으로 활동했었다.

여담으로 작중 천하제일 무술대회에서 본인을 모티브로 한 이란 캐릭으로 참가했었다.

2.4. 사망

파일:tori2017aki.jpg
2017년 당시의 토리야마[27]
팬, 관계자 여러분께

갑작스런 보고입니다만,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씨는 2024년 3월 1일 급성 경막하 혈종으로 인하여 영면에 들어가셨습니다.
향년 68세였습니다.
열심히 착수한 일도 많이 있으시고,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들이 있었을 터이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만 고인 분께서는 만화가로서 여러 작품을 세상에 남겨 왔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분들이 지지해 주셨기에, 45년 이상에 걸친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실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토리야마 아키라 씨의 유일무이한 작품세계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러분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생전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또한 장례는 가까운 친척들만 모시고 치렀습니다.
평온을 원하는 본인의 뜻에 따라 조문, 분향, 헌화 등은 사양하겠습니다.
가족에 대한 취재에 대해서도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향후 고별회 등에 대해서는 미정이므로 결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해해 주시기를 잘 부탁드립니다.

2024년 3월 8일
주식회사 버드 스튜디오
주식회사 캡슐 코퍼레이션 도쿄
드래곤볼 공식 X 계정
솔직히 수상 소감을 말씀드리면 저는 예전부터 애니메이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제 작품이 애니메이션화 되었을 때도 부끄러워서 그다지 보지 않았습니다.
스탭분들에겐 죄송합니다만, 약 10년 전쯤에 갑자기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영화의 대본 수정을 요청받아 하는 김에 캐릭터와 배경 디자인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점은 스탭들에게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했죠.(웃음)
그래서 제가 도쿄 애니메이션 대상 페스티벌 공로상을 수상한 게 정말 부끄럽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애니메이션 작업 중에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아는 분은 거의 없겠지만 소년 점프 오리지널로 제작한 고스케님 리키마루님이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애니메이터 분인 아시다 토요 님을 만났습니다.
이 작품은 만화가 없었기에 회의가 필요했습니다.
매우 친근하셔서 금방 친해졌고 그분의 작품을 볼 때마다 속도감 있는 터치에 감동했습니다.
"과연, 이런 터치감이라면 드래곤볼도 작화에 속도감이 올라갈 것 같네."
그 후 이 터치감을 진행하면 그야말로 대성공!
작화에 들이는 시간도 이전에 3분의 2가 되었을까요?
서로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주고받고 정말 알찬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시다 씨의 명복을 빕니다.
2024년 가을부터 개봉되는 '드래곤볼 다이마'는 원래 저 없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기획되었지만 여기저기 조언을 받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이 프로젝트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전체 스토리뿐만이 아니라 세계관, 캐릭터 디자인, 메카 등 다양한 측면에서 관여했습니다.
강렬한 액션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생각하니 이 시리즈를 재밌게 시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저를 응원해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젊었을 때의 습관 때문인지 건강에 그닥 자신이 없는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마지막 공식 코멘트 #
2024년 3월 1일, 급성 경막하 혈종[28]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3월 8일 정오에 뒤늦게 알려졌다.[29][30] 소년 점프 부고

사망년도는 공교롭게도 드래곤볼 연재 40주년으로, 같은 해 하반기에 토리야마가 제작에 참여한 드래곤볼 40주년 기념 시리즈 신작 애니메이션인 드래곤볼 다이마의 방영이 예정되어 있었다.[31][32]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소식은 알려져 있긴 했으나,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은퇴 언급조차 없이 왕성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그가 참여한 드래곤볼 다이마 드래곤 퀘스트 XII 선택받은 운명의 불꽃 모두 공개 예정인 작품이고, 샌드랜드 또한 이번 년도 4월에 게임이 발매되어서 미디어 믹스 전개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와중이었다. 특히 슈에이사에서는 드래곤볼 40주년을 기념으로 각 유명 만화가들이 단행본 표지를 새로 그리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토리야마는 그걸 보지못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4.1. 반응

평소 일본 만화계를 넘어 세계에서도 거장으로 평가 받는 유명한 인물이었던 만큼 전 세계의 수많은 만화 팬들과 관계자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등의 파급력에 힘입어 전세계적으로 업계를 가리지 않고 거대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밑에 작성된 것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서 추모를 하였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드래곤볼이 실존한다면 7개 모아서 살려내고 싶다'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33] 그 외에도 그의 작품인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의 캐릭터들이 정장을 입고 꽃을 들며 창조주라 할 수 있는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거나 심지어 오열하는 등의 팬아트나 작가의 오너캐 토리봇 머리에 링이 달린 모습의 팬아트를 그리거나 혹은 드래곤볼 GT의 주제가 단단을 편곡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2.4.1.1. 일본
지난해 펴낸 책 닥터 마시리토의 최강 만화술에서 함께 일했던 게 마지막 일이었어요.
'그 시절의 토리시마와 토리야마'가 둘이 만든 마지막 만화가 되었습니다.
45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토리야마 씨, 당신은 최고의 만화가였습니다.}}}
정말로, 너무나 갑작스러운 토리야마씨의 부고로, 아직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한가득합니다.
토리야마씨와는, 제가 소년 점프의 라이터였을 무렵부터의 인연으로, 담당 편집자 토리시마씨의 추천도 있고, 드래곤퀘스트를 만들어갈 무렵에, 그에게 게임의 그림을 부탁했었습니다.
그로부터 37년가량, 등장인물의 캐릭터 디자인, 몬스터 디자인, 도저히 셀 수 없을 정도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주셨습니다.
드래곤퀘스트의 역사는 토리야마씨의 캐릭터 디자인과 함께 했습니다.
토리야마씨, 故 스기야마 선생님은 드래곤퀘스트를 오랜 기간 함께 만들어온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셨다니...
이 이상,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유감입니다.}}} 힘이 빠져 기력이 없습니다.
이런 일에 말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쓰겠습니다. 쓰기 시작하면, 말하고 싶은 것이 많기에, 매우 긴 문장이 될 것 같지만, 가능한,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그저,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서, 난문 이해바랍니다.[36]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과장이 아니라 댁에 놀러 갔을 때, 우리 집에 머무르러 오셨을 때, 놀러 나갔을 때 전부가 즐거웠던 추억밖에 없어서, 전화할 때마다 지칠 때까지 웃었습니다.
재밌는 사람이었다.
변태에, 귀엽고, 독설에, 겸허에.
본직인 만화에선, 합작도 했었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그래도, 99% 만화의 얘기를 한 적은 없는 사이였네.
만화가로서, 보고 있는 풍경, 작가의 수준도 너무 멀어서, 위대함을 의식한 적이 없었습니다.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과 접할 때는 티끌만큼도 그것은 느끼지 못했다. 인품이네요. 그렇기에 위대한 만화가라고 하기보단, 지금도 친구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작년 여름, 내가 수술하기 전에, 어딘가에서 들은 듯, 메일을 보냈습니다.
정~말로, 메일이라니 드물고, 걱정스럽게 내 몸을 염려하는 내용.
사십년지기이지만, 토리야마씨가, 그렇게 상냥하게 대한 건 처음이었을지도. 서리가 내리려나 생각했지요. 언제나 농담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밖에 안 했으니까요.
라고 할까, 남의 걱정 할 때가 아니잖아, 진짜.
그 조금 전이었든가 전화했을 때, 그 무렵, 여러모로 몸이 안 좋았던 저는 "아마 먼저 갈 테니까, 송별회라도 해주십쇼, 토리야마씨가 쏘는 거로! 또, 몸값 올라가게 연설 부탁해요!"라고 약속했는데, 지켜지지 못했네요.
메일을 주신 뒤, 왜 전화하지 않았던가, 그게, 매우 후회됩니다.
이제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오래 전화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잔뜩 남아있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흥미도 없는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건성으로 들어줘도 좋으니,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습니다.
저의, 또 달라는 메일의 답장에, 가볍게 OK라고 써놓은 게 최후라니, 안 돼요.
괴롭습니다.}}} 너무나도 이릅니다.
뚫린 구멍이 너무나도 거대합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옵니다.
어릴 적부터 너무 동경해 와서 처음 이름을 불러주신 날의 일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친구"라는 말로 불러주신 날의 귀갓길 키시모토 작가와 성대하게 들떴던 날도 그립습니다.
마지막에 나눴던 대화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화 따위 읽으면 바보가 된다고 하던 시대부터 달려와
어른도 아이도 만화를 읽으며 즐길 수 있는 시대를 만드신 한 분이시며
만화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세계에 갈 수 있구나, 라는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당당히 나아가는 히어로처럼 보였습니다.
만화가에 국한되지 않고 수많은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소년 시절에
드래곤볼 연재 당시의 흥분과 감동이 각인되어 있겠죠.
그 존재는, 크나큰 버팀목입니다.
같은 무대에 선 우리들 세대의 만화가에게 있어
토리야마 선생님의 작품은 다가갈수록 거대한 존재였습니다.
무서울 정도로요.
그런 한편, 자유분방한 선생님과 마주하면 마냥 기쁩니다.
우리들은 혈액에서부터 토리야마 선생님을 사랑하니까.
토리야마 선생님의 남겨진 창작성 풍부한 세계에 경의와 감사를 담아서, 마음 깊이 명복을 빕니다.
천국이 선생님이 상상해 오신대로 유쾌한 세계이길 바라며.}}} 갑작스런 일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토리야마 선생님에게 언젠가 물어 주었으면 했던 일,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초등학생 저학년에서 Dr.슬럼프, 고학년에서 드래곤볼과 계속 선생님의 만화와 함께 자랐고, 생활의 일부에서 선생님의 만화가 옆에 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싫은 일이 있어도 매주 드래곤볼이 그것을 잊게 해줬어요. 아무것도 없던 시골 소년인 나에게 그것은 구원이었습니다.
정말 드래곤볼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에요!
대학생 때, 갑자기 제 생활에 오랜 세월 당연하게 있던 그 드래곤볼이 끝났습니다.
엄청난 상실감에 휩싸여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드래곤볼을 만들어 준 선생님의 위대함을 진심으로 알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나도 선생님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
하고 선생님의 뒤를 쫓듯이 만화가를 지향하는 사이에 그 상실감도 없어져 갔습니다.
만화 만드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을 쫒아감으로써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제 지침이었어요.
동경이었습니다.
선생님께는 폐가 되실지도 모르지만 제멋대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야말로 구원의 신이자 만화의 신이었습니다.
처음 뵀을 때 너무 긴장해서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하지만 데즈카상의 심사회에서 몇 번이나 뵙는 사이에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래곤볼 칠드런으로서 오다 씨와 둘이서 아이로 돌아가 마치 경쟁하듯 얼마나 드래곤볼이 재미있었는지를 떠들고 이야기했을 때, 그다지 흔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조금 수줍은 미소를 짓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 막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드래곤볼이 끝났을 때 이상의 엄청난 상실감이 엄습했고...
아직도 이 마음의 구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드래곤볼도 읽을 수 없어요.
선생님께 전하고 싶은 이 문장도 제대로 써져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전 세계 여러분이 아직도 선생님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드래곤볼의 소원이 하나 이루어진다면...죄송합니다...
그건 제멋대로인 일일지도 모르지만, 슬퍼요 선생님.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선생님, 45년 동안 많은 즐거운 작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겨진 가족 여러분께 있어서는 지금은 아직 깊은 상심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부디 몸조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 선생님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합니다.}}} 믿고 싶지 않아.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머릿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도, 만날 때마다 토리야마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오공을 부탁합니다.' 라는 말을 떠올리면,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공의 곁에 있자.' 라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부디 편안한 여행이 되기를.}}}
* 슬램덩크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 트윗
* 동인지 드래곤볼 AF, 드래곤볼 슈퍼 만화판 작가 토요타로 트윗
* 아이실드 21, 원펀맨 리메이크 작가 무라타 유스케 트윗1 트윗2
* 20세기 소년, 몬스터, PLUTO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 트윗
* 근육맨 시리즈 원작자 유데타마고 트윗
*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각본가 코야마 타카오 트윗
* 베지터의 전담 성우 호리카와 료 역시 공식 X 계정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토리야마를 애도했다. # 추가 트윗[38]
* 피콜로의 전담 성우 후루카와 토시오도 공식 X 계정에서 토리야마를 애도했다. #
* 야무치의 전담 성우 후루야 토오루도 X 계정을 통해 토리야마를 애도했다. #
* 우이스의 전담 성우 모리타 마사카즈도 공식 X 계정에서 토리야마를 애도했다. 트윗.
* 리메이크판 노리마키 아라레의 전담 성우 카와타 타에코도 공식 X 계정에서 토리야마를 애도했다. 트윗.
* CyberConnect2[39]의 CEO 마츠야마 히로시 트윗. 결국 슬픔을 참지 못하고 직원들과 함께 다음 주 월요일까지 임시 휴업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
*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정례회견에서 '개인적으로는 닥터 슬럼프가 추억이 깊은 작품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애도를 표했다. #
* 러브히나, 마법선생 네기마 작가 아카마츠 켄 참의원 의원은 '예산위원회의 의원들 사이에서도 토리야마 선생의 부고는 화제'였다고 언급하면서, 관련 소식을 리트윗했다. #
* 드래곤볼 Z 폭렬격전에서도 트위터 게임 내 공지로 애도를 표했다.
* 작곡가 타나카 코헤이 추모 포스트.
* 가수 타카하시 히로키의 추모 트윗.
* 싱어송라이터 카게야마 히로노부의 추모 인스타그램
* SAND LAND 제작위원회 트윗.
* 스파이 패밀리의 작가 엔도 타츠야도 추모 트윗을 올렸다.[40] 트윗.
* 투 러브 트러블 작가 야부키 켄타로 트윗
* 레벨 파이브 사장 히노 아키히로 트윗
* 해파리 공주 작가 히가시무라 아키코 트윗
* 염신전대 고온저 에스미 소스케(고온 레드)의 배우 후루하라 야스히사도 애도의 글을 남겼다. 트윗[41]
* 테니뮤 출신 뮤지컬 배우 카토 카즈키와 이레이 카나타가 추모와 애도의 글을 남겼다. # #
* 메이드 인 어비스 작가 츠쿠시 아키히토 트윗
* 청의 엑소시스트 작가 카토 카즈에 트윗
* 페어리 테일 작가 마시마 히로 트윗
* 블리치 작가 쿠보 타이토가 팬클럽 소통 창구를 통해 애도를 표했다. #
* 더 화이팅 작가 모리카와 조지가 애도를 표했다. #
* 애니메이터 쿠보타 치카시[42] 트윗
* 일러스트레이터 사이토 나오키 트윗
* 드래곤볼 애니메이션의 작화로 참여했던 애니메이터 시다 나오토시 트윗
* 성우 히라노 아야[43] 역시 토리야마 아키라와 3월 9일에 급사소식이 나온 마루코의 성우 TARAKO를 동시에 추모했다. #
* 성우 카지 유우키가 애도를 표했다. #
* 크레용 신짱의 주인공 노하라 신노스케의 2대 성우 코바야시 유미코가 애도를 표했다. #
* 유한회사 소라의 사장이자 별의 커비, 스매시브라더스의 아버지인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애도를 표했다. 트윗 이어서 슈퍼 스매시브라더스 얼티밋에 참전한 용사들의 모션은 토리야마의 액션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
* 토리야마와 함께 게임 제작에 참가했던 작곡가 시모무라 요코가 애도를 표했다. #
* hololive 프로덕션 소속 버츄얼 유튜버 히메모리 루나 역시 애도를 표하였다. 트윗[44]
* 철권 시리즈의 전 메인 프로듀서이자 반다이 남코 게임즈 오리지널 작품 총괄 매니저 하라다 카츠히로가 애도를 표했다. #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전 메인 프로듀서 오노 요시노리가 애도를 표했다. #
* NPB 시범경기를 중계하는 어느 일본 방송사의 코더는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스코어보드에 있는 아웃카운트와 볼카운트 표기를 드래곤볼로 바꿨다. #
* J리그에서 애도를 표했다. #
* 은혼 작가 소라치 히데아키와 애니메이션 팀이 애도를 표했다. #[45]
* 디지캐럿, 피타텐, 꼬마여신 카린등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코게돈보* 애도 트윗을 올렸다.[46] 같은 날 노리마키 아라레의 그림을 공개했다.
* 드래곤볼Z를 방영한 TOKYO MX는 2024년 3월 12일에 추모 메시지로 애도를 표했다. #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작가 호리코시 코헤이도 몇 주 뒤 코멘트로 애도를 표했다. 이후 40권의 부록으로 손오공과 프리저의 대치 장면을 오마주한 그림을 넣었다.
* 일상의 작가 아라이 케이이치는 이후 동월 23일 손오공과 부르마의 첫 만남을 그린 그림을 올리며 그를 애도했다.
2.4.1.2. 대한민국
2.4.1.3. 아시아
2.4.1.4. 유럽
2.4.1.5. 아메리카
2.4.1.6. 기타

3. 특징

솔직히, 나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만화가 연재되는 동안, 계속 그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일본 소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뿐이었다. 내 만화의 역할은 오락 작품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감히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 이상,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 토리야마 아키라, 2013년 #

3.1.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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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드래곤볼이 바로 떠오르는 특유의 화풍이 유명하다. 특히 눈매가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꼽히는데, 드래곤볼과 전혀 상관없는 게임이나 만화에서 저런 형태의 그림체가 나온다면 자동으로 드래곤볼이 연상될 정도.[48] 또한, 스크린톤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제대로 살려내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토리야마의 만화는 단순히 그림 실력 뿐만 아니라 훌륭한 컷 분배를 통한 가독성으로도 매우 큰 호평을 듣는다. 이는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토리야마에게 가르쳐준 것이라고 밝혔다. 만화의 속도감을 올려줄 수 있도록 공부해서 토리야마에게 전수해줬는데 감이 좋아서 빠르게 캐치했다고.

이것은 과거 1년간 500쪽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능력 아닌 능력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람은 처음 데뷔했을 때 이미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천재라고 일컫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능보다는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다져진 인물이다. 사실 500쪽의 원고를 퇴짜맞고도 또 도전할 수 있는 끈기와 노력의 재능만 보자면 천재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만 여기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래서 자잘한 작화 미스가 많은 편. 드래곤볼의 에피소드별 비판점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화질의 하락인데, 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이 짝다리나 짝눈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꽤 생기는 편이다. 프리저 에피소드와 마인 부우 에피소드를 비교해 보면 확 드러나는 부분이다. 아마 과도한 작업량으로 생긴 피로감과 시간 절감을 위해 스케치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펜선을 그어낸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49]

과감한 생략과 데포르메를 사용하면서도 양감 있는 화풍을 가꾸어내는 그만의 감각과 맛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얼핏 단순해보이는 그림체는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시점과 복잡한 장면에서도 의외로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가 그리는 등장인물은 어떤 각도로 그려도 웬만해서는 해당 등장인물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비롯한 기계같은 사물을 묘사하는 능력도 정평이 나 있는데, 돈이 없던 시절 갖고 싶었던 물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만족하던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디자인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화나 채색 등에서 균형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배경 등을 그리지 않아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력과 디자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토리시마는 평가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일류 메카 디자이너 못지 않은 탁월한 수준이다.[50] 야스히코 요시카즈처럼 메카닉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숨겨져서 나오는 인물.

드래곤볼이 완결된 후에는 Mac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디지털로 전향하게 되었다.[51] 그래서 삽화들은 펜터치가 둥글어졌고,[52] 채색 방식은 에어브러시 느낌이 많이 나는데, 어찌 보면 닥터 슬럼프나 초기 드래곤볼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과거보다 시간이 널널해진 영향 덕분인지 스크린톤의 비중이 상당히 늘었다. 디지털로 내놓은 최초의 작품으로는 네코마인과 카지카,[53]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8부터.
파일:toriyama akira drawing.png
다만, 아날로그 시절에 보여줬던 특유의 박력과 세밀한 묘사가 디지털 전향 이후로는 많이 죽어버린 지라 팬들에게는 오히려 과거보다 실력이 퇴보되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림을 비교해보면 스타일이 변했다는 체감이 확 느껴질 정도. 특히 디지털 전향 초기에는 아직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았던 건지, 퀄리티가 별로인 그림들이 자주 나와서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어디까지나 도구의 차이로 인해서 스타일이 변화했을 뿐, 그림 실력 자체가 줄어든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디지털에 확실히 적응한 듯한 2010년대 이후의 그림들은 아날로그 못지 않은 양질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들이 많다.

어릴 적부터 서유기 등의 고전과 전성기 시절 홍콩무협영화 등을 즐겨 보았던 탓에 액션묘사가 매우 실감나고 박력있을 뿐 아니라, '검술', '권각술', '기'나 '경공' 등의 동양적 요소들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녹여넣는데도 아주 탁월하다. 단적으로 드래곤볼을 보면 각종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한 세계관에서 무기도 없이 장풍과 권각술 등의 아날로그식으로 전투를 벌인다는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어냈다.[54] 이게 더욱 놀라운 것은 분명 첨단무기 따윈 동원하지 않는 고전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전투복과 스카우터를 비롯한 보조 오브제 등등이 어우러져 오히려 더욱 세련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긴 만화인생을 통해 화풍이 세 차례 변신을 하였으나 변화가 아주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에 꾸준히 읽는 독자는 그의 화풍이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나 데뷔 당시 화풍(소위 1기 화풍)과 지금의 화풍을 비교해보면 같은 만화가의 그림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올드팬들은 닥터 슬럼프 연재 후기~드래곤볼 프리저 편 때까지의 부드러운 화풍인 2기 화풍을 최고로 치며, 드래곤볼 Z를 통해 유입된 팬들은 Z 후반부와 비슷한 인조인간 편과 마인 부우 편 때의 3기 화풍을 가장 선호한다. 현재의 4기 화풍은 컴퓨터로 작업하기 편하도록 선이 간결한 것이 특징인데, 2기의 아기자기한 느낌이나 3기의 역동적인 느낌에 비해 다소 뒤떨어진다는 불평을 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그림체를 떠나 기본기와 구도, 전투씬의 타격감은 여전하다.

3.2. 취미

취미는 모델건 수집과 프라모델 조립. 피규어 제작 실력은 수준급이며, 바쁜 일정 와중에도 타미야의 1/35인형 개조 콘테스트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참가해서 수 차례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자기 작품 캐릭터의 피규어는 본인이 직접 감수했다고 한다.

상당한 메카 페치에다 중증 밀덕후라 자동차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밀리터리 잡지에 기고한 사례도 있다. 파인 몰드에서 발매한 본인 디자인의 1/12 월드 피규어 컬렉션을 보면 고강한 밀덕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프라모델 만드는 시간을 내기 위해 마감을 꼭 지켰다는 이야기도 했다. 닥터 슬럼프 연재 끝무렵에는 "나이를 헛먹었는지 갑자기 오토바이에 빠졌다"고 오너캐를 통해 털어놓기도. 당연히 만화 속에서도 그의 취향이 적극 반영되어서, 작중 그가 만든 세계관을 보면 다양한 탈것이나 여러 로봇들이 높은 빈도로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닥터 슬럼프 연재 당시에는 자동차를 엄청 많이 그려대서 토리시마에게 "이 만화는 자동차가 주인공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스타워즈 같은 SF 영화의 팬이기도 하지만, 차량에 대해서는 한 때 오토바이 레이서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다는 듯하다.

그가 손이 빠르고 작업효율이 대단하며 각종 만화 기법을 개발한 이유도 취미를 즐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는 신빙성 높은 이야기가 있다.

드래곤볼의 탄생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 홍콩 무술영화도 굉장히 좋아해서 성룡[55] 이소룡 영화를 수십번씩 돌려봤다고 한다. 드래곤볼의 머슬 타워 에피소드를 보면 이소룡의 사망유희에 나오는 탑을 모티브로 했으며, 악역인 타오파이파이는 디자인이나 행적 등등 취권 황정리를 모티브로 했다. 그 외에도 천하제일무술대회 특유의 링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단으로 된 경기장도 중국무술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비무대회장과 매우 흡사하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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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와 함께 있는 토리야마
동물 애호가이기도 했다. 서브 캐릭터로 동물을 많이 그리는 것도 사람만 그리면 얼굴을 나누기(서로 구분할 수 있게 디자인을 달리해서)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체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어릴 때 부모님께 침팬지를 기르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하며, 고양이를 시작으로 토끼, , 물고기 등의 사육을 취미로 하고 있다. 단행본의 작가의 말 코너를 보면 기르는 동물(특히 개)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이나 나온다. 유일하게 만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졸라서 기르기 시작한 햄스터 영향으로 이쪽도 괜찮아진 듯. 그가 기르는 애완동물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동물은 데뷔 전부터 길렀던 고양이인 쿠로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단행본에 깜장이라고 번역되어 소개된 토리야마 아키라의 고양이로 단행본에 쿠로의 자는 얼굴을 보고 카린님의 얼굴을 그렸다고 소개했다. 많은 애완동물을 길러왔지만, 그의 화실에 들어와서 자유롭게 노는 것을 허락받은 동물은 쿠로가 유일했다고 알려졌다. 고양이 자체가 자유분방한 동물이지만, 데뷔 전부터 길렀던 고양이 쿠로에게 각별한 정이 있었던 듯.

3.3. 성향

근면성실했던 만화가 시절의 행적과는 별개로, 세상 만사를 귀찮아하는 성격이었다. 상술했듯 만화가 데뷔 전에도 직장을 다니다가 싫증이 나서 망설임없이 때려친 전적이 있었고, 데뷔 이후 일화를 보면 은근히 기행끼가 다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의외로 그런 귀차니즘적인 성격이 작품 속 세계에서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닥터 슬럼프를 연재했을 때는 그리는 게 귀찮다는 이유로 결혼해서 아내가 그려주기 전까지는 펭귄 마을에 절대로 비가 내리지 않았고, 드래곤볼을 연재했을 때는 배경 그리기 귀찮다는 이유로 마을이고 별이고 죄다 한 방에 박살내버렸다.[57] 스크린톤을 일절 쓰지 않았던 이유 또한 상기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고,[58] 나중에는 아예 궁전만 그리고 끝인 정신과 시간의 방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전투씬을 그리기까지 했다. 초사이어인이 되었을 때 머리가 노란색으로 염색되는 건 먹칠하기 귀찮아서 그랬다는 말이 있지만,[59] 본래 검은색으로 땜빵하면 끝났던 오공의 머리에 입체감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한다. 물론 머리를 검게 칠하는 시간에 선 몇 개로 끝났기 때문에 작업량 감소에는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트랭크스를 등장시킬 때는 계속 초사이어인 상태를 유지시켰다고 한다. 가장 바빴던 시절에는 연필 밑선조차 귀찮아서 스킵하고 바로 선화 단계부터 시작했다고 하며, 연재 작품의 컬러 페이지는 매번 잉크를 사는 것이 귀찮아서 수성 사인펜을 접시에 바른 후에 그걸 으로 적당히 물을 풀어서 칠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어느새 그만의 매력으로 정착되었다.

귀차니즘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작품 제작에 참여했을 때 사소한 부분을 까먹어서 실수가 생기기도 했고, 질문이 들어올 때도 별 생각없이 그때마다 즉흥적으로 꾸며서 대답을 했던 편이라 이미 대답했던 같은 질문을 다른 인터뷰에서 받으면 답변이 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60] 이것 때문에 원작자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발언을 독자들이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61] 오다 에이치로와 서로 면담을 할 때는 자기가 잊어버린 설정들을 오다가 전부 찾아서 이야기했을 정도.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판이 심하게 말아먹은 뒤로 신극장판 제작에 크게 관여했던 일화[62]를 보면 어디까지나 방임주의 부모에 가까웠을 뿐, 애정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마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억지로 장기 연재를 이어나갔던 게 가장 큰 이유인 듯 하다.[63]

만화를 그리면 보통 히로인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히로인은 영어권에서 성별이 여성인 주인공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일본 만화에서 주로 표현하는 남주인공과 연애 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여성 캐릭터들을 말하는 히로인이다.[64] 다시 말해 토리야마의 작품들은 연애 요소가 거의 없는 것이다. 작가 자신도 "연애 이야기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이며, 드물게 연애나 결혼 이야기가 등장하더라도 대충 때우고 넘어가거나 매우 어색하다. 드래곤볼에서 18호 크리링의 연애, 베지터 부르마의 결혼하기까지의 과정, 부르마 야무치의 교제, 손오공 치치의 결혼생활, 손오반 비델의 교제 등.

참고로 위의 서술은 중간 과정을 생략해서 서술한 게 아니라 작품에 묘사된 연애스러운 장면이 대체로 저 정도이다. 긁어모으면 좀 더 있긴 하지만. 그나마 저 중에 커플 묘사가 가장 충실히 된게 18호/크리링이다.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묘사됐다. 그리고 오반과 비델은 오반이 둔하긴 하지만 그나마 둘이 서로 정드는 과정이 묘사된 편.

반면 부르마와 야무치는 둘 다 남자/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란 것만 묘사됐으나 커플될만한 사람이 따로 없으니 자동으로 된 거고, 손오공/치치 부부는 그런 과정도 전혀 없고 베지터/부르마는 그냥 갖다붙인 수준이다. 실제로 사이어인 편 당시에 베지터는 "트랭크스의 아버지"란 면이 강조되지 "부르마의 남편"이란 부분은 마인부우 전과 그 이후에서나 부각된다. 의외로 "아버지로서 손오공,"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베지터" 등 가족애 묘사는 좀 있는 편이지만 연애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독자에게 선물받은 팬티를 누렇게 만들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담배를 피웠던 헤비스모커였다. 당장 위에 게시된 인터뷰 영상의 썸네일만 봐도 담배가 대놓고 입에 물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흡연량은 대략 하루에 많으면 세 갑, 마감 전에는 100 개비 정도.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일정이 매우 빡빡해졌다보니 딱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담배 말고는 없어서 자연스레 골초가 된 듯. 반면 은 거의 못해서 기껏해야 맥주 한 잔이 한계였다고 한다.

스토리에 대해선 본인 외에 초대 담당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많은 조언을 해줬으며, 오공이 계왕을 웃기기 위해 썼던 개그나 퓨전의 아이디어 등은 카츠라 마사카즈가 생각해 냈다고 하는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다. 스토리 진행은 즉흥적으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 일부러 느슨하게 설정을 짰다고 한다. 그러는 편이 설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다, 스스로도 어떻게 되어갈 지 몰라서 두근거리면서 그릴 수 있었다고. 또한 막상 작업을 하다보면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과는 달라져 버리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스토리 진행에 한해서이고, 하나의 큰 스토리 라인을 시작할 때는 이런저런 캐릭터의 모습이나 설정, 배경 스토리 같은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설정을 짜놓고 작업을 했다. 꽤 많은 뒷 설정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재미없는 설명을 나열하는 것 같아서 대부분 그리지 않았다고 발언했으며, 작품의 뒷 설정을 만드는 것도 비교적 재밌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화에는 묘사되지 않는 역사나 세계관에 관한 설정, 스토리의 공백 기간 동안의 캐릭터의 생활 등의 메모와 자료가 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드래곤볼 대전집에서의 인터뷰나 점프 특집 인터뷰 등에서 작가 본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런 배경을 미리 짜지 않았다면 작화 뿐만 아니라 떡밥 회수와 반전, 연출로도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드래곤볼/프리저 편 같은 스토리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토리야마는 자신이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설정을 구상하고 이를 반영했던 것이며, 쓸 데 없는 부분에 대한 설명보다는 얼마나 작품을 재미있게 전개하고 연출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인 것이다. 의상 한 벌, 탈 것 하나 하나에 치밀한 설정을 짜는 데 골몰하는 나가노 마모루와 정반대의 스타일.

닥터 슬럼프를 연재했을 때는 어차피 대단한 내용의 만화도 아니라 스케치북만 지그시 보고 있어도 스토리가 알아서 떠오른다고 한 적이 있다.

스타워즈》의 열성 팬이었으며, 데뷔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패러디 만화 등을 자주 그렸다고 하고, 그 외에도 SF 작품을 대단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오공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이소룡이나 성룡을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하고,[65] 아이들과 슈퍼전대 시리즈를 보고서 패러디로 기뉴 특전대를 등장시켰다.

낯가림이 심해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얼굴이 공개된 것도 2017년이 마지막이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의 얼굴 사진들은 대부분 만화가로 활동했던 80 ~ 90년대의 과거 시절이다. 방송 출연마저도 2013년 후지TV <메자마시 테레비>에선 인터뷰 당시 몸통만 나왔고, 2016년 토리야마 아키라전 DVD 특전 인터뷰에선 목소리만 나왔다. 고로 2000년대 이후에 촬영된 사진들은 거의 손에 꼽는 수준으로 전무하다. 하지만, 이처럼 과거에 찍었던 사진과 본인의 거대한 몸값 때문에 대부분의 신상은 이미 세상에 알려져 있는 상태. 넉살좋은 아저씨처럼 생긴 것과 달리, 가족, 친구, 지인 말고는 사람을 대하는 게 다소 서툴었다고 한다. 어쩌면 어시스턴트를 고용하지 않았던 것은 본인이 살던 자택의 지리적 특성도 있겠지만, 낯가림이 가장 큰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생전에는 장난기 많은 순수한 성격이여서 닥터 슬럼프의 보너스 페이지에 묘사된 모습을 보면 어린애 같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내와 만나게 된 계기가 자신이 건 장난전화 때문이라고 하며, "그 센스와 지식에는 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만화가인 카츠라 마사카즈, 개그 트리오 니분노고(ニブンノゴ)의 보케인 오오카와 토모히데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나이는 토리야마가 이 둘보다 훨씬 선배. 카츠라와는 둘이서 공통 단편집인 카츠라 아키라를 출간한 적이 있었으며, 본인들의 만화 속에서도 서로를 출현시키는 등, 우애가 돈독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카츠라가 ZETMAN을 연재했을 때는 본인이 직접 극찬하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오오카와와는 드래곤볼의 할리우드 영화화에 대한 상담을 했다고 했을 정도로 10년 이상 사적으로 교류한 시간이 많았다.

드래곤볼 연재 당시엔 유달리 2인 1조로 나오는 캐릭터들이 많은데,[66] 이는 내레이션을 쓰지 않고도 상황 설명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원작에서는 작위적인 내레이션이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이다.

2015년 골든 위크에 공개되는 드래곤볼 Z 극장판 관련 토리야마 코멘트에서 사실은 화려한 액션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드래곤볼 이후에 제작된 단편들을 보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꽤나 심각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은 작가로 데뷔한 시절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테마이다. 토리야마가 그리는 이상향은 원시에 가까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과 테크놀로지가 동식물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며, 닥터 슬럼프의 배경인 “펭귄 마을”이 바로 그가 원하는 꿈을 직접 표현한 것이다. 드래곤볼 세계관만 봐도 수인들이 인간과 동등하게 취급받으며 함께 공존하고 있고, 대통령은 무려 테리어종의 개다.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 연재 말기에 등장한 “우주의 신”의 입을 빌어 자신의 사상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인간이 지금처럼 자연을 파괴하며 문명을 쌓아올리다가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경고였다. 비교적 진지한 분위기로 그린 샌드랜드나 카자카같은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인간들은 잔인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다."라는 메세지가 많이 전해져오는데, 이는 은하패트롤 쟈코에서도 어김없이 나온다. 왕도 중의 왕도라고 할 정도로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 나오는 만화의 클리셰이긴 하지만, 유독 토리야마는 이런 주제를 많이 써왔다.

3.4. 오너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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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본인과 토리봇[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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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토리봇'. 방독면을 쓴 로봇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다른 작품에서도 카메오로 종종 출현한다. 복장 바리에이션은 다양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초록색 츄리닝을 입은 버전이 디폴트로 정착되었다.

드래곤볼에서는 화폐나 현상수배지 등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나오며, 닥터 슬럼프 초기에는 새 모습으로 나오다가 나중에 가면 방독면 쓴 로봇으로 나와 갓짱에게 먹혔다. 갓짱한테 먹힌 뒤 센베가 개조해준 이후엔 저 주둥이에서 포탄도 나온다. 드래곤볼 점프 40주년 기념판 애니에서도 오반의 컴퓨터 바탕 화면 아이콘으로 나왔다.

게임 토발 No.1에서는 히든 캐릭터(영문명은 TRIX)로 등장.

4. 만화가로서의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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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소년물의 공식을 새로 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시켰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만화가로 서구권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그의 별세에 전 세계가 애도의 물결을 보냈다. 이러한 인기 덕분에 일본 만화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도 유명하며[68] 일본 내에서 납세 1위(기타 문화인 부문)[69] 를 2년 연속 기록한 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세금 때문에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도 못 가게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 물론 실제로는 정말로 못 가게 하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집 앞에 공항 직통 도로를 깔아줬다는 도시전설도 사실이 아니지만, 이러한 도시전설이 생길 만큼 토리야마가 내는 납세액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건 틀림이 없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만화가로서 이 정도로 성공한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그 예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미국 만화가의 최고 갑부인 찰스 M. 슐츠(< 피너츠>의 원작자)보다 더 부자인 만화가라며 토리야마를 취재한 적도 있다.

아울러 나가이 고 이후로 천재 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인물로,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년만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82년도에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가 나왔다"고 발언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화도 있다. 이 일화 때문에 한국에선 토리야마를 2대 만화의 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별명은 아니다. 다만 데즈카 오사무의 후계자라는 호칭 자체는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발언했기 때문에,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토리야마는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15년간 작품을 주간 연재하면서 펑크를 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더구나 블로그에서도 밝힌 것이지만 귀차니즘도 가지고 있고 모든 작업을 단독으로 진행한 것임에도 펑크를 낸 적이 없다.[70] 초인기 작가라 온갖 게임, 컬러, 일러스트등의 일감을 동시에 소화하고 심지어 기한도 몰아치기 식이었는데도 말이다.

인품도 훌륭하다. 천성에서 기인한 바가 크나 타인을 헐뜯거나 질투하지도 않고 화실에서 어시에게 매우 잘해준 것으로도 유명하고 [71] 그 많은 재산, 그 엄청난 유명세와 영향력에도 평생 범죄, 유흥, 과소비, 언행 등 구설수 하나 오르지 않고 직업과 가정에 충실했다. [72]

전에 없던 그만의 독특한 화풍도 인정받고 있다. 보통 작가들의 화풍은 전세대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토리야마는 너무나 특이해서 등단부터 자신만의 오리지널 화풍으로 인정받았다.[73] 어느 정도냐면 토리야마가 등단하기 전까지 점프잡지의 순위권의 거의 모든 만화들은 극화체, 실사체거나, 데즈카에게 영향받은 과장된 데르포메 화풍이 주류였는데 이 일본의 화풍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때에 한 무명 작가가 등단과 동시에 인기까지 쓸어 담으며 흐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74]

닥터 슬럼프가 한참 인기를 구가하던 당시엔 그의 화풍이 최신, 미래로 보였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끼친 영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점프에 이미 등단해 있던 인기 작가들도 공격적으로 자신의 화풍을 정립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게 만든 초대형 신인이었다. 1980년 1윌 이전 점프의 다른 작품들과 토리야마의 작품이 얼마나 이질적이고 앞서 간 건지는 그림 몇장만 나열해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닥터 슬럼프 연재 이전 점프 합본 표지 #

이 때문에 토리야마의 화풍을 따라하는 정식 작가가 동인지 아마추어 시장 외에는 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별로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인데 화풍이 너무 독창적이라 조금만 따라해도 열화표절이라고 욕을 먹기 때문에 일본 만화를 많이 표절하던 중국, 한국에서도 거의 따라하지 않았다. 그나마 따라 한다면 그가 즐겨 쓰던 배경, 메카, 간략화, 컷배분 등의 기술적 부분 정도이고 인물 쪽은 차라리 참고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75] [76] 재미있는 점은 토리야마는 만화가로 등단하고 나서도 남의 만화를 거의 보지 않고 거의 그림만 그리고 자신에게만 열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그의 성격이 반영되어 그의 그림체가 다듬어지기만 했지 타 작품에 영향받은 기색을 찾아 볼 수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도 편집부나 타 작품의 영향을 잘못 받아서 한순간에 나락간 수많은 작가들 [77] 을 생각하면 다행. 애초에 독보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데 굳이 타 작가나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 등에 영향 받을 이유도 없었다. 드물게 편집부에서 이노우에 신인 작품을 보라고 명령해서 어쩔 수 없이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자료로써 보지 않고 그림 센스있는 작가가 나왔구나 하고 감상만 하고 말았다고.[78]

토리야마 아키라만의 컷 배분 공식을 만들고 완성시켰다. 기존 만화들은 그때 그때 작가가 적당하다고 떠올리는 방식으로 컷을 임기응변으로 나누었는데 토리야마는 컷 배분을 공식화시켜서 그리는 자신도 편하고 읽는 독자도 편하게 구체화시켰다.[79] 또한 완성도가 완벽해서 드래곤볼은 만화 학원에서 컷 배분 교육의 단골 소재로 전세계에서 활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일단 한국 만화 학원이나 서적에선 1번 교육 소재다.

5. 작품 목록

6. 수상 경력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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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ffa500> 성룡과 토리야마 부부 토리야마와 미카미의 결혼식
* 부인인 미카미 나치는 토리야마처럼 만화가로 활동했던 작가였으며, 하쿠센샤에서 "위로 아래로 로큰롤(上を下へのロックンロール)"이라는 순정만화를 연재한 경력이 있다. 결혼 이후에는 또 다른 순정만화인 "세인트 메피스트 혼란(聖メフィスト混乱伝)"을 끝으로 만화가 활동을 그만두었지만,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닥터 슬럼프 원고 작업에서 비가 내리는 걸 그려줬다거나, 에네르기파의 작명을 제시해주기도 하는 등, 혼자서만 작업하던 남편의 실질적인 어시스턴트가 되어줬다고 한다. 참고로 미카미 나치는 작가로서 활동했던 필명이며, 본명은 카토 요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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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장남 사스케와 드래곤 퀘스트를 하고 있는 토리야마
*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이 중 장남과 장녀는 아기였을 적 사진이 단행본에 실린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 만화가의 자녀들이지만, 정작 아버지의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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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왼쪽)와 토리시마 카즈히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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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대 편집장들을 본 따서 만든 캐릭터들
*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지 드래곤볼 캐릭터 이름들이 대부분 패러디란 것은 유명한 이야기고, 악역 이미지도 담당 편집자들하고 많이 비슷하다. 초기 담당인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닥터 슬럼프의 메인 악역인 닥터 마시리토와 드래곤볼 초기 악역인 피콜로 대마왕의 모델이 되었고, 2대 담당인 콘도 유는 프리저의 모델, 3대 담당인 다케다 후유토는 마인 부우의 모델이다. 위의 이미지는 드래곤볼 대전집에서 가져온 것인데, 사진 옆에 캐릭터를 배치해 놨다. 본인 말로는 의도해서 이렇게 그린 건 아니지만 평소에 시달린 무의식이 만화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유사성을 인정했다.[97]


[1] 한국에서는 종종 한국 한자음을 따라 [2] 아이치현 기요스시. 나탈리에 연재된 2024년 3월 8일자 자료에 출생지가 기요스정으로 기록되어 있다. [3] 사망 발표 일자는 3월 8일. [4] 출처는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프로필. [5] 법적으로서의 본명은 토리야마 나치. [6] 크로노 트리거, 블루 드래곤에서도 원화를 맡았다. 그림 활동을 할 때의 저작권 표기에서는 보통 BIRD STUDIO의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세금 문제 때문으로, 비슷한 경우가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 스튜디오. 저작권 문제로 정반대의 포지션을 취할 때도 있는데, 야츠데 사부로 야다테 하지메 같은 케이스가 있다. BIRD STUDIO의 BIRD는 토리야마(鳥山)의 토리에서 따온 것. [7] 친구로 지냈던 어느 여자아이의 집에 놀러갔었는데, 그 아이의 오빠가 가지고 있던 만화책과 집에 장만해놓았던 텔레비전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아서 빠져들었다고 한다. [8]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인터뷰에서 그는 지각으로 인해 감봉을 당했고, 신입 여자사원과 월급이 같아져 절망했다고 한다. [9] 본인은 직장인이었던 시절에 대해서 "비록 시간은 짧았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직접 배웠으니 무의미하진 않았다."고 회고하였다. 졸업 후 바로 만화가로 데뷔했었다면 사회성 때문에 힘들었을 거라고. [10] 당시 소년 매거진은 투고작을 한 달에 한 번만 받았기에 매주 받는 소년 점프로 보내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소년 매거진은 땅을 치고 후회하며 점프처럼 매주 투고작을 받게 됐다는 후문이 있다. [11] 작가가 그린 데뷔 일화 만화에선 아예 꼴등이라고 나온다. [12] 로봇임에도 눈이 나빠 안경을 쓴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13] 평균 시청률 23.8%, 최고 시청률 36.9%를 기록. 역대 점프 원작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아직도 유지 중이며,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시청률 4위를 기록하고 있다. [14]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처사로 원피스가 원작 8권 분량, 나루토가 원작 10권 분량이 진행되고 나서야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된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원피스와 나루토는 분명 대단한 작품이지만, 신인 작가가 내놓은 히트작이고 토리야마는 이미 닥터 슬럼프로 인해 점프를 대표하는 거물급 작가 중 하나였으니 위치가 다르긴 하다. [15]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제작하는 결정 때문에 연재가 진행될수록 애니판의 진행 속도가 원작의 진행을 압도적으로 추격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머지, 애니판 제작진도 애니판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오리지널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머리를 싸매면서 창작하여야만 했고, 아예 액션씬이 월등하게 많아진 Z에 와서는 기 모으고 변신하는 장면으로 질질 끌다가 끝내버리는(...) 어이없는 전개를 남발하는 지경까지 이르러서 시청자 여론이 매우 나빠졌다. 리마스터판인 드래곤볼 Z KAI는 저런 장면을 대거 편집해서 진행 속도를 늘렸고, 이 시절이 반례가 되어 2010년대 이후 소년만화 원작 애니메이션들은 인기작이라 해도 거의 대부분 일정 분량까지 애니화를 하다가 휴식기를 가지는 시즌제를 도입하여 전개속도를 정상화하고 퀄리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16] 북두의 권의 하라 테츠오는 페이지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하여 캐릭터의 강함을 어필하는 연출을 애용한 반면 토리야마는 컷에서 컷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연출을 애용했기에 차별화를 둘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17] 실제로 드래곤볼의 인기가 마인부우편에서 많이 수그러들었음에도 완결되자 곧바로 점프 발행부수가 100만부 증발하고 2년간의 점프 암흑기의 시작이 되었다. 물론 이때 동인기 작품 타이의 대모험이나 슬램덩크도 시간차를 두고 줄줄이 완결돼서 그렇지만 편집부에선 드래곤볼만 새연재 했어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아키라를 닦달했는데 동인작가가 그리는 망작 드래곤볼 슈퍼 신연재로 그게 사실임이 증명된다. 2023년 기준 드래곤볼 슈퍼의 연매출 조차 단독으로 년 1.5 조원에 이르며 매년 천억씩 성장중이다. 근데 토리야마가 신연재 했다면? [18] 다만 닥터 슬럼프 때의 경험치 덕분인지 이 때의 철야 작업의 빈도는 그나마 줄었다고 한다. [19] 작업량 때문인지 원작 후반부를 보면 유독 배경이 썰렁한 경우가 많다. 이전까지는 레드리본군, 거대도시 등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조연/단역들이 등장했으나 일단 많은 참가인원과 관중들을 일일이 그려야 하는 천하제일무도회부터 줄었고, 라데츠, 베지터와 모두 황야에서 싸우며, 나메크성에선 아예 별 자체가 사막처럼 황폐하고 그나마 적은 인구도 몰살된 상태란 설정이 있다. 셀 편에선 초반에 셀이 인간들을 흡수하는 몇 장면을 빼곤 전부 황야에서 주인공들이 셀과 싸우고, 마인부우 편에서도 초반에 잠깐 천하제일무도회에 들린 걸 제외하면 황야→지상의 인간이 전부 몰살당한 후 폐허→사람이 아무도 없는 계왕신의 영역으로 이어가며 계속 사람 없는 데서만 싸운다. [20] 말 그대로 도시전설로 문서화 된 자료는 없었다. 작가는 부우 편에 들어가기 전, 부우 편을 끝으로 연재를 종료하고 싶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 출판사와 합의했지만, 드래곤볼로 매출을 내고 있는 많은 관계사들이 있어 그에 따른 주가, 실적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해 연재 종료를 위해서는 많은 사전 준비가 필요했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한국에서 와전 된 것으로 보여지고 일본 웹에서 언급되는 드래곤볼 도시전설에도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이 도시전설 내용을 한국의 만화가 박성우가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대신(장관)이 아닌 차관이 왔었다는 답을 들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21] 닥터 슬럼프 연재 종료 2개월 후 드래곤볼의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15년 정도다. 물론 이때 토리야마도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휴재를 하지 않고 미리 2회 분량의 원고를 그렸다고도 한다.(...) [22] 사실 말이 15년이지 작업 대부분을 혼자서 하는데다가 휴재도 거의 없었고,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작업도 대충 그림만 슥슥 그리는 것이 아니다. [23] 태블릿의 성능향상을 비롯한 디지털 작업이 수월해진 까닭도 원고작업의 부담을 줄여주었다. [24] 다만 드퀘 만화판은 종종 다른 작가들이 그리는 경우가 많다.( 다이의 대모험이 그 예.) 토리야마는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지, 만화까지 만든 적이 없기 때문. 그래서 원작자 표기할 때는 토리야마와 같이 활동한 호리이 유지를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나카 유지와 오오시마 나오토를 생각하면 될 듯. [25] 토리시마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토리야마는 2008년에 이미 반다이로부터 드래곤볼 신작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으나 이 때는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였고, 그 대신 드래곤볼 카이가 2009년에 나오게 되었다. [26] 원안과 대본정도는 작성한 게 분명하고, 토요타로 그림지적도 엄청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퀄리티 진전이 없어서 답답했을 듯하며, 결국 그림지적과 수정을 해주던 토리야마가 없어지자 처참한 액션씬을 보여준 것이 결국 슈퍼 히어로편 연재였다. 건강상, 스케쥴상 상당히 무리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 [27]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매우 꺼리던 토리야마가 사실상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이라고 볼 수 있다. [28] 해당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이 머리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을 경우라서 토리야마가 사고를 당했을 거라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6년 이상 사적으로 교류해온 게닌 콤비 '치킨난반'의 오오카와 토모히데(45)에 따르면 작년 4월에 '머리 수술로 입원할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고 걱정을 많이 했으며. "하루 한 갑씩 피우던' 헤비 스모커였던 토리야마 씨와 교류하면서 컨디션 불량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올해) 2월에 뇌종양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 [29] 일본에서는 2010년대부터 자살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으로 경찰에 의해 신변이 바로 공개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장례와 신변 정리를 비롯한 모든 후속조치를 마친 뒤에야 부고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기간이 적게는 며칠, 많게는 몇 달까지 경과해서 사망일과 사망 발표일 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본의 부고는 사망일을 반드시 명시한다. 그러나 과거 선배 만화가인 데즈카 오사무(1989년 사망), 아카츠카 후지오(2008년 사망)의 경우 공개적으로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른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는 메이와쿠 문화보다는 SNS 발달에 맞물려 후폭풍 및 파장을 막기 위해 생긴 문화로 추정된다. [30] 1980년대는 물론이고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유명인이 사망할 시 와이드쇼에서 장례 일정을 생중계하다시피 내보내는 경우가 파다했지만, 이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장례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후에 부고를 발표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31] 그래서 그런지 한국 건베 고양점에서 추모의 개념으로 드래곤볼 GT 오프닝이 재생됐다. [32] 거기다가 한국 한정으로 드래곤볼 40주년인 동시에 토리야마의 사망년도인 2024년은 청룡의 해인지라 더욱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33] 다만 드래곤볼은 자연사(병사)를 살릴 수 없다는 제약이 있어 설정을 꿰고 있는 팬들은 이 발언에 더더욱 안타까워 하는 반응을 보였다. [34] 점프 공식 부고 발표와 함께, 상술된 드래곤볼 회사 발표문 및 토리야마와 친분이 깊었던 4인의 추모문이 실렸다. [35] 둘은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36] 원문 역시 말씨가 일정하지 않고 난잡하게 쓰여있기에 최대한 반영함 [37] 노자와 성우는 매니저로부터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너무 큰 충격으로 추모 코멘트를 남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한동안 추모의 말을 남기지 못 했다. 만화 연재 후 애니화가 빨리 이루어짐에 따라 드래곤볼이 연재되는 평생을 토리야마 작가와 함께 해왔는데 스무 살이 더 많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38] 이 추가 트윗은 베지터로써 보내는 추모글이다. [39] 드래곤볼 Z 카카로트의 제작사. [40] 엔도는 어린 시절, 드래곤볼을 처음 읽고 고인의 그림체를 여럿 따라 그리며 그림을 독학하였다. 때문에 드래곤볼의 리부트 표지 제작에서도 토리야마 아키라 풍의 아메리카 카툰 그림체를 섬세하게 구현하여 호평을 받았다. 부록으로 드래곤볼 패러디 삽화를 그린 적도 있다. [41] 해당 트윗에서 소스케의 헤어 스타일의 모티브는 초사이어인의 헤어 스타일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42] 드래곤볼의 팬으로 유명하다. [43] 드래곤볼 改부터 덴데를 맡고 있다. [44] 평소에도 드래곤볼 시리즈의 팬임을 수 차례 방송에서 피력해왔으며, 2022년에는 드래곤볼 공식 홈페이지와의 인터뷰를 실시한 적이 있다. [45] 참고로 소라치 작가는 은혼에서 드래곤볼 패러디 및 개그를 많이 차용했다. 최종장에서 진중한 캐릭터도 베지터의 갤릭포 패러디 하기도. 토리야마는 딸이 자기 작품은 안보면서 은혼의 팬이었으며 은혼에서 드래곤볼 패러디가 나오자 어떤 패러디인지 확인하기 위해 소라치의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소라치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 [46] 코게돈보는 필명의 '코게'를 토리야마가 기르는 고양이에서 따왔을 정도로 토리야마의 팬이다. [47] 자신의 2020년작 It is what it is 앨범에 Dragonball Durag이라는 곡을 싱글컷하기도 했다. [48] 대표적으로 일곱 개의 대죄의 작가인 스즈키 나카바가 토리야마의 그림체에 영향을 받아서 스타일이 은근 비슷하다. 이 외에도 록맨 시리즈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과거작들은 일러스트의 그림체가 토리야마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많다. [49] 다만 토리야마는 콘티 단계의 그림마저도 가독성이 매우 높아 이 콘티를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진들이 미리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마인부우 편의 전체적인 작화질이 이전보다 떨어질지언정 절대 퀄리티가 낮진 않다. 애초에 관련 업계 사람들이 스케치 작업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간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 [50] 토리야마 아키라는 액션만큼이나 메카닉 묘사도 아주 실험적이고 독보적이었다. 스카우터 어택볼 등 드래곤볼 시리즈에 나오는 수많은 특수장비들과 탈것, 로봇들의 디자인들은 매우 심플하면서도 메카적인 특성이 아주 잘 살아나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중후반부에 속속 등장하는 악당 메카 디자인은 흡사 영화 에일리언을 방불케하는 차가우면서 기괴한 느낌을 잘 살려냈다. [51] 이는 드래곤볼의 연재 후반부부터 팔에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PC가 없었다면 펜을 놓았을지도 모른다고. [52] 또한 프로그램의 손떨림 보정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지, 태블릿의 인식 문제로 선이 살짝 떨리는 그림이 자주 보이고 있다. [53] 98년도에 연재했던 단편 만화. 전 12화 완결 [54] 그 흔한 칼이나 창같은 냉병기도 거의 쓰지 않는다. 초반부에 타격병기인 여의봉을 조금 썼을 뿐이다. [55] 이후 실제로 성룡과 직접 만났다. [56] 떨어지면 장외패가 있는 것까지 같다. [57] 폭발 장면은 적어도 흰 공백 안에 흩날리는 파편만 그리면 끝이지만, 배경은 원근감이나 구도에 맞춰서 일일이 구조물을 그려야 하는데다, 한 군데라도 잘못 그리면 그림이 굉장히 어색해지기 때문에 난이도가 매우 높다. 당연히 규모가 커질수록 소요되는 시간도 그에 맞게 늘어나는데, 월간이면 몰라도 주간이라면 상당히 빡빡해질 수 밖에 없다. 웹툰이나 웹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배경을 스케치업 같은 3D 모델링이나 실사 이미지로 처리하는 작가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58] 물론 아예 안 쓰는 건 아니고, 배경과 마찬가지로 시간 절약을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단편인 <COWA!>에서는 비교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던 덕분에 스크린톤을 많이 사용했다. [59] 정확히는 반대이다. 노란색으로 설정하고 보니 결과적으로 먹칠할 필요가 없어서 편해졌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60] 예를 들면 드래곤볼 연재 종료 후의 천진반 런치의 관계. 처음 관련 인터뷰에서는 "결국 둘이 결혼에 골인했다"고 했지만, 2013년 인터뷰에서는 "런치가 농사하고 있는 천진반을 찾았지만, 런치는 농사에 흥미가 없고 천진반은 연애에 흥미가 없어 서로 이어지진 못했다"라고 이야기한 것. [61]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작자는 작품의 주인이자 신적인 존재로 각인되기 때문에 보통 작가의 말은 100% 정사로 취급된다. 오히려 토리야마가 별난 케이스인 셈이다. [62] 이전까지는 캐릭터 디자인 정도만 제외하면 미디어 믹스 제작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근데 레볼루션은 본인이 보기에도 너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조언을 해줄려고 했는데, 제작진 측에서는 종사하는 업계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대하면서 그를 무시했다고 한다. [63] 애초에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 모두 인기 때문에 억지로 연재를 이어나갔던 전적이 있었고, 특히 드래곤볼 때는 완결나는 순간 회사 일부가 쪽박칠 정도로 너무 크게 히트해버려서 완결을 내고 싶어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수익성을 위한 장기노선이 계속되면 아무리 애정이 있는 작가라도 금방 작품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기 마련인데, 하물며 토리야마는 이런 일을 2연속이나 겪으며 개고생을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64] 즉, 남주인공과의 연애 서사가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작가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애정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거나 해소되는 전개가 전무하며, 소위 색기와 관련된 부분이나 아기의 출산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로 바꿔도 극의 전개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 [65] 무천도사는 천하제일무술대회 출전 당시 쓴 가명부터가 "재키 춘"이고(성룡의 미국이름이 "재키 챈"이다) 실제로 취권을 쓰며, 초기의 익살스런 권법은 성룡을 연상시킨다. 또한 손오공의 기합이 들어간 얼굴은 어느 정도 이소룡을 연상시키고, 여러 무술의 디테일한 동작(발차기를 할 때 손모양이라든지)는 이소룡과 많이 닮았다. [66] 오공과 부르마, 야무챠와 푸알, 베지터와 내퍼 등등 [67] 그림에 적혀 있는 대사들은 전부 바보, 멍청이 등을 뜻하는 단어를 각국의 언어로 적은 것이다. [68] 뉴타입에 공개된 토리야마 인터뷰에 따르면 드래곤볼 프리저 편 기준, 550만 엔 즉, 한 회당 2015년 기준 환율로 약 5,000만 원. 심지어 실수령 액수이다. 셀 편에서는 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공개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단행본 판매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 당시와 지금의 물가 차이를 고려하면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 [69] 정확히는 1981년에 만화가로는 최초로 5억엔의 소득을 신고해 일본에서 고액납세자공시 기준으로 전체 랭킹 35위에 올랐다. 닥터 슬럼프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였는데 드래곤볼은…. 다만 1983년 이후 공식적인 소득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70] 초인기작 드래곤볼 작품 중기 한참 바쁠땐 어시스트를 1명, 가장 많을 때 잠시 2명 두기도 하였으나 사람을 쓰는데 익숙한 사람도 아니고 나중엔 어시에게 지시하는 시간에 내가 그리는게 더 빠르다라는 이유로 다시 혼자 그리게 된다. 이래도 정 바쁠땐 부인이 도와주는 수준으로 2명을 넘지 않았다. [71] 프리저 전 당시 어시가 한 명 있었고 이 사람이 주로 먹칠과 선긋기 작업을 했는데 작업량이 많아지자 토리야마에게 먹칠 언제 다하느냐고 걱정하자 토리야마는 어시에게 사이어인 등장하면 머리는 먹칠 안 해도 된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 [72] 탈세 해프닝이 말년에 있었는데 자산을 운영해주는 미국회사의 미국에서 발생한 탈세 사건이었고 토리야마 아키라는 관련이 없어서 추징 받지 않았다. 토리야마의 이름이 언급된 것도 당시 이 회사의 수천명의 고객 리스트 중에 유명인들을 기자들이 추려내서 자극적으로 기사를 썼기 때문.. 수천명 중에 실제로 벌금을 낸 사람은 거의 없는데 이유는 마음대로 고객 몰래 자산을 운용하고 탈세로 발생한 낙전수익을 회사가 횡령하는 식이었으므로 당연히 회사가 처벌받았다. [73] 물론 연재하기 전 1년간 악마같은 편집자에게 걸려 원고를 찢기는 수모를 겪으며 수업을 쌓았지만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찢긴 것은 아니여서 그림 수업을 한 기간은 아니다. 그의 단편 데뷔작을 보면 이미 아라레의 그림자가 보일 정도. [74] 당시 소년 점프 연재 중이었던 작가들의 화풍. 링크는 각 작가의 그림을 간략화 한 것임을 감안해도 토리야마 등단 전의 점프 화풍과 토리야마의 화풍이 얼마나 이질적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75] 일례로 일곱 개의 대죄의 작가인 스즈키 나카바의 경우 토리야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미 자신만의 그림체로 숙성된 지금까지도 드래곤볼 아류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다만 그가 존경하는 작가라서 그런지 이 평가를 크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모양이며, 그림체도 심하게 바꾸진 않았다. [76] 반면에 그의 그림체를 거의 똑같이 그릴 수 있는 작가는 아마추어 포함해서 정식 작가 중에 엄청나게 많다. 일본의 경우 만화가들이 가장 많이 따라할 수 있는 그림체가 드래곤볼 일 정도로 그의 만화를 보면서 영향을 받고 자라 등단한 작가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그의 연재 기간에 유명 만화가들이 없었는가? 하면 되려 만화,애니 역사의 황금기일 때라 드볼 연재 전후해서 온갖 천재 작가들의 대표 작품들이 넘처났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더 대단한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원나블 포함해 근 20년간 메가히트 했던 작품들도 드볼 당시로 돌아가면 10위권 유지조차 힘들 정도의 만화황금기였다. 토가시 조차 당시엔 연중의 위기를 수시로 겪었을 정도이니 그만큼 대작들 틈에 끼여서 서로 순위가 널뛰기를 하던 시절에 드래곤볼이 떡하고 버티며 독자들의 1픽 만화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한국에도 학교에서 드래곤볼을 따라 그리던 학생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고등학교쯤 되면 각반에 1명씩 정도는 완전히 똑같은 수준으로 그릴수 있는 수준에 이른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고 남들 보라고 대놓고 그리고 있어도 드래곤볼만은 흉이 아니었다. [77] 공작왕의 오기노 마코토 등. [78] 보통 만화가라면 인기작도 인기가 없으면 바로 퇴출되는 점프의 살벌한 경쟁 시스템, 급변하는 만화 시장의 흐름과 경쟁작들의 작품,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서라도 챙겨보고 영향받기 마련인데 그가 은퇴할 때까지 성격이 안 변했다.. 그가 워낙 바빠서 그랬다고 말히기도 하지만 사실 토리야마는 전성기의 그 살인적인 업무량을 모두 소화하고 주 2~3일 정도는 여유시간을 남겨 메카, 디오라마등의 취미를 즐길 정도로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가 그렇게 손이 빠르고 출장이나 외출하는 것을 사절하는 귀차니즘 성격이 된 것도 취미를 즐기기 위해서였으니 그 시간에 남의 작품을 보고 연구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의 천성이 그랬던 것. 또한 보더라도 이노우에처럼 작가 자체의 평가를 내리지 타 작품의 장점을 탐내거나 질투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듯하다. [79] 토리야마 특유의 바쁜 일정과 그에 따라 생겨난 효율주의(귀차니즘) 때문에 그때 그때 생각하기 싫어서 최적화된 컷 배분 공식을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80] 실제로는 새로 합류한 토요타로와 함께 작품을 작업했다. 특히 드래곤볼 신극장판은 사실상 이름만 감수고, 직접 제작에도 참여했다. [81] 사실상 한국기준으로 영화감독에 가깝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유작중 하나. [82] 한국에는 해적판이 '도리야마 아키라 콜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발매 된 적이 있다. 리뷰글 [83] 시대적 배경으로는 속편인 드래곤볼 마이너스와 함께 드래곤볼의 프리퀄인 셈. 또한 직접 장기 연재한 마지막 만화작품이다. [84] 2015년 12월 서울문화사 정발. [85] 鳥山明+さくまあきら 鳥山明のヘタッピマンガ研究所 [86] 다만 의외로 닥터 슬럼프는 연재 당시 챙겨보지 않았었다고 한다. [87] 여담으로 해당 인터뷰를 보면 위에서 말한 토리시마 편집자가 원피스를 연재시키지 않고 계속 떨어뜨렸던 일화가 나온다. 토리시마라고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정황상 토리시마의 소행이 확실하다. 토리시마 카즈히코 문서 참조. [88] 원피스 애니 참고. [89] 일본 20대 남성 평균키는 대략 171cm 정도이다. [90] 소년점프의 다른 작품인 은혼에 보낸 축전에 따르면, 딸이 어느 날 쳐다보지도 않던 드래곤볼을 갑자기 읽고 있길래 웬일로 자기 만화를 읽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은혼에 나온 드래곤볼 패러디를 이해하려고 본 것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딸이 은혼의 굿즈도 모을 정도로 엄청난 팬이어서 토리야마가 은혼 작가인 소라치 히데아키에게 씁쓸한 감사의 코멘트를 전했는데, 이 때 작가 소라치 히데아키는 '나와라 신룡! 난 구슬이 2개 밖에 없는데도 소원을 이뤘다고오오오오!! 토리야마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님...이랄까 공주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91] 일본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집이 나고야 인근의 키요스시로 되어 있다. 아마도 집이 나고야시에 가까운 키요스시 외곽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이치현 사람들은 일일이 설명하는 게 귀찮아서, 아이치 현 ○○시 거주, 혹은 출신이여도 '나고야 출신(거주)입니다'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92] 다만, 아이치 현도 중심이 되는 나고야 시의 규모를 보면 시골은 커녕 오히려 일본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이다. 인구와 면적만 보면 한국의 대구광역시와 상당히 유사한 수준. [93] 본래는 피콜로 대마왕편에서 치치와 결혼하고 종료 → 프리저편에서 우주 최강자 → 인조인간편 → 마인부우편으로 연재가 계속 연장되었다. [94] 일본에서의 장관은 한국의 장관과 달리 OO대신 혹은 해당 부의 이름을 붙여 OO상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장관은 우리로 따지면 청장에 해당한다. 경찰청 장관, 과거 방위청 장관 등이 그 예. [95] 실제로 국가를 막론하고 일국의 장관은 국정 현안에 관계된 공식 일정 같은 경우가 아니고선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차관을 만화가에게 보냈다는 것은 중앙행정기관인 문부성이 일개 민간인을 향해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어 대우를 해준 셈이다. [96] 또한 이 정도로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만큼 중추적인 인물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괜히 드래곤볼의 연재가 일개 작가의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 나온 게 아닌 셈. [97] 이렇게 지인이나 가족 등을 만화캐릭터로 집어넣는 사례는 <백록화>, <대륙전사>, <넥스트> 등으로 90년대 국내에서 꽤 인기있던 만화가 이진영이 대표적이다. [98] 연간 약 1억 엔 정도라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놀고 있기만 해도 12억 원 정도를 받는 셈. 전속계약 자체는 인기 작가로서는 별로 특별한 건 아니지만 연재도 안 하는 작가가... 이미 토리야마의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슈에이샤의 브랜드가 돼버렸다는 의미도 되겠다. [99] 이런 전속 계약조건에 따른 갑질이 오히려 인생 말년인 2023년에 슈에이샤에서 드래곤볼팀이 캡슐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로 분사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 [101] 토리야마가 직접 오지는 않고 드래곤볼 담당 편집자인 이요쿠 아키오가 대리수상했다. [102]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시기에 수많은 재벌 기업가를 제치고 만화가가 일본인 1억 1천만명 중 세금을 많이 낸 사람 상위 10명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심지어 드래곤볼을 연재하기 전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고 있을 때이다. [103] 그래서 피콜로가 원작에서는 손가락이 4개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104] 손가락 갯수가 다른 장애인이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고 그릴 수 없어 그리기 힘들다, 야쿠자를 연상하게 한다 등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