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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09:55:05

대만 프로야구 리그

아시아의 야구 리그 주관 단체
파일:KBO 로고(세로형).svg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파일:NPB 로고.svg 파일:CPBL 로고.svg 파일:CNBL 로고.svg
한국야구위원회 일본야구기구 대만 프로야구 리그 중국프로야구리그


대만의 야구 리그
<rowcolor=#00437a> 구분 명칭
프로 중화직업봉구
실업 대만 실업 야구
파일:CPBL 로고.svg
명칭 국문: 중화직업봉구대연맹[1]
한문: 中華職業棒球大聯盟
영문: Chinese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종목 야구
창설 1989년 10월 23일([age(1989-10-23)]주년)
국가
[[대만|]][[틀:국기|]][[틀:국기|]]
주관 중화직업봉구대연맹[2]
총재 차이치창(蔡其昌)[3](2021~ )
최근 우승 구단 중신 브라더스(2024 시즌)
최다 우승 구단 퉁이 라이온스, 중신 브라더스 (10회)
링크 파일:CPBL 로고.svg 공식 홈페이지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역사
2.1. 타이완메이저리그(TML, 臺灣大聯盟)
3. 승부조작 문제4. 리그 수준5. 시즌 운영
5.1. 페넌트레이스5.2. 플레이오프5.3. 타이완 시리즈
6. 인프라
6.1. 경기장 목록
7. 신인 드래프트8. 2군 운용9. 외국인 선수
9.1. 2024 시즌 외국인 선수9.2. 한국인 선수9.3. CPBL 출신 대만인 KBO 선수
10. 중계 방송11. 참가 구단
11.1. 과거 참가 구단
12. 일본 프로야구 정기 교류전13. 기타
13.1. 치어리더 및 응원 문화13.2. 리그 확대 논의
14. 역대 우승 구단15. 우승 횟수16. 관련 문서1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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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 프로야구 리그. 중화직업봉구대연맹이 관리하고 있는 대만의 프로 리그다. 엄밀히 말하면 조직 이름임과 동시에 프로야구 대회 이름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만 프로야구 리그/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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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2.1. 타이완메이저리그(TML, 臺灣大聯盟)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존속했던, CPBL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별도의 리그. 심지어 양 리그간 통합챔피언결정전이나 올스타전 같은 친선경기조차도 없다가 CPBL과의 경쟁에서 패해 문을 닫았다.

리그 시작부터가 막장끼가 다분했다. TVIS 방송국은 원년부터 CPBL 중계에 참여하였고, 리그 인기가 늘어나면서 대박 행진을 이어 나갔지만 1995년 중계권을 빼앗긴다. 또한 CPBL에 참여를 타진했던 SAMPO(성바오)전자[4]는 96년 이전의 현대그룹처럼 계속해서 리그 참여를 거절당했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던 양측의 주도로 아예 리그를 만들기로 한다.

성바오와 TVIS 방송국이 합자로 나루완[5]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리그 사무국이 구단을 소유하고 선수를 보유한 형태로 운영되었다. 미국 프로축구인 MLS와 호주 프로야구 ABL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했다. 다만 MLS나 ABL은 리그 기반이 취약함을 인식해서 리그 사무국이 구단과 선수를 보유하는 방식이었다면, TML은 이익을 특정 회사가 독점할 목적으로 구단과 선수 보유권을 독점했다.

구단을 리그가 소유하고 있으니 구단명도 CPBL과 차별을 두고자 했다. 리그 참여팀은 台北太陽(타이베이 연고), 台中金剛(타이중 연고), 嘉南勇士(자이+타이난 연고로 자이를 홈구장으로 사용), 高屏雷公(가오슝+핑둥 연고로 가오슝을 홈구장으로 사용) 4개팀이다. 리그의 태생부터가 CPBL에 대한 적대감으로 시작했던지라 CPBL 소속 선수들의 계약을 파기하고 빼오는 형태로 리그의 세를 키워나갔다. 마침 1997시즌 CPBL에서 승부조작이 터지면서 TML의 인기도 상승하였다.

미디어그룹이 운영하는 리그답게 로고 사용권이나 명명권을 마구 팔아제끼면서 현재 KBO의 히어로즈처럼 팀명을 계속 바꿀 수 있게 했다. 타이중 진강의 경우 台中金剛(1997)-台中中纖金剛(1998)-台中金剛(1999)-台中媚登峰金剛(2000-2001)-台中宏碁金剛(2002)로 거의 매해마다 팀명을 바꿨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기록된 구단명 변천 과정 참고. 스폰서가 잘 붙지 않아서 리그 주관사인 TVIS 방송국은 리그 내내 자난 루카(嘉南勇士)와 가오핑 레이공(高屏雷公)의 스폰서가 되어야만 했다. 또 다른 주축이었던 성바오는 4년간 타이베이 타이양(台北太陽)의 스폰서로 참여하다가 리그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 타이베이 타이양을 스폰서 한 팀은 후에 청타이 코브라스를 창단하는 청타이은행이었다.

선수들의 계약 또한 개별팀이 아닌 리그 사무국에 묶여 있었고 전력 균형을 이유로 리그내에서 자유롭게 팀을 이적하지 못했다. 6시즌 동안 3개팀이 우승을 맛보았고, 우승하지 못한 가오핑도 준우승만 3번한 팀이었다. 팀명도 자주 바뀌고 명문구단도 없이 고만고만한 팀들만 모인 리그의 인기가 좋을리가 없었다.

이 당시 인구 2300만의 대만 프로야구팀은 무려 11개나 되어 과당경쟁 형태가 됐고, 인기나 수익 측면에서 밀린 TML 측이 먼저 손을 들었다. 사실 평균관중수는 TML이 많았지만 그래봐야 경기당 3,000명 수준, 97년 블랙이글스스캔들로 넉다운된 CPBL의 관중이 1/4로 급감해버린 경기당 1,500명 수준의 리그와 비교는 의미는 없어보인다.

4개팀은 나루완 타이양과 제일은행 진강의 팀으로 합병하여 CPBL에 2003 시즌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이 후 양 팀은 마코토 코브라스 라뉴 베어스로 명백을 이어가다 마코토를 인수한 디미디어는 인수 1년 만에 해체를 하면서 라뉴 베어스만 남아 라미고 몽키스로 팀명을 변경하였고, 이후 일본 자본인 라쿠텐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팀 인수에 따라 옛 흔적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어쨌든 TML의 유일한 흔적이다.

공식적으로는 CPBL과 TML의 합병이었기에 TML의 기록도 인정하고는 있다. 개인 통산기록은 전부 인정되고 있는데, 심지어 코칭스태프의 기록도 인정되어 쉬성밍 감독의 CPBL 통산 715승은 TML의 105승까지 포함된 기록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TML을 흡수 합병하였기에 팀 기록은 승계되지 않아 라뉴의 2006년 우승은 첫 우승으로 기록되었고, 라뉴의 모든 누적기록은 2003 시즌부터 인정된다. 이 뿐만 아니라 CPBL로 입단하여 TML로 이적한 선수들의 경우 기존 CPBL팀과의 계약이 우선 인정되는 문제 등도 발생하였다. 그러다 보니 디미디어는 한 해를 제외하면 5할 승률을 넘어본 적이 없었고, 라뉴는 CPBL 합류 후 2년 반 동안 4할 승률을 2004년 후반기 딱 한 번 기록했었다. 이후 디미디어는 해체, 라뉴는 2006년 반등에 성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승부조작 문제

승부조작 문제가 심각했다. 2000년대에는 1~2년에 한 번 꼴로 대형 승부조작 문제가 터져서 리그가 존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대만은 인구가 약 2,370만으로 대한민국의 절반도 안 되는 데다가, 경제 개발 과정에서 대기업보다는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했기 때문에 한국, 일본과는 달리 자국 브랜드의 소비재 대기업이 적다. 그나마 포모사 폭스콘 같은 몇 안 되는 대기업들도 스포츠단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실업 축구 농구도 경제 규모에 비해 리그 참가팀이 적다. 대기업이 홍보 목적으로 스포츠팀을 운영하는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언급한 대로 대만의 대기업들은 B2B 생산재 기업( TSMC 등)이여서 개인 상대 브랜드홍보를 할 필요가 없거나 소비재 기업이라도 외국 브랜드로 사업하는 경우[6]가 많아서이다.

중견기업이 CPBL의 주요 스폰서라 연봉은 KBO 리그의 1/3 정도 규모밖에 안 된다. 선수들 유니폼에는 포뮬러 1처럼 스폰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건 기본이고, 슝디 엘리펀츠가 중신 그룹에 매각되기 전까지 메인 스폰서는 타이베이에 있는 슝디호텔이었다. 한희민의 증언에 따르면 원룸에서 숙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10년 기준으로는 CPBL에서 연봉이 한화 1억 원 이상인 선수가 판웨이룬(퉁이), 천진펑(라뉴) 2명밖에 안 되었다. 참고로 같은 해 KBO 리그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무려 100명. 2019년에는 많이 나아져서 연봉 4억 정도를 받는 린즈성을 필두로 왕셩웨이, 왕이쩡 등이 연봉 1억 이상의 FA 다년 계약을 맺었고, 푸방 가디언즈 한 팀만 봐도 후친룽, 린이취안, 린저쉬안, 가오궈후이, 장젠밍, 린쿤성, 장즈셴 등이 한국 돈으로 억대 연봉을 받고 있지만 CPBL 선수노조 자료에 의하면 2018년 리그 전체 평균 연봉은 61,200달러(당시 환율로 6,800만 원 수준)로 이 해 KBO 리그의 평균 연봉 1억 5,026만 원에 비하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또한 1군 최저연봉(월 7만 대만 달러로 연봉으로 환산하면 3500만 원 정도)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7] 스타 플레이어로 갈수록 격차가 크다.[8] 이 탓에 선수들이 승부 조작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2019년 대만 리그에서 잠깐 뛴 헨리 소사는 대만 리그에서 받던 돈은 한국 리그의 1/4 수준이었고 숙소도 한국 모텔급이라고 한국에 뛰다가 대만에서 뛰자니 너무나도 인프라가 차이가 났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만 사회에 깊게 개입하고 있는 삼합회의 존재는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1997년에 터졌던 검은 독수리 사건으로 제명된 선수들이 삼합회에 입회한 뒤 브로커(숙주)가 되어 이전의 동료 선수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9] 이런 이유로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 경호원들이 상주하여 외출을 통제한다. 또한 2007년에는 국민당의 거물급 정치인인 우젠바오가 뇌물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승부조작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포착해 이를 조사한 이후 구속했다.

조작 논란에서 자유롭고 타 국가 프로야구팀에서 뛰는 천웨이인[10]이나 왕젠민[11], 궈훙즈[12]과 같은 선수들이 있어 전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국가대표 야구의 인기는 도리어 상승했다. 당연한지는 몰라도 대만의 야구 인기 자체는 상당히 높기 때문에 MLB이나 NPB의 인기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에게 패배한 뒤 국가 차원에서 승부조작 의혹이 나타난 걸 보면 국가대표 야구도 승부조작의 안전지대는 아닌 듯하다. 안에서 깨진 바가지가 밖에서 안 깨질 리가 없다고, 해외 리그의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다들 국내 리그에서 승부조작에 노출되었던 선수들이니 대만에서 열린 2013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호주 야구 리그 캔버라 캐벌리가 조작 세력으로부터 매수 시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부조작이 만연하다 보니 대기업들도 이미지가 실추될까 봐 리그 참여를 꺼리는 편이었다. 대만의 승부조작 세력은 전직 프로 선수나 전직 야구 프런트가 주도했고, 이 사람들을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범지구적 범죄조직들인 삼합회 조직들이 몽땅 흡수해 버렸기 때문에 대만의 행정력으로도 다 잡는 게 사실상 어렵다.

다행히도 리그 평균 관중 수가 늘고 있고, 대기업이라고는 10대 그룹에 속하는 원년 참가팀 퉁이 그룹만 있었지만 지금은 대기업들도 속속 참여하고 있다. 2014년 20대 그룹에 드는 중신금융지주의 참여(슝디호텔이 모기업이었던 엘리펀츠를 인수)[13], 2017년에는 대만 5대 그룹에 드는 푸방금융지주가 리그에 참여(가오슝 기반 중견그룹 e-united가 모기업이었던 라이노스 인수)하여 이제는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리그가 되었다. 2020년 현재는 금융 대기업이 리그에 진입하고 라미고는 아예 일본의 큰손[14] 라쿠텐에 넘어가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승부조작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는데, 이제는 해외 베팅 사이트들이 중국계 인구를 위해 주 타겟을 축구와 e스포츠로 변경하면서 대만 야구에 신경쓸 여력도 적어졌다. 또한 선수들의 연봉도 많이 올라가 이제 주전급이면 1억 언저리는 받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다만 대만의 최고 스타 선수들도 여전히 연봉 4~5억 정도가 최대이며, FA 계약 규모도 10~20억 원대에 그친다.[15]

다만 신규팀 창단에는 여전히 애를 먹고 있는데, 2013년부터 메이푸 자이언츠, 총위에 팔콘스 등이 제5구단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중소기업들이 참여가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리그의 사이즈가 커져서 중소기업들의 참여가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 2018년에는 호주 리그 선수들을 데려다가 5구단을 창단한다는 구상도 나왔는데 역시나 흐지부지되면서[16] 5구단 창단은 앞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예측이 많았다.

2019년 웨이취안 드래곤스가 재창단을 선언하였다. 2020년 2군에 진입하였으며 2021년 1군에 진입하였다.[17] 웨이취안 또한 과거에는 중소기업으로 구단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다 해체된 경험이 있으나, 현재는 웨이취안을 인수한 모기업인 딩신이 중국 식품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큰 기업으로 앞으로는 CPBL도 대기업 위주로 돌아갈 전망이다.

2022년에는 철강 제조업체인 TSG가 제 6구단 창단을 선언했다. 연고지는 가오슝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2022년 2월 25일, 타이강 호크스가 제 6구단 창단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25년 만에 6구단 체제가 복원될 예정이다.

4. 리그 수준

창설 시기에 걸맞게 MLB, NPB보다는 수준이 훨씬 낮으며, KBO 리그보다도 수준이 조금 더 낮다 여겨진다. 1994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CPBL에 진출한 한희민에 따르면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보다 좀 더 아래.[18] 시스템 자체도 엉망이었고 타 팀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전략 분석의 개념이란 것이 없었다고 한다.[19]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용병들 중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지피기 위해 대만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20]들도 상당수 많다.

현재 대만 야구의 수준은 AAA 급에서 밀려난 투수가 1~3선발이 되는 리그이다. 예를 들어 1군에서 뛰어본 적이 없던 KT 위즈의 창단멤버 마이크 로리[21], KBO에서 3선발 수준의 투수였던 지크 스프루일, 배팅볼러 수준으로 중간에 퇴출당한 닉 에디튼 등이 정상급 투수가 되었고, 삼성에서 후반기 데드암 징후를 보이며 재계약에 실패한 알프레도 피가로 등이 CPBL에 스카우트되어 뛰기도 했다. 고령으로 더이상 팀을 찾기 어려운 앤디 밴 헤켄 역시 2018년 CPBL에 진출했고 2019년에는 헨리 소사가 대만으로 향했다. 이외의 다른 외국인 투수들 역시 A~AAA 레벨에서 더 이상 팀을 찾지 못하고 애틀랜틱 독립 리그와 같은 A~AA 수준의 독립 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한 후, 선수 생활의 마지막 돈벌이로 택하게 되는 리그가 되어버렸다. 또한 반대로 대만에서 잘 한 외국인 선수, 자국인 선수[22]가 KBO나 NPB에 갔을 때 성공적인 선수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는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마치 KBO를 폭격하고 MLB나 NPB에 도전한 선수들 중 성공한 선수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과 같다.

대만 태생의 선수 중에서 한때 마이너리그에서 뛰었고, 메이저리그를 한번쯤 밟았던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서 돌아오면 리그 최고 수준 선수가 된다. 다저스 메이저를 밟았던 후친렁, 궈홍츠, 대만 계투로 가장 이름을 날린 전직 메이저리거 니푸더 등이 아직도 주요 타자나 마무리 투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평에 의하면 하이싱글A 수준이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참고해 볼 때 비교적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KBO 리그/리그 레벨차 논쟁 문서에 약간이나마 더 자세한 내용이 있다. 이외에 일본의 야구팬들은 대만프로야구가 일본 2군과 비슷한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23]

실제 대만야구를 좀 보면 KBO 리그가 지적받는 것과 비슷하게 투수는 구속보다도[24] 제구나 경기 운영능력 문제가 있으며, 야수들은 컨택/선구안의 정확도와 수비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수준이 KBO 리그보다도 한 수 아래라서 수비 쪽에서 호러쇼가 자주 일어나는 편. 특히 애매하지만 수비범위가 넓다면 충분히 내야 플라이/짧은 외야 플라이가 될 만한 공이 안타가 되거나 송구가 빠진다거나 외야수가 타구판단을 완전히 틀리는 바람에 평범한 플라이 타구가 장타로 이어지거나 하는 문제는 한국보다도 심하다.

4.1. 아시아 시리즈

그런데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이상하게 한국과의 전적이 좋다. 2006년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라뉴 베어스에 패하고[25], 2008년 아시아 시리즈에서에서는 퉁이 라이언스가 SK 와이번스 정대현을 10-4로 이기는 바람에 야갤에선 우주최강 퉁이 라이온즈라고 칭송받았다.

거기에 2010년 대만/한국 챔피언쉽에서는 슝디 엘리펀츠가 다시 SK와 송은범을 끝내기 안타로 패배시켰다. 하지만 이틀동안 슝디 마운드에는 대만 투수는 한명도 올라오지 않았다. SK 선수들이 대만팀하고 상대를 한건지 대만타자들이 포함된 중남미 팀하고 겨룬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을 정도. 그 덕분에 대만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서 잘 치고 잘 던진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26] 당장 위에 예시로 설명해놓은 케니 레이번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 경우였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위의 송은범이 끝내기 안타를 맞고 진 날 슝디 엘리펀츠의 선발 투수였던 올랜도 로만은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여 일본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래도 타자들이 끈질기게 투수를 잘 공략하고 시프트를 잘 짜놓았던 것을 보면 이번 경기만큼은 그래도 전력분석이란 걸 한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CPBL에서 SK 와이번스의 데이터를 슝디 엘리펀츠에게 건네줬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 열린 2012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라미고 몽키스가 이전년도 아시아 시리즈 우승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3:0으로 완봉패시켰다. 그런데 6년전 이 대회에서 패배를 안겨준 옛 라뉴 베어스가 바로 이 라미고 몽키스이다. 이때 마이크 로리 선수의 완투가 주목받기도 했다. 참고로 로리는 2011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낙방된 선수였지만 2014년 kt wiz의 외국인 선수로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대만 클럽 전체로 보면 아시아 시리즈에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가 5대회만인 2011년에 한국 클럽으로서는 최초로, 동시에 비(非) 일본 클럽으로서도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으면서 대만 클럽들에게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 주었으나, 이듬해 삼성을 꺾고 결승에 올라온 라미고가 일본 대표로 나선 요미우리 자이언츠한테 3:6으로 패배하며 또 다시 우승 실패, 2년 만에 또 자국에서 열린 2013년 대회에서 EDA 라이노스(구 싱농 불스)는 2전 전패로 조별예선에서 광탈하였고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가 조 2위로 준결승에 오른 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꺾고 결승에 올라 전날 삼성을 연장 끝에 꺾고 올라온 캔버라 캐벌리(호주)를 만나며 대만 클럽의 사상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으나, 캔버라의 돌풍은 결승에서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4:3으로 이기고 있다가 7회와 8회에 거하게 털리며 4:14로 대패하면서 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써 대만 클럽은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벌써 4번째.

이 와중에 대만의 승부조작 세력이 캔버라 선수들에게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행히 승부조작 제의를 받은 선수들이 조작을 하지 않고 대만 경찰 측에 신고하면서 진상이 밝혀졌다. 관련기사

5. 시즌 운영

5.1. 페넌트레이스

연도 진행 방식
1990년
~ 1992년
전, 후기로 시즌을 나눠[27] 전후기 각각 원년 리그 참가팀 4구단[28]이 팀간 15시합을 치러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름.
1993년
~ 1994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29] 전, 후기 각각 팀간 9시합을 치러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름.
1995년
~ 1996년
전, 후기 각각 팀간 10시합을 치러 모두 50시합, 전후기 총합 100시합을 치름.
1997년 리그 참가팀이 7구단으로 늘어나면서[30] 전, 후기 각각 팀간 8시합을 치러 모두 48시합, 전후기 총합 96시합을 치름.
1998년 전후기리그 제도에서 단일리그 제도로 규정이 변경되었으며, 스바오 이글스 작년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1년간의 리그 참가정지 처분을 받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줄어들면서[31] 팀간 21시합을 치러 총합 105시합을 치름.
1999년 상술했듯이 스바오 이글스가 1998년 9월 해산하면서 리그 참가팀이 정식으로 6구단이 되었으며, 팀간 20시합을 치러 총합 100시합을 치름.
2000년
~ 2002년
다시 전후기 리그 체제로 규정이 변경되었으며, 리그 참가팀이 4구단으로 줄어들면서[32] 전, 후기 각각 팀간 15시합을 치러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름.
2003년
~ 2008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33] 전, 후기 각각 팀간 10시합을 치러 모두 50시합, 전후기 총합 100시합을 치름.
2009년
~ 2020년
리그 참가팀이 4구단으로 줄어들면서[34] 전, 후기 각각 팀간 20시합을 치러 모두 60시합, 전후기 총합 120시합을 치름.
2021년
~ 2023년
리그 참가팀이 5구단으로 늘어나면서[35] 전, 후기 각각 팀간 15시합을 치러 모두 60시합, 전후기 총합 120시합을 치름.
2024년
~현재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36] 전, 후기 각각 팀간 12시합을 치러 모두 60시합, 전후기 총합 120시합을 치름.

2009년 이후 주중 2연전, 주말 3연전 체제로 진행된다. 주중 2연전은 4개 구단은 화요일과 수요일, 나머지 2개 구단은 수요일, 목요일에 경기를 편성하는 형태다. 3년간 5개 구단 체제에서는 1경기, 2연전, 3연전이 혼재된 체제로 진행되었다. 우천 연기가 많아 전기리그는 6월 중순에 연기된 경기를 편성하고 후기리그는 10월에 연기된 경기를 편성한다.

과거에는 일본프로야구처럼 잡다한 출장 경기가 많아서 본거지에서는 불과 30~40경기만 개최하면서 나머지 홈경기를 순회를 하면서 진행했다. 심지어 남의 본거지에 홈경기를 편성하는 경우도 심심지 않게 있었다. 실제 타이난 연고의 퉁이 라이온즈의 경우 2017년까지도 신베이나 타이중에서 홈경기를 열었다. 하지만, 연고지 중심의 마케팅 문화가 조금씩 자리잡으면서 2018 시즌 이후로 순회 경기는 거의 사라졌다. 현재는 인구가 희박한 동부지역에서만 순회 경기가 편성되고 있다.

5.2. 플레이오프

1998년
~ 1999년
시즌이 전/후기로 나뉘지 않고 단일시즌으로 치러진 유일한 시기이며, 시즌 승률 2, 3위 팀이 2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시즌 승률 1위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룬다.
2005년
~ 2008년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전/후기 우승팀이 같을 경우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이외의 팀들 중에서 시즌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시즌 승률 2, 3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2009년
~ 2021년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전/후기 우승팀이 같을 경우
전/후기 우승팀 중 한 팀이 통합승률 1위인 경우 통합승률 1위가 전/후기 어느 쪽도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
전/후기 우승팀이 타이완 시리즈에 출장해 최종승자를 겨룬다.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시즌 승률 1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시즌 승률 2, 3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이때 전/후기 우승팀에겐 타이완 시리즈에서 1승 어드밴티지를 준다.
2022년
~현재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전/후기 우승팀이 같을 경우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이외의 팀들 중에서 시즌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이 5전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이때 시즌 승률이 높은 팀이 1승 어드벤티지를 가짐 시즌 승률 2, 3위 팀이 5전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러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역대 플레이오프 개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승패 현황의 기호는 우승팀을 기준으로 한다. 참고로 아직까지 플레이오프에서 무승부가 나온 적은 없다.
연도 우승팀 패전팀 전적 승패 현황
1998 웨이취안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2 - 1 XOO
1999 웨이취안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2 - 1 XOO
2005 청타이 코브라스 퉁이 라이온즈 3 - 1 OXOO
2006 퉁이 라이온즈 싱농 불스 3 - 0 OOO
2007 퉁이 라이온즈 청타이 코브라스 3 - 0 OOO
2008 슝디 엘리펀츠 라뉴 베어스 3 - 0 OOO
2017 중신 브라더스 퉁이 라이온즈 3 - 1 OXOO
2018 퉁이 라이온즈 푸방 가디언즈 3 - 1 OXOO
2022 중신 브라더스 웨이취안 드래곤스 3 - 1[37] OXO
2023 라쿠텐 몽키스 퉁이 라이온즈 3 - 1[38] OOO

5.3. 타이완 시리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타이완 시리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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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시리즈는 전/후기 우승팀끼리 맞붙을 시에는 7판 4선승제이고 한 팀이 싹슬이해서 플레이오프를 치를 시에는 싹쓸이한 팀에게 1승을 부전승으로 준다.[39] 즉 라미고가 전기/후기 리그를 다 우승한 2017 시즌같은 경우는 6판 4선승제. 구장의 경우는 전/후기 우승팀 끼리 맞붙을 시에는 승률이 높은 팀이 1/2/6/7차전 홈구장 자격을 갖는다. 한 팀이 싹쓸이 한 경우는 그 팀이 1/2/5/6차전에서 홈 경기 개최권을 가지며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3/4차전 홈 경기 개최권을 갖는다. 홈경기 개최권을 가졌다고 홈구장에서 경기하는건 아닌데 항목 참고.

6. 인프라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언론 등 국내에는 대만 야구장 인프라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실상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만에서는 20,000석 이상은커녕 프로구단 홈구장 좌석 수는 15,000석 이하였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정규 야구장은 딸랑 하나에 그나마 14,000석의 타이베이시립야구장이 전부였다. 이 야구장도 2000년에 사라지면서 타이베이 시내에는 야구장이 전무한 상태가 됐다. 타이베이시 홈팀 경기는 타이베이현(현.신베이시)에 있는 7,200석 규모의 신좡야구장[40]과 원래 아마추어 용도의 6,000석으로 계획된 톈무 야구장[41]에서 분산 개최되었는데, 톈무는 목동 야구장처럼 주변이 주거지라 주말에만 경기가 열리는 등 프로야구에 쓸만한 구장이 태부족이다.

그렇게 대만의 야구장이 좋지 않았음에도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를 부러워하는 이유도 있었다. 대만이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연달아 5개의 야구장을 신축하는 동안, 이때까지도 대한민국에서는 안전성마저 의심되는 노후화된 야구장을 프로야구 메인 홈구장으로 삼았기 때문. 사실 대만이 이렇게 야구장 건설에 열을 올린 이유도 있는데, 국제정세상 올림픽 월드컵 등 대규모 국제대회를 유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만은 그나마 쉽고,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각종 국제 야구대회를 개최했고 아시아야구연맹 본부를 유치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1999년 가오슝, 2006년 타이중, 2010년 타오위안에 20,000석 규모의 야구장을 개장했다. 그렇게 대만에서는 약 5년 간격으로 신규 야구장을 개장하는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약 15년 간격으로 신규 야구장을 개장하다 보니[42] 당시 대만의 잇따른 야구장 신축을 부러운 시선으로 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 시절 만들어진 5개 야구장(1997년 신좡야구장, 2005년 더우류 야구장 포함)의 특징은 국제대회를 위해 만들다 보니 모든 구장이 중앙은 400ft, 좌우는 330ft로 동일한 쿠키커터 야구장이다. 국제 경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대전구장보다 못한 편의시설, 잠실 야구장 수준의 좌석 간격과 배치를 보여 프로야구 홈 구장에는 최적화가 되어있지 않다.[43] 관중석도 20,000석 넘는 구장이 없어 큰 경기시에는 표를 구하기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그리고 2014년 이후로는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야구장들을 다수 개장하면서 한국 언론들은 더 이상 대만 야구장의 인프라를 띄우지 않는 편이다.

2018년부터 KBO 리그에서 뛰었던 왕웨이중 덕분에 KBO 리그에 관심이 큰 대만 야구 팬들이 KBO 리그 경기를 인터넷으로 시청하면서 쓴 글에서는 "경기장 시설이나 이렇게 고화질로 중계하는 한국에 견주면 우리 대만 야구리그가 참 인프라가 개판이라는 걸 알겠다"고 한탄했다.[44] 미국이나 일본이야 넘사벽이지만, 한국을 이렇게 보니 한국조차도 넘사벽이라고 할 지경. 더 웃긴 건 그 좋다는 야구장이 2018년 기준으로 가장 낙후된 야구장 중 하나였고 그 시즌을 끝으로 1군이 사용하지 않는 마산 야구장.

물론 프로 리그에 한정하지 않은 순수 야구장 인프라 자체는 대만이 우월하다.[45] 초등학교도 야구장을 갖춘 곳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12,000석 이상 프로 1군급 야구장은 한국보다 적은 편이다.[46] 심지어 매해 정규리그 경기가 열리는 화롄야구장은 관중석 규모가 5,500석 밖에 되지 않는다.

2023년, 32년을 끌어온 타이베이돔이 드디어 개장했다. 외형상 고척돔 mk.2라는 평가도 있지만 40,000석의 대형 돔구장이 대만에도 생겼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경기장 대관료가 만만치 않아, 한국보다도 상황이 열악한 대만 프로야구단이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르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이다. 2024년부터 CPBL 빅매치나 국제대회 위주로 야구 경기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타이베이돔의 개장 이후, 국내에는 대만 야구장의 인프라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소수지만 다시 생겨날 정도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청라 돔 야구장 잠실 돔구장 모두 완공되기까지는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고, 개폐형이 아닌 폐쇄형으로 지어지기 때문에 언제 타이베이돔 수준의 돔구장이라도 갖게 되는 것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47] 그러나 타이베이돔도 개장 이후 매우 작은 전광판, 앞 사람 뒤통수로 인해 가려지는 시야, 의자 색과 공 색이 똑같아 공이 가려져 경기에 지장을 미치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하여 비판을 받았다.[48]

6.1. 경기장 목록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82657><tablebgcolor=#082657> 파일:CPBL 로고.svg 대만 프로야구 리그
홈구장 및 기타 구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wiki style=""
{{{#181818,#e5e5e5
구단 홈구장
파일:푸방 가디언스 로고.svg 푸방
가디언즈
신좡 야구장
파일:웨이취안 드래곤스.png 웨이취안
드래곤스
타이베이 시립 톈무 야구장
신주 시립 야구장
파일:라쿠텐 몽키스 로고.svg 라쿠텐
몽키스
라쿠텐 타오위안 야구장
파일:중신 브라더스 로고.svg 중신
브라더스
타이중 저우지 야구장
파일:퉁이 라이온스 로고.svg 퉁이
라이온스
타이난 시립 야구장
파일:타이강 호크스 엠블럼.png 타이강
호크스
가오슝 시립 청칭후 야구장
중립구장
타이베이돔 ( 타이베이시) 더우류 야구장 ( 윈린현)
자이 시립 야구장 ( 자이시) 자이 현립 야구장 ( 자이현)
이란 현립 뤄둥 야구장 ( 이란현) 화롄 현립 야구장 ( 화롄현)
타이둥 현립 야구장 ( 타이둥현) }}}}}}}}}}}}}}}

2024년 기준 신주 시립 야구장을 제외한 6구단의 메인 홈구장+청칭후, 자이시, 더우류, 화롄, 타이둥까지 5곳의 지방구장 해서 10곳에서 1군 경기가 열린다.

7. 신인 드래프트

KBO 리그와 비슷한 시기에 드래프트를 한다. 해외 계약 예정자 등은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처럼 신청자에 한해서 드래프트를 한다.[49][50] 하지만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추천서를 받아야만 드래프트에 신청할 수 있다. 고졸 선수는 모교 혹은 고교 야구 연맹에서 받아야 하고, 대졸과 실업 야구 선수는 소속 학교, 팀에서 추천서를 받는 것과 함께 리그 실적까지 좋아야만 지원할 수 있다.[51] 즉 정말 대인 관계가 안 좋은 선수는 아무리 잘해도 프로야구에 가기 매우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은 아닌 것이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드래프트 5년 이내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의 경우 추천서가 면제이기 때문에 그냥 신청하면 된다는 것이다.[52] 두 번째는 KBO 리그에서도 매년 진행하는 특별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방식이다. KBO에서는 주로 해외파와 독립 리거, 비선출들이 참가하여 많아봤자 10여명 참가에 불과하다면 대만의 경우 해외파 참가자도 있지만 상당수는 추천서를 받지 못했거나, 성적이 안 돼서 프로 지원자격을 못 얻은 대졸, 실업 야구 선수들이 이 트라이아웃에 모두 몰려서 참가자가 수십~수백명이다.[53] 이 트라이아웃에는 프로야구단의 코치들이 파견돼서 합불을 판정하는데, 합격할 시 프로야구단에서 추천서를 써 준 것으로 간주하여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다. 당연히 여기서 합격했다고 프로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합격률이 20~30% 수준으로 낮았으나 2017년 이래 2019, 2021년을 제외하면[54] 대부분 절반가량 합격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주로 해외 프로야구에서 나름 족적을 쌓은 선수들이 쓰는 방식인 자행배훈선수[55] 계약을 맺고 프로팀의 추천서를 받아서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것도 있다. 대만 드래프트 규정을 보면 추천서를 써 주는 주체 중에는 프로야구 구단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 하지만 프로야구단에서 잘 모르는 아마추어 선수에게 추천서를 써 줄 리가 없으니 나름 커리어를 갖고 있는 해외파들이나 하는 방식이다.

어느 해에는 14명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해에는 겨우 6명밖에 지명 안하는 해도 있다. 팀 마다 지명자 수도 다르며, 획일적이지 않다. 특정 라운드에서 팀이 지명 종료를 자체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 단적으로 2018 드래프트에서는 4개 팀이 각각 10, 8, 7, 7 라운드까지 지명하였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낮은 라운드의 선수들은 이전의 KBO처럼 뎁스용 지명이 대부분이지만[56] 중신 브라더스의 왕웨이천(王威晨)같은 예외도 있다.[57]

순서는 한국처럼 성적 역순으로 지명하며, 1차 지명부터 바로 성적 역순으로 순차적으로 지명한다. 지역구 내에서 자유계약 형식으로 1차지명을 하는 한국이나 중복지명이 가능해서 중복지명 시 추첨으로 결정하는 일본 프로야구와의 차이. 그래서 만약 대어가 들어오면[58] 1픽을 가진 구단에게는 좋은 일이 된다. 해외파 출신이라고 해서 주어지는 페널티는 거의 없는데[59], 예를 들어 2018년에는 바로 며칠 전 마이너리그에서 퇴단한 C.C.Lee(리천창)이 드래프트장에서 2라운드에 지명을 받기도 했다.

KBO와는 다르게 2013년부터야 고졸이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게 됐고[60] 드래프트 참가자들을 보면 3/4정도는 여전히 대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졸 출신의 유망주들이 바로 프로에 진입하고 있으며, 이 선수들이 최근 CPBL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어 향후 경향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2020년대에 들어서도 KBO처럼 극단적인 고졸 선호는 아니라 아직 대졸, 실업 야구 출신도 많으며 해외 직행선수가 워낙 많은 대만이다 보니 매년 해외파 출신도 꾸준히 지명되는 편. 2023년 드래프트에서는 지명된 45명의 선수 중 20명이 대졸, 실업 야구 출신이었고 3명은 해외파였기 때문에(이 셋 다 대학을 진학하고 해외에 직행했다.) 고졸은 22명이다. 물론 이렇다보니 대졸 의무지명 같은 것은 없어서 2022년 라쿠텐의 드래프트처럼 전원 고졸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자국 리그의 규모가 프로리그지만 작은 편이고, 승부조작 등으로 자국 야구리그보다 해외 야구나 국가대표 야구가 더 인기많은 대만 특성상 지명을 거부하고 해외로 나가는 선수가 꽤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는 쑹자하오. 원래 2015년 드래프트에서 퉁이 라이온즈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지명을 거부하고 육성선수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7년 정식선수로 승격하는데 성공하면서 1군을 밟았다.[61] 다만 최근 들어 양질의 대만 선수들의 진로가 다변화되고, 이에 맞춰 타이완 구단들의 계약금 역시 소폭 상승하여, 역시 경향은 바뀔 수 있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9월에 한 학년이 시작하는 대만 특성상 9월부터는 드래프트된 선수가 바로 1군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는 쌍둥이 선수가 같은 팀[62]에 지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중 한 선수는 1차 1라운드, 즉 전체 1순위로 뽑혔다. 바로 천중위(陳重羽)라는 포수. 참고로 쌍둥이 동생인 내야수 천중팅(陳重廷)도 바로 다음 턴인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 2020년 현재 형 천중위는 입단 2년차 때 주전포수를 꿰차는 등 1군 레귤러로 활약하고 있으나 동생 천중팅은 1군과 2군을 오가고 있으며 2군조차도 폭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학창시절 학업성적도 형이 더 좋았다고 한다.

유학생이나 대만 실업 야구에서 일정 햇수 이상 보내면 외국인도 드래프트로 입단해야 하며, 육성선수 입단이 가능한 한국, 일본과 다르게 육성선수 입단은 불가능하다. 또한 외국인이 드래프트로 입단한 사례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2023년 드래프트에서는 실업 야구에서 뛰던 일본인 오타키 코지(대만 객가인 혼혈), 타카시오 마사키[63] 2명이 드래프트에 참여하였으나 지명받지 못했다.[64] 타카시오 마사키는 육성선수로 라쿠텐 몽키스에 입단할 뻔 했으나 외국인은 외인 쿼터 혹은 대만인으로 간주하는 자격을 얻어 드래프트로만 입단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입단이 취소되었다. 이후 타카시오 마사키는 다음 해인 2024년 드래프트에서 드디어 퉁이 라이온스의 6라운드 지명을 받고 드래프트 삼수+35세라는 황혼기 나이에 커리어 첫 프로팀 입단이라는 인간승리를 이뤄냈다.

연말까지 팀에 합류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 한 시즌 중 입단이기 때문에 입단할 때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최소 단위가 1.5년 계약이다. 그래서 2년차까지는 팀 소속이 보장이 된다. 거기다가 입단할 때부터 2.5년, 3.5년, 4.5년 등의 계약도 가능하다.[65] 대만 특성상 대졸+실업 야구 경력자에 해외파까지 합치면 20대 후반이나 30대에 입단하는 선수도 많아서 이런 선수는 즉전감으로 생각하고 입단 즉시 다년계약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식으로 늦은 나이에 다년계약으로 입단했다가 먹튀가 되는 선수도 있다.

8. 2군 운용

다소 특이한 방식의 2군 리그 운용을 하고 있다.

2006년 6개팀 중 라뉴 베어스와 퉁이 라이온스의 2개 팀 2군과 실업팀들이 2군 리그에 참여하면서 2군 리그가 시작됐다. 유일하게 전용 연습구장을 가지고 있던 슝디 엘리펀츠도 2008년에서야 2군 참여를 시작하였고, 2009년부터는 아마추어팀 참여 없이 2군 리그가 진행되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다녔던 1군 처럼 홈구장에 정착하지는 못한채로 경기를 가졌다.

그러다 2014년부터 전 팀 모두 타이완 남부 지역에 모여 훈련하는 것을 골자로 2군 리그 전 경기를 남부지방에서 치르고 있다. 핑둥현에 있는 핑둥야구장과 중신공익파크(중신브라더스 모기업 소유)에서 주로 경기를 치르고 가오슝과 타이난에 일부 경기를 배치하다가, 2019시즌부터는 핑둥야구장이 빠지고 남부 지방의 특정 구장과 특정 구단을 매치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66] 2015시즌 이후 리그 전체로 보면 2군 경기는 매주 6경기, 즉 하루에 딱 1경기만 열리는 셈. 즉, 각 팀은 일주일에 3경기씩만 치르며 구단별로 시즌 72경기를 치른다. 2020년 웨이취안 2군이 합류하면서 구단별로 시즌 88경기를 치르고 있으며 매주 3-4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2군의 출범은 많이 늦었고 구단들 또한 구단 전용 연습장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지만[67] 대만 2군 연합팀, NPB 2군 연합팀, KBO 2군 연합팀 등이 경기를 치르는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를 의욕적으로 주도하는 등 2군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다만 호주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추가한다는 계획도 있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KBO와 다르게 NPB처럼 2군도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하지만 2군에서도 홀드를 주는 것은 NPB와는 다르고 KBO식이다.

9. 외국인 선수

리그 첫 시즌인 1990년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을 KBO 리그보다 빠르게 했다. 물론 이 당시 KBO에서는 재일교포 선수 영입이 사실상의 외국인 선수 영입이랑 비슷했다고 봐야 하지만.

외국인 선수 쿼터가 NPB와 비슷한 4보유 3출장이다. 2019년까지는 1군에 3명까지 올릴 수 있었으며 외국인 등록도 3명밖에 하지 못했으나 2020년부터 외국인 등록 절차를 한번에 4명까지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단 1군에는 여전히 3명만 올릴 수 있다. 또한 예전에는 외국인 선수들의 동시 출장을 막아놓았으나 2023년 현재는 제한이 없다.

대만의 외국인 선수 운용방식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외인을 많이 영입하여 2군에도 외국인 선수가 상당수 있는 NPB[68]와는 달리 외인을 4~5명만 영입하고 그 4명을 계속 1군에서 돌리는 방식의 운영을 하곤 했다. 또한, 일본과 다르게 외국인 선수를 2군에 내린 후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방출해버렸다. 당시 외국인 선수가 2군에 있는 경우는 대부분 퇴출 예정 외인이 아직 쫓겨나지 않아서 1군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퇴출 시기까지 대기를 하는 경우거나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땜빵용으로 아주 낮은 수준의 선수 한명을 추가로 두는 정도에 그쳤다. 이 이유는 대만프로야구의 규정 때문이다. 대만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를 1군에 올릴 때 등록 절차를 거친다. 이렇게 등록 절차를 거친 선수는 한 시즌에 두 번까지 2군에 내릴 수 있다.[69] 그리고 구단이 1군에 처음 등록한 3명의 선수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가 생겨서 대체 외인을 1군에 올리고자 할때는 3명 중 한 명을 '등록 취소' 해야 하는데 대만프로야구 규정상 외국인 선수의 1군 등록 취소는 방출밖에 없다고 한다.[70] 따라서 대만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가 맘에 안 들면 2군 보유량이 무제한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방출하고 대체외인을 영입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때문에 외국인 선수를 최대 5명 정도만 영입하던 것이 코로나 이전의 방식이였다.

그러나 코로나 첫 시즌인 2020년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가 1군 3명, 등록 4명, 2군 전용 선수 무제한으로 바뀌면서 외국인 선수를 마음대로 1군과 2군을 왕복시킬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외국인 선수를 6~8명씩 영입해서 쓰고 있다. 또한 외국인 선수가 방출된 후에도 본인이 원하면 육성선수 신분으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2군에서 뛸 수도 있게 되면서 일부 구단에서는 부상 등으로 시즌 후반을 날리거나 육성형으로 데려온 외국인 선수를 방출 처리를 하되 2군에서 계속 뛰도록 묶어놓기도 한다고 한다.[71] 참고로 대만에서는 8월 31일 이후로는 신규 외국인 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애매한 외국인 선수들이 이 때 대거 몰아서 방출되고, 최후의 순간에 영입된 대체 외인들은 보통 9월 초에 팀에 합류한다.[72]

또한, 투수 몰빵 영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2021년까지는 대부분의 구단이 선발 투수 만으로 외국인 쿼터를 운영했다. 따라서 투수 랭킹 1~10위 안에는 1~2명을 제외하고는 항상 외국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로 선발로만 외국인을 뽑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옛 한국의 사례처럼 1경기당 2명의 용병만 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외인 불펜이나 타자를 뽑기가 애매하다. 그러나 2021년 공인구 교체로 인해 투고타저가 찾아오면서 2022년에는 대부분의 구단들이 용병 타자를 다시 1명씩은 뽑았다. 그러나 외인 타자들이 죄다 실패하면서 용병타자 붐은 1년으로 끝났고 2023년에는 브레딘 헤겐스, 앤더슨 프랑코 같은 불펜외인 소수를 제외하면 다시 선발 투수 용병만 뽑고 있다가, 2024년 신생팀 타이강이 외인 쿼터가 1명 더 생긴 것을 이용해 스티븐 모야[73]를 영입했고 그 모야는 타격왕, 홈런왕, 타점왕 경쟁을 하면서 대만을 폭격하고 있다.

NPB와 KBO는 대부분 최소 메이저리그 데뷔 경험이 있는 선수를 주로 뽑는 경향이 큰 반면, CPBL의 보통 싱글 A로 보는 리그 수준을 감안하기에 CPBL은 주로 붙박이 마이너리거나 독립 리그, 멕시칸 리그 선수를 많이 뽑는다.[74] 심지어는 AAA조차도 못 밟은 선수를 데려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신 브라더스에서 2017년에 뛴 릭 티슬리는 A+를 밟아본 경험이 없는 선수다.

CPBL에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있기는 하나, 그런 선수들은 대개 NPB나 KBO에서 실패해서 미국에 가도 다시 메이저에 갈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이 주를 이룬다. 드물게 닉 마르게비시우스처럼 아시아 커리어를 대만에서 시작하는 메이저리그 유경험자도 있지만 더블A 스플릿 수준까지 추락하거나 중대한 부상 문제로 NPB는 물론 KBO의 외국인 리스트에서도 지워진 선수들이다.

특별한 예로, 올스타급 메이저리거가 와서 뛰었던 적이 있었다. 2013시즌에 매니 라미레즈가 3개월간 뛰었다. 퇴출된 건 아니고 계약이 딱 3개월이었고 이후 재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본인이 거부했다.

그래서 선수들 연봉도 2019년까지는 일반적으로 15만 달러 안팎에서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2019년 리즈, 소사 등 미국과 한국에서 적절한 실적을 거두었던 선수라도 월봉 2-3천만원대, 즉 연봉 20만 달러 이내라고 한다.[75] 60~70만 달러는 기본으로 받고 그 이하를 받는 용병이 오면 한숨 쉬는 KBO와, 즉전감 외인들은 못해도 100만 달러는 받는 NPB와 비교하면 액수가 매우 초라하다.[76] 또한 다른 리그와 다르게 월봉 계약, 3개월 계약 등의 개념도 존재하기 때문에 잘 하던 외국인 선수가 갑자기 시즌 중 다른 나라 리그로 가버리기도 한다. 2015년 세든, 2017년 애디튼, 2019년 소사의 경우가 이런 경우. 최근에는 연봉 계약을 하는 선수들의 비중이 높아졌다. 특히 특급 대우로 큰 돈을 주고 데려온 아리엘 미란다, 헨리 소사 같은 특급외인 혹은 여러 년 동안 뛰면서 실력이 검증된 장수외인들이 많이 늘었다. 이유는 당연히 시즌 중 타 리그 이적 방지.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연봉 계약을 한 외국인 선수의 경우 10달간 월급을 받는 개념이기 때문에 월봉X10을 하면 대강 연봉이 계산된다. 대만인 선수들은 12달간 월급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77]

2020시즌 이후로는 전반적으로 외인 가격이 올라갔다. 2020년 기준 에이스급인 선수들은 30만 달러는 그래도 받았다. 2020년 기준 헨리 소사, 에스밀 로저스는 40만 달러 가까이 받으며, 중신 브라더스 아리엘 미란다[78]는 아예 60만 달러라는 역대급 계약으로 대만에 들어왔다. 한국으로 치면 새로 입단한 선수에게 300만 달러를 안겨주는 수준의 투자다. 참고로 그 매니 라미레즈도 대만에서 뛸 때 월봉 6만 달러로 미란다와 동일했다.[79]이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연봉이 올라서 에이스급들은 60~70만 달러까지도 받고 평범한 외인들도 20~30만 달러는 받는다.[80]2019년만 해도 에이스급이 30만 달러를 받던 리그였는데 3년만에 평범한 외인이 그 정도를 받게 된 것. 덕분에 멕시칸 리그와의 외국인 선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81][82]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체 용병으로 가는 선수들조차도 대만리그 풀시즌 연봉 가까이를 받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여전히 "우리나라는 한국과는 돈싸움이 안 된다. 매년 잘 던지는 선수들이 중간에 돈을 더 준다고 한국으로 가 버린다."라는 말이 나온다.[83]

KBO 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는 외국인 선수가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의 경우 리그의 수준차이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84]

마이크 로리를 포함해 대만프로야구에서 몸담았던 KBO출신 한국인 선수와 외국인 선수를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외국인 선수들이 KBO에서 성공해서 NPB로 가거나 NPB에서 망해서 KBO로 가는 것처럼 대만에서 성공한 선수가 KBO나 NPB로 가거나[85] KBO나 NPB에서 실패한 선수가 대만에 오기도 한다. 2018 시즌 기준 KBO 출신의 지크 스프루일, 마이크 로리, 닉 애디튼, 앤디 밴 헤켄이 대만에서 뛰고 있다. 2017년에도 크리스 세든, 알프레도 피가로, 스캇 맥그레거, 코리 리오단, 스캇 리치몬드 등의 KBO 출신 선수들이 뛰었다. 2018년에도 마이크 로리, 지크 스프루일, 앤디 밴 헤켄이 뛰었으며 NPB 출신은 아니지만 일본인 투수 치넨 코야도 뛰었다. 특히 KBO에서 어중간한 성적을 내서[86] 퇴출당한 선수는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물론 NPB에서 실패한 선수가 몸값 때문에 KBO에 못 가는 것 처럼[87] 에릭 해커 더스틴 니퍼트처럼 이미 KBO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남겼기에 몸값이 비싸져 대만에 못 가는 경우도 있다.

2019년 텍사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비벤스-덕스가 대만리그로 이적하였고, KBO에서 헨리 소사가 이적하는 등 외인선수의 수준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일본->한국, 한국->대만으로 가는 토종 선수는 드물지만 일본->대만으로 가는 토종 선수는 간간히 나온다. 2023년 현재도 일본인 선수들이 있다.[88][89]

2021년 12월 29일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학생이 대만에서 고등학교 3년 재학 혹은 대학교 4년 이상 유학을 했을 때, CPBL 드래프트에 참가 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인의 경우 대만에 진출해도 KBO 진출 시 2년 유예 기간이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에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관련기사 단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에서도 그랬듯이 대만에서 고등학교 3년을 다닌 학생의 경우 유예 기간이 없을 것이다.[90]

참고로 CPBL에서 외국인 선수로 간주되지 않는 조건은 NPB와 매우 비슷하다. 현지 고등학교 3년 재학, 현지 대학교 4년 재학, 5년 거주+실업 야구 팀 3년 소속까지 3가지의 조건은 동일하며, NPB보다 1년 더 긴 9년간 CPBL에서 뛰어 온 외국인 선수는 국내 선수로 취급한다.[91] 하지만 마지막 조건인 '드래프트를 거쳐서 입단했지만 입단 직후에는 외국인 쿼터가 적용되다가 특정 햇수 이상 팀에 있으면 국내 선수로 취급해주는 방식'[92]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현지 고등학교를 1년만 다녀도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는 일본과 다르게 현지 고등학교를 3년 다 다녀야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다.

사족으로 1군 등판기록이 있는 외국인 투수 중에 통산 아웃카운트를 1개도 잡지 못하고 퇴출된 선수도 있다. 역사상 무려 세 명이나 있었고 이중 1명은 2경기에 등판해놓고 두 경기 다 털려서 아웃카운트를 통산 하나도 못 잡았다.

CPBL 홈페이지에서 외국인 선수를 확인할 때, 이름 앞에 ◎이나 *이나 #가 붙어있는 외국인 선수가 있다. 이 셋은 모두 육성선수 신분이나 대만야구만의 특이점 때문에 취급이 셋 다 다르다. 우선 *이 붙어 있는 선수는 보통 대체 외인으로 입단한 선수로, 이전에 있던 외인 선수가 아직 자리를 비우지 않았기 때문에 육성선수 신분으로 2군에서 뛰면서 1군 콜업을 노리는 선수다. 8월 31일까지 1군에 콜업되지 못하면 그 시즌 1군에서 플레이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아주 가끔 이런 이유로 1군에 못 올라가고 2군에서만 뛰다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현재 신분은 육성선수지만 곧 등록될 예정인 선수들이며, 계약도 일반 정규 외국인 계약이다. 그 다음으로 ◎이 붙은 선수의 경우 자행배훈선수로, 대만 복귀 해외파 선수들이 복귀를 기다리면서 드래프트 일정까지 임시로 맺는 육성선수 계약과 동일하다. 외국인 선수의 경우 이 방식으로 입단한 선수는 1군에 콜업되려면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정말 사전적인 의미의 육성형 외인은 이쪽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가 붙은 선수는 퇴출되었지만 팀에 남은 선수이다. 퇴출되기는 했으나 자유계약으로 퇴단하지 않고 내년에 1군 재콜업을 노리고 육성선수로 팀에 잔류한 선수들의 이름 앞에 #가 붙으며. 이 선수들은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1군에 올라올 수 없다. 보통은 육성형 외인이 1군에 잠깐 올라왔다가 내려가거나 부상 등으로 장기이탈을 했지만 내년에도 팀에 남겨놓고 싶은 선수를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국적 대륙 중국인 선수의 출전은 규정상 아예 금지된다. 대륙 중국인의 대만 방문이 매우 까다로운 점도 있지만 중화민국 소재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대륙계 사람들로선 불편하게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 거기다가 대륙계 야구 선수들은 NPB나 KBO 쪽로 출전하지, CPBL 쪽로의 출전은 아예 꺼린다.

9.1. 2024 시즌 외국인 선수

2024 시즌 개막일 기준 각 팀의 외국인 선수는 다음과 같다.

(시즌 개막 전에 계약한 선수는 굵게 표기했으며, 시즌 도중에 방출 혹은 웨이버 공시된 선수는 취소선으로 표기한다.)

9.2. 한국인 선수

대만프로야구에 진출해서 뛴 한국 선수들은 한희민, 김대우 등 총 16명이다. 관련 글을 참조. 다만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는 그리 많지 않은데 한국에서도 경쟁에서 밀려난 2군 선수들이 대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7 시즌 이후에 김광수 김경언이 대만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했으나 김경언은 타자인 데다가 임팩트있는 활약을 한국에서 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했고 김광수는 입단이 합의되었으나 계약 직전에 본인이 대만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포기하고 은퇴했다.

9.3. CPBL 출신 대만인 KBO 선수

2024시즌 현재까지는 없다. 판웨이룬의 사례에서 보듯이 CPBL 출신의 자유계약선수를 데려오려면 원적 구단에 이적료와 보상비를 지급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커서 데려올 수가 없다. NPB에서 뛰는 대만 선수들은 많은데라는 의문을 갖겠지만, 대부분은 양다이강처럼 일본 고교 졸업자이거나 형인 양야오쉰처럼 프로 입단부터 NPB에서 한 케이스들이다. 그리고 우수한 선수들은 이미 입도선매식으로 고교나 대학 졸업 후 일본 구단에서 데려가기 때문에 CPBL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선수에 별로 관심이 없다.[96] 따라서 CPBL 출신 NPB 선수도 손에 꼽을 정도다. 서비스 타임의 반도 채우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간 왕보룽이 최초이며 이는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된다.[97][98][99]

왕웨이중은 CPBL이 아닌, 미국에서 뛰다가 NC 다이노스에 온 거라서 판웨이룬과는 케이스가 다르다. 다만 그렇게라도 CPBL과 KBO를 모두 경험한 대만인 선수로는 왕웨이중이 유일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나서, 아시안 게임 선발 투수 판웨이룬, 그리고 야수 펑정민 린즈성에 우완투수 양젠푸 4명이 내년 시즌 기회가 된다면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고 싶어한다는 게 보도되었는데 이를 두고 상관없던 태권도 관련 혐한을 한 주제에 천안함을 거론하며 응원하던 대륙간컵때의 그것과 맞물려 혐대만 감정이 나와 한국 2군이나 뛰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팽배하다. 국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부터 통하는게 현실.

그 중 판웨이룬은 SK 와이번스에서 영입 의사를 보였다. # 그런데 판웨이룬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대만프로야구 규정에 따라 올 시즌 해당 선수 연봉의 2.5배를 구단에 이적료로 지불하고, 1.5배 이상을 선수에게 보상해 줘야 했다. 즉, 최소 4배 이상이다. 따라서 지난해 연봉이 약 2억 3,000만 원이었던 판웨이룬을 데려오려면 최소한 9억 2,000만 원이 든다. 결국 SK 구단은 판웨이룬 영입을 전면 포기했다. CPBL의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대만 선수들의 한국 진출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돈만 낸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저 돈이라면 북중미의 꽤 수준급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

CPBL 소속 선수로 KBO에 진출한 대만인 선수는 없고 대신 두 명의 유명한 대만 출신 선수가 한국에서 뛴 적은 있다. 한 명은 상술한 왕웨이중이고 한 명은 쉬성밍(서생명). 쉬성밍(徐生明) 전 EDA 라이노스 감독은 당시 속해 있던 웨이취안 야구단[100]과 자매 관계에 있던 한국화장품 실업 야구단에 입단하여 5시즌(1984~1988) 동안 활약한 바 있다.[101]

10. 중계 방송

과거에는 외국에 중계권을 판매하지 못했음에도 지역락을 걸어 한국에서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서 전 세계 야구리그가 중단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경기를 하면서, 2020 시즌에는 영어 중계방송까지 실시했다. 다만 반응이 별로 없었는지 2021 시즌 영어 중계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외국에서는 트위치로 현지 중계를 시청할 수 있으나 일부 구단은 지역IP 제한을 걸어서 외국에서는 시청이 안 되기도 한다.

2013년까지는 리그에서 중계권을 일괄 계약하였으나 중계권 파동 이후 현재는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중계권을 계약하고 있다. 리그 자체적으로도 CPBL.TV를 운영하고 있지만 인터넷 무료 중계가 많아 구독자는 거의 없다. 대만에서는 LINE TODAY를 통해 무료 중계를 시청할 수 있다.

11. 참가 구단[102]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143f><tablebgcolor=#00143f> 파일:CPBL 로고.svg 대만 프로야구 리그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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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과거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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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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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오
이글스
싼상
타이거스
디미디어
티렉스
중신
웨일스
◀ 현재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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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본 프로야구 정기 교류전

2012년 2013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복구 지원 자선 대회를 시작으로 매해 정기적으로 대회를 펼치고 있다. 양 리그간 프로대표팀의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것이 특징. 대만은 CPBL과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혼용하여 입고 출전한다.
2012년 3월 도쿄 돔 CPBL(1패) - NPB(1승)
2013년 11월 타이베이 톈무, 신좡 일본(2승1패) - 중화타이베이(1승2패)
2016년 3월 나고야돔, 교세라 돔 오사카 CPBL[103](2패) - 일본(2승)
2017년 3월 후쿠오카 돔 CPBL(1승1패) - 일본(1승1패)
2018년 11월 후쿠오카 돔 중화타이베이(1승) - 일본(1패)

13. 기타

파일:兄弟象.jpg * 2000년대 들어서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의 문제로 경영난을 겪게 되자 한때는 CPBL의 운영방식이 현대 유니콘스의 대안으로 잠시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어 스폰서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구단 운영비를 절약하며 수익을 내는 모델이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만 모델을 한국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전에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만 리그의 승부조작 문제는 야구 팀 운영구조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점이 파악되자마자 깨끗하게 잊혀졌다. 모기업이 약한 슝디 엘리펀츠의 경우 타기업 광고가 대부분이었지만 퉁이 라이온스나 싱농 불스의 경우 계열사나 자사 브랜드 광고패치를 붙여서 스폰서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대기업이 돈 크게 싸들고 참여해서 그런지 CPBL 유니폼이 훨씬 더 깔끔한 편이다. 중국신탁은행이 후원하는 중신 브라더스 문서의 현재 유니폼과 위의 과거 유니폼을 비교해보면 상당히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13.1. 치어리더 및 응원 문화

대만 프로야구의 경우 한국프로야구, 일본프로야구 응원 문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섞여 있다. 앰프 응원과 트럼펫 응원을 모두 하며[124], 내야 응원과 외야 응원이 모두 혼재되어 있고[125], 응원단장과 치어리더의 비중이 높고 모두 프로라는 것에서 한/일의 특징이 모두 섞여 있다. 이외에도 응원가도 한국식으로 단순한 가사를 사용하는 노래와 일본식으로 복잡한 가사를 사용하는 노래가 모두 혼재되어 있다는 것도 특이하고, 안무가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비슷하나 안무들이 한국보다 훨씬 복잡하다. 또한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는 존재하는 찬스 테마도 존재하며 라쿠텐 몽키스의 찬스 테마 1처럼[126] 일본과 같은 찬스 테마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응원석이라고 해도 치어리더 면전에서 대놓고 앉아서 응원동작만 좀 따라하거나, 아예 가만히 앉아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 점에서는 한/일과 모두 다르다.[127]

2020년대 한국인 치어리더들의 대만 진출로 한국 내에서 CPBL 치어리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만에서 치어리더의 인기나 위상은 KBO 리그 및 다른 프로리그보다 훨씬 높아, 치어리더의 연예계 진출 및 인플루언서화가 활발한 편이다. 살짝 과장을 보태면 아이돌급의 위상이다.[128] 각 팀의 치어리더 팀들은 야구팀과는 별개의 별칭을 가지고 있고[129] 본명과 별도의 활동명을 사용하며, 관련 굿즈도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워낙 일본 프로 야구와 교류가 활발하고 일본 NPB의 영향을 많이 받은 리그다 보니, 본래는 일본 구단과 치어리더 교류 이벤트를 많이 진행했었다. 예를 들면 퉁이 라이온즈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교류 관계를 맺으며 각 팀의 치어리더가 가끔씩 일본과 대만을 방문하는 식이다.[130] 라쿠텐 몽키스 또한 라미고 몽키스 시절부터 치바 롯데 마린스와 교류를 가졌는데, 치바 롯데의 주선으로 한국 롯데와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인 치어리더가 대만에 진출한 계기가 된다. 2019년에는 롯데와 삼성 응원단이 라쿠텐 홈 경기에 등장한 바 있다.

이 당시 교류를 통해 재미를 본 라쿠텐 구단은 아예 한국인 치어리더를 응원단 정식 멤버로 합류시키기로 결정하고 이하윤을 영입하기로 한다.[131] 그러나 그 해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인 치어리더의 대만 진출은 없던 일이 된다. 그러나 라쿠텐은 다시 한 번 한국인 치어리더 영입을 결정하고 이다혜를 영입하였는데, 구단과 본인 모두 예상치 못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대만 연예계는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 때문에 조금 괜찮다 싶은 연예계 유망주들이 대륙으로 유출되고 있어 정규 연예인•아이돌 산업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기 어려운 환경인데, 이미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된 곳에서 훈련된 한국인 치어리더가 영입되자 퍼포먼스의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이 때문에 본래 치어리더들의 인기가 높은 대만에서 한국인 치어리더들이 빠르게 자리잡게 되었고, 각종 매체에서 한국인 치어리더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고 인기 연예인에 준하는 광고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이어 안지현 타이강 호크스의 치어리더 트레이너로 초빙되었고 2024 시즌 구단의 1군 진입과 함께 정식 합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자 웨이취안 드래곤스도 라쿠텐에서 활동하던 이다혜를 팀장으로 영입하였다. 이호정도 2023년 프로농구 푸방 브레이브스 치어리더로 진출하였고 같은 그룹 산하의 푸방 가디언스 치어리더로 활동하게 되었다. 한국인 치어리더에 대한 각 구단의 관심이 높아져 2024 시즌에는 총 10명의 한국인 치어리더가 활동하고 있다.

2024 시즌 대만 프로야구 한국인 치어리더 현황
웨이취안 드래곤스 이다혜
푸방 가디언스 이호정, 이아영, 남민정
라쿠텐 몽키스 -
중신 브라더스 변하율, 이단비
퉁이 라이온스 조연주
타이강 호크스 안지현, 박민서, 류현주

13.2. 리그 확대 논의

2018년 이후 5, 6구단 창설에 좀더 진지한 수준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메이푸 자이언츠나 탑코 팔콘스 등의 여러 창단 루머가 많이 돌았으나 결국 루머로만 그쳤다. 과거에는 각종 중견기업들이 창단할 정도로 시장이 작았으나, 현재 메이푸나 탑코 정도의 기업이 뛰어들기에는 리그가 꽤 커졌다. 약 15년을 리그에서 버틴 라미고도 더 이상 시장 규모를 감당할 수 없어서 팀을 매각할 정도로, 이제는 중견기업들이 들어오기 어려운 시장이 되었다.

어쨌든 야구가 워낙 인기다 보니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 나서 임기 중 반드시 5, 6구단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웨이취안 드래곤스가 재창단이 되었고 정부 전체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지만 창단엔 걸림돌이 많다. 일단 연고지역 기업이 움직여야 하고, 여의치 않을 땐 시민구단 창단을 고려해야 한다. 신규 창단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2017년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소속 우빙루이(吳秉叡) 입법위원(국회의원에 해당)이 대만 팀 개수를 2개로 줄이고 일본프로야구(NPB)에 가입시키자는 주장까지 내놓아 논란이 되었다. # 민진당은 본래 타이완 독립운동에서 유래한 정당이고[132]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일본에 우호적인 경우가 많긴 하나, 이 주장은 대만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박박 긁었다. 당연히 최대 야당인 국민당에서 이 발언을 비판했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가오슝 천치마이 시장은 프로야구 경기 유치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당선 이후부터 가오슝 중립경기 숫자를 늘려나가면서 신규 팀 창단 붐을 조성해 나갔다. 지속적인 시도 끝에 2022년 4월 27일 CPBL이 타이강 호크스의 가입을 승인하면서 2008년 이후 14년만에 6구단 체제로 돌아갔으며 제6구단인 타이강 호크스는 2022년 신인드래프트 때부터 참가하여 2군에서 적응기간을 거친 후 2024년부터 1군 리그에 참여하고 있다.

14. 역대 우승 구단

연도 우승
1990 웨이취안 드래곤스
1991 퉁이 라이온스
1992 슝디 엘리펀츠
1993
1994
1995 퉁이 라이온스
1996
1997 웨이취안 드래곤스
1998
1999
2000 퉁이 라이온스
2001 슝디 엘리펀츠
2002
2003
2004 싱농 불스
2005
2006 라뉴 베어스
2007 퉁이 라이온스
2008
2009
2010 슝디 엘리펀츠
2011 퉁이 라이온스
2012 라미고 몽키스
2013 퉁이 라이온스
2014 라미고 몽키스
2015
2016 EDA 라이노스
2017 라미고 몽키스
2018
2019
2020 퉁이 라이온스
2021 중신 브라더스
2022
2023 웨이취안 드래곤스
2024 중신 브라더스

15. 우승 횟수

구단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최근 우승 후'''
퉁이 라이온스 10 6 1991, 1995, 1996, 2000, 2007
2008, 2009, 2011, 2013, 2020
[age(2020-01-01)]년
중신 브라더스 10 8 1992, 1993, 1994, 2001, 2002
2003, 2010, 2021, 2022, 2024
[age(2024-01-01)]년
라쿠텐 몽키스 7 2 2006, 2012, 2014, 2015, 2017
2018, 2019
[age(2019-01-01)]년
웨이취안 드래곤스 5 2 1990, 1997, 1998, 1999, 2023 [age(2023-01-01)]년
푸방 가디언즈 3 5 2004, 2005, 2016 [age(2016-01-01)]년
중신 웨일스 0 2 - 해체
싼상 타이거스 0 1 - 해체
스바오 이글스 0 1 - 해체
디미디어 티렉스 0 1 - 해체

1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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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프로야구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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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NPB CPBL



[1] '중화민국 프로 야구 리그' [2] KBO 리그 - KBO와 마찬가지로 리그 명칭과 운영 주체의 명칭이 같다. [3] 대만 입법위원(국회의원에 상당). 2021년 1월 17일부로 대만프로야구연맹의 커미셔너로 재임하게 되었다. [4] 聲寶股份有限公司(성보고분유한공사). 1962년 설립된 가전제품 회사로 일본의 샤프와 기술제휴를 맺었다. [5] 대만 원주민 중 한 부족의 이름이기도 함. [6] 이 경우는 브랜드 소유 본사가 국제적 일관성을 이유로 홍보대행을 맡는다. [7] 참고로 2군 최저연봉은 월 5만 대만 달러로 연봉으로 환산하면 2700만 원 정도다. 물론 이나마도 TSMC를 제외하면 20대 대만 직장인들에 비해서는 한참 많이 버는 것이긴 하다. [8] 해당 시즌 양 리그의 최고 연봉은 KBO 리그가 이대호의 25억 원, CPBL이 린즈성의 5억 원대(연 1,440만 대만 달러)로 5배 정도 차이가 났다. KBO 리그의 고질적인 사이닝 보너스 뭉터기는 제외. [9] 프로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삼합회가 스폰서를 선다는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이미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선배들이 앞장을 서는 형편이다. [10] 볼티모어 오리올스, 현 한신 타이거스 소속 [11] 뉴욕 양키스 소속 [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 [13] 중신금융지주는 이미 중신 웨일스를 운영한 바 있고, 리그 철수 시에도 승부조작으로 해체한 게 아니라 그런지 야구단에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14] 그냥 대기업이 아니라 일본에서 이미 프로야구 구단을 운영하는 데다 일본 축구판에서 돈지랄을 이끌고 있다. [15] 즉 신인급 선수나 주전은 차지할 정도가 돼도 그다지 리그에서 두각을 못 나타내는 선수들과, 리그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간의 연봉 격차가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래서 육성선수나 신인 선수들이 받는 돈은 직장인과 별반 차이없는 한국, 일본과 달리 대만은 육성선수나 신인 선수들 역시 또래에 비해 최소 2배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되어 대만의 일반인들에게는 고소득자라는 인식이 더욱 강하다. [16] 2019년 2군 리그에 참가시킨다는 구상이었으나 그마저도 시행되지 못했을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안이었다. [17] 대만 리그 규정상 신규 창단 팀으로 취급되며 이 경우 2019년 드래프트에는 참여하더라도 2군에서 1년을 보내야 하며, 또한 상당 규모의 재정을 확보하고 1,900만 달러 수준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18] KBO가 1982년에 출범했으니 당시의 시점으로 15~20년 정도 뒤쳐친 셈이다. 그런 것 치고 정작 한희민은 2년 동안 꼴랑 6승 16패를 기록했다. 하락세였어도 너무 초라한 전적이다. [19] 물론 팀 수가 적어서 어제 만난 팀을 다음주에 또 만나는 식이다보니 분석의 필요성이 떨어지긴 한다. [20] 앞에서 설명한 한희민같은 케이스가 있지만 대개는 다카쓰 신고 틸슨 브리또, 미키 캘러웨이와 같이 국내에서 방출된 용병들도 진출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이 용병들은 마지막 한국에서 뛰었던 성적과 비교해보면 거의 회춘 수준으로 기록이 상승해버린다. 자세한건 다카쓰 신고 틸슨 브리또 항목 참조. 매니 라미레즈도 선수 생활 말기에 일본프로야구에서조차도 입단을 거부당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자 대만프로야구로 진출해서 3개월 정도 뛰었는데 이미 다 퇴물이 된 데다가 나이도 40대로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OPS 9할 7푼대로 대만을 폭격했다. [21] 사실 마이크 로리는 한국에서 뛰었던 시즌에 팀이 1군이 없었고 2군만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22] 다만 대만은 해외 프로야구에 갈 경우 해외로 직행하는 것이 압도적이고, 심지어 고교야구부터 유학가는 선수들도 많다 보니 CPBL에서 상위 리그로 진출한 대만인은 드물다. 그나마 리그 초창기에는 1-2년 잘 던지고 바로 일본 진출을 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리그가 그래도 잘 자리잡히고 승부조작 문제를 극복하여 관중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로는 대만에서 뛰다 일본으로 진출한 대만인은 1명뿐이다. [23] 참고로 왕보롱의 일본 2군 성적은 133경기 421타석 타출장 .295/.390/.475 OPS .865에 15홈런 52타점이다. 일본 2군이 대만이 최근 10여년 중 가장 투고타저인 해랑 비슷한 수준의 투고인 것을 비교하면 얼추 맞는 추측일 수도 있다.(2022년에 CPBL에서 15홈런을 쳤으면 단독 홈런왕이었다.) [24] 구속은 KBO보다 평균 1km/h 느리다. [25] 이때의 활약으로 라뉴 베어스의 좌완 에이스 우스요우는 치바 롯데 마린즈에 진출했으며 우스요우가 팀에 안겨준 이적료로 팀이 적자를 메꿨다고 할 정도로 이적료도 엄청 받았다. 그러나 2년 동안 2경기 2선발 0승 0패 ERA 2.25로 뛴 경기에서는 좋았지만 부상 등으로 거의 뛰지를 못했으며, 2년 만에 방출당해 대만으로 돌아오자마자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고 영구제명당했다. [26] 한국에서 뛰는용병들이 일본으로 진출하면 버는 돈이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3배까지 올라가는데, 대만 용병들도 한국으로 진출하면 2~3배로 버는 돈이 뻥튀기된다. 2017년 초에 대만에서 뛰다가 대체 외인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닉 애디튼의 경우, 중신 브라더스에서 그에게 1년간 주기로 한 돈은 2년차에 고작 12만 달러였다. 심지어 롯데에서 준 돈은 3배가 넘는 50만 달러. 계약파기로 인한 위약금을 지불한 뒤에도 대만에서 뛰는 것보다 두 배는 버는 것이다. 또 유니 라이온스의 에이스 브루스 빌링스는 2016 시즌때 팀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18만 달러밖에 못 받았다. KBO 리그의 팀 에이스들이 150~200만 달러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심하다. 물론 빌링스의 경우는 첫 해라서 적게 받은 것도 있지만 말이다. [27] 이후 단일시즌 제도로 치른 1998~1999년도 시즌을 제외하고 이 전후기 리그 제도를 계속 유지한다. [28] 싼상 타이거스, 웨이취안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슝디 엘리펀츠 [29] 스바오 이글스, 쥔궈 베어스가 새로 참가. [30] 허신 웨일스가 새로 참가. [31] 스바오 이글스는 결국 이해 9월 해산을 선언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98년 시즌을 징계로 날렸으니 사실상 1997년 시즌이 스바오 이글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32] 웨이취안 드래곤스 싼상 타이거스가 1999년 시즌 종료 후 해산. [33] 경쟁 리그였던 대만대연맹(TML)이 2002년 시즌 종료 후 폐지되면서, 이 과정에서 당시 TML에 참가했던 4구단이 2구단씩 서로 합병하는 방식으로 2개의 신구단을 창단해 대만 프로야구 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 이때 창단된 청타이 코브라스, 라뉴 베어스가 새로 참가. [34] 디미디어 티렉스 중신 웨일스가 2008년 시즌 종료 후 해산. [35] 웨이취안 드래곤스 해체 후 재창단. [36] 타이강 호크스 창단. [37] 중신 브라더스 1 부전승 포함 [38] 퉁이 라이온즈 1 부전승 포함 [39] 일본프로야구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규정과 같다. [40] 이후 12,500석으로 증축하였으며 WBC와 프리미어 12에서도 사용되었다. [41] 현재는 10,000석 규모의 구장으로 프리미어 12에서 한국팀이 경기를 가진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구장이다. 야구장 옆에 위치한 타이베이시립체육대학이 관리중이다. 여담으로 2002년 5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정규시즌 2연전 경기를 이곳에서 벌이기도 했다. [42] 1985년 사직 야구장, 2002년 문학 야구장,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43] 간단한 예를 들어 신좡 야구장의 경우 개장 이후로 줄곧 홈구단이 있었지만 푸방 가디언스가 홈구장을 위탁경영하면서 컵홀더가 있는 관중석으로 교체하였다. 그나마도 2023년 기준 내야 1층 좌석 상당수는 팔걸이에 녹이 심하게 슬어 있고, 외야에는 아예 고장난 좌석도 몇 개 방치되어 있다. 가오슝 청칭후는 구장만 크지 컵홀더도 없다. [44] 야구 중계의 화질같은 경우는 대만도 Full HD 중계 잘만 한다. 중계 문제는 한국에 비해 꿀릴 것도 없다. 진짜 중계 자체가 개판인 곳은 공식 방송조차도 360P, 480P 방송을 하거나 경기 중 화질이 오락가락하는 중남미 쪽 프로야구. 베네수엘라는 말할 것도 없고 나름 안정된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중남미에서 조세피난처를 제외하고 2번째로 평균 소득이 높은 파나마, 자치령이긴 해도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의 일원인 푸에르토리코조차도 고화질 중계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중계 질이 개판이다. [45] 이는 대만이 일본보다도 야구에 더 열광하기 때문이다, 범세계적으로 인기 종목인 축구의 경우 J리그가 있고 국제대회에서 나름 성적을 내는 일본과 달리 대만의 축구 수준은 프로리그, 국가대표 불문하고 동아시아 최약체라 더욱 야구에 집중되어 있다. [46] 한국에 비하면 적은 것이지 인구와 면적에 비례해서 보면 대만의 야구 인프라는 세계적으로 좋은 편이다. 당장 야구장 기준을 10000석 이상 수로만 잡아도 한국과 숫자가 비슷해진다. [47] 물론 대만 야구장 전체가 부럽다는 것이 아닌, 타이베이돔 하나만 부러워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마저도 일본이나 메이저리그의 타 돔구장만큼 부러워하는 정도는 아니다. [48] 그리고 타이베이돔도 개장 첫 해인 2024년 물이 샜다. 심지어 평범한 경기도 아니고 중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저우쓰치의 은퇴경기 날에 터진 일이다. [49] 한국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는 외국 프로 팀과 계약하지 않는 이상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었으나 2022년도 신인 드래프트부터 신청제로 바뀌었다. [50] 廖椿儒라는 투수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다섯 번이나 드래프트를 신청했는데 다 미지명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의 기록은 최고기록이며 드래프트에 5번 참여한 선수는 저 선수 말고도 1명 더 있으나 역시 프로에 가지 못했다. 프로에 진출한 선수 중 드래프트를 가장 많이 신청한 선수는 린이텅(林驛騰)이라는 선수이다. 이 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직행했다가 실패하여 대만으로 돌아왔고 군 복무를 끝낸 2016년부터 드래프트에 4년 연속 신청한 끝에 2019년 드래프트에서 웨이취엔 드래곤스의 24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입단 3년차인 2021년을 끝으로 방출. 1군 기록은 통산 21경기에 그쳤다. [51] 소속 리그에서 수상 경력이 있어야 한다. 팀 우승 이런 거론 안 되고 개인 성적으로 받아야 한다. [52] 물론 아무 대회나 다 해주는 것은 아니다. WBC(예선 포함), 프리미어 12, 세계대학경기대회(구 유니버시아드), 아시안 게임, WBSC 야구 월드컵(U-23, U-18 모두 가능), BFA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U-18도 가능). 이 8개 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만 가능하다. [53] 2023년 트라이아웃의 경우 참가자가 200명이 넘었으며 합격자도 무려 97명이었다. [54] 2019년의 경우 갑자기 합격률이 30%로 폭락했으며 2021년의 경우 코로나 문제로 모두에게 테스트를 면제시켜줬기 때문에 지원자 109명 중 아예 입단 테스트 자격을 미충족한 14명을 빼면 모두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55] 시즌 초부터 드래프트일까지 특정 프로팀과 육성선수 계약을 맺고 임시로 2군에서 뛰는 육성선수. [56] 특히 2019년 드래프트는 웨이취엔의 재창단이 발표된 해라 웨이취엔은 무려 28라운드까지 지명했다. 1~4라운더는 2명씩 뽑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32라운드까지 뽑은 셈. 2022년 새로 창단이 발표된 타이강도 1~4라운더를 2명씩 뽑고 26라운드까지 선수를 지명하여 30명을 뽑아갔다. [57] 2015년 드래프트 13라운드로 중신 브라더스에 지명되었다. 전체 45순위이자 전체에서 두번째로 뒷순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하고 5년 만에 도루왕을 두번이나 따냈다. [58] 해외유출이 심한 대만 특성상 전직 마이너리거나 일본리거가 드래프트에 나오는 일은 매년 다반사로 있고, 메이저리거 출신도 종종 나온다. [59] 하나도 없지는 않은 게 위원빈(余文彬) 룰이라고 해외 복귀파는 계약금을 받지 못하는 제도가 있다. 단 KBO와 다르게 드래프트 참가를 몇 년 간 막는 것은 전혀 없고, 연봉도 최저연봉보다 높게 받을 수 있다. 이 룰을 만들게 한 원인이 된 위원빈은 1978년생으로 2002년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직행했으나 1년만에 방출당하면서 대만으로 돌아왔던 선수의 이름이다. 대만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특출나지는 않지만 1군에선 자주 나온 투수로 커리어를 마쳤다. [60] 그 전에는 순수고졸은 군필자만 가능했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가 제대해야 대학이나 실업 야구를 안 가고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었던 것. [61] 2015년 드래프트 기준 3명이 지명을 거부했는데, 이 중 한 명은 계약금 협상 결렬로 입단을 포기한 케이스였고 실업 야구에서 커리어를 마쳤다. 나머지 한 명은 중신 브라더스의 11라운드 지명을 받은 고졸 투수였는데 너무 하위픽이라 그랬는지 대학 진학을 택한 케이스. 이 선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퉁이 라이온즈에 3라운드로 지명되면서 프로에 진출했다. [62] 퉁이 라이온즈. [63] 일본 독립리그에서 4년, 사회인야구 클럽팀에서 1년, 호주 프로야구에서 1년을 보낸 저니맨이기도 했다. [64] 두 사람 모두 드래프트 재수. 타카시오는 2016년에도 CPBL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도전하였고 2018년에는 라미고 몽키스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모두 탈락했던 경력이 있다. [65] 당장 상술한 35세의 타카시오 마사키도 2.5년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에서 세 시즌까지 뛰는 것이 보장된다. [66] 중신은 모기업 소유의 핑둥 중신공익파크, 퉁이는 타이난 1군 경기장, 푸방은 이전 연고지인 가오슝, 라쿠텐은 자이현립구장, 웨이취안은 더우류구장에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이게 홈구장 개념은 아닌게 위에 짝 지어진 구단들이 원정팀 자격으로도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각 구장에서 치러지는 경기에 반드시 해당 팀들의 경기를 편성하고 있다. [67] 2010년대 후반 한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구단 전용 연습구장이 어떻게 없을 수 있나 싶겠지만 한국도 프로 출범 25년이 되는 시점까지도 구단 전용 연습구장을 갖춘 구단이 두산, 삼성, LG, 현대로 절반에 불과했다. 상동 야구장이 생긴게 불과 2007년의 일이다. 다만 한국은 리그 초반부터 구단 전용 연습구장을 만든 선도적인 구단들이 있었다. [68] 이들은 대부분 육성선수나 보험용 계약이다. 물론 시즌 중후반의 경우는 고액외인이 워낙 못해서 시즌 후 퇴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돈이 아까우니 2군 뎁스용으로 2군 경기에 출전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69] 그러나 두 번 2군에 내린 선수는 그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1군에 못 올라온다. [70] 이 등록 개념이 어렵다면, 한국의 정식 선수와 육성선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즉 한국식으로 설명하자면 외인 투수를 정식 선수로 입단시키는 것은 3명만 가능하지만, 육성선수로 외인을 입단시키는 것은 무제한인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육성선수 외인을 정식 등록을 시키고 싶으면 정식 선수인 외국인 셋 중 하나를 방출시키고 그 자리에 등록을 시키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71] CPBL 공홈에 #로 나와있는 선수는 외국인 선수와 대만인 선수 모두 이 등록 말소가 된 선수로, 이들은 육성선수 신분으로 시즌 말까지 2군에서 뛰거나, 자유계약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2군에서 시즌을 보내며 다음 시즌 등록을 노리는 건 주로 대만인 선수고, 외국인 선수는 부상으로 인한 시즌아웃 같은 게 아니면(예를 들어 로건 온드루섹처럼 매년 시즌의 1/3에서 절반을 날리고도 재계약을 하는 케이스) 보통 자유계약으로 대만을 떠난다. [72] 이 때문에 아시아 야구에서 용병 영입을 최후의 순간까지 할 수 있다. NPB는 매년 7월 31일, KBO는 매년 8월 15일이 데드라인이며 아시아는 아니지만 용병 선수를 영입하는 또 다른 서머리그인 LMB는 정규시즌 자체가 8월에 끝난다. 즉 8월 16일-31일까지 아시아 진출을 희망하지만 아직 자리를 못 구한 선수는 마이너 잔류와 대만 진출, 독립 리그 진출 셋 중 하나밖에 방법이 없으니 사실상 용병 시장에서 대만이 독식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73] 주니치와 오릭스에서 4년간 뛰었던 좌타 1루수 외인이다. 일본에서 4년간 뛰기는 했지만 일본 리그에서는 장타력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져서 플래툰이나 대타로 주로 나왔다.(4년간 269경기 출장. 연평균 67경기 정도 나왔으며 시즌 100경기를 넘은 건 마지막해가 유일했다.) 그래도 연평균 55만 달러를 받았을 정도로 몸값이 쌌고, 대타나 플래툰으로만 나오면서도 3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칠 정도로 장타력은 좋다 보니 임팩트는 꽤 있던 선수라 어찌어찌 4년은 버텼지만 가장 주전으로 자주 나온 4년차 때 1군 레귤러 급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결국 일본을 떠났다. [74] 일반적으로 대만프로야구에서는 트리플 A, KBO, NPB, 그리고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 출신의 선수를 선호하며 멕시칸 리그 선수는 후순위라고 한다. [75] 헨리 소사는 월봉 3만 달러로 연봉 30만 달러 정도다. 이게 리그 특급 대우라고 한다. 단, 포스트시즌 경기에 출장할 시 추가 수당이 나오며 인센티브도 조금 더 붙어있다고 한다. 단적으로 2017년 마이크 로리는 총액 26만 달러의 계약을 했는데 이때 4~5만 달러 정도는 옵션이었다. [76] 허나 AAA에서조차도 붙박이가 못 되고 AA를 왔다갔다하는 선수들이 주로 가는 CPBL 특성상 그 정도 받아도 감지덕지다. 애초에 AAA에서 풀 시즌으로 있어도 잘 해야 10만 달러 정도인데 CPBL에 오는 선수는 AAAA리거만 돼도 상급 외인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실제로 외국인 선수 명단을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1경기라도 뛴 선수가 절반도 안 된다. 메이저리그 경험만 있어도 일단 상급의 커리어인 셈이다. [77]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외국인 선수도 12개월간 돈을 줬다고 하나 1990년대 후반 변경되었다. [78] 메이저리그에서 풀시즌 선발도 해본 쿠바산 좌완투수로 2018년 시즌 도중 소프트뱅크에 입단해 ERA 1점대를 기록하며 후반기 1선발이었으나 분석당하기 시작한 2019년에는 제대로 먹튀행각을 벌이고 방출당했다. 이후 80만 달러 계약으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한국행. [79] 다만 라미레즈가 월봉 6만 달러를 받을 때는 대만의 1선발 용병들도 월 2만 달러를 받았고 신규 용병들은 월 1만 달러 정도를 받을 때였다. 당시 라미레즈의 연봉은 지금으로 치면 월봉 10-15만 달러 느낌이다. [80] 2021년 브라이언 우달을 인터뷰한 기사에 의하면 그의 연봉이 18만 달러였는데 풀 시즌을 뛰는 외인 기준 가장 염가계약이었다고 한다.(당시 우달은 전 소속팀 푸방에서 방출당한 후 입단 테스트를 거쳐 웨이취엔에 새로 입단한 상태였다. 푸방 시절에는 연봉 30만 달러를 넘겼다고 한다.) 다른 기사에 의하면 우달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몸값이 낮은 외인 선수의 월봉이 22만 달러라고 한다. [81] 2019년만 해도 대만이나 멕시코나 외국인 월급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았으나 멕시칸리그는 2022년 현재도 10~25만 달러 정도를 주기 때문에 이제는 대만에게 확실히 밀린다. [82] 마이크 로리가 워낙 대만에서 오래 뛰어서 이 사람 연봉의 변화를 보면 대만프로야구의 외인 가격의 상승 정도를 대강 파악할 수 있다. 로리의 대만 첫 풀 시즌인 2013년에는 연봉 9만 달러 정도를 받았으며, KT를 거쳐 이다에 입단할 때 약 20만 달러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2015년), 이후 2016~2017년에는 25~30만 달러 정도를 받았고 2019년에는 40만 달러를, 2020년에는 2년 100만 달러 계약을 맺었으니 연 50만 달러 정도를 받았다. 물론 로리가 처음에 올 때랑 말년의 리그 입지는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해도 외인들의 평균 몸값이 10년 전에 비해 2~3배가 뛴 것. [83] 당장 마리오 산체스만 해도 2023년 대만에서 풀 시즌을 뛴다면 30만 달러 정도를 받을 예정으로 추정되었으나, 기아에서 28만 달러를 불러서 바로 기아로 가 버렸다고 한다. 기아에서 석 달 1주일정도 뛰었으니 월 9만 달러 가까이 받은 셈이라 선수 본인 입장에서는 월급이 3배나 오른 셈이다. [84] 대표적으로 마이크 로리. KBO에서는 kt wiz 2군에서만 뛰고 방출당했으나 대만에서는 15년, 16년 시즌 2년 연속으로 평균자책점 1위와 다승왕을 기록하였고, 탈삼진도 15년 시즌에 1위, 16년 시즌에 2위를 기록했다. 특히 16년 시즌에서는 대만야구의 타고투저가 끝판왕에 달해 ERA 4점대 이상인 선발 투수가 겨우 4명이었는데, ERA 3점대를 찍은 투수는 그가 유일했다. 그야말로 대만판 더스틴 니퍼트. [85] 가장 최근 케이스로는 2020년에 중신 브라더스에서 뛴 아리엘 미란다가 2021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맺은 것. [86] 지크 스프루일같이 완전히 못 써 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외국인 선수로써는 기준 이하인 선수들. [87] 특히 2019 시즌부터 KBO에서 몸값 100만 달러 제한을 걸었다. 당장에 닛폰햄에서 실패한 오스왈드 아르시아 같은 선수는 100만 달러 제한만 없었어도 KBO에서 영입 시도를 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88] 최근에 CPBL에 있었던 전현직 일본인 선수으로는 치넨 코야(퉁이 라이온즈, 2018-2019), 타자와 준이치(웨이취엔 드래곤즈, 2021), 타카노 케이스케(중신 브라더스, 2021), 마키타 카즈히사(중신 브라더스, 2022), 사토 요시노리(라쿠텐 몽키스, 2023), 후쿠나가 슌고(타이강 호크스, 2023)가 있다. 다만 타자와를 제외하면 1군 주축으로 뛴 선수는 없었고(그 와중에 타카노랑 사토는 1경기 등판하고 잘렸다.) 후쿠나가 슌고의 경우 2군에서만 뛰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하고 코치를 맡게 되었다. [89] 2024년 드래프트 6라운더로 퉁이 라이온스에 입단한 타카시오 마사키의 경우 실업 야구 경력 덕분에 대만인 선수랑 동일하게 적용되어 외국인 선수로 간주되지 않는다. [90] 애초에 2년 유예 기간은 고교 이상을 KBO에서 보낸 야구선수에 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교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미국/일본/대만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양국의 드래프트에 모두 참여할 수 있으나, 해외 구단으로 입단할 시에는 2년 유예기간의 적용을 받는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 이런 식의 이유로 분명 해외 프로야구에 드래프트로 입단했으나 2년 유예 기간이 적용된 선수는 2011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6라운드 지명을 받은 송상훈, 2023년 드래프트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16라운드 지명을 받은 신우열, 2023년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20라운드 지명을 받은 최병용이 있다.(2021년 5월 25일 규약이 개정되어 드래프트 신청을 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해외로 나간 선수들은 2년 유예 기간을 적용 받지 않게 됐으나 신우열, 최병용은 규약 개정 전에 고교를 졸업한 선수들이어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김무영, 신성현, 강경덕 등 해외 리그의 지명을 받은 다른 한국 국적자는 대부분 고교부터 해외에서 나온 케이스. [91] 참고로 대만에서 9시즌 이상 보낸 선수는 통산 4명으로 마이크 로리가 무려 11시즌을 대만에서 보내며 가장 긴 시간을 대만에서 보냈다. 다른 3명은 모두 9시즌을 대만에서 보냈는데 첫 번째 선수는 루이스 이글레시아스라는 내야수로 CPBL 창단과 동시에 대만에 와 CPBL에서 7년, TML에서 2년을 뛰어서 9시즌을 채운 선수였다. 이 사람은 대만에서 홈런왕 2회를 기록하고 통산 164홈런을 기록한 대만야구 초창기의 외국인 스타였다. 두 번째 선수는 오스발도 마르티네즈라는 투수로 선발과 계투를 마구 오가며 대만에서 9시즌 통산 108승 40세이브를 기록하였다. 마지막 선수는 2023년 현재 웨이취엔 드래곤스 소속인 브라이언 우달로 4명 중 유일한 현역이다. 이 선수는 대만에서 세 팀을 옮겨다니고 선발과 마무리도 옮겨다니며 9시즌간 63승 53패 22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다. 2023년 현재는 선발로 8경기에 등판하여 2점대 ERA로 괜찮았지만 5월을 끝으로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등판하지 못하고 있어서 재계약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또한 이 선수는 9년을 대만에서 뛰었다곤 해도 그 중 5년만 풀 시즌을 보냈기 때문에 국내 선수로 취급되려면 등록 일수가 모자란 상태. [92] 참고로 이런 방식을 써서 주니치 드래곤즈에 간 송상훈은 일본 고교에서 2년, 주니치에서 3년을 뛰면 국내 선수가 되는 방식이었다. 근데 송상훈은 3년만에 방출당하는 바람에 현재 일본인 선수 자격은 갖고 있지만 의미가 없다. [93] 가장 KBO 리그 출신을 많이 데리고 오는 팀. 6팀 중 가장 꾸준히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94] 가장 외국인 선수 선발에 공을 들이는 팀. 한국이나 일본 출신보다는 미국 출신, 그 중에서도 메이저 경력자를 가장 꾸준히 영입한다. 즉 미국 커리어를 좀 많이 따지는 편. [95] 푸방 가디언즈가 KBO 출신을 좋아한다면 이쪽은 NPB 및 일본 독립 리그 출신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96] 외국인 선수 보유가 무제한인 것과는 무관하게 전술하듯 타 국적이더라도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뒤 드래프트에 참여할 경우 국내 선수로 인정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CPBL을 거치기 전에 일본에서 저렇게 데려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97] CPBL의 FA제도는 KBO와 유사하나 해외 진출의 경우는 3년의 서비스 타임을 채우면 구단의 동의 하에 포스팅 시스템 형식으로 시도할 수 있다. [98] 실제로 2023년 오프에 청쥔웨가 일본 포스팅을 시도했으나 무응찰로 끝났다. [99] 물론 NPB->CPBL의 케이스는 정말 많다. 심지어 리천창처럼 메이저 경력도 있어서 MLB->NPB->CPBL 테크를 탄 케이스도 있다. [100] 대만의 식품회사 실업 야구단이자 웨이취안 드래곤스의 전신 [101] 1986년 시즌부터 뛴 것으로 된 자료도 많은데 1984년 시즌에 뛴 것이 몇 몇 자료에서 확인된다. [102] 한국과 비슷하게 구단명에 지역명이 없다. [103] 이 해에는 CHINESE TAIPEI 유니폼에 중화민국 국기를 붙이고 출전하여 대만 내에서 말이 많았다. 중화 타이베이 참고 [104] 지금은 대만 국내외 모두 중화민국=대만이라는 인식이지만 리그 출범을 준비하던 80년대말 당시는 대만은 중화민국의 한 지역이라는 의식이 아직은 강하던 시기다. 한국만 해도 자유중국이라 부르고 있던 시기다. [105] 퉁이 홈 7경기, 웨이취엔 홈 3경기. [106] 중신 홈 3경기. [107] 아예 모기업도 연고지도 그대로인 유일한 팀. [108] 다만 2025년부터는 퉁이도 신구장으로 옮기기 때문에, 관중수가 이래도 늘지 않는다면 노후화된 홈구장보다는 타이난 연고지 정착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109] 2024년 3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대만에 방문하여 타이베이돔에서 중신과 1경기, 라쿠텐과 1경기씩 특별 연습경기를 치르는데 중신 브라더스와의 경기는 바로 매진되었고, 라쿠텐 몽키스와의 경기는 예매 1달이 지나도록 자리가 좀 남아있었다. 즉 실제 머릿수만 보자면 중신 팬이 한참 많다. 다만 지역밀착 마케팅 면에서는 라쿠텐이 라미고 시절부터 연고지 정착에 꽤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홈 관중의 충성도는 훨씬 높다. 타 팀들이 전국 각지에서 순회경기 할 때 라미고는 타오위안에서만 홈 경기를 개최했다. 실제로 2024년에도 유일하게 타이베이돔 홈 경기를 개최하지 않는 팀이기도 하다.(원정은 간다.) [110] 대만은 1, 3루 모두 홈이 응원을 하고, 원정응원단은 외야로 가는 편이다. 그러니까 원정팀이 3루를 먹으면 원정팬들만 가득 앉아있는데 그 앞에서 응원단장과 치어리더가 억지로 응원을 독려해야만 한다. 특히 중신 브라더스는 꽤 오랫동안 타이베이쪽을 원정으로 하다가 최근에 타이중으로 연고이전을 해버렸기 때문에 타이베이 쪽에 팬이 많다 보니 신좡 야구장에서 경기가 있으면 관중의 최소 절반 혹은 그 이상이 중신 팬이다. [111] 2010년대 대만 최고의 공격형 포수이자 라쿠텐 몽키스의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스타. 1986년생 베테랑이라 2023년 현재는 백업 포수 겸 대타로 나오고 있지만 타격력은 나쁘지 않다. [112]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일본 사이에도 공식적 규약 없이 임대 형식의 포스팅이 이루어진다. [113]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포츠란 것도 스토리성이 중요한 만큼 아는 선수가 나와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데 KBO리그도 하위 리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야구 좀 봤다 하면 이름은 들어봤을 파트타임급 메이저리거들이 용병으로 오며, 국내선수로는 FA나 포스팅으로 MLB 진출을 타진하는 선수나 뛰다가 돌아온 선수들, BA 랭킹에 이름을 올리는 국제유망주들이 있어서 헤비 야구팬이라면 이름을 알 만한 선수들이 팀당 몇 명 정도는 있다. 반면 대만리그는 용병은 메이저에 못 올라간 선수들이 태반에 국내선수도 마찬가지라 이렇게 미국 야구팬이 '아는 선수'가 리그 전체를 통틀어야 몇 명 나올 수준이기 때문이다. [114] 홈런왕 22홈런. 다만 선수들 타율은 다 높아서 완전한 투고타저라고 보긴 어렵다. 근데 2016-2017년의 타고투저가 워낙 미쳐서 이정도면 대만 기준으로는 투고타저가 맞다. [115] 홈런왕 18홈런( 가오궈후이), 10홈런 이상 기록자가 전체 7명. 홈런은 조금 늘었지만 규정타석 3할 타자는 7명으로 이 시즌은 확실히 투고타저였다. 다만 1점대 ERA 투수는 없었으니 극 투고는 아녔다. [116] 홈런왕 18홈런(린이취엔), 10홈런 이상 기록자가 전체 5명. 이정도 홈런 페이스면 NPB 통일구 수준이다. 매니 라미레즈가 시즌의 40% 정도만 뛴 시즌이 하필 이 시즌이라 홈런이 8개밖에 안 나온거지, 사실 이 페이스로 풀 시즌을 뛰었으면 매니가 단독 홈런왕이었다.(경기수 기준으로 계산하면 20홈런.) [117] 다만 이 시즌들도 홈런이 엄청 안 나온 케이스이지 선수들 타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긴 했다. NPB 통일구 시절의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었던 2013년에도 3할 타자는 즐비했다. [118] 근데 기본 수비력은 한국보다도 아래이기 때문에 멀티로 돌렸다가 코미디를 보여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119] 하지만 프로 2군리그 소속인 상무와는 다르게 국훈중심 야구단은 실업리그에 참가하였다. [120] 1군 콜업 및 해외 프로팀 계약은 불가. 단 한국의 예술체육요원에 해당하는 '보충역' 자격을 취득한 선수는 12일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5년간 국대 차출에 의무적으로 응하는 조건으로 1군 콜업 및 해외 프로팀 진출이 가능했다. 장위청의 군 복무 먹튀 논란을 보면 '보충역' 제도는 병역이 4개월로 줄면서 군 팀과 일반적인 대훈제도가 없어진 시기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21] 1950-2001년까지는 육군 야구단이었고 2002년 국훈중심 야구단으로 개편되었다. [122] 2004-2009년은 대체훈련선수 제도가 있다는 이유로 일시 폐지. 그러나 대체훈련선수만으로 모든 야구선수가 병역을 해결할 수 없어서 2010년 부활했다. [123] 그러니까 고졸로 프로에 입단한 선수는 설령 대학에 진학했다고 하고 고등학교까지만 기재하고 대학명은 오로지 대졸로 입단한 선수의 프로필에만 기재하는 것. 보통 황영묵, 손호영처럼 대학 중퇴자는 대학명을 안 적고 고졸처럼 취급하며, 강정현, 서균처럼 대학을 중간에 바꾼 케이스는 마지막 대학만 적는다. 특히 KBO는 미국과 다르게 얼리 드래프트로 진출한 선수는 얼리라고 따로 표기를 할 정도로 이걸 명확하게 한다. [124] 트럼펫을 사용할 때는 대부분 트럼펫+육성이나, 타이중 저우지 야구장에서는 앰프와 트럼펫을 모두 사용한다. 직접 가서 보면 장관이다. [125] 홈 1/3루를 모두 홈 팀이 응원하고 원정은 외야에서 응원한다.(지방구장같이 외야석이 부실한 구장이라면 원정도 내야에서 응원하는 곳도 있다.) 이 때문에 사실 두 나라의 특징이 섞여 있다고는 하지만 원정팀 응원을 가면 NPB 응원에 많이 가깝고, 홈팀 응원을 가면 KBO 응원에 많이 가깝다. [126] 원래 치바 롯데 마린즈의 찬스 테마 1이며, 같은 곡이다. [127] 한/일의 경우 응원석에서는 일어나는 분위기이다 보니 모종의 일로 응원을 하지 않는데 응원석에 끌려온 사람도 서서 보게 되어 전부가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28] 대만에서 아이돌 문화는 한국보다 그 열기가 낮은 편임을 감안해야 한다. [129] 일례로 2024 시즌 안지현 박민서가 소속 된 타이강 호크스의 치어리더 팀 팀명은 WING STARS다. [130] 사실 치어리더를 빼면 여전히 일본과의 교류가 더 많다. 당장 중신 브라더스는 2023년부터 한신과 콜라보를 하는데, 이 콜라보 데이에는 아예 한신 장내 아나운서가 일본어로 장내방송을 하고 선수들 이름도 다 일본식 독음으로 부른다. 2년차인 2024년에는 타이베이돔 경기 때 콜라보를 진행했다. [131] 다만 이 때는 한화 이글스 치어리더와 투잡을 뛰기로 된 상태였다. [132] 독립 추진은 동결했지만 독립 지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