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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390호 391호 392호
경주 보문동 사지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여수 선소유적

{{{#!wiki style="margin: -15px -10px -15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391호
<colbgcolor=#315288>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
高敞 竹林里 支石墓群
Dolmens in Jungnim-ri\, Gochang
소재지 <colbgcolor=#fff,#1f2023>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산63번지 외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지석묘
수량/면적 1,011,219㎡
지정일 1994년 12월 21일
건축시기 청동기말기~ 초기철기시대
소유단체 고창군
관리단체 고창군
링크 고창 고인돌 박물관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colbgcolor=#000>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Sites de dolmens de Gochang, Hwasun et Ganghwa
<colcolor=#fff> 국가·위치 <colbgcolor=#fff,#1f202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977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i)[1] }}}
파일:고창 지석묘.jpg
고창군 죽림리 지석묘 전경

1. 개요2. 내용3. 발굴 조사4. 여담5. 사적 제391호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 위치한 청동기말기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고인돌[2] 군집이다. 수백기의 고인돌이 밀집된 지역으로 고인돌이 많은 한반도에서도 이처럼 많은 고인돌이 소재한 곳은 보기 드문 편이다.[3]

1994년 12월 21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4] 2000년 11월 29일에는 전라남도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위치한 고인돌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 내용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반경 약 1.8km에 이르는 산지에 약 442기의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5] 기원전 400년∼500년 경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집단 무덤으로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한 지배 계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죽림리 지석묘군에는 탁자식 고인돌, 기반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 등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과 동북아시아 고인돌 문화의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인근에서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한 채석장도 확인이 되어 고인돌의 건축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3. 발굴 조사

1965년 국립박물관에 의해서 상갑리 고인돌 3기 대한 발굴 조사가 최초로 실시되었다. 조사 당시 고인돌의 하부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1991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7기의 지상 석곽식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으나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역시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1992년 학술적인 목적으로 죽림리 2지구 3군의 16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2004년 태풍 루사에 의해 붕괴된 제2419호와 유수에 의해 붕괴될 염려가 있는 제2433호, 총 고인돌 2기의 복원을 위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제2419호는 완전 붕괴하였는데 내부에서 별다른 시설이 발견되지 않았고 받침돌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는 석재 1기만 발견되었으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제2433호의 경우 이미 받침돌이 하나 유실된 상태였고 민무늬 토기의 작은 파편만 발견되었고 내부에서 무덤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제2433호의 동쪽에서 별도의 무덤방이 확인 되었으며 내부에서 덧띠 토기 1점이 깨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4. 여담

5. 사적 제391호

지석묘란 선사시대 무덤형식의 하나로 고인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창 아산면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약 1.8㎞에 이르는 야산 기슭에 440여 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지어있다.

기원전 400년∼500년 무렵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집단무덤으로, 이 지역을 지배했던 족장들의 가족무덤인 듯 하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은 낮은 야산과 농사 짓기 좋은 이 지역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둑판 모양의 남방식, 탁자 모양의 북방식,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의 각종 형식을 갖추고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성격을 아는데 매우 중요하다. 아산면 상갑리 일대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의 남쪽 한계선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구조, 정치체계는 물론 당시인들의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임을 인정받아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창지석묘군 → 고창 죽림리 지석묘군)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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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선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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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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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상원 검은모루동굴유적, 덕천 승리산동굴 유적[1], 만달리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2], 공주 석장리 유적[3], 두루봉동굴 유적,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신석기시대 서울 암사동 유적,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주 천전리 암각화 ),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청동기시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대구 진천동 입석, 사월동지석묘군, 속초 조양동 유적,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유적
※ 문서가 있는 경우만 서술.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문서에 나오듯 산 이름이 우상화 지명이라서 통일 후 개명 가능성이 높다. [2] 사적 지정, 학설을 뒤집은 유적 [3] 남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이며 한강 이남에도 구석기 문화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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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2] 고인돌을 한자어로 표기하면 지석묘가 된다. [3] 이보다 많은 고인돌이 있는 지역에는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이 있다. [4] 처음 지정될 당시 사적 제39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문화유산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유산의 중요도로 오인될 수 있음을 고려해 따로 번호를 매기지 않고 있다. [5] 파괴된 고인돌을 합치면 약 550여기가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