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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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릉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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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제177호 | ||
진흥왕릉 眞興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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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산92-2번지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 | |
면적 | 50,148㎡ | |
지정연도 | 1969년 8월 27일 | |
제작시기 | 신라 | |
위치 |
1. 개요
眞興王陵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한 신라 제24대 국왕 진흥왕 김삼맥종의 능이다. 사적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2. 상세
삼국사기에 의하면 승하한 뒤 애공사(哀公寺)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진흥왕은 신라의 전성기를 열어서 비중이 높은 왕으로 전국 각지에 진흥왕 순수비까지 남아 있는 왕인데도, 남긴 업적과 위상에 맞지 않게 왕릉은 위 사진으로도 알 수 있듯 매우 작다.[1] 물론 무덤 크기랑 왕의 권위를 무조건 획일화시켜 비교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이 고분은 한동안 잊혀 있다가 진흥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현대처럼 체계적인 고고학적 지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이루어진 작업이다. 이 고분이 조선시대에 진흥왕릉으로 비정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지정됐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라 왕릉이 그렇듯 진흥왕릉이라고 확실시되지 못하고 추정만 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기록에 남은 진흥왕의 위상에 맞지 않는 초라한 무덤이기에 근처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고분이 바로 진흥왕릉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진흥왕과 진지왕이 태종 무열왕의 직계 조상이므로 무열왕릉 바로 위쪽에 있다는 것도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도 저서 《신라진흥왕릉고》(新羅眞興王陵考)에서 무열왕릉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 4기를 진흥왕,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능으로 추정했는데, 이 김정희의 추정은 진흥왕릉 앞의 안내판에도 써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유의건도 나릉진안설이란 책을 써서 무지한 지역 노인들과 능참봉의 말만 믿고 잘못된 비정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김정희가 진짜 진흥왕릉이 여기일 것이라 지목한 서악동 고분군의 모습.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면 진흥왕릉이라 보기에도 큰 무리가 없고, 서악동 고분군 가장 아래쪽 무열왕릉과의 관계나 배치를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추정의 영역이라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왕릉 아래쪽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65호 서악동 삼층석탑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 왕릉을 지키는 원찰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사찰은 소실되고 석탑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