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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11:42:37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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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선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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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상원 검은모루동굴유적, 덕천 승리산동굴 유적[1], 만달리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2], 공주 석장리 유적[3], 두루봉동굴 유적,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신석기시대 서울 암사동 유적, 울산 반구천 일대 암각화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주 천전리 암각화 ),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청동기시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대구 진천동 입석, 사월동지석묘군, 속초 조양동 유적,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혼합
초기 철기시대 광주 신창동 유적
※ 문서가 있는 경우만 서술.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문서에 나오듯 산 이름이 우상화 지명이라서 통일 후 개명 가능성이 높다. [2] 사적 지정, 학설을 뒤집은 유적 [3] 남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이며 한강 이남에도 구석기 문화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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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기타4. 외부 링크5.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8호

1. 개요

둔산선사유적지는 대전광역시 서구 대덕대로317번길 9에 있는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8호 문화재 선사시대 유적지다.

2. 특징

둔산동 선사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약 2백 평 정도의 면적에서 몸돌, 망치돌 등 50여 점의 석기와 석기를 만들 때 떨어져 나온 작은 부스러기들이 나왔다. 이들 유물 가운데 쌍날찍개, 긁개, 밀개 등은 유물의 형태와 떼어낸 수법으로 보아 후기구석기의 이른 시기이거나 중기구석기의 늦은시기 유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직경 2∼3m 내외, 깊이 0.8∼1.3m 정도의 작은 집자리 유적 13기가 조사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 조각·보습·갈돌·어망추 등 각종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나왔다. 이곳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며 문화계통으로는 서해안의 빗살무늬토기 문화 전통이 강하고 함경도 해안지역의 문화요소도 일부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는 3기의 집자리 유적이 조사되었으며 팽이형 민무늬 토기 조각, 방추차, 돌도끼, 돌화살촉, 돌칼, 숫돌 등이 나왔다.

둔산지역의 선사유적은 이 지역에서 갑천 주변의 얕은 구릉에 넓은 농토와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많은 주민이 살았던 사실을 알려주며, 대전의 선사문화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3. 기타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둔산선사유적지의 소재지는 둔산동이 아니라 도로 하나 차이로 월평동이기 때문에 지명 분야의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에 들어갈 수 있지만, 한편 넓게 보면 월평동도 둔산신도시의 일환으로 개발되어 범(汎) 둔산권이기 때문에 아주 부적절한 지명은 또 아니다.[1]

대전 현지에서는 거창한 유적지라기보다는 사실상 근린공원으로 인식된다. 근처에 술집, 식당, 영화관, 병원이 많아서, 밥 먹었거나 커피를 마셨거나 영화를 보고 나온 커플들, 술 먹다가 바람 쐬러 나오는 취객들(...), 그리고 춥지 않으면 벤치에서 캔맥주를 노상 까는 노상러들, 환자복을 입고 혼자, 아니면 보호자 등 가족과 함께 나온 병원 환자들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담장이 꽁꽁 둘러쳐져 있어 정문으로만 출입이 가능했지만, 담장을 허물고 공원화 하였다.

4. 외부 링크

5.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8호

둔산동 선사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한 곳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곳이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약 2백평 정도의 면적에서 몸돌, 망치돌 등 50여점의 석기와 석기를 만들 때 떨어져 나온 작은 부스러기들이 나왔다. 이들 유물 가운데 쌍날찍개, 긁개, 밀개 등은 유물의 형태와 떼어낸 수법으로 보아 후기구석기의 이른 시기이거나 중기구석기의 늦은시기 유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직경 2∼3m 내외, 깊이 0.8∼1.3m 정도의 작은 집자리 유적 13기가 조사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 조각·보습·갈돌·어망추 등이 나왔다. 이곳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신석기시대 후기에 속하며 문화계통으로는 서해안의 빗살무늬토기 문화 전통이 강하고 함경도 해안지역의 문화요소도 일부 보인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는 3기의 집자리 유적이 조사되었으며 팽이형 민무늬 토기 조각, 방추차, 돌도끼, 돌화살촉, 돌칼, 숫돌 등이 나왔다.

둔산지역의 선사유적은 이 지역에서 갑천 주변의 얕은 구릉에 넓은 농토와 풍부한 물을 배경으로 많은 주민이 살았던 사실을 알려주며, 대전의 선사문화 갈래와 계통을 확인하는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 그래서 둔산신도시에 속한 다른 동, 주로 탄방동, 만년동, 월평1~3동, 갈마2동 주민들은 그냥 둔산동에 산다고 퉁치는 경우가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