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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 독일 국방군/차량, 퀴벨바겐, 슈빔바겐, 슈타이어 1500A, Büssing-NAG T500, Büssing-NAG G31, Büssing-NAG L4500, 오펠 블리츠, 포드 B3000S, V3000S, V3000A, 보르크바르트 B3000, 메르세데스-벤츠 G5, 메르세데스-벤츠 L1500, 메르세데스-벤츠 L3000, 메르세데스-벤츠 LG3000, 메르세데스-벤츠 L4500, 메르세데스-벤츠 L6500, 크루프 프로체, 타트라 T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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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전차 및 차량(Beutepanzer)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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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zerkampfwagen VI Ausf. B "Tiger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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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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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뮤아 기갑 박물관 소장 233호 티거 2의 기동 영상 |
킹 타이거는 2차 대전에 참가했던 마지막 독일 전차였다. 주포로는 더욱 강력한 71구경장 88mm포를 장착하여 거의 무적의 화력을 갖추었다. 킹 타이거는 약 500대 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사방에서 몰려드는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세를 뒤집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전쟁 후반에 독일이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중전차를 만든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무게가 무거워서 교량을 건너는 데도 애를 먹었다. 특히 연료 소비량이 대단했는데 당시 독일은 연료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 독일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제2차 세계 대전 후반에 등장한
나치 독일의
중전차. 티거 2라는 명칭도 있으나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 또는 킹타이거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아돌프 히틀러의 1944년 2월 명령으로
티거 I과 함께 티거 II는 독일 병기 중 별명이 공인받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 독일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2. 제원
6호 전차 B형 티거 2 제원 | |||
{{{#!folding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484848><colcolor=white> 제식명 | Panzerkampfwagen VI Ausf.B | |
형식번호 | Sd.Kfz.182 | ||
전체길이 | 10.26m | ||
차체길이 | 7.26m[1] | ||
전체너비 | 3.75m | ||
전체높이 | 3.09m | ||
전비중량 | 포르쉐:68.5t / 헨셸:69.8t | ||
탑승인원 | 5명 | ||
엔진 | 마이바흐- HL230 P30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 엔진 | ||
엔진출력 // 회전수 | 700ps // 3000rpm | ||
배기량 | 23.88L | ||
연료적재량 | 860L | ||
연료소비량 | 782L / 100Km (도로) | ||
최고속력 | 38km/h(도로), 17km/h(야지) | ||
항속거리 | 110km(도로), 85km(야지) | ||
중량당 마력 | 10.1Ps/t | ||
현가장치 | 토션 바 | ||
변속기 | 01var401216B (전진8단 후진4단) | ||
조향장치 // 구동륜 위치 | 메리트 마이바흐 // 전방 | ||
선회반경 | 4.8m | ||
무한궤도 폭 // 매수 | 80cm // 좌, 우 각 96매 | ||
접지길이 // 접지압력 | 4.13m // 1.07Kg/㎠ | ||
초호능력 | 2.50m | ||
초월능력 | 85cm | ||
등판능력 | 35도 | ||
잠수도하능력 | 1.60m | ||
주포조준장치 | TZF 9b | ||
포탑회전방식 | 수동 및 유압겸용 | ||
무장 | 43식 71구경장 8.8cm 전차포×1 (84발) | ||
7.92mm 기관총 MG34×2, MG42×1 (5,850발) | |||
9mm 기관단총 MP40×1 (전차병 휴대용) | |||
장갑(수직기준) | 차체 전면 상부 /포르쉐, 헨셸 150mm / 50도 | ||
차체 전면 하부 /포르셰, 헨셸 100mm / 50도 | |||
차체 측면 상부 /포르셰, 헨셸 80mm / 15도 | |||
차체 측면 하부 /포르셰, 헨셸 80mm / 90도 | |||
차체 후면 /포르셰, 헨셸 80mm / 60도 | |||
차체 상면 /포르셰, 헨셸 40mm / 0도 | |||
차체 바닥 /포르셰, 헨셸 25 ~ 40mm / 0도 | |||
포탑 방패 최대 /포르셰:82mm/헨셸:80mm | |||
포탑 전면 /포르셰:110mm/헨셸:185mm / 90도 | |||
포탑 측면 /포르셰:82mm/헨셸:80mm / 69도 | |||
포탑 후면 /포르셰:82mm/헨셸:80mm / 70도 | |||
포탑 상면 /포르셰, 헨셸 44mm / 0도 ~ 10도 | |||
포방패 /포르셰:120mm/헨셸:200mm / 0도 ~ 5도 | |||
가격 | 단차당 321500라이히스마르크 |
}}} ||
3. 개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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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타입 VK 45.03(H) |
독일 국방군에 있어서 이는 크나큰 충격이었기에 독일은 주력인 4호 전차를 부랴부랴 장포신으로 개량하고, 쉬르첸 같은 추가 장갑판을 덧붙이는가 하면, 보병 지원용 돌격포인 3호 돌격포에 장포신 주포를 탑재해 대전차 전력으로 쓰는 등 기존 전력의 강화에 사력을 다했고, 이어서는 판터와 티거를 비롯한 강력한 후속 전차의 개발과 도입을 서둘렀다.
판터보다 더 먼저 개발되고 있던 티거[3]는 외형이나 설계 사상이나 사실상 T-34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기존 독일 전차의 강화형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판터는 경사장갑과 곡면( 포방패)을 대폭 채용한 외형에서 볼 수 있듯이 T-34 전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전차였으며, 티거의 후속 전차인 티거 2 또한 경사장갑을 차용하는 등 외형상에 있어서 중형전차인 판터와 중전차인 티거 2의 유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독일군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전차 수리, 보급, 정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판터 2의 부품을 다수 공유/호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도 그에 한몫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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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K 45.02(P) A형 (포르셰 타입 180) |
VK 45.02(P) B형 (포르셰 타입 181) |
VK 45.02(P)는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다른 전차들처럼 전기+가솔린 구동식 하이브리드 엔진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이때의 하이브리드 엔진이란 게 워낙에 신뢰성이 모자란 결함품이었고, 불태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몰아도 자기가 알아서 타오르는 건 다수에,[5] 티거 2가 경합하고 양산될 시기로 들어가면 전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하이브리드 엔진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전기 모터 제작에 필요한 구리 수급에 차질[6]을 겪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퇴짜를 맞고 말았다.[7] 시대를 앞서 나간 하이브리드 기관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포르셰 사는 차체의 완성에 실패, 헨셸 사의 차체를 약간 개수해 포르세 설계안으로 크룹 사가 만든 포탑을 얹어 티거 2의 시제 차량이 완성된다.
VK 45.02(P) 용으로 개발되어 티거 2 극초기형에 탑재되었던 크룹 사의 포르셰 차체용 포탑은 포탑 전면 장갑이 곡면 설계를 감안하더라도 110mm밖에 되지 않았던데다 과도한 곡면 설계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곡면 설계 탓에 내부 공간 활용에도 역시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포탑 전면의 곡면 하부에 포탄이 피격될 시 미끄러진 포탄이 얇은 차체 상면을 직격하는 샷 트랩(Shot trap) 현상이 발생하는 바람에 전차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기에 미리 생산해둔 분량을 50량에만 탑재하였고, 후속 양산형은 수직 장갑을 지닌 신형 포탑[8]으로 교체되었다.
초기형부터 중기형까지는 흡착지뢰를 차단하기 위해 자기장을 차단하는 특수한 재질를 칠하는 치메리트 코팅을 채용했으나 희소자원을 소모하고, 100kg~150kg 정도 추가되어 현가장치에 조금이라도 더욱 무리를 줄 뿐만 아니라 정작 연합군은 흡착지뢰를 쓰지 않았기에 1944년 9월을 전후하여 폐지된다. 그래서 후기생산형은 치메리트 코팅이 되어 있지 않다.
4. 명칭
쾨니히스티거(Königstiger)라는 이름은 사실 독일 전쟁성 병기국이 붙인 별칭이다.하지만 어째서인지 정식 명칭 티거 2가 아닌 쾨니히스티거로 더 유명하다. 이것은 연합군 정보부의 삽질. 전쟁성의 생산 보고서만 봤지 전쟁성에게 병기 명명권이 없다는 것을 몰랐던 연합군 정보부는 별 생각 없이 쾨니히스티거라는 이름이 티거 2의 정식 명칭인 것으로 착각한 것. 그리고 이후 연합군 정보부의 보고서가 널리 인용되면서 티거 2는 어느새 쾨니히스티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버렸다.
미군이나 한국에선 독일어 원어를 직역한 '킹 타이거(King Tiger)'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영국에서는 '로열 타이거(Royal Tiger)'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독일어의 쾨니히스티거가 가지는 실제 의미는 '왕'호랑이가 아닌 벵골호랑이(Bengaltiger)다. 어쨌든 간에 쾨니히스티거는 공식 명칭이 절대 아니다. 정식으로 부르려면 6호 전차 B형 티거 2(Tiger zwei, 티거 츠바이)라고 불러야 한다.[9] 현재도 티거 2가 정식으로 나오는 외국 게임에선 킹 타이거 아니면 쾨니히스티거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티거 II 또한 사실은 공식 명칭이 Panzerkampfwagen VI Tiger Ausf.B 'Tiger II'이므로, 형식적으로는 티거 II도 6호 전차 티거의 파생형 중 하나인 B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설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아예 다른 전차로 구분하는 것이다.
5. 형식
5.1.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
초기형 '포르셰' 포탑 |
|
'헨셸형 포탑'을 장착한 후기 양산형 티거 2 |
그러나 헨셸 차체용 포탑이 생산되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당시의 전황이 워낙 급박했던 데다가 마침 포르셰 설계안이나 헨셸 설계안이나 포탑링의 규격은 동일하였으므로 급한대로 마침 생산해 둬서 재고도 있고, 같은 주포를 탑재 가능한데다 그대로 놔두면 활용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포르셰 차체용 포탑을 그대로 탑재하여 출고하게 되었다. 일종의 선행양산형이다.
여태껏 헨셸 포탑, 포르셰 포탑이라 불리던 포탑들은 사실 모두 크룹 사가 제작한 포탑이며 헨셸형이라 알려져있는 후기형 포탑은 디자인까지 크루프가 맡아 해왔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초기형 포탑/양산형 포탑이라고 딱딱하게 말하는 것보다 포르셰 포탑(Porsche-Turm) / 헨셸 포탑(Henschel-Turm)이라고 지칭하는 쪽이 더 직관적으로 와닿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불리고 있다. 물론 관련 서적에서는 양산형 포탑(Production Turret)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한다.
6. 파생형
6.1. 프로토타입 경합 모델
6.1.1. VK 45.02(P)
|
VK 45.02 (P) |
6.2. 자주포/구축전차 파생형
6.2.1. 야크트티거
|
Jagdpanzer VI Jagdtiger |
6.2.2. Bär
|
Sturmpanzer Bär |
6.2.3. 게쉬츠바겐 티거
|
Geschützwagen Tiger |
6.3. 현대화 개수형
6.3.1. Tiger II 1945년 2월 생산형
포탑 정면 포수의 조준경이 약점으로 지목되면서 조준경을 잠망경 형태로 포탑 상판으로 노출시켜 포탑 정면의 약점을 제거하는 포탑을 탑재한 형식. 최후기형을 베이스로한 포탑 1대가 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차체는 최후기형 차체이다. 남아있는 사진은 없고 도면과 조준경의 설계도로만 존재한다.[11]6.3.2. Tiger II with Stereo-Entfernungsmesser
주포는 동일하며 판터 F형과 같이 스테레오 형식의 거리측정기가 포탑 양 측면에 장착되었고, 추가로 엔진룸 상판과 후방 견인 고리 추가등의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1945년 1대의 포탑을 포함하는 시제차가 제작되었고 흔히 1945년 5월 생산형이라고 불렸다.6.3.3. Tiger II mit 10,5cm Kw.K. L/68
|
Tiger II mit 10,5cm Kw.K. L/68[12] |
7. 성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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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5월 4일 파더보른-제넬라거에서 티거 2를 수령하는 제503중전차대대와 쿠르트 크니스펠 |
7.1. 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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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cm KwK 43 71의 저저항피모철갑고폭탄(APHECBC) |
실제 전투에서 1,000미터 거리에서의 초탄 명중률은, 탑재 탄약의 절반 가량(40발) 차지했던 통상적인 철갑탄인 Pzgr 39/43 경우 85%였고, 소수만 탑재하고 다녔던 고속 철갑탄인 Pzgr 40/43의 경우 무려 90%에 육박했다.
다만 탄약 적재량이 우월하다는 내용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서 체급에 비해 지나치게 대구경 주포를 장착한 IS-2를 제외하고는 탄약 적재량은 다들 거기서 거기였다. 더군다나 티거 2가 데뷔전에서 T-34-85의 매복 공격을 당했을 때 포탑 측면이 관통당하며 내부의 탄약이 유폭하는 문제가 드러나면서 포탑 내 탄약 적재가 금지되었기에 오히려 탄 숫자가 줄었다.
7.2. 방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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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2의 장갑 배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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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mm D-25T 전차포의 BR-471B 포탄 방어 시뮬레이션 |
장갑 두께는 차체정면 150mm, 하부장갑 100mm, 포탑정면 180mm으로 많은 서적 및 인터넷 사이트에서 티거 2는 동시기 전차포나 대전차포로 정면관통이 불가능 하다고 되어있는데 사실 M36 잭슨, M26 퍼싱에 장착된 90mm나 심지어 M4 셔먼 후기형의 76mm과 M10 GMC의 3인치, 처칠 전차 후기형과 크롬웰 전차 등의 주포인 QF 75mm나 셔먼 파이어플라이나 아킬리스의 QF 17파운더일 경우 텅스텐 포탄을 쓸 경우 완전 불가능은 아니었다. 또한 포탑과 전면 하부는 상부보다 장갑이 얇기 때문에 관통된 사례는 존재한다. IS-2, ISU-122S에도 탑재된 122mm D-25T/D-25S는 200m에서 차체 정면 하부를 노려야 관통, 포탑정면은 100m 이내에서 관통이 가능했다.
한편 소련군이 노획 티거 2로 쿠빙카에서 테스트했을 때는 600m에서 122mm 철갑탄으로 차체상부를, 1000~1500m에서 포탑정면을 관통하였다. 또한 122mm 고폭탄에 차체전면을 얻어맞자 용접부위가 갈라지고 차내 기관총이 파손되며 내부 화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소련이 노획한 티거 2는 전황 악화로 인해 장갑재 품질이 저하되어 내구도가 약화된 버전이었던 데다 소련에서 티거 2를 한 대 밖에 노획하지 못한 때에 진행한 테스트라서 한 대의 티거 2에게 많은 양의 포탄을 쏟아부었고, 그 때문에 심각하게 방어력이 저하된 상태였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한편 현실적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미국은 에버딘에서 155mm 고폭탄을 킹 타이거의 차체 정면에 쏴본 적이 있었는데, 약 35 x 45cm 크기의 패인 자국이 생기고 차체 정면과 후면의 거의 모든 용접부위가 다 갈라졌다고 한다.
다만 측면과 후면장갑은 시기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티거 1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배치될 당시 T-34 1대에게 측면에서 기습당해 포탑 측면이 관통되어 3대나 파괴된 사례가 있었다.
하여간 연합군 전차가 뭘 쏘든지 다 튕겨내고 혼자서 그냥 적군 1개 중대는 다 격파하는 압도적인 공포를 동부전선, 서부전선 가릴 것 없이 연합군 전차병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는 중전차인 IS-2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거 2는 IS-2 1943년형의 정면 상부를 2100m, 포방패는 1800m부터 관통이 가능했다. 소련에서 실험한 테스트에서 나스호른으로 IS-2의 포탑 전면을 2600m에서 관통했으니 동일한 주포를 가진 티거 2도 가능했을 것이다.
7.3. 한계
7.3.1. 수적 열세 및 낮은 신뢰성
이토록 우수한 전차는 1944년에 등장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겨우 500대 이상 남짓 생산되는 데 그쳤다. 게다가 이 없는 물량으로 확고히 전과를 내기 위해 분산배치가 아닌 전부 집중배치해서 운용했고, 군단급 이상 직할 부대인 중전차대대로 편성해 운용했지만 상대인 연합군은 티거 중전차는 물론, 자체 생산, 노획한 모든 전차들을 포함하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준수한 성능의 전차들을 보유하고 있었다.이는 티거 2가 배치된 전투에서 엄청난 교전비를 내며 승리해도 티거 2가 없는 나머지 전선이 다 뚫려버려 부대가 포위당하게 되고 무게에 비해 부족한 구동계 신뢰성으로 도망 자체가 어려운 티거 2인지라 결국 자폭 같은 비전투손실을 내면서 전차병이라도 겨우 탈출시키는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아무리 전차전에서 교전비가 잘 나와도 실질적으로 티거 2는 T-34 전차나 M4 셔먼의 전략기동을 따라가지 못하여 스스로 부서지는 형편이었고 동부, 서부의 양면 전선의 사방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연합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대의 시점으로 보면 최신형 중전차를 490여 대나 만든 것이 대단해 보이지만[17] 그건 전차의 역할이 제한적인데다[18] 무기 값이 전반적으로 비싸진 현대니까 가능한 것이다.[19] T-34 계열과 M4 셔먼 계열 전차만 합쳐서 10만 대를 넘게 생산되었던 게 제2차 세계 대전이었다. 티거 중전차랑 합쳐도 채 2,000대가 안 되는 초라한 생산량은 정말 치명적인 문제였다. 예시로 든 저 전차들 이외에도 각종 전차 또한 많은 물량이 생산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대전차 화력을 제외한 화력 면에선 티거 2에 필적하던 소련의 IS-2, 스탈린 전차가 3,000대 이상이 나왔다.
이처럼 적은 생산량은 원래부터 압도적인 공업 생산력을 자랑했던 미국과 전쟁 초기 전선에 가까운 공업지대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렌드리스를 받으면서 독일보다도 2년여 빠르게 총력전 체제로 전환하고, 멀리 떨어진 후방으로 공업시설을 이전하거나 재건한 후 소품종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어 생산력을 다시 확보한 소련과 달리 독일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초 공업 능력과 부족한 능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 나치 체제, 중간에서 이권을 챙기려는 군수업체들의 신경전으로 인한 결과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 시점'이었다. 티거 2가 양산에 돌입할 때쯤엔 연합군이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슈바인푸르트 대공습 등 독일 전역의 군사 시설에 맹렬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뭘 많이 만들고 싶어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독일군도 소련과 미국의 생산량은 알고 있었으므로 실제 계획은 2000대 이상이 되었지만 그 중에 생산된 물량은 492대에 그쳤다. 공습으로 인한 주요 부품의 생산 정지, 시설의 분산 등으로 인한 간접적인 피해가 생산량을 25%대로 줄인 것이다. 게다가 생산량을 맞췄다고 쳐도 티거가 한대당 연합군 전차 100대쯤 잡는 교환비를 보이지 않으면 애초에 승산이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정도 교환비는 베를린 전투 같은 극한의 방어전 상황에서나 가능했다.[20]
독일군은 소수 정예를 지향했지만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의 넓이는 소수 정예로 커버가 되는 전장 넓이가 아니다. 게다가 60톤 후반에서 70톤에 육박하는 티거 2는 단순 재료 무게로만 계산해도 퍼싱이나 IS-2의 두 배가 필요하고 제작 난이도는 두 배를 훨씬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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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격으로 비교한 자료 티거 2는 티거 1의 2.5배, 4호 전차의 7배, T-34의 10배에 달한다. |
원래 해당 문단엔 티거가 10대, 판터가 5대씩의 교환비는 평균적으로 찍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실제 서부전선 전차전 전체 평균에서 판터와 티거의 전차전 교환비는 2.5대 조차 넘지 못한다. 게다가 연합군이 전차로만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니라 온갖 곳에서 자주포와 포병대의 포화, 보병의 대전차화기, 공중에서의 폭격 이나 연합군 해군의 함포 사격이 가차없이 날아들어 말 그대로 찢고 불태우거나 충격파로 전차를 뒤집어놓아 격파시키고는 했다. 또 티거 시리즈는 고질적인 잔고장과 비전투 손실, 연료 부족 등으로 주저앉는데 대전 말은 어제는 독일 점령지, 오늘은 전장, 내일은 연합군 점령지가 돼서 견인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폭파되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이런 교환비만으로 판단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단점이 있는 평가법이다. 현실에서 전쟁은 전차만으로 치르지 않으며, 대전차전은 전차의 임무 중 하나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전차의 대전차 임무를 중시한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서조차 전차 탄약고에 철갑탄과 고폭탄의 비율을 반반 이상으로 채우기 힘들 정도로 소프트타겟인 보병이나 진지를 상대해야 하는 일도 잦았으며, 이는 2020년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조차 전차포의 고폭탄 화력이 문제시되는 등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동시기 소련의 IS-2가 중전차임에도 상대적으로 대전차전을 등한시한 것도 이런 용도를 감안해서지만, 반대로 티거 2는 이런 임무는 맡기 어렵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적 전차 물량이 감당 안 되는 상황에서 나치 독일이 뽑아낸 고육지책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티거 2나 판터 등으로 이루어진 중전차 부대가 잘 싸워도 구동계통 신뢰성이 구리다고 비판을 받는 T-34보다도 더 한심한 구동계통 신뢰성과 여기에 더해 한심한 연비와 보급줄을 가진 독일 육군의 중전차들은 이렇게 포위될 경우 퇴각도 못하고 후퇴하는 아군 뒤를 지켜주다가 파괴되거나 아니면 전차를 자폭시킨 후 전차병만 탈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독일군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으므로 3호와 4호 전차를 충분히 배치하였으나, 문제는 이것들은 본격적으로 미국과 소련이 M4 셔먼과 T-34를 배치 및 개량하면서부터는 사실상 전차 외 타겟에 쓰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티거와 판터의 손실 사유 중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는 게 대전차무기의 공격과 공습이었는데, 여기서 상당한 피해를 보고 편제에 비해 줄어든 전차로 건재한 연합군 전차를 상대해야 했다. 1944년 중반 이후 소련군과 독일군의 전투는 항상 잘 싸우고 패퇴하는 독일군과 한 전장에서는 졌으나 나머지 전장에서 몰아쳐 독일군을 포위하는 소련군의 싸움이었는데, 이 경우 아무리 교전비가 잘 나와서 전투에 이겨봤자 전차는 계속 비전투 손실이 생겨버리고 땅은 밀려나고 전쟁에서는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생산품의 신뢰성과 공정과 부품의 표준화를 통한 대량 생산, 정비 용이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본보기이자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7.3.2. 제공권 상실
이 전차가 배치된 1944년에는 연합군의 군용기들이 대부분의 유럽의 제공권을 장악해 버렸다. 물론 P-47 썬더볼트나 호커 템페스트, 호커 타이푼, 페어리 파이어플라이, Il-2와 같은 공격기가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전차를 파괴하기는 힘들고[21][22] 걸어가는 보병, 차량 대열을 파괴하고 보급 시설을 파괴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하지만 전차는 보급이 없으면 가동을 할 수가 없다.뿐만 아니라 전투기들이 접전 보고를 올리면서 실시간으로 위치가 노출되는 것도 문제였다. 덕분에 전방에서 이동, 보급, 심지어 후방에서도 안심하고 기동하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나타났다 하면 당장 하늘에 잠자리 떼처럼 새까맣게 떠 있는 연합군 전투기, 폭격기들이 독일 육군을 보이는 대로 격파했으며 독일 공군은 출격하면 압도적인 항공 우세에 도망다니느라 그나마 있던 정예 파일럿과 연료도 소모하고 불리한 여건에 몰리는 것이 1944년 가을 이후의 독일군이었다. 덕분에 그 위용에 걸맞지 않게 실전 배치 초기 부터 종전 때까지 대체적으로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다.
7.3.3. 심각한 구동계통의 불균형
티거보다 무려 12~13톤이나 더 나가는 괴물임에도 불구하고 엔진 출력은 티거 후기형[23]과 똑같았다. 이해가 안 간다면 간단하게 현재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람스 계열과 동등하거나 더 무거운 중량에 엔진 출력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고장을 그나마 덜 내고 조종하려면 숙련된 조종수가 반드시 필요했던 티거는 그래도 평소에 철도에 싣고 다니다 전선에서의 짧은 거리만 자력 주행하면 나름 중전차 치곤 기동 성능이 양호했지만, 티거 2에 이르러서는 버틸 수가 없는 출력이었기에 연비와 기동성이 심각하게 떨어졌으며, 구동 계통에 심한 부담을 준 탓에 툭하면 퍼지기 일쑤였다.[24] 이것은 1944년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되어,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가장 많은 티거 계열을 투입했으나 물량과 신뢰성 모두에서 앞서는 T-34 부대 앞에 포위당해서 쌈 싸 먹히거나 아군의 뒤에 남아서 시간을 벌다가 박살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는 비단 기동력이 떨어지거나 잘 퍼진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방어 기동을 위해 차체를 회전시키는 것부터 어렵게 만들었다. 반면 티거는 전술적으론 비교적 우수한 구동계통을 기반으로 하여, 적 전차의 포신 방향으로 탄 방향을 가늠해 차체를 이리 저리 회전시켜 포탄을 튕겨내는 기동을 할 수 있었다. 독일측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출력을 향상시킨 신형 엔진인 HL234를 개발하던 중이었으나 전쟁 중에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설령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대전 말의 상황상 양산체계를 구축할 상황이 도저히 되질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독일의 전차였던 판터 역시 구동 계통의 신뢰성 문제로 시작부터 끝까지 독일군을 고통스럽게 했다.[25]
뿐만 아니라 티거 2는 티거나 판터와 마찬가지로 자력 주행하면 얼마 못가서 퍼지기 때문에 전략 이동 시 반드시 철도 수송을 해야 했는데 티거와 마찬가지로 폭이 너무 넓어 철로용으로 마련된 공간을 넘어가기 때문에 철로 수송 시 작은 전용 궤도로 교체를 해줘야만 했고 이 때문에 배치하는 데 추가적으로 시간이 걸렸다. 안 그래도 무거운 전차일수록 다루기 어려운 마당에 이런 사소한 점 하나마저 배려가 되어있지 않은 티거 2를 몇몇 현지 지휘관들은 좋게 보지 않았고, 아예 배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7.3.4. 부족한 연료 및 재료
독일 국방군의 작전용 연료 상당수는 추축국인 루마니아 왕국의 플로이에슈티 유전에 의존했는데, 1944년 미하이 1세의 쿠데타로 루마니아가 추축국을 이탈하자 연료 수급이 불가능해졌다.어마어마한 중량과 무게 때문에 건너갈 만한 다리도 별로 없고, 연비가 나빠 연료 소비량이 무지막지한데 그 연료를 실어나르는 모든 도로와 철도가 연합국 공군한테 밤낮으로 두들겨 맞아 불타고 있었던 데다가, 이 무렵의 독일군은 유전 지대 대부분을 연합국에게 빼앗겼기에 이미 독일의 연료 비축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적의 연료를 노획해서 사용한다는 발상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노획하는 과정 자체가 엘리트 인원을 데리고 엄청난 혈전을 치러야 가능하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라도 소련은 전차가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터라 전차 연료를 빼앗아도 사용이 불가능하며, 미국 같은 다른 연합군의 경우에도 독일이 연료 없는 것은 잘 알기에 후퇴하기 전에 연료 창고에 불을 지르거나 폭파시키고 튀었다. 그래서 아르덴 대공세 때 티거 2를 가져온 독일이 망한 것이다.
덕분에 티거 2의 손실은 전투 손실보다 연료 부족과 엔진, 변속기, 궤도 등의 사소한 기관 고장으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훨씬 많았다. 이미 독일군의 연료 보급은 끝장났고, 중전차가 없는 전장은 소련군의 기갑 공세에 간단히 뚫려버렸으며 기갑 부대가 자기 전투에서 아무리 잘 싸워봤자 결국은 간단히 포위 되며 한심한 구동계 신뢰도로 자력 주행으로 퇴각을 시도하면 금방 고장나버려서 티거 2를 견인, 회수해 수리할 여건이 되지 않아 독일군들 자신이 버리거나 자폭시킨 게 부지기수였다는 말이다. 이래서야 전투에서 아무리 교전비가 좋아봤자 결론은 자폭 유기가 부지기수로 일어나면서 전쟁에서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44년 중반 이후에는 독일도 니켈이나 몰리브데넘같은 특수강을 만들 때 필요한 희귀금속이 크게 부족했다.[26] 일본처럼 연철을 쓰는 처참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희귀 금속을 사용한 특수강을 써야 하는 부품에도 대체품이나 그냥 강철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서 전차들의 실제 방어력이 설계 시 방어력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27]
문제는 티거 2는 이렇게 특수강을 사용 하기 힘든 시절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소련군에서 같은 종류의 독일군 전차를 상대로 할 때 이상하게도 최근 생산품으로 보이는 녀석이 구형보다 빨리 격파되거나 고장나는 현상을 목격했을 정도다. 그래서 ISU-152 같은 152mm 야포를 갖춘 무기에게 근거리에서 포탄이 명중당할 경우, 예상과는 다르게 관통-탄약고 유폭-격파당하기도 했다. [28]
7.4. 개발, 생산한 이유
티거 1 전차를 1944년에 단종시키고 티거 2를 후속작으로 제작할 이유가 있었다.티거, 티거2 전차를 생산하지 않고 그 자원으로 4호 전차나 판터를 더 많이 만들 경우 몇 대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전장에 나가면 T-34 수십 대를 상대해야 한다. 대전 말기에는 개량의 한계에 달해 M4 셔먼과 T-34에게 확연히 밀리게 된 4호 전차로는[29] 동등하게 싸우는 것조차 무리였으며 심지어 말기형인 J형은 아예 개악형이 되어버렸다. 판터 역시 강하긴 하지만 같은 중형 전차[30]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티거나 티거 2는 제대로 운용하면 T-34, M4 셔먼을 수십 대 씩 상대할 수 있다. GD 사단 소속의 티거 전차 2대를 앞뒤로 포위했던 T-34 수십 대가 패퇴한 적도 있는데 하물며 티거 2 전차라면 더 말이 필요없다.
더욱이 티거 2가 나오는 시점에선 연합군 전차들의 공격력과 장갑이 강화되었기에, 티거와 판터가 그 이전 만큼 활약하기 힘들어졌다. 티거가 나올 때 당시인 1943년에는 미군은 57mm 포도 아직 다 보급하지 못한 상황[31]인지라 M3 37mm 대전차포 따위를 대량으로 굴리는 상황이었으며, M4 셔먼의 75mm 주포는 3, 4호는 상대할 수 있지만 티거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소련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KV-1이나 T-34-76의 76mm 전차포로는 티거와 정면 상대하기 힘들었다.[32] 이렇듯 티거 자체의 카탈로그 제원이 강력했고 티거와 판터가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
1944년 중후반 미군이든 소련군이든 연합군의 대전차 능력이 서서히 강화된지라 티거 전차의 능력만으론 더이상 무쌍을 찍기 힘들어졌다. 그 원거리 명중률 낮은 17파운더만 해도 제대로 한방 차체나 포탑에 맞으면 티거가 터지는데 영국은 그걸 중형 전차 주포로 달고 다녔다. 미군 역시 한동안 삽질을 하긴 했지만 셔먼의 주포를 1944년부터 76mm M1A1 대전차포로 교체하고[33] 76mm 포용 고속철갑탄을 1945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보급하는 한편 티거를 맞상대할 목적으로 본격적인 중전차인 M26 퍼싱의 배치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소련군은 개개의 대전차전 성능[34]은 티거보다 밀리지만 약점을 제외한 전면에서 티거의 56구경장 8,8cm 포를 튕겨낼 수 있고 측면도 1km에서 티거의 88mm 포를 튕겨내는데다가 숫자도 많은 IS-2를 투입한데다, 44년 중반 이후에는 SU-100, ISU-152[35] 같은 대구경 자주포들을 대량으로 운영하고 있었다.[36] 게다가 중형전차인 T-34는 43년 늦가을에 개량이 끝나서 44년 1월부터는 주포가 85mm로 강화되어 1km 내에서 티거 전면이 관통 가능한[37] T-34-85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며 티거 2가 등장하는 44년 8월에는 만단위로 찍혀나온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티거가 셔먼과 T-34 몇 대 잡는다 한들 이 정도 전력차이는 수지가 맞을 수가 없고 예전 같이 티타임을 잡고 공격하는 순간 명중률과 화력 둘 다 좋은 90mm, 100mm, 122mm로 그 자리에서 격파가 될 뿐더러 동부전선에는 전면에서 티거의 포를 튕겨내는 중전차가 쏟아지게 된다. 그래서 티거보다 더 강한 전차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고 티거 2가 등장하고 나서 1944년에 티거 생산라인은 폐지되고 티거 2 전차에 올인하게 된다.
중전차는 본래 공세 지향적인 병기다.[38] 수세에 몰린 독일군으로서는 다른 쪽에 무게를 싣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주 생산 공장인 헨셸 공장은 티거 패밀리만 생산했으므로 생산을 중단한다고 해서 다른 전차의 생산량이 늘어날 일이 없었다. 억지로 생산을 줄이고 다른 전차를 생산하려 해도 공통되는 부품이 로드휠만 판터중 일부 기종과 호환가능일 정도로 거의 없는데다가 애초에 요구되는 기술적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장을 다른 전차를 생산할 목적으로 재배치하는 동안 연합군의 물량에 남아있는 전차들이 전멸할 판국이었다. 연합군 공군의 폭격을 생각하지 않은 이상적인 상황에서 이런 지경이다. 만약 생산을 안 했으면 오히려 독일은 공장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남은 전차가 없어서 더 빨리 패배를 맞았을 것이다.
서부전선에서 정면 관통 샷으로 파괴된 티거 2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포탑 전면이 관통당한 티거 2의 사진이 웹상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자세한 관련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긴 하지만 17파운더 대전차포로 APDS탄을 발사할 경우 약 1000미터 거리에서 경사각 20도의 190mm의 균질압연강판을 관통 시킬수 있으므로, 180mm의 두께를 가진 티거 2의 포탑전면도 충분히 관통 가능하긴 하다. 문제는 포탑 전면에서도 포방패에 가려지지 않은 극히 일부의 좁은 공간에 명중률이 좋지 않은 APDS탄을 발사해서 관통한다는 점이지만 퍼싱이나 M36 잭슨 GMC의 90mm 포로도 800m 이내의 거리에서 해당 부위에 명중시키기만 한다면 관통시킬 수 있긴하다. 실제 기록사진으로 남아있는 전장에 방치된 티거 2의 사진 중에선 대전차포나 전차포의 피격에 격파된 사진보다는 승무원이 유기하거나 자폭한 경우 아니면 근접한 보병의 바주카에 당한 사진이 많은 걸 보면 정면에서 관통하기 힘들었다.
7.5. 흑역사
이런 상당한 능력을 가진 중전차였음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인 사건을 당한 적이 있다. 동부전선에서 티거 2 전차 3대가 매복한 T-34-85 단 한 대에 격파당했던 것이다. 1944년 8월 11일. 501 중전차대대가 티거 2를 처음 수령받고 투입하던 중에 저런 참사가 일어났다. 격파의 원인이 아직 해당 전차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탑 측면과 포탑링을 근거리에서 강타 당한 탓에 내부포탄 유폭으로 격파당한 것이라 그 이후로 티거 2의 포탑 측면의 예비탄 보관소를 더이상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휴행탄수가 68발로 줄어들었다. 세무 공무원 출신인 알렉산드르 오스킨 소위 후보생이 이와 같은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39] 다만 이것은 티거 2의 약한 측면 방호력의 영향력도 있는데, 티거와 비교일 경우 전면장갑은 대폭상승 하였으나 측면은 80mm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살짝 경사를 주기는 했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셔먼에게 격파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티거 2의 중장갑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오스킨의 전차가 첫 티거 2 포탑 측면에 지근거리에서 3발을 명중시켰으나 모두 튕겨냈다.서부전선에서의 데뷔전 역시 나름 굴욕적이었는데, 1944년 7월 굿우드 작전 당시 처음으로 연합군 앞에 모습을 드러낸 티거2는 영국군 75mm 셔먼의 충각에 무력화되어버린다. 셔먼이 고지에서 티거 2의 측면을 잡아서 쐈는데 다 튕겨내자 결국 그대로 경사지를 달려내려가 박아버려서 고장내버린 것이다. 전차 차체가 부서진 것은 아니지만 35톤짜리 셔먼이 달려와서 들이박으니 둘 다 망가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정신나간 지시를 내렸던 전차장은 탈출 후 근처에서 전차장이 사망한 파이어플라이를 찾아내서 타고 돌아와서 승무원이 도망간 티거 2를 마무리한다. 다만 당시에는 이 전차를 판터로 오인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진을 보면 티거 2다. #
물론 티거 2 중전차 외에 티거, 판터 전차도 데뷔전이 굴욕이기로 유명했다.[40] 차후에 미친듯이 활약해서 오명을 덮었단 점도 동일하다. 다만 티거 2는 등장 시기가 너무나도 늦었기에 상대적으로 활약할 기회가 형제들에 비해 적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7.6. 맞수들
이렇듯 여러가지로 강한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이 보유한 전차중 티거 2 중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프로토타입들을 제외하면 20여대가 투입된 M26 퍼싱 중전차, 티거 2를 잡기 위해 단 2대가 주포를 장포신 90mm 73 구경장으로 환장하고 전면 추가장갑을 장착하고 투입된 T26E4-1 슈퍼 퍼싱 중전차 정도지만 어디까지나 티거나 판터와 대등, 혹은 이상이었지 티거 2와는 차이가 나는 데다가 그나마도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고 한다. 소련의 경우 ISU-152나 IS-2가 티거2를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격파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지 결코 대등하지는 않았다. 대전차전에 한해서는 티거 2랑 같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다.[41] 1945년부터 본격적인 운용이 들어간 SU-100도 당시 소련이 개발중이었던 차기 주력전차인 T-54 수준의 주포를 장착하고 있었으므로 어떻게 보면 대전차전에 있어선 IS-2나 ISU-152보다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한 방 전투를 할 수 있었지만 SU-100 역시 태생적으로 자주포여서 대등하다고 보기 힘들다.엄밀히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정상적으로 운용된 전차 중 대전차전에서는 동일한 스펙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상 독일군을 제외한 그 어떤 국가의 군대도 티거 2는커녕 티거 체급의 전차조차도 운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게가 늘어나고 덩치가 커질수록 단순한 공방 성능과 승무원 거주성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극단적으로 대전차전에 특화된 초장포신 주포는 122mm 같은 다목적 주포에 비해 대전차전에 유리하다.
티거가 처음 등장한 1942년 말엽에는 서방 연합군의 75mm, 소련군의 76mm 전차포로는 500미터 거리에서도 티거의 전면장갑을 관통시키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티거 2가 등장한 1944년 중반 이후에는 이미 주도권을 연합군이 장악했으며 양 군의 주력전차들 역시도 화력이 개선되어[42] 측후면을 노리면 관통 가능할 정도로 기본 화력도 대폭 상승했기에 넘치는 지원 화력과 수적 우세를 활용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양산되어 투입된 신예 중전차인 M26 퍼싱, IS-2 등 또한 티거 2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양국의 교리 특성상 만날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다. 소련의 IS-2 전차는 대전차전보다는 철저히 적 방어선에 돌파구를 내는 용도에 투입되었고 탄약 적재량이 부족하여 초기 돌파 이후 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 별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또한 이 122mm 주포는 구경은 컸지만 야포 특성 상 관통력이 상당히 부족했던 물건이었다. 판터 수준의 상대적으로 작은 차체에 티거 이상의 화력과 방어력을 쑤셔넣다보니 나오게 된 느린 발사 속도는 덤이다.
퍼싱은 쾰른에서 판터와 대결해 이긴 적이 있고 뒤셀도르프에서 티거와 대결해 이긴 적도 있지만, 티거 2는 조우한 적이 없어서 대결했을 때 어떻게 될지 알 리가 없다. 작정하고 대 킹타 병기로 만든 T26E4 슈퍼 퍼싱의 경우 유일한 교전에서 승리하였다는 증언이 있긴 한데, 교전 자체는 사실이지만 4호 전차나 판터를 티거 2로 착각한 것이거나 아예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것은 M26 퍼싱 문서에서 데사우 조우전 참고.
퍼싱을 티거의 맞수로 내놓았지만 미군 내에서도 체급의 차이와 그에 따른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티거 2와 대등한 70톤급 체급의 T29가 1944년부터 개발에 들어갔으며, T30을 거쳐 T34로 개량되었고 연구가 완료되었으나 전쟁의 종결로 생산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퍼싱은 결국 체급의 한계 때문에 중전차 타이틀을 내주고 중형전차로 강판되었다.
소련군에서 티거 2 중전차를 상대할 전차는 88/71는 물론 128mm도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는 IS-3와 IS-4였는데 실전투입 직전에 독소전쟁이 끝나 버린다.[43] 1946년에는 88/71을 튕겨내는 어이없는 방어력의 30톤급 중형전차인 T-54까지 배치하지만 이미 냉전기라서, 이 신형 전차들의 티거 2보다 우월함은 직접 교전해 보지 않은 만큼 의미 없는 이야기다.
소련의 경우 제련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던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 특히 APCR 같은 특수탄약은 85mm를 초과하는 포에서는 종전 때까지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크고 단단한 텅스텐 탄자를 성형할 기술이 없었던 탓이다. 이것은 사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고 독일도 88mm 이상에서는 하기 어려웠다.[44]
한편 실전 투입하자마자 전쟁이 끝나버려 5년 후를 기약해야 했던 센추리온 Mk 1의 경우는 체급 대비 방어력이 매우 높고 기동성, 공격력 등이 우위라 실제로 맞붙었을 경우 우세를 점했을 확률이 높으며 영국군의 진짜 중전차인 A43 블랙 프린스는 티거 2와의 정면 대결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중전차지만 이 역시 IS-3이나 T-54와 마찬가지 이유로 의미 없는 논쟁일 뿐이다.
이처럼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하며 동부전선 기간 중 제2차 세계 대전 최강의 전차가 된다.[45]
8. 실전
8.1.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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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5월 4일 파더보른-제넬라거에서 티거 2 수령 사열식 중인 독일 국방군 육군 제503중전차대대 |
티거 2 에이스인
카를 쾨르너 SS 원사는 200m 거리에서 IS 전차 2대를 격파하고, 연료보충을 위해 집결해있던 소련 전차부대를 급습하여 11대의 IS 전차와 39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4월 29일까지 쾨르너의 티거 2는 10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와 돌격포, 26문의 대전차포와 다량의 야포를 격파하여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친위대 토텐코프 사단 소속의
카를 브롬만은 1945년 1월 27일부터 종전때까지 동부전선에서 활약하며 2월 18일까지 65대의 전차와 44대의 자주포, 15대의 장갑 차량을 격파하여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친위대 소속 티거 2 3대가 T-34와 M4A2(76)W을 각각 15대, 12대를 격파하고 탈출했다.
헝가리의 한 마을에선 두 대의 티거 2가 T-34와 IS, ISU-152를 포함, 소련군 전차 및 자주포 40여 대를 격파했다.
동프로이센에서 SS의 티거 2 1개 중대[46]가 4대까지 남을 동안 적 전차 78대를 격파한 전적이 있다.
베를린 공방전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두 대의 티거 2는 각각 30여 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렸고 이후 자폭했다. 이중 한 대는 밑에서 언급할 게오르그 디어스 하사이고 다른 한 대는 위에서 언급한
카를 쾨르너이다.
벌지 전투의 국방군의 티거 2 1대는 적 셔먼과 울버린의 포탄 각각 18발과 5발을 얻어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적전차 7대를 격파하고 기지로 무사귀환 했다.
베를린 근교에서 티거와 티거 2 각각 한 대씩 남아있는 상황에서 소련군과 조우하여 장갑척탄병들의 호위 아래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약 3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와 대전차포 10문을 격파했다.
제509 중전차대대는
봄의 새싹 작전 당시 약 20일 동안 손해 10량에 대해서 전차와 돌격포 203량, 야포 145문, 항공기 5기를 격추했다.
헝가리에서 2대의 티거 2가 소련군의 대전차 포망을 뚫고 고지를 점령하여 76mm, 152mm 포대와 IS 중전차와 ISU-152 다수를 격파했다.
SS 501 중전차대대 소속의 티거 2 1대가 벌지 대전투 당시 미군 기갑 부대와 조우하여 셔먼 12대, 울버린, 잭슨 7대와 지휘 장갑차 4대, 대전차포 6문을 격파했다. 미군은 다시 공격에 나서 이 티거 2 1대에 집중포화를 퍼부었으나 다시 전차 5대를 추가로 상실하고 말았다. 이 티거 2의 손실은 궤도 피탄과 조준기 파손이 전부 였다.
1945년 3월 SS 502 중전차대대의 티거 2 3대가 소련군 1개 여단을 맞아 4일 간의 격투를 벌였다. 이틀째에 1대는 연료 부족과 기계 고장으로 승무원이 자폭시켰고 나머지 2대의 경우 마지막 날에 1대는 포신 손상과 승무원 부상, 남은 차량도 연료 부족으로 자폭시켰다. 그 4일 동안 소련군 보병 400여명 이상과 적 전차 50대, 화포 20문을 파괴하고 심지어 항공기 1대를 격추하기까지 했다.
SS 503 중전차대대 소속의 티거 2 4대가 베를린으로 향하는 소련군 사단의 진격을 10일 동안이나 저지하며 자그마치 수백 대의 전차를 격파했다.
바이스 전투단의 티거 2 1대가 IS-2 8대와 자주포 10대를 격파하고 기계 고장으로 자폭했다.
서부전선에서 티거 2 1대가 매복하여 미군의 셔먼 18대를 격파하고 무사히 철수한 경우가 있었다.
1945년 2월 동프로이센에서 티거 2 5대가 T-34 40대, IS-2 12대, 돌격포 14대와 야포 30문을 격파하고 2대가 연료 부족으로 자폭했다.
볼러스도르프에서 스트라스부르크로 가는 길에서 11대 이상의
IS 전차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장자리에 적 전차 120~150여대의 전차가 보급과 급유를 하고 있었다. 나는 포격을 지시하여 IS 전차 전부를 격파하였으며 아군과 연합하여 마을에서 적을 격퇴하였다. 이번 전투에서 난 39대의 전차를 격파하였다.
- 카를 쾨르너 원사, SS 503 중전차대대, 1945년 4월 독일 동부에서
- 카를 쾨르너 원사, SS 503 중전차대대, 1945년 4월 독일 동부에서
507 중전차대대의 티거 2 3대가 셔먼 20대와 M10 울버린 10대를 격파했다. 적 항공기의 공습으로 1대가 전소되고 나머지 2대도 피해를 입었으나 전투는 가능했고 다시 격전을 치러 다시 기갑차량 15대를 추가로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쿠르트 크니스펠의 티거 2는 최후의 전투 당시 격파될 때까지 1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를 격파했으며 100여 발이 넘는 포탄을 뒤집어 썼으나 무사했다.
8.1.1. 베를린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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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전투 당시 격파된 무장친위대 산하 제 502 중전차대대 소속 티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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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전투 당시의 무장친위대 소속 티거 2 |
디어스 하사가 직접 쓴 회고록에 의하면, SS 503 중전차대대의 티거 2 6대는 4월 말에 제11 무장 SS 기갑척탄병 사단에 배속되었고, 4월 30일에 이르러서는 단지 두 대의 쾨니히스티거만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디어스 본인의 차량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전날 전투에서 100대가 넘는 소련 전차와 29대 이상의 기타 기갑 차량을 격파한 카를 쾨르너의 차량이었다. 디어스는 5월 1일에 성공적인 반격을 가하여 크롤 오페라하우스를 일시적으로 재점령했으나 당일 저녁 7시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디어스는 최소 39대의 소련 전차 격파 전과를 공인받았으며, 베를린 방어전 최후의 날 며칠 동안 격파한 소련군 전차와 기갑차량의 수는 정확한 추산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당시 방어전 상황에서 티거는 비록 열악한 상황이라지만 전투에는 충분한 지원을 받고 시가전의 특성을 이용해 은엄폐를 잘 하면서 공격해 오는 소련군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구조였는데, 그 덕분에 엄청난 피해를 강요할 수 있었다.
소련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동안 그는 제국의사당 내에 다수의 소련 보병과 전차가 침입하여 전투를 벌이는 것을 목격하였다.[47] 결국 디어스 하사와 승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티거 2를 쇤하우저 알레(Schönhauser Allee) 근처에서 지뢰를 이용하여 자폭시켰다. 하지만 그는 전범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전과 인정은 받지 못했다. 이 티거2는 당시에도 꽤나 유명했는지 베를린을 함락시킨 소련군 장병들이 파괴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나 심지어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것이 남아있다.
베를린 전투가 종료된 직후 펼쳐진 엘베 강 도하작전에서 소련군은 베를린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피난민과 9군 패잔병들을 추격했다. 독일군은 소련군 포로와 민간인들을 다수 학살하는 등 자신들이 동부전선에서 저지른 숱한 전쟁범죄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 했고, 이에 항복하지 않고 베를린에서 생존한 마지막 티거 2 5대가 엘베 강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섰다. 결국 모두 파괴되긴 했지만 소련군은 피난민과 패잔병의 대부분을 붙잡는 데 실패했으며, 이들은 서부전선으로 넘어가 미군에 항복할 수 있었다. 그 뒤에야 독일은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9. 운용국
9.1. 유럽
9.1.1. 나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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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터 전차 박물관 소장 티거 2 121호차 |
9.1.2.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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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턴 전차 박물관 소장 티거 2(Fgst. Nr.V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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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턴 전차 박물관 소장 티거 2 104호차 |
프로토타입 티거 2는 영국군이 전후에 하우스텐벡에 위치한 헨셀사의 테스트장에서 입수한 물건으로, 테스트용으로만 쓰인 프로토타입이다. 자세히 보면 양안식 조준경을 탑재한 것을 볼 수 있다.[48] 이 티거 2는 전 세계에 전시 중인 모든 티거 2 가운데 유일하게 보존된 포르셰 포탑 장착형 티거 2다. 포르셰 포탑형 티거는 극초기 생산분이기에 모두 예외없이 치메리트 코팅이 적용되었는데 저 전차는 테스트용 전차였기에 치메리트 코팅을 하지 않았다. 또한 최후기형 V-6 트랙과 스프로켓휠 등 보존가치가 높다. 동부전선에는 초기형이 투입되지 않았기에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도 없으며 상태가 좋다. 현재 이 차량은 2023년 3월까지 스웨덴의 아르세날렌 전차 박물관에서, 스웨덴에서의 전시 종료 이후에는 핀란드의 파롤라 전차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104번 티거 2 전차는 무장친위대 101 중전차대대가 운용하였던 차량을 1944년에 영국군이 노획한 것이다. 한동안 영국 Royal Military College of Science에 전시되었었던 차량이며 한때 주행 가능하게 복원할 계획이 있었고 자금까지 확보했었으나 엔진과 기어박스가 매각 처리되는 통에 재생되지 못한 차량이다.
9.1.3.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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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공원 소장 6호 지휘전차 B형 502호차, "코로보노프 대대장님께 영광을!" |
9.1.4.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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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중인 스위스 군사 박물관의 티거 2[49] |
9.1.5.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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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를 받기 전의 티거 2 S2호차 |
이후 결국 1947년 8월, 프랑스의 작은 마을 기엥에서 거의 온전하게 유지된 316 원격조종전차중대의 티거 2가 발견되었다. 해당 중대는 무인전차를 사용하는 중대로, 공병폭파작업용 무인전차의 조종은 중전차가 맡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단 발견된 것은 1대로 506중전차대대 1전차중대의 12호차가 발견되었다. 극초기형[51]이자 노르망디 상륙 후 버려진 이 티거는 곧 스웨덴으로 보내졌다.
1947년 11월 27일 스톡홀롬 항구에 도착한 티거 2는 수리와 함께 테스트가 진행 되었는데, 이 티거를 시험 사격장으로 옮겨 놓는 데만 해도 무포탑 M4A4 1대, HET 차량인 M26 드래곤 웨건 1대, 트랭빌드래그웨겐 m/46 트럭 1대, 연료트럭 1대, 승용차 2대에 오토바이 4대라는 총길이 60m에 이르는 대행렬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시험과 시험을 거듭하면서 걸었던 기대감은 차츰 실망감으로 변해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너무나도 잦은 잔고장과 끔찍한 연비였다. 거기다 차고나 격납고 같은 밀폐된 곳도 아닌 야지에 몇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니 없던 고장도 속출할 지경이었던 것. 게다가 이 거대한 행렬은 움직이는 데만도 너무나도 많은 예산을 잡아먹었기에, 1950년까지 테스트용으로 몇번 사용하고 1951년에 스크랩 처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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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날렌 전차 박물관 소장 기어박스&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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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날렌 전차 박물관이 대여 받은 티거 II 2번째 프로토타입 |
9.2. 아메리카
9.2.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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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기갑 & 기병 박물관 소장 티거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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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제129병기대대의 노획 티거 2[53] |
10. 전쟁 이후 생존 차량
영국 | 보빙턴 전차 박물관 |
프로토타입[54] 티거 104호차 |
프랑스 | Musée des Blindés | 233호차/300호차 |
벨기에 | December 44 박물관 | 213호차 |
러시아 | 애국 공원 | 002호차, 502호차 |
독일 | 문스터 전차 박물관 | 121호차 |
미국 | 미 육군 기갑 & 기병 박물관 | 332호차[55] |
스위스 | 스위스 군사 박물관 (복원 중) https://youtu.be/muLGVhLGC0M | 341호차 |
벨기에의 경우 아르덴 대공세 당시 무장친위대 제 6 기갑군의 주요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501 SS 중전차대대의 상당수 티거 2들이 유기되거나 자폭처리 되었다. 스타벨롯과 라 글레즈(La Gleize)가 주요 격전지였던 데다가 위의 213호차 차량도 라 글레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포신이 부러진 걸 복원시킨 것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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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뮤아 기갑박물관 소장 티거 2 233호차 |
11.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티거 2/미디어 문서 참고하십시오.12. 모형
유명한 전차인 만큼 여러 모형사에서 모형화 했다. 인기있는 만큼 당연히 엄청난 양이 생산되었다.12.1. 프라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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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과학
최후기형을 재현했으며 일부 오류[57]와 부품이 600개에 달할 정도의 회치기를 제외하면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듣는다. 회치기한 부품들을 보면 파생형을 생각했던것 같지만 후기형 하나만 나온 걸 보면 판매량이 시원찮았던 듯.
토션바까지 재현되어 있으며 가공만 조금 해주면 가동식 서스펜션이 된다.[58] 단, 수송형 궤도를 장착하였으므로 널찍한 궤도를 좋아한다면 교체를 추천. 511 중전차 대대의 경우 대전말에는 수송형 궤도를 장착하고 전투를 했기 때문에 고증오류는 아니다. 스프로켓 톱니가 18개인 녀석이 들어있어 후기형 궤도가 아닌 일반적인 궤도를 사용하려면 별도의 가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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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모델
4호 전차, 티거보다 수는 적지만 드래곤 아니랄까봐 오랜 세월을 결정판으로 군림했다. 드래곤이 중국의 군소 메이커에서 메이저 메이커로 급부상하던 시기에 발매된 키트라 당시에는 구성품도 풍부했고, 타미야 외에는 별다른 답이 없던 티거 2에 혜성 같은 존재였다.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둘 다 있고 각종 형식, 수송용 궤도 버전 등을 다양하게 재현했다. 그리고 보병 피규어와 메탈포신, 황동포탄 등을 끼워넣어준 아르덴 대공세판은 결정판으로 인정받는다. 또한 하비보스와 더불어 포르셰의 시제품인 VK 45.02(P) 전방/후방 포탑형도 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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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야 모형
1/35: 포르셰 포탑, 헨셸 포탑, 헨셸 포탑 아르덴 대공세판 3가지를 발매하였으며, 그 시절 타미야답게 디테일과 형상은 크게 밀려도 여전히 조립성만큼은 최고. 자사 메이커에서 별매궤도를 발매하였으므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아르덴 대공세판은 바이크가 들어있다.
1/48: 타미야 1/48 스케일 시리즈의 퀄리티에 걸맞게 품질도 좋고 쉽게 즐길수 있으며 가격도 적절하다. 포르셰, 헨셀 포탑형 둘 다 발매되어 있으므로, 1/35 스케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면 이쪽도 좋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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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페터
1/16 빅스케일로 재현하였으며 내부재현과 포탑형식 선택 등 말 그대로 호화판. 이러면서 가격은 30만원대에 불과하다! 또한 월드 오브 탱크에서 나온 105mm 장착형을 1/72로 발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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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보스
포르셰의 시제품인 VK.45.02(P) 전방/후방 포탑형을 먼저 발매한 특이한 케이스. 연결식 궤도를 넣었으며 트럼페터의 1/16 스케일의 포탑을 그대로 축소하여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단 그다지 좋지 못한 조립성과 장난감스러운 차체 디테일이 흠이다.
본격적인 킹 타이거 키트는 신규 출시로 포르쉐 포탑, 헨셸 포탑 3종류(1944년형, 1945년 2월, 45년 7월형)로 총 4가지의 제품을 출시하였다, 포르쉐 포탑은 원피스/투피스 두 종류의 포신이 포함되어 있다. 포르쉐 포탑 티거 2 와 1944년 헨셸 티거 2는 찌메리트 코팅지가 포함되어 있고, 45년 7월형 헨셸 티거 2는 레진 방수포와 메탈 포신이 포함되어 있다. 찌메리트 시트는 몰드로 새겨진 얇은 프라판을 접착하는 방식인데 접착성이 나쁘지는 않으나 찌메리트 몰드가 인위적이고 양면에 모두 새겨져 있어 접착면이 평평하지 않아 곡선을 작업시는 주의를 요함. 자사 옵션 별매품으로 메탈 포신이 판매되고 있으며, 포탑에 고정핀이 없고 드래곤 스마트킷처럼 그냥 차체에 올려두는 방식이다. 또한 소소한 차이로, 1945/7월형 티거 2는 엔진룸 덮개가 다른 킹 타이거와는 다르며 후방장갑 배기구에는 대형 견인용 고리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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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베즈다
판터 D형, 티거 등 독일군 아이템을 의욕적으로 내놓고 있는데, 드래곤 구 금형을 인수하여 헨셸 포탑과 포르셰 포탑을 발매하였다. 기본적인 연결식 궤도가 뻑뻑하게 연결되므로 궤도 연결시 주의하고 에칭 대신 타미야처럼 나일론 메쉬를 넣어주므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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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G Model
현용위주, 일부 1차대전 아이템만 내던 Meng Model이 2015년 말에 티거 2 발매를 예고하였으며 초회한정으로 메탈포신이 들어간다. 내부재현은 별매. 항상 넣어주던 연결식 트랙대신 세미연결식 트랙으로 넣어준다. 가격이 멩치곤 싸게 책정되었지만 별매인 연결식 트랙을 같이 구매한다면 일반적인 멩의 가격이 된다. 지적되는 문제점은 차체 동축기관총 볼마운트가 실차보다 크고 넓직하게 나온 것과 포방패의 형상, 일부 부품의 묘사왜곡 등이 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곤 상당히 쓸만한 키트라는 것이 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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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om
2016년 6월 초에 뜬금없이 런너샷을 공개했는데, 몇몇 해외 유저들은 차체 뒷면 형상을 보고 판터를 예상했었으나, 며칠 뒤 다시 올라온 게시물을 통해 티거 2임이 공개되었다. 게다가 내부 재현형. 두 메이커의 관계를 볼 때, 멩모델의 티거 2를 누를 생각으로 발매하는 것 같은데 과연 실제 뚜껑을 따보면 품질은 어떨지 지켜 볼 일. 타콤도 아이템 선정이나 전반적인 퀄리티는 괜찮으나 한두 군데씩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타콤의 경우는 런너샷도 이미 공개된 상태라 발매가 예상보다 더 빨랐다. 출시 후엔, 적어도 내부재현 모델을 완성해 본 사람들에게선 매우 실망스러운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내부재현을 한 상태에서는 조립이 똑바로 안 된다는 골때리는 결함이 나왔기 때문이다. 리뷰를 절대 러너샷만 보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오죽하면 타콤 킹타 내부 재현 모델을 뚜껑 씌워서 완성한 작례는 매우 드물며, 타콤 공식 페이스북에서도 부분조립된 사진을 작례로 내놓고 있다. 또한 도료업체 mig의 도료를 패키지로 내놓은 한정판을 내놓았는데 최후기형 포탑+트랙 또는 IF 버전으로 1945년 7월 생산예정분으로 조립이 가능하다. 매상이 괜찮았는지 일반판으로 재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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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M
후기형과 내부재현형을 발매했다. 드래곤의 것을 참고하여 기본적인 프로포션은 나쁘지 않으나, 사이드 스커트가 차체와 함께 일체로 사출된(...) 것과 상당한 수축이 있으며 주포 역시 포방패와 함께 반타작이 된 상태이다. 현재 레벨, 하세가와에서 재포장하여 발매중이므로 참고할 것.[59] 구매시 레벨 재포장판이 원판보다 저렴하다.
12.2. 브릭
}}} ||2017년에 발매된 구버전 킹 타이거 |
2020년에 발매된 신버전 쾨니히스티거[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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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2023년 1월에 킹 타이거를 출시했다. 구조는 이전에 발매했던 판터를 대형화 시킨 듯한 느낌. 포탑과 포신이 좀 부실한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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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차 | 차륜장갑차 | M8 그레이하운드C/R, U-SH, Tgb m/42R, Patgb 180S · 202 · 203S, Patgb 360, Tgb 16, 피라냐 IIIC, { Patgb 300} | ||||
궤도장갑차 | M113X/R, Strf 90(B/C), Pbv 302R, Bv 308/309, Bv 206, BvS 10, Bv 202R, Pbv 301R, Pbv 401· 4020, Pbv 501R, Pvrbv 551R | |||||
차량 | 소형 | Ptgb 5, Tgb 11 · 13 · 21, CUCV, 볼보 TP 21R · L3304R, 샌드캣 | ||||
트럭 | 볼보 FMX · TL31R, 스카니아 4시리즈 · SBA111R, Pltgb 903R, Tgb m/1941R | |||||
자주포 | 자주곡사포 | Bkan 1(A/C)R, 아처 | ||||
자주박격포 | Grkpbv 90 묠니르 | |||||
돌격포 | Sav m/43R | Spj fm/43(43, 43-44)P | Stug III Ausf.(D/G)X | |||||
자주보병포 | Ikv 72R | Ikv 73R | Ikv 102R | Ikv 103R | Ikv 91S/R | |||||
대전차 자주포 | Pvkv m/43R | Pvkv IIP | Pvkv IIIP | Pvkv IVP | Pz.Jg 38(t)X | 마르더 IIX | |||||
대공 차량 | 자주대공포 | Lvkv m/42P | Lvkv fm/43R | VEAK 40P | Lvkv 9040 | ||||
단거리 대공 미사일 | Tgb 21, Lvrbv 701R, Lvrpbv 4016R, EldE 98 | |||||
지원 차량 | 구난차량 | Bgbv 120 | ||||
전투공병차량 | ingbv 120 | |||||
교량차량 | M3, BroBv 120 | |||||
※ 윗첨자R: 퇴역 차량 ※ 윗첨자S: 비축 차량 ※ 윗첨자X: 테스트용으로만 도입(외제) ※ 윗첨자P: 프로토타입(자체 개발) ※ ※ 윗첨자C: 노획 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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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앞으로 돌출된 흙받이의 길이까지 포함한 것.
[2]
'T-34 쇼크'라고 칭해진다.
[3]
독일은 전쟁 초기부터 30톤급 돌진/돌파용 중전차인 VK 30.01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 중반을 지나면서 30톤급으로는 수뇌부가 바라는 충분한 중장갑과 고화력 실현이 불가능했고, 이를 개량하여 VK 36.01이란 이름의 36톤급 전차를 계획하나, 88mm 주포의 설치가 불가능하여 다시 중량을 45톤으로 끌어올리고 88mm급 주포를 설치할 수 있는 VK 45.01 계획을 발주, 이후 티거로 이어졌다. 서술하였듯 티거는 대전 초기의 설계안들로부터 이어진 계획이었으며 T-34 쇼크 이후 기존의 설계안을 좀 더 강화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4]
그에 앞서 헨셸 사는 VK 45.02(H)를 티거 2로서 제시했지만 티거 1을 약간 개량만 한 수준의 차량이었기 때문에 탈락(사실 말이 좋아 개량이지 큰 개량점이라곤 티거의 주포만 71구경장 88mm포로 교환한 형식이었다)되었고 헨셸이 나중에 꺼내서 써먹기 위해 고이 간직해 두고 있던 VK 45.02(H)의 후속 프로젝트 VK 45.03(H)를 다시 제시하여 마침내 선정되었다.
[5]
전기모터 과열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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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독일의 상황이 심했는가 하면 4호 전차의 최후기형인 J형은 포탑 구동용 모터를 없애 버려 포탑을 일일이 손으로 돌려야 했다.
[7]
그러나 포르셰 티거 2를 위해 개발된 현가장치는
야크트티거의 초기형으로 이어져서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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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헨셸 포탑으로 불리는 그것으로, 이 포탑 또한 크룹 사가 설계/제조했다.
[9]
정작 독일인들조차 쾨니히스티거라고 부르는 경우가 티거 2라고 부르는 경우보다 더 흔하다. 독일의 정식 밀리터리 잡지에서조차 쾨니히스티거라고 쓰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
[10]
티거 II의 프로젝트명. 티거의 프로젝트명은 VK 45.01(H)이였지만 VK 45.02(H)는 티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지 않아 퇴짜를 먹어버려 본래 VK 45.02(H)가 맡기로 계획했던 티거의 후속 중전차는 VK 45.03(H)가 맡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티거 II가 되었다.
[11]
월드오브탱크의 VK 45.02 B의 최종 포탑으로 게임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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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썬더에서의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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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cm FlaK 기반이라고 추측되나 자세한건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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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포미로 인해 실내가 좁아졌고, 포탄 길이와 무게도 늘어남에 따라 장전이 힘들어져서 분리장약식 탄을 쓰는게 아니면 운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졌다. 분리장약식 포탄 사용시 포탑 내에 포탄 20발을 적재할 수는 있었지만 장전 시간이 길어지기에 연사력 증가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15]
사실 구경만 클 뿐 122mm 포는 48구경장으로 88/71에 비해 많이 짧고 대전차전을 주 목적으로 삼은 포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관통력이 낮다.
[16]
동부전선에서
152mm 곡사포에 맞고 장갑이 깨져 버린 경우가 있긴 하다. 운 좋은 영국군의 OQF 17파운더 대전차포의
분리철갑탄이 절묘한 약점에 명중해서 포탑 정면이 뚫린 적도 한 번 있었다.
[17]
당장
K-2 흑표가 한번 생산할 때 200대니 300대니 운운하고 있고,
독일 연방군의
레오파르트 2는 아예 현역이 200~300대선이다.(물론 냉전때는 2천대에 육박했다.) 미군이 운용중인
M1 에이브람스도 수출량 포함해야 8~9000대이다.
[18]
대부분의 전략적 요충지와 인구밀집지역이 빌딩과 아파트, 주택으로 도배된 현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시가전에서 적들을 상대하는 첨단무기로 무장한 보병들이며, 또한 제공권을 장악하여 3차원의 위치에서 2차원을 지원하는 글자 그대로 차원이 다른 무기인 전투기와 전폭기가 매우 중요하다. 2차대전기의 프롭기들과 달리 현대의 제트전투기는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날아와서 때리고 사라진다. 즉 제공권이 곧 전쟁의 우세권 그 자체가 된 시대라는 것. 감히 땅바닥에 붙어다니는 쇳덩이에 불과한 전차 따위가 초음속으로 움직이면서 수십 킬로미터 밖에
벙커 하나는 날려버릴 화력을 투사하며 3차원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현대전투기에 대적할 방도는 없다.
[19]
뿐만 아니라 제작비와 전투수행 능력 등을 비교한다면, 현대의 전차는 당시 전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당장 K-2 흑표처럼 3.5세대 전차 5대를 보급과 정비, 승무원 피로의 제약 없이 2차대전기 전장에 던져놓는다면 만 단위의 적 전차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현대 전차의 수준은 2차대전기보다 압도적이다. 움직이면서 사격이 가능하고, 각종 전자장비를 사용해 당시 전차와는 비교가 안 되는 현란한 기동을 펼칠 수 있으며, 장치 하나만 켜 놓으면 주변에 얼쩡거리는 적 전차는 사람이 조종을 안 해도 알아서 포를 갖다 대는 기능까지 갖춘 전차들이며, 대전차포의 위력이 올라간 만큼 현대전차들의 방어력 역시 올라갔다.
[20]
물론 전차 승무원들이 매우 유능하고 엔진계통에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고 전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위와 같은 학살극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어찌됐건 셔먼이나 T-34나 초근접해서 측면을 맞추지 않는 한 티거2를 격파할 수 없었던 반면, 정면에 88mm 포를 맞으면 바로 격파됐고, 소련의 중전차 역시 공격력과 방어력 면에서는 티거 2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까지나 이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21]
당시 연합군의 공격기 무장은 전차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관통력이 약하거나 아니면 명중률이 낮았다.
참조
[22]
다만, 소련은 이 문제를
PTAB-2.5-1.5를
많이 만들어 들이부어 버리는 것으로 해결봤다. 얼마나 들이부었냐면,
Il-2는 저걸 1기당 192~280발씩 달고다녔고, 전투폭격기인
Yak-9B와 같은 Yak제 전투기 B형들도 수십 발씩 달고다녔다. 이 덕분에 토텐코프의 경우 쿠르스크에서 소련 공군의 PTAB 스팸질에 제대로 걸려들어 그날 하루만에 차량 및 기갑차량이 대부분 날아가는 당시로선 전례없을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참고로 피해 규모에서 알수있듯,
Il-2 소행이다. 단 두 기에게 저런 피해를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23]
티거 후기형은 56톤이며 약 700마력의
마이바흐 HL230을 장착했다.
[24]
티거 2의 엔진과 변속기가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퍼지게 된 것은 독일의 설계에 문제가 있는 탓이지만, 당시 기술로는 고출력 가솔린 엔진의 신뢰성이 터무니없이 낮아 자주 정비를 해줘야 했다. 영국이 티거 2와 비슷한 중량을 가지면서 더 좋은 설계로 제작한
FV214 컨커러조차도 낮은 연비와 신뢰성으로 정비 소요가 많았다.
[25]
판터와 마찬가지로 티거 2도 상대적으로 소구경에 매우 긴 장포신 주포로 관통력을 극대화했는데 이런 장포신 주포는 사정거리와 관통력에 큰 이점을 주지만 화력 자체의 상승은 구경을 키우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제한적이며 긴 포를 휘두를 공간이 없는 시가전에서는 매우 불리해진다. 독일군의 보고서에도 판터의 75/70 및 88/71 같은 장포신 주포가 시가전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26]
알베르트 슈페어는 회고록에서 1944년 2월에 히틀러에게 현재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면
크로뮴이 고작 6달치,
텅스텐과
니켈은 10달치,
몰리브데넘과
실리콘은 각각 8달, 6달치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고 회상한다. 크로뮴과 니켈이 없으면 항공기에 필요한 구조 재료를 생산할 수 없게 되고, 니켈이나 몰리브데넘이 없으면 정상적인
균질압연장갑의 생산은 끝난다. 히틀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다른 부하와 신형 전차 얘기를 하러 갔다고 한다.
[27]
일단 장갑재에는 몰리브데넘을 대신해서
바나듐을 넣기로 했다. 바나듐강은 석출 경화를 통해 일반적인 강철보다 강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바나듐을 넣기로 한 선택은 맞는데, 연합군의 전략 폭격에 방해를 받아보니 열처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실제로는 그냥 강철과 별반 다를 게 없어졌다. 그래서 티거 1 때는 약 280 BHN을 유지하던 장갑재의 경도가 티거 2의 후기형으로 가면 260 BHN, 심할 때는 220 BHN까지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장갑재의 경도가 낮아지면 경도가 더 높은 철갑탄이 더 손쉽게 장갑을 관통하므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실질 방어력 저하로 이어진다.
[28]
하지만 152mm(서구권 기준 155mm) 야포의 고폭탄이라면 현대 3세대 전차도 기능고장 확정이다. 즉 어차피 전차로써의 생명은 끝난건 똑같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포탄이 정면장갑을 뚫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
[29]
4호 전차는 시작이 10톤대 전차이다. 시작부터 30톤대인 셔먼과 T34에 비해 개량한계점이 명백하고 빨리 찾아올 수밖에 없다.
[30]
단, 연합군에서 판터의 체급이면 그냥 중전차다. 판터와
IS-2의 체급은 비슷하며
퍼싱은 오히려 판터보다 약간 가볍다.
[31]
완전히 주력 대전차포가 된 것은 1944년 중반이다.
[32]
물론 43년 초에 각종 자주포들(특히
SU-152)이 등장하여 본업을 제쳐놓고 대전차전에 투입되면 티거를 상대할 수는 있었고 43년 중반이 넘어가면 대전차전에 특화된
SU-85가 등장하며, 연말이 되면 끝판왕인
ISU-152까지 나온다. 44년 1월부터는
T-34-85가 대량생산되기 시작한다. 초기형 IS-2를 넣지 않아도 생각보다 티거를 상대할 만한 차량은 꽤 있었다. 다만 대전차전에 T-34와 SU-85를 우선해서 집어넣는 교리 탓에 전차 교환비가 나빴다.
[33]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44년 6월이다. 76mm 셔먼은 44년 1월부터 생산되긴 하였으나 한참 75mm 셔먼이 주력이었다. 44년부터 76mm로 교체하기 시작한건 맞지만 사실상 76mm는 뒤의 고철 보급과 합쳐서 거의 45년으로 봐야한다.
[34]
적 기갑을 격파 하려고 중전차를 만든 독일과 달리 소련의 중전차인
보로실로프 전차나
스탈린 전차는 대전차전보다 전선 돌파력에 더 중점이 맞춰져 있다. 대전차전 성능은 독일의 중전차가 우세하지만 애초부터 지향점이 다르다.
[35]
심지어 44년 중반 이후라면 ISU-152가 양산되기 시작한 지 거의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이다. 44년 중반기준으로 SU-100은 막 개발된 상황이나 T-34 차체는 구하기도 쉽고 생산 설비도 기존에 T-34 차체를 사용하고 있던 자주포인
SU-122와
SU-85용 설비를 전용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니 단기간에 쏟아내는데 문제가 없었다.
[36]
대전차전은 기본적으로 IS-2나 ISU-152가 아닌 T-34와 SU-85/100이 담당한다. 애초에 SU-152와 ISU-152는 152mm ML20S 곡사포의 화력을 인정받아 필요할 때 대전차전에 운용 된 거지 처음 부터 대전차 자주포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ISU-152를 대전차 자주포나 구축전차로 보는 시각은 '기갑 차량의 성능 = 대전차전 능력'인 독일 기준의 생각에서 나오는 오류다. SU-85와 SU-100을 제외한 소련군은 자주포는 모두 다목적으로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고 대전차 자주포 롤은 어쩌다보니 할 수 있어서 하는 역할이다.
[37]
물론 개량된 텅스텐탄이 필요했다. 다만 76mm 시절엔 불가능하던게 가능해졌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38]
독일군 티거의 연료 탑재량이 덩치에 비해 적어 항속 능력이 부족한 것이나 소련 스탈린 시리즈의 시궁창스러운 휴행 탄수량도 이것에 기인한다. 중전차들이 적의 방어선을 돌파해 개척한 진격로를 통해 아군의 중형전차와 보병들이 밀려들어가 적의 잔존 방어병력을 소탕하고 나면 해당 전역은 아군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므로 긴 항속거리가 필요치 않고(티거), 중전차의 역할은 적 방어세력의 공격을 강력한 장갑 방어력으로 버텨내면서. 코앞까지 밀고 들어가 강력한 화력으로 방어진지를 깨부수는 데 있으며 일단 방어진을 깨부수고 나면 후속 파(波)에게 길을 비켜줘야 하기에 강력한 화력과 두꺼운 장갑은 중요하지만 빠른 연사력과 많은 휴행 탄수는 비교적 중요하지 않았다(IS-2). 양국의 관점에서 특징이 달라질 뿐인 것으로, 근본적으로 중전차의 역할은 공세 지향적 병기라는 출발점은 같다.
[39]
링크1
링크2.
[40]
티거는 4대가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투입되었는데 전부 기동불능 상태가 되었고, 세 대는 가까스로 회수했으나 한 대가 소련에게 노획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판터는 성채 작전에 투입되었으나 비전투손실과 소련군의 반격으로 이틀만에 154대를 날려먹었다.
[41]
1944년 8월이면 ISU-152가 나온지 1년이 지난 상황에서 원래 적혀있던
SU-152는 이미 한참된 구형이며 ISU-152는 애초에 자주포다. 또 IS-2는 판터급 체급으로 급수부터 다르다.
[42]
T-34의 경우는 85mm 장착형이 대거 등장한 이후였고 셔먼의 경우는 비록 아직 75mm가 주력이었으나 대전차전 용도의 76mm 장착형이 44년 1월부터 생산되고 있었다. 이들 주력전차의 화력 상승으로 인해 티거 전차는 대전 말기로 갈수록 힘들어졌고 티거 2가 빛을 발하게 된다.
[43]
IS-3은
만주 전략 공세 작전에 실험삼아 출동만 한 수준이라 사실 교전 자체는 2차대전 내내 하지도 못했다.
[44]
월드 오브 탱크 같은 게임에 나오는 12.8cm APCR 같은 것은 고증 제원으로 나오면 냉전 시기 개량 사항이 적용된 8티어급 전차들에게도 격파 당하는 마우스 전차나 E-100 전차 같은 나치 독일제 전차들을 억지로 10 티어로 넣기 위한 창작일 뿐이고 사실은 APCR을 사용가능한 88mm 71구경장 포가 나치 독일제 전차포 중 가장 관통력이 높은 포다.
[45]
티거 2와 동급 이상의 방어력을 티거 2의 절반 무게에서 생산해내어 제2차 세계 대전 기준으로는 우수한 제원을 가진 중형전차인 T-54 전차가 실전배치되기 직전에 독소전쟁이 끝나버렸고 압도적인 방어력을 가진 IS-3 전차가 그나마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만주에 잠깐 투입이 되었을 뿐이였다.
[46]
당시에는 8대로 1개 중전차 중대는 14대다.
[47]
이 전투에 투입된 독일군은 의외로 1개 소대의 SS 친위대에 불과했는데, 전범재판에 회부되기 싫었던 그들은 전멸을 택했다.
[48]
프로토타입은 양안식 조준경을 채용했으나 양산형은 대부분 단안식 조준기를 채택했다. 물론 포르셰 포탑에 한정한 이야기인데다 50기밖에 생산되지 않았기에 별 의미는 없고, 사실상 포르셰 포탑을 탑재한 전부가 극초기형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49]
차량 번호 280215.
[50]
당시 종전 후 스웨덴은 대 기갑 부대를 운용하기 힘든 상황이였기 때문에 소수 정예를 지향 했는데, '소수의 전차로 다수의 전차를 상대한다'는 컨셉의 중전차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이에 걸맞은 전차인 티거 2를 수입, 국산화를 시도하려고 한 것이다.
[51]
포르셰 포탑을 장착했다.
[52]
차량 번호 280243, 1944년 9월에 생산되었으며, 1944년 12월 24일 미군에 노획되었다.
[53]
1944년 12월 15일 독일 Gereonsweiler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해당 단차는 506중전차대대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다.
[54]
파롤라 전차 박물관에 대여.
[55]
내부를 볼수 있게 한쪽면이 절개 되어 있다
[56]
부러진 포신은 판터의
7,5cm KwK 42 포신으로 대체했다 한다. 추가로 미 육군 기갑 & 기병 박물관의 332호 차량도 스타벨롯 인근에서 유기된 것이다.
[57]
스프로킷의 형식 오류와 빈약한 용접선 묘사와 몰드 등.
[58]
토션바 부품에서 'ㄱ'자로 꺾이는 부분에서 차체와 걸리게 설계되어있으므로 그쪽 부분을 깎으면 되지만 골때리는 것은 바퀴와 서스펜션이 안맞는다. 따라서 토션바 부품 모두를 조금씩 깎거나 송곳으로 바퀴를 뚫으면 들어가니 참고. 키트에는 세미커넥팅식 트랙이 들어있어서 가동식 트랙을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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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마츠모토 레이지의 단편작 "The Cockfit"의 에피소드인 Tiger of Rhine, 아르덴 대공세 판,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흑기사 이야기 판. 레벨: 킹 타이거 외부재현, 내부재현 재포장.
[60]
판매가격은 500달러. 현재 단종되어서 디지털 인스트럭션을 구매해야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