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군은 1930년대까지 가지고 있는 기갑전력이라고 해봐야
르노 FT 5대와 시험용으로 극소수를 들여온
유니버설 캐리어가 전부였다. 이에 스위스는 신형 전차 도입과 관련해서 스웨덴과 교류하게 되었는데[6] 스웨덴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때 스웨덴 대표단은 체코와 논의해 볼 것을 제안했고, 이에 체코의 LTL-H[7]의 테스트에 들어간다.
당시로서는 최신 전차중 하나였던 LTL-H는 관계자들을 만족시켰고, 1937년, 스위스 연방 의회는 체코슬로바키아의 LTH 전차들을 구매하기로 결정한다. 1938년 1대가 시험용으로 스위스로 넘어갔고, 1939년에 11대가 보내진다.[8] 후에 12대의 차량이 스위스의 자우러 등의 회사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고, 스위스는 이 전차들에 24mm Pzw Kan 38 기관포를 다는 개조를 해 판처바겐 39란 이름으로 사용한다.
판처 39에는 특이하게도 24mm Pz Kan 38 기관포가 장착되었다. 스위스가 이 전차에 기관포를 장착한 이유는 간단한데, 스위스 산지에 올라올 만한 기갑차량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다. 군은 스위스의 고산지대에 올라올 만한 차량은 끽해야 경전차, 하프트랙, 차륜형 장갑차일 것이라고 예상했고, 처음에는 20mm 오리콘 기관포의 장착을 고려했다. 하지만 20mm 기관포의 한계점은 명확했고, 더 나은 탄속과 관통력을 가진 24mm 기관포로 변경하였다.
이 기관포는 기본적으로 6발들이 탄창을 사용했는데, 고폭탄용 탄창은 철갑탄용 6발들이 탄창과 쉽게 구별할 수 있게 5발들이 탄창을 사용했다.
기관총은 차체에 Pzw Mg 38과 포탑에 LMG 25를 장착했는데, Pzw Mg 38은 수랭식이었기에 분당 1,200발의 속도로 사격이 가능했다.[9] LMG 25는 공랭식이었기에 분당 최대 500발 밖에 쏠 수 없었다.
판처 39는 2차대전 발발 전에는 총 6개의 부대에서 운영되었는데, 가솔린 엔진 사양은 Pzw Det[10] 1, 2, 4에서, 디젤 엔진 사양은 Pzw Det 5, 6, 7에서 3대씩 운용되었고, 전쟁 발발 후에는 Pzw Kp[11] 1, 2, 3에서 각 6대씩이 운용되었다.[12] 2차대전 중 독일과 이탈리아의 '탄넨바움' 작전이 실행되지 않았기에 실전을 겪진 않았다. 이들은 1960년을 마지막으로 모두 퇴역하였다.
훈련중인 대전차포 운용반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못할 훈련에 동원되기도 했는데 전차 옆에 천으로 된 표적을 매달고 사격장을 지나가면 대전차포 운용반이 그 표적을 맞히는 것이다. 물론 연습탄을 사용하니 빗맞아도 전차가 관통될 일은 없겠지만 판처 39의 장갑판이 리벳으로 접합된 것을 생각하면 꽤나 위험한 훈련이라 할 수 있다.[13]
[1]
디젤 엔진 버전 1대에 Pak 41을 장착하여 테스트, 이후 가솔린 엔진 버전 1대가 나캄프카노네 1 제작에 사용됨
[2]
24mm Panzerwagen-Kanone 1938
[3]
7,5mm Panzerwagen Maschinengewehr 1938
[4]
Leichtes maschinegrwehr 1925
[5]
주포 형상이 양산형 판처 39와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20mm 오리콘 기관포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6]
이때 란츠베르크 L-60 1대가 스위스에서 테스트 받는다.
[7]
리투아니아용으로 만들어진 Vz.38의 변형인 LTL을 스위스를 위해 약간 수정한 버전이다. 이때문에 뒤에 헬베티카Helvetica를 의미하는 H가 붙었고, 그냥 LTH라고 불릴 때도 있다.
[8]
이들은 모두 무장이 장착되지 않은 상태였다.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합병 이후 전차 도입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했으나 독일은 계약대로 12대의 차량을 모두 전달했다.
[9]
특이한점은 차체 기관총이지만 포수가 기관총을 조작했다.
[10]
Panzerwagen Detachement, 전차 분견대
[11]
Panzerwagen Kompanie, 전차 중대
[12]
참고로 Pzw Kp 1, 2, 3은 1948년에 해체되어 1949년에 Panzerjäger G 13을 운용하는 Pzj Kp 31, 32, 33으로 재편되었다.
[13]
2차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의 Pz.38(t)도 외부에 강한 충격을 받을 시 전차 내부로 튕겨나오는 리벳 때문에 여러 승무원들이 부상당했다.
오토 카리우스도 Pz.38(t) 탄약수 시절에 튕겨져나온 리벳에 치아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