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사망자별 항공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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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9.11 테러는 사고/테러의 중심 대상이 항공기가 아니었으며 항공기의 탑승자 수보다 건물과 지상의 사망자 수가 더 많았으므로 틀에서 제외함. | ||||||
<rowcolor=#ffffff> 순위 | 이름 | 사고 기종 | 사망자 수 | 사고 분류/원인 | 발생일 및 위치 | 비고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1 | 테네리페 참사 |
보잉 747-121팬암 보잉 747-206BKLM |
583명 | 지상 충돌 / 조종사 과실 |
1977년
3월 27일 [[스페인| |
항공기 사고 사망자 수 1위 | |
2 |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 보잉 747SR-46 | 520명 | 벌크헤드 폭발 / 정비 불량 |
1985년
8월 12일 [[일본| |
단일 항공기 사고 사망자 수 1위 | |
3 | 차르키다드리 상공 공중 충돌 사고 |
보잉 747-168B사우디아 일류신 Il-76TD카자흐스탄 |
349명 | 공중 충돌 / 조종사 과실 |
1996년
11월 12일 [[인도| |
공중충돌 사고 사망자수 1위 | |
4 |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10-10 | 346명 | 화물칸 도어 폭발 / 기체 결함 |
1974년
3월 3일 [[프랑스| |
||
5 |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 보잉 747-237B | 329명 | 폭탄 테러 |
1985년
6월 23일 [[아일랜드| |
||
6 | 사우디아 항공 163편 화재 사고 | 록히드 L-1011-200 | 301명 | 기내 화재 |
1980년
8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 |
불시착 후 항공기 전소 | |
7 |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 | 보잉 777-2H6/ER | 298명 | 민항기 오인 격추 |
2014년
7월 17일 [[우크라이나| |
||
8 | 이란항공 655편 격추 사건 | 에어버스 A300B2-203 | 290명 | 민항기 오인 격추 |
1988년
7월 3일 [[이란| |
||
9 | 이란 일류신 Il-76 추락 사고 | 일류신 Il-76MD | 275명 | 불명 |
2003년
2월 19일 [[이란| |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음 | |
10 |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10-10 |
271명탑승객 2명지상 |
엔진 이탈 / 정비 불량 |
1979년
5월 25일 [[미국| |
||
11 |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 보잉 747-121 |
259명탑승객 11명지상 |
폭탄 테러 |
1988년
12월 21일 [[영국| |
||
12 |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 보잉 747-230B | 269명 | 격추 / 조종사 과실 |
1983년
9월 1일 [[소련| |
대한민국 항공사고 사망자 수 1위 | |
13 |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605R |
260명탑승객 5명지상 |
수직꼬리날개 이탈 / 비행규정 미비, 조종사 과실, 기체 결함 |
2001년
11월 12일 [[미국| |
||
14 | 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622R | 264명 | 실속 / 조종사 과실 |
1994년
4월 26일 [[일본| |
||
15 | 나이지리아 항공 2120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8-61 | 261명 | 공중 폭발 / 정비 불량 |
1991년
7월 11일 [[사우디아라비아| |
||
16 |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10-30 | 257명 | CFIT / 조종사 과실 |
1979년
11월 28일 [[남극| |
화이트아웃으로 인한 추락 | |
17 |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8-63 | 256명 | 실속 / 날개 결빙, 과적, 조종사 과실 |
1985년
12월 12일 [[캐나다| |
||
18 |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 실종 사건 | 보잉 777-2H6/ER | 239명 | 불명 |
2014년
3월 8일 인도양 해상(추정) |
항공기 실종으로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음 | |
19 |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 152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220 | 234명 | CFIT / 조종사 과실 |
1997년
9월 26일 [[인도네시아| |
||
20 |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 보잉 747-131 | 230명 | 공중 폭발 / 기체 결함 |
1996년
7월 17일 [[미국| |
||
21 |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MD-11 | 229명 | 기내 화재 / 기체 결함 |
1998년
9월 2일 [[캐나다| |
||
22(공동)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 보잉 747-3B5 | 228명 | CFIT / 악천후, 조종사 과실, 공항 시설 낙후 |
1997년
8월 6일 [[괌| |
||
22(공동) | 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30-203 | 228명 | 실속 / 조종사 과실, 기체 결함 |
2009년
6월 1일 [[브라질| |
||
23 |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사고 | 보잉 747-209B | 225명 | 공중분해 / 정비 불량 |
2002년
5월 25일 [[대만| |
||
24 | 코갈림아비아 항공 9268편 테러 사건 | 에어버스 A321-231 | 224명 | 폭탄 테러 |
2015년
10월 31일 [[이집트| |
||
25 | 라우다 항공 004편 추락 사고 | 보잉 767-3Z9(ER) | 223명 | 실속 / 기체 결함 |
1991년
5월 26일 [[태국| |
||
26 |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 보잉 767-366/ER | 217명 | 자살 비행 |
1999년
10월 31일 [[미국| |
부기장의 고의 추락 | |
27 | 에어 인디아 855편 추락 사고 | 보잉 747-237B | 213명 | 실속 / 기체 결함, 조종사 과실 |
1978년
1월 1일 [[인도| |
||
28 | 중화항공 676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622R |
196명탑승객 7명지상 |
CFIT / 조종사 과실 |
1998년
2월 16일 [[대만| |
||
29 | 아에로플로트 7425편 추락 사고 | 투폴레프 Tu-154B-2 | 200명 | 실속 / 조종사 과실 |
1985년
7월 10일 [[소련| |
||
30 | TAM 3054편 활주로 이탈 사고 | 에어버스 A320-233 |
187명탑승객 12명지상 |
활주로 이탈 / 조종사 과실, 활주로 배수 문제 |
2007년
7월 17일 [[브라질| |
활주로 오버런으로 인해 건물과 충돌 | |
31(공동) | 라이온 에어 610편 추락 사고 | 보잉 737 MAX 8 | 189명 | 설계 결함, 운항 매뉴얼 교육부족, 정비불량 | 자카르타 서자바 까라왕 리젠시(군. 郡)앞바다 | ||
31(공동) | 버겐에어 301편 추락 사고 | 보잉 757-225 | 189명 | 조종사 과실, 정비 실수 |
푸에르토 플라타 북동쪽 16km 지점 부근 |
||
32 | 아간다 항공 참사 | 보잉 707-321C | 188명 | CFIT, 조종사 과실 | 아간다 | ||
33 | LOT 5055편 추락 사고 | Il-62M | 183명 | 제조 결함으로 인한 엔진 고장 | 바르샤바 카바티 숲 | ||
34 | 아비앙카 항공 011편 추락 사고 | 보잉 747-283B | 181명 | 조종사 과실 | 마드리드 메호라다 델 캄포 | ||
35 | 드니프로제르진시크 상공 공중충돌 사고 |
Tu-134A아에로플로트 몰도바 Tu-134AK아에로플로트 |
178명 | 공중충돌 | 우즈베크 SSR 드니프로제르진스크 인근 상공 | ||
36(공동) |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 | 보잉 737-8KV(WL) | 176명 | 민항기 격추 | 테헤란 상공 | ||
36(공동) | 수리남 항공 764편 추락 사고 | 맥도넬 더글라스 DC-8-62 | 176명 | 조종사 과실 | 요한 아돌프 펜겔 국제공항 부근 | ||
36(공동) | 자그레브 상공 공중충돌 사고 |
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 3B영국항공 맥도넬 더글라스 DC-9-32이넥스 아드리아 항공 |
176명 | 공중충돌 | 자그레브 | ||
37(공동) | 풀코보 항공 612편 추락 사고 | Tu-154M | 170명 | 조종사 과실, 실속 | 도네츠크주 수카 발카 | ||
37(공동) | UTA 772편 폭파 사건 | 맥도넬 더글라스 DC-10-30 | 170명 | 폭탄 테러 | 은자메나 테레네 사막 | ||
38 | 케냐항공 431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10-304 | 169명 | 조종사 과실 | 아비장 앞 대서양 | ||
39 | 파키스탄 국제항공 268편 추락 사고 | 에어버스 A300B4-203 | 167명 | CFIT |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 부근 | ||
40 | 멕시카나 항공 940편 추락 사고 | 보잉 727-264 | 167명 | 기내 화재 |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 산 | }}}}}}}}} |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 1977년 3월 27일 |
유형 | 활주로상 충돌, 관제사 과실, 조종사 과실[1] |
발생 위치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령 카나리아 제도 로스로데오 공항[2] |
탑승인원 | KLM 4805편: 승객 234명[3], 승무원 14명 |
팬암 1736편: 승객 380명, 승무원 16명 | |
합계: 644명 | |
사망자 | KLM 4805편: 탑승객 248명 전원 사망 |
팬암 1736편: 승객 326명, 승무원 9명 사망 | |
총 탑승객 583명 사망[4] | |
부상자 | 팬암 1736편: 생존자 61명 전원 부상 |
생존자 | 팬암 1736편: 승객 54명, 승무원 7명[5] |
합계: 61명 | |
기종 | KLM 4805편: 보잉 747-206B |
팬암 1736편: 보잉 747-121 | |
항공사 | KLM 네덜란드 항공, 팬 아메리칸 항공 |
기체 등록번호 | KLM 4805편: PH-BUF |
팬암 1736편: N736PA[6] | |
출발지 |
KLM 4805편: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 |
팬암 1736편: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
|
1차 경유지 |
KLM 4805편: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로스로데오 공항 |
팬암 1736편: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
|
2차 경유지 |
팬암 1736편: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로스로데오 공항 |
도착지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그란 카나리아 공항(라스팔마스 공항) |
영어 | Tenerife airport disaster(KLM Flight 4805 · Pan Am Flight 1736) |
네덜란드어 | Vliegtuigramp van Tenerife |
스페인어 | Colisión de 1977 en Los Rodeos / Accidente de Los Rodeos |
[clearfix]
1. 개요
나는 이 사고가 나던 시점에 그 공항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공항근처 따꼬론떼(Tacoronte) 라는 마을에 사는 현지인 친구 엔리께(Enrique) 씨 집에 집식구와 같이 차를 타고 지나는 시각에 이 사고를 직접 목격한 것이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길에 차를 세워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비행기 두 대가 불타는 것을 본다는 것이 너무도 끔찍하였다. 하늘로 치솟는 시뻘건 불길 속에 들어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치 내 몸이 불타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더 이상 구경꾼처럼 차를 길에 세워놓고 보고 있다는 것에 죄의식마저 들었다.
― 《바다, 그 끝없는 유혹》 - 이기태[7]
― 《바다, 그 끝없는 유혹》 - 이기태[7]
1977년 3월 27일 오후 5시 6분 56초경 암스테르담발 카나리아행 KLM 네덜란드 항공 4805편( 보잉 747-206B)과 로스앤젤레스발 카나리아행 팬 아메리칸 항공 1736편( 보잉 747-121)이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에 있는 로스로데오 공항(현 테네리페 노르테 공항)의 활주로에서 충돌하여 탑승객 614명(KLM 234명, 팬암 380명)과 승무원 30명(KLM 14명, 팬암 16명) 중 총 58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당한 사상 최악의 인명피해를 낸 순수 항공 사고.[8] 더불어 제2차 세계 대전 후 스페인에서 일어난 참사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다.
단일 사고에서 가장 많은 항공기 탑승객이 사망한 사고이며 항공기 탑승객 사망 순위 1위다. 단일 항공기 사고로 최악의 인명 사고는 520명이 사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항공기 탑승객 사망 순위 2위)다.[9]
한국의 유수 언론에서도 1977년 해외 10대 뉴스로 꼽힌 매우 큰 사건이었다. 1977년은 21세기처럼 신문이 두껍지 않고 겨우 8면(두 장)만 나온 데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유신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외국 소식을 1면은 물론 신문 속에도 많은 기사를 할애할 정도로 그 비중이 엄청났으니 대한민국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21세기에 발생한 해외 항공 사고들 중에 비유하자면 9.11 테러에 비견될 만한 충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고기 2대 모두 보잉에서 출시한 보잉 747이다. 당시(1977년)는 보잉747이 막 도입된 시점이라서 우리가 알던 747보다 약간 옛날느낌이 난다.
1.1. KLM 4805편
|
사고 3개월 전인 1976년 12월,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
1.2. 팬암 1736편
사고 22일 전,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촬영된 N736PA. |
2. 사고 진행
2.1. 출발
2.1.1. KLM 4805편
KLM 네덜란드 항공 4805편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과 그란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 국제공항 간의 정기운항편으로 평소 DC-8이 투입되었으나 부활절 휴가기간을 맞이하여 747이 투입되었다. 사고 4시간 전 암스테르담에서 승무원 14명과 휴양객 234명(어린이 69명 외 다수의 청년들 포함)을 싣고 이륙하여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팔마스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으나 하술할 테러 위협으로 공항이 폐쇄되면서 로스로데오 공항에 임시로 착륙했다.KLM 4805편의 기장은 50세였던 야코프 펠트하위전 판 잔턴(Jacob Veldhuyzen van Zanten)으로, 비행경력 1만 1,700시간에 달하는 베테랑 기장인데다 위 사진에 나온 것처럼 KLM의 광고에 등장할 정도[10]로 회사로부터 신망받던 스타 파일럿[11]이었고 KLM에 보잉 747기가 처음 인도될 때의 조종사로서 1,545시간을 747기와 함께한 사람이었다. 부기장 클라스 뫼르스(Klaas Meurs)는 42세로 9,200시간의 비행 경력을 보유한 나름의 베테랑이었으나 보잉 747기로 비행한 시간은 95시간밖에 되지 않아 이 기종 운항에서는 초보 단계였다. 48세였던 항공기관사 빌럼 슈뢰더르(Willem Schreuder) 역시 1만 7,031시간을 항공기관사로서 비행한 베테랑이었지만 보잉 747 기종 운항은 543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2.1.2. 팬암 1736편
팬 아메리칸 항공 1736편[12](PA1736)은 비정기 노선의 전세기로, 팬암 산하의 여행사 서비스를 통해 카나리아 제도 크루즈선 여행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대여한 보잉 747기였다. 팬암사는 전 세계적에 퍼져 있는 자신들 산하의 여행사와 항공노선망을 이용해 1950년대 말부터 비행기와 선박을 통한 여행상품을 기획했는데 특히 1970년대 중반부터는 보잉 747기를 과도하게 구입한 탓에 발생한 적자를 상쇄하고 비행 때마다 수시로 발생하는 잉여좌석과 잉여기재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상품 판매에 더 몰입하던 중이었다. 1736편도 그 일환으로 운행하던 여행객 수송용 여객기 중 하나였다.이 여객기는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승무원 18명과 승객 382명[13]을 태우고 이륙하여 뉴욕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기착해 휴식과 급유를 마친 뒤 재이륙해 최종 목적지인 라스팔마스 공항으로 향하다가 예기치 못한 테러 위협과 공항 폐쇄로 로스로데오에 착륙했다. 승객 대부분은 라스팔마스 공항에 내려 크루즈선 '오디세이'호에서 여행을 즐길 목적으로 탑승해 있었다.
기장 빅터 그럽스(Victor Grubbs, 1920~1995)는 무려 2만 1,043시간 동안 조종간을 잡은 최고 경력의 베테랑이었지만 보잉 747기 운행은 564시간이었다. 부기장 로버트 브래그(Robert Bragg, 1937~2017)는 1만 800시간의 비행경력자로서 보잉 747기 운행시간도 2,796시간이나 되어 두 사고기의 조종사들 중 가장 긴 747기 조종경력 보유자였다. 항공기관사 조지 완스(George Warns, 1931~1991)는 1만 5,210시간의 비행을 함께한 노련한 엔지니어로 747기 비행 동행시간은 559시간이었다. 기장과 부기장 모두 상대방인 야코프 펠트하위전 판 잔턴 기장보다 비행 시간에서 앞섰으며, 조지 완스 항공기관사의 비행 시간도 판 잔턴 기장의 비행 시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모르겠으나 이들 셋은 팬암 1736편의 중간 기착지인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기존의 조종사들과 교대한 사람들이었다. LA에서 뉴욕까지의 비행을 담당한 앞 조종사들과 교대할 때만 해도 참사의 피해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세 사람은 사고로 부상을 입었지만 모두 생존했으며 그 후로도 각기 10년에서 최대 40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특히 브래그 부기장은 2017년까지 생존했기 때문에 가장 최근에 테네리페 참사가 다뤄진 항공 사고 수사대에도 출연했다.
아래 사진을 보면 KLM 4805편의 4번 엔진, 즉 가장 오른쪽에 있는 엔진이 팬암기의 어퍼데크 중간 부분을 강타하였고, 어퍼데크에 탑승한 28명은 즉사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조종실에는 충격이 비껴갔다. 4805편의 랜딩기어, 엔진 등에 순차적으로 강타당한 일반석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온 반면 통상적으로는 더 위험하다는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에서 생존자가 많이 나왔다.[14] 결국 항공 사고는 언제 어떤 형태로 발생하느냐에 따라 좌석간의 생존률에도 차이가 생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에서는 본 사고와 반대로 항공기의 전방에 탑승했던 승객들이 추락 후 즉사했지만 아시아나항공 214편 착륙 사고에서는 동체 후부에 탑승했던 사람들에서 사망자나 중상자가 나왔다.
2.2. 라스팔마스 공항 테러 위협
사고 당일 오후 1시경 카나리아 제도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급진 사회주의 단체 MPAIAC가 라스팔마스 공항에 협박 전화를 걸어왔는데 내용은 '15분 후 공항 어딘가에 설치된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테러 예고였다. 예고대로 오후 1시 15분경 공항 근처에 있던 꽃 가게의 화분에 숨겨진 폭탄이 폭발했으나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후속 테러의 위험이 있었기에 라스팔마스 공항은 임시 폐쇄되었다.그렇게 라스팔마스 공항이 임시로 폐쇄되자 이 공항에 착륙하려던 비행기들에게는 임시로 근처에 있던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의 로스로데오 공항으로 회항하여 착륙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는데 사고의 주인공이 된 KLM 4805편과 팬암 1736편도 지시에 따라 로스로데오 공항으로 착륙했다. 이때 1736편은 중간 기착지인 뉴욕에서 재급유한 덕분에 2시간가량 비행 가능한 연료가 있어 관제탑 측에 "차라리 공중에서 선회하며 대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관제탑은 이를 묵살하고 착륙을 지시했다.
그렇게 KLM 4805편과 팬암 1736편 모두 로스로데오 공항의 좁은 활주로에 각각 착륙했는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2.3. 로스로데오 공항의 열악한 상황
로스로데오 공항(현 테네리페 노르테 공항)은 말 그대로 시골 변두리에 있는 조그마한 공항이었기 때문에 공항 규모도 작고 시설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진 속의 활주로는 이 사고 후 연장된 모습이다. 활주로는 단 하나에 레이더도 없는 이 열악한 공항은 애초부터 국제선에 취항하는 대형 여객기가 이착륙할 일도 없는 공항이었다.
이런 한적한 작은 공항에 갑자기 테러 위협으로 회항하는 각종 비행기들이 몰리며 가득 차게 되었고 워낙 작은 공항이라 L-1011 1대 (영국항공)과 보잉 747 3대 (팬암, KLM, 사베나 항공)외에 미확인된 광동체 1기[15]를 포함하여 비롯한 온갖 비행기들이 있을 만한 공간이 있을 리 만무했고 결국 주기장은 물론 유도로에까지 비행기를 채우고도 모자라 활주로를 유도로로 이용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양양국제공항이나 잘 쳐줘봐야 청주국제공항 정도의 공항에 광동체기를 5대나 꾸역꾸역 잡아 놓은 것이다.[16]
게다가 하필 이날이 주말인 탓에 로스로데오 공항의 관제사는 단 두 명밖에 없었다. 즉, 이 두 사람은 평소와는 비교도 안되는 수많은 비행기들의 접근, 착륙, 유도, 이륙까지 몽땅 떠맡게 됐다.
로스로데오 공항에 임시로 착륙한 비행기들이 주기하던 상황은 아래와 같다. 사고기 중 KLM 4805편이 팬암 1736편의 앞쪽에 주기하고 있었다. 즉 4805편이 앞에서 1736편의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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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30분 전에 카나리아인 사진사가 찍은 사진들[17][18] |
사고 사진들 추가본 영상.[19]
그리고 사고 조사관들이 공개한 주기 장소와 사진이 정확하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촬영자는 KLM 4805편의 오른쪽 날개 아래에 있었으며 4805편에는 스페인령인 테네리페답게 이베리아 항공의 탑승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팬암 1736편 또한 이베리아 항공의 탑승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KLM 4805편 왼편에 주기되어 있던 이동 중인 스위스 SATA 항공의 DC-8기(HB-IDB), 그리고 11시 방향에 주기되었던 덴마크 STERLING 항공의 B727이 이동 중에 있다. 네덜란드 포럼에서 촬영 순서대로 배열해 둔 듯 하다. 그 뒤쪽으로 주기장에는 Aviaco DC-8, Spantax CV-990, Hapag B727이 주기되어 있다.
사고 후 조사관들이 사고 지점에서 터미널 쪽을 찍은 사진들에서는 터미널 쪽 주기장에 사베나 항공의 B747과 영국항공의 L-1011이 주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공항이 당시 국제 노선은 담당하지 않았던 점, 국제선을 담당하던 그랜드 카네리 공항으로 가야 되는 항공기가 모두 테네리페로 왔던 점과 활주로가 사고 직후 폐쇄된 걸 고려하면 사고기들이 공항에 주기할 때쯤 같이 주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2.4. 이륙 동반 지연
테러 위협에 따른 라스팔마스 공항 폐쇄조치로 어쩔 수 없이 로스로데오 공항에 착륙한 KLM 4805편과 팬암 1736편은 승객들에게 서로 다른 대기 조치를 취했다. 먼저 착륙한 4805편은 승객 전원을 내려주어 공항 터미널에서 쉴 수 있게 했지만 나중에 착륙한 1736편은 터미널 대기실의 수용인원 초과로 인해 관제탑으로부터 승객들을 그냥 기내에서 대기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이에 따랐다.기내의 출입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키고 탑승계단도 연결해 놓아 원하는 승객들은 기체 주변 주기장에서 스트레칭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했지만 1736편의 승객들 중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뉴욕을 거쳐 이곳 테네리페까지 13시간 넘게 비행을 했던 경우도 있어 대부분 상당히 힘들어하는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장거리 비행의 끝자락에서 이런 예기치 않은 도착 지연이 발생하다 보니 허기를 달래고자 간식을 원하는 승객들이 많았는데 기내에 탑재된 기내식은 모두 동이 난 상태고 인원 문제로 공항 터미널엔 가지도 못한 채 기내에 갇혀 있다 보니 1736편 승객들의 스트레스는 더더욱 커져만 갔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라스팔마스 공항의 폐쇄가 해제되었고, 로스로데오 공항 활주로에 주기해있던 항공기들은 하나둘 이륙하여 라스팔마스 공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팬암 1736편은 승객 전원이 한 명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기내에 탑승해 있었고 연료량도 충분했기 때문에 즉시 이륙할 수 있었지만 앞을 가로막은 채로 주기해있는 KLM 4805편 때문에 이륙할 수 없었다. 게다가 4805편은 1736편의 앞을 가로막은 채로 상당한 시간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4805편이 라스팔마스 공항을 경유해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까지 바로 갈 수 있을 만큼의 항공유 5만 5천 리터를 통째로 급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20] 자동차로 치자면 차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주유소에서 뒷차가 주유를 다 끝냈으니 얼른 출발해야 하는데 앞에 선 버스가 만땅을 외친 셈이다.
이 터무니없는 만땅 급유는 여러 문제를 불러왔다. 우선 급유를 다 마친 KLM 4805편은 중량이 매우 무거워져 이륙 시 필요한 활주거리가 최대로 늘어났고 결정적으로 (얼마 후) 팬암 1736편과 충돌하는 순간 기내에 가득한 항공유에 불이 붙으며 최악의 폭발을 일으키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요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 급유는 순전히 4805편 운항 총책임자인 판 잔턴 기장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는데 뫼르스 부기장과 슈뢰더르 항공기관사는 "지금 우리 비행기에 든 연료량으로도 충분히 라스팔마스까진 갈 수 있고, 라스팔마스에 가서 암스테르담까지 갈 만큼의 연료를 급유하는 게 값이 더 싸다"며 설득했지만 그는 "라스팔마스에 가서 급유하려면 또 다른 비행기들이 많아 급유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 있고, 라스팔마스가 언제 또 폐쇄될지 모른다. 어차피 여기서 시간을 보내나 거기서 시간을 보내나 다를 게 없다"며 이를 묵살했다. 심지어 판 잔턴 기장은 부기장과 항공기관사에게 " 내가 이 기장석에 앉아 있는 동안 결정권은 내게 있다"며 둘을 윽박지르기까지 했는데 이는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를 잔뜩 위축되게 하여 결과적으로 참사 발생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그의 독선을 참사 직전까지 제지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어 버렸다.
만약 이때 활주로에 4805편만 홀로 있었다면 연료탱크를 가득 채울 만큼 급유한 것이 괜찮은 판단일 수도 있었다. 예기치 못한 라스팔마스 공항 폐쇄로 항공편 도착시간이 지연되면서 판 잔턴 기장은 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스팔마스 공항까지 간 다음 거기서 다시 급유하려면 운항 지연 수준이 더 심각해질 수 있으니 이왕 로스로데오 공항에 착륙해 주기까지 한 상황에서 급유까지 마쳐 전체 운항 시간의 추가 지연을 최소화해보자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그 좁은 로스로데오 공항 활주로에 4805편 혼자 있었던 것도, 4805편이 그 활주로를 전세 낸 것도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KLM 4805편이 이처럼 다른 항공기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그 큰 보잉 747기에 가득 급유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버티자 바로 뒤에 서 있던 팬암 1736편의 승무원과 승객들은 지치고 피곤한 나머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1736편도 덩치가 큰 보잉 747기였기 때문에 활주로를 이탈하지 않는 범위에서 4805편 옆을 비집고 지나가보려 했으나 단 12피트(약 3.66m)가 모자라 날개가 걸린다는 측정이 나오면서 포기하고 말았다. 1736편의 그럽스 기장은 주유 중이던 4805편의 판 잔턴 기장에게 무전으로 "급유를 마칠 때까지 대략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 같느냐"고 물었지만 판 잔턴 기장은 "35분"이라고 답하고 무전을 바로 종료해 버렸다. 1736편 탑승자들은 자신들보다도 뒤에 주기해 있던 작은 기종의 항공기 10여 대가 자신들과 4805편 옆을 지나 먼저 이륙하는 모습을 보며 열불을 냈다.
점점 악화되는 상황 속에 4805편은 드디어 급유를 마쳤으나 바로 이륙할 수 없었다. 탑승객 중 두 명의 어린이가 타지 않아 객실 승무원들과 공항 지상관리요원들이 그 둘을 찾느라 공항 터미널을 헤집고 다니며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이륙은 또 다시 지연되었고 승객들이 테네리페 섬에서 하룻밤 묵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판 잔턴 기장은 극도로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테네리페 섬에서 숙박하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판 잔턴 기장이 그토록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은 적용 기준이 엄격한 네덜란드 초과근무 규정에 이 상황이 저촉될까 신경 쓰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사고 발생 후에 나왔다.[21] 무엇보다 지속적인 연착과 그로 인한 운항 지연은 그 발생 원인에 상관없이 전적으로 기장 책임인 근무 규정 때문에 판 잔턴 기장은 큰 부담을 짊어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자신의 독단적 결정으로 가득 급유한답시고 이륙을 30분 이상 지체한 사실도 있지 않은가. 이토록 이륙을 못하고 늘어져 연착된 것을 나중에 회사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설명한다고 해도 회사 측으로부터 개인 과실을 추궁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모든 상황 맥락이 판 잔턴 기장을 머리 아프게 만들었다.[22]
시간이 흘러 KLM 4805편의 객실 승무원들과 로스로데오 공항 지상관리요원들이 두 아이를 찾아냈고 기장의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찼다는 사실을 아는 승무원들은 서둘러 그 둘을 탑승시켰다. 아이들이 타자마자 4805편은 곧바로 유도로에서 활주로까지 지상 이동(taxing)하기 시작했다. 이때 4805편 승무원들과 함께 공항 터미널을 뒤진 끝에 두 아이 승객을 찾아 탑승시킨 공항 지상관리요원은 "지상 이동(taxing) 직전 (두 아이를 태운 뒤) 스튜어디스가 비행기 문을 닫기 전에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며 "내가 그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그것이 운명이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날 그 요원이 두 아이를 찾지 못했다면 아이들은 사고에 휘말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겠지만, 결국 아이들을 죽게 만든 것은 주어진 책무를 다한 요원이 아닌 독단적 결정과 무단 행위를 저지른 판 잔턴 기장이므로 그 요원에게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2.5. 활주로 지상이동
느긋하게 급유를 마치고 두 아이 승객의 탑승까지 완료한 KLM 4805편은 드디어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진입해 택싱(지상이동)[23]을 시작했다. 뒤에서 속 터져라 기다리던 팬암 1736편도 드디어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4805편의 뒤를 따라 택싱을 시작했다.그런데 두 여객기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이때 기상 변수가 발생했다. 테네리페 섬을 둘러싼 바다로부터 몰려온 해무, 산 쪽에서 내려온 구름, 화산 구덩이에서 소량으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뒤엉켜 안개를 형성하면서 가시거리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4805편이 택싱을 마쳤을 때는 가시거리가 벌써 300m 이하로 짧아져 있었다. 비행 규정상 이륙 가능한 최저 가시거리는 700m로, 700m 미만으로 시야가 좁아지면 조종사는 이륙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4805편의 판 잔턴 기장은 택싱 내내 "지상이동 속도를 왜 이렇게 느리게 했냐", "왜 내가 이런 곳에 이렇게 불편하게 있어야 하느냐"며 "빨리 이곳을 뜨고 싶다"면서 불평불만을 중얼중얼 쏟아냈는데 택싱 체크리스트 점검을 시작하려던 부기장 뫼르스와 항공기관사 슈뢰더르가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지만 그는 쉽사리 안정된 상태를 되찾지 못했다. 관제탑 관제사는 4805편에게 "활주로 끝까지 가서 180도 유턴하라"고 지시했다.[24]
활주로 끝까지 이동 중이던 4805편이 C2 유도로 입구를 지날 때쯤 관제탑은 뒤따라오던 팬암 1736편에게 "전방의 C3 유도로로 빠진 뒤 평행유도로에서 대기하다가 KLM 4805편이 이륙한 다음 다시 활주로로 들어와 이륙하라"고 지시했지만 어느새 지표면 부근까지 자욱해진 안개 탓에 1736편은 자신들이 몇 번 유도로까지 왔는지를 쉽게 인지하지 못했고 진입을 지시받은 유도로를 지나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유도로들을 확실히 확인하면서 지나가기 위해 택싱 속도를 줄이게 되었다.
충돌 지점은 1736편이 C3 유도로를 이미 지나 C4 유도로로 막 진입하려던 위치였는데 왜 C3가 아닌 C4 유도로로 들어가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736편이 고의로 C3 유도로를 지나치고 C4 유도로로 들어가려 했다는 분석도 있고 1736편 조종사들이 C3을 C4로 잘못 알아들은 탓이라는 분석도 있고 안개 때문에 C3 유도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실수로 지나친 김에 C4 유도로로 들어가려 했다는 분석도 있으며 C1 유도로를 이미 지나간 상황에서 'C3'를 '세 번째 C'로 잘못 이해하여 C2부터 시작했을 때 세 번째인 C4 유도로로 가려고 했다는 분석도 있다.
추가로 1736편이 고의로 C3 유도로를 지나쳤다는 분석의 근거로는 'C3 유도로로 들어가려면 1736편이 148도 회전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는데 대형 기종인 보잉 747기가 148도로 턴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이 있다. 이 때문에 1736편 조종사들이 C3 유도로로 진입하라는 관제탑의 지시를 "불가능한데 왜 이런 지시를 내리느냐, 이건 관제탑이 실수한 것 같다"고 단정짓고 C4 유도로 쪽으로 직진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Air Line Pilots Association International(ALPA)이 공항과 비행기 모형으로 연구한 결과 1736편이 C3 유도로 입구를 향해 제자리에서 148도 턴을 하는 것은 실제로도 불가능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ALPA의 보고서 19~20페이지 참조 1736편의 C4 유도로 진입 시도와 관련한 더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원인' 부분 참조.
2.6. KLM 4805편의 무단이륙, 그리고 충돌
"Goddamn it,
that son-of-a-bitch is coming straight at us!"
"이런 미친, 저 개새끼가 우리한테 돌진하고 있어!"
빅터 그럽스(Victor Grubbs) 팬암 1736편 기장
뿌연 안개 속에서 자신들을 향해 고속으로 질주해오는 KLM 4805편의 실루엣을 발견한 직후[25]
"이런 미친, 저 개새끼가 우리한테 돌진하고 있어!"
빅터 그럽스(Victor Grubbs) 팬암 1736편 기장
뿌연 안개 속에서 자신들을 향해 고속으로 질주해오는 KLM 4805편의 실루엣을 발견한 직후[25]
"Get off! Get off! Get off!!"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
로버트 브래그(Robert Bragg) 팬암 1736편 부기장
"저리 가! 저리 가! 저리 가!!"
로버트 브래그(Robert Bragg) 팬암 1736편 부기장
팬암 1736편이 진입할 유도로를 찾기 위해 택싱을 저속으로 이어가는 동안 KLM 4805편은 활주로 끝지점에 도달하여 유턴(turn back)한 후 이륙 허가를 기다렸다. 관제탑은 4805편에게 "이륙 허가를 해줄 때까지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판 잔턴 기장이 이륙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스로틀 레버를 끝까지 밀어 엔진 출력을 올리면서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뫼르스 부기장이 그에게 "잠깐만요, 아직 이륙 허가를 받지 않았는데요?"라고 물으며 질주를 멈출 것을 에둘러 권했지만 판 잔턴 기장은 자신의 명백한 비행 규정 위반 사실에도 아랑곳 않고 "나도 알아. 자네가 관제탑에 물어봐!"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으며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높여 활주로를 빠르게 질주했다.
이때 뫼르스 부기장은 물론 항공기관사인 슈뢰더르까지 판 잔턴 기장의 행동을 끝내 제지하지 못했는데 급유에 대한 이견을 표출했다가 "내게 결정권이 있다"며 강압적으로 핀잔을 들은 탓에 그의 눈치를 보며 풀이 죽어 있었던 탓이 가장 컸다. 게다가 둘 역시 조종실 공동책임자로서 연착에 대한 책임감과 심리적 압박이 있었던 데다 이륙 준비 과정에서도 그에게 이륙 허가와 관련해 제지하는 듯한 의견을 제시했다가 독선적인 반박에 말이 막히기도 했던지라 아랫사람으로서 '더 이상 간섭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다.
뫼르스 부기장은 판 잔턴 기장의 "관제탑에 물어보라"는 대꾸를 듣고 급히 관제탑과 교신해 리드백(read back)[26]하며 "지금 이륙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전파가 연결되어 있었던 덕에 이 교신 내용을 같이 들은 팬암 1736편의 브래그 부기장은 "우리는 아직 (유도로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활주로를 이동 중"이라고 알렸고 교신을 전달받은 관제탑은 KLM 4805편에게 "알았다, 이륙 대기하라, 연락 주겠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결정적인 패착이 발생했는데 팬암 측의 교신과 관제탑의 교신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헤테로다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 현상은 둘 이상의 교신이 같은 주파수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을 때 '전파 간섭(Half Duplex의 특성)'이 발생하면서 모두 잡음으로 처리되어 그냥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들리는 것으로, 실제 교신 내용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KLM 측 조종실에는 관제탑의 응답 교신 중 "알았다(OK)"는 부분만 들리게 되었다. 관제탑의 실제 응답은 "OK⋯ Stand by for take-off, I will call you.(알았다⋯ 이륙 대기하라, 연락 주겠다.)"였는데 '연락 해줄 테니 이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잡음 처리되어 전달되지 않았다.
관제탑의 응답 교신을 살펴보면 OK 뒷부분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관제탑 측이 굳이 OK로 말을 시작해서 괜히 혼동을 일으켰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는데 관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 이륙 허가를 내주지도 않았는데 무단으로 이륙을 시작하며 '우리 지금 이륙하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비행기는 없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관제사가 뫼르스 부기장의 교신에서 '이륙하고 있다'는 부분을 '이륙하려고 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27] 또한 이 헤테로다인 현상 때문에라도 지시에 대한 복명복창을 통해 통신이 잘 되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며, 관제소 측에서 KLM 4805편이 이륙 대기에 대한 복명복창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면 상황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몇 초 후 관제탑은 KLM 4805편이 이륙을 위해 가속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팬암 1736편에게 교신하여 "활주로에서 (유도로로) 나갔느냐"고 물었고 1736편의 브래그 부기장은 "(아직 안 나갔으니) 활주로에서 나가게 되면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문제는 전파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교신 내용이 명백히 4805편의 조종실에도 들렸다는 것이다. 이를 들은 4805편 조종실의 세 사람은 1736편이 아직 활주로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으나 판 잔턴 기장은 이륙 가속을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4805편 슈뢰더르 항공기관사가 판 잔턴 기장에게 “Is hij er niet af dan?"(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라고 다급하게 물었으나 판 잔턴은 "Wat zeg je?(뭐라고?)"라고 되물었다. 슈뢰더르가 다시 "Is hij er niet af, die Pan American?"(팬암기가 아직 활주로 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냐고요?)[28]라고 묻자 판 잔턴은 강한 어조[29]로 “Jawel.(그래)"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판 잔턴 기장이 팬암 항공기가 활주로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자살과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의 답변 "Jawel.''은 "아니, (활주로에) 없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정의문문을 부정하기 위해 Yes를 사용하는 경우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뒤에 부연하는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판 잔턴 기장은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Jawel."이라고 답한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아마 "niet"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듣지 못해 긍정의문문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답한 것으로 추정된다.[30] 참고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잔턴 기장이 활주로에 팬암기가 있을지라도 팬암기를 피해서 이륙하면 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는 대사로 의역하기도 했다.
어쨌든 여러 꺼림칙한 정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판 잔턴 기장은 계속 이륙 활주를 강행했다. 그의 단호한 "Jawel." 한 마디를 끝으로 조종실 서열 최하위인 슈뢰더르 항공기관사는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으며 결국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도 이렇게 날아가 버렸다. 슈뢰더르는 조종실에서 막내였던데다 급유 때 뫼르스 부기장과 함께 이견을 제시했다가 기장인 내 결정에 토 달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핀잔을 들었고 이륙 준비 체크리스트 점검 절차 도중 판 잔턴 기장의 "와이퍼 켜라(Wipers On)"라는 명령을 잘못 듣고, 라이트를 켜는(Lights On) 실수[31]까지 저질러 추가로 구박을 받았다. 막내의 위치에서 두 번이나 혼이 난 뒤에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문제로 기장에게 계속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웠으리라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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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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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고 수사대에서의 장면 |
활주로를 고속으로 질주하던 4805편의 판 잔턴 기장과 뫼르스 부기장, 슈뢰더르 항공기관사도 안개 속 활주로를 막고 선 1736편의 실루엣을 발견하면서 경악했지만 막 이륙결심속도( V1)를 넘어선 4805편은 이미 감속하거나 정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륙결심속도란 항공기가 오버런(over run)[32]을 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보다 이륙을 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가 더 크지 않다면 무조건 이륙해야 하는 속도하한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V1(이륙결심속도)은 '이 속도를 넘는다면 감속해서 이륙을 중지하는 것보다 가속해서 이륙을 계속 진행하는 게 더 안전하다' 정도의 개념이고[33] 바로 뜰 수 있는 속도가 아니며, 정상적으로 이륙하려면 VR(전환 속도[34])까지는 도달해야 한다. 물론 이륙결심속도와 멈추냐 마냐의 문제도 활주로에 항공기 한 대가 있는 정상적인 상황을 가정하지, 관제탑의 지시를 무시하고 활주로에서 두 대가 서로를 마주보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최대한 피하는 것 말곤 손쓸 도리가 없었다.
판 잔턴 기장은 1736편을 발견한 즉시 이륙하려 조종간을 힘껏 당겼고 4805편은 기수를 급격히 들면서 1736편을 향해 돌진했다. 워낙 급격하게 기수를 들어 땅에서 띄우려 한지라 4805편은 테일 스트라이크가 일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륙 직전 연료탱크를 가득 채운 급유로 인해 비행기의 무게가 최대치로 무거워져 있었고, 이 때문에 활주거리가 늘고 이륙 시 상승각도가 낮아지는 탓[35]에 아직 VR에 도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륙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판 잔턴은 필사적으로 급격히 이륙을 시도해 기체 전체를 겨우 땅에서 띄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1977년 3월 27일 오후 5시 6분 KLM 4805편은 무려 156노트(약 시속 290km)의 고속으로 돌진해 팬암 1736편 상단부에 충돌했다. 4805편의 동체 밑바닥과 랜딩기어가 1736편의 동체를 강타했으며 4번 엔진이 1736편의 어퍼데크(upper deck)[36]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두 여객기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4805편은 충돌 직후 약 150m를 공중에 붕 뜬 채로 날아가다 뒤집히면서 추락했는데 활주로 충돌 후 300m를 더 미끄러진 뒤에야 멈춰섰다. 급유로 가득 채운 연료에 불이 붙으면서 4805편은 대폭발과 함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소되었으며 탈출할 순간조차 없었던 탑승자 248명 전원은 온전한 시신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말 그대로 불길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1736편도 충돌 즉시 몇 미터 가량 밀려났고 화재 발생과 함께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일부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탈출한 후 1736편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으며 충돌의 충격과 화재의 열기로 인해 랜딩기어가 주저앉아 형체가 붕괴되면서 곧 전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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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의 전체 모습. 아래쪽이 KLM기, 위쪽이 팬암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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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에서 촬영한 팬암기의 잔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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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암기의 왼쪽 날개 부근에서 찍은 KLM기의 잔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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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M기의 꼬리 잔해 옆에서 발견된 팬암기의 동체 잔해. 당시 충격이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
2.7. 피해를 키운 구조작업
사고 직후 연료 폭발로 탑승자 248명 전원이 즉사한 KLM기와는 달리 팬암기에는 사고 직후 승객들의 대다수가 아직 생존해 있는 상황이었다.KLM기의 오른쪽 윙의 4번 엔진이 팬암 기의 2층을 강타하면서 2층이 박살났는데 그 곳에 탑승해 있던 28명은 충돌 즉시 사망하였고 동시에 화재가 발생했다. 부기장이 엔진 전원을 끊고 연료 공급을 막았지만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특히 충돌과 급격한 화염으로 인해 엔진 제어 연결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부기장이 엔진을 껐음에도 불구하고 엔진이 멈추지 않고 활주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스로틀을 최대로 조작해 놓은 사고 전 마지막 조작을 따라서 계속 최대 출력으로 회전했고 손상되고 과열된 채 계속 회전하던 엔진이 분해되어 터빈 날개 등 엔진 부속품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초고속 파편이 되는 바람에 피해가 더 커졌다. 맨 윗 사진의 부서진 1번 엔진이 그 폭주하다 분해된 엔진이다. 기내 탈출을 돕던 스튜어디스가 저 멀리 폭주하고 있는 엔진에서 분해되어 날아온 터보 팬 부품에 목이 베여 사망하는 모습을 탈출했던 생존자가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열악한 시설의 공항은 구조 인력과 장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게다가 구조대원들은 모두 사고 발생 직후 이미 전원이 사망한 KLM기로 달려가 화재 진압과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그들은 가득 채운 연료로 인해 대폭발을 일으킨 KLM기의 화재를 심혈을 기울여 진압했고 아울러 생존자가 전혀 없음도 확인했지만 소방관 및 구조대원들은 450m 밖에서 수많은 탑승객들이 생존해 있던 팬암기는 완전히 방치해 두고 말았다. 소방대원들은 너무 짙은 안개 때문에 팬암기가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결국 팬암기는 구조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충돌이 일어난 지 수십 분 후 연료가 폭발하면서 마침내 팬암기도 완파되고 말았다.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 일부 승무원, 탑승객들은 탈출에 성공했지만 9명의 승무원과 326명의 탑승객은 불길 속에서 사망했다. # 폭발과 화재의 고열로 인해 외피는 물론이고 기골까지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거나 녹아버렸으며 나중에 현장에 도착한 사고 조사관의 증언에 의하면 현장에서 탑승객들의 시체가 불에 타서 이상한 냄새까지 났다고 한다.
생존자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팬암기의 승객은 대부분 고령자였으며 동체에서 뛰어내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상을 입은 상태였고 안개로 인해 방향을 잃은 몇몇 사람들은 불타는 비행기 옆에 서 있기까지 하였다. 승무원 도로시의 증언에 의하면 한 생존자는 하이힐을 신고 동체 옆에서 걸어다니기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팬암기는 탑승자 396명 가운데 335명이 사망하고 모두 583명이 사망하는 전례없는 사상 최악의 항공 대참사가 터져 버렸다.
2.8. 생존자
이런 처참한 현장에서도 팬암기에서 61명이 극적으로 생존하였다. 생존자 플로이 올슨(Floy Olson), 루라 월드립(Lura Waldrip), 바이런 엘러브록(Byron Ellerbrock)의 이야기
팬암기의 스튜어디스 도러시 켈리(Dorothy Kelly)는 사고 전에 객실 문앞에서 동료 스튜어디스 칼라 존슨(Carla Johnson)과 미겔 토레치(Miguel Torrech)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사고 직후 충돌로 튕겨나온 파편에 머리를 맞고 충격으로 무너진 객실 바닥을 통해 화물칸으로 추락하였다. 떨어진 구멍을 통해 올라와 동료 존슨과 함께 승객들을 끌어내면서 중상을 입은 팬암기 기장 그럽스와 부서진 엔진 아래에 깔려있던 여성 승객 등[37] 최소 5명을 구조해내는 영웅적 활동을 하였다. 켈리와 존슨은 구조대의 현장 치료도 거부하고 생존자들을 구조하는 데 전념하였다.
기장 빅터 그럽스와 부기장 로버트 브래그[38], 생존한 다른 승무원 수잰 도너번(Suzanne Donovan)과 조앤 잭슨(Joan Jackson)도 간신히 탈출하여 생존자들을 구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항공기관사 조지 완스도 가까스로 살아나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승무원 9명은 불타는 팬암기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생존자 조아니 페더스(Joani Feathers)는 사고 발생 후 함께 타고 있던 남성 승객이 안전벨트로 인해 몸이 반으로 잘린 채 사망해 있는 것과 뒤따라 나오던 여성 승객이 잘못 뛰어내리며 사망하는 것, 그리고 문서 상단의 엔진 부품이 날아오며 흑인 스튜어디스의 목이 잘리는 광경을 모두 목격하였다고 증언했다.
KLM 4805편의 탑승객이었던 여성 로비나 밴랜쇼트(Robina van Lanschot)가 살아남았는데 사고기에서 로스로데오 공항 이륙 전에 내린 승객이며 테네리페가 거주지인 투어 가이드였는데 기왕 테네리페에 내린 이상 굳이 그란 카나리아까지 갔다가 다음 날 테네리페에 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 재탑승을 거부하고 공항을 빠져나갔고 얼떨결에 대참사를 피하는 천운으로 목숨을 구했다. 다만 탑승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밴랜쇼트를 사고 생존자로 보지는 않는다.
데이비드 알렉산더(David Alexander)는 덜 다친 승객 몇 명을 데리고 탈출하려고 했는데 출구가 보이지 않자 천장에 있는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갔다가 왼쪽 날개로 내려보내며 구조하였다.
워런 홉킨스(Warren Hopkins)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였는데 떨어지는 파편으로 머리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아내 캐럴린(Caroline)을 데리고 탈출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탈출 의지를 주었고 동체에서 6m 아래 활주로로 뛰어내려 간신히 착지했으며 캐럴린은 활주로에 부딪치며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극적으로 생존했다.
또다른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용사인 토니 몬다(Tony Monda)는 아내 이저벨 몬다(Isabel Monda)와 동체 왼쪽에 뚫린 구멍으로 함께 대피하였으며 은퇴한 미 해군 제독 월터 무어(Walter Moore)는 아내 베스 무어(Beth Moore)를 비행기에서 내보낸 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내에 머물렀다가 숨지기도 하였다.
팬암 항공기의 생존자와 사망자 목록
3.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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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M기의
야코프 펠트하위전 판 잔턴 기장은 관제탑의 이륙 허가가 내려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륙을 감행했다. 깜짝 놀란 뫼르스 부기장이 이륙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지만 이륙 행위를 중단하지 않았으며 이것이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특히 팬암기가 활주로에서 이동하고 있다는 건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자욱한 안개로 서로의 위치나 활주로의 상태를 시야로 확인할 수 없는 악조건이었기 때문에 KLM기는 더더욱 관제탑의 엄격한 이륙 허가를 받아서 이륙을 했어야 하는데도 이륙 허가도 받지 않고 이륙을 시도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국과 스페인 측 조사관들에 비해 네덜란드 측 조사관들은 그 문제(관제탑과 조종사 사이의 오해)에 중점을 두었으나, 결국 KLM 항공은 소속 조종사들이 그 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희생자 가족 및 친지들에게 금전적인 배상을 했다."고 한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피해 보상금은 5만 8천~ 60만 달러(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24만 8천 ~ 260만 달러)이 지급되었다. 유럽 보상 규정에 따라 합의금 총액은 1억 1천만 달러(현재가치로 환산시 약 4억 7천만 달러)였으며 피해자 1인당 평균 18만 9천 달러(현재가치로 환산시 약 80만 7천 달러)를 보상받았다. "Dutch investigators placed a greater emphasis on this than their American and Spanish counterparts, but ultimately KLM admitted their crew was responsible for the accident, and the airline financially compensated the victims' relatives." 즉 KLM과 네덜란드 측 조사관들은 사고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사고의 궁극적인 책임이 KLM에게 있다는 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KLM 판잔턴 기장은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다는 정황을 인지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관제탑과 팬암기에서 보낸 첫 번째 교신은 KLM기에서 정확하게 듣지 못했지만 그 다음 관제탑에서 보낸 "Ah, papa alpha one seven three six, report the runway clear."("어, PA1736 활주로가 비워지면 보고하세요") 라는 교신과 팬암기에서 "OK, will report when we're clear."("네. 활주로가 비워지면 보고하겠습니다.") 라고 한 교신은 KLM기에서도 수신했는데 이를 통해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KLM기의 항공기관사는 아직 팬암기가 활주로에 있는 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으나 판잔턴 기장은 이 사실을 인지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했다. KLM의 경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운행 스케줄을 어길 경우 조종사에게 벌금과 불이익을 주었는데 그 불이익에는 면장 박탈도 있다. 이로 인해 KLM기의 판잔턴 기장은 매우 조바심을 내게 되었다. 관제 문제, 날씨 문제, 정비 문제, 심지어 테러리스트에게 기체를 장악당했더라도 벌금은 기장이 내야만 했으며 아무리 근무 규정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많은 항공사의 정책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승무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한심한 규정은 결국 무리한 이착륙을 시도하게 만들어 이 사건을 일어나게 만들었고 결국 사고 후 대대적으로 개선되었다.
KLM 판잔턴 기장은 내내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성을 상실한 채 조급하게 이륙을 하려고 했다. 이륙 허가를 위한 관제탑과의 교신을 하기도 전에 스로틀을 올리질 않나, 이륙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브레이크를 풀고 활주로로 나아가질 않나⋯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규정 위반에 해당할 행동을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이륙할 활주로에 다른 항공기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했다는 것. 그리고 부기장이나 항공기관사는 이런 기장의 미친 짓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을 전혀 제지하지 못했다.
관제탑에 다시 한번 활주로 상황과 이륙 허가 확인 요청을 했다면 확인받는 데 채 1~2분도 안 걸렸을 것이고, 팬암 1736편이 활주로를 빠져나가서 안전이 확보되는 것을 포함해도 기껏해야 5분 남짓이었을 공산이 큰데, 그 5분이 더 지체되는 게 싫어서 막무가내로 이륙하다가 무려 600여 명의 목숨을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심지어 정작 짜증을 내야 할 쪽은 판잔턴 기장이 아닌 판잔턴의 급유 결정으로 뒤에서 가로막혀 나가지도 못하고 있던 팬암기의 그럽스 기장이었을 것임을 생각하면 가히 적반하장. 회사 광고에 등장시킬 정도인 베테랑 스타 조종사가 몇 가지 사소한 이유로 짜증이 나서 안개가 자욱해서 활주로 상황이 보이지도 않고 거기에 다른 비행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륙 허가도 안 받고 이륙을 시작하는 미친 짓을 했다? 그리고 부기장과 항공기관사는 기장의 그 미친 짓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이것이 한편으로는 KLM 항공이 '관제탑이 잘못 교신한 것 아니냐?', '팬암기가 지시받은 C3가 아닌 C4로 갔으니 문제인 거 아니냐?' 등등 다른 문제에 집착하면서 자회사 조종사들의 책임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확증편향, 손실기피 등 인간의 태생적인 불완전함은 아무리 많은 경험과 뛰어난 유능함으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KLM 네덜란드 항공뿐만 아니라 모든 항공사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기장의 독단으로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는 기존의 경직된 조종실 문화를 개선했다.
아래는 사고를 더욱 키운 요인이다. 이러한 요인의 상당수는 주로 KLM측이 자신들의 책임과 이에 따른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 집요하게 설파한 내용이지만 사고 자체의 원인과는 무관하다. KLM 기장이 주변 정황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이륙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래 내열된 요인들은 사고 발생에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외의 테네리페 참사 관련 문서 중 적지 않은 문서가 사고의 직접 원인이 된 판잔턴 기장의 중대한 규정 위반 사실은 언급도 되지 않은 채 팬암기는 왜 C3이 아닌 C4로 들어갔나, 전파 간섭(Half Duplex)이 발생했나, 하필이면 왜 연료를 가득 채웠나 등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보다 이런 부수적 요인에 대한 언급이 더 긴데 이 사건을 다룬 해외 유명 다큐멘터리들의 영향으로 인해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다큐멘터리들부터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거대 항공사인 KLM의 치부를 되도록이면 숨기고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부수적 요인을 집중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팬암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라 각 잡고 팬암을 매도해도 소송을 당할 위험도 없다.[39]
결국 이 사고가 발생한 직접적 원인은 기장의 독단적인 이륙 결정이다. 이런 사고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이것만 가지고는 충분한 분량을 확보할 수가 없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세세한 배경과 상황을 전체적으로 훑는 경우가 많다.[40] 예로 기장이 독단적으로 이륙을 시도한 건 사실이지만 관제탑과 소통이 정확하게 이뤄졌다면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점도 사실이다. 때문에 이 사건 후에는 관제탑이 항공기를 이륙시키기로 최종 결심했을 때만 "이륙(take off)"을 언급하도록 바뀌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이다.
사고의 규모가 커지는 데 영향을 끼친 부차적인 요인은 다음과 같다. - 불안정한 교신 상황에서 앞에 짧게 들린 'OK'를 듣고 판잔턴 기장이 이륙 허가를 받았다고 확신했다는 잘못된 추측이 있다. 그 OK는 판잔턴 기장이 이미 이륙을 시작하여 활주로를 달리고 있는 와중에 나온 것이며 이 OK가 이륙 허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판잔턴 기장이 이륙을 시작했을 때 메우스 부기장이 이륙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판잔턴 기장은 나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여러 영문 문서에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 KLM 네덜란드 항공에서는 기장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했다. KLM기의 메우스 부기장과 슈뢰더 항공기관사는 관제탑에서 이륙 허가를 받지않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장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판잔턴 기장이 슈뢰더 항공기관사의 질문을 묵살했고 이 부분에 의심을 가졌더라면 바로 비행기를 정지시켰을 것이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테러 협박 전화에 대한 라스 팔마스 공항의 대처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대피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항공기를 조그마한 공항에 모조리 착륙하도록 강요한 것은 매우 미숙한 대처였다. 특히 사고기였던 팬암 1736편은 그란 카나리안 섬에 착륙을 위해 접근하려다 회항 지시를 받았을 때 2시간 정도 더 비행할 수 있는 연료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를 확인한 팬암 1736편의 그러브스 기장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며 섬 주변을 선회하는 게 좋겠다고 라스 팔마스 공항의 관제사에게 제안했지만 고지식한 관제사가 무조건 로스로데오 공항에 착륙하라고 명령하였다. 결국 팬암기는 울며 겨자먹기로 착륙하였는데 라스 팔마스 공항은 테러 발생 후 겨우 1시간만에 다시 공항 문을 열었다.
- 판잔턴 기장은 수 년 동안 수석교관으로 일하면서 실제 비행에서 제외되었고 시뮬레이터에서 새로운 파일럿 육성에 집중하던 상태였다. 이 시뮬레이션 경험이 실제 기체 운용의 감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현장감을 떨어트려 관제탑과의 연계 중요도를 잊게 했다는 추정이 있다.
- KLM기는 이륙 직전 연료를 가득 채웠는데 이 무게로 인해 이륙이 더더욱 늦어졌고 충돌 시 연료로 인한 대폭발이 일어나 모든 KLM기 사망자가 불에 타 죽었다. 한 치 앞도 분간을 못 하는 짙은 안개 속이었음에도 충돌 지점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위치했던 관제탑에서도 대규모 폭발 화염을 볼 수 있었다는 데서 폭발 규모가 가히 엄청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개가 없었다면 최소한 2~3km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KLM기와 관제탑은 서로 비표준 용어로 교신했다. 물론 판잔턴 기장이 허가 없이 이륙을 감행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에 관제사들이 상황을 잘못 인지하게 된 것이며 비표준 용어 교신은 사고의 근본원인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표준 용어로 교신하였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와 별개로 이 사고 후에는 뜻이 통하더라도 오인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서로 표준 용어로 교신하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 팬암기의 승무원들은 분명히 관제탑에 재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C4 유도로로 진행하였다. 비록 C3 자체가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출구이기는 했지만 반드시 관제탑에 통보하여 이를 명확히 했어야 했다. 관제탑이 실수했다면 관제탑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KLM의 잘못을 회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는 결코 되지 못한다. C3으로 나가건 C4로 나가건 팬암기는 활주로상에 택싱 중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렸고 관제탑뿐만 아니라 KLM기도 이러한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였다.
- 사건 경위를 읽어보면 각 비행기의 승무원들이 관제탑에 확인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짐작해서 결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관제사들의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승무원들이 관제탑과 통신에 피로와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 언급된 유도로 문제도 이런 의사소통 문제와 관련 있다. 테네리페 지역은 스페인 점령지로 스페인어가 표준어다. 그렇다 보니 관제탑의 영어 발음은 스페인어 억양이 강하였고 그래서 "first"와 "third"를 헷갈리게 하였다. 팬암과 관제탑과의 택싱을 위한 첫 교신에서는 관제탑이 "Third to the left okay(3번째에서 왼쪽, okay)"라고 말하자 항공기관사가 "Third he said(세 번째라고 하는데요)"라고 말하고 기장은 "I think he said first(난 첫 번째라고 들리는데)"라고 말하는데 이때부터 팬암 기 승무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세 번째 유도로, 즉 C3 유도로는 보잉 747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기장이 "I 'll ask him again(제가 다시 물어보죠)"라고 말한 뒤 관제탑에 "Would you confirm that~(중간 생략) ~to turn left at the third intersection(3번째가 맞는지 확인해 주시겠어요?)"이라고 third(세 번째)를 강조하여 물어봤고 이에 관제탑은 "The third one sir, one, two, three. Third. Third one."(세 번째가 확실하다고요. 하나, 둘, 셋, 세 번째. 세 번째 것이라고요)라고 대답했는데 이를 들은 팬암 기의 승무원들은 "One, two, four"(하나, 둘, 넷)이라고 관제사가 말하는 'third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가 four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추측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 관제사들은 대형기 이해가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로스로데오 공항은 소규모 비행기들만 이용하는 공항이다 보니 보잉 747 같은 대형기를 관제해 본 경험이 없었는데 이것이 문제의 C3로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 관제사들은 사고 당일에 있었던 축구 경기를 라디오로 듣고 있었을 정도로 관제 업무 집중도도 떨어진 상태였다. 관제 무선교신과 동일하게 청각만으로 모든 정보를 집중하는 라디오 방송을 틀어놨으니 실질적인 관제 업무 방해도는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 안개 때문에 관제탑이나 양쪽 비행기 모두 서로의 위치는커녕 자신의 위치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지상 레이더도 없던 탓에 관제탑은 서로의 교신에 모든 것을 의존했다. 하필 사고 당일은 유도등까지 나가 있었다. 양쪽 비행기 모두 켤 것을 요청했으나 작동되지 않았다.
- 당연히 한적한 시골 공항이었던 로스로데오 공항의 시설은 이런 대규모 사건에 대처하기엔 기반 시설이 좋지 못했다. 화재 진압은 고사하고 인명 구조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사망자가 더욱 증가했다.
- 소방대와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잔해는 KLM기였고 단 10m 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안개로 소방대와 구조대는 팬암기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악재로 인해 그나마 생존자가 있었던 팬암기의 구조는 매우 많이 늦어졌다.
- 관제탑의 관제방법이 달라졌다. 이 사고 후 관제탑은 항공기를 진짜로 이륙시킬 때만 "이륙(take off)"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조종사가 또 전파 간섭을 받았는데 이륙이라는 말만 듣고 이륙하는 걸 막기 위함이다.
원인에 대해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에 카나리아 제도 분리독립파 조직 MPAIAC의 테러 행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비 효과를 일으켜 사고까지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MPAIAC는 사고가 일어나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당황해서 "사고는 공항 관제사와 조종사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거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는 관광객들에게 카나리아 제도에 오지 말라고 누차 경고했다."라는 성명을 발표해야 했으나 결국 여론에 의해 테네리페 참사의 원흉 중 하나로 점찍히며 모두에게 적대받은 끝에 강력한 진압으로 해체를 당하게 되었다.
4. 사고 후
사고 후 공항 근처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한편 MPAIAC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사고는 조종사들과 관제사들 잘못이라고 해명했어도 6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어마어마한 사고라 이 해명은 스페인 본토와 카나리아 주민들 및 국제 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41] 그래서 이 사고로부터 2년 후에 사실상 활동을 접어버렸고 민주화된 스페인 정부가 1982년에 카나리아 제도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주면서 독립할 명분도 약화되어 공식적으로도 활동을 중단했다.
이 사고로부터 몇 년 뒤 비슷한 원인으로 인해 마드리드 공항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5. 유사(니어미스) 사고
이로부터 22년 후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거의 동일한 사고가 또 일어날 뻔했다. 심지어 하늘색 보잉 747(여기서는 KLM, 거기서는 대한항공)이 이륙하고 파란 줄무늬가 있는 하얀색 보잉 747(여기서는 팬암, 거기서는 중국국제항공)이 활주로 상에 있던 것도 완전 판박이다. 차이점은 테네리페 참사는 이륙하려는 하늘색 비행기(KLM)의 잘못(이륙 강행)으로 인한 사고지만 오헤어 니어미스는 활주로 위에 착륙한 흰 비행기(중국국제항공)의 잘못(방위 착오로 인한 활주로 복귀)으로 인한 사고다.테네리페 참사가 정확히 40주기를 맞이한 2017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최종 접근 중이던 에어 캐나다 A320기가 유도등이 켜져 있던 유도로를 자신들이 착륙해야 할 28번 활주로로 착각해 그쪽으로 고도를 낮추어 접근한 탓에 충돌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해당 유도로에서 이륙 대기 중이던 항공기가 4대나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대로 충돌했다면 무려 항공기 5중 충돌이라는 사상 최악의 참사를 낳을 뻔 했으나 앞쪽에서 대기 중이던 항공기 두 대의 빠른 경고와 에어 캐나다 조종사들의 잘못 인지로 즉각 복행이 이루어지면서 아무런 피해 없이 기적적으로 위기를 넘겼다. 자세한 내용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니어미스 사고 문서 참조.
2014년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에서 아르헨티나 항공 A340이 유테이르 항공 보잉 767이 착륙하려던 활주로에 허가 없이 들어왔으나 유테이르기가 복행해서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42] 특히 아르헨티나 항공 기체는 스카이팀 특별도장기였기 때문에 충돌했다면 스카이팀의 이미지도 하락했을 것이다.
2017년에 청주국제공항에서 중국남방항공기가 착륙 중이던 대한항공기의 앞쪽을 허가 없이 지나갔는데 다행히 충돌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대한항공기가 활주 중이던 싱가포르항공기의 앞쪽을 허가 없이 지나갔다. 때문에 엄청난 속력으로 달리던 싱가포르기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앞바퀴가 튕겨 나갔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싱가포르기가 19시간 지연되었다.
2023년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한 대한항공 1118편이 유도로의 정지선을 넘어서 정지하는 바람에 이륙하던 에어부산 8027편과 충돌할 뻔했다. 자세한 건 대한항공 1118편 - 에어부산 8027편 근접 사건 문서 참고.
2024년 도쿄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일본항공 516편과 이륙대기를 위해 활주로에서 이동하던 해상보안청 DHC-8(미즈나기 1호)가 지상 충돌한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건 도쿄 국제공항 지상 충돌 사고 문서 참고.
6. 매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23년 3월 19일자. |
메이데이 항공 사고 수사대 |
7. 둘러보기
역대 스페인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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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colcolor=#000> 사망 | 사건명 |
2023년 6월 21일
|
39 | 카나리아 제도 난민선 침몰 사고 | |
2022년 6월 24일
|
37 | 2022년 멜리야-모로코 국경 사건 |
-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17년 8월 17 ~ 18일24 2017년 스페인 연쇄테러 2015년 3월 24일150 51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 2013년 7월 24일79 스페인 갈리시아 고속열차 탈선사고
- [ 200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08년 8월 20일154 스팬에어 5022편 추락 사고 2006년 7월 3일43 발렌시아 지하철 탈선 사고 2004년 3월 11일193 마드리드 열차 테러 2003년 5월 26일75 62 우크라이나-지중해 항공 4230편 추락 사고 2001년 11월 14일22 우엘바 버스 전복 사고 2000년 7월 6일28 소리아 버스 충돌 사고
- [ 199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99년 9월 19일28 라무엘라 버스 사고 1998년 10월 8일21 로카호 침몰 사고 1998년 9월 25일38 파우큰에어 4101편 추락 사고 1996년 2월 28일29 안달루시아 버스 충돌 사고 1992년 8월 19일46 토레블랑카 버스 전복 사고 1992년 7월 3일43 오렌세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1월 14일43 플라잉 디스코 화재
-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87년 12월 5일23 케이손호 침몰 사고 1987년 7월 3일38 우에스카 관광객 버스 추락 사고 1987년 6월 19일21 1987년 바르셀로나 폭탄 테러 1985년 2월 19일148 이베리아 항공 610편 추락 사고 1983년 12월 17일82 알카라 20 나이트클럽 화재 1983년 12월 7일93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충돌 사고 1983년 11월 27일181 아비앙카 항공 011편 추락 사고 1982년 10월 20일30 토우스 댐 방류 사고 1982년 9월 13일50 스판탁스 995편 이륙 사고 1981년 9월 29일23 톨레도 버스 충돌 사고 1980년 10월 24일58 마르셀리노 우갈데 초등학교 가스 폭발 사고 1980년 9월 24일27 치리베야 건널목 사고 1980년 4월 25일146 단 에어 1008편 추락 사고
-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79년 10월 19일21 프랑스 세메악 스페인 관광객 버스 사고 1979년 7월 12일80 코로나 데 아라곤 호텔 화재 1979년 4월 10일49 오르비고 강 버스 추락 사고 1978년 12월 31일34 안드로스 파트리아호 폭발 사고 1978년 12월 21일32 무뇨스 건널목 사고 1978년 7월 11일217 로스 알파케스 참사 1977년 12월 30일28 산 미겔 데 라스 두에냐스 버스 충돌 사고 1977년 3월 27일583 테네리페 참사 1977년 2월 28일22 바르셀로나 열차 충돌 사고 1974년 11월 3일30 피골스 광산 폭발 사고 1973년 12월 11일23 보나폰테 직물 공장 참사 1973년 8월 28일24 휴에바 미 공군 C-141 추락 사고 1973년 8월 13일85 아비아코 항공 118편 추락 사고 1973년 3월 5일68 낭트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2년 12월 3일155 스판탁스 275편 추락 사고 1972년 8월 18일21 알리세다 버스 추락 사고 1972년 7월 21일86 엘 쿠에르보 열차 사고 1972년 1월 7일104 이베리아 항공 602편 추락 사고 1970년 7월 3일112 단 에어 1903편 추락 사고 1970년 4월 8일52 K-8 침몰 사고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68년 3월 15일28 로브레도 데 챠벨라 열차 충돌 사고 1967년 11월 4일37 이베리아 항공 062편 추락 사고 1966년 12월 18일30 비야 플랑카 델 캄포 열차 충돌 사고 1965년 12월 18일31 비야르 데 로스 알라모스 열차 충돌 사고 1965년 12월 7일32 스판탁스 C-47 추락 사고 1965년 10월 22일30 ~ 70 토레혼 댐 붕괴 사고 1965년 5월 5일30 이베리아 항공 401편 추락 사고 1965년 3월 31일50 이베리아 항공 CV-440 추락 사고 1965년 2월 10일34 그리센 열차 화재 1964년 10월 2일80 UTA DC-6 추락 사고 1961년 11월 29일23 클라벨 작전 비행기 추락 사고 1961년 1월 9일24 Hospitalet de Llobregat 열차 충돌 사고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59년 8월 19일32 트랜스에어 DC-3 추락 사고 1959년 4월 29일28 이베리아 항공 DC-3 추락 사고 1959년 1월 9일144 리바델라고의 참극 1958년 12월 4일21 아비아코 항공 SE.161 추락 사고 1957년 10월 28일21 헤타페 이베리아 항공 C-47 추락 사고 1957년 5월 9일37 아비아코 항공 111편 추락 사고 1954년 3월 24일34 과달레테호 침몰 사고 1953년 12월 4일23 아비아코 브리스톨 170 추락 사고 1951년 9월 12일39 STAAP DC-3 추락 사고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49년 2월 12일40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급행 열차 탈선 사고 1948년 12월 23일27 이베리아 항공 C-47 추락 사고 1947년 10월 16일41 TAI 브리스톨 170 추락 사고 1947년 9월 6일24 알칼라 데 에나레스 폭발 사고 1947년 8월 8일150 카디즈 폭발 사고 1946년 12월 17일20 신코 카사스역 열차 탈선 사고 1946년 6월 27일44 C4 잠수함 침몰 사고 1945년 11월 14일41 알쿠비야스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1월 8일23 차이나 클리퍼 추락 사고 1944년 1월 11일41 알레발로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월 3일78 1944 토레 델 비에르조 열차 충돌 사고 1943년 10월 15일20 주지사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월 3일200 ~ 250 토레 델 비에르소 참사 1941년 12월 3일22 롤라 강 열차 탈선 사고 1940년 12월 3일55 빌리야 데 에브로 열차 충돌 사고 1940년 9월 21일106 피나르 데 안테케라 폭발 사고
- [ 193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39년 12월 21일48 푸리타 페레즈호 침몰 사고
[1]
KLM 4805편 여객기 운항 총책임자인
야코프 펠트하위전 판 잔턴 기장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2]
현
테네리페 노르테 공항
[3]
원래 235명이었으나 이 중 1명은 로스로데오 공항 이륙 전 탑승을 지속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내렸는데 이 때문에 탑승인원에서 제외되었다. 그 승객은 사고 당일 KLM 4805편의 비행 일정에 동행한 탑승자 중 본의 아니게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천운을 맞이한 셈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후술.
[4]
역대 항공 사고 사망자 수 1위
[5]
조종실에 있었던 기장과 부기장, 항공기관사는 모두 생존했으며 객실 승무원 6명 중 4명만 살아남았다, KLM 4805편이 충돌할 때 조종실이 아닌 객실 상층부에 큰 타격이 가해졌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6]
이 기체는 세계 최초로 상업 운항을 개시한 보잉 747이다.
[7]
당시
고려원양 테네리페 기지장
[8]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항공 관련 사건은
9.11 테러지만 건물 붕괴 등 복합적 인명 피해가 포함된 사건이므로 논외.
[9]
이 사고도 747이 연루되었다. 사고 원인은 유압 계통 손상으로 인한 조종불능.
[10]
기내 잡지에도 실렸다.
[11]
얼마나 신망을 받았는지 사고 발생 소식을 접한 직후 KLM에서 사고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연락을 시도한 사람이었다. 사고 유발에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이자 그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12]
팬암은 전세기(=차터기)로 편명 운영시 운항할 기체의 테일넘버 3자리 앞에 숫자를 붙여 노선명을 명명했다.
[13]
승객의 대부분은 은퇴한 노년층 여행객이었다.
[14]
그래도 충돌 직후에는 좌석 등급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승객들이 살아 있었다. KLM 4805편이 본기의 동체 상부를 훑고 지나가는 형태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돌 직전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기 위해 팬암 1736편의 조종사들이 엔진 추력을 크게 올린 상태로 충돌한 것이 사고 후 제어되지 않는 엔진 폭주로 이어져 결과론적으로 악재로 작용했고, 무엇보다 극악의 기상 상황과 미비한 공항 시설의 한계로 인해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끝내 팬암 1736편에서도 승객 과반수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15]
B747,
L-1011,
DC-10 중 1대
[16]
그래도 이 공항들은 온갖 최신 안전장치가 구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운항하지 않을 뿐이지 원래는 대형기체가 문제없이 처리가 가능하도록 설계는 되었고 관제 능력은 그 당시의 로스로데오 공항이 비교할 바가 못된다.
[17]
KLM 승객 중 한 명이 찍었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KLM 승객이었다면 카메라와 필름이 다 타 버렸을 것이다.
[18]
공교롭게도 이 사고와 함께 500명대 희생자를 낸 유이한 항공 사고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역시 사고 당일 이착륙 장면, 기내 내부, 추락 직전 공중에서 표류하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남아있으며,
9.11 테러 중 하나인
아메리칸 항공 77편 테러 사건도 사고 당일 주기한 비행기 사진이 남아있다. 고사양의 휴대폰 카메라와 SNS가 널리 퍼진 2010년대부터 발생하는 사고들은 참사 직전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지만(EX:
말레이시아 항공 17편 격추 사건), 200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항공기의 마지막 모습이 남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사고 당일 찍은 마지막 사진이 남은 20세기 항공사고는 은근히 많은 편이지만 당시에는 항공사고가 지금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흔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비율상으로는 매우 적다.
[19]
사고 희생자의 손자도 이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20]
이는
당장 반드시 필요한 과정도 아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라스팔마스 공항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서 스키폴 공항까지의 연료를 채웠을 것이지만 도착이 지연된 상황에서 다음편 비행에서 밀린 시간을 줄이고자 어차피 지연된 김에 미리 마저 채워두자는 마인드였다. 다만 혹시라도 라스팔마스 공항이 끝까지 열리지 않아 스키폴 국제공항으로 회항하는 것을 대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KLM기 입장에서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지 몰라도 뒤에 있던 팬암기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시간까지 지연시키는
길막을 시전한 셈이다.
[21]
생존자들의 회고 및 사고 조사 보고서를 기반으로 이 참사를 재연한 프로그램인 《Crash Of The Century》에서는 사무장급의 스튜어디스가 기장과 기내에서 인터폰으로 통화하며 다른 스튜어디스들이 초과근무에 대해 궁금해한다며 기장에게 언제 비행기가 뜨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기장은 어떻게든 잘 구슬려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나도 지금 시간 아껴보려고 애쓰고 있다고 대답하는 게 전부였고, 객실 사무장은 인터폰 통화 후 짜증내며 욕을 한다.
[22]
때문에 Crash Of The Century에서는 판 잔턴 기장이 "승객을 아직 찾는 중"이라고 인터폰으로 조종실에 보고하던
스튜어디스에게 "지금 이륙하지 못하면 승객들이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 거란 말이야. 승객들하고 공항에 갇히고 싶은 거 아니면 터미널로 가서 걔네들 끌고 오라고! 당장!"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23]
원래 택싱은 활주로에 진입하기 위해 유도로를 이동하는 것을 일컫지만, 로스로데오 공항이 너무 작아 활주로를 직접 타고 택싱할 수밖에 없었다. 즉, 활주로를 타고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갔다가 뒤로 돌아 (방금 전까지 자신이 타고 온) 그 활주로를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 이륙하는 방식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구조적으로 택싱과 이륙 활주가 하나의 활주로에서 겹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고, 결국 사고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24]
후술된 팬암 기의 148도 회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작은 공항에서 대형기가 180도 유턴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판 잔턴 기장 입장에서는 더욱 짜증이 났을 수 있다.
[25]
안개 속에서 무섭도록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오는
보잉 747기를 발견한 것만 해도 충분히 경악스러운 상황이다. 게다가 팬암 1736편은 곧바로 이륙하여 라스팔마스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도 KLM 4805편이 앞을 가로막은 채로 급유와 승객 탑승 소동으로 시간을 끈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니 우리를 이륙하지 못하게 붙잡아 놓은 놈들이 지금 우리를 죽이려고 덤벼들고 있는 초유의 상황이니 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래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는 "Look at it! That idiot's coming!(저기 봐! 저 멍청한 놈들이 다가오고 있어!)"으로 순화되었지만 항공사고에 대한 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TV 프로그램 메이데이의 테네리페 참사 편 영상에선 그러브스 기장의 욕설이 원문 그대로 나온다. 서프라이즈에서도 "The crazy Aircraft is coming our enhance!(미친 비행기가 우릴 향해 돌진하잖아!)"라며 욕하는 것으로 재연된다.
[26]
관제사의 지시를 조종사가 잘 알아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창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27]
관제탑과 KLM 4805편 양측 모두 항공관제언어 기준에 맞지 않는 비표준 용어를 사용해 대화했음에도 소통의 혼선이 발생한 데 대한 근본적 책임은 이륙 허가 전에 막무가내로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 4805편 측에 있다. 관제사는 단지
이륙 허가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무단으로 이륙을 시도하는 정신 나간 조종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 뿐이며
그 정도의 미친 짓을 미리 예상하는 건 관제사의 책임 범위 바깥이다. 4805편을 조종한 판 잔턴 기장의 이륙 규정 위반이라는 중대한 과오는 명백한 사실이었으며 이러힌 비상식적인 상황이 관제사들의 혼선을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 후술하겠지만 팬암 1736편이 아직 활주로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감속하거나 정지하려는 일말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걸 보면 그 상황에서 항공관제 표준 용어를 써 가며 교신했다고 해도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28]
슈뢰더르 항공기관사의 두 번째 물음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상 최악의 참사 등에 따르면 "Pan Am is not clear."라고 나오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Is hij er niet af, die Pan American?"(Is he not clear, that Pan American?)이다.
[29]
사고 후 블랙박스를 수거해 조종실 음성기록을 분석한 조사보고서에는 '강한 말투'를 뜻하는 'emphatic'이라고 적혀 있다.
[30]
이러한 언어적 의미 차이 때문에 영어로는 Yes의 비격식적인 표현인 Yeah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31]
사실 안개만 끼고 비도 오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통 라이트를 켜는 게 일반적이라 와이퍼를 작동시키는 건 예상에 없던 지시라서 실수했을 수 있다.
[32]
항공기가 이착륙 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활주로 상황에 따라 제때 가감속하지 못하면서 활주로 끝지점을 넘어 이탈하는 사고를 의미한다.
[33]
예를 들어 이륙 도중 기체 또는 계기에 이상이 발생했으며 이게 비행을 중단하고 다시 정비, 점검을 받아야 할 수준의 큰 문제인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때 이륙결심속도를 넘지 않았다면 감속해서 이륙을 멈추고, 이륙결심속도를 넘었다면 그대로 이륙 후 다시 착륙한다. 무리해서 감속한다면 상술했듯이 오버런으로 활주로를 넘어가 더 큰 사고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
[34]
승강타를 이용해 기수를 들어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는 속도.
[35]
사고 상황을 재연한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만땅 급유만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가벼워져 급격히 기수를 들었을 때 빠르게 이륙에 성공해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랬다면 대단히 위험했던 충돌 위기 사건으로 종결되었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득 급유하는 것을 고집한 판 잔턴 기장의 독선이 마지막 순간까지 참사 방지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36]
보잉 747기나
에어버스 A380 같은 대형 여객기들은 탑승 좌석이 2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소수의 좌석이 위치한 위층을 '어퍼데크(upper deck)', 대다수의 좌석이 위치한 아래층을 '메인데크(main deck)'라고 한다.
[37]
이 여성은 날개와 엔진 사이에 깔린 채 다른 승객들에게 밟히며 중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켈리는 엔진이 폭발할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당기며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38]
발목이 부러진 상태였음에도 현장을 뛰어다니며 최대한 많은 방법으로 생존자 구조활동을 도왔다고 한다.
[39]
만약 팬암이 망하지 않고 여전히 세계적인 항공사로 남아있었다면 좀 더 중립적 입장에서 다루었을지도 모른다.
[40]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보다는 전반적인 배경이나 다른 원인 혹은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곤 한다. 범죄사건도 일반 기사에서는 범인에 대한 피상적인 내용만을 다루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처럼 한 시간 분량으로 사건을 다룰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이를 막을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고찰한다.
[41]
탓할 대상이 필요했던 정치권의 의도도 다분히 작용했다.
[42]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