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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9:58:21

태조(조선)/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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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뛰어난 궁술과 기가 막힌 용병술로 멸망을 향해 달려가던 고려의 운명을 수없이 돌려세운 무적의 장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세출의 명장이자 신궁' 이미지보다는 '조선을 세운 임금'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서브컬처 쪽에서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이성계가 세운 조선 일제강점기 군사정권에 의한 반동 등 온갖 편견 때문에 현대인에게 이미지가 안 좋게 박힌 것도 한 몫한 듯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성계와 조선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이후부터는 대중매체에서도 제법 다뤄지는 편. 무인 시절 그의 화려한 전적과 무력이 알려진 덕에 척준경과 함께 한국사 사상 최강의 무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다만, 아직은 무인으로서의 전적보다는 임금이 되는 과정이 아무래도 더 부각되는 편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겪었고 한국사의 왕조 창업 군주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라서 이성계와 그의 시기는 드라마에서도 자주 다뤄졌다.

한국사의 창업군주로는 고구려 고주몽, 백제 온조, 신라 박혁거세, 발해 대조영, 고려 왕건 등도 있지만 조선을 세운 이성계에 비하면 이들은 1번 밖에 드라마화되지 않았거나 드라마화되지 않고 있는 등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이전 시대는 정확한 사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히 모든 중요한 결정을 본인이 주도해서 했고 정도전은 이성계의 지지가 없으면 시체나 다름없었는데도 불구하고 < 용의 눈물> 이후의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정도전에게 모든 걸 맡기고 뒤에 앉아있는 마치 허수아비 군주처럼 묘사되기 일쑤. 하지만 그 묘사들과는 반대로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창업군주답게 막강한 실권 및 군권을 쥔 왕이었기 때문에 절대로 허수아비일 수가 없으며 오히려 왕권이 강력했다. 물론 실무에 관해서는 정도전과 조준이 거의 다 했고 그들이 하는 일을 승인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권력 그 자체는 태조가 온전히 갖고 있었고 중요한 결정들은 태조로부터 나왔다.

조선 최초의 쿠데타 1차 왕자의 난의 원인인 세자 책봉 문제도 드라마 등에서는 정도전 등이 이방석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걸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태조 본인이 주변의 만류를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느 정도 해석도 바뀌게 되었는데 2014년 KBS 드라마 < 정도전>에서는 신덕왕후의 호소에 이기지 못해 스스로 결정했고 정도전은 그에 동조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1] 2021년 KBS 드라마 < 태종 이방원>에는 정도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세자 책봉 문제를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한층 더 강화했다. 결정을 내리는 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 정도전>에서 이성계는 정도전을 단순히 신하로서가 아니라 그간 함께 해온 벗이나 동지로서 밀어주는 것이기에 허수아비로 묘사되지 않고[2] 명나라 사신 문제에서 신하들이 옥신각신하자 듣지비라고 고함을 쳐대며 정도전을 포함한 모든 신하들을 버로우시키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 태종 이방원>에서는 한층 더 나아가 모든 결정을 자기가 하고 신하들이 따라오게 하는 듯한 묘사로 한층 더 실록과 가까워졌다.

2. 목록

2.1. 드라마

2.1.1. 이성계

2.1.2. 소명

2.1.3. 황희정승

2.1.4. 예성강

2.1.5. 연지

2.1.6. 개국

2.1.7. 조선왕조 500년 - 추동궁마마

용의 눈물〉에서도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 김무생이 연기했다.[4] 횟수 자체가 27부작으로 짧고 후반부는 이방원의 치세를 중점으로 다루기 때문에 다른 작품에 비해서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 특유의 카리스마 포스는 어디 안 가서 엄격하고 후덜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정사 위주로 갔기에 〈용의 눈물〉에 비해서는 인간적인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 나온다.

2.1.8. 용의 눈물

배우 김무생이 또 태조를 연기하였다. 기본적으로 똑같은 연기였지만 실록을 바탕으로 하여 아들인 이방원을 향한 무한한 혐오감이나 정도전과의 우정 등 인간적인 태조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다. 김무생 씨의 카리스마는 유동근의 태종 이방원과 더불어 용의 눈물을 압도하여 지금도 이성계하면 김무생이라고 할 정도이다. 태조 어진과의 외모상 싱크로율이 높기도 했으며 가히 레퍼런스급의 명연기를 보여주었기에 지금도 김무생을 뛰어넘는 이성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자세한 것은 이성계(용의 눈물) 참고.

김무생이 열연한 이성계는 수많은 명장면이 있다. 그 중에서는 조사의의 난에서 진 태조가 돌아와 태종의 문안을 받으며 춤추는 장면이 있다. 태종은 "아바마마! 소자의 춤을 보시옵소서"하면서 통곡하고 태조도 이내 슬퍼하며 태종을 끌어안는 장면은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야사의 이야기들도 거의 재현하고 있다. 무학대사와의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일화도 나오며 태종을 죽이려고 천막에 대고 화살을 쐈지만 미리 하륜의 충고에 따라 기둥을 준비한 태종이 기둥 뒤로 숨고 태조가 쏜 화살이 기둥에 박혀 태종이 살아남자 나중에는 술자리에서 소매에 숨긴 작은 철퇴를 휘두르지만 태종이 피해내는 모습을 보고 "천운이로고. 과인이 이리하여도 막지 못하는 것을 어느 누가 막으랴"라며 체념하는 장면은 개국 초 조선 왕실의 비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2.1.9. 신돈

2.1.10. 대왕 세종

2.1.11. 신의

2.1.12. 대풍수

2.1.13. 정도전

2.1.14. 하녀들

2.1.15. 육룡이 나르샤

2.1.16. 장영실

2.1.17. 나의 나라

2.1.18. 태종 이방원

2.1.19. 원경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다.

2.2. 영화

2.2.1. 태조 이성계

2.2.2. 관상

2013년 영화 관상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언급된다. 단종의 신하들이 태조의 어진 앞에서 단종에게 수양대군의 상이 태조와 태종을 닮았다며 수양대군을 경계할 것을 간언한다.

2.2.3. 해적: 바다로 간 산적

2.2.4. 순수의 시대

2.2.5. 봉이 김선달

2.3. 게임

2.3.1. 징기스칸 4

파일:징기스칸4 이성계.png
일러스트 조선 건국자이자 당대의 명장이자 전투 80 이상의 무장치고는 좋게 말하면 미소년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포졸같이 생겼다. 특히 곱상하게 생겨서 뭔가 남장 여자 같다는 말이 있다.[11] < 삼국지 시리즈>로 따지자면 조운, 제갈량, 주유, 육손, 손책, 손견과 동급 수준의 게임 전체에서도 손에 꼽는 미남이다.

코에이의 <원조비사>와 < 징기스칸 4>에서도 등장한다. <원조비사>에서는 최영과 더불어 전투치 A를 받고 있다. 특히 이성계는 다른 능력치도 준수해 고려의 먼치킨 무장으로 포진하고 있다. <징기스칸 4>에서는 시나리오 2와 4에서 등장하는데 시나리오 2에서는 등장 시기도 늦고 능력치는 정치 72, 전투 75, 지모 67로 저평가되어 있는 편이며 내정 특기는 농업과 상업, 전투 특기는 연사와 공성으로 전투 특기에서 김통정에 다소 못 미친다. 다만, 병과 적성에서 보병 B, 궁병 A, 기병 B, 수군 B로 김통정에 앞선다. 이 능력치조차도 고려 장수 중에서는 최강급 능력치. 특이사항으로는 어째서인지 고려 개성이 아닌 남송 임안에서 등장한다.

그러다 시나리오 4에서는 정치 76, 전투 83, 지모 72로 모든 능력치가 상향 조정되었고 전투 특기로 화공 특기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연사와 화공 특기를 합쳐 궁병이나 궁기병을 이끌면 사기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내정 특기는 동일하게 농업과 상업으로 내정에도 고루 활용할 수 있지만 정석대로 플레이하자면 간첩 내지 개성 방어용으로 활용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특히 공성전에서 적으로 만날 경우 상대하기 대단히 껄끄럽다. 병과 적성도 상향 조정되어 수군 적성이 A로 상향되어 보병 B, 궁병 A, 기병 B, 수군 A가 되었다.

이 게임 전 시나리오를 통틀어 고려 무장 중에서는 최고의 장수로 명나라 서달이나 무로마치 막부 아시카가 요시미츠 등과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다. 코에이에서 고려 장수에게 이 정도 능력치를 준 것도 나름의 배려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한족, 몽골족, 여진족, 왜구와 모두 싸워서 이겼던 이성계가 완전 국내용 장수였음에도 전투치가 90대 중반을 찍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비교하면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성계의 능력치가 저평가된 것이 아니라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비롯한 일본 장수들이 지나치게 고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시나리오 1~3에서 고려와 달리 시나리오 4에서 고려의 희망인 것은 사실. 코에이가 한국 인물에 이 정도로 대우를 해준 건 처음이라고 봐도 좋다. 이와 비슷한 대우를 받은 건 < 삼국지 시리즈>에서 역사 무장으로 등장한 이순신 정도로 가장 좋게 받은 셈이다. 일러스트도 고려 장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상 인물 얼굴이 아닌 전용 얼굴이 있고 설명에서도 시나리오 4에서 중요한 장수라고 적혀 있다. 아무래도 징기스칸 4의 특징인 왕조 창업자 버프가 한 몫을 한 듯하다.

플스판의 시나리오 2에서는 다른건 다 원판의 능력치인데 전투만 85로 파워업키트 때보다 더 올라갔다. 수군 적성이 A인지라 일본 공략 페이지에서는 무로마치 막부에서 쳐들어오면 바다에서 다 요격하라고 써져 있다. 다만 고려를 무너뜨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건지 초기 충성도가 다소 낮아서 명나라, 북원, 일본으로 플레이하면 영입 대상 무장이기도 하다. 특히 원나라로 플레이하면 이성계가 게임상 수명도 긴 편인 데다가 연사와 화공을 동시에 가져서 주력군인 궁기병을 이끌기 딱 적합해서 최대한 빨리 영입해 오는 것이 좋다.

2.3.2. 노부나가의 야망

이미지[12]

열풍전 PS판에서 고대 무장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통솔 85 무력 74 지력 70 정치 72에 외교와 배락 특기를 가졌다. 적성은 수군 A, 족경 B, 기마 D, 철포 E. 주로 육전에서 말타고 이민족을 쫓아내던 무장인데 수군이 A고 육군은 바닥을 기고 있다. 징기스칸4에서도 그렇고 코에이가 또 조사를 대충 한듯하다. 그것 보다도 그놈의 일본 버프를 버리지 못했다. 대충 유명하고 일본 국적을 달고 있으면 무조건 고스텟을 고집하는 코에이의 고질병이 여기서도 또 도진 것이다. 천하명궁의 무력이 고작 70대인 것부터 그렇다. 왜구를 쫓아낸것을 크게 평가한 모양이지만 이성계군의 주력은 여진 + 고려인으로 이루어진 친위 기병대였고 전투 양상 또한 고려 내륙으로 침투해온 적들을 요격하는 형태였다. 특이하게도 열전을 보면 고려를 멸망시키고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잘못된 열전과 별개로 역사적으로 일본은 조선에 사신을 보낼때 조선 국왕을 조선 황제 또는 고려 황제라고 표현한 경우가 종종 있다.

2.3.3. 크래시 피버

한국 서버 스토리로 인게임에 등장하였다. 초위저드급 퀘스트 클리어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유닛으로 나오고, 상당한 업적들 때문인지 때문인지 웬만한 한정 유닛들을 압도하는 성능으로 나왔다. 게임의 스토리에서는 설정상 이방원의 무차별 숙청을 보다못해 근정전 액세스 키를 가지고 잠적하여 이성계를 찾으러 가는 게 퀘스트의 내용이다.

2.3.4.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

'Seonggye (Taejo)'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능력치는 행정, 외교, 군사 순으로 5, 4, 5이다. 참고로 이 게임의 능력치 상한은 6이다.

2.4. 문학

여말선초를 무대로 하는 작품에서는 시기상 무조건 등장한다.

2.4.1. 조선태조 이성계

김성한 작가 한국사 역사소설
요하 왕건 이성계 7년전쟁
파일:external/image.aladin.co.kr/8990496721_f.jpg

김성한 작가의 소설 《조선태조 이성계》에서는 주인공. 작가의 역사소설 중 1960년대 말에 완성된 최초 작품이다. 고려 공민왕 10년 박의의 난을 진압하는 모습부터 등장하며 왕자의 난으로 양위를 하고 물러나는 모습까지 그리고 있다. 이성계뿐 아니라 여말선초의 많은 인물들의 시각에서도 전개된다. 절판 및 재출간을 반복하다가 최근 2014년 재출간되었다.

2.4.2. 시골무사 이성계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417556_STD.jpg

황산대첩을 배경으로 한 소설. 여기서는 변방에서 오랜 시간 사투를 거듭하며 늙은 무장으로, 큰 공로에도 불구하고 동북면 촌뜨기라고 고려 권문세족들에게 무시당하고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에서 황산대첩의 대승을 이뤄내는 이성계의 고뇌를 다뤘다. 이성계를 주인공으로 두다 보니 그의 고난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한 측면이 꽤 있다. 개경에서 내려온 장수들이 멀끔한 갑옷을 입은 반면 이성계는 여기저기 사슬이 뜯긴 경번갑을 입었다고 묘사된다든지. 당시 이성계는 동북면의 사실상 지배자로 고려 안에서도 손꼽히는 거부였기 때문에 손상된 갑옷을 그대로 입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도전도 원래 역사보다 먼저 이성계의 부하로 나오는데, 이는 작가가 스스로 일부러 고증을 어겼다고 언급했다.

고증을 떠나서 보면 당시 왜구들의 침공으로 인한 지옥도의 묘사나 전투의 치열함, 긴장감 등의 재미는 확실히 있는 편이다.

2.4.3.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

2.4.4. 근육조선

직접 등장은 하지 않지만 조선 초 세종 치세 말기를 소설 시작점으로 잡고 있는지라 그 영향력은 상당한데, 분명 빙의된 수양대군이 입신체비를 정착시키기 이전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의 삼대운동 1350근을 달성하고 에센 타이시의 동생 마오나하이를 일반 화살보다 더 무거운 육량전으로 사살하고 그가 타던 한혈마를 메쳐서 목을 졸라 제압, 나름 황금씨족으로 한 덩치 하는 타이순 칸을 부흐로 겨루자며 애기다루듯 집어던지고 입고있던 두정갑을 맨손으로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풍채를 보면서 이성계가 북방을 휘젓던 시절을 기억하는 유목민들에게 이성계라고 불러대며 두려워하고, 양녕대군이 술자리에서 수양대군의 등판을 보고 태조대왕으로 착각하거나 이후 모종의 이유로 치매에 걸려 벽에 된장을 쳐바를 정도로 실성한 뒤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수양대군을 보면서 태조대왕님으로 착각해서 엎드려 싹싹 빌다 혼절하고 있으며, 과거 궁에 있던 태조의 강궁[13]을 복제한 물건을 수양대군이 철근 당기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가까스로 당기는 정도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입신체비 이후 시점으로 보더라도 공포스러울 정도의 근육괴물 무골이었던 듯 하다. 이 무골 혈통이 어디가지는 않아서, 왕족들에게 입신체비를 가르치던 주인공 수양대군은 자신을 비롯하여 종친들이 이상할 정도로 근육 양생이 잘 되는 것을 보며 내심 태조대왕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한다.

2.4.5. 명군이 되어보세!

조선이 대한으로 칭제건원하면서 고황제로 추존되었다. 그 불같은 성격은 저승에서도 여전해서 단종을 죽인 세조를 죽도록 패며, 지옥에까지 찾아가서 몽둥이찜질을 해댄다. 3부 외전에서 자신의 후손들인 무종, 경성군, 성친왕 등이 정체모를 잡귀에게 몸을 빼앗기고 자신이 건국한 조선이 그 잡귀의 나라가 되어버린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14][15] 무종(1부 재석)의 자손인 인조, 명조는 피가 이어졌어도 영혼이 다르다며 속으로는 후손으로 여기지 않지만 외부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손 취급은 해주고 있으며, 경조와 그 자손들의 경우 경성군이 몸을 빼앗기기 전에 낳은 자식이니 후손으로 대충 인정은 해주고 있다. 하지만 성친왕의 몸에 재석이 빙의하여 건흥제로 즉위하였고, 이후의 대한 임금들이 모두 건흥제의 자손들이 되면서 또 골머릴 앓게 생겼다.

2.4.6. 킹방원 메이커

주인공 최성한이 정도전에서 빙의한지라 당연히 본인이 나온다. 주인공은 첫 대면에서 '안 좋은 쪽으로 군주로서 대단하나 장수로서는 한국사의 손꼽히는 명장이자 인간흉기.'라고 언급한다. 역사나 대부분의 창작물처럼 주인공이 빙의한 정도전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며, 서신으로 신경전을 펼치는 주원장에게 빡돌아 대군을 몰고 가 쓸어버리겠다고 하지만 신하들이 '승산은 있으시겠지만 조선이 말라죽습니다.'라고 말릴만큼 장수로서의 능력 자체는 먼치킨이다. 아무튼 후계자 문제로 삽질한 원 역사와 달리 사망플래그를 피하려는 주인공 덕분에 이방원이 안정적으로 세자에 오르고 이방원도 원 역사보다 더 피를 최소화하며 흘리고 왕권을 강화해서 이성계는 편안한 말년을 보내며 개국왕의 위엄을 잊을만하면 보여줘 주인공이 진정으로 섬기는 왕임을 증명한다. 작중 여진족들을 계속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위해 이성계가 스스로 "나는 여진족이다. 너희들은 조선인이다 싫은가?"라고 발언하는 등 대사 하나하나를 굉장히 카리스마 넘치고 멋있게 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온다.

2.4.7. 내 조선에 세종은 없다

태상왕으로 유명무실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여진족과의 인맥이나 본인만의 무술실력과 왕 경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주인공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16] 주인공이 도입한 조선과 명나라의 전쟁을 가정한 워게임에서 처음 하는 것임에도 주인공을 탈탈 털어먹을 정도로 전략적인 부분에서도 죽지 않은 면을 과시하였다[17]. 특히 주인공 덕분에 나름 존재감이 살아나면서 여진족과의 관계 정립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중이다. 가장 압권인 부분은 옛 동북 9성을 얻고자 치매 연기까지 하며 정화를 방심케 한 것. 연기가 너무나도 감쪽같아서 옆에서 이를 보던 먼터무가 이성계가 저 모양이 됐으니 조선을 배신해도 뒤탈이 없겠지라 생각한건 덤. 그리고 이성계는 정화가 떠나자마자 "야, 갔냐?" 하고 연기를 그만두고는 먼터무를 갈궜다.

작중 초반에는 조사의의 난을 이제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후에, 자신에게 남은 것이 자신이 만든 나라 조선이 있다는 이제의 말에 증명해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이 고려를 멸하고 세운 나라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주인공이 한성 건설 사업으로 출장을 다닐 때 껌딱지처럼 따라붙으며 손자와 유대관계를 쌓아간다. 동시에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자 하기 위함도 있다. 자신이 했던 일이 모두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과 자신이 아직 나라에 필요한 현역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이며 이 탓에 의욕이 넘쳐나 예전보다 더 정정해진다.

주인공이 2차례에 걸쳐 생명의 위기를 겪었을 때[18] 손자와 나란히 앉아서 아들의 꾸지람을 듣는다거나, 이로 인한 외출금지령도 사이좋게 받고, 그 때문에 할 일이 없어지자 손자와 알까기(...)를 하거나 정안왕후의 가마에 함께 낑겨 타고 궁궐을 탈출하는 등 조손 관계에서 절친 관계로 진화하는 중이다. 압권은 입조했을 때 주인공과 썸을 탔던 보경장공주 주소화가 주인공의 품에 안기자 "말세로구나."라고 한탄하는 장면. 주소화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증손주를 기대하고 있는데 자신과 주원장의 피를 이어받은 괴물이 나올테니 주인공도 속 좀 썩어보라는 쪼잔한 이유에서 기대하는 것이다.[19]

이제를 보면서 왕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냐 생각하면서, 이방석을 세자로 정했던 것을 자신의 실수이자 흑역사로 여기고 있으며[20] 이방석을 세자로 세우는 실수를 했던 탓에 모두가 불행해졌다 후회하고 있다. 또한 이제에게 자신의 측근들을 소개시켜주면서 붙여주는데, 이제가 나중에 즉위한 후에 정도전과 이방석 등을 신원해줄 것을 약속받은 상태다.

입맛은 유목민족에 가까우면서도 상당한 미식가라 이제가 개발해내는 음식들을 맛보는 것에 취미가 붙었다. 특히 아이스크림의 경우는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만들자마자 "이런 걸 만들었으면 나부터 줘야지!"라고 먹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이제의 하드 비스킷에 데인다.

원 역사보다 4년을 더 살고 1412년 훙한다. 마지막까지 세자를 구한 건 은거울이 아니라 벽조목이라고 하는 등 입심을 잃지 않으셨다. 당연히 주인공이 제일 슬퍼했으며, 본작 전반부에서 주인공 이상의 존재감을 뿜어냈던 인물의 죽음에 독자들도 애도했다.

2.4.8. 티무르 사용 설명서

고려 왕실의 후예로 환생한 주인공 왕타르칸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려야 할 대상으로 언급된다. 이후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게 제위를 뺏긴 채 함흥에서 이를 갈고 있다가 주인공이 군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들어오자 스스로 견훤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타르칸에게 항복하였고 결국 타르칸이 조선을 함락하면서 복수에 성공하게 된다.

2.5. 기타

2.5.1. 이성계의 부동산

1994년에 국립극단이 창작극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연극이다. 이근삼 작가가 극본을 썼으며 복지원을 배경으로 물신주의 세태를 풍자하고 소외된 노년의 삶을 담은 내용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이병칠은 현실의 고통을 잊고자 자신을 '태조 이성계'라고 자칭하며 연극놀이를 하는 걸로 묘사돼 있다. 해당 캐릭터는 배우 김동원이 연기했는데, 그의 연기생활 은퇴작이기도 했다.( 상세 정보)

2.5.2. 역사의 라이벌

KBS1의 미니드라마식 다큐멘터리 프로. 1994년 11월 5일 방영분에선 배우 나한일을 비롯, 동월 26일 방영분에선 김진태, 1995년 4월 15~29일 방영분에선 김성겸이 각각 태조 역을 맡았다.


[1] 정도전은 이성계의 의중을 다시 물었고 이성계가 확고하게 나오자 그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2] 둘의 대화에서 "너를 믿으니 니 마음대로 해봐라"라며 밀어준다. [3] 왕과 비에서는 세조를 연기한다. [4] 김무생은 1967년 TBC에서 방영한 〈이성계〉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극본은 신봉승. 이 드라마는 방영된 지가 오래 되어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김무생이 당시 어떤 배역을 연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방원을 연기했을거라 추측된다. 해당 드라마에서 이성계 역은 김성원이 연기하였다. [5] 다만 상술되었듯 신돈에서 이진우가 지진희보다 먼저 청년 시절의 이성계를 연기한 적이 있기는 했다. [6] 다만 오른쪽 사진의 분장은 이성계 여진족설 항목에 근거했다고 해도 당시 여진족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오히려 고증오류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한 면이 있다. [7] 한술 더 떠서 태종(이방원)을 맡은 배우는 〈용의 눈물〉에서 세종을 연기했던 안재모다. [8]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대본 리딩 당시 제대로 된 동북 방언을 구사했더니 알아듣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부정확하지만 익숙한 북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은 "북한 사투리=서북 방언"이기에 내린 결정인듯. [9] 김기현은 김영철이 똑같이 이방원으로 나온 드라마 〈 대왕 세종〉에서는 영의정 유정현 역할로 출연했다. [10] 뒷목을 잡고 넘어가자 내관들이 부축하는 상황에서 "아, 놔봐봐 쫌...!" 하면서 성질내는 장면 역시 의외의 헛웃음을 선사한다. [11] 이 묘사는 오히려 의형제 이지란에게 어울린다. [12] 이미지에 대해 틀린 것이 있는데, 통솔 85를 정치 85로 잘못 설명했다. [13] 작중의 창작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어궁구(御弓具)라는 유물로, 일제강점기까지 보존되었던 흔치 않은 활유물이었으며 사실상 조선 최고의 명궁으로 알려져 있던 물건으로, 함경도 함흥의 조선 왕실 사당인 함흥본궁(咸興本宮)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불행히도 한국전쟁 중 함흥본궁이 불타버린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가 되어 현재는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 [14] 일단은 원래 세계의 이재석도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로 명목상 이성계의 직계자손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대 대한민국에 전주 이씨의 숫자는 무려 260만명이 넘으며 그 중 대다수가 조선 말기에 족보를 위조했기 때문에 이재석이 진짜 이성계의 자손일지는 불명이고 본인도 확신하지 못한다. [15] 독자들은 이러한 태조의 태도를 두고서 '원 역사의 조선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나서도 그런 소리 할 수 있을까?', '그 잡귀 덕에 황제로 추존돼서 제사상이랑 공물 받고 있으면서 배부른 투정이나 한다' 정도로 여기는 중. [16] 한편 주인공은 이성계에게 더는 내세울 구심점이 없기에 2차 조사의의 난을 계획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방원을 몰아내고 이제를 이방과의 양자로 들여서 즉위시키면, 아끼는 손자가 왕이 되는데다가 이방원에 대한 복수도 이루는 것이기에 저지를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독자들은 '할만한데?' 라면서 동감하는 중. [17] 물론 주인공은 명나라 진영답게 몇 번이나 군대를 징병하여 중원 특유의 인해전술로 밀어붙여 결국 승리를 따냈다. 특히 여진족과 조선 본토를 분단하자 그 뒤는 시간 문제였다고. [18] 한번은 거제도에서 왜구의 습격을 받았을 때 도망치지 않고 직접 조총을 쏘면서 싸웠을 때, 두번째는 명에 입조하러 간 길에 얻은 가축을 노리고 습격한 여진족과 싸웠을 때. 태종이나 원경왕후나 실록 공인 아들바보인지라 주인공은 창덕궁 복귀와 동시에 등짝스매싱을 동반한 갈굼에 시달려야 했다. [19] 무턱대고 꼬장을 부리는건 아니고 첫 등장부터가 주인공 때문에 조사의의 난이 폭망한것부터 시작해서 주인공이랑 엮여서 엿을 먹은 일들도 있었던 탓에 너도 고생 좀 해봐라라는 심보에서 그러는 것이다. 그 중에 압권인 것은 노년에 접어들어 치아가 약해진 이성계에게 주인공이 돌로 쳐서 깨먹으려다 돌이 깨졌다는 전설의 쉽비스킷을 먹였던 것. [20] 이방석은 세자로 지정되었을때 덮어놓고 기뻐하기만 했던 반면, 세자가 될 것이라는 암시에 주인공이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왕관의 무게를 제대로 알고 있는 손자야말로 왕위를 이을 재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주인공은 세자 임명이 아닌 결혼과 관련된 주제로 착각해 현대인의 시점에서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걸 탐탁지 않아 하고 있던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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