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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21:07:10

양 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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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웬리
Yang Wen-li · ヤン・ウェンリー · 楊文里(양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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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은하영웅전설 DNT.양 웬리.jpg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OVA 후지사키 류 코믹스 DNT }}}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176cm(원작[1], DNT)/172cm(OVA)[2], B형
생몰년 SE 767. 4. 4. ~ 800. 6. 1. 02:55 (33세)
가족 관계 양 타이롱(아버지),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어머니)
프레데리카 그린힐(배우자) 율리안 민츠(양아들)
국적 및 소속 자유행성동맹 자유행성동맹군 → 양 비정규함대 → 엘 파실 독립정부 엘 파실 혁명군
최종 계급 엘 파실 혁명군 원수[3]
최종 직책 엘 파실 혁명군 사령관[4]
기함 히페리온 레다 II호 율리시스
서명
파일:yang_wenli_sign.png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OVA 토미야마 케이
파일:일본 국기.svg 외전 고다 호즈미
파일:일본 국기.svg 황금의 날개 하라 야스요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OVA 백순철
파일:일본 국기.svg DNT 스즈무라 켄이치[5][6]/ 엔도 아야(소년)[7]
파일:미국 국기.svg DNT 이언 싱클레어/ 아피아 유(소년)
배우 파일:일본 국기.svg 2011년 연극 카와무라 류이치 다나카 케이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라즈카 연극 오츠키 토마, 린조 키라
파일:일본 국기.svg DNT 연극 코바야카와 슌스케
1. 개요2. 작중 행적
2.1. 주요 이력
3. 캐릭터 소개
3.1. 가족 및 연인 관계3.2. 이름과 외모3.3. 사생활3.4. 성격3.5. 술과 홍차3.6. 사상
3.6.1. 민주주의3.6.2. 국가관3.6.3. 평화주의3.6.4. 신념에 대한 혐오3.6.5. 무신론3.6.6. 반 영웅주의
3.7. 군사적 능력
3.7.1. 전략 측면3.7.2. 전술 측면3.7.3. 기타 측면
3.8. 정치적 능력3.9. 저술 활동3.10. 별명3.11. 유명세
4. 기함5. 모델이 된 인물?6. 어록7. 양 웬리의 희생자 일람8. 게임에서의 일면9. 여담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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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자유행성동맹군 엘 파실 혁명군에 복무한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원수(Fleet Admiral, FADM). 작중 민주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주인공이자 은하제국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비견되는 캐릭터.

일본의 대중문화작품에서 무수히 등장한 군인 캐릭터들 가운데서도 ‘불패’와 ‘무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최고의 지략가이자 명장.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이상적인 면모를 보인다 해도 될 만큼 굳건한 신념을 지녔고, 유능하면서도 일상에서는 게으른 인간적인 면모까지 어우러져,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될 정도로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게으른 천재모범적인 민주주의자의 상징격인 캐릭터이다.

양 웬리 개인의 무력이 낮은 것도 있어서[8] 흔히 지략형, 지장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실전이 벌어지기 전에 꼼꼼하게 전술을 짜놓는 타입이지만, 실제 전투가 시작되면 엄청난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작전의 큰 줄기조차 상황에 따라 즉시 바꿔가며 다른 전술을 사용할 정도의 유연함을 갖추고 있다. 또한 물러나야 할 때 미련없이(어떤 의미에선 겁쟁이처럼 보일 정도로) 군을 돌리는 것만큼이나 추격할 때 매섭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을 지녔다. 공격이 시작되면 그 저돌맹진 비텐펠트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과단성을 보이며 대부분이 공격을 못버티고 함대가 전멸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양 웬리는 단순한 지장이라기보단 용장과 지장의 면모를 전부 갖춘 이상적인 장수라 할 수 있겠다.[9]

2. 작중 행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양 웬리/작중 행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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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주요 이력

3. 캐릭터 소개

파일:attachment/양 웬리/yang.jpg
파일:yang dnt.jpg
OVA DNT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함께 은하를 양분하는 두 주인공 중 하나. 그런데 캐릭터 대 캐릭터의 비중은 양 웬리 쪽이 더 많다. 사상이나 심리에 관한 서술도 양 쪽이 상당히 세밀하며 은하제국 측 서술이 라인하르트 외에도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오베르슈타인 등 다양한 인물에게 분산되는 데 반해 동맹 측의 서술은 대개 양과 율리안 민츠 정도에 집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양과 라인하르트가 만나는 유일한 장면인 버밀리온 성역 회전 직후의 회담에서도 양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가 이어진다. 물론 라인하르트가 진 주인공이고 양(나아가 양에게 무게를 실어준 저자 본인일 수도)의 사상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10][11] 양 웬리의 능력과 존재감이 아예 대놓고 자유행성동맹이 쥔 마지막 비장의 카드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라인하르트 휘하의 수많은 은하제국군 명장들에게 여러번 참패를 안기는 엄청난 수준을 자랑했다. 제국에서 양 웬리와 그나마 맞붙어 볼 수준으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사람은 라인하르트나 키르히아이스 정도 뿐이었으며, 그나마도 라인하르트는 본인이 직접 양 웬리와 상대했던 두 차례 전투( 버밀리온 성역 회전 회랑 전투)에서 모두 전술적인 패배를 겪었다.

이따금 ‘전장의 심리학자’라 불릴 만한 능력을 보이기도 했는데, 후술할 양 웬리의 희생자 목록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 장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제국군 중 최정예인 라인하르트 휘하의 장수들도 양 웬리에게 최소 한 번씩은 박살 났다. 심지어 라인하르트 본인도 전술적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 성격을 억누르지 못한 게 원인이 되어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하마터면 저승으로 갈 뻔했다.[12]

단, 전략적 추진력에서는 라인하르트의 승리. 두 사람이 각 진영에서 중심인물로 떠오른 이후의 대결을 보면 라인하르트는 전황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양 웬리는 고작해야 요새 및 주둔 함대 사령관일 뿐이라 행보에 제약이 너무 많았다. 또한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판단되는 아이디어를 캐치하면 곧장 전략·전술 단계에서 실행에 옮겼지만 양 웬리는 지금 즉시 전략적 우세를 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다면 아예 배제하고 다른 방식을 찾았다. 스토리 상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전략적 성과에 대한 차이는 이러한 지위와 신념의 차이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13] 더욱이 라인하르트는 일국의 총사령관이자 황제로서 압도적인 군세와 자신과 손발을 맞출 우수한 장군들을 대거 거느리고 있지만, 양 웬리는 고작 13함대의 제독인 것이 이미 풍전등화에 놓인 동맹의 상황으로 인해 매우 부족한 병력과 장수들을 가지고 전장에 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라인하르트보다 많은 핸디캡을 가지고도 전장에서 대적했을 때 오히려 승기를 잡아가는 양 웬리가 장군으로서 호적수라 여겨지는 라인하르트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이 중평이다.

은하영웅전설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대체적으로 전술적으로도 라인하르트보다 훨씬 앞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라인하르트의 전술은 사실 적이 약하거나, 무능하거나, 내분때문에 먹힌 것이지 상대방이 기본이상을 하면 전혀 힘을 못쓰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론무쌍 슈타덴이나 고루한 면이 있는 메르카츠 쪽이 정석에 가깝고 현실 전술에서도 더 잘 먹히는 편이며, 라인하르트의 전술은 상당히 불안한 요소가 많다. 버밀리온 회전에서도 굳이 이상한(?) 겹겹이 전술보다는, 함대전으로 밀어붙였어도 양웬리 쪽이 훨씬 고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급 지휘관들이 라인하르트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냥 뭉쳐서 싸우는게 훨씬 유리했는데 초기에 희한한 전술로 양웬리를 고전시키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인하르트는 운이 좋아서 이기는 경우가 많았을 뿐, 전술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상당히 불안한 요소가 많다. 외전에서도 양 웬리의 뜻이 받아들여져서 전 포문을 열어 공격을 당했다면 문벌귀족들의 뜻대로 옆구리를 얻어맞고 부하들과 사이좋게 산화했을 가능성이 높고, 아스타테 회전에서도 4함대가 개박살이 난 상태에서 2함대와 6함대가 뭉치기라도 했다면 패배했을 가능성이 높다. 뭔가 변수가 조금만 안 맞았어도( 장 로베르 랍의 조언이 받아들여졌다던가) 패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투였다. 한마디로 기책과 상대의 무능에 기대는 전술이 너무 많아 불안한 요소가 많으며 어떤 면에서는 이론무쌍 슈타덴보다도 더 무능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양 웬리는 반대로 상황이 너무 불리했기에 기책을 썼을 뿐, 기책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며 정석적인 함대운용을 더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상황이 너무 어렵고 불리하기 때문에 기책을 썼으며 그 기책이 실패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염두에 두는 전술적인 시야는 라인하르트보다 한수 혹은 두수 위이다.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순간에서의 평정심 유지 측면에서도 양 웬리가 앞선다. 후술할 전술적 능력에서도 언급되지만 라인하르트는 평소에는 냉정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군을 통솔하지만,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하는 양 웬리에 비해 종종 감정절제를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라인하르트는 기본적으로 감정적이고 호전적인 인물로 자신의 자존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격의 기회가 오면 비텐펠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모하게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성향 차이가 두 사람의 기량을 가른 근본적인 원인이란 분석이 많다. 게다가 위기대처 능력도 양 웬리가 압도적으로 우위인데, 그가 투입된 상황들이 거의 대부분 주전력이 분쇄당해 패색이 짙어진 전역에 투입되어 상황을 반전시켜야 하는 소방수 임무였다. 반면 라인하르트는 유년학교 시절부터 가진 기반은 미약했어도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만나 성취해 왔다. 그로 인해 양 웬리처럼 자신에게 절망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거의 만나보지 못해 위기에 빠지면 평정심이 무너져 격분하거나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있다. 냉정한 참모 로이엔탈이 곁에 없으면 더더욱 그런 성향이 강해진다. 이는 그가 아무리 군재가 탁월하다 해도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이다.[14]

3.1. 가족 및 연인 관계

아버지는 무역상인인 양 타이롱, 어머니는 카트린느 르클레르 양으로 어머니는 5살때 급성 심장질환으로 아버지는 16세때 우주선 사고로 사망했다. 어머니와 관련한 이야기는 별로 없지만 아버지쪽은 양 웬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 외에 타이롱의 전처도 있지만 양 웬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혼해서 별다른 접점이 없다. 그래도 양 웬리는 아주 미련이 없지는 않았는지 엘 파실 전투 이후 어느 언론사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자 조금 동했지만 민폐만 될 것 같아 거절했다.

아내는 프레데리카 그린힐 엘 파실 전투에서 처음 만났다. 이때 양에게 빠진 프레데리카는 양을 만나겠다고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8년 뒤 13함대가 창설되자 알렉스 카젤느의 추천으로 양의 부관이 되어 다시 함께하게 된다.

다만 양은 원래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프레데리카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원래 좋아하던 사람이 있기도 했고 본질적으로 군인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죽여 불행하게 만든 자신이 행복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버밀리온 회전이 시작하기 직전에 본인이 직접 청혼했고 전투가 끝난 후 함께 퇴역하고 결혼한다.

그렇게 해서 퇴역군인으로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양에 대한 동맹정부와 렌넨캄프의 경계로 결혼한지 고작 2달만에 군인으로 복귀하게 된다. 거기다가 양 웬리 암살사건으로 양이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결혼 생활은 단 1년 남짓으로 끝나고 말았다. 덧붙여 이러한 관계로 장인은 드와이트 그린힐이 되는데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로 적이 되어 버렸다.

친자식은 없으며, 양자인 율리안 민츠는 일찍이 트래버스 법에 의해 부자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14살으로 부자관계를 맺기에도 형제관계를 맺기에도 애매한 차이인지라, 대외적으로도 후세에서도 부자 관계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아버지", "아들" 같은 말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일단 양이 율리안을 잘 키우긴 했다.

연인은 8년간의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고 결혼까지 한 프레데리카도 있지만 실은 그 이전에는 제시카 에드워즈를 좋아했다. 사관학교 시절 만난 것을 시작으로 친해지긴 했고 남몰래 연심도 있었지만 제시카가 친구인 장 로베르 랍이랑 약혼해서 물 건너간다. 그 이후에도 좋아하는 감정을 여전히 가지긴 했지만 끝내 그녀가 죽을 때까지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헌데 흥미롭게도 제시카 역시도 양에게 연심이 있었다. 그러나 끝내 제시카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15]

3.2. 이름과 외모

이름 양 웬리의 일본어 카타카나 표기는 ヤン・ウェンリー, 영문 표기는 Yang Wen-li다. 성씨(姓氏) 표기를 놓고 '얀'과 '양'이 대립했지만 한자 표기가 楊文里(양문리)인 것으로 알려져[16] 양으로 굳어졌다. 을지서적판으로 소개되었을 때 왠지 웬리라고 표기되어서 아직도 얀 웬리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17]

그런데 이 '양문리'라는 이름은 병음표기로 하면 Yáng Wénlǐ이로 영어 표기는 같지만, 실제 중국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하면 양 웬리가 아닌 '양 원리'가 된다.[18] 손문을 한국에서는 쑨원이라 표기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애초에 양 웬리의 이름은 카타카나 표기만 있었고 한자 표기는 없었는데, 다나카 요시키가 나중에 영어 표기만 염두에 두고 楊文里(양문리)라는 한자 이름을 붙인 것이다.[19] 한국과 일본의 중국어 표기 방식의 차이 문제도 있는데 앞에 예를 든 쑨원의 경우 일본에서는 スン・ウェン(슨웬)으로 적는다. 따라서 중국계 이름의 한국어식 표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래저래 양웬리가 아닌 양원리가 돼야 맞지만, 소설 본편에서 중국이름이 무엇이다 밝히지 않으니 지켜서 번역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다 보니 중국 대만의 정발 번역본에는 이름이 楊威利(양웨이리/양위리)로 바뀌었고, 애니 더빙에서도 이 이름이 채택되었다. 중국인 캐릭터가 본토에서 이름이 변경되는 기묘한 케이스.[20]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중국계,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쪽 먼 조상이 중국인이다. 양 웬리가 활동하던 시대에 중국은 이미 1500년도 더 전에 멸망한 국가이고, 은하연방 시대 이전부터 혼혈이 엄청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양 웬리에게 남아 있는 중국인의 유전적 특징은 극히 희미할 것이지만. 이름이 중국계인 것에 대해 다나카 요시키 한 쪽이 독일계 이름으로 통일되어 있으면 다른 쪽은 복합문화계 이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예 독일어와 거리가 먼 이름을 짓다가 동양계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외모는 키 176cm에[21] 흑발,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 OVA에서 설정한 몸무게는 65kg.[22]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계지만, 동양인의 모습이 확실히 보이는 혼혈이다. 양 웬리도 나름대로 준수한 외모를 가졌지만 화려한 금발에 짙은 아이스 블루 눈동자의 소유자로, 외모부터 엄청나게 튀는 미청년 라인하르트와 비교하면 상당히 평범하고 수수한 외모이다.[23] 겉모습만 보면 그에게 따라붙는 '불패의 마술사'니 '기적의(미라클) 양'이니 하는 화려한 별명이 어울리기는 커녕, 오히려 군대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젊은 학자 같은 인상을 준다.[24]

양 웬리를 포로 교환 때 직접 만나 본 제국군 장성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는 부하이던 나이트하르트 뮐러에게 "그 양 웬리는 겉으로는 전혀 군인 같지 않으나 오히려 그래서 그게 더 무서운 점입니다."[25]라고 말한다.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부사령관으로 참전한 뮐러는 사령관인 칼 구스타프 켐프에게 이 말을 전했는데, 군인 티도 안 나는 겉모습에 실망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얕잡아 보게 되어 나중에 크게 당할 수 있다는 불안함에서 나온 경계심의 표현으로 추측된다.

나중에 버밀리온 성역 회전이 끝난 뒤 은하제국군 기함 브륀힐트를 방문한 그의 실제 모습을 본 제국군 장병들은 의외로 평범한 양의 용모에 "저게 양 웬리야...?"라며 수군댈 만큼 놀랐고, 심지어 "내가 저런 놈한테 졌다니..."라며 경악했다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던 자신을 뉘우친 제독도 있었을 정도다. 반대로 열폭해서 결국 사고를 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자신은 외모에 좀 자신이 있는지, 피보호자인 율리안 민츠에게 자기도 제국의 라인하르트 못지않다며 농을 걸었지만 그냥 무시당했다.[26] 참고로, 만화판의 작가인 미치하라 카츠미는 코믹스판 양의 디자인 모델은 젊은 시절의 다나카 요시키라고 발언했으나 다나카 선생은 이를 부정했다.[27]

소설판에서는 제시카 에드워즈 에드윈 피셔처럼 공적·사적으로 소중한 인물이 사망했을 때는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가리고 다녔다는 묘사가 나오지만, 코믹스의 아주 일부 컷을 제외하면 선글라스를 거의 끼지 않고 나온다. OVA에서는 피셔의 전사 보고를 접한 뒤 다른 간부들과 추모의 경례를 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DNT에서는 스타디움 학살 사건과 제시카의 사망 이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양 웬리는 군인이라는 직업을 싫어했지만 그의 결혼식에서 예복을 입은 모습을 본 카젤느는 역시 군복이 가장 어울린다고 평했다. 물론 독설가인 캬젤느 답게 군복 모습이 멋있다고 칭찬했다기보단 그나마 가장 어울렸다는 투로 말한 것.

3.3. 사생활

파일:뻗은양.jpg
'불패의 마술사'로 불리는 전장에서의 모습과 반대로, 실생활에서는 흐리멍텅하고 어중간한 면모가 많은 데다 늦잠도 심하고 낮잠이 생활의 일부인 훌륭한 귀차니즘의 실천자다.[28][29][30] 가사는 양자인 율리안에게 떠맡기고 있으며, 율리안이 없으면 집이 돼지우리가 된다(…). 게다가 자신의 편의에 따라 문제가 될 만한 행동도 가끔 했는데, 자신의 작전을 제시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되자 눈앞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기함 함교에서 잠을 자 버렸다. 일개 병사도 아닌 장교, 심지어 작전 계획과 실행을 직접 보조하는 참모가 전투 중 함교에서 잠이나 자고 있는 모습에 양 웬리에 대한 신뢰가 아주 조금이나마 생겨나는 중이었던 드와이트 그린힐 대장이 크게 실망했고, 이 때문에 사령부에서 제 2함대 참모로 좌천되기도 했다. 그린힐 대장이 동맹군에서도 온화하기로 정평이 난 사람이라 좌천 정도로 끝났지,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 지 모른다는 작중 언급도 있었다.[31]

다만 바로 다음 해 아스타테 회전 직후 지휘관으로서 최전선에 나서게 되는데, 전투가 시작되던 때 미리 시스템에 입력해 둔 작전이 기막히게 맞아들어 동맹군 3개 함대 중 두 함대의 기함이 파괴되는 등 극심한 피해를 본 상황에서도 1개 함대 규모의 잔존 병력을 이끌고 귀환에 성공했던 것. 이 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제13함대의 사령관으로 부임한다.

또, "받은 월급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말도 입에 달고 산다. 그래도 책임감은 강하고, 본인의 능력도 탁월해 발휘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제대로 일해서 월급 이상의 성과를 낸다. 어쨌거나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물.

게다가 개인적인 일에는 꽤 소심해서,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는 성격. 알렉스 카젤느의 딸인 샤를로트 필리스 카젤느가 율리안은 오빠, 프레데리카는 언니로 부르고 양은 아저씨로 부르자 상처받았다. 양이 후에 "왜 당신은 언니고 난 아저씨지?"라며 살짝 불만스런 투로 말했는데, 프레데리카가 "아내가 아줌마로 불리면 좋겠어요?"라 되묻는 바람에 말문이 막혔다.

율리안의 일기 형식으로 서술되는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에서는, 서른 살이 되는 걸 비관하며 연초부터 생일까지 줄기차게 궁상을 떨기도 했다.[32] 이런 것을 다 보고 자랐으면서도 양에게 한없는 존경의 마음을 바치는 율리안이 대단할 뿐이다. 외전 3권인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를 보면, 학창시절의 율리안에게 양 웬리를 그다지 안 좋아하는 선생이 "넌 뭐 때문에 저런 사람을 존경하냐?"라며 비꼬듯 묻자 율리안도 "게으른 점이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비꼬듯 받아친 일화가 있을 정도.[33]

온갖 나사빠진 면모 때문에 잘 부각되지 않지만 기계치이기도 한데, 기계나 장치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니 그냥 이런저런 핑계로 잘 쓰지 않는다. 율리안이 양의 집에 처음 왔을 때, 가사보조용 홈 컴퓨터는 먼지만 쌓인 무용지물이었다. 그나마 친숙해진 물건이 TV 리모콘인데, 율리안의 증언에 따르면 그나마도 안 쓰던 물건이었지만[34] 꼴보기 싫은 욥 트뤼니히트가 최고평의회 의장이 되고 방송에 자주 얼굴을 드러내자 양 웬리는 트뤼니히트가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채널을 돌려버렸다. 이 짓을 몇 번인가 반복하다 효율적으로 채널을 돌리기 위해 리모콘을 받아들였다. 보기 싫은 얼굴을 빠르게 치워버릴 수 있어서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척 검소하다. 선글라스를 사러 가서 30분 동안 여러 제품 설명을 듣곤 가장 싼 걸로 샀고, 실제로 먹을 것도 그냥 피시 앤드 칩스 같은 음식에 보통 홍차나 술을 곁들어 먹으며 화려한 취미 같은 것은 없다. 그나마 돈 쓰는 쪽이 있다면 역사책을 사는 정도.[35] 이렇기에 무슨 부정부패 같은 건 필요도 없고, 모아둔 돈도 꽤 되는 편이다.[36] 오죽하면 율리안에게 학비 반환 같은 건 걱정 말라면서 내가 모은 저축금이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할 정도.

이런 것이 동맹에서도 워낙 알려져서인지 양 웬리는 백전백승 불패명장이란 점과 더불어 엄청나게 검소하다는 점으로도 인기 요소가 있다. 그래서 양 웬리를 제거하려던 헬무트 렌넨캄프는 양에게 터무니없는 공금횡령죄를 뒤집어 씌워, 양 웬리가 검소하다는 세간의 인식을 뒤엎으려는 음모까지 꾸몄다. 얄궂게도 라이벌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역시 엄청난 군사적 능력치와 매우 검소한 점이 비슷했다. 근데 뭐 라인하르트 진영도 웬만하면 다 검소하다. 로이엔탈은 그나마 물려받은 부가 넉넉해서 좀 쓰고 다닌다는 것 같지만...

다만 기억력이 젬병인건지 아니면 어릴 적에는 지금과는 다른 면이 있었던 것인지 양 웬리는 처음 율리안 민츠를 보았을 때 자신이 청소년일 적에 어디 책임을 져야 할 여성문제를 일으켰는지 생각했다고 한다(...). 포플랭의 첫경험이 17세였다는데 양 웬리가 생각한게 사실이면 포플랭은 후배밖에 안 된다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3.4.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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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이미지는 모살미수 사건을 겪은 양 웬리 일행이 하이네센에서 탈출한 뒤, 오른쪽 이미지는 제국령 침공작전 당시 키르히아이스 함대에게 항복 권고를 받았을 때 "우리뿐이라면 그것도 괜찮겠지만..."이라고 자조하는 장면. 그 말을 내뱉은 후 부관과 참모들이 눈이 휘둥그래져 쳐다봤다.

성격은 온화한 편에 속한다. 원작에서는 언론에 비친 양의 모습을 보고 언론 관계자 및 일반 국민들 사이에 "온화한 신사"로 통한다고 언급된다. 애니메이션 극장판 '내가 나아갈 별들의 대양'( 제4차 티아마트 회전)을 보면 양의 방 책상에 팬레터들이 쌓여 있는데,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엘 파실 탈출작전으로 생긴 좋은 이미지가 매우 오래 갔던 모양.

하지만 율리안이 여러 번 말한 것처럼, 마냥 온화하기만 한 대인배는 절대 아니다. 원체 굳이 드러내고 다니지 않을 뿐 주관이 매우 강한 편이다.[37] 가능한 한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그의 태도도 자신의 주관이 침해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데다 사관학교 생활을 하며 남자들 틈바구니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불쾌하거나 심성이 뒤틀린 상황에서는 과격한 반응을 보이거나 꼬인 심성을 드러내고 독설을 퍼붓는 면모도 가지고 있다.[38] 일반인들 앞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몇 번 노출될 뻔했으나, 그때마다 주변에 있던 인물들이 적절히 방패가 되어 준 덕분에 온화한 신사의 이미지가 유지될 수 있었다.

이런 양 웬리가 제대로 분노했던 장면이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은하제국 측에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공격하거나 추적하지 않겠다고 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 측 사령관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폰 젝트가 무인의 긍지를 운운하며 부하들과 다 같이 죽겠다고 자폭이나 다름없는 공격을 감행했을 때였다. 젝트의 이 망언을 들은 양은 그야말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무인의 긍지? 마음? 그거 좋지. 그럼 본인 홀로 할 것이지! 애꿎은 부하는 왜 끌어들이냐? 저런 놈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거다!"라고 말하면서 대놓고 분노를 터뜨렸다. 이 모습을 본 프리데리카나 주변 참모들마저 "저 사람도 저렇게 화를 내는구나!"라고 깜짝 놀랄 정도. 이 말을 한 직후 양은 젝트의 기함 근처를 확실히 노려 토르 하머를 쏘도록 명령했는데, 이 또한 저렇게 생명을 경시하는 사령관은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분노가 가득 담긴 표현이었다.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라인하르트보다 양 웬리가 더 모시기 어려운 상관일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라인하르트의 경우 부하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바로 질책하지만,[39] 양 웬리는 성격상 대놓고 모난 말을 못하는데다, 사람을 부리는 상관으로서의 자세가 배어있지 않아 잘했건 잘못했건 그냥 넘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밀 폰 젤레를 대하는 라인하르트가 가끔 짜증을 내다가도 에밀이 상처 받으면 바로 사과한다거나, 부디 승리하시라는 에밀의 응원에 '에밀, 그러니까 너는 나에게 이기라는 거구나. 나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겠다. 그리고 너는 꼭 살아남아서 전하거라. 나를 승리하게 한 건 바로 너라고.'라고 대답해주는 등 에밀과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에 비해, 양 웬리가 율리안 민츠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방임주의적이고, 율리안이 자신에게 존경심을 표할 때마다 꼭꼭 비꼬아주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정도였다. 즉, 라인하르트의 경우 자기 부하를 어느 정도는 이끌어주는 타입이지만 양 웬리의 부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알아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부하들이 담당 분야에서는 다들 유능한 편이라 그 훨씬 더 유능한 상관을 따라올 수 있었다.

부하들에게는 관대했지만, 본인이 직접 세세하게 관리하기보다는 중간 관리자급 인사들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자기 일에 집중했으며 특히 부대 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한 폭력행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많은 공을 세운 장교가 부하를 여러 번 구타한 것이 드러나자 가차 없이 강등시킨 후 하이네센으로 송환시켜버린 적이 있으며, 저항할 수 없는 부하를 구타하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일절 예외를 두지 않았다.[40] 덕분에 양의 부대에서는 후임병들이 군기라는 이름으로 억울한 구타나 얼차려를 받지 않기로 유명했으며 유일하게 욕설과 폭언이 허용되는 때는 훈련 때였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적에 대한 욕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막지도 않았다. 제국군의 구호 '지크 카이저!'에 대항해 양 웬리 측에서는 '뒈져라 카이저!'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제도 하지 않았다.

성격의 미성숙함이 종종 드러나는 라인하르트에 비해 양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성인에 가깝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둘의 나이 차이는 거의 10살 가까이 차이 난다. 1권 기준 라인하르트는 20세, 양은 29세였다. 유년학교를 졸업하고 이미 15살부터 사람을 가차없이 죽이긴 했어도 누이 안네로제를 어머니처럼 받들며 아이같은 모습을 보이는 라인하르트와는 달리 양은 어머니를 태어나자마자 여의고 아버지와 우주를 떠돌며 독설을 듣고 자랐다. 이렇게 성장 배경도 처지도 스펙도 다른데 당연한 것. 제 성격을 억누르는 것을 싫어하는[41] 라인하르트에 비해 양 웬리는 최대한 피하면서도 최소한 성인에 가깝거나 준하는 행동은 취한다[42]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라인하르트에 비해 양 웬리에게서 좀 더 배려심이 보인다.[43]

기지 운용 전반과 행정업무 및 보급은 알렉스 카젤느에게, 함대운용은 에드윈 피셔에게 일임하고 본인은 작전에 전념하는데, 그 때문에 카젤느에게 "목 아래로는 쓸모없다."는 혹평 아닌 혹평을 듣기도 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양 본인이 해당 분야 외엔 재능이 없고, 사령관이라는 직책상 본인이 직접 싸울 필요 없이 최선의 결과를 얻으면 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비난받거나 문제시될 만한 부분은 아니다.

다만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 브루스 애쉬비 원수에 대한 자료를 조사할 때, 애쉬비 원수와 관련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필요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출장 일정 및 출장비까지 완벽하게 산정하여 신청서를 올리자 서류의 완성도에 카젤느가 놀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문서의 완벽성보다는 평소에 그의 이미지에 비추어 완성도가 높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단언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일들은 예전에 어떻게 일을 처리했는지 문서로도 볼 수 있기에 그걸 보고 따라할 수도 있다.

군대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서 어떻게든 기회가 생기면 때려치우려 했지만 그때마다 주변 상황이 비협조적이었다. 이제르론 점령 후 예편원을 냈지만 양 같은 인재가 퇴역하는 걸 바라지 않던 군부는 예편원을 기각한 뒤 중장에 서임했고,[44] 사문회 때에는 참다참다 열 받아서 사표를 썼지만 마침 제국군이 요새 끌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미처 내질 못했다.

원래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공짜로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뿐, 군인이 되기 위해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임관한 후에도 10년 복무를 하면 나올 연금만 기대하며 제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볼 뿐이었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주변 상황이 그를 계속 군에 머물게 만들었다. 군인이 안되려고 했어도 어차피 전쟁 와중에 징집되어 졸병으로 나가 싸우다가 전사할 가능성도 크긴 했기에 되려 장교를 고른 게 그에게도 일단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군대 생활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군인이라는 직업 자체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에도 웬만해선 토르 하머를 쓰긴 싫어했지만 적이 계속 덤벼들자 위력 과시용으로 한방 쐈다가 2,500척의 전함이 한꺼번에 녹아버리고 "이건 일방적인 학살입니다."라고 쇤코프가 진언하자 그만두었다. 그리고 양 웬리는 반군국주의자여서 가끔씩 전투가 끝난 후 전투에서 죽은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도 나온다. 프레데리카를 좋아했으면서도 결혼은 버밀리온 회전 전까지 보류한 것 역시 자신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죽고 불행하게 했으면서 자신 혼자서 행복해도 되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쇤코프를 비롯한 주변의 부하들은 양에게 1인자가 되기를 권했으나[45] 양은 항상 이를 거부했다. 이는 양 스스로가 1인자보다는 2인자의 위치에서 안주하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 성향은 본인이 직접 인증하기도 했다. 그래서 후세의 역사가 중에는 자유행성동맹군의 가장 이상적인 편제는 알렉산드르 뷰코크가 우주함대 사령장관(총사령관)이 되고 양 웬리가 총참모장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 사람도 있으나, 이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실제로 양 웬리는 사령관보다는 참모(특히 작전참모)가 어울렸을 것이다. 양 웬리가 계속 함대사령관으로 나와 그렇지 실상 함대 운용은 부사령관인 에드윈 피셔가 다 하고 있었고 정작 양 웬리는 작전만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참모는 어디까지나 참모인지라 지휘관의 신임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뷰코크와 같은 상관이 아닌 이상 별 힘을 쓰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로보스와 파에타의 휘하에서 일할 때 질릴 정도로 겪었다. 그리고 양 휘하의 참모들도 양이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양의 군사적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이런 양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변에서는 그를 2인자에 만족할 인물로 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양이 군에 있던 시절에도 "그 녀석 사실 독재자가 될 거다."라는 참소가 먹혀들어가 사문회가 열리기도 했고, 자유행성동맹이 몰락한 이후에도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양에게 있어 최선의 조건은, 소설에서도 언급되듯 알레 하이네센과 같은 뛰어나고 존경받을 만한 정치적 지도자가 모두를 이끌고 양은 바로 그 밑에서 2인자로 머무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으니...

형식적이고 번거로운 것을 매우 싫어한다. 특히 최선임자 자격으로 해야 하는 연설을 정말 귀찮게 생각했다. 그 결과, 이제르론의 명물인 양의 2초 스피치가 탄생했을 정도. 새해맞이 파티를 앞두고, 연설에서 "여러분, 마음껏 즐겨주십시오."라는 단 한 마디만 했고 이것은 양의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할 당시 정부 수반이던 프란체스크 롬스키가 직접 그를 소개한 환영식 때도 그가 한 말은 "양 웬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가 전부였다. 오히려 롬스키가 양 웬리를 소개할 때의 멘트가 양 웬리의 연설, 아니 인사보다 더 길었을 정도. 정부 인사들은 당황했지만 양 웬리의 휘하에 있던 이들은 박수로 응대했고 곧 모든 이들이 박수를 쳤다. 동맹&제국 포로교환에서도, 높으신 분들이 각종 관례적인 미사여구가 포함된 문서양식을 잔뜩 보내왔지만 양은 전부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고 핵심만 포함된 문서를 사용했다.

딱 한번 예외가 있는데, 율리안이 자유행성동맹 페잔 주재 판무관 사무소으로 발령나서 이제르론을 떠날 때였다. 율리안을 달랠 때는 합리적인 말만 했지만, 율리안의 페잔 발령이 섭섭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는지라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라는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심통을 부리느라 연설이 꽤나 길어지고 말았다.

본인 말로는 요리도 약간 할 줄 안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인 프레데리카에게 " 식빵 땅콩버터를 바르는 것은 요리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지적당하고 바로 데꿀멍했다. 그게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였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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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리온 함교에서 양반다리 자세로 지휘중인 양 웬리 제독
라인하르트와 비교하면 지휘를 하는 자세도 많이 다른데 라인하르트는 앉아있을 때는 근엄하게 앉아서 지시를 내리고 그렇지 않을 때는 곧게 서서 하는 반면 양 웬리는 앉아있을 때는 다리를 꼬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 건 흔히 볼 수 있고 전방이 보이는 곳이면 아무 곳에나 앉곤 한다. 단 율리시스로 기함을 옮긴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지시를 내린다.

이런 별난 면모는 제국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지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패배로 끝나고 그의 지휘를 맡았던 메르카츠가 자살하려고 하자, 그의 부관인 슈나이더가 이를 말리며 양 웬리라는 제독이 제법 별나긴 하지만 관용이 있는 자이니 그에게 의탁하면 잘 될거라고 언급하며 자유행성동맹으로의 망명을 권한다. 적군인 그 은하제국에서도 일개 소령이 알 정도로 양 웬리는 유별나다고 소문난 모양.[46]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도 한 번도 면식도 없던 쇤코프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양 웬리의 대답에 "별나다고는 들었지만 (중략") 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동맹군 내에서도 특이한 인물로 보였던 모양.

이렇게 성격적으로 별난 면도 있지만 로젠리터에게 평생 충성을 받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면도 함께 있는 것 같다. 세대가 한참 다른 알프레드 로자스 같은 인물도 양 웬리를 좋게 평가하는 등, 작중에서 '인간적으로' 양 웬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편이다. 양 웬리를 싫어하는 이들을 꼽자면 욥 트뤼니히트를 비롯한 동맹의 정치인들, 지구교, 앤드류 포크, 헬무트 렌넨캄프 정도에 국한되며, 그들도 양 웬리를 인간적으로 싫어한다기보다는 각자의 사정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47] OVA에서는 정말 공감되게 싫어하는 사람이 등장하긴 했는데 다름아닌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전사한 켐프의 자식들과 뮐러(...).[48] 뮐러는 당시 전투에 참전했다가 지휘관이 전사한 상황이고 켐프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잃은 것이라 당연히 논외다. 양 웬리 본인도 전투에서 이길 때마다 기뻐하는게 아니라 이걸로 자기를 미워하는 과부나 고아만 수백만명이나 생기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는걸 감안하면 양 웬리의 인격이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좋아하게 만들만하지만[49] 기본적으로 군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인격과는 별개로 제국에는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3.5. 술과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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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홍차에 빠져사는 양 제독
"커피란 야만인의 음료야. 색깔부터 흙탕물 색이잖아. 그에 비해 홍차는 호박,琥珀,을 햇살에 비춘 색이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김완, 이타카(2011), p.242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먹는 전형적인 군바리 입맛이지만, 기호품인 홍차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까다롭다. 특히 누구보다 홍차를 칭송하는 중증 홍차광. 오죽하면 이제르론 요새 재탈취 암호 코드도 홍차와 관련된 실없는 내용이었다. 예술품 수집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커피는 '야만인의 음료', '흙탕물 같은 색'이라 운운하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전 2권에서는 "인류가 술과 차만을 마셨을 때는 문명이 건전했지만 커피니 콜라니 하는 흙탕물 색깔 음료를 마시면서 퇴폐와 타락이 시작되었다"고 커피를 타주는 장 로베르 랍에게 궤변강변하기도 했다.[50]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 웬리의 부하들은 죄다 커피만 마신다.[51] 홍차에 브랜디를 넣어 섞어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항상 율리안 민츠의 눈초리를 받는다. 재미있게도 술과 차는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대표적인 기호품인데, 차를 유난히도 즐기는 그의 면모는 동양적인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52] 작중 홍차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홍차를 즐기는 이들은 백차나 청차, 흑차 등 다른 차 종류도 잘 마시는 편이기 때문에 차 자체를 좋아할 확률이 매우 높다.[53]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커피를 마시긴 하는데, 그 때마다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다. 엘 파실 탈출작전 당시 급히 먹은 샌드위치로 목이 막혔을 때 프레데리카가 커피를 가져다주자 '다음엔 홍차를 줬으면 좋겠다'는 개드립을 쳤으며, 버밀리온 성역 회전이 끝나고 브륀힐트에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대담을 나눌 때도 커피를 마시며 아쉬워하는 표정이 언뜻 나온다.[54] 하지만 커피에 브랜디를 넣으면 매우 좋아하는데, 커피가 아니라 브랜디를 마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커피에 브랜디를 넣는 것이 아니라 브랜디에 커피를 넣는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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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며 브랜디를 따르는 양 함대 간부진[55]

홍차 뿐만 아니라 술도 즐긴다. 위 이미지는 황제 납치 사건의 대응 방안을 두고 열린 간부회의에서 율리안의 견제를 무시하고 대놓고 브랜디 병을 꺼내 돌려 마시는 모습이다. 덕분에 전체 생활비에서 술에 들어가는 지출이 두 배로 늘었다며 율리안에게 타박을 당하기도 한다.[56] 양 웬리와 관련해서 유명한 장면 중 하나. "술은 인류의 벗이다. 친구를 저버릴 수 있겠냐."라든가 "애초에 인류는 5천년 전에도 술을 마셨고, 지금도 마시고 있다. 그리고 5천년 후에도 역시 술을 마시고 있겠지. 인류에게 5천년 뒤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등 양 웬리의 논리적인 알코홀릭 유머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홍차에 브랜디를 넣을 때도 '홍차 넣은 브랜디'가 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고 한다.[57]

3.6. 사상

3.6.1. 민주주의

정치적으로 양은 민주주의자였으며, 항상 이에 대해 고뇌할 지언정 죽을 때까지 그의 믿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자유행성동맹의 민주정치는 부패한 지 오래였으며, 제국에서는 빛나는 항성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지도 아래 사회의 적폐가 청산되고 효율적이고 공정한 통치가 이루어졌기에 양을 고뇌하게 했다. 양 스스로도 자신이 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라인하르트가 부르지 않더라도 먼저 그의 밑으로 가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동맹 태생이고, 설령 라인하르트가 어느 누구보다 우수한 인재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민주정치가 더 우월하며 인류가 지향해야할 가치라 믿었기에 끝까지 제국과 그 사상에 굴복하지 않았다.

양에 의하면 라인하르트의 전제정치는 훌륭하다. 그러나 라인하르트의 통치로 사람들이 정치를 남에게 맡기는 데 익숙해져 시민이 아닌 ' 신민'으로 전락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군주의 선정으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잃었을 때 군주가 정치에 진저리를 치고 폭정을 펼치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라인하르트가 명군이기 망정이지 그 후계로 오른 사람이 폭군이라면 최악의 사태가 터질 것이다.[58] 결국 권력은 제한되고 견제되며 감시되어야 하며, 지도자를 선택하고 탄핵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민중에게 있기에 민주주의가 전제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게 양 웬리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확고부동한 신념이 없는 성향과 멜로스의 대화 같은 최악의 민주정치의 예를 아는 양은 소리높여 "민주주의 만세!"를 부르짖지 않았다. 스스로도 과거 선거일 전날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많이 마셔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자신이 잘난 척 떠들 수 없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중시한 만큼 문민통제도 중시했다. 양이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할 때 스스로 1인자가 되지 않고 프란체스크 롬스키의 밑에 들어가 복종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욥 트뤼니히트가 내린 정전명령에 복종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또한, 구국군사회의 쿠데타의 토벌 책임자였던 만큼 자유행성동맹 군국화를 끝까지 경계하고 이에 저항했다. 율리안은 양이 엘 파실 독립정부의 1인자를 차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양의 부하들이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라 양 웬리 개인에 충성을 바쳤기에, 결코 정상에 설 수 없었다고 평했다.

3.6.2. 국가관

"국가란 건 단순한 도구에 불과해. 그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아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거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4권 <책모편>, 김완, 이타카(2011), p.169
양은 국가에 대해 그리 애국심을 가지지 않았다. 양은 아나키스트처럼 국가의 존재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국가는 그저 사회계약론의 내용대로 인간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 만든 도구에 불과한데 그 도구에 인간이 지배당하는 것은[59]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우국이니 애국이니 구국이니 하는 거창한 소리를 지껄이며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비판했다.

특히 양은 국가가 영원불멸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은하제국은 5세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동맹의 역사도 이제 2세기 반을 넘겼을 뿐이며 페잔은 고작 1세기 남짓한 세월을 지났을 뿐이다. 인간도, 항성도, 우주조차 불멸하지 않은데 국가만 불멸하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고 양은 생각했다.[60]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맹 권력자들이 국가불멸을 부르짖으면서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며 무수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면서, 자신들은 동맹 멸망이 임박하자 제국에 줄을 서려고 한 걸 보면 양의 지적은 정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국가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만큼 애국심에 대해서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동맹 사람에게는 동맹 사람의 애국심이 있고, 제국 사람에게는 제국 사람의 애국심이 있다. 결국 애국심이라는 것은 우러러보는 깃발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는 것을 정당화 또는 강요하는 마음에 불과하며, 특히 권력자가 이를 무기로 사용할 때 그 폐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고 양은 생각했다. 그래서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직후 월터 아일랜즈 위원장과 회견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아일랜즈의 논법에 내심 싫어하면서도 아일랜즈 위원장이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데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지만,[61] 그때도 '국가'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고 '민주주의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양은 동맹 시민으로서 수십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동맹에 대한 인연을 순식간에 저버릴 수는 없었다. 바라트 화약 이후 전제정치를 무너뜨릴 모략을 꾸밀 때 동맹의 자주독립을 최상의 결과로 두었고,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동맹을 반강제로 떠날 때에도 동맹이 혹시 자신을 다시 불러줄까봐 엘 파실 독립정부 합류를 망설였다. 양이 동맹에 대한 감정을 정리한 것은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뷰코크 제독이 전사한 뒤였다.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때는 월급을 주는 나라에 의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3.6.3. 평화주의

"인류 역사상 영원한 평화란 없었네. 그래서 나도 그런 건 바라지 않아. 하지만 몇십 년 정도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는 얼마든지 존재했지.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무언가 유산을 남겨줘야 한다면, 역시 평화가 제일 좋지 않겠나?"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김완, 이타카(2011), p.197
군사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졌으나, 양 웬리는 평화주의자이자 반군국주의자였다. 양 웬리는 영원 평화는 믿지 않았지만 몇십 년 정도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는 존재했다며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것 중 최고는 평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 세대가 자신의 책임을 잊지 않고 평화를 지킨다면 평화는 오랜 기간 유지될 것이지만, 만약 잊어먹는다면 인류는 처음부터 다시 출발할 거라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이상론에만 젖은 것은 아니었다. 양 웬리가 반쪽짜리 함대로 이제르론 요새 공략작전에 나선 것은 요새를 탈취해서 전쟁을 끝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규모를 줄일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맹 정부가 제국과 평화조약을 맺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62] 문제는 자유행성동맹 정부가 역침공이라는 이상한 짓을 저질러 양 웬리가 따준 과실을 홀랑 날려버리고 말았고, 양 웬리가 꿈꾸던 평화와 퇴역의 꿈도 멀리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토록 전쟁을 싫어했던 양은 모순적이게도, 바로 그 전쟁에서 무수한 실적을 쌓아 군인으로 영달했다. 이 때문에 당대와 후세의 사람들은 "양 웬리는 전쟁이 정의롭다고 믿지 않음에도 가장 많은 무훈을 세웠으며 가장 많은 적을 죽였다"고 비판했으며, 양 스스로도 이러한 자기 모순 때문에 고뇌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은 양 웬리가 일으킨 것이 아니며, 전쟁범죄 혹은 자기 영달을 위해 무훈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양 웬리는 군인으로 충실한 삶을 살았고 그의 의무는 동맹을 지키고 시민을 지키는 일이였다. 혹자는 그가 전쟁을 싫어함에도 무훈을 세우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했지만 전쟁을 일으킨 것은 자기보신만 위하는 위정자였고, 오히려 양 웬리 본인은 군인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우선시했으며 그 본심을 숨기지도 않던 사람이다.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게 양 웬리는 잔혹한 전쟁 범죄를 저지르긴 커녕, 오히려 부조리를 일삼는 부하를 처벌할 정도로 혐오하다시피 했다.

양 웬리의 모순은 전쟁이라는 방도 이외에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는 폭력의 시대에서[63] 태어나 그런 시대를 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제국의 침공을 바라만 보았다면, 당대와 후대에게 더욱 비판받았을 것이다.

3.6.4. 신념에 대한 혐오

『신념이란 잘못이나 어리석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화장에 불과하다. 화장이 두꺼울 수록 그 밑의 얼굴은 추악하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6권 <비상편>, 김완, 이타카(2011), p.115
양 웬리는 ' 신념'이라는 단어를 극히 싫어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사전에만 실려 있으면 그만이지, 입 밖으로 낼 것은 못 되는 단어'. 발터 폰 쇤코프는 양을 가리켜 전투가 한창일 때조차 절대 자신의 정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양에게 신념이란 그저 강력한 소망에 불과하며, 어떠한 객관적인 근거도 없는 개념이었다.

양 웬리는 절대적인 정의를 믿지 않았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주관적인 선과 주관적인 선, 정의로운 신념과 정의로운 신념의 다툼이라고 생각했으며, 인류가 신과 정의를 믿는 이상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강한 신념이 가져오는 해악을 경계했는데, 루돌프 대제가 자신만의 신념으로 40억이 넘는 신민들을 학살한 것과, 구국군사회의가 자신들의 신념을 앞세워 동맹의 민주정치를 무너뜨린 것을 예로 들었다. 신념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정확한 판단과 통찰이 불가능해진다고 강한 신념을 비판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율리안은 "그게 바로 각하의 신념이군요.(...)"라고 돌려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신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면 양의 이 생각도 신념이긴 하다. 그리고 아래에 나오듯 양 본인도 자신만의 신념이나 신조가 있다. 이것이 옳은지 계속 스스로 성찰하는데, 이 또한 자신의 신념에 기반한 행동이다.

절대적인 정의를 믿지 않았기에, 양은 공정한 전제정치보다 부패한 민주정치가 더 낫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전제정치는 단일한 개성이 지탱하는 안이한 정치체제이며, 인류는 유일신에게 대의명분을 떠넘기는 것 보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치졸하고 우둔한 대의명분을 들어 서로 싸우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이 성향 탓에 양은 자신이 하는 일에 그다지 자신감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바라트 화약 이후 전제정치를 몰아낼 모략을 꾸밀 때도 먼 훗날 사람들은 라인하르트를 역사의 적자로, 양은 신질서를 파괴하려는 범죄자로 볼 수도 있다고 아내 프레데리카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돈을 밝히고 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삶을 영유하는데 있어서 필요하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기는 했다. 본인이 그렇게 원했던 역사학을 전공하려고 해도 학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된 것 부터 그의 군 경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료가 자신을 쇠사슬처럼 얽맨다'는 등의 발언을 남긴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계속 싫어했기 때문에 율리안이 군인이 되겠다는 말에 양육비를 돌려줘야 하는 트래버스 법 때문이라면 양육비는 자신의 재산으로 반환하면 되니 그 생각을 그만두라고 했을 정도의 돈을 모아두기는 했다. 그 외에도 루돌프 대제를 칼로 쓰러트리지는 못했지만 펜을 통해 그의 악업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인류사회의 몇 안 되는 진리라고 믿기도 했다.

후세 역사가들 중 신념을 중요시하는 일부 사가는 양 웬리가 신념을 까는 문언을 보고 비판을 쏟아내었다.

3.6.5. 무신론

양 웬리는 종교적으로 무신론 스탠스를 유지했다. 그것도 '내일부터 갑자기 연금이 열 배로 늘어난다면 하느님을 믿어 주겠다.'라고 종교인 입장에서 천벌받을 소리를 하는 골수 무신론자. 율리안에게 신이 노아 일족을 제외한 전 인류를 말살한 노아의 홍수 전설을 들면서 유일신교의 신화와 전설은 악마가 아니라 신이 공포와 폭력으로 인류를 지배하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지나치게 극단적인 비유를 들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보리스 코네프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무신론자였던 모양이다. 그때도 신이란 걸 생각한 놈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이라느니, 가난한 사람이 신의 공정함을 믿는 건 큰 모순이라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코네프도 어릴 적 양에게 영향을 받아 무신론자가 되었다.

3.6.6. 반 영웅주의

양 웬리는 영웅주의적인 것도 싫어했다. 시간대상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엘 파실 전투 이후의 일로 전투 자체는 참패했으나 300만 민간인이 무사히 탈출한 기적 같은 일에 정작 상관인 린치가 추하게 도주하여 이 추태를 덮기 위해 동맹정부와 동맹군은 일부러 양 웬리를 띄워주었는데 이 때문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3류 수준의 제안 등을 질려했고 그나마 좋아한 것은 어쨌든 사람을 죽여서 영웅이 된 것보다는 살려서 영웅이 되는게 낫다는 것과 이러한 활약에 사관학교 시절 교장이었던 시드니 시톨레의 "잘해주었네" 라는 칭찬 뿐이었다.

어쩄든 이러한 공작 때문에 양 웬리의 이름이 '엘 파실의 영웅'이라는 미명하에 널리 퍼져나가면서 크리스토퍼 폰 쾨펜힐러 알프레드 로자스 같은 인물들도 양을 만날 때마다 꼭 엘 파실의 영웅이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는데 이 때마다 양은 속으로 자신의 악명이 퍼졌다며 싫어했다.[64]

이후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홀랜드가 바보짓으로 전사한 후 패전을 수습한 후 뷰코크와 우란푸가 나눈 대화에서 드러나는데 뷰코크는 자기가 "영웅 따위는 술집에 가면 얼마든지 있지만, 반대로 치과 진찰대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세."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우란푸는 이에 동의했지만 뷰코크는 그 말의 출처를 기억하지 못했다가 나중에서야 겨우 양이라는 성을 떠올렸다고 한다.

본편에서는 마찬가지로 졸장과 명장을 그저 죽인 대상이 다를 뿐 똑같이 사람 많이 죽인건 같다고 평가하거나 율리안에게 영웅을 본받으라는 것은 어리석고 천벅하며 정신이상자를 본받으라는 것과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위인전에 대해서도 미친 사람을 우상화한다라고 율리안에게 절대 읽지말라며 혐오했다.[65]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양 웬리는 전쟁영웅이며 다른 능력은 모두 별볼것 없음에도 그의 이름이 남게 된 원인은 그의 군사적 업적 때문이다. 또한 양 웬리는 반 영웅주의이기는 했지만 반 영웅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다곤 성역 회전 링 파오& 유수프 토패롤 콤비나 730년 마피아에 대해서도 그들의 업적을 부정, 폄훼하거나 그들의 평을 나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을 찬양하지도 않았고 스스로 영웅이라는 생각이 있기는 커녕 그렇다는걸 싫어했다는 점에서 양 웬리는 영웅주의에는 비판적이었어도 영웅 자체에 대한 평에서는 중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3.7. 군사적 능력

......1개 함대. 겨우 1개 함대로 아군을 희롱하고 있다! 놈이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 출연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럴 수가 있는가!
(중략)
2년 전 립슈타트 전역에서 문벌귀족들의 멍청한 자제들과 싸웠을 때는 놈들처럼 무능한 것들이 어디 있을까 생각했네. 하지만 터무니없는 오산이었어. 양 웬리가 제아무리 뛰어난 지모의 소유자라고는 해도, 고작 1개 함대에 희롱당하는 우리의 추태를 보게!
타실리 성역 회전 직후 볼프강 미터마이어가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62
"전후, 좌우, 상하 어느 방향을 보아도 아군 함정들로 가득하다. 그런데도 아군이 열세라니,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회랑 전투 폴카 악셀 폰 부로 대장이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131
우리는 우주를 정복할 수 있으나 한 개인을 정복할 수는 없단 말인가.
회랑 전투 직후 볼프강 미터마이어가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139

'불패의 마술사'만큼 양 웬리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양 웬리는 동맹군에게는 그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항상 자신들을 승리로 이끄는 경외의 대상이었고, 제국군에게는 나타나기만 하면 다 이긴 전투도 패배시키는 공포의 대상이자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 상승의 천재 라인하르트조차 양 웬리와 맞붙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었던데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는 아예 기함 브륀힐트가 주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 정말로 죽을 뻔했으니 말 다했다.

위에 서술된 대사처럼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과 더불어 제국의 쌍벽으로 평가받는 인물, 즉 제국군에서 라인하르트 다음가는 명장인데 그 인물조차 양 웬리 하나를 잡지 못해 탄식한다. 그만큼 양 웬리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뜻. 미터마이어 이외에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제국군 장성들도 하나같이 양 웬리와 만나면, 마치 자신들이 농락한 립슈타트 귀족연합 신세처럼 늘상 전투에서 패배하기 일쑤였다.[66] 이 제국군 장성들이 무능하긴 커녕 이제까지 라인하르트 휘하에서 문벌귀족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실적과 군공을 쌓아왔는데도, 양 웬리와 전투를 벌일 때마다 그의 전술에 사정없이 농락당하고 본인들도 이에 대해 자괴감을 느낄 지경이니 양 웬리의 엄청난 군재를 알 수 있다.

제국군에게 무패전설로 승리만 기록하고 요절한 전설적인 적장이라 그런지, 양에 대한 사소한 것까지 제국군 사관학교에서 교과서로 엄청나게 연구하고 교과서로 배우고 있었다. 이는 동맹 측도 마찬가지였고 양이 죽은 뒤에 양 웬리 이름을 담아 저항하던 반제국 저항조직만 해도 수십여개가 넘었다.

3.7.1. 전략 측면

표면적으로 은하영웅전설 내에서 전략적 안목, 실행력을 종합한다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아스타테 회전 당시 라인하르트가 어떻게 나올지 정확히 예측한 모습, 동맹군에 대한 쿠데타 사주 가능성 및 방법론 예측, 그렇게 가기 싫어한 하이네센에 직접 가서 이를 알려 저지를 시도한 것, 페잔 회랑을 침공할 가능성 예측 및 이에 대한 저지 방법론 등 라인하르트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전략을 양은 분석해서 알아내고 이를 막아내려 시도했다.

그러나 양은 결과적으로 라인하르트를 막는 데 실패했다. 가장 먼저 양의 지위가 라인하르트에 비해 너무 낮았다. 라인하르트는 시작할 때부터 제국원수였기 때문에 높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었고, 립슈타트 전역을 거쳐 상관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자신이 최고사령관이 되어 완전한 재량권을 확보했고 이게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반면 양은 시작할 때는 일개 참모, 나중에는 1개 함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에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이전까지 재량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그나마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자유재량권을 인정받았지만 이미 전세가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중요시하는 가치에 위배된다면 설령 효율적인 길이라도 택하지 않는 양 웬리 성격이다. 만약 양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위법행위도 불사하는 성격이었다면 진작에 쿠데타를 일으켜 욥 트뤼니히트와 떨거지 정치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독재자가 되어 라인하르트처럼 완전한 재량권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은 내심 욥 트뤼니히트를 경멸하면서도 그의 지시에 따랐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를 죽일 수 있었는데 결국 죽이지 않았던 것은, 라인하르트를 죽여 동맹의 수명을 연장하더라도 그 대가로 문민통제와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본질적으로 전술가인 라인하르트에 비해 양 웬리는 본질적으로 전략가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67][68] 사실, 전략적 식견 자체는 양쪽 다 작품 내 만렙이라 딱히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데 라인하르트가 양 웬리와의 정면승부와 같이 전술적 성공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양 웬리는 그런 것엔 큰 관심 없고 일관적으로 전략적 승리에 더 중점을 두는 태도를 보인다. 즉, 양쪽 모두 전략적, 전술적으로 대등한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양 웬리 쪽이 전략적인 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고, 따라서 전술에 능통한 전략가 양 웬리 vs 전략에 능통한 전술가 라인하르트라는 구도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버밀리온 성역 회전의 결과에 대해 양 웬리는 전략적인 결과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패배라고 평가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전술적 측면에서 자신의 패배라고 평가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점에서, 작품 후반 두 주인공의 처지를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없는 전략가'와 '전술적 승리를 원하지만 전략적 우위를 포기하면서 전술적 대결을 해서는 안 되는 전술가'라는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보기도 한다.[69]

반면에 또 전략에 있어서 교범에 삼을 만한 식으로 하는 게 아닌 그때그때 맞는 전략을 내세우며 무엇보다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작전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서 제국군은 양 웬리 함대와 붙으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붙는다. 예시로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양 웬리가 부재중이었음에도 양 웬리가 당도하기까지 버틸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도 제국군이 "분명 양 웬리가 있겠지, 그럼 조심해야 한다"라 판단했기 때문. 그리고 이보다 앞선 회랑의 조우전에서는 양 함대의 병사들이 신병 위주로 편성되어 제대로 기를 못 펴고 있었음에도 사정을 모르는 제국군은 오히려 "또 양이 뭔 수를 쓰는거냐"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다가 승기를 놓쳤다.

이렇게 최고 수준의 기기묘묘한 전략을 보이기 때문에 제국군이 양 웬리와 싸우게 되면 가장 우려하는 게 '양 웬리가 어떤 전략으로 나올 것인가.'이다. 때로는 스스로 양 웬리의 전략을 간파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양 웬리의 전략이라 털리는 일도 잦다.

양 웬리가 이토록 뛰어난 전략적 안목을 갖출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군재도 군재지만, 무엇보다도 전쟁의 역사 연구를 통해 얻어낸 대한 폭높은 지식과 안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남긴 전쟁사에는 수많은 정지 군사적 상황과 전투를 이끈 이들의 활약과 실패가 모두 담겨 있고, 양 웬리는 그것을 아주 심도 있게 연구하여 이른바 전쟁의 심리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뛰어난 전쟁에 임하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더불어 학자를 지망했을 정도로 정교하고 신중한 사고방식 덕분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잃고 냉정을 유지했다. 양 웬리가 정치적 레벨에서의 전략안도 탁월했지만, 특히 인간의 행동 패턴을 읽고 함정을 놓는 기만전술에 유달리 뛰어났다는 점에서 그의 학자적인 기풍이 군재로서 제대로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주 전쟁사에 손꼽힐 만한 용병의 천재인 라인하르트와 제국군의 장성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들의 상대는 양 웬리 뿐만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난 인류역사를 이끌었던 명장들이기도 했다. 물론 어릴적부터 꾀를 잘 냈다는 것을 보면 순간적인 재치도 타고난 면도 있을 것이다.

3.7.2. 전술 측면

" 적보다 최소 여섯 배의 병력을 갖추고, 완벽한 보급과 장비를 갖추고, 사령관의 의사를 실수 없이 전달하는 것입니다."[70]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김완, 이타카(2011), p.243
제4차 티아마트 회전 전, 제2함대 출정식에 참석한 욥 트뤼니히트가 양의 필승법을 묻자 양이 한 대답이다. 불굴의 무인정신이나 남들에게 없는 독특한 전술운용[71] 등의 답변을 기대했던 욥은 자신의 선전선동에 전혀 써먹을 수 없는 빵점짜리 대답에 무척 실망했지만, 양의 입장에서는 한 점 거짓 없는 솔직한 대답이었다. 확실히 이길 수 있고 소득 있는 싸움만을 하고, 혹여 이길 수 없는 불리한 상황이라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해지지 않는 싸움으로 만들어버린다.

동맹과 제국의 많은 이들이 양의 군사적 능력을 칭송했지만 양은 스스로를 늘 뛰어난 군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군인으로서는 낙제점이라 여겼고, 적의 목숨을 빼앗고 아군을 허울 좋은 명분으로 무책임하게 희생케 하는 군과 군인을 혐오하는 입장이었다. 양은 군인, 무인, 장군으로서의 마음가짐, 지위, 평판, 승패, 승부 등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목적적합한 전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반면 양에게 당한 상대 지휘관들은 늘 양 웬리를 향해 불평하기 일쑤였다.

양의 전술적 역량은 사관학교 시절, 10년 만에 나온 수재라며 호평을 받았던 말콤 와이드본과의 전술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냈다. 와이드본은 다양한 공격전술을 활용해 자신이 생각하는 정정당당한 방법(정면대결)으로 양에 맞섰지만 양은 너무도 태연하게 방어적으로 맞서다가 보급선이 길어지는 것을 포착하고 와이드본 부대의 보급을 별동대로 끊어내 다소 허무하게 승리를 가져갔다.

또한, '전쟁사'에 대한 이해도가 동시대의 다른 모든 이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뛰어났다. 동맹과 제국 모두 총력전 체제로 오랜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빠른 전투병력 수급을 위한 현안적인 현대전의 전략연구나 실전경험 습득에만 치중했기에 전쟁에 대한 심도 있는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쟁사 연구를 등한시하는 상황이었다.[72] 하지만 양은 유년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지대했기에 간접적으로 상당한 경험을 축적시킬 수 있었다. 양은 인류 전쟁사에 이름을 남긴 명장들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서 적용가능한 형태로 재현해 냈고 양의 상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속절없이 당하면서 양이 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73] 적장들은 양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과거의 불세출의 명장과 상대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참모 시절까지는 제대로 된 작전안을 짜도 지휘관의 무시나 독단으로 인해 승리를 놓친 적이 많았지만, 지휘하는 함대를 갖게 된 이후로는 본인이 주도한 전투에 있어서는 불패의 전적을 자랑하며 이로 인해 '불패의 마술사'라는 이명을 얻게 된다. 무패의 마술사나 필승의 마술사가 아닌 '불패'라는 수식어가 생긴 까닭은 양 웬리가 병력이나 물량에서 상대방에게 확연히 뒤처지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소한 지지는 않을 전술'로 상대해 패배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즉 승리, 무승부 합쳐서 무패라고 한 것. 실제로도 양 웬리가 참전했음에도 진 전투는 많지만 양 웬리가 없었다면 완패했을 전투를 그럭저럭 수습이 가능한 수준으로 끝내서 승리한 쪽도 만족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제국군은 동맹군을 괴멸시키며 완승 직전까지 갔다가 양 웬리의 개입으로 동맹군 수뇌부와 잔존병력을 놓치고 마는데, 라인하르트는 혼자서 티아마트(제4차 티아마트 회전), 아스타테(아스테테) 암릿처(암릿처 회전)를 언급하며 왜 양은 내가 이길 때마다 나타나서 초를 치냐고 투덜댄다. 즉 동맹군 입장에서는 패배인데 제국군(라인하르트) 입장에서도 시원하게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작중 양과 비견되는 자는 라인하르트, 키르히하이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메르카츠[74] 정도가 꼽히는데,[75] 이마저도 대등할 거라고 평가받는 것이지 실제로 싸워본 적은 없거나 싸우더라도 이긴 적이 없다. 심지어 라인하르트 본인마저 버밀리온에서 말그대로 발할라로 직행할 뻔했다.

작중에서 살펴보면 양 웬리 개인이 나머지 동시대의 명장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 바로 실전상황에서의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다. 다른 명장들도 기회포착이 뛰어난 편이지만 양 웬리는 그 격을 달리한다. 전군에 패색이 짙어지는 와중에서도 실낱같은 틈을 포착해서 비텐펠트를 괴멸 직전까지 만들거나, 아주 조금의 승기도 놓치지 않고 대승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은 라인하르트과 비교해도 격을 달리한다.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 립슈타트 전역에서 귀족연합군을 상대로 꼬마아이와 어른만큼의 실력의 격차를 보여주던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 등이 '양 웬리 앞에서는 우리가 립슈타트 귀족연합 신세'라며 자조할 정도. 그만큼 양 웬리의 전술능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대체로 양이 소심하고 적극적이지 않아 보여서 우유부단한 듯 착각하기 일쑤지만, 전술적 결단력만큼은 그 비텐펠트와도 격을 달리하는 수준이다. 기회가 오면 비텐펠트보다도 훨씬 저돌맹진 스타일의 맹장이라는 것이다. 저돌맹진의 대명사 비텐펠트마저도 심각한 핀치에 몰리면 기를 못 추리는데, 양 웬리는 2개 함대가 궤멸당해 절망적인 상황이던 아스타테 회전에서조차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공격과 수비 지시를 원활히 내린다. 실제로 아주 찰나의 기회나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면 지체 없이 돌격을 명령해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적의 공격 타이밍을 꿰뚫어 단숨에 주도권을 빼앗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전장에서 보이는 양 웬리의 결단력 및 실행 속도는 저돌맹진의 비텐펠트와 신속과감한 미터마이어와도 격을 달리하는 수준이고, 상당히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의 라인하르트나 로이엔탈마저 우유부단해 보일 지경이다. 라인하르트는 본인이 유리하거나 승기를 잡았을 때는 신속하게 결정하지만 조금만 전황이 꼬이거나 부하들이 무능하면 바로 멘붕에 빠지고 우물쭈물하거나 부하들에게 화를 내는데, 이러한 단점을 키르히아이스나 로이엔탈, 오베르슈타인이 보완해 왔으나 본인이 직접 전선을 지휘할 때 바로 그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에 반해 양 웬리는 암릿처 회전을 비롯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당황은 하되, 우물쭈물하지 않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려 지휘를 시작한다. 이 결단력의 차이가 두 사람의 기량차를 낸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자군이 완전히 핀치에 몰린 상황에서, 전격전을 장기로 하는 상대를 역으로 폭탄을 떨어트려 매섭게 공격해서 기세를 꺾는 지시를 하기는 어렵다.

양 웬리 함대가 장기로 삼는 것은 병법의 고전적인 방편인 허허실실로, 일부러 약하게 보여서 상대를 낚고, 약해 보이는 곳을 도리어 견고한 것으로 속이는 데에 특히 능했다. 그중에서도 예술의 경지에 오른것이 기만적인 퇴각, 즉 도망치는 연기다. 양 웬리는 많은 상황에서 이런 기만적 퇴각을 구사했는데, 적들은 속임수인 걸 뻔히 알면서도 따라가서 당한다. 가뜩이나 적은 군세를 거느린 양이 대군을 끌고 덤벼오는 라인하르트 진영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허점을 내주어 방심을 유도해 유리한 전장으로 끌어와 격파하는 기만 전법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양을 처음 상대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던 장수들은 어김없이 양에게 호되게 당했다. 동맹 수도인 하이네센과 동맹군이 보급을 받을 만한 경제·산업 중심지를 장악해 버리면 그만인 데도 불구, 제국의 장군들은 호승심에 경도되어 그저 양 웬리 격파에 몰두하다가 큰 피해를 본 감이 있다.[76]

양 웬리는 이런 기만 전법을 구사하는 데 있어 적의 생각을 예측하고, 상황에 따라 상대의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사실 양 웬리에게 주어진 정보라고 해봤자 어디까지나 1차로 제국이 은폐하고 2차로 페잔이 취사선택해 동맹으로 흘려보낸 극히 제한된 정보인데[77]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정확성으로 상대의 성향, 심리, 행동을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카운터를 먹였던 것이다. 특히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유도하는 모습낚시의 천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며, 에르네스트 메크링거의 회상처럼 '상대를 자신이 준비한 무대에 올려놓고 원하는 대로 춤추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헬무트 렌넨캄프는 이러한 양의 장기에 휘말려 두 번(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라이가르 성역 회전)이나 패하며 양에게 분개해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을 일으켰고, 라인하르트는 3연속 패전( 수송선단 습격전, 라이가르 성역 회전, 타실리 성역 회전)에 제대로 화가 나 양 웬리의 의도대로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출격했다가 전사할 뻔했다. 이러한 양의 낚시가 너무나도 완벽한 나머지 양의 낚시라고 생각해 다르게 행동했다가 그게 진짜 낚시라서 된통 얻어맞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제국군 입장에서는 이리해도 양의 낚시고 저리해도 양의 낚시니 미칠 노릇.

즉, 양은 상대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고 다음의 수를 예상하여, 그에 대응하는 스타일이다. 평소 일을 뒷전에 미루어 두고 낮잠을 자주 즐기는 게으른 인간처럼 보이지만,[78] 실은 낮잠을 자지 않고 생각을 하거나 낮잠 중에 전투 중 예상되는 상황과 그 대응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79] 작중 양의 전술적 예상이 비껴간 것은 단 두 번으로,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미터마이어 함대가 가장 빨리 전장에 복귀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오브리 코클랭의 항복으로 인해 뮐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80] 암릿처 회전 당시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이끄는 별동함대가 지향성 제플 입자를 써서 예상보다 빨리 기뢰밭을 돌파한 것뿐이다. 그렇다고 예상이 빗나갔다고 한들 함대 수준에서 원했던 전술적 목표(암릿처 회전에서는 탈출,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는 라인하르트의 제거)는 거의 도달하는 성과를 이루어 낸 바 있다. 물론 후자는 브륀힐트를 주포의 사정권에 포착했다지만, 결과적으로 라인하르트를 제거하지 못하였으므로 결국 실패한 것은 맞다.

또한 양 웬리 앞에서 허점을 보였다가 정통으로 반격을 당하면, 전열 재정비는 꿈도 못 꾸고 대부분 괴멸에 이르게 된다. 양 웬리에게 제대로 허를 찔리고도 성공적으로 수습한 사례도 소수지만 몇몇 있긴 있다. 아스타테 회전, 회랑 전투에서의 라인하르트와 암릿처 회전에서의 볼프강 미터마이어,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그걸 해냈다. 이들 셋은 제국에서도 국보급 전술가란 점을 고려하면, 반대로 이들의 수준이 아니라면 양 웬리의 급소를 찔러오는 반격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는 의미다. 칼 구스타프 켐프 암릿처 회전에서 양 웬리가 우세인 상황에서도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는데, 켐프가 견실하게 병력을 운용한 것도 있지만 이 때는 주변 동맹군이 무너지고 있어서 양이 추격을 포기하고 물러난 것뿐이었다. 실제 소설에서도 이겨도 의미가 없다고 양이 말했다.[81]

강력한 카운터 한 방의 밑바탕에는 세밀한 포격지휘 능력과 이를 토대로 한 방어능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함대 운용의 명인 에드윈 피셔의 마술적 기동이 자리잡고 있다. 암릿처 회전 종반부에서 라인하르트는 양 함대가 동맹군의 최후미를 맡아 거의 6~7배에 달하는 제국군 함대를 상대로 밀집대형으로 버텨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놀라운 포격지점 선정과 화력집중을 통해 대등하게 싸우며 신기에 달한 방어 능력을 보여주자 이에 감탄한 바 있다.

또한 "양 웬리가 지휘하면 모랄빵이 절대 나지 않는다." 양 웬리 함대는 신병과 패잔병이 다수일 때가 많아 혼성군에 가까웠는데 병사들의 사기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유지시키는 것을 넘어 항상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것만으로도 명장이라 할 만하다. 정훈 담당인 표도르 파트리체프가 '아무리 사기를 끌어올리려고 해도 재료가 좋아야 하니까'라고 언급했다. 작중 평가에서도 양 웬리의 진정한 무서움은 '지략을 뿜어내는 마법의 실크 햇 뿐만이 아니라, 죽는 그 순간까지 병사들의 사기를 최고조로 유지시켰다는 점에 있지 않았나'라고 할 정도. 어느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와 같은 성정의 로젠리터가 그와 인연을 맺은 이래로, 마지막까지 믿고 충정을 보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의 리더십은 입증된다.

이와 별개로 '플리트 파일 컬렉션' 등의 설정에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동맹군의 함선은 전부 방어력이 낮고 중거리 포격전과 함재기전에 치중해 이외의 화력 부분에서 열세며 함 내 적재용량과 근무환경, 항행능력이 제국군의 함선에 비해 월등히 낮다. 이는 제국군에 비해 병력의 사상률이 높아지고 재보급 기한이 빨리 돌아오며 이에 맞춰 복잡한 수송 일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동맹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지라 심리적 압박이 큰 상황인데도 양 웬리는 페널티를 떠안고도 문제없이 계속 함대를 이끌었다. 오스카 폰 로이엔탈도 후에 노이에란트 전역에서 미터마이어를 이겨도 뒤에 카이저의 본대가 있는 등 상대는 무한에 가까운 회복력을 보이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끼면서 그런 카이저를 상대한 양 웬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양 웬리는 미터마이어와 카이저 본대, 그리고 로이엔탈 본인까지 맞섰던 상대였다.

양이 두각을 나타낼 시점부터 제국 측에서도 양 웬리의 전술에 대한 연구 책자 및 정보 자료가 엄청나게 나오고, 제국의 연구관들은 양의 전투 행적을 눈에 불을 켜고 미치도록 연구할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동맹 측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불운이 있었다면 언제나 병력의 수가 열세였다는 것.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아스타테 회전 당시, 2만 척의 함선을 이끄는 상급대장이었고, 립슈타트 전역 이후에는 15만 척 이상, 황제가 된 이후에는 20만 척 가까이 동원할 수 있었지만 양은 일개 함대 사령관이었기에 단독으로는 1만 5천 척 정도가 한계였으며, 동맹 전체로 봐도 제국령 침공작전 이후 10만 척 이상 동원할 능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양은 수송선단 습격전, 도리아 성역 회전을 제외하면 항상 적군보다 적은 병력으로 전투에 임해야 했다. 심지어 그나마 양적으로 대등했다는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도 양은 14, 15함대가 합류했음에도 라인하르트 직속함대의 87% 수준이었고, 나중에 나이트하르트 뮐러 함대 일부가 제국군에 합류하면서 제국군의 60%에 불과한 병력으로 맞서 싸워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 후반부에서 내내 양 웬리의 함대는 제국군을 압도했을 정도였다. 이에 대해 라인하르트도 회랑 전투를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그에게 5개 함대쯤은 줘서 붙어보고 싶다며, 그 천재성이 부족한 병력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힐데가르트 앞에서 얘기한 적이 있었을 정도.

워낙 잘 싸우다 보니 라인하르트 집권 후의 제국군에서는 양 웬리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는 건 딱히 흠이 아니었고,[82] 또 워낙 양 웬리에게 당한 장군들이 많아서 당사자에게 명백한 실책이 있지 않고서는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다.

3.7.3. 기타 측면

저렇게 전략전술 면에서는 완벽한 불패 명장이지만 다른 군사적인 측면은 허접했다. 사관학교 시절 성적은 4840명 동기 가운데 1909등. 점수로 보면 전쟁사 98점, 전략론 개설 94점, 전술분석 연습 92점, 사격실습 58점, 전투정 조종실습 59점, 기관공학연습 59점. 한 과목이라도 55점 이하가 나오면 낙제하므로 말 그대로 특기가 아닌 다른 과목은 간신히 낙제를 면한 셈. 혹은 그의 전투 스타일대로 낙제하지 않을정도만 공부했을 수도 있다. 불락의 사관생도 성격 항목에 나오듯이 괜히 '목 아래로는 쓸모 없다'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제국군 전함이 사절로 왔습니다. 중대한 용건으로 사령관 각하를 뵙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
체스를 중단하고 일어나면서도 양은 딱히 놀라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양이 권총을 책상 위에 내팽개쳐둔 채 문을 나서려는 것을 본 율리안이 그를 불렀다.
"총을 잊으셨어요, 각하."
"됐어, 됐어."
젊은 제독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맨손으로는 좀......."
"만약 내가 총을 들고, 쏜다고 치자. 그게 맞을 것 같아?"
"......아뇨."
"그럼 가져가봤자 의미가 없잖아?"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21

사격 솜씨는 그야말로 형편없다. 오죽하면 바그다슈도 나중에 양 웬리가 사격 솜씨가 엉망이라는 걸 알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 된 듯하다. 그런데 웃기게도 프레데리카는 양 웬리가 대단한 명사수지만 고상하게 실력을 감추는 거라고 믿었다. 프레데리카 못지않은 양 웬리 빠인 율리안이 봐도 이건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것 같았다고 할 정도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라인하르트가 군 경력면에서는 엘리트 코스가 아닌, 참모· 부장· 함장· 육전대 지휘관·소함대 지휘관 헌병 등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성장한 반면에 양 웬리는 엘리트 코스인 참모 역으로 활약하였고, 실전부대 지휘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함대 사령관에 이르렀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개 이런 경우는 책상물림으로 여겨지면서 전투에는 무능한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인데, 오히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적장들을 가지고 놀았다. 덕분에 작전참모로서도 양 웬리는 동맹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인물이라 참모장인 무라이도 작전에 있어서의 자신의 역할을 '그저 지휘관을 돋보이게 만드는 일'로 정했을 정도였다.

암릿처 회전에서 많은 동맹군 제독들이 죽거나 부상으로 퇴역, 그게 아니라면 포로가 된 까닭에 제국군 상대를 도맡다시피 하게 된 터라 은하영웅전설 본편에 등장하는 제독 중에서 전투 횟수가 제일 많다. 예를 들어 라인하르트 같은 경우 후방에서 지휘만 한 경우도 많지만 양 웬리는 최전선 야전 사령관인지라 얄짤 없다. 키르히아이스 같은 경우 라인하르트의 분신으로서 살아있었다면 제국군 최일선에 서서 많은 전투를 치렀을 수도 있겠지만 빨리 죽는 바람에…또 제국군 쌍벽도 의외로 전투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양 웬리와 더불어 동맹 말기의 버팀목이었던 뷰코크 제독도 본편에서 총 전투 횟수는 5회 남짓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양 웬리는 10여 회 이상의 압도적인 전투 횟수를 자랑한다.

일단 정전에 처음 나올 때부터 '100회 이상의 전투에 참전'했다고 나오며 '두 번 중 한 번 꼴로 이겼다'라고 한다. 대부분 참모직으로 참전했을 테니 전장 전체를 조망하는 식견을 기르게 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재능에 경험까지 뒷받침된 백전노장. 사족으로 초반 1년은 통합작전본부에서 근무했으니 이 시점에서 전선 근무는 대략 9년이 좀 안되는데, 전투 경험이 백번 이상이면 한 달에 한 번꼴로 전투를 치렀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본인이 함대 하나의 지휘를 몽땅 다 맡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로는 패배한 전투는 없다.[83]

3.8. 정치적 능력

상술한 대로 전장에서는 탁월한 통찰력을 자랑하지만, 자신의 정치나 사생활에서는 그런 측면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둔감한 면이 있다.[84] 그리고 가치관이 다른 상대에게 자신의 사고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지독히 소극적이고 재주도 없었으며, 학자 타입의 인물에게 흔히 있는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일면도 있어 양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처지가 어떤지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조직 내에서의 보신에 대해서도 아무런 배려를 하지 않는 부주의함도 보인다.

그 예시로 아스타테 회전 직후 열린 위령제에서 욥 트뤼니히트의 선동연설에 기립박수를 안 쳐서 우국기사단의 표적이 되었고, 군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이나 행사에도 무관심마여 '2초 스피치'로 때운다던가 내키지 않아 하는 모습을 보여 후세 역사가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수여받은 훈장은 그냥 구석에 처박아두고 잊어버렸고 훈장케이스는 비누곽으로 쓸 정도로 일절 중히 여기지 않아 정통파의 증오를 받았고, 사문회에서도 자신을 심문하는 사문관들을 통렬히 조롱하여 그들의 반감을 샀다. 카젤느도 이 면을 지적하여 조심 좀 하라고 했고, 황 루이는 이런 면을 들어 양 웬리는 독재자가 될 수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욥 트뤼니히트는 물론이고 조안 레벨로에게도 경원시당했으며[85], 훗날 고등판무관으로 부임한 헬무트 렌넨캄프의 의심과 얽혀 정치적 희생양이 될 뻔하기도 했다.

다만 하이네센 함락-이제르론 공화정부 건설까지의 과정을 보면 양 웬리에게 정치적인 식견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가 펼치는 전략의 군사적인 면모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도 정확히 짚었으며, 하이네센 공방전에서 바그다슈를 활용한 언론플레이 쿠데타의 대의명분을 완전히 박살냈고, 비밀리에 세운 동맹 재건계획에서도 정치적으로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는 등 뛰어난 안목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둔감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양 본인이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 굳이 잘 보이려 하지 않을 뿐더러[86] 권력을 탐하거나 정치에 뛰어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은 정치를 하수처리장에 비유하며, "없으면 매우 곤란하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은 악취가 진동하니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3.9. 저술 활동

적수였던 라인하르트가 저술 활동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양 웬리는 작중에서 여러 번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군인인데다 역사학과 지망생이었으니 주제는 대부분 전쟁과 역사에 관한 것을 썼다.

그러나 이 저술 활동이 결실을 맺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매번 글 쓰다가 의욕이 떨어져서 중단되는 게 일상이고, 막 쓰려고 하다가 체포되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다 양 본인이 암살당하면서 그가 남긴 역사론들은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미완의 저작들은 양 웬리 사후 율리안이 훗날 '양 웬리 전기'를 쓸 날을 대비해서 정리해두었다.

글을 많이 쓰긴 했지만, 그렇게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 예로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 조용한 나날이 이어지자 '문명과 술'을 주제로 논문 비스무리한 것을 썼는데, 그 서론이...
『......인류의 문명은 술과 함께 시작되었다. 문명의 마지막 또한 술과 함께 도래할 것이다. 술은 지성과 감성의 원천이며, 인간을 짐승과 구분짓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87]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4권 <책모편>, 김완, 이타카(2011), p.115
...이렇다. 이걸 읽은 율리안은 "싸구려 술집 선전문구도 이것보단 센스가 있을걸요."라고 혹평했고, 이걸 들은 양은 의욕이 꺾여 글쓰기를 중단해버렸다. 책으로 이름을 남기지는 못 했을 양 웬리가 책 속에 이름을 '남기는' 인물이 됐다는 게 어떤 의미로는 아이러니하다.

양 사후에 남은 자신의 역사 관련 저작들은 후대에서 냉정한 (어떤 의미로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저자가) 양 웬리라는 불패 명장이라서 주목을 받았을 뿐. 그냥 역사가로서 책을 보자면 잘해야 2류 역사학 서적이라는 평."이었다. 양과 비슷하게 본인은 군인이 별로 되고 싶지 않았던 제국군의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원수는 예술가로서 다양한 재능을 가져 온갖 상을 받고 후한 평을 받아 군인 때려치고 화가, 음악가,시인 등등 온갖 예술가로 벌어먹어도 충분하다는 평을 잔뜩 받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3.10. 별명

3.11. 유명세

여러모로 별난 면이 많은 사람인지 그만큼 인지도와 유명세도 있다. 동맹에서는 이미 엘 파실 탈출작전을 통해서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이 때문에 알프레드 로자스 크리스토퍼 폰 쾨펜힐러 같은 인물들도 한눈에 양을 알아보았고 양 웬리 관련 서적들도 있다.[91]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을 앞두고는 발터 폰 쇤코프가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뒤 돌아온 대답에 별난 사람이라는건 들었다고 말한걸 보아 최소한 이 시기에는 동맹군 내에서 그가 별난 인물이라는건 알려진 듯하다. 그도 그럴게 쇤코프가 속한 로젠리터 연대는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되기 때문. 양의 이름이야 이미 유명하니 모를 수 없다고 쳐도 그의 개인적인 면까지 얼추 알고 있다는건 유명세를 짐작하게 한다.

이런 인지도 때문인지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는 뜻하지 않은 도움이 되었는데 제국군의 공격과 탈출을 앞두고 민간인 대표들이 불안해하며 카젤느를 찾아왔을 때 카젤느는 탈출작전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다들 바쁜데 혼자서 홍차나 홀짝이는 놈에게 맡기라고 했는데 이렇게 찾아온 양 웬리가 하이네센까지 안전하게 모셔드리겠다는 한 마디의 말만 했는데도 대표들은 엘 파실 전투를 소환하며 다들 납득하며 돌아갔다.

다만 아스타테 회전 이전까지는 지휘권을 잡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제국에는 대개 아스타테 회전 이후에야 이름이 알려진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던지 라인하르트가 원수로 서임받은 자리에서 그저 상대가 쉬웠을 뿐이라고 깎아내리는 오프레서에게 뮈켄베르거는 양 웬리라는 적장이 엘라흐를 전사시켰다며 무시못할 인물인 것 같다고 평가했고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막바지에 슈나이더가 자살하려는 메르카츠를 말리며 양 웬리를 별나기는 하지만 관용이 있는 자라고 언급하였다. 이를 보아 제국에도 아스타테 성역 회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에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듯 하다.[92]

4. 기함

양 웬리는 군생활 대부분을 참모나 후방근무 등 직접적인 전투와 관련된 직책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기함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주력 796년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에 앞서 제13함대 사령관에 임명되면서 처음으로 기함을 가지게 된다.

4.1. 히페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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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레다 II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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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율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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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델이 된 인물?

중국 소량의 명장 진경지라는 장수와 비슷하다는 평이 있지만 다나카 요시키는 진경지에 대해 몰랐고 오히려 진경지에 대해 알고 놀랐다고 한다. 다나카 요시키 본인은 양에 대해서 특별히 모델은 없다고 발언했으며 나중에 따로 '분류'라는 제목으로 진경지에 관한 소설을 내기도 했다.

몇몇 독자들은 양의 모델이 작가 다나카 요시키가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다나카 요시키는 "자기를 주인공으로 스페이스 오페라를 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부인했다.

다만 모티브를 따왔다고 추정되는 인물들이 몇 명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선 태평양 전쟁 당시 구 일본 해군 제독인 기무라 마사토미와 유사점이 많다. 연금을 받기 위해 군대에서 복무했던 점, 사관학교 열등생에, 출세의욕도 낮았고, 낮잠을 좋아하며, 키스카에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구출작전을 성공시킨 점 등. 당시 미국 함대는 레이더에 잡힌 암초를 일본함대로 착각해서 허탕을 쳤다.

자신이 뛰어난 군재를 지닌 제독이면서 전쟁을 싫어하고 혐오한다거나, 홍차 브랜디를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하는 묘사를 보면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과도 비슷한 점이 보인다. 다만 링컨의 빵빵한 지원을 받았던 그랜트와는 반대로 양은 동맹에서 제대로된 지원을 받은 경우는 월터 아일랜즈에게 자유 재량권을 받은게 다일 정도로 없다.

또한 유능한 후원자를 뒤에 두고 있었다거나, 민중의 지지를 받고 되려 높으신 분들께는 미움을 산다는 점에서 조선의 이순신 제독과도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인다.

그 외에 정확한 훈련이 필요할 게 분명한 유인작전을 비롯한 함대기동들을 패잔병이나 신병들로 구성된 부대를 이끔에도 불구하고 평타처럼 구사한다는 점에서 평소 병사들을 빡쎄게 굴리지 않는다고 보긴 힘들다. 즉, 묘사만 잘 안 됐다 뿐이지 양 웬리 또한 실은 '유능하고 부지런한 리더'에 속할 수도 있다는 말.[93] 일점집중포격이 병사들의 훈련도가 아니라 컴퓨터 연산처리 등으로 가능한 일이었다면 다른 동맹군 장수들도 일점집중포격을 밥 먹듯이 구사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양 함대에선 엄격한 규율은 몰라도 훈련은 이순신 함대마냥 정말 빡쎄게 시킨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 실제로 소설상의 묘사를 보면 양의 부대는 폭력이나 구타는 절대 허용하지 않지만 훈련할 때만은 욕설이나 폭언도 서슴치 않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94] 율리안이 이제르론에서 처음 훈련을 받을 때 신체적 정신적으로 엄친아 완전체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군사훈련을 받을 때 교관들에게 질시 섞인 교육적 지도를 통해 혼이 빠지게 혼났을 정도.

사실 이 인물과 유사하고 여겨지는 사람이 여럿 언급되기는 하지만, 언급된 인물들은 저마다 양 웬리와 차별되는 점[95]이 있기에, 엄연히 말하자면 확실히 누굴 모델로 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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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양 웬리의 희생자 일람

양 웬리는 제국군에게 명실상부한 최종 보스였고, 끝내 넘지 못한 벽이었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제국군은 양 웬리 없는 양 웬리 함대인 이제르론 혁명군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시바 성역 회전에서도 수적으로 한참 열세였던 이제르론군을 압도하지 못했다. 양 웬리를 상대로 그나마 제대로 응전할 수 있었던 제국군의 지휘관은 라인하르트, 키르히아이스,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뮐러 정도[96]에 불구하며, 이들조차도 일찍 퇴장한 키르하아이스를 제외하면 고전(苦戰) 정도가 아니라 지휘관 자신이 전사할 뻔했다.[97]

이게 끝이 아니다. 아이제나흐 메크링거도 교전시 기함에 피해를 입거나 상당수의 병력을 상실하는 등 고전했기 때문에,[98] 뢰벤브룬 칠원수 중 제국령 내 치안 담당인 울리히 케슬러를 제외한 모든 장수들이 양 웬리에게 누구나 한 번 이상 고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즉 양을 전장에서 적으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피를 봤다는 것이다. 직접 양 웬리와 싸워서 개고생을 안 한 사람은, 제국령 침공작전 중에 잠시 싸웠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정도가 고작이다. 그나마도 사령부에서 암릿처에 철수를 명령했으니 계속 싸웠다면 결과는 미지수.

설상가상으로 한 번 피를 봤다고 끝이 아니다. 비텐펠트와 뮐러는 두 번이나 박살났고, 그때마다 목이 달아날 뻔했다. 게다가 비텐펠트는 자기 실수로 이런 일이 벌어진지라 그 때마다 양 웬리가 아니라 라인하르트 손에 목이 날아갈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첫번째 때에는 키르히아이스가 말렸고, 두번째 때에는 라인하르트 본인이 비텐펠트다운 실수를 한 것이 그답지 않은 실수를 한 것보다 낫다며 너그럽게 넘어가줬지만...

수송선단 습격전부터 버밀리온 성역 회전까지 양 웬리 함대에게 격파된 제국의 우주함대는, 최소로 잡아도 5만 척 이상이다. 참고로 제국령 침공작전에서 동맹군은 총 20만척에 3,000만을 동원해서 동원병력의 70%를 잃었다는 묘사가 있다. 그런데 양 웬리가 지휘해서 본편에서 함대전, 요새전을 포함해 쓰러뜨린 제국군 함대의 규모는 숫자가 확인되는 것만 10만여 척에 달한다. 이러고도 제국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작 시작 전에 합치면 동맹보다 더 좋은 성능의 함선을 40만 척 이상의 대물량으로 가지고 있었고 작중에서도 꾸준하게 뽑아내고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제국이 물량에서 동맹보다 앞서서 버틸 수 있었지, 만약 동맹이 제국령 침공작전 없이 그대로 같은 체급의 물량으로 싸웠을 경우 제국은 동맹이 제국령 침공작전에서 한 큐에 날려먹은 것에 맞먹는 군사력을 양 웬리에게 꾸준히 날려먹어 제국, 동맹 모두 사이좋게 약체화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동맹 정치인들은 양 웬리를 어떤 식으로든 견제했을 것이다.[99]

8. 게임에서의 일면

8.1. 은하영웅전설 4 EX

시나리오 1 : 제2함대 참모 / 준장
통솔 100 운영 15 정보 80 기동 62
공격 95 방어 99 육전 35 공전 72
정치공작 8000(+8) 정보공작 8000(+32) 군사공작 3000(+28)

시나리오 3 : 제13함대 사령관 / 소장
변경점 : 운영 16

시나리오 4 : 제13함대 사령관 / 중장
변경점 : 운영 17 정보 81 기동 63 방어 100

시나리오 6 : 제13함대 사령관 / 대장
변경점 : 정보 82 공격 96 육전 36 공전 73

시나리오 7 : 제2함대 사령관 / 대장
변경점 : 정보 83 공격 97 육전 37 공전 74

시나리오 8 : 제13함대 사령관 / 대장
변경점 : 운영 18 정보 84

시나리오 9 : 제13함대 사령관 / 대장
변경점 : 운영 19 방어 101

시나리오 10 : 제 13함대 사령관 / 원수
변경점 : 운영 20 정보 85 기동 64 방어 102 육전 38

통솔치는 라인하르트와 함께 두 진영 탑. 전투능력에 관한 공격과 방어도 매우 높다. 결국 시나리오 10에서는 철벽 뮐러보다 더 높은 방어력을 보여준다. 정보도 80 이상으로 높다. 떨어지는 능력치라면 육전, 공전이며 운영같은 경우는 매우 낮은 편이지만 운영은 카젤느, 기동은 피셔, 정보는 바그다슈, 육전은 쇤코프, 공전은 포플랭으로 커버할 수 있다. 다섯명 모두 자신의 분야에 관해서는 100이라는 최고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며, 계급이 낮아 부관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아깝지도 않다.

위의 올스타로 함대를 구성할 경우 시나리오 10을 기준으로 통솔 100 운영 84 정보 97 기동 94 / 공격 97 방어 102 육전 88 공전 95라는 사기적인 능력치의 함대가 나온다.

때문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8개 부대의 완전편제 함대가 구성되고, 기함을 후방에 배치하는 진형으로 편성한 다음에 카젤느가 방위사령관으로 있는[100] 이제르론 요새를 배경으로 방어전을 펼친다는 가정을 한다면, 양 편이 모두 NPC일 경우라도 제국군의 4, 5개 함대가 몰려오는 상황을 무난하게 막아내는 기염을 토한다. 허접제독 하나 골라서 관람하는 플레이로 장기전을 갈 경우에는 페잔 진공이 있기 전에는 제국군 장수들이 이제르론 회랑을 못 뚫어서 줄줄이 죽어나가는 형태의 전개도 보여준다.

또한 양이 준장 계급일 때, 소장부터 플레이 할 수 있는 이 게임 특성상 양은 훌륭한 참모가 될 수 있다. 일단 공격과 방어가 굉장히 높으므로 어떠한 함대에 들어가도 밥값은 한다. 특히 우란푸같이 공격은 높지만 방어가 아쉬운 함대에 참모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양의 경우에는 정치공작 상승치가 라인하르트의 절반이다. 턴당 8씩밖에 오르지 않기 때문에, 원작관련 내용을 반영하여, 쿠테타를 일으키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나마 쿠테타 모의 시나리오는 4 시나리오 한정으로만 가능하다. 시토레가 전사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요직에 앉기 힘들다. 동맹은 대장부터 요직임명이 가능하지만, 트뤼니하트가 양에게 요직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토레가 전사한다 하더라도, 다음 요직이 본부 차장으로 내정되어 있어서, 대장급이 된다 하더라도, 절대 요직에 올라갈 수 없다. 단, 그린힐이 본부장으로 임명되는 경우에는 쿠테타를 절대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나름 한숨을 돌릴만 하다. 단, 양으로는 제국의 오베르슈타인처럼, 로보스나, 그린힐이 요직에 앉아있는 경우, 제안 거부 확률이 50% 이상이다. 이러니 뭘 요구를 해도, 들어주는듯 하다가 번복하거나, 다른 장교가 훼방을 놓아서, 제안이 무력화 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여기에 빡친 유저는, 정치공작 수치가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쿠테타를 일으키는게 정석이다.

정 트뤼니하트 체제의 동맹이 마음에 안 든다면, 제국으로 망명하는게 가장 빠르다. 6시나리오 한정으로 가능한데, 시작하자마자, 체제 기지를 하이네센으로 땡기고, 다른 함대를 체제 시키면서, 자신은 하이네센으로 가면된다. 트뤼니하트는 반란토벌 맹주를 무조건 뷔코크로 임명하며, 만약 양이 반란군 토벌 총대장인 경우에는 깔끔하게 리셋, 망명조건은 함대가 전멸한 상태로 참모가 최소 1명이상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양이 죽어도 안된다. 두번째는 제국의 모반 이벤트가 끝나야 한다는 것인데, 제국의 성역에서 아스가르츠가 반란군 영토에 넘어갔다면, 미련없이 리셋, (제국반란 / 동맹 손으로 넘어간 행성의 조병창과 함선은 모두 0으로 초기화 된다)

제 13함대 탄생 : 1060
슬픈 비가 내리면 : 1380
사선 : 1540
황금나무 넘어짐 : 940
요새 대 요새 : 1980
갸라르호른을 울렸다 : 1540
쌍두의 뱀 : 1780
황제 만세 : 1940

8.2. 은하영웅전설 6

초기 능력치는 통솔 100 지휘 100 공격 87 방어 95 기동 78 운영 29 정보 84

게임 형태가 전술 단위로 축소된 은하영웅전설 6의 경우에는 적극성이란 수치가 추가되었는데, 현재 상황에 따라서 적극성이 올라가면서 그만큼 능력치도 비례적으로 상승하는 시스템이다. 양의 경우에는 성격이 "냉정"인데 지휘하는 함대가 전면붕괴에 처한 상황이 아니라면 적극성이 꾸준히 올라가는 타입이다. 즉 싸우면 싸울수록 능력치가 점점 올라가는 참 성가신 상대. 농담이 아니라 중후반부에 접어들어 적극성 200으로 만땅을 채운 양 웬리는 모든 능력치가 2배다. 게임 내에서 통솔, 지휘 모두 200을 노릴 수 있는 유일한 지휘관으로 여기서도 운영 능력치는 최악이지만 부관빨로 덮으며, 다른 지휘관들에게 부족한 정보 및 기동 능력치까지 빼어나다.

은하영웅전설 4 EX의 압도적인 위용에 비하면 수치상으로는 다소 너프된 것 같지만 다른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능력치 면에서는 다운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최강급. 작중 성향이 반영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휘관으로 있을 때보다 참모로 있을 때가 훨씬 위협적인데 한 턴에 적극성이 두 배 이상 빨리 상승하기 때문이다.

8.3. 그 외

FC용 게임 은하영웅전설에서는 플레이어인 라인하르트에 맞서 바라트 성계에서 미칠듯한 전투력으로 버티고 있는 최종 보스.

반다이 남코판 게임에선 능력치가 표준화된 게임 특성상 팔방미인적이지만 방어력이 좋은 캐릭터. 레벨 업만 뒷받침되면 어디 하나 밀리는 게 없다. 특기는 '불패의 마술사'. 60초간 16범위 내의 모든 아군함에 방어력을 추가하고 함대의 체력을 회복시킨다.[101] 발동컷은 양 웬리답게 느긋해 보인다.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신무장으로 추가된 삼국지 14에서는 통솔 98 / 무력 11 / 지력 100 / 정치 72 / 매력 85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별명인 불패의 마술사에 걸맞게 황금 개성은 '불패'. 상태이상 전법이 반드시 성공+기간 연장, 상태이상 무효, 범위 내 함정 해체의 효과를 가진다. 전법은 '마술사'. 범위 내 적군의 지력 의존 타격, 전 상태이상 부여를 시킨다. 능력치도 그렇고 개성도 그렇고 여러모로 제갈량의 하위호환에 가까운 느낌.

9. 여담

파일:attachment/yanwenri.png

상기 사진은 2012년 뮤지컬판의 주연배우를 맡은 록밴드 LUNA SEA의 보컬리스트 카와무라 류이치이다.

파일:attachment/크기변환_은하영웅전설_외전2기_1부-_나선미궁_09.avi_000710744.jpg

10. 둘러보기

파일:attachment/Free_Planets_Alliance.jpg 양 웬리 함대 파일:mxx5q0t3ulw01.png
소속 인물
양 웬리 ·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 · 율리안 민츠 · 알렉스 카젤느 · 더스티 아텐보로 · 에드윈 피셔
무라이 · 표도르 파트리체프 ·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 발터 폰 쇤코프 · 라이너 블룸하르트
카스퍼 린츠 · 마리노 · 라오 · 응웬 반 티우 · 올리비에 포플랭 · 이반 코네프
카테로제 폰 크로이처 · 루이 마솅고 · 바그다슈 · 순 수울 · 콜드웰 · 하무디 아슈르 · 닐슨
워렌 휴즈 · 살레 아지즈 셰이클리 · 아사도라 샤르티앙 · 머런빌&잠체프스키 · 필즈 · 피아지
소속 함선
히페리온 · 율리시스 · 트리글라프 · 레다 II호 · 시바 · 아가트람/마난난 막 레르 · 브레멘형 경순항함 · 칼데아 66호 · 아무르타트
히스파니올라 · 코르도바 · 마사소이트 · 마우리아 · 무페세



[1] 이타카 풍운편 91~92p, 열일곱 살을 맞으려 하는 율리안의 키는 176센티미터에 달해 마침내 보호자인 양과 같아졌다. [2] OVA 외전 나선미궁에 나온 신분증명서상의 신장 172cm [3] 자유행성동맹군 복무 시절 최종 계급도 원수이다. [4] 자유행성동맹군 원수로서 최종 보직은 이제르론 요새 사령관 겸 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5] 아내인 사카모토 마아야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를 맡았다. [6] 이후 21년도 성우 어워드에서 스즈무라는 OVA에서 양을 말년까지 같이한 토미야마 케이의 이름에서 따온 토미야마 케이상을 수상하면서 OVA에서 양을 맡은 성우의 이름으로 된 상을 DNT에서 양을 맡은 성우가 수상하게 되는 세대를 뛰어넘는 뭉클한 현장을 보였다. [7] 아내인 프레데리카 그린힐도 맡았다. [8] 후술하겠지만, 자기 방호를 위한 개인화기 사격조차도 군인에 걸맞지 않게 젬병이었다. [9] 심지어 작가조차도 작중 평에서 지와 용의 균형을 고려하면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제일이었다며 그에 비하면 미터마이어는 상대적으로 용에, 양 웬리는 지에 치우쳐 있었다는 나레이션을 넣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용장의 기준이 삼국지식 일신의 무력이나 비텐펠트처럼 성질 못 이겨서 닥돌을 명령하는 게 아님을 고려하면 필요할 때 최대전력으로 돌진하거나 후퇴하는 아군의 최후방을 지킨 양 웬리는 분명 용장이라 할 만하다. 정확한 계산으로 용기가 만용으로 빠지지 않는 선을 지키는데다가 평소에 전력 자체가 언제나 열세이다보니 밀어붙이는 상황이 자주 오지 않았을 뿐이다. 오히려 실전에서는 로이엔탈은 분명 공격적 장수이긴 하나, 망설이면서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양 웬리는 헛점을 포착하는 순간 바로 치고 들어오며 바로 연계 콤보를 날리는 스타일이며, 실전에서 용의 방면에서도 양 웬리를 앞서는 장수는 없다고 볼 수 있다.. [10] 둘의 리더십이 어떻게 다른 지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라인하르트는 거의 모든 면을 통틀어 독보적 위치에 군림하며 개인의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휘어잡는 스타일이라면 양 웬리는 주로 소탈하게 부하들과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11] 실제로 작가는 버밀리온 회전 이후 즈음에 양이 죽고 대신 율리안을 내세우는 전개를 쓰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회랑 전투 이후에 죽는 흐름이 되었다고 했다. 즉 원래 계획상으로는 제국은 라인하르트가 단독 주인공인데 비해 동맹은 양과 율리안이 각각 1, 2기 주인공이었던 셈. [12] 이 와중에 양은 라인하르트가 자기 성격을 못 누를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13] 일장일단이 있었다. 실제로 라인하르트는 베스터란트를 의도적으로 버려서 당시의 전략적 목표인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궤멸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 더 큰 후폭풍을 겪어야 했다. [14] 라인하르트는 10살에 누나를 황제에게 뺏기고 그때부터 복수만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보니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정신적으로까지 완숙되지 못했다. 게다가 나이 또한 아스타테 회전 시기를 기점으로 양이 29세, 라인하르트가 20세로 거의 10살 가까이 차이 난다. [15] DNT에서는 두 사람 다 묘한 분위기를 내지만 친구인 장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긴 건지 두 사람 다 의식해서 거리감을 두며 결국에는 양이 장을 밀어주고 제시카는 장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정리된다. [16] 원작자 타나카가 1988년에 발매된 「SF어드벤처 증간 은영전 특집호」의 인터뷰에서 밝힌 설정. [17] 양 웬리를 좋아라는 사람을 얀데레라고 부른다는 농담이 있다. 일본어로 적으면 받침이 ㄴ, ㅇ 중간이라 가능한 말장난. 제법 많이 쓰인다. [18] 광동 방언이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지만 오히려 한국 한자음 양문리에 좀더 가까운 음가인 '옝만러이(joeng4 man4 leoi5)'가 된다. [19] 다만 영문 표기 Yang Wen-li만 있어도 중국인들은 '양원리'로 읽지 절대 양웬리로 읽지 않는다. [20] 그런데 '威위엄'과 '利날카로움(혹은 승리)'이라는 한자는 양 타이롱의 작명이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이상하다. [21] OVA에서는 172cm로 조금 작아졌다. 다만 남성은 20대에 들어서도 키가 더 자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컸을 수도. [22] OVA의 172cm 기준엔 평균인 몸무게지만 176cm 기준으로는 약간 마른 편이다. [23] 원서의 표현에 의하면 ‘ 보는 사람에 따라선 잘생겼다고 해 줄 수도 있다(見る人によってはハンサムに見えなくも無い)’ 또는 ‘지극히 평범한 핸섬(ごくありきたりのハンサム)’ 정도로, 콩깍지 보정을 제하고 보면 나름대로 미형이긴 하되 희소성을 주장할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4] 그림체가 크게 바뀐 DNT에서는 젊은 연령대의 등장인물 중 꽤 많은 캐릭터의 외모가 상향되었는데, 양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거기에 더해 양은 정수리에 바보털이 하나 추가되었다.(이 바보털은 아버지 양 타이롱의 유전이다.) [25] OVA에서는, 키르히아이스가 라인하르트에게 "굉장히 꾸밈 없고 속이 얼마나 깊은 지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적으로 돌리면 그만큼 무서운 자도 없겠지만, 벗이 된다면 그만큼 든든한 이도 없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26] 반면 프레데리카 그린힐은 율리안을 아득히 뛰어넘는 양 웬리 팬이라 그런지, 라인하르트와의 회담 직전 ‘우주 제일의 미남자를 만나고 오겠다’라 말하는 양 앞에서 ‘두 번째로 가는 미남자’라고 직접 정정한다. 참고로 율리안 민츠는 어릴 적 양 웬리를 못마땅해 하는 선생님이 "넌 대체 양 웬리의 뭐가 좋은 거냐?"라고 했는데 이때 "게으른 면이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되받아칠 만큼 빠돌이다. [27] 이타카판 난리 편, 《은하영웅전설을 만드는 방법》에 실려있다. [28] OVA 17화에 나오는 프레데리카와 율리안의 대화에서 율리안이 ‘차라리 엘 파실 탈출작전이 실패했다면 양 제독님이 더 편했을 거다’라고 말하자 프레데리카가 ‘그랬다면 제국의 수용소에 갇혔겠지’라는 식으로 답하는데, 이를 받아내는 율리안의 말이 걸작이다. "지금 하시는 거 보면, 그랬다면 아마 객사하셨겠죠?" 제국의 포로수용소인 교정구는 지옥 of 지옥인 곳이다. [29] 특히 이 부분은 원작이나 DNT보다 OVA에서 더욱 부각된다. [30] 이런 양의 면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엘 파실 전투 이후 퇴역하고 싶어하는 양을 카젤느가 말리면서 한 말중에 군에 있으면서 사회의 각박함에서 보호받는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 왈 만일 이대로 퇴역한다면 정치인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자기네들 편에 서 달라고 하기 위해 기업들 역시도 양을 광고모델로 내세우기 위해 몰려들거라고. 당연하지만 양이 좋아할 리 없는 일이다.거기다가 넌 지금 연금받을 짬이 못됨( 동맹군에서 연금을 받으려면 10년을 있어야 하는데 양은 사관학교 시절까지 합쳐서 봐도 5년밖에 안 되어 앞으로 5년 더 근무해야 연금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까지 하지 GG행 [31] 원체 푸대접을 받는 처지라 승진에 별 기대를 걸지 않고, 그렇다 보니 시킨 일만 딱 끝내면 다른 건 신경 안 쓰고, 결국 지켜보는 입장에선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푸대접→태업→푸대접→태업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그나마 ' 엘 파실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이 있었기에 짤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32] 참고로 이건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다나카도 젊었을 때 30살 되는 게 큰일처럼 느껴졌다고. [33] 양이 워낙 대단한 무훈을 세운 국가적 영웅이다 보니 해당 선생도 완전히 존경하지 말라고는 못하고 "군인으로서는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이라고 말을 흐리는 것으로 서술된다. 다만 양의 평소 행태를 보면 '군인으로서는 훌륭한 사람이다(다른 부분에서는 별로다)'라는 표현에서 흔히 연상되는 지나치게 딱딱한 성품이나 군대식이고 고압적인 사고방식, 고압적인 태도 등과는 정 반대. 그리고 작중 내용을 보면 일단 율리안의 자유의지와 가능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면서도 옳고 그름은 확실히 따지고(예를 들어, 성적 같은 문제로 율리안을 갈구지는 않지만 애완동물에게 밥을 주는 것을 잊고 굶기는 등의 잘못된 행동에는 확실히 화를 낸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등 좋은 양육자로서의 자질은 분명 갖추고 있긴 하다. 다만 지나치게 게으르고 나사빠진 면모 때문에 율리안만큼 자기관리가 충실하지 않은 피보호자라면 그 자질을 백분 활용하지 못했겠지만. [34] 앉아서 버튼만 누르니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물건이라고 말하면서 싫어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이 게으름뱅이인 것은 아이러니 [35] 그마저도 도서관을 잘 다닌단 묘사도 나온다. [36] 예를 들어 페잔으로 떠나는 율리안에게 페잔에 넣어둔 은행계좌를 주었는데 50만이라 표시된다. 양은 동맹 사람이니까 50만 디나르 정도일텐데 동맹에서 대령의 퇴직금이 30만 디나르이고 대한민국 대령 퇴직금은 1800만원, 즉 50만 디나르는 거의 3000만원이나 된다. 물론 이건 너무 단순계산한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양은 군인이지 사업가가 아니기도 하고 물려받은 재산도 별로 없다. [37] 재미난 것은 대인배가 아니면서 주관이 매우 강한 사람은 권력지향적 인물이 될 확률이 높은데,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교육 덕인지 아니면 자신이 권력에 빠지면 거기서 헤어나오질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건지 몰라도 양 웬리는 권력지향적 성향과는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다. [38] 율리안의 평가(일기 내용)에 따르면 여성 앞에서는 천박한 표현을 삼가야 한다고 여기는 신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긴 하다(그래서 욕을 내뱉으려다가도 프레데리카가 있는 것을 보고 참는 모습이 나온다). 어려서부터 남자들 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어떤 표현이 천박한 표현인지 잘 구별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즉, 대체로 온화한 성품이긴 하지만 독설가적 측면을 가졌을 뿐 아니라 화나면 의외로 험한 말의 대가일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39] 다만 반대로 부하가 주눅이 들어도 직접 응원해준다. 예시를 들어 공부상서 질버베르히의 압도적인 능력 탓에 차관인 글룩이 주눅이 들어 '제가 무능한거 같으니 사직합니다' 라는 메세지로 사직서를 던졌는데 이 때 라인하르트가 '차관은 상서 다음 가는 것으로 경이 질버베르히보다 더 뛰어났다면 경을 상서에 앉혔을 것이다. 경은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걸로) 된 것이다' 라며 격려성 비슷한 말을 해주며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다. [40]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자신의 지원병을 이끌 인물들로 라이오넬 모튼 산도르 알라르콘의 이름이 나왔을 때 알라르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포로와 민간인 학살 혐의가 있던 자라고 얘기를 하니까 인상이 확 험악해진다. 그래도 상부에서 내린 명령이라 데려가긴 했다. [41] 이는 버밀리온 성역에서 당하는 원인이 되지만(작중 로이엔탈 동란 시 언급) 한편으로는 지존의 자리에 오르는 동력이 되어준다. [42] 이 부분은 1인칭에서도 드러나는데 양은 율리안과 단둘이 있을 때도 가릴 것 없이 시종일관 와타시(私)를 쓰고 다른 1인칭을 쓰는 장면이 드문데, 라인하르트는 공적인 자리에서만 와타시(私)를 쓰며 키르히아이스와 단둘이 있거나 사적인 자리에서나 빡칠 때의 경우에는 오레(俺)를 쓰는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43] 라인하르트의 경우에는 에밀 폰 젤레나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같은 소수 인물들에게나 그나마 사적인 배려심을 보이지만 힐데가르트의 경우에는 몇번이고 개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며 키르히아이스의 경우 자신의 반신이라 하였음에도 키르히아이스 본인도 속으로 좋은건 본인이 다 차지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둘의 관계에서 어쨌든 라인하르트는 무조건적인 우위와 주도권을 가졌고 베스터란트 사건에서는 그의 잘못을 따지는 키르히아이스에게 속좁게 반응하였다. [44] 특히 그가 맡은 13함대 문제가 컸는데, 13함대는 막 신설된 함대로서 30여년간 6차례에 걸친 공세에도 불구하고 공략에 실패한 이제르론 요새를 통상 함대의 절반 규모, 그것도 패전 후 살아남은 함대 두 개를 이어붙인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으나 그 함대는 단지 지휘관이 양 웬리라는 이유로 이제르론 무혈입성에 성공했다. 문제는 작중에선 묘사되지 않았지만 이런 화제성 때문에 임시함대에 불과한 13함대는 해체하기 어려워졌을 것이고 묘사된 것으로도 시톨레가 자네의 13함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며 OVA에서는 추가로 이 함대에 소속된 병사들이 제발 저희들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다가 양 웬리 역시도 이제 막 큰 공훈을 세웠는데 갑자기 퇴역해버리면 이게 국민들이 납득하도록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양 웬리가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으로 인해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 8년 전에 벌어진 엘 파실 전투에서 아군은 붕괴되고 제국군이 포위한 상태에서 민간인 300만명의 탈출작전을 지휘하여 무사생환을 시킨 기적을 달성하여 이미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갑자기 퇴역하면 후폭풍이 없을 리 없다. [45] 이것은 양 웬리에게 그다지 좋은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동맹에서도 엘 파실 혁명정부에서도 양 웬리가 군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부를 뒤집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냈다. [46] 그도 그럴 것이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양 웬리는 요새포와 함대로 제국 함대를 섬멸시키고 공적을 세울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제국군에게 항복하거나 항복이 싫다면 추격하지 않을테니 도주하라고 제의하고 실제로 자신의 말을 지키기까지 했다. [47] 정치인들은 양이 자신들에게 굽실거리지 않는 것과 국민영웅인 그의 입지가 위협이 될까봐 좋아하지 않았고, 지구교는 자신들의 오랜 숙원에 있어 양의 군사적 능력이 방해되었기 때문에, 렌넨캄프와 포크는 개인적인 이유로 인한 열폭 때문에 싫어했다. 어쨌든 저들 모두 지극히 사적이고 치졸한 이유로 양을 싫어한 건 매한가지다. [48] 뮐러는 켐프의 전사 소식을 듣고 반드시 켐프 제독의 원수를 갚겠다고 외치기도 했고 켐프의 자식들은 켐프의 아내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는 흐느끼자 어머니에게 자신이 자라서 양 웬리를 쓰러뜨리겠다고 말했다. [49] 뮐러 또한 저 때는 양 웬리에 대한 복수를 맹세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그때뿐이고 나중엔 그 역시 양 웬리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된다. [50] 랍은 이에 대해 언제 논문이라도 한번 써 보라며 대충 대꾸했다. [51] 특히 발터 폰 쇤코프.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는 당번병에게 최후가 될지도 모르는 커피를 타달라 주문했고, DNT의 행성 샴풀 해방전 에피소드에서는 어디선가 스타벅스 종이컵을 구해서 커피를 먹고있었다(단, 쇤코프가 해방전 직후 커피를 먹고있었다는 건 원작에도 있는 내용이다.). [52] 지금이야 홍차는 서양의 기호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래 차문화 자체가 동양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다.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삼 다즐링 등의 홍차 품종 상당수가 인도산이다. 게다가 서양인들만 홍차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기문홍차 등 중화권에서도 홍차를 많이 마신다. [53] 그의 기호를 아는 부하나 유력인사들로부터 홍차 외에 대홍포 용정차 같은 고급차를 선물받은 경우도 제법 됐을 것이다. [54]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패업과 누나 외 다른 것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대담 자리에서도 알아서 아무거나 내오라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메크링거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양웬리의 기호를 조사하여 제국 최고의 홍차를 브랜디와 함께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55] 출처: 은하영웅전설 OVA 38화. [56] 근데 이 건은 율리안이 조금 과장을 했다. 율리안이 일기에서 언급하기를 이제르론의 술값이 하이네센에서의 술값보다 비싸서 정말로 마시는 양이 두배로 늘어난건 아니라고. DNT에서도 해당 장면이 재현되기는 했지만 원작이나 OVA와는 달리 술이 많아져서(...) 율리안이 말리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57] 자신이 마시는 술의 양보다 출정식 때 술잔채로 바닥에 던져 술잔이 깨지면서 바닥에 흘린 술의 양이 더 많은 라인하르트와 상반된 취향이다. [58] 라인하르트도 그건 민주주의도 매한가지 아니냐고 물었지만, 민주주의는 임기에 제약이 있어서 종신집권이 어렵고, 거기에 여차하면 시민들이 탄핵시키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결국 시민들이 직접 군주를 뽑는다는 점에서 적어도 시민들에게도 책임이 부여되지만, 전제정치는 그런거 없다. [59] 더 정확히 설명하면, 국가라는 도구를 어떻게 다루는 지 아는 극소수의 인간이 대다수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60] 아이러니하게도 양 웬리와 비슷한 말을 한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프리드리히 4세다. [61] 기실 아일랜즈는 동맹의 정치인들 중에선 그나마 나았던 인물이다. 물론 이 인간도 트뤼니히트 일파 시절 비리만 일삼는 무능하기 짝이 없던 인간이었지만, 중대한 국가적 위기상황이 닥치자 긍정적인 의미로 사람이 급격히 바뀌어서는 국가에 헌신했다. 이런 아일랜즈조차 없고 조안 레벨로마저 손을 놔버린 제2차 라그나로크 작전에서 동맹이 굉장히 허무하게 멸망했고, 무엇보다 아일랜즈가 어떤 정치인들보다도 양을 믿고 지원한 행적을 보면 양 입장에서도 그나마 가장 좋은 정치인이었을 것이다. [62] 전세력 완전통일이라는 것이 평화를 위한 해답이 아닐 수 있다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힘으로 굴복시킨 상대는 과거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 그랬듯이 언제나 항거하는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렇게 통일시킨 세력이 온전히 유지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양 웬리는 가장 좋은 해법은 적절한 힘의 균형을 전제한 상호공존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평화의 방법이라 본 것이다. 다른 작품의 사례이지만, 창세기전 시리즈에서 불세출의 전략가이자 최고의 무인이었던 흑태자 팬드래건 왕국을 비롯한 실버애로우 연합을 격파하고 대륙 대부분을 제압했지만, 그가 실종되자마자 대대적인 부흥군이 일어나 금세 세력을 수복하기도 했다. 다크 아머 측의 최고사령관과 실버애로우 측 다갈 용병대 지휘관으로서 모두 몸을 담아 본 흑태자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양측 세력은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제거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공존과 화해야말로 진정한 평화라 판단했다. [63] 라인하르트 역시 무훈이 누나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64] 그러나 정작 이러한 타이틀 자체는 공작 덕이든 뭐든 유명세를 탔기에 OVA에서는 이름모를 13함대 병사들이 자기네들 상관이 엘 파실의 영웅이라고 알고 있었고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는 불안해하는 민간인들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 나섰는데 유명세가 유명세다 보니 시민들이 알아서 안도하고 돌아갔다(...) 본인이 싫어한 것과는 별개로 쓸모가 아예 없던건 아니었던 셈. [65] 사실 위인전이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위인도 아닌 사람이 위인인 것처럼 나오거나 혹은 다룬 위인의 잘못을 은폐한다든가... [66]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상술한 대로 미터마이어가 타실리 성역 회전 직후 자신들은 양 웬리 앞에서 문벌귀족 같은 신세라고 직접 한탄했다. [67] 두 사람이 추구하는 승리의 자세를 두고 보면 두드러진다. 라인하르트가 추구하는 것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고, 양이 추구하는 승리는 전쟁의 목표를 확보하고 쟁취하는 것이다.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와 비교해서) 상당히 공격적으로 병력을 운용하는 반면 양 웬리는 이길 가능성이 높은 곳을 따져서 싸우며, 병력을 온존하고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특별히 전투 자체엔 연연하지 않는다. 이게 특히 두드러진 것이 " 건강과 미용을 위해 식후 한 잔의 홍차"(...).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전략적 목표를 확보했다. [68] 이러한 두 사람의 성향 차이는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도 두드러진다. 양 웬리는 전략적 목표인 라인하르트를 사살한 후, 제국의 붕괴를 유발, 동맹의 생존을 꾀한다라는 전략적 목표를 확보하는데에 궁극적으로 실패했고, 반대로 라인하르트는 버밀리온 성역회전이라는 전투에서 양 웬리에게 철저하게 패하고, 포살당하기 직전까지 몰렸다. 대체적으로 로엔그람의 판정승이라는 것이 중론이긴 하나,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 모두 서로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며 상대방을 높이 평가했다는 기록이 남은 건 이러한 성향 차이와 배경이 있는 것이다. [69] 혹자는 양은 자신의 전략을 세우기 위해 전술적 능력을 키운 경우고, 라인하르트는 전술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전략적 능력을 키운 경우라고 보기도 한다. [70] 이는 손자병법에서도 비슷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不特者, 其所措必勝, 勝已敗者也. 故善戰者, 立於不敗之地, 而不失敵之敗也. 是故勝兵先勝而後求戰 敗兵先戰而後求勝. 善用兵者, 修道而保法, 故能爲勝敗之政.(불특자, 기소조필승, 승이패자야. 고선전자, 입어불패지지, 이불실적지패야. 시고승병선승이후구전 패병선전이후구승. 선용병자, 수도이보법, 고능위승패지정.), "착오가 없다는 것은 그 착오에 대하여 미리 조치를 해두어 필히 승리할 상황을 만들어 놓고 이미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적을 상대하여 승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패배하지 않는 지형에 입장하여 적을 패배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분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구해 놓은 후에 전쟁을 한다.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키고 이후에 승리를 구한다. 용병을 잘하는 자는 지도력을 잘 수양하고 법과 제도를 잘 보전한다. 고로 승패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71] 예를 들면, 볼프강 미터마이어의 신속과감한 기동 [72] 양 웬리가 사관학교에 재학 중일 때 예산 삭감의 이유로 전사연구과가 문을 닫았다. [73] 상황과 전장 환경이 달랐기에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 작전이나 전술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기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74] 메르카츠의 경우 다른 천재들이 군인이 되기 전부터 군인을 시작한 인물로, 동맹과 제국의 장군들이 진급 후 전장에서 멀어질 때도 그는 전장에 있었다. 이를 통해 얻은 엄청난 양의 군사 경험과 노련한 안목을 토대로, 화려하거나 장대하지는 않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기에 몰리지 않는 교과서적인 전략, 전술을 구사해 명제독의 반열에 올랐다. 즉 범재로 천재들과 동급이 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 볼 수도 있다. [75] 뷰코크는 이들과 같은 대열에 못 끼더라도 작중에서의 그의 지휘력을 봤을 때, 바로 밑급은 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일각에선 사실 뷰코크도 양 웬리나 라인하르트를 제외한 이들 그 아래 급으로 두면 동급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들보다도 살짝 아래는 느낌이 없진 않다. 실제 후지사키 류 코믹스 판에서는 저 최고봉 5명 중 하나인 로이엔탈과 승부해서 결과적으론 무승부를 겨뤘지만 내용을 보면 로이엔탈의 지휘와 전술을 전혀 이해할 수 없고 격파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사와 함께, 그렇지만 지진 않겠다며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패배를 면한 것으로 나온다. 뷰코크의 능력이 저들보다 떨어진다는 것과 그러면서도 저들 상대로 큰 피해를 모면하거나 패전은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연공을 가졌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준 셈이다. [76] 제국의 장교들도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전쟁의 종막이 다가왔고, 종전은 필시 군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공을 세우지 못하면 고속승진은커녕 자신의 현재 자리조차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양 웬리가 몰랐을 리는 없고 이를 잘 파악해 활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총사령관인 라인하르트가 양 웬리를 이겨보는 데 혈안이 되어 장군들로 하여금 더욱 호승심을 부추긴 것도 한몫 했다. 결국 힐더가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을 설득한 후 사실상 독단으로 하이네센을 점거하는 행동을 취하여 라인하르트가 전사 직전에 겨우 살았다. [77] 양 웬리의 정보적 이점은 기껏해야 시드니 시톨레 통합작전본부장 덕분에 일단 동맹군이 수집한 정보는 별문제 없이 받을 수 있다는 점뿐이다. 이것조차 시톨레 퇴역 후에는 별 의미 없어졌다. [78]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양의 모습을 떠올리면 베레모로 얼굴을 덮고 발을 책상에 올린 채로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연상할 때가 많다. [79] 만약 양이 실제로 수면이 부족해 잠을 자고 싶었다면 탱크 베드를 이용했으면 될 일이다. [80] 만약 양이 오브리 코클랭 대령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예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81] 그리고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면을 전술적인 면보다 우위로 치는 양 입장에서는 이겨도 전략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승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양에게 자신의 전략적 안목에 브루스 애쉬비의 전술적 능력까지 겸비된다면 낮은 확률로 전술적 대승을 거둬 전략적으로까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미세하게나마 있다. 애쉬비가 단 40분 만에 장성 60명을 전사시켜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을 만든 것처럼 양이 당시 전투에 참여한 라인하르트 원수부 수뇌부를 깡그리 말살시켜 버리면 라인하르트의 세력 자체가 약해버리고 특히 역량이 너무나도 떨어지게 되어 라인하르트가 동맹령 정복에 나서기 힘들게 된다. 멀리 보면 중박은 치게 되는 셈. 그러나 애쉬비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 당시에 제국군과 거의 대등한 병력을 가지고 전체 병력을 통솔할 수 있었지만 양은 아니었다. [82]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뮐러가 부하들 앞에서 양 웬리를 두려운 사내라 한 바 있다. [83] 암릿처 회전은 동맹군의 패배이긴 하지만 양 웬리의 13함대는 그때도 나름 선전했고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버밀리온 성역 회전, 회랑 전투는 무승부 혹은 승리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었다. [84]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3차원 체스도 주변 인물 중에선 상당히 약한 축에 속했다. 율리안에게 3차원 체스를 알려준 장본인이었지만 연달아 18연패를 당한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전략·전술이 뛰어난 이들이 장기 바둑, 체스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생각하면 의외인 부분. [85] 후지사키 류 코믹스에서의 조안 레벨로는 예외. 후지사키 류 코믹스의 조안 레벨로는 원작과 달리 의심병 환자도 아니며 대쪽 같은 정치인으로 나오며 국가 원수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양 웬리라는 미래의 가능성을 남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양 웬리를 옹호하며 편을 들다가 결국에는 국가 원수로서 사망한다. [86] 이 부분은 라이벌인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동일하나,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보다 훨씬 강한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 천성을 타고났지만 출세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맘에 안 드는 상관들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겸손한 태도를 갖추는 법은 알았다. [87] 사실 원숭이도 과실을 모아 원시적인 술을 빚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물론 우연이긴 하지만) 이 말은 엄밀히 말하자면 올바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88] 물론 명성과는 달리 양이 지휘권을 잡고 참전한 전투들에서 진 전투도 많았다. 그러나 그 전투들도 보면 나머지 지휘관들이 발리고 있을 때 혼자 원맨쇼를 펼쳐 그나마 적에게 한방 먹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적어도 양이 단독 지휘관일 때는 버밀리온 회전을 제외하고 지지 않았으며 버밀리온 회전도 전술적으로는 양이 승리했다. [89] 이전까지 동맹군은 6번에 걸친 이제르론 공략전을 벌였으나 모두 엄청난 피해만 낸 채 퇴각했다. 그런 요새를 거의 피해 없이 공략했으니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양을 두려워하는 뮐러에 대해 양이 그렇게까지 두려운 상대냐고 묻자 뮐러는 "경은 저 요새를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탈취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었고 부하가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그럼 양은 무서운 상대임이 틀림없다." 라고 말한다. [90] 심지어 후일 양 웬리 암살사건이 일어나고 제국측에게도 양 웬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제국군은 그 양 웬리가 정말 죽은 거냐며 함정일 수도 있다고 말이 많았다. 결국 양 웬리의 사망이 사실이라고 결론내린 뒤, 뮐러를 조문 사절로 보내며 애도를 표했다. [91] 정작 주인공인 양 웬리는 이 책들을 제목이 경박하고 내용은 무책임하다고 깠다. [92] 특히 후자의 경우 은하제국 역사상 처음으로 외적에게 영토를 잃은 사건이라 정무에 관심이 없던 프리드리히 4세조차 직접 해당 사건을 보고받으며 해결 방안을 논의했고 리히텐라데는 차마 반란군 따위에게 영토를 잃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외적'이라 말하여 라인하르트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93] 회랑의 조우전에서 신병 그룹의 더스티 아텐보로 분함대의 고전을 보면(양 함대의 명성에 맞지 않게 자멸하는 함선까지 나왔다)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이후의 신병으로 가득 찬 양 함대라고 아텐보로만큼이나 고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즉 신병들을 나름 노련한 병사들로 만들기 위해 양 웬리가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94] 그 대표적인 예가 "뒈져라 카이저!"와 회랑 전투에서 전투 도중에 아텐보로가 비텐펠트에게 날린 독설 등이 있다. 양 웬리는 전투 도중에 한 욕설은 관심 갖지도 않았다. [95] 그랜트와 비교하기에는 그랜트는 단지 자신의 성향 때문에 전쟁을 싫어했지만 양 웬리는 신념 때문에 싫어했고, 이순신과 비교하기에는 이순신은 군주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했지만 양 웬리는 자국의 국가원수를 따르긴 했어도 틈만 나면 그 한심한 작태를 씹기 바빴다. 물론 이순신과 비교하기에는 조선과 자유행성동맹의 국가 통치체제가 다르니 완벽한 비교대상은 아니지만... 실제로 양 웬리보다도 더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에 충성했다고 할 수 있을 뷰코크마저도 트뤼니히트를 죽이려 한 바 있다. 더욱이 이순신은 전쟁 초기에 군중에서 그 재능을 유일하게 보인 반면, 양 웬리는 대전쟁 말기에 출현한 동맹을 대표하는 양대 영웅 중 하나라는 차이도 있다. 그나마 기무라 마사토미가 가장 비슷한 편이지만 마사토미 역시 자국의 국가원수를 심심하면 씹었던 양 웬리와 달리 히로히토와 상부에 충성했다. [96] 이들은 모두 양 웬리가 칭찬한 인물들이다. [97] 뮐러는 버밀리온에서 기함을 3번이나 파괴당했다. [98] 특히 메크링거는 회랑 전투 직전 양 웬리의 허장성세에 속아넘어가서 후퇴한 적이 있다. [99] 외전에 등장하는 동맹의 전쟁 영웅들과는 달리 양 웬리는 정치적 야심은커녕 빨리 퇴역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인물이었는데도 동맹 정치가들은 양 웬리를 끊임없이 견제했고 그 절정이 사문회이다. 작중 양 웬리가 '전권을 가지고 대등한 전력으로 싸운 전투'는 오직 버밀리온 성역 회전 한 번 뿐이라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양 웬리는 제국군을 상대로 전권을 가지고 대등한 전력으로 싸운 적이 없다. [100] 사실 방어전 때는 쉔코프가 방위사령관으로 있는 게 좋다. 제국군이 혹시라도 시도할 수 있는 점거를 단독으로 2번이나 막아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어전 때도 양 웬리 함대에서 높은 운영치를 살려 비용절감을 해줄 수 있는 카젤느에 비해 쉔코프는 방위사령관이라도 안하면 방어전에서 할 게 없기 때문(...) 함상백병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101] 게임 내에서 16범위는 엄청나게 넓다. 대병력 VS 대병력 전에서 엄청나게 큰 효과를 발휘한다. [102] 기존의 아처는 클래스가 어쌔신으로 바뀌었다. [103] 이쪽은 율리안의 보호자에 대한 존경에서 일방적인 사랑으로 변한 것이다. [104] 다만 어디까지나 그래보이는 것뿐이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성격 문단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라인하르트도 절대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양 웬리보다 어려서 그런지 미성숙한 부분도 있었던 인물이다. 때문에 은영전의 팬들 중에는 이런 완벽해보이는 일면에 가려진 라인하르트의 인간적인 모습에, 더욱 매력을 느끼고 라인하르트를 양 웬리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팬은 주관적이긴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다소 심심한(?) 목적을 위해 싸우는 양 웬리와 그를 따르는 휘하의 사람들과는 반대로, 특정 사상을 딱히 지지하지는 않고 자신의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약간 더 인간적인(?) 목적을 위해 싸우는 라인하르트가 더 매력적이라고 평하기도.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전제군주제를 옹호하기는 했으나 전제군주제를 위해 싸운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버밀리온 성역 회전 직후에서의 양과의 회담에서 자신에게 진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105]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 사망이 독자들에게 미친 영향을 연상케 하는 부분. 제갈량 사후의 삼국지의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듯 양 웬리 사후의 은영전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애당초 캐릭터성도 묘하게 제갈량과 비슷한 면이 있다. (평범한 인간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의 책사이자 살아생전 라이벌이라 할 상대에게 참패당한 적이 없으며 결국 뜻을 전부 펼치지 못한 채 객지에서 사망했다는 점 등) [106] 작중 주력부대가 우주전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107] 넘버링 951번. [108] 참고로 양 다음으로 시행착오를 많이 거친 캐릭터는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다. 안네로제는 7번만에 현재의 디자인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덤으로 라이벌인 라인하르트는 의외로 그다지 애먹지 않아 5번만에 결정안이 났다고 한다.